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청소부
분류없음 2015/04/02 04:16코리아타운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한국어 책이 한 켠에 있다. 북쪽 North York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더 많이 있는데 집에서 멀다. 지난 번에 들렀을 때 "철학과 굴뚝청소부"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살펴봤다. 옛날에 읽었던 것과 사뭇 다르다. 뒷부분에 들뢰즈도 추가된 것으로 보아 개정판이지 싶다.
의심의 천재, 데카르트로 시작하는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대학에 들어가 접한 신문명 가운데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 단골 서점주인에게 유물론적 세계관을 접할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절판된 소련교과서의 일본어 중역판 유물론과 어쩌구, 이런 책을 권했다. 돈을 주고 사기는 했는데 평범한 고등학생이 혼자 독해할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책장에 고이 간직했었다. 몇몇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윤구병, 위기철... 의 책을 읽기는 했지만 큰 재미는 못봤고 주로 소설을 읽었다. 그 때 읽은 소설이 정도상, 황석영, 이문열, 박상륭 등이다.
발랄한 새내기 시절, 서점에서 "철학과 굴뚝청소부" 책을 살 때만 해도 저자의 이름이 이쁘네, 정도였지 그가 누군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비로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사구체논쟁의 종결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누군지 안다한들 당시 나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낭만주의-자연주의로 이어지는 문학을 공부할 때 윌리엄 블레이크의 "굴뚝청소부 (The Chimney Sweeper)" 라는 시를 배웠다. 띄엄띄엄 원문 (영문) 으로 읽을 땐 잘 몰랐다. 나중에 교수가 설명할 때 비로소 그림이 그려졌다. 디킨스와 하디의 소설에서 어슴프레 그렸던 침울한 회색빛 이미지. 그 굴뚝청소부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가난으로 아버지에게서 팔려 노예처럼 일하는 어린이, 너무나 비참하도록 사실적이지 않은가.
이진경 선생의 책에 대해 공공연히 떠들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 분위기를 회상한다면 '읽는 것도 아니고 읽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시대가 그랬고 세태가 그랬고 당시에 '이진경'이라는 이름이 갖는 관음증적인 파워가 그랬다. 요즘 말로 하면 종북인 듯 종북 아닌 종북 같은 책? 대학 입학하던 해에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파업을 했는데 대학로, 동국대, 고려대 근방에서 가방수색을 당하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여학생 같아서 (?) 용케 피하곤 했지만 가방에서 "철학에세이"가 나와 경을 칠 뻔했던 어떤 이도 있었다.
블레이크의 문학을 가르친 교수는 (그 자리에 오른) 실력이나 개인적 삶의 역정으로 치면 대단할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날로 그 교수가 싫어졌다. 전공도, 교수도, 동기들도 다 싫어졌다.
나는 내가 왜 이런 어정쩡한 사람이 되었을까. 혼자 찬찬히 생각할 때가 많다. 왜 그 때 싸우지 못했을까. 답답하다고 소리치지 못했을까. 선생님 그건 슬픈 게 아니에요, 끔찍한 거예요.
무리에서 떨어져 결국엔 혼자 걷는 펭귄 한 마리가 되기 싫었던 그런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자문해본다.
오늘 다시 읽어보는 굴뚝청소부 -- 이진경 말고 블레이크
The Chimney Sweeper: When my mother died I was very young
BY WILLIAM BLAKE
When my mother died I was very young,
And my father sold me while yet my tongue
Could scarcely cry " 'weep! 'weep! 'weep! 'weep!"
So your chimneys I sweep & in soot I sleep.
There's little Tom Dacre, who cried when his head
That curled like a lamb's back, was shaved, so I said,
"Hush, Tom! never mind it, for when your head's bare,
You know that the soot cannot spoil your white hair."
And so he was quiet, & that very night,
As Tom was a-sleeping he had such a sight!
That thousands of sweepers, Dick, Joe, Ned, & Jack,
Were all of them locked up in coffins of black;
And by came an Angel who had a bright key,
And he opened the coffins & set them all free;
Then down a green plain, leaping, laughing they run,
And wash in a river and shine in the Sun.
Then naked & white, all their bags left behind,
They rise upon clouds, and sport in the wind.
And the Angel told Tom, if he'd be a good boy,
He'd have God for his father & never want joy.
And so Tom awoke; and we rose in the dark
And got with our bags & our brushes to work.
Though the morning was cold, Tom was happy & warm;
So if all do their duty, they need not fear harm.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전 아주 어렸어요
아빠는 제가 '딱으! 딱으! 딱으! 딱으!"라고 밖에는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절 팔아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 굴꾹을 청소하고 검댕을 뒤집어 쓰고서 자게 된 거에요.
개중엔 톰 데커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양털 같이 복슬복슬한
그애 머리가 밀렸을 때 울었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뚝, 톰! 신경쓰지마, 네 머리가 깨끗하면
검댕이 네 하얀 머리칼을 망칠 일도 없잖아."
그래서 그애는 조용해졌고 바로 그날 밤
톰은 자다가 그 비슷한 광경을 보았어요
수천의 청소부들, 딕, 조, 네드 그리고 잭,
그애들 모두가 시커먼 관속에 열쇠가 채워져서 갇힌 거에요
그런데 빛나는 열쇠를 가지고서 천사가 옆에 내려왔어요
천사가 관을 열어 아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어요
아이들은 푸른 평원을 껑충 뛰고 깔깔 웃으며 달려 내려갔죠
강물에 몸을 씻었고 햇빛에 빛이 반짝였어요
알몸에 하얀 모습으로, 아이들의 가방은 모두 뒤에 남겨둔 채,
아이들은 구름 위로 솟아 올랐고, 바람을 타고 뛰어 놀았죠.
그때 천사가 톰에게 말했지요. 톰이 착한 아이가 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기쁨으로 넘칠 것이라고요.
톰은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도 어둠 속에서 일어나
일 가방과 청소솔을 메고 나섰지요.
아침이 차가웠지만 톰은 행복했고 마음이 따뜻했어요
그렇게 모두가 할 바를 다하면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요.
* 이진경 선생의 책 제목의 굴뚝청소부와 블레이크 시의 굴뚝청소부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굴뚝청소부들이다. 이진경 선생은 탈무드 일화를 가져온 듯하고 블레이크도 --- 탈무드 일화를 가져온 것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