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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특집 완전분석: 자유한국당의 리비아식 해법이 헛소리인 이유1

 

 

 

[전제 1]

의식의 흐름 그대로 쓰려고 한다.

 

[전제 2]

5일 연속 술독에서 허우적거리다 쓰는 글이다.

 

[전제 3]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써달라는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의 ‘주문’이었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이미 주요의제에 대한 합의는 다 끝났을 테고, 핵심은 북미협상으로 가기 전 ‘중간점검’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민족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행사’이며, 어쩌면 70여 년 남북분단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이벤트일 수도 있다. 아니, 그게 맞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모의고사’라는 게 내 판단이다. ‘본고사’는 북미회담이다.

 

 

 

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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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모 방송사에 나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리비아식 해법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

 

란 발언을 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방송에 나와 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다. 홍준표 대표가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면, 협상의 가치가 없으며 북한의 ‘시간끌기용’ 회담이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폄훼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해의 범주 안이었다.

 

“북한은 그래왔으며”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으며”

“이제까지 보여준 자유한국당(전신인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의 발언과 행동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북한에게(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네 목을 따겠다.”

 

라고 선언한 것이다.

 

핵무기가 이 세상에 나온 지 70여 년, 수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이 중 성공한 나라는 안전보장 이사국 5개국과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보유했지만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타협’을 본 이스라엘만이 핵무기를 개발했고, 보유했다.

 

수 많은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만큼의 절망을 경험해야 했다. 이제까지의 역사 중 그나마 ‘덜’ 절망스러웠던 역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고수하던 남아공은 전 세계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외교적, 군사적으로 고립돼 있던 남아공은 자신들의 활로를 찾기 위해 핵이란 금단의 병기에 손을 댔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인정권’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마지막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반아파르트헤이트 헌법을 통과시킨 정치인. 이 사람 덕분에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 흑인정부가 별 무리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가교가 된 백인 정치인)는 1993년 3월 의회 연설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남아공은 핵무기 6개를 생산해 보유했으나 모두 폐기했고, 개발정보도 모두 파기했다.”

 

이 메시지를 내보내기 위해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1991년 11월부터 2년 반 동안 남아공의 모든 핵 관련 시설을 100여 차례 사찰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이때 남아공이 ‘왜’ 핵무기를 포기했는지 속으론 알고 있었지만, 겉으론 다른 말을 했다.

 

“남아공의 인류 평화와 아프리카의 안정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했다.”

 

개소리였다. 남아공이 핵무기를 폐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

 

“흑인들에게 핵무기를 건네줄 수 없다.”

 

남아공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친절하게’ IAEA의 사찰단을 맞이했다. 처음부터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와 양도,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의 철저한 파괴를 ‘기본방침’으로 내세운 정부였기에 IAEA의 사찰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남아공의 핵무기 개발 덕분에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남아공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실험할 때 이스라엘의 핵무기도 ‘덤’으로 터트려줬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전면적으로 핵무기 포기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찰에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였다. 하물며 의지도, 명분도, 국제정치적인 ‘여건’도 만들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전면적인 핵을 포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김성태 원내대표가 선언(?)한 리비아식 해법은 어땠을까?

 

1980년대 광풍 같은 테러의 물결이 스쳐 지나가고, 미국의 보복(리비아 공습)과 뒤이은 리비아의 보복(팬암 103편 폭파 사건) 등으로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달렸다. 이 둘의 국교단절은 1980년대 시작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미국은 1981년 리비아와 단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다는 건 자본주의 체제하에 편입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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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금까지 북한의 목에 걸려있는 각종 규제들 중 큰 것만 하나씩 살펴보면,

 

① 수출관리법: 인도적 물자와 홍보자료를 제외한 상업물자의 수출 전면 금지.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PC의 OS가 뭔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대부분 ‘윈도우’ 체제일 텐데,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MS 오피스나 윈도우를 쓸 수 없다. 이 때문에 김정일이 생전에,

 

“주체 조선의 컴퓨터 운영체제는 리눅스로 한다!”

 

라고 선언한 거다.

 

② 무역법: 최혜국 대우(MFN)와 특혜관세(GSP)부여 금지. 북한이 아무리 미국에 수출을 하고 싶어도 엄청난 관세를 두들겨 맞기 때문에 사실상 수출이 불가능하다.

 

③ 대적성국교역법: 대적성국교역법의 ‘외국자산 통제규정’에 의거, 북한과의 금융거래는 대부분 금지되어 있으며, 미국 은행 시스템을 통과하는 북한 자산은 동결된다.

 

④ 수출입은행법: 대북한 무역 시 수출입은행의 보증이나 지원 전면 금지. 수출은 물론 북한 물건을 수입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⑤ 대외원조법: 인도적 식량지원을 제외한 어떠한 원조도 제공불가. 이 법의 가장 무서운 조항은 다음인데,

 

“테러지원국을 원조하는 국가에 대한 원조금지”

 

항목이다. 즉, 북한을 지원하는 국가 또한 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없다. 국제적인 ‘왕따’를 만든 거다.

 

⑥ 국제금융기관법: 테러지원국에 대한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제공에 반대하도록 의무화. 이는 사실상의 북한에 대한 차관제공을 불가능하게 한다. 국제금융기관의 경우 출자금 액수에 비례하여 가중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차관반대 의사표명은 곧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차관제공 불가를 의미한다.

 

⑦ 국제안보 및 개발협력법: 테러지원국으로부터의 상품 및 용역 수입 금지

 

북한은 90년대 동구권의 붕괴 이후 전 세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돼 있었다. 전 세계는 지금 미국 주도 하의 WTO 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다. G2라고 ‘설레발’ 치는 중국도 미국의 WTO 체제 아래서 ‘달러’를 가지고 거래하며, 미국 채권을 산다. 이런 세상에서 경제발전과 생존이 가능할까? 이제까지 버틴 북한이 대단한 거였다.

 

...그렇다면 리비아는? 리비아의 경우는 북한보다 제재가 ‘덜’ 했다. 1986년 미국 내 리비아 자산의 동결, 미국의 대(對)리비아 교역 금지 조치가 이루어졌다. 1992년에는 UN 안보리 제재를 받았고, 원유 수출이 금지되면서부터는 하루하루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당시 리비아의 카다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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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을 하는 것만이 리비아와 내가 살 길이다.”

 

독재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유혹이다.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의 발언권의 차이, 국제사회의 위상. 사람들은 핵의 ‘폭발력’과 이후 벌어질 수많은 위해(방사능 낙진)를 걱정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핵무기는 발사하는 순간 위력이 사라진다. 즉, 핵은 ‘고도의 정치적 무기’란 말이다. 보유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 이게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다.

 

역사학자들이 핵무기를 두고 농담 삼아,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 딱 2번만 사용한 뒤 사용하지 않은, 그럼에도 계속 만들어지는 극히 드문 제조물”

 

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핵은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무기가 아니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만약 사용한다면? 사용한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핵무기는 정치적인 무기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이 이란 쪽으로 병력을 옮기자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당시 미국 주재 소련대사인 그로미코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란에서 48시간 이내에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은 원자탄을 사용할 것이다.”

 

소련은 24시간 안에 철수했다. 소련이 핵무기를 가졌을 때는 어땠을까? 2차 중동전은 영국과 프랑스에겐 다 이긴 전쟁이었다(이스라엘이 박살 낸 뒤에 영국과 프랑스가 뛰어든). 그러나 중동, 게다가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를 넘길 수 없었던 소련은 이집트 편을 들었고, 프랑스와 영국에게 핵 협박을 한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절치부심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데, 당시 프랑스는 무려 국방예산의 25%를 핵무기 개발에 쏟았다.

 

(미국은 월남전 때도 북베트남에 핵 협박을 했었다. 구정 대공세 당시 전황이 어렵다고 판단한 존슨 대통령이 핵 협박을 했고, 닉슨 대통령 역시 북베트남과의 종전협상 테이블에서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며 협박했다. 이렇게 미국은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에게 ‘핵 협박’을 일삼았는데, 이는 결과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 특히 독재자들에게 핵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핵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국과 동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하는 ‘절대병기’였으니까.)

 

카다피 역시 핵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 제재국면에서 리비아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핵’이었다. 그 역시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세계의 정치지형이 뒤바뀌게 된다.

 

『Never Forget』

 

미국은 보이는 게 없었다(이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 거 같다). 당시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영공개방을 거부했고, 미국은 아주 정중하게 파키스탄을 폭격할 거라고 말했다(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후원자였으나, 협박과 300억 불의 경제지원, 이스라엘과 인도를 끌어들였다는 ‘대외적 명분’을 이유로 영공을 개방한다).

 

상황이 어떠한지는 북한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었는데, 미국과 대척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눈 돌아갔다는 걸 직감하고, 즉각적으로 테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우리나라 외교부와 청와대, 국방부 등도 덩달아 긴장해서 대기했었는데, 북한이 911테러에 털끝만큼이라도 개입했다간 한반도가 사라질 기세였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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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를 장식한 건 이라크의 후세인이었다.

 

눈치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악에 받쳤던 건지 후세인은 911테러가 ‘신의 응징’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 결과는 2년 뒤에 전 세계인이 확인하게 된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에 발맞춰 카다피가 백기를 든다. MI6(영국 비밀 정보국)를 통해서 미국 측에 협상을 제안했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

 

눈 돌아간 미국에게 반기를 든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회담은 강경 일변도로 흘렀고, 2003년 4월부터 그해 11월까지 비밀협상이 진행됐다. 이때 리비아는 협상재료(?)로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공개했고, 이를 완전히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

 

2003년 12월부터 지난한 ‘사찰’과 ‘감시’이 시작되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건 물론, 2004년 1월부터 8월까지 IAEA의 고강도 사찰을 받았다. 핵무기 제조의 핵심장비라 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핵 무기 제조장비와 관련 서류 25톤이 미국 테네시즈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옮겨졌고,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종료된다. 2005년 10월에야 모든 게 끝났다.

 

리비아의 핵개발 계획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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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로부터 가져온 화학무기를 살펴보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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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흐리는가?

누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흐리는가?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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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6  03: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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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다가왔습니다. 이어 5월 말-6월 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예정돼 있습니다. 어떤 일의 성패 여부는 사전 분위기를 엿보면 대강 감지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미 3국에서 회담 성사와 성공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한창입니다.

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입니다. 북측은 남측 및 미국과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두 개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북한의 분위기 조성 노력이 주효했습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해 성공적 평화올림픽 개최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아울러 특사를 파견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판문점 남측 지역 개최 및 남측과의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 등을 수용하면서 회담 성사의 물꼬를 텄습니다. 미국에도 일찌감치 ‘비핵화’ 언질을 줌으로써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걸림돌을 제거했습니다.

특히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건설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경제발전 전략적 노선’으로 수정했으며, 동시에 핵무력건설 폐기 입장에 따라 ‘Δ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Δ북부 핵실험장 폐기 Δ핵무기, 핵기술 이전 않을 것’ 등을 선언함으로써, 두 개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에 열성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건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이후 전개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연일 쌍수를 들고 흥분과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동회견에서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세계적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20일 북한의 핵과 ICBM 시험발사 중지 선언에 “북한과 세계에 아주 좋은 뉴스이고 큰 진전!”이라고 반색하면서 “우리의 정상회담을 기대하라”고 장담했습니다.

또한 24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김정은은 정말로 매우 열려 있고 나는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일이 아주 명예롭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들떠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착 가라앉아 있는 편입니다. 문 대통령은 23일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자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면서 “북한이 핵 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의 길로 간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며 일반론을 펼치지만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남북.미 지도자들이 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위해 적공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망동도 나타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5일 “문재인 정권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제재위기로 붕괴위기에 처한 북한을 살려주려고 하는 것이고 속아선 안 된다”라고 비판한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행위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미국 주류의 분위기는 치밀한 것 같으면서도 가관입니다.

미국에서는 북한은 정권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무기 불포기론’, 북한의 핵무기는 단순히 체제 보장 목적이 아니기에 북미 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이뤄낼 가능성이 없다는 ‘비핵화 불가론’과 ‘정상회담 무용론’, 제대로 준비를 못한 회담일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에 연기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정상회담 연기론’ 그리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까지 대북 제재가 계속되어야 하고 단계별 비핵화 조치에 보상을 해선 안 된다는 ‘재뿌리기 형’ 등 다양하고 요란합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민족통일과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분수령이 될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들 회담의 성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판에 사전부터 분위기를 흐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들 비관론자와 회의론자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도를 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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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

조홍섭 2018. 04. 25
조회수 1618 추천수 0
 
질병 들끓는 열대서 면역체계 유지보다 번식기 온대 이동 유리
여름 철새, 온대 텃새와 비슷한 면역체계…힘든 번식기 부담 덜어
 
03952151_P_0.JPG» 대표적인 여름 철새인 제비는 왜 겨울을 난 동남아가 아닌 온대지역에 와 번식할까. 질병 회피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강재훈 기자
 
해마다 때가 되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장거리 이동을 감행한다. 누, 흰긴수염고래, 도요새, 연어, 제왕나비, 된장잠자리 등 포유류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동물이 지구 전체를 이동한다. 이 가운데 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생태 신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러기가 오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고 제비가 날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동물의 이동은 광범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이 무언지 딱 부러진 결론은 없는 상태이다. 먹이 부족을 피하거나 적절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것이 흔한 이유이지만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겨울 철새는 추위를 피해 찾아와 겨울을 난 뒤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름 철새는 왜 열대지역을 떠나 온대지역으로 오는 걸까. 떠나는 곳에 겨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러기가 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건 왜일까.
 
01313252_P_0_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JPG» 봄·가을 우리나라를 지나 대규모로 이동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무리. 김태형 기자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밀리 오코너 스웨덴 룬드대 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여름 철새는 질병을 피해 이동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의 조류 1311종의 계통 유전학 자료를 분석해 면역체계가 새들의 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연구자들은 온대인 유럽의 텃새와 사하라사막 이남의 적도 아프리카 텃새, 그리고 적도 아프리카에서 온대 유럽으로 이동해 번식하는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를 비교했더니, 아프리카 텃새의 면역체계가 가장 다양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헬레나 웨스터달은 “깜짝 놀란 것은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유럽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점이었다. 철새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병원체 모두를 견뎌야 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적도로 갈수록 다양하고 많아진다. 아프리카 텃새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온대지역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것은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그만큼 부담이 많이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김봉규 기자.JPG» 인천 연평도 인근 무인도에서 번식한 저어새. 번식기는 어미나 새끼에게 매우 힘든 시기로 병원체 위협이 적은 곳이 번식에 유리하다. 김봉규 기자
 
특히 번식기에 그 부담은 크다. 어미 새는 번식기 때 생리적 부담이 극한에 이르기 때문에 질병에 대처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 어린 새도 일생 중 이때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면역체계를 회피한 채 번식을 병원체가 적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텃새와 철새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아시아와 동남아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나타날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mily A. O’Connor et al, The evolution of immunity in relation to colonization and migr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https://doi.org/10.1038/s41559-018-050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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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넘는 첫 북한 지도자 김정은, 키워드는 파격·실용·호탕

군사분계선 넘는 첫 북한 지도자 김정은, 키워드는 파격·실용·호탕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앞줄 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 자리에는 김여정(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동석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앞줄 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 자리에는 김여정(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동석했다ⓒ청와대 제공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대외적으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들어 전면에 직접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반전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연일 자신감과 여유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당일 북측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다. 이 극적인 장면은 전세계로 생생하게 송출된다. 그동안 간접적으로만 접해온 터라 처음으로 일거수 일투족이 생중계될 김 위원장의 모습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침 없는 행보에서 드러나는 스타일
"30대 중반 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평가도

김 위원장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후계자로서 권력을 넘겨받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이듬해 노동당 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올랐고, 2016년에는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외부의 우려와 달리 빠르게 집권 기반을 마련하고 강화한 셈이다. 1984년생으로 29세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은 어느덧 집권 6년차를 보내고 있다.

그만큼 서른 한 살 나이차가 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마주 앉아도 '세대 차이'에 따른 어색함 없이 남북 정상으로서 대화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관훈클럽 조찬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본 분들한테 '김 위원장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같이 얘기하면서 김 위원장의 나이를 인식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이에 '나이를 인식한 적이 없다. 나이 차이를 못 느꼈다'고 얘기하더라"며 "그 얘기는 그 나이 치기 같은 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김 위원장이 2012년 4월에 처음 대중 앞에서 연설한 모습,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서 했던 퍼포먼스 등을 보면서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느꼈다"며 "어떨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세대 차이를 느껴서 얘기를 못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뉴시스/노동신문

이러한 모습을 바탕으로 한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데 이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조성된 대화 국면을 계속 이끌어나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남북 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4월 초에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현 중앙정보국장)를 만나고서는 '나와 이렇게 배짱이 맞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연일 이어지는 파격적인 행보에는 김 위원장의 실용주의적인 성향과 과감한 결단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불필요한 격식을 따지기 보다는 필요한 내용에 충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을 경험한 만큼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와 사상을 지녔다는 평가도 받는다.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뒷줄 오른쪽) 수석 대북특사와 서훈(뒷줄 왼쪽)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이 지난3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나 환담하고 있는 모습.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뒷줄 오른쪽) 수석 대북특사와 서훈(뒷줄 왼쪽)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이 지난3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나 환담하고 있는 모습.ⓒ청와대 제공

김정은, 농담도 줄곧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

또한 김 위원장은 농담도 즐길 줄 아는 여유롭고 호탕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지난 3월 5일 방북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났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특사단)이 실제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특사단과 만찬을 즐기던 김 위원장은 남측 언론이나 해외언론을 통해 보도된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도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무겁지 않은 농담'을 섞으며 여유 있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언급하던 '로켓맨' 등 자신을 조롱하는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또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 대통령이 새벽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재치 있는 말로 무거웠던 그간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 '봄이 온다'를 직접 관람한 후 남측 예술단에 특유의 '북한식 유머'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문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나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이 본인 이름을 언급하며 남측 예술단 공연에 만족감을 표한 것으로, 친근감을 쌓기 위한 '농담'으로 해석됐다.

지난 4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서 이용객이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람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서 이용객이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람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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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한 연인, 미쳐버린 여인... 가장 슬픈 결혼식

[리뷰] 종자돈 100만원의 기적,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보여준 진정성

18.04.25 10:59최종업데이트18.04.25 11:24
광주에서 '봄'이라는 낱말은 사람들 뇌리에 5.18, 금남로, 대검, 총, 공포, 붉은 피, 주검 등의 연관 단어들을 불러들이고 '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어휘로 자동완성 된다. 80년대 광주에서는 해마다 5월만 되면 예식장 예약률이 저조했다. 5월엔 청첩장을 돌리지 않기에 결혼축의금 지출도 없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5월에는 결혼식을 삼가는 불문율을 엄수했다. 결혼의 계절 5월에 광주에서는 결혼축가 대신 장송곡이 도시를 가득 메우곤 했다. 

그러던 1982년, 그해도 역시 5월이 아닌 2월 추위에 한 건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주변 동지들이 중신을 서고 주선하여 성사된 혼사였는데 장소는 화려한 예식장이 아닌 산기슭의 묘비가 즐비한 공동묘지였고, 초례청엔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부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랑한 결혼 축가 대신 애절한 한편의 진혼곡을 제창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 설치돼 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 설치돼 있다.ⓒ 이돈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중항쟁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후배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주제가였다. 레퀴엠 또는 웨딩마치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후 각종 시위와 집회의 첫 식순에 등장하는 출정가로 애창됐다. 비장한 곡조와 결연한 노랫말은 민중을 강력한 연대의 대열로 결집시켰다. 군사·독재정권은 이 노래의 파장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석상에서는 금지곡이었다. 지난 정부시절 보훈처가 주관하는 어느 해 5.18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행진곡' 제창 대신 악단의 흥겨운 '방아타령'이 망월동 영령들을 능멸하기도 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2018년 봄, 온갖 탄압과 시련을 견디고 5.18 정식 지정곡으로 선정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레퀴엠에서 결혼행진곡으로 장르를 확장했다. 박기복 감독의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진혼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결혼행진곡으로 한 쌍의 혼례를 빛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광주 첫 시사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출정식'으로 대체되었다. 광주 5.18을 소재로 한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경제적, 사회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3년 만에 겨우 완성됐다. 그리고 의미 있는 첫 시사회가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에서 개최된 것.  5.18을 소재로 한 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에 비우호적이었던 전 정권 하에서 직간접적으로 가해지는 방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크랭크인에 돌입하여 마침내 마지막 컷을 선언하기까지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가 뒷받침되어 주었다.    

역사적인 첫 광주시사회는 '출정식'이라는 행사 이름에 걸맞게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되었다. 출연진은 겸손한 자세와 인사말로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공유를 호소했다. 배우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연기한 영화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소망을 강하게 내비쳤다.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 첫 시놉시스를 접하고 난 후에 받았던 충격,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와 연기에 임했던 각오를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자신들의 작은 노력이 당시 고통 받았던 광주시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하길 바라는 듯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

식전 행사가 마무리 되고 드디어 스크린이 밝아오자 객석은 침묵이 흘렀다. 사전 언론노출이 많지 않아 스포일러는커녕 줄거리 개요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참석한 시사회 관중석엔 긴장감이 흘렀다.      

영화는 5.18과 이철규 열사 변사사건을 큰 줄기로 구성됐다. 그러나 화면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관객의 정서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풀어가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과장하거나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주인공들이 경험한 사랑과 동지애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투쟁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나갔다. 

* 이철규 의문사 -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광주·전남지역 공안합동수사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씨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 상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노태우 정부 시절 대표적인 의문사 중 하나다. / 한국근현대사사전 등 요약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관객은 정신은 혼미하지만 80년 봄의 추억에 관한 한 완벽히 청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명희(김부선)의 회상을 따라 37년 전 그들의 5월을 추체험한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는 37년째 정신병동에서 생활하는 명희(김부선)의 2018년 현재와 과거 80년 시점을 회상 기법으로 넘나든다. 명희의 기억은 80년 5월에 멈춰있다. 당시의 총격으로 총알이 머리에 박힌 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명희는 연인 철수와의 추억만큼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관객은 정신은 혼미하지만 80년 봄의 추억에 관한 한 완벽히 청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명희의 회상을 따라 37년 전 그들의 5월을 추체험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열렬한 학생운동가인 철수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명희의 작업실에 숨어들고 둘의 까칠한 첫 만남이 시작된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80년 봄 법대생 철수(전수현)와 미대생 명희(김채희)는 명희의 아틀리에에서 처음 만났다. 열렬한 학생운동가인 철수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명희의 작업실에 숨어들고 둘의 까칠한 첫 만남이 시작된다. 평범한 미대생이었던 명희는 처음엔 철수의 개인의 행복을 포기한 투쟁가로서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몸부림으로 바뀔 만큼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회 정의와 인권,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는 철수의 강한 신념과 열정 그리고 인간적 매력에 반해 명희는 먼저 철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둘은 이내 연인이자 동지로 발전한다. 같이 대자보를 작성하고 살벌한 감시를 피해 대자보를 붙이고 시위를 주도하고 농활을 펼치는 등 사랑과 정열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철수에게는 동생 뒷바라지에 매우 헌신적인 형, 철호가 있다. 학생운동의 주동자로 늘 쫓기는 처지이지만 철수와 명희는 살벌한 긴장 속에서도 마냥 행복하다. 두 연인의 사랑은 무르익고 동지들과의 연대는 끈끈하고 철수, 철호 형제의 우애는 더 없이 돈독하다. 행복한 5월의 봄날이다.  

그러나 철수에 대한 수배 망이 점점 좁혀오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철수는 급한 김에 명희를 향해 마음에 없는 냉정한 이별을 통보하고 잠수를 탄다. 그러나 불심검문에 걸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악랄한 사복경찰 영찬(이한위) 일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철수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형사들의 잔인한 고문으로 철수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자신들의 고문치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형사들의 조치로 철수는 단순사고사로 위장된 채 처참한 익사체로 떠오른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철수는 불심검문에 걸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악랄한 사복경찰 영찬(이한위) 일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명희는 철수의 장례식을 치르려던 과정에서 경찰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때 명희의 배속에는 5.18둥이 딸 희수가 잉태되어 있었다.  

친엄마 명희를 대하는 딸 희수(김꽃비)의 심정은 복잡하다. 큰아버지 철호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미친 여자'를 친엄마로 인정하길 거부했던 일화에서 알 수 있듯 희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늘 원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긴 세월 정신병동에 갇혀 사는 친엄마에 대한 연민을 떨칠 수 없다. 명희에 대한 연민과 원망이 같은 무게로 그녀를 짓누른다. 

희수는 서른여덟 늦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양가 상견례 자리에 친엄마 명희가 불청객으로 침입하면서 희수의 결혼은 파토 나고 만다. 그렇잖아도 가슴의 응어리였던 엄마가 인생 중대사에 결정적 방해를 하는 상황에 희수의 원망은 극에 달한다. 명희는 어렴풋이 자신의 존재가 딸의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철규 의문사와 5.18의 결합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분명 전라도인데 철수는 물론 철호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철수형제는 원래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자랐다. 그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무작정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도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감독은 이렇게라도 5.18에 덧씌워진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지역 간, 세대 간, 이념적 차이로 인한 사회적 장벽과 편견을 깨기 위한 감독의 노력은 작품 곳곳에서 강박적일만큼 자주 목격된다. 언뜻 지나치는 풍경, 대사, 소품, 배우들의 행동 하나에도 80년 5월의 시공간적 배경을 어느 특정한 지역과 계층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시대가 품어야 할 공동의 역사이자 비극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포착된다. 그래서 부자연스런 장면이나 소품, 대사 등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에서는 의심하기 보다는 이 장치가 암시하는 메시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영화는 애매한 디테일적인 요소로 관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상상하게 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희수가 파혼으로 취소된 결혼식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신랑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을 예정대로 감행하겠다는 희수의 호언장담은 지켜질 수 있을까. 희수가 계획한 결혼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살리는 최고의 이벤트가 된다. 

스크린에 불이 꺼져도 스피커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나머지 소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노래의 마저 끝날 때 까지 일어서지 않고 정숙했다. 어두운 스크린을 응시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 마지막 소절을 조용히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이 모두 추억의 민중가요들로 짜여있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민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그 자체로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듯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민중가요가 삽입된 신은 느린 화면으로 처리하여 공감각적 감동을 오래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특히 철수의 비밀장례미사를 집전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어 가는 젊은 사제의 이마 위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애잔하게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처연한 분위기가 고조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는 희수(김꽃비)가 파혼으로 취소된 결혼식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이철규 열사의 죽음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지만 주인공 철수에게는 다양한 인물이 중첩되어 있다. 철수가 학생운동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보면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 열사를, 철수가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학내외 투쟁에서 보여주는 역할을 감안하면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수배 중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사고사로 위장 당하는 과정은 제4수원지에서 처참한 익사체로 떠오른 이철규 열사 사건이 투영되어 있다. 학생과 시위대가 철수의 빈 관을 들고 행진하면서 위장행렬로 경찰들의 시신탈취 공작을 따돌리는 작전은 지금도 지역에서 '운암대첩'으로 회자되는 고 강경대군의 장례행렬을 재연한 듯 보인다.

종자돈 100만원의 기적, 이 영화의 진정성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화순군 지역의 시골여중생이었던 나는 80년 5월 어느 날 실시된 갑작스런 봄방학에 너무 신이 나서 광주에서 '폭도'들이 한 달쯤 더 데모를 해주길, 그래서 전원 광주 거주민들인 선생님들이 계속 무단결근을 하고 이 꿈같은 휴교조치가 더 이어지길 간절히 염원했다. 15세 청소년으로서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고 자위한다. 광주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의 시골 중학생인 우리들은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도청소재지 광주에서 그토록 처참한 만행이 자행되고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화순 출신이지만 나이가 조금 많다는 이유로 당시 광주에 유학중이었던 감독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지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명희가 37년 세월을 머리에 박힌 총알로 인한 광기에 시달리듯 광주를 겪었던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인한 크고 작은 분열 증세에 시달린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또한 그 세월을 온전한 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빚어낸 분열증상의 결과물이다.  

"그 친구가 제게, 백만 원을 주면서 이 영화를 꼭 만들어 달라 당부했거든요."

영화 마지막 자막, 이 영화를 헌정한다고 언급했던 친구의 사연을 감독은 회한에 젖은 어조로 들려주었다. 첫 제작비용 백만 원을 대줬던 친구라고 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로 함께 5.18을 경험한 그는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갖게 된 친구에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 백만 원을 쥐어주며 꼭 '5.18영화'를 만들어 달라 당부했다고 한다. 친구의 부탁은 결국 유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친구는 불의의 사고로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종자돈 백만 원의 우정이 오늘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다. 감독은 첫 시사회의 감격을 줄곧 지금은 가고 없는, 백만 원을 쥐어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꼭 완성하라고 당부했다던 친구의 유훈을 떠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김꽃비, 김부선, 이한위 등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다. 점점 문화예술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일회적으로 신드롬화 되어 가고 있는 예술시장에서 이 영화의 소박한 매력과 진정성을 관객들이 간파해주길 바라본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5.18광주민중항쟁 38주년에 즈음하여 개봉하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8년의 5월 추모분위기를 계승할 가장 시의적절한 콘텐츠라 확신한다. 올봄, 스크린에서 재개될 세기의 영혼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여 진혼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 결혼행진곡으로 제창되는 감동적인 출정식을 함께 하길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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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종전선언은 남북미 합의 이뤄져야 성공”

아베 일 총리,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일 정상회담 시사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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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4  18: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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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해 협의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종전 선언은 남북만의 대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남북미 3자 합의가 이뤄져야 성공을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4시 40분부터 40분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아베 총리와도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미 3자 만으로도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중국의 경우, 1994년 9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하면서 정전체제 관리 권한과 책임을 포기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은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물론이고 일본과 북한 두 나라 사이의 관계 정상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일북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아베 총리에게 권고했다. 

이어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될 경우 북일 대화나 북일 정상회담이 이어질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과 북한 사이에는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납치 등 여러 문제가 있으나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치면 일본과 북한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핵 문제, 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의미하며, 그럴 경우 일본과 북한 사이에서 과거 청산과 관계 정상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납치 문제’를 고리로 하여 북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실제로, 북.일 간 물밑 대화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케.모리토모 스캔들’ 수렁에 빠진 아베 총리의 낙마 여부가 변수다.  

아베 총리는 지난 17~1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고 납치된 사람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협조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기회가 닿는대로 북쪽에 납치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 때도 아베 총리의 입장을 전달하겠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이 동북아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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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 ‘남북 상설 연락사무소’ 추진한다

[단독] 판문점에 ‘남북 상설 연락사무소’ 추진한다

등록 :2018-04-25 05:01수정 :2018-04-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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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D-2
문 대통령, 회담 때 김정은에 제안
사실상 남북 대표부 첫 단계 모색
정치·군사 분야별 공동위도 구성
회담 관계자 “합의 가능성 있다”
그래픽_정희영
그래픽_정희영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열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표부 기능을 하는 남북의 상설 협의·연락사무소를 판문점에 설치해 운영하자고 제안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상설 회의체 성격을 지닌 남북 공동위원회를 정치·군사·경제 등 분야별로 구성·운용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 상황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24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쪽이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제안할 것”이라며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합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이 3일 앞으로 다가온 27일 오후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만남을 전 세계에 알릴 경기도 고양 킨텍스 프레스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통신 등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정상회담이 3일 앞으로 다가온 27일 오후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만남을 전 세계에 알릴 경기도 고양 킨텍스 프레스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통신 등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문 대통령이 이미 추진 의사를 밝힌 ‘정상회담 정례화’를 포함해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 당국 대화의 정례화·상시화·상설화 진전의 획기적 전기로 삼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른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이번 회담에서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고려해 당국 간 회의체 정비·강화 등 ‘비제재 분야’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할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했으나 ‘직통전화 운용’ 수준으로 유명무실화한 ‘판문점 연락사무소’ 합의(남북기본합의서 1장 7조)의 복원·현실화 추구다. 아울러 2005년부터 개성공단 안에 설치돼 남과 북의 당국자 등이 한 건물에서 근무하며 협의하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현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의 기능과 위상을 ‘경제’에서 ‘모든 분야’로 확대하려는 것과 같다.

 

현재 운용되는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판문점 남쪽 ‘자유의집’과 북쪽 ‘통일각’에 따로 설치돼 직통전화 운용으로 기능이 한정돼 있지만, 이번에 추진될 연락사무소는 사실상 대표부 구실을 하는 남북 공동의 상설 협의·연락 체계 및 공간의 창출을 도모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통한 소식통은 “원칙대로 하자면 서울-평양 상호 연락사무소(대표부) 개설이 좋지만, 현재 남북관계의 수준을 고려할 때 당장 가능한 방안이 아니다”라며 “당국 간 대화 상설화의 초보적 형태로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추진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할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모습은, 현재의 ‘직통전화 운용 판문점 연락 채널’보다는 2005~2010년 개성공단에 설치돼 운영된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확장판으로 이해하는 게 낫다. 남북경협협의사무소는 1층엔 통일부·경제부처·무역협회 등 15명 안팎의 남쪽 인원이, 2층엔 민경련 등에서 파견된 북쪽 인력 10여명이 상주하며 경협 관련 협의·연락 창구 구실을 해왔다. 70년 분단 역사에서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한 건물에서 일한 유일한 사례다. 이 사무소는 2010년 천안함 사태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 제재 조처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폐쇄됐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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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가시도 모자랐나, 잭나이프 무장 물고기

조홍섭 2018. 04. 24
조회수 1620 추천수 1
 
쏨뱅이류에서 발견, 뺨에 숨겨두었다 유사시 펼쳐
어른도 죽일 독가시에 추가, 동남아선 식용으로 인기
 
f1.jpg» 쏨뱅이류의 하나인 병정물고기. 왼쪽 잭나이프를 펼치고 오른쪽은 숨긴 상태이다. 미국 어류 및 파충류 학회 제공.
 
포식자가 들끓는 바다에서 살아남는 길은 최고의 방어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랜 진화과정에서 바닷물고기들은 기발한 방어 무기를 잇달아 발명했다. 위장술과 날카로운 가시, 그리고 독물 주입은 흔히 개발된 수단이다. 
 
태평양과 인도양 해안에 서식하는 쏨뱅이 무리는 특히 날카롭고 맹독성 독물로 유명하다. 쏨뱅이 목에는 1500종 가까운 물고기가 포함되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쏠배감펭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또 하나의 방어수단이 숨겨져 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바로 평상시에는 숨겨두었다가 유사시 드러내는 ‘잭나이프’다.
 
f2.jpg» 대만 어시장에서 쏨뱅이류 샘플을 찾는 연구자. 레오 스미스 제공.
 
윌리엄 레오 스미스 미국 캔자스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교수는 쏨뱅이류 어류를 연구하기 위해 대만 어시장을 뒤졌다. 새우잡이 어선의 그물에는 수많은 종류의 이 무리 물고기가 들어있었다. 연구실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자 눈 아래 뺨에 독특한 뼈가 들어있었다. 이 뼈는 등뼈가 확장된 것으로, 보통 때는 접어 두었다가 위협을 느끼면 마치 잭나이프처럼 90도 각도로 펼쳐졌다. 물고기에서 처음 발견된 방어수단이다.
 
스미스 교수는 “이런 발견이 어떻게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아마도 이 무리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두명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스미스 교수와 미국 연구자들의 이 발견은 과학저널 ‘코페이아’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이 잭나이프의 길이가 눈 지름의 0.5∼2.5배였으며 크기가 작은 종 물고기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또 어떤 종의 잭나이프는 형광을 띠기도 했다.
 
j1.jpg» 숨긴 상태의 잭나이프 모습. 레오 스미스 제공.
 
연구자들은 또 ‘눈물 칼’로 이름 붙인 쏨뱅이 무리의 잭나이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해부학적 얼개도 밝혔다. ‘눈물 칼’은 많은 아가미의 근육과 인대로 연결돼 있어 아가미를 닫는 강력한 힘으로 나이프를 펼친 뒤 골격의 홈에 고정한다.
 
스미스 교수는 잭나이프가 이미 상당히 뛰어난 기존의 방어 무기에 추가된 것이라며, 이 물고기들은 가시와 위장술, 그리고 어른도 죽일 만큼 세계 최강의 독물로 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가 나이프를 몸에 직각 방향으로 펼치면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f3.jpg» 쏨뱅이류의 한 종인 파라센트로포고 롱이스피니스. 레오 스미스 제공.
 
 
f4.jpg» 바다 밑에서 나뭇잎을 흉내 내는 쏨뱅이목 물고기 와스프피시. 레오 스미스 제공.
 
 
f.jpg»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도 등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쏨뱅이목 물고기 쏠배감펭. 크리스찬 멜퓌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는 “이 물고기를 연구하면서 쏘이지 않으려고 편집증적으로 노력했다”며 “그러나 이들은 맛있는 물고기여서 식용으로 포획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양식도 한다”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 Leo Smith, Elizabeth Everman, and Clara Richardson, Phylogeny and Taxonomy of Flatheads, Scorpionfishes, Sea Robins, and Stonefishes (Percomorpha: Scorpaeniformes) and the Evolution of the Lachrymal Saber, Copeia 106(1):94-1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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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협 회원들이 기억하는 문익환 목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24 11:01
  • 수정일
    2018/04/24 11:0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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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뻘 학생의 죽음에도 큰절
문익환 목사, 우리의 보호막이었다"

[문익환의 사람과 물건 ④] 유가협 회원들이 기억하는 문익환 목사

18.04.24 08:50l최종 업데이트 18.04.24 08:50l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거목인 '늦봄'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문익환 목사와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가 남긴 물건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민족과 민중을 위해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리고, '촛불 혁명' 이후 새로운 체제와 다시 시작된 '남북대화 국면'을 맞아 올바른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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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78)씨가 자신을 포함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그들은 자식과 형제, 배우자의 죽음을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만 했고, 가장 열렬한 '투사'가 됐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으니까요. 아들도 죽었는데 나 죽는 게 문제냐는 생각으로."

유가협 회장 장남수(77)씨는 아들 장현구를 잃고 유가협에 들어와서 23년째 활동 중이다. 장현구 열사는 경원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 추진위원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고문 수사를 받았다. 석방된 이후에도 교수와 직원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가, 1995년 12월에 분신해서 사망했다.

유가협은 1986년 12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하거나 목숨을 바친 이들의 유가족을 모아서 만든 단체다. 이들은 전두환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이어진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해 가장 앞장서서 저항했다. 1998년도부터 1999년도까지 422일간의 투쟁을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에도 '용산참사 진상규명', '세월호 참사 해결' 등에도 앞장서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가협 후원회장 문익환
▲  유가협 후원회장 문익환
ⓒ 유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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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보금자리 한울삶 대문 앞에 회원들이 함께 섰다.
▲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보금자리 한울삶 대문 앞에 회원들이 함께 섰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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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는 이곳의 초대 후원회장이었다. 당시 유가협의 간사장을 맡고 있었던 남북민간교류협의회 김승균(80) 명예이사장은 "(유가협 내에서)후원회장은 문익환 목사님이 꼭 맡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사회적인 명망도 있을 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유가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라고 전한다. 

 

심지어 후원회가 만들어진 90년 8월 당시 문 목사는 방북으로 인해 수감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문 목사를 후원회장으로 모신 이유는 그가 열사들의 죽음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도 유가족 편에서 함께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해 10월에 문 목사는 병환으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가석방됐고, 유가협에 직접 '후원회'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박래전 열사의 형이자 당시 유가협 사무장이었던,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은 유가협의 기록을 담은 책 <너의 사랑 나의 투쟁>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문익환 목사님을 후원회장으로 모시고 유가협 간판 건너편 대문 기둥에 후원회 간판을 걸었던 날도 기억납니다. 목사님이 출소하신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지요. 그때 3백 명 가까웠던 후원 회원들이 있었고, 그들이 힘을 모아서 봉고차도 사주었지요. 그런 일들이 모두 그렇게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후원회가 남아 있다면, 그리고 커졌다면 유가협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문익환 목사의 존재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터전 한울삶에 모신 고 문익환 목사의 영정 사진.
▲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터전 한울삶에 모신 고 문익환 목사의 영정 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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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는 아들의 영결식에서 처음 문익환 목사를 봤다. 문 목사는 열사 26명의 이름을 외치면서 이한열 열사를 추도했다. 그러나 당시 배씨에게는 그 외침이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자신도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연세대에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이후에 그는 유가협 활동을 하면서 수도 없이 연세대를 드나들게 된다. 문 목사와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군사정권은 이어졌고, 학생들은 계속 죽었기 때문이다.

문 목사의 모습 중 인상깊었던 것을 물으니, 배씨는 '젊은이들의 죽음을 대하는 문 목사의 태도'를 언급했다.

"젊은 학생들 분신 많이 할 때, 영안실에서 보면 (영정을 바라보고) 큰절을 두 번 하세요. 처음엔 깜짝 놀라서 '목사님 왜 그러세요' 이랬는데, 목사님이 '오늘은 이 사람들(열사)이 당신네 윗사람입니다' 이러시는 거예요. 손자뻘 되는 사람들에게, 종교를 뛰어넘어  절을 올린 거죠.

우리(유가협 회원)들도 분향소에 가면 목만 숙여서 인사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절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죠. 믿음을 뛰어넘은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문 목사는 박종민김세진·이동수·홍기일·박선영·김성애 등의 열사들을 자신의 시를 통해 추모했고, 장례식의 조사를 쓰고 읽기도 했다. 열사들에 대한 존경심과 안타까움이 남다른 이였던만큼, 유가족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 이사장은 문 목사가 교도소에서 영치금을 모아 출소하면서 전달할 만큼 각별하게 유가협을 아꼈다고 강조했다.

"영치금을 모아서 저희에게 주시는데... 죄송스러웠어요. 물질적인 부분을 원해서 후원회장으로 모신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물질적인 도움도 주시니까 감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웠습니다. 말할 수 없게 감사하죠."

이어 배씨는 유가협 활동에서 문 목사의 역할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상황에서, 문 목사는 유가협이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일종의 '보호막'이 됐다는 것이다.

"정권도 함부로 못하는 분이잖아요. 명망도 있으시고 위엄도 있고. 그분은 후원회장으로서 저희의 보호막이었어요. 당시에 정부는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망자들을 좌경, 용공, 빨갱이로 취급했어요. 유족들도 감시당했고요. 그런데 문 목사님이 우리를 인정하고 이끌어 나가주신 게 고마운 거예요. 다른 분들은 사실 저희를 만나기조차 꺼려하던 시절이었어요. 심지어 유가협 회원의 형제들이 '자식 죽었으면 그만이지, 가족까지 망치려고 하느냐' 그러기도 했다니까요. 그러니 목사님을 존경할 수 밖에요."

그는 목사님의 대담함에 큰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가협 회원들이 가슴에 담아둔 말들을, 문 목사님이 장소도 가리지 않고 속 시원하게 말하면서, 유가족들의 '통'도 커졌다는 것이다. 배씨는 "정신적 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가협 회원들의 상실감이 굉장히 컸다고 한다. 구술작가 송기역이 기록한 박정기(박종철 열사 아버지)씨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유가족들의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94년 1월18일 유가협 회원들이 유일하게 의지해 온 어른 문익환 목사가 일흔여섯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소식을 들은 박정기는 유가족들과 함께 한일병원으로 달려갔다. 모두 망연자실 주저앉아 흐느꼈다. 박정기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온몸을 떨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했다. 옆에 있던 박채영이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학로에서 열린 노제엔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늦봄을 추모했다. 문익환은 박종철의 가묘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었다." - 2012년 4월 16일자 <한겨레> 29면 인용

유가협은 이들의 보금자리인 '한울삶'에 문 목사의 영정을 열사들과 함께 모시고 있다. 문 목사에 대한 유가협의 존경심과 신뢰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동시에 문 목사의 아내이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공동의장이었던 박용길 장로가 유가협 회원이 됐고, 박 장로가 문익환 목사의 역할을 이어간다. 

장씨는 박 장로에 대해 "민가협은 의장이었고, 유가협은 회원이셨는데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통일에 관한 강연이나 발언을 하시고, 어딜 가든 문 목사님이 해오던 역할을 하셨다"며 "매사 공정하고 자기보다도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자였다"고 강조했다.

촛불의 시대, 민주화 운동가들을 기억하는 법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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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에게는 암흑기였던 9년의 세월이 흘러 '촛불 정부'가 들어섰고, <1987>을 통해 이한열, 박종철 열사가 재조명됐다. 배씨는 정권을 바꾼 촛불시위를 보면서 문 목사와 함께 민주화 시위를 나갔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데모 현장에서도 항상 두루마리를 입고 앞에서 리드를 하시는 목사님을 따라갔어요. 경찰이 최루탄 던지면 골목길로 도망쳤어요. 그땐 염치고 뭐고 일단 숨어야 돼요. 그러다가 잠잠해지고 다시 만나면 '또 만났네'라며 반갑게 맞아주시곤 했어요. 이번 촛불 때도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어요. 여기에 최루탄을 터트리면 사람들은 어디로 피할 것인가. 피하다 보면 사고도 날 거고요. 그런데 촛불이 번지면서 승리를 했잖아요. 기뻐서 울었어요. 그때도 최루탄을 안 썼으면 이한열이라도 안 죽었을 거 아니에요. 슬퍼서도 울었고요."

<1987> 이야기가 꺼냈더니 배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보셨냐'고 물었더니 "아직 안 봤다"고 답했다. 

"이런 영화를 한번 또 만들고 싶다고 제안이 오면 난 그때는 못 만들게 하려고요. 안 보긴 했지만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애미가 눈을 뜨고 보는, 그런 나 자신이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1987>이야기만 하면  간이 벌렁벌렁해지고 정신이 없어져요. 부끄러워요. 자식이 죽어갔는데 애미는 밥을 먹고 살까 그렇게 볼 것 같아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들이 그때 일을 잘 모르잖아요. 나는 괴롭지만 이 시대의 이야기를 알린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고마운 거죠. 반반이에요. 괴로운 것을 초월해야 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전하는 거니까 고맙기도 하고요. 마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 경원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운동을 하다가 숨진 장원구 열사의 아버지다. 95년 12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유가협 활동을 하고 있다.
▲  장남수 유가협 회장. 경원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운동을 하다가 숨진 장원구 열사의 아버지다. 95년 12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유가협 활동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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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민주화 과정에서 두 사람만이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런 과정을 겪었다. 독재정권의 공작이 성공해서 알려지지도 못하고 의문사로 죽은 사람이 많다"며 계속해서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장씨는 민주화운동 묘역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천에 만들어진 '민주화운동 기념공원'과 묘역은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법률 등에 따라서 만든 것이지만, 다수 유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것이라 반쪽짜리 묘역이다. 실제로 희생자 136명 중 49명만이 안장됐다. 원래 묘역은 수유리 쪽에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김 이사장도 "하루빨리 열사들을 귀한 자리에 잘 모시고 싶다. 서울권에 묘역을 재조성해주길 바란다"며 정부에 당부했다. 이에 관해 배씨도 "대통령께도 건의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유가협 회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배씨는 "이럴 때 한마디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다시 문익환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곤경에 처해있을 때 목사님이 계시면 한 말씀 해주실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아서, 돌아가신 게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어쨌든 이소선 어머님마저 없으니까 정말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오늘 이렇게 목사님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좋네요."

문익환 목사가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들의 가장 든든한 '빽'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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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배 터뜨리고 죽는 ‘자폭 개미’가 있다

조홍섭 2018. 04. 23
조회수 1539 추천수 1
 
일개미는 배 수축한 뒤 독물 뿜어 적 물리치고
병정개미는 마개 모양 머리로 바리케이드 친다
 
a1.jpg» 작은 폭발개미 3마리가 침입자인 베짜기개미를 공격하고 있다. 맨 오른쪽 개미는 폭발 직전으로 노란 독액이 흘러 나오고 있다.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동남아 보르네오의 열대림에는 높이가 60m에 이르는 큰 나무가 서로 이어져 수관 생태계를 이룬다. 나뭇잎으로 이뤄진 이 공중 생태계의 지배자는 개미이다. ‘폭발 개미’로 알려진 이 개미는 적갈색의 작고 평범한 모습이다. 커다란 턱이나, 침, 개미산 방출 등 다른 개미에서 흔히 보는 방어 무기가 없다. 그러나 이 개미는 이름 그대로 자신의 몸을 폭발시키는 놀라운 방어 무기를 보유한다.
 
이 개미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16년으로 100년도 더 전이지만, 최근에야 정확한 분류와 생태가 밝혀지고 있다. 앨리스 래시니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곤충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최근의 현장 연구 결과, 이 개미가 모두 15종으로 이뤄졌으며 이 무리의 모델 종인 ‘콜로봅시스 엑스플로덴스’를 신종으로 과학저널 ‘주키스’ 20일 치에 보고했다.
 
ALEXEY KOPCHINSKIY_02-exploding-ants-Weaver-with-YG-02.adapt.1190.1-1.jpg» 커다란 베짜기개미를 공격해 배가 쭈그러든 채 죽은 폭발개미.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이 신종 개미는 높은 나무의 죽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만들고 수천 마리가 나뭇잎과 나무줄기 위를 활발하게 돌아다닌다. 작은 일개미가 주로 이 일을 하는데, 잎 표면의 불순물이나 벌레 등을 제거하는 ‘청소 활동’과 나무줄기 위에 돋아난 이끼나 지의류 등을 턱으로 뜯는 활동에 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 개미는 다른 종의 개미나 절지동물 등의 침입자를 만나면 꽁무니를 수직으로 들어올려 경고 신호를 보낸다. 만일 경고가 듣지 않으면 들러붙어 물어뜯고 여의치 않으면 비장의 자폭 공격을 감행한다. 상대방을 향해 치켜든 배를 강하게 수축해 터뜨린다. 뱃속에서는 밝은 노란색의 끈적끈적하고 유독성인 액체가 튀어나와 상대방을 죽이거나 물리친다. 물론 배가 터진 일개미도 목숨을 잃는다. 이번 연구에서 방출하는 독성물질의 성분 등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연구자들은 턱 샘에서 만드는 이 찐득한 분비물에서 카레 비슷한 자극적 냄새가 났다고 밝혔다.
 
a3.jpg» 침입자에게 꽁무니를 하늘로 쳐들어 경고 신호를 보내는 폭발개미.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기 무리를 지키는 행동은 흰개미나 꿀벌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흰개미나 꿀벌이 둥지를 지키려는 집단 방어 과정에서 자기희생을 한다면, 폭발 개미는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개별적으로 먹이활동을 하다가 상대방과 1대 1로 맞설 때도 자폭 공격을 하는 점이 다르다고 연구자들은 빈 자연사박물관 누리집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아마도 폭발 개미는 나뭇잎에 형성되는 미생물 군집 같은 먹이 자원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로부터 영역을 지키는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
 
a4.jpg» 폭발개미 가운데 둥지 안에서 주로 지내는 병정개미. 머리로 굴의 들머리를 막아 침입자를 물리친다.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한편,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개미의 병정개미는 머리 모양이 마개 모양이어서 눈길을 끈다. 연구자들은 이 덩치 큰 개미가 머리를 바리케이드로 이용해 둥지로 들어오는 적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aciny A, Zettel H, Kopchinskiy A, Pretzer C, Pal A, Salim KA, Rahimi MJ, Hoenigsberger M, Lim L, Jaitrong W, Druzhinina IS (2018) Colobopsis explodens, model species for studies on “exploding ants” (Hymenoptera, Formicidae), with biological notes and first illustrations of males of the Colobopsis cylindrica group. ZooKeys 751: 1–40. https://doi.org/10.3897/zookeys.751.2266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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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끝내 사드기지 공사장비 반입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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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4/24 08:30
  • 수정일
    2018/04/24 08: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방부, 끝내 사드기지 공사장비 반입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4/23 [21: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국방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사드 공사장비 반입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사진 :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 편집국

 

23일 군 당국이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 공사 장비 반입을 강행했다국방부는 공사 장비 반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경찰의 협조를 통해 진입로를 확보하고 공사용 자재와 장비 덤프트럭 등 차량 22대를 반입했다.

 

경찰은 오전 8시 16분부터 3,0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22일부터 농성중이던 주민들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 200여명에 대한 강제해산 작전에 돌입했다이 과정에서 주민 28명이 응급 후송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주민들과 사드 반대단체 회원들은 22일 오후부터 사드 공사 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 밤샘농성을 벌였다이들은 PVC 파이프 안으로 손을 넣어 연결한 후그물을 덮은 채 인간사슬을 만들어 완강하게 저항했다.

 

▲ 차량과 PVC파이프 등으로 인간사슬을 만들어 저항하고 있는 주민들. (사진 :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 편집국

 

하지만 경찰은 커터칼 등의 장비로 그물을 끊고견인차 등을 이용해 다리를 막고 있던 차를 제거하며 끝내 주민들을 해산시켰다.

 

소성리 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 등 사드철회 평화회의는 입장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종전협정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있다북핵 핑계는 사라졌다며 사드 부지공사를 한다는 것은 미군 생활환경을 안정시켜 어떻게 해서든 사드를 완전배치 시키겠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의심은 너무나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앞으로 2개월간 진행되는 장마철 전 지붕누수공사와 화장실문제 해결을 위한 오폐수공사를 먼저 한 후 나머지 공사는 북미상황회담 이후 다시 대화하자는 합리적 제안을 했다며하지만 국방부는 이마저도 거절 하였고수천의 경찰을 동원하여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해 오늘의 유혈사태를 조장하였다고 규탄했다.

 

▲ 경찰의 강제해산 후 이후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주민들과 사드배치 반대 단체 회원들. (사진 : 사드저지 전국행동)     © 편집국

 

사드철회 평화회의는 한미장병들을 위한 복지개선공사가 아니라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한 사드부지공사라며 앞으로 있을 3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매일 공사인부 출근 및 공사자재 출입저지를 통해 평화정세에 역행하는 사드를 못 박기 하려는 불순한 기도를 철저히 막아 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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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동원하여 불법 부당한 사드 운영 위한 공사 강행에 대한 입장문

 

1. 국방부는 결국 사드를 완전 배치를 위한 망치질을 했다그 무리한 망치질에 결국 주민들이 28명이 응급 후송되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병원으로 후송되었다소성리 80-90대 할머니들과 600일 넘게 평화촛불을 치켜든 김천 시민들진밭교에서 409일째 평화의 기도를 올린 원불교마저 짓밟았다이러한 피해는 물론 하늘과 땅을 울린 피울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2.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그의 일환으로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폐쇄했다남북정상회담에서는 종전협정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있다북핵 핑계는 사라졌다지난 70여년 간 적으로 간주해온 북도 평화를 원하는 이 마당에 동북아 신냉전을 불러올 사드 운영을 위한 공사를 하겠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사드 부지공사를 한다는 것은 미군 생활환경을 안정시켜 어떻게 해서든 사드를 완전배치 시키겠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의심은 너무나 합당하다.

 

3. 우리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 의한 불법공사이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앞으로 2개월간 진행되는 장마철 전 지붕누수공사와 화장실문제 해결을 위한 오폐수공사를 먼저 한 후 나머지 공사는 북미상황회담 이후 다시 대화하자는 합리적 제안을 했으나국방부는 이마저도 거절 하였고수천의 경찰을 동원하여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해 오늘의 유혈사태를 조장하였다.

 

4. 거기에 더해 경찰은 난데없이 나타난 수구단체와의 충돌을 막는 다는 명분으로 3일간 수백의 경찰을 소성리에 주둔시켰고극우보수 수구단체의 집회가 끝나자마자 창끝을 소성리 할머니김천주민원불교 교무와 교도들에게 돌려 토끼몰이식 진압을 하였다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우리는 이번 수구단체 망동의 배후에 국방부 또는 경찰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5. 오늘의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부지공사강행으로 명확해졌다이는 한미장병들을 위한 복지개선공사가 아니라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한 사드부지공사였음이 명확해 졌다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있을 3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매일 공사인부 출근 및 공사자재 출입저지를 통해 평화정세에 역행하는 사드를 못 박기 하려는 불순한 기도를 철저히 막아 낼 것이다.

 

6. 오늘의 유혈사태는 물론 앞으로 발생할 모든 상황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현 정부(국방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

 

사드철회 평화회의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사드배치저지부울경대책위원회(),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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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서양미술사> 4권을 완간한 미학자 진중권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서양미술사> 4권을 완간한 미학자 진중권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 편>은 2008년 나왔다. 미술사 강의 때 쓸 적절한 교재가 없어 시작한 가벼운 프로젝트였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어떤 경우는 낡고, 시점도 간단했다.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3편으로 끝을 내려다 다시 ‘인상주의 편’을 써 최근 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4권 완간을 두고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 10년 만에 서양미술의 지도를 완성하다’라고 선전한다. 미학과 미술사를 넘나들며 서양미술의 역사와 원리를 한 번에 묶어낸 책이라고도 했다. 

저자에게 완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 19일 휴머니스트에서 진중권을 만났다. 완간 의미를 묻기 전에 최근 시사 이야기를 꺼냈다. 논객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는 그는 드루킹 사건과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 사건을 두고 독설을 날렸다. 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 진중권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자신을 ‘글 쓰는 사람’으로 규정한 진중권은 집필 중이거나 계획중인 ‘철학 오디세이’와 ‘미학사’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 연락처에 016 번호이길래, 지금도 쓰나 했어요. 혹시나 전화했더니 받으셨고요.

“고장이 안 나서요. 2G폰 써요. 슬라이드 폰요. 한 10년 됐어요.”

 

- 스마트폰 안 쓰나요. 

“통화가 되는데 왜 바꿔요. 그 점에서는 보수적이라서 늘 쓰던 거 쓰고, 늘 입던 거 입고, 늘 먹던 거 먹어요. 스마트폰은 없어도 아이패드가 있어요. 논문 PDF 다운을 많이 받아요. 위키피디아 볼 때도 아이패드가 편하죠. 카톡, 그거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웃음)” 

-SNS는 안 하는 듯하던데요. 

“트위터는 팔로워 86만 가고 접었어요. 페이스북은 옛날에 했는데 사적으로만 했죠. 페북 친구는 외국인으로, 그것도 열댓 명밖에 안 돼요.” 

- 책이나 강연으로만 발언하는 거네요. 

“<외부자> 나가서도 하니까요. 그것도 솔직히 지겨워요.(웃음) 한 이야기하고 또 하고요. 게다가 요즘은 온통 음모론자들이잖아요. 김어준, 드루킹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도 민주당도 바른미래당도 다 음모론에 빠져 있어요.” 

- 시사 문제는 나중에 조금 물어볼까 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니. 드루킹 사건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생각해 봅시다. 파주의 ‘산채’라는 곳에 모인 수십 명의 오타쿠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전형적인 음모론이죠. 그 사람들이 댓글 조작을 해야 얼마나 하겠어요. 하루에 쏟아지는 수천, 수만 개의 기사 중 몇 개를 하겠어요? 연구에 따르면 포털에 들어가 댓글 놀이하는 이들은 전체 누리꾼 중 0.0006%에 불과해서, 올라오는 모든 댓글을 약 3,000여명이 작성한다잖아요. 그걸 ‘여론’이라 부릅니까? 다른 연구에 따르면 댓글 보고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 사람은 없대요. 결국 조그만 찻잔 안에서 휘젓기 놀이하면서 찻잔 밖의 세계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과대망상이죠. 어느 사회에나 드루킹 같은 이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의 음모로 세상을 바꾸려 드는 정신병자들. 그 반대편에는 그 망상을 진지하게 믿어주는 김어준 같은 이들이 있죠. 눈에 뵈지 않는 소수의 조작으로 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니 색출하자. 뭐, 이런 황당한 음모론을 방송에 대고 떠들어대니, 세상에, 그걸 또 민주당에서 받아요. 그래서 경찰에 고발을 하고, 결국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죠. 2012년 총선은 김용민이 말아먹더니. 올해 지방선거는 정봉주-김어준이 말아먹게 생겼네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반대편에서 음모론에 가담합니다. 조선일보에서는 드루킹의 조작으로 대선결과가 바뀌었다는 투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나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후보 역시 자기들이 드루킹 때문에 정권을 놓쳤다며, 대선이 무효라 주장하잖아요. 다들 음모론에 환장했어요. 헷갈리면 일단 큰 그림부터 보면 됩니다. 첫째, 민주당에서는 불법적으로 댓글부대를 만들어 운용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잖아도 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이버전사 역할을 하겠다는 열성적 지지자들로 차고 넘치니까요. 둘째, 이번 수사는 민주당 측의 고발로 시작된 겁니다. 드루킹이 민주당이나 문 캠프에서 관리하던 댓글부대라면, 뭐 하러 경찰한테 그 실체를 밝혀달라고 하겠습니까? 이것만 봐도 사건의 성격은 분명해집니다. 민주당이나 문캠프에서 지난 대선에서 불법 댓글부대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려면, 일단 이 두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수언론이나 보수정당은 이 기초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없이 의혹을 뻥튀기 해 음모론만 펼치고 있지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항의 방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항의 방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봉주 전 의원 사건 두고도 언론기고를 두차례 하셨는데, (정 전 의원) 팬들도 많고, 같이 방송도 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거짓말 할 줄 몰랐거든요. (정 전 의원 서울시장) 출마 전날 홍보영상 찍어줬거든요. 그다음 날 일이 터졌는데, 이틀 시간 두고 보겠다고 해서 정리 잘할 거라 봤는데, 갑자기 기자회견 열어서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화가 났죠. 믿었는데. (정 전 의원에게) 문자를 보냈죠. ‘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마초들과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때 적반하장으로 피해자한테 2차 가해를 하고, 프레시안과 같은 진보언론에 이지메를 가했잖아요.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비판한 거고요.”

- 최근 다시 모두 까기로 돌아가신 듯한데, 모두 까는 기준 잣대가 무엇인지요.

“생각해보세요.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서 피해자 편 드는 건 당연하잖아요. 정 전 의원과 팬들은 변명을 하는 게 아니라 외려 피해자를 공격했습니다. 뽀뽀할 수도 있지 하는 식으로. ‘키스 미수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너도 정봉주 의원에게 키스 미수 당하면 기분 좋겠냐고 묻고 싶어요. 한경오프를 공격하는 것도 그래요. 조중동도 아니고, 진보언론도 아니고, 오직 나꼼수만 믿겠다는 거죠. 이 ‘꼼진리교’가 대중의 의식을 현저히 왜곡시켰어요. 상황이 2012년보다 더 나빠요. 그때는 사실이 아닌 거로 드러나면 수긍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수긍도 안 해요. 그냥 종교가 된 거죠.”

- 미투운동은 어떻게 보시나요. 

“미투는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늘 가해자이니까요. 가슴으로 잘 못 느끼죠. 고작 키스 한 번에 정치 인생 날리는 건 너무하는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가슴으로 못 느끼면 머리로 생각이라도 해야죠. 여성이 해방되어야 남성이 해방돼요. 지금 학교에서 A받고, 이런저런 시험에서 우수 성적자들이 다 여자잖아요. 성실하고. 우수한 자원들 쓰면 경제도 좋아지죠.”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서양미술사>‘인상주의’ 편으로 총 4권 완간하셨는데요. 완간 의미 짚어 주신다면요. 10년 걸렸는데. 

“미술사 책은 잰슨 것이나 곰브리치 것이 나와 있죠. 많은 경우 (기존) 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그 많은 화가들 이름이나 유파들 기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 버려요. 그래서 그런 책을 읽기 전에 뭔가 ‘지도’의 역할을 해 줄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사에 골격을 세운다고 할까요? 골격만 서 있으면 피와 살을 붙이는 것은 독자 스스로 할 수가 있지요. 그럴 목적으로 세 권(‘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을 썼는데, 모더니즘 편을 강의하다 보니까,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데 뭔가 비어 있는 거예요. 모더니즘에 들어가기 전에 서너 시간은 인상주의 등 19세기 후반 미술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럴 바에야 아예 한 권을 더 쓰자고 해서 인상주의 편을 쓰게 됐죠.”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 서양미술사는 더 쓰실 계획은 없나요? 

“그러면 정말 본격적인 미술사가 되어버린다는 거죠. 그건 제 의도도, 제 전공도 아니고요. 기존 미술사는 모든 걸 다 다루다 보니 보통사람이 들어가면 길을 잃어요. 저는 미학 전공이니, 미학적 관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흐름을 잡아가게 해주는 거죠. 일종의 입문서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마냥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제 서양미술사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져요. 처음 ‘고전예술 편’은 쉽고, ‘인상주의 편’은 쉽되 그보다는 어렵고, 다음, ‘모더니즘 편’은 조금 어렵고, 마지막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은 많이 어렵습니다. 난이도가 1에서 2,3,4등급으로 올라가죠. 그래도 갈수록 용어가 익숙해지니까, 깊은 내용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 편’ 중 ‘나가며’를 읽으니 모더니즘 편 안내를 해놓았는데, 안 보신 분들이 본다면 시대순으로 읽어야 하겠네요. 

“그렇죠. 인상주의 편은 두 번째로, 역사 순서대로 읽으면 돼요. 그게 난이도의 순서이기도 하니까요.” 

- 한국에서 인상주의는 왜 인기가 많을까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현대 예술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예술에서 기대하는 건 ‘감각적 쾌감’입니다. ‘예쁜 것’을 좋아하고, 정서적 감동을 원하죠. 그런데 현대 예술은 그것을 파괴합니다. 지성적 쇼크를 충격을 준단 말이죠.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죠. 사람들은 감동받고, 작가와 소통하길 원하는데 현대 예술가들은 소통 자체를 거부해요. ‘당신 스스로 머리로 생각하라’고 하죠. 소통은 코드가 같아야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현대 예술은 엘리트주의에요. 그러니까 ‘네가 머리를 썩여서 내 코드를 이해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거야’. 이러니까 대중에게 재수가 없을 수도 있죠. (고전주의 같은) 옛것들은 대중에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죠. 제일 만만한 게 모던의 삶을 다룬 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겠지요. 대중들에게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 하면, 아마 대부분 고흐를 꼽을 겁니다. 세잔만 해도 사실 대중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죠.” 

- 인상주의 화가 중 누구를 좋아하나요. 

“인상주의 자체를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실은 후기인상주의의 세잔을 좋아해요. 그밖에 미술사에서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고야를 꼽고 싶습니다. 그의 ‘pinturas negras’(검은 그림들)은 매우 철학적으로 깊어요. 화가들 중에서 뭐랄까, 심연처럼 깊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고야이고, 또 하나가 세잔이에요. 전체 화가 중 하나만 뽑으라면 세잔을 뽑아요. 예쁘기만 한 그림은 별로 안 좋아하고, 값싼 감동도 혐오하는 편이라서요. 저는 이지적인 게 좋아요. 예술가의 고뇌 같은 말도 안 되는, 레토릭도 혐오하고요.” 

고야,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0㎝X43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검은 그림들’ 중 하나다.

고야,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0㎝X43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검은 그림들’ 중 하나다.

- 세잔은 좀 의외인데요. 현대미술가를 좋아할 듯했습니다. 

“세잔이 바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니까요. 세잔은 파고 파도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모든 사람이 원근법을 다 믿었잖아요.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사람이죠. 눈에 보이는 것이 원근법적 재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냈죠.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원근법적 재현만이 현실에 대해 유일하게 올바른 묘사라고 봤습니다. 원근법은 고정된 하나의 눈에 비친 장면을 평면에 옮겨놓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우린 사물을 두 눈으로, 안구를 움직여 시점을 바꿔가며 보죠. 망막도 구면으로 되어 있고요. 실제의 지각의 과정은 광학적이 아니라 뇌과학적이에요. 그때그때 시점과 초점과 위치를 바꿔가며 지각한 파편들을 뇌 속에서 하나의 전체상으로 종합하는 거죠. 그런데 그 옛날에 아무런 뇌과학적 지식 없이도 오로지 자기 감각에만 의지해서,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원근법적 재현과는 다르다고 말한 이가 세잔이에요.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을 갖춘 사람인 거죠. 메를로퐁티가 이 주제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세잔은 원근법적 재현이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세계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는데, 메를로퐁티가 이를 ‘체험적 원근법’이라 불렀죠. 사진을 찍으면 원근법 하고 일치합니다. 사진에 시각을 비유들 하죠. 하지만 우리 눈은 세상을 사진처럼 보지 않아요. 세잔은 그걸 감각으로 깨달은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의 시각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360도로 회전시킬 때가 있지요. 그때 화면에서는 나는 가만히 있고,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서 360도 돌아보세요. 그럼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도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하죠. 앞의 것은 시각적-광학적 지각이라면, 뒤의 것은 촉각적-뇌과학적 지각이라 할 수 있지요. 세잔은 바로 그 차이를 느낀 거죠.” 

세잔의 ‘벌거벗은 동자상이 있는 정물’(1895). 진중권은 세잔이 다시점을 도입해 묘사한 3차원 공간은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도저히 19세기 제작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세잔의 ‘벌거벗은 동자상이 있는 정물’(1895). 진중권은 세잔이 다시점을 도입해 묘사한 3차원 공간은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도저히 19세기 제작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미술사 중 어느 시기를 제일 좋아하시나요. 

“저는 모더니즘이에요. 예술의 정점이었다고 봐요. 제일 재미있고요,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방가르드였죠. 미학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가 하나가 된 것이 모더니즘 시기이고요. 미술사의 영웅적이고 혁명적 시기죠. 물론 앤디워홀도 혁명적이기는 하나, 어딘지 체제 순응적이잖아요. 솔직히 워홀 이후의 미술사는 조금 재미없어요.” 

- 서양미술사는 처음 어떻게 쓰신 건가요? 

“그저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미술사를 강의하는데 적절한 교재가 없었고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어떤 경우엔 시점이 너무 오래됐고. 강의안으로 쓴 것인데, 10년에 걸쳐 쓰게 됐네요.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고요.” 

- 출판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학오디세이>는 모두 50만 부 넘었다고 하더군요. <서양미술사> 3권은 9만 정도고요. 상대적으로 적은데, 선생님 책이나 다른 분들의 책이나 미술책이나 인문책이 예전보다 판매량이 많이 줄었는데요.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변한 것이죠. 지금 팟캐스트 같은 게 흥하는 이유가, 예전 정보를 눈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는 거죠. 바로 사운드와 이미지죠. 거꾸로 팟캐스트에서 방송한 콘텐츠가 책이 되어 나오고요.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의 종언’인 거죠. 이 몰락은 필연적인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문학 책 읽는 사람은 중세 수도승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미디어 철학자가 빌렘 플루세르가 ‘디지털 시대에 순수 인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집단은 일종의 수도원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거든요. 전 (텍스트의 몰락에) 안타까움은 갖고 있지 않아요. 수익도 이제는 책에서 나오는 것보다 강연이나 다른 데서 나오는 게 훨씬 많아요. 채널이 달라진 거죠. 강연이나 팟캐스트 쪽으로요. 다만 그 강연이나 팟캐스트 역시 바탕에 텍스트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문자문화 이전으로 퇴행하게 되죠. 디지털문화는 문자문화 이후의 영상문화, 문자문화보다 진화한 영상문화입니다. 여기서 텍스트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뿐이죠.”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 여기저기 강의를 많이 하는데요. 

“1주일에 한 번꼴로 해요.” 

- 수익 때문인가요. 

“그럼요.(웃음) 인문학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걸로 하진 않아요.”

- 강연 중엔 ‘미학으로 본 새로운 사회’ 강연 타이틀이 있던데, 그 새로운 사회는 뭔가요?

“그건 주최측에서 대충 정한 거예요. (웃음) 특정한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저를 보자고 하는 겁니다. 제목은 저렇게 대강 붙여 놓고 원하는 거 해주세요. 이런 거죠. 그래서 제목이 넓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강연과 할 수 없는 강연이 있잖아요. 제목을 좁혀서 요청을 해오면 제가 감당이 안 돼 거절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목은 넓게 붙여놓고, 강연 오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만 알려주고 알아서 거기 맞춰 해달라고 하세요. 앞뒤 (다른 강연자들의) 강연제목을 보고, 거기에 맞추어 준비를 해가죠. 르네상스 미술사, 현대미술사, 디지털 이미지의 미학, 미디어 이론 등등 뭐든 준비는 다 돼 있어요.” 

-네이버 파워라이트 on 에 ‘진중권의 철학 오디세이’를 최근 시작했는데요.

“지금 연재하는 철학 오디세이를 갖고 철학책을 쓰려고 해요. 논리 흐름을 정리 중이에요. 연재가 완료되면, 기획을 둘로 나눠 하나는 각주를 붙인 본격적인 철학사 책으로 구성하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대중을 위한 입문서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쉬우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써야겠죠. 제대로 된 철학사와 대중용 철학책 두 권을 낼 겁니다. 지금은 리딩을 하면서 논리의 흐름을 잡는 단계입니다.” 

-지금 4회 나갔던데, 목차만 1회 원고량 보면 꽤 방대할 것 같은데요.

“할 수 없지요. 이번에 나가미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후의 철학적 발전의 흐름을 잡아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서술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요.” 

-철학책 집필 계기는 뭔가요. 

“미학이 철학의 한 부분이니까요. 예전부터 쓰려고 했어요. 미학사도 하나 써야 하는데, 그 작업은 몇 년째 중단된 상태고요. 시간이 안 나요. 철학부터 정리하려고요.”

-저술가인가요, 방송인인가요, 아니면 논객인가요? 스스로 규정하면요.

“방송은 돈 때문에 하는 것이고, 돈 안 주면 안 하죠.(웃음) 전 글 쓰는 사람이죠.”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2017.01.01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2017.01.01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올해 출간 20주년으로 아는데요. 개정판이나 기념판은 염두에 두는지요? <미학오디세이>와 더불어 오늘의 진중권을 잊게 한 책인데요.

“그건 버리는 책입니다. 그때그때 일시적으로만 유효한 책들이 있는 거죠. 1997년 막 박정희 신화가 일어나고 있었을 때죠. 그걸 제압하려고 썼는데, 결국 실패해 박근혜가 대통령 된 사태가 벌어진 거죠. 재밌는 게 그 때 책을 쓴 계기를 제공한 것이 류철균씨였거든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박정희 소설(<인간의 길>)도 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소동의 최종결과가 가히 예술이네요. 바로 그것 때문에 결국 감방에 갔잖아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문체가 놀이체잖아요. 인터넷 체죠.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그때 인터넷 체 쓰는 사람으로 또 누가 있었냐면, 바로 딴지일보의 김어준이에요. 인터넷 특성을 활용해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동일한데, 길이 달랐어요. 나 같은 경우는 놀 때에도 로고스와 에토스의 영역을 떠나지 않으려 했죠. 이성과 윤리요. 그런데 저 친구(김어준)는 전적으로 뮈토스, 이야기 취향이에요. 신화를 만들고 음모론을 펴대니 안 맞을 수밖에 없지요. 같이 가면 좋은데 곽노현 교육감 사건 등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그가 만들었다는 3부작 다큐멘터리, 로고스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사기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렇게 음모론 팔아 장사를 해먹는 게 매우 비윤리적이라 생각하지만, 남의 신앙생활에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영화의 펀딩에 참여한 이들은 절대로 자기들이 사기 당했다고 생각 안 할 거거든요. 자기들은 그래도 좋대요. 그럼 된 겁니다. 다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로고스), 사회를 더 정의롭게(에토스) 만들어야 하는데, 음모론은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고, 진영논리로 이쪽 진영을 저쪽만큼 타락시키거든요. 그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김어준이 큰 일 한 게 있어요. 자유한국당을 지지해도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을 이쪽 진영에 묶어 놓는 거죠. 사실 나꼼수 지지하는 이들을 보면, 여성문제를 비롯해 여러 사회적 의제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과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진보와 보수가 7:3으로 나타나잖아요. 그런데 의제의 관점에서 조사를 해보면 진보와 보수가 5:5로 나뉜대요. 말하자면 보수에 있어야 할 2가 지금 진보로 넘어와 있다는 얘기죠. 거기에는 탄핵 등의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겠지만, 나꼼수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웃음)”

- 홍세화 선생은 최근 낸 책에서 공부나 생각하기를 강조하시더군요.

“요즘 세대가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보의 플랫폼이 달라졌어요. 우리는 책의 세대니까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세대는 게임의 세대라 서사적 의식을 갖고 있어요. 예전엔 역사를 창조한다고 했는데, 서사를 창작해요. 이야기도 모든 이가 믿으면 현실이 된다고 믿어요. 허구도 집단적으로 창작하면 현실이 된다는 거죠. 나꼼수가 모든 걸 설명해주잖아요. 꼼 진리교의 신도들은 논리적 정합성으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서사적 개연성만으로 신앙을 해요. 뭔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에 최소한의 개연성만 부여해주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믿어주는 거죠. 상황 전체를 봐야 하는데, 조각난 파편들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거죠. 마치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말이죠. 정봉주 건을 보세요. 자기는 두세 시 경에 홍대에 있었으므로 혐의가 없다는 얘긴데, 팬들이 그걸 믿어주잖아요. 본인의 입으로 어머니 병원에 갔다고 얘기한 시간대랑 충돌하는데도 말이죠. 이렇게 대중으로 하여금 전체를 보며 비판적 사고를 못하게 막는 게 음모론적 사고의 문제예요.”

- 지식이나 정보 양이나 유통은 예전보다 발달했는데요. 

“트위터는 그래서 접었어요. 예전엔 사람들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면 감사를 했는데, 지금은 굳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니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들에게는 틀렸다 안 틀렸다는 중요하지 않아요. 설사 정봉주의 말이 거짓이더라도 좋아, 드러나지만 않으면 돼! 이거죠. 그래야 속이 편하거든요. 자신이 믿었던 사실이 허위로 드러나면 머릿속의 신념체계를 온통 다시 구성해야 하는데, 그게 번거롭고 싫은 거죠. 대중은 나꼼수에 수동적으로 속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속아주는 겁니다. 정봉주 사건에서도 12월 23일의 알리바이를 대신 찾아주면서 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주문한 것은 대중이었습니다. 정봉주는 거기 편승한 거죠. 대중들의 바람은 정봉주가 참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더라도 들통만 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아이돌과 팬덤이 공동으로 허구를 창작하고, 그것을 집단으로 믿음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겠다는 거죠. 그게 잘못이라고 지적하면 칭찬이 아니라 욕을 먹어요. 이른바 ‘놀이 망치는 놈’(Spielverderber)이 되는 거죠. 놀이자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놀이의 상대자가 아닙니다. 적어도 상대자는 놀이를 진지하게 인정해주거든요. 정말 미운 것은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왜 하냐?’면서 놀이판 자체를 깨는 놈입니다. 그런 놈은 용서가 안 되죠. 

아무튼, 결국에는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죠? 그런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진중권은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이 물음에도 그들은 음모론적으로 대답합니다. 첫째, 저놈(진중권)에게는 남다른 혜안이 있다는 거죠. 둘째, 그놈이 소 뒷걸음치다가 쥐을 잡았다는 거죠. 그게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라는 걸 인정을 안 해요. 왜? 그래야 자신들이 멍청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자기들은 특별한 ‘통찰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혹은 로토 게임에서 재수가 좀 없었던 사람들일 뿐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해야 자신들의 멍청함을 잊고 앞으로도 계속 멍청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죠. 그들은 그 편이 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 정 전 의원 성추행 의혹 관련 두 번째 기고는 육하원칙 위주로 기사처럼 썼는데요.

“오마이뉴스에 나온 (정 전 의원 관련) 두 번째 글은 검열 당했어요. 완전 편집부에서 마사지 한 겁니다.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인두로 신문 활판의 활자를 지우듯이 편집부에서 여기저기 표현과 문장과 문단을 인두로 지워버렸더라고요. 결국 ‘오마이뉴스’ 회원에서 탈퇴했어요. 나꼼수나 정봉주 팬덤의 항의가 그렇게 무섭다는 얘기겠죠. 이른바 ‘한경오프’라 불리는 진보매체들은 규모가 작아서 거대한 팬덤이 때려대면 타격이 크죠. 그걸 알기 때문에 후원은 끊지 않았어요.”

- 정의당원이죠? 

“당원의 한 사람으로 있고요. 당원 활동으로는 1년 반 넘게 ‘노유진의 정치 카페’ 100회를 했지요. 제 기억에 정치 브리핑을 담당했던 유시민 작가는 음모론을 펴지 않았어요. 드러난 사실들을 토대로 합리적 추정을 하려고 했죠. 결코 로고스의 영역을 떠나지 않았어요. 에토스도 지켰고요. 우리는 회당 100만 다운로드가 이루어지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죠. 방송 시작 전에 점심 얻어먹은 게 전부였죠. 우리가 요구한 건 우리가 게스트들의 출연료를 올려 달라는 것 밖에 없어요.(웃음). 손님을 불렀으면 최소한의 돈은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웃음). 로고스와 에토스의 영역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다 무너진 것 같아요. 요즘은 정치 팟캐스트들이 음모론 장사, 혹은 경선 거간꾼 놀이가 되어 버린 듯해요. 같은 소리를 너무 오래 듣다 보면 세뇌가 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도 자기들을 비판하고, 진보언론도 비판한다면, 자기들에게 뭔가 잘못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세뇌당한 머리들은 자기들이 늘 옳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진보언론이 자기들을 비판하는 것은 나꼼수에 대한 열등의식 때문이라고 믿는 거죠. 증상이 어느 정도냐 하면, 심지어 손석희마저 김어준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대요. 이렇게 진보언론까지 적으로 돌려놓으면, 이제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나꼼수와 그 아류들밖에 없게 되죠. 그러면 그럴수록 정보의 편식은 심해지고, 세뇌는 더 깊어지는 거죠.” 

- 할말 하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인 듯한데요. 

“정봉주 사건 때는 그나마 금태섭 의원이 이야기했죠. 그래서 욕도 먹고요. 예전엔 인터넷 논객들의 담론 하고 대중의 세론하고 연결이 됐어요. 대중끼리 하는 이야기와 지식인들 하는 이야기가 연결된 거죠. 대중과 지식인이 서로 주고받는 게 있었는데, 어느 날 김어준이 지식인의 담론을 공격했죠. 입진보라고요. 아무튼 그의 팬덤은 ‘무학’에서 ‘통찰’이 나온다는 그의 말을 철떡 같이 믿습니다. 행여 거기에 조그만 의혹이나 이견이라도 제시하면 바로 몰매를 맞지요. 그래서 그나마 제 정신 가진 이들은 팬덤에는 점점 더 과격하고 광신적인 사람들만 남게 되죠. 그렇게 팬덤은 서서히 사이비종교로 변해가는 겁니다. 그 극단적 예가 드루킹같은 선거 브로커죠.”

작가 강형구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붉은 반 고흐’ 앞에 서 있다. 고흐는 강형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다. 강형구는 이 작품에서 고흐의 광기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2010.02.9 김종목 기자

작가 강형구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붉은 반 고흐’ 앞에 서 있다. 고흐는 강형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다. 강형구는 이 작품에서 고흐의 광기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2010.02.9 김종목 기자

- 다시 미술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 전 강형구 작가 전시 때 강 작가와 ‘하이퍼리얼리즘’에 관한 서문을 쓴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한국 현대미술도 종종 보시나요.

“제 일은 아니에요. 제가 하는 미학이론과 관련해서 관심 있는 부분만 건드려요. 강형구나 한성필 작가를 위해 글을 쓴 것은 이 분들의 작업이 ‘가상과 현실’ 같은 제가 관심을 가진 철학적 주제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죠. 그렇지 않은 경우 개별 작가들에 대한 평론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연락은 많이 오는데 안 해요. 그걸 하려면 한 작가의 논리, 작업의 역사를 다 알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고요. 가끔 전시는 보러 가요. 오프닝 할 때 보면 어디를 가도 오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동네가 참 좁다는 느낌이 들죠. 그건 그렇고 젊은 세대 중에서 글 쓰는 사람이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위기인 게 영화 쪽도 젊은 감독이 안 나오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직 386세대가 자리를 잡고 앉아 민폐를 끼치고 있는 셈인데, 사실 우리가 적폐죠. 그래도 우리 세대는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앞의 세대를 부정하면서요. 젊은 세대들이 우리를 부정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나 봐요. 그리고 조영남 사건의 경우에는, 딱히 그 분 작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현대예술 논리와 관련된 것이라서 개입한 거고요. 판사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현대예술은 작가가 오소라이제이션(authorization) 하면 작품이 되는 거예요. 화투를 제일 먼저 누가 그렸나요? 조영남이죠. 화투를 그리라고 누가 시켰나요? 조영남이죠. 화투 그림에 누가 덧칠을 했나요? 조영남이죠. 최종적으로 거기에 누가 사이을 했나요? 조영남이죠. 사람들이 화투 그림 보면 누구 작품이라 생각하나요? 조영남이죠. 그러면 그 그림은 누구 손을 거쳤든 500% 조영남의 원작이 되는 겁니다. 그게 현대미술의 논리예요. 공판 때 전문가 증인으로 나갔는데, 미술계 쪽의 증인으로 나온 화가가 ‘진중권의 말이 맞다. 다만 내가 못 받아들이는 건, 조용남이 작가라는 생각이며, 그의 그림이 작품이라는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황당했죠. 꼭 미대 나와야 작가 되나요?” 

2016년 4월 작업실의 조영남씨. 이상훈 기자

2016년 4월 작업실의 조영남씨. 이상훈 기자

-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사람들은 직접 그린 거로 알 수 있는데요.

“방송으로, 쇼로 보여줄 수도 있죠. 그게 직접 모든 걸 실행했다는 건 아니죠. 덧칠만 할 수도 있고요. 직접 그렸는지 중요한 게 아니죠,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되요. 그걸 실행시켜서 만들게 하면 되죠. 법원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그리고 미술계 사람들이 조영남을 폄훼하잖아요. 그게 재수 없어요. 폄훼하는 이들을 보면 속으로 “솔직히 당신 작품도 후져”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조영남의 작품을 후진 걸로 만든다고 자기들 작품이 좋아지는 건 아니죠. 사실 뒤샹과 워홀이 깨려한 게 바로 그 허위의식이죠. 워홀도 회화 전공이 아니라고 전시를 뉴욕이 아니라 LA에서 했어요. 미대에서 페인팅을 배운 애가 아니라는 거죠.” 

- 몇 년 전 어느 레지던시에 갔다가 유명 화가 작업실에 제자가 그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게 당연해요. 알려지려면 작품 많이 그려야 해요. 혼자 다 못해요. 어느 유명 작가는 한해에 300점을 그렸다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화랑에서도 뻔히 다 알면서도 입 닫고 있는 거죠. 아무튼 2심과 대법원에서 판결이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애초 이런 문제는 미술계에 맡겨야 합니다. 원작의 오소라이제이션 개념을 왜 판사님들이 정의하죠? 관념과 실행을 분리해놓고, 관념이 더 중요하다는 게 20세기 미술에 일어난 이른바 ‘개념적 혁명’이거든요,” 

- 천경자 화백 ‘미인도’ 표절 건은 어떻게 보셨나요. 

“천경자 그분이 돌아가셨으면 논쟁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분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살아계실 때 아니라고 했잖아요. 설혹 진짜라고 해도 작가가 오소라이제이션 안해 주면 작가 것이 아닙니다. 워홀의 경우 어느 사람이 위작을 갖고 왔는데, 거기에 사인을 해줬어요. 그러면 원작이 되는 거죠.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완성하는 화가의 이미지는 인상주의 시절 전후한 짧은 시기에 형성된 겁니다. 르네상스 때도 제자가 대신 그렸죠. 다빈치도 스승보다 잘 그려서 유명해진 거고요.”

‘미인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미술계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부터 과천관에서 ‘미인도’를 전시했다.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은 이 전시에 대해 미술관을 고소했다. 관람객들이 지난해 12월 17일 ‘미인도’를 들여다보고 있다.‘미인도’ 앞 난간은 그림을 보호하는 시설물이 아니라 과천관 계단 난간을 본뜬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 ‘상대적 상관관계 2’다.<br />김종목 기자

‘미인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미술계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부터 과천관에서 ‘미인도’를 전시했다.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은 이 전시에 대해 미술관을 고소했다. 관람객들이 지난해 12월 17일 ‘미인도’를 들여다보고 있다.‘미인도’ 앞 난간은 그림을 보호하는 시설물이 아니라 과천관 계단 난간을 본뜬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 ‘상대적 상관관계 2’다. 김종목 기자 

- ‘인상주의 편’ 서문에 고양이 루비에게 최고로 감사하다고 쓰셨는데.

“루리는 집에 있어요. 키워보면 왜 고양이가 좋은지 알게 되죠. 루비는 웬수같아요. 개는 아양도 떨고 하는데, 고양이는 철저한 에고이스트죠. 고양이에 관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갖고 책(<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도 썼죠. 여기(휴머니스트 건물) 짓기 전 개인주택이었는데 3개월 비어 있었어요. 2권 작업을 할 때죠. 아침마다 10시 전에 와서 참치 캔 먹고 가던 삼색 고양이가 있어요. 뒤샹이라고. 이 건물 들어서곤 못 만났습니다. 길냥이는 오래 살지 못해요. 지금 고양이 분양은 너무 상업적입니다. 새끼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잖아요. 동물권의 문제가 생기죠. 품종묘를 선호하는 풍습 역시 마음에 안 들어요. 인위적으로 만든 품종묘들은 종종 유전적으로 취약성을 갖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생명을 액세서리로 보는 거예요. 품종묘 개량이나 상업적 분양은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학자, 전 대학 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김영민 기자

미학자, 전 대학 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김영민 기자

- 요즘도 비행기 타시나요. 

“못 탄 지 오래됐어요. 한 2, 3년? 단양 비행장이 폐쇄되어서 제천 비행장으로 옮겼는데, 택시 타고 가야 하고, 활주로도 안 좋고 해서요. 언제 다시 탈지 모르겠어요.”

- 학교(동양대) 가실 때 차 안 가져가시나요. 

“차 없어요. 면허도 없고요. 대중교통 타고, 차야 얻어 타면 되니까 안 불편해요. 대중교통 잘 돼 있어요. 훨씬 빠르죠.” 

- 방송도 자주 나가서 글만 쓸 때보다 알아보는 분들 많을 것 같네요.

“더러 있죠. 종편도 나가니까, 나이 드신 분들 더러 알아보세요. 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에요.”

-정치 발언도 많이 하시는데 비평집이나 정치오디세이 낼 계획은 없나요.

“없어요. 원해서 낸 적도 없고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원해서 낸 것이긴 한데, 이후 칼럼집은 출판사한테 설득당해서 낸 겁니다. 칼럼은 그때그때 증발하는 거죠. 일시적인 글쓰기라 흔적을 남기는 거 자체가 부담스럽고, 애정도 없어요. 예전에 영세 출판사에서 하도 간절히 부탁하길래, 거절하지 못해 냈죠. 그 이후로는 거절했어요. 최근에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낸 적 있는데, 그건 칼럼이 아니라 한 번 강연한 걸 묶은 겁니다.” 

- 좀 전 여러 직함 중에 자신을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계획은요.

“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지금은 쓸 엄두를 못 내는데, 미학사를 계획하고 있죠. 미학의 원어인 Aesthetics는 원래 감성학이라는 뜻입니다. 재작년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감성론, 감각론에 관해 <창비>에 연재했어요. 그걸 묶어서 책으로 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정리를 못 하고 있죠. 지금 연재에 들어간 철학 오디세이는 이틀 만에 50매짜리 원고를 써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깁니다.”

-철학 오디세이 도판이 많이 들었더군요. 

“원래 그랬어요. 인터넷 세대라 그래요. <미학 오디세이>는 처음 나왔을 때 두 가지 욕을 먹었어요. 하나가 그림 많이 들어갔다는 거죠. 애들 보는 그림책이냐. 두 번째가 구어체였어요. 이게 갑자기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요즘은 가벼운 접근이 인문학의 표준처럼 되었죠. 여러 가지 ‘오디세이’들이 나왔잖아요. 제게 무슨 혜안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몇 권 더 팔아먹을 생각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게 우연히 시대와 맞아 떨어진 거죠.” 

- 책 많이 파시고, 강연도 방송도 많이 나가시는데 많이 버셨나요.(웃음)

“서울시내에 아파트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너무 비싸더라구요. 이번에 18평짜리 빌라를 하나 샀습니다. 5천 원짜리 커피도 잘 못 사먹어요. 화가 나요. 물 한 잔에 거의 한끼 밥값이라는 납득이 안 돼서.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합니다. 안락함에 빠지면 다시 못 돌아와요. 대신에 여유가 되는 한에서 맛있는 것은 많이 사 먹으려 해요.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건 한 번도 안했죠. 비트코인도 안 샀구요. 도끼란 래퍼가 하루 숙박비 몇 백만 원짜리 호텔에 살잖아요. 난 그게 맘에 들어요. 그냥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자기를 위해 쓰는 거잖아요. 그게 건물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거예요. 이 친구가 사치만 하는 거 아닙니다. 하루 5만원씩 저축도 한대요(웃음). 전 도끼 그 친구가 철학자라고 보거든요. 자기가 번 거 떳떳하게 과시하고요. 난 멋있다고 봐요. 건물주 돼서 세입자 등쳐먹고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봐요.”

래퍼 도끼(dok2)가 29일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2017 비키니코리아’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충진 기자 hot@khan.kr

래퍼 도끼(dok2)가 29일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2017 비키니코리아’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충진 기자 hot@khan.kr

- 마무리할 때인 것 같은데요. 다시 이번 ‘인상주의 편’ 소개하실 말이 있다면요.

“그림 저작권료가 안 들어가요. ‘인상주의 편’은요. 그래서 도판을 원 없이 썼습니다. (웃음) 다들 저작권이 소멸된 거라.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 쓸 때는 많이 들어갔죠. 판 찍을 때마다 내야 하고요. 피카소는 너무 오래 살아서(웃음)…. 업적은 이 사람들이 쌓은 건데, 왜 저작권료는 유족들이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당사자 죽고 10년까지면 족하지 않을까요? 인상주의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가는 가교 역할을 했거든요. 전통적인 고전예술을 붕괴시키면서요. 그러면서 아직은 현대예술은 아니고요.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던 시기의 미술이죠. 현대예술이 어떻게 태동하는가, 그 과정을 볼 수 있죠. 한편으로,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이기도 하거든요, 처음으로 현대인들의 삶을 다룬 미술이거든요. 그전이 미술은 신화, 성서, 역서 등 삶에서 동떨어진 얘기를 했었지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40728001&code=960100#csidx8b63c37ef47b72c8b8ba1365c5c4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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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레일에 올라탔다

[기고] 비핵화 구체적인 프로그램 구상할 때

 

 

 

협상을 통한 비핵화의 서막이 열렸다. 북한이 먼저 치고 나왔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 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 탄도 로케트 시험 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 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었다"고 했다. 다행히 북한이 대남, 대미협상을 단기적인 거래로 보지 않고 연속적 거래행위로 파악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외 평가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하고 있다. 요약하면, "비핵화로 가는 긍정적 신호"에서부터 "북한의 핵무기 국가 선포"까지 분석과 전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자의 시각은 북한이 미국 등으로부터 체제보장과 외교관계 수립, 경제 보상을 받으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에,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의 군사력 우위에 '경제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비대칭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북한이 핵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국제관계 이론 측면에서도 이러한 상반된 평가(conflicting assessments)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신현실주의 이론가 월츠(Kenneth Waltz)에 따르면 국가는 생존이 목표이므로 이를 위해 모든 노력(self-help)을 추구한다. 군사력을 키우거나 다른 국가들과 안보동맹을 맺어 외부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대표적인 행동이다.  

일정 정도의 핵무기를 확보하면 외부 위협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생존능력은 확보하게 되는 셈이기에 무정부 국제질서 하에서 핵무기 보유는 확실히 매력이 있는 유인요소임에 틀림없다.  

이는 물론 북한이 미국과 적대적 관계만 해소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과 상치된다. 게다가 협상 카드로서 핵무기를 만들고, 나중에 이를 포기한 국가는 아직까지 없다. 따라서 월츠는 핵무기야말로 북한으로서 국가생존에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므로 어느 나라도 북한 핵 보유를 막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반대로 저비스(Robert Jervis)는 공격에 비해 방어의 우위가 이루어진다면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가 완화되어 적대관계가 협력적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북한 입장에서 방어의 우위를 점하는 한 가지 방법은 미국과 한국이 자발적으로 군사력을 현저하게 낮추는 조치를 비핵화와 동조화하는 일이다. 

상호 협력이 북미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됨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배반'을 선택하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죄수의 딜레마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게임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북한과 미국이 배반으로 얻는 단기적 이익보다 협력을 통한 장기적 이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노동신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CIA 국장이 비밀리에 방북한 후 나온 북한의 풍계리 핵시설 폐쇄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험 발사 중지 선언은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평양에서 발신된 셈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옵션은 테이블에 있다'는 식의 협박이 아니라 파국에서 오는 불이익을 김정은에게 진지하게 이해시켰다고도 추론할 수 있다. 북·미가 합의해서 얻을 이익과 피할 수 있는 손실을 양측이 올바르게 인지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김정은이 안보(핵)와 경제 중 택일해야 하는 병진노선의 딜레마에서 핵 철로 위에 놓여있던 궁핍한 북한체제를 경제 철로 위로 옮겨 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를 시연했던 것처럼 어쩌면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을 수도 있는 풍계리 핵시험장을 시멘트 등으로 봉인하는 장면과 ICBM 몇 기를 상징적으로 파괴하는 '세리머니'를 할 수 있겠다 싶다. 보수 일각에서는 애당초 이를 '쇼'로 폄하하지만 '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할 일이다. 

협상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진행되기보다는 오히려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게임 성격이 더 강하다. 필요하다면 남북 정상 간 전화통화 이후 남측에서 특사를 평양으로 파견하여 우리의 구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신뢰를 구축하는 하나의 전술이다. 

트럼프 역시 기존의 국제정치 및 외교의 문법을 깡그리 무시하는듯한 변종 협상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번에 남북한과 북·미 간 비핵화 관련한 협상 내용에서 비핵화 종료 시점이 명시적으로 적시된다면 비핵화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셈이다.

북한판 '협력적 위협감소' 프로그램 짤 때 

북한은 지난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면서 북·미 사이 서명한 '제네바 합의'(1994.10)는 휴짓조각이 되었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별도의 제재를 받지 않고서 NPT 탈퇴를 선언했다. NPT에서 서명하고서 탈퇴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NPT 의무사항인 IAEA 사찰과 검증을 받을 법적의무도 자동적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북한을 다시 NPT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지원과 사용하지 않은 핵연료봉을 구입해 주는 등 일정한 반대급부 내지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나아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과정이 합의가 되면 북한은 보유 핵무기와 시설의 공개, 사찰, 제거 과정 등을 거쳐 마침내 IAEA 등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된다.  

결국 북한 비핵화의 핵심은 매 단계마다 '검증'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그 단초는 이미 2.13 합의문(2007년)에 마련되어 있다. 2.13 합의문에 명시된 북한의 조치는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와의 합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 요원을 복귀토록 초청하는 일이다. 그리고 북한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도록 했다.  

보도에 따르면, 5메가와트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우라늄농축시설 등이 있는 영변 핵시설만 해도 확인된 건물만 390개에 달한다. 영변 핵시설만 해체·제염하는데 수천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영변 이외의 비밀 장소에 고농축우라늄을 은닉했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 내지 촉진 목적으로 북한판 '협력적 위협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 CTR)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CTR에 대한 국내 연구는 오래 전에 있었다. 그동안 먼지가 두껍게 쌓였을 연구보고서를 꺼내어 관련 전문가들을 재조직하여 내용을 보완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한국 단독으로 추진될 성질이 아니며 무엇보다 북한의 수용성을 고려하여 다자체제의 틀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슈를 선점해야 국제협력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동시에 남북관계도 강화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오랜 남북협상 및 경제 과학기술 협력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적 동질성 언어 등 여러 측면에서 대북 CTR 적용을 주도할 수 있는 여건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비용분담은 물론 세부시행과제의 수행에 과학기술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원자력 공학, 물리학, 화학, 국제관계, 안보, 남북문제, IAEA 사찰 및 검증 유경험자, 법률 등 각 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상황들을 작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핵화 로드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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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중앙위 3차 전원회의 결정서 톺아보기

‘병진노선 결속’의 정치적 의의 언급 없는 이유와 북미정상회담의 상관관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핵심 화두는 발표된 결정서들에서 보듯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다.

대부분 언론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과 북부(풍계리) 핵시험장 폐쇄에 주목했는데 3차 전원회의의 일부를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태도라고 하겠다. 확대해석은 다른 부분을 축소하는 편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 이해를 왜곡한다. 왜 그런 결과(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에 이르렀는지는 원인(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을 제대로 따져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관심이 적다. 북의 정치선전 정도로 치부한다. ‘왜’란 물음이 없고 이유를 따지지 않으니 해석이 평면적이고 더욱이 뒤틀려 있다. 꼬리가 몸통이 된다. 언론이 ‘북한(조선) 선 비핵화’ 관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쓰지만 ‘북 비핵화’라고 읽는 버릇은 여전하다. 이번 3차 전원회의를 북미정상회담과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작용했다. 모든 게 연관돼 있긴 하지만 앞서처럼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시각을 고집하면 연관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도, 해설도 못한다.

▲ 사진 : 로동신문 홈페이지

먼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을 보자. 일각에선 병진노선의 ‘폐기’라고도 해석하는데 오독이다. 폐기란 오류 또는 실패로 드러나 중도반단한다는 뜻인데 ‘결속’은 그런 낱말이 아니다. 종료, 마친다는 거다. 노선이 제 역할을 다해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북쪽 평가는 ‘승리’)해 끝낸다는 얘기다. 병진노선을 폐기했다는 해석이 옳으려면 북은 핵무기도 폐기해야 한다. 실패한 노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속은 폐기가 아닌 거다. 그럼 북은 병진노선의 목표를 달성했는가?

김정은 당 위원장이 목표 달성의 판단 근거로 제시한 건 ‘국가 핵무력 완성에 따른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다. 핵무력(수소탄 등 다양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운반수단)을 계속 양산하고 실전 배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북미 핵공방 과정에서 지켜본 결과들이다.

이는 군사적 측면에서 핵무력 건설을 중심으로 목표를 설명한 것인데 정치적 목표에 관한 표현을 자제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5년 전 병진노선 채택 당시를 돌아보면 알게 된다.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적들은 우리에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위협 공갈하는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하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회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항시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핵보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나가지 않을 수 없다.”

병진노선을 결속하는데 ‘노선 유발자’에 관한 언급이 일체 없는 점이 외려 흥미롭다. 이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북미정상회담을 염두엔 둔 것으로 보인다. 북의 각종 매체를 보면,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미국에 관한 언급을 가급적 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문제에 관한 정치적 목표 달성은 사실 올해 신년사에서 이미 공표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된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연초부터 평화공세를 펴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한 마당에 병진노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부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핵시험 중단과 핵시험장 폐기에 대해 직접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호평했다. “큰 진전”이라며 “김정은과의 회담을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겨냥한 정치적 목표 달성을 강조했다면 이런 반색과 회담에 대한 기대감 표현이 가능했을지 궁금하다.

북은 결정서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 결정서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대목은 넷째 항목으로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둘째 항목인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페기할 것”이란 데 시선을 집중했다. 앞서 지적했듯 원인이 있고서야 결과가 있다.

넷째 항목에 주목하는 이유는 북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표현하고 있어서다.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화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도 마찬가지. 북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될 비핵화의 범위가 주로 ‘미래핵’에 맞춰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핵’의 경우 마치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 같은 상징적 범주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정서 셋째 항목의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란 언명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핵군축’에 보조를 맞출 핵보유국이란 얘기다. 물론 북은 최근 ‘핵보유국’ 대신 ‘전략국가’란 표현을 주로 쓴다.

그래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1일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북의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서에 대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시험 금지, 선(先) 사용 금지, 이송 금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면서 “이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북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분석했다. 주한미대사 일보직전에 낙마했지만 노회한 전문가인 건 분명해 보인다.

3차 전원회의의 ‘병진노선 결속’과 북미정상회담의 관련성은 다른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지난 12일 한겨레는 복수의 소식통을 최근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비핵화에 상응한 대가로 ▲미국 핵전략자산의 한국 철수 ▲한미연합훈련 때 핵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북미수교 등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 지난 2016년 북이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한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5개 대미 요구사항(▲남조선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조선 핵무기와 기지 철폐 ▲조선반도 주변 핵타격수단 전개 중단 ▲핵사용 전쟁위협 중단 ▲주한미군 철수 선포)과 적잖이 겹친다. 북측이 주한미군 철수(선포)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빼면 대동소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협상이 진행 중이란 사실은 지난달 16일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서 확인됐다. CIA가 막후협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쪽 상대는 통일전선부라고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한 게 3월9일이고 보면 곧바로 북미간 실무협상에 착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확인한 폼페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비공개 특사 방북 사실이었다. 폼페오 지명자가 4월 초 북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고 “만남은 매우 순조로웠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를 긍정 평가했다.

북미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해 언론 등에 공개된 일련의 정보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할 막후 실무협상이 늦어도 3월 중순 본격화됐는데(NYT) 여기서 북은 미국에 비핵화의 대가로 5개항을 제시했고(한겨레), 협상 내용을 확인 내지 중간 점검하러 대통령 특사인 폼페오 지명자가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그런데 “만남은 매우 순조로웠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트럼프 트윗)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북이 병진노선 종결을 선언할만한 노선유발자와의 관계에서 변화 요인이 조성됐다고 하겠다. 미국과 협상과정에서, 대외적으론 어떻게 표현됐든 북이 병진노선의 ‘정치적 승리’라고 판단할 기준과 요건들이 충족됐다고 볼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진노선은 채택된 이래 북이 일관되게 지속할 노선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2016년 5월 열린 조선로동당 7차대회에서 병진노선을 두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혁명의 최고 이익과 직결된 항구적인 전략노선이 완료됐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고 이익 구현에서 제기된 정치적 목표 달성 없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시간이 알려줄 일이다.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 병진노선 결속의 자연스런 귀결

다음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의 채택은 병진노선이 결속된 만큼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에 동시에 힘을 쏟는다’는 게 병진노선이고, 여기서 핵무력 건설을 완성하고 노선유발자인 미국에게서 정치적 승리라고 할 조건들을 얻어냈다면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란 얘기다.

또한 병진노선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별개가 아니다.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진노선 종결(승리) 결정서에서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뒤이을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의 내용을 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하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당면목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 정상화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게 하고 전야마다 풍요한 가을을 마련하여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이 국가목표로 설정한 사회주의 강성국가의 3대 지표, 즉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가운데 마지막 목표인 경제강국 건설에 총매진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지난 2016년 당 7차대회에서 공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기간(2020년까지)에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상승궤도에 확고히 올려 세우며 나아가서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주의경제, 지식경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곤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목표란 정도가 김 위원장 발언을 통해 확인됐을 뿐 내용이 공개한 적은 없다.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이 채택된 만큼 이를 적극화하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북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결정서로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물론, 북은 해당 결정서 첫째 항목에서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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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오픈 박근혜 등 국정농단 피고인 38명 판결문 전문 공개

[언론사상 최초 주요사건 판결문 상시적 공개 대행 서비스] 헌법 109조 '판결 공개' 원칙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18.04.23 09:58l최종 업데이트 18.04.23 09:58l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언론 사상 최초의 주요사건의 판결문 공개 대행 서비스다.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언론 사상 최초의 주요사건의 판결문 공개 대행 서비스다.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는 오늘(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문 576페이지 전문을 공개합니다.

재판부는 지난 6일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형량만 보면 중형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고, 아무 권한도 없는 민간인이 국정을 농락하도록 한 죗값으로 충분한 것인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를 보는 시민들의 시각도 '충분하다, 부족하다, 과하다' 여러 갈래로 나뉠 것입니다. 판결문을 공개하는 이유는 법원의 판단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시민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함께 국정농단에 가담해 재판을 받은 또는 받고있는 피고인 38명의 판결문도 공개합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총 56명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의 1심과 항소심, 대법원의 상고심을 합해 총 32번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1심과 항소심 등 총 10개 판결문은 현재 열람이 제한돼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판결문의 피고인수가 56명이 아니라 38명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열람 제한 판결문 가운데 이미 이 부회장의 1심과 항소심 판결문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나온 국정농단 판결문 중 8개를 제외한 모든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총 24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열람이 제한돼 있는 판결문도 대부분 입수를 한 상태입니다. 여기에는 최순실, 안종범, 신동빈 등 핵심 피고인의 1심 판결문도 있습니다. 최순실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된 이 판결문은 재판 직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열람 제한을 신청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법원의 조치를 존중해 열람이 제한된 판결문을 당장 공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법원의 판결문 열람 제한 조치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또 해당 판결문 공개가 공익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지 공개하겠습니다.

판결문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공개를 위해 <오마이뉴스>는 '열린판결문'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모든 판결문은 이곳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서비스 중 '국정농단 세력의 죄와 벌'이라는 메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메뉴 외에도 앞서 <오마이뉴스>가 공개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판결문과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항소심 판결문도 별도의 메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공개되는 판결문은 모두 법원의 '전자우편 등을 통한 판결문 제공에 관한 예규' 절차에 따라 각급 법원에 열람을 신청하고 공식적으로 제공받은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은 지속적인 판결문 공개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플랫폼입니다. 일회적인 공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국정농단 사건의 판결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주요 사건의 판결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곧 재판이 진행될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 사건의 판결문도 공개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이 플래폼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판결문을 제공한다.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이 플래폼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판결문을 제공한다.ⓒ 오마이뉴스
우리는 왜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을 만들었는가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의 기획의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을 넘어 불합리한 판결문 공개 제도를 고발하고 개선 방안을 공론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한마디로 판결문을 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109조에 따라 재판의 판결은 공개돼야 합니다. 재판의 공개는 곧 공정함을 의미합니다. 또 법관의 판결을 사회가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야 법치국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판사들의 자긍심 담긴 말도 그것이 공개 됐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판결문 공개 제도를 운영합니다. 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예규에 따라 각급 법원은 확정된 판결문 사본을 일반에 제공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은 지금 너무 멀리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와 국회의원조차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판결문은 절대 '이재용', '삼성'이라는 단어로 찾을 수 없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키워드로는 판결문 검색이 안됩니다. 일단 검색을 위해서는 법원이 부여한 사건번호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법원 사이트 어디에도 사건번호를 알려주는 기능은 없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내든, 사건 관계자에게 연락해 물어보든, '각자 알아서' 알아내야 합니다.

어렵게 사건번호를 알아내고 나서도 판결문을 보기까지 과정은 한참 남아있습니다. 각급 법원 사이트에서 사건번호로 검색한 후 '판결문 사본 열람신청'을 해야 합니다. 이후 법원에서 이메일 회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짧으면 2~3일, 길게는 2주 걸립니다. 열람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으면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판결문에 '비실명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이 과정을 거쳐 국정농단 판결문을 모두 입수하는데는 약 한 달 가량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받아도 참 난감합니다. 이재용 부회장 판결문에 '이재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비실명화 됐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게다가 이재용만 비실명 처리된 게 아닙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이 실제와 관계없는 영문 이니셜로 대체 됩니다. '삼성'과 같은 법인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판결문을 읽어도 누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을 통해 공개되는 판결문도 이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모든 판결문이 공개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국정농단 사건 10개의 판결문처럼 열람 제한이 걸린 판결문이 있습니다. 사건 관계자들이 판결문 열람 제한 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줬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따라 심리가 비공개로 진행되거나 '국가 안전보장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비공개 됩니다. 이밖에 '사생활의 비밀이나 생명·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경우', '영업비밀이 현저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사건 관계인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판단해 열람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 제도를 두고 법원이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는 헌법의 취지가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판결문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법관들 뿐입니다. 사법불신이 팽배해지는 것도 이 같은 폐쇄성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습니다. 법관도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주체는 국민입니다.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들이 알 필요가 있는 주요한 사건의 판결문을 공개하는 일종의 '판결문 공개 대행서비스'입니다. 앞으로 주요 사건의 판결문을 적극적으로 먼저 입수해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물론,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검색 등 지속적인 서비스 업그레이드도 약속드립니다.

[박근혜 등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38명 판결문 공개]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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