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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

요 며칠은 말 그대로 '심란'자체다..

내가 심란해 하는 이유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건

'집'과 관련된 일을 하는거다.

말하자면,

같이 사는 사람과 그들을 위해 내가 꼭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그런것 들이다.

 

 



김장을 해야 한다.  사실 내가 먹는 양은 얼마 되지도 않지만

엄청난 양의 김치를 먹어 치우는 동거인을 위해서는 오로지 내가 '희생'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렇게 심적 부담을 가지면서 꼭 해야 하나..싶으면서도

안하고 나면 맘이 찜찜한것을 지울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회에서 기초법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거기서 먹을 김치까지 같이 해야 한다.

처음엔 20포기만 하려고 했는데 10포기 추가해서 30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거다.

헉~!

30포기를 절이고, 재료 다듬고, 속 만들고, 집어 넣고...

물론 나혼자 다 하는 일은 아니다.

근데 당장 내일부터 재료를 사와야 하고 손질하는 일은 온전히 내가 다 해야 한다.

엄청난 부담이 내 어깨를 팍팍 짓누르고 있다.

 

거기다 엊그제는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

마땅히 가보아야 하는 곳에 갔는데 나는 시종일관 입을 열지 않았고...

어른들의 떠느는 소리에 그냥 대꾸만 하고 있을 뿐였다.

후배가 아이를 낳았다고 했을때는 냉큼 달려가서 사진도 찍어 주고

수다도 실컷 떨다 왔는데 피가 섞인 동생 한테 가서는 한마디도 유쾌하게

주고 받지 못하는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 야릇했다.

(역시나 나는 혈족하고는 너무 거리가 먼-익숙하지 않은- 리듬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한가 보다.)

 

그리고 김장이 끝나면 며칠뒤에 바로 시부 제사이다.

올해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가 않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행사가

겹치기도 하거니와 왜 나만 이렇게 열심히 챙기고 살까? 하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나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주부'와 관련된 일을 할때가 제일 심적으로 힘들다.

몸이야 모...좀 쑤시고 나면 괜찮지만, 심적으로 오는 그 부담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머리를 짓누른다.

 

그 다음은 반찬 만들기... 없으면 없는대로 먹어도 그만인데, 꼭 누구 눈치라도

보듯이 부랴부랴 해치워야 하는 그 일이 나는 너무 싫다.

안하면 마치 욕이라도 얻어 먹을것 처럼...(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아무래도 일을 즐겁게 해치우지 못하는 압박이 너무 큰것 같다..ㅡㅡ)

 

제사가 끝난후 며칠 있으면 친정 엄마 생일이다.  안 챙길 수 없다.

얼마간의 돈을 주더라도 얼굴을 내밀어야 하며, 자식이라서 해야 하는 '도리'같은게

역시 나하고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또 사나흘 지나면 남편 생일이다.

역시 그냥 넘어 갈 수 있지만, 넘어가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하다못해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어야 마음이 편해 지니깐...

 

내가 결혼 이란걸 하고서 가장 힘든것 들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억지로, 또는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그것들...

그리고 혹자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되는 그것들...

 

 

근데 나는 혈족이 아니거나 가족이 아닌 사람들 챙기는건 대체로 잘하는 편이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친구들 생일도 웬만하면 잊지 않고 챙기며, 결혼식 정도는 가볍게 축하를 해주기도

한다.  그것들은 집안일을 챙기는 것처럼 부담이 크지 않다는거다.

 

이런 상황들을 유추해 볼때,

역시 나는 누군가 말했듯, '결혼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적응할만도 한데 여전히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거 보면 내게 '자유'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그것들과 비교해 볼때

내가 갖고 싶은 자유는 너무나 원초적인 인간 본연의 자유가 아닐까...

억지 스럽게 맺어진 그 관계들을 청산하고 홀연히 사라지고 싶을때...

바로 오늘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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