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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4/10/23
    쉬어가기 105.
    득명
  2. 2024/10/14
    쉬어가기 102.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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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24/01/28
    쉬어가기 94.
    득명

쉬어가기 105.

쉬어가기 102. 1987

 

 

 

[관계.mp3 (6.34 MB) 다운받기]

 

 

 

  오늘 쉬어가기는 약간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저씨의 졸저..  https://blog.jinbo.net/ysj40/trackback/610  에 대한 얘기입니다.

  쉬어가기지만..  친구들에게 숙제를 하나 내줄 생각입니다.   위 노래에 가사말을 국가 폭력으로 돌아가신 분들에 관해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얘기하는 가사를 붙여보라는 숙제입니다.  그렇게 바뀐 노래를 주제로 하여 금관악기로 연주한다면 전혀다른 곡이, 전혀다른 느낌의 노래가 될 것이예요. 

 

  아저씨가 살았던 1987년에는 최루탄, 지랄탄, 이런걸 쏘는 탱크? 페퍼포크라는걸 길가다 쉽게 볼 수 있어어요.  모두다 시위대에 쏘아대던 시위대 목숨을 위태롭게하는 국가의 '살상무기'였습니다.  펑~~하고 한발 쏜게 가정집에 떨어지면.. 거리에 있던 시위대 형님들이 이렇게 얘기했었죠.  

  "시민여러분~~  저거 한발에 십여만원합니다.  모두다 우리들 세금으로 저렇게 쏘아대고 있는겁니다. "

  그리고는 다른 곳에서는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전경들은 보십시요.  이순신장군같은 갑옷을 입고 방패를 매고 긴칼같은 곤봉을 들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막대기 하나 들지 않았습니다. 시민여러분....."

 

  시민군들의 저항수단은 오로지 화염병과 짱돌이었습니다.  보도블럭을 들춰내서 바닥에 냅다 던져 깨부순 덩어리를 짱돌로 던졌지요.  그때 최루탄에 흩어졌던 시위대들을 금방이고 다시 묵어줄 수 있는건..  시민과 학생 모두가 아는 '노래' ,  동요였습니다.

  '앞으로갔다 뒤로갔다 빙빙돌아라..   앞으로갔다 뒤로갔다 빙빙돌아라...'  하는 노래를 시민과 학생 모두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물러..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물러..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노태우도 물러가라 물러물러 노태우도 물러가라물러물러................'

  슈퍼 아주머니가 요구르트 한판을 시위대에 내어주면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이런 노래를 불렀었죠.  서울에서는 무슨 노래를 불렀었나 모르겠으나 아저씨가 살던 이 지방에서는 이 동요 노래를 많이 부르며 시민과 하나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시 시위대들이 '삼천만 잠들었을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하는 농민가를 부르다가(이건 대학생형들만 불렀었어요)  마지막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민주.. 꿈에도 소원은 민주...' 하는 노래를 부른곤 했습니다.

  물론 지방과 서울과 같은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에는 민중문화운동연합 등의 불법테입을 들은 대학생 형들의 외침이 시작이었지만 결국엔 모두가 아는 동요를 가사를 바꿔부르며 시민과 하나되었습니다.   그때 대학생들은 우린 못배웠지만 자식들은 잘 배워야혀..  하며 헌신하신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셨고,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소팔아 대학보내고 하던 때였습니다.  부모님들은 나보다 잘배운 자식들을 대학생들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셨습니다. 

 

  87년 시민들은 동요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그 후로는 이런 모습을 보고는 노래가사바꿔부르기..  노가바 운동이 잠시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진심이면 통한다고 그때는 지금처럼 뭔가 번듯한 판대기에 시위문구를 인쇄해서 오지도 않았고 절박하게 손글씨로 쓴 현수막이며  피켓을 만든게 다였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친구들은 꼰대 아저씨 할수도 있겠지만..  투쟁은 진심 그 하나면 된다는걸 말씀드리려 합니다. 2006년에 대형마트를 점거할때도 캠코더가 있으면 좋았지면 화질이 떨어지던 폴더 핸드폰 영상녹화 단추면 충분했습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BTS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는 시위대들을 한마음으로 모을 수 있는 투쟁가요로 쓰일 수 있고, 이 왁스의 노래를 가사말만 바꾼다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을 온전히 알리며 기억하는 투쟁가요로도 쓰여질 수가 있다고 아저씨는 생각해요.  물론 원작가수 왁스는 반가워할 일은 아닐거 같아요.  

 

  아저씨 예전 노조서 프랑스자본가들에게 서울 본사가서 위원장님따라서 외쳤던 구호가 뭔지 아세요?  필립이란 사장 나오라고 "필립!! 컴온!!! 빨리빨리"  였습니다.   아무리 프랑스 놈들이라도 한국에선 최저임금이고 나발이고 안된다는 놈들이 '빨리빨리'라는 말은 알고 있었죠. 

 

 왁스의 사랑노래인 관계라는 곡에 가사를 바꿔준다면 아저씨가 숙제내준 그런 의미곡으로 곧바로 둔갑할 겁니다.  87년때 가사를 바꿔불렀던 동요처럼요.  

  

ps. 아저씨가 사는 지방에서도 87년 6월항쟁 당시 존경하는 故김민기 선생님의 아침이슬도 마지막으로 물론 많이 불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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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Desperado.mp3 (4.99 MB) 다운받기]

 

 

  갑자기 날이 추워지고 깊은 가을이 되었습니다.  나무들은 아직도 여름인줄 알고 열심히 잎새귀를 키우고 있는데 말이죠.  매년 머위를 비러가던 조그만 골짜구니에는 왕성하던 갈대를 밀어버리고 처음보는 삼잎 수숫대 같은 대마같은 풀들이 솟아있습니다.  마치 누가 심어놓은 듯이 이상한 풀들이 자라있습니다.  올 봄 쑥을 뜯으러 갔을때 쌍떡잎 식물이 채 자라기도 전에 날이 뜨겁더니 외떡잎 식물이 햇볕을 선점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올한해는 존나 더웠습니다.   에어컨을 안키면 잠을 아예 자지 못하는 9월까지 더운 기나긴 여름은 처음입니다. 

 

  이번 학교에서는 다문화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 친구들은 러시아말로 뭐라고 떠들면서 노는데 크게 말썽을 부리진 않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교실을 지나다보면 늘 엎드려 있던 ㅇ마르, 히잡쓰신 학부모님,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같던 러시아언어 선생님.  학교에 있을동안 약 45억원 공사를 해치웠습니다.  제가 하자고 해서 한건 아니고 말단인 아저씨는 그져 진행되는대로 뒤치닥거리나 한 것이지요.  학교 석면을 다 걷어치우고 다행히 큰탈없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공사는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습니다.  교육청 담당자를 갈궈서 골드스타 차단기가 수두룩하게 붙어있던 분전함들과 수십년된 동력제어반을 모조리 갈아치웠습니다.  이건 제가 유일하게 시급히 원했던 공사였습니다.  전기실도 갈아치웠고요.  앞으로 어떤 핵교에 가더라도 이만큼 공사를 하는 일은 없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는 숨을 돌리고는 화단 밑에 물이 솟아나는 곳을 파서 옹달샘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유일하게 저의 순수한 의지로 기획하고 실행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모품이 아닌 노동자로요. 흔히들 시설일 하면 돈으로 다 때우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노무를 제공하다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노동자의 영혼? 또는 인격? 같은 무형의 가치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기계로 대신할 수 없고 오로지 인간만이 그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특히나 학교같은 친구들 정서가 중요시 되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무형의 가치가 중요성을 갖습니다.  이런 가치는 어디서 나오냐면 그 노동자의 마음가짐이나 삶에 대한 지향에서 나옵니다.  교육시설의 질도 그 공간을 관리하는 노동자의 질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듯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더웠던 올여름 마르기도 하고 비오면 채워지는 내맘대로 옹달샘>

 

   몇년간 울고 웃던 핵교를 짐싸들고 터덜터덜 나오는데 아쉬움, 쓸쓸함, 공허함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아마도 땀흘리며 손때 뭍힌 공간을 빠져나오는 건물관리 노동자가 대부분 느끼는 심정일 겁니다. 강가에 애들을 뗘놓고 떠나오는 심정 같은거요.   마치 아저씨가 일했던 행담도 휴게소 뒷편 직원들만 갈 수 있었던 모래사장에 굴러다니던 조개껍질을 누가 주워갔을까 하고 궁금해 하듯이요. 얼마전 가본 휴게소 모래사장에는 먼가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아무튼 친구들이 알려준대로 아저씨는 먼가 일을 하다가 이제 다른 핵교로 갑니다.  지금처럼 신나게 친구들과 학교 잘 다니시고 건강히 무럭무럭 자라나길 빕니다.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기뻐하면서요.  친구들은 언제나 옳아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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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시설관리

 

 

 

[강.mp3 (3.57 MB) 다운받기]

 

 

 

  아저씨가 친구들 핵교서 먼가를 해보려고 발바둥친지 2년이 훌쩍 넘어 다른 핵교로 가게 되었어요.  시간이 무척 빠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  만약 지구나이 수십억년의 세월속에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ㅇㅇ시에 태어나 친구들과 만나게 되는 확률은 무지무지 작을 거예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아저씨도 태어나고 싶어 이생에 온게 아니니까요.   어찌되었건 아저씨가 벌어먹으려 바둥대다 친구들을 만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더군다나 수백개 핵교중에 친구들을 만난건...  우연을 넘어 저에게는 영광이예요.

 

  따지고보면 핵교 시설관리로서 친구들을 대면하는 기회가 많지 않으며..  핵교서 있는듯 없는 듯 하는 존재입니다. 아저씨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보내며 하나 밖에 없는 삶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동료이자 친구입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요.  돈 많던 이건희에게도 아저씨에게도 공평합니다.  이건 무지 통쾌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시간에도 친구들과 저에게는 공평하게 늙어가고 있는 거지요.  

 

  수십억 세월을 놓고 보자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찰라와 같은 시간을 살다가는거예요.  친구들이나 아저씨 모두요.   아저씨가 핵교 일을 할때 심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어떻게 하냐면요.  기한을 한달로 늘려버립니다. 음..  그일은 해야하지만 존나 심드니 한달동안 조금씩 힘부치는대로 하자 라고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대부분 아무런 일도 아니게 됩니다.   세월 앞에는 장사 업다는 얘기가 여기서도 적용됩니다.  물론 시의성을 갖는 일들은 어렵지만 그냥저냥 헤쳐나가고요.

 

  대부분의 핵교는 일이 존나 많아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예전에 진보블로거님의 글대로 기근이 들은 태아가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영양소를 먼저 머리로 보내고 심장으로 보내고 폐로 보내는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학교라는 생명?체를 살리기위해 친구들 다칠 수 있는 일이 1,2,3순위가 되고 불편한 일이 4 ,5,6 순위가 되어버립니다. 학교 구성원이 모두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니예요.  아저씨만의 생각이죠.  나머지는 대부분 전자칠판이니 겉으로 번드르한 시설물을 1순위로 칩니다.   

 

  아저씨가 건물관리일을 30여년 해보니 기본이 뭔지 대충은 알거 같습니다.  눈을 감고 그 건물을 머리속에 그려서 한바쿠 돌 수 있으면 그게 기본입니다.  거기서부터 건물관리는 시작됩니다.  물론 물이 들어와서부터 나가는데 까지, 전기가 들어와서 끝나는데 까지 도 파악을 하고 있어야하겠지만요. 발이 닳도록 대녀보는 것, 문제가 생기면 발품을 파는 것. 이것이 건물 시설관리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그러나 여기엔 정답이 있을 수 없어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예요. 

 

  졸려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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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삶

  [Desperado.mp3 (4.99 MB) 다운받기]

 

 

 

  아저씨는 음악을 가구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에 먼가 필요하다 하면 뚝딱뚝딱 만들어 편리하게 사용하는 가구요.  가구는 필요에 의해 탄생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구도 있지요.  소장가치를 위해 한마디로 사치품으로 탄생하는 가구들입니다.  어디다 딱이 쓸모는 없지만 먼가 고급져보이고 갖고 있으면 보석처럼 뽐내고 싶어하는 고상한 그런 가구요.  예전엔 음악이 다 쓸모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일하다 심들면 부르기도 하고 마을사람이 모여서 놀때도 부르고 시집못가 속상할때 물레를 타며 부르기도 했습니다. 쓸모가 정해지지 않은 노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음악은 돈을 벌기위한 쓸모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걸 돈으로 주고 받고 돈없으면 당장 한 순간도 살지 못하는 세상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겁니다.  요즘 음악은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가 음악이 탄생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친구들은 알래나 모르겠지만..  아저씨 나이때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란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노래가 탄생하게 된 원인은 '지겨운 교무회의' 였습니다.  핵교서는 선생들을 교장교감이 모아놓고 회의라는 걸 하는데..  친구들하곤 별로 쓸데 없는 무료한 시간이지요.  그래서 작곡하신 음악선생님이 교무회의때 옆자리에 앉아있는 생물선생님을 쿡 찌르며 시하나만 써봐~ 내가 노래하나 맨들테니까 해서 지겨운 교무회의때 딴짓으로 탄생하게 된 노래입니다. 

 

  이런 역사?를 알고 학교에서 만약 이 노래를 연주한다면 교무회의를 짧게 끝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할거고 선생님이 수많은 제자들을 기억하며 가졌던 문득 떠오르게 된 그리운 제자를 의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때요? 친구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노래를 다시 들으면 전혀 다르게 다가오지 않나요?  이런걸 요즘말로 스토리 텔링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결국 노래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정성을 얘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뭐하는 사람인지를 무척 궁금해합니다.  뭐를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인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겠거니 나름 생각들을 해서 그런것도 같습니다.  사실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쉽게? 규정하고 있는 것도 같아요.   만약 똑같은 연주를 투쟁사업장의 조합원 노동자가 연주했다면..  아무리 엉성한 연주이지만 의미가 달라질거예요.  마치 전문가도 아닌 우리 동생이나 부모님이 그린 그림이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갖듯이요.  

 

  음악은 결국 그 음악을 연주하거나 만드는 사람의 삶을 일정부분 담게 되는것 같아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할 수 밖에 없으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런 상태로 음악을 하느냐가 또다른 음악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이건은 내가 창조하는 음악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음악을 위해 뭔가 거창하거나 교훈적인 삶을 살 필요는 절대루 없습니다. 그렇기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도 듣는 이에게 충분합니다.  음악을 위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치 내가 모든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처럼, 내 음악이 모든이에게 좋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  뭘 어쩌란 얘기냐?  음악과 삶의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완숙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음악은 소중하단 얘기고..  당시 듣는 이에게 위안이 되었다면 그 뿐이란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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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요즘...

 

 

 

[서울로 가는 길.mp3 (7.05 MB) 다운받기]

 

 

 

  친구들 방학 잘 보내고 있어요?  할머니댁에는 다녀오셨어요?  아저씨가 만약 친구들처럼 방학이라면 책을 존나 읽을 거예요.  집근처 시립도서관에 책들이 무진장 많거든요.  얇은 책을 골라 음..  작가가 이런 얘길 하려고 이런 책을 맨들었구먼  하며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싶어요.   지금 읽으면 되지 않냐고요? 음..  아저씨는 방학인데 출근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틈나는대로 읽고 있어요.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요즘 아저씨가 싸가서 점심때 혼자 먹고 있는 도시락이예요.  밥을 먹으며 친구들이 배웠던 교실을 한번 둘러보고 있어요.  친구들이 떠난 텅빈 교실에서요.  밑에 사진은 운영위원실이고요.  갑자기 친구들 경제공부하는 책이 궁금해 핵교 도서실서 몇권 빌려다 읽었습니다.  친구들도 낭중에 혼자서 밥먹을 일이 많을텐데요.   혼차서 밥을 잘 먹어야 먼가 일을 혼차서 잘 꾸려갈 수 있답니다.  혼차서 밥먹는 일이 어려운 친구들이 대부분일텐데요.   친구같은 책한권이면 왁자지껄한 식사가 될 수 있어요.  잼있는 책을 한 권 옆에 놓으면 혼차먹는 식사가 즐거워집니다.  

 

  일주일전에는 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리셨습니다.  몸살이 심해져 새벽에 대학병원 응급실을 갔습니다. 주차장엔 차가 없었습니다. 응급실 입구에 앉아있던 피곤해 보이는 의사?님께 이런저런 증상을 얘기하니 의사가 없으니 응급실을 하고있는 인근 큰병원엘 가보라며 응급실 병원이 적힌 종이 한장을 주셨습니다. 갱신히 다른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니 다행히 의사선생님도 있고 간호사님도 대여섯분이 계셨습니다.  이런저런 진찰후에 코로나를 알게되어 해열제 닝기루를 하나 맞고 감기약을 처방받아 집에 왔죠.  

  "응급실에서는 코로나 약 처방이 안됩니다.  연세가 있으시니 중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근처 내과를 가셔서 팍스로비드 처방을 받으셔서 꼭 약을 드셔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날이 밝아 우여곡절 끝에 먹는 코로나 약을 받아왔습니다.  5월1일부로 보험이 되지 않아 5만원 이랍니다.  지금은 코로나 환자가 다시 늘어 약국에 약이 없어요.  다행히 어머니는 기침도 몸살도 잦아지며 합병증이 없이 잘 나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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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컴퓨터 전원이 잘 안켜지고 이리저리 아주 꾹 눌러야 갱신히 켜져서..  전파사 가서 초인종을 구해다 전원스위치를 갈아줬더니 한번에 잘 켜집니다.  물론 누르고 있으면 꺼지기도 하고요.  전원불 파란불은 배깥으로 꺼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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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친구들 위해서 칠판에 써놓으신 말씀이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옆 짝꿍과 책상 높이가 안맞는 것은 아저씨 밥먹고 다 맞춰놓았어요.   친구들 남은 방학은 핸드폰, 유튜브 내던지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수박도 먹고.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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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100.

 

 

 

 

 

[40윤선애 - 별.mp3 (4.44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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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투쟁의 끝

 

 

 

[잃어버린 밤.mp3 (6.54 MB) 다운받기]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신 덕분에 결과적으로 학교 뒷편 울타리에 40여년된 측백나무 120여그루를 벼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300여만원하는 벌목 계약까지 끝난 상태에서 차일피일 미뤄지다 교장이 결국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답니다.  교장도 중단하면 중단하는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나무에 걸리는 것은 인터넷 선이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핑계였습니다.  물론 그는 나무에 닿고 있는건 인터넷 선이란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절 문화예술계를 떠나 공장엘 다니고 있는 전직 광대인 고교 후배를 만났습니다.

  "..  멀쩡한 나무 120그루를 벼버린데.  리모델링 해놓은 학교 건물이 가려져서 안보인데"

  "형..  뭐 그런 새끼가 있어? 거기 시장쪽 뒷편 울타리 나무 얘기하는겨?"

  "응"

  " 야..  완전 돌은놈이네.  형 내가 민원 제대로 한번 넣어줄게. 나무를 전지할 수도 있는건데 벌목하고 근사미까지 쳐서 뿌리까지 죽이겠다고?"

  "응.  그래서 다른 학교로 뜰려그려"

  "형 기다려봐 내일 10시쯤?  언론사에도 알리고 ㅇㅇ국회의원 사무실에도 알린다고 교육청에 전화할테니까."

  "그려..  고마워"

 

  같은 시민합창단이였던 교육관련 활동가님을 뒷풀이 자리서 만났습니다.

  "나무를 벼버린데서 딴 학교로 갈려 그래유"

  "...  내가 알아버렸으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 그게 무슨 나무예요?"

  "펜스옆 울타리로 심어놓은 4~50년된 측백나무 120그루예요.  측백나무는 차 소리도 막아주고, 미세먼지저감에 좋은 나무고 학교 풍경이 달라지는 일인데 말이 통하질 않아요."

  

  환경운동 하는 활동가 누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공공 장소에 심어놓은 30년 넘은 나무를 제거하거나 이식할때는 ㅇㅇ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야한다 라는 조례를 맨들었으면 좋겠어요.  기관장 말 한마디면 수십년 수백년 된 나무도 소리소문없이 벼버리니까요. 최근 전주 냇가 나무들 같이요. "

 

  지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20년이다 30년이다 40년이다 기한을 둬버리면 그 전에 잘라버릴거 같습니다.  마치 2년 넘으면 정규직 시켜줄게 하는 비정규직법 같이요.  2년 안에 다 짤라버리 듯이요. 그래서 애초부터 기한을 정함이 없는 정규직을 채용하면 되듯이 공공기관이나 공공장소에 심어놓은 모든 나무를 비거나 옮기려면 ㅇㅇ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게 맞겠습니다.  안지키면 산림법처럼 7년 이하 징역.

  

 

  나무 볐다가 잘못된 사람 한두명 본게 아니다 라고 학교서 떠들고 퇴근하고는 여기저기서 쏙닥쏙닥 떠들기만 했는데 결국 나무를 지켜낸 것 같이 되어버렸습닌다. (나무는 그 누군가가 역시 벼버릴 여지가 있습니다.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예전에 우리 노조 위원장님이 이도저도 안되면 모여서 수다라도 떨자 라고 했지만..  쑥닥쑥닥 떠드는 힘이 이렇게 큰지 새삼 실감하였습니다.

 

   

 

  이렇게 쑥닥거리고 다닐즈음..  학교에 느닷없이 고라니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학교가 있는 동네에 30여년 살았지만 근처 산도 없고 이런 도심에 무슨 고라니냐며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진짜로 1m 가량되는 마른 고라니 한마리가 가끔씩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니다 귀신같이 사라졌습니다.  안달이 난 교장은 잡아서 내보낼 생각에 신고를 종용했습니다. 

 

  "시청서는 다친 동물만 구조를 한며 그마져도 인력에 여력이 없다 하고 119 선생님들은 10여명이 오셨지만 고라니를 못찾고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이고 사람만보면 혼비백산 도망을 치니 학생들에게 해를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라니가 숨어있는 곳을 알고 있었지만 얘기하지 않고 급식소에서 채소 다듬은 걸 얻어다 밥과 물을 주고 있습니다.  상수도가 터져서 물이 새어나오는 곳에 땅을 파고 마사를 덮어 샘물을 하나 맨들어주었습니다.  (상수도 옹달샘? 사진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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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라니 밥과 물.  다음날 보니 밥은 아주 조금 먹고 물을 많이 먹었습니다. 콩장같은 고라니 똥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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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라니는 브로콜리나 향이 나는 미나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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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라니가 학교 반대편 화단 뽕잎을 다 뜯어먹었습니다. 망초나 잡초 꽃대도 먹습니다>

 

    

 

  이렇게 고라니가 출몰하고 있을때 학생들은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요즘 학생들 소풍은 버스를 대절해서 멀리 갑니다.  한참을 걸어가서 도시락 까먹고 보물찾기 같은걸 하지는 않습니다.  소풍을 함께 따라가셨던 늘봄선생님이 다음날부터 180도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교실서 계속 업드려 있는가 하면 교장한테 달려가 따지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다 하고 횡설수설.  한 곳을 5초 이상 응시하지 못합니다. 불안하고 격앙되어 있어 만나는 사름 그 누구와도 싸우려듭니다.  생전 처음보는 방과후 선생님도 늘봄선생님을 만나서 울고 가셨습니다.  전에는 절대로 이런 분이 아니였습니다. 

 

  건강연구소장님께 문의하니 조현병 초기 증상같다며 얼른 치료를 받아야한답니다.  그게 뭐냐고 여쭤보니 보통은 젊어서(18~25세?) 발현하는데 망상이나 환청이 동반되어 주변인과 다투게되고 주의력이 떨어지며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는 상태랍니다. 예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도 불렀다 하고요.  우리나라 100명중 한명 꼴로 발병하는 흔한 병이지만 최초 발병시 보통은 가족들이 잘 모르거나 좀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하며 병을 키운다 합니다.  이 병은 당뇨병과 같이 완치되지 않지만 약을 먹으며 조절하며 일상생활이 가능한데 쉬쉬하며 치료를 받지 않아 병을 키운다 합니다.  대부분 좀 괜찮아지면 약을 끊고 어눌한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는데..  살아가다 힘들고 몸이 약해지면 다시 재발하는데 그러면 뇌신경이 손상되어 약을 먹어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다 합니다.

 

  조현병은 치료가 되지 않으므로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병입니다.  최초 발병시 얼마나 적극적으로 치료하며 그 후로는 얼마나 '관리'를 하며 살아가느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나 없나의 갈림길이 됩니다.   보통은 스스로 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욱 관리가 힘든 병입니다. 발병 원인은 현대의학으로 밝혀진건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장기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각의 뇌기관이 굳어진 상태에서 뇌가 성장하여 생각의 길이 어긋나는 것? 마치 영화의 영가시 같이 잘못된 생각을 지배하는 미생물이 대장에 자리잡는 것? (대장의 미생물과 정신건강은 연관이 있음이 밝혀지는 것으로 압니다. 신선한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듯이요.) 으로 생각되지만 뭐때메 그렇다고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상태인거죠. 

 

  아무튼 조현병은 발병시 죽을때까지 관리하며 장애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누군가가 관리를 잘 하는지 (약을 잘 먹는지) 옆에서 지켜봐줘야하고요.  이 장애인들은 숨죽여 지냅니다. 마치 한센병 환자 같다고 할까요?  어디 갈데도 없고 그냥 보통은 숨어지냅니다.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모이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치료받을 병원을 찾는 것도 비장애인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 가족들에게 버림 받습니다.  가족들은 우리 가족중에 그런 정신병자가 있다는 걸 숨기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병이 깊어지면 밥을 먹거나 대소변을 가리는 것 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고 어떨땐 한 평생 병원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게 되죠.  이 병은 발병 즉시 사회적으로 죽은, 뇌사상태가 되는 질병입니다. 

 

 

 

    건강연구소장님께서 부탁한대로..  늘봄선생님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학교때도 휴학하셨고, 임용이 쉬운 곳에서 초등선생님을 하다 병이 재발해서인지 그만 두셨다합니다.  그리고는 계약직으로 늘봄선생님으로 오신거지요.  지나가다보면 평소 무척 열심히 하시고 늘봄선생님이 되신걸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선생님들 아무도 신경써 달지않는 교실앞 해당반 소개 액자도 정성스레 만들어 놓으셨고요.  그런데 혼자사시는 40대 중반의 여선생님 가족에게 '늘봄선생님이 뭐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좀 쉬시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전할 길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게 우리학교 유일한 친구같으신 전교조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졸업한 학생들이 찾아와서는 꼭 인사드리고 가는 선생님입니다.

 

  "늘봄선생님이 제가 보기엔 조현병 초기 같아요.  초기에 치료를 해야 일상생활이 가능한데.. 혼자 사시고 더 진행되면 한평생 병원에서 사셔야 됩니다.   선생님이 가족들에게 쉬는게 필요할거 같다는 연락해주세요"

  "..   제가 전화한다면 저를 잡아먹으려 할거예요.  교감이 아는 사람이라던데 얘기한번 해볼게요.  근데 최초 발병은 아니겠죠?"

  "쉬어야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가족들은 알거예요.  젊어서 발병하는데.. 힘들면 다시 재발하고,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뇌신경이 더 망가져 한평생 병원에 사셔야할거예요.  그러니 빨리 가족에게 연락해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리는거예요"

  " 음.."

  "직장서 그 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알았어요.   근데 정말 조현병 초기일까요?"

  "예..  저는 주변에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네"

 

 

  늘봄선생님은 병가를 내셨고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오셔서, 어머니는 그만둬라 늘봄선생님은 계속 다니겠다 하고 가셨다합니다.  전교조선생님께는 다시 여쭤보진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가족에게 아픈상태가 연락이 된겁니다.  치료는 가족과 늘봄선생님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  그러나 예전같이 제가 노조지부장이었고 늘봄선생님이 조합원이었다면 저는 교장을 갈궈서 늘봄선생님이 병가내고 치료받고 복직하도록 싸움을 하였겠지요. 

 

  아니 어떻게 정신병을 가진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냐고요?  음..  물론 보조자기 있어야하겠죠.  그러나 나도 아프면 짤리는게 아니라 저렇게 병가를 내고 치료받고 복직해서 노동을 이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동료 교직원들의 안도감, 그리고 학생들도 정신장애를 가진 선생님께 배웠다면 선생님도 장애를 가질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며 그 친구들은 앞으로 자라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겠지요.  그러면 하종강 선생님의 말씀대로 사회가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는거 아닌가요?  그리고는 지부장은 아픈 늘봄선생님이 약을 잘 드시고 계시는지 가족에게 가끔 전화도 하고 학교서 장애를 가진 선생님으로서 바로 서실수 있게 멀찌감치서 계속해서 바라봤을 겁니다. 혹시 망상에 힘들어하시지는 않는지요. 누군가는 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내 가족일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예전 우리 조상들이 농경시절 살았던 삶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장애도 힘들지만 정신장애는 아예 바늘만큼도 설자리가 없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누군가를 만나며 기뻐하고 슬퍼하며 삶을 살다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 나타난 고라니를 보며 신비를 느낍니다.  근처에 산도 없을 뿐더러 수백미터 옆 냇가도 큰길을 몇개를 건너야 학교엘 올 수 있죠. 냇가 상류나 하류 근처에 혹시 산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측백나무서 짹잭거리던 새소리를 듣고 학교로 찾아온건 분명합니다.  울타리 측백나무에 새둥지가 많이 있습니다.  새들의 본거지.  새들이 화단에 동그란 자욱을 내며 모래 목욕을 하고 가버립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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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대장간

 

 

 

[세계의 약속.mp3 (7.45 MB) 다운받기]

 

 

 

  약초캐는 호미를 사러 ㅇ시장 철물점 골목에 들렀습니다.  수북한 가마솥들을 지나 조그만 장도리 같은 호미?를 하나 골랐습니다.

 

  "주딩이가 너무길면 여서 잘러줄께"

 

  "재단도 하세요?  숯돌도 있네유"

 

  "그람..  저기 드릴도 있으니 구녁도 뚤불 수 있지"

 

  "혹시 근처 대장간은 엄나유?  ㅂ대장간??  전에 탑차서 빠레트에 걸어 지게차로 빼내는 ㄱ자 고리 맨들어 주셨었는데요."

 

  "아이구..  그 아저씨 발써 돌아갔어.  한 몇년 되얐지"

 

  "육년전에도 아침에만 잠깐 문열고 하셨었잖어요?"

 

  "그게 발써 언제쩍 얘긴디.   인제 ㅁㅇ나 가야 대장간이 하나 있을거여"

 

  "네"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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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ㅂ대장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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