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삥 뜯는 짓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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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의 주소다. 비틀즈에서 마를린 먼로 등 유명 연예인은 물론,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등 이름만 들어도 쩌르르한 정치인들이 묵었던 호텔이다. 1907년에 개관한 이 호텔은 1988년부터 2004년까지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소유주였다. 1992년 개봉한 '나 홀로 집에 2'에서 당시 소유주였던 트럼프가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플라자 호텔은 유명인들의 숙박이나
잘 알려진 영화의 배경으로만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각인된 이름이다. '플라자 합의'가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에 이 호텔에서는 세계 경제의 틀을 재구성하는 주요 국가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지속적인 쌍둥이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미국이 선택한 것은 주요국가(G5,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의 환율 조정이었다.
핵심은 달러화의 평가절하였다. 대상국가 화폐의 가치를 올림으로써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플라자 합의 이후 불과 2년 동안 엔화의 달러화에 대한 가치는 플라자 합의 이전의 65.7% 절상됐다(한경닷컴 한경 경제용어사전). 플라자 합의 직전 달러 당 250엔이었던 엔화가치가 120엔대로 절상됐고, 이후 꾸준히 올라 1995년엔 80엔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1995년에는 엔화의 평가절하를 목표로 한 '역 플라자 합의'로 이어진다.
플라자 합의 초기부터 몇년 간 일본은 비싼 엔화를 들고 나라 안팎에서 부동산에 돈을 쏟아 붓고,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려 들어갔다. 왕창 풀린 저금리 자금이 피라미드를 쌓듯 계속해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쏠렸다. 60년대 이래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엔고와 이에 부응한 경기진작책이 맞물린 결과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소니 대표이사 모리타 아키오가 이시하라 신타로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낸 게 1991년이었는데, 일본 정재계가 이렇게 자신감 뿜뿜할 정도로 당시의 일본 경제상황은 불침항모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1989년 미쓰비시가 록펠러 센터를 매입하자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는 경악이 터지기도 했다.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이 이때 횡행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자산 시장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품이 끼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폭적인 금리 인상, 급격한 대출규제 실시 등 경제정책이 널뛰기를 했다. 90년 벽두에 터진 주택담보대출 출자총액제한조치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주식시장이 침몰하였다. 은행 도산이 속출하고 원금이 증발하는 대출이 속출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흥청망청했던 사람들이 연거푸 목을 매달았고, 침체한 내수시장, 실업률의 폭증, 산업 공동화 등 경제 전반의 퇴조가 급격히 이루어졌다. 소위 '잃어버린 10년', 아니 그 뒤를 이어 '잃어버린 20년, 30년'의 장기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80~90년대 버블기에 매입한 해외투자 덕분에 오늘날에도 막대한 대외순자산 및 외국채권으로 엄청난 해외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의 원인이 오로지 플라자 합의 때문만은 아닐 거다. 플라자 합의 이후 버블 폭발 전까지 수년 간은 일본의 경제가 호황을 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으니 경제 정책 등 다른 원인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원인 중 플라자 합의가 트리거가 되었을 수도 있고, 미국의 경기회복이나 한국 경제에 끼친 영향(예컨대 3저 호황)을 보더라도 플라자 합의는 매우 중요한 하나의 계기였음에 틀림 없다.
어떤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인데, 마침 미국과의 관세 문제와 연관해 트럼프가 3500억불+@를 요구하고 있고, 한국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프라자 합의가 생각났다. 찾아보니 바로 며칠 전이 플라자 합의 40주년이었다(합의 일자는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 직후 플라자 호텔을 샀던 트럼프가 돈장난을 치면서 우방국으로부터 삥을 뜯으려고 하는 게 묘하다. 흉내를 내고 싶었나...
기축통화국의 주도권을 행사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패권국의 횡포가 40년을 격해 주체와 대상을 달리한 채 반복된다. 이 싯퀴가 금태환 대신 코인태환 가면서 스테이블 코인 굳히기 하고, 그 와중에 지가 만든 코인(월드리버티파이낸셜 WLFI) 상장시켜 7조원 땡기고 앉은 와중에 한국에서 천문학적인 삥을 뜯는 걸 보면, 이건 타고난 장삿꾼이자 전무후무한 수준의 생양아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경제에 대한 지식은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지만, 지금 트럼프가 지 멋대로 쓰겠다며 내놓으라고 하는 3500억달러+@ 규모의 출자는 거품 터졌을 때 일본처럼 한국을 뒤흔들 수도 있는 규모라고 생각된다. 이거 못 주겠다고 하고며 배째라고 하는 게 나을지, 울며 겨자먹기라도 내주고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나을지, 후일을 도모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좋을지 같은 건 내 지식 수준으로는 논할 깜냥이 안 되니 패스. 그저 똑똑한 분들이 좋은 대안을 좀 내주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