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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최근 라오스에서 발생한 소위 탈북 청소년문제에 대해 괴뢰패당(한국정부)가 유인납치해 남한으로 끌고 가려했던 만행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5일 담화를 통해 “최근 괴뢰패당이 우리의 나이어린 청소년들을 유인 납치하여 남조선으로 집단적으로 끌어가려고 하다가 발각된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만행사건이 드러나 내외를 경악시키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밝혀진데 의하면 괴뢰패당은 종교의 탈을 쓴 인신매매 거간꾼들을 우리나라(조선) 북부국경지역에 내몰아 수십명의 우리 청소년들을 유괴 납치하여 비밀은신처에 가두어놓고 온갖 악행을 다 감행하였다.”면서 “동족대결과 모략에 이골이 난 이자들은 해당 나라의 단속을 피하여 거처를 여러 번 옮기면서 2~3년 동안이나 우리 청소년들에게 성경책과 찬송가를 외우게 하면서 종교를 강제로 주입시켰는가 하면 불순한 영화들을 매일 보여주면서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모독하고 남조선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는 세뇌교육을 악랄하게 들이댔다.”고 강조했다.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종교교육과 세뇌교육을 제대로 받아 물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쇠몽둥이로 때리거나 벌을 세우는 등 귀축 같은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9명의 우리 청소년들은 바로 그러한 유인납치와 강제세뇌교육의 피해자들의 일부로서 괴뢰패당은 그들을 비법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경유하여 남조선으로 끌고 가려다가 적발 단속됨으로써 불순한 기도를 실현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변인 담화는 “괴뢰들에게 끌려가다가 돌아온 청소년들 가운데는 인신매매 거간꾼들의 쇠몽둥이에 얻어맞아 귀가 터지고 온몸에 멍이 든 어린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오랜 기간 일체 외부와 격리되어 있은 것으로 하여 모두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압박과 물리적 고통으로 지적, 육체적발전이 심히 억제되었으며 말투까지 이질화되어 그 정상이 말이 아니”라고 고발했다.
담화는 “괴뢰패당은 미국의 반공화국인권모략단체와 야합하여 막대한 돈을 뿌리며 인신 매매거간꾼들을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유괴납치에로 내몰았으며 지어 재외대표부까지 동원하여 위조여권을 만들어주고 비행기를 대주면서 그들을 남조선과 미국 등지로 빼돌리려 하였다.”면서 “실로 나이어린 우리 청소년들까지 유인납치, 강제억류, 세뇌 교육하여 집단적으로 남조선에 끌어가려고 한 괴뢰들의 책동은 고금동서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 특대형범죄행위로서 우리에 대한 극악무도한 도발”이라고 단죄했다.
또한 “다 아는바와 같이 괴뢰패당은 지난시기 정보원과 종교인, 관광객, 기업가 등의 탈을 쓴 모략꾼들과 인신매매 거간꾼들을 우리나라(조선) 북부국경일대를 비롯한 해외 여러 지역에 침투시켜 우리 주민들에 대한 유인랍치행위를 악랄하게 일삼아왔다.”며 “이러한 범죄행위의 희생물이 되여 남조선으로 끌려갔던 우리 주민들이 현지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환멸을 느끼고 다시 그리운 조국,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얼마 전에도 괴뢰패당에게 유인납치 되어 남조선으로 끌려갔던 우리 주민들이 공화국의 품에 안겨 반공화국모략대결광신자들의 추악한 정체를 만천하에 폭로하였다.”고 규탄했다.
이어 “괴뢰패당에게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마땅히 피해자들의 원한에 찬 목소리와 내외여론의 비난에 귀를 기울이고 저들의 범죄적 책동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악당들이 나이어린 미성년들까지 유괴납치하여 남조선에 끌고 가 반공화국모략대결소동에 내몰려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천하악한들인가. 현대문명을 구가하는 오늘의 21세기에 중세기적노예사냥과 같은 나이어린 청소년들에 대한 인신매매가 공공연히 감행되고 있는 사실에 온 겨레와 전 세계가 분노의 치를 떠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지금 저들의 특대형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 내외의 규탄, 배격을 받게 된 괴뢰패당은 인신매매꾼들을 감추어놓고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으며 반면에 남조선으로 끌려가던 청소년들을 데려온 우리에 대해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인권유린》이니, 《강제북송》이니 하고 고아대고 있다.”고 역설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사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뿐만 아니라 이번에 괴뢰들의 범죄행위를 적발하고 정정당당하게 처리한 나라와 이번 일에 아무 관계도 없는 인접국까지 걸고들면서 《항의》요 뭐요 하며 소란을 피우고 있다.”며 “이 얼마나 철면피하기 그지없는 망동인가.”라며 “이번 사건을 통하여 괴뢰패당의 극악무도한 인신매매행위와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의 정체가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괴뢰패당의 모략소동은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흐리게 하여 급변하는 국제정세흐름을 차단하고 수세와 궁지에서 벗어나 보려는 단말마적 발악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와 관계국들 사이에 쐐기를 치며 우리의 있지도 않는 《인권문제》를 부각시켜 반공화국소동을 강화하려는 술책 외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국정부를 비난했다.
적십자사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인권문제를 논한다면 마땅히 남조선을 파쇼독재의 난무장, 민주와 인권의 무덤으로 전락시키고 동포애의 정을 안고 공화국을 방문한 통일인사들을 범죄시하여 감옥에 처넣은 괴뢰패당을 당연히 심판대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리고 남조선을 타고앉아 강간과 폭행, 살인 만행을 일삼으며 주인행세를 하고 관따나모(관타나모)에서 무고한 수감자들을 고문, 처형하는 인권유린의 왕초 미국부터 문제시 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공범자, 배후조종자가 다름 아닌 미국이라는 것은 미국의 《북조선자유연합》대표라는 양코배기(수잔솔치)년이 《미국무성과 긴밀하게 공조》한 사실을 실토하면서 뻔뻔스럽게도 《2년 동안 걸친 탈북계획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 몰랐다.》고 개탄한데서도 여실히 폭로되고 있다.“며 공세를 폈다.
대변인 담화는 “지금 괴뢰패당이 인권모략단체의 어중이떠중이들과 함께 《강제 송환된 탈북청소년들에 대한 생명보장》이니,《북인권법》제정이니 뭐니 하며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것은 저들의 반통일대결적정체만을 더욱 드러낼 뿐”이라며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제도가 전면적으로 확립되고 인민사랑의 정치 하에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우리 공화국에서는 청소년들을 비롯한 인민대중의 인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 괴뢰패당의 유인납치책동에 걸려들었다가 천만다행으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청소년들은 지금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이제 국가적 보살핌 속에 자기의 희망과 미래를 마음껏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담화는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은 그 누구의 《인권》문제를 운운하기전에 저들의 심각한 인권문제부터 돌이켜보아야 한다.”면서 “지금 우리 공화국에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남조선주민들이 여러명이나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미 보도도 하고 남조선당국에 알려도 주면서 빨리 데려가도록 하였지만 몇년이 지나도록 괴뢰패당은 그들을 팽개쳐 놔두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들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면 차례질 형벌과 모략선전에 내몰릴 우려로 하여 선뜻 돌아갈 념도 못하고 있다. 괴뢰패당이 인권문제에 꼬물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철없는 아이들을 유괴하는 비열한 놀음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제 사람부터 찾아갈 생각을 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강화했다.
또한 “괴뢰패당은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유괴납치책동과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을 즉시 걷어치우며 이번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주모자들을 엄중 처벌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만약 괴뢰패당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민들에 대한 유인납치행위를 비롯한 반공화국인권모략책동에 계속 매달린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조선은 이번 소위 탈북청소년 문제를 유인납치로 규정하면서 불법 월북자에 대한 발언을 내놓아 남북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장에서는 천하전여총도가 결코 후대의 위작이 아니라, 진본이란 사실을 또 다른 관련 지도들을 통해 입증해 나갈 것이다. 독자들은 이 장이 끝날 때쯤 천하전여총도가 진본임에 대해 확신을 가지리라.
그럼 이제부터 논증을 시작할 것인바, 여기에 우선 동원되는 중심지도로서의 두 지도 또한 앞서의 보르도느 지도 및 로젤리 지도와 마찬가지로 베네치아의 지도임을 알려둔다. 그 지도들은 각기 1321년에 제작된 피에트로 베스콘테의 지도와 1556년에 제작된 볼로그니노 잘티에리의 지도인데, 서술의 편의상 두 지도를 각기 베스콘테 지도와 잘티에리 지도라 칭하기로 하겠다.
베스콘테 지도는 1321년이란 제작연대가 말해 주듯이 르네상스의 여명기를 밝힌 지도이고, 잘티에리의 지도는 1556년이란 제작연대로 볼 때 르네상스의 황혼기에 등장한 지도이다. 그러므로 두 지도는 무려 230여 년의 시차를 둔 지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두 지도가 세상에 출현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베스콘테 지도로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인바, 우선 전체 모습부터 살펴보자.
▲ 1321년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피에트로 베스콘테 지도. 구세계의 전모가 담겨져 있다. 전통적인 T-O지도의 영향으로 지도의 위쪽이 아시아,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유럽과 아프리카로 되어 있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북쪽을 지도의 위가 되도록 방향을 돌린 것임. - 브리튼도서관 소장. [자료사진 - 서현우]
베스콘테 지도는 다음 장에서 다룰 프라 마우로 지도의 유명세에 비해 현재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지도의 가치 또한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지만, 이 장에서 우선적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나의 견해로서 이 지도야말로 진정 유럽 지도학 역사에서 당당히 첫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중요하고도 위대한 지도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 이 지도는 천하전여총도와의 관련성을 포함하여 가히 세계사를 새로 써야할 만큼의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지도이다. 나의 확신으론 머지않아 우리에게 진정 위대하고 경이적인 지도로 다가올 것이다. 그것에 대해선 차차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 일단 이 지도의 외형적 특징과 베스콘테에 대해서 알아두자.
▲ 이해를 돕기 위한 피에트로 베스콘테 1321년 지도의 재구성판. 지중해와 함께 아프리카와 아시아, 또 그 사이의 아라비아 반도가 선명히 나타난다. [자료사진 - 서현우]
독자들은 우선 베스콘테 지도가 1321년의 것임에 유의하자. 1321년이라면 본격적인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이전으로, 이른바 ‘초기 르네상스(Proto-Renaissance)’ 시대라고 부르는 르네상스의 맹아기일 때이다. 그러므로 당시엔 지도제작에 있어 세칭 T-O지도라는 전통적.종교적 표현방법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T-O지도란 당시 유럽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를 지도의 위쪽방향에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각각 지도의 왼쪽과 오른쪽에 두는 원형圓形 양식의 지도를 말한다. 여기서 T란 지중해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볼 때 오늘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이집트의 카이로를 잇는 가상의 가로선과, 예루살렘과 지브롤터 해협을 잇는 지중해를 가상의 세로선으로 하여 나타내는 상징기호이다. 또 O란 지도상의 세계를 원형 틀 내에 담아 나타내는 양식의 상징기호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베스콘테 지도 또한 T-O양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위 지도는 독자들의 이해의 편의를 위해 오늘날의 일반적인 지도와 같이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방향을 튼 것이다.
베스콘테는 제노바 출신으로 활동의 전 기간을 베네치아에서 보내며 많은 지도를 남긴 인물로서 유럽 지도학 역사에서 최초의 전문 지도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항구와 항구를 잇는 항해지도로 유명하여 그의 이름엔 해도海圖 영역의 개척자라는 평가마저 더하고 있다. 이러한 공적 때문인지 오늘날 남극반도에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베스콘테 포인트’란 지명이 존재한다. 이제 베스콘테 지도의 가치를 들여다보자.
베스콘테 지도의 가치는 우선 지도에서 보듯이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나타나는 지도라는 것이다. 비록 원형 구도에 맞추느라 아프리카 남단이 동쪽을 향해 누운 상태의 형상이지만 희망봉을 중심으로 동서 양안兩岸의 해안선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므로 베스콘테 지도는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드러나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지도이자 유럽최고의 지도가 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혼일강리도(1402년이란 제작 시점을 지도상에 명기하고 있는)가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나타나는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지도(1389년 제작으로 알려진 대명혼일도가 있지만 지도상에 제작 연도가 명기되지 않은 한계로 인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베스콘테 지도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베스콘테 지도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나타나는 현존하는 유럽의 두 번째 지도는 1411~1415년 기간에 역시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알베르틴 디 비르가의 지도인데 베스콘테 지도로부터 무려 90여 년이 지난 후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을 잇는 지도들이 각기 1436년과 1448년, 1450년경에 안드레아 비안코와 안드레아스 발스페르거, 프라 마우로에 의해 제작된 지도들인데 뒤에서 기회가 있을 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점은 베스콘테 지도의 아프리카 대륙이 갖는 중요성이 단지 ‘최초’란 의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에는 앞서 언급한바, 세계사를 새로 써야할 만큼의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는데 그에 대해선 다음 장에서 프라 마우로 지도와 함께 다룰 것이니, 이 장에선 베스콘테 지도의 또 다른 숨은 비밀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 비밀은 천하전여총도와 관련된 것으로 천하전여총도의 진품 입증에 있어서 결정적 증거를 담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증거인지 여기서 천하전여총도와 베스콘테 지도의 해당부분 상호비교를 통해서 확인해보자. 아래는 두 지도상의 각각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이다.
▲ 천하전여총도 상의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 한반도와 산동반도의 상대적 위치, 그리고 특히 산동반도의 형상이 베스콘테 지도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자료사진 - 서현우]
▲ 베스콘테 지도상의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왼쪽 흰색이 중국대륙이고 오른쪽 녹색이 태평양이다) 한반도가 소략하게 나타나지만, 산동반도와의 상대적 위치는 물론이고 산동반도의 형상이 천하전여총도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자료사진 - 서현우]
독자들은 위 두 지도의 상호비교를 통해서 두 지도상의 한반도와 산동반도의 상대적 위치가 완전히 일치할 뿐만 아니라, 특히 산동반도의 형상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치 상호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앞장에서 확인한 보르도느 지도 및 로젤리 지도상의 한반도와 산동반도의 상대적 위치도 떠올릴 것이다. 이와 같이 두 지도상의 산동반도는 한마디로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한반도의 형상에서 큰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산동반도의 이러한 일치는 결코 우연일 수 없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리라.
여기서 주지하는 바, 베스콘테 지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때는 매우 근래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장에서 확인한 보르도느 지도와 로젤리 지도를 포함하여 뒤에서 다룰 여타 지도들 또한 마찬가지의 경우인데 모두가 인터넷의 대중화에 힘입은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베스콘테 지도가 지니는 또 하나의 가치를 알아보자. 그것은 우리와 관련되는 것으로 비록 소략하나마 한반도가 반도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현존하는 유럽 최초의 지도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베스콘테 지도는 현존하는 지도들 중에서 아프리카의 전모를 담고 있는 세계 최고最古의 지도에 더하여, 한반도가 나타나는 유럽 최고의 지도가 되는 셈이다. 그런 만큼 피에트로 베스콘테는 지도학 영역에서 르네상스의 여명기를 태동시킨 진정한 의미의 선구자였다.
베스콘테 지도는 현재 영국 브리튼 도서관의 한 구석에서 자신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근래 인터넷 시대의 결과물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지도! 이 지도의 존재야말로 천하전여총도가 진품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물론 이것만이 천하전여총도가 진품이라는 증거의 전부는 아니다.
‘히말라야 도사’ 청전 스님이 한국에서 온 백수 산사람과 함께 희말라야 산행길을 나섰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20킬로를 2킬로라고 속인 찻집 주인 말만 믿고 한 산행에서 밤 10시까지 헤매다 목적지에 도착해 먹은 밥 한그릇은 진수성찬보다 꿀맛이었다.
“때론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조차 내가 험고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될 때가 있다. 찻집 아저씨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20킬로가 넘는 길을 한달음에 갈 수 있었을 것인가.”
산을 좋아하다가 아예 공무원까지 내던지고, 무작정 히말라야 품안에 살아보겠다고 작심한 분이 다람살라로 찾아온 적이 있다. 자칭 전국백수연합회 회장이라는 이재환씨였다. 그는 한국의 웬만한 산을 다 올랐고, 백두대간 종주도 두 번이나 했다니 산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람살라에 오기 전 네팔의 이름난 트레킹 코스들을 돌고, 티베트의 성산 카일라스를 두 번이나 순례를 해 히말라야에도 이골이 난 사람이다.
히말라야 산행은 한 구간만 가려고 해도 열흘이 넘는 일정이어서 텐트와 먹을 것 등짐이 많아 고역이다. 그런데도 그때 둘이 죽이 맞아 다람살라 뒷산 트리운드로 올라갈 때 가장 가기 어려울 듯 보이는 지점을 목표로 길을 나섰다. ‘바라방갈’이란 산동네였는데, 이 일대 히말라야에서도 최오지다.
해외 등반가들이 다니는 유명 루트가 아니니 코스에 대한 정보도 전무하다. 천행으로 사람을 만나면 물어물어 가는 원시적인 산행 외엔 방법이 없는 길을 무작정 떠난 것이다.
4340미터 고지인 인드라하라 패스를 넘을 때부터 첫 고비가 닥쳤다. 느닷없이 눈과 우박이 내렸다. 둘은 조그만 바위틈새에 몸을 웅크리고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등산로보다 하산로가 훨씬 위험했다. 우박과 눈으로 길이 얼어붙어 버렸다. 아이젠 없이 지팡이 하나에만 의지해야 했기에 급경사에서 미끄러지면 수백미터 벼랑으로 떨어져 주검을 찾을 수도, 천도재도 지낼 필요가 없는 황천행이었다. 콧김이 얼어붙는 날인데도 미끄러운 발끝의 촉감 때문에 생땀이 났다.
인드라하라패스에서 청전 스님과 이재환씨
히말라야의 설산
급경사에 위태위태하게 자리한 히말라야 오지의 집들
그렇게 산행중에 비박을 하며 이레 만에 도착한 마을이 다라리였다. 처음 목표로 한 바라방갈에 이르기 전 마지막 마을이었다. 다라리 사람들은 자기 마을로 찾아든 외지인을 처음 본 듯이 신기해하며 둘레에 모여들었다. 손짓 발짓으로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자 철 이른 사과를 따주었다. 천도복숭아가 그보다 맛이 있을까? 지금도 사과하면 다라리 산골에서 먹은 그 사과향으로 인해 군침이 돈다. 내리 두 개의 사과를 껍질째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는 인도돈 십 루피를 주었다. 하지만 신인 듯 길손을 맞이하는 산골 동네 사람들이 돈을 받을 리 없다.
필자는 산골마을에 다닐 때는 언제나 한국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진통제와 연고 항생제 등 의약품을 배낭 가득히 담아간다. 그날도 저녁을 물린 뒤 마을 사람들이 아프다는 부위에 따라 상비약을 나눠주었는데, 산 너머에 산다는 50대쯤의 남자가 자기 아내가 많이 아프다면서 이곳에 데려올 테니 가지 말고 꼭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넘는 산행중 만난 산골 사람들에게 약을 다 나눠줘 버린 뒤였다. 부인이 아파도 의약의 혜택을 받을 길이 없어, 나를 신의처럼 믿고 산 넘고 물 건너 아내를 데려오겠다던 그 오지인의 순박하고 안타까운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이튿날 바라방갈까지 거리를 물으니 ‘십 킬로미터’란다. 해 지기 전엔 도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그런데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 이제나저제나 했지만 마을이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산이라면 이골이 난 나나 이재환씨 걸음으로 10시간 이상을 달리다시피 했으니 족히 20킬로 이상은 갔을 성싶은데도 첩첩산중일 뿐이었다. “왜 이 먼길을 10킬로라고 했을까”라고 부아가 치밀었지만, 문명인들의 거리 개념 없이 자기들의 어림짐작으로 쉽게 내뱉는 오지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우리가 바보였다.
해가 지면서 비까지 내려 옷도 흠뻑 젖어서 추워 떨렸다. 그러니 전등을 켜고라도 기어코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산행 중 산골마을 가게에서 산 건전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깜박깜박하더니 채 1분도 안 돼 꺼지는 게 아닌가. 아마 가게에 들여놓은 지 10년도 더 지나 자연 소모된 건전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날이 칠흑처럼 어두워 더 이상 한 발도 더 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진 자리 마른자리 가릴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텐트를 치고 요기를 할 엄두도 못 내고 춥고 배고픈 상태로 지쳐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른 뒤에야 미숫가루로 간신히 연명만 하고 또 길을 재촉했다.
그 길엔 태고 적 전나무 숲이 하늘과 땅을 뒤덮고 있었다. 그 숲을 벗어난 순간 도연명이 말하는 별천지 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너와 지붕으로 엮어진 마을이었다. 수십 년 전 강원도 삼척이나 정선지방 산골 순례 길에서 보았던 것과 다름없었다.
그 사이 굴뚝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해발 2550미터의 깊고 깊은 산골에 이런 마을이 숨어있었다니. 입이다물어지지 않았다.
청전 스님과 히말라야의 양치기들
히말라야 오지의 소녀들
청전 스님(뒷쪽 맨왼쪽)과 다라리 마을 주민들
바로 바라방갈마을이었다. 놀랍게 이곳에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6개월이라고 했다. 겨울이면 추운 이곳에서 머물러 있을 교사가 없어서였다. 이른 가을에 하산한 교사가 눈이 녹는 5월께 산을 넘어오는 날이 개교 날이었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이틀을 지냈지만 무리한 산행으로 지친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엿새가 걸리는 5050미터 고개의 타인투 패스를 피해 4700미터 고개인 탐사르 패스를 택해 넘었다. 그 고개에서 예상치 못하게 눈밭에 청정한 호수가 있어서 그야말로 ‘하늘 호수인가’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했다.
그러나 선경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고 또 한발 한발의 고행길이 이어졌다. 간신히 고개를 넘으니 허름한 찻집이 있다. 여름철에 곡식이나 생필품을 나르는 마부들의 중간 숙박처로 밥과 짜이(밀크티)를 파는 곳이다. 그곳에서 짜이를 한 잔 시켜 마셨다. 그런데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 이곳에서 숙박하기보다는 더 하산하기로 하고 찻집 아저씨에게 “얼마나 더 가야 다음 숙소가 나오느냐”고 물으니 “니째 도 키로(2킬로만 더 가요)”라고 답한다. 2킬로면 잰걸음으로 반 시간이면 족했기에 날 듯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2킬로면 나온다던 집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더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밤하늘에 별이 총총 나있어서 희미하나마 그 별빛을 등불 삼아 한발 한발 내 디뎠다. “이놈의 ‘니째 도 킬로’가 도대체 어찌 된거냐”고 한탄하면서.
마침내 밤 열 한시가 되어서야 구원의 빛이 저 멀리 눈에 띄었다. “이제 살았네!” 하고 들어가니 그 찻집 아저씨가 말한 바로 그 집이었다. 그때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바로 그 아주머니는 그 아저씨의 아내였다. 우리를 자기 집에서 밥을 먹이고 재워 매상을 올리려고 이십여 킬로를 줄여 이 킬로라고 말했다는 것을. 그날 밤 12시가 되어서야 먹은 밥 한 그릇과 야채 한 그릇은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이 있었다. 그런 꿀맛이 어디 있을까.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나면서, 다람살라에서 비상음식을 싸오느라 챙겨온 플라스틱통과 잡동사니들을 모두 내주었다. 산골에서 긴요한 세간살이를 얻자 아주머니는 다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그 후로 이재환씨와 몇 번 산행을 함께했는데, 험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니째 도 키로!”를 박자 맞추듯 내뱉으면 웃음이 터지고 없던 힘이 났다.
고지를 넘는 것과 같은 힘든 과정이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때론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조차 내가 험고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고통이 곧 행복의 씨앗이 된다. 그때도 찻집 아저씨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20킬로가 넘는 길을 한달음에 갈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도 힘든 여정을 만나면 찻집 아저씨의 말이 저절로 주문처럼 되새겨진다.
“니째 도 키로!”
청전 스님
조현이 히말라야에서 만난 청전 스님
‘휴심정’ 벗님글방 필자 가운데 청전 스님의 글을 1번으로 택한 것은 청전 스님의 산행기가 결코 남 얘기처럼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신학대학에 다니다가 송광사(전남 순천)로 출가해 25년째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히말라야에서 수행중인 그를, 사람들은 ‘히말라야 도사’라고 부릅니다. 포터들에게 배낭과 먹을 것까지 양껏 지우고 귀족 산행을 하는 일부 산악인들과 달리 오지인들에게 줄 상비약까지 등에 지고 아무도 가지 않은 산길을 달리는 그를 보면 그런 말이 과언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제가 청전 스님을 우연히 만난 건 11년 전 신문사를 1년 쉬고 인도를 순례하던 중 다람살라에서였습니다. 그때 오지 중의 오지라는 스피티 등을 함께 순례하며 한 달을 함께 보냈지요.
3년 전엔 한 달간 라다크를 순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싱고라를 함께 넘기도 했습니다. 청전 스님은 이제 60살이니 이팔청춘이 아니지만 산에 가면 여전히 펄펄 납니다. 갈림길에서 앞서 가던 그가 보이지 않아 애타게 부르며 당혹해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라다크에선 고산병에 시달리며 지쳐 떨어지자 “설산에 묻어버리고 가겠다”며 제 분기를 자극해 다시 산을 기어오르게 한 분이지요.
그러나 병에 걸려도 의약품 구경도 못하는 오지인들의 아픈 곳을 쓰다듬으며 약을 주는 그를 히말라야인들은 ‘산타클로스 스님’이라며 좋아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면 어김없이 공중파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출연을 의뢰하지만 “수행자가 그런 데 얼굴을 내밀면 좋지 않다”며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휴심정 독자들에게만 무주상글보시를 해주고 있습니다.
소위 '진영 논리'가 욕먹는 이유는 주관적인 확신에 의거해 보고 싶은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내놓은 여야의 평가에 접점이 없는 까닭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을 찾았다. '합리와 균형'을 강조하는 그의 시각은 늘 '공방전 정치'와 거리를 둔다.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의원을 두루 경험했고 보수와 진보를 문턱 없이 넘나드는 그의 식견에 대한 신뢰도 작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물었더니 "대통령의 공적 가치에서 국가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를 "국가주의적 공공성"이라고 했다. 그 누구보다 공적 의식이 투철한 박 대통령이지만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다"는 게 심각한 결점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지도자의 강한 공적 의식은 되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윤창중 사태'는 그 단면이다. 윤 전 장관은 이 사태를 보며 "이 정도로 대한민국이라는 다원화된 사회, 제법 덩치가 큰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한반도 관리 능력에 있어서도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보다는 더 균형잡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자기 구상을 미국에 가져가 진지한 대화를 거쳐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어야"하는데 "기대 이하였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 의지 역시 "대화 하려고 애썼다는 기록만 남겼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다만 윤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대해선 '유보적 신뢰'를 보였다. 그는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선거 때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벌기업의 부조리한 것은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며 "그것은 우리가 신뢰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권 재편의 핵으로 떠오른 안철수 의원에 대해선 "작년보다 현실감각이 더 생긴 것 같다"고 평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합류에 대해서도 "양당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최 교수와 같은 생각"이라고 적극적인 호응을 보냈다.
다음은 윤여준 전 장관과의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윤여준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윤창중 사태, 누가 이 정부에 책임감을 기대하겠나"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국정 전반에 대한 평가는 이르지만, 평가할 수 있는 분명한 재료가 있는 분야가 있다. 첫째는 인사문제가 아닐까 싶다.
윤여준 :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짐작하건대 '맹목적 충성'인 듯싶다. 벌거벗은 충성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 앞에서 벌거벗은 충성을 보이는 사람을 신뢰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경우, 그를 반대하는 게 사회 공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무릎 쓰고 인사를 단행했다. 그렇게 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윤창중의 박근혜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충성했는지는 알 길은 없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불행을 박 대통령은 보지 않았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하에게 배신당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의 충성심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봤기에 인사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사를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정부인사는 공직이기 때문이다. 공직은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그렇기에 인사는 철저히 공적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인사가 이뤄지는 과정이 다 베일에 가려 있다. 어떤 의사결정구조로 진행되는지, 인사 결정에 어떤 사람이 참여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공적 시스템을 무시하는 태도다. 위험하다. 빨리 고쳐야 한다. 게다가 인사에서 이런 참혹한 결과까지 나오지 않았나.
프레시안 : 윤창중 사건은 각인효과가 클 것 같다. 되짚어 봐야 할 건 윤창중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은 물론이고 청와대 참모진의 대응, 박 대통령의 사과까지 실망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청와대 참모 경험이 있는 윤 장관께선 이번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윤여준 : 나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효율성 문제다. 사건이 터진 뒤 청와대에서 이 사건을 처리하는 모습은 위기관리라는 말조차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청와대 근무를 9년간 해본 내가 볼 때, 기본적인 수준이 안돼 있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 정도로 대한민국이라는 다원화된 사회, 제법 덩치가 큰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둘째로 책임성의 문제다. 누구도 책임을 안 진다. 엄청난 일이 벌어져서 국민과 국가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이게 홍보수석만 책임져야 하는 일인가. 홍보수석은 부서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홍보수석은 소속부서의 장이지 대통령 비서실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 기관의 장이 당연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홍보수석을 시켜서 대국민사과를 했다. 홍보수석은 국민에게 사과를 할 직책이 아니다. 국민이라는 존재는 아무 공직자나 나서서 사과한다고 해서 받아주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니 교장이 바로 그만뒀다. 최소한 그 정도 책임의식도 없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의 장이 그 정도 책임이 없으면 어떻게 그 정부에 책임감을 바랄 수 있겠나. 대통령도 그렇다. 사과를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가벼운 사안은 청와대 내부 수석회의에서 사과를 하긴 한다.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런 사안이 아니다. 이것도 미국의 수사를 지켜봐야 하는가.
프레시안 : 또 한 가지 평가를 해볼만한 분야는 대북 정책이다. 박 대통령 취임 전부터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했다. 6월 미·중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을 지켜봐야 윤곽이 조금 더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으로 평가해보자면 어떤가. 윤 장관께선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꼭 가져야 할 덕목으로 북한관리 능력을 꼽았는데.
윤여준 :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인수과정까지 보면 이명박 정부보다는 더 균형 잡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 정상회담 직전은 6·25 이후에 가장 군사적 긴장이 있었던 시기 아닌가. 일촉즉발이라고 할 만큼 긴장감이 고조됐다. 서울 주재 외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상황을 바꾸는 전기를 마련하는 회담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발표 나온 것을 보니 기존의 '압박과 대화' 입장만 반복했다. 달라진 게 없었다. 대화를 한다? 과거에도 대화의 문은 닫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할 게 아니라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조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를 바라보는 인식이 같을 수 없다. 오바마는 세계를 상대로 정치를 하니 한반도 문제는 전체 중 일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반도 문제가 최우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구상을 미국에 가져가 진지한 대화를 거쳐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어야 했다. 물론, 취임 후 정부 인선에만 두 달 걸렸다. 방미 일정 중에는 감기약을 먹으며 주요 일정을 소화했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안쓰럽기는 했다. 나도 대통령을 옆에서 모셔봤으니 미국 순방이 힘든 거 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다.
더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야기하면서 북한과 대화 없이 어떻게 이것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정책과 박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즉 서울프로세스가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 했는데 이것을 듣는 순간 나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동맹을 중심으로 한 중국 견제정책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동북아구상은 중국을 포함한 다자안보 정책이다. 이것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말인가. 또 북한에 핵이 존재하는데 동북아 평화가 가능한가.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애쓰고 수고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 기대 이하였다. 윤창중 사건도 터져서 심기가 안 좋았을 것 같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수행이니까 당연히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윤창중 사건으로 방미 성과가 덮였다고 하지만 덮일 게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은 '미국방문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획기적인 제안이 성공한 적이 있느냐, 또 성공할 수 있느냐'고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적극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구상 자체가 부족한게 아닐까 싶다.
윤여준 : 획기적인 것에 방점을 찍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미국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생각이 통용이 되지 않으니 설사 획기적인 안을 가져갔더라도 획기적으로 채택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획기적인 안을 가지고 가야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다. 100을 가져가도 60을 얻기 어렵다. 처음부터 '내가 한다고 되겠는가' 이러면 안 된다. 그러면 우리 입장을 미국 입장에 맞추면 된다는 것인가.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획기적인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 결과를 내라는 게 아니다. 어떻게 우리가 100을 얻어내겠나.
프레시안 : 결국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전 정부보다 전향적인 부분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는 별로 다른 게 없는 듯하다.
윤여준 : 현재까지는 그렇다. 대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아무리 대화를 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관련 대화를 하자고 한 게 우리가 군사훈련을 하는 동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화를 하자고 하면 북한이 나오겠는가. 그리고 대화 여부에 대한 답변을 하루 만에 하라고 한 것도 문제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니다. 의사결정 시간을 줘야하는 것 아닌가.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는 기록만 남겼을 뿐이다. 우리가 대화할 의지가 없었다는 인식을 줄 소지가 있다.
또 통일부에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제의하라고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닌 개성공단에 남은 완제품을 가져오기 위한 실무회담을 하라고 했다. 북한이 여기에 응하겠는가. 대화를 통해 풀고, 그 실마리로는 개성공단을 이용하라고 여러 곳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냥 대화를 한다고 하면 되지 왜 꼭 완제품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가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어설프게 정상화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점이다. 그 어설프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부분을 고민했으면 한다. 개성공단은 분단국가의 공단이다.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상징적 모델이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 추진하는 과정을 너무 서둘렀다. 분단국 간 경제모델이라는 것은 남북관계에 흔들리지 않게 해야 했다. 하지만 공단을 만드는 단계에서 서두는 바람에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위치 선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공단은 남북 영토가 반반씩 들어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완전히 북한에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니 통행하는 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북한에 허가를 받아도 들어가는 시간은 그쪽에서 정해준다. 이게 무슨 경제협력인가. 대등한 게 협력이다. 운영되는 것을 보면 북한이 갑이고 우리가 을이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개성공단이 저렇게 된 마당이니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면서 다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모도 더욱 커져야 그 자체로 경제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위치의 문제, 운영규모의 문제 등을 검토해서 다시 북한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다시 철저한 을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화인지는 모르겠다.
프레시안 : 공단의 위치는 이제와서 재검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규모의 문제는 당초 설계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확장시키는 계획이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된 점이 작용한 부분도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한 말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우리가 핫바지인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을 자극한 건 개성공단에 대한 정책 방향이 강경론으로 기운게 아닌가 싶은 우려를 갖게 한다.
윤여준 : 그 발언이 보도되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한 학자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인내심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싶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북한과 상대했다. 그러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북한 언어습관은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 대통령에게 '역도'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나. 그때마다 우리가 발끈해야 하나. 깜짝 놀랐다. 장관이 되더니 인내심이 바닥이 났나 싶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장관 개인 의견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윤여준 : 통일부 장관은 남북 관계를 계속 부드럽게 가도록 해야 하는 자리다. 환경부가 국토해양부와 계속 싸워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부처 간 생각이 다른 때가 있어야 한다. 내부 상황은 모르겠지만 통일부 장관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윤 장관께선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CEO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했고, 불행하게도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요지는 공적 의식이나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낮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은 공적 의식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할 거란 기대를 받았다. 그럼에도 100일이 됐지만 박 대통령 리더십의 장점은 아직 발현이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의식에는 국가주의 냄새가 난다"
윤여준 : 나는 박 대통령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는 게 전부다. 언론을 통해 보는 박 대통령은 체질적으로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공적가치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본다. 청와대에서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것도 있고, 짧은 기간이지만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한 경험도 있다. 공적인 게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적 가치를 몰랐다.
다만 박 대통령의 공적가치에서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난다. 우리사회는 민주주의가 기본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기본이념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전체주의다. 우리가 일제시대 때부터 군사정권까지 멸사봉공을 얼마나 들었는가. 가끔 박 대통령에게서 국가주의 공공성을 공공성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느낀 박 대통령은 본인이 규정자라는 태도가 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공화국은 인민이 다스리는 국가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안 되니 대의제를 선택해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다. 국회에 정당들이 모여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수결로 결정되는 게 국민 일반 의사다. 이것에 의해서 국정이 운영되는 게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개인 사리를 취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리도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전임자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국가주의적 공공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법을 고치냐 안 고치느냐는 국회의 권한이다. 그런데 행정수반이 국회에 법을 보내면서 '빨리 고쳐라' 이렇게 한다. 조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물론, 민주화세력이었던 김영삼, 김대중도 대통령 되고 나서는 제왕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화를 이룬지도 25년이 되었다. 이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시대에 부딪힌다.
프레시안 : 다른 측면에서 그것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게 국회, 직접적으로는 집권여당이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에 청와대에 대한 견제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태다.
윤여준 : 새누리당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그랬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헌법적 역할을 한다. 헌법적 기능을 하는 정당이 국회에 모여 각각 자신의 지지 세력의 요구를 관철한다. 물론 관철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이것은 대화와 타협으로 적절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것을 국회가 제대로 못했다. 사회가 이 모양인 것도 정당이 그런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권여당은 정권을 창출한 당으로써 대통령을 도와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해야 하는 역할과 동시에 대통령을 견제해야 하는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둘이 서로 상충한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은 집권 초기라는 상황론으로 협력론이 우위에 있는 듯하다.
윤여준 : 그렇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 민의를 대변하려 했다가 청와대에서 언질이 오면 바뀌는 게 반복된다. 그러면 국민이 집권당을 집권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허수아비가 된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에는 국민과 직접 하는 방법 이외에도 집권당이 하는 방법도 있다. 정당조직은 공약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얻는다. 정당조직이 많은 표를 얻으면 선거 때 집권한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약을 설명할 때 국민에게 들은 것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소통창구는 집권당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기에 집권여당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당 대표까지 한 사람인데 그래서 더 의아하다.
윤여준 : 해온 분이지만, 취임 이후를 한 번 봐라. 당이 대통령의 통치 도구로 전락했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대통령은 집권당을 활성화해야야 한다. 당과 같이 활동해서 국민과 교감하고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안 한다. 이유는 권력을 나눠주기 싫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권력을 나눠주면 되레 권력이 더 커지는데, 이걸 나눠주면 약해진다고 보는 듯하다.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정치를 낭비라고 생각했다. 자원의 낭비, 정력의 낭비, 시간의 낭비라고 봤다. 그러니 효율성 위주로 갔다. 그렇게 가다가 다 망가진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CEO출신이 아니라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국가주의 공공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통령이 결정했으면 뭐든 하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경제민주화 문제를 어떻게 보나. 경제민주화는 국민적 지지도가 높다. 이를 등에 업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텐데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속도조절을 이야기한다. 새누리당도 거기에 보조 맞추고 있다.
윤여준 :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이 100을 얻겠다고 해도 70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재벌의 힘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으로도 쉽지 않다. 재벌 사회의 물적 기반이 워낙 방대하고 강고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재벌 권력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적대적으로 가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선거 때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벌기업의 부조리한 것은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이 대선 때 약속한 것에 비해서는 후퇴했고, 국민 기대에는 흡족하지 않지만 의지는 있어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신뢰해 줘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일거에 이룰 수는 없다. 대통령의 입장과 고충은 이해해줘야 한다. 대신 야당, 언론, 시민사회 등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줄기차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하는 게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 힘으론 어림없다. 대통령에게 힘을 줘야 한다.
프레시안 : 재계의 힘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윤여준 : 유형, 무형의 압력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말 못할 고충이 많이 생긴다.
ⓒ프레시안(최형락)
"안철수, 국민 마음에 불을 확 지폈어야 했는데..."
프레시안 : 야당은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불안정성이 지속될 것 같다. 불안정성의 중심에는 안철수 의원이 있다. 작년 대선 후보 때와 현재 국회의원과 비교해서 변화된 부분이 보이는가.
윤여준 : 대선 이후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그러나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안철수 의원은 작년보다는 현실감각이 더 생긴 듯하다. 대선이라는 짧은 기간에 집약적으로 경험한 것에서 많이 깨달은 것 같다. 또 안철수 의원이 자신에게 하는 쓴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러한 쓴소리를 안 의원이 편안하게 듣는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쓴소리를 하면 안 의원의 얼굴에서 싫은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정치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 부분이 바뀌었다.
프레시안 :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내일' 이사장을 맡았다. 어떻게 보나.
윤여준 : 현재의 양당 구조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참 편하다. 지게와 지겟다리로 구성된 한자 '사람인(人)' 구조로 서로 기대기 편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국 정치의 쇄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양당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최교수와 같은 생각이다.
구조의 변화는 단기간 혼란이 올 수 있다. 하지만 혼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혼란이 두렵다면 지금 한국 정치는 혼란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나? 새로운 혼란이 무섭다는 이유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최장집 교수는 사회적 약자 등 대의 되지 못한 민의를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여준 : 공감한다. 한국 정치는 독과점 체제와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여야 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대로는 오래 못 가기 때문에 미리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서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우리 역사에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당을 경험해보지 못한 탓에 안철수 신당의 진로를 섣불리 확신하기 어렵다.
윤여준 : 모든 법과 제도가 거대 정당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다른 세력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하나하나 열어야 한다. 안철수 의원에게 이것은 기본 핵심 과제다. 이당도 싫고 저당도 싫으니까 새로운 세력을 지지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을 극복하든지, 통합을 하든지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안 의원도 생각하고 있기에 최장집 교수와 장하성 교수를 모셔다 싱크탱크를 만든 게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준비하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지난 대선 때 자신의 새정치를 말했어야 했다. '이런 구상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그것은 지지 하락으로 귀결됐다. 출마 선언 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그정도 지지율로는 단일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작년에 안철수 의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선 출마 선언하는 것을 가슴 떨려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선언문을 보고 실망했다. 대학 교수라서 그런지 선언문이 세미나 발제문 수준이었다. 감동을 줘서 국민의 마음에 불을 확 지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언을 통해서 국민에게 감동을 준 다음, 그 힘으로 양당 구조를 밀고 새로운 세력으로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언문을 보면서 지난 1년 동안 뭐했나 싶었다.
프레시안 : 야권의 불안정성을 지역적으로 환원하면 호남이 아닐까 싶다. 윤 장관도 얼마 전에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앞으로 호남지역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프레시안(최형락)
윤여준
: 아주 고무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2주 전에 광주를 갔었다. 거기서 만난 분들이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지식인이었다. 연세도 40대부터 60대였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들은 광주가 망월동으로 상징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정치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이곳에서의 기득권에 안주해 아무것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이것을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를 제대로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과연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안철수 의원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 역시 여러분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러면 큰일 아니냐'고 하더라. 내가 그들에게 확신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자신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호남은 정치에 옛날처럼 참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것은 한국 정치에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프레시안 : 안 의원이 호남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인 것은 새로운 세력의 출발이 민주당을 뭉개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윤여준 : 만약 안 의원이 그런 식으로 하면 호남 사람들이 안 의원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을 대체하는 세력으로 정치를 한다면 호남도 금방 알아챈다. 무엇 때문에 안 의원을 호남이 지지하겠는가. 그런 모습이 보이면 안 의원을 밀지 않을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을 대체하는 자기 세력을 원하는 게 아니다. 호남은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느끼기엔 호남은 고립된 것에 대한 의식을 바꾸고 싶어한다. 한국의 새로운 의식을 끌어갈 세력으로 안철수 의원을 생각하는 것이지, 호남에서 민주당의 대체제로 안철수 의원을 원하는 게 아니다. 안 의원도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민주당, 그 이름과 역사가 아깝다"
프레시안 : 재·보궐 선거나 지방선거 등이 앞으로 있는데, 선거라는 게 현실적으로 힘의 역관계로 비쳐지지 않겠나.
윤여준 :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남의 민심 변화가 어느 수준이고 어느 방향이냐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호남만 염두에 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김한길 대표의 말에 따르면 야권이 분열하면 새누리당이 이득을 보는 것 아닌가. 선거라는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공식을 깨기가 쉽지 않을텐데.
윤여준 : 다수당 체제로 가면, 야권이 분열되면 상대적으로 여권이 유리하다는 평가는 산술적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여권이 이긴다 해도 그렇게 가야 한다. 국민도 알아야 한다. 야권에서 좋은 후보 내서 경쟁해야 한다. 좋은 후보가 나왔는데 국민이 야권에서 여러 명 나왔다고 여권만 찍겠는가. 야권 단일화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며 단일화만 내세우면 새로운 세력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어느 후보가 좋으냐를 보고 투표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보수 진영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어느정도로 보나.
윤여준 :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다르다. 새누리당에서도 이렇게 당이 나가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의원도 있다. 어떤 경로로 새누리당 의원이 됐든, 당이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분들은 절망적인 수준이다. 번민하고 있다. 그런 분들이 안철수 신당이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고 수행할 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겠나. 여기저기서 나도 합류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프레시안 : 민주당의 진로를 어떻게 전망하나.
윤여준 : 그간 민주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보면 그 이름이 아깝고 역사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해주기를 많은 이가 바랬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국민의 60%가 넘었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못했다.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대선 이후에 보여준 모습들이 더 실망이었다. 그러니 지금 당 지지율이 20%로 못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올해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이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지켜본다.
프레시안 : 반전이 가능할까.
윤여준 : 인적 쇄신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현재 당 지도부가 바뀌지 않았나. 무엇인가 바꿔야 산다는 의식은 있는 듯하다. 그러한 노력을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지 않겠나. 작년 정기국회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정기국회였지만 아무 의제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슈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 야당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미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프레시안 : 그래도 현재로서는 새누리당에 비해선 주목받는 대선후보들이 있지 않은가. 손학규,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등. 이들을 중심으로 활력이 돌 수도 있지 않을까.
윤여준 : 그들 본인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나. 인물수 로 보면 새누리당보다 희망적인 자산으로 본다. 하지만 사람이 많다고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고된 대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은 조용했다. 박 대통령은 4일 한-모잠비크 정상회담에서 게부자 모잠비크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농촌 발전 경험과 새마을운동 정신은 모잠비크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새마을운동' 세일즈를 했다.
이정현 신임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만나, '목욕탕 토크'를 제안하는 등 정부의 불통 이미지 불식을 노력했다.
그러나 청와대 바깥의 상황은 달랐다. 취임 100일을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고언이 넘쳐흘렀다. '친정'인 새누리당도 고언에 앞장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정부는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정부는 그동안 정부조직법 지연, 인사실패, 소통부족 등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일자리, 안보, 경제 무엇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허비한 시간은 뼈아프다"고 말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안겨드린 부분도 있으며 지금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자축하고 100일상을 받아서 잔치를 벌일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집권여당마저 아쉬움을 표한 박근혜 정부 100일을 세 가지 열쇳말로 정리해봤다.
['윤'창중] "'밀봉'으로 시작해서 '그랩'으로 끝난 100일"
▲ "격려차원에서 툭 쳤을 뿐" 윤창중 '성추행' 부인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5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100일은 '밀봉'으로 시작해서 '그랩(grab)'으로 끝난 인사참사였다"고 지적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지난 100일의 '대표 인물'로 내세운 셈이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인수위 주요 인선 발표 때 밀봉된 봉투를 발표장에서 뜯는 장면을 연출해 '밀봉 인사' 논란을 자초했다. 또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일로 경질됐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달 11일 해명 기자회견 이후 24일째 칩거 중이다.
윤 전 대변인이 '박근혜 1호 인사'임을 감안하면 전 원내대표의 표현은 과하지 않다. 박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중 무려 14명이나 낙마하는 등 '인사 정책'이야말로 박근혜 정부 100일의 최대 오점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이날 발표한 '전문가 평가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각 분야 전문가 143명 중 69명이 인사정책을 '잘못하거나 미흡한 정책' 1순위로 꼽았다.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한 전문가 74명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었을 때도 '독선적 불통 리더십'과 함께 '인사실패'가 꼽혔다.
정부가 중요한 성과로 보고 있는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전체 응답자 중 48.2%로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부정적 평가를 한 36명의 전문가 중 23명은 '청와대 참모의 국격훼손 행위'를 그 이유로 들었다. 윤 전 대변인이 지난 100일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됐다는 방증인 셈이다.
['창'조경제] 3대 미스터리 중 하나, 100일 지났지만 현장에서도 갸우뚱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정치부장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한 만찬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창조경제'가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속마음'과 함께 3대 미스터리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이제 미스터리가 풀려서 '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이루어져간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창조경제의 주무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도 오는 5일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발표한다. 앞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3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내일(4일) 국무회의를 거쳐 6대 전략과 24개 추진과제를 발표할 것"이라며 실현계획의 개략적인 내용을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반응은 차가웠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창조세대'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 맘껏 기업을 만들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창조경제의 실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라며 "그러나 우리 정부가 창조경제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취임 100일을 맞이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서민경제로 구체화되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화려한 구호를 걸었지만 지금까지 창조경제의 개념은 안갯속에 있으며, 일자리 창출은커녕 이미 대량해고된 사업장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엔 언급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현장의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3일 발표한 전국 중소기업인·소상공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중소기업 정책인 '벤처·창업 생태계 선순환 방안'의 실효성을 묻는 질문 대해 "그저 그렇다"는 답변을 한 응답자는 전체의 55%에 달했다. "매우 낮다"는 답변을 한 응답자도 전체의 12.4%였다.
['중'산층] '중산층 재건' 위해서 시간제 일자리 창출한다?
▲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합동 브리핑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중산층 재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가계부채·사교육비 부담 경감과 일자리 확충 및 대·중소기업 상생 등 '3개 분야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따라 붙었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에도 '중산층 70% 달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첫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고용률 70%와 중산층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추격형에서 선도형 창조경제로 근본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3년 경제정책방향'의 초점도 '중산층 재건'이 주요 기준이다. 일자리를 늘려 중산층 숫자를 늘리고 가계부채 부담을 정부가 일부 덜어주면서 기존 중산층의 이탈을 막게 했다. 구체적으로는 일자리 창출 부문 관련,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 목표 60% 초과달성을 통해 민생안정을 지원토록 했다.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서민금융지원도 강화됐다. 국민행복기금을 신설해 채무재조정과 고금리 전환대출이 확대 추진토록 했다.
이에 당시 새누리당은 "무너진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 '중산층 재건 프로젝트'에 대한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앞서도 국민행복기금 등을 통해 가계부채 부담을 덜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도덕적 해이가 예상된다", "국가의 재정부담 해법이 없다", "농어가 부채 등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 상태였다.
중산층 재건의 '핵심 정책'인 일자리 창출 방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장시간 근로 해소와 양질의 시간제 근로 도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하는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을 발표했다. 특히 2017년까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93만 개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3~4% 수준인 경제성장률로 실현 불가능한 '고용률 70% 목표'를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악용 소지가 다분한 시간제 일자리를 추진하는 것은 고용률 70%라는 수치 달성에만 목표를 둔 채 '나쁜 일자리'가 양산돼도 상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논평을 통해 "비정규직 850만 시대에 여성들과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다"며 "지난 10년 사이 시간제 일자리를 2배가 늘어 175만 명에 이르고 이 중 여성이 74%에 달하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는 50%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장병완 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 축소와 정규직 전환 문제는 도외시하고 시간제 일자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상렬 목사의 방북 3주년을 맞아 ‘한상렬 목사와 6.15정신 계승을 위한 문화제’가 9일 오후 6시 전주시 풍남문 문화광장에서 열린다.
‘한상렬 목사 석방대책위’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6.15를 살리고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위해 북에 갔다가 3년형을 선고받고 이제 8월 20일 출소를 앞두고 있다”며 “이 문화제를 통해 다시 한 번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새기면서 통일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결단이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2001년 금강산에서 개최된 6.15공동선언 1주년 기념 공동행사 당시의 한상렬 목사.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상렬 목사는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맞아 2010년 6월 12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해 70일간 북한에 머물다가 판문점으로 귀환해 대법으로부터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 복역 중이다.
대책위는 문화제가 1부 예배를 시작으로 2부 문화제, 3부 저녁식사로 이어진다고 안내했으며, 문화제에는 △장애인 오카리나 연주 △전교조 중창과 시낭송 △목회자 중창 △어린이 합주와 노래와 편지낭송 △예수살기교회연합 합창단 △남원 살림교회 청소년 율동 △고백연극단 연극 등이 공연된다고 예고했다.
오늘 면회를 다녀왔다는 한 목사의 부인 이강실 목사는 “한 목사는 잘 지내고 있고, 출감을 앞두고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며 “방북 3주년이 지났지만 이번 6.15공동행사가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나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강실 목사는 “특히 올해 6.15공동행사는 북측에서 적극적으로 개최하려 했는데 우리 정부가 거절한 것에 대해 빨리 받아드려서 민족 화해의 길로 가야 한다며 감옥에서도 통일의 문이 열리길 기도하고 있다”며 “한 목사가 6.15공동선언을 살리고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전쟁위기를 막기 위해 방북한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6.15 정신을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3일 MBC 뉴스데스크는 기획특집 기사로 우리 사회의 고절적인 병폐,사회 지도층의 특권주의에 대한 연속보도'를 하겠다며 그 첫 순서로 '특권없는 사회, 의원님은 투잡'을 보도했습니다. 여기에는 교수와 변호사를 겸직하는 의원들의 내용이 보도됐는데, 변호사 겸직의원이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른 보도였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이미 19대 국회 개원 후, 변호사 겸직을 하지 않기로 부산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휴업증명원'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세비 이외의 보수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MBC는 문재인 의원이 변호사를 겸직하면서 마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인 양 보도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MBC는 부랴부랴 해당 동영상을 삭제하고, 다음날 문재인 의원은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지 않다는 단신 뉴스를 내보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은 '문재인도 별수 없이 특권을 누리는 정치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후 였습니다. ' 기자라면 절대 실수할 수 없던 오보'
이번 MBC 오보는 기자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문재인 의원의 변호사 겸직에 관한 오보 소동은 지난 1월에 이미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1월에 19대 국회의원 겸직현황을 발표했는데, 이 당시에 문재인 의원은 변호사를 겸직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 19대 국회의원 겸직신고현황. 휴업 중인 문재인 의원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당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국회 사무처의 자료를 토대로 19대 국회의원 겸직현황을 작성했는데, 이 당시 문재인 의원은 부산 변호사회에 휴업증명원을 제출했고, 이는 국회사무처에는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회 사무처는 지난 과거의 자료로 문재인 의원이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다는 자료를 정보공개센터에 준 것입니다.
정보공개센터의 자료를 가지고 다수 언론이 문재인 의원을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는 의원으로 소개하자, 문재인 의원은 즉각 보도 자료를 통해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었습니다.
▲2013년 1월 25일에 문재인 의원실이 언론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
문재인 의원의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언론들은 문재인 의원의 변호사 겸직이 오보였다고 밝혔으며, 또한 정정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대선이 끝났지만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의 보도자료는 정치부 기자들에게는 빅이슈입니다. 일개 블로거도 모니터링하고 있는 보도자료를 (아이엠피터는 민주당을 비롯한 새누리당 등의 보도자료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 MBC 기자가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법조인 중 황교안 법무장관을 검색한 내용. 출처:로앤비
아이엠피터도 기본적인 포스팅 쓰기의 시작을 보도자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도자료를 그대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장 중요한 팩트 검증을 매번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물에 대한 검증과 검색은 기본입니다.
특히 인사 정책이나 검찰 수사 문제를 파헤칠 때면 그 분야 사이트에서 해당 인물의 자료를 수십 개씩 찾아봅니다. 이번에 MBC 기자가 '특집 기획기사'를 작성하면서 문재인 의원에 관한 팩트를 확인해보려고 했다면 아주 간단했습니다.
▲부산지방변호사회 홈페이지에서 문재인 의원을 검색한 화면,출처:부산지방변호사회
문재인 의원은 부산에서 활동했던 변호사입니다. 그렇다면 해당 변호사협회 홈페이지에 가면 자료가 다 나옵니다. 대한민국 변호사 협회는 지방별로 변호사 현황을 공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변호사가 아닌 자나 정직, 자격 박탈자가 변호사 업무를 진행하며 의뢰인들에게 돈을 받는 등의 사기 행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사실을 MBC 기자는 왜 몰랐을까요? 아니 이것을 전혀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특집기획 기사는 1~2년차 신입 기자들이 작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오보라고 보기에는 기자가 제대로 취재를 하지 않고 뉴스를 내보낸 것이고 한국기자협회 특종상까지 받았던 베테랑 기자가 이런 정보를 사전에 몰랐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습니다.
' MBC의 문재인 죽이기, 정말 지독하고 뻔뻔했다'
요새 대안언론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 대한민국 언론이 보여준 행태가 거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홍보팀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MBC가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한 마디로 문재인은 죽이고 박근혜는 띄워 주자는 방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MBC의 문재인 죽이기는 대선 이전부터 이미 시작됐었습니다.
▲ 2012년 4월 뉴스데스크의 지지율 관련 보도. 출처:MBC 노조
MBC는 지난 4.11총선 직전에 각 지역별 후보들의 지지율을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했습니다. 지지율 격차에 따라 1위 후보를 2위 후보보다 더 큰 사진으로 배치했는데, 유독 문재인 후보만이 손수조 후보와 동일한 사진으로 배치했습니다.
지지율이 비슷해서 저렇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당시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를 보면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를 20% 넘게 앞서고 있었습니다. 송파병의 새누리 김을동 후보와 민주당 정균환 후보의 격차는 겨우 7%에 불과했지만,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의 사진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사진을 보면 증명사진과 같은 화면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손수조 후보의 CG화면이 밝게 웃는 모습인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무뚝뚝해 보입니다.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던 KBS와 SBS에서는 밝게 웃는 사진을 사용했던 점과 비교해보면 MBC가 고의적으로 문재인 죽이기에 앞장 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MBC의 문재인 죽이기는 대선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유세 장면은 항상 리액션샷이 풍부하지만,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유세 화면은 늘 빈자리를 골라 보여줘 썰렁한 느낌을 주도록 유도합니다.
화면에 나오는 문구를 보면 '노무현 정권 때 서민 가장 큰 피해'라는 식으로 새누리당이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강조하면서 민주당은 '이해찬 사퇴 열흘 만에 재등장'과 같은 문구로 낡은 정치 집단이라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원래 선거보도준칙에 따르면 선거 기간 후보자의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 선거준칙이 유독 박근혜 후보에게는 잘 지켜지지만, 문재인 후보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MBC는 화면 편집을 하면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는 최고의 베테랑들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경험이 없거나 역량이 떨어진 인력을 동원해 성의 없는 영상으로 내보냈습니다.
' 문재인 죽이기는 그저 문재인이 죽어야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MBC의 계속되는 문재인 죽이기를 보면서 그저 야당 후보가 당해야할 업보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MBC는 언론사입니다. 언론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의무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언론은 권력의 하나가 될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책임 또한 있습니다.
▲12월 12일 MBC 뉴스데스크 기사. 출처:MBC 뉴스데스크
2012년 12월 12일 대선 마지막을 향해 가던 시점에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집니다. 이날 MBC는 '대선 막바지 흑색선전 공방'이라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 기사를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도내용: 대선 막바지 흑색 선전 공방 ▶ 아예 제목부터 국정원 여직원 대선 개입이 흑색선전에 불과하다고 보도
보도내용:오피스텔 거주자는 국정원 직원인 20대 여성, 내부는 책상과 옷장, 컴퓨터 등을 갖춘 전형적인 자취방 ▶마치 이 오피스텔이 여성이 사는 평범한 자취방에 불과하다고 오히려 스스로 국정원 여직원 보호
보도내용:선관위는 제보자인 민주당 당직자와 함께 내부를 조사했지만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고 물증도 없었다고 밝혔다.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개입이 사실이 아님을 단정함
보도내용:문재인 후보 측은 이미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해당 오피스텔의 이름과 호수, 거주자 가족의 얼굴까지 여과없이 공개한 상태 ▶ 여성의 자취방까지 들어가고 인권을 유린한 파렴치한 사람으로 문재인 후보를 매도
MBC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목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을 국정원 대선개입은 없었고, 이는 문재인 후보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흑색선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을 수사 중에 있으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사건은 MBC가 주장했던 물증도 없는 여성 인권을 유린했던 흑색선전이 아니라 국가를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정원 사건이 왜 중요한지는 문재인 의원의 발언으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문]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하십시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입니다.
저는 검찰이 이 사건을 역사적 책무감으로, 어느 사건보다 신념을 갖고, 반드시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도 검찰도 국정원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처리가 매우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측면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번 수사로 국가정보기관과 수사기관에 의한 대선 여론조작과 정치개입 같은 사태가 또 다시 반복될지, 아니면 종지부를 찍게 될 수 있을지 판가름 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번 수사로 검찰이 스스로의 명예와 법질서를 함께 지킬지 아니면 다시 정치 검찰로 예속될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먼저 이미 확인된 사실만 놓고 봐도 원세훈 전 원장의 국정원은 헌정파괴와 국기문란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음이 드러났습니다. 국가정보원법상의 정치관여죄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해당하는 행위가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수사를 가로막아 진실을 은폐 왜곡하거나 부당한 수사 발표를 하게 한 의혹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꼭 필요한 것은 국민의 주권행사를 왜곡시키는 그와 같은 행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따라서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서 과감하게 최고책임자를 단죄해야만 합니다. 국정원을 오직 국익에만 복무하는 정예정보기관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또한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비극의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런 일을 단죄한다해서 정권의 정당성이 흔들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하는 것만이,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세우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법질서와 정의는 국민들에게 강요해서 바로 서는 일이 아닙니다.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 스스로가 정의로워져야 가능합니다. 검찰의 명예와 자존심, 검찰권 독립도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이 사건은 경찰 수뇌부가 전체 조직의 자존을 저버리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권 앞잡이 노릇을 하다 커진 일입니다. 검찰도 같은 길을 걷는다면, 더 큰 불신과 저항에 부딪힐 게 뻔합니다.
그러면 모든 수사기관, 모든 권력기관이 법의 정의를 팽개치는 꼴이 됩니다. 법질서와 정의는 추락하게 됩니다. 새로 출범한 정부와 대통령에게 족쇄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위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대통령도 법무부도 검찰도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한다는 각오로 각자의 정도를 걸어야 법의 정의가 바로 섭니다. 정권의 신뢰도 높아집니다.
가는 길은 달라도 저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의 정의를 위해서도, 대통령과 정부와 검찰과 국정원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도, 이 사건이 아주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부디 이번 사건에 대한 정의로운 법 집행에 정치적 피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제가 가장 먼저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이기도 하다는 점을 진심어린 충정으로 말씀드립니다.
문재인 의원이 밝혔듯이 제대로된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는 다시금 나올 수 있는 권력기관의 선거 개입을 막는 일이자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만약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이런 일들을 다시 겪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여직원 인권을 들고 나온 이후로 그 여직원이 고도의 정치개입을 했었다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검찰 수사가 정말 중요합니다.
문재인 의원은 자신을 범죄자로 둔갑시키고, 자신을 파렴치하게 여성 인권을 짓밟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만든 MBC에 강력한 항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강력하게 나간다면 오히려 기성 언론이 한 번에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에서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MBC의 문재인 죽이기가 단순히 정치인 문재인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언론은 세월이 지나도 그 공격 대상만 바뀔 뿐 여전히 그 자리에서 언론 권력을 행사하며, 대한민국의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충남도청 신청사 기자실, 9개 언론사가 독점사용하기로 했다. 출처:오마이뉴스 심규상.
요새 아이엠피터는 언론사 설립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출입처마다 전용 공간과 봉투와 대접을 받고 어디서 커피 마시다가 오면 책상에 놓인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기자와 그 기사를 적당히 마사지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하는 언론사 데스크들의 막강 파워가 부럽냐고요?
'기자증' 하나 가지고 모든 특권과 혜택, 그리고 취재원들에게 대접받는 기자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국회가 됐던, 정부청사가 됐던 들어가서 취재를 하고 보도자료를 얻고 싶어도 '정치블로거 아이엠피터'를 대하는 기자들은 '어디서 네까짓 것이 까부냐'입니다.
대한민국은 보도자료 하나 얻으려고 해도 '기자증'이 없으면 국민의 알 권리조차 무시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알권리가 '너희가 알아야만 하는 얘기만 쓸 수 있는 특권'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노무현 죽이기'에 당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문재인 죽이기'를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언론 권력이 얼마나 지독하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권력자들과 결탁하여 죽이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항상 귓가에 맴돕니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려면 지금 우리의 언론을 보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을 향해 사실에 충실하고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이 되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 남아프리카에 현존하는 거북(왼쪽)과 2억 6000만년 전 조상 유노토사우루스. 사진=류크 노턴, <커런트 바이올로지>
지난해 마지막 갈라파고스거북으로 알려진 ‘외로운 조지’란 이름의 유명한 거북이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100살이었다(실은 마지막이 아니라는 보고가 직후 나왔다). 거북이 장수하는 쪽으로 진화한 이유는 단단한 껍질로 내장은 물론 머리까지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단한 껍질을 지닌 다른 동물도 적지 않지만, 거북의 해부학적 구조는 매우 다르다. 흔히 ‘등딱지’라고 하지만 거북의 껍질은 등뿐 아니라 배에도 있다. 다른 동물의 단단한 껍질은 피부가 변형된 것인데 비해 거북의 껍질은 뼈, 그것도 50개의 뼈로 이뤄졌다.
갈비뼈가 점점 확장돼 배를 덮는 등 척추와 어깨뼈 등이 통처럼 변형됐다. 따라서 게가 껍질을 바꾸기 위해 ‘알맹이’만 빠져나오지만 거북은 뼈를 남겨두고 몸만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거북의 뼈가 껍질로 바뀌는 과정이 화석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오랜 거북화석인 2억 1000만년 전의 거북도 요즘 거북과 큰 차가 없었다. 그래서 거북은 진화를 부정하는 창조론의 근거로도 쓰이곤 한다.
» 2008년 중국에서 발견된 원시 거북 오돈토켈리스의 상상도. 그림=노부 타무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거북 껍질의 기원에 관한 200년이 넘는 논란을 잠재운 발견은 2008년 중국에서 이뤄졌다. ‘오돈토켈리스’란 이름의 새로 발견된 거북 화석은 2억 2000만년 전의 것인데, 배의 껍질은 완전히 발달했지만 등 껍질은 부분적으로만 형성된 종류였다.
최근 거북의 기원을 여기서 다시 4000만년 더 거슬러 오르는 발견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왔다. 이번에 발견된 ‘유노토사우루스 아프리카누스’는 고생대 페름기인 2억 6000만년 전 화석인데 거북과 파충류의 중간 형질을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타일러 라이슨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국립자연사박물관 고생물학자 등은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화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 거북의 진화 과정. 왼쪽부터 밀레레타, 유노토사우루스, 오돈토켈리스, 프로가노켈리스. 그림=타일러 라이슨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타일러는 "유노토사우루스는 형태학적으로 현대 거북의 전문화한 등딱지와 다른 파충류에서 발견되는 원시적 모습의 중간에 위치한다. 거북과 파충류의 형태적 간격을 잇는 다리인 셈이다.”라고 스미스소니언의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학술지를 발간하는 셀 출판사도 보도자료에서 “일련의 화석 연구로 거북 껍질의 진화 과정이 분명해졌다. 거북의 껍질은 다른 복잡한 신체구조와 마찬가지로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를 거쳐 점진적으로 변형돼 형성된 것이 드러났다.”라고 적었다.
파충류가 거북의 가지로 갈라져 나온 직후의 모습을 간직한 이 원시 거북은 거북에게서만 발견되는 형질인 9개의 확장된 갈비뼈 등이 있었지만 동시에 거북에게 공통된 형질인 확장된 척추 등은 없었다.
» 거북의 골격 구조.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거북은 뼈를 이용한 껍질로 완벽한 방어장치를 일찍이 완성했지만 다른 동물은 왜 이를 따라하지 않았을까. 연구진은 그 이유가 호흡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대부분의 동물은 흉곽을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가슴에 생긴 공간을 이용해 폐 호흡을 한다.
그러나 거북은 흉곽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호흡을 할 수가 없다. 거북은 배 근육의 수축시켜 만든 공간을 이용하거나 목 바닥의 진동을 통해 공기를 폐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쓴다. 연구진은 “거북의 호흡 체계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밝히는 게 다음 연구과제”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거북 껍질의 진화 유튜브 동영상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volutionary Origin of the Turtle Shell
Tyler R. Lyson, Gabe S. Bever, Torsten M. Scheyer, Allison Y. Hsiang, Jacques A. Gauthier
Current Biology http://dx.doi.org/10.1016/j.cub.2013.05.003
국가보훈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했으며, <TV조선>과 <채널A>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또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에는 '5.18은 폭동이며 희생자는 홍어다'와 같은 비난 글이 도배됐다.
요란했던 5.18 논란,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달 24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해 "1980년 5월 27일 (민중이) 전남도청에서 참담하게 깨진 이후 역사적으로 5월이 이렇게까지 모멸을 당한 적 없다"며 "단지 일베가 난리를 치고, 종편이 까불고 해서 된 게 아니"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일베충'도 자신들 주장이 거짓인 것 알고 있다")
▲ 지난달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 참석에 앞서 국립 5.18 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다. ⓒ연합뉴스
한 교수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10년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다. 5.18 이후 이어진 '민주화'가 30여 년 만에 퇴행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박정희) 유신 잔당과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유신의 핵심이었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있다. 이 자체가 5.18에 대한 모욕적인 상황이 됐고, 도청에서 돌아간 분에게 낯을 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것이 5월에 대한 진정한 모욕의 핵심이고 근원이다."
한 교수는 이어 "우리는 어찌 보면 모두 5.18 마지막 날 도청에서 죽은 사람들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며 "80년대 정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유전자가 돼서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광주의 자식인 셈"이라며 "고향이 '광주'인 것과는 상관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한 교수와 함께 출연한 서해성 성공회대 외래교수 역시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부채를 안고 있다"며 "(이는) 그날 도청에 남지 못한 자의 빚이고, 살아남은 자의 빚"이라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했다. 서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마지막 도청을 지킨 힘과 용기가 우리 시대 6월 항쟁(1987년 전두환 '4·13호헌조치' 발표 후, 6월 10일을 정점으로 20여 일 동안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주화운동)을 만든 근육이었다"며 "이 빚이 '80년대 근육'"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서 교수는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후렴구인 '산 자여, 따르라!'라는 일종의 대중호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단순하게 노래의 뜻만 전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호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나'를 호명하고 불러내는 힘이 노래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또 5.18을 경험한 이들이 광주의 기득권으로 자리하고 '산 자여, 따르라!'를 외쳤던 이들이 한국 사회 기득권으로 진입했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득권을 위한 행진곡이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민중, 민초)를 위한 행진곡'으로 발전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외면했다. '80년 광주 정신'은 교과서 속 사진 한 장에 갇혔고, 광주에서도 도청을 지킨 사람들, 그 안에서도 보상을 받은 사람들로 국한됐다. 이른바 '경험의 독점' 탓이다. 결국 '5.18 광주 정신'은 더 이상의 확장성을 갖지 못한 채 전국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한 교수는 '우리 사회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편성을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부산에서는 '부마항쟁(1979년 10월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박정희 유신체제 반대 민주화운동)'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 마산에서는 '3.15 부정선거(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부정과 폭력으로 재집권을 시도하다가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야기한 사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흐름 아닌가. 그런데 이런 것이 서로 대항하는 기억이 되어 버리고, 그것을 훈장으로 이력으로 삼아서 더 좋은 자리로 간다든지 더 많은 자원을 국가로부터 받아낸다든지 그런 수단이 되다 보니, 광주가 부마와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니까 민주화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내가 그날 도청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며 2013년 5월의 각별한 의미를 되새겼다.
"마음으로 그런 질문을 해본다. 그분들이 그날 거기서 기다리면서 '30년 후,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대한민국은 좋은 세상일 거야'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또 (그분들이) 어떻게 그곳을 지켰겠는가.
그런데 30년 후 대한민국이라는 게 보니까 그때 살아남은 자들은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고, 30년 전 가난한 아이들의 꿈은 정규직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꿈이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신 본당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나라라면, 그날 도청에 남아 있었던 자들의 희생은 개죽음인 것이다.
광주가 다시 우리에게 굉장히 심각한 말을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고 역사가 반드시 바로서야 하는데, '너희들이 광주의 역사를, 이런 현실이 고착화되게 그냥 내버려 둘 거야'라며 굉장히 진하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 지난달 24일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한 한홍구·서해성 교수는 '일베'와 '5.18'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거룩한 방송'을 했다. ⓒ김대현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유신 잔당과 싸운 5.18, 박근혜 정부에서 '개죽음' 됐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뉴스타파>는 3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 후 누리집에 자체 제작한 영상 취재리포트를 올렸다. 이 매체는 이 동영상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국씨와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현황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뉴스타파>는 앞선 기자회견에서 전재국씨가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6년 이상 보유했으며, 이 법인과 연결된 해외은행 계좌로 아버지인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두환 비자금, 장남 유령법인 계좌로 옮겨졌다' 의혹 제기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6년 1월 군사반란 및 뇌물수수 혐의로 총 2205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이 국가에 납부한 돈은 188억 원어치의 무기명 채권을 포함해 총 312억 원에 불과했다.
2003년 6월 전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왜 추징금을 더 내지 않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자신의 재산이 29만1000원뿐이라면서 '낼 돈이 없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1년 뒤인 2004년 3월 이 집안 둘째 아들인 전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167억 원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에 머물던 재용씨는 이 돈이 외할아버지인 이규동씨에서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찰 조사 결과는 그의 말과 달랐다. 73억5500만 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 사건과 관련해 전재국씨가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든 시기를 강조했다. 재용씨에게 들어갔던 비자금이 전씨의 유령법인에 연결된 해외 계좌로 옮겨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유령회사 '블루 아도니스'의 설립일은 2004년 7월 28일. 재용씨가 구속수감되고 5개월 후이자 어머니 이순자씨가 추징금 135억 원을 대납하기 두 달 전 일이다.
유령회사 계좌번호 등 직접 증거는 제시 못 해
▲ 조세피난처 4차 명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 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비영리 독립언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취재한 결과물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4차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뉴스타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Chun Jae Kook)씨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 Corporation)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을 밝혔다고 공개했다. 왼쪽부터 이근행 PD, 김용진 대표, 최승호 PD.
<뉴스타파>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차남인 전재용씨를 연결시켜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전 전대통령이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이후 전씨 일가 아들 셋이 모은 재산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만들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재국씨는 연매출 440억 원에 자산은 290억 원인 출판사 시공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포함해 총 330억 원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부터는 19살짜리 딸의 이름으로 경기도 연천의 대규모 휴양시설을 사들였는데, 땅 값만 17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셋째인 전재만씨 역시 수백억대 자산가다. 한남동 소재 100억 원대 부동산의 소유주인 재만씨는 이를 장인인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 딸의 부정입학으로 유명한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재산도 장남 재국씨와 비슷한 수준이다. <뉴스타파>는 전재용씨가 경기 오산시 양산동 땅을 외할아버지 이씨에게 28억 원에 사서 2008년 한 건설회사에 400억 원을 받고 되팔았다고 지적했다.
전재용씨는 이 한 건에서만 370억 원의 차익을 남겼는데 "(이런 수법으로) 비자금이 돌고 돌아 재용씨에게 들어간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뉴스타파>의 설명이다.
한편 이날 <뉴스타파>는 전재국씨가 아랍은행에 유령회사용 계좌를 개설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은행 계좌번호 등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언론은 전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확인을 계기로 국세청과 검찰이 전두환 비자금에 대해 혹독한 검증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의 김책공업종합대학 정보기술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연이어 압록강하구와 청천강 유역을 비롯한 큰물위험지역들에 대한 침수모의프로그램을 완성하여 있을 수 있는 자연재해를 제때에 방지할 수 있게 됐다고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3일 “김책공업종합대학 정보기술연구소의 과학자들이 큰물피해를 미리 예고하고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최첨단정보기술인 큰물피해막이지원체계를 개발하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로동신문은 “이들이 연구 완성한 큰물피해막이지원체계는 위성사진으로부터 3차원적인 수자지도를 생성하여 해당 지역의 지형에 대한 침수상태를 실시간으로 모의 예측하는 현대적인 체계”라면서 “우리는 대담하게 목표를 높이 세우고 최신과학기술을 연구 도입하는데 적극 달라붙어 최단기간에 중요분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 세워야 합니다.”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록을 실었다.
이 신문은 “연구소의 인공지능 연구집단 과학자들이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한 이러한 정보기술체계를 개발할 것을 목표로 한 것은 불과 몇해 전 부터였다.”며 “방대한 기상관측자료들을 종합분석하고 여러 분야의 최첨단기술이 종합적으로 응용 되어야 하는 연구는 생소하고 아름찬 과제였다.”고 연구가 성공하기 까지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신문은 “소장 신태성, 부소장 김희건 동무들은 과학자들을 최첨단 돌파전에로 적극 떠밀어주면서 이들의 과학 연구사업에서 자그마한 불편이 있을세라 조건보장사업에 관심을 돌리였다.”면서 “일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방조 속에 과학자들은 평양시를 비롯한 우리나라(조선)의 전반적 지역을 그 어떤 큰물에도 끄떡없이 지켜낼 수 있는 큰물피해막이지원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어려운 탐구의 길에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학수 동무의 총지휘 밑에 박찬일, 고송환, 김진성, 리성준, 량철송 동무를 비롯한 연구집단의 과학자들은 기상수문과 수리공학부문의 전문가들과 긴밀한 련계를 가지고 대동강유역에 대한 수십년 동안의 강수량과 갑문들에서의 유입 및 방출량을 전면적으로 조사 분석하였다.”며 “연구집단은 위성사진을 해석하여 지정학적 위치들을 산출해내고 2차원 및 3차원 상에서의 지형묘사와 실시간통신체계를 구축하여나갔다.”고 연구가들의 노력을 부각시켰다.
이어 “자료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무더기비로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는 섬들에까지 나가 사품 치는 물속을 헤치면서 침수좌표들을 확정하기도 하였다.”며 “이렇게 완성된 큰물피해막이지원체계는 예년에 없이 많은 무더기비가 내렸던 해에 반월도와 양각도, 두루섬의 침수실태를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과학적인 자료에 기초하여 안전하게 소개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성과를 설명헸다.
아울러 “연구 집단은 연이어 압록강하구와 청천강유역을 비롯한 큰물위험지역들에 대한 침수모의프로그람을 완성하여 있을 수 있는 자연재해를 제때에 방지할 수 있게 하였다.”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식의 현대적인 큰물피해막이지원체계를 구축하여 수도 평양과 전국의 큰물피해방지에 적극 기여한 이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주시고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 주셨다”고 전해 김정은원수가 연구가들에게 ㅊ특별한 관심을 이울인 거승로 추정된다.
로동신문은 “정보 기술 산업의 개척자답게 인공지능분야에서 세계적인 패권을 쥐기 위한 연구 집단의 최첨단돌파전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 6.15남측위)의 6.15공동행사 실무접촉을 위한 5일 개성 방문을 불허한데 대해 6.15남측위는 3일 성명을 통해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다.
6.15남측위는 “지금까지 보인 정부의 태도는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먼저 “시민사회에 대한 배제 논리이다. 도대체 소통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간 북과 소통하면서 북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증진해 온 시민사회의 노력과 공에서는 눈을 돌린다. 민주사회에서 정부의 이런 고압적 태도를 수용할 시민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정부의 이러한 소통 부재야말로 갈등의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며 “북한에 그 어떤 ‘남남갈등 조장 기도’가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반복해서 강조해왔듯이 이것이 우리 사회에 통할 리도 없으며,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할 만한 성숙한 시민역량을 소유하고 있음은 공인된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세 번째로 “정부는 개성공단 및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는 물론이고, ‘당국간 대화’에 대해서도 전혀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당국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러 기회를 계속 박차고 있는 것은 정부”라고 규정했다.
6.15남측위는 또한 북측에 대해서도 “615북측위원회는 6월 3일 12시 현재까지, ‘군 통신선이 회복되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남측위원회의 거듭된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며 “실망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으로 방문하기 위해서는 군 통신선을 복원하여 관련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면서 “6.15북측위원회가 개성 행사를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남측위원회의 거듭된 요구에 호응해야 한다”고 재촉구했다.
6.15남측위는 “개성 실무접촉 예정일인 6월 5일, 무산된 개성 실무접촉 대신 ‘시국회의’를 개최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향후 방침을 결정해 이를 국민께 보고할 것”이라고 “6.15민족공동행사에 대항 정부의 태도 변화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6.15남측위는 5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시국대회를 통해 6.15공동행사를 불허한 정부에 대해 강력히 규탄할 예정이다.
한편,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지난달 14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북.해외 3자의 공동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지만 안 되면 국제 학술대회라도 외국에서 소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명> 남북관계 복원과 평화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정부는 6월 2일 6.15남북공동행사 관련 실무접촉을 불허했다고 발표하였다. 실망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615북측위원회는 6월 3일 12시 현재까지, ‘군 통신선이 회복되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남측위원회의 거듭된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실망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1. 지금까지 보인 정부의 태도는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시민사회에 대한 배제 논리이다. 도대체 소통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의 이중성’이라는 정부의 잣대만 따르라 하고 통제하려고만 한다. 그간 북과 소통하면서 북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증진해 온 시민사회의 노력과 공에서는 눈을 돌린다. 민주사회에서 정부의 이런 고압적 태도를 수용할 시민은 없다.
둘째, 오히려 정부의 이러한 소통 부재야말로 갈등의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갈등의 진원지는 북이라기보다는 정부다. 북한에 그 어떤 ‘남남갈등 조장 기도’가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반복해서 강조해왔듯이 이것이 우리 사회에 통할 리도 없으며,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할 만한 성숙한 시민역량을 소유하고 있음은 공인된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셋째, 이번 과정에서 정부는 개성공단 및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는 물론이고, ‘당국간 대화’에 대해서도 전혀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기업인 방북을 막는 행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당국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러 기회를 계속 박차고 있는 것은 정부다.
2. 우리는 북측의 보다 성의 있는 태도를 촉구한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으로 방문하기 위해서는 군 통신선을 복원하여 관련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6.15북측위원회가 개성 행사를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남측위원회의 거듭된 요구에 호응해야 한다.
3. 6.15남측위원회는 개성 실무접촉 예정일인 6월 5일, 무산된 개성실무접촉 대신 ‘시국회의’를 개최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향후 방침을 결정해 이를 국민께 보고할 것이다.
4. 6.15남측위원회는 민(民)이라는 제3당사자의 입장에서 남북의 갈등보다는 화해와 통합을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해왔다. 정부도 민간의 이러한 노력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6.15민족공동행사에 대항 정부의 태도 변화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6.15공동선언 발표 13주년을 기념하는 남북.해외 공동행사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을 정부가 2일 불허했다.
통일부는 2일 ‘6.15남북공동행사를 위한 방북신청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 6.15남측위)가 지난 5월 31일 신청한 6월 5일 개성 방문 신청을 2일자로 불허했다고 밝혔다.
앞서 ‘6.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위원장 김령성, 6.15북측위)는 지난달 29일 개성에서 6월 3일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안했으며, 이에 대해 6.15남측위는 지난달 30일 1주일 전 방북신청 규정을 지키기 위해 5일로 수정제의했고 6.15북측위가 31일 이에 동의하는 팩스를 보내온 바 있다.
정부는 “북한은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에는 전혀 호응하지 않으면서 민간단체를 상대로 개성에서 공동행사를 개최하자고 제의하는 등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북한의 태도는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구태의연한 행태로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북한은 이러한 우리사회의 여론 분열기도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진정으로 현 남북관계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 남북당국간 대화에 조속히 나올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정부가 불허하게 된 배경을 6.15남측위에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6.15남측위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승환 6.15남측위 공동대표는 “정부로부터 불허 통보만 받았을 뿐이지 자세한 설명이나 협조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이번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와 관련해서 종합적인 입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6.15남측위는 5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시국대회를 통해 6.15공동행사를 불허한 정부에 대해 강력히 규탄할 예정이다.
흔한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가 사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터넷 이용자 사이에서만 유명했던 일베는 올해 들어 일부 회원들의 역사 왜곡과 호남·여성 비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일베의 게시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글,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민주화'('반대'의 뜻으로 쓰이는 일베 용어) 발언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확산되는 일베 현상을 두고 정치권과 진보쪽 시민·사회단체의 대응은 제각각이다. 애초 진보 진영에서는 무대응이 최선이라는 입장이 우세했다. 싸울수록 오히려 일베를 더 키워줄 수 있다고 우려해서였다. 반면, 일베의 막말과 욕설 강도가 거세지지면서 일각에서는 '사이트 폐쇄' 를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일베를 상대로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추진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일단 일베와 선을 긋는 모습이다. 이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공개한 당보에서 "민주당은 계속 일베와 싸우십시오! 새누리당은 일자리를 위해 싸우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일베 회원 등의 네티즌들이 참여하는 초청 안보강연을 열어 물의를 빚었다.
여러 대응책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사이, 일베의 극성으로 인한 피해자는 늘어만 간다. 일베 현상의 해법은 무엇일까. <거리로 나온 넷우익>(후마니타스) 저자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씨를 만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보다 먼저 등장한 일본 '넷우익'에 비추어 일베 현상의 원인과 해법을 짚어보고자 했다. '넷우익'은 일본 온라인상에서 혐한(嫌韓) 운동을 주도하는 극우 성향의 네티즌을 뜻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특정 대상을 비하한다는 점에서 넷우익과 일베는 비슷하다.
일본 넷우익 오프라인 활동으로 확장됐다는 점, 일베와 달라
넷우익은 일본 최대 극우 커뮤니티 '2채널'을 기반으로 '반재일코리안(재일교포)' '반한국' '반좌익'을 호소하며 "재일코리안, 한국인은 죽어버려" 등의 막말을 일삼는다. 다만 일본 넷우익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회(재특회)' 등의 오프라인 활동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일베와 다르다. 야스다는 "처음 넷우익 현상이 나타났을 때 일본 미디어와 정치권은 '그냥 놔두면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는 사이 넷우익의 주장이 인터넷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했고 재특회가 탄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대응 전략만으로는 넷우익 현상이 사라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베 폐쇄' 주장에 우려를 표했다. "법적 조치를 포함한 권력의 규제가 자칫 표현의 자유 전체를 억압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신 야스다는 일본 사회에서 나타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최근 재특회 시위가 있을 때면 학생·회사원·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재특회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야스다는 "시민들의 항의 덕분에 재특회 시위에 등장하는 막말 플래카드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언젠가는 일본 사회의 손으로 넷우익 현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야스다씨는 또 넷우익과 선을 긋는 일본 보수 정치권과 미디어의 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 정치인과 언론들이 넷우익 현상에 연료를 주입해왔다"며 "직접적인 접점은 없더라도 어느 부분에선가 일본 정계와 넷우익은 밀접하게 연관돼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베 현상에 등 돌린 새누리당, '5·18 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방송한 일부 종합편성채널에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다음은 2일 대학로에서 만난 야스다 고이치씨와의 일문일답.
"넷우익, 인터넷-집단 안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보통사람'"
▲ "넷우익이 일본 사회의 다수가 아닌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 저자 야스다 고이치.
-한국의 '일베'와 다르게 일본 넷우익은 '재특회'처럼 오프라인으로 확장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일본의 넷우익도 처음에는 일베처럼 온라인에서만 활동했다. 일본에서 넷우익 현상이 나타난 결정적 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월드컵 기간 일본인들은 처음으로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직접 마주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신들 안에 있는 내셔널리즘을 재인식하게 됐다. 원래부터 일본 사회에 존재한 라이벌 의식이 자연스레 적대심으로 바뀌었다. 적대심은 점점 한국의 정치 제도·역사·재일코리안을 향한 공격으로 확대됐다.
넷우익 현상을 처음 접한 일본 진보 세력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방관만 했다. 2채널을 단지 '지식이 부족하거나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그냥 놔두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일본의 진보는 넷우익과 싸우는 걸 포기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인터넷에서는 넷우익의 주장이 주류로 자리 매김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재특회가 탄생했다. 물론 넷우익이 일본 사회의 다수가 아닌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넷우익을 '소수의 바보'라고 여기면서 방치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죽어'라는 막말을 듣는 재일코리안 등의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 일본 미디어와 정치권의 방관이 넷우익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는 지적인가.
"넷우익 현상이 확장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넷우익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미디어들도 넷우익 현상이 큰 문제가 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했다. 제가 재특회 등장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넷우익 현상을 기사로 쓰려고 했을 때도 함께 작업하려는 출판사·신문사가 한 곳도 없었다.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였다. 진보 성향 매체들은 그런 기사를 쓰면 오히려 넷우익이나 재특회를 사회적으로 인정해버리게 된다고 생각했다. 보수 매체들은 자신들이 넷우익과 같은 부류 인간으로 취급받을 것을 우려했다."
- 한국과 일베와 일본의 넷우익 둘 다 특정 대상을 적대시하며 비상식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평범한 사람들이다. 왜 유독 온라인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혐오감을 나타낼까.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온라인에서만 공격적 발언을 내뱉는다고 생각한다. 천성이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부터 막말을 하는 등의 행동을 나타낼 것이다. 넷우익들은 그게 안 되니 인터넷에서 공격적인 발언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세상이 안 바뀐다고 생각하는 일부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게 재특회다.
하지만 거리로 나온 넷우익도 온라인 게시판과 다를 게 없다. 재특회 속 넷우익은 집단에 속해있을 때 만큼은 공격적이다. 그런데 한 사람씩 만나서 커피나 술을 마셔보면 굉장히 얌전하다. 그들은 결국 인터넷과 집단 안에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만, 오프라인에서도 집단 사이에서만 자아를 지탱할 수 있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 일본 사회에서는 넷우익을 '애국' '보수'로 분류한다. 이들이 특별한 이념·신념을 가지고 재일코리안이나 한국 등을 비난한다고 보는가.
"넷우익의 주장에 정치적 성향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 있다고 본다. 그들은 보수도 아니고 우익도 아니다. 편의상 넷우익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우익은 아니다. 기존의 일본 보수 세력마저도 재특회 등의 넷우익을 싫어한다. 전통적으로 일본 보수·우익 사이에서는 '사무라이(무사)는 동료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미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하고 있는데, 재특회 등의 넷우익에는 이러한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넷우익들은 스스로 '애국'을 내걸고 있지만, 이들이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가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게 넷우익의 진심이다. '우리가 이 정도로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참고로 최근 일본사회는 이들을 배외주의자·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른다.
- 일베가 특정 대상을 공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해 의식'이다. 진보 쪽으로 쏠린 이념지형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넷우익의 논리도 이와 비슷한가.
"이전 일본 사회는 강자의 입장에서 소수자인 재일코리안을 차별했다. 그러나 재특회는 특이하게도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여기면서 공격을 펼친다. 실제로 넷우익들은 '재일코리안이 일본 언론과 거대자본, 더 나아가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특회가 시위할 때 쓰는 전단지를 보면, '차별 당하는 건 일본인이다' '재일코리안은 세금을 안낸다'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일본 방송국은 한국 드라마만 방송하고, 음반업계는 K-POP만 다룬다, 일본은 많은 부분을 한국에 빼앗기고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재특회의 한 회원은 취재과정에서 '빼앗긴 것을 되찾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넷우익과 한국의 일베는 비슷한 점이 많다."
▲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가 2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 도중 보여준 일본 넷우익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회(재특회)'의 유인물. "일본인 차별을 없애자"라는 제목 아래 "재일코리안(재일교포)은 세금을 안 내도 된다" "의료보험, 수도세 등이 무료다"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책에서 "일부 채널이 보수논객을 프로그램 게스트로 등장시켜 유명인사로 만들고 우익의 집회 시위를 조직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몇몇 종합편성채널이 보수 성향의 게스트를 출연시킨 뒤 이들의 막말을 거르지 않은 채 방송해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방송 경향이 한국의 넷우익 현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는가.
"인종차별주의는 대중으로부터 발생하거나 권력·미디어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낸다. 넷우익 현상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이 재특회 등 넷우익에 연료를 계속 주입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보수 세력은 자신들이 재특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자각하지 못한다. 사실 일본 정치가 중에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처럼 인종차별주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하시모토의 종군위안부 발언은 넷우익의 망언과 다르지 않다. 일본 정계와 넷우익의 직접적 접점은 없지만, 어느 부분에선가 밀접하게 연관돼있을 가능성이 있다."
"학교교육 믿지 않는 젊은 넷우익... 유언비어 따르는 이유 뭔지 고민해야"
- 한국 언론은 중·고교 과정에서의 역사교육이 약화한 것이 일베 회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낳은 배경 중 하나라고 본다. 역사교육의 부족이 일본 넷우익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나.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넷우익인 젊은이들은 학교교육을 전혀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사를 '좌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공립학교 중에서 '새로운 일본 역사교과서' 같은 극우 성향의 교과서를 채택하는 곳은 거의 없다. 젊은 넷우익들은 오히려 '일본 좌익 교육의 희생자'라고 자처한다. 이들은 학교의 평화·인권 교육을 거짓이라 생각하며,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을 진실로 여긴다. 역사교육을 강화해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아마도 교육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의 음모론을 믿으면서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재특회가 시위를 하면 재특회 이상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 '꺼져라' '인종차별주의는 필요없다'는 식으로 항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 저자 야스다 고이치.
- 한국 일각에서는 넷우익 현상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일베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일베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있었나.
"한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신오오쿠보 지역에서 일어난 극우단체의 시위를 계기로, 일본 국회에서도 지난 5월부터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의되기 시작했다. 보수 성향의 아베 수상도 재특회 현상에 '몹시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일부 국회의원은 재특회의 시위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 국가에는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증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이 있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죽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으면 체포되거나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일본 진보세력 안에서는 유럽처럼 시위를 규제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논의가 있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다만 법적 조치를 포함한 권력의 규제가 표현의 자유 전체를 억압할지도 모른다고 우려된다. 나부터도 국가 권력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 아베 정권에 표현의 자유 규제할 권력을 맡겨버린다면, 나 역시 규제 대상이 돼버릴 수도 있다. 넷우익 현상이 방치해서는 안될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법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의 현행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이런 조치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는 법적 규제 논의 외에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재특회가 시위를 하면 재특회 이상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재특회를 향해 '꺼져라' '인종차별주의는 필요없다'는 식으로 항의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하는 학생·회사원·주부들은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다. 시민들의 항의 이후로 재특회 시위에서 막말 플래카드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 넷우익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한다는 뜻인가.
"일본 사람들이 재특회 현상을 국내 문제로 인식하고 나선 것에 의미가 있다. 이전 일본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어도 '피해자인 재일코리안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재일코리안이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물론 동시에 일본사회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특회 등의 넷우익이 표출하는 욕구불만, 분노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 일본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사회 안에 자리한 불안이 넷우익의 바보 같은 주장으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넷우익들이 유언비어와 허위사실에 의존하려고 하는지 직시해야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들은 평범한 넷우익에게 '지금 생활이 괴롭거나 장래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다, 재일코리안 탓이다'라고 위로해줬다. 즉, 재특회 등의 넷우익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재특회 운동 역시 '자신들은 나쁘지 않다' '자신이 괴로운 이유는 다른 사람 탓'이라고 이야기하기 위한 운동이다.
넷우익 자체를 '가난한 젊은이'라고 보는 일각의 시각 또한 잘못됐다. 일본 재특회만 해도 10~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넷우익이 되는 건 아니다. 불안해서, 강한 자신을 되찾고 싶어서 넷우익이 된다. 재특회에 들어가면, 넷우익의 동지가 되면, 소속감을 느끼면서 안정을 찾게 된다. 즉, 불안정한 심리를 강한 대상에 의존해 진정시키려는 것이다. 넷우익 현상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언젠가 일본 사회가 스스로 재특회 등의 넷우익 현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 바라고 있다. 시민들의 움직임을 응원하는 이유다."
- 일베 현상과 관련해 한국사회에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
"한국사회는 일베 현상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일베를 무시하는 것은 일베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특정 지역과 인종을 차별하는 인식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의 힘이 중요하다. 언론이 현실을 직시하고 일베와 관련해 일어나는 문제를 보도해야 한다."
저자 및 책 소개
▲ 거리로 나온 넷우익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출판사 후마니타스.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원제는 <인터넷과 애국>)은 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씨가 1년 반 동안 일본 넷우익의 오프라인 모임인 '재특회'를 취재한 탐사보도물이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12년 일본저널리스트회의상과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을 받았다.
1964년생인 야스다씨는 는 주간지·월간지 기자를 거쳐 2001년부터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서 사회·노동 문제를 중심으로 취재·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외에도 <르포, 차별과 빈곤의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연수생 살인사건> <JAL이 위험하다> 등을 집필했다.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라면 '일간베스트 저장소 사태'는 그냥 이런 식으로 봉합되어 넘어가지 않아야 옳다. "5·18은 폭동"이고 "전라도 사람은 '천해빠진' 홍어요 좌빨"이라는 악다구니는 망해가는 수순에 접어든 나라가 아니고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소리다. 이른바 '지역문제'는 필자가 '당사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애써온 화두였다. 허나 정색을 하며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지역문제'는 그간 분명한 사실(事實)이 어처구니없게도 '진실이 실종되는' 사실(死實)의 과정을 거치고, '부정한 의도가 섞인' 사실(邪實)이 끼어들어 마치 역사적 사실(史實)인양 행세해 온 터무니없는 패턴을 보여 왔다. 심각한 것은 (시정하려는 노력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그 같은 가짜 사실(史實)이 진짜 사실(史實)인 것처럼 청소년 시절부터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들어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넓게 넓게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래 들어서는 친일 인사들의 영향으로 보이는 '허술하기 짝 없는 역사교육'까지 그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장 '5·18은 폭동'도 사실(事實)이 사실(死實)과 사실(邪實)의 과정을 거처 사실(史實)쪽으로 치달았다. '홍어'는 어떤가. '전라도 차별'에는 몇 번의 커다란 사건이 연원(淵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은 보고 있다.
"전라도 사람을 중(重)히 쓰지 말라"했다는 고려 태조 왕건의 유훈(遺訓)으로 알려진 훈요10조(訓要十條), 조정에서 "전라도는 반역의 땅(逆鄕)"이라 일컫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조선조 선조 때의 정여립(鄭汝立)의 난(亂), 박정희·김대중의 치열한 대결로 영호남 편 가르기의 극치를 이룬 1971년의 대통령 선거 등이 말하자면 비극의 씨앗을 제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번 '일베' 사태도 지금 거의 범정부적이라는 의혹을 받으면서 조성되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감안할 때 '비극 씨앗'의 반열에 오르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들 '연원'들은 거의 사실(死實)과 사실(邪實)의 과정을 통해 조작된 채 사실(史實)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들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학계에서 그렇다.
훈요10조는 고려 태조 26년(서기943년) 4월 태조 왕건이 후백제 출신의 박술희란 신하를 내전으로 불러 유언으로 구술했다는 10개항의 '가르침'으로 〈고려사〉 '태조편'에 기록되어 있다. 호남 관련부분은 10개 조항 중 제8조인 〈차령이남 금강 밖 지방은 산세가 거꾸로 달려 역모의 기상을 품고 있으니 결코 그 지역 사람을 중히 쓰지 말라〉이다.
훈요10조가 처음 기록된 시기는 태조 왕건이 죽은 지 70년이나 지난 1013년, 고려 제8대 현종 때였다. 그때까지 훈요10조에 관한 기록은 없다. 불과 10개항의 '가르침'이었으나 현종도 훈요10조를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란의 40만 군사가 침공해 개경이 잿더미가 되면서 사초까지 불타 버리자 현종은 고려사 태조편의 사초를 다시 기록하라고 명한다. 이때 최제안이라는 신하가 최항의 집에 보관 중이던 왕건의 유서라며 가져와 기록에 올린 게 훈요10조라 했다.
최제안과 최항은 당시 3대 정치세력 가운데 백제계 전라도 세력과 대결관계에 있던 진영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는 애당초 왕건의 훈요10조라는 유언이 과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제8조 '전라도 부분'은 조작된 게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무엇보다도 왕건이 전라도 사람들을 싫어할 수 없었던 점을 학계에서는 지적한다. 후삼국 통일의 마지막 단계에서 후백제 문제로 일시 골머리를 앓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왕건은 전라도와 경기만의 해양 세력 도움을 얻어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주변에는 전라도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가 극진히 추앙하던 도선국사도 전남 영암출신이었고, 불리한 전쟁터에서 왕건의 복장을 하고 대신 목숨을 바친 신숭겸도 전남 곡성 사람이었다. 그가 왕위를 물려준 제2대 혜종의 어머니인 장화왕후 오 씨도 전남 나주 사람이었다. 요컨대 훈요10조 중 적어도 제8조는 '수상하다'는 이야기다. 일본인 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 龍 )도 최제안과 최항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조선조 선조 때의 이른바 '정여립의 난'과 그로인해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기축옥사(己丑獄事)도 의문투성이다. 정여립은 직선적이고 적극적이면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입바른 소리 잘 하는 유능한 관리였다. 바로 그 점이 임금의 눈 밖에 나자, 벼슬을 버리고 전주 근교 색장리(色長里)로 낙향해 진안 죽도(竹島)에 서실을 짓고 대동계(大同契)라는 조직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며 유유자적하던 선비였다.
1587년에는 남해안의 섬에 왜구들이 침략하자 관가의 지원 요청을 받고 대동계원들을 이끌고 가 그들을 물리친 적도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때는, 흔히 학자들이 조선조 못난 왕 두 명 중 한사람으로 꼽는 선조 임금 시절이었다. 동인과 서인이 당쟁으로 박 터지게 싸우던 무렵이었다.
당시의 정적들은 정여립을 율곡을 배신한 파렴치한 선비요, 극악무도한 성격의 소유자라며 반역의 굴레를 뒤집어 씌웠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적 지식인이었고 선진적 사상가였으며 민중에 토대를 둔 개혁가라는 평가까지 나와 있다. 특히 단재 신채호는 "천하가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백성 모두의 공유물이라 본 그의 공화주의적 이론은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라고 추켜세웠다.
때문에 지배권력 층은 긴장했을 것이다. 결국 모난 돌이 정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의구심은 정여립이 트인 생각에 혁명적 발상을 한 것은 맞지만, 왕조를 뒤엎을 반역을 모의하거나 실제로 행동을 한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정여립이 반역을 모의했다"는 고변(告變)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모반의 제보를 받고 체포하러 가자, 정여립은 도망치지도 않고 서실이 있는 죽도에서 그냥 '자살'했다는 것이고, 연루자로 체포돼 희생된 사람이 자그마치 1000여 명이나 된다고 했다. 이상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진실을 짐작케 하는 기록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훗날 남하정은 동소만록(桐巢漫錄)에서 "정여립이 진안 죽도에서 놀고 있을 때 선전관과 현감이 함께 가 죽이고 나서 자살했다고 아뢰었다"고 썼다. 서인 출신 예학자 김장생은 송강행록(松江行錄)에서 정철이 정여립의 유인과 암살을 지령한 음모의 최고 지휘자라고 주장했다.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이 극에 이르러 음모가 횡행할 무렵 서인이 동인을 때려잡기 위한 방편으로 정여립이 모반했다고 꾸몄을지 모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죽여 놓고 자살했다 했고, 존재하지도 않은 모반을 존재한 것처럼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연루자가 될 수 있으면 많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기록에 따르면 선비들은 걸핏하면 관련 있는 것처럼 몰려 마구마구 죽임을 당했다. 조대중이란 관리는 전남 보선 순찰 중 정여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하여 장살(杖殺)되었다. 그러나 조대중의 눈물은 아끼던 관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흘린 것이라 했다.
형조좌랑 김빙은 추국장에서 안질에 날씨가 추워 흐른 눈물을 닦은 것이 정적인 백유함의 눈에 띄어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무고를 받고 사형당했다. 말하자면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었던 듯싶다. 내친김에 '모반은 분명히 존재했음'을 기정사실로 강조하기위해 정여립의 고향인 '전라도는 반역의 땅'이라 밀어 붙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사실(死實)과 사실(邪實)을 거쳐 사실(史實)이 되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영남 지역 거의 전역에 어느 날 아침 '호남인이여 단결하자'라고 쓴 전단들이 나 붙는다. 영남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바로 이어 민주공화당 소속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이 대중연설에서 "우리도 단결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자는 그때 기자였다. 그 전단을 호남사람이 붙였다고 믿은 기자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사실(死實)과 사실(邪實) 과정을 거쳐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가 되었다.
일베는 5·18때 희생되어 광주 상무관에 안치된 시신들의 사진에 '배달될 홍어들 포장 완료된 거 보소'라는 캡션을 달았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은 아니었다. 홍어(洪魚)는 '홍어과'의 마름모 꼴 바닷물고기다. 몸길이가 1.5m까지도 되는 맛이 독특한 생선으로, 주로 전남 흑산도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 전라도에서는 결혼이나 초상 같은 '큰 일'을 치를 때 반드시 준비하고 삭혀서도 먹는다.
언제부터인가 홍어는 전라도 사람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면서, 종북·좌빨이라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의미까지 함께 붙어 다녔다. 천해서 무시해도 좋고, 짓밟혀도 별로 할 말이 있을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로, 기득권 가까이 근접해서는 결코 안 되는 계층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필요'에 따라 그리 됐을 것이다.
'만만한 게 홍어 X(수컷의 생식기)'이란 말은 오늘날 바닷물고기 홍어를 가리키기보다 별 볼일 없는 '왕따'나 전라도 사람을 지칭하는 홍어의 위상을 나타내는 의미로 더 익숙해져 있다. 특히 '5·18 폭동'과 함께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좌빨'로 불러댄 일베의 주장을 초등학생까지 포함된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다 인터넷 들어간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 온 것은 따라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그동안 거의 범정부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권 주요 부처의 비호와 지원까지 받아왔다. 국가정보원은 '5·18 폭동'과 '홍어·좌빨'로 말썽이 불거진 이후인 5월24일에도 일베 회원들을 초청해 '안보 강연'을 하면서 개개인에게 18만 원씩이나 하는 '절대시계' 한 개씩을 선물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일베에 일자리 정보 광고를 게재·지원하는가 하면 교육부 장관은 5·18민주화 운동을 '정치적으로 대립된 이슈'라고 광주에서 말했다. '5·18은 폭동'이라 한 일베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바로 그 '대립된 이슈'였기 때문에 국가 보훈처장은 5·18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했을 것이다. 이 역시 간접적인 '일베 노선'의 지원이다. 종편들이 '5·18 폭동' 방송을 해댄 것도 사실상 일베와 어깨를 나란히 한 비호요 지원이었다.
따라서 일베는 단순한 하나의 인터넷 사이트로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내용적으로는 대국민 여론조작과 함께 특히 초중고생 등 청소년 '교육'의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정권의 직할 행동부대 쯤 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일베 사태를 그냥 이대로 봉합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실(死實)과 사실(邪實)을 거친 거짓 사실(史實)이 역사적 진실을 뒤집도록 놓아 둘 수는 없다.
중국은 동북공정에, 일본은 역사왜곡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요즈음이다. 친일인사들의 입김으로 약화일로(弱化一路)를 걷고 있는 이 나라 국사교육부터 당장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사에는 나라의 영혼이 서려있다. 다시 생각해야 한다. 대학 입학수능시험에 문과건 이과건 국사가 필수시험과목이 되어야 한다.
교육을 맡고 있는 부처의 장관이 5·18을 '정치적으로 대립된 이슈'라 하는 사태도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일베의 작태를 감싸고 도와서야 되겠는가. 나라가 좀 제대로 굴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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