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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협동조합 품은 해방촌성당, 장독에 뭐가 들었을까지역 주민과 신자 함께하는 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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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6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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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촌성당에서 다사리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따뜻한 엿기름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메주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서 덜 빨갛다.”
“그럼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지.”
“얼마만큼 넣어야 하지?”
“적당량이지, 적당량.”

지난 20일 오후, 서울 해방촌성당 지하에 삼삼오오 모여 고추장을 만드는 이들은 지난 2월 23일 창립한 다사리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나이가 지긋한 조합원들은 익숙한 듯 장맛을 보며 ‘적당량’과 ‘눈짐작’으로 일관하지만, 젊은 조합원들은 계량기와 레시피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엿기름 삭힌 물에 찹쌀가루를 풀어 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본당 주임사제인 이영우 신부와 조합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고춧가루를 푼다.

한편, 성당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장독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서 있다. 장독 안에 있는 것은 2월에 조합원들이 함께 담근 간장이다. 천일염으로 짠맛을 낸 물에 우리 콩으로 만든 메주, 숯과 고추 등을 함께 넣어 두었다. 장의 맛에는 담그는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사리 협동조합도 가장 맛이 좋다는 ‘정월장’을 담갔다. 4월초, 담근 지 100일이 지나는 날 즈음에 메주를 건져 간장은 간장대로, 메주는 된장으로 숙성시킬 계획이다. 그렇게 1년쯤 지나면 그제야 맛 좋은 간장과 된장이 된다. 젊은 조합원들도 우리 음식에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본 장 담그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지난 2월 다사리 협동조합에서 담근 간장이 익어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시작은 ‘본당 식구들끼리 장을 함께 담가 먹자’는 주임신부의 제안이었다. 이영우 신부는 “안 좋은 첨가물을 많이 넣어 대기업에서 만들어 파는 된장, 고추장 말고 우리가 만들어 먹자”고 했다.

“우리 본당에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는 기술이 있으니까요. 저도 옛날에 시골에서 장 담그는 걸 보면서 컸거든요. 어르신들은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장을 담그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도 좋지만, 함께 만들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잖아요.”

누가 만들지, 판로는 어떻게 개척할지 등 여러 가지 고민을 신자들과 나누던 중 협동조합 이야기가 나왔다. 한 해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 구조를 고민했다. 수익금을 의미 있게 쓰자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사리 협동조합이 시작됐다. 23명의 조합원 중 해방촌성당 신자는 이영우 신부를 포함해 16명, 지역 주민은 7명이다. 출자금은 한 구좌에 20만원, 조합원들은 한 구좌에서 다섯 구좌까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출자했다.

다사리 협동조합 남기문 이사장은 “처음에는 협동조합을 낯설어하는 본당 신자 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을 떠올리면서 이념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도 있었고, 긍정적이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뜻에 동의한 몇몇 신자들과 협동조합이 첫 발걸음을 떼고, 텃밭이었던 성당 한쪽 구석에 장독대가 들어서자 처음에 경계했던 본당의 어르신들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본당 어르신들은 햇빛을 어느 쪽으로 받게 해야 한다, 몇 월에 담그는 게 좋다 등 장독대를 보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겨운 광경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지는 걸 조합원들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남 이사장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마을 단위에서 최적화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에서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앞날을 4~5년 긴 호흡으로 전망하면서 “결국 협동조합의 자양분은 마을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 해방촌성당 주임 이영우 신부가 장독을 열어 간장을 살펴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이영우 신부도 협동조합이 성당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에 뿌리내리기를 원했다. 성당이 모태가 됐지만, 뿌리를 잘 내려 지역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죠.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인다면 도시에서 어르신들과 젊은이가 함께하는 공간도 될 수 있을 것이고요. 잘되면 학교 급식업체나 구청 등에 납품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작지만 어르신들에게 일자리와 수익을 나눌 수도 있을 듯해요.”

고추장은 맛이 깃든 두세 달 뒤쯤, 장은 1년 뒤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고추장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맛있는 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고춧가루 덩어리가 남지 않게끔 끝까지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팔다리가 꽤 고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세 항아리의 고추장을 가득 채워 넣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25년간 해방촌에 살았다는 한 젊은 조합원이 웃으며 말했다.

“혼자 했으면 힘들고 엄두도 안 났을 것 같아요. 집집마다 혼자 만들다 실패한 집이 많거든요. 하지만 같이 하니까 재미있네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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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처럼 통일 말하며 이념·종북 공세 이어갈 것"

 
[통일대박론 점검 좌담회①] 김연철 교수·김창수 실장·이철희 소장
14.03.26 21:28l최종 업데이트 14.03.26 21: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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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오마이뉴스>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열린 '통일대박' 점검 좌담회에 참석한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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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1월 6일)→북한 '중대제안'(1월 16일)→남북 고위급접촉(2월 12일, 14일)→이산가족 상봉(2월 20~25일)→통일준비위원회 설치 발표(2월 25일)→박 대통령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독트린' 발표 예정(3월 28일)

직접 통일준비위원장까지 맡은 박 대통령이 '통일 드라이브'를 제기하고 있는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의 대응은 어떠했나.

각각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해온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와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그리고 이들에 비해서는 한 발 떨어져서 남북관계를 지켜봐온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이 문제들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21일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통일-규제완화 프레임으로 지방선거에 대응하려 하고 있으며, 박정희· 노태우 정권 때처럼 '통일드라이브'와 이념 ·종북 공세를 함께 구사할 것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같은 공세가 가해질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반면 김 실장과 김 교수는 통일대박론의 실체와 이후 전망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두 사람이 '햇볕정책' 그룹 소장파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다음은 그날 나눈 문답이다.

"통일대통령 되려는 생각" - "급변사태론에 근거해 통일대박론 제기"

사회(황방열 기자) : 최근 발언을 보면 김창수 실장은 통일대박론이 실체가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큰 파도가 올 것이라고 보는데 비해 김연철 교수는 의견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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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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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 박 대통령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임기 내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서 언론이 말하는 '통일 대통령'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국민적 합의, 북한과의 신뢰 조성,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미국의 협조,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모호한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철 : 장성택 처형 전후로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졌는데, 이런 상태로 가면 북한 내부에 급변상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만간 통일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통일대박론을 꺼낸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런 의도와 이 담론이 정책차원에서 준비되는 과정과는 굉장한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정부도 내부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꺼내든 통일대박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유지되면서 계속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하나 더 얘기하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는데 통일은 준비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붕괴라는 가정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정책이나 과정, 이런 게 필요 없다. 곧 무너지는데 뭐.

사회 : 이 소장은 어떻게 보시나.

이철희 : 굳이 대비를 해본다면 이전에 야권과 진보세력은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에 방점을 두면, 그 정치적 대척점에는 대한민국 보수의 정통인 분단보수, 안보보수가 서게 된다. 결국 평화의 대비로서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안보보수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대변해주는 것이 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 안보보수의 헤게모니를 상당부분 용인해줬고 앞으로도 그렇게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보수의 이해관계를 통일론으로 표현하는 것 같고, 이것과 대쌍으로 묶인 게 규제완화라고 생각한다. 안보보수만으로 갈 수는 없고 시장보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시장보수의 이해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현 정부에서는 규제완화로 표현된다. 옛날 표현으로 하면 한국 사회의 총노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북한 급변에 무게를 뒀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아버지가 (1972년) 7·4공동성명을 얻어내고 그 이후 어떻게 해왔는지를 봤기 때문에 일종의 학습효과가 작동한, 다분한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통일론과 규제완화를 대쌍으로 패키지로 묶어 가는 것이고,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취했던 '개혁적 보수'는 벗어 던지고 원래 자기 정체성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도 된다. 

나름대로 1년 만에 전체적인 우리 사회 역(力)관계를 잘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정치노선을 제시했다고 본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본인 스스로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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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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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보수와 시장보수의 이해, 각각 통일과 규제완화로 대변"

김연철 : 이 소장 얘기하신대로 국내정치적 접근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이 정부의 통일담론은 결정적으로 국내 정치 전략으로서 종북 공세와 충돌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생각하는 통일은 붕괴론과 급변사태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종북 공세나 색깔론과 충분히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대목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 논리로 보면, 원래부터 이 두 가지는 한 쌍이다. 

유신 때 대통령 선거를 금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드는 이유를 두고 통일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총력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내부에서 정부 비판을 해서되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지난 대선처럼 이념공세를 할 것이라고 본다. 통일담론이란 것을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 야당이 정부 비판하는 것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철희 : 과거 (노태우 정부의) 6공화국이 북방정책을 할 때도 국내적으로는 공안 통치를 했다. 말이 안 되는 두 개가 같이 묶였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 박 대통령이 6월 지방선거를 반드시 이기려 한다는,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보수를 최대한 동원해낼 수 있는 어젠다가 뭘까? 안보라는 개념보다는 통일이 더 긍정적인 이미지이고 폭도 넓다. 햇볕론자들과 대비점도 분명하기 때문에, 통일프레임이 효과가 클 것이다. 

저소득층,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도 선물을 줘야 하는데, 당장 소득을 늘려주는 방안이 안 보이면 전체 분위기라도 들썩들썩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대기업하고 손잡고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뭐가 없다. 어설프게 툭툭 던지는 게 아니라 충분히 고민해서 - 그 고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런 포석을 깔고, 규제개혁 토론회를 몇 시간씩 생중계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로 시달렸던 것을 이번 선거 승리로 완전히 해소·제압하고 가겠다는 열망을 갖는 것 같다. 이를 위해 포인트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착실하게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이 기조로 갈 것이고, 그 이후에도 안보보수와 시장보수를 한 데 묶어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다.

"국내정치적 이용, 남북정권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것"

사회 :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임기도 정해져 있다. 정상회담, 철도연결 등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종북몰이를 계속 하면서도 이게 가능할까.

김창수 : 큰 틀에서 봐야 한다. 통혁당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이 있었음에도 7·4공동성명이 진행됐던 것은 남북 간에 다른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철도도 연결하고, 정상회담도 정례화하고, 노벨평화상도 받아서 통일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도 할아버지가 사상강국, 아버지가 군사강국을 만들었으니 자신은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남한과의 접점을 만들고 있다. 각각 그리는 큰 그림이 있는데, 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린다면 그 과정에서 남북 양 정권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부분은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김연철 : 이번에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좀 더 진전된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드레스덴은 동독의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일단 장소가 갖는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베를린 선언과 비교하는데 큰 차이가 있다. 그때는 남북관계가 다 끊어져서 아무 대화 채널이 없는 상태에서 대화 의지가 있다, 정상회담 용의가 있다, 남북관례를 어떻게 풀어가겠다고 얘기한 것인데 지금은 채널이 있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의제들도 많이 나와 있고, 북한과 채널 가동해서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밖에서 얘기하는 것은 남북관계 보다는 국내 정치적 효과가 중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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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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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김창수 : DJ 베를린 선언 때도 국내 진보세력 일각에서는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야하는데 왜 외국에 나가서 그러느냐고 비판했었다. 박 대통령이 독일 가서 어떤 선언을 하는 것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저는 박 대통령이 독일의 모델을 성공사례로 통일이 이런 대박을 가져온다고 통일 관련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큰 그림을 제시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독일에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론, 동아시아평화협력구상, DMZ평화공원,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을 다 담는 뭔가를 내놓을 것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이 '내년이 분단 70년'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정부 부처는 이에 맞춰서 뭔가 일을 해야 한다. 내년은 북한에게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2차 대전 승전 70주년이다. 국내외적으로 뭔가 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도 대형 이벤트를 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다른 국내정치 이슈는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병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돼도 뭐라고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철 : 말로는 쉬운데 남북관계에서 뭘 만든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된다, 마음만 먹으면 정상회담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남북관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단계와 절차가 있다. 북한도 한번쯤 쇼를 해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7·4남북공동성명 같은 쇼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는 1~2년도 유지되지 않는다. 그게 유지되려면 정부부처 안에서 정책 결정과정도 뒷받침돼야 하고, 상충되는 많은 현안도 정리해야 하고 풀어야 할 부분도 많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정책결정 구조, 철학, 의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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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가 21일 오전 <오마이뉴스>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통일대박' 점검 좌담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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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사라진 민주정부 10년'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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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3/27 08:16
  • 수정일
    2014/03/27 08:1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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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친 통합신당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습니다. 민주당 126석과 새정치연합 4석을 합쳐 130석의 거대 통합신당이 만들어졌습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라는 정치 집단이 합쳐진 만큼 많은 기대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내부를 보면 기존 야당 지지자를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당황스러운지 살펴보겠습니다. 

' 외형은 안철수- 새정치연합이라는 옷을 입다' 

이번 통합신당의 외형은 한 마디로 안철수 의원이 이끌었던 '새정치연합'이라는 옷을 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의 공식 약칭이 '새정치연합'으로 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민주당이라는 약칭이 계속 사용됐던 과거와 비교하면, 민주당이라는 존재가 명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안철수 의원이 가졌던 '새정치' 파워를 이용, 앞으로도 민주당이라는 존재보다 '새정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보이길 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공식 대표는 '안철수'의원입니다. 물론 김한길-안철수 공동 대표 시스템으로 활동하지만, 공식적으로 중앙당 등록에 따른 대표를 '안철수' 의원으로 표기한 이유는 대내외적으로 안철수 의원을 내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아이엠피터는 민주당이 당명이나 당대표를 양보하는 부분에서는 '거인 민주당'이 '꼬마 안철수'를 배려해야 하는 차원으로는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가졌던 '새정치'에 대한 이미지와 지지율만 민주당이 흡수, 외형만 포장해 '바지사장'으로 만든다면, 갈등과 분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시스템을 보면 안철수 대표가 앞에서 나아가고 김한길 대표가 내부에서 밀어주는 시스템으로 갈 듯합니다. 이럴 경우 선거 패배나 어떤 정치 사안의 책임론이 제기된다면, 안철수 의원에게 비난이 집중적으로 쏟아질 수 있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냐, 외부적인 문제냐를 따지고 안철수 대표가 몇 퍼센트, 김한길 대표가 몇 퍼센트 등으로 책임소재를 따지다 보면 내분으로 비칠 공산도 큽니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물론이고 각종 계파가 존재해 있는 새정치연합이 어떻게 계파 간의 갈등을 잘 조율하면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느냐입니다. 

서로 다른 집단이 모였을 때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전권을 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권이 독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보다 더 민주적이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힘의 합체와 분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제일 큰 고민이자, 성공과 실패의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 새정치연합 정강정책에서 사라진 민주정부 10년'

새정치연합이 창당하는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의 역사의식이 논란이 됐습니다.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4·19 혁명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삭제요청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안철수 대표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됐던 부분은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은 더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점은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현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서 바뀌거나 달라진 부분입니다. 
 

 

 


민주당 정강정책 전문에는 '민주정부 10년의 정치·경제·사회 개혁과 남북평화 및 화해·협력의 성과를 계승하되 반성과 성찰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 전문을 보면 민주당에는 있던 <민주정부 10년>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민주정부 10년을 정통성으로 가지고 있던 야권 지지자에게는 충격을 주면서, 새정치연합이 중도 보수 또는 우클릭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정강정책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 무분별한 개발과 개방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체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특권․기득권 강화, 환경파괴라는 대재앙을 가져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분단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긍정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이런 표현과 문구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야권지지자들이 제기했던 '독재 정권의 산업화와 민주화 문제점'을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

중도보수를 포용하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 가졌던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기억과 정통성을 무조건 지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 정당 지지율이 문제인가? 야당 지지율이 문제인가?' 

리얼미터가 2014년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과의 지지율이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새누리당 47.8%, 새정치연합 38.3%의 정당지지율을 보였습니다. 3월 둘째 주에는 새누리당 49.6%, 새정치연합 34.8%를 기록, 첫째주 9.5%의 격차가 14.8%까지 벌어졌습니다. 

언론에서는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벌어지기 때문에 벌써 흔들리고 있다고 하지만 아이엠피터는 야권 지지율의 최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당지지도를 보면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 등으로 지지율히 하락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13.7%까지도 떨어졌습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해졌던 시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보수층의 공격이 극대화되면서입니다. 이때부터 보수층이 집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런 진보와 보수의 지지율은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층이 모두 집결하면서 과거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엄청난 지지율이 박근혜 정권 들어서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려 60%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언론, 관료,검찰,종교권력,보수학계는 물론이고 박근혜 지지자들이 모두 힘을 합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종북논란 등을 내세워 중도층을 공략, 그들을 흡수하고 있기도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야권이 가진 지지율의 한계가 40%내외라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즉 새정치연합이 기존의 전략을 가지고는 언론,관료,검찰,종교권력,보수학계,박근혜 지지자들이 합친 지지율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새정치연합'의 창당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통합이 무조건 성공하리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세력의 합체와 정치적 사상의 변동과 수용이 있다고, 한국의 모든 기득권 세력이 합쳐진 박근혜 정권 지지율을 뛰어넘기 힘든 구조가 현재의 정치판이기 때문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창당했습니다. 이제 진짜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역량을 총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을 빼고도 '새정치연합'이 성공한다면 그들은 진짜 새로운 정치를 선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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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국방위 검열단 '천안함 침몰'4주년 맞아 비망록 발표

 
천안함 침몰사건, "北 소행설 더 이상 거론말라"北국방위 검열단 '천안함 침몰'4주년 맞아 비망록 발표 (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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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6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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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방위원회 검열단이 천안함 침몰 4년을 맞는 26일 비망록을 발표해 북측 국방위원회 검열단이 참가한 진상 조사에 응하거나 북한 잠수정에 의한 폭침 주장을 중단하라는 양자택일의 해법을 제시하고, 이 사건을 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을 막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국방위원회 검열단의 비망록 '백년, 천년이 흐른다 해도 '천안'호 침몰사건의 '북 소행'설은 절대로 통할 수 없다' 전문을 공개했다.

비망록은 먼저 "남조선 당국이 아직까지 '천안'호 사건의 '북 소행'설을 계속 떠들어 댈 심산이라면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무조건 받아들여 사건의 진상부터 명백히 조사공개하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존하고 있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지금이라도 남조선에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판문점이나 기타 합의되는 장소에 '천안'호 침몰사건과 연계된 모든 물증들을 내놓고 세계 앞에서 그 진상을 명쾌하게 해명할 의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비망록은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다시는 '천안'호 사건의 '북 소행'설을 떠들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 확약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천안'호 사건과 관련한 여러가지 의혹을 공명정대하게 밝히기 위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다시는 '천안'호 사건의 '북 소행'설을 거론해대지 말라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주장"이라고 비망록은 부연했다.

비망록은 이와 함께 "현 남조선 당국은 북남관계 개선을 바라는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염원에 맞게 불미스러운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여야 할 것"이라며, "'천안'호 사건을 더 이상 북남관계 개선을 막아나서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두어도 안되며 긴장완화의 걸림돌로 방치해놓아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북남관계 개선과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바란다면 이명박 일당이 '천안'호 사건과 관련하여 취하였던 '5.24 대북조치'와 같은 모든 동족대결조치들을 대범하게 철회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비망록은 "우리가 내놓은 국방위원회 검열단의 현지 파견제의도, 북남 고위급 군사회담 제안도, 판문점 북미 군부 장령급 회담제안도 성사되지 못했다"며, 천안함 침몰사건 당시부터 남북관계의 악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들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백년,천년이 흐른다 해도 《천안》호침몰사건의 《북소행》설은 절대로 통할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검열단 비망록--(전문)


온 겨레를 경악케 하고 온 세계를 아연케 했던 《천안》호침몰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4년이 되였다.
이 기간은 《천안》호침몰사건이 철두철미 극도의 동족대결광들이 고안해낸 민족사상초유의 특대형모략극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만천하에 낱낱이 확증해준 나날이였다.
《천안》호침몰사건이야말로 우리 겨레의 수치이고 비극이다.
그러나 지금 남조선에서는 《천안》호침몰사건 4주년을 맞으며 또다시 반공화국대결광풍이 거세게 몰아치고있다.
남조선당국은 침몰사건이 발생한 3월 26일을 그 무슨 《치욕의 날》,《응징의 날》이라고 하면서 해괴한 광대극들을 도처에서 벌려놓고있다.
당국의 주관하에 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4주기 추모행사》가,서울 《전쟁기념관》에서는 《공동안보쎄미나르》가,광주지방에서는 《〈천안〉함용사 4주기 추모손도장찍기 및 추모헌화》,《추모걷기대회》 등이 일제히 벌어지고있다.
특히 남조선군부는 《〈천안〉함 피격사건상기기간》이라는것을 설정한 가운데 조선서해 5개섬의 열점수역에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참배》와 《해상위령제》라는것을 벌려놓고 각급 해군부대들에서 《적보복의지》를 담은 현수막을 게시하고 《해양수호결의대회》라는것을 진행하게 하고있다.
온 남조선땅이 《천안》호사건을 거들며 광란적인 반공화국대결도가니로 달아오르고있는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검열단은 현 남조선당국이 이미 거덜이 난 동족대결의 꿰진 북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마구 두드려대고있는것과 관련하여 《천안》호침몰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현재까지 제기된 사실들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밝히기로 하였다.

1. 시간이 흐를수록 백일하에 드러나는 특대형모략극의 흑막

2010년 3월 26일 밤 9시경 조선서해 백령도와 대청도 근해에서 남조선군함선 《천안》호가 원인모르게 두 동강이 나 침몰되는 사건이 발생한 그때로부터 50여일이 지난 5월 20일 리명박일당은 그 무슨 《조사결과》라는것을 발표하였으며 그해 9월에는 《최종보고서》를 내놓았다.
결론은 《천안》호가 우리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되였다는것이였다.
《북 어뢰공격》설에 대한 주장은 발표되는 즉시 《온갖 의혹투성이의 종합체》,《해괴한 론리에 의한 억지》 등과 같은 민심과 여론의 신랄한 질타를 면치 못하였다.
남조선경내는 물론 세계각지에서의 비난과 조소는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의 본거지인 미국과 서방나라들에서까지 중구난방으로 쏟아져나왔다.
정견과 신앙,언어와 인종의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정의와 진리를 지향하는 세계의 량심적인 정계,사회계,학계 인사들이 이 사건에 주목하면서 자기의 견해를 무게있게 표명하였다.
벌어진 사태의 정치적배경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들과 물증들에 대한 과학적해명,사건발생과정에 대한 객관적이며 공정한 해석에 준하고있는 그 모든 주장들을 총괄해보면 《천안》호사건이 동족대결을 위해 고의적으로 조작된 한갖 모략극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우선 사건해명을 위한 《합동조사단》구성부터가 비정상이였다.
올해정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호출된 《민군합동조사단》성원은 당시 미국에서 신분과 경력도 모호한 조사성원들이 합세했지만 그들은 《천안》호침몰조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고 미국장비만 팔아먹기 위해 안달이 난 장사군처럼 놀아댔다는것,영국에서 온 조사성원들도 자기 나라에서 공식파견한것이 아니라 남조선당국에서 막대한 돈을 섬겨바치며 《모셔왔다.》는 사실을 실토하였다.
그러면서 국제공조하에 《북소행》을 《검증》하려고 외국조사단을 《초청》했으나 미국,스웨리예,오스트랄리아,영국에서 온 24명의 조사성원들은 서면으로 된 보고서는 일체 제출하지 않고 이러쿵저러쿵 몇마디 설명으로 그쳤다고 하였다.
명단공개는 호상 비밀에 붙이기로 사전약속이 돼있다면서 절대로 밝힐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외국에서 온 조사성원들이 제이름을 밝히는것을 거절하고 침몰원인에 대한 일가견을 공식발표하지 않은데는 리유가 있다.
《북소행》설을 립증하여 내놓은 모든 자료들과 주장들이 너무나도 황당무계했던것이다.
《북어뢰》의 핵심증거라고 하면서 공개한 알루미니움합금쪼각만 보아도 우리 금속공업부문에서 만든 어뢰제작용 강철합금편이 아니였다.
보다 가관은 그 출처로부터 공개에 이르기까지 《의혹추진체》로 락인된 어뢰추진체였다.
초기 《북 어뢰공격》을 립증하는 어뢰추진체를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유리함에 넣어 내놓았다가 그것이 일반사람들에게서까지 의혹을 증폭시키게 되자 다른 어뢰추진체로 교체하여 전시하였는데 그것이 더 큰 골치거리로 되였다.
어뢰추진체가 우리의것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내놓은 《북의 도면》이라는것도 ㎝단위로 설정한 치수가 실물과 전혀 맞지 않은것이였으며 도면용어도 남조선표현 등으로 되여있었다. 또한 50여일동안 바다물속에 있었다는 어뢰추진체가 몇년동안이나 잠겨있은것처럼 험상하게 부식되고 낡아빠졌다는것이 확인되였다.
어뢰추진체의 출처도 문제였다.
추진체내부에 대한 정밀검사과정에 꽃모양의 흰색물질이 붙어있는 조개껍질이 발견되여 오랜 기간 바다물속에 있었다는 산 증거로 된데다가 추가로 발견된 붉은색물질은 조선동해에서만 서식하는 《붉은멍게》라는것이 판명된것이다.
결국 침몰사건은 조선서해에서 발생하였는데 어뢰추진체는 조선동해에 있었으니 모략과 날조에 하도 미치다나니 초보적인 고려도 없이 앞뒤가 맞지 않게 허둥거린것이다.
《북소행》설의 결정적증거의 하나로 내놓은 《1번》글체는 론할 여지조차 없는 엉터리조작품이였다.
《1번》글체에는 진상해명에 상당한 의미가 부여되였다. 《1번》글체에 대한 분석결과에 따라 침몰사건의 진상이 해득될수 있다는데로부터 《1번》글체에 대한 고정밀분석에는 세계 여러 나라 물리학자 지어 잉크전문생산업자들까지 동원되였다.
분석결과는 물론 완전조작된것으로 판명되였다.
마지크로 쓴 《1번》글체가 폭발이 발생한 가열에도 타없어지지 않은것,침몰된 배의 다른 부유물은 바다염도에 의해 부식되였으나 《1번》글자부위만 생생한것,고열에 견딜수 있는 외부칠감은 타버린 대신 저열에도 타버리는 잉크가 그대로 남아있는것,《1번》글자의 잉크가 남조선에서 많이 쓰이는것,《1번》이 우리의 표기방식이 아닌것 등이 다 그러하였다.
과학적빈곤과 무식으로 서툴게 꾸며낸 《1번》글체는 모략가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 날조의 흑막을 폭로하는 1번이 되였다.
이외에도 현지수역에 대한 우리 잠수함의 《ㄷ자형침투경로》설의 허황성,폭침에 의한 물기둥으로 둔갑한 천둥에 의한 섬광,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부식기간측정놀음,함선좌현에서 일어났다는 폭발에도 불구하고 멀쩡한채로 있는 좌현스크류와 지어 선체가 두동강난 부위에 설치되여있은 형광등까지 생생하게 존재해있는것,과학적부정을 당한 알루미니움흡착물과 자취를 감춘 비공개영상자료 등은 《북소행》설을 립증한 《최종보고서》를 완전한 불량기소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에 대한 반신반의와 의혹,불신이 얼마나 컸는지 당국의《조사결과》발표를 전면반박하는 《〈천안〉함프로젝트》라는 기록영화까지 제작되여 방영되고있다.
기록영화는 《천안》호가 좌초 또는 충돌에 의하여 침몰되였다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립증하는것으로 《북 어뢰공격》이라는 당국의《조사결과》를 단죄하고있다.
특히 어뢰에 의한 폭발시 열분포상태와 《천안》호침몰때 촬영한 영상감시기록을 대비하고 백령도앞바다속의 암초들이 긁혀진 흔적들을 공개하여 《천안》호가 암초에 부딪쳐 변을 당하였거나 미군잠수함과의 충돌로 침몰되였다는것을 객관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여론들은 이 영화를 보면 당국의 《조사결과》에 의혹을 느끼게 될것이며 그것은 《북소행》설을 순식간에 날려보내게 될것이라고 평하였다.
진실을 밝히려는 이 영화가 국제영화축전에서 상영되고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자 당국이 직접 영화상영을 중지시키기 위해 야단법석하고있는 판이다.
지금 남조선《KBS》방송 프로의 하나인 《추적60분》(《천안》함편)이 당치않은 재판을 받고있는것도 그러하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천안》호침몰사건이 《북소행》이라는 당국의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다고 하여 남조선군부가 검찰에 기소한 이 제작자의 《죄목》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4년째 판결을 끌어오고있다. 그것은 아무리 전문가,법학자,언론학자 등의 견해를 들어보아도 누구라없이 《북소행》설이 생억지에 불과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있기때문이다.
당국이 《북 어뢰공격》설을 발표한데 대해 남조선의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조선일보》까지도 《정부의 무신경과 여론결정요인에 대한 무지,군의 무사려(생각부족)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조사결과〉에 대한 불신분위기는 당연하다,〈천안〉함의 진상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밝혀지게 돼있다. 그 심판의 시각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지 않으려면 정파와 리념을 넘어 모두가 진상앞에 정숙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최종보고서》에 대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검증》해야 한다면서 이 《리해불가능》의 자료,《검증》결과를 보고도 북을 주범으로 본다면 기자노릇을 그만두어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남조선언론계에서는 《〈천안〉함폭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언론은 가짜》라고 단정하였다.
《천안》호침몰사건에 대한 언론검증위원회는 당국의 《조사결과》발표에 대해 과학자들과 함께 다섯달가까이 검증한 다음 《더이상〈버블제트〉(수중에서 폭약이 터지면서 선체를 파괴하는 방식)는 없었다.》는 종합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현지에서 《천안》호사건을 조사한 로씨야조사단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판단할 아무러한 근거도 찾을수 없다.》고 실토하고 합동조사에 망라되였던 스웨리예조사단도 《북소형잠수정의 소행》이라는 립장을 공개석상에서 보류하였으며 중국,도이췰란드,로씨야,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천안》호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주장해나서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당국은 《민군합동조사단》의 《최종보고서》에서 제시한 증거와 론리들이 언론검증위원회를 비롯한 단체와 전문가들에 의해 모두 반박당하고있지만 아무런 해명자료와 새로운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귀먹은 벙어리흉내만 내고있다.
여론들은 리명박일당이 당시 《산에서 고래를 만난격의 대발견》이라며 자화자찬했던 폭발물질립증도 국제과학계에 내놓지 못하고 정부에 부역했던 조사성원들의 말잔치로 끝나 결국은 론문통과도 안된 꼴불견이 됐다고 지적하면서 《천안》호폭침이라는것은 들판에 매놓은 황소가 영각소리까지 내며 웃을 일이라고 비평하고있다. 그러면서 재조사할 근거는 충분하지만 《당국이 한사코 회피하는 의지만 보이고있다.》고 조소하고있다.
《천안》호침몰사건은 시간이 가면갈수록,《북소행》설을 떠들어대면 댈수록 우리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다는것만 증명될것이며 그 모략의 흑막을 폭로하는 의혹과 불신만 더 무성해질것이다.

2. 《천안》호침몰사건을 북남대결에 악용한 용납 못할 망동

력대로 대결광신자들은 례외없이 모략과 날조를 자기의 생존방식으로 삼아왔다.
사건발생초기 우리 군대는 비록 침몰된 함선이 남측 군함이고 괴이하게도 장교들은 무사하고 46명의 애젊은 사병들만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이 민족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될 불상사로 간주하고 이에 유감을 표시하였다.
남조선당국에서도 사건발생시 《북의 특이동향》이 없은것으로 보아 《북이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공언하였으며 실지 정세가 긴장할 때에 실행하는 《대북》정보감시태세 《워치콘》도 가동시키지 않았다.
사고가능성으로도 백령도부근의 수많은 기뢰부설에 따른 《기뢰에 의한 사고》와 《천안》호가 낡아 《자연피로파괴》였다고 하였다. 사고수역의 얕은 수심때문에 잠수정의 기동이 어려운 대신 어뢰는 쉽게 탐지될수 있다면서 《어뢰공격에 의한 사고》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에서 조심스럽게 울려나온 《북소행》설은 점차 《북의 직접개입》설로,공공연한 《북 어뢰공격》으로 확대되면서 모든것이 우리와 침몰함선을 련결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우리와의 련관을 부정할수 있는 증거들은 조사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였다.
리명박일당은 밀실에서 《원인발표-대통령담화-국방부성명》이라는 각본을 짜놓고 여느날도 아닌 《지방선거》를 위한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첫날에 《천안》호침몰원인을 《북 어뢰공격》으로 매도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해명하자는 우리의 원칙적인 립장이 내외에 천명된 후 궁지에 빠지게 된 리명박이가 직접 공개석상에 나타나 그 무슨 《대국민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다.
그가 발표한 《대국민담화》는 날조극,모략극의 정체를 은페해보려는 서툰 연극이였고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 광신자의 악담이였으며 사건해명보다는 우리에 대한 그 무슨 《응징》과 《보복》,국제사회를 통한 《제재》를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기도의 산물이였다.
《주요전군지휘관회의》라는 전쟁모의판에 머리를 내민 리명박이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처할것》이라고 반공대결의 열을 올린데 이어 수하졸개들이 덩달아 《단호한 응징》과 《응분의 대가》를 줴쳐대며 대결광기를 부려댔다.
군부는 함선침몰일을 《치욕의 날》이라고 고아대면서 서해상에서 미제침략군 핵잠수함의 참가하에 대규모련합잠수함훈련을 강행하였으며 전연일대에서 반공화국심리전방송을 재개하였다.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을 내몰아 우리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호가 침몰되였다는 엉터리동영상까지 제작하여 살포하도록 하였으며 우리 선박들의 제주해협통과 불허,개성공업지구사업을 비롯한 북남경제협력교류의 전면차단을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특히 리명박일당은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치면서 《천안》호침몰사고가 《북에 의한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회부하여 《테로지원국재지정》 등 국제적제재포위망을 실현하기 위해 날뛰였으며 그 대가로 아프가니스탄파병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양보도 서슴지 않았다.
《북소행》설에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좌익빨갱이》,《친북》으로 몰아댔으며 《조사결과》를 비방하거나 집회를 벌리면 가차없이 진압해버렸다. 나중에는 과학적인 론거밑에 의혹을 표시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잡아 가두었다. 지어 저들의 날조극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 《북편들기》,《북감싸기》라고 삿대질까지 해댔다.
동족대결이 얼마나 골수에 뱄는가 하는것은 통일부장관이였던 현인택이가 며칠전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공동안보쎄미나르》라는데서 《〈천안〉함피격 4주기가 됐으니〈5.24조치〉를 조금 완화하는게 어떠냐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줴쳐대면서 동족대결만이 살길이라고 한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이 무모한 대결광기는 미국상전의 적극적인 부추김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미국은 《천안》호가 침몰되기 바쁘게 우리 군대가 관여했다는 여론을 조성하였는가 하면 남조선당국의 조사과정에 대해 《상당히 신뢰성》이 있다느니,《북 어뢰공격》발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느니 하면서 《대북》적대와 강경대결에로 적극 떠밀어주었다.
남조선당국이 《천안》호침몰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그를 비호하는 미국의 성명이 뒤따랐으며 리명박의 《대국민담화》가 발표되면 그를 두둔하는 미국의 지지립장이 공개되였다.
미국은 워싱톤에서 국무성과 국방성,중앙정보국의 악명높은 모략사환군들로 꿍꿍이판을 벌려놓고 필요한 정책공조와 협력유지립장을 꺼리낌없이 공개한것으로도 부족하여 허울만 남아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사건현지에 대한 《특별조사단》을 파견하게 하는 광대극을 놀아대게 하였으며 이미 조락되여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정전위원회》라는 유령기구를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는 기만극도 공동연출하였다.
동시에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8군사령부를 《전쟁수행사령부》로 전환하는데 따른 북침대비태세에 돌입하면서 정세를 인위적으로 격화시키였다.
《천안》호침몰사건은 추악한 야욕과 흉심밑에 동족을 모해,압살하기 위한 리명박일당과 미제상전과의 치졸한 모략극으로 북남관계사에 특대형범죄행위로 기록되였다.

3.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해명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의 시종일관한 성의와 노력

동족간에 극도의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시킨 민족의 재앙거리인 《천안》호사건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는 그가 북남관계의 개선을 바라는가,악화를 노리는가를 규정짓는 척도로 된다고 말할수 있다.
《천안》호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북남관계사가 그것을 실증해준다.
우리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북남관계가 《천안》호사건으로 하여 더욱 악화된 국면을 타개하고 민족적단합과 평화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갈 일념밑에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남조선당국이 아무런 물증도 없이 침몰원인이 우리의 어뢰공격에 있는것처럼 날조된 첫 《조사결과》라는것을 발표하고 내외여론을 오도하던 그 때에 우리 국방위원회는 대변인성명에서 진상조사를 위한 검열단을 남조선현지에 파견하겠다는 공식립장을 밝히였으며 인민무력부장명의로 괴뢰국방부장관에게 직접 공식서한을 내보내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남측이 우리를 걸고든것만큼 피해자로서의 초보적인 권리이며 더우기 북남간에 이루어진 법적요구이기도 하였다.
불가침에 관한 북남기본합의서 제2장 10조에는 쌍방사이에 발생하는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할데 대하여 명백히 밝혀져있으며 부속합의서 제2장 8조에도 쌍방합의서를 위반하는 사건에 대하여 공동조사를 하여야 한다고 지적되여있다.
남조선당국이 《천안》호사건을 빗대고 동족대결정책의 극치인 《5.24대북조치》라는것을 내놓고 북남관계를 완전파탄에로 몰아갔을 때에도 우리는 여러차례나 남측에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으며 북남고위급군사회담을 개최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과학적으로 해명할것을 제의하였다.
여기에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사건현지에 파견하여 함선침몰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초기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조건에서 북남고위급군사회담을 열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진정이 담겨져있었다.
대결이 아닌 대화로 사건을 공명정대하게 해결하려는 우리의 요구는 또다시 거부당하였다.
리명박일당의 대화거부자세가 명백한 조건에서 우리는 부득불 조미군부장령급회담을 개최하여 《천안》호사건을 다루기로 하였다.
2010년 7월 15일부터 10월 27일까지 7차에 걸쳐 진행된 판문점조미군부대좌급실무접촉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미군측은 앞에서는 우리의 합리적인 제안과 문제해결방도에 관심이 있는듯이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문제해결을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시간을 끌었으며 이 사건을 《국제화》하는것으로 리명박일당의 유엔안전보장리사회 회부책동에 편승하여 《북소행》설을 기정사실화해보려고 하였다.
우리는 너무나도 편견적이고 불손한 미군측의 행위에 높은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이기 바쁘다면 《북소행》설을 확증하는데 리용된 증거물들을 판문점에 가지고나와 공동조사하자는 아량있는 제안도 내놓았다.
미군측은 이 최종적인 요구를 더는 회피할수 없게 되자 접촉을 일방적으로 결렬시키는 무례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내놓은 국방위원회 검열단의 현지파견제의도,북남고위급군사회담제안도,판문점조미군부장령급회담제안도 성사되지 못하였다.
막아서는 난관과 장애도 무릅쓰고 《천안》호사건을 해결하여 북남관계문제를 기어이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그 이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우리는 극악무도한 동족대결책동의 연장선우에서 감행된 남조선군호전광들의 연평도포격도발로 정전직후 처음으로 북과 남사이에 불과 불이 오가고 연평도가 통채로 불바다로 되였던 그 첨예한 전쟁접경속에서도 2011년 2월 8일과 9일 북남관계개선의 인위적인 장애물을 제거할 순수한 목적밑에 북남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안하여 실현하는 대범한 용의도 보여주었다.
남조선당국이 불순한 흉심밑에 2011년 5월 베이징비밀접촉을 제안해왔을 때에도 탓하지 않고 북과 남,해외의 온 민족이 충분히 납득할수 있는 사건해결의 합리적인 방도를 내놓으면서 다각적이며 신축성있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온갖 성의를 다 보여주었다.
사실 리명박일당이 북남비밀접촉을 요구해온것은 북남관계를 전면적으로 파탄시킨 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 어리석은 속타산에서였다.
우리는 원래 리명박일당의 체질화된 동족거부감과 병적인 대결본색에 대해 알고도 남았지만 그들이 《천안》호사건과 연평도포격전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립장을 밝히면서 비밀접촉을 가지자고 여러차례나 제안해온것만큼 이 기회에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갈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를 최종확인해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에 응하게 되였다.
그러나 비밀접촉과정에 나타난 그들의 태도는 민족적화해와 단합,평화와 긴장완화를 바라는 시대와 겨레의 요구에는 아랑곳없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보려는 오직 한가지 흉책실현에만 집착되여있었다.
리명박과 그 일당이야말로 앞뒤가 다른 철면피한들이였고 기만과 위선으로 민족을 우롱해온 역겨운 인간추물들이였다.
우리가 기울여온 진지한 노력과 아량있는 태도는 미국상전의 조종을 받은 리명박일당의 고의적인 훼방으로 하여 허사로 되고말았다.
만약 우리가 내놓은 건설적이며 합리적인 모든 제안들이 다 성사되였다면 《천안》호사건의 진상은 털끝만한 의혹이나 단 하나의 미결건도 없이 이미 세상에 명명백백히 밝혀졌을것이다.

4. 《천안》호침몰사건이 빚어낸 동족대결의 악순환을 단호히 끝장내야 한다.

온 민족의 기대와 념원에 맞게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과학적으로 공명정대하게 끝까지 밝혀야 한다는 우리의 립장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래일도 변함이 없다.
유구한 반만년민족사를 자랑하며 한강토에서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겨레가 외세에 의해 강요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쓰라린 비극을 겪고있는것도 가슴아픈 일인데 무고한 젊은이들까지 수장시키면서 동족대결을 획책한 범죄자들을 반드시 찾아내여 민족공동의 이름으로 준엄한 철추를 내려야 한다.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을 바란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천안》호사건해결을 위해 내놓은 모든 제안들을 지체없이 받아들여 실현하는 정책적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로, 남조선당국이 아직까지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계속 떠들어댈 심산이라면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무조건 받아들여 사건의 진상부터 명백히 조사공개하여야 할것이다.
동족대결의 인위적산물인 《천안》호사건으로 하여 초래된 불신과 반목질시,적대감과 대결을 한시바삐 바로잡는것은 북남관계개선을 위한 선차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로 나선다.
우리는 현존하고있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지금이라도 남조선에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판문점이나 기타 합의되는 장소에 《천안》호침몰사건과 련계된 모든 물증들을 내놓고 세계앞에서 그 진상을 명쾌하게 해명할 의지도 있다.
《천안》호사건의 진상이 영원히 흑막속에 가리워지는가 아니면 밝혀지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
만약 진정으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루려 한다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것이며 반대로 이 사건을 동족대결과 전쟁책동에 계속 악용하려는 흉심을 품고있다면 언제가도 그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을것이다.
남조선당국은 북남사이 대화를 통하여 신뢰를 쌓고 발전적인 북남관계를 이루어나가겠다는 귀맛좋은 언사를 늘어놓는데만 그치지 말고 모략과 날조로 일관된 동족대결의 흑막을 대담하게 밝혀내겠다는 실천적의지를 보여야 한다.
둘째로,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일수 없다면 다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떠들지 않겠다는것을 공식 확약하여야 할것이다.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파견하겠다는 검열단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는것은 초보적인 상식도 결여된 자가당착적인 행동이다.
온 세계가 평화와 안정을 지향해나가고있는 때에 유독 우리 민족만이 한줌도 안되는 대결광신자들의 서푼짜리 모략에 말려들어 적대와 대결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는것은 참으로 통탄할 현실적비극이다.
동족대결의 악몽을 털어버리지 못하면 북과 남은 언제가도 평화번영의 길에 들어설수 없으며 조선반도는 영원히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수 없다.
민족적화해와 평화번영의 대세에 역행하여 치졸한 모략극을 동족대결에 악용하는것은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
남조선당국은 동족대결광들의 모략과 날조극을 그대로 답습하는 《인간앵무새》로 되여도 안되며 미국상전의 날강도적인 조종대로 움직이는 《미국산로보트》가 되여서도 안된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천안》호사건과 같은 반공화국대결광증에 매달린다면 남조선당국은 민족사에 특대형모략극날조의 원흉,천하에 둘도 없는 악질대결광,통일의 훼방군인 또 다른 리명박일당이 될것이다.
《천안》호사건과 관련한 여러가지 의혹을 공명정대하게 밝히기 위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다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거론해대지 말라는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주장이다.
셋째로, 현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개선을 바라는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념원에 맞게 불미스러운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여야 할것이다.
예로부터 과거에 구속되여있으면 전도가 없고 앞을 내다볼 때만이 밝은 미래가 펼쳐진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현 남조선집권자가 선거공약때부터 리명박과의 《차별화》를 표명한데 대해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있다.
그가 누구든 극악무도한 동족대결정책으로 화해와 협력의 북남관계를 대결과 전쟁국면에로 몰아간 리명박의 전철을 절대로 밟지 말아야 한다.
북남관계사를 돌이켜보면 설사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호상 책임을 따지고 사죄를 요구하기전에 회담탁에 마주앉아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지향에 맞게 풀어나간 좋은 전례들이 많았다.
외세가 그어놓은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에 의하여 서해교전이 발생함으로써 함선이 침몰되고 사상자가 생겼지만 그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공통된 일념을 안고 휘황한 앞날을 내다보며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위한 새로운 합의들을 련이어 채택한것이 다름아닌 6.15시대,북과 남의 참모습이였다.
북남관계의 발전과정은 상대방이 수락할수 없는 부당하고 일방적인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의견상이는 뒤로 미루고 아량과 선의를 보여온 나날들로 이어졌다.
반대로 북남관계의 대결과정은 반목과 질시,적대와 충돌을 조장시키기 위해 없는것도 날조해내고 부당한것도 정당한것으로 둔갑시키고 그 책임을 대방에게 무작정 전가시키는것으로 일관되여왔다.
《천안》호사건을 더이상 북남관계개선을 막아나서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두어도 안되며 긴장완화의 걸림돌로 방치해놓아도 안된다. 북남관계개선과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바란다면 리명박일당이 《천안》호사건과 관련하여 취하였던 《5.24대북조치》와 같은 모든 동족대결조치들을 대범하게 철회하여야 한다.
력사는 말이 없다.
그러나 정의와 불의,진리와 허위를 순간순간 놓침이 없이 자기 페지에 정확히 기록하고 후세에 영원토록 소리쳐 전하고있다.
남조선당국은 기존의 구태와 사고에서 벗어나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지향에 부합되게 현명한 정책적의지를 발휘하여야 할것이다.

주체103(2014)년 3월 26일
평 양

<출처-조선중앙통신 201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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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쏜 뒤 서 있는 안중근... 신을 보는 느낌"

[나만의 특종 (18)] <영웅 안중근>의 3·26 순국

14.03.26 12:04l최종 업데이트 14.03.26 13:27l

 

 

2014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기념일이다. 나는 이 날을 기념하고자 그분의 생애에서 가장 장쾌했던 1909년 10월 26일 의거와 가장 거룩했던 1910년 3월 26일 순국을 재구성하였다. 나는 의거 100주년 기념일 날인 2009년 10월 26일부터 아흐레간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장을 그대로 추적한 뒤 순국 100주년 기념일 2010년 3월 26일 <영웅 안중근>을 눈빛출판사에서 펴냈다. 이 기사는 그때의 취재노트를 다시 펼쳐 2회로 축약, 그날의 장쾌한 의거와 거룩한 순국의 모습을 무딘 필치로 그려보았다. - 기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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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수감된 감방의 책상과 의자. 여기서 숱한 유묵을 남겼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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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5일 저녁

1910년 3월 25일 저녁, 뤼순감옥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안중근에게 귀띔을 했다. 

"내일 오전에 형 집행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하얼빈 일본영사관에서부터 안중근을 호위하고 뤼순감옥 수감 동안 내내 감시해 왔다. 안중근은 그 말을 듣고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동양평화론은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안중근은 동양평화론 탈고 때까지 형 집행을 연기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의 뜻이 아닐 거라고 곧 마음을 추슬렀다. 안중근은 천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긴 묵상에 잠겼다. 사형수답지 않게 그의 마음은 명경지수로 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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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을 떠나기 직전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의연한 모습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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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아침

1910년 3월 26일 날이 밝아왔다. 감방 창문 밖으로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중근은 예삿날과 마찬가지로 몸가짐을 가다듬은 뒤 천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이생에서 마지막 아침밥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자 간수 지바가 찾아와 머뭇거렸다. 안중근이 눈치를 채고서는 물었다.

"어제 부탁한 것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쓰지요."
"감사합니다."

지바는 고개를 숙여 예를 드리고는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책상 위의 벼루에 먹을 갈았다. 안중근은 뤼순감옥에 수감된 뒤 숱한 글씨를 남겼다(박은식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200여 점을 썼다고 하는데 현재 확인된 것은 50여 점이다). 그때 안중근의 머릿속에는 문득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란 8자가 떠올랐다. "나라 위해 몸 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은 마음속으로 읊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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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마자막으로 쓴 유묵(안중근기념관 소장).
ⓒ 안중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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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이것을 위해 오늘까지 살아왔던 거야.'

안중근은 붓을 들고는 온 정성을 다해 힘차게 써내려갔다. 

爲國獻身軍人本分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아주 통쾌했다. 마치 농부가 추수를 끝낸 들판을 바라보는 흐뭇한 심정이었다. 아니 목동이 양떼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평화로운 심경이었다. 군인이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뿌듯한 마음이었다. 

안중근은 온갖 정성을 다한 화룡점정의 마음으로 왼손에 먹을 묻힌 뒤 낙관을 찍었다. 

"신품(神品)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지바가 감동하면서 말했다. 

"그동안 고마왔소."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그 뒤 지바는 뤼순감옥 근무를 마치고 간수직을 퇴직했다. 지바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하면서 그의 집 한편에 안중근의 반명함판 사진과 이 유묵 족자를 신주처럼 모셨다. 

그는 그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 1944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도 남편을 따라 아침저녁 안중근의 사진과 유묵 앞에서 예를 드렸다. 그들 부부는 후사가 없자 조카 미우라를 양녀삼아 이 일을 잇게 했고, 미우라는 뒷날 이 유묵을 한국 안중근기념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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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가족, 부인 김아려(마리아) 여사와 큰 아들 분도(오른쪽), 그리고 둘째 준생(안 의사 의거 직후 하얼빈에서).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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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안중근은 형장을 가기 전에 두 아우 정근, 공근을 면회했다. 안중근은 담담한 말로 아우들에게 유언을 받아쓰게 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냄)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은 두 아우가 형의 사형 집행 전 마지막 면회임을 알고 비통해 하자 나무랐다.

"나는 티끌만한 상심도 없는데 너희가 왜 그러냐?"

그 말에 아우들도 마음을 가다듬자 차분한 목소리로 일렀다.

"오직 늙으신 어머님께 효도를 다하라. 앞으로 정근은 공업에 종사하여 한국공업의 후진성을 벗어나는데 이바지해 주고, 공근은 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들 분도를 꼭 신부로 만들어 달라."

안중근은 두 아우와 마지막 면회를 마치고 감방에 돌아온 뒤 어머니가 동생 편에 차입해준 흰 명주저고리와 검정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런 뒤 그 위에 흰 두루마기를 걸친 다음 이승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안중근은 두 간수가 양팔을 잡고 이끄는 대로 교형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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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 3. 26. 10시 직전으로 안 의사가 간수의 안내로 의연하게 교형장으로 가고 있다.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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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구리하라(栗原貞吉) 전옥이 사형집행문을 낭독한 다음 마지막 유언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우리 대한국이 독립해야 동양 평화가 보존될 수 있고, 일본도 위기를 면하게 될 것이다."

안중근의 말이 끝나자 형 집행 간수가 백지를 접어 두 눈을 가리고 그 위에 흰 수건을 둘러맸다. 그런 뒤 안중근을 부축, 계단을 오르게 하여 교수대 위에 세웠다. 

"잠시 기도할 시간을 달라."

구리하라 전옥이 이를 허락하자 안중근은 교수대에서 3분 남짓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가 끝나자 안중근의 목에 밧줄이 드리웠다. 그때가 오전 10시 4분이었다. 곧 흰 천이 내리고 철거덕 교수대 밑 마루가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그로부터 15분 뒤, 뤼순감옥 전속의사가 바닥에 떨어진 안중근 의사의 절명을 확인했다. 

사형 집행 후 안중근의 두 동생은 뤼순감옥 측에 안 의사의 유해 인도를 요구했지만 끝내 일본은 이를 들어 주지 않았다. 안 의사의 유해가 밖으로 나갔을 때 그 묘지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기에 때문이었다.

안중근의 유해는 송판으로 된 관에 안장된 채 그날 오후 뤼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날 새벽부터 내린 보슬비는 하관할 때까지도 내렸다. 이천만 대한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안중근 의사에게 흘리는 눈물이었다. 뒷날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안 의사의 총탄을 발에 맞았던 다나카 세이지로 만철이사의 회고담이다. 

"나는 당시 현장에서 10여 분간 안중근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총을 쏘고 나서 의연히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신(神)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음산한 신이 아니라 광명처럼 밝은 신이었다. 그는 참으로 태연하고 늠름했다. 나는 그같이 훌륭한 인물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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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의사가 순국 후 묻혔을 것으로 보이는 옛 뤼순감옥 묘지, 대련 안중근연구회 박용근 회장이 그 당시 뤼순감옥 측의 사형수 시신 처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안 의사 유해를 특별히 관리해 오지 않은 한, 그것을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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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낙조

그날 안중근 의사의 하관을 마치자 날씨가 활짝 갰다. 그날 해가 질 무렵에는 뤼순 앞바다가 저녁놀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늘이 한 영웅의 순국을 기리고자 베푸는 장엄한 낙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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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옥산에서 내려다 본 천연 요새 뤼순항으로 근세 중, 일, 러시아 3국의 각축장이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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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시인 조지훈은 안중근 의거 그날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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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 지음, <영웅 안중근> 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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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 것은 권총이었지만
그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
당신의 손가락이었지만

원수의 가슴을 꿰뚫은 것은            
성낸 민족의 불길이었네.
온 세계를 뒤흔든 그 총소리는

노한 하늘의 벼락이었네.


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차라리 홍모(鴻毛)와 같이
가슴에 불을 품고 원수를 찾아
광야를 헤매기 얼마이던고

그 날 하얼빈 역두(驛頭)의
추상같은 소식
나뭇잎도 우수수

한때에 다 떨렸어라.

당신이 아니더면 민족의 의기를
누가 천하에 드러냈을까
당신이 아니더면 하늘의 뜻을
누가 대신하여 갚아 줬을까
……….
- <안중근 의사찬(安重根 義士讚)>



안중근 의사 만세!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만세!
영웅 안중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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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 독일 토론회 현장

박근혜 방문 앞둔 독일...한국 동영상 보고 충격

[해외리포트] '위험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 독일 토론회 현장

14.03.25 21:41l최종 업데이트 14.03.25 21:4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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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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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간으로 3월 24일 저녁 6시 30분, 박근혜 독일 방문을 하루 앞두고 베를린 금속노조 IG-Metall의 한 강당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위험에 처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독일 일간지 중 하나인 <타게스짜이퉁>(Taz)의 아시아지역 편집자인 스벤 한센(Sven Hansen)씨의 진행으로 이날의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철도노조 탄압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독일 철도 노조 국제부의 주최로 개최된 이번 토론회에서는 독일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역 전문가인 한스 부크너박사(Dr. Hans Buchner)와 독일의 정옥희 프리랜서 기자, 독일철도노조원인 우베 크루그씨(Uwe Krug)와 함께 한국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잘 알려진 주현우씨가 토론회 패널로 초대되었다. 

한국노조 탄압사례 발표하자 독일 방청객들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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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토론회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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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토론회가 진행되던 중, 방청객석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독일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한스 부크너 박사가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에서 인권적으로 부당하게 탄압받고 있는 구체적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나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후 한국정부의 인권탄압 사례발표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특히 쌍용자동차 노조와 한국철도 노조의 탄압 사례를 이야기할 때 몇몇 독일 방청객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한편, 독일프리랜서 기자이자 한국교포 2세인 정옥희 기자는 독일 언론인으로서 본 한국 언론의 실태를 이야기하고 언론의 자유를 상실한 현 상황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지난 한국의 대선 이후,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구독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방송사인 KBS, MBC는 언론의 기본적 역할조차 상실한 채 종북몰이, 또는 청와대의 홍보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한국측 토론 패널로 초대된 성공회대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는 국정원의 부당한 대선 개입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국정원 댓글 수사 축소 의혹을 받았던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 무죄를 받음으로써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객관적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의 주최자이자 토론회 패널인 독일철도노조원 우베 크루그씨는 한국철도파업 당시의 경찰진압과 보도자료들을 모은 영상들을 보여주며 공권력의 부당한 폭력진압을 비판했다. 그는 자신도 한 명의 철도노동자이기 때문에 이전 한국 철도파업을 지지했었으며 앞으로도 그들을 응원하고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토론회서 큰 관심 받은 '안녕들하십니까' 주현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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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토론회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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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토론회에 큰 관심을 받은 패널 중에 한 사람인 주현우씨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썼을 당시의 심경을 이야기 하며 "안녕하냐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물음이 나비효과가 되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결심을 공유하고 나누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나의 안녕과 이웃들의 안녕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방청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독일 금속노조의 한스쾨브리히(Hans Kobrich)씨는 "독일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주현우씨에게 직접 준비한 가방과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선물했다. 방청객 중 한 사람이었던 파울 슈나이스(Paul Schneiss)씨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한국의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며 세계 외신들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 부족을 비판했다. 더불어 "국제언론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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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 슈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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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 방청객들 사이에는 송두율 교수도 있었다. 그는 "지금 시대의 한국 청년들의 생각을 알게 해준 주현우씨의 말들이 인상 깊었다"라며 "평범한 시민의 입장으로 토론회에 찾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혹여 나의 참여로 하여금 좋은 취지의 행사가 종북몰이로 공격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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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율 교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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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앞두고 다가올 3월 26일에는 베를린에서 독일철도노조원들과 함께 '박근혜OUT' 집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한 교민의 말에 따르면,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 환영대회'도 열리는데, 이에 대한 공지를 올린 페이스북에 '박근혜OUT'집회에 종북 인사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환영회에 사람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글이 게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페이지 게시물은 동포 사이를 대립적으로 갈라놓고 있다며 교민들 사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현재 '박근혜OUT' 집회신고를 한 유재현씨는 "이번 집회에 행정적 절차상 '집회대표자'라고 썼을 뿐, 나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며 "일부 교민들의 종북몰이에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독일에서는 인터넷으로 누구나 집회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는 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보안 단계가 이명박 전 대통령 때보다 한 단계 위인 2단계가 됨으로써 집회장소가 불가피하게 베를린 중앙역으로 변경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독일에서는 시위대 보호가 경찰의 의무이기 때문에, 환영회에 참석한 교민들과의 혹시 모를 충돌을 우려하여 독일 경찰에게 '박근혜OUT' 집회시위대의 특별보호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사회, 다신 유신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지난해 7월과 12월 베를린에서 열린 '박근혜OUT' 집회에 이어 이번 집회에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유정숙 정치학박사는 집회 참여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한국사회가 다시 유신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유신시대 때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더욱이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유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의 물과 밥을 먹고 커온 '나' 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한국의 정치적 현실이 싫어도, 국적이 달라졌어도, 한국은 저의 뿌리이니 한국사회가 좋아지고 멋있어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랑도 하죠. 조작과 탄압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죠. 그리고 그 것이 승인되는 나라는 더욱이 안 되죠. 그런 데서 큰 사람들이 뭘 배우겠습니까? 거기에 적응된 한국 사람들은 싫습니다. 만날 수가 없죠." 

한편으론, 박근혜 대통령이 50년 전 육영수 여사처럼 한복을 입고 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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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소동, ‘국정원 정치’가 빚은 타살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수족’ 이 된 국정원
 
육근성 | 2014-03-25 12:45: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사건과 관련된 국정원 요원들의 자살 기도. 벌써 두 번째다. 협력자 김씨에 이어 대공수사국 중견 요원이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고 자살 소동을 벌였다.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기도했지만 주차 장소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라서 주민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국정원 자살 소동, 과거에도 있었지만

국정원 자살 소동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8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문구용 칼로 할복 자살을 기도했다. 검찰 수사관들에게 신속히 발견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당시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 당선을 막기위해 대선 직전 재미교포를 매수한다. 기자회견을 열어 “김대중 후보가 북한 김정일한테 돈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시키고, 월북한 천도교 교령 오익제에게 김대중 후보 앞으로 편지를 보내도록 해 용공으로 몰았다. 사건을 날조한 것이다. ‘북풍 사건’이라고 불린다.

2005년 안기부 도청사건.  당시 특수도청팀인 ‘미림’의 전 팀장 공운영씨가 수사를 받던 중 분당의 자택에서 자실을 기도했다.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동시에 구속되고 만다. 

이어 며칠 뒤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이수일 당시 호남대 총장이 자신의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청사건과 관련해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사처벌 받은 전직 안기부장도 여럿이다. 장세동, 이희성, 유학성, 안무혁, 이현우 등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안기부장을 지낸 이들은 12.12군사반란 가담 혐의뿐만 아니라 대통령 비자금 조성, 간첩사건 날조 등으로 단죄를 받았다. 

국정원을 현실정치 깊숙이 밀어 넣은 권력 때문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국정원이 정권과 한통속이 돼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위기 국면을 타파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정원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왔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권은 더하다. 아예 국정원을 정치적 국면의 최전방에 내세웠다.  ‘국정원 정치’를 한 것이다.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국정원은 여론을 호도하기위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 공개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자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을 향해 총공세를 폈다.  

학계·종교계가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국선언을 이어가자 또 국정원이 나섰다. ‘이석기 내란 음모사건’을 터뜨려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민주당을 ‘한패’로 몰았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계략에 발목잡힌 야당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정국의 주도권은 여당이 쥐게 돼 주요한 이슈들은 모두 묻히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정치’

댓글 사건 수사가 국정원 ‘윗선’을 겨냥하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을 터뜨렸다.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 배후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채 전 총장를 찍어내기 위해 긴밀하게 움직인 여러 정황이 이미 밝혀진 상태다.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도 ‘국정원을 내세운 정치’의 한부분이다. 사건이 불거진 시점은 부정선거 논란이 확산되며 국정원 개혁 목소리가 커지던 때와 일치한다. 간첩사건을 떠뜨려 위기 국면을 물타기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또 유씨가 서울시 공무원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 간첩이 있다’는 식으로 여론전을 펼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을 종북으로 몰아 6월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다. ‘정치공작’인 셈이다. 

부정선거 논란 비껴가고 서울시장 선거 영향 줄 목적

유씨의 서울시 공무원 채용은 오세훈 전 시장 재임 기간에 이뤄진 일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유씨의 간첩행위를 박 시장 재임기간과 결부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박근혜 정권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집권 1년 내내 정부여당에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국정원이 전면에 등장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터뜨리며 국면 전환을 꾀했다.  

간첩 조작 사건이 해외 주요 언론에 보도되며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딴전을 핀다. 관련 상임위인 정보위원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위원장인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상임위 소집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상기 발언, 국정원이 정권의 ‘정치적 수족’이라는 증거

서상기 정보위원장의 최근 언론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청와대와 여당이 국정원과 얼마큼 밀착돼 있는지 잘 드러난다. 국정원이 정권의 수족 노릇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망언도 등장한다. 24일 방송된 ‘정관용의 시사자키’의 한 대목이다.

정관용: 간첩이라는 거의 유일한 증거가 조작됐다, 이렇기 때문에...

서상기: 간첩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고 그 다음에 국정원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밝히는 게 순서입니다. 달랑 한가지 서류 문제만 가지고...

정관용: 법에 저촉되는 시도를 국정원이 할 수 있다, 이렇게 봅니까?

서상기: 간첩을 잡기위해서, 국가안보를 위해서 여러 가지 덫을 놓을 수도 있고 유인할 수도 있고 회유할 수도 있고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증거가 없으면 날조라도 해서 간첩이라는 ‘덫’을 씌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느냐는 궤변이다. 여당이 이러니 국정원이 큰 잘못을 하고도 뉘우침 없이 억울하다며 자살 소동을 벌이는 것이다. 

국정원이 벌이는 자살 소동. 원인은 국정원을 앞세워 정치를 하려는 박 정권에게 있다. 자살이 아니다. ‘국정원 정치’가 빚은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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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만 1만 마리, 담비가 먹어치워

 
조홍섭 2014. 03. 25
조회수 8052 추천수 0
 

담비 전문가 최태영 박사 인터뷰
5년째 장기연구 생태 비밀 속속 드러나…활동영역 반달곰 필적. 연간 고라니 3~4마리 잡아먹어

범과 늑대 사라진 생태계 건강 지키는 최상위 포식자, 숲속 씨앗 뿌리는 농부 구실도

 

da1.jpg» 우리나라와 유라시아에 사는 담비는 세계의 담비 7종 가운데 유일하게 집단생활을 하면서 고라니, 노루,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를 사냥한다. 지리산 차일봉에서 연구진이 놓은 꿀에 절인 건포도를 담비 무리가 맛있게 먹고 있다. 이들이 그해 태어난 어미와 자식인지 수컷끼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땅에 사는 야생동물 가운데 생태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드물다. 발자국과 흔적을 쫓고, 배설물을 뒤적이며, 무인추적장치를 매달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전문가도 적을 뿐더러 선뜻 연구비를 내놓는 곳도 없다.
 

그러나 멸종위기종인 담비는 드문 예외이다. 담비의 행동과 서식 범위, 먹이, 사냥, 생태계 영향 등에 관한 연구가 2009년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시작해 국립생태원으로 옮겨온 현재까지 5년째 계속되고 있다. 종 복원을 위해 반달가슴곰과 산양의 연구가 이뤄진 것을 빼고, 야생 포유류 연구로는 유일한 장기 연구가 담비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담비 연구책임자인 최태영 국립생태원 생태복원연구팀장을 지난 18일 국립생태원에서 만나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의미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da2.jpg» 지난 18일 국립생태원에서 만난 최태영 국립생태원 생태복원연구팀장. 담비 장기연구 프로젝트 책임자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왜 담비를 연구하게 됐나.

 

담비는 우리나라 포유류 가운데 가장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종이다. 특히 우리나라 등 아시아에 분포하는 담비는 유럽과 미국의 담비에 견줘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포유류 생태 연구는 러시아가 활발하지만 극동 러시아에는 담비가 별로 없다. 이처럼 알려진 것이 없다 보니 일반인에게는 신비로운 동물로 비치기도 한다.”

 

-‘범 잡아먹는 담비가 있다’는 속담도 있는데, 담비란 어떤 동물인가.

 

아무리 용감하고 무리 지어 사냥한다 해도 호랑이나 표범을 공격하진 못한다. 또 사람을 공격한 사례도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속담엔 그럴듯한 구석도 있다. 담비는 사실 범도 잡기 힘들 만큼 민첩하다. 주로 땅 위로 다니지만 나무도 잘 탄다. 다니기 힘든 조릿대 밭을 만나거나 다람쥐 등을 사냥할 때, 또는 주위를 경계할 때 나무로 올라간다. 담비의 배설물 속에서 고슴도치의 가시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고슴도치를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은 담비밖에 없는 것 같다. 호랑이는 잡은 동물은 여러 날에 걸쳐 먹는데, 담비는 까치나 까마귀처럼 호랑이가 잡은 동물 주검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담비가 범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따라다니는 모습을 옛 사람들이 목격했을 수도 있다. 담비는 낮에 활동해 눈에 잘 띄기도 한다.”

 

-장기 생태 연구로 이어진 이유는 뭔가.

 

원래 연구 주제는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생태축 관리방안’이다. 지리산과 속리산 등에서 담비 8마리에 원격 무선추적장치를 달아 조사해 보니 담비의 행동 반경은 최고 60㎢에 이르러 멧돼지·삵·너구리 등 다른 포유류보다 수십 배 넓었고 반달가슴곰과 비슷했다. 넓은 영역을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도로를 자주 넘나들기 때문에 생태축과 생태통로를 관리하는 데 유용한 대상이 됐다. 최상위 포식자로서 담비가 있다면 다른 야생동물도 살 수 있는 건강한 숲이다. 생태계 관리를 위한 핵심종이자 지표종, 우산종인 셈이다."
 

■ 20배 무거운 동물도 협동 사냥

 

da3.jpg» 사냥한 고라니를 다시 찾아와 먹는 담비 무리.

 

da4.jpg» 담비가 협동사냥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고라니 성체를 쓰러뜨린 뒤 뜯어먹었다.

 

da5.jpg» 담비 배설물 속의 멧돼지 털. 담비는 어린 멧돼지를 즐겨 잡아먹지만 성체는 주검만 먹을 수 있다. 

 

-담비가 무리 지어 멧돼지와 고라니를 사냥한다는 중간 연구결과를 지난해 발표해서 큰 관심을 끌었다. 배설물 분석 결과인데, 직접 사냥했는지, 주검을 먹은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배설물 속 털을 분석한 결과 담비 먹이의 29%가 멧돼지, 고라니, 노루였다. 성체와 새끼는 털로 구분하는데, 고라니와 노루는 성체와 새끼가 반반 섞여 있고, 멧돼지는 새끼가 90%를 차지했다. 동물 주검은 여름에는 곧 부패하기 때문에 주로 겨울철에 먹이가 된다. 그런데 이들 대형 포유류의 털이 연중 고르게 나온다. 사냥한다는 뜻이다. 멧돼지 성체의 털은 주검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담비는 어떻게 사냥하나.

 

고라니 새끼는 담비를 보고 본능적으로 관목숲으로 숨어든다. 그런데 담비는 몸이 가늘고 길기 때문에 덤불에 구애받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어 고라니를 잡는다. 몸무게 2~4㎏에 꼬리까지 1m인 작은 담비가 대형 포유류를 사냥할 수 있는 건 협동 사냥 덕분이다. 어지러운 발자국 등 흔적으로 짐작하지만 직접 목격된 적은 없다. 러시아에서는 담비가 2~3마리 무리지어 사향노루를 사냥하는데, 계곡의 얼음이 깔린 특정한 지점으로 사향노루를 몰아넣어 미끄러져 허둥댈 때 습격한다는 사냥꾼들의 증언이 전해진다. 계곡마다 이런 곳이 여러 개 있으며 담비가 반복적으로 이용해 ‘담비 덫’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찾아봤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담비 발바닥엔 짚신처럼 억센 털이 나 있어 얼음에서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또 눈밭에서 다리가 긴 노루가 도망치다 곧 탈진하는 반면 담비는 나무 위로 손쉽게 추적한다.  담비의 대형종 협동사냥은 이밖에 대만의 문착사슴과 네팔의 인도산양(무게 35~42㎏) 등의 사례가 있다."
 

da6.jpg» 러시아에서 담비가 얼음 계곡에 사향노루를 몰아넣어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그림=코마로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da14.jpg» 담비의 발바닥. 한가운데 억센 털이 나 있어 얼음이나 나뭇가지에서 미끄러지지 않는다. 

 

-무리 지어 사냥하는 건 담비의 일반적 특징인가.

 

아니다. 세계에 담비가 7종 사는데 한반도를 비롯해 히말라야에서 러시아 동부, 동남아, 대만에 분포하는 담비만 무리 생활을 한다. 담비는 봄에 낳은 새끼를 그해 가을 독립시키는 게 아니라 겨울을 보내고 다음 배 새끼가 태어날 때쯤 독립시킨다. 만 1년 동안 암컷과 새끼 1~3마리가 함께 다니며 사냥을 한다. 수컷끼리도 무리를 짓는데, 어떤 때는 이 두 집단이 한 데 뭉쳐 다섯 마리까지 무리를 짓는 것을 발자국으로 확인했다. 무리를 짓는 이유는 대형 포유류를 사냥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겨울을 나려면 새끼가 어미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아 독립이 지체되는 것일 수도 있다." 

 

da7_Rushenb_타이 카엥 크라찬 국립공원.jpg» 동남아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종의 담비가 서식하며 집단 사냥을 한다. 타이 카엥 크라찬 국립공원에서 촬영한 담비의 모습. 사진=루쉔브, 위키미디어 코먼스

 

■ 고라니 조절 능력 표범보다 나아

 

-담비가 잡아먹는 고라니나 멧돼지가 얼마나 많은가.

 

지리산에서 조사한 결과 산림 60㎢에 담비 4무리 10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와, 숲 10㎢마다 1~2마리꼴로 담비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 전역에 2500~3000마리, 곧 1000무리가 사는 셈이다. 담비 한 무리가 연간 고라니 9마리와 비슷한 수의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으로 본다. 전국적으로는 한 해에 고라니와 멧돼지 각 1만마리씩이 담비의 밥이 되는 것이다. 전국에서 엽사 수백명을 동원해 퇴치하는 ‘유해조수’가 연간 고라니 1만9000여 마리, 멧돼지 1만4000여 마리인데 견줘 엄청난 숫자이다. 담비는 이미 사라진 호랑이, 표범, 늑대가 하던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다 자란 멧돼지를 사냥하지 못한다는 점을 빼면 최상위 포식자 노릇에서 호랑이 못지않고 표범보다 윗길이다."
 

-범과 늑대가 고라니를 솎아내던 일을 이제는 자동차 사고(로드킬)와 사냥(유해조수 퇴치)이 하는 것 아닌가.

 

로드킬로 죽는 고라니가 연간 3만 마리로 추정된다. 그러니 담비가 이들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다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고라니 개체수가 분명히 늘었다. 하지만 포식자는 병들거나 어린 고라니를 주로 잡아먹지만 차와 사람은 무차별로 죽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da8.jpg» 담비는 단 음식을 좋아한다. 담비가 즐겨 먹는 머루.

 

da9_담비똥_다래먹은똥_씨앗이그대로남아있어식물종자분산에도움.jpg» 다래의 씨앗이 그대로 남아있는 담비의 배설물. 담비의 소화관을 거친 씨앗이 그렇지 않은 씨앗보다 잘 싹이 트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올해 이뤄질 예정이다. 

 

-고라니와 멧돼지 수를 조절하는 것 말고 다른 생태적 기능은 없나.

 

담비는 먹이의 절반이 다래, 고욤, 감, 버찌 등 식물성인 잡식동물이다. 닥치는 대로 먹지 않고 골라 먹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 맛집을 찾는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담비의 행동반경이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선추적장치를 단 담비 한 마리가 지리산을 떠나 전남 순천에서 로드킬 당한 채 발견됐는데, 무려 77㎞를 이동했다. 담비는 먹은 열매의 씨앗을 손상시키지 않고 여기저기 배설하기 때문에 ‘씨앗 뿌리는 동물’로서 생태적 기능이 크다. 실험 결과 한 번 먹으면 5.5㎞ 떨어진 곳까지 최대 14차례에 나눠 배설한 것으로 나왔다. 배설물 속 씨앗이 그렇지 않은 씨앗보다 싹이 잘 트는지는 올해 실험할 예정이다."


da10.jpg» 담비 배설물 속의 말벌. 담비는 꿀을 좋아하지만 꿀벌은 해치지 않으며 그 천적인 말벌의 여왕벌을 즐겨 잡아먹는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담비는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단일 종으로 담비가 가장 많이 잡아먹는 동물이 농작물에 피해를 많이 끼치는 청설모이다. 또 곤충 가운데는 털보말벌 등 말벌을 가장 많이 먹는데, 이 벌은 꿀벌의 천적이다. 담비는 겨울 동안 말벌의 독이 약한 틈을 타 나무 틈에 숨어있는 여왕벌을 곧잘 찾아내 먹는다." 
 

■ 토종벌 감소가 로드킬 불러


-최근 담비의 로드킬이 느는 것 같다.

 

담비는 워낙 특이해 빠짐없이 신고가 들어오는 편인데, 2010년까지 해마다 한두 건이던 로드킬이 2011년 4건, 2012년 9건, 2013년 6건 등 급증했다.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주목하는 것은 2010년부터 병이 돌아 토종벌이 거의 멸종하고 양봉도 절반가량으로 준 사실이다. 토종벌은 추위에 강하고 멀리 날아다녀 해발 600m 이상의 고지대 나무들의 가루받이를 해 준다. 그런데 이들이 사라지자 나무 열매가 급격히 줄었다. 꿀벌이 사라지기 전의 자료가 없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정황상 나무 열매를 즐겨 먹는 담비가 깊은 산의 열매가 사라지자 숲 가장자리로 나오다 사고를 당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담비는 버찌를 좋아해 6월 담비 먹이의 40%를 차지하는데, 이때 로드킬이 가장 잦다.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의 버찌를 먹으려 했던 것 아닐까 한다. 대구와 춘천에서도 담비의 로드킬이 일어났다. 다시 토종벌이 늘어나기만 기다릴 뿐이다."

 

da11.jpg» 무선 추적장치를 단 담비의 이동 궤적. 지리산에서 고속도로 2개와 섬진강을 건너 77㎞를 이동했지만 결국 순천에서 로드킬 당했다. 

 

-범도 겁내지 않는 담비지만 자동차는 어떻게 대하나.

 

무선추적 기록을 보면 왕복 2차선 도로를 잘 건너다니지만 4차선 도로는 피한다. 길을 건널 때는 무리가 한 마리씩 건너는데 머뭇거리지 않고 도로를 가로지르기 습성을 갖고 있다. 사고를 막으려면 이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생태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멸종위기종인데 2000~3000마리가 있다면 적지 않은 수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서식지별로 따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한반도는 휴전선으로 한 번, 경부고속도로로 두 번 분단된다. 야생동물에게 터널과 교량이 거의 없는 경부고속도로는 넘을 수 없는 선이다. 특히 충남은 섬처럼 고립돼 있어 장기적으로 담비의 멸종이 우려된다."(아래 기사 참조)

 

da12.jpg» 무인 카메라 잡힌 담비의 모습. 작지만 생태계 최고 포식자로서 당당한 구실을 하고 있는 동물이다.

 

da13_담비새끼_경북영덕.jpg» 경북 영덕에서 구조된 어린 담비. 다른 야생동물과 달리 담비는 새끼를 만 1년 동안 데리고 다니며 가르친다.

 

da13_서식지사진_지리산 고리봉일대.jpg» 백두대간의 담비의 최대서식지이지만 추풍령에서 둘로 나뉘어 남북의 담비가 교류하지 못하고 있다. 담비가 서식하는 지리산 고리봉 일대의 모습.  

 

-담비와 사람이 공존할 길은 없나.

 

담비는 주능선을 고속도로처럼 이용한다. 그런데 낮에 주로 활동하다 보니 등산객과 송이 채취꾼 등이 많은 곳은 피한다. 지리산 주능선에선 담비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산림 가장자리로 나와 밀렵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우리 숲은 담비가 서식하기에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사람의 이용 강도이다. 담비는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담비 발자국을 조사하다가 다른 담비가 내 발자국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자신의 영역에 누가 들어왔는지 궁금해 못 참는 것이다. 범과 늑대가 사라진 우리의 생태계가 건강을 잃지 않으려면 이 작지만 큰일을 하는 포식자가 있어야 한다. 담비와의 공존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 고립된 황학산 등의 담비, 멸종 확률 100%

da15.jpg» 담비의 서식지(왼쪽 지도의 원)와 서식지 분단 실태. 자료=국립환경과학원

 
담비는 건강한 산림생태계의 지표종이지만 숲이 좋다고 반드시 담비가 사는 것도 아니고, 숲 가장자리에도 담비가 안정적으로 서식하기도 한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135㎢에 이르는 산림이 있지만 담비는 전혀 살지 않는다. 김제평야가 개간된 이후 100년 이상 주변 산림과 단절이 이뤄져 이곳의 담비가 절멸했기 때문이다. 반면, 전남 함평군 고산봉 일대는 해발 100~350m의 구릉지대이지만 내장산, 축령산, 불갑산으로 이어지는 산림 생태축이 연결돼 있어 담비가 잘 살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2년 전국의 산림을 대상으로 앞으로 100년 동안 담비가 멸종할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백두대간에서는 멸종 가능성이 전혀 없었지만 주변 생태축과 단절된 울산 두동면 치술령, 경북 칠곡군 황학산, 함안 여항산, 예천 학가산, 사천 와룡산 등에서는 멸종 가능성이 100%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에서는 생태축을 복원하지 않으면 10~20년 안에 현재 살고 있는 담비가 모두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또 충남 공주·보령 일대에 서식하는 담비는 75년  100년 안에 멸종할 가능성이 5%(75년 뒤 멸종)로 나타났다.
 

또 대규모 산림이 있지만 담비가 서식하지 않는 변산반도 국립공원과 선운산 도립공원에 담비를 복원한다 해도 주변 생태계와 단절돼 있다면 100년 안에 모두 멸종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추정은 지역 여건과 번식 능력, 밀렵 수준 등을 바탕으로 야생동물의 생존능력을 평가하는 보르텍스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담비 한 무리가 안정적으로 서식하려면 최소 22~60㎢의 온전한 산림이 필요하고 이들이 유전적 교류를 하기 위해 이런 산림 3곳 이상이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또 담비 50~100개체가 안정적으로 서식해 100년 이상 존속하려면 이런 서식지가 더 넓게 연결된 600~1000㎢의 산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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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협비대위 "5.24조치 해제 반대하는 사람 없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3/26 07:22
  • 수정일
    2014/03/26 07:2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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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통일, 지구에서 남은 마지막 아름다운 페스티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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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5  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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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대안은 '평화''라는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유동호)는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대안은 '평화''라는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고 남북경협의 전면중단을 불러 온 5.24조치의 철회를 정부 당국에 다시 한번 촉구했다.

문화콘서트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개그맨 노정렬 씨의 사회로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조성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도재영 동북아평호연대 이사장, 배기찬 통일코리아 이사장 등 관련 인사와 최원호 맛대로촌닭 대표, 이선영 케이제이엔터프라이즈 대표 등 남북경협사업자를 비롯한 2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 록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는 사회자 노정렬 씨 등과 토크쇼를 같이 진행하면서 "지난 1989년 독일의 록그룹인 스콜피온스가 독일 분단의 상징인 브란덴브루크 문에서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공연을 했던 것처럼 '부활'도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와 통일의 부활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특히 록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는 사회자 노정렬 씨 등과 토크쇼를 같이 진행하면서 "지난 1989년 독일의 록그룹인 스콜피온스가 독일 분단의 상징인 브란덴브루크 문에서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공연을 했던 것처럼 '부활'도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와 통일의 부활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미니인터뷰)

김태원 씨는 이날 미리 준비한 '한반도 통일'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참가자들앞에서 낭독하고 "앞으로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전문 박스)

공연에 앞서 김기창 남북경협비대위 감사는 "대북경협인들은 지금까지 민족의 공존공생을 원하는 평화와 통일의 역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대북 경협에 임해 왔으나, 최근 몇년간 이제나 저제나 북으로 가는 길이 열리길 바라면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 왼쪽부터 김기창 남북경협비대위 감사, 김영주 NCCK 총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심의섭 명지대 명예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영주 목사는 격려사에서 "선구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남북 경협사업에 나섰던 분들이 표현하는 인고의 세월이라는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있다"며 참가자들을 위로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DMZ평화공원 같은 새로운 제안을 하기에 앞서 기왕에 있는 개성공단을 처음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했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라며, "이 정부가 정말로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라면 발상의 전환을 해서 남북의 민간인이 나서서 개척해온 결과를 정부가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는 항의의 의미에서 5.24조치의 철회를 촉구한다"고 역설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북으로 가는 모든 통로를 막아버렸던 5.24조치는 이미 실효가 없는 죽은 조치이고 사실 지금은 해제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1천200여 명의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이북에 가서 그동안 하던 사업 계속할 수 있다"며 "이게 바로 '통일대박'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정 전 장관은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근버스는 오늘 아침에도 현대 계동사옥앞에서 출발했는데, 개성공단 입구에 주유소 사업을 계획했던 사장님은 DMZ를 못 넘어가고 있고, 해주에서 모래를 실어오던 사장님은 뱃길이 끊어진지 4년이 넘었다. 또 오징어, 명태 등 건어물 계약했지만 실어오지 못한지 수년이 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날 유동호 남북경협비대위 위원장은 '평화는 넉넉한 만남이다'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경제협력을 매개로 한 남북의 평화 도정에 경협기업인들이 다시 나설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유동호 남북경협비대위 위원장은 "경협 기업인들은 분단 70년 동안, 남북경협이 시작된 1994년 이후 근 20년 간 온 몸으로 남과 북의 장벽을 허물고 평화를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우리에게는 평화라는 소중한 씨앗이 가슴속에 내재해 있다"며, "경협 기업인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큰 일은 아니더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동호 위원장은 이어서 "향후 펼쳐질 새로운 남북경협과 평화의 시대에 우리도 기여하고 싶다"며, "국민들과 대통령이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호소했다.

유 위원장은 "평화는 검을 팔아서 소를 사는 것"이라는 경구를 인용한 뒤 "평화는 거대한 담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며, 남과 북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협력을 매개로 한 남북경협 사업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했다.

“지구에서 남은 마지막 아름다운 페스티발”
<미니인터뷰> 경협토크쇼 참가한 가수 김태원

 
   
▲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인터뷰=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가 2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평화’ 행사에 참가해 개그맨 노정렬 씨와 경협인들과 함께 토크 쇼를 가졌다.

김태원 씨가 이날 행사에 참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행사 직전 <통일뉴스>와의 미니인터뷰에서 통일을 “지구에서 남은 마지막 아름다운 페스티발, 축제”라고 말했고, 토크쇼에서 ‘한반도 통일’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의 “어쩌면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함은 우리 스스로가 아름다운 어른들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쏘아올리는 모든 로켓의 에너지를 저 굶어가는 아이들에게 쏟아부어야 할 때입니다”라는 성찰적 메시지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 통일뉴스 : 어떻게 이번 무대에 서게 됐나?

■ 김태원 : 과거에 ‘무릎팍 도사’라는 프로에서 “당신의 소원이 뭐냐”고 강호동 씨가 물어왔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냐면, “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철로로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서 중국을 거쳐서 유럽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 나도 관심이 많아졌다.

□ 그런 질문에 갑자기 그 같은 답이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평상시에 그런 생각을 했나?

■ 그렇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통일이 안 돼 있는 상황이니까. 어떻게 보면 지구의 중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이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모든 그동안에 화합이 안됐다거나, 통하지 못했다든가 하는 것의 완벽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인간의 차별, 편견 이런 것들까지도 다 아우르는 경종이 되는 것이다. 지구에서 남은 마지막 아름다운 페스티발, 축제가 될 것이다.

□ 오늘 무대는 어떻게 서게 됐나?

■ 작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온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통일 문제 같은 것들은 보통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만 대화를 하지 않나? 사실 어떻게 보면 일반 사람들은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또 나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고 말하는 스타일이 있으니까 내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통일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거다.

□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 경협도 막혀있고 아직까지는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 시작을 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이를 수 없다.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시작조차도 안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 또 다른 시작, 또 다른 방향으로 또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은 말이나 생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임은 아니라고 본다. 무조건 가슴이 결부되어야 되고, 정치라든지 그 어떤 것도 마음이 결부돼 있으면 서로가 합의가 되고, 합의가 통일을 이루는 것 아니겠나?

□ 혹시 방송인들과 남북을 오가는 공연이라든지, 휴전선에서의 공연 같은 것도 한번 기획해 볼 생각이 있나?

■ 얼마 전에도 휴전선에서 열린 ‘독립영화제’에서도 우리 부활팀이 조건 없이 공연했다. 북한을 향해 작은 소리라도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런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가수 김태원 씨가 낭독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메시지>

한반도의 통일은 이제 지구에서 벌어질 가장 위대한 축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화합과 통합을 얻을 수 있는 실마리이며, 지금 전 세계적으로 만연되어지고 있는 인간의 차별과 편견과 우월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건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형식이 아닌 서로 동시에 일어나야 할 이룸이며, 복잡한 권력의 구조로서가 아닌 오직 인간애를 바탕으로 다져지고 세워져야 합니다.

저는 작은 음악인으로서 저희 음악을 항로가 아닌 철로로서 서울에서 평양으로, 그리고 중국을 거쳐 유럽에까지 도달하여 알리고 싶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함은 우리 스스로가 아름다운 어른들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쏘아올리는 모든 로켓의 에너지를 저 굶어가는 아이들에게 쏟아부어야 할 때입니다.

생각으로 이루려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것은 정녕 가슴이 결부되어야 만 가능할 위대한 이루어짐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에 관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날 행사에는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조성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도재영 동북아평호연대 이사장, 배기찬 통일코리아 이사장 등 관련 인사와 최원호 맛대로촌닭 대표, 이선영 케이제이엔터프라이즈 대표 등 남북경협 기업인들을 비롯한 2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가수 이원석 씨는 평화를 주제로 한 남북경협 기업인들의 마음을 달래는 '재능기부'로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태원 씨는 평양에 치킨집을 오픈한 사연으로 주목을 받은 최원호 맛대로치킨 대표(맨 왼쪽)와 물류 사업을 했던 이선영 제이케이엔터프라이즈 대표(가운데 빨간 재킷) 등과 함께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겪고 있는 애로를 듣고 아픔을 위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행사 참가자들이 새로 펼쳐진 평화 현수막 위에 꽃을 다는 평화기원의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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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촉발하는 글로벌 호크 도입 반대

평통사 ‘F-35A, 글로벌 호크 도입 중단’ 촉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3/25 [16: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미국으로부터 글로벌 호크와 F-32 전투기 도입을 반대해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상임대표 문규현)이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사들이기로 결정한 글로벌 호크와 F-35A 전략 폭격기 도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평통사는 25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글로벌 호크와 ‘F-35A, 전투기는 전쟁을 억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촉발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도입 비용과 운영비용이 들어간다며 도입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평통사 평화군축 팁 조승현 팀장은 기자회견에서 여는 말을 통해 F-35A, 글로벌 호크 도입은 한반도․동북아 평화위협하고 과잉전력을 중복 투자하는 것으로! 국민혈세를 낭비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 한반도의 전쟁을 촉발 시킬 수 있는 무기를 도입하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미국 퍼주기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이 전쟁의 공포가 아닌 평화속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조승현 평화군축팀장은 “F-35A와 글로벌호크는 대북 선제공격 이행수단인 킬체인 구축의 핵심전력”이라며 “킬체인은 북한(조선)이 핵·미사일 사용 징후만 보여도 북한(조선)을 선제공격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 맞춤형 억제전략의 이행수단이다. F-35A와 글로벌 호크의 도입을 통해 킬체인이 구축되면 한반도는 상시 전시체제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글로벌 호크를 통해 확보된 북한(조선)의 모든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가 공격 대상으로 되며 나아가 시험 발사를 실제 공격으로 오인해 F-35A를 동원하여 선제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그만큼 한반도에서는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며 전쟁위기를 평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아예 봉쇄되어 버린다.”고 우려했다. 

또한 “뿐만 아니라 글로벌호크는 작전반경이 3,000Km에 달하고, 북한(조선) 면적보다 넓은 14만㎢에 이르는 지역을 36 시간에 걸쳐 단속 없이 탐지할 수 있어 대북 감시정찰용이라기보다는 대중 감시정찰 무기체계”라며 “F-35A 역시 작전반경이 1200Km로 북한 전역을 넘어 중국의 동북부까지 포함된다. 결국 글로벌 호크와 F-35A의 도입은 미국의 중국봉쇄 전략에 한국군이 동원되는 결과를 빚게 될 가능성을 높여 중국과의 갈등을 불러와 동북아에 무한 군비경쟁과 전쟁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한반도 전구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대부분의 정보를 자체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결국 F-35A와 글로벌호크의 도입은 불필요한 과잉전력”이라고 주장했다. 

발언자들은 “F-35A와 글로벌호크의 총 사업비는 각각 7조원 중반대와 8천800억원 이다. 뿐만 아니라 F-35A의 경우 대당 운영유지비가 연간 520만 달러, 글로벌호크는 시간당 운용·유지비가 약 3만 5000달러로 20년간 운영한다면 추가로 약 6조원의 소요된다. 결국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불필요한 무기에 수십조원의 국민혈세를 쏟아 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글로벌 호크 도입반대’ ‘전쟁촉발 시키는 무기도입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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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 “독재자는 반드시 몰락합니다”


3월 24일,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강론 전문
문규현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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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5  0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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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저녁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서 강론 중인 문규현 신부 ⓒ정현진 기자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안녕하고 지냈는지, 더구나 우리 사회의 공동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의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표본이 되어야 할 선거에 국가의 가장 강력한 공권력이 개입한 사건은 모두 ‘개인적 일탈행위’로 포장되면서 우리나라는 초유의 짝퉁 대통령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개인적 투표 결과와는 상관없이 국정원과 국방부와 사이버 언론의 단합에 의해서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30여 년간 잠자던 내란죄가 서너 살배기 어린아이까지 참석한 모임에 적용되었습니다. 외국의 외교문서까지 위조하여 간첩 조작질하는 일도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을 무조건 빨갱이와 종복으로 몰아붙이는 일도 한국 사회의 유행병이 되었습니다. 지난 21일 국민방송 뉴스타파는 ‘의정분쟁 봉합, 국민은 없었다’였습니다. 대한민국에 국민이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는 것이겠죠.

오늘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 이 국민을 위하여, 민주공화국 재건을 기도하기 위하여 함께했습니다.

요즘, 이런 비교의 글을 들어 보셨습니까?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박근혜는 선거쿠데타
박정희는 유신독재, 박근혜는 언론독재
박정희는 중앙정보부, 박근혜는 국가정보원
박정희는 공안 통치, 박근혜도 공안 통치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에게서 국가관과 정치에 대해 배웠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기억하려면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먹지 말고, 무엇보다 역사적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그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는 국가와 정치를 자신에게 복종시켰습니다. 종신 집권을 꿈꾸며, 헌법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했습니다. 간첩 조작과 공포정치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사형당하고, 고문 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결국 박정희의 최후가 어땠습니까? 비운에 갔습니다. 부하의 총탄에 사살 당했습니다.

   
▲ 24일 저녁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우리 국민은 그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독재자는 반드시 몰락합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역사와 민주주의는 느려도 전진, 전진합니다.

지난 대선은 국정원, 경찰, 언론 등 권력기관들이 합작해서 만든 명백한 부정선거입니다. 특히 국가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팀을 꾸려서 ‘이명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과 정치인들은 모조리 빨갱이, 종북이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지역감정을 극대화하며 국민 분열에 앞장섰습니다.

국정원이야말로 국민을 적으로 알고 나라를 붕괴시키려고 획책한 내란죄 현행범입니다. 타락하고 추악한 범죄 집단입니다. 국민의 적입니다. 국정원은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해체, 개선되어야 합니다. 박근혜, 국정원의 도움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책임져야 합니다.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를 쓴 허버트 허시는 “은폐와 조작에 의해 진실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40년 전으로 회귀한 유신독재를 또다시 맛보는 고통스럽고 슬픈 현실을 봅니다. 그 불의한 독재와 맞서 싸웠던 의로운 청년학생들, 시민 노동자, 농민 등 모든 이들의 노고를 기억합니다.

지난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인 국정원이 간첩 조작 사건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불법과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고, 또한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하여 간첩 혐의로 몰아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던 악행들이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역대의 정보기관 간첩 조작은 총칼로 권좌에 앉은 독재정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행히 민주정부 수립 이후 많은 조작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유신독재 시대 조작간첩사건 등이 재심을 통해, 당시 국가범죄를 사과하고 무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빨갱이 사냥, 종북몰이, 조작간첩사건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소위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하고 다른 나라 공문을 위조하면서 옹호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외칩니다. 간첩조작사건의 책임자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을 즉각 해임하라!
국가권력 국정원을 즉각 해체하라!

   
▲ 24일 저녁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 참석한 방구들장 신부(왼쪽)와 박창신 신부가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국가정보원 해체’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현진 기자

국기문란 범죄행위를 좌시한다면 국정책임자의 분명한 직무유기입니다. 국정책임자 대통령은 물러나야 합니다.

다른 나라 외교문서를 위조하면서 간첩을 조작하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행위입니다. 사실 조작에 의한 빨갱이, 간첩 제조는 과거 독재권력의 통치전략이죠. 정치적 경쟁자나 경쟁세력을 ‘종북’ 따위의 색깔론으로 몰아 제거하거나 약화시켜 권력을 유지 · 강화하려는 범죄입니다.

이런 통치전략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불안감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줄 ‘간첩단 사건’ 등이 필요했습니다. 불순분자, 적 혹은 간첩은 정략적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제조되었지요.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도 역대의 정보기관이 벌인 끔찍한 조작 사건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한 민간인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다른 나라인 중국 정부의 공문서를 위조해 가지고 온 사건. 그 ‘위조범죄’의 주체가 국정원이었습니다. 위조범죄 관련자는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았으며, 국정원은 증거조작을 미리 알고 있다 했습니다. 이를 지시까지 했다는 고백도 했습니다. 검찰 역시 국정원이 내준 위조문서를 마치 검찰 자신이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증거처럼 재판부에 대담하게 제시했습니다. 이는 분명한 범죄행위입니다.

대선 부정 사건과 함께 간첩 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쌍벽을 이루는 국기문란 사건입니다. 두 사건 모두의 한복판에 이 나라 국정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국정원장 남재준이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전직 대통령을 재사살하고 부정선거를 획책한 거죠. 대선 불법 · 부정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전략이죠.

중요한 것은 ‘간첩 조작 사건은 전체 국민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우리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우리의 후손이 걱정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역시 조용합니다. 대통령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사정없이 거꾸로 돌립니다. 민주주의의 퇴행입니다.

   
▲ 24일 저녁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는 전주교구 신자 600여 명과 각 교구와 수도회 사제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정현진 기자

민주주의는 침묵으로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대선 부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았습니다. 민초(民草)의 존엄한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우리는 간첩 조작 사건에서 보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비정상 기능이 있다면 그것도 정상화해야 할 것입니다. 청와대의 정상화, 국정원의 해체 수준에 맞는 전면적인 개혁과 이를 위한 그 책임자들(남재준 국정원장 등)의 파면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대통령의 책임이요 책무입니다.

국정원을 다시 살펴봅니다. 국정원은 지난 18대 대선의 과정에서 불법과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이를 은폐 조작했던 국가기관입니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과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2012년 12월 12일 대선을 며칠 앞둔 때입니다. 민주당은 경찰과 선관위에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의 오피스텔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한밤에 일어난 이 사건은 대선의 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후 대선 내내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이 큰 이슈였습니다. 2012년 12월 16일 대선 후보 TV 3차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 의혹을 놓고 공방을 벌였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가 없는 걸로 나왔다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경찰은 TV 토론이 끝난 직후인 밤 11시 갑자기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국정원 김 씨의 댓글 흔적은 없었다. 김 씨는 무혐의’라는 것입니다. 일요일 저녁, 그것도 한밤에 무슨 재난 사고나 폭탄테러 사건도 아닌데, 경찰은 밤 11시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국정원은 12월 16일, 너무나 놀라운 신속성을 보여줍니다. 11시경 국정원 여직원 관련 경찰 수사 발표 후 11분 뒤에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민주당이 제기한 ‘국정원의 조직적 비방 댓글’ 주장은 사실 무근이다. 국가정보기관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떠합니까?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불법댓글이 2200만 개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국군 사이버사령부 역시 국정원의 지원으로 불법적인 선거 개입을 했습니다. 경찰까지 협조합니다.

권은희. 이 이름을 모르면 요새 간첩이랍니다. 국민 누나, 국민 언니, 2013년판 유관순 열사라고 합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없는 걸로 덮어서 박근혜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선거 국면을 마련해줬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용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말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없었습니까?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의 불법적인 지원, 부정한 방법 없이 정정당당하게 당선되었습니까? 우리는 철저한 조사와 해명,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 24일 저녁,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만약 지난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국정원의 불법과 부정 등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진상규명을 하고 국민에게 사죄했더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간첩 조작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내란음모 사건도, 건국 이래 초유의 반민주주의 사건 통진당 해산 기도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대선은 국가가 헌법이 정한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유린한 것입니다. 명백한 불법부정선거입니다.

우리는 선언합니다.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세우는 길은 짝퉁 대통령 박근혜의 퇴진입니다.

권은희 수사과장이 얼마 전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사진에 찍힌 경찰서 현판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불의를 증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의를 사랑하지 못한다.”

오늘 독서에는 “만일 그대들이 정의로 다스리지 않았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았거나 하느님의 뜻에 맞게 처신하지 않았으면 주님께서 지체 없이 무서운 힘으로 그대들을 엄습할 것이다. 권세 있는 자들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지혜 6,4-5)고 합니다. 그런데 불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정원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국민을 협박하는 것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지금의 국정원을 그냥 두면 앞으로 무슨 선거인들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헌법도 무용지물입니다. 더 큰 걱정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나라는 끊임없이 추락할 것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내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 사회,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헌신합니다. 우리는 더 사랑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꿈이 있고 희망 있는 그런 세상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국정원 해체와 박근혜의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민주공화국을 원한다면, 국정원을 해체하십시오. 물러나 정의를 바로 세우십시오.

밀양 할매들의 명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한다.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는 잠자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을 다시 깨워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사회를 흔들어야 합니다. 촛불의 미미한 불꽃은 물론, 훨훨 타오르며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까지, 그 다양한 모습이 우리의 각박한 현실에서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구체화시켜야 합니다.

올해로 동학농민혁명이 120주년입니다. 넘지 못한 우금치, 기필코 넘어 민주공화국 희망세상을 이룹시다. 여러분, 함께 갑시다!

 


문규현 신부 (바오로)
전주교구 원로사목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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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오혜란 대위 유서·일기장 전문 입수...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
명예가 중요한 장교입니다"

[단독] 고(故) 오혜란 대위 유서·일기장 전문 입수... 재구성한 사건 막전막후 14.03.24 18:44l최종 업데이트 14.03.24 21:01김도균(capa1954)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0월 직속 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육군 제15사단 여군 고 오혜란 대위의 일기 전문과 유서 전문, 공판기록 등을 최근 입수했다. 

이들 자료에는 오 대위가 부대 전입 직후부터 자살 사망하기까지 10여 개월 동안 직속상관 노아무개 소령으로부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들이 있었다. 

다음은 오 대위가 남긴 유서와 일기, PC 메모,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오 대위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오 대위 일기장과 업무용 PC에 담긴 고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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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오혜란 대위 유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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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소령은 부하들을 '소'라고 불렀다. 얼굴이 검은 병사는 검은 소, 키가 작은 병사는 작은 소, 여군은 여자 소라고 불렀다. 이런 부하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을 그는 '소 우리'라고 했다.

그는 부하들이 꺼리는 상관이었다. 한 병사는 그에 대해 "말을 막 하고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래서 참모실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어려워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부대행사용 봉 관리를 소홀하게 했다며 한 남성병사에게 "자위를 하려고 봉을 가져왔냐? 너는 구멍이 없어서 자위를 못하는데 봉이 왜 필요하냐?"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장교·부사관은 그의 가장 만만한 상대였다. 

그는 산부인과 질환이 있는 한 여군 하사를 지칭하면서 "성관계를 문란하게 하면 저런 병이 생긴다, 여자는 자고로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여군 하사에게는 "너는 여자가 짧은 반바지를 입느냐, 너는 못 생겨서 괜찮겠다"고 모욕했다. 여군 중위 한 명에게는 면전에서 "넌 얼굴에 색기가 있다, 누구처럼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마라"는 말을 했다. 

사단 부관참모였던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이가 바로 인사행정장교 오 대위였다. 그만큼 오 대위의 마음고생은 남보다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2월 부대에 전입한 오 대위의 일기장과 업무용 PC에는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은 여군은 일 못해도 티 안 나고 말하고 후방에서 놀다온 애는 대위 달아도 적응 못하고 멍 때리고 있다고 하셨다. 2포병 부관장교 앞에서 날 지칭하지 않아도 날 빗대서 하는 이야기겠지." (2013.1.11)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극으로 치닫는 모욕... 병사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고, 그러면서...하나를 넘어가질 않는다. 말투, 자세, 업무, 지식, 태도 다 맘에 안 드시나 보다. 진짜 미래가 없다." (2013.1.17)

그는 오 대위가 기안한 문서를 면전에서 찢어버리거나, 검토를 미루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 대위의 업무능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동료들은 "항상 10~11시까지 근무하고, 주말도 근무하고 사수나 병사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회식도 하는 좋은 사람"(한OO 일병), "사단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성실한 장교로 칭찬을 많이 듣는 좋은 분"(박OO 중위)으로 오 대위를 기억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모욕과 성적 수치심 

시간이 갈수록 오 대위의 절망감과 괴로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복명속도가 늦는 건 보고문서를 가져가도 검토 안하시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빽하시거나 찢어버리시니까..."(2013.2.15)

"보고서를 안 올렸다라. 난 이미 10번 넘게 올렸지만 결제 안하고 계속 수정만 하다가 못한 거잖아. 그걸 보고 내가 안 한 거라. 그래 결과는 내가 안한 게 되어 버린 거겠지. 진짜 슬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2013.2.18)

"일을 사서 만들고 트집 잡는... 점검 애써서 해놨더니 제대로 본인의 의도와는 안맞게 했다고 난리 난리" (2013.7.18)

오 대위가 날이 갈수록 산더미 같이 쌓여 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선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도 온전히 오 대위의 휴식을 보장해 주지는 못 했다. 그는 불교 신자인 오 대위에게 그는 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종용했고, 예배 시간에 오 대위가 보이지 않으면 교회에서 봤으면 좋겠다는 카카오톡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 대위를 괴롭혔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모욕과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이었다.

그는 병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오 대위에게 "너는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느려 터졌냐. 소 같다. 너는 15사단 여자 소다. 미련하다. 곰 같다"거나 "이래서 여군은 쓰는 것이 아니다. 너 같은 새끼가 일을 하니까 군대가 욕을 먹는다. 너 같은 새끼를 둔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는 모욕적 언행을 수시로 했다.

심지어는 다른 여군 장교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냐?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는 발언까지 했다. 이날 오 대위의 일기장과 업무용 컴퓨터에는 오 대위의 수치심이 잘 나타나 있다.

"수치스런 이야기를 들었다. 농담이라고 할지라도 나랑 잘래? 이건 심하지 않은가... 치욕적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날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저질 B급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한 것일까"(2013.7.12 일기)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나?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 힐끔 반응 보더니 나도 원하지 않아. 그러면 실무자와 참모관계가 안되니까. 그런데 왜 자꾸 의도를 모르나?"(같은 날 업무용PC 메모)  

급기야 그는 부관참모부 사무실에서 오 대위가 X반도(서스팬더)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X반도는 이렇게 매는 거다"라며 손으로 피해자의 뒤편에 서서 어깨를 만지고 등 부위를 쓰다듬거나 "보좌관 힘들지"라고 하며 오 대위의 어깨를 주무르는 추행을 저질렀다. 

오 대위의 아버지는 법정에서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집에 온 딸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고 진술했다. 

"거실에서 아빠랑 얘기 좀 하자니까, 할 얘기 없다며 일어서길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거실에서 붙잡아 앉혀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울면서 얘기를 하는데 지금까지 딸을 키우면서 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딸이 회식자리에서 참모가 다리를 더듬고 노래방에서 안고, '하루 밤만 자면 군대 생활 편하게 할 건데, 그 의도도 모르나?'면서 성희롱을 하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부모로서 치가 떨렸고, 왜 군대를 보냈나 후회도 되었다." (2014.2.11 2군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오 대위 아버지 증언)

부대 여군 고충상담관을 겸하고 있던 오 대위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는 아무 데도 없었다. 이것이 오 대위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명예 지켜달라고 절규했던 대한민국 육군 대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지난해 10월 15일 아침에도 그는 오 대위를 심하게 질책했고, 오후에도 병사 진급명령 처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너, 나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이날 오후 6시 1분 위병소를 나간 오 대위는 다음 날 오후 부대 인근 화천군 청소년야영장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고 직후 헌병대가 수거한 오 대위 승용차 블랙박스 SD카드에는 부대를 나온 오 대위가 독신자 숙소 주차장에 도착했다가 청소년야영장으로 이동하는 장면, 주차된 상태에서 한 시간 반가량 음악 소리, 오 대위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오 대위가 남긴 유서를 통해 "그놈의 여군 비하 발언 듣기 싫고 거북했습니다"라면서 "제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그는 이어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병사들 우리 처부(기자 주 : 군대 사단사령부 내의 조직)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단 한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기자 주 : 명령을 받들다)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한 적 없습니다. 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명예를 지켜달라고 절규했던 그는 대한민국 육군 대위 오혜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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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무치' 보수언론, 한미FTA 반성문 쓰라고?

[주간 프레시안 뷰] FTA 찬양이 시대착오적 시각 아닌가

기사입력 2014.03.24 17:21:55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안녕하세요? 경제기사를 읽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3월 15일은 한미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06년 2월 2일에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이 있었으니 벌써 8년이 흘렀죠. 이 어마어마한 사건 탓에 '한미 FTA 반대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저로선 감개가 새롭습니다. 다음 글부터 읽어 보실까요?
 
"한미 FTA 자기 반성문"을 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해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매듭지은 한미 FTA는 진보 보수라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무역을 통해 국익을 증대한다는 취지였다. 2년의 성적표를 보면 성공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반미(反美) 반(反)세계화라는 시대착오적 좌파이념에 사로잡혀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정치인들과 강성 좌파 시민단체 등 촛불세력은 이제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써야 한다."
 
 
<동아일보>의 지난 3월 17일 자 사설입니다. 저야 정치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강성 좌파 시민단체 등 촛불세력"에 틀림없이 속할 겁니다. 다른 보수 언론의 논조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이들이 이렇듯 비판자들을 매도한 근거는 정부가 지난 3월 14일 내놓은 '한미 FTA 발효 2주년 성과분석'이라는 자료, 그리고 미국 의회 내에서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는 사실입니다. 때론 이 사람들의 단순하고 속 편한 사고가 부럽습니다.  
 
거대 언론이 쓰라니, 저라도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쓸 수밖에요. 하지만 이 반성문은 1주년 때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에 관해 쓴 내용과 대동소이합니다. 
 
한·미 FTA 발효 전후 한미 교역현황(단위: 억불, 전동기비%)
▲ 3월 14일 정부합동 '한·미 FTA 발효 2주년 성과분석'

▲ 3월 14일 정부합동 '한·미 FTA 발효 2주년 성과분석'

 
이 표를 보면 정부가 무엇을 근거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발효 후 2년 동안 대미수출 증가율이 2012년 4.1%, 2013년 6.0%로 대세계수출 증가율보다 높은 것이야말로 한미 FTA의 성과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법대로라면 발효 이전 2008년과 2009년의 대미 수출증가율이 각각 32.3%와 12.8%로, 지난 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부처럼 단순 수치만 놓고 얘기한다면, 한미 FTA 때문에 수출증가율이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나아가서 한미 FTA와 거의 비슷한 강도로 FTA를 맺었고 이보다 1년여 먼저 FTA를 발효한 EU에 대한 2년간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EU가 재정위기에 빠져 수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에 대미 수출 증가율이 세계의 수치보다 조금 낫게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FTA 혜택 품목, 즉 관세가 인하된 품목의 수출이 더 많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표를 보면, 발효 후 2년째는 혜택품목의 증가율은 4.9%인데 비혜택품목의 증가율은 5.7%로 비혜택품목이 오히려 높습니다. 정부는 반도체(원래 관세가 없었으므로 FTA 혜택 품목이 아니죠)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설명은 무역수지의 개선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한 것은 관세혜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흉년과 한국의 침체로 곡물과 원료의 대미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니까요.  
 
짧은 기간에 여러 변수가 개입해서 나온 몇 개의 단순 수치로 한미 FTA와 같은 거대한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오히려 대답해야 할 건 장기적인 추세에 관한 얘깁니다. 정부는 2007년에 한미 FTA와 한 EU FTA가 동시에 발효되면 실질 GDP가 무려 7.61% 추가 증가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죠.
▲ 2007년 KIEP 자료. 한미, 한 EU FTA  동시 추진의 경제적 효과

▲ 2007년 KIEP 자료. 한미, 한 EU FTA 동시 추진의 경제적 효과

지금은 한미 FTA와 한 EU FTA가 모두 발효된 지 2년 지났습니다. 그들의 계산법대로 하면, 통상의 경제성장률에 더해서 1.5% 이상 증가해야 했고(그러니까 최근의 침체를 감안해도 우리 경제성장률은 5~6%가 넘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8년 후에는 10%가 넘을 거고요.) 후생수준은 50억 달러 이상 늘어났어야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던 걸 되돌아보면 낯이 뜨거울 만도 한데 정부는 자화자찬 중입니다. 아니 이를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선인들이 '후안무치(厚顔無恥)',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닐까요?  
 
어쨌든 수치를 놓고 싸우는 건, 양쪽에게 모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증명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문제는 원래부터 미국의 전략이 상품시장을 열어 주고 대신 지적재산권· 서비스·투자시장을 개방하자는 것, 즉 미국만큼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하자는 것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미 FTA의 '통렬한 성과'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한미 FTA에 맞춰 63개의 법령을 이미 제정 또는 개정했고, 각종 정책 역시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좌절, 산업자원부의 IT·네트워크 장비 공공조달 시 중소기업 우대 정책 좌절,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시 미국업체 제외,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보험 가입한도 증액 좌절, 마이크로소프트(MS)의 국방부에 대한 사용료 요구, 금융위원회의 비자·마스터카드 국내 수수료 제한 좌절 등이 그것입니다. 
 
이미 해설해 드린 대로 이런 사안들은 TPP 협상 가입 4대 선결요건으로 모습을 바꿔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TPP 가입을 목표로 한-호주 FTA, 한-캐나다 FTA를 연달아 체결했는데요, 이제 위에 제기한 정책들은 완전한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좌절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는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는 한미 FTA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게 될 테니까요. 최신판 민영화정책은 공기업의 알짜배기 부분을 분리해서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예컨대 수서발 KTX 자회사, 병원의 영리 자회사에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 그 자회사는 한미 FTA의 투자 챕터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기차가 부딪히고 병원비가 폭등하는 등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차기 정부는 이 자회사에 손을 댈 수 없게 될 겁니다. 바로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 때문이죠. 한미 FTA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미국식 시장만능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계금융위기가 보여 주었는데도 아직도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 아닐까요? 정부와 일부 언론은 그때와 똑같이 자의적 통계 해석, 그리고 그들의 말투로 하자면, '친미·친세계화라는 시대착오적 우파 이념'에 빠져 있는 거죠. 
 
내수 위축의 증거들
 
한국은행이 3월 17일 발표한 '2013년 중 자금순환표(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규모는 87조 원으로 전년보다 3조6000억 원 늘어났습니다. 즉, 가계의 여윳돈이 늘어났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2003년 이래 가장 많은 돈을 '쟁여 놓고' 있는 거죠. 
 
 
가계의 잉여자금이 늘어난 것은 소득에 비해 지출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늘었지만 빌린 돈 갚는 걸 걱정해야 하고 경기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하니까 소비를 최대한 억제한 겁니다. 
 
이런 상황을 요즘 학계에선 '대차대조표형 불황'이라고 부릅니다. 3월 16일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이 '대차대조표 경기후퇴의 뇌관 제거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보고서를 내놓았는데요. 현재 경제는 '자체적 조정이 어려운 전형적인 대차대조표 경기후퇴' 상황이라는 겁니다. 과잉부채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소비 흐름이 위축되고, 심각한 내수 부진에 빠지게 된다는 얘긴데 1929년 대공황 때 어빙 피셔가 얘기한 부채디플레이션이나 마찬가지 얘깁니다.
 
실제로 지난해 가처분 소득에 대한 소비지출액의 비율을 뜻하는 평균소비성향은 73.4%로 2003년 통계 산출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연간 소비지출 증가율도 0.9%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였고요. 
 
(☞ 내수 부진… 빚 부담에 지갑 닫아, 경상 흑자도 ‘불황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162106365&code=920100
 
제가 연초에 정부의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3.9%에 대해서 소비 증가율을 낙관한 수치이기 때문에 약 1%포인트 정도 낮춰 봐야 한다는 평가를 했는데요, 바로 그 상황인 거죠.  2012년 3월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는 약 450조 원이었으니까 지금은 500조 원을 넘었을 겁니다. 소비가 계속 이렇게 지지부진하면, 자영업 붕괴는 현실의 일로 다가올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고 중산층에게 돈 빌려 집 사라고 부추기는 이 정부는 도대체 제정신일까요?
 
투자를 늘리겠다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정부, TPP에 들어가겠다고 농업 강국들과 서둘러 FTA를 체결하는 정부, 경기대책이라고는 오로지 부동산 가격 올리기밖에 모르는 정부…. 4년 후 정권이 바뀐다 해도 박근혜 정부가 남긴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나의 한 표'는 이렇게 우리 모두의 삶을 좌지우지 합니다. 
 
이미 약속된 지면을 넘겨서 독자들께 약속드린 희망찬 기사를 하나도 소개해 드리지 못하겠군요. 다음 주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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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터널 지나고 있는 중"

 

 '천안함 재판' 중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전 대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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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4  09: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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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천안함이 반파돼 침몰했다. 40명의 장병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의 ‘1번 어뢰’에 의해 격침당했다는 군당국의 공식발표로 마무리된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4년이 됐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 사건을 이유로 정부가 취한 ‘5.24조치’는 여전히 ‘유효’해 남북 간 교류가 원천적으로 가로막혀 있는 상태도 지속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46명의 장병과 유족들은 물론, 많은 이들에게는 아직 천안함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이 사건으로 인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당해 재판이 진행 중인 신상철 전 <서프라이즈> 대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을 맡기도 했던 신상철 전 대표와 천안함 사건 4주기를 맞아 서면인터뷰를 통해 현황과 과제를 짚어보았다.

“세계 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

   
▲ 2012년 1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에 앞서 포즈를 취한 신상철 전 대표.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천안함 사건 4주기를 맞습니다. 개인적인 소회는 어떠신지요?

■ 신상철 전 대표 : 천안함 사건이 2010년 3월 26일이었고 오는 26일이면 꼬박 4년의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지금 역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뭐랄까요... 느낌이 참 묘하군요. 작년 천안함 3주기 때에는 ‘아, 3년상이 끝나는구나...’하는 어떤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면, 4주기를 맞는 지금은 ‘천안함 사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 건강상의 이유로 천안함 재판이 잠시 중단된 걸로 아는데, 건강 상태는 어떠신지요?

■ 2012년 겨울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이 발견되어 작년 1월과 3월 두 번에 걸쳐 수술을 하였고 4월부터 6개월간 12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항암치료가 너무나 힘들어서 그 기간동안 재판을 하지 못하였지요. 10월 중순 치료가 끝나고 11월부터 중단되었던 재판이 재개되어 오는 4월에는 23차 공판이 열리게 될 예정입니다.

□ 천안함 사건 관계자들이 대부분 승진한 것으로 압니다. 함정이 완파되고 장병들이 대거 사망했음에도 이들이 승진된 것은 이례적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참으로 아이러니이지요. 국방부의 주장에 의하면 ‘한미 양국 이지스함 3척과 수십 척의 함대가 합동훈련을 벌였던 키리졸브 훈련, 그것도 대잠수함 훈련이 진행되던 중 북한의 잠수함 한 척이 NLL을 넘어 와 경계 중이던 초계함을 어뢰 1발로 격침시키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경계에 실패한 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관련자 대부분이 진급하고 영전을 했습니다. 세계 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겁니다.

국방부가 경계근무 실패의 1차적 책임자인 천안함 함장을 징계하려고 하니 함장은 조용히 변호사를 선임합니다. 그러자 국방부는 없던 일로 하고 덮어버려요. 2함대 사령관을 징계하려고 하니 행정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러자 또 국방부는 슬그머니 징계를 거둡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그 자체만으로 그 분들은 천안함 조사결과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셈이지요.

참고로 소위 ‘노크귀순’으로 알려진 동부전선에서의 북한군 귀순 사건 있지 않습니까? 그 사건으로 육군에서는 수뇌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지요. 경계작전에 실패하여 46명이 사망한 사건과 한 명의 북한군이 귀순한 사건에서의 징계 내용만 대비해 보더라도 어느 사건이 거짓이고 어느 사건이 진실인지 오롯이 드러나는 거지요.

“집단지성의 힘에 놀라게 된다”

   
▲ 사건 발생 초기인 2010년 6월, 건강한 모습으로 의욕적으로 인터뷰에 임한 신상철 전 대표.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최근의 진실 규명 운동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 매달 한 번씩 이어지고 있는 천안함 공판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천안함 진실규명에 있어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검찰측과 변호인측이 합의하여 신청한 증인이 무려 80여명에 달합니다. 그 분들을 법정에 불러 심문하는 일이야말로 진실규명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정이지요.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이 인터넷 칼럼 혹은 댓글 토론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사실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한데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않고 있는 많은 불특정다수의 국민이 아직까지도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랍고 또 제가 발견하지 못한 정보나 자료 혹은 묻혀졌던 진실의 단편들이 집단지성의 힘에 의해 조각조각 모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 천안함 재판이 이어지고 있는데, 재판 경과와 현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십시오.

■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고 이후 제가 여러 가지 의혹에 관한 글을 칼럼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게재를 하자 국방부의 고소고발로 인해 그해 5월부터 검찰조사를 받아 8월에 기소가 되었고 2010년 9월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후 준비기일을 거쳐 한 달에 한번 꼴로 공판이 열려 2012년 말까지 18차 공판이 이어졌고 2013년 1년간은 저의 병치료로 쉬었다가 2013년 11월 다시 공판이 재개되어 현재까지 21차 공판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 기간 동안 총 80여명의 증인 가운데 50여명이 법정 증언석에 섰고 현재는 재판부가 교체되는 과정에 있어 오는 4월부터 다시 재판이 재개될 예정입니다.

   
▲ 2012년 6월 11일 천안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원일 천안함 전 함장. 재판정을 나서며 기자들 앞에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천안함 소나는 어뢰를 탐지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현재까지 재판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과 향후 주요 사안에 대해 짚어주십시오.

■ 실제 재판과정에서 많은 의혹들에 대한 실체가 다루어지고 있고, 사건의 당사자 혹은 관련자들의 법정 증언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물론 인터넷언론을 비롯한 진보매체 조차도 천안함과 관련된 사안을 일체 보도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중요한 사실들이 천안함 재판을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함 함수가 무려 16시간 22분동안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는 사실이 해경 501부함장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고, 사고 다음날 함미를 해경이 찾았지만 국방부가 묵살했다는 사실, 그리고 천안함 사고 순간 최초의 보고 내용이 ‘좌초’였고 국방부, 합참등 상부에도 ‘좌초’로 보고했다는 사실이 해군작전사령부 심승섭 준장의 법정증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후타실의 마지막 장면이라며 국방부에서 공개한 CCTV 영상 가운데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저히 통제된 언론의 침묵 속에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파묻혀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기껏해야 칼럼 형식으로 써서 외치는 것이 전부인데 대부분의 언론들이 외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는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덮고 감추려고 해도 진실은 반드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야만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 때까지 지치지 않고 차분하게 많은 역사적인 사실과 진실의 기록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고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고 순간 최초의 보고 내용이 ‘좌초’

   
▲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천안함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이후 논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우리는 키리졸브 훈련이 한국과 미국 두 나라만이 참여하는 ‘한미 연합훈련’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단 1척의 잠수함만 파견했다 하더라도 제3국의 해군 역시 참여했다는 사실에 대한 진실규명입니다.

그것은 소위 ‘제3의 부표’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던 잠수함에 대한 진실규명인데요, 실제로 함수와 함미가 아닌 곳에 잠수함의 구조와 형상을 한 시커먼 물체가 가라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그곳에서 구조활동을 벌였던 UDT 동지회 회원의 증언과 그 모두를 육성녹음과 함께 꼼꼼하게 취재한 KBS 기자들의 취재기록과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비록 국방부에서는 정정보도를 강제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급급하였지만 하늘을 두 손으로 가릴 수는 없어서 취재기록으로 혹은 법정 증언을 통해 그 진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그 부분이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3의 부표 아래 무엇이 가라앉아 있었는가, 그것이야말로 ‘천안함 조작사건’의 열쇠인 것이지요.

□ 천안함 사건으로 5.24조치가 취해진 뒤 남북교류가 모두 중단된 상태입니다. 출구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천안함 사건은 ‘교통사고’입니다. 교통사고를 살인사건으로 바꿔놓은 것이 바로 천안함 사건의 딜레마입니다. 천안함 사건 직후 북한에서도 우리 정부에 제안을 한 것으로 압니다만 미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조사’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천안함의 진실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가장 진실된 규명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지요. 하지만 조작의 당사자들이 그것에 동의할 리가 만무한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그만큼 해법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현실적 한계인 것이지요.

최근 남북 이산가족 재회를 통한 남북 간 갈등의 벽을 일부 허물고 있는 것이 긍정적이긴 합니다만, 글쎄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그리고 진정한 해법에 대한 노력 없이 어떠한 논의도 곁가지를 맴도는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망합니다.

“가장 어두운 터널 지나고 있는 중”

   
▲ 2010년 5월 24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유명환 외교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왼쪽부터)이 대북 교류를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를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하지요. 진실이라는 놈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언제든 주머니를 뚫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할지의 문제이지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뜻입니다.□ 천안함 사건은 과연 진실 규명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합참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천안함 사건의 징계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진실의 일부를 밝히려고 했던 오병흥 육군준장의 사례에서 보듯 이미 진실의 강물은 지표면 아래를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천안함 사건 조작을 위해 국방부에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분들의 고뇌에 찬 목소리 또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진실이 드러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양심의 소리들이 국방부라는 거대한 둑에 난 조그만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물은 곧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둑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제는 더 진실을 밝힐 것도 없다고 할 정도 수준의 진실이 이미 밝혀져 있습니다. 그것을 완벽하게 입증할 증거들이 국방부의 베일 속에 있기에 다소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요.

□ 천안함 사건에 대한 언론들의 취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며,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요?

■ 한 가지 예를 들어 드리지요. 천안함 사건 불과 한 시간 뒤에 “천안함이 작전 중 미상의 물체와 충돌하여 침몰하였다”는 기사를 쓴 언론매체와 기자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 실명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덮어 두지요.

제 입장에서는 그 분을 법정의 증인으로 신청하여 법정 증언석에 세운 후, “천안함 사고 불과 한 시간 뒤 증인이 보도한 기사에서 ‘천안함이 미상의 물체와 충돌하여 침몰하였다’는 내용을 알려 준 해군의 관계자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그러한 갈등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 기자를 법정에 불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법정에 나와서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 분이 법정에 나와 진실을 증언한다 하더라도 국방부의 적극적인 차단에 힘입어 진실은 땅 속에 묻여버리고 진실을 말한 그 분은 99% 직장에서 짤리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사건에서 특종으로 진실을 보도한 기자들 상당수가 지방의 한직으로 쫓겨났거나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이 기자들로 하여금 아예 취재자체를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악순환 - 조작 당사자인 국방부 입장에서는 진실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제재수단 -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이 흘러 4년차에 접어든 천안함 진실규명의 현장이며 오늘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요. 완벽하게 장악되고 통제된 언론, 과거 이승만, 박정희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과하면 넘치는 법이고, 고무줄도 소성이 다하면 터지는 법이지요.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지금 우리가 그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늘 하며 삽니다. 그것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은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하는 것만큼이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밥줄을 틀어쥐고 있는 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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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쟁연습 압도한 북의 무력시위

한호석의 개벽예감 <10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3/24 [10:4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나토명 '프로그'로 알려진 러시아 '루나' 지대지 미사일     ©자주민보
 
▲ <사진 1> 2014년 3월 6일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2620군부대 비행훈련을 지도하면서 컴퓨터모의조종체계를 직접 운전하고 있다. 이 부대는 전원이 여성비행사로 구성된 특별한 항공부대다. 그런데 사진에 보이는 모의조종체계는 전투기 모의조종체계가 아니다. 이것은 그 여성비행사들이 전투기 비행사들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들은 기관포, 로켓포, 폭탄으로 무장한 저고도 공격기를 모는 여성비행사들이다. 저고도 공격기를 실전배치한 군대는 전 세계에서 조선인민군밖에 없고, 저고도 공격기를 모는 여성비행사들로 구성된 항공부대를 가진 군대도 전 세계에서 조선인민군밖에 없다.     © 자주민보



‘최강 무기’ 과시한 특별한 비행훈련 

2014년 3월 7일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2620군부대 비행훈련을 지도한 소식을 전하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훈련이 시작되자 조종간을 억세게 틀어잡고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사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훈련명령관철의 길에서 련마해온 자기들의 비행술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2620군부대 비행훈련을 지도하였던 3월 6일은, 지난 2월 24일부터 시작된 ‘키 리졸브’ 대북합동전쟁연습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었다. 따라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실시된 제2620군부대 비행훈련은 ‘키 리졸브’ 대북합동전쟁연습에 맞선 대응훈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인민군 전투부대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제2620군부대가 언론에 공개되는 중요한 대응훈련에 나선 것일까? 그 까닭은 제2620군부대가 여성비행사들로 구성된 특별한 항공부대이기 때문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비행훈련을 지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훈련에 참가한 비행사들이 모두 녀성들인데 불리한 기상조건 속에서도 전투동작들을 훌륭히 수행한다고, 사상정신상태가 대단히 좋다고, 당의 의도대로 높은 비행술을 소유하였다고 치하하시였다”고 한다. 이 보도내용을 읽어보면, 제2620군부대가 전원이 여성비행사들로 구성된 특별한 항공부대임을 알 수 있다. 

‘키 리졸브’ 대북합동전쟁연습이 막바지에 이른 긴장된 시점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여성비행사들로 구성된 항공군부대의 비행훈련을 지도하였을까? 북측 언론매체의 현장보도사진들에 담긴 사연을 풀어보면 아래와 같은 의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2620군부대에서 몸소 운전한 것은 전투기 비행사들이 쓰는 복잡한 컴퓨터모의조종체계가 아니라 비교적 단순한 컴퓨터모의조종체계다. 이것은 그 여성비행사들이 전투기 비행사들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항로에 비행운을 새겨가고 있는 비행사들의 훈련”이라는 표현이 보도기사에 들어있는 것을 보면, 그 여성비행사들은 헬기 비행사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헬기가 비행할 때는 비행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적들의 아성을 재더미로 만들어버릴 멸적의 기상이 용암처럼 끓어번지고 있었다”는 표현이 보도기사에 들어있는 것을 보면, 그 여성비행사들은 저고도 침투기 비행사도 아니다. 왜냐하면 저고도 침투기(AN-2)는 공격기가 아니라 항공륙전병을 공중침투시키는 병력수송기이므로, 병력수송기 비행사에게 “적들의 아성을 재더미로 만들어버릴 멸적의 기상이 용암처럼 끓어번지고 있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하늘의 유능한 전투비행사로 준비되었다”고 치하한 그 여성비행사들은 전투기도 아니고, 헬기도 아니고, 저고도 침투기도 아닌 어떤 기종을 모는 것일까? 2014년 3월 7일 <조선중앙텔레비죤> 20시 보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20시 보도에 방영된 화면에는 그 여성비행사들이 단발 프로펠러 항공기를 몰고 저고도 비행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전에 나온 남측 언론의 보도기사를 찾아보면, 단발 프로펠러 항공기를 모는 여성비행사들로 편성된 부대는 평양 근교 강동에 있는 항공군 1사단 23련대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항공군 제2620군부대가 바로 그 부대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저고도 침투기 안둘(AN-2)은 복엽기인데, 그 날 여성비행사들이 몰고 하늘로 날아오른 항공기는 단엽기였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단발 프로펠러 항공기 기종 가운데 단엽기는 CJ-6이라 부르는 항공기밖에 없다. 제2620군부대는 CJ-6을 모는 여성비행사들로 편성된 항공부대인 것이다. 

CJ-6은 중국이 1960년대에 생산하여 북에 수출한 기종이다. CJ-6을 북에서 무엇이라 부르는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중국은 그 기종을 약 3,000대 생산하였는데, 지금도 중국인민해방군은 CJ-6을 훈련기로 사용한다. 

 
▲ < 사진 2>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실전배치한 저고도 공격기 편대가 비행하는 모습이다. 이 저고도 공격기는 미국군이 실전배치한 공격헬기 아파치처럼 지상의 기갑무력을 격파할 위력적인 공중타격수단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저고도 공격기 150대를 실전배치하였다.     © 자주민보

주목하는 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이 CJ-6을 훈련기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인민군은 같은 기종을 실전배치하여 작전기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CJ-6 150대를 실전배치하였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로켓포와 폭탄을 탑재하고 7.62mm 기관포 두 문으로 무장한 저고도 공격기 CJ-6을 출격시킬 것이다. 

그 날 여성비행사들이 몰고 비행훈련에 나선 단엽기는 저고도 공격기 CJ-6이었고, 그래서 북측 언론매체들은 그 여성비행사들에 대해 “적들의 아성을 재더미로 만들어버릴 멸적의 기상이 용암처럼 끓어번지고 있었다”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CJ-6을 훈련기로 사용하는가 아니면 저고도 공격기로 사용하는가 하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차이는 조선인민군의 작전환경과 중국인민해방군의 작전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중국 대륙과 달리 전투종심이 짧고, 산악지대가 발달되었고, 고층건물이 많은 한반도 작전환경에서는 CJ-6을 저고도 공격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작전환경이 그처럼 다르므로, 전법과 무기체계도 당연히 그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반도 작전환경에서는 초음속 스텔스 전투기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적진 방공망을 뚫고 초저공으로 기습침투하는 저고도 공격기도 중요한 것이다. 

두 사람이 탑승하는 저고도 공격기 CJ-6의 비행속도는 시속 300km이며, 항속거리는 700km이며, 비행고도는 6.2km다. 미국군이 ‘최강 공격헬기’로 내세우는 아파치(AH-64 Apache)의 비행속도는 시속 265km, 항속거리는 480km, 비행고도는 6km이므로, 무장력을 제외하고 기동력만 비교하면 저고도 공격기 CJ-6이 공격헬기 아파치보다 조금 앞선다. CJ-6이 보유한 그러한 공중기동력은 그 저고도 공격기가 적진의 기갑무력을 공중에서 격파할 위력적인 타격수단임을 말해준다. 
 
▲ <사진 3> 김정은 제1위원장이 비행훈련을 마친 여성비행사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고사령관 앞에서 훈련을 실시한 병사들의 긴장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한 집안 가족이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처럼 보인다. 최고사령관과 병사들이 혈연적 일체감을 지닌 조선인민군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너무 모르고 있다. 북은 그런 혈연적 일체감이야말로 조선인민군이 그 어떤 강적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최강 무기'라고 말한다. .     © 자주민보

보도사진 속에 해맑은 얼굴로 등장한 여성비행사들이 로켓포와 폭탄으로 기갑무력을 격파할 저고도 공격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이 비행훈련을 마친 여성비행사들 속에서 그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놀라움을 안겨준다. <사진 3>을 보면, 자기들의 최고사령관 앞에서 비행훈련에 나선 비행사들의 긴장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 집안 가족이 정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그런 모습이다. 그 사진이 연출장면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놀라움은 더 커진다. 다른 나라 군대라면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는 비행훈련을 가족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는 조선인민군의 군풍 앞에서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기존 관념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어떻게 그런 특별한 군대가 있을 수 있을까? 

“인민군은 세계적인 토의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단의 모든 주요사항은 모두 토의의 대상이다. 사단장은 토의를 진행시키는 사회자에 불과하다. 소위도 사단장을 아무개 동지라 부르고 사단장의 잘못을 거침없이 지적한다. 사단장이라는 지위 때문에 사단장이 먼저 의견을 발표하지 않는다. (중략) 인민군 사단장은 한 달 4주 중에서 1주는 병사들과 같이 잠복근무를 선다. 2주는 병사들 내무반에서 병사들과 함께 기거한다. 나머지 1주만 공관에서 기거하도록 돼있다. 인민군에 있어 계급이 높다는 것은 보다 많은 일을 하라는 것이지 권위를 누리라는 것이 아니다.” 

이 흥미로운 인용문은 남측의 대표적인 반북인사가 쓴 ‘더 무서운 것은 북한군의 무형전력’이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한 대목을 옮겨 적은 것이다. 최고사령관과 병사들이 사상정신적으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군대인 조선인민군에 대해 세계는 너무도 모르고 있다. 로켓포와 폭탄을 탑재한 공격기를 몰고 적진에 돌진하여 기갑무력을 격파하는 고난도 비행훈련을 연마해온 여성비행사들의 용맹은, 그들이 자기들의 최고사령관과 맺은 혈연적 일체감에서 분출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조선인민군이 전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사상정신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견되는 것은 평시에 그러한 혈연적 일체감으로 뭉쳐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감행한 ‘키 리졸브’ 대북합동전쟁연습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꺼내든 ‘최강 무기’는 북에서 핵탄보다 더 강하다고 말하는 최고사령관과 병사들의 혈연적 일체감이었던 것이다.  
 

화선공연과 화력시위를 배합하여 ‘독수리’를 압도하다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발표를 인용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3월 15일 오전부터 발사차량 10여 대를 원산 인근 갈마반도로 이동하였고, 이튿날 동해 공해상으로 정체불명의 발사체 25발을 무더기로 발사하였다고 한다. 그 날 오후 6시 20분부터 10분 동안 60초 간격으로 10발을 쏘았고, 8시 3분부터 5분 동안 37.5초 간격으로 8발을 쏘았고, 9시 28분부터 4분 동안 34초 간격으로 7발을 쏘았다. 이처럼 조선인민군이 발사체 25발을 무더기로 쏜 것은, 미국이 감행하고 있는 ‘독수리’ 대북합동전쟁연습에 정면으로 맞선 강력한 화력시위였다. 

그보다 더 중시해야 하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정체불명의 발사체 25발을 발사하는 화력시위를 벌이고 있던 바로 그 시각, 김정은 제1위원장은 화력시위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인민군 장병들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화선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에서 말하는 화선공연이란 불과 불이 오가는 격전지에서 벌어지는 최전선 음악공연을 뜻한다. 

북측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조선인민군이 지난 3월 16일 원산 인근 갈마반도에서 오후 6시 20분부터 9시 32분까지 발사체 25발을 쏘며 화력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간대에 모란봉악단도 원산 인근의 어느 군부대 문화회관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장병들과 함께 관람한 화선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6.25전쟁 시기 미국군과 맞붙은 격전지에서 인민군 병사들이 화선악기를 만들어 화선공연을 하였다는 역사기록이 있는데,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이 감행하는 ‘독수리’ 대북합동전쟁연습에 대응하여 25발의 발사체를 집중발사하는 대규모 화력시위를 지도하던 중에 인민군 장병들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화선공연도 관람하였던 것이다.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고 있는 긴장된 시각에 모란봉악단이 조선인민군의 대규모 화력시위가 벌어진 원산 지역에 가서 화선공연을 펼친 것은, 북에서 말하는 ‘혁명무력’과 ‘혁명음악’의 배합역량으로 미국의 무력침공에 맞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북에서 ‘혁명음악’은 단결과 승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그 날의 화선공연은 단순한 음악공연이 아니라 북에서 말하는 ‘일심단결’의 의지와 ‘최후 승리’의 신심으로 미국의 전쟁연습을 압도한 특유의 정치활동이었던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모란봉악단의 화선공연이 원산 지역의 어느 군부대 문화회관에서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으로 옮겨가 인민군 장병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을 위해 날마다 계속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며, 조선인민군의 대규모 화력시위도 모란봉악단의 연속공연에 맞춰 원산 인근 갈마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은 같은 종류의 발사체를 3월 16일 밤에 25발, 3월 22일 새벽에 30발, 3월 23일 밤에 16발 쏘았으니,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현재까지 모두 71발이나 무더기로 발사한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무더기로 쏜 71발의 발사체는 무엇이었을까? 한국군 합참본부는 그 발사체가 소련산 루나(Luna) 지대지 로켓이라고 추정하였다. 미국군은 루나 로켓을 ‘프로그(FROG) 로켓’이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1960년부터 1982년까지 소련군에 실전배치되었던 루나 계열의 지대지 로켓은 4축8륜 발사차량(북에서는 자행발사대라고 부름)에 한 발 씩 탑재되는 것인데, 루나 계열 로켓들 중에서 성능이 가장 좋은 루나-M 로켓은 사거리가 68km이며, 화학탄 또는 고폭탄 또는 200킬로톤급 핵탄을 장착할 수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그 71발의 발사체를 루나 로켓으로 추정한 까닭은 그 발사체들이 원산 갈마반도에서 동해 공해상으로 60∼70km 날아갔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3월 17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북한은 1960년대부터 프로그 지대지 로켓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군은 프로그 로켓의 궤적과 탄도에 대해 알고 있다. 탄도의 궤적을 일치시켜 본 결과 프로그 로켓으로 판단됐고, 이번 발사과정에 여러 가지 움직임을 미리 포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이 무더기로 발사한 발사체가 루나 로켓 71발이라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추정은 엉터리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첫째, 북은 1969년과 1970년에 소련에서 루나 로켓을 수입하였는데, 45년 전에 수입한 로켓을 아직까지도 실전배치하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추진제(propellant)에도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에 30년 이상 지난 로켓추진제는 사용하지 못한다. 북은 유효기간이 지난 루나 로켓을 오래 전에 모두 폐기하였는데, 오래 전에 폐기한 로켓이 어느 날 갑자기 ‘부활’하여 71발이나 무더기로 발사되었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는 만화 같은 이야기다.

둘째,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이 펴내는 세계 각국의 군사력 및 군수산업에 관한 연례평가서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0년판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루나 로켓을 탑재한 4축8륜 자행발사대를 24대 보유하였는데, 그 자행발사대에는 루나 로켓(프로그-3과 프로그-5) 또는 루나-M 로켓(프로그-7)이 각각 한 발 씩 탑재되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조선인민군은 오래 전에 루나 로켓을 모두 폐기하였는데, 국제전략연구원은 2010년까지도 북에 루나 로켓이 남아있는 것으로 잘못 추정하였다.

설령 국제전략연구원의 그런 잘못된 추정을 인정하더라도,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루나 로켓은 모두 24발밖에 되지 않는데, 한국군 합참본부는 조선인민군이 지난 3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루나 로켓 71발을 발사하였다고 추정하였으니, 그런 식의 추정이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전략연구원이 조선인민군이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 루나 계열 로켓은 두 종류다. 한 종류는 사거리가 45km인 루나 로켓이고, 다른 한 종류는 사거리가 68km인 루나-M 로켓이다. 국제전략연구원이 조선인민군이 아직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 루나 계열의 로켓 24발은 모두가 루나-M 로켓이 아니므로, 지난 3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발사된 정체불명의 발사체가 루나 계열의 로켓이라면 71발이 모두 60∼70km를 날아갈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군 합참본부는 조선인민군이 발사한 71발이 모두 60∼70km를 날아간 루나 로켓(프로그 로켓)이라고 발표하였으니, 엉터리도 그런 엉터리가 없다.   


정체불명의 발사체 71발을 발사한 대규모 화력시위의 내막

지난 3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조선인민군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는 공중정찰시간대를 피하여 정체불명의 발사체 71발을 발사하였으므로, 한국군의 감시레이더에 나타난 그 발사체의 궤적과 비행각도만 가지고서는 그 발사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그 발사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첫째, 조선인민군이 3월 16일 밤에 정체불명의 발사체를 발사한 시간을 살펴보면, 1차 발사는 오후 6시 20분부터 10분 동안 지속되었고, 2차 발사는 오후 8시 3분부터 5분 동안 지속되었고, 3차 발사는 오후 9시 28분부터 4분 동안 지속되었다. 1차 발사를 마치고 1시간 33분 뒤에 2차 발사를 하였고, 2차 발사를 마치고 1시간 20분 뒤에 3차 발사를 하였다. 발사시간에서 그처럼 1시간 이상 간격이 생긴 까닭은, 어떤 한 지점에서 25발을 발사하지 않고 세 지점에서 1시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각각 발사하였기 때문이다. 왜 한 곳에서 25발을 모두 발사하지 않고 세 곳에서 시간차를 두고 몇 발씩 나누어 발사하였을까? 그 까닭은 그 발사체를 탑재한 발사대가 너무 길어서 25대를 모두 어느 한 지점에 집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차 발사지점에는 발사대 10대가 집결하였고, 2차 발사지점에는 8대가 집결하였고, 3차 발사지점에는 7대가 집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3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갈마반도에 출동한 발사대 71대가 4축8륜 자행발사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견인발사대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견인발사대의 길이는 15∼16m다. 따라서 견인발사대에 탑재하면서도 사거리가 60∼70km가 되는 발사체가 무엇인지 알아보면, 그 발사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둘째, 2014년 3월 17일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88군부대 비행훈련을 지도한 소식을 보도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188군부대 비행사들이 “급상승하며 아득히 사려졌다가 <적>진에로 벼락같이 급강하하는 비행대들”의 비행훈련을 지도한 뒤에 “훈련이 잘 되었다”고 평가하면서 비행훈련에 참가한 비행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진 4>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군이 '독수리' 대북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던 지난 3월 16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제188군부대의 비행훈련을 지도하였다. 그 부대는 미그-21을 배치한 항공부대다. 북은 미그-21 성능을 한반도 작전환경에 적합하게 개량하는 고도의 기술력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지금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미그-21은 성능이 대폭 향상된 조선형 미그-21이다. 숙련된 비행사가 모는 조선형 미그-21은 한반도 근접공중전에서 미국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에 능히 맞설 수 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조선형 미그-21 500대를 비롯하여 각종 작전기 1,240대를 보유한 세계 4위의 공중무력강국이다.     © 자주민보
 
▲ <사진 5>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지상대공중로케트 번개-1호가 견인발사대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독수리' 대북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2014년 3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번개-1호 71발을 동해 공해상으로 발사하는 대규모 화력시위를 벌였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원산 갈마반도에서 발사된 71발이 모두 소련산 루나 로켓이라고 추정하였지만, 그것은 오류다. 그것은 위의 사진에 나온 지상대공중로케트 번개-1호였다. 러시아의 S-75 드바이너(Dvina)와 동급이다.     © 자주민보

그런데 <사진 4>에 나타난 전투기는 미그-21이다. 도색을 하지 않은 은빛 기체에 붉은 색으로 크게 725라는 식별번호를 써놓은 것이 보인다.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제188군부대에 미그-21이 배치되었음을 말해준다.

남측 언론보도에 보도된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전투기 배치상황을 살펴보면, 미그-21이 배치된 비행장은 원산비행장, 황주비행장, 덕산비행장, 의주비행장, 북창비행장, 황수원리비행장, 풍산비행장 등 여섯 곳이다. 북에서는 공군기지를 비행장이라 부른다. 제188군부대는 그 비행장들 가운데서 원산비행장 또는 갈마비행장이라 불리는 곳에 배치된 인민군 항공군 제2항공사단 제46비행련대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조선인민군이 갈마반도에서 정체불명의 발사체 25발을 무더기로 발사한 야간화력시위를 벌인 바로 그 날 낮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갈마반도에 있는 제188군부대의 비행훈련을 지도하였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북측 언론보도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3월 16일 원산 상공을 수호하는 인민군 반항공부대가 견인발사대에 탑재한 지대공미사일 25발을 세 지점에서 시간차를 두고 발사하였고, 3월 22일과 3월 23일에도 같은 종류의 지대공미사일을 같은 지역에서 연속 발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운용하는 지대공미사일(북에서는 지상대공중로케트라고 부름) 가운데 견인발사대에 탑재되고, 사거리가 60∼70km인 지대공미사일은 번개-1호밖에 없다.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지대공미사일 번개-1호는 북이 소련에서 수입한 지대공미사일 S-75를 모방하여 1968년 10월 28일에 자체 개발에 성공하였고 그 이후 성능을 개량한 것이다. 미국군이 ‘SA-2’라고 제멋대로 부르는 소련산 지대공미사일 S-75는 사거리가 45km밖에 되지 않고, 사고도도 25km밖에 되지 않지만, 북이 성능을 대폭 개량한 지대공미사일 번개-1호의 사거리는 66km로, 사고도는 35km로 늘어났다. 
 
 ▲ <사진 6> 이란혁명수비군이 번개-1호와 동급인 지대공미사일 싸이야드(Sayyad)를 쏘는 발사장면이다. 로켓분사구에서 엄청난 화염이 분출되면서 강한 후폭풍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반항공군도 원산 인근 갈마반도에서 바로 그런 모습으로 지상대공중로케트 번개-1호 71발을 동해 공해상으로 대량 발사하면서 미국의 '독수리' 대북합동전쟁연습에 정면으로 맞섰다. 조선인민군의 강력한 대응화력시위는 미국이 북을 자극하는 전쟁연습을 감행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주민보

한국군 합참본부는 조선인민군이 3월 16일, 3월 22일, 3월 23일에 무더기로 발사한 동일한 종류의 발사체 71발이 모두 소련산 루나 로켓(미국군은 프로그 로켓으로 부름)이라고 추정했지만, 위에서 논한 것처럼 그것은 루나 로켓이 아니라 지대공미사일 번개-1호다. <사진 6>은 이란혁명수비군이 번개-1호와 같은 급의 지대공미사일 싸이야드(Sayyad)를 발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지대공미사일 번개-1호 71발을 세 차례에 걸쳐 무더기로 발사한 것은, 번개-1호를 엄청나게 많이 실전배치하였음을 말해준다. 통상적으로, 미사일 보유량 중에서 20분의 1을 발사연습 또는 화력시위에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비율로 계산하면 북이 이번에 71발을 발사한 번개-1호의 보유량은 1,400발로 추산된다. 하지만 어느 한 종류의 미사일을 1,400발이나 대량으로 생산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 미사일의 경우 대략 10년을 주기로 하여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는 추세이므로, 어느 특정한 미사일 생산에 그처럼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번개-1호를 71발이나 무더기로 발사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미사일 발사훈련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미사일은 매우 값비싼 무기이므로 발사훈련에 그처럼 무더기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사훈련이 아니면 화력시위다. 

그렇다면 미사일을 발사하는 화력시위에서 71발을 무더기로 발사할 수 있을까? 화력시위에서 어느 특정한 미사일을 그처럼 대량으로 발사하는 것은, 신형 미사일을 대량으로 생산할 때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북은 최신형 장거리 지대공미사일 번개-6호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번개-1호를 71발이나 발사하는 대규모 화력시위를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미국군이 ‘키 리졸브’ 대북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고 있었던 지난 2월 27일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에서 사거리가 400km인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번개-6호 4발을 발사한 바 있다. 이에 관해서는 2014년 3월 3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최근 발사 북 미사일은 S-400급 최첨단 지대공미사일’에서 논하였다. 

지금 북은 사거리가 400km인 번개-6호를 생산하여 실전배치하고 있으므로, 이번에 대규모 화력시위에서 사거리가 66km인 번개-1호를 그처럼 대량으로 발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전환경에 적합하게 개량된 맞춤형 전투기들

2014년 3월 17일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88군부대 비행훈련을 지도한 소식을 보도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제2620군부대와 마찬가지로 제188군부대도 ‘오중흡 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부대라고 보도된 것을 보면, 그 부대도 역시 인민군 정예부대들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1960년대에 소련에서 생산된 낡은 전투기인 미그-21을 운용하는 부대를 어찌 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50년 전에 생산되기 시작한 낡은 기종이라 할지라도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손에 들어가면 위력적인 전투기로 개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의문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그런 의문은 자연히 풀린다. 

첫째, 미그-21은 전자장비성능이 최신형 전투기에 비해 뒤지고 항속거리도 짧지만, 기동성은 뛰어나다. 따라서 미그-21은 고성능 전자장비와 장거리 비행능력이 사실상 필요 없고 무엇보다 기동성으로 승부가 갈리는 근접공중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미그-21은 전시에 근접공중전이 벌어질 한반도 작전환경에 아주 적합한 전투기인 것이다. 숙련된 비행사가 조종하는 미그-21은 근접공중전에서 미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 F-16에 능히 맞설 수 있다.

둘째, 미그-21을 제작하는 원천기술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항공사 미그(Russian Aircraft Corporation MiG)가 가지고 있는데, 쿠바가 2013년 7월 중순 북의 화물선 청천강호에 미그-21 두 대와 그 엔진 15대를 실어 북으로 보내는 도중 파나마 당국에 억류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쿠바는 미그-21의 성능개량을 러시아 항공사 미그에게 맡기지 않고, 북에 맡기려고 하였다. 이것은 북이 미그-21을 현대화하는 성능개량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미그-21은 북이 오래 전 소련에서 수입한 낡은 미그-21이 아니라, 북의 기술로 성능이 개량된 조선형 미그-21인 것이다. 

인민군 항공군에서 공병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가 <월간조선> 2007년 7월호에 실린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미그-21 500대를 보유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보유량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미그-21을 그처럼 많이 보유하였으니 다른 작전기들은 또 얼마나 많이 보유하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항공전문 웹사이트 <플라잇 글로벌(Flight Global)>에 실린 ‘2013년 세계 공군력 발전 보고서’에 나온 몇몇 군사강국들의 작전기 보유대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작전기 보유대수는 미국 2,470대, 중국 1,453대, 러시아 1,438대, 인도 786대, 조선 574대, 이집트 414대, 한국 409대, 일본 291대다. 그런데 <연합뉴스> 2013년 5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부가 파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작전기 보유대수는 1,020대이고, 위에서 언급한 탈북자가 같은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작전기 보유대수는 1,240대다. 북은 작전기 보유에서 세계 4위인 것이다.  

그런데 북이 낡은 작전기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신형 작전기 몇 대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북의 공중무력의 취약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작전기 성능은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중무력이야말로 어떤 기종의 작전기를 어떤 작전환경에서 어떤 전법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입체적인 평가방식에 따라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전기 성능 평가서에 나온 구형 작전기 성능과 신형 작전기 성능을 평면적으로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한반도 실전환경에 적합한 작전기를 얼마나 많이 실전배치하였는가를 알아보고, 비행사들이 자기의 실전환경에 맞는 비행술을 연마하였는지 살펴보고 공중작전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 <사진 7> 미그-21을 모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사들이 출격 직전 자기들이 몰고 하늘로 날아오를 전투기 앞에서 결의모임을 하는 장면이다. 목숨을 건 격렬한 전투현장에서 전투원들의 사상정신력을 무엇보다 가장 중시하는 그들의 고유한 군풍을 이 사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북측 자료들에 따르면, 자기 조국을 보위하기 위한 사상정신력으로 무장한 '하늘의 결사대'는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게 개량된 맞춤형 전투기 미그-21을 몰고 근접공중전을 벌이는 '주체전법'에 정통하다고 한다.     © 자주민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은 작전기 보유에서 세계 4위이고, 북의 주장에 따르면, 인민군 항공군 비행사들은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게 개조된 조선형 작전기를 몰고 공중작전을 벌이는 ‘주체전법’에 정통하다고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형 작전기와 ‘주체전법’을 중시하는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한반도 실전환경에 적합한 맞춤형 공중작전능력을 보유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각종 작전기 2,470대를 보유하여 그 분야에서 세계 1위이지만,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작전기 2,470대를 모두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지 못한다. 그 가운데 700대만 한반도 전선에 투입해도 최대로 투입한 것으로 될 것이다. 반면에 북은 자기가 보유한 각종 작전기 1,240대를 모두 전선에 투입할 것이다. 더욱이 미국군이 한반도 전선에 투입할 전투기들은 현지 작전환경에 맞게 성능이 개량되지 않은 것들이고, 조선인민군이 전선에 투입할 전투기들은 현지 작전환경에 맞게 성능이 개량된 맞춤형 전투기들이다. 이런 상황을 살펴보면, 한반도 상공에서 맞붙을 근접공중전에서 어느 쪽이 이길 것인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독수리’ 대북합동전쟁연습이 막바지에 오르게 되는 오는 4월 초에 미국 공군은 한국 공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각종 작전기 90여 대를 동원하여 광주공군기지와 군산공군기지에서 ‘맥스 썬더(Max Thunder)’라는 이름의 합동공중작전연습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은 이제껏 그렇게 해온 것처럼 그 때 가서도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여 ‘맥스 썬더’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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