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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소리


비가 온다. 비 내리는 소리. 바람에 휘날리지 않고 그저 중력의 법칙에 순종하듯 차분히 내린다. 의식과 무의식간의 경계를 씻어버리는 비 내리는 소리를 타고 무의식은 의식이 되고 의식은 무의식이 되어 아무것도 가눌 수 없는 혼미한 것으로 배회한다.

 

문득 잠에서 깨어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다. 차분하게 내리고 있다. 독일의 기후가 아열대가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올 여름은 무덥다.

 

 

거실로 자리를 옮겨 창문을 열어놓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참 좋다. 평화란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비 내리는 소리

 

 

작년, 사람의 체온이 부족해 이젠 말라 비틀어지고 더 이상 반들거리지 않는 마루턱에 앉아서 앞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산허리를 갈라 만든 길에는 남도의 황토가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같이 붉었다.

 

 

살며시 내리는 보슬비 소리만 변함없이 나를 찾아오고 차분히 내리는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더위 한여름 마루턱에서 낮잠을 자던 어린 아이를 잊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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