틀니모형 뜨기와 부착

틀니모형 뜨기와 틀니 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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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치(義齒)는 내식으로 말하면 임시 이빨이다. 누군 공갈치아라고도 부르더라. 하긴 임시틀니라고도 한다. 그동안 위아래 대문니를 각각 2개씩 뽑았다. 이어 인공치근을 심고 그 위에 지대주결합까지를 마쳤다.

다음으로 잇몸을 꿰맸는데 잇몸 꿰매기는 치근과 지대주 시술 자리를 제대로 감싸면서 잇몸을 잘 아물게 하는 역할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이준범 원장의 몫이었다.

이후 틀니 모형을 뜨는 것부터는 간호사가 하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본 것이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입을 벌리고 하늘색으로 된 의료용 석회 반죽을 발치한 자리에 바르는 것이었다.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려야 해서 깜짝 놀랐다. 겨울철이라면 입이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입술이 매 마르기로 유명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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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을 바른 후엔 최소 5분 동안을 고정시켜야 제대로 모양이 나온다고 했다. 간호사가 한 손으로는 잇몸에 달라붙은 반죽을 누르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입을 벌려주느라 꼼짝도 못하고 애를 쓰는 모습이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반죽이 말라서 입에서 모형을 떼내기 힘들다는 거다. 그렇다고 시간 보다 일찍 떼 내려 했다간 모양이 일그러져 정확하지 않다. 모양이 잘못나오면 처음부터 전 과정을 다시 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어. 뭐든 일류로 하는 사람은 남의 돈을 거저먹지 않아.' 어디서나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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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기 힘들 거라며 죽을 싸들고 찾아온 동생이 끼어들었다. “치과 그거 고난도 직업이야. 나부터라도 치료를 받다 보면 돈이 하나도 안 아까워! 언니 그거 먹골역 연세더베스트치과라고 했지! 임플란트치료 말이야?” 동생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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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연세더베스트치과 이준범 원장” 동생에게는 강남구 학동역 8번 출구 바로 옆에서 치과의를 하던 시동생이 있었다. 잘 하던 치과를 접은지 불과 얼마 안 됐다.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형을 뜬지 1주일 후에 다시 치과에 갔다. 틀니를 끼우기 위해서였다. ‘아~ 나도 틀니라는 것을 끼네.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사는구나.’

 

음식을 먹을 땐 틀니를 빼고 먹으란다. 주의 사항이다. ‘외식할 때는 어쩌지?’ 한 4개월 끼고 살아야 하잖아.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겠지. 드디어 틀니 모형 뜨기와 틀니 부착까지 끝났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관문인 치관을 씌우는 일도 때가 되면 하게 돼있다. 한동안 잘 놀다가 다음에 보자. ^^*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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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20:02 2022/10/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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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순성여락과 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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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맑고 빛 밝은 10월 첫날이다. 

한양도성을 따라 순례길에 나섰다.

 

출판사 '아임스트리'에서 12명 순성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아 나선

순례길을 따라가 본다. 

아임스토리 대표 이다빈 선생님 왈

경험 상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순성 순례길에 나서기엔

더도 덜도 말고 12명 정도가 딱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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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길잡이 선생님은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을 쓴

작가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선생님이었다.

우리 모임은 지하철 1.4호선 동대문 역 6번 출구와 7번 출구를 나와

흥인지문을 둘러싸고 조성된 작은 광장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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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선생은 힘 좋고 체격 좋고 의욕과 친절미까지 갖춘 분인 것 같았다.

입 꽉 다물고서 관찰자로 서있는 필자의 마음까지 긍적적인 기로 감싸주는 모양새다.

'오늘 답사는 작가가 깔아주는 친절한 분위기'에 따라

그야말로 귀를 쫑긋하고 듣는 과정에서 '얼쑤' 장단 쯤은

저절로 넘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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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최철호 선생은

"성곽길 탐사 한 번 잘해보려 모인 사람들이시죠?  자 그럼 지금부터 저와 함께 하시죠!

이런 분위기를 조성할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오늘 우리가 오를 구간은 낙산구간이다. 입구에서부터 설명을 들으며 오르던 중

일행 중 '서울아리랑보존'과 연구에 천착하는 유명옥 선생이

즉석에서  아리랑 두 곡을 불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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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은 뚜렸이 기억하는데 그중 한곡이 '천부경아리랑'이었다.

아리랑은 모든 한국인의 가슴을 여는 만능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는 이가 내용을 곁들이 노래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은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리가 났네!'로 화답하면 된다.

 

그러고보니 아리랑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참여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노래인 것 같다. 

그야말로 강철처럼 어름처럼 단단하고 차갑게 굳은 그 어떤 사람의 마음 속까지

뚫고 들어가 어루만져줄 수 있는 만능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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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오르막길 내리막길 그리고 정자에서

조선왕조 518년의 수도 한양 도성을 소요하듯이 여유롭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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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마친 일행은 광장시장으로 직행하여 육회비빔밥으로 배를 채운데 이어

막걸리와 빈대떡과 육회를 곁들이며 

‘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무지게에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혔습니다. 라고 

초등학교 때 부르던 동요처럼 이야기 꽃을 피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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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스토리에서는 '인의예지신' 중 '신'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인'은 오늘 흥인지문에서 출발하여 낙산구간을 순성한 것으로

테마기행의 여정을 열었으므로 

다음 태마를 위한 구간을 기획할 것이라 했다.

 

 

*글쓴이/박정례.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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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2 12:30 2022/10/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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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17일은 광복군 창설의 날이다. 

9월18일 토요일 11시에 '무후(무후:후손이 없는) 광복군추모사업회에서는

(채수창 지구촌안전연맹 대표)를 비롯한

회원 25명과 함께 대전현충원에서 무후광복군 17위를 위한

추모제를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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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1919년 상해임시정부를 세운 이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국가주석이었다.

이런 김구 선생이 

1917년 9월 17일에  절망으로 치닫던 조국 광복을 위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 과정에서

광복군을 창설하였던 것이다. 하여 혹자는 10월 1일인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기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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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정부로부터 광복군 독립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은

무후광복군 17위는 올 8.15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수유리에 있던 유골 및 시신을

이곳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였기에 광복군 창설일을 맞아 기념추모제를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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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18일 대전현충원에서 거행한 광복군 애국열사

17위 추모제를 거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에서부터

행사를 마치기까지의 장면을 담고 있다.

***

특히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앞에서 말한 무후광복군기념사업회 회원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회 회원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여

독립을 위해 몸 바친 광복군 열사들에 대한

헌신에 감사와 정성을 담은 뜻깊은 추모제를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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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8 10:42 2022/09/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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