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튀김

분류없음 2016/07/08 03:31

 

오징어튀김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서울에서 살 적에 길거리에서 가끔 사먹던 방금 튀겨낸 오징어튀김. 그에 더해 김말이튀김도 같이. P출판사에 세들어 살던 어느 한 해. 동자동 근방에 있던 사무실 근처에 아주 맛있는 오징어튀김 + 김말이튀김을 떡볶이와 함께 팔던 노점상이 있었다. 언젠가 인상좋은 사장님 아주머니와 농담을 하면서 새우튀김도 하면 정말 좋겠어요, 했는데 정말로 며칠 뒤 새우튀김을 준비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신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여기에도 한국인이 하는 분식집이 있어서 가끔 아주 가끔 사먹기는 하는데 글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더군다나 지하철을 타고 한국인마을에 가야만 튀김, 떡볶이 등을 구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그 사이에 군침이 돌다가 막상 분식집에 도착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듯이 입맛이 사라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나니 애써 갈 기운도, 욕심도 잘 들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중간에 몇 번 직접 요리해먹어 보기도 했는데 꽝. 

 

오랜 기간 동안 이 크레이빙 (craving) 을 어떻게 해결할까 궁리하다가 동네에 있는 그리스 (Greek) 음식점에서 파는 칼라마리 (calamari) 로 대체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먹는 오징어보다는 크기가 약간 작고 다소 주꾸미같은 느낌을 주는 이것도 나름대로 맛있다. 동네가 동네이다보니 지중해 연안 국가 사람들, 동유럽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서 그 동네 음식, 식재료 등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음... 나름대로 맛있다. 한국인 분식집에서 먹었던 오징어튀김에 몇 번 절망하거나 실망한 뒤로는 기대치가 너무 낮아져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함께 주는 소스, 사이드로 나오는 감자칩, 간혹 엑스트라로 오더해서 먹는 페타치즈 샐러드랑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일 때도 있다. 

 

처음에 그 식당에 들어섰을 때, 동양인이 들어서서 그런지 쳐다보는 눈길이 그리 친숙한 얼굴은 아니었다. 두번째 들렀을 때 중국인이냐고 물어서 (왜 아니겠어!) 아니, 한국인이야. 남쪽 한국인, 이라고 했더니 응,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너는, 너는 어디에서 왔어? 하고 물었더니 알바니아에서 왔단다. 오오, 티토의 유고슬라비아혁명 책을 읽을 적에 자주 언급되었던 나라. 화약고 발칸 반도의 역사에서 언제나 슬프고 참혹한 피해를 겪었던 작은 나라, 그럼에도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와 로만카톨릭 사이에서 그들만의 종교 (이슬람) 를 지키기위해 분투했던 나라, 알바니아. 

 

그 뒤로 이 식당 주인 부부와 매우 친해져서 들를 때마다 이런저런 농담과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날, 아주머니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안녕 어떻게 지냈어? 말도 마. 내 얼굴 좀 봐. 완전 썩었잖아. 무슨 일 있어? 물어봐도 돼? --- 아주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랬다: 역시 알바니아에서 온 한 직원을 고용했는데 벌써 며칠 째 말도 없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동네 사람들이 몇 블럭 아래에 있는 펍에서 봤다는데 아프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어제오늘은 아예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아서 그 직원 몫까지 일하느라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을 쓰고 부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구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네가 제대로 대접을 하고 적당한 페이를 지급했으면 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때쳐치겠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쑤욱 집어넣었다. 다만 "너무 안됐다. 그런 이야길 들으니 유감이다, 얘. 곧 좋은 사람을 구하길 바라. 건강 잘 챙기고." 위로를 건넨 뒤 주문한 음식을 받고 식당을 나왔다. 집으로 걸어오는 약 백미터가량의 그 길에서 이런저런 오만가지 상념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착취하는 방식 - 중국인은 중국인을, 인도 사람은 인도인이나 파키스탄, 방그라데시 사람을, 한국인을 한국인을. 즉, 모국어와 문화가 비슷하거나 같은 사람을 착취한다. 법정 임금보다 덜 주거나, 인격적 모욕을 일삼고,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심지어 "사기"를 친다. 대표적인 사기는 이민사기. 새로운 나라에 건너와 아직 법과 규율, 언어와 풍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고용하거나 모집해서 착취하는 거다. 후려치기. 그래서 한국인 이민자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 가운데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라는 은밀한 까닭이 있다. 같은 교회 사람끼리 사기를 치기는 많이 어렵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동네를 야반도주하려는 계획이 없지 않는 한 같은 교회 (커뮤니티) 사람을 등쳐먹는 일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다른 교회를 다니거나, 혹은 한국인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아예 막 이민온 사람들 등을 쳐먹는다.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사실, 저 알바니안 부부의 사연은 잘 알 수 없다. 법정임금을 지급하고 인격적으로도 잘 대해줬는데 직원이 근무태만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상,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부당노동행위의 사례 상 아무래도 나의 추측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한동안 무지하게 덥다가 소나기가 내리니까 다시 오징어튀김이 먹고싶다.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면 총총총 뛰어가서 간장종지에 살짝 찍어먹던 막 튀겨낸 오징어튀김, 서울에 있을 적에 누렸던 그 호사가 다시 그립고 그립다. 이따 저녁에 그 때까지도 기분이 괜찮으면 알바니아 아줌마 식당에 한 번 들러봐야겠다. 

 

2016/07/08 03:31 2016/07/08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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