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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물 관련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공구나 부품들을 다루게 됩니다. 교실에서 발생하는 민원을 곧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주 고장나는 부속들은 몇개씩 미리 사다놓아야 당일날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사 같은 기본 공구도 있고 도어체크 같은 아주 가끔 고장나는 것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설물 관련 1순위는 출입문 잠금장치 관리이기도 하고요. 1개 열쇠로 모두 열수 있는 키뭉치 (이걸 마스터키라 합니다. 모든 키가 똑같이 생긴건 동일키라고 합니다. 1개로 모두 열수 있는건 같지만 각각 다른 열쇠냐 모두 같은 열쇠냐의 차이가 있어요) 에 맞는 열쇠를 미리 사두었다가 열쇠를 분실했거나 고장나면 바로바로 바꿔주는 거지요.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일하는 동료 중에는 코팅장갑을 한타 달래서 한켤레 끼고는 본인차에 던져놓기도 하고 십자도라이바를 사달래서 책상에 며칠 두었다 없어져 버립니다. 공구창고에도 물론 없지요. 또 다른 젊은 이는 집에 세면대 배수구 (이걸 팝업 이라 부릅니다) 를 누가 있는데 공개적으로 하나 가져간다고 하고 집어가고요. 사무실 여직원은 전기테입, 케이블타이를 얻어가서 집에 씽크대 호스를 감아준다 합니다. 다른 직원은 수도꼭지에 호스를 꽉 잡아주는 밴드를 하나 졸라서 가져가기도 하고요. 오늘은 퇴직이 몇달 남지 않은 행정실장도 호스 밴드를 하나 얻어갔습니다. 모든 학교가 그런게 아니고 유독 이 학교에는 왜이리 도둑놈이 득실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도둑놈들 학교는 처음인데.. 오래된 학교일 수록 이런 정신나간 도둑놈, 도둑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직원에겐 '빌려주겠다' 하고 내어주지만 가져온 이는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둑질해서 집에 뭘 고치고 하면서 자식들에게는 뭐라고 얘기할까요? 도둑질하지말라는 얘기는 못할 것 같은데요. 그런 엄마, 아빠 밑에서 보면서 자란 자식이 이런 사실을 알게되면 부모님이 얼마나 창피할까요? 그렇게 하나 둘 도둑질해가면서 나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사랑하는 자식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요? 그냥 도둑놈, 도둑년으로 아무런 꺼리낌없이 그지같은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호스밴드 500원, 전기테입 1,000원, 팝업 8,000원, 십자도라이바 5,000원... 코팅장갑 10개에 3,000원. 다들 이유는 구하기 힘들고 사러갈 새가 없다며 핑계를 댑니다.
그나저나 훔쳐간다는데 물건을 내어주고 있는 아저씨도 공범자입니다. 다음부터는 직접 해줄테니 어디 쓸거냐고 물어보고 집에서 쓴다면 학교앞 철물점 가라고 정중히 거절해야겠습니다.
다들 제잘난 멋에 살아가고 있고, 2400원 가져갔대서 죄질 안좋다고 해고시키는 세상인데.. 도둑질하고도 안짤리고 그지같이 눈치보며 살아가고 있고.. 인생 뭐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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