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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나날들...

   사무실에 출근한지 한달이 되어 간다.  그러니까 1월 한달 동안 고작 포스팅을 3개 밖에 못했다.  정말로 못한게 맞다, 안한게 아니라...어느정도 예측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블로그에 몇줄 끄적이는것도 어지간히 시간을 내야 가능하다는걸 이제서야 조금 실감하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사건사고가 터지는 이곳은 서울역 쪽방촌이다.  아침부터 술먹고 비틀 거리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주저리 주저리 신세 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머리 풀어 헤치고 술먹다가 기어이 자해까지 해버리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며칠전에는 평일 하루 쉰다고 하고 지방에 내려 갔는데 대표로부터 문자가 왔다.  자해한 환자를 보호할 사람이 없어서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자려고 한다고, 내일 아침 출근할 수 있겠냐고...다음날은 토요일이라 출근하지 않기로 한 날인데 거절하기도 뭐하다. 알았다고 급히 일정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했다.  엊그제는 한 알콜중독자가 찾아와서 알콜센터에 보내달라고 하기에 사무실에 잠깐 대기 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병원에서 관계자들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사람이 없어졌다.  부랴부랴 찾으러 나갔다 왔더니 제발로 다시 걸어 들어오는 클라이언트... 우여 곡절 끝에 병원에 동의서를 써서 보내고는 한시름 놓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다시 돌려 보낸다고...뭐, 이런 싸가지 없는 병원이 있나....제길~!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현장 경험이 그닥 많지 않은 나로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러한 일들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데 아직은 많이 서툴다.  대표는 그런 나를 한편으론 답답해 하면서도 지켜보겠다는 눈치고...난,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을때는 분명히 비장한(?) 각오쯤은 했음이 분명한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리고 이제 겨우 한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의 동요가 온다면 나의 '나약함'을 그대로 증명해 주는일임과 동시에 나는 그동안 얼마나 온실속의 화초처럼 살아 왔나를 반성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은 반성보다는 현장을 더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와 '동화'되어야 하는게 먼저 일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생활의 리듬이 바뀌고 템포가 달라져서인지 나도 모를 긴장감과 '스릴'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고 그들과 동화되어야 하고 나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그 어떤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잠자리에 들기전에 돌이켜 보면 웬지 모를 홍조가 띨정도로 행복한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내가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때, 답은 늘 "아니"라는 쪽보다 "맞아"라는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으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을때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요사이는 새록새록 그러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때아닌 복이 터진걸까?  하루종일 정신이 없고, 늦은 퇴근을 하면서도 마음은 더 없이 뿌듯하기만하다.  과연 이러한 마음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숨쉴틈도 없이 돌아가는 하루하루다.  그리고 이제 겨우 적응좀 해볼까 하는데, 갑자기 용산 철거민 사건까지 터져 버렸다.  대표와 자원활동가 그리고 나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루 휴업한다는 공지까지 사무실 문에 써붙이고 급히 대책위에 결합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하게 사건이 끊이지 않은지 원~!  우리 단체에서는 대상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급박하고 막막한 사연을 해결해 주는일이 급선무 이므로 용산대책위에 지속적으로 결합하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 결합후 필요한 부분에만 파견하는식으로 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이렇게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어찌 엽기적이지 않으리오...

 

   설 연휴가 있기는 해도 마음놓고 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록 웬수 같을지언정 내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다는것과 쪽방이 아닌 곳에서 쉴 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웬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대표와 자원활동가들은 쪽방에 산다)...그리하여 나와 대표는 이벤트를 기획하기까지 했다. 연휴 전날 사무실에서 자원활동가 및 대표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그러나, 나의 야심찬 기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자원활동가들은 다른곳에 마음을 두고 있었으므로...이른바 또래들과 술먹고 놀기에 마음이 있었던 듯...

 

   이제 연휴가 끝났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사무실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발품을 파느라 온전히 쉬지도 못했는데도 빨리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벌써부터 직업병이 발동한걸까?  출근하고 퇴근해서 잠들기까지 한시도 사무실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그리고 며칠 보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그립기까지...내가 생각해봐도 평소의 나같지 않은 모습에 놀라는 것을 보면, 누군가 나의 결정을 '미쳤다.'고 말했듯이 정말로 미쳐가는게 아닌가 싶다.  아침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면 말 다한거 아닌가?  출근길이 이렇게 행복해 보기도 정말 오랜만이다.  오늘은 또 어떤 엽기적인 일들이 펼쳐질까하는 두근거림은 마치 애인을 기다리는 설레임과 비길대가 아닌 것이다..하하하~

 

 

* 이 글을 쓰는데 몇번에 나누어 썼는지 모른다.  계속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바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으므로...참고로 내가 일하는 단체 이름은 '동자동 사랑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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