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학년 수업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3학년 창재(창의적 재량활동) 시간도 맡았다.
앞으로 수업으로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과담당인데 첫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재미있는 실험을 해 보았다.
지난 주 총 4반 중에서 3반을 들어 갔는데, 각 반에서의 첫인상을 달리 해보고 반응을 살펴보았다.
A반은 별다른 것 없이 무미건조하게 소개만 하고 공동체 의미가 담긴 영상 감상 그리고 자유시간
B반은 학생부의 남자 선생님답게 무게 잡고 무표정한 상태에서 공동체 의미가 담긴 게임 진행
C반은 처음부터 웃으며 농담으로 시작해서 B반에서 했던 게임과 진로에 관한 내 경험담 들려주기
사실 위의 실험은 정식 절차와 방법에 의해 제대로 진행된 실험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학교를 꿈꾸는 교사로서 유의미한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 방식의 권위적 교사관을 가진 교사들은 보통 A와 B반 형식의 수업을 진행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잘 따르고 집중도 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 1학년 수업에서도 그렇고, 이번 3학년 수업에서도 느꼈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학생을 통제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어도,
학생의 창의적 반응 혹은 교사(또는 교사의 교육)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C의 경우 적정선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 있으나,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업에 참여하고 재미를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하는 내가 즐거웠다.
학교의 교육은 학생들이 지금 당장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추게 하는 것에 그치면 안된다.
학생이 학교를 벗어나서도 학습에 관심을 가지고 평생 자기계발을 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동기인 '흥미', '재미'를 갖게 만들어야 한다.
요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에 비춘다면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 본성이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은 과연 도덕적인 행동일까?
혹은 합리적인 행동일까?
그렇다고 신념 없이 살아가는 것은 또 옳은 것일까?
남에게 나를 강요하는 것보다
남이 나를 자연스럽게 따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다.
사람은 이해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하지만 공감하면, 반응한다.
상대에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따져봤자 소용이 없다.
인정의 눈빛이 필요할 뿐이다.
붉게 여문 인생 고민
알알이 따다가 한 데 넣고
울화통 터질 때까지
뜨거운 한숨으로 바싹 볶는다.
까맣게 타버린 응어리들
남모르게 가슴 속에 묵혀 두다
고소한 향내 날 때
닳디닳은 이빨로 잘게 가루 낸다.
일평생 온전한 내 손으로 빚어낸
예쁘장한 찻잔 위에
멋쩍은 위로 한 장 살포시 덮어두고
뜨거운 눈물 한바가지 내어다가
찬찬히 가루 위에 내리면
차가운 인생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마시는
쓰고
달고
시고
고소한,
커피 한 잔 우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