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세상

분류없음 2017/12/08 04:00

 

꽃개와 꽃개 파트너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워커스액션센터에서 핵심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정당한 임금" 캠페인이 일말의 성과를 냈다. 현행 시간 당 $11.60 의 최저임금을 내년 1월부터 $14, 2019년 1월부터 $15 로 각각 인상, 적용한다. 주정부의 발표 자료는 여기에 있다. 근본주의자들께서는 시간당 임금을 올리는 것은 산소호흡기를 연장하는 일이라고,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데에는 도움되지 않는다고 탄식하실지도 모르겠다만 옆에서 관찰하고 참여한 입장에서는 "절대 아니올시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 그럼 근본주의자들은 바보야 문제는 자본주의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해야 해라고 일갈하실지도 모르겠다만 꽃개는 그냥 무시할란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임금이 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꽃개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지점은 그 캠페인-운동에서 사람을 모으고 조직하고 활동가로 키워내는 "과정" 에 있다. 몇 년 전 $12 인상 운동을 할 때 처음 만났던 이민자들이, 이제는 주요 활동가로 성장해서 지역운동을 이끌고 워크샵을 조직하고 있다. 꽃개는 여전히 "먹고사느라 바빠서"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분투에 감사하고 있다. 

 

대부분 이민자들이었다. 중국에서, 콜롬비아에서, 멕시코에서, 필리핀에서, 동유럽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나라에서 캐나다로 이민오신 그 분들의 백그라운드는 엄청났다. 자국에서 의사로, 교사로, 혹은 고등교육을 마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더 나은 세상을 찾아 캐나다로 오신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그들 나라에서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 시간당 $6 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공장노동, 피자가게, 딸기나 사과를 수확하는 한철 농장, 식당 서빙... 그나마 이마저도 불안정하거나 임금을 뜯기기 십상이었다. 그들이 그들의 권리를 자각하고 착취를 깨닫고 떨쳐 일어나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다른 노동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첫 만남 자리에서 인사하는 것도 부끄러워 천장을 바라보며 우물우물하던 어떤 이가 몇 달 뒤 꽃개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과 존경의 순간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행사에 참여한 꽃개가 지나가는 시민인 줄 알았다. 꽃개는 그를 기억하지만 그이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만나왔기 때문에 꽃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꽃개는 2011년에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시급 $16.50 으로 그 때 당시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었지만 휴가나 병가, 보험 등을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었다. 꽃개는 당시에 만났던 그들에게 꽃개는 얼마를 받고 일하고 있어요, 말하지 않았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가 꽃개는 일이 많아졌고 바빴고 활동가 교육까지 받았지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매월 그들이 보내주는 소식지를 받고 어쩌다가 행사에 참여하고 피크닉 이벤트에 들르고 인사를 하고 페이스북에서 교류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여전히 꽃개는 그들을 나의 동지로 여긴다. 반갑게 인사한다. 나는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는데 너는 뭐야, 너만 힘드냐, 이런 따위의 비난이랄까, 질타 따위는 없다. 우리는 각자가 놓인 공간에서 각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공동의 지향을 향해 할 뿐이니까. 물론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보니 별의별 똘아이들도 있고 시끄러운 소리도 있고 반목도 있다. 활동가를 지도한답시고 완장질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맑스를 공부했느니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냥 시답잖다. 그런 게 없다면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디에나 있는 인간들이 거기에도 있을 뿐이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다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유학생이나 역시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후려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크다. 예를 들면 한국인 이민자들은 컨비니언스나 식당을 많이 한다. 이제 막 유학온 (한국) 학생들이나 (한국) 불법체류인, (한국) 이민자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유지한다. 대개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현금으로 주고 사람을 부린다. 어떻게 아냐고? 예전에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어카운팅 펌에서 두어 달 일할 때 꽤 많은 컨비니언스, 식당, 주점이 고객이었고 그 업체들의 사장은 당연히 한국인이었다. 그들의 재무사정을 들여다보고 연방정부에 낼 세금을 정산하고 페이롤을 마련하는 것이 꽃개의 일이었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얼마를 지급하는지, 그들이 세금을 어떻게 절약 포탈 (逋脫) 하는지, 그들이 얼마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따름이다. (이것은 업무상 얻은 기밀을 누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므로 구체적인 사업체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그런 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한다고 했을 때엔 기도 차지 않았다. 

 

이런 사장님들을 만나서 삥을 뜯어가며 먹고사는 사람이 또 한구석에 있다. 마치 대학교 때 대동제나 과별 축제를 할 때 학교주변 식당이나 술집 사장님을 만나 만원 씩, 이만 원 씩 삥뜯어서 협찬 목록에 넣는 일처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 그런 일만 할 줄 아는 건지, 그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지 그 사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역시 한국인이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그런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과거에 한자락 했던 운동권 출신이라는 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장님들 삥을 뜯고 살기 때문인지 그래서 그이도 최저임금 인상 운동에 나설 수가 없단다. 곤란하단다. 한국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최저임금인상 캠페인에 대해 프티션 (petition, 연대서명) 을 받으려고 했더니 난색을 표명했던 기억이 똑똑하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주 자-알 알 것 같다. 옛날에 이재오나 김문수 등을 일컬어 "생계형 변절자" 라고 했던 책이 있었다. 지금은 책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출판사 이름은 앨피였나... 어쨌든 딱 그 사정이다. 그런데 이 작자는 겉으로는 세월호 추모 운동과 한국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하느라 바쁘다. 한국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그럴싸한 활동을 하며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그래도 한 때는 나의 동지로 여겨 밤을 세워가며 입씨름했던 기억들, 1999년/ 2000년의 그 기억이 제발 머릿속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이와 논의했던 러시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이 제발 거짓이 아니었기를 바라지만 이젠 나의 것이 아니니 툴툴 털어버리련다. 아무 의미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어디에나 있는 인간이 여기에도 있을 뿐이다.

 

2017/12/08 04:00 2017/12/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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