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의함정
분류없음 2016/07/07 00:18
짧은 생각
비제도-반체제-비주류적 성질을 갖던 것들이 제도 안으로, 체제 내로, 주류로 인정받거나 들어가버리는 순간/ 그 뒤로 본래의 성질을 상실하거나 오히려 제도와 체제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것으로 변해버린다. 궤도를 어긋나 돌던 행성이 인력이나 자력처럼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궤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궤도 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그런 그림.
역사의 순간순간. 역사를 만들어온 인간들의 투쟁을 봐도 그렇다. 대표적인 게 한국사회에선 민주화운동 세력들. 이 나라에선, 북미대륙에선 이미 합법화된 동성결혼"제도". 그리고 그만큼 시민권을 획득한 게이운동 (레즈비언, 트랜스 운동은 제외하고). 저항의 역사, 스톤월 정신을 점점점 상실해간다.
똑똑한 이성애 여자들이 결혼한 뒤로 어처구니없는 비대칭 관계를 묵묵히 이어가는 모습. 이런저런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관계 (제도) 를 유지하느라 저글링하는 모습. 시댁에서, 그러니까 남자 쪽에서 집이라도 얻어준 경우, 그 처참함과 모순은 극에 달했다. 이성애 관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 그것은 어차피 그 제도 안에서, 체제 안에서 허용하는, 그 관성을 지키는 것이니까. 짝꿍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머뭇머뭇한다. 나도 그렇게 변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는데... 계약서를 치밀하게 꼼꼼하게 써서 변호사 공증을 받으면 괜찮을까... 아이, 나는 괜찮을거야. 과연?
아침에 대부분 백인들인 교회 친구들이 BlackLivesMatter 에 맞서 의견을 내는 것을 보자니 답답하다. 그래, 너희들은 평생을 게이라고, 성소수자라고 핍박을 겪었어도 어쩔 수 없는 백인이긴 백인이구나. 그게 너희들의 본질이구나. 미움보다는 탄식과 개탄이 앞선다. 전혀 밉지는 않다. 차라리 미우면 좋겠는데, 미워했으면 좋겠는데. 줄줄줄 결혼을 하고 하나둘 식민지를 자처하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던 똑똑한 기혼여성들의 얼굴이 겹쳐 지나갔다.
관성을, 제도의 익숙함과 마주했을 때 그 관성을 경계할 수 있는 힘. 어떻게하면 기를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그런 짧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