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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범식 행사 빵빠레가 울리고, 폭죽이 터졌다.
100일. 청주 우진교통의 180일 파업에 비하면 길지 않지만 결코 적은 날짜라고 할 수는 없다. 모두가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 단 한푼의 월급도 없이 100일을 버틴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가정경제의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삼성교통은 누적된 임금체불로 그 고통은 배가되었으며, 조합원들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였고, 일부 조합원들은 파업기간 동안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였다.
악덕 자본가 1명 때문에 200여명의 조합원과 직원, 1,000여명의 그 가족, 그리고 30여만 명의 시민들이 피해를 봤다.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아무리 자본이 주인인 자본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시청에 몰려가 항의하는 조합원과 가족들/ 악덕 사업주 박성칠을 몰아내고 우리들을 살려내라!
출범식은 시작 전부터 흥분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100일 파업으로 단련된 조합원들은 행사 준비에도 일사분란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조, 내외빈을 맞이하는 조, 무대와 행사장을 정리하는 조 등등...
▲ 행사 시작 전 구호 외치는 조합원들.
오늘 삼성교통지부 동지들은 투쟁조끼를 벗고, 말끔한 유니폼인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로 갈아입었다. 내일 모래면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거리로 나간다. 더욱 친절하고, 더욱 책임성 있는 자세로 우리는 시민들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주장하고 원해왔던 완전 공영제는 아니지만 공영제로 운영되는 게 어떤 것인지를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와 정부에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버스를 왜 공영제로 운영해야 하는지, 공영제로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 투쟁가를 힘차게 부르는 조합원들
축하하러 온 민주버스 조합원 동지들과 버스노협 동지들은 축하의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억압과 착취의 자본이 사라진 현장은 생기로 넘친다. 우리는 가장 좋은 서비스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우리 노동은 시민들에게 또는 우리 삶으로 새는 곳 없이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 거리 행진하는 조합원들/ 고난의 언덕을 넘어 오늘 우리는 자주관리기업을 만들어냈다.
100일 동안 투쟁을 선봉에서 이끈 비상대책위원들이 소개되었고, 일선에서 활동해온 조장들이 소개되었다. 모두 감격에 겨워했고, 또한 오늘을 만든 자부심이 배어있는 것 같다. 김권수 비대위원장은 감격에 겨워 연설의 말을 이어가기 어려워했다. 오늘의 감격과 자부심을 영원히 간직한다면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능히 헤쳐나갈 것이다.
▲ 비대위원들 앞에서 김권수 비대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가족들은 기대와 안도와 기쁨이 교차하는 것 같다. 100일 동안 거리에서 싸우면서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있음에도 조합원 전원이 연행되기도 하고, 간부가 구속되기도 했다. 조합원이 연행되고 난 텅 빈 거리는 늙은 어머님을 비롯해 아내와 아이들 등 온 가족들이 채웠다. 연행자들을 구출하는 경찰서 진격에도, 시청으로 진격에도 가족들은 오히려 선봉에 섰다. 비록 미완의 승리지만 오늘 우리의 승리에는 가족의 힘이 무엇보다도 컸다.
▲ 경찰서 항의집회/ 조합원들을 연행해간 경찰서로 몰려간 가족들과 조합원들
인사에 나선 황일남 위원장은 제일먼저 가족들의 노고에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우리가 완전 공영제의 모범을 세우고, 질 좋은 서비스로 시민을 대해 우리가 옳았음을, 버스 완전 공영제가 옳음을 진주뿐만 아니라 전국에 알리자’고 역설했다.
▲ 인사말 하는 황일남 위원장
이사진이 소개되고, 김해린 대표이사의 대회사가 있었다. 엄숙하고 엄정한 자리인 만큼 즉석 연설을 피하고 연설문을 작성해왔다. 김해린 대표이사는 비록 삼성교통에 근무하지는 않았었지만 버스노동으로 정년을 맞으신 분이고, 버스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던 분이다. 김 대표는 자주관리기업의 대표이사로 추천을 받고도 계속 고사한 바 있지만 누구보다도 사명감을 가지고 삼성교통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 고사지내는 김해린 대표이사
현판식과 고사를 마치고, 오색천 끊기를 마치고, 드디어 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대표들을 태우고 진주시내 한바퀴를 돌면서 삼성교통이 자주관리기업으로 거듭났음을, 진정한 시민의 발 역할을 할 것임을 온 시민들에게 알릴 것이다. 얼마 만인가. 100일만에 버스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시승버스
이제 본격적으로 축하연이다. 삼성 투쟁에 처음서부터 끝까지 함께 한 새노리 동지들과 맥박 동지들의 흥겨운 공연과 노래가 이어졌다. 조합원들과 가족들은 술잔을 부딪치고, 흥겹게 노래부르고 춤을 췄다. 자본이 사라진, 자본가의 압박이 사라진 노동현장은 이렇게 흥겹다. 술판이 춤판이 되고, 춤판이 노래판이 되고, 쟁반을 꽹과리 삼으면 또 어떠랴. 우리는 즐겁기만 하다.
▲ 흥겹게 춤을 추는 가족들과 연대 온 동지들
흥겨운 와중에 사회를 맡은 김행규 조직국장은 양구중 전 지부장을 무대로 모셨다. 오늘 자주관리기업을 출범하기까지 누군들 사연이 없으랴. 200여 조합원과 1,000여명의 가족들 모두는 온갖 어려움과 사연이 가득하리라. 그렇지만 어디 양구중 전 지부장 만하랴.
양구중 전 지부장은 삼성교통을 민주버스로 최초로 조직변경을 한 지부장이다. 회사의 탄압에 맞서다 정체 모를 테러(자동차 사고)를 당해 영안실로 실려갈 정도로 생명이 위독했었다. 긴 투병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심지어 기억까지 말이다.
▲ 연설하는 양구중 전 지부장
그런 양 지부장이 살아났다. 기억이 어느 정도 돌아오고, 말도 똑바로 할 수 있다. 마이크를 잡은 양 지부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감격의 눈물이 묻어났다. 사회자는 언젠가 꼭 삼성교통에서 함께 일할 것을 다짐했다.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책임지고, 위로하고, 연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람 사는 사회다. 억압과 통제만이 사회인양 하는 무리들에게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고, 만들어 가는 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그런 사회를 작지만 삼성교통이라는 공간 안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 노래하고 춤을 추는 조합원들과 가족들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위로하는 노래자랑이다. 어디다 저런 끼들을 숨기고 살았을까.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다. 앞으로 이렇게 후련하고 기쁜 일들만 있어라.
그러나 우리는 방심할 수 없다. 적은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 밖에 있는 적은 함께 힘을 합쳐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안에 있는 가장 큰 적은 방심이고, 망각이다. 회사가 정상화되고, 생활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면 회사와 1,000여명의 가족보다 자기의 이익을 크게 내세우는 이가 나올 수도 있다. 교묘한 논리로 조직을 혼란에 빠뜨리는 동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자. 우리가 무엇 때문에 땡볕에서 투쟁하고, 얻어터지고, 외쳤는지를 잊지 말자. 가족들이 우리를 믿고 함께 하여 여기까지 왔음을 잊지 말자. 앞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항상 지난날을 오늘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 지난 투쟁의 나날들/ 우리와 달리 저 초롱한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누구보다도 원칙적이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칙을 지킬 것이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민주주의를 실천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고, 오늘의 환희를 기억할 것이며, 조합원과 가족, 아니 10만 버스노동자의 미래를 위해 헌신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출발이다. 삼성교통 자주관리기업 출범 만세!
장준하. 아직은 기억하는 이가 모르는 이보다 많으려나.
내가 사는 고양시 끄트머리에 그의 새김돌이 있다. 통일로변 고양시와 파주시 봉일천 경계에 흉물로 처져 있는 콘크리트 전차차단막 사이에 그의 새김돌이 있다. 새김돌은 삼면이 전차차단막으로 둘러싸였고, 여름이면 물이 질겅질겅 솟는 땅에 서 있다. 하도 자리가 험해 후학들이 자리를 옮기자는 말에 ‘아직 분단조국이 통일되지 않았는데 선생의 새김돌이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다’는 백 선생님의 일갈에 오히려 숙연해지는 그런 험한 곳이다. 선생이 75년에 돌아가시고, 86년에 새김돌을 세웠다고 한다. 호랑이 형상의 돌에 당시대 최고의 시인 김지하가 글을 비문을 지었다. 이후 알 수 없는 괴청년들이 겨울에 3일간 불을 피워 새김돌을 태운 탓에 호랑이 형상 머리부분이 달아나고,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해괴한 글을 실은 뒤 새겨진 그의 이름이 짓이겨지는 등 시련을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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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데 ‘백기완이 하고 어울리지 마. 그런 놈들한테 속지마.’라는 늙은이의 목소리와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부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늙으면 죽어야지 노인네들이 뭔 꼴이여.
이재준 선배는 혼자말로 투덜댄다. 노인네들이란 그 노인과 백 선생님을 가리킨 것이리라.
답답하다. 후학들은 새김돌 하나 간수 못하나.
장준하 선생이 실제 어떻게 살았던, 무수히 잊혀져간 훌륭한 선배님들을 대신하여 기려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년에는 나도 이 자리에 오지 않겠지... 그러면 누가 올까. 누가 기억할까. 우리 모두를.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선생의 기일이다.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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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투쟁도 있네요...ㅎㅎ너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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