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북, 임현수 목사 간첩활동 동영상 공개

(종합) 북, 임현수 목사 간첩활동 동영상 공개
 
임현수 목사 "체제전복 활동" 인정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31 [11:1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기자회견애 앞서 고개 숙이는 재 캐나다 임현수 목사     © 이정섭 기자

 

한국계 캐나다로 조선 돕기 운동을 하다 억류 된 임현수 목사가 간펍활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는 31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지난 1월 조선에 입국한 뒤 억류된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60) 목사가 3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한 동영상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 자신의 조선 돕기는 북사회 붕괴를 위한 것이었다고 발언하는 임현수 목사     © 이정섭 기자

 

노컷 뉴스는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임현수 목사가 이날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저지른 가장 엄중한 범죄는 공북한의 최고존엄과 체제를 심히 중상모독하고 국가전복음모행위를 감행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임임현수 목사는  "담임목사로 있는 큰빛교회에서 일요일마다 설교와 캐나다, 미국, 일본, 브라질 등 여러 나라와 남조선지역을 돌아다니며 '북조선사역보고'라는 것을 하면서 그때마다 북한의 존엄과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공화국의 최고존엄과 체제에 대해 테러통치, 공포정치, 독재국가, 악의 집단, 악의 정권, 암흑의 땅이라고 험담하는 등 미국과 남조선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되받아 넘기면서 망언을 했다"고 통신은 주장했다. 

또 "각종 크고 작은 종교집회에서 '북조선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최고수뇌부와 당 대신에 하나님과 예수, 교회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며 반공화국 적대감을 적극 고취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자신이 지난 1월 30일 경제개발사업 실무면담 명목으로 라선 경제특구로 들어간 뒤 2월 2일 평양으로 이동했다가 구속됐다. 

임 목사는 지난 1994년  처음 방북한 뒤 '고난의 행군' 때인 1996년부터 다양한 대북 지원 사업을 지원한다며 100여차례 조선을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은 지난 3월 캐나다 정부에 임 목사 억류 사실을 통보했다. 

임 목사는 올해 60살로 지난 1990년부터 캐나다 큰빛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왔으며, 내년에 조기 은퇴한 후 북과 해외 선교에 주력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는 기자회견에서 북의 대동문 호텔을 인수 예배소를 짓고 비밀 목회를 진행할 계획이었다고 고백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진중권 "김무성 큰절·박근령 망언, 한국 보수의 정치 포르노"

 
"망언 배경은 한국 보수층에 팽배한 뉴라이트 역사관"
프레시안 사회2015.07.31 12:07:54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가 '김무성 큰절'과 '박근령 친일 발언' 등에 대해 "정치 포르노"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30일 밤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근령 씨의 발언을 두고 "이번 망언의 배경은 한국 보수층에 팽배한 뉴라이트의 역사관"이라고 비판했다.(☞관련기사 : 朴 대통령 동생 박근령 "위안부 日 사과 요구 부당")
 
진 교수는 "박근령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부산 부성고의 이사"라며 이같이 말했다. 
 
진 교수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한번 사과와 반성을 했으면 번복하지 말아야지. 내각이 바뀔 때마다 담화를 수정하느니 계승하느니 딴소리를 하니까 문제"라며 "문제는 그 빌어먹을 사무라이 문화다. 그 문화에서 윤리적 선악은 상대의 강약이나 전쟁의 승패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일본의 극우 세력을 비판했다. 
 

▲진중권 교수 트위터 캡처

근령 씨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진 교수의 비판에 대해 반발하자 진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둘째 따님은 일본 우익들 광란에 장단이나 맞춰주고 앉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사위께서는 트위터로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스토킹이나 하고 앉았고"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근령 씨를 싸잡아 "미국에서 사대주의의 극한을 보여주고, 박근령은 일본에서 친일망언의 절정을 보여주고"라며 "한국 보수의 적나라한 정치 포르노"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청동기 시대의 윤리의식은 아무리 늦어도 17세기 이후에는 시대착오"라면서 "이것은 외교의 문제이기 이전에 일본인들 자신의 문제다. 즉 자신과 후세에게 윤리적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시켜 주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국가의 윤리의식이 야쿠자 수준이니 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피바다' 연주하자고 할 때 비로소 통일 대박"

[인터뷰] 이철주 '2015 천만의 합창-나비 날다' 총감독

15.07.31 09:52l최종 업데이트 15.07.31 09:52l

 

 

기사 관련 사진
▲  이철주 감독.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명망가가 아닌 무명의 시민들이 거대한 토네이도를 꿈꾸며 통일을 위한 작은 날갯짓을 시작했다. 오는 8월 15일 오후 8시 15분, 1945명의 시민이 각국에서 남북의 대표 통일노래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한다. 동시에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 대표 클래식 곡도 연주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1000~3000원 사이 소액을 기부해 마련한 이 행사는 전세계로 생중계 할 예정이다. 광복 이후 최초의 시민 주도 통일 행사라는 '2015 천만의 합창-나비 날다'(아래 '나비 날다') 얘기다.

"광복 최초 시민이 주도한 통일 행사 열린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철주(51·문화기획자) '나비 날다' 총 감독은 두 가지 지점에서 이번 행사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정부가 아닌 시민이 통일 행사를 주도했다는 점과 그 내용을 합창과 클래식 연주 등으로 채웠다는 점이다. 남과 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의 거리를 좁혀, 형식적 통일이 아닌 진정한 사회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될 거란 뜻에서다.

큰 뜻을 품고 시작했지만, 이를 현실화 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올해 1월 황의중 서울 불암고등학교 국어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번 행사에는 현재까지 2400여 명의 시민이 추진위원으로 나섰다. 애초 목표는 1천만 명의 시민이 각자 1천 원씩 기부해 100억 원을 모으자는 것이었다. 대규모 공연을 대비해 잠실주경기장까지 예약했지만, 여러 현실적 조건으로 규모를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등을 행사 장소로 물색 중이다. 

정부의 협조도 얻지 못했다. 통일부에도 후원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고 한다. 또 연주 예정이던 북한 교향곡 '피바다'도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항일 투쟁을 묘사한 작품인 이 곡을 꼭 연주하고 싶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한 그는 "정부가 통일부에 '통일문화과'까지 신설했다면, 적어도 문화 예술 분야만큼은 통 크게 열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거기에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참여도 어렵게 된 상황이다. 

처음 꿈꾸었던 원대한 판은 깨졌지만, 그럼에도 행사는 진행된다. '미래의 발판'이 되겠다는 취지다. 또 문화가 가진 '특별한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평화음악회'를 기획하고, 북한음악 음반 8종을 국내에 출시하는 등 남북 문화 교류에 힘썼던 이 감독은 "문화는 두뇌가 아닌 심장을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북 대 반종북'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횡횡하는 지금 시대에서 "같은 말, 같은 책, 같은 예술적 체험을 공유하는 일"이 중간지대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문화는 심장을 움직이고, 심장은 혁명적 결단을 내린다"

- '나비 날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민족과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와중에 황의중 불암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잊히고 있으니 같이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다들 마음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있지 않겠느냐면서. 신선한 제안이라 기획자로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기존 남북 교류에서 나오는 전통, 국악 등 민족성을 내세운 협소한 주제보다는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문화 교류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장르를 클래식으로 택했다."

- 프로젝트 이름인 '나비 날다'는 무슨 뜻인가?
"나비가 날면 영향력이 생겨서 큰 바람을 일으킨다는 물리학 이론 '나비효과'에서 따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명망가 아닌 무명의 시민들이 천 원씩 모아 시작했다. 이런 작은 행동으로 날갯짓을 한다면 휴전선이 다 나비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날다'라는 표현은 자발성을 뜻한다. 지금까지 통일은 명망가나 정부, 단체가 주도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자기 발언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이 주도하자는 뜻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이철주 감독.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합창곡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남과 북이 같이 부를 수 있는 대표적 곡들 중에 골랐다. 가장 편하게 부르는 게 아리랑이고, 그 다음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남북 간의 가사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리랑은 지금까지 많이 다뤄왔기에 이번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택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교과서에서 사라질 때도 있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남과 북에서 불리는 곡이니까, 이번에 마음을 담아 다시 불러보자는 취지다."

- 무대에 어떤 곡들이 오르는지 소개해 달라.
"이번 기회에 통일을 주제로 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공모전을 열어 클래식, 대중음악 작품을 접수 받았고, 전문가에게 의뢰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또 북한의 대표적 클래식 곡도 연주될 예정이다. 피아노협주곡인 <조선은 하나다>,  민족배합관현악 독창곡인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와 예전에 평양시민들이 즐겨 부르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해외 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임진강> 등 6곡도 연주한다." 

- 이번 행사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이름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음악회다. 정부 간의 통일은 정책적 다툼이 주를 이룬다. 이런 통일은 굉장히 협소한 통일이다. 그 정도 통일은 과거 독일에서 봤듯이, 통일 이후에 사회 통합을 위한 사회 비용이 많이 든다. 반대로 우리의 통일은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합시다'라고 외치는 건 단지 선언에 불과하다. 이번 행사는 해외동포를 포함해 남북의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통합의 길로 걸어 나가는 단초가 될 거라 생각한다." 

- 이번 행사뿐 아니라 남북 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해온 걸로 안다. 다른 분야보다 문화 교류를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문화는 절대적으로 체험을 전제로 한다. 이성에 앞서서 감성이 작용한다. 두뇌가 아닌 심장이 움직이는 거다. 두뇌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반면 심장은 대단히 직관적이고 혁명적 결정을 내린다. 정부는 논리적으로 접근하되, 민간은 심장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로 한 핏줄로 받아들여야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같은 말, 같은 책, 같은 예술적 체험을 공유하는 거다. 친구를 사귈 때도 같이 술 한 잔 하고 노래방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나.

통일을 조금 더 진보적으로 얘기하면 '운동권' 혹은 '종북'으로 규정한다. 반대로 국방을 강조하면 보수주의가 된다. 지금 같은 이분법 프레임이어선 안 된다. 이들의 중간 지대를 만들려면 북한과 소통을 늘려야 한다. 국가보안법 등 현실적 제약으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면 인도적 지원과 문화·예술 교류로 시작해야 한다. 선전을 위한 북한 미술품이 법에 걸린다면 전통음악이나 클래식으로 우선 교류하되, 지속적이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진정한 통일이 언제 되겠나."

"문화·예술 분야만큼은 정부가 통 크게 열어 달라"
 

기사 관련 사진
▲  이철주 감독.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통일부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던데.
"민간이 주도하는 통일 행사라면 당연히 정부가 후원할 줄 알았다. 통일부에 홍용표 장관이 행사에 와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고, 후원금과 후원 명칭 사용을 요청하는 공문을 3월과 5월 두 차례 보냈다. 하지만 아직 답이 없다. 이번에 연주 예정이었던 북한 교향곡 '피바다'는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허가를 못 받았다. 이 곡은 지난 2002년 전주시향이 연주곡으로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13년이 지난 지금 불허 방침을 내린 것은 남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통일부에 '통일문화과'까지 만들었다면 문화·예술만큼은 통 크게 열어줬으면 한다. 

또한 교향곡 '피바다'는 북한 콘텐츠 중에서도 항일 독립운동을 가장 잘 다룬 작품이다. 광복 70주년에 맞춰 항일 투쟁을 묘사한 작품을 연주하려고 했는데 당국이 불허해 정말 아쉽다. 남북교류활성화법은 목적에 부합한다면 국가보안법보다 우선 적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많은 제한이 따르는 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사회적 합의라고 본다.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선언한다고 정말 '대박'이 되는가. 천만 명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통일 합시다', '피바다 교향곡 연주 합시다'라고 요구할 때 그때 비로소 통일 대박이 이뤄진다고 본다."  

- 정치적 장애물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꼭 한번 이루었으면 하는 문화 프로젝트가 있나?
"북한 예술은 자기만의 예술 양식을 가지고 있다. 틀려서 나쁜 게 아니라 달라서 어색한 거다. 보편적 잣대에서 봤을 때도 낮은 수준이 아니다. 클래식의 경우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수준이다. 나는 북한의 재능과 남한의 자본이 결합하면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본다. '살사', '탱고' 등 특정 민족의 음악이 세계적 음악이 됐듯, 남과 북도 같이 만들면 세계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한류다. 남과 북이 지난 70년 동안 동일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고민해왔다. 이들 중 장점만 취합해보자. 이를 위해선 정부가 통일예술센터 등을 만들어 적극 지원해야 한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시아의 미래는 과거로부터 자유이다"

아베 담화 앞두고 한.일 및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 발표 (전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07.29  16:52:50
페이스북 트위터
   
▲ 일본 아베신조 총리의 8.15담화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등 지식인들이 29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과거는 공개하고 사죄하고 용서하여 극복되는 것이다. 현재를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미래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아시아의 '과거로부터의 자유'는 찬란한 '시빌(civil) 아시아'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다."

일본 아베신조 총리의 8.15담화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유럽 등 지식인들이 29일 오후 2시반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전후 냉전에 대응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틀 안에서 한일 간에는 식민지 책임을 물을 길을 잃어버렸지만, 아베 정권은 신 미.일동맹강화 전략의 틀 안에서 무라야마 담화 이래 진행된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노력을 역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근린제국에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오는 8월 아베담화에 과거사 반성을 담을 것을 촉구했다.

이어 "세상에 좋은 식민주의도 없고 좋은 전쟁도 없다. 그리고 미래는 과거를 덮어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청산하고 말하는 것"이라며 "아무쪼록 아시아와 역사적 화해에 성공하는 담화를 기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린 한.일 지식인들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성명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읽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과거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내재적 조건이 성숙된다. 위안부 문제가 지금처럼 부상한 것도 한국의 민주혁명의 결과"라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아시아 민주주의 시금석이라고 믿는다"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곧 아시아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을 겨냥해 "미국은 동아시아의 또 하나의 전쟁 가능성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민주적 가능성에 회귀하여 그 가능성을 지원하기를 기대한다"며 "군산복합체 주도형이 아니라 평화산업과 시민사회 주도형이어야 하며, 중국, 북한 배제형이 아니라 그 나라들을 포용하는 평화협력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과거의 문제는 그대로 덮어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주장은 과거를 온전시켜 미래를 지배하려고 하는 음모"라며 "과거는 공개하고 사죄하고 용서하여 극복되는 것이다. 현재를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미래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아시아의 '과거로부터의 자유'는 찬란한 '시빌아시아'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날 공동성명 발표장에는 1백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번 공동성명은 한국측 김영호 전 유한대학교 총장의 제안과 일본측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의 협력으로 '한일지식인 공동성명 발기위원회'가 마련됐다. 특히, 지난 2010년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조약의 부당성을 선언한 지식인 성명 발표 이후 일본정부의 과거사 해결 의지가 요원하다는 인식에서 지식인 성명을 재추진하게 됐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공동성명에 한국측에서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고은 시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382명이 동참했으며, 일본 측에서는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 오다가와 고 전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등 105명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에서는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 부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노암 촘스키 MIT대 교수 등 22명이 동참했으며, 유럽에서는 볼프강 사이퍼트 독일 하이델베르그대 교수, 박강성주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 교수 등 15명이 함께했다.

이날 성명 발표에 앞서 고은 시인은 "지성인들이 모여서 과거에 숨겨진 진실을 꺼내 미래를 만들어가는 실천적인 지성의 각성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고, 김영호 전 유한대학교 총장은 "이 성명에는 철학책 50권, 역사서 1백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고은 시인, 김영호 전 유한대학교 총장,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윤대원 서울대 연구원,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김창록 경북대 교수, 일본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 오다가와 고 전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등이 자리했다.

그리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라종일 전 주일대사, 이부영 국회의원 등 1백여 명이 함께했다.

[전문] 2015년 한일 그리고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
-동아시아의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의 지식인들은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기념의 해인 2015년에 동아시아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의 우려와 공통의 희망을 표명한다.

2010년 '한국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1000여명은 '한국병합' 과정이 불의부당하고 '병합조약' 또한 불의부당하다고 선언하고 이 조약이 당초부터 null and void이라고 하는,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대한 한국 측의 해석을 공통의 해석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다. 이 성명에 중국의 역사가 400여명이 지지를 표명하였다. 일본 정부는 이 성명에 응하여 2010년 8월 10일 칸 나오토 총리 담화를 발표하여, 식민지 지배가 한국 사람들의 뜻에 반하여 실시된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 때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2010의 약속, 2015년의 기대'라는 표어를 내걸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2010년의 바람과는 너무나도 역행하는 현상이다. 우파정치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미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해 논파된 거짓의 역사신화를 재생시켜, 일부 체제파 지식인과 보수파 미디어를 통해 확산시키고 있다. 아베 총리는 고노 관방장관 담화와 무라야마 총리 담화를 계승한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정부의 주변과 여당의 안에서는 두 담화를 공동화 시키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두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역사의 역류가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일본의 상황에 대한 주변국들의 비판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일 감정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정도로 높아졌고, 민족주의를 선동하여 민주화 움직임을 돌려놓고, 국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일부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사태의 악화를 보면서 실망하거나 침묵할 수는 없다. 역사가를 비롯한 지식인은 역사의 사실을 증언하고, 역사의 왜곡과 정치적 오용을 저지할 책임이 있다. 오늘날처럼 지식인의 책임이 중요한 때는 없다. 우리들은 역사의 역류현상에 대한 지식인의 무한 책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는 청일전쟁이 개시된 1894년부터 베트남전쟁이 종결된 1975년까지 80여 년간 전쟁의 연속이었다. 처음 50년간 일본은 한반도, 중국, 동남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을 이어갔고 태평양전쟁으로 귀결되었다. 그 후에는 미소냉전이 세계를 뒤덮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내전, 인도차이나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이 30여 년간 이어졌다. 미소의 냉전은 그 때로부터도 15년 정도 이어져 1991년에 와서 끝났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뿐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국가 간 분쟁 또한 끊일 날이 없었다. 동아시아의 이러한 120여년에 걸친 전쟁과 긴장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진정으로 반성하고 확실하게 학습하여 그 동안 사람들이 입은 피해와 고통을 치유하고, 화해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 중국의 경제대국화 및 군사적 정비와 일본의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노선 및 미국의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리밸런싱’전략의 연합이 대립하는 양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고, 특히 남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 주변 및 한반도의 휴전선에서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다. 120여 년간 계속된 전쟁과 긴장 이후, 또 다시 심각하게 군사적 충돌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우리는 도대체 이 지역의 인간과 문명을 근본에서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래가지고는 동아시아의 인민은 세계의 시민사회 속에서 명예로운 일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전후 냉전에 대응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틀 안에서 한일 간에는 식민지 책임을 물을 길을 잃어버렸지만 아베 정권은 신 미일동맹강화 전략의 틀 안에서 무라야마 담화 이래 진행된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노력을 역전시키려 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망상으로 끝날 것이다.

문명사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는 지금 150여년에 걸친 서양화의 긴 터널을 벗어나고, 20세기의 이데올로기 대립도 뛰어넘어, 스스로 아시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사의 입구에 서 있다. 20세기 후반 이래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고도산업화를 달성한 결과 약 9억의 중산층과 약 11억의 네티즌이 형성되었고, 그중에서 어떤 국가는 이미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달성하였다. 이제는 중국과 아세안 등도 각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시대가 잉태되기 전야에 이르고 있다.

수십, 수백억의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지금 동아시아의 수십억의 인민들이 중산층이 되고 네티즌이 되어 서로 교류하고 뒤섞이면서 서양을 바라보던 눈이 이웃을 바라보는 눈으로 바뀌고 있고 경제협력을 심화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Civil Asia 혹은 Peoples Asia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Civil은 시민 혹은 인민, 문민통치(civilian control) 그리고 신문명(New Civilization)을 의미한다. 이 Civil 혹은 인민은 국가의 거짓의 역사해석과 배타적 내셔널리즘의 선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국가로부터 상대적 자율과 과거사로부터 해방을 획득하고 시민 상호간 혹은 인민 상호간의 국경을 넘어선 교류와 연대를 일층 확대 심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과거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내재적 조건이 성숙된다. 위안부 문제가 지금처럼 부상한 것도 한국의 민주혁명의 결과이다. 이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아시아 민주주의 시금석이라고 믿는다. 때마침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의 지식인들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잇달아 발표하여, 역사의 하늘에 천둥이 이는 듯하다.

우리들은 미국은 동아시아의 또 하나의 전쟁 가능성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민주적 가능성에 회귀(回帰)하여 그 가능성을 지원하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국의 ‘아시아 리벨런싱’전략은 군산(軍産) 복합체 주도형이 아니라 평화산업과 시민사회 주도형이어야 하며, 과거 온존과 군비 확산의 길이 아니라 과거 극복과 군비 축소의 길이어야 하며, 중국・북한 배제형이 아니라 그 나라들을 포용하는 평화 협력형이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새로운 '총리의 담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베 담화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칸담화 등 지금까지의 일본정부의 역사문제 관련 담화를 계승 확인하는데서 출발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근린제국에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안부문제의 해결에는 신속히 나서기를 바라며 탄광에서의 강제노동의 사실은 멍확하게 인정하기 바란다. 세상에 좋은 식민지주의도 없고 좋은 전쟁도 없다. 그리고 미래는 과거를 덮어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청산하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아시아와 역사적 화해에 성공하는 담화를 기대하고 싶다.

과거사를 둘러싼 충돌이 내셔널리즘의 충돌로 이어지고 영토분쟁과 안보불안으로 확대되면,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된다. 과거회귀는 전쟁위기로 귀결되는 역사의 역류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과거가 현재를 볼모로 삼고 미래를 규정해버리는 현상을 발견한다. 동아시아의 과거를 둘러싼 역사인식의 다툼이 이성적인 도달점에 이르지 못하면, 이 지역에 갈등과 긴장을 초래하고 미래를 어둡게 만들게 된다. 이 역류현상을 외면하고 과거의 문제는 그대로 덮어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주장은 과거를 온존시켜 미래를 지배하려고 하는 음모이기도 하다. 과거는 공개하고, 사죄하고, 용서하여 극복되는 것이다. 현재를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미래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아시아의 ‘과거로부터의 자유’는 찬란한 ‘시빌 아시아’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다.

2015년 7월 29일

[자료제공-한일지식인 공동성명 발기위원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광복절 특사…? 억울한 사람부터 사면 복권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7/30 11:42
  • 수정일
    2015/07/30 11: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용택 | 2015-07-30 10:12: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교조 간판을 달았다는 죄목으로 재판 받기 전에 변호사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나 : “이러이러한 기사가 신문에 나왔던데요?” 
변호사 : “선생님은 신문에 나온 기사가 다 사실이라고 믿으세요?”

 <이미지 출처 : 좋은 교사>

충격을 받았다. 신문이 거짓말도 한다? 이해가 안 됐다. ‘학교선생이기만 했던…’ 세상물정을 모르던 순진한(?) 교사는 변호사님의 이런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당하고 경찰에 쫓기며 수배도 당하고 구속까지 되면서 세상이 그렇게 원칙이나 정의가 통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신문도 거짓말도 하고 판사들이 엉터리 재판도 하고, 심지어 장사꾼들이 사람 먹는 음식에 독약도 넣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세상에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을까? 필자는 곽노현 전 교육감에게 빚을 지고 있다. 온통 신문에 ‘곽노현 죽이기’로 도배를 하고 있을 때 적어도 진보적인 언론에 보도된 기사는 모두 진실이라고 믿었다. 찌라시들은 그렇다 치고 소위 진보언론을 표방하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까지도 ‘곽노현 죽이기’에 동참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그런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당시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 끝나고 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경쟁후보를 매수한 통상의 후보매수혐의’ (주된 기소)와 ‘사전에 후보매수를 하지는 않았으나 선거 끝나고 사퇴후보에게 대가성 돈을 줬다는 이른바 사퇴후보 사후매수혐의 (예비적 기소)’ 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검찰이 위의 두 가지 완전히 다른 행위를 동일한 법조항(선거법 제230조 1항 2호) 위반으로 기소했다는 사실 역시 알 턱이 없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그랬다. 그게 찌라시들의 힘이었고 진보적인 인사와 진보적인 언론의 한계였다. 필자도 당연히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곽노현교육감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발행했던 공범 중의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분위기는 그랬다. “곽노현, 당장 사퇴해야 합니다. 혼자서 교육감 된 건가요?” “법적 책임에 앞서 일단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진중권교수). 이런 분위기에서 법적 전문가가 아닌 필자라고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필자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을 지난 해 여름 김해에서 ‘징검다리 교육감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의 강연을 듣고 징검다리교육감을 읽으면서 그가 왜 서울시교육감에서 밀려나지 않으면 안됐을까 하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진보세력에게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시 곽노현 교육감이 추진했던 교육개혁은 권력의 눈으로 용납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었다. 그가 출마하게 된 것은 개인이 아니라 범시민후보 단일화로 출마해 당선됐고 거기다 그의 역점 사업을 보면 개혁이 아닌 혁명에 가까운 정책들이었다.

 

학교혁신과 책임교육의 주체는 교사입니다. 개별 교사에게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자율적 권한을 줘야 합니다.

자율성을 가진 교사가 반별로 학생을 평가하게 될 때 진정한 학교개혁이 실현됩니다. 특히 학급마다 평가방식이 다르고 평가시기가 다르다면 사교육이 학교에 파고들 여지도 없어집니다.

부자 아이는 없습니다. 가난한 아이도 없습니다. 부모가 부자거나 가난할 뿐 아이들은 누구나 가능성의 부자입니다. 무상급식은 아이들의 교육 복지권리입니다. 아동복지와 학교복지는 최대한 보편적 복지여야 합니다. 저소득층 아이만을 대상으로 삼는 선별적 복지는 시혜적 성격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저농약과 무농약, 유기농 재배를 하는 과정에서 전국 농촌이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재배된 친환경농산물을 각 학교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활기찬 유통혁명이 일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될 것입니다.

 

이런 정책이 수구정권이 용납할 수 있는 정책이었던가? 그들에게 곽노현이나 정봉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치 전교조가 두렵듯이… 결국, 그는 권력의 시녀로 자처하고 나선 검찰과 정의를 팽개친 재판부에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런 정책이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게 된다면… 그 영향력과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집권을 위해서는 마피아 짓도 마다하지 않는 권력이 아니던가? 살려둘 수 없는 교육감, ‘곽노현 죽이기’ 플랜은 이렇게 진행됐다.

1,2,3심 재판부는 모두 ‘통상적인 후보매수혐의’라는 주된 기소에 대해서는 100% 무혐의가 틀림없다고 판결하면서도 “후보를 사후에 매수한 죄”라는 듣도 보도 못한 범죄의 주인공으로 몰아 징역1년을 선고하고 곽노현 교육감의 지위를 박탈했다. 곽노현이 경쟁후보를 매수한 파렴치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100% 인정하고서도 이렇게 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자. 후보직을 사퇴하면 선거 끝나고 대가를 주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에 따라 사퇴후보에게 돈을 준 행위는 후보매수죄로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매수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퇴후보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선거 끝나고 재기를 도와준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그것도 통상적인 사후이행형 후보매수행위와 예외적인 사퇴후보 사후지원행위를 동일한 ‘사퇴후보 사후매수’ 법조항아래 동일한 법정형량(징역 7년 이하)으로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이해되는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1, 2, 3심은 모두 이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헌재 역시 사퇴후보에 대한 사후금품지급행위와 후보매수에 따른 사후지급행위를 동일한 법조항으로 규율하는 것과 그 두 행위를 동일한 법정형량으로 처벌하는 1,2,3심의 법해석을 5(합헌)대3(위헌) 합헌으로 판단했다. 이는 마치 살인행위와 과실치사행위를 동일한 구성요건아래 동일한 법정형량으로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사퇴후보를 선거 후에 매수할 수 있다는 비상식적 입법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해석으로 뒷받침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곽노현 판결은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판결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도 사후이행형 후보매수죄와 판이하게 구별되는 ‘사퇴후보 사후매수죄’란 죄목은 전 세계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비상식적인 죄목이다. 더욱이 60년도 넘는 선거사법역사에서 이 죄목으로 기소되고 처벌받은 경우도 곽노현이 유일하다. 재판부가 왜 곽노현 죽이기를 했는지는 알만하지 않는가?

815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경제인 사면’ 군불 떼기가 시작됐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일이지만 겉으로는 생계형 범죄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척 하면서 사실은 파렴치범이나 다름없는 재벌 오너들을 풀어주는 광복절 특사가 반복될 모양이다. 권력의 시녀노릇도 마다하지 않는 검찰과 사법부… 사회정의의 보루로서 사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비리 재벌의 사면 복권이 아니라 권력의 미운털이 박힌 억울한 희생자, 곽노현과 정봉주 같은 사람부터 사면복권해야 한다. 국민들을 속이고서야 어떻게 정의의 파수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7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린 음지에서 일하고..." 한눈에 보는 도감청 흑역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일의 공모결탁은 조선침략야망실현을 위한 것

  • [정치] 미일의 공모결탁은 조선침략야망실현을 위한 것
  •  

     

     

    조선중앙통신은 29일 <세기를 이어 계속되는 미일의 뿌리깊은 침략적공모결탁행위>를 게재했다.

     

    통신은 <오늘은 미국과 일본이 범죄적인 <가쯔라-타프트협정> 조작한지 110년(1905.7.29)이 되는 날>이라며 <조선민족의 운명을 흥정판에 올려놓고 미국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찍부터 조선반도를 아시아침략의 발판으로 정하고 공모결탁해온 미일이 아직까지도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세기를 이어 계속되는 미일의 뿌리깊은 침략적공모결탁행위

     

    오늘은 미국과 일본이 범죄적인 가쯔라-타프트협정을 조작한지 110(1905.7.29.)이 되는 날이다.

    조선민족의 운명을 흥정판에 올려놓고 제멋대로 유린롱락한 날강도적인 이 협정은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강점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비호하며 미국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조작된것이다.

    불법무도한 이 협정의 조작으로 조선인민은 흉악한 두 제국주의자들의 희생물이 되여 군사적강점과 식민지지배,분렬의 비극과 전쟁참화 등 온갖 치욕과 수난을 다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110년전에 감행된 미일의 뿌리깊은 공모결탁행위는 그후 세월을 두고 계속되였다.

    미제는 일제가 패망한후 관동군과 대본영의 작전장교들을 망라하여 력사연구협회》 등 비밀기관을 조직하고 극동침략전쟁계획과 북벌전쟁계획을 작성하도록 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다.

    일본은 조선전쟁시기 일본의 전 령토를 미제침략군의 출격,보급,수리,작전기지로 내맡기는것과 함께 저들의 무력까지 조선전선에 파견하였으며 악명높은 731부대 세균전전범자들로 미군의 세균전만행을 적극 뒤받침해주었다.

    그후에도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재침책동을 눈감아주고 각방으로 부추겼으며 일본은 미국의 대아시아지배전략에 편승하여 군사대국화책동을 벌리면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려고 발광하였다.

    최근에만도 미국은 국방전략보고서에서 일본에 주둔해있는 미해군의 력량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의 무력도 증강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일이 절대적인 군사적우세를 차지하도록 한다는데 대하여 숨기지 않았다.

    또한 미일은 동맹강화를 위한 각자의 역할확대에 대해 떠들어대며 1997년에 책정된 전쟁문서인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발표하였으며 미국은 일본이 추진하고있는 집단적자위권행사를 위한 헌법개정과 군사비증가 등을 적극 지지하며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

    제반사실은 일찍부터 조선반도를 아시아침략의 발판으로 정하고 공모결탁해온 미일이 아직까지도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발악하고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세계를 제패해보려는 몽상에 사로잡혀 동맹강화를 부르짖는 미국이나 일본은 침략적인 야합으로 얻을것이란 파멸뿐이라는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송재호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은미선생, 남북경협비대위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현장

신은미선생, 남북경협비대위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현장
 
 
 
주권방송 
기사입력: 2015/07/30 [00: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7월 29일 오전 10시 한겨레 신문사에서 진행된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현장영상.
이날 수상자는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의 저자 신은미 선생과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가 선정되었다.
신은미 선생은 입국 금지 상태로 곽성준씨가 대리수상하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망한 임씨 최초 발견자 국정원? ‘죽음의 미스터리’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친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이 복구한 자료를 믿기 어려워
 
임병도 | 2015-07-29 08:43: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정원- 해킹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직원 임씨가 사망했다. 임씨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이었고, ‘해킹 또한 임씨의 단독’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국정원이 임씨가 삭제된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임씨의 죽음 이외는 단서가 없다. ‘국정원 직원 임씨의 죽음’ 그 미스터리를 파헤쳐보자.

 

① 국정원 직원 임씨의 휴대전화는 왜 커져 있었나?

2015년 7월 18일 오전 10시 4분 국정원 직원 임씨의 부인은 119에 전화를 겁니다. 임씨의 부인은 ‘남편이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 새벽에 회사에 출근한다고 나갔는데 연락도 안 되고, 회사에서도 연락이 안 된다고’합니다. 119 접수 대원은 ‘저에게 위치 추적 접수를 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세요’라고 위치 추적 접수 과정을 알려주고, 임씨는 ‘경찰서로 가겠다’고 합니다.[각주:1]

임씨 부인이 119에 위치 추적을 요청한 이유는 단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임씨의 시신은 굉장히 빨리 발견됐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휴대전화였습니다.

기자: 보통의 실종 신고와 달리 이번 임씨의 실종사건은 신속하게 수사가 진행됐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이상원 경찰청 차장: 사건이 발생했으면 빨리 나가서 민원 해결을 하는 게 (경찰의) 목적이다. 또 휴대전화 전원이 커져 있어 추적되고 있었다.[각주:2]

우리나라 경찰이 휴대전화는 커져 있고, 연락은 되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빨리 위치추적을 해줄까요? 오히려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상황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단지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어렵습니다. 앞으로 휴대전화는 커져 있고 연락이 5시간만 되지 않으면 무조건 위치추적을 요청해도 될 듯합니다. 이미 경찰이 접수 받은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켜놓고 자살을 했다? 사망시각과 함께 임씨의 휴대전화 내역(접속했던 사이트나 어플, 실행했던 프로그램 등)을 정확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② 국정원 직원 임씨 부인은 왜 신고를 취소했나?

국정원 직원 임씨의 부인은 10시 4분에 119에 위치추적을 요청합니다. 10시 25분쯤 용인동부경찰서 동백파출소를 방문해 ‘부부싸움을 하고 나가 연락되지 않는다’며112에 위치추적을 요청합니다.[각주:3] 10시 30분, 소방서에서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 34번지’라는 위치추적 결과를 임씨 부인에게 통보합니다.

10시 31분, 임씨 부인은 동백파출소 안에서 112에 위치추적를 취소해달라고 합니다. 이유는 ‘남편이 갈 만한 데를 한번 가보려고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112에 부부싸움을 이유로 신고했던 부인이 막상 휴대전화 위치 결과가 나오자 갑자기 남편이 갈 만한 데를 한번 가보려고 한다'고 취소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인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34번지에 갔을까요?

③ 국정원은 이미 임씨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10시 31분,임씨 부인은 ‘화산리 34번지’를 찾아가겠다며 경찰에 위치추적을 취소했습니다. 11시 15분, 임씨 부인은 현장출동 요원의 요청이라면 119에 위치추적을 재요청합니다. 흔히 현장 출동요원이 찾기 힘든 경우 119지령실에 다시 위치추적을 요청하는 경우는 있어도, 부인이 직접 재요청을 하는 일은 드뭅니다.[각주:4]

처음 119의 위치추적 결과가 나온 뒤 임씨의 부인은 왜 위치추적을 재요청했을까요? 과연 임씨 부인은 과연 누구와 함께 있었을까요?

두 번째 위치추적 결과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77번지’입니다. 처음 위치와 직선거리는 500미터이지만, 자동차로 가려면 돌아가기 때문에 약 1,2km 떨어진 위치입니다. 임씨의 시신은 화산리 77번지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휴대폰 위치추적의 변화, 그 핵심은 '국정원 자체 위치추적 장치'입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보유한 휴대전화에는 국정원의 위치추적장치가 깔려있습니다. 국정원도 임씨가 용인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④ 국정원 직원 임씨의 최초 발견자는 국정원이었나?

국정원은 임씨의 위치를 알고 있었는데도 임씨 부인을 시켜 119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요청했습니다. 국정원은 직원을 출동시켜 소방대원과 함께 임씨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이 장치(국정원 자체 위치추적장치)를 통해 임씨가 용인저수지 인근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용인에 사는 국정원 직원을 보내 소방대원과 함께 임씨를 찾았다’ (국회 정보위 신경민 의원) [각주:5]

국정원은 왜 연락이 되지 않는 직원을 찾는다고 부인을 시켜 119에 위치 추적을 요청했을까요? 국정원은 자체 보유한 위치추적 장치로 임씨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설마 119에 연락을 할 정도로 국정원의 사람 찾는 능력이 없었을까요?

국정원은 소방대원과 함께 임씨를 찾은 뒤, 경찰이 오자 자리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사망했는데 왜 경찰에게 맡겼을까요? 공정한 수사를 위해? 아니면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⑤ 시신 위치가 바뀌었다?

국회가 처음 받은 보고서에는 임씨의 시신이 ‘차량 보조석 뒷좌석’에서 발견됐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보고서에는 임씨의 시신이 ‘차량 운전석’이었다고 바뀌었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용인소방서가 경기도소방본부에 보고한 1장짜리 보고서 내용을 착각해 작성했다“며 “실제 출동한 대원들과 통화해 내용을 확인하다 잘못된 사항을 발견해 수정했다”고 밝혔습니다.[각주:6]

국민안전처가 보고서를 읽지 못할 정도로 한글을 몰랐거나 출동한 대원이 보고가 시신 위치가 잘못 기재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망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시신 위치를 파악조차 못 할 정도로 조사는 허술했습니다.

⑥ 장례 하루 만에 폐차된 마티즈

국정원 직원 임씨가 탔던 마티즈 차량은 7월 21일 장례식 바로 다음 날인 22일 폐차됐습니다. 시신 위치나 번호판 논란이 있는데도 폐차됐습니다.[각주:7]

도대체 누가 마티즈 차량을 폐차시켰을까요? 장례 다음날 유족들이 씩씩하게 복잡한 서류를 준비해 폐차를 시켰나요? 직계 상속인 즉 임씨의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이 폐차를 시키기는 힘들었습니다. 사망 신고 전에 인감도장 등의 위임장을 작성하는 방식도 힘들고, 각종 서류도 가족 이외에는 힘듭니다.

친척이 폐차를 시키려고 해도 보통 며칠이 지나야 하는 사례를 놓고 본다면, 마티즈 차량의 폐차는 분명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고 봅니다. 정확하게 누가 서류를 접수했는지 보면 이 의혹은 금방 해소될 것입니다.

⑦ 국정원 직원 임씨의 죽음에 감춰진 국정원 시스템

국정원 직원 임씨는 국정원-해킹팀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난 4월 승진과 동시에 대전으로 전출됐습니다. 7월 국정원-해킹팀 사건이 불거지자 임씨는 임시 파견 형식으로 국정원 본부로 왔습니다. 임시 파견 나온 직원이 국정원 자료를 삭제할 수 있었다면 국정원의 허술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정원 임씨가 사용했다는 ‘devilangel1004@gmail.com’ 관련 메일은 2015년 6월 4일에도 나옵니다. 국정원 직원 임씨가 대전에 가서도 계속 국정원-해킹팀 업무를 관리했다고 봐야 합니다. 만약 그가 업무를 맡지 않았다면 도대체 누가 메일을 보냈을까요?

아이엠피터가 임씨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친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이 복구한 자료를 믿기 어렵고, 정확한 자료을 알기는 이번 정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임씨의 죽음이 모든 것을 덮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무조건 죽지는 않습니다. 자살이라고 왜 죽었는지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임씨의 죽음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왜 아이엠피터의 눈에는 볼 수 있는 비상식적인 모습에 대한 정확한 결과를 정부는 알려주지 않을까요?

‘믿습니까?’
‘믿습니까?’
아이엠피터는 못 믿겠습니다.


1. 자살한 국정원 직원 부인 위치추적 신고 취하 왜? 세계일보. 2015년 7월 27일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7/26/20150726003003.html 
2. 자살 국정원직원 부인 신고 당시 "부부싸움 하고 나갔다" 뉴스1 2015년 7월 20일.
http://news1.kr/articles/?2336905 
3. 임씨 부인은 119와 112에 각각 신고 이유를 다르게 설명했다.
4. “로그파일 등 자료 국정원 오면 공개” 세계일보 2015년 7월 27일.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7/27/20150727004495.html 
5. 숨진 임씨 휴대폰에 위치추적장치 있었다. 한겨레 2015년 7월 27일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02077.html?_ns=r2 
6. 자살한 국정원 직원 부인 위치추적 신고 취하 왜? 세계일보. 2015년 7월 27일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7/26/20150726003003.html 
7. ‘바꿔치기 논란’ 국정원 임씨 마티즈, 22일 폐차돼 한겨레 2015년 7월 23일.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1655.html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6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핵 소형화 다종화는 오래전" 강조

북, "핵 소형화 다종화는 오래전" 강조
 
주중조선대사 "핵동결 포기 전혀 관심없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8 [15: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주중 조선대사가 핵보유국임을 강조하며 "우리(조선)의 핵 타격 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다종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는 28일 단독으로 중국 주재 조선 대사가 북의 핵보유를 주장하면서 일방적인 핵포기를 거부하고 6자회담 불발 원인을 미국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재룡 주중 조선대사는 28일 중국 베이징) 조선 대사관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을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먼저 핵을 동결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논하는 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재룡 대사는 회견에서 "우리의 핵 억제력은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핵위협과 적대시 정책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날로 더해가는 핵전쟁 침략 위협에 대처해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는 것은 우리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며 "우리는 이미 핵 보유를 법화(법제화)했고 우리의 핵 타격 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다종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라고 주장했다.

 

지 대사는 "대화가 열리지 못하는 기본 원인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있다"며 
6자회담 등이 열리지 못하는 원인도 미국 탓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으로 한반도 정세가 격화되고 있다"며 "미국은 앞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하자고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뒤에서는 우리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북침 핵전쟁 연습을 비롯한 각종 음모·책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미국은 1950년대부터 남한에 핵무기를 끌어들여 세계 최대의 핵무기 전초기지로 만들었고 남조선과 함께 해마다 각종 북침 합동 군사연습을 발광적으로 하고 있다"며 한미의 합동 군사훈련과 작전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지재룡 대사는 "미국의 속셈은 한반도의 긴장을 오랫동안 유지함으로써 우리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아태 재균형 전략을 심화시키려는데 있다"고 미국의 제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또 "미국이 우리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부각시키는 것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남조선에 끌어들여 아무 때나 우리나라와 주변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우리는 대화재개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미국은 대화가 못 열리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섯 살 딸의 질문 "아빠, 강정까지 왜 걷는 거야?"

 
[언론 네트워크] 좌성훈 씨 "부끄럽지 않는 아빠 되고파"
 
 

다른 지방에 사는 오랜 친구의 한 마디가 제주 토박이의 폐부를 찔렀다. 그는 곧바로 서귀포시 강정 마을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훑어봤다. 그리고 직접 강정 마을을 찾았다.

그가 마주한 강정 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의 고통과 상흔이 가득했다.

좌성훈(34) 씨는 아내 고경선(35) 씨와 세 자녀 민서(6·여), 민혁(3), 그리고 생후 7개월의 민지 양과 함께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가했다. 민지 양은 이번 평화대행진의 최연소 참가자다.

좌 씨가 걸음마도 떼지 못한 딸까지 데리고 평화대행진에 참가한 이유는 하나다. 아이들이 '능동적'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 좌성훈(왼쪽) 씨가 세살배기 아들 민혁 군을 안고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강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당시 육지에 살고 있는 친구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강정 마을에 '큰 일'이 있어 반대 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간다"고 말했다.

좌 씨는 "강정 마을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친구는 "넌 제주도민이 어떻게 강정 해군 기지 상황도 모르냐"고 면박을 줬다.

당시 좌 씨는 제주도민보다 오히려 타 지역 사람들이 강정 마을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후 좌 씨는 강정 마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좌 씨의 아내 고경선(맨 왼쪽) 씨가 큰 딸 민서 양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유모차에는 생후 7개월된 막내 민지 양이 타고 있다. 또 다른 참가자가 고경선 씨를 대신해 유모차를 끌고 있다. ⓒ제주의소리

 


좌 씨가 평화대행진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비영리 단체에서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그는 지난 2012년 대학생 몇몇과 평화대행진에 참가했다.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했다.

큰 딸 민서 양은 평화대행진(7월 27일~8월 1일) 참가 전날만 해도 '캠핑'을 가는 줄 알고 무척 신났단다. 하지만, 민서양의 캠핑(?) 장소는 온종일 땡볕에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

힘에 부친 민서양은 아빠에게 "아빠, 근데 왜 강정까지 걷는 거야?"라고 물었다.

 

▲ 엄마 고경선씨의 손을 잡고 걷던 좌민서 양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잠시 고민하던 좌 씨는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 허락 없이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온다고 해서 걷는거야."

민서 양이 다시 물었다. 

"마을 사람들 허락이 없었는데, 왜 군인들이 들어오는 거야?"

좌 씨는 "그래서 반대하는 거야. 반대하기 때문에 걷는 거고"라며 "그러니까 민서도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열심히 걷자"라고 다독였다.

민서 양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말없이 걸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좌 씨는 그런 큰 딸이 대견스러웠다.

좌 씨는 기독교를 믿는다. 교회를 가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강정 마을을 지날 때마다 자연스레 회개 기도를 하게 된단다.

"강정 마을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요. 아이들과 조금 걷는다고 큰 힘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민서⋅민혁⋅민지 세 남매는 너무 어려서 나중에 크면 평화대행진에 함께했던 사실 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 

좌 씨에게 세 남매가 어른이 된 후 평화대행진에 대해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 줄 것이냐고 질문했다. 

"부모로서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았어. 강정 마을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강정 마을 주민들을) 응원했단다. 너희들이 직접 보고 배웠으면 했어.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랐단다. 수동적인 인생은 옳지 못하단다. 불합리에 맞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길."

 

 

 

ⓒ제주의소리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쟁무기 탄저균은 한반도에 필요없다

겨레하나 회원들의 평화행동 전국에서 벌어져
권순영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07.28  18:21:41
페이스북 트위터

정전 62년이 되는 7월 27일,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회원들이 "전쟁무기 탄저균은 한반도에 필요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주변 이웃과 직장동료들에게 배달하였다.

시민들에게 전달된 편지는 2001년 미국 의회로 극소량의 탄저균이 편지로 배달되어 목숨을 앗아갔던 사건을 패러디해 택배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우리 국민 몰래 택배로 배달받은 주한미군을 규탄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 회원행동에 사용된 탄저균 내용이 담긴 편지.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직장동료들의 책상으로 편지를 배달한 노동자겨레하나 강병찬 회원은 “편지를 주변에 전달하는 행동자체는 즐거웠지만, 안에 담긴 내용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세균무기 실험실은 당장 폐쇄되어야 하지 않나”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 자신의 이웃들의 우편함에 편지를 꽂은 한 회원은 “탄저균은 소량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한 무기인데, 우리 국민들 몰래 우리나라 땅으로 들어온 것이 화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길 바란다”고 말했다.

   
▲ 겨레하나 회원의 편지를 전달받은 직장동료.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우체통에 편지를 배달.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겨레하나 회원들의 이번 행동은 전국 각지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서울에서는 “2015년 오산미군기지에 ‘이것’이 들어있었다“라는 대형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편지유인물을 나눠주었고, 부산에서는 대국민자존심세우기프로젝트 ”당당하라 코리아“ 운동을 상징하는 당당맨들이 방역복을 입고, 탄저균이 들어있는 택배박스를 들고 있는 퍼포먼스가 부산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경남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동료들에게 치사율 95% 탄저균 반입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이 진행되었다. 연설을 한참 듣던 한 시민은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냐” “더 열심히 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대전에서는 ‘탄저균 불법반입 미군 고발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시민들을 만났다.

   

▲ 노동자겨레하나, 시민들에게 탄저균내용의 편지를 전달하는 모습.[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서울겨레하나, 대형 편지피켓을 들고 있는 회원.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서울대학생겨레하나,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부산겨레하나, 당당하라 코리아! 운동의 당당맨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부산겨레하나, 탄저균 택배박스 퍼포먼스.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경남겨레하나, 점심시간을 이용한 캠페인.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창원대 겨레하나, 학내에서 캠페인 진행.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창원대 겨레하나, 학생들에게 리플렛을 나눠주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 대전겨레하나, 미군범죄 고발을 위한 서명운동 진행. [사진-통일뉴스 권순영 통신원]

평화행동을 마무리하며 겨레하나 이용헌 대외협력국장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2년이라는 것은 전쟁상태로 62년이 흘렀다는 말과 같다. 이미 한반도에는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수많은 무기들이 들어와 있지 않나. 특히 세균무기는 핵무기처럼 아군과 적군이 동시에 피해를 입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세균무기도, 세균실험실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 겨레하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탄저균 반입사건 또한 한국정부와 주한미군이 진상을 규명하고, 반입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원세훈의 악명? 권영해에겐 못 당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7/29 08:22
  • 수정일
    2015/07/29 08: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당의 나까프 ⑤]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 동일시한 정보기관 수장의 최후

15.07.28 16:55l최종 업데이트 15.07.28 17:15l

 

 

'김당의 나까프'에서 '나까프'는 '나쁜X 까발리기 프로젝트'를 줄인 말입니다. 여기서 'X'는 '놈'일 수도 있고, '짓'일 수도 있습니다. '나까프'의 대상은 공인 중의 공인인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급 공직자들입니다. 나아가 무력을 가진 군과, 공권력을 가진 이른바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그리고 갈수록 힘이 세지는 대기업 회장들도 당연히 '나까프'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경계'를 알 수 없는 나쁜X놈들 전성시대. 영화 <무간도>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 김당

관련사진보기

"국정원에 30여 년간 있으면서 '도청하지 말라, 월권하지 말라, 정치사찰 하지 말라, 신분 노출하지 말라'는 이 네 가지 얘기는 항구여일(恒久如一) 들었던 것이다. 어느 원장도 이 얘기를 안 한 사람이 없지만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감청보고서는 위로 올라갔다."

임동원 국정원장 시절(1999.12~ 2001.03) 국내 담당 차장을 지낸 김은성 전 차장은 미림팀 사건(X-파일)으로 불거진 국정원 불법 감청 사건 당시 법정에서 역대 원장들의 도청 근절 지시와 관련해 이렇게 증언했다. 역대 원장들은 모두 도청-정치사찰 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실무 단위에서는 불법감청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도청은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제3공화국 이래 고질적으로 저질러진 국가범죄다. 현장에서 직접 '표적'을 도청한 안기부 미림팀은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에 운용되다가 김대중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해체됐다. 불법 도·감청의 최대 피해자인 김대중은 누구보다도 정보기관의 정치사찰을 금기시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당시 필자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불법 도·감청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외교안보수석 시절부터 국정원장 보고에 배석할 때부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내가 국정원장에 부임할 때도 그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실무 단위에서는 불법감청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났다.

김영삼 정부, '통비법' 만들고 도청 '미림팀' 재건
 
기사 관련 사진
▲  김영삼 대통령(맨오른쪽)이 1995년 1월 20일 청와대에서 안기부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그 오른쪽은 권영해 부장, 정형근-이병호 차장, 김기섭 기조실장순이다.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국정원의 도청은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제3공화국 이래 고질적으로 저질러진 국가범죄다. 이런 고질적인 범죄를 예방하고 국민의 통신비밀과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12월부터 시행된 '통신비밀보호법'이다. 통비법을 만든 김영삼 정부에서 미림팀이 재건된 것은 위법과 탈법을 관행으로 간주하는 정보기관의 오랜 폐습이다.

국정원의 한 전직 고위 간부는 "통비법 시행 이후에 모든 부장이나 원장이 불법감청 근절을 지시했지만 그건 일종의 관행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장이 불법감청 근절을 지시하면, 위에선 으레 그렇게 말하고 아래서는 악역을 행하는 것을 비밀정보기관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법감청 사건 재판부는 그것이 비밀정보기관의 업무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불법인 이상 책임자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정보기관 수장이 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법활동을 지시하면 어떻게 될까? 정보기관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인 만큼 직원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활동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권영해와 원세훈이다.

권영해 안기부장(1994.12~1998.03)과 원세훈 국정원장(2009.02~2013.03)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우선 두 사람은 이른바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권영해 부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육사(15기) 졸업 후 중장으로 예편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장관에 기용됐다가 다시 안기부장을 맡을 만큼 YS의 신임을 받았다.

원세훈 원장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해 초임 사무관 시절 강원도청에 근무한 것을 제외하곤 주로 서울시에서 28년을 근무했다. 이명박 시장 시절 부시장을 지낸 인연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행자부 장관에 기용되었다가 국정원장을 맡을 만큼 MB의 신임이 컸다. 역대 최초의 '군 미필 대통령'이 임명한 역대 최초의 '군 미필 국정원장'이었다.

권영해-원세훈, 개인비리로 구속된 정보기관장
 
기사 관련 사진
▲ 권영해-원세훈 비교 권영해 안기부장과 원세훈 국정원장의 비교 표
ⓒ 김당

관련사진보기


두 사람은 또한 각각 안기부장과 국정원장 재직 중의 개인비리로 구속된 '유이'한 정보기관장이다. 권씨는 안기부장 시절 안기부 자금 10억 원을 빼돌려 기업인을 통해 동생에게 주도록 한 혐의(횡령죄)로 2004년 기소돼 이듬해 징역 2년형이 확정되었다. 원씨 또한 국정원장 시절 건설업자로부터 1억7000만 원대 금품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1년 2개월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은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를 동일시해 정보기관을 사유화했다는 점이다. 권씨는 안기부장 재직 중에 북풍(北風), 총풍(銃風), 세풍(稅風) 등 '3풍 사건'에 모두 관련된 유일한 공직자다. 원씨 또한 개인 비리와 심리전단 동원 댓글 공작에 이어 불법 해킹 사건까지 관련된 '비리 3관왕'이다.
 
기사 관련 사진
▲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로부터 지난 1997년 대선직전 발생한 '총풍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북풍-세풍 사건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권씨는 아말렉 공작(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재미교포 윤홍준에게 20만 달러 제공해 거짓 기자회견 사주)과 오대산 공작(월북한 오익제 편지를 활용)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1, 2심 모두 5년형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사법처리 과정에서 문방구 칼로 배를 가르는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권씨는 또한 1997년 대선 전에 공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또한 역대 국가정보기관 수장 중에서 유일하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권씨는 1997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의 무력시위를 요청한 혐의로 기소된 한성기씨 등의 범행을 보고받고도 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은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직무유기)로 기소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한씨 등 3인이 북한 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돌출행동으로 보인다며 권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도 권씨는 역대 안기부장-국정원장 중에서 징역형만 7년 8개월을 선고받은 '최장기수'다. 실정법을 어긴 범죄의 양형을 기준으로 하면 권영해는 역대 최악의 안기부장인 셈이다.

'권영해 지시'와 '원세훈 지시'는 판박이
 
기사 관련 사진
▲  .
ⓒ 고정미

관련사진보기


"사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하고는 같이 일할 수 없지 않은가." - 1997년 12월 10일

"어쨌든 선거에는 (야당이) 단일화해라 하는 게 북한의 지령이라고, 북한 지령대로 움직이는 건 결국은 뭐 종북 단체 아니냐." - 2010년 4월 16일

위 인용문에서 전자는 권영해의 지시를 전달한 '부장님 부서장회의 지시사항'의 일부이고, 후자는 원세훈의 지시를 전달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의 일부이다. 10여 년의 세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의 인식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판박이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후보와 정당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종북' 딱지를 붙였다

권영해는 부서장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한나라당 후보 지원을 위한 귀향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대선 직전인 1997년 12월 11~17일 사이에 철저한 보안 유지 하에 영남-충청지역 출신 직원 200여 명을 선발해 1인당 10만~100만 원씩 여비를 지원해 2~3일간씩 귀향해 한나라당 후보 지원활동을 하도록 했다. 김대중을 색깔론으로 공격하고 이회창 후보를 띄우는 일종의 '구전홍보단'을 운영한 것이다.

특히 당시 임경묵 102실장은 간부회의에서 노골적으로 "사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영남지역에서 압도적 지지가 필수적이다"고 지역감정까지 부추기면서 주말을 이용한 귀향 선거운동을 독려했다. 102실의 위장명칭은 대공정책실이지만 국내 부서 중에서 규모가 큰 국내 정보 수집부서다.

이른바 초원복국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 PK(부산·경남) 출신 김기춘을 연상케 한다. 역시 PK(부산·경남) 출신인 임 실장은 북풍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를 원세훈 원장 시절에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으로 기용했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으로 위기에 처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임씨를 발언의 출처로 지목한 바 있다.

원세훈,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기사 관련 사진
▲ 원세훈 항소심 징역 3년 실형...법정구속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변호를 맡은 이동명 변호사와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원세훈은 국정원의 사이버 심리전단 직원 70여 명을 동원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구전홍보단'을 운영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수상쩍은 행동에서 비롯된 국정원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서 밝혀진 사건의 전모를 보면, 심리전단 직원들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면, 야당 국회의원과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원세훈은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을 통해 정치활동에 관여하고 국정원장 직위를 이용해 2012년 대선 등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4년), 2심에서 징역 3년(법정구속)을 선고받았으나 3심에서 파기환송(공직선거법 위반혐의)됐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원씨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원씨 측이 청구한 보석 신청도 기각했다.

원씨에게 파기환송심 변수는 있지만, 현재까지 개인비리 1년 2개월을 포함해 징역 4년 2개월을 '예약'해 놓았으니 '중장기수'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발로 국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불법해킹 프로그램의 구입-유포에 관여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가 추가됐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원씨가 미소를 지었다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원씨는 2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에 신변보호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2심 선고공판에 출정할 때 선글라스에 빨간 모자를 쓴 우익단체 회원들이 호위무사 역할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호위에도 불구하고 원씨는 법정구속되었지만... 권영해씨는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대한민국 건국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로는 '역대 차악'인 원세훈이 '역대 최악'인 권영해를 추월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전직 안기부장, 대한민국 법원에서 개인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은 국정원장이 보수의 아이콘 행세를 하는 것은 '경계'를 알 수 없는 한국 보수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만금, 돈 보다 우선하는 것은 사람과 자연이다

 
 
[새만금 팸투어 후기] 새만금의 광할함이 준, 무거운 두 가지 숙제
 
임두만 | 2015-07-27 14:52: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7월 24일, 전라북도의 현안이던 새만금특별법(새특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따라서 그동안 여러 걸림돌로 정체되어 있던 새만금 사업이 효율성있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이번 개정안은 전북도가 요구한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를 정비하면서, 투자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새만금 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사업 체계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날 개정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우선 국무총리 소속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이 설치된다. 또 외부 투자기업 및 협력기업에게 세제 및 자금지원이 이뤄진다. 토지용도도 8개에서 6개로 수정되며, 공유수면은 새만금청장이 관리한다. 그리고 특수목적법인 설립 시, 사업시행자 지정요건이 완화되며, 인허가 등 의제 시 수수료 면제도 가능하다. 특히 관광용도 개발지에 설립될 외국인전용카지노업은 사전심사제를 통과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은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전주 완산을)이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 설치를 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리고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가 관보를 통해 공표하면 이 법안은 생명을 갖게 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전라북도 관계자는 “이번 새특법 개정으로 새만금사업지역의 규제완화로 투자기업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는 한편 다른 개발특구와 차별화 된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됐다”고 반겼다. 그는 또 “국내외 기업의 투자촉진으로 새만금 사업을 조기에 가시화할 수 있어 속도감 배가 및 향후 동북아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새만금 방조제 ©임두만

이처럼 국회에서 새만금의 미래를 결정할 법안이 통과된 날 기자는 ‘새만금 답사기행’이라는 행사에 참여했다. 1991년 11월 16일에 기공하여 2006년 4월 21일에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고, 보강 및 성토작업 등을 거쳐 2010년 4월 27일 준공된 새만금 사업. 그동안 전라북도는 새만금 간척지를 두고 토지용도 등에서 의견이 엇갈린데다 ‘새특법’의 규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므로 사업진척이 지지부진하자 전방위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섰다.

그중 한쪽이 정치권의 새특법 개정안 처리, 다른 한쪽은 언론홍보… 전라북도는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 트랙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진행된 것이 ‘서울경기지역 언론인 새만금 팸투어’란 행사. 하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기 전 날 JTBC는 새만금 물막이 공사 후 생긴 문제점들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보도에서 JTBC는 “수산물의 보고라 불렸던 새만금호가 ‘죽음의 호수’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오염에 해양 생명체들이 사라지고 인근 주민들이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새만금 방조제 안과 밖을 찍은 카메라는 오염의 실태를 여과없이 보여주면서 이 때문에 해양 생물이 자취를 감추고 풍성했던 조개류는 모두 죽어버린 현장을 고발했다.

이런 보도를 접한 뒤인지라 기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완료한 지 10년. 33.9km 세계 최대 규모의 방조제 건설로 거대한 '새만금호'가 생겼으므로 이제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이를 통하여 새만금 인근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꽃’이 피어야 하는데. ‘꽃’ 대신에 ‘오염’, 이익 대신에 골칫덩이라는 소식은 가벼운 발걸음일 수 없게 했다.

▲비가 내라는 새만금 호수 © 임두만

무거운 발걸음을 아는지 날씨도 우중충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일행을 태운 버스는 오후 2시 경 새만금 간척지 중 농업용지로 분류된 지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돌아 본 땅과 호수는 ‘광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엄한 호수가 도로 양쪽으로 펼쳐져서 순간적으로 어느 쪽이 바다이고 어느 쪽이 호수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였다.

만약… JTBC의 오염 보도를 접하지 않았다면 이 ‘광대’함에 넋이 나가서 감탄사만 연발할 그런 장엄함이었다. 그래서 이런 거대한 땅과 호수를 어떻든 우리의 후세에게 유익한 자원으로 물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오염원을 찾아내 제거하고 다시 오염되지 않도록 막으므로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모든 사고를 지배했다.

기자가 탄 버스는 빗길을 뚫고 방조제 가운데 있는 신시 배수갑문 전망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광경 또한 장관이었다.

새만금 33.9km의 방조제 공사는 부안에서 군산까지 서해안의 작은 섬들을 연결하는 방조제 둑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은 뒤 생긴 땅을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거대한 토목공사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의 광경이었으므로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신시배수갑문 ©임두만

가는 곳마다 새만금의 효용가치를 설명하는 많은 안내원들의 열정이 아니라도, 곳곳에 놓인 홍보물, 전라북도에서 발간한 홍보 책자와 각종 부로슈어를 통해 새만금을 두고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들이 투자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민관이 합세, 이 새만금에서 생긴 새 땅과 호수가 우리 민족에게 제대로 된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관계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 또한 당장 개인의 이익과 영달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위해 작은 고통은 참으면서 새만금이 말 그대로 ‘새롭게 만금(萬金)’을 얻을 수 있는 약속의 땅이 되도록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들은 벌써 곳곳에서 결과물들로 나타나고 있었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비단을 짜는 베틀 ©임두만

변산 채석강 격포 위도 곰소항 등으로만 떠올랐던 부안은 뽕나무와 누에라는 특성화 사업에 매진, 상당한 성과물을 올리면서, 천혜의 관광자원인 변산 채석강 격포 위도 곰소항 등과 새만금을 연계하는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 그 강들과 어울러진 평야의 지평선, 조정래의 아리랑에서 징게멩겡으로 불리운 김제평야와 만경평야… 이 광할한 평야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쌀을 수탈하려는 왜적들의 등쌀에 밀려 디아스포라를 했던 사람들… 김제시는 이를 모티브로 아리랑 문학마을, 지평선 축제 등으로 이미 상당한 관광자원을 축적했다.

▲김제시가 조성한 아리랑 문학마을에 있는 하얼빈 역… 김제사는 고증에 의해 실제 하얼빈 역사의 80%크기로 이 역사를 지어 그 안에 독립운동사를 전시하고 있었다. © 임두만

군산은 일제가 수탈한 김제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낸 현장이다. 그래서 군산시는 이를 근거로 근대박물관를 지어 이 수탈의 역사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개관역사가 짧음에도 전국의 수많은 국공립 박물관 가운데 5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되었다는 현수막이 박물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군산시가 자랑하는 근대사 역사박물관… 자녀와 꼭 한번 답사가 필요한 곳이다. © 임두만

결국 이것들 모두는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그 숙제의 처음은 새만금호를 오염에서 구하는 것이며, 그래서 새만금 방조제 안과 바깥 모두 웃음을 찾아줘야 한다. 우리는 이미 죽은 시화호를 살려 낸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제 시작인 새만금 호수를 오염이라는 적으로부터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숙제는 정치권이 법으로 길을 열었으므로 이제 집행부가 원할한 행정집행을 통해 애초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장밋빛 계획은 중요하지 않다. 그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는 것이 주요하다. 농생명용지, 산업연구용지, 환경생태용지, 관광레져용지, 국제협력용지, 배후도시용지 등 이름 붙여진 그대로 활용되어 우리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야말로 엘도라도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 두 가지 숙제가 제대로 이뤄지면 새만금은 그야말로 세계적 관광자원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새만금을 끼고 있는 전라북도와 인근 군신 김제 부안 등 자치단체에는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땅이 될 것이다. 장맛비가 내리는 1박2일의 ‘새만금 팸투어(답사기행)’후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6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현장 취재 파리 에어쇼

현장 취재 파리 에어쇼

김종대 2015. 07. 27
조회수 784 추천수 0
 

  6월 중순에 개최된 이번 파리 국제어어쇼에는 주최국인 프랑스의 라팔과 마라지 전투기를 제외하고 유로파이터, F-15와 같은 현대 전투기나 공중급유기의 실물이 거의 전시되지 않았다. F-35 역시 모형을 전시할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되지 않아 예전의 에어쇼에 비하면 마치 전투기들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세계 군용기 시장 축소에 따라 보잉, 록히드마틴, EADS, BAE 등의 전투기 완성품 제조업체가 일제히 에어쇼 참가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4년 전에 파리 에어쇼에서는 전투기와 민항기의 완성품의 경연장이었다면 올해 에어쇼는 각종 중간제품과 구성품, 소재, 체계통합, 전자전과 같은 기술 전시가 대세를 이룬다. 완성품에 연연하지 않고 기술 그 자체를 확보하려는 흐름으로 항공 산업의 판도가 전환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항공기 개발과 운영유지 전반에 참여하는 종합 컨설팅 업체의 부스가 상당부분 눈에 띈다는 점도 예전과 달라진 현상이다.
                                          
 미러 신냉전의 전운 분위기

 

   파리 국제 에어쇼는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충돌을 예견하는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에어쇼가 개최될 무렵인 6월 15일에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이 영국에 전술 핵미사일과 첨단 미사일을 재배치하는 검토하고 있다”며 “약 3000~5000명의 미군이 유럽에 증강하는 방안이 검토 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에어쇼 3일째인 6월 17일의 <쇼 뉴스>에 소개된 유럽에 전개된 미군의 항공 전력은 영국에 B-2와 B-52의 폭격기, 이탈리아에 무인항공기에 의한 감시정찰 전력(ISR), 키프로스에 U-2 정찰기가 그 핵심이다. 여기에다 최근 러시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A-10과 F-15를 유럽 동맹국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 전개하고, 현존하는 최고의 스텔스 전투기로 알려진 F-22 랩터를 유럽에 상시 주둔하는 방향으로 미 공군 장관이 유럽과 협의 중”이라는 소식도 전했다. 더불어 미국의 공군 장관은 폴란드에도 추가 전력을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양자 협의를 위해 폴란드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매체는 다른 지면에서 6월 14일에 스웨덴 미첼 바이든 장군이 에어쇼에 참석한 자리에서 “발틱 해에서 러시아의 고조되는 위협에 직면한 스웨덴은 그리펜 전투기와 항공 및 지상레이더 시스템의 효용성을 제고하고 있다”며 스웨덴의 지상 및 항공 군사훈련도 대폭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필자가 에어쇼에 도착하기 이전인 4, 5월 경에도 미국은 “덴마크에 미사일방어를 위한 X-밴드 레이더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러시아는 “코펜하겐이 러시아 핵미사일의 표적이 될 것”이라며 맞대응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러시아 압박에 대해 “약 60여기의 핵 미사일을 동유럽에 전진 배치하겠다”며 미국과 핵 미사일 경쟁을 불사하는 강경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의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경제제재를 이미 실행 중에 있고 유럽을 군사화하여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에어쇼의 또 다른 소식지 <플라잇(FLIGHT)> 역시 6월 16일 판에서 한 미군 장성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 대해 “핵미사일 게임의 거장”이라고 비꼬는 발언을 인용하며 러시아와 서유럽의 군사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러시아는 냉전시대 개발한 “블랙잭”으로 불리는 초음속 폭격기 Tu-160의 생산을 재개하여 전진배치할 것임을 이미 서방에 밝힌 상태다.

파리1.jpg

2015년 파리 에어쇼는 각종 중간제품과 구성품, 소재, 체계통합, 전자전과 같은 기술 전시가 대세를 이뤘다

 

 군용기 시장의 몰락 조짐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의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군용 항공기 시장은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첫 번째는 군용 항공기 수요의 절대적인 감소이다. 이번 어어쇼에는 주최국인 프랑스의 라팔과 마라지 전투기를 제외하고 유로파이터, F-15와 같은 현대 전투기나 공중급유기의 실물이 거의 전시되지 않았다. F-35 역시 모형을 전시할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되지 않아 예전의 에어쇼에 비하면 마치 전투기들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세계 군용기 시장 축소에 따라 보잉, 록히드마틴, EADS, BAE 등의 전투기 완성품 제조업체가 일제히 에어쇼 참가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거기에 미래 최고 성능의 군용 전투기의 위험스러운 가격 폭등도 군용기 참가저조의 또 다른 이유다. 러시아의 폭격기 생산 재개에 대해 미국은 냉전시대 B-52 폭격기와 순항미사일에 의존하는 유럽의 폭격 준비태세에 머무르지 않고 올 여름부터 새로운 폭격기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노스롭 그루먼과 보잉사가 사업 수준 경쟁을 진행하고 있는데 80~100대를 생산하는 데 개발비를 제외하고도 5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차세대 장거리 폭격기를 생산하는 관건은 예산 문제이다. 이미 미국은 록히드마틴의 F-35 합동전투기 개발과 보잉의 KC-46 공중급유기 페가수스 개발, 차세대 훈련기사업인 T-X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한편 우리의 관심사인 미 공군의 T-X 사업은 현지 언론에 의하면 “아직 검토 중”이다. 역시 예산 사정이 그 이유다. 여기에다 미 해군은 오하이오급 핵 잠수함사업에 대한 소요도 제기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2022년에서 2025년 사이에 생산을 목표로 새로운 폭격기를 개발한다는 것이 과연 미국의 여건에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뚜렷치 않다. 이에 미 공군은 일단 5억5000만 달러를 투입하여 중형 폭격기를 우선 도입하고자 한다. 미 공군은 노스롭그루면의 B-2 스텔스 폭격기를 요구하였으나 21대로 축소되었고 381대의 F-22를 록히드마틴으로부터 구매하고자 하였으나 생산은 195대에서 중지되었다. 또한 1763대의 F-35A를 대당 1억불에 구매하고자 하나 그 가격이 충족될 지는 미지수다. B-2 폭격기의 경우 대당 가격이 17억 달러에 육박하여 현재 생산이 중단된 상황이다.

파리2.jpg

미라지-2000, 이번 파리 에어쇼에는 F-35, Su-35 등 최신 전투기 완제품을 볼 수 없었다

 

제품 획득에서 기술 획득으로

 

 수요의 감소와 가격의 폭등이라는 두 개의 도전은 파리 에어쇼를 군용기의 축전에서 민항기의 축전으로 그 성격을 변화시켰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하며 군수산업의 새로운 부흥을 꿈꾸는 ‘희망적 사고’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 압박과 최고성능 전투기의 가격 폭등이라는 현실이 있다. 이에 항공기 시장은 보잉과 에어버스로 양분된 민항기 경쟁에 그 패권적 지위를 양보하는 중이다. 이런 추세를 볼 때 한국형전투기사업(KFX)은 한 국가가 마지막으로 개발하는 국전 유인 전투기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5대 항공강국 외에 총 21개국이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앞으로 더 이상 여기에 참여할 국가는 발견되지 않는다. 한국은 거의 막차를 타는 셈이다.
 에어쇼 기간 중에 대한항공은 약 6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에어버스사의 A321 50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였다. A321 기종은 항속거리와 좌석 공간의 확장의 장점이 있는 높은 수준의 여객기로 알려져 있다. 같은 기간 일본은 저가 항공기인 A320을 계약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에어쇼 직후인 7월에 한국 공군의 공중급유기에 에어버스가 공급자로 선정되어 대한항공은 에어버스와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절충교역(off-set)의 90%를 수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년 전에 파리 에어쇼에서는 전투기와 민항기의 완성품의 경연장이었다면 올해 에어쇼는 각종 중간제품과 구성품, 소재, 체계통합, 전자전과 같은 기술 전시가 대세를 이룬다. 완성품에 연연하지 않고 기술 그 자체를 확보하려는 흐름으로 항공 산업의 판도가 전환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항공기 개발과 운영유지 전반에 참여하는 종합 컨설팅 업체의 부스가 상당부분 눈에 띈다는 점도 예전과 달라진 현상이다. 줄어든 군용기 시장을 감안하면 완성품 조립업체는 시장성이 지극히 악화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항공기에 엔진을 공급하는 독일의 MTU사 같은 경우는 오히려 그 수익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엔진 중간조립자로서 P&W사의 PW1100G, 에어버스의 A320의 기어터빈, 유로프로의 A400M 군용수송기의 TP400 엔진을 조립하여 준다. 엔진에 대한 확고한 기술적 우위를 다양한 민항기, 항공기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함으로써 향후 이 업체가 오히려 항공기 업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히든 챔피언이 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향후 어떤 항공기에도 장착할 수 있는 중간 구성품이나 항법 기술을 장악할 수 있다면 앞으로 그런 업체가 항공업체의 패권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항공기 조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 기술우위의 패러다임으로 항공기 시장의 성격이 변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국가가 어떤 국산 항공기를 보유했는가가 아니라 국가 간에 항공기를 공동 개발하는 협력이 더 중요하다. 이번 에어쇼 기간 중 개최된 각종 컨퍼런스와 세미나에서 발표된 주제의 거의 대부분이 개방성과 혁신성이 중시되는 항공기 개발에 있어 국가 간의 협력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라는 주제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 점에서 에어쇼의 중요한 관심은 "누가 영향력 있는 협력자(powerful partner)인가“라는 점이다. 
  이는 향후 보라매사업(KFX)를 추진하는 한국으로서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미래 한국의 국산전투기가 굳이 국산화 수준에서 그 성패가 결정될 필요가 없이 광범위한 국제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개방성으로 사업 추진 모델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최종 조립을 하더라도 굳이 국산화율 65% 달성이라는 애국주의의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질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의 성공이다. 그 파트너가 누가 되든 상관없이 “누구라도 협력할 수 있다”는 개방적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이 파리 에어쇼에서 나타난 교훈이다.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