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이없어

분류없음 2015/01/17 01:54

지난밤. 일하면서 겪은 충격과 공포(?)의 기억들.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남긴다 --- 

 

#1. 

주로 생물학적인 남성들이 일하는 곳에 고객(clients)으로 온다. 아무래도 형법상 죄를 짓는 사람들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높아서, 그럴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남성들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성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고착화되어있기 마련이다. 어쩌다가 여성 고객들 혹은 여성적인 태도를 지닌 남성고객들이 오면 다소간에 어려움이 상존하지만 하다보면 또 모두들 적응한다. 

 

하지만 여성 고객들을 맞이하는 것에 인색하다. "되도록이면 남성들로 보내줘" "아, 띄발 왜 이번엔 여성들이 일케 많아" 불만스런 목소리들이 가끔- 아니 자주- 있다. 

 

#2. 

아무래도 사람들이 먹고 싸고 자고 살아가는 곳이다보니 별의별 냄새가 다 난다. 흔한 "수컷냄새"는 기본이다. 이 냄새는 아무래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애써 설명한다면 삼겹살 집에서 잘못 걸려 나온 "수퇘지" 냄새라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우웩. 

 

상대적으로, "암컷냄새"는 미묘하다. 나는 이것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 아무래도 같은 '암컷'이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일터의 여성동료들도 이 냄새에 민감하지 못하다. 다만 남성동료들은 잘 알아채는 눈치이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표현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게 역력하게 보인다. 

 

#3. 

지난 밤. 강력한 여성 고객을 만났다. 아랫도리를 다 벗어제끼고 단잠을 주무시는 이 고객의 방과 주변에서 매우 이상하지만 친근한 노량진수산시장의 냄새 -하지만 신선하지 않고 뭔가 outdated한 - 가 나는 것. 처음엔 대체 이게 뭐야, 했다. 시프트파트너는 풀타이머임에도 불구하고 구역질을 해댔다. 뭐지???? 그런데 바로 옆 방에서 자던 남성 고객께서 잠을 못자겠다고, 악몽을 꿨다고 불평을 하셨다. 

 

이 여성 고객의 방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리고, 이 여성고객의 이름을 몇 번 불렀으나 대답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바로 냄새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불편하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하기 어렵지만 --- 많이 / 자주 / 익숙하게 접하다보면 이 냄새 또한 "수컷냄새"만큼이나 익숙해질 것이다. 

 

#4. 

같은 시각. 인테이크 약속에 늦은 한 남성고객이 자정을 넘어 입장하셨다. 인테이크 절차 (procedures)와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네가 가져온 가방은 지금 당장 방에 가져갈 수 없으니 창고에 임시 보관하고 내일 아침에 인테이크 절차를 밟도록 해. 일단은 자는 게 어떨까. 그 순간, 술병인지 뭔지 모를 병들이 부딪히는 소리. 일부러,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오십살이 넘었고 엄연히 이 가방들은 내 소관이야. 내가 알아서 할거야. 나는 네가 얘기하는 것을 따르고 싶지 않아. 내 자유야, 이 가방은 내 꺼야. 내 앞에서 썩 꺼져." 

 

어라. 누가 뭐래. 나는 니 가방에 관심없어. 다만 절차를 따르란 말야. 

 

새벽 열두시 반에 도착한 이 망할 놈팽이가 우기는 바람에 새벽 두 시까지 보초를 섰다. 결국 두시 십 분. 이 놈을 불러 최후통첩. 자, 조건은 두 개야. 첫째, 조용히 니 방에 들어가서 자, 대신 니 가방은 창고 보관하고 아침에 인테이크 절차를 밟아. 둘째, 첫째가 싫으면 니가 원하는 곳으로 가. 갈 곳이 없으면 시에서 운영하는 쉘터를 불러줄거야. 둘 다 싫으면 우리는 경찰을 부르는 수밖에 없어. 자, 네가 선택해. 

 

이 아저씨는 둘 다 싫다고. 결국 내 파트너는 경찰에 전화를 넣었다. "미안하지만 너는 기회를 잃었어. 내 파트너가 경찰을 부를 거야. 미안해. 안녕." 그제서야 득달같이 "대화를 하고 싶다"며 초인종을 눌러댄다. 이건 더할나위 없는 하라스먼트(harrassment)다. 

 

결국 이 아저씨. 택시를 불러 소중한 가방을 챙겨 떠나는 모습을 봤다. 경찰은 무서운 거다. 하지만 이민자 출신의 나와 내 파트너는 우스운 거다. 

 

#5. 

이 와중에 이 아저씨는 나에게 너 참 무례하다, (You're too rude) 고 했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 (I've never been treated like this way) 라면서 나를 비난했다. 내 파트너는 "꽃개는 우리 에이전시에서 가장 잘 참는 사람이야 (she's the most patient staff in here) 너 실수 했어 (you've picked that wrong person)이라면서 경고를 했다. 

 

아침에 교대근무 전환을 하는데 사람들이 말한다. 꽃개가 버르장머리 없는 거면 대체 어쩌라는거냐. 지난 밤 둘 다 개고생했네. 그 자식, 다시는 우리 에이전시에서 머물 수 없을 거야. 클라이언트파일에 레드플래그 얹어. 

 

그러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바로 그 아저씨다. 매니저를 찾는다. 모른 척하며, 매니저는 아홉시나 되어야 올 거에요. 전화거신 분이 누구신지 메세지를 받아도 될까요? 하니, 다시 건단다. 오호라. 매니저에게 바로 이야기하겠다는 거지!!! 

 

#6. 

한국에서 아무리 직설적으로 떠들고 재수없게 행동했어도 예의없다, 는 말은 잘 듣지 못했다. 반면 "이상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이 나라에서 "웃긴다"라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버릇없다" 내지 "예의없다"는 말은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나를 일컫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기념비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 

 

 

* 이 글은 당장 흥분한 기력으로 작성한 탓에 며칠 뒤 수정하거나 삭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15/01/17 01:54 2015/01/17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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