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대표와 ‘한반도 평화체재와 신북방경제’
시베리아여행을 기억하며-②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격세지감이 든다. 우리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뒤로하고 근 10여 년간 보수회귀정권을 만나 남북평화교류 분야에서 캄캄한 동굴 속 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희미하게 보이는 빛을 넘어 곧 떠오를 아침 해를 기다리는 시기에 와 있다. 때마침 이와 무관치 않은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슴통은 열고, 걸림돌은 치우고
상전벽해라더니,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시대가 다시금 성큼 다가온 기분이 든다. 지난 세기엔 철의장막, 죽의장막, 베를린 장벽 등 몸과 마을을 가로막는 것도 많았다. 온갖 장막과 걸림돌들이 왜 그렇게 많았던지! 이를 냉전시대라 하던가? 우린 더해서 군사독재시절을 겪은 데다 남북문제나 남북평화교류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조차 봉황의 깃털만큼이나 기린의 뿔만큼이나 희귀하고도 드믈 수밖에 없도록 지독히 편협한 시대를 살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간첩 누명을 쓰고 빨갱이로 몰려 감옥소 가고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통일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세상을 만들었다. 올 들어 평창올림픽을 통해 스포츠로 만나고 4월27일엔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금세 2차 회담을 가진데 이어 북.미간 정상들도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에 스포츠 단일팀을 꾸려서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도 참석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9월 18일엔 3차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대세는 상호 이해와 화합의 길로 흐름을 타고 있는 중이다.
나비의 조그만 날갯짓, 그것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선구적인 안목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 9월 김대중은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고, 신민당 대통령후보 신분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미.소.중.일 4대국 보장과 비정치적 남북교류 허용과 평화통일론을 주장한다. 18년독재자 박정희가 자신을 향해서 겁박의 창끝을 겨누고 있는 가운데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로지 ’반공‘만 내세우는 독재자 앞에서 용감히 외쳤다.
이어 김대중은 이듬해인 71년 2월3일 미국을 방문하는 중에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김대중의 나비 짓은 오늘 날 이처럼 도도히 흐르고 흘러 폭풍이 되고 해일이 되어 이 나라 민중들의 가슴과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고 지도자의 선구적 비전 제시란 이런 것이라는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문제, 정동영은 김대중의 후계자인가?
정동영은 김대중의 후계자인가? 정동영은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때 신진세력으로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다. 그는 왜 남북문제와 대륙으로 가는 길에 이처럼 천착하고 있는 것일까. “통일부장관 시절에 개성공단을 가동시킨 주역이라서?” 그건 아니다. 그의 주장엔 뿌리가 있고 일관되게 흐르는 개연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대표는 1996년 전국최다득표로 제15대국회에 입성하게 된다. 그때의 당선 인터뷰를 보면 “남북문제와 우리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해 천착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다. 남북문제에 관한 그의 열정은 초심이 계속되는 것이요 일관성을 갖고 움직이는 일생일대의 과제인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는 남북문제 대한 뜨거운 열정이 내장돼 있다. 그는 정계에 나오기 전에 mbc문화방송에서 2년 동안 통일전망대를 진행하는 북한담당기자였고, 통일부 차장이라는 직책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유학과 LA특파원에서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맡는 등 정동영의 지속적인 연구과제가 되었다. 정동영은 이 기간 동안 정부부처로부터 매주 북한 관련 자료를 받으면서 방송프로를 준비하고 북한문제에 대해 공부를 해나간다. 이런 경험과 학습이 축적된 덕분에 94년7월9일 김일성 사망 시에 타 방송국들과는 결이 다른 심층보도와 해설로 독보적인 생방송을 할 수 있었다.
정동영 의원은 말한다. “통일은 도둑같이 갑자기 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붕괴론이기 때문이다. 통일은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남북연합의 과정을 밟아가면서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관심과 염원이 증폭되면서 남북한 모두는 ‘지정학적 피해국’에서 ‘지정학적 수혜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때라야 한반도는 “대국들과 동등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평화는 그래서 “돈이고 밥이고 힘이다.”라고 말한다. 그 같은 주장의 일환으로서 남북문제를 접근하는 또 하나의 모습을 보자.
극동연방대학교에서의 세미나
7월6일 오후, 대륙탐사단은 점심 해결을 위해 우스리스크의 고려인 식당을 들려 루스키 섬으로 달려갔다. 극동연방대학 ‘Sopka Hall’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재와 신북방정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개막 인사를 해준 우리 측 인사는 정동영 의원에 러시아 측 인사는 파노바 부총장과 연해주의회의 지역정책.법률위원회 삼소노프 부위원장이었다.
이어 ‘한반도 정세변화와 동북아 진로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연변대 김강일 교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북방경제협력/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 최재덕 원광대 교수가 각각 발제자로 나섰다. 토론은 우윤근 대사와 루킨(A.Lukin) 국제관계학부 교수가 맡았다. 이밖에 러시아 측에서는 한반도 전문가 20여명과 극동연방대학 대학원생 등이 참석하고, 한국 측에서는 연해주 거주 재외국민 50여명과 박상규 이사장을 비롯한 ‘대륙으로 가는 길’회원 35명이 함께 했다.
북로(北路)가 열려야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섬을 탈출하게 된다. 대안제시와 활발한 논의가 불처럼 일어나야할 시점이다. 한반도문제는 특히나 심도 있게 접근하여 실현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이뤄나가야 한다. 나라 안팎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서울과 목포와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철의실크로도’를 따라 파리 행 기차를 타는 날, 새 하늘 새 땅이 열릴 것이기에.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