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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언론 로비’ 전담 조직 신설…보도 통제 우려

등록 : 2015.03.2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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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언론출신 ‘협력관’ 채용 추진
신문·방송·인터넷언론 창구로 활용
언론사 압박·회유 악용 우려에
“정책현안 소통위해” 해명

정부 정책에 관한 홍보 전반을 관장해온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이 최근 언론사 간부 출신을 채용해 언론인 대면 접촉과 보도 협조 요청을 위한 창구로 활용하는 언론협력관 직제를 새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 학자들은 언론협력관의 보도 협조 요청이 상황에 따라 언론사에 대한 압박·회유로 변질되는 등 보도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일 정부 관계자는 “국민소통실이 지난 연말부터 언론담당협력관(가칭) 직제를 만드는 계획을 검토해 최근 조직구성 등에 대한 기본안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신설되는 직제에는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 등을 전담하는 언론 출신 협력관 3명과 지원 인력들을 배치할 예정이다. 언론협력관은 임기 2~5년의 전문임기제 계약직(국장급)으로 언론사 간부 출신 퇴직자들 가운데 적임자를 한두 달 안에 공모 또는 추천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현재 국민소통실은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계동 국립극장 분관 등지에서 협력관들이 활동할 사무실을 물색 중이다. 국민소통실이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직보하는 형태로 추진하고 있는 이 계획은, 외부는 물론 문체부 다른 국·실에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문체부 쪽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기자들을 수시로 만나 보도가 예상되는 정책 현안에 대해 미리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주된 업무”라며 “계약직이기 때문에 1년마다 한번씩 정부의 승인을 받아 임기를 연장하는 한시 직제”라고 밝혔다. 또 “홍보 전문가도 채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국민소통실 핵심 인사는 “업무에 매인 공무원들이 언론사 입장을 교감하며 소통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종교계 인사들을 종무관으로 영입해온 관행처럼 언론을 아는 전직 언론인들을 정책소통에 활용해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인사개입설, 기관장 낙하산 논란, 인사 난맥상이 잇따라 대서특필되고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확산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는 게 문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언론학계 전문가들은 협력관제 신설이 목적, 기능 등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을 공개하고 설명하는 공보 기능과 달리 언론사 간부·기자들을 사석에서 만나 협조를 요청하는 ‘로비활동’이 주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언론인 출신들이 기관원이 되어 언론사를 출입하고 기자들을 계속 만나는 행위 자체가 비정상적인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이라며 “보도 협조 요청은 언론사나 언론인의 개별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압박이나 회유로 변질될 수 있고, 음성적으로 보도 내용을 사전 조율할 여지도 있어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 보도지침 등으로 악명을 떨쳤던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도 전직 언론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보도 내용을 사전 조율한 전력이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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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들은 생뚱맞게 부정부패 청산을 외치고 있을까요?

재탕에 4대강 사업 빠진 ‘수상한 부정부패 척결’
 
도대체 왜 이들은 생뚱맞게 부정부패 청산을 외치고 있을까요?
 
임병도 | 2015-03-20 08:46: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3월 12일 이완구 국무총리는 취임 한 달 만에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을 보던 시민들은 깜짝 놀랍니다. 갑자기 ‘부정부패’에 관한 얘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인사청문회 당시 각종 비리로 ‘죄송하다’고 했던 이완구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니 너무 황당했습니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가세해서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는 이완구 총리의 말을 거들며 부패 청산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가 청산되지 않은 현실은 있지만, 갑자기 총리와 대통령이 부정부패를 외치니 이상합니다. 도대체 왜 이들은 생뚱맞게 부정부패 청산을 외치고 있을까요?


‘부정부패 척결도 재탕하나요? 이미 2014년도 작품’

부정부패 청산이나 척결은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얘기가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완구 총리나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부정부패 청산’은 작년에 모두 나왔던 발표입니다.

2014년 7월 8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정 총리는 대국민 담화문에서 세월호 사고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잘못된 커넥션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홍원 총리는 “원전 비리, 체육계 비리, 기업 비리 등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사회의 각종 부패구조들도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별도 팀을 구성해서 이런 부정부패를 반드시 척결해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저의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라며 부정부패 척결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되고 난 며칠 뒤인 2014년 7월 22일 ‘앞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공직사회 개혁, 안전혁신, 부패척결 등 국가혁신 과제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이완구 총리 때와 마찬가지로 정 총리의 부정부패 척결을 뒷받침해줬습니다.

부정부패 척결을 주장했던 정홍원 총리와 이완구 총리,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박근혜 대통령, 마치 먹었던 국을 재탕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똑같습니다.


‘부정부패 척결, 그동안 뭐 했나요?’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되고 나서, 부정부패 척결은 어떻게 됐을까요?

2014년 7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부정부패 척결’ 얘기가 나오자마자, 국무총리 소속 ‘부패척결 추진단’이 공식 출법합니다. 국무총리 소속 국무조정실은 2014년 8월 25일 ‘부정부패 척결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다양한 방안을 발표합니다.

국무총리실 홈페이지에도 부정부패 관련 메뉴를 신설하여 다양한 부정부패 관련 민원이나 정보를 올려놓았습니다.

이후 검찰청, 경찰청, 국방부, 조달청 등 정부기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이 활동을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부패척결추진단은 ‘정부합동 부정, 부패 신고센터’를 개설해 부패척결 5대 핵심분야에 대한 제보와 신고를 받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작년 8월부터 시작한 부패 척결이나 청산을 하면서도 왜 갑자기 이완구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부정부패 청산’을 또 내세울까요?
 
박근혜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부패척결추진단은 물론이고 관련 검찰, 경찰 등을 모조리 다시 수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다른 의도라면 정치적 꼼수일 것입니다.


‘부정부패 척결, 왜 MB의 4대강 사업은 빠졌나?’
 
이완구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로 ‘방위사업’, ‘자원개발’, ‘대기업 비자금 조성’, ‘공적문서 유출’ 등을 내세웠습니다. 이런 비리에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는 이완구 총리의 발언은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방위사업 비리와 국가재정 관련 해외자원 개발, 대기업 문제 등은 이미 지난해 발족한 ‘부패척결 추진단’에서 추진하고 있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개인의 사익을 위한 공적문서 유출은 지난해에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 청와대 문서 유출과 관련이 있는 듯 보입니다.

아이엠피터가 볼 때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부정부패는 ‘MB의 4대강 사업’과 ‘국방비리’ 등이 있습니다. 이미 국방비리는 계속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MB의 4대강 사업’비리는 모호합니다.

특히 감사원에서 4대강 사업 비리의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으며, 아직도 관련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황인데도 이번 부정부패 척결에는 4대강 사업이 빠졌습니다.

경향만평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11월 6일 http://goo.gl/gLAjyo ⓒ 경향신문

부정부패 척결에 4대강 사업이 빠진 가장 큰 이유는 4대강 사업은 직접 MB를 향하기 때문입니다. 자원외교나 방위산업 비리는 MB가 아닌 주변 인물들에게 칼날이 겨눠집니다.

특히 친이계 의원들은 자원외교나 방위산업 등에 연루됐던 인물이 많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시범케이스로 몇 명을 구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바로 MB와 연결되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부담됩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부정부패 척결을 외쳐도 MB를 향해서는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부패와의 전쟁’이나 ‘부정부패 척결’ 모두가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어떤 비리는 손을 대지 않는 일 자체가 바로 부정부패입니다.

자신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국민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꼼수는 언젠가 또 다른 비리 연루자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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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해결하는 게 정치인듯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3/20 09:49
  • 수정일
    2015/03/20 09: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현환 2015. 03. 19
조회수 97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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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비참과 과오가 아무리 처절했어도 종말이 행복하면그 과정은 그것으로 잊혀진다. 그러나 헤피 엔드로 슬펐던 과정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관객의 경우다. 슬픔을 겪은 주인공은 종말의 행복보다도 불행했던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그 차이는 불행을 체험한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위치의 차이다. 전쟁에는 관객이 없다. 모두가 슬픈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리영희 저, <전환시대의 논리> 중에서

 국회의원회관 532호. 이 문구를 잊지 못해 책상 앞머리에 두고 하루에도 여러 번 읽는다는 의원을 만났다. 원로 언론인이었던 고 리영희 선생님의 말이 이 세상에 울리기 바라며, 국민에게 간절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초선, 야당, 여성. 어느 것 하나 유리할 것 없는 조건에서 자신의 정치를 위해 기지개를 키고 있는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 권은희. 그녀가 걸어온 정치는 무엇일까. 앞으로 그녀가 하고자 하는 정치는 무엇일까. 


‘용판무죄 은희유죄’- 공익제보자 권은희

 

  - 지난 1월 29일, 국정원 댓글관련 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 씨가 최근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을 외부로 알린 ‘공익제보자’로서 지금 심정이 어떠한가?

  = 지금도 변함없다. 수사 중인 경찰에게 ‘외압’을 넣었던 경찰 윗선의 부조리를 폭로한 행동에 대해 후회 없다. 경찰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1월 29일 결과로 인해 당시 사건을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사실에 참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행동에는 부끄럼 없다. 
물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1심 때부터 일관되게 증언해왔던 내용이 결국 반영되지 않은 현실에 답답하다. 간과된 내용은 이렇다. 경찰 윗선은 2012년 12월 16일 23시,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한 마디 말도 없이, 국정원 댓글사건내용을 공개했다. 그것도 허위로 조작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나에게 아무런 얘기 없이 언론에 알렸다.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나는 이러한 사실을 법정에서 수차례 증언했다. 그 수사의 결과로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 댓글활동이 확인되었다. 
  현재 법원은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고 있다. 죄가 없다면 법적으로 조치를 받을 리가 없다. 이는 곧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하여 조직적으로 은폐와 왜곡, 날조와 부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나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우리 사법체계와 국민이 직접 목격했다. 역사가 지켜봤다. 대선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집단이 개입됐고, 한 점 의혹 없이 이를 밝히라는 시대적 요구에 헌법을 수호하고 지켜야할 조직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그럼에도 왜 사법부가 이렇게 무책임한 판단을 했는지 답답하다. 이해할 수 없다.

  - 위증혐의로 검찰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예정인가?

  = 처음부터 위험성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보수단체로부터 모해 위증죄(형사사건 에 관하여 피고인·피의자를 음해할 목적으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했다는 죄)건이 접수 되어있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재판에서는 내가 참고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자료수집이나 비교분석 등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와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사건이 진행이 되면 당사자로서 주도적으로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참여가 보장된다. 이를 계기로 국민여러분들께서 더욱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초선 야당 여성 그리고 국방위원회 의원


  - 초선이다. 야당의원이다. 여성의원이기도 하다. 첫 상임위가 국방위원회인데, 부담은 없었나? 작년 7월 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겪었던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 2014년 7월 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8월부터 곧바로 국회에 등원했다. 당시 분리 국감이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라서 바로 국정감사를 준비해야했다. 짧은 시간동안 정책을 파악해야한다는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여성이라서 국방 현안이 멀지 않냐는 질문들을 많이 받는데, 기본적으로 경찰 조직과 군 조직이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큰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국방위 배정 후 제일 먼저 지난 국방위 회의록부터 읽으며 어떤 논의가 진행되어왔는지 파악했다. 흐름을 읽고 나니 근본적인 문제들이 보였다. 이후 국정감사를 통해 군 수사의 독립성·공정성 확보방안 및 군 사법체계 개선, 병영문화개선 등 큰 틀에서 군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노력했다.

  - 작년 10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7사단 여군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 시켰다. 처음 이 문제를 어떻게 알게 됐나? 그 이후 조치는?

  = 작년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하며 지난 4년간 군 내 성폭력 사건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17사단장 성추행 문제가 발생하면서 제가 지적했던 문제가 주목을 받은 것 같다. 하나의 사건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여군들의 인권이 보장받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첫째, 군 내 성폭력 사건 수사에 대한 전문성과 투명성, 이에 대한 제도화를 요구하였고, 두 번째로, 성폭력 피해자 보호 제도를 마련하여 2차 피해 방지, 세번째로 부사관 인사에 있어 지휘관의 주관적 평가 축소, 네 번째로 군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강화를 요구했다.

  - 작년 오대위 자살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군에서 현재 자행되고 있는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군은 철저한 위계질서를 위해 상명하복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피해자들은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두려워하고, 성범죄 특성 상 입증이 어려워 신고해도 처벌이 힘들다는 점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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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병직무활동의 근거 법령 마련 시급


  - 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성폭력은 엄연히 인권유린이다. 여군 성폭력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성폭력 피해자 중 하사의 비율이 가장 높은데, 이유는 이들이 장기복무예정자들이기 때문이다. 여성 부사관의 경우, 장기복무 선발 시 지휘추천 배점을 받게 되어 있다. 인사에 있어 상관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에 상급자의 권한 남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와도 무관하지 않다. 장기복무 선발 시 지휘추천 배점을 더욱 줄이고 평가를 객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한다.

  - 작년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군 헌병대 문제를 지적했다. 작년 12월 23일에는 ‘헌병직무활동의 법제화’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주최했다. 경찰출신이 바라 본 우리 군 헌병대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가장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은 헌병의 직무활동이 법령에 근거하지 못하고 지휘관의 자의적인 지휘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헌병 수사 대상이 되는 장병의 인권과 기본권이 침해될 뿐만 아니라, 헌병 직무활동의 범위와 한계가 명확하고 투명하게 규정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지휘관도 법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휘권을 행사하는데 장애가 발생되기도 한다. 헌병 직무활동의 전문성이 부족한 점, 업무의 문서화가 안되어 있는 점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헌병에 대한 지휘관의 자의적인 지휘권 행사를 배제하고 장병들의 인권과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헌병 직무활동의 근거 법령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 군 헌병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준비 중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 헌병 직무활동의 근거법령이 될 「군사상 질서유지와 안전에 관한 법」을 발의한 상태다. 이 근거법령을 뒷받침할 여러 제도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국방부에 요구해 왔고 국방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헌병의 행정직무와 수사직무를 뒷받침할 법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국방부에 제시하기도 하였다. 실무에서 필요한 부분들이 계속 수정⋅보완되어야 하겠지만 헌병의 직무활동에 관한 최소한의 객관성과 투명성,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추어질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수사를 포함한 헌병의 직무활동의 법제화를 통해 지난해 윤일병, 임병장 사건으로 실추된 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광주는 지금 무등산 공군부대 이전 논란

 

  - 최근 광주에 굵직한 국방 현안이 있다. 무등산 공군부대 이전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 문제는 정확이 무엇인가?

  = 1966년부터 무등산 정상에 주둔해온 공군 방공포대 부지는 국방부 소유가 아닌 공유지와 사유지로 구성되어있다. 국방부 시설본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면적만 광주월드컵경기장(연면적 7만 1630㎡)의 3배가량인 21만㎡에 이른다. 특히 국립공원 내 대대급, 근무인원 180명 이상 대규모 군사시설이 점유하는 사례는 무등산 국립공원이 유일하다. 무등산은 80년 5월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던, 광주시민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광주시민들은 그런 무등산을 국가영공방위를 위해 오랜 시간 양보해 온 것이다. 공군은 2020년대 초까지 대공방어를 위해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축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무등산 공군 방공포대도 현재 호크미사일을 천궁미사일로 교체하게 된다. 최차규 공군참모총장도 국정감사에서 확인해준 것처럼, 호크미사일의 경우 많은 면적과 인원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새롭게 바뀌는 천궁미사일은 지금과 같은 규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이 공군 방공포대 이전의 적기이다. 2014년 12월12일 국방부, 환경부, 광주시민사회단체가 처음으로 함께 모여, 방공포대 이전 문제를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방부 관계자에게 “광주시에서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기부대 양여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겠다” 또한 “새 후보지만 마련되면 옮긴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공군은 2015년 12월31일로 무등산 정상 사용기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토론회를 통해 이전 필요성과 타당성을 서로 인지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방부가 이전방식과 이전주체, 이전비용 조달방법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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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81년 광주 상무대 무각사를 방문해 기증한 범종의 소유권을 놓고 광주시와 국방부가 맞서고 있다. 최근 육군본부 등 관계자들을 만나 반환요구를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2014년 12월 17일 시민여러분과 함께 장성 상무대에 방문해 범종의 현황을 확인했다.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함께 방문했던 5.18단체회원들께서 참담한 표정으로 말씀을 잇지 못하셔서 가슴이 아팠다. 역사의 심판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을 새긴 범종이 아직까지 사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범종이 광주 시 소유라는 여러 근거들은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육군본부는 이를 반박할만한 아무런 서류가 없는 상태에서 “광주 시가 소유권을 입증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계약서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광주시에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

  - 작년 9월 16일,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윤일병 5차 공판에 참석했는데, 재판을 보며 어떤 감정이 들었나?

  = 윤일병 사건은 군의 폭력적 병영문화, 병사간 무관심과 신고제도의 무기력, 헌병의 부실수사, 군 지휘부의 사건 은폐와 축소 등 군의 난맥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었고 언론과 재판과정에서 그런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실제 공판과정을 지켜보며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고민을 하고 군의 난맥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 윤일병 사건은 사건의 조작과 은폐와 함께, 28사단 헌병대의 미흡한 초동수사가 진실 규명을 어렵게 했다.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출신으로서 군 헌병대 수사의 잘못된 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일례로 국정원 댓글사건을 보면, 수사상황과 수사의 발표가 상이했고 경찰 내부의 수사 독립성이 문제되었다. 그에 따라 2013년 12월 16일 훈령 개정으로 수사이의제기 규정이 만들어졌다. 범죄수사규칙에 '수사 지휘의 방식, 원칙적으로 서면으로 한다, 이의제기 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누구에게 제기한다.' 이런 부분들이 전부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이런 규정들에 의해서 그나마 내부의 수사권, 수사기능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헌병 수사에도 이러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 당시 재판정에는 윤일병의 유가족들이 있었다. 유족들을 보며 의원으로서 든 심정은 무엇인가?

  = 숨겨진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온 국민이 아파했다. 하지만 생 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고통 받는 장병들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8사단 윤일병 사건 외에도 22사단 임병장 사건, 17사단 성폭력 사건 등 국민들을 걱정스럽게 하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국방부는 2005년부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진정한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방법들은 지난 대책들에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지휘관들이 의지를 가져야 진정한 병영문화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 병영문화혁신위도 끝이 났다. 군 옴부즈만 제도, 군 인권법 보장, 군 사법제도 개혁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방위원회 의원으로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현재 추진 중에 있는 계획은 무엇?

  = 병영문화혁신위에서 내놓은 안을 검토해 보았다. 5개 주제 22개 세부과제를 선정하고 있는데 기존의 대책을 답습하거나 실효성 없는 안, 국정감사 지적 사항 중 누락된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났던 군가산점제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한 점, 위헌적 요소가 있는 관할관 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점, 실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헌병 수사 개혁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점 등이 있겠다.

  - ‘권은희의 정치’는 무엇인가?

  =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해결하는 게 정치인거 같다. 과거의 잘못에 매몰되지 않고 바로잡음으로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인거 같다. 그리고 그것이 권은희가 추구하는 정치다. 과거를 반면교사삼아 미래가 잘못되지 않게 하는 것. 경찰 권은희가 아닌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 권은희로서 앞으로 과거의 국방과 관련된 문제가 다가올 미래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글/ 정현환 기자 dondevoy8612@naver.com
사진/ 박승렬 사진작가 reol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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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성 처형' 내막... "김종필 이제는 밝혀야"

 

[인터뷰] 전명혁 교수 "황태성 사형... 유일한 생존 증언자는 김종필"

15.03.19 11:41l최종 업데이트 15.03.19 11:4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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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성, 1928년 9월 15일 치안유지법사건으로 체포되어 경기도 경찰부 형사과에서 촬영한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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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박정희(1917~1979)는 형의 친구인 황태성(1906~1963)을 친형 박상희보다 더 잘 따랐다고 한다. 박정희가 대구사범과 만주군관학교 갈 때도 황태성이 조언을 해주었고, 훗날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도 황태성이 보증을 서줬다고 한다. 

황태성은 북한에서 외무성·상업성·무역성 등에서 고위관리를 지내다가 김일성의 특사로 월남한다. 5·16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 남북통일의 길을 열겠다며 그러다가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연행됐다. 황태성은 당시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서 조사를 받다가 끝내 총살에 처해졌다.

1963년 황태성의 총살이 집행되던 날, 박정희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따르던 황태성의 사진을 보면서 "황태성 선생도 세월은 못 이기시는구나, 많이 늙으셨구나"라고 했다 한다. '야사'이기는 하지만, 권력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서운지 보여주는 일화다.

진실위에서 일했던 전명혁 박사, 그가 주장하는 '황태성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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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명혁 박사
ⓒ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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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혁 박사는 '황태성 사건'의 전문가다. 나는 그를 지난 2004년에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있었고,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있었다. 우리는 '동종업계' 사람이었다. 

2007년, 나는 전명혁 박사를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에서 다시 '직장 동료'로 만났다. 그는 박정희-전두환 정권기의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던 조사관이었고, 나는 그가 쓴 조사보고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주한외국특파원·공관원과 해외학자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1961년, 김일성은 남로당 출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자, 묘한 생각에 빠졌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좌익이 주도하여 벌인 1949년 대구 10월 항쟁 때 사살 당했다. 황태성은 박상희의 '절친'이었다. 김일성은 황태성을 남한에 특사로 보내 남북관계 정상화를 타진하기로 한다. 김일성은 박정희와 친분이 두터운 황태성에 크게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박정희도 처음에는 황태성을 김일성의 밀사로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황태성을 당시 서울의 최고급 호텔인 반도호텔에 수개월간이나 투숙 시키지 않았을까? 또 황태성은 북에서 많은 액수의 자금도 가지고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1년에는 북한 경제가 남한 경제보다 훨씬 발전했으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전명혁 박사 약력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책임연구원,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문위원
- 역사학연구소 소장 역임 
- 현재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 

< 저서 및 논문 > 
- 1920년대 한국사회주의운동연구(저서) 
- 현장검증 우리역사(공저)
- 1960년대 '1차 인혁당' 연구(논문) 
- 1960년대 '동백림사건'과 정치 사회적 담론의 변화(논문) 

- 1970年代 '在日僑胞留學生 國家保安法 事件' 硏究 (논문) 
김일성이 남로당 출신 박정희를 회유하기 위해 거액의 자금을 보냈고, 그 돈이 공화당의 조직자금 등으로 쓰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소문의 진위를 알 길이 없다. 황태성 사건의 진실규명 작업이 박정희에 의해서 은폐되었고 그 후 이명박 정권기의 진실위에서는 재심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진실이 사라진 곳에서 소문이 떠도는 것은 당연하다.    

1963년, 박정희는 김일성 특사인 황태성을 간첩으로 몰아 총살에 처한다. 특사를 죽인다는 것은 곧 전쟁 선포나 마찬가지다. 황태성의 총살 후 남북관계는 긴장국면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1968년 북한 124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사건은, 특사를 간첩으로 몰아 총살한 박정희에게 김일성이 복수하려는 시도는 아니었을까?

다음은 전명혁 박사와 황태성 사건에 대하여 지난 3주간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사형 전 "민족의 완전자주독립과 남북통일만세" 부른 황태성

- 지난 1963년 12월 14일,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김일성 특사인 황태성은 간첩죄로 총살을 당한다. 그 후 1968년 김일성은 김신조 등 북한특공대를 남한에 보내 청와대 습격작전을 시도한다. 1963년 황태성 총살 사건과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작전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지?
"제5대 대통령 취임식을 사흘 앞둔 1963년 12월 14일 오전 9시 20분경,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인 황태성은 군 앰뷸런스에 실려 인천 교외의 어느 골짜기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사형 집행이 되기 전 "민족의 완전자주독립과 남북통일만세"를 삼창했다고 한다.

당시 황태성은 1963년 7월 2일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사형을 판결 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1963년 10월 22일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됐다. 황태성은 이에 불복하고 1963년 11월 2일 재심을 신청하였으나 재심결정이 나기도 전에 사형이 집행됐다. 황태성이 사형되고 난 지 9개월이 지난 1964년 9월 3일, 서울고등법원은 황태성의 재심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김신조 등 124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 벌어지고 이틀 후인 1월 23일, 동해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24군부대 청와대 습격,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과 황태성 처형과는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여겨진다. 황태성의 처형은 5·16 쿠데타 이후, 남로당 출신인 박정희가 그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는 시도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 지난 2006년 황태성 유족들은 "5·16 직후 집권한 군사정부와 당시 중앙정보부가 황태성을 '간첩'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사형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2010년 이명박이 임명한 이영조 위원장 체제의 진실위는 "재심 사유가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황태성 사건을 황태성의 조카사위인 권상능 선생이 2006년 11월, 진실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진실위는 2010년 소위원회에서 황태성 사건이 '재심사유가 없다'고 사건을 기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진실위법 제22조(진실규명 조사개시) 3항 "위원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실규명사건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진실규명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이를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조항에 의거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개시를 직권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또한 황태성은 1961년 10월 20일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1961년 12월 1일까지 43일 동안 불법구금되어 있다가 고등군법회의에 송치·기소된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이는 형법 제124조의 불법감금죄,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황태성이 '김일성의 특사임을 증명하는 새로운 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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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주재 CIA가 미국무장관 러스크에게 보내는 비밀문서. '황태성 사건'에 대하여 1962년 4월 27일 한국 주재 CIA가 미국 국무장관 데이빗 딘 러스크에게 보내는 이 비밀문서에 따르면 황태성이 "한국의 통일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박정희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려고 시도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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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유족들은 황태성이 "김일성의 특사임을 증명하는 새로운 사실"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때 유족들이 주장했던 황태성이 "김일성의 특사임을 증명하는 새로운 사실"은 무엇이었는지? 
"황태성이 간첩이 아니라 김일성이 보낸 '특사'라고 하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5호(명백한 새로운 증거발견)에 따라 당연히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첫째, 1957년~1961년 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정치파견관을 역임했던 바딤 트카첸코의 진술에 따르면 '1961년 8월(박정희의 5·16 직후)에 남한 군부를 통하여 북측에 편지가 전달되었는데 편지에는 '나라의 평화통일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교섭하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회담은 "황해(서해)의 한 섬에서 각 측 장교 2명과 서기로 구성된 대표단 사이에 진행할 것이 제의"되었고, "이 모든 사정을 참조한 북한 지도부는 교섭에 동의했다... 남한 장교들은 나라 최고지도부(박정희)의 지시로 교섭에 나섰으며 그 명의로 4가지 사항으로 된 행동방침 1. 서울과 평양에 양측 상설군사대표부를 설치하며, 2. 남과 북이 통상 관계를 맺으며, 3. 시민들의 38선 자유통행을 보장하며, 4. 우편교환을 회복할 것 등"이 제출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조선일보>(1992년 6월 21일)에 따르면, 1961년 8월 9월부터 서해 용매도와 황해도 해주에서 10여 차례 남북한 비밀정치회담이 있었다는 사실이 당시 육군첩보부대장 이철희의 발언을 통해 확인됐다. 당시 정치회담에 파견된 남한측 대표로서 김석순씨의 사진을 게재했다. 

또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종필도 '황(태성)은 협상을 위해 (김일성의 특사로)내려왔다, 내가 그를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황태성이 김일성의 밀사였다는 사실을 김종필이 뒷받침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2001년 8월 17일 방영된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박정희와 레드 컴플렉스-황태성 간첩사건>에도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셋째, '황태성 사건'에 대하여 1962년 4월 27일 한국주재 CIA가 미국 국무장관 데이비드 딘 러스크에게 보내는 비밀문서에 따르면, 황태성이 "한국의 통일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박정희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려고 시도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사실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5호(명백한 새로운 증거발견)에 따른 재심사유가 될 수 있으며 황태성이 박정희와 김종필이 주장했듯이 그저 간첩이 아니라 김일성의 특사였다는 분명한 증거인 것이다."

- 황태성은 경북 출신의 사회주의자·독립운동가로, 일제 강점기 박정희의 '멘토'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왜 박정희는 '김일성 특사'로 남하한 황태성을 만나보지도 않고 총살 시켰다고 보는가? 황태성은 어떻게 박정희의 형 박상희와 가깝게 되었나? 또 황태성과 박정희의 친분관계는? 박상희 삶과 죽음이 박정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나?
"황태성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경성제일고보(경기고등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다닌 수재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고 1927년 신간회 김천지회를 창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고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과 관련되어 구속되기도 하는 등 일제하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였다.

황태성은 1906년 생으로 경북 칠곡 출신인 박정희의 친형 박상희와 오랜 친구였다. 황태성이 언제부터 박상희와 친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의 고등경찰자료에 의하면 1927년 5월 16일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 때 황태성은 김천의 금릉청년회 대표로, 박상희는 선산의 구산구락부 대표로 참석했다. 

황태성과 박상희는 일제하 '서울파' 사회주의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황태성은 김천 출신으로 대구 신명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근우회 김천 지회장으로 활동하던 조귀분을 박상희에게 소개하여 둘이 결혼에 이르게 됐다.

1945년 해방 직전, 황태성과 박상희는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에서 활동했다. 해방이 되자 황태성은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고, 박상희는 건국준비위원회 구미지부를 창설하여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회의에 경북 선산군 대표 3인 중 1인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1946년 10월 항쟁 때 황태성은 월북하였으나 박상희는 구미경찰서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경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는 박상희의 친구인 이재복의 추천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8월 30일, 황태성이 김일성 특사로 내려와서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 남북협상과 통일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체포되어 간첩혐의로 처형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황태성이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났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사건 당시 미국 CIA 요원인 래리 베이커는 "박정희와 황태성이 3번이나 만났다"고 증언을 한 바 있다. 이 내용은 재미 언론인 문명자의 저서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 소개됐다.  

황태성은 1961년 10월 20일,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1963년 12월 14일 처형됐다. 이 기간에 제5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면서,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에 대한 사상논쟁을 제기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가 15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후 박정희는 미국을 의식하였는지 그의 '레드 콤플렉스'를 감추려했는지 결국 황태성을 총살하고 말았다."  

"김종필, 이제라도 '황태성 사건'의 진실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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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황태성
ⓒ 민족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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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2기 진실위'가 생긴다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대표적 사건으로 '황태성 사건'을 꼽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황태성 사건'은 5·16 쿠데타 이후 북한이 남한에 황태성이란 거물급 인물을 '특사'로 보내 남북협상과 통일문제를 논의하려 했다가, 결국 황태성이 체포되어 '간첩혐의'로 처형된 사건이다. 또한 이 사건이 미친 파장은 결국 제5대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등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황태성 사건'은 일반 '간첩 사건'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한국현대사 연구자나 학계에서는 상당히 일반화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아직도 국가가 외면하고,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 자체가 과거청산이 아직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황태성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교훈을 주고 있다. 아직도 현실 정치와 사회에서 '색깔론'을 덧씌워 '빨갱이'이니 '좌익'이니 운운하지 않은가? 멀쩡한 사람을 정치적 희생물로 만드는 작태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 황태성 사건과 관련하여 김종필의 역할과 영향도 있었을 것 같은데. 특별히 김종필은 박상희의 딸 박영옥과 결혼한 사위이다. 박정희에게는 조카사위이고 중앙정보부를 만든 권력의 2인자였으니 분명히 황태성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로든지 역할을 했을 것 같다.
"김종필은 황태성 사건 당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하였고 또 민주공화당 초대의장을 역임하였다. 최근 김종필은 부인 박영옥이 사망한 직후 <중앙일보>에 한국현대사에 대한 회고록을 연재하고 있다. 박정희와 더불어 5·16 쿠데타의 주역이었고, 박상희의 사위였던 그는 5·16쿠데타 직후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는다'로 시작되는 '혁명공약'을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미국과 주변의 시선에 대한 방어적 표현이었다.

나는 한국현대사의 커다란 굴곡을 살아갔던 그가 황태성 사건뿐 아니라 역사적 진실에 대하여 '소이부답'(笑而不答)'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가 박정희와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던 행위에 대해 역사에 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황태성은 박정희는 물론 김종필과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황태성이 월남 후, 5·16 쿠데타 세력의 실세였던 김종필을 자주 만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설도 있다. 북한 노동당의 조직과 운영방식 등이 공화당 조직에 많이 참조되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황태성 사건의 진실을 밝힐 열쇠를 김종필이 가지고 있다고 지목할 수 있는 구체적 이유나 근거가 있는가? 
"황태성 사건과 관련해서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가 김종필이다. 그는 5·16쿠데타의 실질적 계획자라 할 수 있다. 서중석 교수에 따르면 당시 미국도 김종필에 대해 상당히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종필은 황태성의 절친인 박상희의 사위이고 '황태성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직책에 있었다.

김종필은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번복했지만, 1992년 6월 21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황태성을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재미언론인 문명자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다. 김종필은 현재 <중앙일보>에 한국현대사에 대한 증언을 연재하고 있다. 황태성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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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경제 실력은? / 김의겸

등록 : 2015.03.18 21:04수정 : 2015.03.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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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숨어사는 문재인을 취재하러 갔다가 그의 서재를 구경한 적이 있다. 책은 사방을 가득 채웠고 그 빛깔은 다채로웠다. 변호사답게 낡은 법서들이 제일 좋은 자리에 모셔져 있었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은 손때가 묻은 채 책장에 빼곡해 젊은 시절의 고뇌와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뭉텅이 뭉텅이로 눕혀져 있는 대하소설은 서재를 흐르는 강 같았고, 드문드문 보이는 야생화 도감은 책 먼지 사이에서 풀꽃 같은 향기를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없는 게 딱 하나 있었다. 경제를 다룬 책이었다.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함)의 의지를 확인해보고 싶어 서재를 몇바퀴 돌았는데도 그 흔한 경제원론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애당초 정치를 해볼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실물경제 감각은 더 형편없다. 큰맘 먹고 샀다는 집은 멧돼지가 수시로 드나들고 경운기 한 대도 오가기 힘든 골짜기에 파묻혀 있었다. 35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형편인데도 <한겨레> 창간 초기 부산지사장을 억지로 맡아 들어간 비용만 1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던 문재인이 변했다. 대표가 된 뒤 자신과 당의 운명을 온통 경제에 다 걸었다. 하루의 일정 대부분을 경제 관련으로 채우더니 17일 청와대 회동에서는 경제정책만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경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는 얘기다.

 

문재인은 1년 넘게 경제전문가들로 이뤄진 공부모임 5~6개에 끼어서 꾸준히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가슴 아파하면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단다. 지켜본 한 참모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학습능력이 두 배는 뛰어난 것 같다”고 표현했다.

 

2월말에는 경제지 기자들만 모아놓고 간담회를 연 적이 있는데, 한 참석기자는 “꽤 까다로운 질문이 나왔는데도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변하고 몇몇 대목에서는 도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을 내보였다”고 평가했다. 하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실력이니 경제학인들 습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국가의 경제정책이다. 팍팍한 삶의 현장을 찾아 서민들 등을 두드려준다고 국민들이 감동을 받는 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큰 틀은 만들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들은 채우지 못하고 있다. 신장개업하는 식당으로 치자면 입지(경제 주력)가 좋고 간판(소득주도 성장)도 손님을 끌 만하며 주인(문재인)도 많이 친절해졌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주방(정책 생산)이 썰렁하다.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을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원은 여론조사에 장점을 발휘해 선거전문 연구소라는 명성을 얻었다. 반면에 민주정책연구원은 정체성이 모호하다. 심지어 연구원은 갈 곳 없는 당직자들이 모여서 국고보조금을 인건비로 축내는 곳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이름을 ‘민주경제연구소’로 바꿀 정도로 확 탈바꿈시켜야 한다.

 

김의겸 디지털부문 기자
이를 위해서는 원장을 잘 모셔 오는 게 관건이다. 당과 경제철학을 함께하면서도 학계에 신망이 있는 ‘거물’이 필요하다. 그가 손발이 맞는 전문가들로 진용을 새로 짜고 정책을 촘촘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김종인 박사를 삼고초려 끝에 모셔 왔다. 그 뒤 박 대통령은 참모들이 써준 원고 몇줄 읽었을 뿐인데도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로 자처할 수 있었다. 헌법 제119조 2항인 경제민주화 조항을 주도했다는 김종인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지도자에게는 개인의 학습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게 사람을 쓰는 방법이다. 문재인의 경제 실력도 누구를 모셔 오는지에서 결정날 것이다.

 

김의겸 디지털부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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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643억…홍준표의 치밀한 '급식 작전'

 

[인터뷰] 단식 나선 여영국 경남도의원 "급식 갖고 정치 말라"

 
최하얀 기자(=창원) 2015.03.19 07:39:57
 

'2015년 4월 1일부터는 불가피하게 학부모님으로부터 일일1식 단가 2400원에 100원 운영비를 합한 2500원을 징수하기로 학교 운영위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열흘 후면 무상급식이 전면 중단되는 경상남도 한 가정에 배달된 가정통신문이다.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이 경남도는 물론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홍준표 지사의 독선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만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경남도와 경남도의회의 합작품에 가깝다. 현재 경남도의회에는 55명 도의원이 있는데 그 가운데 새누리당 소속만 51명. 나머지 4명은 무소속 1명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2명, 그리고 유일한 진보정당 의원인 노동당 여영국 의원이다. 쉽게 말해 게임이 안 되는 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경남도와 도의회는 지난 10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급식 중단을 위한 스텝을 하나하나 착착 밟아왔다. 경남도의 '급식 예산 50% 분담' 발표→이를 반영해 도 교육청이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감사 거부를 빌미로 뒤늦게 경남도 예산 지원 거부 결정→도 의회가 교육청 급식 예산 중 경남도 부분을 통으로 삭감→뒤따른 18개 시·군의 예산 지원 거부.  

도의회와 경남도, 18개 시·군이 이처럼 손발을 맞춘 결과, 도 교육청의 예산만으로는 무상급식이 더는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스텝. 급식 중단의 맞춤표를 찍는, 이름도 그럴싸한 '서민자녀 교육 지원' 사업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번 도의회에서 '서민자녀 교육지원 조례안'이 통과되면, 경남도에서 무상급식이 설 자리는 사실상 없어진다. 어디선가 치밀한 '작전'의 냄새가 풍긴다.  

벼랑 끝에 몰린 학부모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담판을 지어보겠다'며 도의회 의장과의 면담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경남도의 무상급식을 지키고자 지난 몇 달 분주히 뛰어온 여 의원은 16일부터 단식에 나섰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18일 오후, 도의회 건물 앞에 담요 몇 장을 깔고 앉아있던 여 의원을 만났다. 홍준표 지사가 내세우는 무상급식 중단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해 나가던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뒷골목 양아치도 이렇게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편집자> 
 

ⓒ연합뉴스

ⓒ연합뉴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643억 

프레시안 : 작년 무상급식 예산 편성 논란 때부터 무상급식이 결국 전면 중단된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여영국 : 2015년도에 작년 수준으로 급식을 하려면 총 1286억 원이 필요하다. 여기서 작년 수준이라고 하면 도시 지역은 초등학생만, 농촌 지역은 고등학생까지다. 도시 지역에서라도 법적으로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저소득층은 고등학생까지 지원했다. 이 학생들이 약 28만 명이다. 이를 위해 이전까지는 교육청이 37.5%의 예산을 분담했고 경남도와 18개 시·군이 62.5%를 분담했었다.  

지난해 가을, 2015년도 급식을 위해 교육청과 도청이 '경남도 급식 지원 조례'를 둘러싼 협상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주요 쟁점 3개 중 2개는 일단 합의가 된 상태였다. 급식 대상자는 기존대로 하기로 했었고, 일부 급식비에 소정의 물가인상분을 반영하기로도 합의가 됐다. 이제 쟁점은 경남도와 교육청의 예산 분담 비율만 남아있었다. 경남도는 당시 교육청 50%, 경남도와 18개 시·군 50%를 주장했다. 

그런데 협의가 한참 진행되던 때인 지난해 10월 15일, 경남도가 돌연 '우리는 50%만 지원하겠다'고 도 교육청에 일방 통보를 했다. 협상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예산안을 도의회에 올려야 했던 교육청은 결국 경남도의 통보를 반영한 예산안을 편성해 의회에 올렸다. 도 교육청이 전체 예산의 37.5%를 부담하고 경남도와 18개 시․군이 50%를 부담하는 안이었다. 당시 교육청의 예산안은 이렇게 필요 금액의 12.5%, 금액으로 하면 161억 원 정도가 빈 채로 의회로 넘겨졌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바로 다음 날인 10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썼다. '감사 없이는 예산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도 교육청이 경남도의 무상급식비 특정 감사를 거부하면 50%의 예산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이는 이후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무상급식예산 미편성)의 구실로 쓰인다. (☞ 관련 기사 : 홍준표, 교육감과 싸우다 "무상급식 중단")  

감사 논란에서 급식 중단까지…도청과 도의회의 '쿵작쿵작'  

프레시안 : 종합하면 도 교육청은 경남도청의 발표대로 50%의 예산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하고 예산안을 짜서 의회에 올렸고, 경남도는 이를 알면서도 교육청의 감사 거부를 빌미로 무상급식 지원금을 쏙 뺀 예산안을 의회에 올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당시 의회는 어떤 결정을 내렸나.  

여영국 : 제가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소속인데, 교육위에서는 교육청 예산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가서 18개 시‧군 지원금을 제외한 경남도 지원금 257억 원이 전액 삭감된다. 당시 예결특위는 그 근거로 지방재정법 36조(지방재정법 36조 2항 : 지자체는 모든 자료에 의하여 엄정하게 그 재원을 포착하고 경제 현실에 맞도록 그 수입을 산정하여 예산에 계상하여야 한다-편집자)를 들었다. 즉, 경남도 예산안에 무상급식 지원금 257억 원이 편성돼 있지 않으니 교육청 예산안에 들어간 257억 원은 허수라는 것이다. 

이러니 홍준표 도지사가 이제 와 '도의회가 예산을 결정했으니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도의회에는 예산 편성권이 없다. 도청과 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해 올리면 그것을 심사할 뿐이다. 경남도가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 안 해놨으니 의회는 심사 자체를 안 한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 '의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  

도의회가 삭감한 것은 무상급식 예산 257억이 다가 아니다. 의회는 '무상급식은 애초 교육감 공약이었으니 너네 돈(교육청 예산)으로 하라'면서 도 교육청 예산 중 무상급식이 아닌 항목에서도 257억 원을 삭감해 버렸다. 어떤 세입을 삭감했으면 원래 그 세입으로 하려던 지출 예산을 삭감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학교 신설비, 명예 퇴직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법정 수당 등 딱 257억 원을 삭감했다.  

도의회는 도 교육청 예산뿐 아니라 경남도 예산도 건드렸다. 경남도에서 교육청에 지원 불가를 통보한 무상급식 지원 예산 257억 원. 이게 애초엔 예산에 잡혀 있었다가 경남도가 빼면서 '예비비'로 편성해 놨었다. 의회는 이걸 끄집어내 '서민자녀 교육지원비'로 돌려버린다. 홍 지사가 예전부터 '무상급식비로 서민 자녀를 지원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다녔는데, 도의회가 바로 그런 홍 지사의 뜻을 100% 따르는 행동을 한 것이다. 도의회는 완전히 홍준표의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다.  

도 교육청 예산과 경남도 예산에 이어 그다음엔 18개 시·군이 지원하기로 돼 있었던 무상급식 예산에도 문제가 생겼다. 경남도는 시·군들에 급식비 지원을 하지 말고 그 돈을 서민자녀교육 지원 사업에 매칭(결합)하라고 종용했다. 만약 급식을 지원하는 시·군이 있으면 그 시·군은 '돈이 남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균형재정을 펼치겠다고도 엄포를 놨다. 균형재정이란 건 교부금을 통해 내려가니, 그만큼 예산 지원을 안 하겠단 얘기였다. 사실상 경남도가 시·군에 급식비를 지원하지 말라고 겁박한 것이다.  

도의회는 이제야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위한 조례를 만들려고 한다. 지방재정법에 따라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하지 않은 예산은 편성할 수 없으니, 뒤늦게 예산 편성의 근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조례가 제정되면 경남도와 18개 시·군이 앞으로 무상급식을 지원할 여지 자체가 상당히 줄어든다. 이 같은 작업은 현재 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인 이갑재 의원(지역구 하동) 등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앞장서서 진행하고 있다. 
 
▲ 경상남도의 급식 지원 중단 철회를 요구하며 경남도의회 앞에서 지난 16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여영국 경남도의원(노동당 소속, 지역구 창원). ⓒ프레시안(최하얀)

▲ 경상남도의 급식 지원 중단 철회를 요구하며 경남도의회 앞에서 지난 16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여영국 경남도의원(노동당 소속, 지역구 창원). ⓒ프레시안(최하얀)  

 
 

이름은 그럴싸한 '서민자녀 교육지원', 알고 보니… 

프레시안 : 서민교육 지원사업.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250% 이하인 가구 자녀들에게 연간 50만 원의 교육 바우처를 지급하는 사업이다. 홍준표 도지사는 이를 두고 "밥보다 공부에 돈을 쓰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가 뭔가 

여영국 : 사실 이 사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법의 소지가 있다. 지방자치법과 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교육에 관한 행정은 교육청에 분리돼서 맡겨진다. 교육경비지원조례 등에 따라 도가 교육비를 학교에 지원할 수는 있지만, 학생을 상대로는 할 수 없다. 그런데 경남도의 이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은 학생들에게 직접 5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지자체법과 교육 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게다가 이 사업의 절반 이상은 교육청에서 이미 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전형적인 중복 낭비 사업인 것이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30년을 일한 교육 전문가로서 제가 정책을 잘 모를 리 없다"면서 "경남도가 643억으로 하겠다는 맞춤형 교육사업은 교육청이 4800억 원 정도로 하고 있는 교육복지와 중복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 

무엇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 예산을 뒷받침하는 조례가 없다는 점이다. 조례도 만들기 전에 예산부터 편성했다. 이는 위법 부당하다.  

가난한 학생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교육이란 건 평등해야 하는데. 이 지원을 하나 받기 위해선 이런저런 재산, 소득 자료를 내며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줄 세우는 너무나 반(反)교육적인 사업이다.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하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반교육적이라고 본다. 

사실 조례가 발의되기 전, 많은 도의회 의원들이 서명 자체를 안 하고 싶어 했다. 지금도 많은 의원이 꽤나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다. 새누리당 소속의 하선영 의원은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이 조례안을 '졸속'이라고 비판하는 5분 발언을 하려다 회의 당일 오전 급히 취소하기도 했다.  

(언론에 공개된 하 의원이 애초 하려던 발언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조례안을 보며 홍준표 도지사와 관련 의원께 지독한 실망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조례안을 보면 잘못 그린 것을 감추고자 검은색을 마구 칠해버린 실패한 그림이 떠오른다. 어떤 책임감도 당위성도 비전도 느낄 수 없다. 땜질 조례가 아니냐. 이 문제가 아킬레스건이 돼 다음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경남에서 힘든 선거를 하리라는 걱정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편집자)
 
▲ 홍준표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 홍준표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돈 없다고? 경남도 올해 예산은 1561억 흑자"  

 

 

프레시안 : 홍준표 도지사가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하며 내놓은 논리는 크게 세 가지로 종합된다. 도 교육청이 경남도의 감사를 거부했다는 행정적인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두 번째로는 '급식은 좌파들의 무상파티'라는 식의 색깔론이다. 마지막으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할 만큼의 돈이 없다고 한다. 

여영국 : 전부 다 말이 안 된다. 우선 감사 문제는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경남도가 예산을 전출한다고 해서 교육청을 감사할 권한이 있는가. 엄연히 다른 기관인데 경남도가 교육청 예산을 일방적으로 '감사해야겠다'고 나서는 건 부당하다. 설사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사가 안 되니 돈을 안 준다? 이것도 다른 문제다. 

두 번째 색깔론. 무상파티라고 하는데 경남도 무상급식은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인 거창군에서 시작됐다. 교육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지자체에서 시작된 것이다. 거창군에서 남해, 하동으로 쭉쭉 확장돼 왔다. 그러다 2008년엔 경남도 학교급식지원조례가 만들어졌다. 홍 지사 말처럼 좌파들의 '파티'가 아니라 우파인 새누리당이 시작한 복지 사업이다.  

예산 문제도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경남도 예산이 7조2000억~7조3000억 원 정도 된다. 작년에도 7조가 넘었다. 그 가운데 경남도 지원분 257억 원은 경남도 전체 예산의 0.35%에 불과하다. 게다가 2015년 경남도 실제 예산 상황도 매우 좋다. 작년보다 예산 규모가 6% 늘었고, 재정 자립도도 2% 높아졌다. 

경남도는 자신들의 튼튼한 예산을 자랑스럽게 발표도 하고 있다. 지난 1일 도는 1년 예산의 수지타산을 따지는 지표인 통합재정지수가 1561억 원 흑자라고 공시했다. 전국 광역단체 평균 재정지수가 89억 원이다. 경남이 전국 평균에서 빠졌으면 나머지는 사실 거의 마이너스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애들 밥 먹일 돈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교육청 사정은 어떠냐. 교육청은 작년보다 예산 규모가 약 3% 줄었다. 그간 도에서 부담하던 누리과정 예산도 올해부터는 교육청으로 넘어왔다. 이렇게 예산은 줄고 부담은 늘고 무상급식 지원도 중단됐다. 이 사정을 홍 지사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도의원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을 향해 '무상급식은 네가 해라'라고 한다. 뒷골목의 양아치도 이런 짓거리는 안 할 것이다.  
 

▲ '돈이 없다'며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한 경남도의 2015년 예산은 1561억 원 흑자가 날 것이라고 도는 공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홈페이지 갈무리

▲ '돈이 없다'며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한 경남도의 2015년 예산은 1561억 원 흑자가 날 것이라고 도는 공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홈페이지 갈무리  

 
 
 

 

 

"평등과 보편 가르쳐야 할 학교…급식으로 정치하지 말라" 

프레시안 :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별 복지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한정된 재원으로 왜 이건희 손자도 공짜 밥을 먹어야 하느냐'란 논리다. 이런 논리에 따라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에 빗대는 사람들도 있다.  

여영국 : 질문을 거꾸로 던져 보자. 왜 부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밥 한 끼 지원받으면 안 되는 건가. 게다가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낸다. 세금을 냈으니 무상급식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나. 선별 복지 주장은 국민을 편 가르기 해 서로 싸우게 하려는 목적이 다분하다. 

게다가 어느 곳보다도 평등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 교육 현장이다. 학교는 평등을 가르치는 곳이니까. 그런데 선별적 급식 지원은 교육현장에서부터 부자와 빈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 이래서 우리 헌법은 '의무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수업비에서 시작돼 이제는 급식도 의무 급식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실 무상급식만큼 가장 공평한 분배 정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남도 도민이 1년에 대는 도세가 2조1000억 원 정도다. 7조가 넘는 예산에서 33~34%나 차지한다. 꽤 높은 비중이다. 가난한 도민이건 부자 도민이건 일정 정도 도의 예산을 부담하고 있다. 여기서 300억 좀 넘는 돈을 가지고 30만 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다. 이 만큼 공평한 분배 정책이 어디 있겠나. 이런 게 잘 되어야 사람들도 세금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세금을 내는 이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보편적 복지가 가진 큰 장점이다.

무상급식은 단순한 정치적 흥정거리가 아니다. 홍준표 도지사는 물론 야당도 이를 유념했으면 한다. 오늘(18일)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남도를 방문해 홍준표 도지사를 만나고 갔다. 그런데 이것이 일회성이 되어선 안 된다. 지역에선 무상급식을 지키려고 수년째 싸워오던 사람들이 있다. 경남도의 경우 지금 부글부글 끓는 학부모들이 앞장 서 있다. 이런 당사자들과 긴밀하고 꾸준한 협의를 하면서 국회에 계류된 '학교급식법 개정안 통과'에 적극 힘써야 한다. 

 

* 인터뷰가 진행되던 때에도 40여 명의 학부모가 경남도의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상급식 재개를 촉구하고 있었다. 몇몇 학부모는 회견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건물 밖 처마 아래 앉아 담요를 덮고 앉았다. 전날 김윤근 도의회 의장을 면담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6명의 '엄마들'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일정을 이유로 면담 장소를 빠져나온 김 의장을 건물 안팎에서 엄마들이 이틀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밤 9시께, 경찰은 건물 2층 상황실에 있던 학부모 5명을 건조물 침입과 퇴거불응 혐의로 강제 연행했다. 여 의원 등이 만류했지만 경찰에 제지당했다고 한다. 난리 통 속, 경남도는 19일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문제의 '서민자녀 교육 지원 조례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이날 오후 1시께 경남도의회 건물 앞에서 '학부모 대회'를 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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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지율이 아닌 ‘경제 공격수’로 나서야

 
 
서민을 위해 재벌 골대에 골을 넣는 공격수가 돼야
 
임병도 | 2015-03-19 09:07: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지지율이 10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문재인 대표가 27.0%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10.8%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은 서울과 대구,경북, 20대, 새정지연합 지지층과 중도 성향 유권자층에서는 올랐습니다. 그러나 경기,인천,광주,전라, 60대 이상, 가정주부와 진보성향 유권자층에서는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계속 1위를 하는 현상이나 대구, 경북, 중도성향에서 지지율이 오른 점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여론조사만으로는 그에게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그가 펼치고 있는 '경제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

문재인 대표는 연일 민생경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중심적으로 내걸고 있는 ‘경제’는 선거에서 표로 이어지는 주요 정치적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일부 지도부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경제에 치우쳐서 다른 외교적 문제 등을 야당 대표로 지적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한다고 합니다.2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부분에서도 너무 과했다는 여당과 언론의 지적도 있습니다.

▲2005년 8월 조선닷컴에 게재된 참여정부 경제 비판 기사 ⓒ 조선닷컴http://goo.gl/jI95Nq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과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가리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며, 연일 그를 공격했습니다.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이 모든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경제를 포기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론과 한나라당, 보수 세력 등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끊임없이 공격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경제 공격과 MB의 ‘경제 대통령’ 화두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유권자들은 무작정 '경제'라는 단어에 파묻혀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고, MB를 향해 열광했습니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경제’를 내세우는 점은 현재 상황에서 굉장히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민을 위해 재벌 골대에 골을 넣는 공격수가 돼야’

지난 3월 17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대표의 회담이 청와대에서 있었습니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김무성 대표가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회담의 주요 내용은 ‘경제 정책 실패’를 지적한 문재인 대표의 주장에 반박한 박근혜 대통령의 나름 성공했다는 자화자찬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회담 성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들러리처럼 비쳤던 김무성 대표는 아주 중요한 발언을 했습니다. 바로 경제 관련 새누리당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물론 언론과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대통령 여야대표 회담 김무성 대표 발언 중에서> 

저는 공무원연금개혁 시한을 놓치면 안 된다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했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청년일자리법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이 법안은 김대중 대통령․노무현 대통령․이명박 대통령 때에 각각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왔는데 폐기된 법이다. 이것은 청년일자리 확보를 위해 꼭 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새정치민주연합쪽에서 보건의료 부분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그래서 그것을 빼고라도 꼭 4월 국회에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그런 방향으로 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에 대한 주장이 있었지만 문재인 대표의 주장은 저쪽 백브리핑에서 나온 것이고, 저는 작년 재작년에 이미 7%씩 최저임금 인상이 있었는데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뜻을 같이 하나 이것은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길 일이지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이 경제위기는 우리나라만 겪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를 긴 불황의 터널을 나올 때까지 우리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임금인상을 할 수 있는 힘은 대기업에 있는데 이미 우리나라 대기업은 국제적 평균임금에 상당히 높아져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현재 경제위기 때문에 임금인상을 할 여력이 없다. 중소기업은 생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강조했다. 법인세 부분에 대해서도 작년에 세수가 11조원이 덜 걷혔는데, 그것은 그만큼 경제가 안좋고 장사가 안된다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다가 세금을 더 올리면 죽으라는 소리 밖에 더 되느냐. 지금은 법인세 인상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최저한세율을 인상하고 비과세 감면부분을 축소하는 노력은 계속해야 된다. 지금 현재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월세상환제에 대해서도 과거의 예를 볼 때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릴 때 그 해당시기에 12%의 폭등이 있었다. 잘못 건드리면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공급을 늘리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된다. 민간 임대사업활성화 입법을 빨리 처리해야한다는 주장을 했다. 가계부채 부분에 있어서 기준금리 인하 혜택이 서민금융에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자고 이야기 했다. 출처: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에 동의하지만, 자신들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임금인상 얘기가 나왔지만, 기업들이 반발하자, 괜히 중소기업 핑계만 대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을 보면, 기업과 재벌을 위한 친재벌 성향과 정책을 펼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은 OECD 16개 국가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과 실질임금 증가율 차이가 가장 심각합니다. 다른 나라도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임금이 많이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 차이가 연평균 4.1%로 가장 심각했습니다. 3
 
이 도표가 의미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노동자들이 기업에서 열심히 생산하고 이바지했지만, 그 혜택은 고스란히 기업이 가져가고 누렸지, 한국의 노동자들은 전혀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로 선거를 치렀지만, 어느새 ‘경제 활성화’로 기업과 재벌의 대변자로 변신했습니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해야 할 일이 ‘경제 활성화는 필요하지만, 기업이 쌓아놓은 이득을 서민과 노동자도 가져갈 수 있게 하자’는 공격수 역할입니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소비는 당연히 위축되고, 경제 불황으로 이어집니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재벌과 기업의 죽는소리로 골대를 막고 있다면, 기업의 비리와 감추어둔 이익을 제시하며 골대까지 재빠르게 나아가야 합니다.  

▲상대빈곤율을 통해 본 소득 불평등 ⓒ 새사연.http://saesayon.org/2015/02/12/15943/

혹자는 말합니다. 중산층도 많은데 자꾸 서민경제만 얘기한다고, 기업 성장을 바라는 사람도 많은데 재벌과 기업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재벌과 기업이 잘 나간다고 노동자들이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실질임금 격차에서 밝혔습니다. 이런 점을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재벌과 기업의 성공과 노동자에 대한 혜택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소득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상대 빈곤율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엄청난 경제 대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중산층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경제 공격수’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박근혜정부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인 동시에, 지금 우리 국민이 처한 위험에서도 벗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경제전문가 문재인? 용병을 써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경제전문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문재인 대표는 경제전문가들 모임에서 꾸준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4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경제전문가로 활동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제가 선거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고, 우리 국민의 삶을 나아질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라면 더 확실하게 우위에 선 경제공약을 내걸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표가 스스로 경제를 움직이는 공약을 내걸 수 없다면, 경제전문가들을 용병으로 활용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능력이 있고 대중적인 경제전문가들을 대거 새정치연합의 씽크탱크로 영입해서 아예 별도의 경제연구소를 설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당은 늘 어떤 정치적 대결 구도를 선거의 중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늘 ‘경제’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권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효과적이며 단순한 ‘경제’를 내세우며, 그 안에 경제 민주주의, 복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경제 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집권해도 이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경제를 준비해도 늦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표는 더 확실한 경제 공격수로 나서야 합니다.

“재물에 대한 불공평한 분배는 사회적 악을 양산하였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 로 하여금 하늘을 향해 울부짖게 만들었다. 가난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불평등에 무감 각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빈부격차를 키울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1. 문 대표의 지지율은 서울(23.6%→25.4%, 1.8%p▲)과 대구·경북(15.0%→16.2%, 1.2%p▲), 20대(26.7%→28.4%, 1.7%p▲), 사무직(31.5%→34.7%, 3.2%p▲), 새정치연합 지지층(48.2%→54.3%, 6.1%p▲), 중도성향(29.7%→33.0%, 3.3%p▲) 유권자 층에서 오른 반면, 경기·인천(28.3%→25.1%, 3.2%p▼)과 광주·전라(27.8%→26.1%, 1.7%p▼), 60대 이상(11.0%→9.3%, 1.7%p▼), 가정주부(21.5%→14.0%, 7.5%p▼), 진보성향(47.8%→37.8%, 10.0%p▼)에서는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리얼미터. 
2. 문재인 ‘경제 쏠림’에 쓴소리 무성. 헤럴드경제, 2015년 3월 17일
3. 그 많던 파이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생산성과 임금 증가율 격차 확대. 새사연 여경훈.
4. [편집국에서] 문재인의 경제 실력은? 한겨레 2015년 3월 18일.http://goo.gl/j4p7hO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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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심정으로 미국 간다"


'대북전단저지 대한청년평화사절단' 회견, 19일 출국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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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8  16: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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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이 18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제공 - 대한청년평화사절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미국인권재단(HRF),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미국 국무부, 백악관 등을 방문해 평화를 바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뜻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미국인권재단의 대북전단살포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대북전단저지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의 정종성 단장(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은 18일 오전 11시 20분 출국에 앞서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땅의 청년으로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종성 단장은 “한미연합훈련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북전단이 북으로 날아간다면 전쟁과 충돌은 필연적”이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다.

또한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와 미국인권재단에서는 천안함 5주기에 즈음하여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한다”며 “대북전단살포는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미국 국무부와 미국 민주주의 진흥재단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북 접경지대인 김포지역에 거주하는 안승혜 씨는 “미국인권재단이 대북전단 살포 비용을 전액 부담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이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벌이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벼리(아들)를 위해서, 고향마을에서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고 싶은 아빠를 위해서도 이 대북전단살포의 주범이 미국이라는 것을 알리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 미국인권재단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풍자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제공 - 대한청년평화사절단]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만약 대북전단살포 용 ‘풍선’이나 ‘드론’이 북한 상공으로 날아간다면 남북 간에 교전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대북전단살포는 한국법, 국제법, 유엔헌장에도 위반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북전단살포를 사실상 배후에서 조종하는 HRF에 대북전단살포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며 “탈북자 박상학을 비롯한 대북전단살포 단체에 자금 지원도 중단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북전단저지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은 19일 오후 출국해 20일 오후 4시(이하 현지시간) 뉴욕 소재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서를 전달하고, 21일 오후 1시 미국인권재단 사무실이 있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앞에서 기자회견과 행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23일에는 온종일 백악관 앞에서 1인시위를 전개하고, 24일 오전 11시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정종성 단장과 안승혜 씨 등 6명의 대표단은 상하원 의원들과 국무부 책임자 등과 면담을 추진한 뒤 25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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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새정연, 광주 재야단체와 한판 전쟁?

 
 
[정치해설] 재야를 배척한 야당이 선거에서 이긴 전례가 없는데…
 
임두만 | 2015-03-18 12:20: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위원장 박혜자)은 17일 성명서를 통해 광주지역 재야시민사회단체가 4·29 광주 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설 ‘개혁후보’로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을 추천한 것에 대해 “명분 없는 시민후보는 광주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재야시민시회단체와 날을 세웠다.

▲광주지역 재야시민사회단체가 개혁후보를 발표하고 있다

시당은 이날 성명서에서 광주지역 재야시민사회단체의 개혁후보 선정에 대해 "시민적 합의, 절차적 정당성, 정치적 명분이 결여된 ‘3無’ 시민후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민주세력을 분열시키고 제1야당을 근거 없이 비난하며 추진되는 시민후보 추대가 과연 누구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인지 광주시민들이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성명서는 번지수가 틀렸다. 그리고 이제 새정연이란 정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모태라고도 할 광주지역 재야시민사회단체를 향해 날선 검을 겨누고 있다.

제1야당은 성역이 아니다. 재야시민사회단체란 대통령도 비난하고 여당도 비난하는 등 국민들의 뜻과 다른 길로 가는 정치인이나 정치권은 누구라도 비난한다. 따라서 이들이 재야시민단체가 제1야당을 비난한다고 날을 세우는 것은 그들이 이미 권력화 되었다는 증거다.

특히 이들의 성명이 잘못된 것은 이날 천 전 장관을 ‘개혁후보’로 추천한 시민사회단체가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이하 광민회) 등 6개 단체이기 때문이다. 이 단체들은 광민회 외에 민주평화광주전남회의(민주평화회의),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회(광주민예총), 5·18공법단체추진위원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광주전남민청학련동지회 등이다.

새정연이나 야권 정치인들이 늘상 입에 달고 사는 ‘광주정신’ ‘민주화의 보루’라는 말이 있게 한 근원지가 바로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그리고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민주평화광주전남회의, 5·18공법단체추진위원회 등은 5.18 때문에 생긴 단체들이다.

따라서 새정연이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된다고 이들 단체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곧 광주정신과 5.18 희생자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사표시로 봐도 된다. 즉 정치적 기득권에 눈이 어두워져서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도 부정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대북송금 특검의 방향을 설명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관여한 바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죠.”라고 단언했다. 이는 대북송금 특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임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그 발언 내용은 지금도 신동아에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후 특검은 노정권 핵심들의 뜻대로 진행되었고, 김대중만 뺀 박지원 임동원 등 6.15핵심들 모두 심각한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결국 김 전 대통령의 남북화해 정책은 ‘돈 주고 산 정상회담’이란 불명예를 얻었으며 노무현 핵심세력들의 김대중 격하작업은 완성되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 노무현 세력들은 광주와 호남의 표가 필요할 때는 김대중 정신, 호남정신, 광주정신, 운운하면서 노무현이 김대중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은 것 같은 언사로 표몰이를 했다. 그리고 저들의 이런 표몰이 수법에 광주와 호남은 ‘대안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휩쓸려 표 찍는 기계로 전락했다. 이후 12년 동안 광주와 호남이 얻은 것은 없다. 광주와 호남을 볼모로 잡은 노무현계 정치인들의 득세에 대한 도구 노릇만 톡톡히 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오늘 새정연 광주시당은 뻔뻔하게 “새정치민주연합은 2·8전당대회 이후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며 “그 결과 문재인 대표가 부동의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기록하고 정당지지도 또한 새누리당에 근접하고 있다”고 성명서에서 주장한다.

그러면서 천 전 장관을 향해 “열려있던 기회를 박차고 나와 본인들이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정당에 돌을 던지고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에 무슨 명분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깎아내렸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데 그게 잘못이란다.

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주의 다른 지역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분이 지금에 와서 광주시민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시민후보’가 되어 새정치민주연합을 부정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이고 논리적 모순이다”며 “제3기 민주개혁정부에 대한 시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분열과 자기부정의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은 좋다. 3기 민주개혁정부...그런데 지금 그런 희망을 가진 야권 지지층이 과연 몇 %나 될까? 이 성명서를 쓴 당사자는 그런 희망이 있을까? 변화와 혁신을 위해 뼈를 깎는 몸부림을 치고 있기에 새정연 지지율이 새누리당에 근접하다고 하지만 이미 새정연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딱 절반 수준인 20%대 초반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또한 대선 3년 전 지지도 1위를 한 대선주자라는 정치인은 2000년 이회창을 빼고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따라서 문재인 코스프레라든지 지지율 어쩌고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다면 광주의 새정연 당원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의 권리당원들은 자신들의 정당 후보를 경선으로 뽑는데 주어진 투표권도 행사하지 않고 당과 후보를 비토했다. 그 증거가 경선 투표율이 서울 관악을이나 성남 중원보다 더 낮은 26.8%라는 최저의 수치다. 투표권을 보이콧한 당원이 투표한 당원의 3배에 가깝다.

때문에 광주시당 이름으로 나온 저 성명은 자신들이 몸담은 정당 외에 다른 정치세력이 등장하므로 자신들이 지금껏 누렸던 독단적 지위가 흔들릴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이 울분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다면 저들이 저처럼 자신들의 뿌리를 부정하면서 뿌리와 전면전을 선언하진 않았을 것이다. 저들은 이미 평정심을 잃고 있다.

어떻든 이제 이번 4.29 광주선거는 더욱 더 전국적 관심지역이 되었다. 새정연만 질 수 없는 선거가 아니라 새정연으로부터 뿌리를 부정당한 재야시민사회단체도 자신들이 추천한 개혁후보가 지면 안 되는 선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정연이 올인하는 만큼 시민사회단체도 결국은 당사자로 올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흥분한 새정치연합 측이 걸어 온 싸움을 개인적 영달이 목적이 아닌 시민사회가 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결국 정치적 목적이 ‘자리이자 궁물’인 정치권과 사회변혁과 역사발전인 시민사회의 한판승부가 이제 광주에서 펼쳐질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승부는 지명하다. 지금껏 야권이 재야를 배척하고 이긴 선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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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최대 1.8m 야생 도롱뇽 미식에 사라지나

 
조홍섭 2015. 03. 17
조회수 6297 추천수 0
 

㎏당 100달러 고급요리 재료 수요 폭증, 수백만 마리 양식

번식할 성체 야생서 포획, 전염병 확산, 유전자 오염 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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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시대인 쥐라기에는 거대한 도롱뇽이 살았다. 그 모습은 1억 7000만년 전 화석으로 남아 있다.
 
이 거대 도롱뇽의 후손이 3종 살아 있다. ‘장수도롱뇽’이란 이름을 지닌 이들은 각각 중국과 일본, 캘리포니아에 산다. 이름에 걸맞게 일본 것은 길이가 140㎝에 이르고 캘리포니아 것은 30㎝ 정도로 이보다 작지만 다른 도롱뇽에 비하면 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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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장수도롱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양서류이다. 성체는 보통 무게 25~30㎏에 길이 115㎝로 자라는데, 가장 큰 개체의 기록은 50㎏에 180㎝다.
 
이 살아있는 화석은 맑은 물이 흐르는 바위 계곡이나 호수의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밤중에 개구리, 가재, 물고기 등을 사냥한다. 큰 머리, 작은 눈, 칙칙하고 주름진 피부를 지닌 이 선사시대 동물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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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후 개체수의 80%가 사라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위급종’으로 분류했다. 런던동물학회(JSL)가 진화적으로 특이하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핵심 종을 보전하기 위해 2010년 시작한 ‘엣지’(EDGE)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10종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다른 많은 종처럼 남획과 서식지 파괴, 오염이 감소의 주 원인이다. 
 
특히 이 도롱뇽은 남획이 큰 문제다. 한약재와 드물게 값비싼 별미를 위한 요리 재료로 쓰였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 도롱뇽은 ㎏당 100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린다.

 

sal3_Ben Tapley_ZSL.jpg» 요리용 재료 용도로 양식장에서 기르고 있는 중국장수도롱뇽. 사진=Ben Tapley(런던동물학회)

 
사실, 중국장수도롱뇽의 개체수 자체는 늘고 있다. 농가의 양식장에서 수백만 마리를 기르고 있고, 상당수를 야생에 방사하고 있다. 그런데 번창하는 도롱뇽 양식이 오히려 이 희귀동물에 치명타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런던동물학회와 중국 산시성 사범대학 연구진이 장수도롱뇽 양식장 43곳에 대한 현지조사와 관련 인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가 과학저널 <오릭스> 최근호에 실렸다.
 
이 도롱뇽은 중국 중부, 남서부, 남부에 꽤 널리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서식지는 심하게 조각나 있다. 게다가 핵심 서식지인 친링산맥 주변에 양식장이 몰려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sala7.jpg» 중국 산시성 친린산맥.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은 장수도롱뇽의 주요 서식지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산시성에 등록된 중국장수도롱뇽 양식장의 수는 124곳에 이른다. 미등록 양식장도 적지 않다. 연구진이 등록된 양식장 43곳을 조사한 결과 기르는 도롱뇽의 수는 농장당 평균 8354마리였다. 38곳에서는 번식할 수 있는 성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육 농장을 등록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다. 농장은 급속도로 늘었다. 2011년 산시성의 조사에서 사육 도롱뇽의 전체 개체수는 260만 마리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1만 5000개체는 번식 개체였다.
 
문제는 번식을 할 수 있는 성체는 거의 모두 자연에서 포획한다는 사실이다. 법정보호종이지만 불법 포획이 광범하게 이뤄지고 있다. 맑은 계곡에 사는 도롱뇽을 좁은 사육장에서 많이 기르다 보니 자체 번식이 불가능한 결과이다.

 

sa;4_J. Patrick Fischer _1280px-2009_Andrias_davidianus.jpg» 수족관의 중국장수도롱뇽. 자연상태와 다른 양식장 환경에서는 번식을 하지 않아 야생 개체 포획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J. Patrick Fischer, 위키미디어 코먼스
 
2009년 산시성에서 이 대형 도롱뇽 생산량은 500t이었다. 이 지역 가구의 60%가 양식에 참여하고 있다. 
 
도롱뇽 양식은 약초와 버섯 재배와 함께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어서 지방 정부가 적극 육성한다. 일부 공무원은 개인적으로 도롱뇽 양식사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논문은 밝혔다. 도롱뇽 산업을 키우는 지방정부는 이 세계적 희귀동물의 보존 임무도 맡고 있다.
 
처음부터 주민들이 도롱뇽 양식을 했던 건 아니었다. 애초 먹는 것 자체도 낯설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야생 중국장수도롱뇽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친링산맥에 꽤 많았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주민들은 이 동물을 더럽고, 잡으면 아기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접촉을 꺼렸다고 한다. 만지면 액운이 온다고도 믿었다.
 
물론 주민들은 이 동물이 세계적인 보호종인 것은 몰랐다. 단지 잡을 때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물고기의 일종으로 알았을 뿐이다.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주민의 이주가 자유로워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 남부의 장수도롱뇽을 먹는 전통이 있는 주민이 들어온 것이다.
 
이주민은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장수도롱뇽을 쓸어모아 남부 지역에 팔아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이를 본 토박이들도 도롱뇽잡이에 나섰고, 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주민들은 하루에 한 사람이 30~70㎏의 중국장수도롱뇽을 잡았다고 한다.
 
도롱뇽 양식은 지역주민의 소득과 희귀종 보존을 모두 달성하기 위한 해결책이라고 당국은 보았다. 이를 위해 양식한 도롱뇽의 일정 비율을 야생에 방사하도록 의무화했다.

 

farm.jpg» 중국장수도롱뇽 양식장을 조사하고 있는 연구진. 사진=커닝햄 외, <오릭스> 
 
그러나 이런 조처가 도롱뇽 야생 개체수의 증가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라고 논문은 지적했다. 처벌이 약해 야생 개체의 포획이 계속되고 있을뿐더러, 서식지별 유전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고 방사하는 것이 결국 유전적 독특함을 없애는 ‘유전자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농장에서 선발한 개체는 빨리 자라는 형질을 지닐 수 있는데 이를 야생에 풀어놓았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방사하는 곳에 자연 개체가 아직 존재하는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또 방사한 도롱뇽에 대한 사후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밀한 사육조건에서 바이러스 등 감염이 늘어나는데, 처리를 하지 않은 폐수 방류를 통해 이 질병이 야생으로 퍼져나갈 우려도 크다. 연구진은 조사한 43개 양식장 모두가 폐수를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사무엘 터베이 런던동물학회 박사는 “사육한 도롱뇽과 야생 개체를 완전히 격리하고 야생개체를 포획하는 관행이 멈추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야생 개체를 잡을 필요가 없게 사육 방법을 개선해야만 야생과 사육 개체의 질병 위험을 줄이고 야생 개체의 유전자 오염을 막을 수 있다”라고 이 학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Shaanxi_in_China.jpg» 중국 산시성 위치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unningham et al. (2015) Development of the Chinese giant salamander Andrias davidianus farming industry in Shaanxi Province, China: conservation threats and opportunities, Oryx, DOI:http://dx.doi.org/10.1017/S003060531400083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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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나서는 게 오히려 문제… 전략적 모호성 포기는 패착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3/18 11:44
  • 수정일
    2015/03/18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침신문솎아보기] 박근혜·김무성·문재인 첫 회동, 대화 자체에 의미 vs 이견만 팽팽
 
입력 : 2015-03-18  08:17:02   노출 : 2015.03.18  10:07:45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18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대립하는 미·중 갈등과 대통령·여야대표 간 첫 회동 소식으로 채워졌다.

경향신문 <박 “국회서 도와달라” 문 “경제수장 교체를”>
국민일보 <정부, 中 ‘안보주권 간섭’ 강력 대응>
동아일보 <경제살리기는 공감, 해법은 불통>
서울신문 <“정부·野연금안 제시해 5월 초 처리”>
세계일보 <朴대통령·與野대표 ‘수시 3자 회담’ 합의>
조선일보 <2년 만에 만난 朴·文, 경제현안 터놓다>
중앙일보 <박근혜·문재인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 공감했다>
한겨레 <한·미·중 ‘사드’놓고 공개대립>
한국일보 <朴·文 냉랭>

중국 불쾌감 드러내자 사드배치 군사적 문제라는 국방부

사드(THAAD) 한반도 배치에 대해 지난 16일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경고성 발언을 했다. 그러자 지난 17일 국방부는 “주변국이 우리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대응했다. 같은날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아직 배치되지 않은 안보시스템에 대해 제3국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는 안보 이슈지만 결국 정치·외교의 문제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국방장관, 차관보 등을 보내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대응이다. 국방부가 안보문제라며 선을 그은 이유는 동맹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끄는 것이다. 

   
▲ 18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사설 <눈치보기·시간끌기, 불안한 박근혜 외교>에서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이해가 걸린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소극적 자세로 일관해왔다”며 “미국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고 했을 때는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중국이 반대하자 협의한 적 없다고 말을 바꾸고는 미결정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18일자 국민일보 3면 기사.
 

국방부가 그간 ‘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하다가 입장을 발표한 것은 미·중간 눈치를 보다가 사실상 미국편에 서겠다는 표현으로 봐도 무방하다. 국민일보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국방부가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군사적인 면에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어서”라며 “청와대와의 조율은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눈치만 보다가는 양국 모두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청와대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사드 공론화, 부적절한가 

사드 문제가 공론화 되자 정치권에서도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중국과 외교적 마찰, 천문학적 예산 등을 이유로 사드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은 지도부 사이에도 의견차가 나타났다. 김무성 대표는 “사드 문제는 정부 몫”이라며 국방부에 떠넘겼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논의하자”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미국대사 피습 사건 분위기를 이용해 사드문제를 정치 이슈화 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18일자 경향신문 5면 기사.
 

경향신문 유신모 외교전문기자는 기자수첩 <‘사드 공론화’가 부적절한 이유>에서 “미국이 사드 배치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꽤 있다”며 “국내 논쟁에서 ‘미국은 사드 배치를 결정했고, 중국은 반대하고 있으며, 한국은 중간에 끼인 상태’라는 것을 전제로 너무 앞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론화할 단계도 아니고 공론화를 통해 결정할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유 기자는 “치밀하게 대응하되 전략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라며 “지금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사드 공론화 주장은 자충수”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미상호방위조약 “각 당사국은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자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配備)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대한민국은 이를 허락한다”는 조항에 근거해 사드 배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국에 사드 배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기사 : 사드 할까 말까 한국엔 선택의 기회도 없다)

사드는 미국 손들어준 한국, AIIB는?

미·중간 패권경쟁은 사드배치 뿐 아니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놓고도 벌어지고 있다. AIIB는 지난 2013년 10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 대항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했다. 중국 주도의 경제협력체에 미국의 눈치를 보던 유럽국들(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이 참여하면서 우리 기재부도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 18일자 국민일보 5면 기사.
 

미국의 입지가 줄어들자 미국이 AIIB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유럽연합(EU) 등 지역경제협력체가 나오자 세계경제 블록화 추세에 맞춰 동아시아에서도 경제협력체를 만들려고 하자 미국이 역외개방적인 성격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을 만들어 개입하고 견제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일본은 AIIB가 융자심사 능력과 공정한 운영에 대한 의구심에 참가 유보를 결정했다. 현재 G7국중 일본 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도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참여하지 않았고, 기존에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과 겹쳐 큰 혜택을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중국은 이달 말까지 AIIB 참가국을 모집해 올해 말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창립멤버의 실익과 미·중간 힘겨루기 환경 속에서 한미일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도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박근혜·문재인, 대선 후 첫 공식만남 “의미있다”

18일자 신문 머리기사만 봐도 지난 17일 있었던 청와대와 여야의 3자 회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중앙일보 <박근혜·문재인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 공감했다>, 동아일보 <경제살리기는 공감, 해법은 불통>, 한겨레 <문대표 “정부 경제정책 실패했다”에 박대통령 반박 ‘팽팽’>, 세계일보 <朴대통령·與野대표 ‘수시 3자 회담’ 합의>. 

3자는 공무원 연금개혁을 비롯해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 저소득층 연말정산 불이익 해소 등 3가지에 대해 합의했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의견차가 드러났다. 

   
▲ 18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중앙일보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대해서 야당은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 이상 올려야 된다”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가계소득 증대가 아닌 일자리 주도 성장이 옳다”고 답했다.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도 문 대표는 “법인세 증세 없이 서민 지갑만 터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했지만 김 대표는 “세금 더 올리면 (기업이) 죽으란 소리”라고 반박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해서는 문 대표가 “외국인투자촉진법으로 일자리가 는다더니 미미했다. 보건의료 부문은 영리화 문제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하자 박 대통령은 “의료산업을 육성해야 가계소득 증대와 일자리 확대가 가능하다”고 답했고, 김 대표는 “이 법이 청년일자리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있었던 회동에 대해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 국정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은 주출돌을 놓았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사설 <‘정치 복원’ 첫발 뗀 靑 3자회담, 후속조치에 경제 달렸다>에서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며 “국정의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18일자 동아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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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심리학자 성해영교수 인터뷰

조현 2015. 03. 17
조회수 174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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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영 서울대 교수

 

 행정고시 수석한 공무원 사직하고 

심층심리학 공부해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을 번역한 

성해영 교수 “욕구를 억압만 하면 왕따와 정신병, 전쟁으로 터져 나와.

무의식의 본능 욕구 충족 안되면 불만,욕구를 승화시킬 분출구를 찾아라"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니체, 마르크스와 함께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로 꼽힌다. 그는 인간 의식의 저변에 있는 방대한 무의식을 탐구해 심리학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다.

 

 프로이트처럼 무의식의 세계가 너무도 궁금해 안전한 배를 버리고, 무의식의 바다에 뛰어든 이가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성해영(47) 교수다. 1994년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해 문화관광부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6년 만에 사표를 던진다. 이어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연구를 하고 모교로 돌아온 그가 이번에 프로이트의 말년 저서를 번역해 내놓았다. <문명 속의 불만>이다.

 

 이 책은 ‘왜 인간들은 자신을 위해 발전시킨 문명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별로 성공적인지 못한가’를 묻고 있다. 그 저작이 나온 뒤 8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의 욕망을 더욱 분출해 더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이뤄 전설 속에 나오던 천안통 천이통이 가능할 만큼 편리해졌는데도 고통과 불행감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지난 13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성 교수가 이런 의문에 프로이트적 관점을 담아 답해주었다.

 

 -왜 문명이 발전함에도 고통이 줄지 않는가?

 “프로이트를 가장 큰 충격에 몰아넣은 게 1차 세계대전이었다. 발전된 과학문명이 인간을 살리기는커녕 죽이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언제든 문명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

 

 -프로이트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어떻게 제시했나?

 “프로이트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은 영혼이 물질과 육체적 차원을 갈구하는 검은 말과 신성한 세계로 지향하는 흰 말, 그리고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모는 기수로 구성된다고 했다. 또 욕망이라는 두 말을 어떻게 길들이느냐가 인간의 행불행을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결국 프로이트는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기에, 우리 정신의 구조를 잘 알아야 욕망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욕망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나?

 “프로이트는 인간 욕망이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로 나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이 욕망을 그저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권투를 보며 죽음의 본능을, 영화와 문학을 통해 육체적 본능을 더 세련된 형태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통의 원인 중 하나가 스트레스다. 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가?

 “욕망이 적절하게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3·1절과 8·15 광복절에 폭주족이 무법천지의 해방구를 만드는 것은 좌절된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사회가 젊은이들의 원초적인 욕망 해소에 실패하니, 그렇게라도 숨통을 틔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억압만 하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긴다.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은 본연의 욕망이 해소되지 못한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중·고교생들에게 운동 시간을 늘려주었더니 그런 경향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욕망 충족의 좌절은 사회의 대부분이 겪는 문제다.”

 

 -본능적 욕망을 방치하면 사고가 난무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무분별한 충족이 아니라, 적절한 해소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나친 억압은 정신질환과 같은 부작용을 만든다. 완고한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도 현대판 러브호텔로 볼 수 있는 물레방앗간이 있었고, 억압받던 상민이나 노비들이 마당극이나 탈춤을 통해 욕을 퍼붓기도 했다. 이는 곧 사회적으로 용인된 욕망의 탈출구이다. 이런 지혜가 없으면 곤란한 일이 벌어진다. 일본인들은 평소에 감정과 욕망을 가장 잘 절제하지만, 일단 터지면 잔혹해진다. 성적인 풍속산업의 번성은 억압의 반증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등장한 훌리건이라는 폭력적인 축구팬, 철학이 번성한 독일에서 등장한 나치 등은 억압의 폭발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더욱 더 심각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프로이트는 성적 욕동인 리비도의 발현이 성장주기에 따라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생식기로 변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힌두교는 인생을 배우는 시기에서부터 탁발 걸식의 수행 시기까지 모두 네 단계로 구분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도 시기에 따라 발현 방식과 내용이 변한다. 성적 욕망은 청춘기에 가장 맹렬했다가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은 욕망의 발달단계와 전혀 맞지 않게 살아간다. 성적 에너지가 가장 활발한 청춘기에는 그 에너지를 억누른 채 공부만 하도록 강요받는다. 생식해야 할 시기를 학업과 취업하느라 보내버리고 만다. 그러나 취업도 하고 안정도 찾는 30대 후반이나 40대엔 이미 생식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는 출산율 저하로 이어져 국가적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북유럽에선 부모가 청소년인 자식에게 피임법을 알려주며, 원치 않는 임신은 막지만 성적 욕망의 적절한 해소를 돕지 않는가. 욕망의 발달단계와 성장주기로 보면 생식력이 왕성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고, 그들보다 성숙해 아이를 훈육할 수 있는 40·50대인 조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 증조부모가 가족공동체를 이끌었던 옛날이 더 지혜로웠다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주로 욕망을 버리거나 절제하게 한다.

 “종교가 질서 유지 때문에 욕망을 과도하게 억압한다는 게 프로이트의 비판이었다. 사회질서 유지는 필요하지만 과도해선 곤란하다. 기독교국가에서 발생한 세계대전을 보라. 또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가 유대인에게 죽음의 욕동을 투사하지 않았던가. 지나친 억압은 이처럼 문명을 오히려 위협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국가도 질서 유지를 위해 내부를 억압하지만 동시에 탈출구로 미워할 이웃을 만든다. 인접한 나라끼리 사이좋은 국가가 있던가.”

 

 -욕구가 자유롭게 분출되는 현대에 종교의 역할은?

 “현대는 ‘갑’만이 아니라 대다수인 ‘을’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를 요구하는 최초의 시대가 됐다. 여자와 하층민 등 전통적인 사회적 약자도 그들의 욕구를 존중해주기를 원한다. 가령 법륜 스님과 혜민 스님과 같은 종교인들이 일반인의 아픔을 경청하면서 위로하는 일을 ‘값싼 것’으로 치부하는 일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이슬람국가에선 여성은 위로는커녕 여전히 폭력에 시달린다.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해소되면, 나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그 뒤에야 비로소 높은 차원의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 밥도 안 주면서, 밥을 먹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런 원초적인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난 이후에 욕망의 고차원적인 승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인의 스트레스가 어느 나라보다 높고 기가 꺾인 이들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인은 일본인과 달리 음주가무를 통해 억압된 감정을 그때그때 해소한다. 한도 많지만 이를 신명으로 승화시킨다. 이것이 붉은악마나 한류로 나타났다. 결국 욕구가 일방적으로 억압되거나 좌절되지 않고, 신명나게 해소되도록 해줘야 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프로이드가 본 인간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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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가 말하는 ‘인격의 세 구조’

    *이드(Id): 본능적 에너지인 리비도의 저장고. 쾌락원칙을 따름. 어린아이의 정신은 거의 이드로 이뤄짐.

  *에고(Ego·자아):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 본능적 충동들에서 생겨나지만 그것들을 규제하는 기능. 슈퍼에고의 명령과 이드의 충동 사이에서 관제탑 구실을 하는 의식의 주체.

  *슈퍼에고(Super-ego·초자아): 내부로부터 선악의 판단을 내려 그 행동을 추동하거나 제약함. 죄책감을 일으키는 주체.

  

  -프로이트가 말하는 ‘의식의 세 상태’

  *의식(Conscious): 현재 생각하거나 느껴 경험하는 심적 상태.

  *전의식(Preconscious): 일시적 무의식. 노력하면 의식할 수 있는 상태.

  *무의식(Unconscious):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각이나 각성이 없는 상태. 억압적 관념과 본능이 숨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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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파기·경제실패" 문재인, 박 대통령 정면 비판

 

대통령·여야 대표 3자 회동... 김무성 "상생정치 하자"

15.03.17 18:22l최종 업데이트 15.03.17 22:4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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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과 새정치 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 회동에서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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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7일 오후 8시 9분]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3자 회동.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덕담은 짧았고 야당 대표의 작심 비판은 길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중동 4개국 순방 성과를 설명하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야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했지만, 문재인 대표는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박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첫 번째 '중동 붐'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서 경제가 부흥했듯이 이번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제2의 중동 붐이 제2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져서 경제 재도약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렇게 되려면 우리 내부에 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하고 정치권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정부 정책들도 사실은 국회 입법을 통해서 마무리 되듯이 외교성과나 결실도 국회에서 잘 협조를 해주셔야 완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중동 순방의 결과·결실들이 국민과 기업들에게 더 큰 혜택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경제가 다시 한 번 크게 일어나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두 분 대표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27개월 만에 정식 회동을 하게 된 문재인 대표에게 "대표 취임 이후 정식으로 뵙는 게 처음이다, 다시 한 번 취임을 축하 드린다"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대선공약 파기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미리 준비한 작심 발언이었다. 

문재인, 대선공약 파기 정면 비판... "경제정책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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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 회동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발언하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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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표는 먼저 "중동 순방 성과가 아주 많았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그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며 "야당도 될 수 있으면 적극 협력하겠다"라고 운을 뗐다. 또 "순방 중에 청해부대 방문하셨죠, 장병들 격려하시고 껴안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덕담은 여기까지였다. 박 대통령이 "감사하다"라는 답례를 하지마자 문 대표는 쓴소리를 꺼냈다. 

문 대표는 "그동안 대통령께서 민생을 살리기 위해 노심초사하셨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은 국민적 삶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라며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파기됐고 오히려 재벌과 수출대기업 중심의 낡은 성장 정책이 이어진 결과 중산층이 무너졌고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간 계속되는 심각한 내수부진에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정부대로 해마다 세수 부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총제적 위기"라고 규정했다. 

문 대표는 "최근 정부가 임금이 올라야 내수가 산다면서 정부정책을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좀 다행스럽지만 말하고 정책이 다르다"라며 "부동산과 금리인하 같은 단기 부양책만 있을 뿐 가계 가처분 소득을 높여주는 근본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생각하면 경제정책을 대전환해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가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평하고 정의로운 조세제도 구축, 세입자 주거난 해결, 가계부채 대책 마련 등 4대 민생과제 해결을 촉구했다. 

문 대표는 "최저임금이 기본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대폭 인상돼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생활임금도 모든 지자체와 정부까지 확대돼야 한다"라며 "세수 부족을 서민 증세로 메우려 하거나 또 가난한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을 털어서는 안 된다, 법인세를 정상화하고 자본소득과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서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월세값 폭등으로 서민 고통이 너무 크다, 대통령께서 대선 때 보편적 주거복지를 약속했는데 결과적으로 빈말이 됐다"라며 "세입자들의 주거난을 해결해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또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번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 이것이 서민의 금융비용을 낮추는 데까지 연결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남북 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 협조도 약속했다. 그는 "남북 관계도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남북 경제협력은 전세계에서 우리만 세울 수 있는 경제성장 전략"이라며 "우리 경제의 화로도, 또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통일대박의 꿈도 남북관계 개선에 달려 있다, 대통령께서 임기 중에 성과를 내려면 올해 안에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하고 우리 당도 초당적 협조를 하겠다"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참된 권력은 섬김'이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오늘 회담이 국민을 섬기는 그런 정치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문 대표가 발언하는 동안 '경제민주화'나 '복지 공약 파기'에 관한 언급이 나올 때마다 메모를 하기도 했다. 

김무성 "이번 만남 통해 상생정치 이뤄내자" 

문 대표의 작심 비판이 이어지자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중재자 역할을 떠맡게 됐다. 

김 대표는 먼저 "대통령의 이번 중동순방이 큰 성과를 낸 것 같다, 과거 중동건설 붐이 우리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었는데 이번 순방에서 거둔 성과를 잘 활용해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켜 신성장 동력으로 잘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결국 국정의 90%는 경제라고 생각한다, 경제 앞에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라며 "문 대표께서 조금 전 나열하신 여러 가지 경제의 어려운 상황은 우리만 겪는게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경제가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여야가 협조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오늘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에 대해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라며 "문 대표는 이전에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을 하시면서 4년이나 청와대에 계셨다고 하는데 국정에 대해 폭넓은 경험을 많이 하셔서 대화가 잘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때 하다 못한 개혁이 있으면 같이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협조하면 다 잘 풀리리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좋은 만남을 통해 상생정치를 이뤄내고 경제위기를 극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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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개처럼 끌려가던 그날 이후 40년, “동아일보는 죽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3/17 09:27
  • 수정일
    2015/03/17 09: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자들 개처럼 끌려가던 그날 이후 40년, “동아일보는 죽었다”
동아투위 결성 40주년 해직기자들의 호통, “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0명 쫓겨 나고 아무도 복직 안돼
 
입력 : 2015-03-16  17:29:11   노출 : 2015.03.16  18:38:18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1975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협회장 신호로 편집국 기자들은 물론 출판국과 방송국 사원 180여명이 편집국 한가운데로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다, 기관원 출입을 거부한다, 언론인 불법연행을 거부한다”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경영진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경고였다.  

동아일보 경영진들은 당시 완전히 박정희 정권에 기울어 있었다. 경영진은 이 선언을 외면하고 박정희 정권에 야합해 부당 인사를 내자 200여명이 동아일보 편집국을 점거하고 항의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경영진들은 1975년 3월 17일 폭력배와 용역을 동원해 이들을 강제로 밖으로 내쫓았다. 군대에서나 사용되는 탐조등을 비추면서 쇠망치와 몽둥이 등을 든 술 취한 폭력배들이 기자들을 시작으로 아나운서들까지 모두 끌어냈다. 

쫓겨난 언론인들은 강제해직에 굴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113명은 바로 “민중의 성원을 배신한 동아일보사는 오늘로 생명이 끝났다”, “자유언론 실천은 영원한 과제”라고 선언하면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했다. 그 이후 동아투위 결성 40년이 되는 2015년 3월 16일까지 오늘까지 단 한 명도 동아일보에 복직되지 못했다. 이들은 이후 전두환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1987년 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와 말지 창간에 이어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 창간을 주도했다.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 탄압과 동아투위 활동의 정당성에 대해 국가기관에서도 인정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동아일보에 “유신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자유수호 활동 기자들을 해고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하지만 이후 법원에서 번번이 뒤집혔다. 동아일보가 진실화해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자 행정법원은 박정희 정권이 동아일보를 탄압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대법원(신영철 대법관)은 동아일보 해직기자와 유가족 13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14명에 대해서만 원고 자격을 인정하며 1·2심을 파기환송했다. 1·2심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면서도 시효 소멸을 이유로 패소판결한 것보다 후퇴된 판결이었다.  

   
▲ 동아자유언론수호위원회가 결성 4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아일보는 쓰레기다"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수경 기자
 

동아투위 회원들이 16일 오후, 40년 전 쫓겨난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사 앞에 모여 40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지난 40년 세월에 대한 자부심과, 그럼에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 훼손된 언론자유와 동아일보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나왔다. 이들은 “언론이 살아야 나라와 민주주의가 산다”고 목소리 높였다. 

“전날 부인에게 ‘나하고 결혼해서 별 탈 없이 밥 굶지 않고 살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뭔 소리냐, 시집 잘 간지 알았더니 2년 만에 실업자 아내가 됐다’고 하더라. 새삼 40년이란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비록 펜과 마이크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쫓겨났지만 자유언론의 초심만은 변치 않고 40년을 한결같이 싸웠다고 자부한다. 흔들리지 않고 권력에 빌붙지 않고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국민이 지켜봐주고 후배들이 성원한 결과다. 40년 세월은 결코 후회가 아니라 뿌듯함으로 다가오고 있다.”(정동익 전 동아투위 위원장)

“단식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폭력배들에 의해 축출될 거란 이야기가 있었다…오전 2시부터 불침번을 서고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2층에서 베란다로 빠지는 철문을 용접기로 잘라 (폭력배들이)들어왔다. 제가 맨 앞에 있었는데 개 끌려가듯 끌려서 밖에 내던져지는 순간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안경이 다 깨져 손바닥에 유리가 박혔다…그때 제가 자유언론 위한 싸움에 동참하지 않고 개인의 안위를 위해 제작에 참여하고 권력 굴종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아마도 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아이들과 역사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삶이 됐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싸움에 동참했고 이후 무수한 고통에 동참했던 것이 저로서는 다행이다.”(동아투위 막내인 정연주 전 KBS 사장)

현재 동아투위 위원 가운데 20명이 정보기관에서의 고문과 생활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조민기·이의직·안종필·홍종민·김인한·홍선주·심재택·안병섭·우승룡·배동순·김성균·김덕렴·강정문·안성열·김두식·김진홍·이병주·이인철 ·성유보 위원이 유명을 달리했고, 지난 3일에는 송재원 위원이 눈을 감았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이 1974년 10월 24일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 (출처=동아투위)
 

동아투위가 40년 전 시작한 언론자유 수호 운동은 현재진행형의 운동이기도 했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16일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 신문발행 허가를 얻어 친일파 김성수가 국민주 신문을 사유화한 신문이다. 그 이후 온갖 아부를 다 해 마침내 전두환 정권에 굴종을 하다가 6월 항쟁으로 쫓아낸 이후에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만들기에 온 힘을 기울여 일본말로 찌라시라고 불리는 신문으로 전락했다”면서 “저희의 결론은 하나다. 자유언론, 공정방송이 실현되지 않는 한 민주화와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동익 전 위원장도 “동아일보는 마침내 쓰레기 소리를 듣는, 언론도 아닌 쓰레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드시 해직언론인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민들과 해직언론인들에게 사죄하고 언론으로 거듭나는 날까지 싸울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동아일보는 쓰레기다”란 구호는 외치기도 했다. 

민주화에 자신을 받쳐온 이해동 목사는 “심지가 없으면 촛불을 켤 수 없다. 동아투위는 언론의 심지고 불씨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불씨가 우리나라를 온전한 참된 언론의 불길이 되는 큰 역할을 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주류언론, 조중동·종편은 쓰레기 수준을 넘어 일종의 범죄가 되고 있다. 언론환경을 올곧게 세우고 공정언론을 실천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서민들의 삶을 지키는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도 “동아투위의 한 분 두 분이 저희 곁을 떠나고 있다. 후배들의 손으로 동아일보 해직사태의 진상을 시급히 규명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동아투위는 영원하다. 우리는 1974년 10월 24일에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체제’인 박근혜 정권에 맞서서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을 되살리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현역 언론인들과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는 동아일보 기자들
 

한편, 기자회견 이후 열린 40주년 기념식에는 동아투위 위원들과 유족들, 함세웅 신부, 백기완 선생 등이 참석했다. 지난해 고인이 된 성유보 선생의 아들 성동모씨는 이 자리에서 “기억은 안나지만 사진을 보면 내가 2살 때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있었더라”면서 아버지 장례를 도와준 동아투위 위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아래는 동아투위 성명.

동아투위는 영원하다 동아일보는 죽고 있다

내일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결성된 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75년 3월 17일 깊은 밤, 박정희 정권과 야합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편집국과 방송국에서 부당한 인사에 항의하며 단식을 하거나 농성을 벌이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113명을 폭력배들의 손을 빌려 거리로 쫓아냈습니다. 바로 그 113명은 그날 오후 “민중의 성원을 배신한 동아일보사는 오늘로 생명이 끝났다” “자유언론 실천은 영원한 과제”라고 선언하면서 동아투위를 결성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동아투위 위원들은 ‘자유언론’이라는 깃발을 단 한 순간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강제해직과 투옥, 정보수사기관의 고문과 생존권 박탈 따위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통일이라는 대의에 충실하게 이바지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금까지 동아투위 위원 스무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자리에 누워 천수를 다한 이는 거의 없습니다. 감옥이나 생활전선에서 얻은 난치병, 고문 후유증, 정신적 압박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우리는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저절로 동아일보사에 복직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1979년 그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비명횡사한 뒤, 이듬해 ‘서울의 봄’에 잠깐 동아투위의 눈치를 살피던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이른바 ‘신군부’가 5ㆍ17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자 아예 동아투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바라기처럼 권력을 추종하던 동아일보사는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는 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습니다.

동아투위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기에 행정부와 국회가 복직과 명예회복, 그리고 배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동아일보사는 노무현 정부 때 구성된 국가기구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1975년 3월의 대량해직에 관해 2008년 10월에 내린 ‘결정’을 외면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 광고탄압을 가했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들을 강제해직 하도록 압박했다는 사실을 여러 증거와 정황을 통해 밝혀낸 뒤 정부와 동아일보사에 대해 명예회복과 배상을 권고했으나 동아일보사는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입니다.

후안무치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진실화해위 결정은 ‘허위’라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가 거듭 ‘각하’ 판결을 받은 끝에 2013년부터 행정소송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뒤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합작’해서 113명을 폭력으로 추방한 사실은 지난 40년 동안 역사적 진실로 굳어져 있는데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사법정의와는 거리가 먼 재판부가 내린 승소 판결을 바탕으로 “동아투위는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우리는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것은 동아투위가 아닙니다. 동아일보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1975년 당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은 그 어떤 매체도 근접할 수 없는 ‘자유언론의 보루’이자 광고와 판매에서도 가장 앞서가던 언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동아일보는 어떻습니까? 대표적인 보수신문들 가운데서 ‘3등’이라는 굴욕을 감수하면서, 채널A와 함께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진실보다는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조작된 거짓을 전파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아일보 사장 김재호 씨를 비롯한 경영진에 경고합니다. 당신들은 초대 사주 김성수와 그 추종자들이 1920년 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라는 미명 아래 내준 신문발행권에 힘입어 ‘민족지’를 표방하면서 ‘국민주주’를 모집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김성수 일가는 ‘국민신문’을 교묘한 방식으로 사유화한 뒤 족벌언론으로 둔갑시켜버렸습니다. 김성수에서 아들 김상만, 손자 김병관, 증손자 김재호로 이어지는 세습 족벌체제는 조선일보사와 더불어 한국 언론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경영진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사는 노무현 정부 때의 법적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에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것을 뒤엎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김성수의 친일매국 행각이 여러 쪽에 걸쳐 명기되어 있는데도 그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고 있는 것입니다.

동아투위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1974년 10월 24일에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유신체제’인 박근혜 정권에 맞서서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을 되살리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현역 언론인들과 언제나 함께 가겠습니다.

2015년 3월 16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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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이슬람의 변화

 
주원준 2015. 03. 16
조회수 102 추천수 0
 

 

 

우리가 이슬람 세계를 서술할 수 있을까 
- 이슬람의 변화와 우리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biblicum@icloud.com

*2015년 2월23일 격월간 공동선 원고

 

 

1. 들어가며
올해 세계는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Charlie Hebdo shooting)으로 시작했다. 1월7일 오전 11시30분경, 쿠아쉬 형제는 자동화기로 50여발을 쏘고, ‘알라 후 아크라신은 크시다'고 외쳤다. 경찰관 2명을 포함하여 11명이 사망했다. 그들이 알 카에다(AlQaeda) 예멘 지부 소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월9일 프랑스 경찰 특공대가 두 명을 사살했다. 
사흘만에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세계가 들끓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당시 필자의 마음에는 ‘이슬람 세계가 크게 변화하는 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느낌이 왔다. 그리고 서너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마침 공동선에서 그 생각을 서술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밝힐 것이 있다. 필자는 이슬람 전공자가 아니다. 구약학과 고대근동학을 공부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다.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터키 등이 ‘헬레니즘화 - 그리스도교화 - 이슬람화’되기 이전의 문명과 언어를 공부했다. 이렇게 ‘공부하는 지역이 겹치는’ 인연으로, 나름대로 꾸준히 이 지역에 대해 읽고,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따금 토론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관찰자의 시선’ 쯤으로 보아 주시면 좋겠다. 논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두런두런 이야기하듯이 적어 보려고 한다. 당연히 반론과 토론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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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을 받았던 날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 앞의 상황. AP/뉴시스


2. 도식과 눈치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이후, 솔직히 말하면 국내의 논쟁은 재미가 없었다. 거칠게 표현해도 된다면, 좌파는 도식적이었고 우파는 눈과 의지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일부 좌파 논객은 식민지 담론에 머물러 있었다. ‘유럽은 제국주의, 이슬람은 피지배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식민지를 경험한 민족으로서 이슬람의 울분에 공감하고, ‘윤봉길, 신채호, 김구 모두 무장론자였다’는 식의 옹호론이 나왔다. 
필자는 이런 비교가 정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생각해 봐도, 윤봉길, 안중근 등을 쿠아쉬 형제와 비교할 수 없다. 첫째,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왕족이나 최고 권력자를 직접 겨누었다. 3류 풍자 잡지를 급습하고 만세를 외치지도, 도주하지도 않았다. 둘째, 쿠아쉬는 ‘동양평화론’ 등을 작성할 수준이 아니었다. 김구 등은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상당한 비젼과 철학을 제시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런 도식적 견해를 ‘투사projection)라고 느꼈다. 투사는 실재를 왜곡하는 안일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필자가 과문한지 몰라도, 우파 쪽에는 읽을 만한 글 자체가 없어 보였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빨리 모아서 주판알을 튕기는 인상도 일부 받았다. 괜찮은 하드웨어를 갖춰놓고도 공격적으로 사용할 패기가 없는 기술자 같았다. 의지 없는 눈치. 미안하지만 그렇게 보였다. 


3. 이슬람을 주어로 말하기  
한국에서 읽은 글의 대부분은 이슬람을 주어로 말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샤를리 엡도를 주어로 문장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테러리스트를 주어로 문장을 짓기도 쉽다. 대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샤를리 엡도는 풍자가 지나쳤다.’ 등 
‘테러리스트의 폭력은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등

 

두 문장을 이어 복문을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대개 논쟁은 아래의 두 입장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샤를리 엡도의 풍자는 지나쳤지만, 테러리스트의 방법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 
‘테러리스트의 폭력은 허용될 수 없지만, 샤를리 엡도의 풍자는 분명 지나친 것이었다.’

 

국내의 논쟁은 이 두 복문의 조건절과 주절의 주어가 누구냐에 따라 줄세우는 듯 했다. 그러나 필자에게 두 문장은 거의 동어반복이고 지루했다. 주어를 그리스도교로 해 봐도 술어는 어렵지 않다. 한국인으로 해 봐도 쉽다. 
그런데 이슬람을 주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샤르리 엡도 총격 사건 앞에서 ‘이슬람은 ... ...독자는 어떤 문장을 지으실 수 있으신가? 우리는 어떤 술어를 택해야 할까?
이슬람을 주어로 말한 글은 소설가 장정일이 유일한 것 같다. 그는 한겨레 신문 2월 4일자 “‘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대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반가운 견해다.

 

결코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 ... 이슬람은 서구를 향해 자신을 아이 취급하고 예외로 다루어 달라고 더는 징징거리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이 진정 유서 깊은 역사와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들이 길러온 문화의 힘으로 풍자와 조롱에 맞서야 한다.

 

앞으로는 이슬람을 주어로 말해야 할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독서와 토론이 늘지 않는다면, ‘도식파’와 ‘눈치파’의 글만 늘어갈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이슬람 세계의 상황과 실체를 정확히 보고 우리의 눈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것이 첫째 생각이다.


4. 범이슬람 주의의 종말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는 다양한 인터뷰 등을 통해 이슬람 세계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범이슬람주의는 사라졌다. 무슬림들은 개별 국가와 부족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경쟁한다.’ 필자는 이 관찰에 찬성한다. 
범이슬람주의는 없다. 전체 이슬람 세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알 카에다, 탈레반, ISIL, 보코 하람(Boko Haram) 등 과격파 원리주의 단체가 ‘이슬람의 승리’를 위해 투쟁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무슬림을 대표하기는 커녕, 이슬람 세계의 골칫덩이다. 
필자의 눈을 끈 문장이 있었다. 올해 2월 3일, ISIL은 요르단 조종사 모아즈 알-카사스베(Moaz alKasaesbeh)를 화형하는 끔찍한 필름을 전세계에 보냈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Abdullah II) 즉시 보복했다. 그 때, 요르단군은 전투기에 실을 폭탄에 이런 구호를 썼다. “너희들은 이슬람이 아니다.” 
그렇다. 범이슬람 주의는 없다. 무슬림이 무슬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 서로 옳은 신앙(orthodox)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이런 갈등은 시아와 순니를 넘나든다. 시리아 반군과 시아파 무슬림인 이란이 ISIL을 상대로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 세 당사자는 모두 무슬림들이다. ISIL을 무찌르는 작전에 가장 원리주의적인 사우디와 가장 세속화된 터키가 협조한다. 흥미롭게도 암암리에 미국과 이스라엘도 참여하고 있다. 각자의 생존을 향해 무한경쟁하는 가운데 비무슬림 국가와도 협력하고 교류하는 상황은 어쩌면 지구촌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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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알 바그다디. 유튜브 동영상 캡쳐


5. 무슬림들의 경쟁
사실 무슬림들의 경쟁은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음식 규정인 할랄(Halal)을 예로 들어 보자. 그 기원은 구약성경의 율법인데, 현재 유다인들은 코셰르(Kosher)라고 한다. 코셰르와 할랄의 기본적 개념은 동일하다. 거룩한 백성은 온전한 것만을 합당한 방식으로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본 개념 뿐 아니라 내용도 엇비슷하다. 쇠고기를 생산하는 경우, 대개 이런 내용이 포함된다. 송아지부터 합당한 환경에서 적절히 길러야 하고, 너무 어린 것을 잡아서도 안되고, 죽일 때는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피를 온전히 빼고 고기만을 취하고, 신에게 바치는 의례를 행하고, 내장 등 어떤 곳에서도 기형이 발견되면 안되고, 가장 위생적으로 처리하고, 유통과정에서도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할랄은 종교 규정이기도 하지만, 각국의 큰 산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큰 무역 장벽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식품이 이슬람 세계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할랄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슬람 각국은 기후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할랄 규정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합하여 국제 할랄 표준을 만들자는 기구가 있는데 The International Halal Integrity Alliance, 줄여서 IHI Alliance라고 한다. 만일 국제 할랄 표준이 정해지면, 그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이슬람 인구는 13억이나 되지 않는가. 현재 이슬람 각국은 자국의 전통과 산업에 유리하게 이 기준을 이끌려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 등 비무슬림 국가들까지 외교전에 참여한다. 막대한 이익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랄 규정을 둘러싸고 정작 ‘종교’나 ‘믿음’은 부차적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무한 경쟁이다. 이 점이 나누고 싶은 둘째 생각이다.


6. 경전은 편집되었는가
이렇게 현대 세계에서 종교는 세속을 이끌기 보다 세속에 끌려다닌다.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기 보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슬람 신학은 아직 한참 뒤쳐진 듯 하다. 이런 현상은 큰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선 경전만 놓고 보자. 
유일신 종교에서 경전은 큰 권위를 지닌다. 유일한 신이 역사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하는데, ‘드러내다reveal)는 의미다. 그런데 그 계시는 말을 통해 주어졌고 책에 쓰여있다. 그러므로 그 책은 거룩한 책, 곧 ‘성서聖書, Holy Scripture)다. 성서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한 글자 한 글자에 하느님의 숨결이 들어 있다. 누구라도 한 획도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성경(Bible)이나, 유다교의 토라(Torah)나, 이슬람의 쿠란(Quran)이나, 거룩한 책이요 절대적인 책이다. 
하지만 현재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주류 신학은 성서가 인간 역사에서 수없이 편집된 사실을 인정한다. 20세기에 교황청에서 나온 성서해석에 대한 문헌들은 이런 편집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런 긍정은 성서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서 본문에 제한되던 눈을 더 크게 키운 것이다. 성서 본문의 모든 글자에 하느님의 숨결이 붙박혀 있지만, 수천년에 걸친 성서 본문의 발생과 전승과 해석 단계에서 하느님께서 다양하고 풍부한 방법으로 비범하게 일하셨음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더 큰 시각의 신학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신학과 상생한다.


성서가 편집되었다는 신학은 배타적 신학을 물리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성서의 편집과 전승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추론이 가능해졌다. 성서의 일부 구절을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시키는 일도 가능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성찰하고 해석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배경에서 도발적 질문도 이어졌다. 그리스도교의 시작은 예수일까 바오로일까. 유배 이전의 이스라엘인은 메시아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은 신학 수업 시간에 상상력과 토론을 자극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내부에도 근본주의가 존재한다. 그들은 성서의 절대 권위를 배타적으로 해석한다. 성서가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개신교 일각에서 제기하는 ‘축자영감설' 곧 성경 한 자 한 자에 하느님의 영이 농축되어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성경의 한 획도 손을 댈 수 없고, 모든 낱말과 구절은 현재의 그 자리에 그 맥락에서만 읽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전제에서는 다채로운 신학이 피어나기 힘들다. 철학과 문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도 성서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신학이 자리잡는다.
현재 이슬람의 쿠란 연구는 대개 이런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 이슬람권의 분위기에서, 쿠란이 편집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쿠란의 모든 구절은 본래의 그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발적 질문이나 본래의 문맥에서 벗어난 해석은 금지된다. 배타적 신학이 자리잡기 좋은 조건이다.


7. 이슬람 신학의 발전
그러나 필자는 이슬람 신학의 발전에 퍽 긍정적이다. 역사를 길게 봤을 때, 이슬람 문명은 새로운 신학을 펼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새로운 이슬람 신학 창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 보겠다. 

 

첫째는 국가별 자유 경쟁의 분위기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더이상 이슬람이라는 큰 세계의 하위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별로 고유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무한 경쟁하는 주체다. 이는 국가별로 종교적 권위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나 언어와 민족에 따라 새로운 신학적 사고가 형성되기 좋은 조건인 것이다.


둘째는 테러리스트들이 명분에 시급히 대응할 필요다. 사실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주장은 정말 형편없다. 테러에 참여해서 목숨을 잃으면 내세에 70명의 부인이 생길 것이라는 둥, 모든 여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는 둥, 중세적 칼리프 국가를 설립한다는 둥, 여성 전쟁 포로를 성적 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둥의 논리는 조악하고 저열하다. 그들은 세계 종교이자 인류의 문화적 자산인 이슬람의 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런 근본주의에 대응하는 신학적 노력은 이슬람 내부에서 이미 진행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국가와 부족에 따라 형편이 다르다. 전선을 맞대고 전쟁을 치르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조금 느긋하게 바라보는 쪽도 있다. 세속화된 지구촌 세계를 수용하여, 이슬람 세계의 개혁으로 연결시키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전통을 더 강화시키는 쪽에서 문제를 이해하는 쪽도 있다. 유럽과 북미의 대학에 설치된 이슬람 학과에서도 점차 한 마디씩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서양 무슬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 속에서 불가피하게 종교의 자유, 타종교와의 대화, 세속화, 여성, 인권, 발전, 평등, 세계화 등의 낱말이 성찰되고 토론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견해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학적 개혁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종교나 종교적 격변은 피를 크게 불렀다. 필자는 이슬람 세계 내부의 격동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유럽의 예를 들자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독일은 30년 전쟁을 치렀다. 한 지역의 한 세대를 온전히 전쟁에 투입하고서야 일단락되는 일이었다. 그 결과는 유럽의 국민국가가 출현한 것이다. 그런 역사가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날 듯한 느낌이다. 우리는 긴 변화의 초입에 사

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누고 싶었던 셋째 생각이다.


8. 나가며: 이슬람의 존중 
지금까지 간략하게 서술한 내용은 인문학적으로 거시적 안목을 요구한다. 13억의 문명권이 변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슬람은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자체적으로 대응할 충분한 역량을 축적한 문명이다. 물론 고통과 인내가 요구될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의 우리에게는 무엇이 요구될까? 필자는 우리에게도 인내와 꾸준한 공부가 요구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눈으로 관찰하고, 우리의 감으로 맥을 짚어서, 우리의 언어로 요약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다. ‘13억의 현상’을 관조할 실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다수의 종교가 큰 탈 없이 살아온 땅이라고 자랑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참조사항이 될 수 없다. 서술어를 스스로 짓고, 문장을 쌓아 올려 참조할 수 있는 본문, 영감을 주는 대화를 작성해야 한다. 낡은 도식에 따르거나 남의 눈을 빌리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우리는 그 서술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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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준
가톨릭 학생회를 거쳐 평신도 신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근동학을 공부하고, 현재 그리스도교 원천 문헌 번역에 힘쓰는 <한님성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며 서강대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에 출강한다. 히브리 성경과 고대 근동 문헌을 읽으며 살고 있다. <우리 인간의 종교들> 번역에 참여했고, <구약성경과 신들>, <우가릿어 문법>, <우가릿어 사전>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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