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왔니 남에서 왔니분류없음 2013/03/07 12:43 어디에서 왔냐고 물을 때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하면 열에 예닐곱은 북에서 왔니, 남에서 왔니 꼭 되묻는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하고 내 외관이 북에서 온 것 같나, 되짚기도 했는데 여기서 얼마 살아보니 그게 아주 잘 납득이 간다. 영국 비비씨 방송이나 씨앤앤 혹은 이 나라 뉴스채널에서는 북조선 소식을 남한 소식보다 더 많이 다룬다. 한국 소식은 기껏해야 대통령 선거 혹은 뭐, 싸이, 성 형수술의 왕국 정도만 내보내지 많은 한국의 인민들이 바라마지 않는 삼성이 한국 국적 회사네, 현대자동차가 한국 꺼네, 류현진이 한국 사람이네 뭐 이런 거는 나오지도 않고 관심꺼리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북조선의 경우, 판도는 대번 바뀐다. 김정일 서거, 김정은 대통 계승 뒤로 미사일 발사, 노동당 대회, 이번의 로드맨 방북까지. 언젠가 회사에서 비비씨를 종일 틀어놓았는데 이건 뭐 거의 국가정보원에 미안할 지경으로 북한 소식을 낱낱이 본 적도 있다. 가끔 중앙통신을 직접 내보낼 때도 있으니 방언이기는 해도 모국어를 들을 수 있으니 나쁘진 않지. 이렇게 Korea 소식을 접하는 이 나라 평민들 처지에선 누가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다음 질문은 의당 북이냐 남이냐가 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 이젠 그냥 내가 나서서 싸우스코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아주 가끔 남한엔 119 (911), 114, 112 말고 113이라는 번호가 있는데 북에서 온 스파이를 신고하는 직통번호라고 알려주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번 되묻는다. Are you serious? 진짜냐고, 너 장난해? 너 심각하게 말한 거야? 뭐 이런 거겠지. 그래, 내가 얼마나 심각한데. 싸우스코리아 인민들이 북조선 문제로 얼마나 심각하게 사는데. 설명하고 싶어도 우울과 슬픔의 극치로 치닫는 정서를 이기지 못해 -사실은 일천한 영어실력을 이기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 나는 정말로 우물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반드시 국가보안법은, 113 따위의 핫라인은 없어져야 한다. 통일은 해도 안해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만 러시아, 중국을 관통해 유럽까지 잇는 기차는 달릴 수 있어야 한다.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이 절망적인 한계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근사한 상상력을 키울 기회를 앗는지, 이제서야 한탄하고 있을 뿐이다. 어릴 적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 구호를 복원하고 삶에서 내 몸으로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국경 밖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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