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메모

분류없음 2016/07/09 02:42

 

캐나다에 온 뒤 유럽의 대륙 침략으로 선주민/원주민 (Indigenous people) 이 겪었던 고통과 이의 치유, 캐나다 (백인) 정부의 원주민정책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가 컸다.

 

한국사회도 원주민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일본제국주의 35년의 식민시절을 겪었고 그 전엔 중국이라는 나라의 우산 아래, 그 뒤엔 역시 미국-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주의 진영의 대립 속에 모진 시절을 겪었다. 특히 일제시대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아버지. 복잡한 가족사와 가난 탓에 어린 시절 애착관계 형성에 절대적으로 실패하고 성장한 뒤 남들 다하듯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뒤 중동에 이주노동자로 다녀오신 아버지. 인생 전반에 걸쳐 분노조절장애와 자기연민에 지독히 찌들어 사신 (것으로 보이는) 아버지.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관조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됐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대장정도 시작할 수 있었다. 글쎄, 나는 무엇 때문에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까. 감히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따위의 말은 못하겠고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정도는 이해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욕심.

 

컬리지에 다니던 어느 날, 우연찮게 원주민 출신으로 탈식민주의 연구와 운동을 하시는 어떤 양반 의 워크샵에 참여하게 된 뒤  탈식민주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분명 즐겁고 하지만 고통스러운 계기. 나중에 만약에 공부를 더 계속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분야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바람.

 

이 양반의 교육철학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워크샵 자리에서 이 분이 소개한 글 중 이런 게 있다.  식민당사자가 어떤 경로로 식민대상자를 식민화하는지 그 스테이지를 보여준다. 일제가 조선반도에 저지른 작태를 떠올리면 아주 이해가 쉽다. 다만 이 스테이지에서 일부 조선인들의 자발적 복종과 복무한 경로를 유추하려면 좀 더 애를 써야 한다. 캐나다 선주민/ 원주민들이 유럽의 식민지화정책과 강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한 사례는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령 일제가 조선인 정신대-위안부를 모집할 때 가가호호 방문하며 맨 앞에서 적극 모집책으로 활동한 사람이 (남자) 조선인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과 같은 유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잘 찾아보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백인유럽사회는 – 일제가 조선인들을 행정하위급관료/ 소작인 (마름) 정도로 이용하고 고관대작들에게 작위를 주어 회유했던 것과는 달리 - 그들과 피부색이 다른 원주민들을 철저히 분리/ 파괴하는 정책을 썼다.

 

인용한 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식민당사자가 어떤 단계로 피식민 대상을 식민화 (On the process of colonization) 하는가, 그것보다는 피식민당사자가 어떤 단계로 탈식민화 (PROCESS OF DECOLONIZATION) 하는가! 바로 그 부분이다. 

 

1) Rediscovery and Recovery

2) Mourning

3) Dreaming

4) Commitment

5) Action

 

일제 식민지 시절을 평가하고 우리의 현재를 돌아볼 때, 아니 그런 대단한 건 아예 바라지도 않고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위안부 피해당사자들을 생존자로, 살아움직이며 꿈틀하는 – 스스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투쟁하는, 인간의 생존 욕망을 지닌 주체로 마주하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2016/07/09 02:42 2016/07/09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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