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이유

분류없음 2015/01/29 06:40

일터에서 만난 어떤 클라이언트는 전 남자친구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빼앗겼다. 자세한 사정은 설명하지 않아 잘 알 순 없지만 아마도 늦은 시간 아파트에 아이를 혼자 둔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두어 번 아이를 때리거나 그랬던 것 같다. 이웃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과 아동보호담당부서 (CAS; CCAS) 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이 클라이언트에게 CAS는 저주의 대상이다. "망할 놈의 CAS" 는 이 사람의 인삿말에 진배없다. 

 

그런데 이 클라이언트에게 아이가 또 있다. 첫째 아이를 빼앗기고 아이를 되찾기 위해 전 남자친구를 찾아가 협상을 하던 며칠 사이에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났고 또 그 둘째 아이를 CAS에 빼앗겼다. 둘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는데 아이 이름이 달라서 나는 이 양반이 잠깐 아프신가, 그런 생각을 했다. 말을 받아서 다시 물어보니 (paraphrasing) 둘째가 있다고, 어떻게 둘째를 낳게 되었는지 설명해줬다. 사진 속의 아이는 푸른 빛과 녹색 빛이 교차하는 영롱한 눈빛을 지녔다. 참으로 곱고 어여쁘다. 

 

맙소사. 

 

나의 주관적 관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무래도 박원순처럼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할 필요는 없고) 일단 무책임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 낳은 아이를 유기하거나 때리는 등 무책임의 반복으로 국가에 빼앗겼다는 것, 동일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또 낳는다는 것.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은 다 다르므로. 

 

왜 이렇게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걸까. 잘 기르려고 하지 않고 낳으려고 하는 걸까. 

어느 날 시프트 파트너에게 물어봤다. 그이는 장성한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무래도 혜택이 있으니까 낳지 않을까?" 

그래, 무슨 혜택이 있는데? 

 

 

이 나라의 출산과 양육 혜택 

 

유니버설차일드케어베너핏 (The universal child care benefit: UCCB)

6살 아래의 아이를 둔 가구에 매월 아이 한 명 당 $100씩 지급한다.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지급하는 것으로 소득으로 간주 (taxable)하며 따라서 소득신고를 할 때 포함해야 한다. ‘유니버설’이라는 이름과 ‘소득으로 간주’한다는 명목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아이를 낳으면 받는다. 한국 식으로 대입하면 이재용도 이 돈을 받는다. UCCB는 현재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던 2006년,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준다는 미명 하에 여타의 다른 정책을 통폐합, 개악하면서 새로이 도입한 연방 정책이다. 그 전의 연방 정책은 소득이 낮은 가구를 보조하는 방향이 더 컸다. 시쳇말로 ‘생산적 복지’를 강조하는 변화였다. 이 정책은 때로 이민자들을 혐오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중산층 이상의 백인 가구는 대개 0-2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지만 3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가구는 대부분 이민자들이다. 언젠가 남아시아에서 온 아주머니께서 9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봤다. 아이 하나만 낳아 어렵게 키우는 소득하위계급의 처지에서 9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옆집을 바라보면 저 집은 나보다 9배나 많은 돈을 받는구나, 하는 박탈감(?)을 갖게 된다. 양육에 드는 다른 비용과 노력은 사상하고 "저이는 내가 $100를 받는 동안 $900을 그냥 앉아서 버네?" 라는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런 박탈감과 경쟁을 조장한다. 

 

차일드텍스베너핏(The Canada child tax benefit: CCTB) 

18세 이하 어린이를 키우는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연방정책.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연소득 $43,953 이하) 가구의 소득을 보전하는 방향이므로 소득 신고 시 제외된다. 이 연방정책은 장애어린이혜택 (The child disability benefit: CDB), 보수당 정부가 2006년에 확 뜯어고친 내셔널차일드베너핏보조 (The national child benefit supplement: NCBS)를 포함한다. 어쨋든 기준은 해당 가구의 연소득이다. 
연소득이$43,953 이하인 가구에서 18세 미만의 아이를 키우면 둘째 아이까지 한 달에 $120.50(연 $1,446)를 보조받는다. 셋째 아이부터는 월 $8.41 (연 $101)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연소득이$43,953를 넘으면 차감하여 보조를 받는다. 

 

내셔널차일드베너핏보조 ( NCBS)

NCBS는 연소득이 $25,584 미만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아이 가정의 경우 연 $2,241 (월 $186.75), 두 아이 가정의 경우 연 $1,982 (월 $165.16), 세 아이 가정은 연  $1,886 (월 $157.16)을 공제한다. 따라서 세아이를 키우는데 연소득이 $25,000라면 그 전체 소득에서 $1,886를 감경받는다. 소득으로 추산하는 양을 감경받으니 그만큼 내야할 세금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출산과 양육 복지정책의 기본, CCTB의 기본정신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구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데에 있었다. CCTB는 실질적인 지원으로, NCBS는 절세라는 혜택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한다. 보수당 정부가 2006년에 CCTB를 뜯어고친 데에는 기본소득 보장이라는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을 무너뜨리고 이른바 ‘일하는 복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으로 개조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보편적 복지인 유니버설차일드케어베너핏 ( UCCB) 을 도입했던 것. 이재용도, 조현아도 아이만 낳으면 십만 원씩 준다. 

 

앞의UCCB와 CCTB (CDB /NCBS 포함) 는 근본적으로 연방정책이고 각 지방정부마다 출산-양육 보조 정책이 다르지만 기본은 역시 ‘소득보전’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온타리오 주의 경우 온타리오차일드베너핏 (OCB), 온타리오차일드캐어보조(OCCS) 등의 제도가 있다. 가령 7살 미만의 아이가 있는 두부모 가구는 연 $1,100 (월 $91.67), 싱글맘-싱글대디의 가구는 연 $1,310 (월 $109.17)의 혜택을 받는다.  

 

차일드케어시스템

아이를 낳아서 금전적으로 받거나 세금공제로 받는 혜택 외에 보육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내가 일하는 동안 나의 아이를 맡아줄 곳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정책은 시정부에서 시행하지만 기준 역시 소득이다. 예를 들어 아이 두 명 (18개월 미만의 아이 한 명, 18개월 이상 2.5세 미만의 아이 한 명)을 키우지만 연소득이$43,953인 가구를 상정해보자. 이 가구의 차일드케어비용은 하루에 $114.43씩 월 $2488.85가 든다. 엄청난 비용이다. 연소득에 의거해 하루 $12.21, 월 $265.49를 차일드케어 비용으로 내면 된다. 시정부에서 하루 $102.22 (월$2223.36)를 보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 그렇다. 

 

시에서 보조하는 차일드케어 보조 시스템은 전일근무하는 부모/부부/모모/프라이머리 케어기버에게 적용한다. 가령 이브닝시프트로 일하면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아침에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근거 때문이다. 파트타임 근무를 해도 상황에 따라 적용한다. 가장 큰 문제는 위 혜택을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전일제풀타임 직장을 갖기 힘든 이민자들이 이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은 당연하다.

 

 

잘 뜯어보면 혜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언뜻 보기에 각종 혜택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설명한 이 모든 출산-양육 혜택을 모조리 받고, 이에 더해 부모 스스로 받을 수 있는 최저생계보장 혜택이나 장애인혜택 등을 다 합쳐도 최저 생계비 수준 (연 $25,584, 월평균 $2,132) 을 넘어설 수 없다. 이 기준을 획기적으로 넘어설 방도가 없는 한 그저 그렇게 살 뿐이다. 한 달 보장소득이 $2,132라고 한들, 집세와 식료품 값, 공공요금, 통신료, 데이케어 요금 등을 제하고 나면 --- 아이가 좋아하는 해피밀 사주는 것도 빠듯하다. 

 

 

그런데도 왜 아이를 낳는 것이냐

 

아이를 직접 낳는 데에 의미를 두는 거라면 --

혜택 말고

기르는 기쁨 말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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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있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경을 딱! 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특히 그 일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일 때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니까. 

 

 

 

 

 

2015/01/29 06:40 2015/01/2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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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들레홀씨 2015/01/29 07:40 Modify/Delete Reply

    기본소득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아울러 출산 양육도 어떻게든 일어나야 한다는 것, 감사합니다.

  2. 꽃개 2015/02/12 17:04 Modify/Delete Reply

    제가 언급한 것은 '기본소득'을 주장하시는 기본소득네크워크분들의 '기본소득' 개념과 다소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예컨대 모든 개인에게 일정 현금을 지급하자는 취지로--운동적 개념?-- 말씀하시는 것 같고 저는 말그대로 생활을 하기 위해 개인에게 필요한 최소 소득의 의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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