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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해킹 개발자 "억압 수단 이용" 폭로

국정원 해킹 개발자 "억압 수단 이용" 폭로
 
"PC. 휴대폰 100% 보안 불가능"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5 [05: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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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해킹 사건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해킹 프로그램 개발자가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 등이 백신을 설치해도 100% 보안을 장담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지난 24일 단독으로 국가정보원이 구매·사용한 이탈리아 ‘해킹팀’의 RCS(Remote Control System) 프로그램 개발자가 “RCS는 스마트폰이나 PC의 통화, 문자메시지, 저장된 데이터를 모두 해킹할 수 있다”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목표물을 원격으로 실제 감염시킨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프로그램 개발자는 익명을 요구했으며 대담은 이메일로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프로그램 개발자는 또 "합법적으로 범죄자(마약 사범 등)를 추적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개발한 도구가 무고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은 없다.”며 이런 사실을 알고 해킹팀을 떠났다고 소회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이 왜 해킹 자살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그의 죽음에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는 입장도 남겼다.

 

해킹 프로그램 개발자는(이하 개발자)국정원이 들여 온 것으로 알려진 소위 해킹프로그램인 RCS는((Remote Control System) 어떤 프로그램인가.라는 질문에 “RCS는 컴퓨터나 휴대폰을 감시할 수 있는 도구"라면서 "유출된 문서에 나와 있듯, RCS는 전화통화, 메신저 대화, 페이스북 채팅, 파일, 화면, 마이크, 사진, 키보드 조작 등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작업을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와 휴대폰 원격 감염에 대해서는 ”원격으로 감염시키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RCS를 사용해 해킹할 수 있는 장치들의 범위에 대해서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감염시킬 수 있다."면서 "특정 환경에서는 아이폰도 가능하다."며 Mac OS, 리눅스, 윈도폰, 심비안도 가능하다. 일단 장치가 감염되면 모든 데이터가 위험에 처한다. 안전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도 대화 내용을 볼 수 있다.”고 말해 모든 PC와 휴대폰이 해킹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했다.

 

국정원 직원이 삭제한 자료의 복구에 대해서는 “국정원 직원의 죽음에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 지금도 왜 그가 목숨을 끊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뒤 "그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증거자료를 내려받아 삭제했다면 데이터베이스에 데이터가 남아 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자체에서 자료를 삭제했다면 디지털포렌식(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과학수사 기법)으로 복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삭제 후 서버의 전원을 곧바로 내렸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국정원 직원이 어떻게 삭제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복구 여부에 대해)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개발자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는 없다."면서 "강력한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게 좋지만 휴대폰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도 없다. 안드로이드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은 설치할 수 없도록 설정하고 iOS를 사용하는 휴대폰은 순정품으로 써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100% 안전하진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합법적으로 범죄자를 추적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개발한 도구가 무고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은 없다.”며 해킹 프로그램이 인권을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악용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개발자는 해킹팀에서 7년간 일했으며 2년차 때부터는 모바일 연구·개발(R&D)팀의 책임자였다고 고백하고 RCS가 인권을 억압하는 데 사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다음에는 더 이상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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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무도한 살인, 완전범죄는 없다

 

[제'법'이네? '태완이법'] 형법상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15.07.24 20:54l최종 업데이트 15.07.24 20:54l

 

 

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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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태완이법'으로 알려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직후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한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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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대구에 사는 5살 김태완군이 학습지 공부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 남성이 다가와 태완이 얼굴과 몸에 황산을 쏟아 부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태완이는 49일 동안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났다. 용의자는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 태완이의 부모는 자식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공소시효(당시 기준 15년)가 만료돼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태완이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 만에 제2의 '태완이 사건'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살인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개정안이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현재 25년으로 규정된 형법상 살인죄 공소시효는 사라진다. 이와 더불어 2003년 '포천 중학생 납치살인사건', 2004년 '화성 대학생 살인사건', 2006년 '서울 노들길 살인사건' 등 영구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사건들의 공소시효도 사라져 범인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일명 '태완이법'은 2012년 법무부가 발의한 정부안과 지난 2월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 발의한 법안을 병합한 대안이다. 법무부는 장애아동 및 14세 미만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자, 법 적용 형평성 차원에서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도 배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련 법안을 함께 낸 서 의원은 당시 "태완이와 같은 억울한 피해를 막고 강력범죄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라며 "현행 공소시효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첨단 수사기법이 발달한 현재에 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상당수 선진국들은 강력 범죄의 공소시효 자체가 없거나 점차 폐지하는 추세다. 미국 연방법은 사형으로 처벌되는 사건은 물론 아동성매매와 인신매매 범죄의 공소시효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영국은 경범죄에만 공소시효를 적용하며, 일본도 2010년 살인 등 중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태완이법' 통과됐지만... 정작 태완이는 적용 안 돼

반인륜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게 국제사회의 흐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태완이법이 국회 본회를 통과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법사위 내부에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 약 한 달 전인 지난 6월 17일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 회의 때도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검사·변호사 출신의 여야 의원들은 법 안정성 등을 이유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반대했다. 검사였던 한 여당 의원은 "국민여론에 휩쓸려서 막 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발했고, 변호사인 한 야당 의원은 "2007년에 공소시효가 한 번 연장됐으므로 없애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 10일 태완이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태완이 부모는 지난해 7월 재정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올해 3월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이 최종 기각을 결정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국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그때부터 법안 처리 과정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태완이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개정안 효력을 적용받지 못한다. 서 의원은 "법적 안정성을 거론하며 일부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태완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안타깝다"라며 "시대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법조문 해석에만 매몰됐던 것은 아닌가 싶다"라고 아쉬워했다. 

서 의원은 "그럼에도 태완이 부모는 하루 빨리 법안이 시행되기를 바라고 있다"라며 오는 28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이 최종 처리돼 조속히 공포·시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으로의 과제도 남아 있다. 당초 서 의원이 낸 법안은 형법상 살인뿐만 아니라 존속살인, 상해치사, 폭행치사, 유기치사, 촉탁살인, 강간살인 등 모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정부안과 병합한 대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살인죄만 해당되도록 제한했다. 영아살해나 촉탁·승낙 살인죄 등 사형을 구형할 수 없는 살인죄는 제외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 의원은 "용의자를 체포해 구체적인 혐의를 확정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모든 살인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공소시효 없이 수사할 수 있다"라며 "수사 측면에서는 사실상 영구미제 사건이 없어진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후 피의자의 혐의가 사형을 구형할 수 없는 살인죄로 정해진다면 공소시효가 다시 적용될 수도 있다"라며 "공소시효 폐지 범위를 계속 확대해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서 의원은 반인륜적 또는 아동대상 범죄로 공소시효 폐지가 확대될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에 포함되지 않은 강간치사, 유기치사 등의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법 개정을 조만간 추진할 예정이다.
 
서영교 의원이 태완이법에 앞장 선 이유
서영교 의원이 태완의 억울함과 정면으로 마주한 건 지난해 여름이다. TV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영한 태완이 사건 보도를 접하면서다. 

"너무 슬퍼서 막 울다가 순간 번뜩 생각했어요. '아, 난 평범한 아줌마가 아니라 국회의원이지' 하고요."

그때부터 국회의원으로서 태완이 부모를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고, 태완이 부모가 공소시효 만료 직전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을 대구고등법원에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국정감사 기간에 대구고법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질의했다. 그때 현장을 방문한 태완이 엄마를 처음 만났고, 태완이의 억울한 사연을 자세히 듣게 됐다. 서 의원은 "태완이 어머니가 그동안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찾아갔는데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써줬다고 하더라, 나한테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대구를 다녀온 서 의원은 본격적인 입법 작업에 들어갔다. 법무부가 2012년에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법개정안을 발의한 게 있었지만, 전혀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었다. 서 의원은 직접 법안을 추가로 발의해 논의를 다시 수면으로 끌어올리기로 결심했고, 올 3월 일명 '태완이법'을 발의했다. 대구 지역 엄마들을 포함한 4만 명의 시민이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서울로 직접 가져다주기도 했다.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했다. 법률상 이의제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법사위 전문위원, 법무부 관계자와 수시로 내용을 점검하고 조정했다. 공소시표 폐지 추세인 국외사례도 자세히 조사해두었다.  

"법무부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다가, 국외에서 반인륜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추세라고 하니 법사위 의원들이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거죠."

서 의원의 노력은 공소시효 폐지에 소극적인 율사 출신 의원들마저 설득시켰고, 최종적으로 본회의 통과로까지 이어졌다. 법사위의 한 관계자는 "서 의원이 비법조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서 의원은 "'또 다른 태완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활동은 이제 시작"이라며 "'잔혹한 반인륜적 범죄에 영구미제란 없다'라는 원칙을 우리 사회에 세워가고자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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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피라냐 발견, 제6의 대멸종 전조인가

 
조홍섭 2015. 07. 24
조회수 1379 추천수 0
 

대륙 충돌이 부른 대멸종, 인류는 생물 옮겨놓기로 재현…멸종속도 114배

관상용 도입으로 외래종 2천종 넘어, 기르던 동물 처리·처분 대책 시급


강원도 피라냐_환경부.jpg» 강원도 횡성에서 발견된 열대 아마존 물고기 피라냐. 이가 날카롭다. 사진=환경부 

 

생물다양성 세계의 금언은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이다. 고립과 격리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지만 통합은 어느 한쪽의 멸종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태평양의 외딴 섬 갈라파고스가 ‘진화의 실험실’이 된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애초 떨어져 있던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결합은 비극적 사건이었다. 아프리카, 호주, 남극과 붙어있던 남아메리카는 3500만년 전부터 외딴 대륙으로 떨어져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생물이 진화했다.

 

Glyptodon-1.jpg» 남아메리카에서 살다 멸종한 아르마딜로의 친척인 글립토돈의 화석. 폭스바겐 비틀 크기에 장갑으로 덮여있다.

 

코끼리만 한 나무늘보, 두꺼운 갑옷과 꼬리에 가시가 나 진짜 공룡 같은 자동차 크기의 아르마딜로, 1t짜리 거대 쥐, 키 3m의 최상위 포식자 ‘테러 버드’ 등등….

 

그러나 300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남·북 아메리카가 충돌해 연결되자 검치호, 400㎏ 무게의 사자, 곰 등 포식자가 남아메리카로 쏟아져 들어와 거대 초식동물 등 특이한 동물이 모두 멸종했다. 생물지리학자 테니스 맥카티는 이를 “티라노사우루스 몰락 이후 가장 큰 살육 사태”라고 불렀다.

 

M. Taglioretti and F. Scaglia_terror-bird_s.jpg» 북아메리카와 연결되기 전 남아메리카 최고의 포식자였던 '테러 버드'의 거의 완벽한 화석.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됐다. 키가 3m에 이른다. 사진=M. Taglioretti and F. Scaglia 
 

남아메리카를 짓밟은 북아메리카 동물은 1만2000년 전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빙하기에 해수면이 낮아져 베링해가 육지로 이어지자 유라시아에서 인류가 건너왔고, 매머드와 검치호를 비롯해 대형 포유류 대부분이 곧 멸종했다.
 

인류가 지구에 남긴 족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사이먼 루이스 영국 런던대 박사 등은 남극에서 시추한 얼음층을 분석한 결과 1570~1620년 사이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갑자기 7~10ppm 줄어든 사실을 알았다.

 

연구자들은 지난 3월15일치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그 원인을 1492년 콜럼버스의 상륙 이후 벌어진 유럽인의 신대륙 정복이라고 보았다. 유럽인이 옮겨온 병원체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 5000만명이 사망했고, 이들이 재배하던 방대한 농지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면서 대기 속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던 것이다.

 

in4.jpg» 남극 빙상에 나타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1610년 근처에서 갑자기 농도가 뚝 떨어진 것이 보인다. 그림=루이스 외 <네이처>
 

인류는 농작물, 가축, 병균 등의 생물을 세계 곳곳에 옮겨놓았다. 중앙아메리카의 옥수수는 유럽, 아프리카, 중극으로, 감자는 남아메리카에서 유럽과 중국으로 갔고 반대로 아시아의 밀은 북아메리카로, 설탕은 남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세계화는 점점 가속화해 인류는 지구 차원에서 생물 뒤섞기를 하고 있다. 마치 초대륙 판게아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인류는 지구를 하나의 대륙으로 만들고 있다. 생물 멸종의 가장 큰 이유는 서식지 파괴와 함께 이런 생물 이동이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최근 주요 멸종 요인으로 등장했다.

 

게라르도 세바요스 멕시코국립자치대 박사 등 연구자들은 6월19일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보수적으로 쳐도 지난 세기 동안 척추동물 종의 평균 멸종률은 과거보다 114배 컸다”며 “우리는 이미 제6의 대량멸종에 접어들었다”고 결론 내렸다.

 

강원도 레드파쿠_환경부.jpg» 횡성 저수지에서 발견된 레드파쿠.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이는 열매를 깨뜨려먹기 좋게 진화한 것이다. 사진=환경부 
 

최근 강원도 횡성의 한 저수지에서 누군가 버린 것으로 보이는 남아메리카 열대 담수어 피라냐와 파쿠가 발견된 것은 일상화한 생물 뒤섞기의 한 단면이다. 열대어라 겨울엔 죽을 터이지만 메르스에 놀란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해 퇴치했다. 외래 기생충이나 병원체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피라냐가 사람을 일부러 공격하는 ‘식인 물고기’인지는 의문이고, 환경부가 파쿠를 “알몸으로 헤엄치는 남자들의 고환을 먹이로 착각하여 공격하기도 해 ‘볼 커터’라고도 불림”이라고 설명한 것은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들은 실수였다.

 

2013년 덴마크에서 파쿠가 발견됐을 때 코펜하겐 자연사박물관의 한 교수는 외래종의 위험을 알리려고 언론에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고 <시엔엔>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파쿠는 물위에 뜬 열매를 먹는 채식주의 물고기다.

 

in2_Dinakarr -YellowCrazyAnt-Dinakarr-4May11.jpg» 도마뱀붙이를 끌고가는 노랑미친개미 무리.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침입종이다. 사진=Dinakarr,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실, 우리나라에 피라냐나 파쿠보다 잠재적으로 더 위험한 동물은 노랑미친개미다. 미친 듯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돌아다니는 습성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몸집은 조그맣지만 ㎡당 2254마리까지 불어난. 침입한 지역의 곤충은 물론 도마뱀, 새, 포유류 등 대부분의 동물과 충돌을 빚으며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어놓는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발간한 <세계 100대 침입종>에 첫 번째로 올라 있는 이 개미는 열대 아프리카와 동남아가 원산인데 일본, 하와이, 북미 등에 침입했다. 인도양 크리스마스섬의 유명한 붉은 육지 게를 공격해 1년 반만에 300만마리 죽인 일도 있다.

 

특히, 도시와 산림 외곽 등 교란지역에 빠르게 침입해 우리나라는 잠재적 분포 가능성 높은 것으로 꼽힌다. 환경부가 지정한 위해우려종에 올라 있다. 피라니아와 파쿠도 연내에 위해우려종에 등재될 예정이다.

 

in1.jpg» 충북 청주의 한 웅덩이에서 발견된 아프리카 발톱개구리. 참개구리를 끌어안고 있다.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 색이 탈색된 알비노 품종이다. 사진=두꺼비 친구들

 

국내에 유입되는 외래생물은 관상용 도입이 늘면서 해마다 25%씩 증가해 지난해 2167종에 이르렀다. 취미용으로 들여온 외래생물이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1984년 수족관에서 유출된 열대 조류가 지중해 전역에 번져 큰 문제가 된 적이 있고, 1990년대 초 해변에 있던 관상용 수족관이 허리케인으로 깨지면서 풀려나간 태평양의 육식 어종 쏠배감펭이 대서양과 카리브해에 급속히 번져 해양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in3.jpg» 높은 밀도로 번지고 있는 점쏠배감펭. 사진=리치 커레이, 산호 환경 및 교육 재단, 노아

 

피라니아에 이어 충북 청주의 습지에서는 남아프리카 발톱개구리가 발견됐고 인터넷과 판매점에는 수많은 신기한 외국 동물이 널려 있다. 기르던 동물이 싫증나거나 관리가 힘들다고 아무 데나 놓아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동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조언할 책임이 정부와 애완동물 판매상에 있건만, 그런 교육과 캠페인을 벌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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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국정원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

 
 
그들이 주장과 해명이 논리도 맞지 않고, 비상식적이기 때문
 
임병도 | 2015-07-24 09:04: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해킹 프로그램 구매와 운용에 관여하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모씨의 죽음에 때아닌 ‘마티즈’ 진실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임씨가 죽기 전 촬영된 CCTV 속 마티즈 차량이 임씨가 탔던 차량이 아니라는 의혹입니다. CCTV 속 마티즈 차량 번호판 색깔은 흰색으로 나왔는데, 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번호판은 녹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브리핑을 통해 ‘해당 지역에 설치된 카메라에 잡힌 영상 전체를 초당 30프레임으로 나누어보면 진행방향으로 차량이 움직이면서 해당 차량에 부착된 번호판의 색상이 밝은 색과 어두운 색으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관찰된다’며 저 화질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
 
경찰은 국정원 임씨의 차량과 유사한 차량 (199년식 빨간색 마티즈 II. 녹색 번호판)까지 동원해 재연했다며, CCTV 속 마티즈 차량이 임씨의 차량과 동일하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이 주장하는 CCTV 속 차량이 임씨의 마티즈와 같다,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도대체 임씨가 탔던 마티즈 차량은 2005년식인지, 1999년식인지에 관한 사안입니다.

경찰은 CCTV 속 차량을 1999년식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임씨가 탔던 마티즈 차량을 조회한 결과 2005년식 마티즈였습니다.2 대다수 언론도 2005년식 마티즈라고 보도했습니다.3 그런데 경찰은 1999년식 마티즈 차량을 가지고 재연을 했습니다.

1999년식 차량인데 2005년에 보험에 가입해서 2005년식이 됐을까요? 아니면 많은 언론이 오보를 했을까요? 진짜 임씨가 탔던 차량이 몇 년식 차량인지부터 나와야 합니다. CCTV 속 영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임씨의 차량이 몇 년식인지부터 정확히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국정원 임씨는 유서에서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하였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20년 경력의 사이버 전문가 임씨가 자료를 삭제했다고 유서에 밝히자, 야당은 임씨가 디가우저 장비4를 사용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과연 복원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연합뉴스에 따르면 임씨는 디가우징이 아니고 그냥 컴퓨터에 있는 딜리트(Delete) 키를 눌러서 삭제했다고 합니다.5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딜리트 키만 누르면 삭제가 되는 줄 압니다. 조금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포맷을6 시킵니다. 진짜 컴퓨터를 아는 전문가는 아예 하드를 박살 내던지 디가우징 장비를 사용합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에서 20년 이상 사이버 전문가로 활동했던 사람이 딜리트 키를 눌러 삭제했다면, 국정원이 얼마나 무능한 곳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국정원의 허술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사인에 따르면 국정원과 이탈리아 해킹팀과의 계약서에 찍힌 도장은 두 개였습니다. 첫 번째 계약서에는 ‘5163부대장인’이라는 빨간색 한글 직인이었고, 두 번째는 ‘The 5163 Army Div. The Goverment of ROK’라는 영문 직인입니다.

시사인은 L사 근처 도장집을 수소문한 결과, 바뀐 계약서에 사용됐던 영문 직인을 1만2천 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7 너무나 허술한 국정원의 보안 절차였습니다.

왜 계약서의 직인이 바뀌었을까요? 공식적인 국정원의 계약이 아닌 개인적 일탈로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국정원은 연구용이나 대북용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국내용 자료가 나오면 ‘이 부분은 죽은 임씨가 단독으로 구입했다’고 발뺌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동네 도장집에서 1만2천원짜리 ‘The 5163 Army Div. The Goverment of ROK’ 직인을 구입해서 사용한다면 국정원 사칭이 될까요?

국정원 직원 임씨가 자살하자, 국정원 직원들은 ‘동료를 보내며’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합니다.8 정보기관이 직원이 죽자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일은 세계 어떤 정보기관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동료직원의 죽음에 안타까워 자신들의 입장을 냈다고 봤지만, 이 공동성명서는 국정원장의 결재까지 받은 공식 문서입니다.9 이병호 국정원장이 결재까지 한 국정원 직원들의 공동성명서, 문제는 없을까요?

공무원법 제66조에는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집단 행위의 금지’ 조항이 있습니다.10 전교조도 이 조항에 걸려 있습니다.
 
국정원도 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국가정보원직원법 제7장을 보면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 징계를 받게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11 국정원 직원들이 공무원법을 위반했으니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결재한 국정원 공동성명서는 ‘국가정보원법’ 제 9조 정치관여 금지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정원법에는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직원들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12
 
안상운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법원 판례 (대법원 2012. 4. 19. 선고 2010도6388 전원합의체 판결)를 통해 명백한 법률 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도 “성명 내용도 단순하게 애도의 표시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야당에 대한 공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정치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명백한 정치개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임씨가 탔던 자동차가 영화 속 첩보원처럼 번호판이 자동으로 바뀌었다면 오히려 국민은 국정원의 능력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전혀 아닙니다.
 
국정원 직원 임씨의 죽음을 조사한 경찰은 1999년식인지 2005년식인지 차량의 정체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국정원 임씨의 부인이 스스로 119위치 추적을 했는지, 국정원의 지시대로 ‘부부 싸움’을 했다고 허위로 신고했는지조차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있는 자료 삭제를 키보드에 있는 딜리트 키로 하는 20년 경력의 사이버전문가 국정원 직원, 공무원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하는 문서에 떳떳하게 결재까지 했던 국정원장, 도대체 국정원은 할 줄 아는 것은 ‘종북 척결’과 ‘대북 정보’ 때문이라는 북한 타령밖에는 없나요?

경찰과 국정원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주장과 해명이 논리도 맞지 않고, 비상식적이기 때문입니다.


1. 변사자 차량 진위 논란 관련 경찰 입장. 경기지방경찰청. 2015년 7월 23일.
http://www.ggpolice.go.kr/main/bbsview.do 
2. 국정원 과장, 7월 초 10년된 마티즈 구입 왜? 세계일보 2015년 7월 20일.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7/20/20150720004400.html 
3. 리지 않는 의혹…마티즈 구입, '핵심인물' 출국.MBN 2015년 7월 21일.
https://www.youtube.com/watch?v=7jo6BFTt0SY 
4. 디가우저 장비는 자기장을 쏴서 하드 디스크 자체를 무용화시키는 장비입니다. 하드 디스크에 입력되는 데이터 역시 보자력이라는 형태로 입력되는데,이 보다 높은 수치의 자기력으로 데이터를 삭제시킵니다. http://impeter.tistory.com/1296 
5. "자살 국정원 직원, 'Delete'키로 자료지워…복구 용이" 2015년 7월 23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23/0200000000AKR20150723096900001.HTML?from=search 
6. 컴퓨터를 초기화하는 작업 
7. 해킹팀 계약서에 찍힌 국정원 도장의 비밀. 시사인. 2015년 7월 23일.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959 
8. 국정원 2015년 7월 20일. 
http://www.nis.go.kr/jsp/board/notice.do?method=view&content_number=201528&cmid=11510 
9. 국정원 집단 성명, 원장이 직접 결재 논란. MBN 2015년 7월 21일.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2457702 
10. 국가공무원법http://www.law.go.kr/%EB%B2%95%EB%A0%B9/%EA%B5%AD%EA%B0%80%EA%B3%B5%EB%AC%B4%EC%9B%90%EB%B2%95 
11. 국가정보원직원법 http://www.nis.go.kr/svc/introduction.do?method=content&cmid=11789 
12. 국가정보원법 http://www.nis.go.kr/svc/introduction.do?method=content&cmid=11786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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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발등 찍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내전

자기 발등 찍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내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7/24 [08: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초기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민병대 활동 지역     © 자주시보
▲ 민스크휴전협정 당시 확대된 민병대 장악지역     © 자주시보


 

민병대의 군사적 승리

 

우크라이나 내전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쟁 중에서 미국의 몰락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전쟁이다.
일단 미국과 친미서방진영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올 2월 민스크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동부지역 민병대에게 줄줄이 패배하여 돈바스 지역이 친러민병대 진영으로 넘어가버렸다. 처음에 루한스크, 도네츠크 일부지역에서 민병대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는데 지금은 루한스크, 도네츠크, 마리우폴이 모두 친러민병대 구역으로 들어갔으며 민스크협정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크림반도는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러시아군대에 점령당해 주민투표에서 러시아로 합병이 결정되어 버렸다. 물론 친미진영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현 포로셴코 대통령은 동부 돈바스 지역은 물론 크림반도도 반드시 되찾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특히 최근 프랑스의 일부 의원들이 친미서방진영의 언론보도와 발표가 크림주민들의 의사를 객관적으로 대변하고 있지 않다며 크림반도를 직접 방문하여 주민들이 민주적 투표로 러시아 합병을 결정했는지 직접 알아보겠다고 발표했다. 합법적으로 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오히려 러시아 흑해함대의 전략적 요충지 크림반도가 완전히 러시아 땅이 되어버렸으며 탄광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공업이 발전한 우크라이나 동부마저 친서방진영에서 영영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다.


민스크협정이 파기되어 다시 교전이 발생한다면 이런 민병대 관할 지역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군사력에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민병대를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토가 직접 전쟁에 개입한다면 러시아도 전면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러시아가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면 러시아가 제공권을 이미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내전 발발 초기였던 2014년 4월 미 도널드 쿡 이지스함의 레이더를 수호이-24전폭기가 완벽하게 무력화시켜버림으로써 증명되었다. 나토의 지상군 파병까지 운운하던 미국이 이 사건으로 우크라이나 내전에 전면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고 결과는 친미 정부군의 참패였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2462

 

▲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로 고문학대 등 만행을 고발하는 보도들     © 자주시보

 

 

민병대의 도덕적 승리

 

우크라이나 내전은 이런 미국의 군사적 패배만이 아니라 정치도덕적 측면에서 참패한 전쟁이다.

6월 23일 스푸트닉 보도에 따르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BBC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2월의 혁명에 대해 언급했는데 “시위대에 무력 사용을 명령한 적이 없으며 단호히 이에 반대했다”고 밝히면서 “마이단 광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주요한 책임은 급진주의자들에게 있다”고 했다.
 
급진주의자들이 획책한 음모에 자신이 걸려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는 이 급진주의자들은 미국 등 외세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하려 했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급진주의자들은 노골적으로 신나치를 자처하는 호전세력들이다. 이런 세력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포로고문과 학대, 주민지대에 대한 무차별 살육폭격 등을 자행하여 국제 엠네스티에서까지 정부군 만행 조사단을 파견하여 그 야수적인 고문과 악행을 폭로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요직인사나 정부군 간부들이 줄줄이 민병대 편으로 넘어서고 있다. 올레그 체르노우소프 루간스크 전 관세청장과 파리 주재 우크라이나 해외첩보부 요원이었던 알렉세이, 유리 미로시니첸코 두 형제가 우크라이나 현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루간스크 쪽으로 이미 전에 돌아섰다.

최근엔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이자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보좌관을 역임한 알렉산드르 콜로미예츠가 도네츠크 민병대 편으로 가족을 데리고 넘어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정부군 수준이 매우 하위 수준”이라며 많은 사령관들과 장교들이 도덕적 견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정부군 군사작전이 범죄행위라고 인식하고 있기에 전투를 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기에 앞으로 우크라이나 군사들이 돈바스로 출애굽이 시작될 거라 선포했다.(6월 22일 스푸트닉 보도)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politics/20150622/343752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이렇게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보니 우크라이나 수백만 청년들이 군대징집을 피해 러시아로 대거 넘어가버리고 있다. 러시아는 당연이 이들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정부군은 군인이 부족해 광고를 만들어 뿌리는 등 별 별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지만 겨우 겨우 모은 청년들마저 여성들이 징집 장소에 나타나 온몸으로 군대로 끌고 가는 것을 막아나서는 시위를 벌이고 있어 정부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범죄자 등도 마구 군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형편이며 정부군의 잔악행위는 더욱 우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전만 봐도 이렇게 도덕적으로 타락한 군대에는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져다주어도 백전백패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곳이다. 그런 주민들이 악행을 일삼는 테러단과 다를 것이 없는 정부군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군대는 결코 승리하지 못하는 법이다.

▲ 민병대 대둰들이 격추시킨 우크라이나 정부군 수호이-25전폭키 잔해를 끌고 다니며 조롱하고 있는 모습     © 자주시보

 

 

전망

 

우크라이나 정부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전쟁은 결국 힘의 대결이다. 그런데 군사력에 있어서 친미정부군이 명백히 밀리고 있다.

거기다가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가장 중요한 제공권마저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급히 만들어진 민병대는 공군이 없다. 하지만 대공 미사일 등이 많이 공급되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크라이나 군의 핵심 공격기 중 하나인 수호이 전투기가 줄줄이 격추되고 장성이 타고 있던 헬기까지 떨어지는 등 심각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어만 입력시켜 봐도 아래와 같은 우크라이나 정부군 공군 피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14년 5월 2일 헬기 3대 격추
14년 5월 5일 헬기 1대 격추
14년 5월 29일 헬기 격추, 장성 1명을 포함 14명 사망
14년 6월 24일 헬기 격추 9명 사망

14년 6월 14일 수송기 격추 49명 전원 사망
14년 7월 17일 수호이-25 전폭기 격추
14년 7월 23일 수호이 전투기 2대 격추

 

이는 검색으로 확인된 것일 뿐이고 실제 이 외에서도 더 많은 전투기와 헬기들이 떨어졌다는 보도가 이어졌었다. 특히 민스크 휴전협정 이후에도 전투기가 떨어졌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표와 이를 부인하는 반군 입장이 종종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정부군 제공권은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시리아 내전에서는 시리아 공군이 보유한 헬기와 수호이전투기들이 맹 활략을 하면서 친미반군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계속 가하고 있는데 친미반군진영이 이를 거의 격추시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2688

 

이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 시리아 등 반미자주진영은 미국과 서방진영의 레이더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는 재밍무기를 구축하고 있음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미국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상대 목표를 초토화시킨 후에 지상군을 보내 점령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이라크전쟁에서도 이라크 레이더기지부터 모조리 무력화시킨 후 순항미사일을 총동원하여 주요 거점을 초토화한 상태에서 기갑부대를 앞세운 육군을 보내 점령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역으로 제공권을 상실한 것이다. 현재 미국은 예멘, 시리아, 이란, 러시아 그리고 북과의 대결전에서만 유독 대포병레이더이건 패트리어트레이더이건, 이지스함레이더이건 모조리 먹통이 되고 있다.

 

미국은 민스크협정이 맺어지자 마자 바로 우크라이나에 300명의 공수부대 훈련 교관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에 대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캐나다도 200명, 영국도 수십명의 교관을 파견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도 나름 대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최근 신형 대포병레이더를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제공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2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제공하려는 레이더의 기종은 최신형 AN/TPQ-36, 37 파이어파인더 레이더로, 약 24~50km 거리의 적의 포탄 궤도를 추적해 포대의 위치를 탐지해내는 대포병레이더라고 한다. 새로운 주파수와 시스템이 반군에 의해 무력화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미국에서 수입한 대포병레이더 아서는 완전히 먹통이 되어 북의 포탄을 전혀 탐지해내지 못한 바 있다. 군 전문가들은 당시 주민들 모든 휴대폰까지 다 먹통이 된 점을 들어 북의 재밍공격에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전에서 레이더가 무력화된다는 것은 원시시대 무기로 상대의 첨단무기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내전이 미국의 의도와 달리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참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이 직접 전투병 파병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우크라이나 내전을 일으켜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분리시켜 러시아가 유럽으로 나오는 길목을 완전히 틀어쥐려던 미국과 친미서방진영이 오히려 크림의 러시아 합병 등 러시아 영토만 늘려주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함께 자신들마저 극심한 위기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 북경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당시 푸틴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서 조지아의 공격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이젠 전쟁이다."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부시 전 미대통령의 표정, 실제 러시아는 전면적으로 군대를 투입하여 순식간에 조지아를 점령해버렸는데 미국은 거의 손도 쓰지 못했다. 설마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우를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은 다시 반복하고 있다.

조지아 즉, 그루지야에서 친미정부가 미국의 부추김을 받고 남오세티아를 공격했다가 러시아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아 완전히 점령당한 후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았던 험비차량 등 군사장비를 모조리 빼앗껴불태워졌던 그 악몽이 다시 우크라이나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때 이미 미국은 유럽에서 이빨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종이호랑이 신세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동부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것을 위해 지금 미국은 훈련 교관을 파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에 군사비를 지원하고 IMF는 차관제공 등 경제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포로셴코 대통령도 틈만 나면 반드시 동부와 크림을 탈환하겠다며 무기 공장을 만가동하고 있다.


러시아와 민병대는 민스크휴전협정의 조속한 이행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전쟁준비에 열심이다. 산발적인 교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설령 내전이 재개되지 않더라도 포로셴코 대통령은 오래 집권할 것 같지 못하다. 극심한 경제난과 전쟁 넌덜머리에 국민들의 비난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계엄령법을 만들어 국민들의 시위가 일어날 경우 제압하려는 법적 준비를 해두고는 있지만 그래도 미국은 불안한 모양이다. 그래서 새로운 극우 정치세력이 급부상 중이다.
포로셴코 보다 더 극단적인 우익 테러단에서 노골적인 쿠데타 의사까지 표명하고 있으며 일부에서 무장폭동을 일으키고 있고 이를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반대하지만 총리는 지지하는 입장까지 취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정부 감정 폭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을 다시 일으켜 민심을 그쪽으로 쏠리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내전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부군은 더 처참한 패배를 당할 것이며 친러 입장을 지닌 주민들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체 즉, 우크라이나의 1/3이 분리독립을 선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후에도 친미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유럽연합의 경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현재 우크라이나를 잘 살게 해 줄 어떤 방법도 없다. 차라리 동부 우크라이나와 크림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러시아와 경제교류를 통해 급격히 경제를 안정시켜갈 가능성이 높다. 또 공업지대인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이 사실상 우크라이나 경제의 핵심 거점이다. 거기다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을 받지 못하면 거의 나라가 마비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우크라이나도 다시 동부와 재통합을 추진하여 자주적인 나라로 거듭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날이 와도 크림은 영영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키르기스스탄에서 미국에게 빌려준 마나스 공군기지, 아프간 물자 핵심 보급 기지였는데 최근 키르기스스탄이 친러시아로 돌아서면이 이 공군기지 미군 임대를 중단시켜버렸다. 미군은 중동과 중국을 압박할 거점을 잃어버렸다. 치명적이다.     © 자주시보



교훈과 우리의 과제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와 석유가격 급락으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였지만 이를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 비자원 생산품 수출을 급증시켜 경제구조를 다양화하는데 성공해가고 있다. 자원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이번 기회에 뜯어고쳐 훨씬 더 탄탄한 구조로 거듭나겠다는 푸틴의 전략이다. 푸틴은 대러경제제재로 오히려 러시아로 수출이 막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유럽이 언제 제재를 해제할지 모르니 경제구조를 다양화하는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내심 좀 더 제재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실제 러시아 철강제품은 중국산보다 더 싼 가격으로 세계 시장을 무섭게 점령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고 있고 유럽과 미국 우리 한국의 포스코도 저렴한 러시아 철강 때문에 지금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과거 소련에서 분리해나갔던 주변국들도 러시아가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경제연합에 속속 가입하고 있다. 
21일 키르기스스탄은 미국과의 동맹협약을 완전히 폐기하고 유라시아경제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아프간전쟁을 치르는 미군의 전략물자 수송 거인이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군기지에 대해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지난해 임대 종료를 선포해버렸다. 이 마나스 공군기지는 미국이 중동 전쟁을 치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전략기지이면서 동시에 중국을 압박하는 핵심 교두보였다. 미국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되는 것이 없는 미국이다.

 

타지키스탄도 유라시아경제연합 가입을 추진 중이다. 거기다가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가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합의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투자도 급증시키고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자금이 러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루블화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대러제재만 종료되는 순간 가만히 앉아서 큰 돈을 벌게 될 것이 자명한데 누군들 러시아 투자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래 저래 러시아 경제는 지금 활황이고 푸틴의 인기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최근 크림반도의 신공항 설계도 입찰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선택되었다. 아무래도 러시아가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푸틴은 경제적으로 한국이 러시아와 깊이 관계를 맺게 되면 결국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점점 떼어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적으로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한국이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일이다. 이렇듯 갈수록 미국의 힘이 약화되어가면서 그 동맹국들도 점점 미국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며 미국은 스스로 판 무덤에 빠져 지금 허우적거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계속 친미예속에만 매달릴 것인지 지혜로운 등거리 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할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자주적인 입장만 확고히 세우고 전 국민이 지혜를 모은다면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부강번영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계속 미국 바짓가랑이만 붙들고 있다가는 위기에 빠진 미국의 지푸라기 신세로 전락하여 먼저 심연 속으로 빠져들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미국은 철저한 실용주의 나라이다. 자신이 키우던 친미국을 제물로 삼았던 일이 비일비재하다. 죽은 후세인도 한 때는 친미인사였고 리비아 카다피도 친미로 돌아섰다가 결국 희생양이 되어 죽었다.

 

이젠 바야흐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붕괴하고 자주의 시대, 다극화시대가 찬란한 개화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기에 자주적 입장을 세우고 지혜롭게 외교를 펴간다면 무한한 기회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만 개선하게 되면 세계 최대의 바다 태평양과 세계 최대의 대륙 유라시아를 잇는 교두보를 우리가 틀어쥐고서 주변국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된다. 
단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분단된 상태에서는 영원히 남쪽은 섬 아닌 섬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볼 교훈이 있다. 우크라이나 극우 정치인들처럼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강대국 외세를 끌어들이는 순간 우크라이나처럼 동족상잔의 내전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고 나라가 엉망이 된다는 이치이다.
물론 그들도 강대국의 사냥개로 이용당하다가 결국 토사구팽 신세를 면치 못한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그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총리가 벌서 포로셴코에게 대들고 있지 않는가.

 

미국은 세계 반제진영의 축을 북으로 보고 현재 북을 어떻게든지 제압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한반도 주변에 집중시키고 있다. 전쟁으로 북을 제압하기 위한 마지막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일본을 재무장시키고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맹을 강화시켜 북과의 전쟁 돌격대로 앞세우려고 하나하나 추진해가고 있다.


여기서 한국이 미국에 동조하게 된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친미정부는 포로셴코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이 땅은 우크라이나처럼 전쟁 포화로 잿더미가 될 것이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남북관계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미국에 의존하려고 하지 말고 자주적으로 판단해서 북과 대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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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딸 얼굴, 십자수 10만땀으로 새기다

 

[인터뷰] 세월호 유가족 김종근씨 "진척없는 진상규명, 울화통 터지죠"

15.07.23 21:20l최종 업데이트 15.07.23 21:20l

 

 

수정이가 떠난 방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내 온 편지와 선물들로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 수정이 아빠가 직접 수 놓은 십자수 액자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 이희훈
"수정이가 그렇게 가고 나서 매일 집 옥상에 올라가서 울었어요. 그래도 계속 생각이 나서 알아본 게 십자수였습니다. 날마다 사진 속 얼굴을 보고 한땀 한땀 뜨면서 무언의 대화를 하는 거죠."

초점 잃은 시선이 잠시 허공 위로 떠올랐다. 딸의 모습을 기억하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딸 바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고(故) 김수정 학생의 아버지 김종근씨다. 

김씨는 세월호 유가족 사이에서 '십자수 아빠'로 유명하다. 딸 사진을 모델삼아서 실물 크기에 가깝게 만든 대형 십자수 때문이다. 그는 지난 11개월 동안 서툰 손으로 하루에 9시간 넘게 딸 얼굴에 매달렸다.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살려고 했다'고 답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데다 울화까지 겹쳤다. 금방 될 줄로 알았던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이 유족들의 뜻과는 달리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그러지는 것을 지켜보자니 견디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고 진상규명을 쫓느라 1년 정도는 직업을 갖지 못하고 지냈다. 그동안 그가 국가에서 받은 거라곤 몇백만 원 정도의 생활지원금과 안산시에서 면제해준 연 4만 원 정도의 수도세 뿐이다. 사정을 모르는 지인들은 '돈 많이 받아 좋겠다'는 인사를 건넨다. 서러움이 짙어질수록 딸이 더 보고 싶어졌다. 김씨에게 십자수는 현실을 잊고 딸과 마주할 수 있는 해방구였다. 
수정이가 수학여행을 떠난 날짜를 아직 지우지 못하고있습니다. "18일 날 옴"이라고 적어 놓은 게시판을 보며 수정이 엄마는 또 눈물을 흘립니다.ⓒ 이희훈
수정이 세 자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 이희훈
지난 11일 찾은 그의 집 곳곳엔 수정양의 흔적이 가득했다. 주인 없는 방에서는 갓 삶아낸 감자 냄새가 났다. 고인이 가장 즐겨먹던 간식이다. 가족 알림판으로 사용하던 화이트 보드는 1년 넘게 쓰지를 못하고 있다. 수정양의 수학여행 일정을 표시해둔 '18일에 돌아옴'이라는 글씨를 지울 수가 없어서다. 

장례를 치른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매일같이 딸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았던 김씨 부부지만 딸의 죽음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김씨는 "지금도 딸이 올 것 같은 생각에 밤이 늦어도 현관문을 잠그지 못하겠다"라고 털어놨다. 노트북을 편 기자에게 삶은 감자가 담긴 접시를 밀어내며 권하는 김씨의 손가락엔 '수정'이라고 새겨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딸 얼굴 너무 보고 싶어... 하루 9시간 십자수 떴죠"
수정이의 생전 사진으로 만들어진 십자수 도안과 십자수 도구들.ⓒ 이희훈
딸들의 이름이 적힌 반지를 끼고 있는 수정이 아빠 김종근씨.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은 투박한 손이다. 수정이 엄마는 "나보다 더 섬세하고 바느질도 잘해요"라고 말했다.ⓒ 이희훈
- 십자수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작년에 국회에서 농성할 때 유가족 엄마들 중 몇 명이 십자수를 했어요. 아이 얼굴로 베개를 만든다고 하는데 괜찮아 보이더라고. 그런데 아빠가 그걸 들고다니기는 좀 그렇잖아요. 근데 딸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집에서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시작했죠."

- 처음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큰 걸 만들었나요?
"아. 패턴을 만들어주는 업체가 있어요. 거기 사진을 갖다주면 실이랑 패턴을 갖다 줍니다. 그러면 색깔 실을 바꿔가면서 칸에다 뜨는 거죠."

- 칸이 상당히 작은데. 
"이거 할려고 안경을 새로 맞췄어요.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시력이 갑자기 나빠져서. 가끔은 운전하는데 물체가 두 개로 보였어요. 치료받고 나서 지금은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 얼마나 걸렸나요.
"두 개 만들었는데 큰 거는 7개월 정도 걸렸어요. 11장의 패턴을 채워야 하는데 패턴 1장에 7000칸이니까 총 바느질은 7만7000땀 정도 되지요. 작은 거는 땀 수가 4만 땀 정도로 적고 패턴도 조금 쉬운 편이라 4개월 정도 걸렸어요."

- 딸 얼굴 한참 봤겠어요.(웃음)
"그렇죠. 처음 할 때는 3일 밤을 샜으니까.(웃음) 보통 십자수를 뜰 때는 테두리부터 잡아요. 그런데 저는 얼굴부터 시작했어요. 빨리 보고 싶어서. 눈, 코, 입 먼저 해놓고 주변을 채워갔죠. 이거 하느라 사람들도 거의 못 만났어요. 하루 평균 9시간은 떴으니까."

- 다른 생활은 안 하셨어요?
"제가 사고 이후 1년 동안은 일을 못했어요. 진상규명 때문에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또 일도 손에 안 잡히잖아요. 그런데 되는 일은 없고…. 그럼 딸이 보고 싶어지니까 집에 와서 이걸 하는 거죠. 양반다리 하고 한 2~3시간 뜨다가 다리 저리면 옥상 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다시 뜨고…. 그런 식이었어요."

"치적은 그렇게 밝히려고 하면서 세월호 진상은 감추려고만 해"
수정이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서 아빠는 눈물 흘리는 엄마를 토닥여줍니다.ⓒ 이희훈
엄마는 딸의 유골함과 사진을 들여다보고 울기를 반복합니다.ⓒ 이희훈
- 왜 이 작업에 매달린건가요?  
"너무 답답한거죠. 유가족들은 다들 그래요. 1년이 지나도록 뭔가 진전되는 게 없잖아요. 아마 세월호 사고가 빨리 마무리가 됐다면 저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딸 얼굴 뜨는 데 몰두하지는 못했을 거에요. 제가 너무 힘드니까 살려고 한 거죠.."

- 어떤 점이 답답한가요.
"TV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요. 방송 같은 곳에서 유가족들이 받는 억대 보상비만 강조하면서 보도하니까 친했던 사람들까지도 우리가 떼돈이라도 번 줄 알아요. 국가에서 주는 긴급 생활지원금 말고는 10원 한 장 받아본 적이 없는데. 돈은 나중이고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도 여러 번 밝혔는데도 그래요."

- 유족들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1순위라는 입장이죠.
"억울하게 숨진 내 새끼가 왜 그렇게 죽었는지부터 밝혀달라는 게 우리 요구예요. 아니 그게 그렇게 어렵나. 대통령이 어디 가서 뭐 했네 이런 건 크게 나오잖아요. 자기들 치적은 그렇게 밝히면서 이건 왜 그렇게 감추려고 드는지 이해가 안 가요."

- 유가족들은 정부가 어떤 걸 감추려고 한다고 생각하나요.
"얼마 전에 저희가 세월호 수중 촬영을 하려고 팽목항에 갔는데 해양수산부에서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떳떳하다면 수중 촬영 막을 이유가 없잖아요. 기사 보니까 '88수중'이라는 업체는 두 달 전에 가서 세월호 촬영을 했대요. 그때는 왜 안 막고 유가족들이 뭐만 하면 막느냐는 거죠. 세월호 인양도 마찬가지예요."

- 1년 전에 '인양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놓고도 정부가 뒤늦게 발표한 게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정부는 '뭉개기'만 하는 것 같아요. 시간만 지연시키려고 하고. 인양한다고 했으면 빨리 작업을 해야죠. 지금 시기가 딱 좋은데 왜 또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지…. 하여튼 그런 거 보고 있으면 또 십자수 뜨고 싶어져요. 딸 얼굴 보는 게 제일 마음 편해요. 이제 가장 큰 사진이 남았는데 그것도 조만간 시작하려고 해요."

- 딸이 사진을 많이 찍어놔서 불행 중 다행이네요.(웃음)
"아니에요. 수정이는 사진 찍는 건 좋아했는데 찍히는 건 싫어했거든요.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거의 없어요. 다 친구들이 몰래 찍거나 해서 갖고 있다가 사고 후에 저희한테 건네준 사진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즘 '정면으로 사진 찍는 것도 효도'라고 얘기를 해요.(웃음)"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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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콧수염 단 메르켈' 나타난 까닭?

 
[주간 프레시안 뷰] 그리스 위기의 정치경제학
 
 
그리스는 어디로?

열흘 전,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는 "무조건 항복"이라고 할 만한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거기엔 그리스 자산의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지출 삭감 등등 전통적인 IMF '구조개혁' 프로그램이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제정된 법은 되돌릴 수 없고, 새로운 정책은 IMF나 채권단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공공연하게 주권을 훼손하는 조항도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 국민투표의 결과인 "오히(No)"를 배반한 겁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더 이상의 긴축정책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아도 합리적인, 어쩌면 유일한 해법을 지지한 겁니다. 더 강한 긴축은 그리스의 총수요를 줄여서 그리스 경제를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뜨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이후의 여론조사를 보면 70%의 응답자는 동시에 유로존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긴축을 완화하면서 유로존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이 둘을 양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채무재조정, 즉 부채 탕감입니다. 아르헨티나 사태 때처럼 어떤 금융기법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본질은 상당 액수의 빚을 깎아 주는 겁니다. 그래야 그리스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동시에 빚을 갚을 가능성도 생깁니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무릎을 꿇었고, 국내외의 보수 언론은 메르켈 독일 총리의 결단을 예찬하기 바빴습니다. 우리 보수언론들은 고집 센 여성 총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영국 대처 총리에 대한 열광 또한 그랬으니까요. 

이 항복문서를 집행할 국내 개혁입법안도 그리스 의회를 무난히 통과했습니다. 집권 정당인 시리자의 일부 의원과 극우 황금새벽당이 반대했습니다만, 과거의 여당인 '중도좌파' 정당들이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치프라스 총리의 지지율은 60%를 넘어 야당 정치가들의 인기를 10% 포인트 가량 앞서고 있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자존심을 적당히 회복하고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라는 엄청난 모험을 피한 데 대해 안도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치프라스 총리는 정권의 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한 거죠(이제 위기를 불러온 그리스 지배계급에 대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대반전이 벌어진 걸까요? 우선 우리 언론들의 상찬하는 바대로 독일의 옹고집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선 구조개혁, 후 채무협상"입니다. 치프라스의 항복 선언 이전에 이뤄진 바루파키스 전 재무부 장관의 인터뷰는 그 동안의 협상에서 독일, 또는 채권단(유로그룹)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바로 가기)

한 마디로 바루파키스는 협상장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어떤 논리를 내세워도 그들의 답은 포괄적인 '구조 개혁안'에 먼저 서명하라는 거였죠. 몇 가지 합의할 수 있는 개혁안(세금 등)을 먼저 시행하면서 나머지를 논의하자는 제안도 물론 통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이 협상 게임은 기묘한 모습이었습니다. 양쪽 다 그렉시트로 상대를 위협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리스 쪽에선 금융시스템이 이미 마비된 상태였고 독일 쪽에선 '게으른 베짱이의 응징'이 국내에서 가장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이런 불균형을 깨려면 그리스의 "그렉시트" 위협이 믿을 만하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이 게임이 치킨게임이라는 걸 기억하시나요?). 하지만 인터뷰를 보면 바루파키스 측근의 4,5명이 대책을 논의했을 뿐, 정부 차원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루파키스는 이후 치프라스의 항복 문서를 "제2의 베르사이유 협약"이라고 맹공했습니다만, 인터뷰를 할 때 이미 이런 결과를 예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미련 없이 사임했었던 건지도 모르죠. 

유럽의 꿈은 어디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지한 "유로존 잔류와 부채 탕감"이라는 해법은 물 건너갔습니다. 독일의 결정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 또는 전략적인 것이었습니다. 메르켈보다 더 완고한 것으로 알려진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통독 당시 서독 측 협상대표였다고 합니다. 쇼이블레는 협상 조건이 가혹할수록 동독 지역의 수많은 자산을 헐값으로 인수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체험한 사람입니다. 또 바늘 끝 같은 틈도 없이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전략은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나아가서 바루파키스는 그리스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대표들이 가장 적대적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스가 유리한 협정을 이끌어 낸다면 이들 나라의 현재 집권세력은 바로 실각할 테니까요. 독일 쪽에선 스페인의 포데모스당이 제2의 시리자가 되고, 연이어 '남쪽'에서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는 게 가장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아주 엉뚱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지난 30년 간 이른바 "IMF 조건"(IMF Conditionality,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조건)을 강요해서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줄푸세')를 전파해온 IMF가 현재의 협상안에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IMF는 채권단이 1) 상당한 규모의 부채탕감, 2) 30년의 지불유예, 3) 매년의 보조금 등 세 가지 중 택일하지 않으면 구제금융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이들 세 수단의 조합도 가능하겠죠. 

치프라스 총리는 막판 협상에서 IMF가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오히려 IMF가 그리스 국민의 편이 된 겁니다. 현재 160억 유로를 떠안고 있는 IMF가 철수한다면 최대 860억유로의 구제금융도 물 건너 가게 되니까 이건 분명 '신뢰할 만한 위협'입니다. 

어쨌든 IMF 변수가 어떻게 처리되는가가 남았을 뿐, 현재 그리스의 사태는 독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완벽한 승리는 앞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힘을 만끽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불안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자 슈피겔은 나치의 친위대와 메르켈 총리가 함께 서 있는 합성사진을 표지에 올렸습니다. 블로메, 뵐, 쿤츠 등 8명이 함께 쓴 이 장문의 기사 제목은 "제4제정(The Fourth Reich)"입니다. 메르켈의 독일은 신성로마제국, 비스마르크의 제2제정, 히틀러의 제3제정에 이은 제4제정이라는 거죠. 
(☞바로 가기)

총과 대포가 아니라 유로를 앞세운 독일은 사실상 유럽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독일은 자신의 규율(긴축)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군기반장(discipliner)"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한 나라의 주권을 여지없이 짓밟는 것이었고 그리스 국민이 겪은 모욕감은 아주 오랫동안 상처로 남을 겁니다. 그리스나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데모에는 '히틀러의 콧수염을 단 메르켈'이 꼭 등장합니다. '남쪽'의 시민들은 현재 독일의 태도에서 나치를 연상하고 있습니다. 치프라스가 만일 그리스의 빚을 제대로 받으려 한다면 2차대전 때의 배상부터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문제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유럽을 지배하려 하지만(dominate), 이끌려 하지는(lead)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독일을 "절반 헤게모니(semi-hegemon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히 유로존 위기와 관련해서 이 태도는, 독일 특유의 "질서자유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경험에서 나온 중앙은행의 독립성, 알뜰살뜰 아껴서 위기를 극복한 경험(긴축)이라는 독일의 규범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동시에, 유로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남쪽의 빚을 나눠서 부담하지는 않으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의 통합을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하버마스에게 현재의 위기와 독일의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울 겁니다. 그는 메르켈이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해서 경제적 폐해를 끼칠 뿐 아니라(이 노학자는 '독극물'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유럽통합의 대의인 연대를 해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바로 가기)

그리스에 관한 첫 편지에서 말씀 드렸듯이, 생산성 격차가 나는 나라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구조적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는 환율메커니즘이 없는 상태에선 적자국의 임금과 물가가 내려가야 합니다. 적자국에게 재정보조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사전에 "안정성장협약(stability-growth pact)"을 맺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유로 출범 후 10년 동안 금융은 이 불균형을 메우고 또 은폐했습니다(골드만삭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라이시 교수의 글(☞바로 가기)을 참조하십시오.)

케인스가 브레튼우즈 협상에서 제안했던 "청산동맹"(경상적자국 뿐 아니라 흑자국에도 벌금을 물리는 제도)은 유럽의 이런 불균형뿐 아니라 글로벌 불균형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청산동맹"의 다양한 변형이 해결책으로 각광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불균형은 심해질 것이고 아름다운 유럽의 꿈은 신기루로 판명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스트렉(Streeck, Wolfgang)은 하버마스를 '경제문맹'이라고 비판했죠.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진정으로 필요한 건 유럽시민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연대와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긴축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시켰습니다. 이런 태도를 지닌 리더가 과연 존경을 받을까요?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이, 100년이 넘은 유럽의 꿈(1905년에 레닌도 "유럽합중국에 대하여"라는 칼럼을 썼으니까요)은 백일몽이 되는 중입니다. 
 

▲ 지난 2010년 한국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당시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연합뉴스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

요즘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한 주 동안 일어난 주요 경제 사건의 맥을 짚는다는 '주간 프레시안 뷰'의 기획 의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금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이번 주에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자세히 해설할 여력이 없으니까요. 
(☞바로 가기)

우리의 가계부채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태, 특히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고소득층의 부채가 많아서 괜찮다고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거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이들이 제일 위험해진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데 혈안이 된 정부의 정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죠. 

그래서 정부는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지속되면서도 가계부채는 늘어나지 않고, 동시에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경우에 대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첫째, "처음부터 나누어 갚아나가는 방식"(분할상환)으로 대출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가계의 대출 증가 속도를 줄이는 겁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갚아야 할 돈이 꽤 크다면 돈을 능력 이상으로 빌리지는 못할 테니까요. 둘째, "상환능력 심사방식을 선진국형으로 개선"해서 금융기관의 대출을 줄이고 셋째, "제2금융권의 비주택 대출이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 강화"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넷째로는 "관계기관 합동으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즉 돈을 빌리는 가계, 빌려주는 금융기관, 그리고 감독기관 3자가 모두 자제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만시지탄이라고 할까요? 이들 정책의 방향은 옳습니다. 하지만 "빚 내서 집 사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며 한껏 빚을 늘려 놓고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부동산경기를 살리면서 동시에 가계부채도 관리한다는 모순된 목표를 추구하느라 우왕좌왕하는 중입니다. 

물론 무소불위, 박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경제성장입니다. 괜찮다면 빚을 내도록 방치하고, 구조개혁 없이는 성장도 있을 수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4대 개혁을 촉구하는 모습은 어딘가 콧수염 단 메르켈을 닮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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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 전통이라는 이름의 학대

 
게시됨: 업데이트됨: 
SAN FERMIN

 

 

 

 

 

 

 

 

 

 

 

 

 

 

지난 7월 14일, 스페인 북부 나바라 (Navarra) 주의 주도(州都)인 팜플로나(Pamplona)시에서는 9일 간 열린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가 막을 내렸다. 이 축제에서 열리는 '소몰이' 행사는 전세계에서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있는 반면, 국제적인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스페인어로 '엔씨에로(Encierro)'라고 하는 소몰이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에도 등장한다.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아침 8시 그날 오후에 투우에 쓸 소 여섯 마리를 거리에 풀어 질주하게 만드는데, 이 소들 사이에서 흰 옷에 빨간 천을 두른 수천 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함께 달리는 행사다.

단순히 '소와 함께 달리는' 행사라면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가 있다. 소에게 정신적인 혼란을 주기 위해 그 전날부터 암흑 속에 가둬 두는데,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소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앞도 안 보이는 데다 수많은 군중에 휩싸여 좁은 길을 달리면서 소가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러지거나 벽에 부딪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소를 모는 과정에서 술에 취한 군중들이 소를 발로 차거나 신문지를 만 것 등으로 때리며 자신의 용감함을 과시하는 것도 놀이의 일부분이다.

군중들 중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하기는 매한가지다. 1924년부터 총 15명이 산페르민 축제에서 목숨을 잃었다. 올해에는 사망자는 없지만 열 다섯 명이 뿔에 찔려 부상을 당했다. 올해 7월 스페인 동부 알리칸테(Alicante)의 작은 도시의 축제에서는 44살의 프랑스 관광객이 소 뿔에 찔려 숨졌다.

술에 취한 인파들로 인한 사고도 잦다. 영국 가디언지(The Guardian)에 따르면 특히 올해에는 한 여성이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동물보호단체뿐 아니라 여성단체들에게도 원성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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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민 축제의 소몰이 장면. 소와 군중 모두 부상당하는 일이 속출한다. (c)GUIA ILUSTRADA

산페르민 축제의 소몰이 영상 (c)League Against Cruel Sports

용감한 싸움? 연출된 동물학대?

소몰이에 끌려 나온 소들은 '플라자 데 토로(Plaze de Toro)' 원형 경기장으로 몰아넣어진다. 경기장에서 소들은 부상당한 몸으로 한참을 군중들에게 놀림 당하다가, 같은 날 오후 투우 경기에 사용된다.

투우는 스페인어로는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 직역하면 '소의 질주(running of bulls)' 정도로 불린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불파이팅(bullfighting)' 이라고 한다. 로마 시대에 사람과 맹수의 싸움을 즐기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투우는 17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페인, 포르투갈, 남프랑스 일부 지역과 멕시코, 콜럼비아, 에쿠아도르, 베네주엘라, 페루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남아있다.

전통적인 투우는 총 세 개의 무대로 구성되고, 무대마다 다른 종류의 투우사가 등장한다. 첫 번째 무대에는 말을 탄 '피카도르(Picador)'가 등장해 소의 목에 '피카(Pica)'라고 불리는 창을 내리 꽂는다. 소가 피를 잃으면서 힘이 빠지도록 하고, 목 근육의 힘을 약화시켜 남은 경기 동안 목을 잘 가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세 명의 '반데릴레로(Baderillero)'가 각각 두 개, 총 여섯 개의 알록달록한 작살을 소의 어깨에 꽂는다. 이쯤에서 소는 상당히 많은 양의 피를 잃게 되고 점점 탈진해 가며, 공포심에 날뛰게 된다.

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주역인 '마타도르(Matador)가 검과 '물레타(Muleta)'라고 하는 막대기에 감은 붉은 천을 들고 등장한다. 이 단계에서 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출혈과 자상, 골절 등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거의 미쳐버린 초죽음 상태다. 마타도르는 마치 스페인 전통 춤과도 같은 동작으로 소를 유인하고 몸을 교묘히 빼는 퍼포먼스로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장내의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마타도르가 소의 심장에 검을 찔러 죽이면서 경기가 끝난다.

규칙대로라면 심장에 칼을 꽂아 즉사시켜야 하지만, 반 톤이 넘는 덩치의 소가 단 칼에 죽는 일은 드물다. 보통 세 번, 네 번씩 폐와 심장을 칼로 난도질 당하는 동안 소는 어김없이 피를 토한다. 소가 쓰러져 경기가 종료된 다음에도 몸만 마비 상태일 뿐 의식이 남아있는 채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마타도르가 훌륭한 싸움을 했다는 의미로 청중의 반 이상이 흰 손수건을 흔들면 마타도르는 소의 귀를 칼로 잘라 상으로 갖게 되는데, 이 역시 의식이 붙어 있는 상태로 행해진다.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에게 존엄한 죽음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소는 뿔이 말에게 매달아진 채로 짐짝처럼 경기장 내를 질질 끌려다니고, 이미 피를 보고 흥분한 관중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패배자'에게 종종 맥주캔이나 쓰레기를 던지며 야유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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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소는 말에 매달려 경기장을 끌려다닌다. 의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c)Tomas Castelazo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

경기에 출전하기 전 소들을 깜깜한 상자 속에 하루에서 이틀을 꼼짝할 수 없도록 가두어 두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투우사의 인명피해를 막고 손쉽게 죽일 수 있도록 신체를 훼손하는 '조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행화된 지 오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간지각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뿔을 갈아내거나, 목을 잘 쓸 수 없도록 목 힘줄을 자르는 것이다. (1997년 전문 투우사 230명이 소속된 스페인 투우사 협회(the Confederation of Bullfighting Professional)는 이에 대한 수의학적 조사를 반대하기 위해 파업을 한 적도 있다.) 시야를 흐리게 하기 위해 눈에 바셀린을 바르고, 잘 듣지 못하도록 귀를 젖은 신문지로 틀어 막거나 콧구멍에 솜을 집어넣어 호흡을 제한하기도 한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리에 부식성 용액을 바르거나, 민감한 생식기에 바늘을 꽂아두어 움직임이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소의 성향에 따라 흥분제나 진정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즉, 투우 경기에 나오는 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코에서 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힘이 세고 폭력적인 야수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불안한데다, 이미 당할 대로 당한 고문으로 아프고 지쳐있는, 극도로 겁에 질린 동물일 뿐이다. 깜깜한 곳에 갇혀 불안함에 떨던 소는 경기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 살기 위해 빛이 보이는 곳으로 온 힘을 다해 질주한다. 그러나 고통의 끝인 줄로만 알았던 불빛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은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고문과 자신의 죽음 앞에 환호하는 관중들이다.

투우사 혼자 맨손으로 건강한 소와 소위 '맞짱'뜨는 것도 아니고, 창, 작살, 칼로 무장한 장정 여섯 명 대 이미 겁에 질리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소의 싸움이라니. 어쩌면 '싸움(Fight)'이라기 보다는 '학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카탈루니아, 2010년부터 '투우 금지'

'전통'이라는 주장과 '동물 학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투우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스페인 카탈루니아 의회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3년 5월 멕시코 소노라 시에서도 금지되었으며 2011년 에콰도르에서는 오락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3년 10월 프랑스 녹색당은 소를 죽이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투우 경기의 숫자도 매년 감소 중이다. 스페인 문화부(Ministry of Culture)의 집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간 열리는 투우 경기의 횟수는 3.650회에서 2,290회로 감소했다. 계속되는 불황과 카탈루니아의 금지법 발효 등으로 최근에는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 국민들 대부분도 세금이 투우를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의 의뢰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퍼센트가 투우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고 답했고, 투우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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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민 축제에서 투우 반대 시위를 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들(c)PETA UK

'전통'은 악습에 면죄부 주는 마법의 단어 아니다.

'전통이냐, 동물 학대냐'의 논란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진정한 '전통'의 의미다. 수 백 년, 수십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해서 모두 '전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투우와 비교할 수 있는 예로는 영국에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행해지던 '곰 미끼놀이(베어 베이팅,Bear-baiting)'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 스포츠는 곰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훈련된 개들이 공격해 뜯어먹게 하는 것을 군중들이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1835년 동물학대금지법이 영국의회를 통과하면서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아마 요즘 세상에 영국에서 '전통'이었기 때문에 베어베이팅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회교도 국가에서 여성의 성욕을 억제하고 혼전순결을 지키게 하기 위해 여성의 성기 일부를 절단하는 여성 할례는 무려 기원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비록 '종교적 관습'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자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전통'이라며 나서서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송나라 때부터 명,청나라까지 이어진 전족(纏足) 도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전통'은 살아있는 생명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폭력을 가하는 행위에 전부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가는 시대의 상식에서 벗어난 과거의 관습은 '예전에는 그랬었지'하며 역사책 속으로 떠나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인류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대대손손 물려 줄 가치가 인정되는 문화 만이 노력과 비용을 들여 계승할 가치가 있는 진짜 문화이고 전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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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원장, "피는 피로써, 미제 총대로 결산"강조

 
 
신천박물관 신축 현지지도 "복수심의 발원점"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3 [10: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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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금 미제의 기만 선전에 넘어가 미국을 평화와 인권의 수호자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현실"이라며

 

"미제의 야수성과 교활성을 우리가 고발하고 결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들은 23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오는 27일 정전협정 62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만행을 전시한 신천박물관을 8개월만에 다시 찾아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신천박물관이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일떠섰다"고 소개하고 "김정은 동지가 새로 건설한 신천박물관을 현지 지도했다"고 밝혔다.

 

신천 박물관은 6.25 당시 전쟁 당시 미군이 신천군 주민 3만5천여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며 이 박물관을 '반미교양'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이곳을 방문해 신천박물관을 새로 건설할 것을 지시했으며 북은 곧바로 설계에 들어가 지난 2월26일 착공, 철야 공사 끝에 거의 4개월만에 박물관 신축 공사를 완공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이 '전승절(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기념일(7월27일)을 앞두고 박물관이 건축미학적으로 손색 없이 새로 지어진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신천박물관은 계급교양의 거점이고 복수심의 발원점이며 미제의 야수적 만행을 낱낱이 발가놓는 역사의 고발장"이라며 박물관을 통한 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 것을 당부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제가 제놈들이 저지른 죄행을 감춰보려고 아무리 교활하게 놀아대도 이 땅에 남긴 피의 흔적은 절대로 지울 수 없다"며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하며 미제와는 반드시 총대로 결산해야 한다"고 검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또한 "원쑤들에 대해 털끝만한 환상이라도 가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신천 땅의 피의 교훈"이라며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의 '반제반미교양'을 강화하는 것이 '조국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미제의 기만 선전에 넘어가 미국을 평화와 인권의 수호자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현실"이라며 "미제의 야수성과 교활성을 우리가 고발하고 결산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흙 한삽 한삽을 미제와 계급적 원쑤들의 가슴팍에 멸적의 총창을 박는 심정으로 군인건설자와 인민들의 노력으로 우리의 혁명진지, 계급진지의 사상적 보루가 솟아오르게 됐다"고 치하하며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 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기남 당 비서, 
리재일 당 제1부부장, 김여정 당 부부장, 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이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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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보며

남북물류포럼 칼럼

2015. 07. 23
조회수 17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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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들어 북한 고위급 인사가 탈북했다는 내용을 전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이들 보도들이 사실인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북한의 핵심비밀이 밝혀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 고위 탈북자들이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비밀을 어느 정도 제공했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노동당 39호실이나 제2경제위원회 출신 고위인사가 맞다면 상당한 정도의 기밀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39호실이나 제2경제위원회는 북한체제의 핵심기구들이다. 그만큼 속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비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북한 군사비가 어느 정도이고 핵무기 개발비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 등은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은 일반 탈북자들은 알 수 없는 부문이다. 따라서 금번 고위급 탈북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비밀들이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언론보도로 본다면 탈북자의 계급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탈북자는 약 27,000명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 신분이 노동자․농민이었다. 인민군 계급도 거의 인민군 상좌(중령급) 미만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고위급 탈북자들은 일반 탈북자와는 달리 우리의 차관급들이다. 북한의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김정은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 부서의 주요 인물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북한 핵심계층에도 ‘잠재적’ 저항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과 앞으로 ‘제2의 황장엽’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셋째, 북한 체제 변화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유의미한 일이 발생한 점이다. 그 이유는 북한 체제 유지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통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관료 및 주민들에 대한 사상적, 육체적, 물질적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왔다. ‘공포에 의한 지배’ 정책인 것이다. 김정은이 등장 이후 리영호․장성택․현영철․마원춘 등 최측근을 숙청한 것으로 밝혀지거나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은 철저히 김일성․김정일 노선을 따르는 ‘경로 의존적(path dependency)’ 통제방식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Machiavellis)t’인 것같다. 마키아벨리는(Machiavelli)는 “군주는 존경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부터 유지된다”라고 강조했고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고위급 탈북 사건들이 확인된다면 그러한 김정은의 공포를 통한 지배 정책을 무색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유념해서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북한의 통제장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국가안전보위부는 그 어느 독재국가들의 통제기구보다 막강하다는 데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보위부에 조차 맹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의한 지배는 피지배자들이 이를 충실히 따랐을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이에 저항하면 소용이 없게 된다. 오히려 지배자가 역공을 당하게 된다.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이 공포스런 지배에도 불구하고 민중혁명이나 군부 쿠데타에 의해 타도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통제기구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김정은도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 체제의 변화 문제와 관련해 어떤 판단도 성급하게 내려서는 않된다. 그 이유는 최근의 탈북자들을 보더라도 자유주의 혁명 사상에 무장되어 있는 것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탈북한 이유가 이들이 자유주의 혁명 사상을 공부하여 “군주도 과오를 범하면 타도될 수 있다”라는 사상 때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김정은의 통치행태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아니면 일정한 과오가 있는데 김정일 시대같으면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김정은이 조그만 과오도 숙청하는 것을 목도한 후 겁이 나서 탈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조차도 그들의 탈북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고위급 탈북 사건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단발적이고 비조직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부서가 서로 다르고 시기나 장소도 다르다. 이들이 사전 모의에 의해 탈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촘촘한 상호감시망을 가지고 있다. 북한 국내나 해외나 일정한 지위 이상은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거의 모두 도청당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통제가 느슨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있고 전반적인 통제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사전 모의나 상호 통화가 이루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북․중 국경을 통한 대량탈북은 아니다. 대량탈북이었다면 역사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후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게 된 배경이 동독 주민들의 인접국인 헝가리로의 대량 탈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은 개별적이며 극히 일부다.

   따라서 북한내에 대안 사상과 대안 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 사건들을 김정은 정권 붕괴나 북한 체제 변화와 직접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이를 무리하게 연계하면 잘못된 대북 정책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김정민, 고영환 등 중간급 인사 탈북, 1997년 당 서열 21위였던 황장엽 비서 망명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me=bbs_detail&idx=1471&cur_page=1&sP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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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국정원, 임씨 가족에까지 조사 범위 확대”

“큰딸·부인에 임씨 근황 물어”…네티즌 “특검만이 답이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죽음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숨진 직원 임모씨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그의 가족에게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고된다.

23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국정원이 사망 수일 전부터 해킹 프로그램 논란과 관련 임씨에 대한 강도 높은 감찰을 진행했으며, 이런 중에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임씨의 큰 딸에게도 국정원 감찰 담당자의 연락이 닿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임씨가 국정원 내 감찰반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국정원에서 큰 딸에게도 아버지의 최근 상황을 묻는 등 연락을 취하고 임씨의 부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내용을 조사하면서 더 큰 심적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머니투데이>는 사망 전 임씨는 해킹 프로그램 논란에 따른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자책감, 이에 따른 조직의 감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면서, 감찰 과정에서 가족들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가장으로서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머니투데이>는 육사 생도로서 향후 공직에 복무하게 될 큰 딸이 해킹 프로그램 논란과 관련해 임씨의 ‘실수’로 혹시 모를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구성원들의 ‘조직 반감’이 고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평소 강직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적지 않은 신뢰를 받아왔고, 유서를 통해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조직을 보호하는 사명감을 내비쳤는데 ‘가족까지 불안하게 만든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머니투데이>는 전했다.

다른 사정당국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직원들의 자살 또는 자해 사건들은 주로 특유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에서 비롯된 반면 이번에는 강도 높은 감찰을 통해 사실상 ‘조직이 직원을 사지로 내몬 것’”이라며 “수년간 국정원의 잇단 ‘실책’과 더불어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라고 신문에 밝혔다.

임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그의 가족에게까지 조사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전해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책임질 사람은 위에 버젓이 있는데 실무자만 압박하여 죽음으로 몰았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이 밖에도 “본질을 흐려서 시간끌며 진 빼겠다 그거지”(개들*****), “이 정권의 주특기인가? 조작, 모사, 위조”(최**), “국정원 하는 짓이 조폭의 내부 조직원 단속하는 짓과 다를 게 없다”(dan****), “언제나 독재시대에는 많은 애통한 죽음들이 있었고 남겨진 가족들이 고통을 받았다”(cat*****), “특검밖에 없다”(범**), “양심선언이 필요합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정상적일 때 하는 말이지 나라 말아먹는 범죄행위까지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du**) 등의 반응들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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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민간단체, 오늘 개성서 논의...정부 접촉 승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7/23 10:08
  • 수정일
    2015/07/23 10:0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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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민족공동행사로 개최되나
 
남북 민간단체, 오늘 개성서 논의...정부 접촉 승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3 [08: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8.15 민족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사전 접촉이 오늘 개성에서이루어져 민족공동행사가 순조롭게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내. 외신들은 정부가 지난 22일 광복 70주년 8·15 남북공동행사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민간단체의 사전접촉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남북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되면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이후 10년 만에 8·15 공동행사가 개최되게 된다

 

남측의 '광복 70돌, 6·15 공동선언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남측 준비위)는
지난 6일 북측의 '6·15 공동선언 15돌·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북측 준비위)에 8·15 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제안했고, 지난 20일 북측이 이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북측은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다음달 13∼15일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남측의 각계각층에 문이 활짝 열려있다며 초청의사를 보였다.

 

민족통일대회는 백두산 자주통일 대행진 출정식과 평양과 판문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모임, 자주통일결의대회 등의 행사로 구성된다.

 

남.북측 준비위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함께 문화행사와 학술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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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된 변호사, 그는 죄가 없다

[주장] '경찰폭행' 혐의 민변 변호사, 24일 1심 재판부 무죄 판결 내리길

15.07.22 21:23l최종 업데이트 15.07.22 21:59l

 

 

지난 7월 6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피고석에 낯익은 이들이 대거 서 있었다. 이들의 직업은 모두 변호사. 평소 같으면 당연히 법정 우측 변호인석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그 자리가 아니었다. 피고인석에 나란히 선 이들 중 유난히 흰 머리가 눈에 들어오는 변호사가 있었다. 바로 이덕우 변호사였다.

이덕우 변호사.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994년 12월 24일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당시 나는 재야단체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부장이었고 그는 인권 위원이었다. 그렇게 처음 그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지난 21년간의 인연은 참으로 깊고 진했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이덕우 변호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권 변호사 중 한 명'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1987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시국사건에 늘 '이덕우' 석자를 올렸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시국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중 나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1998년 판문점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었다.

집요한 사람, '인권 변호사' 이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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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년간 '인권 변호사'로 일해온 이덕우. 그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주요 시국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일이 없다. 특히 용산참사는 그에게 잊지 못한 아픔이었다. 참사 5주기를 맞아 추모위원에 참여해 달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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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어느 날,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서울 명동의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실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바로 그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 중 하나로 언급되는 '판문점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이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만 17년째, 이덕우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한 번도 손을 떼지 않았다. 그 세월동안 이 변호사는 아들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김훈 중위 아버지의 전쟁'에 든든한 전우였다.

이덕우 변호사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2002년 12월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제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다가 업무가 종료된 후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덕우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뜬금없이 "요즘 뭐하냐"고 묻더니 "나하고 같이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세상 없이 바쁜 분이 난데없는 여행을 제안하니 뭔가 이상했다. 알고보니 역시나였다. 2002년 12월 그해, 경남 창원의 한진중공업에서 배달호 노동자가 사측의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고자 분신 자결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변호사는 나에게 그 사건 진상 조사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함께한 진상 조사단 방문 길에서 나는 이덕우 변호사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늘 합리적이고 상냥한 성품, 누구에게 모진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그러다 술 한잔 마시면 늘 허허실실 웃는 착한 사람. 그런 이미지의 이덕우 변호사가 한진중공업의 관리자 건물 앞에서 보인 분노는 나에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배달호 노동자가 분신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면서 사측의 입장도 듣고자 했다. 이에 사전에 면담 요청을 마친 후 약속한 시각에 한진중공업 관리자 건물을 방문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측 관리자가 아니라 굳게 닫힌 철문이었다. 그들은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황량한 벌판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여러차례 문을 두드리며 면담 요청을 거듭했다. 하지만 닫은 철문은 끝내 침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이덕우 변호사의 눈물 섞인 괴성이 내 귀에 들려왔다. 굳게 닫힌 그 철문을 향해 분노의 발길질을 하며 분신한 배달호 대신 외치는 눈물이었다.

"이 놈들아. 사람이 죽었다. 너희를 위해 일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말이라도 좀 해달라는데 이것조차 못하겠다는 것이 사람이냐. 어서 문을 열란 말이다. 문을..."

그날, 이덕우 변호사의 외침은 그 넓디넓은 100만평 한진중공업 벌판 위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덕우 변호사의 진심을 봤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 나에게 이덕우 변호사는 그런 사람으로 남았다. 

고시 공부중 갑자기 돗자리 챙기며 나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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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에 참석한 이덕우 변호사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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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대 77학번 출신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법조인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잘 나가는 금융 투자회사에 취직하여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가 1984년. 그러나 그러한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채 1년이 되지 않은 1985년, 이덕우는 아내와 아버지에게 "회사를 그만 두고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판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리고 이어진 3년간의 고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1차 시험 합격후 2차 시험을 연거푸 낙방. 결국 처음부터 다시 1차 시험을 봐야 했는데 다행히 1987년 실시된 1차와 2차 시험을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2차 시험을 두 번이나 실패한 후 다시 처음부터 도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느낀 좌절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고시 준비 때도 이덕우 변호사의 일상은 남달랐다.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이 어느 땐가 나에게 들려준 그때의 특별한 일화가 있다. 고시 준비를 할 당시 이덕우 변호사가 살던 곳은 서울 돈암동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이었다. 3년이나 고시에 매달리는 남편을 내조하며 기약없는 내일을 애타하던 그때, 갑자기 공부하던 남편이 법전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더니 아내에게 "돗자리를 챙겨 따라오라"며 앞장서더라는 것. 매일 법전만 파고 있으니 자기도 답답해서 어디 물 좋은 곳에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알고 내심 부인은 반가웠다고 한다. 

그래서 앞장 서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쫓아가니 도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사는 옆 동네 철거촌. 1987년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이 확장되던 그때, 서울 돈암동에서는 철거민들의 싸움이 치열했다. 당시 고시생이었던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웃었다. 고시 공부하다가 뜬금없이 찾아간 곳이 전혀 상관없는 남의 동네 철거민 농성장이라니. 

그 후 고시생 이덕우는 공부를 하다가 자주 철거민들의 농성장을 찾아 갔다고 한다. 그리고 가져간 돗자리를 깔고 부부가 앉아 철거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를 불렀다고 한다.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은 "덕분에 그곳에서 민중가요를 배웠다"며 웃었다. 그런 사람이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연수원에 들어간 때는 1987년.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가는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인권 변호사로서 들어선 첫 계기는 그곳 연수원에서 '인권학회'라는 서클을 만들면서였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연수생들과 함께 인권 운동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그는 인권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훗날 '인권운동 사랑방'을 만든 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에게 받은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우리나라 인권 운동의 큰 획을 긋는 인권변호사로 일해 왔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연대를 하면서 늘 수임료를 받지 못해  '돈 못 버는' 변호사로 유명하다. 돈 많은 사람이 소위 변호사를 '산다고' 하는데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은 변호사 한 명 만나는 것이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덕우 변호사는 인권단체를 통해 함께해왔다.

그런 이덕우 변호사가 지금, 변호사 자격을 박탈 당할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그 계기가 된 사건 역시 이덕우 변호사가 해오던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연대'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그 사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서울 대한문에서 집회를 할 때 일어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불법 행위에 이 변호사가 항의하던 중 발생한 일을 검찰이 문제 삼고 나서면서였다.

이덕우 최후진술 '나는 다시 거리로 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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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우 변호사는 진보정당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민주노동당 때부터 진보신당, 그리고 지금의 노동당까지. 보편적 복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중인 모습이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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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과 8월.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한 집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이 과정에서 절망에 빠진 해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덕우 변호사는 이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해고자의 복직을 촉구하고자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불청객이 있었다. 경찰이었다. 문제가 발생한 날에도 경찰은 신고된 집회 장소의 1/3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합법 집회를 방해하고 있었다. 경찰의 집회 방해 행위를 놓고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이덕우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이 경찰의 팔을 잡아 끄는 등의 행위를 했다며 형사 기소했다.

그리고 이어 검찰 측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자신들이 기소한 변호사들을 징계해 달라고 청구한다. 이번 기회에 각종 공안사건에서 눈엣가시처럼 활동해온 인권 변호사들을 억압하겠다는 과도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검찰로부터 이들 변호사들의 징계 청구를 받은 대한변호사협회는 징계 결정을 형사재판 결과 후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지난 7월 6일.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10월 불구속 기소된 이덕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에 대해 검찰이 1심 구형을 내렸다. 이 날 검찰은 이덕우 변호사에게 징역 2년을, 김유정(35), 송영섭(43) 변호사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년 6월을, 그리고 김태욱(39) 변호사에 대해서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들 변호사들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유죄를 주장했다. 반면 민변 측은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헌법상 기본권과 법치주의 수호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면서 "검찰이 이들 변호사들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집회 장소의 1/3을 차지하면서 집회를 방해한 경찰을 기소해야 마땅하다"며 강력 비판했다.

그리고 이날, 1987년 사법고시 합격 후 지금까지 누군가의 억울함을 변호하고자 25년간 섰던 변호인석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이덕우는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최후 진술을 남겼다. 

"변호사 등록 취소가 될 수 있는 피고인이 되자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 그리고 일부라도 보았던 여러 사람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정성이 모자라지 않았는지 성찰하였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만났던 이들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입니다. 이 사건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저는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이날 이덕우 변호사의 최후 진술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검찰이 처음 자신을 형사 기소한 날, 이덕우 변호사의 첫 마디는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광입니다"였다. 그러면서 이어진 그의 말.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쌍용차 해고, 광우병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그리고 이라크 파병 등을 반대하고자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시민들이 기소되고 처벌 받았다"며 "그러한 수많은 촛불 중 하나로 우리 변호사도 인정해 줬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이덕우, 그는 무죄다

이덕우 변호사의 말에서 나는 잊었던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정희 유신 독재하에서 조작한 '민청학련' 구속자 김병곤씨의 최후 진술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김병곤씨는 이철, 유인태, 황인성 등 같은 구속자들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유신 독재하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는데 누구들 두렵지 않을까.

그때 민청학련 구속자 중 가장 어린 사람이 서울대 상대 출신의 71학번 김병곤씨였다. 그러나 마지막 최후 진술을 위해 피고인석에서 일어선 김병곤씨의 첫마디는 눈물속에 공판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김병곤의 첫마디, "영광입니다"였다.

"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사형이라는 영광스런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김병곤씨가 사형을 구형받은 유신독재시대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흘렀지만 민주주의 현실은 또 다시 역류하고 있다. 그 엄혹했다던 유신 독재하에서도 다행히 김병곤은 사형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검찰은 '변호사 신분에 있어서는' 사형과 다르지 않은 징역 2년을 이덕우 변호사에게 구형했다. 만약 이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된다면 우리는 '인권 변호사' 이덕우를 잃게 될 것이다. 변호사가 금고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이덕우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인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오는 24일 오후 1시 50분. 이날 서울 중앙지방법원 합의 28부 재판부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나는 주장한다. 

이덕우 무죄! 김유정, 송영섭, 김태욱 각 무죄!

이덕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인의 무죄를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해달라. 우리의 염원과 기도가 이 나라, 메말라 버린 민주주의의 땅에 단비로 내릴 때까지 함께해 달라. 나는 정의와 진실이 바로 잡히는 그날까지 '인권을 위해 끝까지 싸운'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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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길 키리바시, "마지막 한 조각 땅 살리겠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7/22 11:14
  • 수정일
    2015/07/22 11: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수 2015. 07. 22
조회수 14 추천수 0
 

인터뷰/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
불안한 기후난민 전락 원치 않아, 교육 통해 ‘존엄한 이주’ 준비 중
주권국가 포기 못해, 미래 식량확보 위해 피지에 24㎢ 땅 구입도

 

IMG_4365.JPG»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대통령이 15일 타라와섬 바이리키 지역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선학평화상위원회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인구 10만5000여명의 키리바시는 국토 대부분이 평균 해발고도 2m의 작은 산호섬들로 이뤄져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특히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2003년부터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아노테 통(63)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제사회에 2050년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우리라 전망되는 자국의 실상을 알리며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어내려고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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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011__Photo-_Erin_Magee_-_DFAT.jpg» 키리바시 군도를 2011년 비행기에서 본 모습. 사진=Erin Magee/DFAT

 

이런 공로 등으로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로 오른 데 이어 지난달 인도의 생물학자인 모다두구 굽타 박사와 함께 선학평화상위원회가 주는 제1회 선학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선학평화상위원회 주선으로 키리바시 현지에서 아노테 통 대통령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15일 키리바시 수도 타라와의 대통령 집무실과 집무실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사저에서 이뤄졌다.

 

IMG_7918.JPG» 아노테 통 대통령이 15일 집무실에서 동쪽으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사저 앞 바닷가에서 손녀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키리바시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어떤 상황인가요?

 

해안 침식 때문에 마을들이 사라지고, 밀려드는 바닷물로 담수 지역이 오염되고, 농작물 생산에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는 적도 주변에 위치해 허리케인 피해가 없었던 곳인데, 올해 3월 바누아투를 강타한 사이클론 팸으로 키리바시의 몇몇 섬에서도 많은 집들이 바다로 쓸려나가는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이런 현상들은 키리바시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키리바시 정부에서는 계속되는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해수면이 상승하더라도 계속 우리 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서 지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사회가 우리의 모든 섬들을 다 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지원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섬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국민들 일부가 이주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에는 재원이 없어 기후변화 대응의 많은 부분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달려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나서주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 인구가 이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Luigi Guarino.jpg» 키리바시 해안가 모습. 사진=Luigi Guarino,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래서 ‘존엄한 이주’라는 정책을 추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존엄한 이주’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시지요.

 

나는 우리 국민이 ‘기후 난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격이 내려가는 것이고, 존엄성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더라도 존엄성까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국민들은 새로 들어가는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이 돼야 합니다. 그 사회에 부담을 주고 특별한 배려를 구하는 2등 시민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존엄한 이주’는 우리 국민이 교육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시민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지난해 피지에 약 24㎢의 땅도 구입하셨지요?

 

그 땅을 산 것은 미래의 식량 확보를 위한 투자입니다. 종종 ‘그 피지 땅에 국민들을 이주시킬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데,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미래에 누군가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있겠지요. 피지 정부는 필요한 경우 우리 국민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국제사회에 요구해온 인류애입니다.”

 

Erin Magee_DFAT.jpg» 티리바시에서 가장 높은 타라와의 해발고도가 3m임을 표시하고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이 섬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표지판. 사진=Erin Magee/ DFAT,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수면이 상승해도 키리바시에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해결책, 예를 들면 섬을 높이는 것 같은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입니다. 한국 정부에도 기술진을 파견해서 검토한 뒤 해결책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데 문제는 비용입니다. 우리는 동원할 재원이 없습니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와야 합니다. 키리바시의 문제는 매우 긴급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이주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권국가로서 키리바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어떤 형태나 크기로든 국가로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의 땅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국민을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이주한 사람들이 ‘저기가 우리나라다’라며 가리킬 수 있는 땅은 남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바다에 막대한 자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지구의 파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문제는 가장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고 기꺼이 자신들의 복지와 사치를 희생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Angela K. Kepler_Vostok_Island_AKK.jpg» 키리바시의 33개 섬 가운데 하나인 보스토크섬. 산호초로 형성된 낮은 고도의 전형적 모습이다. 사진=Angela K. Kepl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엔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현재까지의 협상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국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단 하나의 집을 가진 지구 시민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어떻게 될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 영향을 줄까’ 이런 것들이 불행하게도 많은 토론을 이끌어 왔습니다. 사실 올해 말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회의에서 어떤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 합의되든 그것은 우리의 운명에는 아무 차이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두 배인 국가입니다. 한국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우리와 같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들에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수익과 손실을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점은 이해합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겨울을 나느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을 너무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라와(키리바시)/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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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죽어서라도 복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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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에 나서는 여승무원들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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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 3월의 새벽이면 아직 어두웠을 시각. 그녀의 절망만큼이나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방에는 세 살짜리 아이와 남편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는 그녀들은 억이 막힌 채 꺽꺽 소리를 내며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설움이 북받쳐 가슴이 막히는데 야단맞을까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슬픔도 체한다. 눈물에도 때가 있다.

울 땐 울어야 보내지고, 슬퍼할 땐 슬퍼해야 덜어진다. 누구보다 슬프고, 놀랐고, 같은 피해자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따뜻이 위로받아야 할 그녀들은 죄책감의 사슬에 발목이 패이도록 묶여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조여드는 수갑처럼 울면 울수록 심장을 파고드는 사슬. 내겐 금식씨의 죽음이 그렇다. 하필 일본에 있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추모제 한 번을 못 지내고 장례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죽음.

길에서 금식씨랑 뒷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따라가기도 하고, 상규형이 입원했을 때 금식씨한테도 알려야 하는데 생각하다 흠칫하고, 전체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선 요새 왜 금식씨가 안 보이지 무심코 생각하다 또 가슴이 선뜻해진다. 미처 이별도 못했는데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파기환송'에 내내 울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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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안고 다시 거리로 나온 KTX 승무원 대법원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전 KTX 승무원에 대해 1·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 조합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부당판결을 규탄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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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선고가 있던 날. 멀리 충청도에서 그녀가 왔더란다. '파기환송' 선고에 내내 울다가 눈물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아이 때문에 서둘러 다시 먼 길을 떠났다 했다. 그 모습이 그녀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따뜻한 인사라도 건넸다면, 모래알 같은 밥이라도 한 그릇 나눠먹고 헤어졌더라면 덜 아팠을까. 그랬다면 덜 미안했을까. 재판에 지면 물어내야 한다는 8640만원. 그 후 그녀들의 통화의 주제는 가압류니, 명의이전이니, 이혼이니 이런 사나운 단어들이 생경스럽게 오갔다.

불안하지만 간신히 지탱되던 일상이 발밑에서 다시 흔들리는 예감. 일상을 빼앗겨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지. 신들의 나라에서 지축이 흔들려 수천 명이 거대한 무덤에 묻힌 건 천재지변이었지만, 수백 명의 희망과 간절한 소망과 십년세월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건 인재였다. 약자의 마지막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법이라는 인재.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에서 상식과 정의를 외면한 참사.

2심에서 이기던 날. 그녀들은 말했다. 

"그동안 우릴 비난했던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우린 시험쳐서 정규직이 됐는데 니들은 떼를 써서 정규직이 되려하냐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2년만 있으면 정규직 해준다고 약속해놓고 그 약속을 어긴 철도청은 마치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진실이었던 게 밝혀졌잖아요. 우리가 옳았다는 게 증명된 거잖아요."

그 기쁜 말조차 그녀들은 펑펑 울면서 했다. 그게 다시 뒤집힌 거다. 십년의 눈물이 외침이 절규가 외면당한 처절한 절망. 이제 어느 거리에 서서 어떤 말로 다시 외쳐야 하나. 얼마나 더 울어야 하나.

무죄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재판받으러 간 자리에서 법정구속이 선고되고 그 자리에서 철컥철컥 수갑이 채워지고 오랏줄에 묶이면 그럴까. 그 경우엔 그래도 형기라도 있다. 얼마를 살면 풀려난다는 기약이라도 있다. 기약없는 절망만큼 무릎이 꺾이는 일이 또 있을까. 저들은 그녀들이 각자 물어내야 하는 돈이 8640만 원이라고 살뜰히 계산했지만  25층에서 몸을 던진 그녀의 절망은 얼마치였을까. 십년세월을 잃고 세 살짜리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늦겨울 새벽의 25층 난간에 섰던 그녀의 슬픔은 얼마짜리였을까.

2년을 다니고 4년을 싸웠다. 그리고 4년을 기다렸다. 우리의 요구는 2년후에는 정규직을 시켜주겠노라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니 길어봐야 한 달을 넘지 않으리라 믿었던 싸움이었다. 경찰들에게 사지를 들려 끌려가기도 하고,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닭장차에 실려 연행되기도 했다.

건국 이래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의 정부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가 사장으로 있던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들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참한 일들이 눈앞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졌다.

'차라리 쭉 지는 게 나을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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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안부 묻는 KTX승무원 대법원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전 KTX 승무원에 대해 1·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3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 조합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부당판결을 규탄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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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날마다 울었던 싸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었던 싸움. 집회, 단식, 삭발, 천막농성, 점거농성, 고공농성. 안 해 본 게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졌고 1심에서도 이겼고, 2심에서도 이겼다. 같은 대법관(고영한 주심)에 의해서 파기환송당한 쌍차해고자가 그랬다. 차라리 쭉 지는 게 나을 뻔 했어요.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니까 정말 힘드네요.

이미 4개월이 지나 있었다. 뒤늦게 찾은 공원묘지. 그날은 공교롭게 내가 해고된 지 딱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동생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차안에서, 기력이 딸리면 끊어졌다 한웅큼의 기력이 채워지면 다시 이어지곤 하던 큰언니의 울음소리처럼 비가 내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듯하게 늘어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묘지석들. 저 중에서 서른다섯살의 새파란 무덤을 찾아야 한다. 처음엔 꽃이 놓이고 화분이 놓인 '예쁜' 무덤들을 찾느라 무덤들 사이를 두 바퀴를 돌았다.

왜 그랬을까. 왜 무덤마저 예쁠 거라 생각했을까. 노숙농성의 와중에서도 늘 단정하고 모자 하나도 반듯하게 각 맞춰 쓰고 단체티를 입고도 저마다 반짝거리던 모습이 남아서였을까. 가장 쓸쓸하고 텅 빈 묘지. 거기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결혼식 때 찍은 걸로 보이는 손톱만한 사진. 분명 웃고 있는 사진이련만 빗물이 번져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2015년 3월 16일 졸. 대법판결 18일 후였다.

이름과 생몰 일시 외에는 텅 비어있던 묘지석. 10년을 외쳤으나 끝내 외면한 세상에 남긴 기나긴 침묵. 엄마를 기다리다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쓰러져 잠든 어린아이 같은 하얀 국화꽃이 그 쓸쓸한 묘비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존재를 부정당하고 영혼이 으깨지는 듯 했던 2월 26일의 대법판결은 잊은 채 훨훨 하늘로 갔을까. 피를 토하듯 울었던 그 무수한 눈물들은 다 마른 채 갔을까. 가슴이 미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던 그 숱한 순간들은 다 내려놓고 갔을까. 죽어서라도 정규직이 됐을까. 생애 가장 벅찬 순간이었고, 온가족의 자랑이었던 승무원으로 죽어서라도 복직을 했을까.

올해 만 30년을 해고자로 사는 난 더 나이가 들어 혹여 치매가 오더라도 다른 기억은  다 잊어도 한진으로 가는 길은 안 잊을 거 같다. 30년 다니고 정년퇴직한 아저씬 치매에 걸리면 고향을 찾아갈테지만 5년 일하고 30년을 해고자로 산 나는 한진중공업을 근방을 뱅뱅 맴돌 거 같다. 우리조합원들마저 날 잊고 노동조합도 날 잊는다 해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살아있는 

단 하나의 세포. 그게 해고자다. 해고자는 그렇게 산다. 늘 미완인 삶.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삶. 편하고 행복하면 불안해지는 삶. 어느 집 파스타가 맛있고, 어느 브랜드의 구두가 잘빠졌더라는 친구들의 수다에 문득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드는 삶.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먼 바다 홀로 동동 떠있는 섬이 되는 삶.

서른 넷에서 하나가 줄었으니 서른 셋. 그마저도 결혼으로, 육아로 형편과 마음이 여의치 않아 열댓명이 다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얼마나 서글프고 얼마나 신산스러웠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다시 서는 그녀들이 고맙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대로 일요일 오후 부산역엘 나가 볼 생각이다. 걸리적거리는 거 외엔 딱히 다른 용도가 없더라도 그냥 곁에 서 있기라도 할 생각이다. 멀리 충청도로 이사가 살면서 세 살짜리 아이가 딸린 그녀가 "낼 모레 부산역 일인시위에 갈께요"라고 마지막 카톡을 남겼다는 그 자리.

3년 전 가봤던 베트남 구찌터널을 그녀들과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작은 땅굴. 그러나 땅속은 개미굴보다 복잡하고 치밀했다. 몸뚱아리가 가장 작은 부피로 접힌 채 한참을 들어가 숨이 막힐 때 쯤 넓은 공간들이 나왔다.

땅속에 식당도 있고, 주방도 있고, 회의실도 있고, 병원도 있고,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를 낳는 조산원이 있다는 것. 세상에 전쟁 중에, 그것도 땅굴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니!

놀란 우리에게 안내해주시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삶이라고. 삶은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진다고. 전쟁엔 승패가 있지만 삶에는 승패가 없다고.

7월 24일, 그녀들의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그녀가 죽어서라도 복직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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