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잔인한 살해

1.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해사건...

...

나는 조선 명종 때 제주목사 변협에 의한 보우스님 살해사건을 꼽는다.

 

잔인한 살해사건은

인류의 긴 역사만큼이나 무수히 많다.

멀리는 사람을 인간돼지로 만들어 살해한 한 고조 유방의 황후었던 여태후에 의한 후궁 척부인 살해사건도 그렇고,

가까이는 박종철 고문 살해가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 보우스님 살해사건에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넣는 것은

어쩌면 먹물에 쩔은 내 정신세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

보우스님은 숭유억불정책이 기승을 떨치던 조선시대 명종 때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아 판선종사도대선사(判禪宗事都大禪師)의 지위에 올라

승과를 부활하였고, 불교를 중흥시켰다.

 

보우에 대해서는

한편에서는 '요승(妖僧)'이라는 평가에서

또 한편에서는 명승이라는 평가까지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그러나 패자의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니

승자의 기록만으로 그를 평가하는 건 공정치 못 한 것 같다...

 

보우스님은 허응당집(虛應堂集)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남겼다.

그의 저작을 공부한 이들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대단한 지식인이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문정왕후 또한 윤원형, 정난정, 수렴청정 등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에서도 보여지듯

역사상 평가는 별로 좋지 않다.

그러나 '한낱 과부에 불과하다'라고 질타하는 상소를 올린 남명 조식을 처벌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그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동시대인보다 특별히 더한 악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다시 그의 죽음으로 돌아가자

문정왕후가 죽던 해인 1565년

유림의 끈질긴 상소에 의해 그는 체포되어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당시 제주목사는 변협(邊協)이라는 자다.

그는 약관 20세에 무과에 급제한 무관으로

명종때 갑자기 활동을 재개한 왜구의 침입을 잘 막아 벼락출세를 한 자이고,

무관으로는 드물게 공조판서에까지 이른 자이다.

 

보우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변협이 귀양온 보우를 욕보이고자 날마다 불러내어 동헌 마당청소를 시켰고, 그때마다 무뢰배들을 시켜서 무자비한 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결국 그러한 폭행으로 보우는 살해되었다...

 

무뢰배로부터 상습적으로 모욕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지식인으로써 보우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왜 자살을 택하지 않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모욕을 감당했을까...

 

 

4.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혀()로 상습적인 린치를 일삼는 무뢰배들이 주변을 어둡게 감싸고 있다.

나 자신을 보우와 견주겠다는 건 아니지만,

비록 혀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무뢰배들의 사적 린치는

괴롭기 그지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