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우님, 저는 푸우님과 좀 다른 생각입니다. 저는 “남성 족보”에서 헤어나와 말하기/글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착착 쌓아 올려 <남근>처럼 우뚝 서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늘어놓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그와 반대로> 등의 접속사를 접촉제로 사용하여 탑을 쌓아가지 않고 오직 <그리고>라는 접속사에만 기대어 <늘어놓는> 것일 뿐입니다.
소통과 연대라는 진보넷 공간이 이렇게 <늘어놓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하나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축적하는 연구기관과 같은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성>과<여성>을 재현하고, <탑>을 세운 <남근>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 공간에 등장하는 블로거들이 <순수한Sexuality>로 등장합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렇게 <순수한Sexuality>라고 표현했습니다. 푸우님이 “나는 남성이다”라고 자신을 노출시켰지만 저는 푸우님을 <남성>으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여성>으로 상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어루만지고 싶고, 어루만져 주었으면> 하는 감정이 전혀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이런 감정은 <laron>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진보넷 공간에서 저의 원초적인 구별은 <남성>과 <여성>이 아닙니다. 위와 같은 <Ζärtlichkeit>를 주고 받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을 <순수한Sexuality>라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진보넷 공간을 이렇게
성 구별이 지양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남성 족보>에서 헤어나와 글쓰기/말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것을 할 수 없다면 해방을 지향하는 <학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쓰기/말하기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생각입니다. 디오티마의 <Semen>, 디오티마의 씨로 임신하고 그 기호를 펄럭이는 소크라테스라는 패러다임을 갖는, 족보를 세우는 학문에서 벗어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의 화두이지만 언제 익을지 모르게 항상 덜 익은 상태로 <남성 족보>에서 헤어나와 글쓰기/말하기 하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인 시민사회이념을 받들어 언성을 높이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이북선교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언성을 높이는 사람에게 하늘천 했으니까 따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늘천하고 그만 두어도 할 말이 없다. 단지 실천적으로 연대하는(!) 국제시민사회이념을 운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시민사회가 안 보이는 이북에 국제시민사회이념의 체 게바라라도 보내겠다는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자칭 진보의 이북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은 북한선교보다 못하다. 이북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이 단지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한 한마디”뿐이라는 역비판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말도 하지 말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단지 실천이 결여된 것은 진보란 이름을 적법하게 걸칠 수 없으니 그냥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다.
오리엔탈리즘의 핵심은 오리엔트에 오리엔트 양식이 있다는 것보다 서양이 오리엔트를 겉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인식형태라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이를 비판하는 자칭 진보나 이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은 “위대한 나라”의 헌법에 명시될 만큼 가시화된 보편적인 이념이다. 통과. 문제는 둘 다 이북에 3대세습을 비판하는/반대하는 이북시민사회를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소한 왜 그런가 이론이라도 내 놓아야 하지 않는가? 탄압이 심해서, 이북체제와 이북인민이 사이비종교집단과 같이 뭉쳐있어서, 아니면 지하시민사회가 있는데 공개하기 곤란하다든지…
내정간섭 배제 논리도 만찬가지다. 내정간섭 배제 논리는 국가간 모든 국가의 주권을 상대화한다는 논리다. 30년 종교전쟁의 결산이다. 요지는 어는 특정 국가가 절대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직도 유효하지만 “위대한 나라”가 종종 위반하는 국제법이다. 한 국가와 그 시민간의 관계에는 다른 국가가 간섭할 수가 없다. 단지 시민사회만, 그 시민사회가 어떤 국가의 틀 안에 있든지 간섭할 수 있다. 아니 시민사회의 속성상 실천적으로 간섭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앞의 문제와 똑 같은 문제다. 평양에 가서, 아니면 어느 나라 이북대사관 앞에서 1인 데모라도 해야 한다. 아니면 진보란 이름을 내려놓고 비판하면 된다.
이북선교보다는 초고속인터넷망을 깔아드리고 486 컴퓨터라도 한대씩 놔드리겠는게 좋을것 같은데 그보다 더 필요하게 쌀하고 반찬이래잖아요. 의약품이랑!!! 조선일보 얘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공화정인데 어떻게 왕처럼 3대가 해먹니 그건데 남한사람들 중에 공화주의자가 별로 없어요. 공화주의는 국가가 개인만 상대하는거에요. 그래서 프랑스 정부가 이슬람 여학생에게 히잡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학교에서는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하고 너는 프랑스 국민이기 때문에 프랑스법을 따라라 "원칙적"으로는 이 얘긴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으니까 다문화주의를 배격하는 것처럼 보이는거죠. 길에서 히잡착용하는것까지 금지한다는 얘기는 못들었는데 실제로 그러한지. 그것마저 금지한다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죠. 어쨌든..
설명이 부족해서 다시 말씀드릴께요. 공화정은 왕정에 반대해서 성립한 것이고 왕의 권위는 종교의 권위에 의해 뒷받침되었어요. 왕은 신의 아들에서 점점 절대왕정이 되면서 왕이 곧 법이다 이런 식으로. 그러나 여전히 추기경들이 권력을 행사했죠. 공화정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키는거에요. 이란은 신정질서잖아요. 대통령은 부분적 권력을 갖고 위에 그 위에 혁명수호위원회가 있는데 성직자들이죠. 종교가 정치고 삶을 지배하는 원리죠. 그래서 프랑스 정부가 학교와 같은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와 같은 종교적 상징물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죠.
북한인민이 김일성을 어버이수령이라고 불렀잖아요. 막 울면서 T.T 근데 옛날에 육영수도 국모대접 받았고 육영수 죽었을때나 박정희 죽었을때나 난리났었어요. 그때 대통령은 박정희뿐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거에요. 박정희가 죽었으니 우린 이제 꼼짝없이 북한놈들 손에 죽었다고. 그러니까 지금 김정일이 자기 아들한테 물려주지 않고 다른 사람이 권력을 이양받으면 우린 이제 미제손에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김정일은 김정일대로 이번엔 내 차례구나 생각할 수도 있고..
어쨌든 저도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해 모르고 또 아는게 없으니 옹호하고싶은것도 없고 그렇긴한데 우리 입장에서 봐도 좀 너무한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나면 원래 작전계획이라는건 다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인민군이 쳐들어온다, 인민군이 중공군과 한판먹고 쳐들어온다, 뭐 이런건데 요즘 작계들은 거의 북한에 위기상황이 발생해서 우리가 쳐들어가는거잖아요. 그리고 동해에서 미군이랑 한미연합군사훈련하고. 이걸 만약에 거꾸로 북한이 중국이랑 북중연합군사훈련을 우리 코앞에서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게다가 사정도 별로 안좋은데. 북한이 입만 열면 저 괴뢰도당들이 침략야욕에 불타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솔직히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런 작계나 군사훈련이나 군비증강이나 뭐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가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저도 기분이 나쁘죠.
시민 단체이건 어느 단체이건 대표자일 수록 개인적 견해를 단체의 견해로 이끌어 가려는 욕구가 있겠지요. 수렴할 시간이 없이 월권을 하게되면 모든이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의견을 수렴하는데 행인님과 치치님이 공헌하고 계십니다. 아무쪼록 시민사회는 외풍에 시달리지 말고 건재하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문제들이 폭주하고 있을 때일 수록 그러합니다. 거의 모든 외풍과 인기는 이들을 잠재우고 분열시키는 국내용으로 쓰이고 있읍니다.
기사를 읽지는 않았고 프레시안 메인화면만 잠깐 봤는데, 손호철과 홍세화가 계속 북한세습을 비판하고 계신데 바쁘신 분들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는지 생각하다가 아 이게 저 분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전쟁도 내전인 것 같지만 한국을 둘러싼 냉전세력의 갈등일 수도 있고, 이라크전쟁이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인 것 같지만 미국과 유럽의 갈등일 수도 있고, 뭐 그렇죠.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할까. 사람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과는 달리 그 뒤에 숨겨진 이해관계를 봐야하는데 아직은 잘 안보이네요. 민주노동당이 문제인 것 같아보이지는 않고.
그러니까 우리가 지식인이나 언론인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서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자료를 축적해놔야 어떤 돌발상황에서 왜 저런 얘기가 나오는지 알 수가 있는데 도대체 손호철하고 홍세화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경향신문은 일절 읽지도 않고 보는 신문이라곤 한겨례와 프레시안, 오마이 정도인데 저도 아직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기자는 딱 둘 뿐이에요.
지금 조선일보 보니까 김정은이 인민군 열병식에서 평택, 오키나와, 심지어 미국까지 날아가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외신앞에 자랑했다고 난리인데, 이런 사실만 보도하는게 언론의 역할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리가 작계하고, 합동군사훈련하고, 군비증강한 결과 북한도 자위수단으로 저렇게 된 거잖아요. 이런 사실까지 다 얘기해줘야 언론의 역할인데 하나도 안하잖아요. 그리고 북한 핵을 억제한다면서 미국의 안보수준이 나토수준까지 올라가고, 한미안보협의회에서 21세기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맺고, 대체 무기를 얼마나 팔아먹고 얼마나 더 국민을 미치게 만들 속셈인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으니 MD도 해야되고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요. 복지엔 돈이 없다고 발광하면서. 도대체 마트 앞에서 비오는 날 밥먹으면서 야채 파는 할머니는 우리 국민이 아니고 북한에서 굶어죽는 주민만 불쌍하대요. 김정일만 나쁜 놈이에요. 그러면 손호철하고 홍세화는 대체 뭐하고 있는거에요. 지금 이 시각. 자기들이 지식인이고 언론이면 자기들이 해야할 일이 도대체 뭐에요.
그래서 제가 봤을때는 지금 북한문제는 북한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문제고 거기에 일본, 남한, 북한이 끌려들어가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 제가 잘 모르지만 지금 무역량이 대미보다 대중무역규모가 아마 더 클거에요. 그리고 일본이 그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자민당이 장기집권할 결과 버블 어쩌고 해서 망했고 도저히 못살겠다는 국민적 각성 아래 민주당이 정권교체했잖아요. 근데 하토야마가 아시아에서 일본의 자율성을 가지고 한번 해보겠다고 했는데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로 사임했고 지금 총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민주당은 오자와 전 간사장 이 사람이 실세잖아요. 오자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게 중요한거고. 그래서 정치는 현실주의니까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국익을 생각해야하는데, 당연히 국익은 있죠, 약소국에서 살아봐요, 얼마나 서러운지, 우허헝, 이명박은 국익을 생각하는거 같지 않고, 일본이 미군기지 이전하겠다고 하면 남한에 설치해달라고 하고, 울먹,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홍세화는 공화주의자임이 분명한데 프랑스가 강대국이니까 공화국을 할 수 있는거지 그냥 어떻게 공화국을 해요. 손호철은 대선때 자기가 아는 교수들한테 이번에 한 번 노무현 밀어보라고 그러고 다닌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을 계속 흔들어서 우리한테 좋은게 뭐 있냐고요. 노무현 지지자들도 맨날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흔들어서 하나도 되는게 없었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자국에 숭미하는 교주님이 계신데 어떻게 좀 해보라고요. 미치겠다고요. 무기수입상도 아니고 제기랄, 왜 하필이면 전쟁의 신을 숭배하냐고요. 전 국토를 무기창고로 만들셈이에요. 도대체!!! 요즘 야채값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요. 살림하는 여성으로서 가만놔두지 않겠어요!!!
숨기고 싶은 것이 들통날까 봐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글쟁이 흉내를 내고 또 글을 가지고 먹고 살려고 바둥대는 쁘띠지만, 두려우면 언어분석철학이라도 들이대고 노동자개념의 외연이니 내연이니 하면서, 육체 노동자니 지적 노동자니 하면서 어떻게든 <나도 노동자다>라고 할 수가 있겠다. 또 펜 돌리는 방법을 조금 배운 쁘띠는 상황이 주어지면 얼마든지 저쪽 편에 서서 그 상황에 맞게 펜을 돌리는 자질이 충분하다는 추궁이 사실무근하지 않고 충분히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뽀록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다.
겁나는 이유는 나를 향한 이 질문이 나의 계급성을 묻기 때문이다. 계급성을 원론적으로 따지자면야 겁날 것이 없다. 겁나는 이유는 계급성을 이야기하면 그것과 떼어 놀 수 없는 경험 두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광주혁명과 연관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직접 경험한 일과 연관되어 있다.
80년대 한국 운동권 인사들의 독일방문이 잦았다. 그 중 광주혁명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 몇 있었다. 한 목사님은 계엄군이 혁명대열에 발포하자 그 사이에 뛰어들었던 어떤 아주머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뛰어들어 서있어야 했던 자리에 그 아주머님이 뛰어 들으셨다고 자신을 반성했다. 뒷골목으로 도망쳤던 자신을 회상하면서. 다른 한 분은 광주도청사수 마지막 밤의 상황을 전달했다. 한 여고생이 확성기를 들고 도청사수 혁명군 지원을 애타게 간청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전달한 분도 나서지 못하고 숨어 있었다고 한다.
한동안 하청청소업체에서 일했다. 시가 운영하는 청소업체 였다. 직원은 약 1000명 정도였다.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난민, 외국인 등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일을 시키는 회사였다. 일을 거부하면 사회수당이 감축되는 약간 강제적인 일을 시키는 회사였다. 물론 외국인이 대다수였다. 주로 하는 일은 여름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잔디깍는 일이었고 겨울엔 지하철역 등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처우는 말이 아니었다. 말이 아닌 처우라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난민이지만 가장이고 자기나라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던 외국인들이 일하는 동안 내내 술만 처먹고 대마초만 빨아대지만 독일사람이라는 것 하나로 십장이 된 놈들 밑에서 온갖 행패를 다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힘들었다. 처음엔 거리에서 밥 먹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이 힘들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해소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회사의 구조적인 행패는 날이 갈수록 분노가 쌓이게 했다. 마메드와 공원에서 대마초 피우고 술 먹고 난 다음 날 이었던가? 일이 끝나면 늘 맘이 맞는 서너 명과 어울려 길거리에서, 시내 공원에서 술판을 벌였다. 터기 슈퍼에서 라키(페르노와 같은 터기 독주) 서너 병, 수죽(터기 소시지), 야채, 빵 등을 사가지고 공원에서 고래고래 목청 높여 노래 부르면서 술에 얼큰하게 취할 때까지 먹고 마셨다. 그날 나는 대마초와 라키에 완전히 뻗어서 잠이 들었다. 한기가 등을 타고 스며든다. 한 친구는 어두워졌으니 가야 겠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투른 독어로 마메드가 말한다. “나 00 혼자 둘 수 없어. 나 알아. 00 완전히 혼자인 것 알아. 00 내 아르카다쉬(형제)야. 00 머리 상했어.” 그러면서 늘 부르던 노래를 부른다. “안네 카립”.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마메드의 노래를 들으면서 무지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깨어나 보니 자정이 다 되었다. 마메드는 아직 내 곁에 앉은 체 꾸벅꾸벅하고 있다. 자리를 털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헤어지기 전에 마메드가 나를 꼭 껴안으면서 입을 맞춘다. 까실까실한 수염이 살을 그리워하는 내 몸에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회사 경영진에 장황한 편지를 썼다. 조목조목. 기록해놓은 날날의 상황을 다 들이대면서. 이런저런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내 몸에 불을 질러서라고 너희들의 행패를 폭로하겠다고 썼다.
이름도 성도 없었던 내가 갑자기 “00씨”라고 불린다. 긴급종업원평의회가 소집되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경영진이 불러 대화를 요구한다. 종업원평의회위원장이 참관하고… 그런데 이상하다. 역겨운 감정이 올라온다.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경영진이니 종업원평의회이니 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줄이고…
나는 계급성을 사선에서 나타나는 행위이고 한때 느껴보았던 분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겁나는 질문이다. 가끔 아찔하다.
<손님의 철학>을 이야기하면 한약에 감초같이 꼭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호메로스 일리아드의 6번째 노래에 나오는 토로이편의 장수 글라우코스와 그리스편 장수 디오메데스에 관한 이야기다.
골이 깨지고 창자가 터져 나오는 전투가 한참 벌어지고 있다. 정신 없이 싸우는 가운데 신들까지도 부상시킨 디오메데스와 글라우코스가 맞서게 된다. 디오메데스 이놈 입이 상당히 큰 놈이다. 하는 말을 좀 들어보자.
“너 좀 있어 보인다. 추풍낙엽 같은 인간들 중에서 제법 앞으로 나오는데 네놈은 대체 누구냐? 내 창 맛 좀 볼래? 니 애미가 불쌍하다.” 이렇게 까면서도 글라우코스가 혹시 인간의 형상을 입은 신이 아닌가 뒤숭숭한 디오메데스는 글라우코스의 정체를 묻는다.
글라우코스가 대답하기를 “내 족보 알아서 뭐 할래? 숲의 나뭇잎 같은 인간의 족보를 따져서 뭐 할래? 어차피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인간의 족보를? 따스한 봄이 오면 싹이 터 나뭇잎이 되었다가 다시 사라지는 족보를?”
이렇게 말하면서도 글라우코스는 족보를 차근차근 제시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글라우코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디오메데스는 창을 땅에 꽂고 글라우코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 너 그러고 보니 우리 양가 할아버지 때부터 피를 나눈 가족과 같이 절친한 사이가 아닌가? 반갑다.“
글라우코스의 할아버지가 디오메데스의 할아버지를 20일 동안이나 집에 모시고 대접했단다. 귀한 선물을 서로 교환하고. 당시의 관습을 보면 글라우코스의 할아버지가 디오메데스의 할아버지에게 부인까지 내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글라우코스와 디오메데스는 피가 섞인 한속이다.
아무튼 디오메데스는 서로 싸우지 말자고 한다. „내가 작살낼 수 있는 트로이인이 무수히 있고, 또 네가 그럴 수 있는 그리스인이 무수히 있는데 우리 둘이 서로 죽이고 살리고 싸울 필요가 있어? 우리 둘인 그러지 말자.“고 한다. 그리고 „우리 서로 무기를 교환하여 다른 사람이 우린 한속인 것을 다 알아볼 수 있게 하자“고 한다. 무기를 교환하면서 글라우코스가 엄청난 손해를 보긴 하지만. 소 100마리 가치의 금장무기를 소 9마리 가치밖에 되지 않은 청동무기와 바꿨으니. 5억원도 청동무기일 뿐 아닌가?
단님의 글 <10년 이주노동의 땀보다 5억원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호메로스식 손님철학이 서로 알아보고 다 팔아 넘기는 자본의 "손님철학"이 아닌가 해서 그런가? 그럼 우리 이주노동자의 손님철학은 대체 어떤 것일까?
오래전 일이다. 한 번은 서울에 볼일이 있었다. 근데, 하루는 몸이 으스스해지고 맥이 풀리고 영 기운이 없다. <볼일 보려면 이러면 안 되는데.> 주변에서 약방에 왜 안 가느냐는 권고에 밀려 큰맘 먹고 약방에 같다. 폐결핵에 걸려 오래 투병생활을 하고 약을 디지게 먹어서 그런지 약이라면 딱 질색이다. 그리고 여기선(독일), 최소한 내가 찾아가는 의사는, 감기나 독감 걸려 찾아오면 물 많이 마시고 일주일 푹 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감기나 독감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는 일이 없다. 더구나 의사의 처방 없이 약방에 간다는 것은 없고. 처방해도 기침이나 콧물 정도를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약방에 찾아갔는데 약을 한 주먹 주더니 한꺼번에 털어 넣으라고 한다. 감기가 뚝 떨어진다고 한다. <왠 사기꾼 약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많은 양의 약을 털어 넣었다. 감기나 독감 걸리면 독일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약 먹으면 1주일, 약 안 먹으면 7일> 고생하는 병이 감기고 독감이라는 말이다.
근데 웬걸, 감기가 정말 귀신같이 뚝 떨어졌다. 몸이 홀가분해지고, 맥이 살아나고.. 마약도 집어넣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상쾌해졌다.
바쁜 세상에, 한 순간 처지면 마치 <생의> 버스를 놓치는 것처럼 뛰어야 하는 세상에 어쩌면 그런 약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감기로 일주일씩 병가를 낼 수는 더욱 없을 테고…
'무슬림'이 맞습니다. 아랍어나 히브리어는 모음을 표기하지 않아서 다른 발음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그래서 문장의 뜻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옛부터 읽어오던 발음을 무척 중시하고요, 그래서 그들의 전통을 특히나 중시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동시에 그쪽 종교들은 경전 해석의 문제가 매우 심하게 대두되기도 합니다. 국내 외국어 표기법도 무슬림이 맞고, 국제적으로도 muslim 으로 표기되며, 영어사전에서 moslem을 찾으면 muslim을 찾으라고 나옵니다. 마호메트, 모하멧 등등으로 불리는 사람 역시 무하마드가 맞습니다. 코란이 아니라 꾸란이라고 해야 맞고요. 꾸란은 신의 말씀이기에 번역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몇 년 전인가 최초로 한글 꾸란이 나왔지요. 이슬람은 평화라는 뜻으로 이를 회교라고 칭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제멋대로 붙인 이름으로,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야만인)라는 이름처럼 쓰이지 말아야 하는 단어입니다. 아울러 영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반영하는 중동이라는 명칭도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는 서남아시아로 바뀌었습니다. 이거 바꾸는 데도 상당한 위협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었다고 합니다. 좋은 다큐 소개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바람>이 보고싶다.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좁은 집에서 기를 수 없어서 집 없는 동물을 보호하는 에 넘겼는데, 그날 <바람>은 잡혀가지 않으려고 침대 밑에 숨어서 마지막까지 발광(?)했다.
<고양이>는 - 기르던 암컷 고양이를 이렇게 불렀다 – 지하고 싶은 데로 했다. 지 맘에 내키면 다가와 죽 늘어져서 주물러 달라고 했다가도 딴데 가고 싶으면 훌쩍 가버리곤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나갔다가 아침에 되면 대문 앞에서 문 열어 달라고 <야옹>하기 일쑤였다.
어느날 집 앞에서 유난히도 <야옹, 야옹> 하던 수컷을 따라 나가더니 근 한 달이 다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별 걱정을 다 했지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외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근데 어느날 아침 <고양이>는 대문 앞에서 문 열어 달라고 <야옹>했다.
얼마 후 <고양이>는 옷장에서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낳았다. 그 중 하나가 <바람>이다. 제일 약해보여서 그랬던지 내가 각별한 정성을 드린 놈이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아침에 일어나보면 <바람>은 늘 내 머리맡, 아니면 발 밑에서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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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으로 기억되는 것이 두렵고, 또 빛 안에서 잊히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 중 "the worst"를 가늠하는 중입니다. 빛이 어둠을 넘보는 것은 어둠에게는 참 불행한 일이겠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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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으로 푸드득 나르는 올빼미가 되지 말과 그냥 빛과 어둠이 어울려 있는 이 Abenddämmerung에 있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