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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14장 전통과 혁신 2

14장. 전통과 혁신Ⅱ(15세기 : 북유럽)

 

▲ 북유럽과 이탈리아 미술의 차이점 ▼

- 이탈리아 : 천상의 세계와 지상 세계의 조화와 통일성에 바탕

- 북유럽 : <단순성>(건축)과 <범신론 성격에 따른 구체적이고 세세한 묘사>(회화)에 바탕

- 이 둘은 모두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의 두 측면을 각각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차이점이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분야는 건축이었다. ……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는 15세기 내내 전 세기의 고딕 양식을 계속 발전시켜 갔다. 이러한 건물들의 형태는 뾰족한 아치나 공중부벽과 같은 고딕 건축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지만, “15세기에는 복잡한 트레이서리와 환상적인 장식에 대한 14세기의 취향이 더욱 강해졌다.” (269쪽)

 

 

▲ 15세기 북유럽 건축의 특징 ▼

- “도판 174(<루앙의 법원성의 안뜰>)의 루앙의 법원 건축물은 ‘플랑부아양(Flamboyant : 타오르는 불꽃 모양) 양식’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고딕 양식의 최후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런 건축물들에서 고딕 건축의 마지막 가능성까지 다 소진해 버렸으므로 그 반작용이 조만간 뒤이어 일어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탈리아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어도 북유럽의 건축가들이 보다 더 큰 단순미를 갖는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켰으리라는 징후가 보이기도 한다.” (269쪽)

- 이러한 특징은 영국에서 이른바 “‘수직 양식(Perpendicular style)’으로 알려진 고딕 양식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269쪽) 도판 175(<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예배당>)을 보자. “측랑이 없기 때문에 기둥과 가파른 아치도 없다.” “일반적인 구조가 대단히 소박하고 어찌 보면 이전의 대성당들보다 더 세속적인 인상을” 준다. (270쪽)

- 이러한 세속성은 회화에서의 구체적이고 세세한 묘사와 연결된다. 다른 한편 부채 모양의 궁륭(fan-vault)(천장 부분을 뜻함)은 천상계와 지상계의 결합이 자유로운 상상의 ‘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조화되고 있음을 볼 때 이탈리아 건축 양식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 15세기 중엽 독일 화가 슈테판 로흐너(Stefan Lochner : 1410?-51) ▼

- 로흐너는 “반 에이크의 혁신을 보다 더 전통적인 주제(종교적인 이야기)에 활용한 미술가”였으며 “어느 정도 북유럽의 프라 안젤리코라고 말할 수 있다.” (273쪽)

- 도판 176(<장미 그늘 아래의 성모>)을 살펴보자. 먼저 이 그림을 고딕 양식의 <윌튼 두폭화>(pp.216-7, 도판 143)와 비교해 보면, “두폭화의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고 할 수 있는 데 반해, 이 그림의 인물들은 입체적이며 따라서 현실적이다.

- 로흐너는 얀 반 에이크의 신플라톤적인 경향을 받아들여서 이 그림의 인물 배치를 플라톤의 이데아 구조에 따라 하고 있다. The One과 두 천사가 삼각형의 구도로 배치되어 있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둘씩, 셋씩 쌍을 지어서 원 형태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 그러나 이 인물들의 표정은 두폭화의 인물들의 표정처럼 거의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이는 여전히 중세 고딕 양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북유럽의 다른 화가들 ▼

- “북유럽의 다른 화가들은 오히려 베노초 고촐리와 비견된다.” (273쪽)

- 도판 177(<사를마뉴 대제의 정복> 중 헌정 페이지>)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당시의 중세 도시의 광경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다.” (274쪽) 이 그림의 특징은 정확성, 유쾌함과 유머, 익살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의 혼합1 - 장 푸케(Jean Fouquet : 1420?-80?) ▼

- 그는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방문했다.” (274쪽)

- 도판 178(<성 스테파누스와 함께 있는 프랑스 샤를 7세의 재무대신 에티엔 슈발리에>)를 살펴보자. 이 그림의 인물 표정은 <장미 그늘 아래의 성모>나 <윌튼 두폭화>의 인물 표정처럼 거의 무표정하다. 그러나 장 푸케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했던 것처럼(p.261, 도판 170) 빛을 사용하고 있다.” (274쪽) 그리하여 명암을 통해 인물들을 “마치 조각처럼 다듬어진 것처럼” (274쪽) 묘사하였다. 그런데 “모피, 돌, 옷감, 대리석 등 사물의 질감과 표면에 그가 갖는 관심을 보면 그의 미술이 얀 반 에이크의 북유럽 전통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보여 준다.” (274쪽)

 

 

▲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의 혼합2 - 로지에르 반 데르 웨이든(Rogier van der Weyden : 1400?-64) ▼

- “이 거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275쪽)

- 도판 179(<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살펴보자. “우리는 로지에르가 반 에이크와 같이 머리카락 하나하나, 바느질 솔기 하나하나 등 모든 세부를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었음을 본다.” (275쪽)

- 그런데 이 그림에서의 인물들의 배치를 보면, “폴라이우올로가 직면했던 문제들(p.273, 도판 171)을” “현명”하게 해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의 몸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의 포즈와 표정을 다양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는 근대 부르주아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중세 도시 사회의 인간관계가 ‘어떤 규칙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나름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포즈와 표정들은 제각각이지만, 그 포즈와 표정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의 혼합3 - 후고 반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 : 1482년 사망) ▼

- 그는 “15세기 후반에 가장 위대한 플랑드르의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276쪽)

- 도판 180(<성모의 임종>)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성모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12사도들의 다양한 반응(조용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격렬하게 슬퍼하는 사람과 경솔하게 하품을 하는 사람의 표정)을 묘사한 그 훌륭한 솜씨다.” (276쪽) 이는 로지에르와 같은 업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로지에르의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여전히 <여백 또는 빈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주(세계)는 꽉 차 있는, 즉 빈 공간이 없는 세계였고, 따라서 빈 공간(여백)을 남겨 두는 것은 현실(세계)이 정확한 사실 묘사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독일의 목각사 바이트 슈토스(Veit Stoss : 1533년에 사망) ▼

- “조각가들과 목각사들에게는 고딕 양식을 새로운 형식 속에 잔존케 한 로시에르의 업적이 특히 중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79쪽)

- 도판 182(<성모 마리아 교회당 제단>)를 살펴보자. 이 목각 제단의 각 장면은 “별 어려움 없이”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있도록 목판에 새겨진 각 인물들의 표정(도판 183(<사도의 머리 부분>)을 참조)과 배경의 특징들이 세심하고 현실감 있도록 처리되어 있다.

 

 

▲ 중세 미술과의 단절 과정1 - 목판화와 인쇄술의 발전 ▼

- “15세기 중엽 독일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미술 기법이 발명되었”는데, 이 기법이 바로 목판 인쇄이다. “이로써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 책을 인쇄하는 것보다 수십 년 앞서게 되었다.” (281쪽)

- 그런데 목판화는 그 특성상 “그림을 인쇄하는 데는 조잡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조잡함 그 자체가 사실 효과적일 때도 있었다. 즉” “윤곽이 단순하고 수법에 있어서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282쪽)

- “그러나 그들은 세부를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과 관찰력을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판화가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무 대신 동판을 사용했다.” (282쪽)

 

 

▲ 중세 미술과의 단절 과정2 -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 1453?-91) ▼

- 숀가우어는 “15세기의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동판화가이다.” (283쪽 참조)

- 도판 185(<거룩한 밤>)를 살펴보자. “네덜란드의 대가들과 마찬가지로 숀가우어는 그 장면에 있는 모든 작은 일상적인 세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283쪽)

- 또한 이 그림에서도 빈 공간 또는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 숀가우어는 이러한 빈 공간 여백을 남기지 않기 위해 “폐가를 그림의 무대로 선택” (284쪽)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폐가의 무너진 돌담을 통해 기독교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을 입체적이며 보다 현실감 있게 볼 수 있다.

- 그러나 “이 두 대각선은 성모의 머리에서 교차하는데 그 부분이야말로 이 판화의 진정한 중심”이 되는데, 이러한 중심은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며 평면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중세 전통의 미술 관념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 중세 미술과의 단절 과정3 - 동판화와 인쇄술의 발전 ▼

- 동판화를 통한 “그림의 인쇄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승리를 보장해” 주었으며, “북유럽의 중세 미술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여러 가지 원동력 중의 하나”가 되었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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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13장 전통과 혁신 1

13장. 전통과 혁신Ⅰ(15세기 후반 : 이탈리아)

 

 

▲ 15세기 여러 ‘회화 유파’ 발생의 역사적 목적 ▼

 

- 중세시대에는 게르만 족의 유럽 통일을 통해 단일한 거대 제국이 탄생했다. 이러한 단일한 거대 제국을 통일시키는 지배적인 이념이 바로 중세 가톨릭(또는 중세 기독교)이었다. 이러한 지배 이념은 미술, 건축, 조각 등의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미술, 건축, 조각 등의 예술은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아니라 과학을 비롯한 여타의 학문처럼 종교적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곰브리치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미술”은 “성경의 이야기를 감동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에만 사용”되었다. (247쪽)

 

- 다른 한편, 거대 단일 제국 하에서는 각 지역 또는 각 민족(nation : 이때에는 아직까지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지 않았다. 이 개념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생겨나게 되었다)의 특이성이 강조될 수 없었다. 이 특이성이 강조될 경우 거대 단일 제국은 분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일성> 또는 <단일성>, <동일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동일성, 단일성이 미술에 있어서 <고딕 국제 양식>(p.215 참조)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 그러나 중세 말기에 오게 되면 절대 왕정의 왕권 강화(국왕의 권력 강화)되었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부르주아가 성장하였으며, 이러한 성장으로 인해 도시 공국(도시 국가)이 출현하게 되었다.

 

- 이러한 출현은 곧 고딕 국제 양식을 서서히 쇠퇴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도시 공국을 중심으로 지역적, 민족적 특색이 강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미술가들로 하여금 길드(gild)를 조직하게끔 만들었고, 이러한 길드는 곧 하나의 ‘회화 유파’(248쪽 참조)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하여 “15세기의 그림은 그림 자체만 보아도 그것이 피렌체의 것인지 또는 시에나인지, 디종 또는 브뤼주, 퀼른 또는 비엔나의 것인지를 식별할 수”있게 되었다. (248쪽)

 

 

▲ 피렌체의 건축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 1404-1472) ▼

 

- 알베르티는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 마사초를 이은 다음 세대의 건축가이다.

 

- 15세기 이탈리아와 북유럽 미술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이탈리아 - 천상계와 지상계의 상호통일성

* 북유럽 - 건축에서는 <단순성>, 회화에서는 <구체적인 세부적 묘사>

이 둘은 모두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의 두 측면을 각각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 알베르티는 바로 이탈리아 미술을 계승하고 있다.

 

- 도판 162(<르네상스 교회 : 만토바의 성 안드레아 대성당>)를 살펴보자. 알베르티는 직선과 원의 형태가 거의 분리되어 있는 고딕 양식을 지붕에서 직선과 원의 형태의 조화와 통일을 추구해 돔(dome) 형식을 추구했던 브루넬레스키를 이어받아 지붕의 돔 구조를 이어 받고 있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피렌체 대성당의 돔>(도판 146)과 비교해 보자.

 

- 도판 163(<피렌체의 루첼라이 대저택>을 살펴보자. 이 저택은 부유한 상인 소유의 집이다. 그 이전까지의 건물들의 소유는 모두 공동체의 소유였다. 즉 모두 공공건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가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중요시되고, 그에 따라 사적 소유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사적 소유의 한 형태가 이 대저택이다.

 

- 이 저택 역시도 벽기둥 사이를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아치로 배치하고 있는데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는 또한 돔 구조와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대저택의 창문들(p.189, 도판 125)을 비교해 보기만 해도 예기치 않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티는 소위 ‘야만적인’ 첨형 아치를 부드럽게 만들고 또 고전적인 기둥 양식의 요소들을 재래의 인습적인 형식 안에 채택함으로써 단지 고딕 식 설계 방식을 고전적 형식으로 ‘번안했을’ 뿐이었다.” (250쪽)

 

-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고딕 전통과 근대적인 양식 사이의 절충은 15세기 중엽의 많은 거장들의 특징이었다.” (250쪽)

 

 

▲ 피렌체의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 1378-1455) ▼

 

- “새로운 업적과 재래의 전통을 조화시키는 데에 성공한 피렌체의 거장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는

도나텔로와 같은 세대의 조각가인 로벤초 기베르티를 들 수 있다.” (250쪽)

 

- 도판 164(<세례 받는 그리스도>)를 살펴보자. 먼저 이 부조는 도타텔로가 만든 부조 <헤롯 왕의 잔치>(p.232, 도판 152)에서처럼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이 장면의 구성이 12세기 리에주의 유명한 놋쇠 주물공의 배치 방식과 많이 다르지 않다.(p.179, 도판 118)” (251쪽) 그런 점에서 중세의 전통적인 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먼저, 구원의 천사들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점이다. 도판 118(<놋쇠 세례반>)에서 천사는 요단강에서 예수를 기다리다가 세례를 해주는 두 사람 위에, 즉 천상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이 부조에서는 세례를 하는 세례 요한과 수평의 위치(세례 요한의 반대편)에 있다.

 

- 또한 기베르티도 도나텔로처럼 이 부조에서 “각 인물상에 특징을 주어 그들이 행한 역할을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251쪽)

 

- 이처럼 “기베르티”는 “당대의 새로운 발견들을 이용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고딕 미술의 이념에 충실”했다. (252쪽)

 

 

▲ 피렌체 부근 피에솔레(Fiesole)의 위대한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 1387-1455) ▼

 

- 기베르티처럼 “안젤리코도 주로 종교 미술의 전통적인 이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사초의 새로운 방법을 응용했다.” (252쪽)

 

- 도판 165(<수태고지>)를 살펴보자. 이 그림은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천장의 모습을 둥근 곡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인물들은 “거의 운동감이 없으며 실재의 단단한 인체를 암시해 주는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 (252쪽)

 

 

▲ 피렌체 화가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 1397-1475) ▼

 

- 도판 166(<산로마노의 대승>)을 살펴보자. 일단 이 그림은 원근법을 사용한 입체감을 통해 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말들이나 인물들은 조각된 회전목마나 인형들처럼 보인다. 이런 점은 이 그림을 매우 중세풍으로 보이게 한다.

 

- 그러나 이러한 중세풍을 해소시키는 것은 바로 그가 심취해 있는 원근법(도판 167 참조)이다. 이러한 원근법은 우첼로의 그림이 대단히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인물상들의 배치나, “심지어 땅에 흩어져 있는 부러진 창들까지도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254쪽)

 

- 이러한 우첼로의 원근법은 “관찰을 통해 얻은 세부들을 점차 더해주고, 또한 가장 사소한 음영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세세한 면을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국제 양식의 형식들을 변화”시킨 북유럽의 얀 반 에이크와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으로 입체적인 현실묘사를 하고자 했던 방법이다. (255쪽)

 

 

▲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 : 1421경-97) ▼

 

- 고촐리는 그의 스승인 프라 안젤리코와는 화풍이 대단히 다르다.

 

- 도판 168(<베들레헴을 향해 가는 동방박사들>)을 살펴보자. 고촐리는 그의 스승 안젤리코와는 다르게 성경의 일화를 성스럽고 단순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매혹과 환락의 동화처럼 그리고자 함으로써 당시의 생생하고 유쾌한 생활상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이 그림 또한 원근법에 충실하다.

 

 

▲ 북부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 1431-1506) ▼

 

- “그(만테냐)가 현실성이라고 부른 기준은 조토의 시대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것이 되어 있었다. 조토의 경우 중요했던 것은 이야기의 내면적 의미, 즉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즉 성경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어떻게 하면 성스럽고 아름답게 그려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반면 만테냐는 외부적인 형태에도 관심을 가졌다.” 즉 어떤 “광경이 실제로 벌어졌을 장면을 그대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256쪽)

 

- 도판 169(<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야고보>)를 살펴보자. 이 그림은 만테냐의 현실성을 충분히 반영한 그림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성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하여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 도판 169의 그림은 도판 168의 고촐리의 그림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고촐리의 인물들은 화려하지만 표정들이 거의 동일하고 생동감이 없는 반면에, 만테냐의 인물들은 매우 “조각적이고 인상적이다.” 또한 원근법을 통해서 만테냐는 그의 인물들을 “단단하고 형체가 있는 존재들처럼 서 있고 움직이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259쪽)

 

 

▲ 남부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cesca : 1416?-92) ▼

 

- 피에로는 만테냐의 비슷한 점을, 고촐리와는 전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만테냐와 고촐리처럼 원근법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 도판 170(<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을 보자. 이 그림에서 피에로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그것은 곧 <빛의 처리>이다. 피에로는 이 빛을 통하여 <현실성>을 훨씬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에서 빛은 인물들의 형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 내는 원근법과 대등한 중요성을 지닌다.” (260쪽) 이러한 점에서 곰브리치는 “마사초의 후계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피에로를 꼽는”다. (260쪽)

 

 

▲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만들어 낸 새로운 문제점 ▼

 

- 중세 시대는 대단히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며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던 2차원적인 평면적 시대였다. 왜냐하면 신의 세계(이데아 계)가 기하학적으로 2차원적인 단순한 삼각형의 구조를 가진 세계였고, 인간 세계의 현실계도 이러한 신의 세계를 본 떠 만든 세계이고 그 세계를 지향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세의 현실은 평면적이고 인물상들 역시 평면적인 삼각형 구도로 배치하면 되었다. 또한 정확하고 세세한 소묘 역시 알 필요가 없었는데, 이 또한 신의 세계가 가장 단순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현실 세계를 거울과 같이 반영하는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관념이 채택되자마자 인물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 이전처럼 용이하지 않았다.” (260쪽) 왜냐하면 중세 신분제 사회가 서서히 붕괴되면서 상인, 과학자 등이 ‘부각’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해진 신분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문제는 거대한 제단화나 그와 비슷한 작업에 직면했을 때 특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이런 그림들은 멀리 떨어져서 보여지며 또 교회 건축의 전체적인 구조와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술가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분명하고 인상적인 윤곽으로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했다.” (260쪽) 한마디로 말하면 중세의 시대적 이념과 붕괴되어 가는 중세의 시대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였다.

 

 

▲ 15세기 후반 피렌체 미술가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Antonio Pollaiuolo : 1432?-98) ▼

 

- 폴라이우올로는 “이 새로운 문제, 즉 소묘에 있어서도 정확하며 구성에 있어서도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262쪽) 그는 “정확한 규칙을 써서 이러한 문제를” “최초”로 “해결하려 했던” 사람이다.

 

- 이러한 그의 시도는 도판 171(<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에 잘 나타나 있다. 폴라이우올로는 이러한 규칙을 플라톤의 이데아 계의 구조로 나타낸 것 같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원뿔 형태의 꼭짓점에 위체해 있다. (평면적인 형태로 봤을 때 이는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의 위치에 해당한다). 그리고 성 세바스티아누스에게 활을 쏘는 사람들은 원뿔의 원을 형성하는 위치에 있는데 각기 대립적인 쌍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들의 특성과 구조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할 수 있다).

 

- 그리고 원근법을 사용하여 인물들의 입체감을 보여 주고 있다.

 

- 그러나 이 그림은 뭔가 조화롭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즉 “폴라이우올로는 그가 성취하려고 시도했던 것을 거의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다.” (262쪽) 왜냐하면 이러한 규칙(플라톤의 이데아 구조)은 중세적인 것인데, 이 중세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서 이 그림의 배경에 있는 “토스카냐의 풍경” (262쪽)과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배경에 있는 토스카냐의 풍경을 원근법으로 이용하여 훌륭히 묘사하고 있지만, 그 주제와 배경은 사실상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순교가 집행되고 있는 전경의 언덕과 배경의 풍경을 연결시키는 것은 하나도 없다” (262쪽)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1446-1510) ▼

 

- 보티첼리 역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 15세기 후반의 피렌체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262쪽)

 

-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도판 172(<비너스의 탄생>)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근거한 것인데, 이 신화의 주요 원리는 <다(多)의 공존>이다. 신들 사이의 위계질서 없이도 잘 공존하는 방식을 중세 신분제가 붕괴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앞으로 따라야 할 그 당시 사람들의 공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런 공존 방식은 미술에서 인물상의 배치의 기준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그러나 보티첼리의 인물 묘사는 “덜 딴딴해 보이”고 그럼으로써 “폴라이우올로나 마사초의 인물처럼” 해부학적 지식에 따라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264쪽)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우아한 운동감이나 선율적인 선들은 기베르티나 프라 안젤리코의 고딕 전통, 또는 앞에서 우리가 부드러운 육체의 곡선과 섬세한 옷주름의 흐름을 언급한 바 있는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p.213, 도판 141)나 프랑스 금세공사의 작품(p.210, 도판 139)과 같은 14세기의 미술을 상기시켜 준다.”(264쪽) 다시 말하자면 인물 묘사의 측면에서는 중세의 전통을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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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12장 현실성의 정복

서양 미술사 스터디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 보셔요^^.

근데 길어서 보시기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앞으로도 스터디 끝날 때까지 계속 정리해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양미술사』(E.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2009)

 

 

12장. 현실성의 정복(15세기 초)

 

 

▲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 ▼

- 그리스 고전의 합리적인 면모를 재조명하는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그리스 시대에 유행했던 자연세계에 대한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사상이 다시 등장하였다. 이 사상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1460년 마케도니아에서 피렌체로 여러 그리스 문헌이 보내져서 코시코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그것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헤르메스 전집」(Corpus Hermeticum)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로 하여금 이것을 번역하게 했다. 피치노와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로 알려진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가 모세와 동 시대 사람인 이집트 신부로서 실제 인물이고, 기독교의 예언자이며, 플라톤과 플라톤주의도 이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 역사적 실수는 르네상스 시대에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다.” (『과학사신론』(김영식,임형순 공저, 다산출판사, 2008), 71쪽)

- 헤르메스주의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매우 유행했던 신플라톤주의의 한 지류로서 중세의 마술적, 연금술적 사조와 연관되어 우주에 존재하는 신비적인 힘을 인정하고 인간이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자연에 대한 근대적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 헤르메스주의는 우주와 인간이 연관되어 있다는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당시는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영향으로 ‘존재의 큰 사슬’과 ‘대우주-소우주 유비관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존재의 큰 사슬’ 이론은 이 사슬의 한 쪽 끝에 신과 천사들이 있고, 다른 한 쪽 끝에 인간과 지상세계가 있으며, 이 둘이 거대한 사슬로 묶여 있다는 이론이다. 당시 사람들은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여러 상관관계들을 설명함으로써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추구했고 점성술은 그 관계들을 기초로 발전하게 되었다.

- 헤르메스주의는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우주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신성한 신의 영역이었다. 반면에 헤르메스주의에서 우주는 신비적 힘들의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되었고, 네트워크 한 부분인 인간과 대우주가 서로 영향을 미쳤다. 즉 헤르메스주의에서 우주는 인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을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무능력자였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은 무능력에서 벗어나 자연을 통제하고 변형시켜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인 존재로 발전한 것이다.

-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 널리 퍼진 헤르메스주의는 동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레오나르도는 신비주의 사상에 입각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고, 16~17세기에 베이컨과 뉴턴은 신비주의 사상과 연금술에 심취했었다. 기존에 수용된 신비주의가 자연의 초월성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관념이었다면, 헤르메스주의는 구사상 체계를 타파하는 새로운 지적 에너지로서 자연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연구하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 플라톤의 만물계(현상계)의 복잡한 현상들이 이데아 세계의 아주 단순한 구조로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신비화의 이면에는 복잡하게만 보이는 우주 현상을 단순한 우주 구조의 원리, 법칙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과학적인 노력들이 숨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을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헤르메스주의(또는 신플라톤주의)의 상호 영향과 관련된 신비함은 플라톤의 <관여 또는 분유>개념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관여 또는 분유 개념은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당히 비유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이 장에서의 현실성(또는 사실성)의 의미 ▼

- 이 현실성은 단순히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단순한 현실이 아니다. 헤르메티시즘에 따르는 현실이다. 즉 중세 때처럼 신의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지상세계로서의 현실계가 아니라 신의 세계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현실이다.

 

 

▲ 르네상스가 서양 미술사에서 가지는 의미 ▼

-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 고트 족과 반달 족 같은 게르만 종족이 침입하여 로마가 멸망한 지 700년이 지나서야 고딕 양식이라고 부르는 미술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 고딕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인들에 의해 <야만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 이 당시의 이탈리아인들은 야만적인 고딕 양식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리스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인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 피렌체에서 15세기 초에 일단의 미술가들이 계획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하였다.

 

 

▲ 젊은 피렌체 예술가 집단의 지도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lippo Brunelleschi:1377-1466) ▼

- 피렌체 대성당의 돔(dome) 구조의 완성(도판146, <피렌체 대성당의 돔>, 225쪽 참조)

- 중세 시대에는 픞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따라서 지상계와 천상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운동의 형태로 볼 때, 천상계의 구조는 원 운동 구조(그리하여 천상계에서 원 운동은 자연 운동이고 직선 운동은 강제적 운동이 된다)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반대로 지상계의 구조는 수직 자유낙하 운동으로서의 직선 운동 구조(그리하여 지상계에서 직선운동은 자연 운동이고, 원 운동은 강제적 운동이 된다)로 이루어져 있다.

- 그러므로 중세 고딕 양식의 건축들은 거의 모두가 직선 형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 형태나 곡선 형태의 구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그러나 지상계와 천상계의 상호 결합과 영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브루넬레스키는 직선과 원형태가 결합된 곡선 형태의 돔 구조를 지붕(지상계와 천상계가 만나는 지점)에 적용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후에 아마도 17C 운동 역학의 포물선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Masaccio : 1401-28)의 원근법 ▼

- 원근법은 현실 세계, 즉 3차원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방법인데, 이는 수학적(이 당시까지만 해도 수학은 천상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학문으로서 주로 수적 비율과 연관된 기하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방식에 의거한 것이다.

- 이 원근법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적용한 것(즉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을 적용한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삼각형 구조이다.

(선의 이데아)

 

 

 

(이데아1) (이데아2)

 

** 이데아1과 이데아2는 대립쌍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삼각형 구조는 2차원적인, 즉 평면적인 아주 단순한 구조이다. 이 삼각형 구조는 현실계에 <관여 또는 분유>를 통해 다양한 입체적 형태로 나타난다(플라톤은 우주의 물질 형상은 바로 정다면체의 기하학적 도형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불은 정4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 공기는 정8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 물은 정20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흙은 정6면체로 이루어져 …… 매우 안정적이다. …… 기하학에는 이 네 가지 정다면체 이외에 또 하나의 정다면체가 주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는 또 하나의 원소가 있어야 한다. 즉 제5원소는 정12면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둥글게 생긴 형태로서 하늘을 구성하고 있다).

- 그런데 이 3차원의 현실 세계는 2차원의 이데아 계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다.

- 도판 149(마사초 작, <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를 살펴보자. 예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 요한의 위치와 헌납자들인 상인들의 위치는 분리되어 있고, 상인들이 서 있는 위치는 지상계(현실계)이고, 그 뒤는 천상계(이데아계)이다. 그러나 천상계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손으로 만지면 만져질 것 같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 도판 149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비견되는 신(The One)과 예수, 그리고 그 밑에, 대립쌍에 비견되는 성모 마리아(여성)와 성 요한(남성), 그리고 더 밑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의 관여 또는 분유 형태로서의 상인 부부가 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2차원적으로도, 그리고 원근법에 따라 3차원적으로도 삼각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 이렇게 볼 때 원근법은 기하학적 도형상 삼각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각형의 2점의 지상계로부터 삼각형의 나머지 1점의 천상계에 이르는 모습이 바로 이 장에서 말하는 현실이고, 그 현실은 원근법으로 처리되어 있다.

- 성모가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을 손으로 가리키는 단순한 제스처는 현실계(지상계)와 이데아계(천상계) 사이의 상호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하고 할 수 있다. 현실계는 운동 변화하는 세계인데, 이 운동 변화는 대단히 현란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계늬 운동 변화가 이데아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이데아계가 현실계처럼 현란하고 복잡한 운동 변화를 겪는 세계는 아니다. 그러한 운동 변화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상호 영향성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데아는 가장 단순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 도나텔로(Donatello : 1386?-1466) - 브루넬레스키 일파 중 가장 위대한 조각가 ▼

- 도판 151, 150(도나텔로 작, <성게오르기우스>)을 살펴보자. 여기에도 범신론적인 헤르메티시즘(헤르메스주의)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중세에서의 지상계와 천상계의 분리를 통해서 볼 때, 상인들은 거의 무표정한 고요한 아름다움(도판127 참조)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천상계의 성인들은 지상계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희로애락 등의 감정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 게오르기우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결의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 천상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자신감과 힘찬 기상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 도판 152(도나텔로 작, <헤롯왕의 잔치>)를 살펴보자. 도나텔로는 여기에서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헤롯왕이 있는 연회장과 악사가 있는 회랑,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방(?)의 위치를 원근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세 개의 방을 플라톤의 사회의 세 계급을 분리한 것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방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근법으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왕실의 연회실은 플라톤의 이데아 계에 비유될 수 있는데, 이데아 계는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날 수도 없거니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연회실 안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표현들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포와 갑작스러운 혼돈의 표정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교황청과 중세 가톨릭의 권위 상실로 인한 그 당시의 사회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살로메의 어머니와 연회석 사이에 <큰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큰 공백>은 곧 <빈 공간>을 의미한다. 중세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의 여향으로 이 세계 전체, 즉 우주 전체는 빈 공간이 없이 꽉 차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빈 공간은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운동 변화는 곧 신분제 질서 체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5C 전까지의 모든 예술 작품에는 빈 공간(여백)을 남겨 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은 헤르메티시즘의 영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상계와 천상계 사이의 빈 공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빈 공간은 나중에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알프스 북쪽의 조각가 클라우스 슬뤼테르(Claus Sluter) ▼

- 당시의 부유하고 번창하는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 디종(Dijon)에서 1380년 경부터 1405년까지 일한 사람이다.

- 도판 154를 살펴보자.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예수의 수난을 예언했던 예언자인 다니엘과 이사야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도판 151, 152)에서의 성 게오르기우스처럼 인상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 1390?-1441) - 북유럽에서 사실성(현실성)의 정복을 최종적으로 완수한 사람 ▼

- 얀 반 에이크 역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와는 달리 사실적이고 세속적인 표현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신플라톤주의의 범신론적 성격, 더 나아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신론적 성격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은 개개의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범신론인데, 개개의 사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세세한 묘사는 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도판 155를 살펴보자. 일단 전체적으로 볼 때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들의 존재 구조가 선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대립 쌍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쌍으로 대비되어 이루어져 있다. 위의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 그림도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범신론이 가지는 해방 성격에 따라, 아래 그림을 보면 영주 귀족들과 기사, 농노들과 같은 평민들이 수평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범신론의 성격에 따라 The One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세속 인간의 다양한 표정처럼 다양하다. 도판 141(p.219, 100년 전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제단화)와 비교해 보라.

- 도판 156도 마찬가지이다.

- 도판 157을 보게 되면 생생하고 구체적이면서 세부적인 묘사가 눈에 띄는데 이것도 다 범신론적인 성격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범신론에 의해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하는 것과 깊은 연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원근법도 사용하고 있다.

- 도판 158(<아르놀피리의 약혼>) 이 그림 역시도 얀 반 에이크가 아르놀피리와 그의 신부 잔느 드 쉬라리의 약혼을 기록화처럼 사실성에 기초해 그린 그림이다. 두 인물의 세세한 묘사뿐만 아니라, 특히 강아지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도판 160 참조). 또한 거울에 반사된 모습 역시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거울 속에 얀 반 에이크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거울 속의 그림은 원근법에 의해 처리돼 있다(도판 158 참조).

 

 

▲ 스위스 화가 콘라드 비츠(Conrad Witz : 1400?-1446?) ▼

- 도판 161(<제자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게 하신 기적>)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대단히 친숙해 보이는 느낌을 지닌다. 그 이유는 실제 제네바 호수와 살레브 산을 배경으로 그렸으며 실제 어부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성경에서 이 호수는 티베리아 해로 나온다). 중세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면 곰브리치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티베리아 해를 상투적인 몇 개의 물결 선으로 처리했을 것이며, 예수의 모습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의 모습은 친근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이는 마사초의 도판 149(<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의 인물상을 연상시킨다)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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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할 줄 알아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줄 고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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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같이 공부해 보고자 해요^^.

이번 여름 방학 때는 근대서양 미술사에 관해서

스터디를 하려고 합니다.
서양 미술사를 인문학적, 특히 철학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뭐, 제가 이에 관해서 잘 아는 건 아닙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같이 토론하면서 공부를 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미술관 전시회도 같이 가 볼 생각입니다.

가서 그림 감상도 하고요^^.

 

텍스트(교재) : 곰브리치(저자)의 [서양미술사](예경, 1997)

                     12장부터~

예비 모임 : 7월 15일(목) 오후 5시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1층 학생식당

 

주중에 스터디를 할지, 주말에 스터디를 하게 될지는 예비모임 때

같이 논의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공부해 볼 사람은 밑에 댓글 달아주시고, 이메일 주소 남겨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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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티드 시스터의 노래...^^

 

 

 

 

 

 

사실 이 노래는 연부를 비롯해 억압과 착취에 대항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짜증나는 일상의 더위를 나려 보내 줄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영화 <감사용>에서 나온다.^^

도넛츠(Donots)라는 그룹이 2002년에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리메이크한 곡이기도 하다.

 

Twisted Sister - We're No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We've got the right to choose and

There ain't no way we'll lose it

This is our life, this is our song

우린 선택할 권리가 있고그 권리를 앗아갈 순 없지이건 우리의 인생, 우리의 노래야

 

We'll fight the powers that be just

Don't pick our destiny 'cause

You don't know us, you don't belong

우린 침묵하는 권력과 싸울거야

우리 운명을 정하려 하지마넌 우릴 몰라, 네가 있을 곳이 아냐

 

Oh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Oh you're so condescending

Your gall is never ending

We don't want nothin', not a thing from you

 넌 겸손한 척 하지만

그 뻔뻔함은 결코 끝이 없어우린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너에게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Your life is trite and jaded

Boring and confiscated

If that's your best, your best won't do

닳고 낡아 빠진 네 삶따분하고 차압당한 네 인생너의 최선이 고작 그 정도라면아무리 애써도 헤어나질 못할거야

 

Oh.....................

Oh.....................

 

We're right/yeah

We're free/yeah

We'll fight/yeah

You'll see/yeah

우리는 정당해, 우리는 자유로워우리는 싸울거야, 두고 보라구

 

Oh we're not gonna take it

No,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Oh we're not gonna take it

No,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No way!

절대 안돼

 

Oh.....................

Oh.....................

 

We're right/yeah

We're free/yeah

We'll fight/yeah

You'll see/yeah

우리는 정당해, 우리는 자유로워우리는 싸울거야, 두고 보라구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We're not gonna take it, no!

No, we ain't gonna take it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Just you try and make us

한번 해봐 그렇게 만들어봐

 

we're not gonna take it

Come on!

No, we ain't gonna take it

You're all worthless and weak!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Now drop and give me twenty!

We're not gonna take it

Oh crunch pin!

No, We ain't gonna take it

Oh you and your uniform!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

덤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

넌 약해빠진 쓰레기야!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나에게 고통을 가하겠지만 택도 없는 소리!  

틀에 박힌!

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

너와 너의 제복!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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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선거가 끝났다.

선거 기간 동안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유세차량 방송이 엄청 시끄러워서였다.

별로 관심 없던 선거여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나는 이번에도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서 사표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표를 만들었다는 그런 멍청한 말은 이제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들이 투표를 한다고 해봤자 전국적으로 기껏해야 1만표 정도였을 것이다.

1만표 얻어서 당선될 것도 아닌데...

그리고 비판적 지지해서 한명숙이라도 당선됐다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인지...

 

그렇게 표 확인해서 어쩔 것인가...

진보 진영이 1만표 정도 더 얻었다는 거 확인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가?!

전국적으로 3.4%에서 3.5%로 올라갔다고 자족하고 말 것인가?!

한명숙 등 민주당이 당선돼서 비판적 지지자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민주당이 당신들의 정체성이라는 환상에 젖어봤자,

민주당이 당신들의 정체성이 될 리도 만무하거니와

자신의 모든 정치적 생존을 민주당에 모두 맡기는 멍청한 짓을 한다고 생각해 보지 않으셨는지...

그러니까 표 갈라먹었다고 민주당한테 욕을 얻어 먹는 상황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근본적으로 하나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인가?!

우리는 먼저 이것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선거 때가 오니까 선거에 참여한다는 관성에 의한 것인가?!

당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인가?!

진보진영인 우리가 있음을 알려리려고?!

그건 평소에 하여야 하는 일 아닌가?!

왜 하필 선거 때만 되면 알리지 못해서 그러는가?!

몇 표인지 확인해 보려고?!

 

이건 아니잖아~~~...

그렇지 않은가?!

 

이명박 뽑았다고, 한나라당 뽑았다고

대중들 욕할 필요도 없고,

사실 그럴 욕할 자격도 없는 게 사실이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뽑지 않고 민주당 뽑았다고

대중들 칭찬할 건가, 대중의 의식이 높아졌다고?

 

어떤 선거이던지 선거에 참여하려면

뭔가 보여줄 만한 능력이나 실제 행하고 있는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대중들은 '소박한' 유물론자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험론자들이라 뭔가 보여 주어야 한다.

진보 진영 스스로가 뭔가 대안을 실험하고 있으며 그 성과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대중들은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진보 진영이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진보 진영이 늘 부르주아 정치 공간 안에서 부르주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항상 부르주아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놈한테 직접 요구하는 것이 빠른가,

아니면 제3자(그렇다고 이 3자가 부르주아 하고 아주 친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미운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혀 있는 3자다)를 통해 요구하는 것이 빠른가?! 

대중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요구를 하는 쪽이 빠르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성향이 극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재작년에 나타난 촛불 시위 현상이고, 

이번 선거에 민주당에게 표를 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고, 그 속에서 어떤 떡고물을 찾을 것이냐 하는 것에, 

그리고 심상정이나 노회찬의 정치노선이 어떻다라는 것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 

이미 예견했던 일이 나타난 것이고, 이미 선거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서 그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죽은 자식 뭐 만지기'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스스로 우리가 내걸었던 구호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한 구호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개별적인 노동자들이 자본이 주는 개별적인 임금을 통해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모든 물질적 조건들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인프라의 구축을 자본에게 청원해 봤자 자본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자본의 투쟁(이 투쟁은 수동적인 청원의 의미가 아니라 빼앗긴 우리의 것을

우리가 되찾아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투쟁이다)을 벌여서 그 물적 토대를 다져야 한다.

그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최선봉의 투쟁이 바로 노동자 계급의 임금, 단체 협상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은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을 몇 %인상한다거나,

이와 밀접하게 관련하여 개별적인 노동조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즉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스스로 대안을 마련하고 실험하면서 현실화시켜 나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대중의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의 신뢰를 받게 되면, 

이제 대중은 이 실천활동에 죽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바꿔 나갈 때 우리의 정치적 힘이 생성, 증대되며 

그럴 때 선거가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이제 6월에 민노총 총파업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이 총파업을 우리의 공동 삶을 현실화시키는 디딤돌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인 민노총에게 정당하고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무늬만 총파업을 하지 말고,

우리 공동 삶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총파업을 실시하자고 말이다.

우리에겐 우리 공동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진보 블로그들이 모여

토론하고 그 토론의 결과를 민노총에게 전달하고,

민노총을 견인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진보넷이 이러한 토론회를 마련해 봤으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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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에 관하여...쫑알쫑알...

요즘 선거로 대(?)한민국이 난리부르스가 아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둥 하면서 북풍으로 선거라는 배를 당선의 항구로 향하게

하려는 '당나라 당'의 '사대강 삽질'의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거기에 야권을 비롯한 진보 일부 세력들이 여전히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이라는 망령을 등에 업고

'반엠비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될 놈을 밀어주자라는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의 망령은 우리의 의식을 갉아먹고서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 빼 놓고는 아무 생각 없는 '좀비'를 만드려고 하고 있다.

국민을 좀비로 만드려고 한다는 점에서 엠비나 반엠비나 '초록은 동색'이다.

 

뭐, 나란 인간은 90년 초반부터 투표 행위에 일체 참여를 하지 않았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둥, 사표를 만든다는 둥 하면서 힐난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살 물건이 없으면 사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맘에 들지 않아 투표를 하지 않았다. 

누구 좋으라고 투표하냐!!! 

그런데도 투표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파쇼의 논리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도 시큰둥이다... 

한명숙을 찍던, 오세훈을 찍던, 노회찬을 찍던 찍는 사람 마음 아니겠나... 

근데 이번에도 난 찍을 사람 없어 안 찍을란다. 

 

교육감 선거도 있는 모양이다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교육과 관련해서 쫑알쫑알대기로 했으니 쫑알대보기로 하겠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육과 관련한 커다란 두 개의 문제는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가(이것은 공교육의 위기로 일컬어지곤 한다)와

이에 맞선 공교육의 강화이라고 본다.

이 두 문제는 다음과 같은 위치를 점한다.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가의 반대는 공교육의 강화이다. 

그런데 정말 이 둘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인 것인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둘은 딜레마를 구성하는 쌍생아일 뿐이다.

어느 한 쪽을 택해도 교육문제는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즉 적대적인 무한 경쟁 이데올로기에 저당 잡힌 세대들을 계속해서 길러낸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이라는 망령이 판을 치게 만드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먼저 공교육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보자.

공교육의 대표적인 기관은 일선 학교이다.

그러므로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은 학교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학교 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열심히 시킨다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공부를 열심히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대학입시라는 무한 적대적인 경쟁에서 살아 남아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입시는 어떻게 치루어지는가?

대학입시는 곧 적대 경쟁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 경재에서 살아 남는 자와 도태되는 자를 가르는 기준은

양적인 기준이 되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양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시간 내에 많은 상품을 생산하여 최대 이익을 뽑아 내야 살아 남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양적인 시스템은 누가 더 많이 짧은 시간 내에 단편적 지식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을 빠른 시간 안에 떠올릴 수 있는가이다.

이는 텔레비전의 퀴즈프로그램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은 단편적 지식들을 학생들 머리 속에 꾸겨 넣어야 하고, 

그 꾸겨 넣은 기억들을 단시간내에 떠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들은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수도 업고 신경 써서도 안 된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일 외에 노조 활동 등의 여타 정치적 활동 등을 해서는 안 되며,

수업 시간에 쓸데없이 이념 교육이니, 통일 교육이니 시가 어떻고 문학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하는, 

대학입시와 하등 관계가 없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전교조 선생님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징계를 하고, 퇴출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며, 

심지어는 무슨 연구기관에서 전교조 선생님이 많은 학교에서 대학입시 모의고사 성적이 낮게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뉴스를 통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 역시도 이런 시스템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공정택이 초등학교 때부터 일제고사를 실시한다는 것도 공교육의 강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공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일제고사를 보게 되면 아이들은 또 시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시험을 잘 봐야 하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즉 무한한 적대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사교육의 대표적인 장소인 학원에서 11시 12시가 다되도록 파김치가 된다. 

학교에 학원에 아이들은 시들어간다. 

재작년에 여고생 3학년들이 잠 좀 자자고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공교육을 강화시키게 되면 정말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잘 들어가게 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공교육의 강화는 결국 사교육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한 적대적 시스템인 대학입시에서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단편적 지식을 꾸겨 넣어야 한다. 

아무리 학교에서 빡세게 한들 어차피 정해진 경쟁 내에서는 누가 잠을 더 안 자고, 

누가 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누가 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더 많은 단편적 지식을 꾸겨 넣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공교육을 강화시키면 시킬수록 공교육은 황폐되며, 

사교육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이며,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다. 

 

제도권 교육, 아니 자본 계급의 교육 시스템에서 두 개의 축인 공교육과 사교육은 

상호 대립적이지만 상호 보완적이면서 통일적인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답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당면한 딜레마 상황인 것이다. 

오죽 했으면 진보넷 블로거 중 한 명께서 자식 교육을 포기하겠다고 하셨겠는가!!! 

 

우리의 대안을 공교육으로 잡는다면, 

우리는 무한 적대 경쟁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의 무능력에 다름 아니다. 

진보 운동의 위기가 왜 생겨나겠는가? 

유치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학교 교육에서 

무한 적대적 경쟁 속에서 살아 남는 법만 배운 젊은이들이, 

그리고 돈 버는 외의 활동을 다 쓸데없는 활동이라는 생각을 생활 속에서 체득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지는 뻔할 뻔자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데올로기... 

이것이 슬프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데올로기이다. 

딱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만 움직이며, 그 위협이 잠시 사그라든다고 생각하든가 

그런 움직임이 생존에 더 위협을 준다고 느끼면 얄짤없이 스톱 앤 고우 백이다! 

 

그러면 교육에 있어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겠는가?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사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저 꼴통 보수인 당나라 당도 공교육 강화를 외치고 있다.

공교육은 진보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공교육은 자본의 측면에서 볼 때의 공교육이기기 때문이다.

 

대안은 공교육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교육인데, 이는 곧 여성, 장애인, 소수자 인권 등의 소수자 교육이다.

우리는 이러한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며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공교육, 사교육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계급 교육, 소수자 교육을 사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본의 생산을 위한 영역에서의 사교육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사교육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런 계급 교육을 위한 준비를 하고 그러한 교육을 시행하지 않으면,

우리 진보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계급 교육, 소수자 교육은 현재 수준에서는 제도권에서는 실시될 수도 없고,

실시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교육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교육,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현실적인 대안 교육이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요체는 자기 비판(이것을 북한 식의 자아비판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내탓이오'와도 동일시해선 안 된다.

이 자기 비판은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질적으로 구별시켜 주는 계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만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의미를 가진다)과

이 비판을 바탕으로 하는 '산파술'로서의 상호토론이어야 한다.

이것은 맑스가 [포이에르바하 테제] 3에서 <교육은 그 환경 뿐만 아니라 교육자 그 자신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 속에서 체화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의 학교에서처럼 교과서를 가지고서 주입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오로지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상의 삶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무한 적대적인 경쟁 시스템이라는 일상의 삶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코뮌>에서의 일상적인 삶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숨쉬며 맘껏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코뮌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동시에 이런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속에서 우리 자신 역시도 코뮌을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이 코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각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곧 계급투쟁이며, 소수자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적 토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이러한 물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출발점은 노동자 계급의 임,단투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임금 투쟁, 단체협상 투쟁을 단순히 경제투쟁, 개량적 투쟁의 시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투쟁을 코뮌이라는 진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투쟁의 서막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현재 이러한 투쟁이 개량적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개별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라는 측면에서만 고찰되고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립적이고 개별화된 임금 노동자의 임금 보전과 인상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 소득 보장에 대한 논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러한 투쟁은 개별 노동자의 임금 인상 수준에서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와 민중 전체를 위한 수준에서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자본에게 착취 당했던 부분을 되찾아 개별적인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민중 전체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코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기본적으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먼저 자연 친화적인 우리 농산물의 공급은 농민회와 연대하면 된다. 

농민회와 민주노총 사이의 직거래를 하면 된다. 

필요한 만큼 주문을 받아서 농민회는 필요한 만큼 농사를 지면 된다. 

여력이 된다면 농민회 차원에서 주말 농장 같은 것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직접 흙을 만지고 농사를 짓는 수업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재원은 물론 민주노총 차원에서, 아니면 지역 노총 차원에서 

대자본 임단투 투쟁을 통해 마련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아이들을 자본의 교육 영역(제도권 교육)으로 완전히 넘겨서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자신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간은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을 일단 지역 차원에서 하나씩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마련하는 방식은 임단투 투쟁을 통해서 얻은 재원을 가지고,

노동 계급 스스로가 짓거나 임대하면 된다.

이 재원이 어떻게 쓰이는지와 관련하여 자본의 간섭을 단협을 통해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마련된 건물에 아이들의 공부방, 문화시설, 식당, 놀이방, 토론회 장소, 휴식 공간 등을 마련한다.

아이들은 이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코뮌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지원책을 요구하고 스스로 집행해 나가는 학습을 한다.

물론 이러한 학습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제도권 교육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 교육 대신 스스로의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을 꾸려 갈 것인가의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선택을 통해서 부수적으로 군 입대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이는 곧 전쟁 반대의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의무 교육인 중학교만 마치면,

내가 알기로는 군대에 가지 않고, 공익 요원과 같은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데,

그 봉사활동 기관은 곧 자신이 학습했던 코뮌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건물 확보가 당장 모든 지역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우에 과도기적으로 대학을 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학생운동의 방향은 새로운 인간의 생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합법적으로 봉사 동아리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봉사 동아리의 형태는 학생 대중들과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내에서 방과 후에 아이들이 같이 먹고 같이 놀며 같이 공부하면서

또한 자신들의 코뮌을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파업 파괴에 아이들이 이용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의 생산은 기존의 노동운동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변태(허물 벗음), 새로운 변혁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노동자들은 자기 가족들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 자신의 조직을 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그러한 부모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를 격려, 비판하면서 함께 싸우는 동지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새로운 교육, 비제도권 교육으로서의 계급 교육은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교육 속에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

다시 말하자면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자본과의 한판 싸움을 위해서, 즉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서 의식적으로 <임금 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코뮌을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그들 스스로의 관계, 즉 코뮌 속에서 풀어나가게 되면,

우리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하나인 가족 이데올로기에 매몰될 필요도 없거니와,

우리 아이들에게 온통 신경이 팔려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억압적 삶을

살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속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가족 내에서의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코뮌-코뮌 구성원으로서의 동등하고 민주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각자가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렇게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연대하는 공산주의 삶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각기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대하는 사회>인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이라는

우리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떻게?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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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관하여...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관계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글이 길어 다 올리지는 못하고 첫 부분과 끝부분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덧글에 이메일 주소를 써 주시면 메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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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가부장제에 주목하는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노동의 비중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발달하면 할수록 노동-자본 간의 모순과 갈등이 심해지고, 이러한 현상은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을 임노동 영역으로 끌어들여 임금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리고서는 삶의 질이 떨어진 것을 다시금 여성노동, 특히 돌봄 노동 등을 포함하는 여성의 가사노동에게 전부 떠맡긴다. 여성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중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첫째, 임금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파업 파괴 노동’의 역할을 한다. 둘째, 자본이 기존 노동의 재생산과 새로운 노동의 생산 비용을 거의 모두 여성노동에 떠맡김으로써 자본의 이익을 마음대로 증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본 계급에게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남성) 노동 계급에게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또한 하고 있다. 노동 계급의 노동력 재생산, 더 나아가 노동 계급 자체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소비노동이며 동시에 생산노동인 여성의 가사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여성의 가사노동이 없다면 노동 계급의 임금노동뿐만 아니라 대자본 투쟁 역시 불가능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서로 적대적인 두 계급인 자본 계급과 노동 계급에게 동일한 이익을 안겨다 주는 ‘공모’의 측면이 이러한 이중적 측면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공모의 측면은 바로 성별 노동 분업을 통해 여성 노동을 임금 노동 영역으로부터 배제시키면서 동시에 여성 노동을 착취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동-자본 계급 모순, 즉 자본주의 경제 체제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처럼 보인다.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가부장제 하에서의 또 다른 억압의 부분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해체는 자본을 해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의 해체를 동시에 포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가 자본주의 해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등장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4. 자본주의 폐지로서의 가부장제 폐지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들이 개별 경쟁 체제로 가는 한 가부장제는 지속된다. 가부장제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 과정과 새로운 노동력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자기 자신을 생산하여 자본가와 개별적으로 계약하고 살아남기 위한 과정 속에서 싹트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지는 ‘즉자적’인 노동-자본의 대결 구도, 즉 노동자 계급이 서로 경쟁하면서 개별적으로 자본과 대면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통해 자본과 대결하는 구도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는 노동조합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존재이다. 노동자 계급이 ‘대자적 존재’, 즉 계급적 존재로서 자신의 모순을 지양해 나갈 때 비로소 계급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며, 이 계급투쟁 자체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에 대한 계급투쟁은 곧 자신의 생산과정 속에 내재해 있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척결해 나가는 투쟁으로부터 시작되며 또한 이 투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가부장제 폐지 투쟁은 자본주의 폐지 투쟁의 전제이며 노동계급 투쟁의 진지를 구축하는 투쟁,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투쟁, 코뮌을 형성하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폐지 투쟁으로서 가부장제 폐지 투쟁은 자본의 자기 생산의 전제 조건의 기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투쟁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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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일..

오늘 위 내시경 검사한 결과를 보기 위해 국립의료원으로 갔다.

결과는 위염이 있고, 식도염이 있다는 것이다.

식도염 때문에 기침이 계속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식도염은 위산 과다로 인해 위산이 거꾸로 역류해서 생긴 염증이란다.

식도염이 생기면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나온단다.

그래서 위산을 억제하는 약과 식도염을 직접 치료하는 약을 처방받아 왔다.

 

처방의약품의명칭 1회투약량 1일투여횟수 총투약일수 용법
넥시움정40mg(아스트라제네카) 자기 전에 드세요 1Tab 1 28 1일1회자기전에 1씩 복용하세요
무코스타정 100MG(한국오츠카) 1Tab 3 28 1일3회 매 식후 30분에 1씩 복용하세요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서는 식도 정맥류 등의 정맥류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는 간경화라고 확신할 수도 없지만,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단다.

그래서 간 조직검사를 해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서

간 조직검사 받아 보기를 권유했다.

그런데 이 검사는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데다가,

병원에 3일 정도 입원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검사를 받아야 할지 어쩔지...

하여간 좀 고민해 볼 일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 처방 받았던 흉부내과에서 조제해 준 약은 별로 차도가 없었다.

특히 <코푸시럽>이라는 물약은 속을 미식거리게 하였다.

그리고 그 약을 먹고, 아니면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난 이후로

가끔씩 토할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요건 잊어버리고 의사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도 지끈거리면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5월2일, 일요일)저녁부터는 물약을 먹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식도염 약만 먹기로 한다.

흉부내과에서 처방한 약은 먹지 않기로 한다.

 

오늘 오후에 이비인후과 진료 예약한 것을 5월 12일 오전11시로 미루었다.

기침을 일단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는 것이 나을 듯싶어서다.

빨리 기침이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빨랑 다시 운동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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