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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 양심은 누가 검증하는가

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

동그라미시사만평

캐리커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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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구 만평 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사법부의 권위는 법관의 양심을 믿으라는 요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양심이 법과 증거에 의해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주는 데서 나온다. 설명을 거부한 양심은 특권이 되고, 검증을 거부한 판결은 불신을 키운다. 양심은 판결의 출발점일 수 있어도, 공정성의 최종 증거일 수는 없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관의 양심은 과연 헌법에 명시될 만큼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일까. 적어도 양심의 가책 앞에서라면 법관도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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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이목이 쏠린 재판에서 판결의 공정성이 논란이 될 때마다 사법부는 사법권의 독립을 내세우며 법관의 양심을 마치 반박할 수 없는 권위인 양 앞세워 왔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법관의 양심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양심에 따른 판결이 공정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하고 입증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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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그 양심만큼 허약한 담보가 또 있을까. 법관의 양심은 결코 판결의 면죄부가 아니다. 법관 스스로 공정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판결의 공정성이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법률을 적용하고, 사실관계를 어떻게 인정했으며, 증거를 어떻게 평가해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판결문을 통해 설명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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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른 ‘바겐세일식 판결’을 보면, 사법부의 양심이 과연 살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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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항소심은 징역 25년을 9년으로 줄였다. 16년이 사라졌다. 노동자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는 징역 15년이 4년으로 줄었다. 11년이 사라졌다. 윤석열은 명태균 무상 여론조사 사건에서 징역 2년이 항소심 무죄로 뒤집혔다. 이번에 오세훈 서울시장도 같은 의혹과 관련한 별도 사건에서 1심의 벌금형과 추징금이 항소심 무죄로 뒤집혔다. 잇따른 감형과 무죄 판결 앞에서 국민은 묻는다. 사법부가 말하는 양심은 과연 무엇을 담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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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각 사건의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이 다른 만큼 감형이나 무죄만으로 판결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항소심과 상고심은 원심을 바로잡기 위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판결이 뒤집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판단의 변화가 국민에게 얼마나 납득할 만하게 설명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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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권위는 법관의 양심을 믿으라는 요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양심이 법과 증거에 의해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주는 데서 나온다. 설명을 거부한 양심은 특권이 되고, 검증을 거부한 판결은 불신을 키운다. 양심은 판결의 출발점일 수 있어도, 공정성의 최종 증거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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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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