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背敎)를 원하는 걸까?
새로운 조선의 별로 떠오른 '대장'님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이 영 어정쩡한 논평하나를 대변인 명의로 낸 바가 있다. 이게 경향신문에서 사설로 비판되었고, 여기에 민주노동당 부설연구소의 어떤 인사가 반박을 하더니 울산연합은 경향신문 절독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이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또 한마디 했고, 급기야 민주노동당 당대표 이정희가 이에 반박하고 있다. '대장'이 인물이긴 인물인가보다. 등장하자마자 목하 남한 인사들의 급 관심을 받고 있으니.
3대 세습 정권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내걸고 있는 민망함에 대해선 더 할 이야기가 없고, 좀 달리 생각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개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떤 비판들이 어쩌면 맥락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과연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할 수 있을까? 이건 어쩌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은데, 따라서 북한 3대세습에 대해 내내 그들의 문제라고 뻗대고 있는 민주노동당을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새삼 자세를 바꾸리라는 전망은 종내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행인의 전망.
기본적으로 현재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들이 동부연합을 필두로 한 김주의자들이고, 이들이 본사에서 지령받아 당내 인사들 견적까지 뽑아 보고하는 것으로 봤던 사건을 돌이켜보거나 기타 과거 어떤 사건 당시 진상조사를 하러 갔던 C씨의 증언, "정말 아침마다 인사하던데..." 사건이나 충성서약서 사건을 검토해보면 왜 이런 전망이 나오는지는 당연한 일.
애초 행인이 누차 지적했던 것처럼, 이들의 정신적 지향이라는 것은 일종의 과학적 사회변혁운동이 아니라 다분히 종교적 취향이다. "주체의 태양을 우러러" 반미자주통일의 한 길을 달려가는 이분들의 발언을 보면 누구라도 이건 정치집단이 아니라 종교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바로 나오는데, 종교에 심취한 교인에게 네가 신봉하는 교주를 비판하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이대근이 요약한 박경순의 논리는 딱 그 수준을 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대근이 요약한 박경순의 논지를 따라 평을 해보면,
첫째, 3대 세습이 불편하다고 그걸 그릇된 것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 당연하다. 교주가 3대 세습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당이 깨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내부의 교인들은 거의 대부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론 비판자들도 있겠지만, 그건 이단이 된다.
둘째, 3대 세습은 북한 내정이다. 따라서 내정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 이것도 그럴싸한데, 종교집단이 세습을 하던 말던 그거 밖에서 이야기해봐야 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즐길 것이다. 외부의 비판은 신이 주신 환난으로 전화되고 조만간 순교자가 된다.
셋째, 3대 세습이 김정일 아들이기 때문인지 후계자로서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토론하는 것이 옳은가?
----> 사실 자질을 인정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자질이라는 것은 성령의 강림으로 판단되는 것이지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이 이에 대해 옳다 그르다 토론할 수는 아예 없는 거다.
넷째, 3대 세습 정권과는 대화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
----> 전형적인 수법인데, 누가 대화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종교에 대해, 더 정확히는 종교지도자들의 파행에 대해 뭐라고 하면 이들은 단번에 이런 식으로 우물에 독약을 쳐버린다. 종교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섯째,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으면 다 종북집단이냐, 중국, 러시아, 미국도 3대 세습 비판하지 않았으니 이들도 종북세력이냐?
---> 중국, 러시아, 미국이 3대 세습 비판하면 그 땐 뭐라고 할까? 역시 앞의 네 가지 주장으로 도돌이표 찍으면 된다. 이 부분은 어차피 들고 나올 필요도 없는 논리다.
여섯째, 후계자론은 검증받은 이론이다.
----> 당연히 검증받은 이론이다. 수령님이 조국을 건설하고 그 후계자로 위원장님을 세울 때, 그리고 이후 후계구도 정립하는 과정과 수령님 사후 유훈통치과정, 그리고 지금까지 검증되고 있는 거니까. 문제는 그 후계자와 이 후계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점인데 그건 외부에서 비판하는 세력이 지적하는 문제일 뿐이지 교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 검증받았으면 되지 뭐.
일곱째, 3대 세습비판은 오리엔탈리즘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가 고생이 참 많다. 어차피 세계 5대종교는 다 (서구적 관점의) 동양에서 나온건데 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주사교...
당대표 이정희가 올린 글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구절이 보인다.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아타깝다."
무척 안타까운 것은 따로 있는데,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때문에 수령님, 장군님, 대장님으로 이어내려오는 세습의 전통을 공공연하게 찬양할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새롭게 지구만방을 비추실 태양으로 떠오른 대장님을 드높이 찬양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이렇게 창궐하니 어찌 교인으로서의 도리를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가보안법 철폐하여 종교자유 보장하라~!!!
민주노동당에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들에게 3대 세습을 비판하라고 하는 건 예배당 교인들에게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 순교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천국. 천국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에게 순교의 기회를 주는 그런 거?
이대근의 분석은 시의적절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허공에 주먹질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정희의 입장발표로 사건은 이걸로 쫑난 듯. 그들은 끝내 이정희의 표현대로 "일관성"을 지킬 것이다. 그분의 오른편에 앉아 찬양할 그날이 올 때까지.
행인님의 [배교(背敎)를 원하는 걸까?] 에 관련된 글. 이북3대 세습. 물론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되니까 말을 절제할 수도 있고, 말도 안 된다고 언성을 높일 수가 있겠다. 그런데 보편적인 시민사회이념을 받들어 언성을 높이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이북선교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언성을 높이는 사람에게 하늘천 했으니까 따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늘천하고 그만 두어도 할 말이 없다. 단지 실천적으로 연대하는(!) 국제시민사회이념을 운운...
행인님의 [배교(背敎)를 원하는 걸까?] 에 관련된 글. 암튼 돌아가는 모양새로 짐작컨대, 범민족해방파가 이런 정치적 잠재력을 못살리거나 심지어 썩히고 있을 뿐 아니라 살릴 만한 의지조차 있는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 그나마 소위 좌파 진영에선 그 기본 각에 비추어 이런 잠재력을 살찌우고 구체화해갈 역량이 상대적으로 무척 크잖겠나,, 뭐 그렇게 믿어 보려는 쪽인데요 저는.ㅋ;; 위대하신 수령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끼니 걱정으로 퉁겨져나온 탈북 이주민...
배교를 원하는 걸까 (http://blog.jinbo.net/hi/1323)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랑 정확히 일치하는 포스팅 (마리신님의 블로그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