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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주] 민주노총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내가(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선주 동지가 민주노총에 사직서를 냈다.

한선주 동지뿐만 아니라 총연맹 상근자들이 우르르 사직서를 냈고

내일 아침이면 기자회견까지 한다고  했다.

총연맹 집행부의 납득할 수 없는 기막힌 행태에 안팎의 비판이 끓어오르고 있는데

정작 문제의 핵심 당사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권력(무슨 권력?)이나 찬탈하려는 노림수라고

진정으로 민주노조운동에 몸 바쳐 왔던 동지들을 매도하고 비난한다.

 

나야말로

관성에 젖어 헤매지 말고

한선주 동지와 현장에서 말없이 온몸으로 헌신하고 있는

동지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민주노총 사무총국 활동가들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전원 사퇴를 다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한선주 조직국장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민주노총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민주노총 조직국장으로 일해 온 한선주입니다,

만 5년 열흘을 몸담아 왔던 민주노총을 떠나며 동지들께 이렇게 인사드리게 돼 마음이 착잡합니다. 그동안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성실히 노동운동에 복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상급단체 상근활동이 길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배는 관성화에 스스로 채찍질하고 반성하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그렇게 노동운동 일선에 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7일,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은 민주노조 안에서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사건으로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 주었습니다.

조바심과 충격으로 며칠을 보냈는데 결국 11일 오전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더 큰 실망과 분노를 느꼈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며 저의 심경을 올립니다.


첫째, 민주노총 지도부의 안이하고 주관적인 태도 속에서 민주노총이 더 이상 민주노조 운동을 책임 질 조직이 될 수 없음을 가슴 아프게 느낍니다.  

강 수석은 민주노총 조직혁신위원회 위원장이었으며, 기아자동차 취업비리를 비롯한 각종 사건의 진상조사 위원장을 맡아 조직안팎에서 핵심적인 활동을 진두지휘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민주노총 수석 부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까지 금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민주노총과 조합원, 그리고 투쟁을 팔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했던 지도부들이 또다시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지도력으로 비정규투쟁을 책임지고 노사관계 로드맵 등 하반기 중차대한 사업들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조직에 치명적인 부도덕함을 대하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태도가 절망스럽습니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 사실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은 조합원동지들과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있는 민주시민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신속한 입장과 대국민 사과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뼈아프더라도 민주노총답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였어야 합니다. 즉 대중조직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대하는 원칙과 기풍을 확고히 세움으로 제2, 제3의 유사한 사건을 방지하고 조직의 건강성을 회복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퇴냐 아니냐를 놓고 밤새 논란하면서 권력에 연연해하는 전형적인 관료들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위원장은 업무중지 사흘만에 복귀하고, 조기선거로 이 충격의 파장을 가라 앉히려 하고 있습니다.


셋째, 민주노조운동의 생명인 자주성, 민주성이 민주노총에서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굳이 민주노조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자주성과 민주성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단위노조에서 물의를 일으킨 지도부들이 책임지고 총사퇴하는 모습을 여러번 보아왔습니다. 그것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조합원 대중이 노동조합의 주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나돌던 흉흉한 소문도 두려웠지만 더욱 충격스러운 것은 민주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팔아 먹은 온상이 민주노총 심장부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상태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합니다.  


넷째, 저의 짧은 생각을 백번 양보해 지도부의 고뇌와 고충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현장에서는 자주성과 민주성을 지키려고 바둥거리고, 또 다른 현장은 곪아 터지고 있다는 한숨이 나오는데 민주노총 지도부는 어떠한 원칙으로 이러한 조직을 이끌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 사태를 진정으로 책임지고자 하다면 백마디 말보다 평조합원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며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지애 어린 격려와 채찍으로 함께 해야 할 일이 있고, 엄중히 벌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이번 강 수석 문제는 조합원의 이름으로 벌을 하고, 그와 함께 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문제입니다. 앞으로 현장에 이와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면 남은 사업들을 책임지기 위해 두세달 있다가 물러나라고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 속에서 저 역시 애정을 갖고 몸담아 왔던 조직을 갑자기 떠나려니 아쉬움과 서러움이 복받칩니다. 이런게 바로 기득권인가 봅니다.

힘은 없지만 저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이후 지금까지 민주노총 사무총국 성원의 한 사람으로 공식적인 토론이나 상황공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면서 많은 회한을 느꼈습니다.  

이제 투쟁현장에서 동지들을 다시 만나고자 합니다.


2005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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