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대표와 우윤근 러시아대사
시베리아 여행을 기억하며 -①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러시아에서 7박 8일을 머물렀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 끝에 오는 피곤함 뒤에는 러시아에서 보낸 기억들이 고개를 쳐들며 미소를 짓고 있다.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갔던 시린 감촉이 어느 덧 각별한 추억으로 자릴 잡게 되고,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반추하게 된다.
정동영 대표가 천착하는 것
우리들의 이번 여행에는 크게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 극동연방대학과 세미나를 공동 주관하는 일, 둘째 구한말부터 조성된 한인유적지 탐방, 셋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츠크역에 도착하여 민족의 시원지라고 일컬어지는 바이칼호수로 여행하기다. 그 중에도 우리 일행이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미션은 세미나 참석인데 이는 정 대표가 크게 천착하고 있는 남북문제와 우리민족이 어떤 식으로든 지정학적이고도 실질적인 섬나라 신세를 벗어나 저 넓은 대륙 마인드를 장착하고 웅비를 떨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도착 이튿날 <(사)대륙으로 가는 길>과 러시아 극동연방대학 국제관계.지역학부에서 공동 주관하는 일로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주(駐) 러 우윤근 전권대사를 비롯하여 한국과 러시아 측 관계자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체재와 신북방경제’를 주제로 연구 발표할 예정이다.
러시아 도착, 정동영 대표와 우윤근 대사의 해우
인천을 출발해서 대한항공 KE981 편으로 러시아 땅을 밟은 때는 7월5일 1시50분 깨. 입국수속과 가이드 미팅을 다 마치고 곧장 버스에 올랐을 때는 3시30분경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불과 5시간 만에 버스에 탑승한 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둘러보기 시작하다니! 한.러수교로 인해 시공간(視空間)적인 거리가 바짝 가까워진 덕분인 것 같아 격세지감을 느낀다. 호텔 아스토리아로 가서 여장을 푼 것은 6시 조금 전이었다. 이후에는 우윤근 대사와 조우하게 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으로 갔다. 만찬 상이 차려진지 얼마 안 있어 우 대사가 이석배총영사와 함께 도착하였고, 구면인 정 대표와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 사람은 정치인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외교업무를 맡고 있는 공직자 신분이다. 그러나 정동영 대표와 우윤근 대사는 같은 당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던 처지여서 그런지 유난히 친근한 모습으로 반갑게 해우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멀리 모스크바에서 달려와 어찌 보면 일개 단체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이처럼 달려와 주진 않았으리라.
식사 도중에 여러 차례 건배가 오갔다. “멀리 모스크바에서 7시간이나 비행기로 날아 와준 우윤근 대사와 이석배 총영사를 위해 건배를 제의합니다. 우 대사와 이 총영사의 건강과 공무수행을 위해 모두 건배!” 정 의원의 건배 선창에 의해서 ‘위하여!’를 연거푸 외치며 만찬장을 달궜다. 이에 뒤질세라 박상규 <대륙으로 가는 길> 이사장도 우 대사와 이 총영사의 공무수행에 따른 노고를 치하했다.
괜한 선입견
이어 우윤근 대사의 ‘모스크바 생활’에 관한 미니강의가 시작됐다. 정대표의 즉석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사실 본 기자는 우 대사를 만나기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총리 지명을 받은 이완구 씨를 붙들고 “청문회 때 못 도와줘서 미안했다”며 눈물바람을 하던 모습이 TV화면에 비치는 것을 보며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저게 뭐야?”하고 마뜩찮게 여겼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또 지난 6월14일에서 7월16일까지 열렸던 월드컵대회 때다. 우리 선수들이 멕시코 전을 치르고 난 직후였다. 우 대사는 태극무늬가 박힌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하고서 선수편의시설인 락커룸을 찾았다. 멕시코전에서 2:1로 패배한 후유증인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수들과는 대조적으로 우 대사의 모습은 명랑 쾌활한 모습으로 태극기를 흔들면서 분위기를 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필이면 TV에서는 또 이 장면을 유독 잘 보이도록 포착해주는 것이어서 “어린이 재롱잔치도 아니고, 대통령 앞에서 어지간히 하는군.”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별거 아닌 것 갖고 말이다.
하지만 우 대사를 직접 대하자 괜한 선입견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추상과 구상의 차이라고나 할까?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구체적인 형태를 보자 순식간에 중심이 잡혔다. TV를 통해 본 우 대사에 대한 인상은 실제 앞에서 존재도 없이 사라졌다. 하여튼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시종일관 싫은 웃는 낯꽃으로 강의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본래 잘 웃는 사람이구나. 긍정마인드가 몸에 밴 인물이로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러시아와 푸틴
“95년 변호사 시절부터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관저도 안톤 체홉이 살던 집 건너편이라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3선 국회의원 이후 국회사무총장을 하면서 전남지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러시아 특명대사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러시아 하면 무조건 시베리아나 보드카나 푸틴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대해서 알고 나면 흥미로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러시아인에 대해서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서양얼굴을 하고서 동양인처럼 사고(思考)하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숲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처럼 가족주의가 강하다. 러시아인들은 이름 가운데 반드시 자신의 아버지이름을 넣는데 대인관계를 할 때 기억하면 좋다. 아버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나도 대사 발령받아 17명이 같은 날 신임장을 제출하게 됐을 때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 이름을 기억해서 인사를 했다.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 중에 나 혼자 그렇게 했다. 푸틴 대통령이 좋아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는 우리로서는 기회의 땅이다. 우리가 잘 모르고 러시아를 외로운 불곰 같은 존재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가가는 만큼 기회를 잡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우린 잘 지내고 있다. 에너지도 풍부하고 값도 저렴해서 관저에서는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 천연가스는 러시아가 세계 최고 아닌가. 그래서 수출국이다. 한.러 국교수교 이전에는 대등하게 교역을 하거나 그런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피차 발전모델을 연구하는 처지가 됐고,
작년 양국의 교역규모는 190억 달러나 된다. 예전에 비해서 무려 40% 증가한 거다. 인적교류도 작년에 51만 명을 기록했다. 양국 수교 3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는 교역액 300억 달러에 인적교류 1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이 어느 정도 친선관계냐 하면 한국은 이스라엘과 칠레와 더불어 비자면제를 받는 국가다. 일본도 비자 면제를 받지 못한 나라다. 우리는 비자 면제를 받고 있다.”
우윤근 주 러시아대사의 긍정마인드
러시아에 대한 우 대사의 존중과 애정이 느껴졌다. 전권대사로서 주재국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가지고 선린관계를 쌓아가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만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괜한 선입견은 무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대통령과 함께 락커룸을 찾았을 때 분위기를 띄우느라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애 같았다. 당시의 분위기와 함께 월드컵이 이곳에서 열렸는데 소련국민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우대사의 월드컵에 대한 소감은 어땠는지 두루 아울러 한 말씀 부탁한다.
“소련이 아니고 러시아로 불러 달라. 우리 팀이 참가하는 러시아 월드컵 아닌가. 게다가 대통령께서 찾아주셨다. 주러 대사로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스웨덴 전, 멕시코 전, 독일 전 모두 관람하며 응원할 계획을 세웠다.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발전하기를 기대했다. 대표 팀은 월드컵에서 공정하고 깨끗한 스포츠 매너를 보여주길 바랐고, 승패를 떠나 타국에서 뛰는 우리선수들을 우리대통령께서 위로 차 들린 자리라서 감회가 남달랐다. 승패와 상관없이 가슴이 뿌듯하고 말이다.”
이완구 총리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에 ”참 희한한 남자네. 3선 국회의원에, 제1야당의 원내대표깨나 되는 사람이 저만한 일에 부둥켜안고 눈물까지 흘리나?”라며 유별스럽게 생각하던 것은 일종의 편견이었던 것 같다. 이튿날 극동연방대학교 세미나에서도 우 대사는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