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코뮤니스트 12호]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40071_55545_1039.jpg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계급적 본질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0일 21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 6.0% 상향조정, 1년 미만 보유한 주택을 파는 경우 양도소득세율 70%, 2년 미만 보유한 주택을 파는 경우 양도소득세율 60% 부과, 2주택 소유자의 경우 취득세율 8% 인상, 3주택 이상 소유자와 법인 12% 인상, 4년 단기임대 및 8년 아파트 장기 일반매입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폐지.

 

그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집값 안정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생색내기용 여론전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고 7·10 대책이 투기 억제 및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투기와 거품 그리고 욕망으로 상징되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 하락은 부실채권 증가와 거품 붕괴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부동산 가격 폭락과 대량의 부실채권은 금융산업, 건설업과 관련한 제조업 전반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경제 위기를 더욱더 증폭시킬 것이다. 부르주아 권력인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런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값 상승을 막는 흉내만 냈다. 말로는 집값 억제를 떠들었지만, 실제 부동산정책은 집값 폭락을 막는데 맞춰져 있었다. 그 단적인 사례가 TV 토론회에 출현한 민주당 진성준의 기만적 태도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주택공급 확대라는 명목으로 재개발 규제 완화책까지 들먹이며 건설자본 이윤을 위해 건설 경기 부양책을 계속 발표했다. 용산 미니신도시 개발, 3기 신도시 개발 등을 발표하며 사실상 투기를 조장했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와 부르주아 정부의 주택공급 사례를 보면 이러한 건설 경기 부양책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는 주거난 해소보다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며 부동산 거품을 키워왔다.

 

디지털/그린 뉴딜에서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계급 본질은 부동산정책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노동자의 삶은 2008년 이후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와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인민의 불만은 실질 임금상승률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는 주택 가격으로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다.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부르주아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자인민을 현혹할 수 있는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필요했다. 이것이 그동안 부동산정책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한 7·10 대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부르주아 정치쇼에 불과하다. 집값 억제를 위해 보유세를 비롯한 양도세, 취득세 세율을 올리면서도 아파트 공급 확대를 분명히 했다. 아파트 공급 확대는 자본에 개발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길만 열어줄 뿐 집값 억제와는 관련이 없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 수도권도 100%에 가까운 상황이다. 주거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와 건물, 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무주택자가 아닌 자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현실을 감추기 위해서 더 현실성 없는 고위정책 관료층과 국회의원에게 1가구 1주택의 퍼포먼스까지 진행하고 있겠는가.

 

552910_150717_2153.jpg

 

주거 문제 해결은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 부르주아 정부의 저금리정책은 필연적으로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그 대부분은 대자본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 자본에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투자는 관심 밖이다. 이윤이든 지대든 자본에는 부가가치 증가만이 목적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이처럼 부동산 가격 폭등의 배후에 작동하는 힘은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 위기와 이것이 유발하는 초저금리와 천문학적인 유동성 증가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그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집값을 억제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정권의 몰락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겉으로는 ‘갈지(之)’자 행보처럼 보이지만, 일관되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한 문재인 정부는 자본주의 쇠퇴기, 심화하는 위기 때문에 더욱 노골적으로 노동자의 목을 죄어 올 것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이윤율 하락,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경제 위기라는 배경에서 부르주아의 계급적 선택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착취와 고통을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7·10 대책은 집값 안정을 결코 해결할 수 없지만, 집값 안정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대로 둔 채로는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주거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는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 소유와 매매와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을 보장한다. 또한,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될 뿐이다. 결국, 노동계급은 주택 가격 안정이 아니라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 소유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부르주아 정부의 집값 안정책이 얼마나 실효가 있는지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대로 둔 채 어떠한 정책을 내놓더라도 노동자인민에게는 1가구 1주택과 주거환경 개선은 현실화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냥 둔 채 주택 투기와 개발 이익에 대한 사적 취득을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환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가 이를 환수하여 양과 질을 담보로 한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하는 것 또한, 공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총체로서 전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1) 따라서 노동자인민에게 양질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가 폐지된 사회, 즉 인민의 필요에 따라 생산하는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토지와 주택을 비롯하여 사유재산과 착취, 계급 분열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은 가치법칙 및 시장과 화폐를 통한 분배와 소비에 종속됨으로써 경쟁과 무정부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는 가치법칙이 사라지며, 생산은 평의회 체제에 의해 사회화된다. 모든 토지와 (거주 목적 이외의) 주택도 생산수단과 마찬가지로 몰수하여 평의회의 통제 아래 사회화시킨다. 이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제공된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노동자인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자본주의적 복지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평등한 사회이다. 주택뿐 아니라 의료와 건강권, 교육권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개인의 행복 추구권2)이 처음으로 실현되는 사회이다. 코뮤니스트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와 무상 주거권 쟁취를 내걸고 근본적으로 투쟁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혁명만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모두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2020년 8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주>

 

 

1. 스웨덴의 연대 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 시장정책은 대기업에 큰 이윤을 가져다주었지만, 대기업은 세금을 적게 내려고 해외에 투자했다. 이에 따라 고용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소득 불평등은 증가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임노동자기금이다. 임노동자기금은 대자본의 초과이윤과 노동자 임금 일부를 헌납받아 대자본의 주식을 매입하여 노동조합이 대기업의 주인이 되면 대기업은 노동자, 시민을 위한 경영을 하리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자본의 거센 반발로 결국 폐기된다. 

 

2. 코뮤니스트 사회에서의 행복 추구권

코뮤니스트 혁명을 통해 모든 사람은 가장 광범위한 자유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개인의 행복을 최대한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신체와 정신에 어떠한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되며, 사회에서 보편적인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물품을 얻고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노동할 권리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사회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주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필요와 개인적 의지에 따라 사회에서 이용 가능한 모든 교육 자원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교육기관은 무상교육을 하고, 모든 사람은 평생교육의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에게 의료와 건강권은 무상으로 제공하며,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한다.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누릴 권리와 자연과 환경의 파괴를 막을 의무가 함께 있다.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

 

주거문제슬로건1592446619.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1호] 코로나19, 그리고 다른 상상에 대한 짧은 이야기1.

코로나19, 그리고 다른 상상에 대한 짧은 이야기1.

 

 202008HQFT9ZP1O39GJOMVQPLC.jpg

 

세상엔 수많은 이야기로 넘쳐난다. 여기서 ‘이야기’란 인간이 살면서 표현하며 만드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세상에 살아왔고 살아가는 인간의 수만큼, 그리고 그들이 머물렀고 머무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맺었을 만남의 모습과, 아직 오지 않은 오늘에 비례하여 무한 수에 가깝게 많고 다양할 것이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가 다양하고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뇌는 자신의 안과 밖을 이야기로 비추어 이해하고 붙들며 만나는 가운데 살아가도록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존재했고 존재할 인간의 삶에 의해 이야기는 넘쳐흘러 왔고 흐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하나하나는 각기 나름대로 살았고 사는 인간 한명 한명의 삶을 담고 있을 것이다.

 

허나, 이 수많고 다양한 이야기 모두가 세상에서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아 회자되어 기억되거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은 어느 순간 하나의 중심점을 형성하여 돌기 시작한다. 중심점을 갖게 된 이야기들은 그 중심과의 거리에 의해 의미와 가치라는 평가의 서열을 갖게 된다. 그 서열은 이야기가 얼마나 기억되고 지속되는가의 힘을 갖게 한다.

 

하나의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서열 괘도는 그것이 삶에 의해서 태어난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삶과 그것의 이야기들을 거꾸로 다시 규정한다. 가장 중심의 이야기는 강력한 삶의 가치와 의미가 되고, 괘도의 밖으로 밀려난 이야기들은 무의미와 무가치의 세상에서 떠돌다 결국 이야기라는 이름마저도 잃게 되기도 한다.

 

이 중심점과 괘도는 그 중심이 형성되며 돌기 시작할 때의 힘만큼의 영역으로 다르게 만들어진 궤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거나 겹쳐진다. 그러다 결국 그 중심점은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 중심점에 의해 사라지거나, 새로운 중심점이, 이전의 궤도와는 사뭇 다르게 만든 이야기의 서열 안에 재구성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흐름은 이어지고 오늘에 이른다.

 

거기에 맞추어 이야기의 중심 괘도에서 멀어진 많은 이야기들을 담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의 존재가 아닌, 계량적으로 헤아려지는 숫자로 남거나 무시되어 이야기마저 상실할 처지에 놓인다.

 

이 중심점은 왜 생기고 변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다양한 이야기로 발견되었고, 될 것이지만, 나는 그것은 삶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필연적인 움직임에 의한 것이며, 삶의 필요와 요구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기에는 결핍이 있었기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삶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간의 삶에서, 바닷가 모래알의 수만큼 떠다니는 이야기 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아 괘도를 만든다고 말하고, 삶에서 이야기가 필요하고 가져야 한다는 것은, 삶이란 이야기의 공허함 속에서, 그저 무의미와 무가치라는 말과 다른 말들과의 경계를 나누며,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지루한 시간을 넘어가기 위한 뇌의 속임수일 뿐, 아무런 쓸모도 필요도 없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필연적인 필요와 쓸모 있는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데는 그만큼 살고자 하는 노력과 수고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 삶은 누군가의 노력과 수고를 빼앗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人·間)이란 말로 규정되어 이야기되는 생물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지금 인간은 그 결정적인 결핍을 만드는 제약을 넘어설 수도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 말은 인간 스스로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흐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삶의 이야기가 기억되고 지속되는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어, 하나하나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이야기로서 모두에게 회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단, 그 전에 현재에 가장 강력한 중심점으로 작용하는 이야기의 괘도를 파괴하는 한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장 강력한 중심점으로 괘도를 만드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너무 당연한 것일지 모르나, 그것은 자본주의 세상을, 상품 더미 위에 올리어진 세상을, 살아있는 노동력이 상품이 되어 거래되는 세상을, 부르주아지의 자기화한 세상을 지탱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확대하고 강화시켜주며 지탱해주는 과학과 기술, 학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거대한 정보와 지식의 집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도 상품의 목록에 올려져 있다. 종교, 예술, 법 등등을 포함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또 낡고 대책 없는 철 지난 이야기로 세상과 삶을 환원하고 협소화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제대로 된 답도 없이 무언가로의 강제를 반복하려는 것이라고.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할 필요와 요구가 우리에게 던져진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란 바이러스로 연유되어 벌어진 팬데믹,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대란, 자가 격리 등과 같은 말들로 회자되는 최근의 일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필연적으로 그것을 요청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이것이 오늘날 이야기의 중심점을 살피고 질문하라고 필연적으로 요청했을까? 그건 간단한 이유다. 세상의 중심점으로 모든 이야기를 돌리고 있는 이름하여 자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부실하고 나약한 것인지를, 최근의 현미경으로나 봐야 알 수 있는 미생물과 세포보다 더 작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이야기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강력해서 쉬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자본주의의 이야기를 팬데믹이란 이야기가 짧은 시간에 흔들면서 멈출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만들고, 어쩌면 다른 중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요구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이라는 방식으로 발견되는 물리의 시간과 생물 진화의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인간의 시간, 사회와 역사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이야기에서, 긴 시간 제약과 결핍으로 작용했던 것을 그 긴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인간이 넘어서도록 이끈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단 몇 개월의 시간이 ‘넌 끝났어!’라고 말하며 조롱하는 것만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삶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으며 삶은 어찌 됐든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죽음의 소식 역시 이어지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충분히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일을 할 힘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건 자본주의란 중심점이 아니어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데 왜 하필 이야기라는 조금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테두리로 장황하게 글을 이어가고 있는가? 나는 연극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연극이 공연 예술의 한 형태이기에, 위에서 언급한 중심 궤도를 벗어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최근에 벌어진 코로나19 사태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삶을 사는 이들보다 심각할 정도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침소봉대일까? 코로나19로 벌어지는 상황 아니어도 이 일을 업으로 하며 사는 데는 늘 생존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더 커진 건 사실이다.

 

연극이라는 일은, 만들어진 이야기-공연을 위한 대본에서 시작하여 배우와 여러 효과를 통해 구성된 무대, 그 무대를 지켜보는 이들-관객이 만나는 현장에서, 이미 지정된 경로로 진행되나 현재로서 이루어지는 사건이 직접 대면의 형태로 일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거리두기, 마스크, 자가 격리 등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선 연극이란 일 자체가 쉽지 않은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또한, 연극과 같이 유사한 형태로 이야기를 만드는 여러 일 중에서 이 일은 세상 이야기의 중심점에서 외곽의 괘도에 위치하며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엄살일지 모르나 사실이 그렇다. 오죽하면 국가 시스템에서 마치 던져주듯 지원하는 국가 보조금 아니면 연극을 하면 사는 삶 그 자체의 존립마저도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연극인들은 최근 두 달여 동안 멈춰진, 그러나 조심스럽게 준비하며 어떻게든 이 일을 계속하려고 궁리한다. 왜 그런지 그 속내를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나는,........

 

거꾸로 생각하면 어쩌면 그만큼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자유로울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힘들다면 이왕 편한 맘 먹고 전혀 다르게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설마 굶어 죽는 일이 벌어질까? 전혀 그런 개연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 경우의 수는 다수의 다른 일을 하며 사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분명히 뭔가 다른 현실에서 연극이라는 일을 하는데, 내게 필요한 요구되는 요청은 과연 무엇일까? (다음 호에 계속.....)

 

연극연출가 | 최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본주의 쇠퇴기,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자본주의 쇠퇴기,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이후 세계에 관한 대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현 자본주의 개혁 수준이거나 자본주의 체제를 내버려 둔 채 몇 가지 사회주의적? 제도를 도입하려는 제안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으로 코뮤니즘을 주장해왔다. 우리는 코뮤니스트 혁명(세계혁명)을 통하지 않고 사회주의/코뮤니즘을 건설하자는 거짓 대안에 반대한다.

 

아래는 리브콤(libcom.org)에서 발행한 '리버테리안 코뮤니즘'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다. 이 경향은 정치 원칙에서 우리(코뮤니스트 좌파)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당의 역할‘ 문제 등에서 다르다. 이 글은 자본주의 쇠퇴기/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자료로 '새로운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참고할 점이 많아 다시 소개한다.

 

 workers-assembly.jpg

 <사진> 노동자 총회

 

1. 소개

 

우리는 코뮤니즘(공산주의)에 대해 두 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각자의 능력에 따른 원칙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른 원칙’으로의 전환. 둘째, 오늘날 세계에서 코뮤니스트 사회를 향한 현실 운동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후자인 현실 운동에서부터 설명해 나갈 것이다.

 

 

2. 현실 운동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묘사하고, 자본의 필요(이윤과 축적)가 어떻게 노동계급으로서 우리의 필요와 반대되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자본가는 임금, 연금, 일자리를 삭감하고, 노동 시간을 연장하고, 노동 속도를 높이고, 환경을 파괴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노동자를 자본에 대항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임금 삭감이나 과도한 노동에 반대하여 파업을 조직하거나 규칙을 만들 때, 우리가 협력할 때, 직접 행동과 연대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할 때,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 기반을 쌓기 시작한다.

 

협력, 연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코뮤니스트 사회’다.

 

따라서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협력, 상호부조, 직접행동 그리고 끊임없는 저항의 흐름이다.

 

때때로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전후(戰後) 비공인 파업 물결, 1969년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또는 1978년 영국의 불만의 겨울 또는 2010년 이후 그리스에서의 긴축반대 저항과 같은 사회의 불안과 현장 투쟁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동계급을 참여하게 했다.

 

때로는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심지어 혁명적인 사건의 폭발로 귀결되었다. 보기를 들면 1871년 파리, 1917년 러시아, 1919~1920년 이탈리아, 1921년 우크라이나, 1936년 스페인과 1956년 헝가리. 이러한 사건들은 노동계급이 집단행동을 통해 자본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사회를 재조직하려고 했던 운동들이다.

 

 

3.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잘 준비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 단체가 세상에는 널려있다. 그러나 코뮤니즘은 정당 또는 개별 정치인이 존재를 선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수많은 참여와 실험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은 구소련이나 현재의 쿠바, 북한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이들은 단지 국가라는 하나의 자본가가 존재하는, 본질에서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리고 집권당이 ‘공산당’이라고 자칭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 중의 하나를 감시한다는 중국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양한 혁명적인 사건(이전에 언급한 사건의 일부)에서 노동계급의 구성원들은 코뮤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계급이익을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실질적인 경험뿐만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한 원칙을 수립했다.

 

자본가 없는 사회

 

개인이나 국가의 수중에 있는 생산수단(토지, 공장, 사무실 등등)의 소유 또는 통제 대신에, 코뮤니스트 사회는 그 수단의 공동소유 및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생산 대신에, 코뮤니즘은 안전한 환경을 위한 요구를 포함하여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을 의미한다.

 

이미 오늘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모든 서비스를 하는 것은 우리 노동자이다. 우리는 도로를 건설하고, 집을 짓고, 열차를 운행하고, 환자를 돌보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음식을 만들고, 제품을 설계하고, 옷을 만들고, 다음 세대를 가르친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종종 우리를 돕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작업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예는 풍부하다. 그리고 사실 자본가들이 위계적으로 조직한 작업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최근의 한 예로 국가 산업의 3분의 1이 노동자 통제 아래 있었던 아르헨티나에서의 2001년 봉기 기간에 점거한 공장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크고 더 광범위한 예가 있다.

 

보기를 들면, 1936년 스페인 내전 기간, 스페인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산업 대부분을 장악하고 집단적으로 운영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어떤 지역에서는 노동자가 화폐를 폐지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상품을 무료로 배분하는 등 코뮤니스트 사회에 근접하게까지 나아갔다.

 

1919년 시애틀에서는 총파업 기간 노동자들이 도시를 점거하여 운영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가 자본가들의 권리를 돌려주기 전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접수했다.

 

 women-workers-Spain.png

<사진> 1936년 스페인, 공장을 장악한 정비노동자들

 

임금 없는 사회

 

코뮤니즘은 또한 우리의 활동과 생산물이 더는 사고파는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 돈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뮤니스트 사회가 과연 인간이 임금 체계에 의해 강요된, 암묵적인 빈곤의 위협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빈곤이나 기아의 위협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우리는 돈이나 임금노동이 없었지만, 필요한 일은 여전히 행해졌다.

 

보기를 들어, 수렵 채집사회는 일과 놀이 사이에 차이가 없는 전적으로 평화스럽고 평등한 사회였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많은 일이 무료로 이루어진다. 보기를 들면, 영국에서는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주로 여성)이 매일 3시간 이상 무급 가사 일을 한다. 이 사람들의 10% 가까이는 무급 돌봄 일을 하고 있으며, 영국 성인의 25%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11년 무급 노동의 경제 가치는 연간 약 11조 달러로 추정되었다.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용한 일의 형태 역시 임노동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무료로 수행한다. 이것이 임노동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물 기르기, 아이 돌보기, 음악 연주하기, 차 수리하기, 청소하기,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환자 돌보기, 컴퓨터 프로그래밍, 옷 만들기, 제품 설계하기... 이러한 형태의 일은 끝없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돈이 복잡한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자유와 통제를 가진 사람들, 그렇게 하는 건설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이유가 최상의 동기부여가 된다.

 

무료 소프트웨어 운동 같은 것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한 비(非)위계적이고 집단적인 조직이 이윤을 위한 위계적인 조직에 비해 얼마나 우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생산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임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윤 동기가 없다면, 어떤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를 해고하고 나머지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수록 우리는 모두 일을 조금 덜 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국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한 소개에서 우리는 정부를 “소수의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운영되는 조직... 주어진 지역 안에서 정치적, 법적 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경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직”으로 정의한다.

 

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분할이 없다면, 더는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빈곤, 임노동, 그리고 심지어 기아까지 강요하는 경찰과 같은 소수의 사람이 통제하는 조직적 폭력기관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자본을 축적하거나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는 군대가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물론 여전히 반사회적이거나 폭력적인 개인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폭력성과 심지어 살인조차 거의 항상 처벌받지 않는 무책임한 경찰이 아니라, 위임되고 소환 가능하며 순환하면서 역할을 맡는 조직에 의해, 지역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현재 대부분의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의(보통 부유층) 개인들을 선출하여 몇 년 동안 우리를 대신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반면, 다른 결정들은 심지어 “시장의 독재자들”에 의해 기업의 이사회에서 무책임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직장동료 그룹에서부터 직장 및 지역 모임(회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투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통신 기술을 이용해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위임되고 소환 가능한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투쟁을 조직할 수 있듯이, 노동계급이 때때로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결국 스스로 사회를 조직 할 수 있다. 보기를 들어, 1956년 헝가리 봉기 동안 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를 요구함에 따라 사회 운영을 조직하기 위해 노동자평의회가 만들어졌다. 더 최근에는, 1994년 봉기 이후 멕시코의 치아파스 지역은 지도자가 없는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고, 공무원의 임기는 2주로 제한되었다.

 

 Zapatista-women.jpg

<사진>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반군

 

4. 결론

 

많은 사람이 코뮤니즘이 좋은 생각 같지만, 실제로 작동할지 의심한다. 그러나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가?”이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부자들과 함께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빈곤 속에 살고 있고, 환경재앙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면서 우리는 “아니오.”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지만, 우리는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기능할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의 부에도 불구하고 종종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에게도 말이다.

 

코뮤니스트 사회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뮤니스트 사회는 광범위한 빈곤과 환경파괴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들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축적해야 할 필요성 대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 해야 할 일을 더 즐겁게 하고, 더 흥미롭게 하고,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에 집중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성공을 GDP로 측정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삶과 행복으로 측정할 수 있다. '직원' '고객' '감독' 또는 '경쟁자'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 대신에 인간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 생애에는 아마도 완전한 (리버테리안) 코뮤니스트 사회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 운동인 코뮤니즘은 - 자본의 이윤에 맞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는 일상의 싸움은 - 현재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생활, 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현실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서 코뮤니즘의 토대를 마련하는 진정한 운동, 즉 우리의 현재 조건을 방어하고 개선하기 위한 일상의 투쟁이다.

 

그동안 이 운동은 ‘아나키스트 코뮤니즘’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또는 단순히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이라고 불려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이데올로기적 꼬리표가 아니라 그 존재이다. 즉 미래의 이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우리의 요구, 욕망과 저항 정신의 생생한 구현이다. 불의와 착취가 있는 모든 사회와 권력에서 이러한 저항 정신은 항상 존재하고 존재해 왔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다.

 

리브콤(libcom.org)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용균 동지 2주기]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김용균 동지 2주기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임성용 시인

 

20201103PS20120600284.jpg

 

맨홀 작업을 하던 노동자 세 명이 질식했다. 지하에 들어차 있던 가스 때문이었다. 세 명의 노동자들이 나오지 못하자, 작업반장은 맨홀 안으로 다시 세 명의 노동자들을 내려보냈다. 그들도 역시 나오지 못하고 쓰러졌다. 질식한 세 명의 노동자를 포함해서 구조하러 간 사람 중의 한 명까지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재료 분배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회사에 안전고리의 교체를 요구했다. 고리가 낡아서 사고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작업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안전고리를 교체해주지 않았다. 그 노동자는 작업 중에 고리가 끊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결국 그는 사망했다. 이것이 과연 안전사고일까?

 

맨홀이나 탱크 같은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는 사전에 환기가 필수이다. 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점검과 조치를 취하지도 않은 채, 노동자를 무조건 밀어놓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만드는 행위가 작업책임자의 과실이며 안전을 등한시한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안전고리 하나만 제 때 교체를 해주었으면 낙하물에 의한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기업의 부도덕과 안전불감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살인'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노동현장 곳곳에서 일어난다. 똑같은 사고가 똑같이 반복된다. 날마다 노동자를 죽이는 '살인'은 지속된다. 그러나 기업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사망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도 않는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김용균은 스물네 살, 사회에 첫발을 디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는 끝내 스물다섯 살이 되지 못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노동자들에겐 무엇이 바뀌었고 노동현실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김용균의 죽음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7년 만에 국회에서 개정되었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실상은 변한 게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노총 등 249개 단체(2020년 9월 23일 현재)가 참여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이번 정기국회 내 진행시킬 것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농성을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매일같이 5~6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우리 곁에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멀쩡한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터지고, 허리가 끊기고, 온몸이 피투성이로 짓이겨져 목숨을 잃고 있는가. 핏물이 타고 뼈마저도 녹아서 없어지는가. 어떤 악독한 살인자들이 무기를 쥐고 있는가? 친기업 정부라고 하는, 오로지 자본가를 위한 권력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살인교사자'들은 아닌가?

 

어제의 김용균이 오늘의 김용균이다. 어제의 김용균이 오늘도 손전등을 들고 밤을 꼬박 새우고 있다. 저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까마득한 철제 난간 위에서, 지하의 깊은 가스실 안에서 비좁은 기계 틈을 기어가고 있다. 살이 발린 생선가시처럼, 비 맞은 새처럼 떨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나라인가? 자꾸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자랑만 넘쳐난다. 한국은 전 세계 200여 개의 국가 중에서 경제규모 11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한다. 군사력은 세계 6위 수준의 강국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고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풍요와 번영의 나라라고 하는데, 노동자들은 OECD 국가 산재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죽어간다.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고 어디에서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루아침에 푸른 생명의 종지부를 찍고 통곡 속에 누워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민호라는 특성화고 학생이 야간일을 혼자 하다가 기계에 몸이 눌려서 죽은 일을. 민호는 한 달 잔업만 100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열여덟 실습생을 그렇게 죽도록 부려먹다가 끝내 죽이고야 말았다. 그와 같은 일은 50년 전에도 있었다. 전태일을 분신하게 만들었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다락방 소녀들도 그랬다.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산업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30년 전에도 그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세계가 놀랄만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아마 이대로 간다면 3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고 다쳐도 그들의 고통을 세상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수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기업도 정부도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떼죽음을 당해도 뉴스에서는 그저 흔히 발생하는 사고로만 보도한다.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노동문제가 되거나 사회적 의제가 되는 경우는 김용균의 경우처럼 극히 일부일 뿐이다.

 

2020년 5월 2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준)의 발표문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에서는 창사 이래 467번째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아무 탈 없이 배를 만든다. 최고경영자는 467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예방조치를 취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별다른 비용을 쓰지도 않았다. 기업에겐 볼펜 값도 안 되는 돈으로 과태료나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 한국의 대기업, 건설현장, 고위험사업장, 하청업체 등 모든 곳이 다를 바 없다.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네, 공정개선 명령을 내리네, 하면서도 기껏해야 현장 소장이나 과장 같은 하급책임자를 기소하면 끝이다. 노동자의 사망사고로 기업주가 인신 구속된 적은 거의 없다. 벌금이라야 고작 몇 백만 원에 불과하고 많아야 1000~2000만 원이 상한선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를 죽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쁜 정부와 더 못된 시어미 노릇을 하는 국회에서 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보호법을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사망을 살인의 범주로 보지 않고 단순한 과실로 처리하는 노골적인 방관행위이다.

 

꿈 많은 청년 김용균의 몸이 찢겼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컨베이어는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 돌았다. 주변엔 비명을 들어줄 사람조차 없었다. 본래 정규직이 담당했던 일은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겨졌고, 그의 젊은 피는 한줌의 검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데 쓰이지도 못했다.

 

김용균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이었다. 그의 유품은 작업모를 쓴 사진과 고장난 손전등, 그리고 컵라면 세 개였다.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김 군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기면서 일하다 가방 속에 컵라면을 남겨두고 갔다. 두 죽음이 닮은 것은 컵라면뿐일까? 이들의 죽음은 원청과 하청, 외주화와 용역,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한국 노동자들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이윤이 종교가 된 기업, 노동자의 하소연이 들리지 않는 정부의 공모가 ‘어제의 김용균과 오늘의 김용균’이라는 죽음을 낳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컵라면과 촛불을 분향소에 놓고 외쳤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라"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나 김용균 2주기가 되는 올해에도 20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끼임, 추락, 압착 등의 인재에 가까운 중대재해로만 한정해도 매년 600여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차고 넘치는 김용균의 죽음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죽음의 아가리에서 꺼낼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믿음은 퇴색되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노동자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요구마저도 관철되지 않는 나라는 분명 큰 문제가 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복지국가 대한민국'은 왜 이토록 잔인할까.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김용균이 죽어야 정상적인 사회가 될까.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국·캐나다·호주 등 외국은 '기업 살인법'으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다. 사망사고는 매출액보다도 많은 벌금을 물려 기업의 문을 닫게 하기도 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기업의 주의 의무와 책임 태만에 따른 근로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노동자의 목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이 일하는 사람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또 그럼에도 저기, 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청년이 간다.

 

R658x0.jpg

 

청년 김용균

 

내 영정을 들고

내가 걸어가네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부르르, 주먹을 쥐었다 펴면

핏빛 햇살 한 줌

저기 떨어진 내 머리

저기 끊어진 내 몸통을

내가 끌고 가네

맑게 빛나는 내 눈이

차갑게 감긴 내 눈을 보네

내 영정에 양복을 입히고

파란 넥타이 꿈을 동여매고

울먹울먹 절하네

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내가 먼저 가네

차마 돌아서지 못한 나를 안고

내가 울며 붙잡고 있네

 

詩 | 임성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2호] 수많은 김용균이 있던 그 자리

김용균 동지 2주기

10월15일 한겨레.jpg

<사진> 한겨레.  2020. 10. 15 

 

수많은 김용균이 있던 그 자리

 

 

12월 10일이면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먹먹함과 함께 김용균과의 약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생각하는 반성의 글이 쉽지만은 않다.


 

시키지도 않은 일과 충실하게 업무지시를 따른 죽음

 

2년 전 그날, 사고 소식을 듣고 이른 아침 태안화력으로 허둥대며 출근을 했다. 공공운수노조 담당 간부에게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전하고 TT- 04C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119 대원들과 현장 조합원들이 함께 수습하는 중이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고 정신이 없었다.

 

작업 중지 명령과 함께 현장 대기실에서 보낸 하루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고에 대한 정황과 예측들에 서로들 놀라며, 김용균이 고통스러워했을 순간을 떠올리며 그저 괴로운 마음뿐이었다.

 

퇴근 후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에 갔을 때는 김용균의 부모님께서 그 짧은 하루에 당하신 여러 가지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평소 고집스러웠던 용균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회사의 어처구니없는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발전기술의 태안사업소 간부가 하도급 업체 노동자들과 함께 ‘몸소’ 사고 현장을 깨끗하게 물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발전기술의 임원이 채용 당시 면접에서나마 보았을지도 모를 입사 3개월 차의 신입사원인 김용균의 고집스러움까지 기억하시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청 업체가 가진 안전사고에 대한 의식 수준과 유가족을 상대로 그들이 행해왔던 재해 당사자에게 책임 떠넘기기식 사고수습 방식까지, 모든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게 직접 물청소한 것도 문제이지만, 원청인 서부발전의 지시가 있었던 없었던 하청 업체 간부의 사고 현장 증거인멸과 은폐는 변하지 않는다. 회사 측의 업무지시에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하다가 죽음에 이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지시가 없었는데도 스스로 은폐하려 물청소에 임한 자는 생과 사로 나뉘었다.

 

현장의 설비개선과 발전사의 한결같은 ‘삽질’

 

발전사 출신 하청업체 임원 및 간부들의 아낌없는? 원청 발전사에 대한 사랑은 현실에서 인력구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김용균 사고 이후 분명 현장이 바뀐 것은 있다. 대표적으로 2인 1조로 함께 작업한다는 것과 랜턴 없이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두려웠던 그 컨베이어 벨트 현장이 놀라울 정도로 밝은 LED 조명으로 바뀐 것이다. 어디서 나를 지켜볼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감시카메라와 함께 말이다. 현장을 밝히는 불빛의 용도인지 현장 작업자들의 근무를 감시하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2인 1조에 충원된 인원들은 1년 계약직이고,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노사전 협의체가 운영되는 동안은 하청업체 용역 계약의 3개월 단위 연장에 따라 근로계약도 연장은 되고 있다. 하지만, 하루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즘의 상황에서 3개월 이후는 점쟁이나 알 일인지 모른다.

 

더욱 웃지 못할 사항은 그 자리가 여전히 발전사 퇴직자들의 재취업 창구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와의 일상적인 사투와 낙탄 삽질을 경험하지 않은 발전사 퇴직자들 말이다.

적응하지 못한 채 퇴사에 따른 빈 공백은 교대근무 다른 과 인원의 대근으로 채우는 실정이다.

 

김용균 사고 이후 구성돼 운영되었던 설비개선 TF는 수많은 설비개선 항목의 공감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남기고 원청의 결정에 따른 셀프 설비개선 계획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낙탄 회수 장치는 650m 구간을 200m 구간에만 설치했고, 그마저도 무용지물로 재공사를 해야 해서 지금은 정지되어 있다. 여전히 그 넓은 공간과 길이를 삽질로 처리하고 있다.

 

분진 저감장치는 제작사의 제어시스템 외주화로 업체는 사라지고 현장 설비와 자동제어는 엇박자가 나게 되어 그 문제를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돌아온 것은 중점관리로 인한 노동 강도의 증가다. 벨트에서 떨어지는 낙탄을 물을 흘려 처리하는 워터크리닝은 보여주기식으로 김용균 사고 현장 타워 내부에만 설치했고, 다른 구간은 낙탄에 막혀 물이 역류하는 상황이라 사용을 못 하고 있다.

 

산더미 같이 쏟아지는 낙탄을 치우느라 그저 한결같이 삽질이다. 오죽하면 근로감독관이 점검창을 열어 보고서 쏟아지는 낙탄량에 탄식했을까.

 

 10월15일 경향.jpg

<사진> 경향신문.  2020. 10. 15 

 

원청 발전사와 김용균이 있던 자리

 

태안사업소의 휴게실에는 아직도 버젓이 2019년 2월 자,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장 명의의 벽보가 붙어있다. ‘사망사고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최근 태안화력의 화물노동자 사망사고에 따른 태안화력 본부장의 특별안전교육 문서에 내용은 더욱더 가관이다.

 

“2018년 12월 중대 재해 이후 국민 눈높이에 맞게 현장 환경개선 및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했으나, 최근(9월 10일) 안전사고 재차 발생함. 발주사는 안전의식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협력사는 아직도 부족하다.” 등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청 발전사는 설비의 법적 소유권을 갖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손님일 뿐이다. 아무 권한도 없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손님 소유의 설비에 문제와 하자가 있다고 소리쳐도 소유권을 가진 발전사는 싫은 사람이 나가라고 한다. 그곳이 김용균이 일하던 발전소 삶의 현장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기업 발전소가 이렇듯 상식 밖의 내용으로 운영되는 실상을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

 

얼마 전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추석 명절 기간에 태안화력을 방문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환노위 소속 의원으로 화물노동자 사망사고와 김용균 사고 이후 실태를 점검하러 방문했다. 늘 그래 왔듯이 국회의원 방문을 앞두고 대대적인 청소 지시가 떨어졌다. 함께한 근로감독관들조차 깔끔해진 현장에 놀라워했다.

 

방문 다음 날, 화물노동자 사망사고에 따른 특별근로감독 기간 중에도 또다시 하청 비정규직 정비노동자의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대퇴부를 크게 다쳐 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마다 반복되는 죽음의 현장인 태안화력은 특별근로 감독이 아닌 상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높아진’ 발주사의 안전의식만큼 높은 수위의 책임과 처벌이 강제되도록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한국발전기술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실명을 지칭하며 고액연봉자라는 표현이 나왔다 한다. 하지만, 김용균의 급여명세서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최저임금 보다 고작 9만 원을 더 받았다. 그것도 임금협상의 결과이지 회사 측에서 알아서 올려준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하청업체는 발전퇴직자의 재취업 창구로,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을 양산하는 강소기업으로 키워졌고, 원청은 그 하청업체를 통해 이윤을 남긴다.

 

수도권에 공급하는 전력의 비중이 높은 영흥, 당진의 화력 발전소와 함께 태안화력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9, 10호기에만 2만 톤에 가까운 석탄을 매일 컨베이어 벨트로 이송한다. 하루 상탄량은 정해져 있고, 저장 탱크의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개의 상탄 라인을 가동한다.

 

그러나 설비의 돌발 상황과 정비 시간을 고려하면 두 개 라인의 상시가동은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태안화력의 설비 조건이다. 한 달 전쯤 모든 타워와 벨트의 점검창에 ‘벨트 기동 중 점검창 개방금지’라는 큼지막한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부착되기 전에는 어떠했을까? 아니 부착된 후에는 달라졌을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작업의 지시와 작업 상황을 카톡방에서 공유받는다. 원청의 지시사항은 사무실의 발전사 퇴직 간부들에게 전달되고, 각 교대근무의 파트장에게 지시된다. 벨트의 마찰열에 의한 자연발화를 해소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하고 낙탄을 처리해야 하지만, 그 요청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안전하지 않은 작업과 위험이 판단되면 바로 작업 중지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실제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태안화력의 현장 상황이다.

 

부상과 죽음이 이어지는 태안화력 상황과 조건이 발주사의 자의적인 안전의식 개선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현장에 가끔 손님처럼 나타나서 지시사항을 남기고 사라지는 원청의 모습에서 개선된 안전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장의 조건과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안전사고와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2년 전 김용균이 있던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김용균이 서 있다. 그 자리가 절망과 죽음의 자리가 되지 않도록 남아 있는 우리가 싸워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바꾸기 위해 꾸준히! 제대로! 투쟁해야 한다.

 

김경진 | 김용균재단 운영위원, 한국발전기술지부 조합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1호] 엥겔스 탄생 200주년 : 마르크스를 번역할 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엥겔스 탄생 200주년 : 마르크스를 번역할 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gnbvnm.JPG

 

<편집자 주>

‘엥겔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올가을 예정된 평가와 계승에 대한 토론에 앞서 혁명 동무 맑스와의 마지막 우정을 보여주는 편지글, 맑스 저서에 대한 공적 책임을 다하자는 엥겔스의 글을 소개한다.

 

 

 「자본」 1권은,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공공의 재산이다. 그러므로 영국 사회주의 집단 안에서는 번역이 마르크스 유작 관리자의 책임 아래 준비되고 출간될 것이라는 사실이 매우 잘 알려졌지만, 텍스트가 충실하고도 제대로 변환되기만(rendered: translate와 구분하기 위해서 변환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옮긴이) 한다면 그 번역이 다른 사람에 의해 먼저 이루어진다고 해도 아무도 투덜거릴 권리가 없다.

 

존 브로드하우스(John Broadhouse)에 그런 식으로 시도한 번역 첫 몇 페이지가 「투데이」(To-Day) 10월호에 실렸다. 분명하게 말하겠는데, 그것은 결코 텍스트의 충실한 변환이 아니며, 이는 브로드하우스 씨가 마르크스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기를 하나 들어보자. 몇 명의 옥스퍼드 대학생이 노가 네 개 있는 보트로 노를 저어 도버 해협을 건너고 있을 때, 그들 중 한 명이 “노를 헛 저었다(caught a crab)”1)고 신문에 보도되었다. 「쾰른 신문」(Cologne Gazette)의 런던 통신원이 이것을 그의 신문에, 문자 그대로 그리고 충실하게, “게가 노 젓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노에 걸려 잡혔다”라고 보도했다. 런던 한복판에서 수년간 살아온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예의 기술적인 용어들에 마주치게 된다면 바로 그와 같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겠지만, 단순한 독일어로 된 책에 대해서 꽤 쓸 만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독일 산문 작가 중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글을 번역하는 일에 착수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이제 정말로 브로드하우스 씨가 “게를 잡는 일”에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것이 더 있다. 마르크스는 이 시대에 가장 정력적이고 간결한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를 적절하게 변환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통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브로드하우스 씨는 분명 존경할 만한 저널리스트의 재주와 언어 구사력을 지녔지만, 관습적인 유명 문필가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사용되는 제한된 범위의 영어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너무 쉽게 행동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영어는 「자본」이 번역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강력한 독일어는 그것을 변환하기 위해 강력한 영어가 필요하며 최상의 언어 자원에 의존해야만 한다. 새로 만들어진 독일어 용어는 영어로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브로드하우스 씨가 그러한 어려움에 봉착하자마자, 그의 언어 자원은 그를 저버리고 그의 용기마저 꺾어버렸다. 이단 같은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제한된 밑천을 아주 조금 확장하고, 일상적인 문헌의 관습적인 영어에 아주 조금 혁신을 가하면서, 그는 자신의 귀에는 거슬리지 않지만, 저자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다소 불명확한 용어로 어려운 독일어 단어를 변환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그 용어가 다시 등장할 때, 전문 용어는 언제나 같은 어구로 변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완전히 다른 용어들로 그것을 번역한다. 그리하여 그는 첫 번째 절의 제목에서, grösse가 크기 또는 한정된 양에 상응하는 명확한 수학 용어지만, 규모(extent)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Werthgrösse을 “가치 규모(extent of value)”라고 번역한다. 그리하여 Arbeitszeit의 뜻으로 단순히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그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것들로 변환한다. (1) “시간-노동,” (2) “노동의 시간,” (3) “노동-시간,” 그리고 (4) “노동 기간.” (1) “시간-노동”은 오히려 시간으로 지급한 노동이나 힘든 노동에 시간을 “제공하는” 사람이 수행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고, (4) “노동 기간”은 2권에서 마르크스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했던 용어(Arbeitsperiode)이다. 지금은 잘 알다시피, 노동-시간의 “범주”는 책 전반에 걸쳐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중의 하나인데, 10쪽도 안 되는 곳에서 그것을 네 개의 서로 다른 용어로 번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상태 그 이상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떤 상품이 자신을 나타내는 첫 번째 측면은 유용성의 대상이라는 측면이고, 그와 같이 그것이 지닌 질이나 양으로 고려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 완전체, 즉 수많은 질이나 속성들의 총체이고, 따라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유용할 수 있다. 이 서로 다른 방식들, 따라서 어떤 물건의 다양한 용도를 발견해 내는 것은 역사 행위이다. 유용한 물건들의 양을 측정하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척도를 찾아내고 확정하는 일 또한 그렇다. 상품을 측정하는 방식의 다양성은 부분적으로는 측정되는 대상의 본성 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관습 때문에 발생한다.”2)

 

이것이 브로드하우스는 다음과 같이 변환한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들, 결국 대상이 유용하게 쓰일 다채로운 양식은 시간의 과업이다. 결국. 유용한 물건들의 양의 사회적 측정 수단을 발견하는 일 또한 그렇다. 상품들의 크기(bulk)의 다양성은 부분적으로 그 서로 다른 본성 때문에 발생한다.”

 

마르크스에게서, 물건들의 다양한 유용성을 찾아내는 것은 역사 진보의 본질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브로드하우스 씨에게서, 그것은 시간의 과업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에게서는, 인정된 공통의 척도를 확정하는 데도 같은 조건이 적용된다. 브 씨에게서는, 또 하나의 “시간의 과업”이 “유용한 물건들의 양의 사회적 측정 수단의 발견”에 있는데, 마르크스는 분명 측정 수단의 종류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는 Masse(측정 수단)을 Masse(크기)로 오인하고, 그리하여 지금까지 잡힌 가장 멋진 게들 가운데 하나를 마르크스에게 뒤집어씌우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용가치는 부의 사회적 형태가 어떠하건 그 부를 구성하는 재료를 형성한다.”(부의 사회적 형태: 그것에 의해서 부가 보유되고 분배되는 전유의 특별한 형태). 브로드하우스 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용가치는 항상 사회적 형태를 띠는 부의 실질적인 토대를 구성한다.”

 

그런데 그것은 가식적인 상투어이거나 완전히 무의미(터무니없는 말)이다.

 

상품이 자신을 나타내는 두 번째 측면은 그것의 교환가치이다. 모든 상품은, 교환가치를 지니는 것들 사이의 대비를 통해서 변화하는 비율로, 교환 가능하다는 점, 이 사실은 모든 상품이 그것들 모두에게 공통된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나는 브로드하우스 씨가 여기서 마르크스 책에 있는 가장 섬세한 분석들 가운데 하나를 재생산할 때 저지르는 부주의한 방식은 건너뛰고, 바로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 구절로 나아가겠다. “모든 상품에 공통된 이 무엇이 기하학적, 물리학적, 화학적 또는 기타 자연적 속성일 수는 없다. 상품들의 물질적 속성들은 그 상품들을 유용하게 만드는 한에서만, 즉 그것들이 상품들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한에서만 고려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상품들의 교환관계의 특징점은 분명히 상품들의 사용가치로부터 추상(출)을 만드는3) 바로 그러한 행위이다. 이 관계 안에서, 하나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같은 비율로 제공되는 한에서, 다른 어떤 사용가치와 동등하다.”

 

이제 브로드하우스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겉보기에 분명하게 상품들의 교환-율을 특징짓는 것은 바로 추상적인 형태의 이것들의 사용가치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동일한 비율로 존재하는 한에서 꼭 다른 사용가치만큼 가치가 있다.”

 

따라서 사소한 실수를 제쳐놓더라도, 브로드하우스 씨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의 정반대 것을 말하도록 만든다. 마르크스에게서, 상품들의 교환관계의 특징은 추상 전체가 그 상품들의 사용가치로 구성되며, 그것들은 사용가치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고려된다는 사실이다. 그의 해석자는 교환율(여기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의 특징은, “추상적인 행태에서” 취해질 뿐인, 바로 그것들의 사용가치라고 말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에 몇 줄 지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문장을 제시한다. “사용가치들로서, 상품들은 오직 다른 질일 수 있고, 교환가치로서 그것들은” 추상적이지도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은, “오직 다른 양일 수 있으며, 따라서 사용가치를 조금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당신이 읽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거듭해서 같은 오해를 반복하는 브로드하우스 씨를 발견하게 될 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막 인용한 그 문장 다음에, 마르크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상품들의 사용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즉, 사용가치에서 추상을 만든다면) “그것들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노동 생산물들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러나 이 노동 생산물조차 이미 우리 수중에서 변화를 겪었다. 우리가 그것의 사용가치에서 추상을 만든다고 하면, 우리는 또한 노동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유형의 요소와 형태들로부터 추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브로드하우스 씨에 의해 영어로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사용가치를 상품들의 실질적 재료로부터 분리한다면, 오직 하나의 속성, 즉 노동 생산물의 속성만 남는다. (어디에? 사용가치에 아니면 실질적 재료에?: 엥겔스) 그러나 노동 생산물은 이미 우리 수중에서 변형되었다. 우리가 그것에서 그것의 사용가치를 추출한다면, 우리는 또한 그것의 사용가치를 구성하는 스태미나와 형태를 추출하는 것이다.”

 

다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상품들의 교환관계에서, 그것들의 교환가치는 우리에게 그것들의 사용가치와는 완전히 독립된 것으로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노동 생산물의 사용가치에서 추상을 만든다면, 앞에서 우리가 확정한 것처럼, 우리는 그것들의 가치에 도달한다.” 이것을 브로드하우스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품들의 교환율에서 그것들의 교환가치는 우리에게 그것들의 사용가치와는 전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이제 노동 생산물들에서 사용가치를 사실상 추출한다면, 그때 확정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것들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브로드하우스 씨는 서랍이나 금고에서 돈의 추출과 같은 유형의 것들 이외에 어떤 다른 추상 행위나 양식들에 대해서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추상과 빼기를 동일시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번역가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fhfgjh.JPG

 

독일어의 의미를 영어의 무의미로 변화시키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마르크스의 가장 우수한 연구들 가운데 하나는 노동의 이중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용가치의 생산자로 여겨진 노동은, 같은 노동이 가치 생산자로 여겨질 때의 노동과는 다른 특성의 것이고, 다른 자질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방적·직조·쟁기질 따위의 구체적인 종류의 노동이고, 후자는 방적·직조·쟁기질 따위에 공통된, 인간의 생산적인 활동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하나의 공통된 용어, 즉 노동(labour) 안에 그것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전자는 구체적인 형태의 노동이고, 후자는 추상적인 형태의 노동이다. 전자는 기술적 노동이고, 후자는 경제적 노동이다. 요약하면(영어에는 양자에 대한 용어가 존재한다) 전자는 labour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work이고, 후자는 work와 별개의 것으로 labour이다. 이 분석 이후에,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처음에 상품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것으로, 즉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타났다. 그다음에 우리는 노동도, 그것이 가치로 표현되는 한에서, 그것이 지닌 능력으로서 그것에 속하는, 사용가치 창조자와 같은 특성을 더는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브로드하우스 씨는 자신이 마르크스의 분석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하면서, 위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우리는 첫 번째로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혼합물로 간주했다. 그다음에 우리는 노동이, 그것이 가치로 표현되는 한에서, 그것이 사용가치 생성자인 한에서의 저 특성을 소유할 따름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마르크스가 ‘희다’라고 말할 때, 브로드하우스 씨는 왜 ‘검다’라고 번역해서는 안 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 더욱 재미있는 것을 보자.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민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상품 구매자로서 이 모든 상품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법적 가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시민 사회(Civil Society)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영어이고, 퍼거슨(Ferguson)의 “시민 사회의 역사”에 관한 책은 백 년도 더 된 것인데도, 브로드하우스 씨에게는 이 용어가 이해하기 힘겨운 것이다. 그는 그것을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는”으로 변환하고, 그래서 그 문장을 무의미로 바꾸어버린다. 그들이 구매해야 하는 상품의 본성과 가치에 무지하여, 소매업자들 등에 의해 사기당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용가치의 생산(Herstellung)은 “사용가치의 확립”으로 변환된다. 마르크스가 “만약 아주 적은 양의 노동으로 석탄을 다이아몬드들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들의 가치는 벽돌의 가치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할 때, 보아하니 브로드하우스 씨는 다이아몬드가 탄소 동소체 형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석탄을 콜라로 바꿔버린다. 그와 비슷하게 그는 “브라질 다이아몬드 광산의 총 산출량”을 “모든 산출량의 이윤 전체”로 변형시킨다. 그의 수중에서 “인도의 원시적 공동체들”은 “숭고한 공동체들”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그 고유의 목적에 알맞은 일정한 생산 활동 또는 일정한 유용 노동이 들어 있다.” [“들어 있다(contained)” 독일어(steckt)는 잘 번역된 것이다. 상품의 사용가치 생산은 그 시점에 이미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브로드하우스 씨는 분명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어떤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일정한 양의 생산 능력 또는 유용한 노동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질을 양으로 바꾸어버릴 뿐 아니라 막 소비된 생산 활동을 소비될 생산 능력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제 그만하자. 나는 브로드하우스 씨가 모든 면에서 마르크스를 번역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이보다 열 배 더 많은 사례를 들 수 있다. 특히 그는 정말로 진지한 과학적인 저작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ederick Engels)

1885년 10월 작성

 

옮긴이 | 김종원

 

 

 
<주>
 
1. 단어 그대로 옮기면, “게를 잡았다”가 된다. (옮긴이)
 
2. 이 구문과 다음 구분에 있는 강조는 모두 엥겔스가 추가한 것이다.
 
3. “make abstraction from”으로, 사용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고, ‘추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추상’이라는 말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옮겼다. (옮긴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용균 동지 2주기]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김용균 동지 2주기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임성용 시인

 

20201103PS20120600284.jpg

 

맨홀 작업을 하던 노동자 세 명이 질식했다. 지하에 들어차 있던 가스 때문이었다. 세 명의 노동자들이 나오지 못하자, 작업반장은 맨홀 안으로 다시 세 명의 노동자들을 내려보냈다. 그들도 역시 나오지 못하고 쓰러졌다. 질식한 세 명의 노동자를 포함해서 구조하러 간 사람 중의 한 명까지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재료 분배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회사에 안전고리의 교체를 요구했다. 고리가 낡아서 사고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작업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안전고리를 교체해주지 않았다. 그 노동자는 작업 중에 고리가 끊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결국 그는 사망했다. 이것이 과연 안전사고일까?

 

맨홀이나 탱크 같은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는 사전에 환기가 필수이다. 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점검과 조치를 취하지도 않은 채, 노동자를 무조건 밀어놓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만드는 행위가 작업책임자의 과실이며 안전을 등한시한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안전고리 하나만 제 때 교체를 해주었으면 낙하물에 의한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기업의 부도덕과 안전불감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살인'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노동현장 곳곳에서 일어난다. 똑같은 사고가 똑같이 반복된다. 날마다 노동자를 죽이는 '살인'은 지속된다. 그러나 기업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사망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도 않는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김용균은 스물네 살, 사회에 첫발을 디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는 끝내 스물다섯 살이 되지 못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노동자들에겐 무엇이 바뀌었고 노동현실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김용균의 죽음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7년 만에 국회에서 개정되었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실상은 변한 게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노총 등 249개 단체(2020년 9월 23일 현재)가 참여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이번 정기국회 내 진행시킬 것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농성을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매일같이 5~6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우리 곁에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멀쩡한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터지고, 허리가 끊기고, 온몸이 피투성이로 짓이겨져 목숨을 잃고 있는가. 핏물이 타고 뼈마저도 녹아서 없어지는가. 어떤 악독한 살인자들이 무기를 쥐고 있는가? 친기업 정부라고 하는, 오로지 자본가를 위한 권력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살인교사자'들은 아닌가?

 

어제의 김용균이 오늘의 김용균이다. 어제의 김용균이 오늘도 손전등을 들고 밤을 꼬박 새우고 있다. 저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까마득한 철제 난간 위에서, 지하의 깊은 가스실 안에서 비좁은 기계 틈을 기어가고 있다. 살이 발린 생선가시처럼, 비 맞은 새처럼 떨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나라인가? 자꾸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자랑만 넘쳐난다. 한국은 전 세계 200여 개의 국가 중에서 경제규모 11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한다. 군사력은 세계 6위 수준의 강국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고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풍요와 번영의 나라라고 하는데, 노동자들은 OECD 국가 산재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죽어간다.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고 어디에서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루아침에 푸른 생명의 종지부를 찍고 통곡 속에 누워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민호라는 특성화고 학생이 야간일을 혼자 하다가 기계에 몸이 눌려서 죽은 일을. 민호는 한 달 잔업만 100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열여덟 실습생을 그렇게 죽도록 부려먹다가 끝내 죽이고야 말았다. 그와 같은 일은 50년 전에도 있었다. 전태일을 분신하게 만들었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다락방 소녀들도 그랬다.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산업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30년 전에도 그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세계가 놀랄만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아마 이대로 간다면 3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고 다쳐도 그들의 고통을 세상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수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기업도 정부도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떼죽음을 당해도 뉴스에서는 그저 흔히 발생하는 사고로만 보도한다.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노동문제가 되거나 사회적 의제가 되는 경우는 김용균의 경우처럼 극히 일부일 뿐이다.

 

2020년 5월 2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준)의 발표문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에서는 창사 이래 467번째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아무 탈 없이 배를 만든다. 최고경영자는 467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예방조치를 취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별다른 비용을 쓰지도 않았다. 기업에겐 볼펜 값도 안 되는 돈으로 과태료나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 한국의 대기업, 건설현장, 고위험사업장, 하청업체 등 모든 곳이 다를 바 없다.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네, 공정개선 명령을 내리네, 하면서도 기껏해야 현장 소장이나 과장 같은 하급책임자를 기소하면 끝이다. 노동자의 사망사고로 기업주가 인신 구속된 적은 거의 없다. 벌금이라야 고작 몇 백만 원에 불과하고 많아야 1000~2000만 원이 상한선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를 죽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쁜 정부와 더 못된 시어미 노릇을 하는 국회에서 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보호법을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사망을 살인의 범주로 보지 않고 단순한 과실로 처리하는 노골적인 방관행위이다.

 

꿈 많은 청년 김용균의 몸이 찢겼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컨베이어는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 돌았다. 주변엔 비명을 들어줄 사람조차 없었다. 본래 정규직이 담당했던 일은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겨졌고, 그의 젊은 피는 한줌의 검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데 쓰이지도 못했다.

 

김용균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이었다. 그의 유품은 작업모를 쓴 사진과 고장난 손전등, 그리고 컵라면 세 개였다.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김 군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기면서 일하다 가방 속에 컵라면을 남겨두고 갔다. 두 죽음이 닮은 것은 컵라면뿐일까? 이들의 죽음은 원청과 하청, 외주화와 용역,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한국 노동자들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이윤이 종교가 된 기업, 노동자의 하소연이 들리지 않는 정부의 공모가 ‘어제의 김용균과 오늘의 김용균’이라는 죽음을 낳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컵라면과 촛불을 분향소에 놓고 외쳤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라"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나 김용균 2주기가 되는 올해에도 20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끼임, 추락, 압착 등의 인재에 가까운 중대재해로만 한정해도 매년 600여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차고 넘치는 김용균의 죽음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죽음의 아가리에서 꺼낼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믿음은 퇴색되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노동자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요구마저도 관철되지 않는 나라는 분명 큰 문제가 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복지국가 대한민국'은 왜 이토록 잔인할까.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김용균이 죽어야 정상적인 사회가 될까.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국·캐나다·호주 등 외국은 '기업 살인법'으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다. 사망사고는 매출액보다도 많은 벌금을 물려 기업의 문을 닫게 하기도 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기업의 주의 의무와 책임 태만에 따른 근로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노동자의 목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이 일하는 사람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또 그럼에도 저기, 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청년이 간다.

 

R658x0.jpg

 

청년 김용균

 

내 영정을 들고

내가 걸어가네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부르르, 주먹을 쥐었다 펴면

핏빛 햇살 한 줌

저기 떨어진 내 머리

저기 끊어진 내 몸통을

내가 끌고 가네

맑게 빛나는 내 눈이

차갑게 감긴 내 눈을 보네

내 영정에 양복을 입히고

파란 넥타이 꿈을 동여매고

울먹울먹 절하네

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내가 먼저 가네

차마 돌아서지 못한 나를 안고

내가 울며 붙잡고 있네

 

詩 | 임성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1호] 엥겔스 탄생 200주년 : 가족, 편지, 혁명 동무

엥겔스 탄생 200주년 : 가족, 편지, 혁명 동무

 

 

<편집자 주>

‘엥겔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올가을 예정된 평가와 계승에 대한 토론에 앞서 혁명 동무 맑스와의 마지막 우정을 보여주는 편지글, 맑스 저서에 대한 공적 책임을 다하자는 엥겔스의 글을 소개한다.

 

 300px-Engels20.gif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가 죽은 다음해인 1884년 10월 출간된 책은 미국 인류학자 모건(1818~1881)의 <고대사회>와 모건의 원시사회 저술의 문단을 인용한 마르크스의 노트에 의존했다. 엥겔스는 ‘루이스 H 모건의 연구에 비추어’라는 부제를 붙였다. 여성해방에 대한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모건은 인간 사회의 네 가지 본질적 특성으로 발명과 발견, 정부, 가족, 재산을 든다. 엥겔스는 이들 특성을 가족, 사유재산과 국가 발전의 통합된 연결 주제로 삼았다. 여성, 가족, 노동계급 재생산에 대한 역사적·이론적·포괄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는 사유재산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족이 가부장제와 연결된다고 봤다. 국가는 곧 억압·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국가라고 통찰한다. 앞서 모건은 재산을 ‘관리할 수 없는 권력’이라고 결론냈다.

 

엥겔스는 국가 출현에 대한 자신과 마르크스의 관심에 따라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이행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본주의 대규모 역사적 영향 분석에 기반을 둔 마르크스 <자본>의 관점, 여성해방·인간해방 조건인 집합적 노동과정 참여를 통한 정치적 권리라는 엥겔스 관점이 일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성과 노동자에 비유하면 ‘실질적 사회평등’에 대한 투쟁을 통해 두 집단은 법적으로 평등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본에 의한 착취가 철폐되고 가사노동이 공공산업으로 전환될 때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뤄진다는 분석은 엥겔스의 탁월한 업적으로 꼽을 만하다. 가족과 국가를 지배와 착취 이데올로기로 삼는 한국 자본주의 현실을 비판하려면 필요한 책이다. 올해는 엥겔스 탄생 200주년이다. 마르크스에 가려진 그를 기리려면 읽어야 할 책이다.

 

「오세철의 내 인생의 책」, 2020년 1월 14일, 경향신문

 

 friedrich-engels-german-school.jpg

 

 

「알제리에서의 편지」, 칼 마르크스

 

병마에 고통받던 마르크스는 1883년 3월14일 영원한 혁명 동무 엥겔스 곁에서 눈을 감았다. 65세 때다. 서한집은 사망 한 해 전인 1882년 봄과 여름, 요양하러 간 알제리와 리비에라에서 딸 예니와 사위 롱게 등 가족과 엥겔스에게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질베르 바디아는 서한집의 해설에서 마르크스의 심경을 헤아리며 “끝마쳐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한 감정으로 그냥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탕탈(Tantal)의 욕망에 의해 고통당한다는 것을 우리의 마르크스는 절대 수용하지 않았으리라”고 썼다.

 

편지 대부분의 수신자는 엥겔스였다. 두 혁명가의 인간적 관계가 편지에서 드러난다. 햇볕 때문에 예언자 같은 수염과 모발을 제거했다(1882년 4월28일)는 일상·일신의 변화를 알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병, 죽음 같은 슬픈 상념에 관한 암시를 딸들에게는 하지 않았다. 그 고통과 상념은 오직 둘도 없는 동무 엥겔스에게만 숨기지 않고 토로했다.

 

엥겔스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영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매사에 무관심해진다네”(1882년 5월8일)라고 적었다. 마르크스는 항상 편지를 끝내면서 ‘자네의 늙은 무어인’이라고 적었다. 엥겔스는 12년을 더 살며 마르크스가 남기고 간 저술들을 완성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번영하는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파리코뮌을 보았던 마르크스는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시작으로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혁명가나 노동계급이나 자신들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서한집은 병들어 고통받는 위대한 혁명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혁명의 객관적·필연적인 과제를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오세철의 내 인생의 책」, 2020년 1월 13일, 경향신문

 

 

karl11.jpg

 

 

「알제리 체류의 마르크스」, 질베르 바디아

 

칼 마르크스는 1882년 초 마르세이유 항에서 출발하여 알제리로 가 그곳에서 3개월가량 머물렀으며, 5월 4일 프랑스로 되돌아와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한 달을 보냈다.

 

이 여행의 동기는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에서다. 마르크스는 그의 가벼운 늑막염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는 있었으나, 기관지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런던의 여러 의사와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알제의 햇볕이 마르크스가 전에 머물었던 와이트 섬의 기후보다 좋아 그의 병세의 회복과 완쾌를 효과적으로 빠르게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를 돌보고 있던 엥겔스와 의사 돈킨은 마르크스가 알제에 가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 당시 영국에서 프랑스 리비에라처럼 요양지로 이름난 곳이 알제리였다. 1865년과 1870년 사이에 천명 이상의 영국인들이 겨울 시즌의 몇 주 또는 몇 달을 알제리에서 보냈다.

 

1882년 겨울은 특별히 포근하지도 않았고, 3월 날씨치고는 비가 계속 내렸다. 항해조건이 그의 건강상태를 더 나빠지게 하였다. 3월 6일 피를 토해 내었고, 각혈은 일주일동안 멈추지 않았었다. 유능하고 적극적인 의사 스테판이 마르크스의 병의 재발(늑막염)을 진단하였는데 또 다시 진료를 받을 수 있을는지, 마르크스에게 산책을 하지 못하게 하고, 독서와 담소도 줄이라고 권고하였다. 마르크스가 도착하자 즉시 오랜 산책을 한 페르메에게 마르크스가 중환자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고 의사선생은 충고하였다.

 

이와 동시에 마르크스의 지적활동은 거의 중단상태에 있다. 일은 하면 안 되고 신판을 내기 위한 “자본론”의 손질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의 서신교류는 직계가족과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한해서 2월말부터 6월까지 3개월에 걸쳐서만 이루어졌다. 마르크스는 그의 곁에 손자들을 두고 싶어 했고, 그들의 놀이 광경에서 재미있는 경탄과 놀람의 연극에도 참여하는 상상을 하고 제일 큰 외손자 죠니(장래의 쟝 롱게)에게 특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늘 초조하게 세 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특히 9월에 딸을 출산할 예니(롱게)에게 주어질 가사노동과 그녀에게 딸린 네 아이의 교육 등에 대해서도 안쓰러워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오래전부터 마르크스 가족의 일원이었다. 절친한 친구로 베푸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마르크스의 각종 병 치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건강의 실상을 들어내려고 노력하지만 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건강에는 이상 징후가 없다고 얘기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번씩이나 엥겔스에게는 듣기 거북한 말을 내뱉고 있다.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까지도 너희들은 희생시킬 수 있어, 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 이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지! 라고.

 

그의 친구에게 무엇이 불만인가? 엥겔스가 자신을 알제리로 보냈고, 프랑스 리비에라에 가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불만은 근거가 희박하다. 어느 누구도 그 해 알제의 봄 날씨가 그 정도로 엉망일 줄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더 나아가 본래 겨울철 프랑스 리비에라 날씨는 대개 건조한데 1882년은 이상한 해로 마르크스가 이곳에 갔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 불만은 엥겔스(사위인 라파르그에게도 같은 불평을 하고 있다)가 마르크스 보고 하루 종일 거실이나 서재에 있지 말고 좀 오랫동안 걷기도 하고, 바깥공기도 마시고 하라고 종용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기가 뭘 하든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10년 전 마르크스의 영애가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1870년 11월 19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아빠(마르크스)의 건강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양호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우리의 엥겔스 박사가 신경을 써준 덕택이지요… 그는 무어인(마르크스의 별칭)에게 장시간 걷게 함으로써 약 이상의 더 좋은 처방을 한 것입니다. 라고.

 

엥겔스에게 한 마르크스의 불평불만을 보면서, 1차 세계대전 때 로자 룩셈부르크가 옥중에서 쓴 서신 중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을 생각하였다. “지난날 나는 심술궂고, 불행하고, 그리고 병들었다. 이를 거꾸로 배열해보면 어떨까? 나는 병들었고, 불행했으며, 고약했을까?” 그렇다. 마르크스가 생애 처음으로 그의 친구에게 부당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그가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리라.

 

「알제리에서의 편지」, ‘질베르 바디아의 해설’ 중에서

 

 

 MADBV.JPG

 

 

엥겔스에게

 

 

친애하는 프레드,

 

이 엽서에 앞서 자네에게 전보를 쳤었다. 이 엽서가 쓸데없는 걱정을 줄 것 같아서 염려된다. 사실 별로 중요치 않지만 일련의 좋지 않은 일들(항해를 포함해서) 때문에 2월 2일 알제 도착했을 때 뼈 속까지 얼어 내 몸이 많이 상해있었어.

 

1881년 12월 날씨는 엉망이었으나 1월은 화창했다고 하네. 공교롭게도 2월부터 날씨가 춥고, 습기 차 제일 추웠던 2월 20, 21, 22일 3일간 아주 혼이 났다네, 불면, 식욕저하, 심한 기침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고, 덩치 큰 돈키호테처럼 심한 우울증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네.

 

쓸려고 가져온 경비로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는데, 선실에서 보낼 두 밤 동안 지겨운 기계소리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것을 상상하면! 이런 날씨를 피해 사하라 사막 초입에 있는 비스크라로 곧 바로 떠나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연락관계나 교통편을 생각해보면 이런 새 여행이 7~8일은 잡아먹고 아주 고통스러울 것 같아 여행 시 여러 어려운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 얘기로는 비스크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가 날 경우 한 순간이라도 부상자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그러네!

 

2월 22일 오후가 되자 온도계가 따뜻한 날씨를 일러주고 있었지. 내가 도착하던 날 마음씨 좋은 페르메 판사가 도와줘 함께 알제 동쪽* 성벽 외곽 언덕에 위치한 빅토리아 팬션 호텔로 짐을 꾸려 올라가면서 오리엥 그랜드 호텔을 떠났어. (글쎄 이 호텔에 밥 맛 없는 급진주의 철학자 애쉬턴 딜키가 묵고 있었고, 영향력 있는 신문 「프티콜롱」”이나 알제 지역신문의 종사자*들, 모든 영국인은 귀족이라는 인상을 주며 브래드로그에서 왔다는 귀족들도 투숙하고 있다네). 내 방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 지중해로 둘러싸인 알제항만, 언덕을 타고 계단식으로 늘어선 빌라들 (언덕아래 계곡이나 언덕위의 협곡에 자리 잡고 있는)*. 더 멀리는 많은 산들이 보이는데, 마티푸산 넘어 카빌리산맥의 눈에 쌓인 쥬르쥬라*산 정상이 보인다네(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산은 석회질 성분이라네). 아침 8시에 보는 이러한 파노라마 이상 더 좋은 경치가 어디 있겠나 싶다. 공기, 초목, 유럽 아프리카의 경이로운 혼합 등등. 매일 아침 10시나 9시에서 11시 사이 내 방* 위쪽에 있는 계곡과 언덕 사이를 산책하네.

 

이 모든 생활에 먼지는 빠지지 않지. 2월 23일과 26일 사이에는 화창한 날씨였으나, 지금은 여기서 폭풍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천둥 번개가 없이 한바탕 소란만 피우는 바람이 닥치고 있다네.(여기 알제에서도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와이트섬에서 입었던 것과 다르지 않네. 지금까지 빌라 안에서 얇은 외투를 코뿔소 가죽 옷으로 바꿔 입었을 뿐, 그 외에 현재까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원주민들도 그 위력에 놀라 위험하고 할퀴는 날씨라고 부른다네(2월 27일부터 9일 정도는 계속 될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3일만 좋은 날이었어. 이런 조건에서 내 기침은 고약한 가래*와 함께 갈수록 더 심해졌어. 내 몸 왼쪽 부위는 병의 악화에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잠도 설치고, 정신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어. 그래서 스테판 의사를 불렀지(알제에서 최고의 의사라네). 어저께와 오늘 두 번에 걸쳐 나를 진찰하였다네. 무엇을 해볼까?

 

그가 해준 처방전으로 약을 사러 알제시내로 가는 중이야. 청진기로 자세히 검진한 후 이 의사의 처방전은 다음과 같다.

 

1. 솔을 이용하여 칸다지스 콜로디온*을 바르고, 2. 적당한 양의 물에 탄 비산염 소다를 식사할 때 스프 한 숟가락 정도로 해서 들고, 3. 밤에 기침이 심할 경우*에만 코데인과 물약*을 섞어 스프 한 숟가락 정도와 먹을 것. 8일후 다시 왕진 오겠다고 했네. 나보고 체력단련은 적당히 하라고 하였네. 소일거리의 독서 외에는 진정한 의미의 지적활동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네. 상태가 안 좋아 예정보다 빨리(아니 오히려 늦게)런던으로 돌아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환상을 가지거나 장밋빛으로만 사물을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네.

 

편지 쓰는 것을 멈춰야 할 것 같네, 알제 시내 약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그건 그렇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보다 더 감정표현을 싫어한다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지. 내 아내에 대한 추억을 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겠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 런던의 내 딸들에게 이 늙은 닉에게 편지쓰라고 일러주게. 애비가 먼저 편지를 보내기를 기다리지 말고.

 

인간창조라는 주요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펌스는 어디 있나? 내 안부를 전해 주게.

 

헤렌, 무어 셜머, 모두에게도.

 

나의 고우에게

 

자네의 무어인

 

아참! 나의 친애하는 돈킨 의사에게처럼 스테판 의사선생에게 줄 코냑*을 잊지 마!

 

1882년 3월 1일

 

빅토리아 호텔 팬션, 알제시 봉아퀘이대로 상 무스타파로

 

 

 

「알제리에서의 편지」, 칼 마르크스 중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1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8 :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8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3bc88ab1953692c9eb7fcd46c5f6fff2.jpg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탄생한 노동자국가는 1920년대 후반까지는 노동자 권력 아래 사회주의로 이행을 위한 시도들이 수행되었지만, 스탈린주의 반혁명 이후 1930년대부터는 노동자계급에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러시아혁명 이후 몇 달 안에 이루어진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 제도적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1917년 신분제 폐지, 철도노동자 노동시간 1일 8시간 실시, 군대 계급 폐지, 1,886개 전략회사 몰수, 종교의식을 하지 않는 결혼제도 실시, 낙태법 제정, 모자보호 연구소 개소, 1918년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공화국 선포, 사회주의 적군 창설을 위한 법령 선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법적, 제도적인 혁명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노동자계급은 소비에트 생산 주체, 권력 주체가 되지 못했다. 최초 프롤레타리아 혁명인 러시아 10월 혁명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이 패배하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사회주의로 이행이 실패하게 된 것이다. 1918년 봄 테일러주의 재도입과 1인 경영 강제 그리고 혁명 성과를 방어하려는 임시조치들, 즉 정치반대 분쇄, 짜르 관료 재고용,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인센티브 재부과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실질적 권력을 깨뜨리고 ‘노동자정부’와 노동자 사이 틈새를 벌려놓고 말았다. 이 과정은 3년간의 내전 동안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죽음으로 더욱 굳어졌고, 세계혁명의 연이은 실패는 볼셰비키를 고립시켰다.

 

결과적으로, 당시 러시아는 1차 대전 패배와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세계분업 내 후진적이고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자본주의적 이행 형식을 들여와 이행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 도입과 농업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일국사회주의와 반노동자 계급적인 당 독재 강화를 가져왔다. 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판단 속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당이 노동자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레닌 죽음과 세계혁명의 명백한 침체에 힘입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선언은 국제주의와의 공개적 단절이었으며 세계 제국주의 권력으로 러시아를 건설하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승리한 세계혁명 열매임을 주장한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러시아 국가와 경제ㆍ경영에서 엉키면 엉킬수록 고립되고 낙후한 상황에서라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주의를 향한 단계를 더욱더 이론화하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인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이론은 산업 성장을 노동계급 이해와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산업 성장은 노동계급 착취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은 본질에서 자본축적을 의미했다. 유럽 혁명운동 패배와 러시아에서 반혁명 과정은 코민테른을 구성하는 당들에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하고, 동시에 그 당들이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도록 하면서 코민테른에 반영되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는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법률상의 소유형식만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들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진정한 성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 소유의 법률상 측면만을 폐지한다. 노동자는 생산수단 사용에 있어서 어떤 진정한 통제력도 소유하지 않으며, 생산수단들은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결국, 생산수단들은, 그것들을 소유하고 공동으로 담당하는 관료 조직을 위해 단지 집산화 되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일반화된 상품생산 체제이며, 자본주의 생산 목적은 잉여가치 획득과 축적이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단순히 상품생산과 시장의 무정부성에 기반을 둔 이윤추구 체제라는 기본인식을 넘어, 자본주의 핵심이 자본의 사회적 관계 지배이며, 자본은 본질에서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임을 인식해야 한다. 소련 노동자들은 임금을 위한 교환을 위해 일했으며,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소외시켰고 자본을 생산했다. 소련에서 잉여가치는 사적 자본주의와 같이 새로운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하여 생산과정에 재투자되었다. 소련은 이러한 자본과 임노동의 사회관계가 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의 국가 소유 제도로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며, 스탈린주의 옹호자들의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국유화)가 전체인구에 의한 소유를 의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고, 이것은 단지 소유형태의 법적인 형식이었을 뿐 전혀 노동자계급 소유가 아니었다. 결국, 국가와 그 관료 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 폐지를 향한 한 걸음 진전이 아니라, 단지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성형하기 위한, 착취강화를 위한 한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지만, 사적 소유의 부재(사회주의 경제 창조를 위한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에도)는 그것 자체로 사회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반혁명은 국가가 주도하고 명령하는 특수한 형식을 취했고, 이것은 10월 혁명 이행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핑계로 민족경제 재조직화로 나타났다. 이 과정은 그 후 중국, 동유럽, 쿠바, 북한 등등에서 추진되었고, 이들 모든 국가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평의회 권력의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사회주의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를 참칭하며 타도해야 할 대상인 자본과 관료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제국주의 동맹체제 안에서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다르게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한 적이 없고, 따라서 단 한 번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가진 적이 없어 현재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과거의 마오주의 이데올로기 모두 자국 자본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희생시키면서, 오히려 그들을 탄압하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되새겨야 한다.

 

소련 경험은 첫째, 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가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소련에서의 국가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일국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노동자국가에 대한 환상은 이러한 은폐에 모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둘째, 명령경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며, 사적 소유 철폐와 국가 소유로 전환만이 아니라, 생산수단 사회화와 국가 권력이 노동자계급의 지배 아래 존재하는 노동자평의회 체제이어야 한다. 셋째, 러시아혁명 교훈은 국가기구가 반혁명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이며, 이행기에 계급과 국가 사이 관계 문제의 복잡성과 난해성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프롤레타리아와 혁명가들은 이 문제를 우회할 수 없으며, 이것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자국가, 코뮤니스트 사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부르주아 착취체제는 계급투쟁과 세계혁명을 통해 전복하고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54597f442844f2361f89fe565d21035c.jpg

코뮤니즘은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 아래로부터 노동자평의회 권력 창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 코뮤니스트 혁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당 역할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당이 노동자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권력을 당이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은 혁명 시작과 함께 사회 모든 권력을 노동자계급이 집단으로 행사하는 노동자평의회 권력을 수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노동자평의회가 모든 정치와 경제와 산업을 장악하고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에 걸쳐 모든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코뮤니즘 생산 관계는 생산수단 국유화와 사적 소유 철폐를 넘는 ‘생산수단 사회화’이며, 생산수단 사회화는 ‘노동자평의회의 전 사회적 권력’이라는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1호]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hdfrhh.jpg  

 

1. 맑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2012년 故 김수행은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라는 의미 있는 책을 쉽게 풀어 출간했다. 그는 한국에 맑스의 「자본」을 처음으로 번역하여 대중화시킨 원로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그때까지 러시아 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그 성격을 규정한 적이 없다. 맑스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들의 국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 올 세계혁명에 대한 실천적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고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사회실천연구소>가 개설한 「자본」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 뒤풀이를 하는 시간에 막역한 친구이며 동지인 그와 함께 그의 책 이야기를 하며 비로소 ‘현실 사회주의’와 미래사회에 관한 입장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의 책에서 몇 단락을 옮겨보자.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수행,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한울아카데미, p.4)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 즉 국가 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 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앞의 책, pp. 158~159)

 

나는 2008년 8월 <아우프헤벤> 그룹의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번역하는 도중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으로 잡혀가는 바람에 번역이 지연되어 2009년 6월에 그 책을 발간하면서 다음과 같이 옮긴이의 말을 적었다.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실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였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하지 않고 반혁명적 스탈린주의에 대한 옹호로 갇혀있는 맹목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1930년대에 가졌던 소련에 대한 방어 논리의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머지않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들이 혁명으로 쟁취해야 할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반혁명의 참담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 ‘현실 사회주의’를 아직도 혁명의 허상으로 붙들고 있거나, 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는 사람들이 맑스주의자들이라면, 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아우프헤벤, 오세철 옮김, 「소련은 무엇이었나」, 빛나는전망, pp. 5~7)

 

 

2. 소련은 무엇이었나 : 코뮤니스트 좌파

 

나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좌익공산주의자로 불렀고, 코뮤니스트 좌파 정치적 입장과 혁명 전략에 동의해 왔다. 소련을 국가 자본주의로 보는 그들의 입장과 분석에 원칙적으로 지지를 보냈지만, 위에 번역한 <아우프헤벤> 그룹의 자본주의로 보는 견해에도 비판적 지지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그룹의 글이 지니는 강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맑스주의 역사를 철저하게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면서 맑스의 가치론으로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트로츠키의 고뇌와 한계를 넘어서서 소련을 분석한 신트로츠키주의 이론가인 틱틴의 분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셋째, 국가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 보는 견해(코뮤니스트 좌파와 제2인터내셔널과 코민테른 중심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소련이 본질에서 자본주의 상품생산에 기초하지만, 자본주의로 강제적 이행한 역사적 형식의 결과로써 생산의 자본주의적 본질과 상품교환에 기초한 사회로서의 외양 사이에는 탈구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탈구는 가치 불구화와 사용가치 불량을 가져왔으며 이 두 가지는 소련의 비자본주의적 특성을 유지하는 기초가 되었고, 결국 소련의 궁극적 쇠퇴와 해체로 이끌었다고 본다. (앞의 책, pp. 6~7)

 

우선 코뮤니스트 좌파가 보는 자본주의와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가 제국주의 시대 자본의 실질적 형식인 금융자본 재산으로서 자본주의 본질을 바꾸지 않았다고 보면서 엥겔스가 「반뒤링」에서 “… 주식회사로 전환도, 국가 소유로 전환도, 생산력 자본주의로서 성질을 지양하지 못한다. …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현대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 기관, 자본가 국가, 관념상 총자본가이다. 현대 국가가 생산력을 더 많이 자기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 총자본가가 되며, 국민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로 남는다. 자본 관계는 폐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라고 한 말을 강조하고 있다. (오세철 편저, 「좌익공산주의」, 빛나는 전망, pp. 499~500)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국가 자본주의 특수한 형식이었고 국가는 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직접 통제하고 시장에 대한 독점을 장악했으며, 소련의 비참한 종말은 10월 혁명을 러시아 블록 몰락과 분리된 오랜 세월 동안 코뮤니스트 좌파가 발전시킨, 정치경제학 비판이나 맑스주의에 근거한 분석을 입증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 소유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한 비극은 이른바 소비에트 사회가 고전적(곧 서구) 자본주의의 조직적이고 법적인 구성으로 돌아온 종말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짓는다.

 

국가 자본주의에 기반한 러시아에서 반혁명은 유럽 혁명운동의 패배와 맞물렸다. 반혁명 과정은 당에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여했으며 동시에 그들 당이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게 했다. 당 없는 혁명의식을 생각할 수 없지만, 러시아 경험의 교훈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당일지라도 소비에트와 고립되어 혁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 지치고 죽은 노동계급에서 고립되었을 때 볼셰비키 지도부의 손에 남은 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권력이었다. (앞의 책, pp. 503~4)

 

한편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자본주의의 쇠퇴기 보편적 경향으로 국가 자본주의 출현을 설명한다. 쇠퇴기에는 어떤 민족자본도 제한 없이 발전할 수 없고, 각각의 민족자본 모두 무자비한 제국주의적 경쟁에 직면해 있어서 밖으로는 경쟁자들에 대항해 자신을 경제·군사적으로 가장 잘 방어하기 위해, 안으로는 증대하는 사회모순의 첨예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조직화한 것이 국가라고 설명한다. 경제 영역에서 국가 자본주의로의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특징들인 가치법칙, 경쟁 또는 생산 무질서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생산 무질서가 국가적인 계획화 때문에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세계적 차원에서는, 특히 국가 자본주의가 방지할 수 없는 심각한 체계 위기 동안에는, 그만큼 더 강화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국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합리화’이기는커녕, 자본주의의 붕괴 표현에 불과하다. (앞의 책, pp. 458~460) 또한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 국가자본주의로 경향은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와 같은 극도의 전체주의적 형식 속에서든 또는 민주주의 가면 아래 은폐된 형식들 속에서든, 국가기구와 특히 그 집행력이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막강한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국가 손에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국가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일국 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사회주의’, ‘코뮤니즘’ 국가들이나 ‘사회주의로 노정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허구는 이러한 은폐에 모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 자본주의로의 경향에 의해 초래된 변화들은 생산 관계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법률상 소유형식에서 발생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잉여노동 점유 및 국가 자본 축적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행사하는 국가 관료조직은 일종의 계급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계급이 아니라 기능에 있어서 국가의 형태를 띤 낡은 부르주아지에 불과하다. 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진전이 아니라 착취 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은 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러시아에서 반혁명 승리는, 국가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형식들을 적용했고, 이러한 혁명들은 ‘10월 혁명 속행으로서’,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로서 냉소적으로 제시했던 일종의 민족경제 재조직화로서 표현되었다. 이러한 예는 그 후 다른 곳에서도 추구되었다: 중국, 동유럽, 쿠바, 북한, 인도차이나 등등 … 이들 모든 국가에서 코뮤니스트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프롤레타리아적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으며, 역사상 가장 커다란 허위의 무게 아래에 자본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 이 나라들을 위한 그 어떤 ‘비판적’인, 또는 ‘조건부의’ 변호도 전적으로 반혁명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앞의 책, p.462)

 

 

3. 소련을 탐구하다

 

바로 이 시기에 「소련을 탐구하다」1)라는 방대한 소련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우리말로 옮겨져 출간되었다. <사회실천연구소>를 맑스주의 연구자들과 함께 만들면서 우리는 번역 시대를 다시 열자고 했다. 훌륭한 맑스주의 연구논문들을 번역 소개하여 맑스주의 사상이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맑스주의적 실천에 이바지하자는 것이었다. 그 글들은 「실천」지에 계속 실렸다. 이 책을 옮긴 황동하는 「실천」지에 린던의 책을 번역 연재했고, 드디어 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출신 ‘서구 맑스주의자’와 동유럽·소련 저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장기 전망으로 1917년에서 2005년까지 서구 맑스주의 사상을 따르면서, 만일 더 짧은 시간 축을 적용했다면 모호해졌을 연속성과 변화를 확증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90년 동안 이루어진 소련에 관한 탐구를 망라하여 정리한 저작은 처음 있는 작업이며 연구 역사와 구조를 큰 틀에서 인식하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맑스주의자이거나 맑스주의자가 되려는 모든 연구자와 실천 활동가는 자신이 특정한 정치 노선을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망라된 연구에 직접 다가가 꼼꼼하게 검토하는 몫은 저자의 몫이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 몫이다.

 

저자는 특히 서구 자본주의 안정과 활력에 대한 인식을 1917년부터 4단계로 구분하면서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1917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로 일반화된 상품생산이 지배했던 체제 쇠퇴, 하락, 붕괴를 강조하는 인식 유형, 두 번째는 1950년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물 만큼 경제가 성장하고 번영한 시기, 세 번째로 1960년대 말부터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빠졌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시기, 그리고 네 번째로 그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당분간 세계를 계속 지배할 것이라는 인식의 시기이다. 이 책이 2005년까지 연구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2009년부터 진행된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쇠퇴와 파국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아마 우리는 다섯 번째 단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2장 10월 혁명에서 스탈린 시기까지(1917~1929), 3장 스탈린의 ‘대도약’에서 ‘대조국전쟁’까지(1929~1941), 4장 ‘대조국전쟁’에서 동유럽의 구조적 융합까지(1941~1956), 5장 소련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프라하의 봄’ 탄압까지(1956~1968), 6장 ‘프라하의 봄 탄압’에서 페레스트로이카까지(1968~1985), 7장 소련 붕괴와 그 여파(1985년에서 현재까지), 8장 결론을 대신하며, 9장 메타 이론적 주석으로 짜여있다.

 

출판물 수는 28편(1917~1928), 53편(1929~1940), 130편(1941~1956), 63편(1957~1968), 402편(1968~1985), 107편(1986~2004)으로 총 783편이며 이를 시기별로 자본주의, 관료적 집산주의, 타락한 노동자국가 그리고 다른 이론으로 분류하여 연구자별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17년부터 논쟁의 규모는 차츰 증가했고, 1957~1968년 동안에는 얼마간 줄어들었으며, 1968년 뒤 폭발적으로 늘었고, 1980년대 뒤부터는 다시 꽤 줄었다. (마르셀 판 데르 린던 지음, 황동하 옮김, 「서구 마르크스주의, 소련을 탐구하다」, 서해문집, p.373)

 

그는 서론에서 소련에 대한 이론화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요소로 서구에 대한 인식, 소련에 대한 인식, 그리고 맑스주의적 사회분석에 대한 해석을 꼽았는데 그 세 가지 영향도 여러 단계를 거쳤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도표로 정리하고 있다. (앞의 책, p.375)

 

f516fljw9c.jpg

 

그는 결론적으로 소련에 대한 이론 전개가 네 가지의 분명히 다른 단계로 구분된다고 정리한다.

 

1) 1917~1929년은 고전적 단선주의가 지배했다. 혁명 이후 사회가 성공적이든 또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든, 그도 아니면 실패로 끝날 운명이든 사회주의로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던 시기였다.

 

2) 1929~1968년은, 스탈린주의적 전환의 결과로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형태가 소련에서 출현했다고 인식하던 시기였다. 세 가지 중요한 변종이 이 기간에 제시되었다. 즉 ① 국가 자본주의 이론과 ② 타락한 노동자 국가 이론이다. 두 가지 이론 모두 여전히 단선적 도식을 고수했다. 그뿐만 아니라 ③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도 나왔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관료집단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기능했다. 그 이외에 주의 깊게 네 번째 접근을 한 시도(‘이름표 없는 이론들’)가 1940년대 초기에 (페드호사, 힐퍼딩), 그리고 특히 1950년대 초 서독에서 출현했으나, 이것들은 상대적으로 고립되었고 다시 잊혔다.

 

3) 1968~1985년의 시기에는 논쟁이 다시 활기를 띠었고, 네 번째 접근법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세 가지 오래된 접근법은 정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4) 1985년 뒤부터는 논쟁의 강도가 약해졌다. 그런데도 특별히 새로운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수가 많이 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앞의 책, p.376)

 

그러면서도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면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이론과 관료적 집산주의론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먼저 정통 맑스주의 관점에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의 몇 가지 근본적 문제들을 지적하는데 첫째, 관료적 현상의 일시적 본질에 대한 의문. 둘째, 생산 영역과 분배 영역 구분이 맑스와 모순되는 점. 셋째, 분배와 관련된 기생적 기능을 관료 것이라고 봄으로써 관료가 생산 영역에 뿌리를 둘 수 있음을 부인했다는 점. 넷째,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의 분리 모순을 들고 있다.

 

그는 「노동자 국가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정통에 어긋나고 부분적으로는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 짓는다. (앞의 책, pp.382~385) 이어서 소련을 지배계급이 있는 새로운 사회형태로 보는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에 대해 그는 첫째, 이론 전체가 맑스 틀에 맞지 않는다는 점, 즉 자본주의 뒤에 다른 추가적이고 온전한 역사적 단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맑스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둘째, 관료계급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와 관련하여 논자들이 서로 모순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음을 들었고, 셋째, 이 이론이 옳다면 권력을 잡기 전에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지배계급이 출현했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 때문에 맑스의 정설과 일치할 수 없다고 본다. (앞의 책, pp. 385~387) 또한, 저자는 1968년 이후 ‘이름표 없는’ 이론의 급속한 확산과 정교화가 옛 이론들의 강점과 약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아닐지라도, 소련이 독특한 생산양식을 가진다는 점을 부인했던 ‘네 번째 경향’의 출현은 이해할만하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 1985년 이후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며, 특히 소련 붕괴 이후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이 책 37장 소련 붕괴와 그 여파(1985년에서 현재까지)에서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을 제시한 몇몇 그룹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우선 <혁명당 동맹(LRP)>의 이론가인 월터 다음을 들 수 있는데, 그는 1990년 그의 책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이행에 대한 새로운 시대 구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트로츠키가 소련의 전개 과정을 분석했던 것처럼 소련이 발전했지만, 전환점이 된 1936년부터 몇 년 동안 자본주의 복원에서 정점에 다다른 반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국가화된 자본주의’라고 불렀으며, 경쟁을 자본주의 본질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추진력을 축적 노동, 자본과 노동 사이의 투쟁, 근본적으로는 임금체계를 통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로 규정했다. (앞의 책, pp. 320~322)

 

두 번째 영국의 반-볼셰비키 코뮤니스트 프로젝트에서 활동한 페르난데스는 그의 책 「소련의 자본주의와 계급투쟁」(1997)에서 자본주의 세 가지 결정적 특징(즉, 상품과 임노동과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 생각한 것이 모두 소련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이 책 요약은 「소련은 무엇이었나」(아우프헤벤 지금, 오세철 옮김, 빛나는 전망)의 부록에 실려 있다. 219~233쪽을 볼 것)

 

세 번째는 <아우프헤벤> 그룹은 자본주의를 사적 소유와 ‘시장의 무정부 상태’를 기초로 한 이윤 추구체계로 보는 정통 맑스주의의 진부한 해석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본질이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이라고 보았다. 소련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소련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이 그룹은 “틱틴을 따를 것을, 그리고 소련을 이행기 사회구성체로 여길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보르디가와 이탈리아 좌파의 통찰을 따르는 우리는 “소련을 자본주의로부터 이행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이행기에 있는 사회구성체로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말해 코뮤니스트 좌파의 국가 자본주의론과 차별성을 보인다. (더 자세한 것은 위에 언급한 책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볼 것)

 

7장 결론에서 저자는 “비록 소련이 초기에 광범위한 공업화 방법과 경제외적 강제를 사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소련은 비효율성이 늘어나고 집중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구화하는’ 세계 자본주의와 경쟁에서 경제적·군사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제성장 모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사상 경향에서 차츰 지배적으로 되었다.”(앞의 책, p.369)고 결론짓는다.

 

「타락한 노동자국가 이론」과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이 정통 맑스주의 원칙에서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저자의 평가와 국가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르다. 그의 평가를 점검해 보자. 첫 번째 국가 자본주의 이론가들이 (국가) 자본주의 본질을 해석하는데 네 가지 관점을 지녔다고 보았다. ① 노동계급의 존재(제임스, 매틱, 레오), 또는 잉여가치 생산(위럴), 생산수단의 임금노동자 착취(홀룸베리), ② 이윤을 실현하고 시장계약을 통해 그들 사이 재화를 교환하려고 시도하는 개별 기업 사이의 분리(보르디가, 베틀랭, 샤토파디야), ③ 임금이 최소화되어 있고, 잉여가치가 투자와 비생산적 소비를 위해 사용될 경우(그란디소), ④ 이윤 극대화를 통해 유발된 자본 사이의 경쟁(클리프)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주의 본질을 임노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부분 이론이 마르크스 일면만을 강조했다고 해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맑스가 보기에, 몇몇 ‘요소’를 구성요소로 하나의 통합체를 구성한다. 이때 임금노동은 몇몇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만일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언급된 저자들은 맑스의 의미에서, 즉 체제에 내재하는 논리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생기는 소련에서 기업경쟁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고, 따라서 소련 국가 자본주의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 어쨌든 임노동은 「자본론」 제1권에서 다루어졌지만, 경쟁은 「자본론」 제3권에서 폭넓게 다루어졌다.”(앞의 책, p.380)

 

그러나 일부 저자가 임노동을 가장 중요한 유일 조건으로 보았다고 해서 국가 자본주의 이론 전체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그의 결론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1985년 이후 제기된 국가 자본주의 이론(다음, 페르난데스, 아우프헤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 문제를 지배계급 존재 문제로 본다. 몇몇 저자들이 이와 관련해서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사적 자본가 존재만을 부인했지만, 대다수 저자는 부르주아지가 러시아 자본주의를 지배했다는 것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맑스가 자본가 계급이 자본주의를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한 것과 모순된다는 의미이다. 다만 클리프와 베틀랭만이 소련에서 부르주아지 존재를 상정했고 경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어느 한 가지 이론도 사실과 일치하면서 정통 맑스주의에 부합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라고 결론짓는다.

 

위에 언급한 이론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저자는 열 한가지의 잠정적 관점을 확인하고 있다.

 

① 볼셰비키 체제와 나중에 스탈린 체제는 근대화 독재 정권을 만들어냈다.

② 소련은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유사점을 나타냈다.

③ 소련 사회는 ‘잡종’ 사회구성체, ‘비논리적’ 현상, 인간 역사 도중에 있는 막다른 길이었다.

④ 볼셰비키주의 그리고/또는 스탈린주의는 역사적으로 제한된, 일시적 현상이었다.

⑤ 소련 사회는 계급 사회와 무계급 사회 사이의 이행기 단계의 한 예가 되었다.

⑥ 스탈린주의와 파시즘 또는 국가 사회주의는 같은 사회형태의 두 가지 변종이다.

⑦ 소련은 정치에 대한 경제의 종속 또는 완전히 자율권을 획득한 국가가 되었다.

⑧ 지배 엘리트 권력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분리에 기반을 두었다.

⑨ 소련에서 노동자는 ‘자유로운 임금노동자’가 아니었다.

⑩ 소련이 오래 존속하면 할수록 비효율성이 더욱 증가하거나, 생산력과 생산 관계 모순이 더욱 커졌다.

⑪ 소련의 역동성은 서구와 경쟁하면서 만들어졌다. (앞의 책, pp. 388~390)

 

저자는 서구 맑스주의가 탐구한 소련 연구의 역사를 검토한 후 내린 열한 가지 잠정 결론에서 명시적으로 소련이 (국가) 자본주의인지, 타락한 노동자국가인지 관료적 집산주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회구성체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국가) 자본주의 이론에서 본 소련 사회분석과 상당 부분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917년부터 지금까지의 소련에 관한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소개한 최초의 연구 성과로서 소련 연구의 지침서적이자 사전이라고 볼 수 있기에 주요 논쟁을 자세하고 깊게 다루지 않았고 각각의 연구에 대한 접근을 역사를 공부하는 맑스주의자 몫으로 남겨 놓았다.

 

 

4.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는 위기와 모순을 보면서 100년 만에 제대로 된 세계혁명의 가능성과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을 위해 계급투쟁의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코뮤니즘에 대한 맑스주의적 접근과 이해에 무지하거나 왜곡된 주관주의적 교조와 자의적 해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스탈린주의 망령에 갇혀 반혁명과 파시즘을 방어하는 또 다른 파시스트의 모습을 본다. 코뮤니스트와 노동계급의 투쟁 역사와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성과를 받아드리면서도 스탈린 체제 이후 반혁명 역사에 대한 반성과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대한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

 

소련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과학적이고 명쾌한 분석 없이 세계혁명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 좌파를 포함한 맑스주의자들이 소련을 (국가) 자본주의로 분석한 입장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자기 해방을 향한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 강령과 세부적 실천계획을 세워야 한다. 소련을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볼 것인가? 국가자본주의로 볼 것인가의 토론과 논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1917년부터 1989년까지의 소련 역사 속에서 진행된 주체적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할 과제이다.

 

<주>

1) 마르셀 판 데르 린던 지음, 황동하 옮김, 「서구 마르크스주의, 소련을 탐구하다」, 서해문집,

 

국제코뮤니스트전망|오세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