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잡담
분류없음 2015/04/12 17:08생활의 잡담 3 - 꽃개님의 [생활의잡담2] 에 관련된 글이자 트랙백 어트게 하는 건지 리뷰하기 위해 하는 포스팅
이 나라에 처음 와서 이 나라 은행에 구좌를 개설하고 인터넷뱅킹을 안내받았을 때 나는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인터넷뱅킹 따위는 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터넷뱅킹이 너무 간단했으니까. 오로지 비밀번호 하나로 승부하는 인터넷뱅킹,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답은 더 간단한 데 있었다.
이 나라 은행들은 신규 고객이 와서 계좌를 만들면 페이퍼리스통장 (웹스테이트먼트), 인터넷뱅킹(웹트랜스액션) 을 권장한다. 종이통장을 신청하면 한달에 1-5달러를 내야한다. 오프라인 트랜스액션도 한 달에 열 번 혹은 스무 번 등등 이렇게 제한하고 그 이상 쓰면 쓸 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한다. 그리고 계좌 관리비도 다달이 내야 한다. 물론 일정 금액 이상을 꾸준히 예치하면 월관리비도, 수수료도, 개인수표 발행비도 모두 "무료"다. 내가 거래하는 은행의 그 "일정 금액"은 한 달 오천 달러 이상이다. 한국돈으로 물경 오백만 원 이상을 예치하면 여타 수수료, 월관리비, 이용요금 면제...꺽.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이 통장을 쓰지 않고 어지간한 일은 모두 인터넷뱅킹으로 처리한다. 따라서 인터넷뱅킹 보안 또한 철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인인증서 같은 것도 없고 보안카드도 없고 비밀번호 하나만 있으니 어떻게 이 은행거래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답은 간단한 데 있었다. 비밀번호를 둘러싼 환경이 까다롭다. 정말 비밀번호다. 가령 비밀번호 하나를 만들 때 묻는 질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엄마의 결혼 전 라스트 네임이 무엇? 첫 반려동물의 이름은? 고등학교 이름이 무엇? 처음 산 자동차의 이름이 무엇? 처음으로 해외여행한 나라가 어디? 너의 베스트프렌드 이름은?... 각각 질문을 입력해야 한다. 그 계좌의 주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매우 퍼스널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처음에 이 질문들을 받았을 때, 답을 입력해야 했을 때 몹시 당황했다. 공인인증서가 있으면 이런 왼갖 질문들이 하등 필요없는데 왜 공인인증서와 엑티브엑스를 안쓰지?
그렇다고 로그인할 때마다 이 질문들을 하는 건 아니다.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다. 어떤 질문을 할지 나도 모른다. 질문을 한 개 할지 두 개 할지 그것도 모른다. 랜덤 그 자체다. 대개 큰 사고없이 인터넷 뱅킹을 쓰면 질문도 없거나 빈도가 확 줄어든다. 하지만 로그인할 때 한 번 실수하면 이른바 그 가이드라인이 확 올라간다. 다섯 번 이상의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로그인 뒤 이체를 하거나 트랜스액션을 하면 할 때마다 리퍼런스 넘버가 생성된다. 사달이 생기면 사달이 발생한 그 건에 대해 은행과 이 리퍼런스 넘버로 소통한다. 언제 얼마를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데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역시 불신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다. 열 사람이 한 명의 도둑을 못 막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한편 사유재산 (개인재산) 개념이 월등히 발달한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개인재산에 흠집을 내는 범죄행위에 관련한 형법이 대단히 교묘하게 발달했다. 개인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는 거의 뭐랄까, 조금 과장하면 배상청구에 제한이 없는 것 같다. 변호사만 잘 쓰면 얼마든지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아울러 변호사들이 창궐한다. 민법전문, 형법전문, 가정법전문, 이혼전문, 법인전문, 소액소송전문, 단체소송전문, 이민법전문, 법원출석전문, 상담전문, 사면전문, 스몰비즈니즈전문, 어카운팅전문, 공증전문, 번역전문...
그리고 가장 독특한 것은,
이 나라 은행들은 거의 국영은행 같다. 자신들이 거래하는 은행이 망하거나 다른 은행에 팔리거나 통폐합한다는 개념이 이 나라 사람들에겐 아직 없는 것 같다. 저금리 환경이나 모기지 위협, 가계부채 등 리스크 환경은 비슷한 것 같은데 이 나라의 은행 빅6는 "건실"하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유행했던 the third basel 개념으로 들여다봐도 마지노선을 훨씬 상회한다 (2013년 기준 11.38%) 독특한 것은 자기자본 (Tier 1) 비율로 보면 한국의 은행들이나 미국 은행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그 자기들이 갖고 있는 자본으로 이익을 내는 비율 (ROE) 이 17.4% 이다. 2013년 같은 해 한국 은행들의 ROE는 4.91% 였다.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요상한 이런 것으로 보아 뭔가 단단히 착취를 하고 있고 동시에 뭔가 단단한 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원체 시장규모가 작다보니 리먼브러더스 같은 게 뻥 터져도 온 나라 자본과 국민이 휘청할 정도로, 매우 가시적으로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고 서서히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는다. 결론은 --- 모든 게 다 저 수수료 탓인 것 같다. 개미들이 먹여살리는 "국영" 은행? 한국의 은행들이 수수료를 올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