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선날
분류없음 2017/03/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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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쓴 영어 표현이 무엇인지 곱씹어봤다. 다름 아닌 "I'm not [a] Chinese" (난 중국인이 아니야). 나는 무엇이다, 라는 표현보다 나는 무엇이 아니다, 라는 네가티브 방식의 이 표현을 가장 많이 구사한 것으로 정리하게 되어 무척 유감이다. "I'm [a] Korean" (난 한국인이야). 라고 말해도 되지만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알아도 북조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아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다.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해서 했거나 한국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몇마디를 나눠보면 대개 억양에서 눈치를 채기 때문에 어디에서 왔냐는 식의 질문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차라리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면 황송한데 어림짐작으로 중국요리 잘 만드냐, 만다린 (Mandarine, 북경어) 을 하느냐 아니면 캔토니즈 (Cantonese, 광둥어) 를 하느냐, 나도 중국요리 좋아해 (어쩌라구) 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백인들은 "I'm not Chinese" 라는 말을 들으면 대번 "I'm sorry"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도 역시 뻔뻔하게 말한다. 괜찮아, 우리 나라에선 백인들한테 다 미국인이라고 해. 괜찮아.
문제는 흑인들이, 특히 중국인에게 싸잡아 착취를 경험한 서인도제도에서 온 흑인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 멈칫, 하게 된다. 그들의 분노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어려운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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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국, 한국... 이 나라들에서 이민온 남성들. 특히 다 자라 어른이 되어 결혼한 뒤 이민온 아저씨들은 -어떤 분이 강력히 말씀하셨다시피- 특별 교육을 따로 받았으면 싶다. 여자들은, 아내들은 각성이 빠르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기 권리를 깨닫게 된 뒤로는 예전처럼 복종하는, 순종하는 아내로 살지 않는다. 일부 아저씨들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못내 폭력을 휘두른다. 베트남, 중국, 한국 본토의 문화나 관습과 달리 이 나라에서 가정폭력 (Domestic Violence) 은 상당히 무겁게 다룬다. 결코 가볍지 않다. 크리미널 클라스도 아예 달라서 살인위협과 동급으로 다룬다. 그런 아저씨들에게 특별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 또한 이 나라 정부에 있다. 무턱대고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라는 건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아/저/씨" 들에겐 결코 통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인간계 (人間界) 를 넘어섰다. 간혹 만나는 이 나라 출신의 인간계를 넘어선 클라이언트들을 볼 때마다 동물원에 호랑이랑 같이 집어넣으면 순하디 순한 양이 될텐데... 이런 씰떼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아무래도 인간계를 넘어선 이런 부류들은 절대 서포트하지 못할 것 같다. 사회복지사 (Social Worker) 로서 나의 한계를 확인시켜주는 존재들. 감사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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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 (개인적으로 알고지낸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냥 알게 된 사람들 포함) 가운데 가장 극강의 사람은 역시 근혜찡,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 역시 인간계를 넘어선 우주의 기운을 얻다못해 차고 넘치는 극강의 존재. 아이 씨발 이런 양반을 대통령이랍시고... 이번에 엄마께 전화할 일이 생기면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하셨냐고 그것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여쭤봐야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러나 모른다. 인간계를 넘어선 사람들, 무척 많다. 나 또한 항상, 오늘도, 이렇게 그 경계에 서 있다. 뭐라고 막 욕을 하고 싶은데, 직장에서 겪은 울분을 토로하고 싶은데 그 씨발같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일기는 일기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