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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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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6/09
    감자꽃 핀 부로농원(4)
    풀소리

잔인한 살해

1.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해사건...

...

나는 조선 명종 때 제주목사 변협에 의한 보우스님 살해사건을 꼽는다.

 

잔인한 살해사건은

인류의 긴 역사만큼이나 무수히 많다.

멀리는 사람을 인간돼지로 만들어 살해한 한 고조 유방의 황후었던 여태후에 의한 후궁 척부인 살해사건도 그렇고,

가까이는 박종철 고문 살해가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 보우스님 살해사건에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넣는 것은

어쩌면 먹물에 쩔은 내 정신세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

보우스님은 숭유억불정책이 기승을 떨치던 조선시대 명종 때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아 판선종사도대선사(判禪宗事都大禪師)의 지위에 올라

승과를 부활하였고, 불교를 중흥시켰다.

 

보우에 대해서는

한편에서는 '요승(妖僧)'이라는 평가에서

또 한편에서는 명승이라는 평가까지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그러나 패자의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니

승자의 기록만으로 그를 평가하는 건 공정치 못 한 것 같다...

 

보우스님은 허응당집(虛應堂集)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남겼다.

그의 저작을 공부한 이들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대단한 지식인이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문정왕후 또한 윤원형, 정난정, 수렴청정 등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에서도 보여지듯

역사상 평가는 별로 좋지 않다.

그러나 '한낱 과부에 불과하다'라고 질타하는 상소를 올린 남명 조식을 처벌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그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동시대인보다 특별히 더한 악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다시 그의 죽음으로 돌아가자

문정왕후가 죽던 해인 1565년

유림의 끈질긴 상소에 의해 그는 체포되어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당시 제주목사는 변협(邊協)이라는 자다.

그는 약관 20세에 무과에 급제한 무관으로

명종때 갑자기 활동을 재개한 왜구의 침입을 잘 막아 벼락출세를 한 자이고,

무관으로는 드물게 공조판서에까지 이른 자이다.

 

보우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변협이 귀양온 보우를 욕보이고자 날마다 불러내어 동헌 마당청소를 시켰고, 그때마다 무뢰배들을 시켜서 무자비한 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결국 그러한 폭행으로 보우는 살해되었다...

 

무뢰배로부터 상습적으로 모욕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지식인으로써 보우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왜 자살을 택하지 않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모욕을 감당했을까...

 

 

4.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혀()로 상습적인 린치를 일삼는 무뢰배들이 주변을 어둡게 감싸고 있다.

나 자신을 보우와 견주겠다는 건 아니지만,

비록 혀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무뢰배들의 사적 린치는

괴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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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난 사람을 믿지 않아.'

'???...'

 

언젠가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는 의아하다는 듯 한참을 처다봤었다.

 

대전에서 만난 사람들

 

 

'난 사람을 믿지 않아.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다만

그나마 사람에게 희망을 걸 뿐이야.'

 

그 이후의 대화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마 '그게 뭔 뜻인데?' 따위의 반응을 보였으리라.

더욱이 이런 내 말이

사람들하고 어울려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내 평소 모습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아내로서는

이해는커녕 생경하기조차 했을 것이다.

 

대화는 점점 깊어지고...

 

사람들의 대화하는 모습이 맘에 들었는지 평소 도도하다는(?) 느티가 일어나 춤을 추었다.

 

 

페시미스트.

그래. 나는 페시미스트다.

 

술을 좋아하는 술꾼이 그런다지.

'술이 반병밖에 안 남았어.'

또는 '술이 반병이나 남았어.' 라고...

 

둘을 페시미스트 또는 옵티미스트로 나누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안다.

술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측면에선

그 나눔이 무의미함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도

굳이 언어의미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듯도 하다...

 

이런 것이 추억인가? 추억을 공유하는 건 행복한 일이다.

 

책갈피에서 나온 백기완 대선후보의 공약/ 지금 보면 조악하지만 순수한 열망, 열정이 느껴진다.

 

누군가 뭔지 모르고 따온 석류 꽃가지가 옛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금요일 문득 대전엘 갔다.

오랫동안 투쟁하고 있는 감비를 위로하자는 모임에 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금광을 찾을 땐

겉으로 드러난 금맥을 찾는다고 한다.

금덩어리가 땅 속 깊숙이 묻혀있어도

그 흔적은 지표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담날 들른 대청댐 문의문화재단지에 있는 대장간

 

바두기 사무처장님은 연부와 산오리에게 칼 한자루씩, 나에겐 낫 한자루를 사주셨다...

 

대장간 풍경

 

 

어쩜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다면,

그래서 사람이라는 류 전체를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그냥 바위뿐일 것 같은 표면에 나타난 작은 눈금의 금맥처럼

그곳으로 이끌 표식이 있다면,

아마도 감비 또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문의 문화재단지에서 만난 꽃들

 

개망초

 

고들빼기 꽃

 

나리꽃(?)

 

카페에 놓인 화분

 

 

나는 대전엘 함께 가자는 연락을 받고

다만, 내가 그 자리에 끼어도 될까 하는 자격지심이 있었을 뿐

함께 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흥분이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으로 느껴지게 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한 1박 2일은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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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핀 부로농원

어느새 우리들은 부로농원을 내집처럼 쓰고 있다.

아무리 이물없이 지내는 사이라도

싫은 기색 한번 내지 않는 주인장이 고맙기 그지없다.

 

요즘 보기 힘든 두꺼비가 부로농원 풀섶에 나왔다.

 

조그마한 텃밭이지만, 할 일은 솔찮이 많다.

이제 주인이 되었으니(?) 주변 손질도 해야지 ㅎ

그러자면 더욱 바빠질 것이다.

 

앵두/ 가지를 쳐주었더니 열매가 실하게 맺혔다.

 

덜 익은 앵두

 

열무와 알타리, 배추를 수확하고,

파를 옮겨심고, 씨앗도 뿌리고, 잔손도 봐야되고...

몇번 내린 비 덕분인가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토란도 싹을 내밀었다.

 

감자꽃/ 몇포기 나지 않은 감자지만 꽃까지 피웠다.

 

풀더미를 걷어치우고 군데군데 심었던 옥수수도

제법 예쁘게 싹이 자랐다.

 

막 피어나는 밤나무꽃

 

이제부는 밤꽃의 계절이다.

그 비릿하고 민망한 냄새가 부로농원을 진동할 것이다.

밤꽃이 지고나면 본격적인 여름이다.

 

예쁘게 솟아나는 옥수수

 

여름은 풀과의 전쟁이기도 하다.

키큰 고추나 옥수수, 토란 등이 풀보다 훨씬 빨리 자라준다면

풀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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