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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노동자 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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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 15일, 두 명의 프롤레타리아 지도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향년 47세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구스타프 노스케(Gustav Noske)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1918년 11월, 독일 부르주아지는 노동자평의회를 해체하고 노동자와 병사의 투쟁을 피로 물든 진흙발로 짓밟았다. 1918년 12월,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구성원들이 독일 코뮤니스트당을 창설했다. 블러드하운드(집요한 추적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노동자 탄압 시기, 유럽 심장부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 룩셈부르크는 적기(Red Flag)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는데,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동지들에 의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범죄자들이 군중들을 설득하여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가두고 베를린 벽보에 포스터에 그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벽보의 주제는 명백했다:

 

  “평화, 일자리, 빵을 원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결국, 그들의 은신처는 발각되었다. 1919년 1월 15일 밤, 베를린 부유한 빌머스도르프(Wilmeersdorfin) 거리의 무장한 부르주아 자경단 위원회 구성원 5명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납치했다. 범죄자들은 인질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기병 수비대 소총 사단이 최근 새 본부로 삼은 호화스러운 에덴 호텔(Eden Hotel)로 데려갔다. 범죄자들은 그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재판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들은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는 와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으나, 구타당한 뒤 총살되었다. 그들은 룩셈부르크 또한 총으로 구타하고 머리에 총을 쏜 다음 수로에 시체를 버렸다. 부르주아 언론은 리프크네히트가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으며, 룩셈부르크는 폭도 중 한명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썼다. 노스케(Noske)는 프롤레타리아트 지도자 암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무죄방면에 사적으로 사인했다. 기병대 사단의 우두머리로 살해를 명령한 발데마르 파브스트(Waldemar Pabst)는 후에 나치 정권, 독일연방공화국에 봉사했다.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독일혁명을 억압한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같은 혁명가의 암살은 노동 운동과 세계 혁명의 진전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가했다. 독일혁명은 선구자들과 사상가들을 잃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무척 중대했고, 고통스러웠다. 한 편에서는 독일 부르주아지가 러시아혁명의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써먹었다. 다른 한 편에서 독일 코뮤니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 사체로부터 탯줄을 끊는데 벌벌 떨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 정당 건설을 연기했다. 이는 모두 독일혁명 패배로 길을 닦는 것이었다. 이 패배는, 또한 세계 혁명의 패배로 길을 열었다.

 

***      ***     ***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의 이름과 영원히 연결될만한 ‘주장 글’이나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그는 쓰지 않았다.(심지어 노동가치설에 대해 의심하기까지 했다.)(1) 그는 능숙한 정치가도 아니었다. 전쟁 전에는 맑스의 동료이자 독일사회민주당(SPD) 공동창립자의 아들로 유명했는데(2) 전쟁 후 그는 사회민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매우 꺼렸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유명한 자유주의 역사학자 세바스찬 하프너(Sebastian Haffner)는 그를 "독일이 배출한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그중 일부는 다음의 단편에서 읽을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년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 주제와 대상, 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리프크네히트가 여기서 확인하기를 바라는 것은 트로츠키가 몇 년 후 "적절한 순간"으로, 특히 실패한 독일 혁명과 관련하여, 1917년 10월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론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다.(3)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는 이 문제를 아우겐블릭(Augenblick : 순간) 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용어로 표현했다. 즉, 계급의식이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객관적인 사건 과정에 주관적으로 개입하여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교란할 수 있는 순간 또는 눈 깜박할 사이로 표현했다. 종종 이것은 조건의 "성숙"으로 논의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는 거의 엉망진창으로 죽었다.”고 폴 매틱은 나중에 회상했다. 사실, 그들의 마지막 글에는 이미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것처럼, 불길한 예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날,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9년 3월

월트 아워(Walt Auerbach)

 

<주>
    (1)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22년 사후에 출판된 그의 「맑스의 비판의 주요 특징(Grundzüge einer Marxkritik)」을 참조 바란다.

(2)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와 룩셈부르크는 때때로 리프크네히트가 당에서 "태어났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1914년 8월 이전에 그는 독일사회민주당(SPD)의 청소년 부문을 보강하기 위해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 채권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한 그의 결정은 그를 반대파의 유일한 주창자로 만들었고, 결국 1915년에 재판을 받고 1918년 11월까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3) 어쨌든, 이것은 보르디가가 가장 좋아하는 트로츠키 팸플릿이었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을 제외하고) “적절한 순간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반란에 가장 유리한 조건은 분명히 힘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최대 변화가 일어났을 때이다. 우리는 물론 의식 영역에서의 힘의 관계, 즉 정치적 상부 구조의 영역에서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으며, 혁명적인 시대 전체에 걸쳐 다소 변하지 않은 것으로 가정 할 수 있는 경제 토대의 영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와 같은 경제 토대에서, 사회의 계급 분열과 함께, 힘의 관계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데, 그들의 환상이 깨지고 정치적 경험이 커지는 정도, 국가 권력에서 중간 계급과 집단의 신뢰가 깨지는 정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자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정도에 따라 변화한다. 혁명 기간 이러한 모든 과정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모든 전술상의 기술은 이것으로 이루어진다. : 여러 사정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 레온 트로츠키. 「10월의 교훈」. 나오미 알렌(Naomi Allen) 번역. 「좌익반대파의 도전, 1923-1925」. (Pathfinder Press, New York, NY : 1975).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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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 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 용인하지도 않는다. 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적, 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 등등. 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 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 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 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통찰력, 의지, 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 정도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 도덕적, 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 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교육을 비교해보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 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 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대응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 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 즉 혁명적 과업이다. 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이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 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 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 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 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 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 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 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들이 단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 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 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범위에서] 국제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 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 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년 4월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주>

 

  (1) 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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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부끄럽다. 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 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1920년 10월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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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1871년 3월 5일 ~ 1919년 1월 15일)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 야만의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노동자 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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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 15일 - 추운 겨울밤의 학살

     

     

      따뜻하고 포근한 안개에 둘러싸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의식세계와는 달리 1919년 1월 15일의 밤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길이 얼음으로 꽁꽁 덮여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군용트럭의 화물칸에 거칠게 내팽개쳐졌다. 거친 폭음을 내며 어둠을 향해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 하나가 트럭 위에 올라탔다. 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그것을 통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룩셈부르크의 기력은 쇠잔해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트럭에서 세찬 삭풍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중위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잔인한 눈길을 룩셈부르크에게 돌려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허술하게 만들어진 우리에서 피에 굶주린 짐승이 피를 찾아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듯이 중위는 피스톨의 방아쇠를 끌어당겼다.

     

      촛불은 꺼졌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산산이 부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운하와 동물원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엔진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옆의 운하에 멈춰서 있는 두세 명의 병사의 그림자가 물 위에 떠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가서 급히 생각이 난 듯 차는 급정거 하였다. 병사들의 그림자가 한쪽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중년 여성의 그림자를 귀찮은 듯 다리 위에서 운하로 집어 던졌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어둠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다. 삽시간에 어둠과 정적만이 감돌았다. 임무를 다했다는 듯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날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과 함께 전해졌다. 그가 선동한 군중의 광폭한 노여움에 의해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시체는 무질서한 혼란의 와중에도 분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독일의 5월은 아름답다. 시인 하이네가 노래하듯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5월, 모든 초목이 싹틀 때’ 그것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재생 시기였다. 진흙 속에 파묻힌 그의 육체가 운하 위로 떠오른 것은 5월 31일이었다. 6월 13일, 로자 룩셈부르크는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가 32명의 희생자와 함께 고이 잠들어 있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스펠데 묘지의 같은 장소에 묻혔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묘지 앞에는 생전에 좋아했던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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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비극의 종말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혁명의 와중에, 반혁명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 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 아니면 반혁명 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순간까지도 룩셈부르크는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은 모자랐습니다. 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는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 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입니다. 대중은 혁명의 최후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입니다. 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 일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래서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입니다." 「로테 파네 1919.1.14」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칼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그 전날 밤 9시경,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는 만하임 가의 은신처에서 체포되어 에덴 호텔로 연행되었다. 바프스트 대위가 두 사람을 심문했는데, 살해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한 명의 수병이 개머리판으로 리프크네히트를 때려 넘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그는 차에 실려 가 틸가르텐 호수 근처에서 끌어 내려져 그곳에서 학살되었다. 시체는 신원불명자로 취급하였다. 이어 룩셈부르크가 호텔에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의 최후 역시 비참하게 마감되었다. 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 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 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되었다. 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한때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 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했었던 독일사회민주당(SPD)이었지만, 배신과 학살에 의해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 결국 그 독일사회민주당이 그곳에서 파시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하게 된 것이다. 그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독일사회민주당은 과거 자기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에 의해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 되는 운명을 겪었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독일사회민주당과 코뮤니스트당(KPD), 노동조합에 전가했고, 독일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코뮤니스트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 결국 세 곳 모두 결사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야 만다. 결국, 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룩셈부르크의 묘지는 해방되었고, 아직도 그의 저작과 사상, 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 중이며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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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동안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인류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재앙에 직면하여, 예전의 노동자당에 의한 이러한 배반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 정신의 본보기, 지칠 줄 모르는 결연함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론적-정치적 분석을 이뤄내는 역량의 한 본보기였다.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전개된 야만성과 당의 배반은 혁명가들에게 진정한 충격이었고, 그들 중의 일부는 침울함에 빠졌다. 독일의 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거나 추방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도 전쟁 기간 대부분을 감옥에 있었다. 4년 4개월간의 전쟁 기간 총 3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결연함을 굴복시키고 침묵하게 하려는 것이 수감의 의도였다면, 수감된 후 그의 반응은 이론이라는 무기로 반격하는 것이었다.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책, 「자본의 축적」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대답으로 「반비판」을 썼다. 전쟁발발 전 독일사회민주당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 수감 중에 그는 당 학교 교사로서 사용했던 초기의 그 강의 자료로 정치경제학입문을 썼다. 그리고 그는 문학과 문화 문제들도 다루었는데, 러시아 작가 코롤렌코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그 서문을 작성했기도 했다. 그가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 '러시아혁명에 대하여'를 작성하고 러시아에서의 혁명에서 행해진 실수들에 대한 비판을 위한 최초의 몇몇 중요 점들을 발전시킨 것도 수감 중인 상태에서였다.

     

      물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감옥에 갇힌 상태로 고통받았지만, 이것은 결코 그의 의지를 꺾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없었다. 그가 수감 중에 쓴 기록들이나 서신들을 읽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가 감옥 속에서 다룬 화제들의 다양성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일련의 편지들은 길들여질 수 없는 창조적 정신을 증언한다. “나는 종종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책 읽기와 글쓰기로만 하루를 보냅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산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전망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스로 가장 결연한 투쟁에 투신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깊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용감한 정신을 유지했다. 그가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인 노력과 다른 열정들(보기를 들어 그림 그리기나 식물학)을 추구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지원망을 통해서였다. 위장이 약해서 특별 식이요법이 필요했던 그는 감옥 밖으로부터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의 저작들은 반복적으로 감옥 밖으로 밀반출되었고, 이는 때때로 간수들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수감 중에 룩셈부르크는 많은 동지들과 서신 교류를 했고, 그들에게 충고를 주고 감옥에 갇혀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 감옥을 둘러싼 어떤 벽도 그를 침묵시키고 그가 개인들에게, 동지들에게 그리고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그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만큼 두껍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감옥 밖에서도 '들릴 수'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 약 천 명의 노동자들(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이 감옥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집까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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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자모치(폴란드)에서 유대인 가정의 다섯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1871년은 파리코뮨의 해였고, 제1 인터내셔널 내에서 바쿠닌의 음모에 대항한 투쟁이 있었던 때였다. 17살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에서의 억압 때문에 스위스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취리히대학에서 몇몇 과목들(식물학, 수학, 경제학, 역사 및 법학 등등)을 수학했다. 1897년 그는 '폴란드의 산업발전'에 관한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1890년대에 이미 그는 폴란드 출신의 다른 동지들과 함께 제2 인터내셔널의 오래된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발달을 감지할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의 저항에 맞서, 폴란드의 민족자결권이 더 이상 의제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용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입장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지배적인 입장과 특히 레닌의 입장과 마찰을 일으켰다.

     

      1898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로 이주하여 독일사회민주당에 참여했다. 독일사회민주당 내부에 하나의 경향이 출현했는데 그 주요 대표자가 베른슈타인이었다. 그 경향은 자본주의가 다소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사실상 베른슈타인은 운동의 목표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룩셈부르크는 그의 답변, 「혁명이냐 개량이냐」(1899)를 썼다. 그 시기 동안에 이미 그는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앞장섰다.

     

      1903년 그의 글 「맑스주의의 침체와 진전」에서 그는 맑스와 엥겔스의 죽음 이후 맑스주의 운동에서의 침체를 비탄하며 새로운 이론적 노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맑스주의 자체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옥중에서 쓴 「반비판」의 끝머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기를, “맑스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인식을 얻으려고 애쓰는 혁명적인 세계관이다. 이는 한번 유용했던 표식에 형식적으로 되는 것을 철저히 혐오하며, 자기비판이라는 정신적인 격렬한 울림에서, 그리고 정신적인 천둥·번개에서 생명력을 가장 잘 유지한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 뒤이어 러시아에서 최초로 대대적 파업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20세기 계급투쟁의 새로운 원동력을 최초로 발견한 이들 중의 하나였는데, 이제는 노동자들의 주도성이 특징적인 요소가 되고 계급투쟁은 노동조합이나 당 기구에 의해 '계획' 될 수가 없다. 비록 룩셈부르크가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을 아직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그는 이러한 대중 활동을 강조했다. 계급투쟁의 이러한 새로운 원동력을 노동조합과 증가하는 독일사회민주당 내부 인자들은 격렬한 투쟁으로 꺾어버리려 했다. 노동조합 기구와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당 내부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한 논쟁을 금지했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대적 파업에 관한 책 출판 후 “계급 증오를 조장했다”는 선고를 받고 2개월 동안 수감되어야만 했다. 독일사회민주당의 이전의 지도자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황”으로서 알려진, 칼 카우츠키는 룩셈부르크의 과격한 노선에 점점 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 시기 동안 룩셈부르크를 “평화롭고”, “조화를 사랑하는”독일 사회민주당 안에 곤란을 유발하는 “유대인”, “외국인”, 그리고 “노처녀”라고 비방하는 캠페인과 중상모략이 강화되었다.

     

      1907년 점증하는 전쟁위협에 대응하여 조직된 제2 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그리고 마르코프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본주의 계급지배의 철폐를 촉진한다”는 공통된 지향을 위해 투쟁했다. 1912년 「자본의 축적」에서 룩셈부르크는 맑스의 저작들 속에 존재하는 한계와 모순들을 용감하게 지목했었다. 그의 책은 아직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그 외부에 존재하는 시장들의 역할과 군국주의의 특수한 기능을 파악하는데 기본을 제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쓴 그 책은 자본주의의 기본모순들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통찰을 제공한다.

     

     

      1914년 8월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배반이 있자마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유니우스 팸플릿」은 그래서 1890년대 이래 새로운 조건들을 이해하려는 그의 투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을 설명하려는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도전을 설명하려는 그의 투쟁과 직접적인 연장선 속에 놓여있다. 1917년 여전히 감옥 속에 있으면서 그는 러시아에서 그때 막 시작된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의 분석을 제공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8년 11월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지배계급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더 두려워했다. 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은 노동자계급에 반대한 그 당의 투쟁의 표적을 룩셈부르크로 삼았다. 1918년 12월 베를린 노동자평의회에 그와 독일 노동자계급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칼 리프크네히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는데, 핑계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918년 12월 독일코뮤니스트당(KPD) 창립대회에서 강령에 대해 행한 연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혁명이 테러로 복귀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 전체의 모든 에너지와 의식을 동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교활한 적에 대항한 재빠르고 쉬운 승리라는 당면(當面)주의적 환상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인 극소수 중의 하나였다. 결국, 그를 겨냥한 중상 비방 캠페인은 1919년 1월 그 극에 달했다. 1919년 1월 중엽 소위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진압되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된 뒤 로자 룩셈부르크도 암살되었다. 지배계급은 당시 가장 용감하고 통찰력 있는 혁명가 중 하나를 일소해버리는 데 마침내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동지들, 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 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 합니다 : 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 사실로 만들며, 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독일코뮤니스트당 (KPD) 창립대회,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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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과학기술에 몰두하며,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과학기술에 몰두하며,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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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기술혁신이 지속해서 진전되고 있는 반면에 이른바 ‘사회적·경제적 진보’는 후퇴하고 있다. 시장의 세계화는 생산적인 ‘발전’을 잠시 겪은 후, 전 세계 수억 명 프롤레타리아 노동과 생활 조건의 악화를 가져왔고, 이제는 실업자 또는 불완전 취업자의 꾸준한 증가를 가져왔다. 예전의 조립 설비에서 노동 분업은 자동차부터 텔레비전, 가전제품, 기계, 화학, 제약, 섬유, 제조업, 식품 산업까지 생산 모든 영역을 침범해 온 마이크로 전자공학, 통신,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점진적인 노동자 감소를 유도하며, 모델과 제품의 지속적인 다양화와 적기생산시스템(just-in-time)으로 재고를 줄여 자본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수십 년 전, 컴퓨터 기술(통합회로기술부터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에 투자된 거액의 자본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 공장들과 하이테크 분야 전체에 혁명을 일으켰다. 따라서 미국의 평균이윤율은 기술혁신이 확산함에 따라 다른 산업 부문에서 발생한 ‘이윤율 하락’을 초기에는 상쇄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컴퓨터 기술 적용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 이는 먼저 제조업의 고용을 감소시켰고, 현재는 서비스업에 대한 고용을 줄였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에서 7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생산되는 상품 양은 매년 증가해 결국 시장이 왜곡되고, 어떤 경우에는 남겨진 노동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더한 노동 강도로 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기술발전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 마르크스는 기술발전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자본론」 3권, 이윤율 하락의 법칙). 그 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고정자본인 생산수단과 가변자본인 노동력과의 관계)이 고도화하여 결국 이윤율(잉여가치와 투자된 총자본의 비율)은 감소한다. 즉, 더 발전된 기술이 생산 과정에 적용되어 노동생산성은 향상하지만, 동시에 노동생산성 향상은 노동자의 노동일 가운데 자본가가 착취하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고, 임금으로 보상받는 부분은 줄인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 한계(어떤 경우에도 고용된 노동자 수에 항상 좌우된다)에 도달할 때까지만 자본에 이익을 허락한다. 최종적으로 상품은 반드시 판매되어야 한다. 만약 상품 판매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생산은 주로 산 노동의 이용 축소를 목표로 하는 경쟁 전략을 따르기 때문에 ‘임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게 된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임금 삭감, 직·간접적인 세금 인상, 공공지출(연금, 교육, 건강)의 삭감이라는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충분하다. 막을 수 없는 ‘탄압’이 전 세계 수억 명의 남녀를 목 졸라 죽이는 사슬을 더욱 조인다. 자본가계급은 자동화 기계와 기술로 달성되는 생산성 향상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상품 판매는 감소한다. 그리고 산 노동의 사용이 줄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심화한다. 로봇은 임금을 받지 않고(로봇은 일정한 기간 비용으로 변할 기계들이다) 상품을 사지 않는 결함을 갖고 있다. 로봇은 ‘소비자’가 아니다. 로봇의 생산능력은 지급 능력이 있는 구매자를 찾을 수 없는 많은 상품을 만든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좋은 자본주의’가 부를 창출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는 소수 사람만이 누릴 수 있기에 ‘나쁜 자본주의’가 된다. 세상에는 유용한 상품에 대해 많고 긴급한 요구가 있지만, 수억 명의 남녀는 그런 상품을 살 수 없다. 금융시스템을 통한 신용은 상품에 대한 부분적인 수요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신용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훨씬 더 심각하고 깊은 위기에 빠뜨리는 데 도움을 주고, 공적 부채와 사적 부채를 증가시킨다. 이는 일개 국가적 차원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비용’의 감소로 국제적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다.

 

자동화와 로봇

 

로봇은 많은 노동자보다 상품을 더 빨리 생산하지만, 상품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상품 판매가격에 포함하는 잉여가치(이익)가 실현되는 것을 막는다. 심지어 상품 가격이 내려도 살 소비자는 없다. 로봇과 소프트웨어 때문에 ‘과잉’ 노동자가 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거의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만 명 이상이 더 증가할 것이다. 자동화는 이미 슈퍼마켓, 콜센터,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에 침투했으며, 컴퓨터가 트럭과 버스를 운전하고, 로봇이 음식을 준비하고, 행정 사무소를 장악한다. 모든 곳에서 직원들의 대폭적인 감원이 일어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컴퓨터 네트워크 설비인력 업무 절반도 정보기술과 전자 분야에서 혁신적 자동화된 기술로 인해 필요가 없어진다. 산업 부문과 상업 부문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증가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정적인 측면인 동시에 이윤율이 감소함에 따라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즉,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 발달과 지금 존재하는 사유재산제에 기초한 생산 관계 모순은 더욱 악화한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을 ‘합리화’한다.

 

‘산업혁명 4.0’은 자동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완성하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 오류와 시간 낭비는 ‘부가가치’의 극대화를 목표로 해 최소화될 것이다. 수치제어기계는 희미해지는 기억이 된다. 유연한 자동화를 통해 모델과 제품이 조립 설비에서 직접 변경되며, 시장의 수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 자원의 조직적 ‘합리화’는 낭비와 재고를 없앤다. 세계경제포럼의 연구는 로봇과 지능형 프로그램의 발전이 모든 직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업무 기술 보고서 2.0’에 따르면, 2025년까지 영국 노동자의 35%, 미국 노동자의 47%, OECD 국가 노동자의 평균 57%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산업 부문에서 로봇은 약 6천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현재 일본 자동차 회사의 조립 설비에서 사용되고 있는 로봇들은 유지·보수 없이 최소 30일 동안 일한다. 로봇 팔은 생산 설비에 배치될 것이다.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자동운영은 감독할 사람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로봇 비용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개인 서비스 로봇은 미국에서 25,000달러 이하의 비용이 든다. 중국과 일본에서 가정용 청소 로봇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산업 부문에서 로봇 비용은 수십만 달러도 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노동 ‘창조’는 50만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컴퓨터, 3D 프린터, 전자두뇌를 장착한 수치제어기계는 어디서나 판매되고 있다. 또한, 농업에서는 자동화 씨앗 파종기와 추수기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그것들은 인공위성의 안내를 받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커피머신, 식품 판매용 자판기, 책과 기기, 은행카드를 이용한 자동 수납 서비스 등이 상업 활동에서 확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중국의 ’자본가적 사회주의‘가 자동화와 로봇 기술에 강력한 투자를 하며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산업용 로봇, 컴퓨터 그리고 다른 복잡한 자동조정장치 기계들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사용되는 로봇의 수에 따라 한국, 일본, 독일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살아 있는 기계’인 노동자는 ‘그들에서 독립된 죽은 기계’로 대체되고, 노동자는 인간 부품으로 합쳐진다 (마르크스, 「자본론」).

 

멈출 수 없는 기술 진보

 

마이크로칩은 2년마다 두 배씩 속도가 향상한다. 소프트웨어, 컴퓨터, 로봇은 인공지능을 향상하고 있다. 수만 명의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2017년 1월)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 ‘임금’ 노동 50%가 자동화할 것이라고 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최근 분석은 아시아(중국, 일본, 한국)에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해, 앞에서 말한 인력 감축을 확인시켜 준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이러한 ‘지진’을 주도할 것이며, 이탈리아 산업에서도 로봇 설치가 매년 수천 건씩 진행된다. 고정자본(기계, 에너지, 원자재, 반제품)이 증가하고 있고, 가변자본은 비례적으로 감소하며,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 제품의 각 단위는 잉여가치를 점점 더 적게 포함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한다.

 

많은 유·무형 직업에서 형태와 내용은 점점 더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지고, 자본주의 손아귀와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적인 관계에서 기술발전은 정신적으로는 소외 과정을 심화시키며 노동력이라는 상품 구매가 일어나는 상황과 조건 모두를 악화시킨다. 자본이 노동력 착취로부터 잉여가치를 얻지 못하면 실업 예비군은 팽창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동화는 생산 과정에 남겨진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준다. 우리는 국가 경제 경쟁력을 해치는 노동 관련 규제의 ‘과도한 경직성’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노동자는 더 낮은 가격에 자신을 팔려는 생각이 있는 실업 예비군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협박을 받게 될 것이다.

 

막을 수 없는 과정

 

마이크로 전자기술 때문에 보다 커진 생산 유연성은 포드주의, 테일러주의, 토요타주의 같은 상품 생산에 대한 관리 시스템들보다 시간과 품질을 더 엄격히 통제할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응용 분야(3차원 프린팅 기술, 나노 기술, 지식 기술)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현재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시스템을 폭파할 준비가 된 폭탄이 되어가고 있다. 기계와 공장 그리고 시스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지속적인 생산 주기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가 되었다.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현대화는 시장의 공급과잉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확실히 인류 고통과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기술혁신과 자동화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고 있는데, 기술혁신은 자본의 지휘 아래에서 그들의 조직과 생산 주기를 매우 유연하게 분리할 수 있다. 상품 생산과 이동은 최대 속도까지 빨라져 종종 지속 가능하지 않고 고갈되는 작업 이동과 리듬을 요구한다. 그리고 ‘부가가치’는 감소한다. 통신, 생명공학, 제약, 항공, 민간용 드론 뿐만 아니라 소위 ‘성숙한 산업 분야’(철강, 운송 수단, 기계 도구, 식품 가공 등의 산업)에서도 ‘부가가치’는 감소한다. ‘부가가치’의 상승을 목표로 새로운 소재와 대체에너지가 도입된다. 그러나 평균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상품 가치는 불가피하게 감소한다! 그 결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윤을 되살리려는 자본의 필사적인 노력은 심지어 아동 노동의 착취로까지 확대된다. 1억 6천 5백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전 세계 자본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상품 생산이 로봇에 의존한다면 자본주의는 사멸할 것이다. 실제로, 잉여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본주의 삶과 죽음의 문제인 이익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잉여노동과 그에 따른 잉여가치를 만드는 노동자가 더 충분하지 않다면 누가 그 상품을 ‘구매’하겠는가? 노동자들은 영구적으로 ‘과잉’이 되고, 다시는 자본에 의해 그 자신의 재생산이나 심지어 미래를 위한 ‘노동력의 회복’으로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된 생산성 향상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많은 노동력을 불필요하게 했다. 또한, 개별 자본은 생산 과정의 기계화 및 재편성을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에 모든 것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임금 억제와 삭감, 노동 강도의 증가, 여전히 고용되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초과 근무 등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통해 더 큰 경쟁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 자본은 소위 노동시장에서 넘쳐나는 노동자들의 공급을 흡수하기 위한 생산적 투자 기회를 더는 찾지 못한다. 노동자의 계급적 활동이 진행 중인 곳에서는 자본이 임금 노동의 수요를 결정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 여전히 노동의 역동성이라는 ‘합리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는 자본주의 위기와 생산과 유통 방식의 구조조정에 직면해서 붕괴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무역에서도 점점 더 치열해지는 국가 사이의 경쟁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자연적이고 역사적으로 발전된 필수적 필요’는 최근 수십 년 동안 확대하여 왔지만, 자본주의는 이제 세계 각지의 수억 명의 사람에게 필수적 필요를 부정하게 되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향상되었지만, 노동자 수는 계속 감소하여 노동력에서 추출할 수 있는 잉여가치는 감소할 것이다.

 

잉여가치 희소성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기계는 항상 "마모와 찢김을 통해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사회적 노동만이 교환가치 생산에서 유일하게 생산적 요소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로봇 활동은 이러한 목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 및 정보통신과 같은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엄청난 자본의 중앙 집중화가 이루어지며, 금융 자본은 노동자 축소를 대가로 고도의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이윤율 하락은 불가피하게 되고, 따라서 기생적 금융 자본 일부는 주식시장의 게임으로 눈을 돌린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으로 향한 자금 흐름이 상품 생산부문으로 향하던 자금 흐름을 대신하며, 축적률이 반전하기보다 둔화가 더 분명해졌다. 투자 펀드에 자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하지만 펀드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부문의 잉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펀드에 조달된 자금은 정지되어 있으며, M에서 M´로 변화시켜야 하는 이윤을 만들지 못한다. 생산적 산업에 투자가 안 된 화폐는 무(無)에서 더 많은 화폐를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거의 20억 명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는 이자, 배당, 연금, 지방세, 서비스 직원과 공무원의 임금, 경찰, 군대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잉여가치의 자본화

 

자본주의 성장은 자본축적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상품 생산에서 잉여가치의 지속적인 ‘추출’이 필요하다. 즉, 점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잉여가치의 흐름이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고정자본과 기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가변자본에 대한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고용의 상대적 감소가 동반된다면, 축적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산 노동의 이용과 착취에 따라 추출 가능한 잉여가치의 양은 투하자본의 양을 증가시킬 만큼 충분히 증가하지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 수는 일정 시점까지만 노동생산성 향상과 함께 늘어난다. 게다가, 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자본회전에 걸리는 시간은 감소해야 하고 상품은 판매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본은 상품 유통시간을 줄여서 상품이 오랫동안 창고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윤율

 

기계 사용은 고용 감소와 더불어 이윤율 경향적 감소의 원인이다. 이는 직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로부터 착취하는 잉여가치의 지속적인 증가가 필요하다. 이윤율은 잉여가치를 총자본(공장, 기계, 원자재 같은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와 가변자본인 임금에 대한 투자를 더한 값)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로봇에 대한 투자 증가로 분모가 커지는 동안 발전의 일정 시점에서 분자인 잉여가치가 증가를 멈춘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축적은 멈추고 위기가 시작된다. 자본은 과학을 적용해 생산성 향상을 사회화한 노동력의 생산력 때문이 아닌 고정자본에 속하는 생산력 때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이다. 실제로 육체노동과 지적노동 모두에서 산 노동은 불필요해졌기 때문에 버려지거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현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을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알고리즘 침입으로 흔들리는 데이터 분석, 절차 개발 및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회계사, 변호사, 은행 관계자, 이사, 재무 분석가, 기자 등의 사무직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세계 각지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자본가와 연합한 ‘과학자’들은 상품 비용과 가격 사이의 ‘올바른’ 균형에 관한 가설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가 없다면, 생산과 소비 사이의 ‘중재자’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현재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심지어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시켰다며, 프롤레타리아트 소멸까지도 발명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기술과 자본은 하나이며, 하나가 된 기술과 자본은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모두를 위해 자본주의를 완성하는 ‘유일한 자동 주체(마르크스)’라고 설득한다!

 

새로운 소비?

 

‘전문가’들의 몽롱한 생각은 ‘스마트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쌓여 있는 환상적인 ‘대량 소비의 새로운 물결’을 예측한다. 그들은 엄청난 이익을 꿈꾸며 말한다. “우리는 몇백만 개의 일자리, 즉 소비자를 잃게 될 것이지만, 이것은 진보를 위해 지급해야 할 대가입니다!”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최소한 인류 절반(현재 35억의 인간!)에게 문을 닫은 채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보면서 방황하고 있다. 실업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도 평균 임금의 60% 이하를 받으며 ‘빈곤 노동자’ 수를 늘린다. 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양의 고정자본(기계, 에너지, 원자재, 반제품)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가변적이고 생산적인 자본은 비례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제품 각 단위에 포함된 잉여가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자본은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본주의에서 선에서 악으로 변한 생산성

 

자본주의에서 생산성 향상은 새로운 자본(화폐)이 될 수 있는 상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러나 더는 구매자를 찾지 못하는 상품 더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도 오랜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를 애도한다. 초기에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던 걱정스러운 ‘경제적’ 상황은 디플레이션으로 변했고,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참을 수 없는’ 상태이다. ‘공식과 수학적 모델’은 공개되자마자 엉망이 되며, 모든 것이 예측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현재 상황에서 적용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적용을 시도할 때마다 무너졌던 케인즈식 해결책(양적 완화, 무이자, 재정지출)의 신화처럼, 이제 우리는 모든 위기 근원인 자본의 이윤 저하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제는 경제 회복의 가능성은 없다. 이 시점에 자본주의는 전체 시스템을 폭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뢰들 위에 있다. 이른바 ‘성숙한 산업 분야’(철강 산업, 운송 수단, 기계 공구, 식품 가공 등)와 통신, 생명공학 및 제약, 항공 및 민간 드론 분야 그리고 신소재와 대체 에너지 분야가 지뢰들이다. 오직 하나의 목표는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부가가치는 평균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줄어든다!

 

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들을 굶주리게 하고 지치게 한다." "생산력과 우리 시대 생산 관계 사이 이러한 적대감은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할 압도적인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기 활동은 그것에 이질적인 힘이 되고, 그 힘은 지배당하는 대신 지배한다." 이러한 "사물의 인격화 및 생산 관계 객관화"에서, 사적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는 지구상 모든 생물 종에 대한 완전한 착취와 지배를 실행했다. 그러나 정확히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노동력의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것이 자본 활동이고, 이 활동이 생산에서 ‘무한하게 작은 것’으로 축소되었을 때, 어떠한 관계도 사라진다. 자본은 "사회적 두뇌의 일반적인 생산력인 과학과 능력의 축적을 흡수한다." 그리고 "노동자는 자본이 필요에 따라 조건화되지 않는 정도까지 불필요하게 된다. (중략) 작업과 작업량은 상품 생산의 결정적 원리에서 사라진다." 일은 순수한 추상으로 환원되고, 자본은 가치 기반을 상실한 생산 공정의 감시 아래 최소한으로 일하는 시간을 단축했고, 이제는 모순적이게도 자본은 "어떠한 잉여 생산물도 착취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기술의 현대화

 

결론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1845년)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다른 생산력(기계)을 낳고 현재의 교환수단(화폐)을 확대한다고 썼다. 이런 상황에서 기계와 화폐는 파괴적인 힘이 된다. 기술발전은 자본주의 노동력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산 노동’의 노동시간을 지속해서 감소하게 한다. ‘산 노동’은 자본주의에서 ‘재산의 측정과 원천’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이용 가능한 모든 생산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지구의 모든 거주자 대다수가 빈곤과 야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사회 질서에 반대한다. 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으로 그 자신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인류 미래에 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기본 구조와 기본 범주들(가치, 임노동, 상품과 화폐)을 관찰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 구조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분명한 쇠퇴 징후를 보인다.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범주들은 영원하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생산은 인류 요구가 아닌 자본증식과정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진다. 자본은 잉여가치 추출을 위한 과정의 ‘자동적 주체’가 된다. 자본 대부분은 오로지 자본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력을 발전시킨 후에 허구의 자본이 된다. 그러나 자본은 세계적인 축적을 위해서 인간노동력을 이용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 점점 더 정교한 기술사용으로 일반적인 이윤율의 양적인 감소가 촉발된다. 자본가는 이러한 모순을 노동계급에 항상 적대적인 일시적 처방을 통해서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줄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금융시장이 추구하는 잉여가치의 ‘창조’가 이제는 자본 성장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생산체계에 더는 통합할 수 없는 ‘잉여’ 인구 증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20년 1월 15일

프로메테오(Prometeo)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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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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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쇠퇴기,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자본주의 쇠퇴기,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이후 세계에 관한 대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현 자본주의 개혁 수준이거나 자본주의 체제를 내버려 둔 채 몇 가지 사회주의적? 제도를 도입하려는 제안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으로 코뮤니즘을 주장해왔다. 우리는 코뮤니스트 혁명(세계혁명)을 통하지 않고 사회주의/코뮤니즘을 건설하자는 거짓 대안에 반대한다.

 

아래는 리브콤(libcom.org)에서 발행한 '리버테리안 코뮤니즘'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다. 이 경향은 정치 원칙에서 우리(코뮤니스트 좌파)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당의 역할‘ 문제 등에서 다르다. 이 글은 자본주의 쇠퇴기/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자료로 '새로운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참고할 점이 많아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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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노동자 총회

 

1. 소개

 

우리는 코뮤니즘(공산주의)에 대해 두 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각자의 능력에 따른 원칙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른 원칙’으로의 전환. 둘째, 오늘날 세계에서 코뮤니스트 사회를 향한 현실 운동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후자인 현실 운동에서부터 설명해 나갈 것이다.

 

 

2. 현실 운동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묘사하고, 자본의 필요(이윤과 축적)가 어떻게 노동계급으로서 우리의 필요와 반대되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자본가는 임금, 연금, 일자리를 삭감하고, 노동 시간을 연장하고, 노동 속도를 높이고, 환경을 파괴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노동자를 자본에 대항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임금 삭감이나 과도한 노동에 반대하여 파업을 조직하거나 규칙을 만들 때, 우리가 협력할 때, 직접 행동과 연대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할 때,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 기반을 쌓기 시작한다.

 

협력, 연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코뮤니스트 사회’다.

 

따라서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협력, 상호부조, 직접행동 그리고 끊임없는 저항의 흐름이다.

 

때때로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전후(戰後) 비공인 파업 물결, 1969년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또는 1978년 영국의 불만의 겨울 또는 2010년 이후 그리스에서의 긴축반대 저항과 같은 사회의 불안과 현장 투쟁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동계급을 참여하게 했다.

 

때로는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심지어 혁명적인 사건의 폭발로 귀결되었다. 보기를 들면 1871년 파리, 1917년 러시아, 1919~1920년 이탈리아, 1921년 우크라이나, 1936년 스페인과 1956년 헝가리. 이러한 사건들은 노동계급이 집단행동을 통해 자본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사회를 재조직하려고 했던 운동들이다.

 

 

3.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잘 준비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 단체가 세상에는 널려있다. 그러나 코뮤니즘은 정당 또는 개별 정치인이 존재를 선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수많은 참여와 실험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은 구소련이나 현재의 쿠바, 북한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이들은 단지 국가라는 하나의 자본가가 존재하는, 본질에서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리고 집권당이 ‘공산당’이라고 자칭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 중의 하나를 감시한다는 중국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양한 혁명적인 사건(이전에 언급한 사건의 일부)에서 노동계급의 구성원들은 코뮤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계급이익을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실질적인 경험뿐만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한 원칙을 수립했다.

 

자본가 없는 사회

 

개인이나 국가의 수중에 있는 생산수단(토지, 공장, 사무실 등등)의 소유 또는 통제 대신에, 코뮤니스트 사회는 그 수단의 공동소유 및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생산 대신에, 코뮤니즘은 안전한 환경을 위한 요구를 포함하여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을 의미한다.

 

이미 오늘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모든 서비스를 하는 것은 우리 노동자이다. 우리는 도로를 건설하고, 집을 짓고, 열차를 운행하고, 환자를 돌보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음식을 만들고, 제품을 설계하고, 옷을 만들고, 다음 세대를 가르친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종종 우리를 돕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작업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예는 풍부하다. 그리고 사실 자본가들이 위계적으로 조직한 작업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최근의 한 예로 국가 산업의 3분의 1이 노동자 통제 아래 있었던 아르헨티나에서의 2001년 봉기 기간에 점거한 공장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크고 더 광범위한 예가 있다.

 

보기를 들면, 1936년 스페인 내전 기간, 스페인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산업 대부분을 장악하고 집단적으로 운영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어떤 지역에서는 노동자가 화폐를 폐지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상품을 무료로 배분하는 등 코뮤니스트 사회에 근접하게까지 나아갔다.

 

1919년 시애틀에서는 총파업 기간 노동자들이 도시를 점거하여 운영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가 자본가들의 권리를 돌려주기 전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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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36년 스페인, 공장을 장악한 정비노동자들

 

임금 없는 사회

 

코뮤니즘은 또한 우리의 활동과 생산물이 더는 사고파는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 돈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뮤니스트 사회가 과연 인간이 임금 체계에 의해 강요된, 암묵적인 빈곤의 위협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빈곤이나 기아의 위협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우리는 돈이나 임금노동이 없었지만, 필요한 일은 여전히 행해졌다.

 

보기를 들어, 수렵 채집사회는 일과 놀이 사이에 차이가 없는 전적으로 평화스럽고 평등한 사회였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많은 일이 무료로 이루어진다. 보기를 들면, 영국에서는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주로 여성)이 매일 3시간 이상 무급 가사 일을 한다. 이 사람들의 10% 가까이는 무급 돌봄 일을 하고 있으며, 영국 성인의 25%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11년 무급 노동의 경제 가치는 연간 약 11조 달러로 추정되었다.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용한 일의 형태 역시 임노동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무료로 수행한다. 이것이 임노동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물 기르기, 아이 돌보기, 음악 연주하기, 차 수리하기, 청소하기,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환자 돌보기, 컴퓨터 프로그래밍, 옷 만들기, 제품 설계하기... 이러한 형태의 일은 끝없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돈이 복잡한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자유와 통제를 가진 사람들, 그렇게 하는 건설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이유가 최상의 동기부여가 된다.

 

무료 소프트웨어 운동 같은 것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한 비(非)위계적이고 집단적인 조직이 이윤을 위한 위계적인 조직에 비해 얼마나 우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생산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임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윤 동기가 없다면, 어떤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를 해고하고 나머지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수록 우리는 모두 일을 조금 덜 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국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한 소개에서 우리는 정부를 “소수의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운영되는 조직... 주어진 지역 안에서 정치적, 법적 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경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직”으로 정의한다.

 

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분할이 없다면, 더는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빈곤, 임노동, 그리고 심지어 기아까지 강요하는 경찰과 같은 소수의 사람이 통제하는 조직적 폭력기관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자본을 축적하거나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는 군대가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물론 여전히 반사회적이거나 폭력적인 개인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폭력성과 심지어 살인조차 거의 항상 처벌받지 않는 무책임한 경찰이 아니라, 위임되고 소환 가능하며 순환하면서 역할을 맡는 조직에 의해, 지역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현재 대부분의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의(보통 부유층) 개인들을 선출하여 몇 년 동안 우리를 대신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반면, 다른 결정들은 심지어 “시장의 독재자들”에 의해 기업의 이사회에서 무책임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직장동료 그룹에서부터 직장 및 지역 모임(회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투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통신 기술을 이용해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위임되고 소환 가능한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투쟁을 조직할 수 있듯이, 노동계급이 때때로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결국 스스로 사회를 조직 할 수 있다. 보기를 들어, 1956년 헝가리 봉기 동안 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를 요구함에 따라 사회 운영을 조직하기 위해 노동자평의회가 만들어졌다. 더 최근에는, 1994년 봉기 이후 멕시코의 치아파스 지역은 지도자가 없는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고, 공무원의 임기는 2주로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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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반군

 

4. 결론

 

많은 사람이 코뮤니즘이 좋은 생각 같지만, 실제로 작동할지 의심한다. 그러나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가?”이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부자들과 함께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빈곤 속에 살고 있고, 환경재앙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면서 우리는 “아니오.”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지만, 우리는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기능할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의 부에도 불구하고 종종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에게도 말이다.

 

코뮤니스트 사회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뮤니스트 사회는 광범위한 빈곤과 환경파괴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들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축적해야 할 필요성 대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 해야 할 일을 더 즐겁게 하고, 더 흥미롭게 하고,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에 집중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성공을 GDP로 측정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삶과 행복으로 측정할 수 있다. '직원' '고객' '감독' 또는 '경쟁자'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 대신에 인간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 생애에는 아마도 완전한 (리버테리안) 코뮤니스트 사회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 운동인 코뮤니즘은 - 자본의 이윤에 맞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는 일상의 싸움은 - 현재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생활, 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현실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서 코뮤니즘의 토대를 마련하는 진정한 운동, 즉 우리의 현재 조건을 방어하고 개선하기 위한 일상의 투쟁이다.

 

그동안 이 운동은 ‘아나키스트 코뮤니즘’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또는 단순히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이라고 불려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이데올로기적 꼬리표가 아니라 그 존재이다. 즉 미래의 이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우리의 요구, 욕망과 저항 정신의 생생한 구현이다. 불의와 착취가 있는 모든 사회와 권력에서 이러한 저항 정신은 항상 존재하고 존재해 왔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다.

 

리브콤(libcom.org)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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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2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 기억과 망각의 도시를 찾아 -

 

 

기억과 망각의 도시, 셋 : 트리어(Trier)에서 브뤼셀(Brussels)까지

 

다섯째 날, 이날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긴 시간, 긴 거리를 이동한 날이다. 새벽 5시 반에 숙소에서 출발한 우리는 독일에 도착할 때까지 A로 시작되는 유럽의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리고 달렸다. 파리를 조금 벗어나자 가로등도 없고 지나는 차량도 별로 없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게 되었다. 한밤중처럼 너무 깜깜해서 주변 풍경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한참을 가다가, 운전이 마치 우주선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동부 농촌 지역은 정말 넓고 평탄했다. 중세와 근대에 이곳에서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들었다. 몸도 숨길 곳이 없는 전투, 그들은 어떻게 싸웠을까? 아니 희생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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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4> 드넓은 프랑스 동부 농촌 지역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의 경계에 가까워졌을 때 주유도 할 겸 휴게소에 들렀다. 정말 신기하게도 각자 출발해 다른 경로로 독일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과 여기서 만났다. 우리가 한 팀이었다는 것이 증명된 걸까? 사실 오늘 늦게 합류하는 동지를 위해 한 동지가 독일 행을 포기하고 파리에 남았기에 우리가 일찍부터 움직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동지 사이의 고마운 배려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러한 배려는 여행 기간 내내 모두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특별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함께 여행한다는 것 자체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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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5> 프랑스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주유를 위해 토론하는 일행

 

프랑스에서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에서 독일, 독일에서 룩셈부르크, 다시 벨기에까지 다섯 번 국경을 넘었지만, 이정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국경을 넘었는지 알 수 없는 고속도로였다. 다만, 고속도로 통행료가 있는 프랑스와 무료인 나머지 나라, 휴게소 화장실이 유료인 벨기에와 무료인 나머지 나라, 속도제한이 있는 프랑스와 없는 독일로 구분하는 게 편했다.

 

트리어(Trier)에 진입하면서도 길을 잘못 들어, 독일의 시골 마을 몇 개를 작은 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6시간 넘게 걸려 드디어 트리어에 진입했다. 이곳은 맑스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유명한 도시라서 우리의 방문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맑스 생가는 박물관처럼 꾸며져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꽤 있었다. 유료로 입장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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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6> 맑스 생가, 독일 트리어

 

어제는 파리에서 맑스의 신혼집을 보았고, 아르장퇴이에서는 그의 말년을 보고 왔는데, 오늘 방문한 이 집은 그의 일생 전체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수많은 망명지와 이주의 삶...

 

가난하고 고단한 혁명가의 삶이란 2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혁명과 반혁명의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서 망명 생활까지 하면서 투쟁하는 코뮤니스트는 찾기 어렵다. 그래서 조직 활동과 기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혁명운동을 한다거나 직업적인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109년 전의 볼셰비키처럼 학습을 조직하고 (당 건설을 위한)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을 규합하는 것이 혁명운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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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7> 맑스 생가 뒤편 정원

 

이곳에는 맑스와 가족, 그리고 엥겔스 등의 동지뿐 아니라 그들의 후예라고 불리는 혁명가들도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다시 레닌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야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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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 맑스 생가 전시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이다. 3층으로 올라가자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전시물이 계속 펼쳐져 있었다. 맑스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했거나 사회주의/코뮤니즘과 무관한 이들이 맑스의 전시관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과거 스탈린주의 국가의 (향수에 젖은) 관광객과 자신들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임을 감추기 위해 맑스주의,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나라의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라고는 한다. 할 말을 잃은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시를 하느니 차라리 파리에서처럼 작은 문패 하나 걸어 놓고 전시실은 없애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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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 트리어, 칼 맑스 버스 정류장

 

트리어에서 맑스와 맑스 후계자들에 대한 기억을 과도하게 접하고 난 우리는 맑스의 망명 도시 브뤼셀로 향했다. 트리어에서 지체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에 들러 피크닉 분위기를 느끼며 샌드위치 도시락이라도 먹고 출발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최선을 다해 브뤼셀로 달렸다.

 

브뤼셀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그랑플라스(Grand Place)로 향했다. 물론 브뤼셀 입구에서도 길을 잘못 들어, 아담하고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을 십여 군데 지나치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거리마다 하나씩 있는 회전교차로는 정말 벨기에 운행의 진수였다.

 

브뤼셀 중심에 있는 그랑플라스는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유명해서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 관광명소에도 맑스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랑플라스 입구의 전망 좋은 곳에 있는 레스토랑이 그곳이다. 여기서 맑스는 브뤼셀 망명 시절 유럽의 여러 동지들과 자주 회합했고,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었다. 1846년 맑스는 브뤼셀에서 ‘코뮤니스트 통신위원회’를 결성하고, 1847년 11월에 개최된 코뮤니스트 동맹 2차 회의에 따라 조직의 강령으로 「코뮤니스트 선언」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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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 맑스가 자주 방문했다는 그랑플라스 레스토랑, 벨기에 브뤼셀

 

이 레스토랑에는 맑스가 유럽의 동지들과 신년회를 했다는 명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 맑스 명판을 붙여놓은 것도 신기했지만, 한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이곳에 브뤼셀 야경이나 벨기에 맥주의 맛을 즐기러 온 게 아니라 맑스의 흔적을 찾아온 우리가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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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1> 브뤼셀, 그랑플라스 야경

 

 이렇게 우리는 트리어를 거쳐 브뤼셀까지 즐기고, 중간에 워터루라는 작은 마을도 들르고, 안전할 것 같지만, 위험천만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자정이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이날 운행한 총 거리는 알 수가 없지만, 운전 시간은 14시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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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2> 브뤼셀에서 체포되는 맑스

 

여섯째 날은 오후에 차량을 반납하고, 드디어 대중교통을 이용한 두 번째 투어가 시작되었다. 넷째 날과 이날 방문한 파리 코뮨의 역사적 장소, 파리 시내 투어를 하면서 방문한 68혁명 관련된 이야기는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 사진으로 대신한다. 그런 역사는 책으로 제대로 읽어야 하고, 타자의 눈이 아닌 본인의 관점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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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3> 1871년 5월 21일~28일, 파리 코뮨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총살당한 전사들을 기리는 벽, 페르라셰즈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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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코뮨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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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4> 파리 코뮨의 첫 전투가 있던 몽마르뜨

 

그전까지 몽마르뜨는 공동묘지와 오래된 교회와 포도밭이 있던 곳으로 유명했다. 그뿐이었다. 화가들이 모여들었다는 몽마르뜨는 파리 코뮨의 패배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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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5> 1968년 맑스의 사진 아래 앉아있는 소르본대학의 학생, 세르지오 델 그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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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6> 소르본대학 근처의 카페 거리, 1686년 문을 연 카페

 

맑스가 태어난 지 200년이 넘었고, 4대가 지나갔다. 그는 떠났어도 코뮤니스트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코뮤니스트 정신은 무덤에 묻혀 있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혁명의 기운으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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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7> 맑스의 증손자 칼장 롱게의 묘(1904~1981), 페르라셰즈 공동묘지

 

 

10월의 어느 날, 그리고

 

먼저 가신 혁명가/코뮤니스트를 기억하고 제대로 계승하는 일은 원칙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꼭 필요한 기억은 망각되고, 어떤 기억은 왜곡되고, 어떤 기억은 과장되어 후세대들에게 제대로 전해지는 것조차 힘든 게 우리 운동의 현실이다. 나는 이전 세대 코뮤니스트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일에 있어 그들을 우상화하거나 일상적인 삶까지도 특별하게 보존하고 상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이른바 운동권 좌파들은 혁명가들과 혁명의 역사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조직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파, 지위, 세력 유지에 이용하면서 코뮤니스트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는 계속 남아있고, 우리의 여행은 이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행이 꼭 지리적 방문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코뮤니스트의 사상과 삶, 그리고 당대의 생생한 투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앞서간 코뮤니스트들이 지켜왔던 원칙과 함께할 동지만 있다면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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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8> 자유여행 일정

 

이번 여행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하는 여행이라서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안내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애써주신 파리의 정 선생님, 일정상 다소 무리가 있었음에도 기꺼이 함께하고 서로를 배려해준 동지들이 있었기에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감동적이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도시는 잊혀 질수도 있으나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잊지 않을 것이다.

 

코뮤니스트의 발자취! 인터내셔널을 향한 발걸음!

우리의 삶은 여행! 여행은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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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9> Montreuil 역사박물관 맑스 조형물 앞에서

 

2019년 11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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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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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1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 기억과 망각의 도시를 찾아 -

 

 

지난 가을 우리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했다. 오랜 시간 함께 투쟁하고 연대했던 동지들과 코뮤니스트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공동의 목적과 각자의 의미를 찾아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그중 하나는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몇 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혁명가들의 삶과 시대를 느껴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모두의 안전과 함께 계획한 일정(1~2주)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방문하는 도시의 일부분이 되어보고 싶었고, 찾고자 하는 시대의 어느 순간과 마주치고도 싶었다. 내가 도시와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는지, 흔한 관광객이 되었는지는, 다음 여행을 기약했으니 그때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1차 일정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를 돌며 코뮤니스트(맑스와 레닌 그리고...)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방문할 도시의 이동 거리가 멀어 차량을 빌려서 움직였고, 중간에 파리 코뮨 등의 역사적 장소도 방문했다.

 

첫째 날, 파리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우리를 초대하고 안내해주신 정선생님과 함께 렌터카를 인수했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인원이 늘어 14명이 7인승 두 대로 움직이기에는 자리가 좁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가 인수한 차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급사양의 9인승이었다.

 

다음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에, 마침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가 방문할 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렌터카 회사의 차량 관리 소홀로 사소한 문제가 생겨 박물관 방문을 취소하고 근처의 대형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에서 차량 문제를 해결하고 공항으로 돌아가 일행을 픽업해 초대해주신 정선생님 댁에 도착했더니 늦은 저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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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겉과 속이 달랐던 차량

 

9월의 어느 날 파리에서의 첫 운행은, 복잡한 공항 주변을 두 시간 넘게 돌며 낯선 차량 운전에 익숙해지고, 파리의 신호체계를 익히기도 전에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야간운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대중교통 여행을 하기 전) 렌터카로 장거리를 이동한 첫 일주일간의 여행기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운행 일기와 여행 일기가 섞여 있기에 미리 알려둔다.

 

파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운전에만 집중했기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렌터카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손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편하게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 기다리는 데 익숙해져서인지 급한 일에도 재촉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느낌은 이번 여행에서 낯선 풍경에 적응하거나 착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물론 파리에 50여 년 거주하신 정선생님은 내게 “파리에서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도 없고, 설득해서 안 되는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대처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기억과 망각의 도시, 하나 : 롱쥬모(Longjumeau)에서 마리로즈(Marie-Rose)까지

 

둘째 날, 가장 많은 일행이 도착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해 동지들을 픽업했고, 엄청나게? 많은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먼저 향했다. 예상대로 공항 가는 길은 많이 막혔고, 다른 공항 터미널에서 찾아오는 일행도 길을 헤맸다. 하지만, 넓고 안락한 숙소에 도착하자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한 느낌이었고, 매우 여유로운 여정이 되겠다는 착각에도 잠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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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각자 가져온 식량,  가방의 절반을 풀기도 전에 식탁이 가득 찼다.

 

숙소에서 짐 정리와 잠시 쉬고 나서 우리는 첫 방문지로 망명 시절 레닌과 볼셰비키 동지들이 머물렀던 파리 남부의 롱쥬모(Longjumeau)라는 작은 도시를 찾아갔다.

 

 

1911년 롱쥬모에서는 망명 중인 볼셰비키들이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당의 비합법 학습조직을 운영했고, 지노비에프 등이 가르쳤다고 한다. 이에 앞서 레닌은 파리에서 이네사를 만나고, 1910년 7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 회의에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등과 함께 이네사를 초대한다. 그 후 이네사는 롱쥬모에 학교를 만들어 볼셰비키와 함께하며 레닌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롱쥬모에 있는 볼셰비키의 활동(학습) 장소를 찾아갔다. 현지 주민들도 모를 정도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창고 같은 건물을 다행히도 찾아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학습하고 훈련하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침탈에 대비해 도피하기 좋은 구조였다. 이곳에서 학습하고 토론하고 혁명을 꿈꾸던 볼셰비키의 모습을 그려보니 기본적인 학습조차 게을리 하는 지금의 활동가들과 많이 비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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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3> 롱쥬모 볼셰비키 비밀 학교

 

다음은 레닌의 흔적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남아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은 예정에 없던 곳이었으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파리의 정선생님이 사전답사하면서 알게 된 곳이었다.) 이곳도 롱쥬모에서 레닌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이네사도, 지노비에프도, 다른 동지들도 자주 들렀을 곳이다. 지금은 케밥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반전은 레스토랑 주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레닌을 기억하고 가게 상호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레닌 간판이 사라지고, 메뉴판에 작게 적혀 있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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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롱쥬모 레닌의 숙소, 현재는 케밥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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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5> 레닌 케밥 레스토랑 메뉴판

 

건물 내부를 보려고 들어가 보니, 볼셰비키의 비밀 학교와 같이 이 동네의 오래된 건물은 구조가 거의 같았다. 최근엔 이 작고 오래된 도시에도 우파의 집권으로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가로운 골목길 담벼락에 신축주택 광고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이렇게 프랑스의 작은 도시를 한가롭게 거닐며 109년 전을 떠올릴 무렵 다음 여정이 우리를 파리로 이끌었다. 물론 우리는 그곳에서 레닌 이야기가 아닌 저녁에 먹을 음식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레닌과 그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나데주다 크룹스카야, 이네사는 1911년 여름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이들은 삼총사라 불릴 만큼 가까웠는데, 레닌 부부와 이네사는 파리, 폴란드, 스위스 등 망명지에서 가족처럼 지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파리로 향했다. 레닌은 1909년 7월부터 1912년 6월까지 파리 14구 마리로즈(Marie-Rose)가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처음 들렀던 롱쥬모는 파리 망명 생활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닌이 살던 마리로즈(Marie-Rose)가 4번지 아파트도 간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일부 매체와 특별한 방문객들의 여행 후기에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롱쥬모와는 정반대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프랑스 공산당에서 이 집을 레닌의 소형 박물관처럼 활용하다가 방문객이 줄어들고 재정난에 허덕이자 결국 처분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1909년 7월부터 1912년 6월까지 레닌 이곳에 살다”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명패가 떨어져 나간 곳에 흔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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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레닌이 살던 마리로즈가 4번지 아파트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마지막 흔적마저 지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레닌은 이곳에서 밀려드는 망명자들을 만나고, 러시아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미래의 혁명을 도모했다. 레닌은 자주 자전거를 타고 몽수리 공원(Parc Montsouris)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지역의 카페에서 동지들을 만나 술도 마셨다고 한다. 한번은 동지들이 망명 자금으로 어렵게 마련해준 자전거를 잃어버려 매우 상심했는데, 다시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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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7> 레닌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

 

이외에도 레닌의 파리 망명 생활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장소에 대해 들었지만, 무겁게만 들려왔다. 기억하려는 사람과 망각하려는 도시 사이에서 나는 도시의 일부가 되려던 생각을 잠시 보류했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장기간 먹고 사용해야 할 물품을 사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 한 시간 넘게 여러 명이 꼼꼼하게 장을 보고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대 앞의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잠시 후 알아보니 전산이 마비되어 계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더 기다리거나, 다른 방법으로 계산하거나, 그냥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도 허탈하지만,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으므로...”

 

 

기억과 망각의 도시, 둘 : 바노(Vaneau)에서 아르장퇴이(Argenteuil)까지

 

셋째 날, 어제의 레닌에 이어 오늘은 맑스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 7구의 바노(Vaneau)가로 향했다. 1843년 초 예니와 결혼한 맑스는 1843년 10월 말 신혼여행지로 파리를 택한다. 맑스와 예니는 파리 7구 바노(Vaneau)가 38번지 아파트에서 17개월간 머물렀고, 1844년에는 큰딸 예니 롱게가 태어난다. 맑스는 파리에서 시인 하이네와 알게 되고, 1789년의 프랑스혁명 연구에 몰두했으며, 영국 고전 경제학 저술도 읽었다. 물론 평생 동지 엥겔스와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맑스와 예니의 신혼집은 영화에도 나올 만큼 유명하지만, 레닌의 집과 마찬가지로 파리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첫 번째 신혼집(38번지)과 근처에 있는 두 번째 집(23번지)까지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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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8> 맑스와 예니의 신혼집, 바노가 38번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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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9> 맑스와 예니의 두 번째 신혼집, 바노가 23번지 아파트

 

이 집들은 젊은 맑스가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 당대의 혁명가들을 만나고, 이론을 공부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신혼 생활 이후 가난한 생활고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맑스·예니 부부의 비극적인 미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전 프랑스 TV ‘문화’ 프로그램에서 아르테(Arte)가 맑스의 가난에 대한 원인을 맑스나 그의 부인이 유복한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가정경제를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암시한 것은 큰 왜곡이다. 실제로 맑스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연대에 철저했으며, 정기적으로 그의 적은 수입을 혁명운동에 사용했다.)

 

나는 맑스 가정사의 비극 대신, 1844년 8월 파리의 프랑스 극장 앞 광장 카페에서 엥겔스와의 역사적 만남을 가졌던 일을 떠올리며, “나의 역사적 만남은 언제쯤일까? 이미 평생의 혁명 동무를 만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파리 북서부 아르장퇴이(Argenteuil)로 가는 길, 서울 주변의 도시와 다르게 한가로워서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돌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맑스의 큰딸 예니 롱게의 집이 있고, 이곳에서 병든 맑스가 자신의 말년 일부를 딸의 가족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파리와 다르게 맑스의 딸이 살았던 곳에는 칼 맑스 길(路)도 있고, 예니 롱게의 집에는 “1882년 맑스가 머물렀다”는 명판도 붙어있다. 현재의 주소는 27 Boulevard Karl Marx, 95100 Argenteuil이다. 맑스와 레닌이 살았던 곳 주변에는 늘 혁명가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머물렀는데, 예니 롱게의 옆집도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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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0> 예니 롱게의 집, 아르장퇴이 맑스가 27번지

 

이곳에는 아직도 동유럽이나 아시아(중국, 베트남)의 관광객들이 종종 찾는다고 한다. 여기서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와 마주친 이탈리아 방문객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코뮤니스트들이 이렇게 많이 방문한 것에 놀라면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차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동네 주민들이 ‘코뮤니스트’ ‘코뮤니스트’ 하면서 엄지를 세워 보였다.

 

이 도시는 어제 방문한 ‘망각’의 도시와 다르게 특별한 것까지 ‘기억’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맑스와 그의 아픈 가족사를 제대로 기억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예니 롱게의 집과 맑스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우리를 안내해주신 분의 설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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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 아르장퇴이, 칼 맑스 거리

 

아르장퇴이에서의 맑스는 파리 신혼집에서의 청년 맑스가 아니었고, 수많은 망명지와 영국에 정착한 혁명가 맑스도 아니었다. 늙고 병든 인간 맑스였을 뿐이다. 앞서 말한 생활고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간직한 채, 말년을 맞이한 맑스는 요양하면서 딸들에게 쓴 편지에서 애정 넘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여행12IP4A0218.jpg  <사진12> 클로드 모네가 살았던 집, 아르장퇴이 맑스가 25번지

 

 

예니 롱게에게 보낸 우편엽서

1882년 5월 26일

 

아주 귀여운 아가,

너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는 언제나 행복하단다. 너의 올드 닉이 너에게서 몇 시간씩 잠을 훔쳐 가서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쾌청한 날씨 때문에 내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 6월 초 칸느에 가서 한 일주일 머물다 올까 한다. 이 모든 계획은 의사의 소견과 초여름 날씨에 달려있다. (...)

내 마음은 너와 네 아이들 곁에 있단다. 보고 싶구나. 아주 싫었던 일련의 ‘의학적 경험’을 치른 후 전혀 서두를 것이 없어졌다. 어쨌거나 곧 너희들 곁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너의 올드 닉 (「알제리에서의 편지」, 칼 맑스 지음 / 정준성 옮김)

 

*올드 닉(Old Nick)은 맑스가 딸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애칭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맑스는 이 편지에서 한 약속처럼 예니 롱게의 집으로 갔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혁명가들이 잠시라도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현장인가? 가족인가? 동지의 곁인가?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장소인가?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 것인가?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하기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파리와 대서양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방어운전을 하다 차선을 잘 못 들어 한참을 서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혼자만의 여행이었으면, 어차피 잘못 들어선 김에 대서양까지 달렸을 것이다. 다행히 지름길로 가서 늦지 않았다. 그리고 시라크 장례식 전날이라 통제하는 구간이 많아 골목길로 돌다 보니, 어느새 세느강 가장 가까운 강변길을 천천히 구경하며 드라이브하는 호사를 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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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3> 강폭이 좁은 세느강

 

2019년 11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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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재판, 윤석열 징계 논란 : 계급 착취 왜곡하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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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재판, 윤석열 징계 논란 :

계급 착취 왜곡하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 폐지!

 

  지난 12월 23일(수) 서울중앙지법은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등의 의혹을 대부분 인정하며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억 원을 선고했다. 여기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장경제 질서를 흔드는 중대 범죄와 증거 인멸 지시 등의 수사 방해를 덧붙였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은 1년여 이상을 끌어오면서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치열한 여론전뿐만 아니라 검찰개혁, 사법개혁 등의 이슈를 부각시켰다. 정 교수 측은 재판 내내 "가족이 비판 없이 혜택을 누렸던 건 반성하지만, 조 전 장관 낙마를 위한 표적 수사"였다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즉, 검찰개혁의 이면에는 국가 권력 기구에 대한 지배계급 내부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 싸움은 그들이 계급 이해관계에 얼마나 투철한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요구는 환상이다. 그것은 막강한 검찰권을 행사하는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한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게 검찰을 통제하려는 시도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을 개혁하는 것, 즉 검찰을 ‘덜 독점적이고 덜 부패한’ 기관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지배계급 안에서의 통제 방향만 바꿀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생산, 소비, 분배는 겉으로는 폭력을 배제하고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 임노동 관계는 계급 적대적이고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강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 모순이 겉으로는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분리된 공적 권력체계인 국가기구로 조직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를 초계급적 성격으로 왜곡하게 된 근원이고 국가 참여를 통한 사회개혁과 변혁이 가능하다는 오류에 빠지게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적대적 계급 관계가 사라지지 않은 한 자본주의 국가기구는 노동자민중의 요구에 따라 ‘개혁’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지배계급 내부 분파 간의 권력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 반(反)노동자/반민주적 검찰 권력을 비판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가짜 검찰개혁을 지지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부르주아 정권인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검찰과 언론의 논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누가 이기든 노동자들은 이용만 당할 뿐이고, 노동자의 통제력 강화가 아닌 지배계급의 독재(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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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가 주장하는 공정성 – 부르주아 이해관계의 수단

 

  권력 기구에 대한 (민주당 주도권을 보장하는) 개혁안을 갖고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던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정권은 개혁의 근거로 공정성을 내세웠다. 공교롭게도 검찰 역시 정경심 재판에서 같은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정경심 재판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을 특권층의 반칙이자 신종 정경유착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형사재판에서 평등의 원칙은 사회 고위층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부르주아 분파의 공정성? 그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부르주아 분파의 밥그릇 싸움이자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의 수단에 불과하다.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에서 기회와 과정과 결과의 공정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정당들이 공정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 속에는 당연히 기회, 과정, 결과에서 모든 개인은 평등하다는 논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배한다는 부르주아의 허구가 재생산되고, 그것은 이데올로기로 노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탄생 자체가 인민을 폭력적으로 생산수단에서 분리해 무산자를 양산하면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기회와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의 아주 작은 일상만을 보여주는 조국의 사례에서만 보아도 조국 딸은 고등학생 때 의대 실험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의대 교수와 함께 논문을 작성해 제1 저자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자식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상상 너머의 현실이다. 즉 공정성은 계급 간 불평등을 덮으려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일 뿐이다. 부르주아 공정성의 범위에 노동자는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부르주아의 공정성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격수단이자 계급지배 수단이다. 결국 노동자들 스스로 무능력을 체화시킴과 동시에 노동자의 잠재력을 무력화시키고, 단결과 연대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물리게 한다. 이렇게 해서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논리 속으로 단결된 노동자계급이 아닌 개별적 노동자로 포섭한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검찰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호명한 조국의 행태는 부와 지위를 세습하려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검찰개혁의 대상인 검찰이든 수사권 독립의 혜택을 얻게 될 경찰이든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노동자를 억압하는 역할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사법개혁이 마치 공정한 국가, 정의로운 국가의 밑거름인양 떠들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철저하게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한다. 이처럼 사법개혁의 본질은 계급 지배의 정당성을 공고하게 할 부르주아의 철옹성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 검찰/경찰/사법기관도 친자본-반노동자적 억압 기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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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억압 기구 폐지!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제청을 받아 재가한 징계 결정에 대해 윤석열 총장은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직무에서 배제된 윤 총장은 8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 직접선거로 선출되고 의회의 압도적 다수파까지 차지한 문재인 정권이 통제할 수 없는 검찰 권력을 ‘선출되지 않은’ 또 다른 국가기구인 공수처에서 견제할 수 있을까? 검찰 개혁은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적 청산으로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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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적 개혁은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점진적 변화'가 아니다. 정치 검찰, 부패한 검찰을 민주적이고 청렴한 기구로 바꾸는 것으로는 검찰의 반노동자성이나 노동자계급에 대한 국가 폭력을 종식할 수 없다. ‘덜 해로운’ 정치인을 권력의 자리에 앉힌다고 부르주아 정부가 기능하는 방식을 바꿀 수 없듯이, 검찰을 개혁하고 그것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자본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라는 사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사회의 다수인 노동자민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폭력으로 통치하는 그들은 견인이나 포섭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검찰과 사법기관이 구조적으로 저질러 온 범죄행위는 '사건 재조사와 진상 규명',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과 책임자 처벌'만으로는 종식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그들과 적대하는 사회 계급인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물리적 힘과 집단 이성으로 그들이 독점하고 남용하는 모든 특권을 폐지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검찰 개혁, 사법개혁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대안은 코뮤니스트 혁명을 통해 모든 억압적 국가기구를 폐지하고, 노동자평의회/프롤레타리아트 총회 같은 계급 조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서도 특권계층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인과 특정 집단이 갖는 모든 특권을 폐지하고, 모든 공직자가 노동자 평균 급여를 받으며, 사회 전체의 통제(선출자의 소환)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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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개혁을 둘러싼 현재의 갈등과 논쟁은 자본주의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재앙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민중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투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배계급이 현재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데 유효했고, 계급의식을 왜곡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지배계급 내의 여러 분파와 그들의 계급적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들을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민중에게 진정한 검찰개혁은 오직 자본주의 억압적 국가기구와 착취 체제의 폐지뿐이다. 그것은 어떠한 급진적 부르주아적 개혁으로도, 어떠한 부르주아 진보좌파의 집권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사회혁명은 그들의 개혁보다 훨씬 힘들고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어떠한 권력보다 더 큰 힘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고 분열되어 있는 한 그 힘은 지배계급을 위해 쓰일 뿐이다. 따라서 비록 지금은 소수일지라도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정치세력에 의탁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 부르주아 공정성/민주주의의 위선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우리의 미래다.

 

2020년 12월 28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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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 3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역사의 경로를 중심으로’와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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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국주의 전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적 계급투쟁

 

3-1.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ICT는 제국주의 시대의 지구적 전쟁을 자본주의의 모순을 잠시 해결하는 자본의 ‘통제’ 방식으로 규정하면서 단순히 약자에 대한 자본주의의 강력한 권력의 정책이 아니라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이 주변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11)

 

현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길고 거대한 구조적 위기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윤율 저하로 자본은 생산적 투자를 희생하면서 투기로 내몰고 주식시장을 거품, 이에 따른 금융위기, 그리고 국가, 기업 및 가계의 부채 증가는 모든 곳에서 직접, 간접 및 유예된 임금에 맞서는 지속적 공격으로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러한 경제 위기가 만드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국면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전쟁은 자본의 가치 저하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집중으로 새로운 축적 주기를 여는 유일한 방법이다.(12)

 

ICT는 ICC와 달리 제국주의 전쟁인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인가의 문제는 역사적 의제에 놓여있고, 전쟁으로의 자본주의의 돌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노동조건에 대한 대대적 공격으로 표현된다고 규정한다.(13)

 

제국주의 전쟁을 제국주의 국가들의 재무장 측면에서 살펴보자. 세계적인 지속적 긴급 상태가 경제와 금융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무역, 외교 및 군사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현재의 힘의 균형과 전통적인 영향력 영역 사이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불편한 제국주의는 미국의 지배적 제국주의다.

 

사회주의의 이름을 훼손한 소련의 몰락 이후 40년 미국은 더는 세계의 채권자가 아니라 최대의 채무국이며, 세계 생산의 21%인 중국 다음으로 15%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보고 있다. 2019년 「중거리 핵무력 협정(INF)」으로부터 미국이 탈퇴한 이유는 반(反)중국 수단으로 태평양 영역에 미사일 설치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며,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One belt, One road)과 2025년 중국 만들기를 미국 이해관계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보고 있고, 중국의 실크로드는 세계 제1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역사적 필요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14)

 

2019년 4월 말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에 의하면 세계 군사비는 세계 GDP의 2.1%에 해당하는 1조 8천 220억 달러인데, 2018년보다 미국은 450억 달러 증가(7%)했고, 중국은 110억 달러 증가(5%)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정치, 경제, 군사 영역의 사건들을 보면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다가오고 있고 다른 주요 강대국은 주인을 믿고 복종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군사비의 지속적 증가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강대국과 제국주의 중소국 사이의 동맹의 갑작스럽고 잦은 변동은 새로운 군사 충돌의 위기이며, 영구적 위기의 자본주의가 새로운 세계적 프롤레타리아 학살로 새로운 젊은 세대를 몰아넣는 유일한 수단이므로 이러한 전망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국제코뮤니스트 혁명이다.(15)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 전망은 공통분모로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경쟁 관계를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ICT는 최근 글 「미국/이란 경쟁 : 전쟁은 아니지만, 계급전쟁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16)에서 미국과 이란이 세계적인가 지역적인가를 떠나 제국주의 국가임을 인식하고 평의회를 요구하는 이란 노동자에 대한 전적인 연대와 지지로 제국주의 쇠퇴기의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전쟁을 호소하고 있다.

 

이 글은 전쟁이지만, 군대 사이가 아닌 사회경제적 구성체를 포함하는 전쟁, 어떠한 협상도 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패자의 ‘무조건적 항복’만이 있는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보면서 중동에서의 미국과 이란 사이의 경쟁적 관계는 직접적인 공개 전쟁으로 나아가지 않겠지만, 항상 ‘다른 편이 후퇴하게 되는’ 본질을 지닌다고 분석한다.

 

핵협정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이란이 승인했지만, 그들에게는 오바마 시절부터 남아 있던 경제적 제재가 가중되어 왔고, 트럼프가 이를 거부하는 미제국주의의 실질적 힘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여름 아사드가 시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란제국주의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소부르주아와 전문직 계층이 주도한 레바논의 민중 시위, 2018년 저임금에 저항하는 해프트타페(Haft Tapeh)에서의 이란 노동자의 파업, 21개 도시와 70개 지역에서의 저항운동의 확산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란 정권은 파산의 끝에 와있다. 공식 통계로 실업률이 10%이지만, 이란 청년들은 27%에 달하고 대졸자들은 40%를 넘는다. 1천 6백만 명이 빈곤 이하의 수준에 놓여 있다.

 

이란을 포함하여 중동(시리아, 이라크, 이란, 쿠르디스탄, 리비아)을 수십 년간 제국주의 강대국의 전쟁터로 만든 자본주의의 전쟁으로의 추동에 대한 경제적 배경을 분석한 글은 에너지 원천일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기생적 착취의 효과적 도구인 원유와 셰일가스(shale gas)의 보고인 중동의 지정학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17) 미제국주의가 이란제국주의를 공격하는 목적은 이란과 가장 가까운 경제적, 상업적 동반자인 중국을 타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결국, 이 글은 맑스주의와 국제주의를 거론하면서도 ‘민족해방’, 인종, 종족, 종교 등에 기만당해 국제 부르주아지의 어느 한쪽을 편드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혁명인가 야만인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이란과 미국의 절박한 충돌이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는 앞의 분석과 비슷한 입장은 레바논, 이라크, 이란 등의 민중 저항운동이 착취와 억압 없는 사회에 대한 전망이 부족하고, 정부 관료, 선거제도 등의 변화에 대한 요구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저항운동이 이라크 민족주의나 이란의 민족주의 같은 잘못된 반(反)제국주의의 흐름으로 매몰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능성은 미국 블록과 중국-러시아 블록 사이의 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에 있다고 분석한다.(18)

 

따라서 3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에 맞서 자신의 삶을 방어하려는 전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줄기차게 지속되는 계급전쟁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자/실업자, 공장과 산업, 언어, 신념, 젠더, 민족을 넘어 삶의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의 통일성, 부르주아 당과 노동조합의 계급통일에 대한 방해에 맞서는 투쟁, 노동계급의 무장을 통해 착취와 억압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일을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점점 사람들이 이전 세대보다 덜 안전하고 풍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정부의 형식이 아니라 소수의 자본가에 의한 다수의 노동계급 착취에 기반을 둔 생산양식이라는 것이다. 2019년 칠레, 프랑스, 멕시코, 이란에서 우리는 노동계급의 집합적 투쟁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동자들을 보았고,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자본에 맞서는 계급전쟁의 산물로 결정되는 역사적 대안 선택임을 알았다.(19)

 

여기서 우리는 계급전쟁에 대한 기본원칙을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회주의 경향의 ‘평화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이 계급사회의 소멸 없이 극복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카우츠키의 의회적 유토피아주의에 맞서 강력한 비판을 한 네덜란드 맑스주의자 안톤 판네쿡은 계급의식화된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의 유일한 진보 세력이라고 이해했고, 제국주의에 대한 해답은 의회의 정치가들이 아닌 조직된 노동계급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 평화주의의 첫 번째 오류는 부르주아 의회의 정치가들이 자본주의의 군사주의와 의미 있게 싸울 능력이 있다는 관점이며, 두 번째 오류는 제국주의 전쟁의 원인보다 전쟁의 잔악성 분석에 초점을 맞추어 제국주의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전쟁을 요구하고 전쟁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제국주의는 단순히 군사적 관계가 아니라 더 근본적 수준에서의 경제적 관계라는 사실을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과 혁명을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평화공존이 있을 수 없고, 전쟁인가 위기인가의 선택만이 국제 부르주아지에 있으며, 국제 자본의 만족하지 못하는 욕구 때문에 제국주의 반대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반대 투쟁이라는 점이다. 반(反 )제국주의와 민족자결을 기반으로 분파를 방어하는 입장은 또 다른 깃발로 제국주의를 불가피하게 지지하게 된다.(20)

 

맑스주의자는 인본주의 때문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이 국제노동계급을 서로에 맞서는 살육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악의 징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야 하며, 혁명적 패배주의를 통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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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최근 세계의 계급투쟁과 그 의미

 

제국주의 전쟁인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인가의 근본 문제에 대한 위의 논의를 전제로 하면서 우리는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세계 각국의 노동자 투쟁이나 민중 투쟁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른바 사회 반란 투쟁(Social Revolts)이 자본주의와 맞서는 계급투쟁인가 그리고 혁명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와 그렇지 않고 삶의 조건 개선이나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 투쟁에 머무는 소부르주아 운동에 머물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에 맞선 파업 투쟁은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의 주요 분석 대상이었다. 퇴직 시 빈곤해지는 젊은 노동자를 위협하는 새로운 연금체계를 내용으로 하는 프랑스의 연금 개혁에 대한 비공인파업에 대해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정부의 일시적 양보안에 대해 이른바 ‘개혁주의 노조’인 CFDT와 UNSA는 찬성한 반면, 좌파노조인 CGT, FO, SUD, FSU는 연합하여 정부안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IGCL은 이 투쟁에서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노조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를 조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한다.(21)

 

ICC도 프랑스 정부와 노동조합이 손잡고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특히, 철도노동자, 보건노동자 등이 연대하여 노동자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직접적 공격에 맞서고 있으며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 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계급의식 발전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22) ICT 역시 프랑스 파업을 국가와 노동조합에 맞서는 노동자로 규정하면서, 노동자를 분리 통제하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대중집회와 총회를 통한 효과적 투쟁으로 진전하고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23)

 

홍콩과 칠레, 그리고 미국과 인도에서의 투쟁을 다루는 기사를 논평한 「A Free Retriever’s Digest」(24)는 「사회 반란과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아나코-코뮤니스트 그룹인 바바리아(Barbaria) 그룹의 홍콩과 칠레의 투쟁 기사와 보르디가주의 그룹인 「국제코뮤니스트당(ICP)」의 미국과 인도의 투쟁 기사를 평가하고 있다. 이 국제주의 매체의 평가 기준은 다음과 같다.

 

⓵ 투쟁은 우리 계급의 직접적인 인간 욕구로부터 뻗어 나오기 때문에 사회적 투쟁이다.

⓶ 최초의 물결을 일으킨 이유를 넘어서 각기 다른 직접적 요구는 일반화된다.

⓷ 사회적 투쟁은 아직 코뮤니즘의 사회적 혁명과 거리가 멀지만, 역사적 전망을 열고 있다. 따라서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의 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의 영역에 있음으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적 역사적 맥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⓵ 긴 후퇴를 끝내려는 계급사이의 격돌로 특징 지워진 우리는 획기적 변동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⓶ 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자본주의는 소진되고 있고 사회혁명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⓷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물결은 공통의 주장을 담고 있다. 혁명의 필요와 이해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음을.

⓸ 운동이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투쟁이 우리 계급의 직접적인 요구로부터 나오는 한 부르주아 정치영역으로 움직이는 민족주의적이거나 정치-선거 투쟁과는 매우 다른 투쟁이다.(25)

 

홍콩 가두 투쟁의 계급 간 성격에 대해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은 바바리아 그룹과 달리 매우 비판적이다. ICP는 홍콩 저항운동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신호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으며, ICC는 홍콩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발적 계급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에는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ICT 역시 홍콩의 운동이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노동계급의 요소는 지역의 자본주의의 이해에 승복함으로써 국제 노동계급 연대의 잠재력과 국제 혁명적 정치조직으로 뻗어 나갈 가능성이 훼손되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칠레의 민중 투쟁이 위기와 참상으로 몰아가는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해답은 아니라고 비판하는 ICC에 대해 이 평가 글은 칠레, 이란, 인도의 투쟁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저개발’, 원시적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독점자본의 초과이윤을 즐기지 못한다고 폄하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부유한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위기에 몰린 자본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ICC의 생각은 코뮤니스트가 격렬하게 싸워야 할 환상이라고 규정한다.(26)

 

이어서 이 글은 ICC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위험성과 코뮤니스트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선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ICC의 글이 심술쟁이 노인의 부정적 논조를 띠고 있으며, 스스로 절망에 빠져 자본과 국가에 맞서는 사회투쟁을 자본주의 해체 시기의 룸펜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제너널 모터스(GM)의 파업을 다룬 ICP는 이 파업이 국가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mobile Workers of America)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통일을 이루려는 파업노동자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며, 국가노조에 맞서는 노동계급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의 혼다 마네사르(Honda Manesar)의 공장점거 투쟁을 다룬 기사에서는 작업장에서의 연좌 투쟁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27)

 

사회 반란 투쟁에 대한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은 분명히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입장에서부터 전혀 그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까지 편차가 있다. 노동계급 스스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혁명 세력과 혁명당의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사회투쟁이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와 참상으로 돌진하는 것에 진정으로 맞서는 해법이 아니라는 ICC, IGCL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앞으로의 세계 각국의 노동자 투쟁을 포함한 사회투쟁의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왜 그러한지 아니면 사회혁명으로의 진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코뮤니스트는 따져보아야 한다.

 

ICC는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끊임없는 희생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마당이 되었고, 칠레, 에콰도르, 타이티, 이라크, 이란, 알제리, 레바논 등에서의 대중운동이 폭력과 유혈적 억압을 수반하고 있지만, 이러한 민중 반란에 설사 노동자가 포함되더라도 그들은 자본에 대한 적대적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국민’ 안에 침몰되어 있고, ‘미래가 없다’는 생각만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운동은 부르주아지의 억압과 공작에 의해 무력화된다고 진단한다. 또한, 계급 간 상호주의는 민주적 요구와 맹목적 폭력만을 야기시켜 ‘깨끗한 체제를 위한’, 민주적 요구를 통한 합법화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계급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특권화 된 권력 형식으로 귀결될 뿐이라고 규정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물음 없이 ‘민주적’ 영역에 갇힌, 전망을 상실한 홍콩 투쟁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러한 운동의 맹목적 폭력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은 이러한 민중 반란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눈으로부터 계급투쟁의 실질적 본질을 가리게 만든다고 결론짓는다.(28)

 

IGCL은 2019년 여름부터 세계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전진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 심화와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추동에 대한 대대적인 세계적 계급투쟁의 시기가 열렸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29) IGCL은 이들 투쟁의 일부가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요구에 머물러있지만, 일부는 노동계급의 요구에 기반을 두는 면모를 보임을 상기시키며 ICC의 세계 노동자 투쟁에 대한 입장이 그들의 해체이론에 근거한 패배주의자의 입장이며, 계급투쟁에 대한 소부르주아의 관념적 입장이라고 비판한다.(30)

 

 

여기서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코뮤니스트」 11호(이번호)에 실리는 ‘코로나19’ 특집을 도입부로 하면서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대대적 공격으로 전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물결이 파도치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역사적 경로’에 대한 논쟁과 계급투쟁을 통한 코뮤니즘의 전망을 세계 코뮤니스트들과의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2020년 5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오세철

 

<주>

 

11.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경향(ICT)의 강령」, 2020년, 4쪽, 8쪽

http://www.leftcom.org/en/node/36775

 

12. 윗글, 9쪽

 

13. 윗글, 17쪽

 

14. 「국가들의 세계적 재무장」, [COMMUNIST LEFT] 46호, 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2020년 3월 17일, 107~9쪽

http://www.international-communist-party.org/CommLeft/CL46.htm#Ecocatastophim

 

15. 윗글, 110~112쪽

 

16. 「Aurora」 50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2-27/usiran-rivalry-what-no-war-but-the-class-war-really-means

 

17. 「세계는 영원한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죄수로 잡혔다.」,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2월 22일

 

18. 「3차 대전을 향한 이란-미국의 임박한 전쟁?」,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1월 15일

 

19. 「현재의 위기와 코뮤니스트의 과제」, [혁명적 전망] 15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19년 11월, 9쪽

 

20. 「평화주의에 반대하며」, ICT, 2020년 1월 18일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1-18/against-pacifism

 

21. 「연금파업에 대한 두 번째 성명」, IGCL, 2020년 1월 3일

http://igcl.org/2nd-Communique-on-the-Strikes-in-544

 

22. 「프랑스 파업 : 노동계급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하다」, [세계혁명] 185호, ICC, 2020년 봄

 

23. 「프랑스의 파업 : 국가와 노동조합에 맞서는 노동자」, [Aurora], CWO, 2020년 봄

 

24. 이 매체(웹 사이트)는 코민테른의 퇴행에 맞서는 투쟁에서 코뮤니스트 좌파가 이해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방어하는 논평 글을 싣고 있다.

 

25. 「사회 반란과 제국주의 전쟁(1/2)」,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1월, 1~2쪽

26. 윗글, 4~7쪽

 

27. 「사회 반란과 제국주의 전쟁(2/2)」,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1월, 2~3쪽

 

28. 「민중 반란은 위기와 참상으로의 세계 자본주의의 돌진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국제평론] 163호, ICC, 2019년 겨울

 

29. 「피할 수 없고 극적인 모순에 대한 자본주의의 ‘해법’에 맞서자. 대대적인 국제계급투쟁으로!」, IGCL, 2020년 2월 1일

http://igcl.org/Against-Capitalism-s-Solution-to

 

30. 「국제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혁명이냐 전쟁이냐] 14호, IGCL, 2020년 1월 30일

 

 

<이전 글>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1)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758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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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 1~2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역사의 경로를 중심으로’와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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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코뮤니스트」 10호(2019년)에서 나는 ‘역사의 경로’를 둘러싼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내부 논쟁을 정리하면서 그 논쟁을 불러일으킨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이하 ICC)의 23차 대회(2019년 5월 개최)를 소개하면서 이후 계속되는 논쟁을 「논쟁」(2)에서 다루기로 한 바 있다.(1)

 

그런데 그 이후 논쟁은 또 하나의 코뮤니스트 좌파 조직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이하 ICT)과의 불꽃 튀는 대결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소그룹인 「코뮤니스트 좌파 국제 그룹」 (International Group of the Communist Left, 이하 IGCL)과의 적대적 반응과 ICC의 적대적 대응 그리고 ICC의 ‘역사의 경로’에 대한 보완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논쟁의 중심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정세 분석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역사의 경로’에 대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내부 논쟁(2),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적 계급투쟁을 연결시켜 앞으로의 논쟁의 발전을 전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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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의 경로’를 둘러싼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내부 논쟁(2)

 

ICC의 23차 대회에 대한 평가를 가장 극렬하게 비판한 IGCL은 그들의 기관지 「전쟁인가 혁명인가」 12호(2019년 7월, 특별호)에서 ICC의 23차 대회가 ‘역사의 경로’를 폐기하고 계급투쟁을 포기했다고 결론지으며, 새로운 혁명 세력에 기회주의적이고 파괴적인 기생충 이론이라는 독물을 가져왔다고 비난했다. 코뮤니스트 좌파의 경험과 강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한 정치적인 쟁점 대신 기생주의에 대한 토론을 제안한 ICC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ICC와 기생주의의 타당성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영역, 토론과 정치적인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고, 이는 역겹고 파괴적인, 동지들은 어떻게든 입증할 수 없고, 같은 바닥에 추락함으로써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피의자’가 되든, 개인 심리학이나 이른바 개인행동에 유리한 쪽으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

 

IGCL에 대한 ICC의 반비판이 본격화되기 전 IGCL은 ICC에 대한 두 번째 비판문을 내놓았다. 이 글은 스페인의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인 「해방」과 그들의 블로그 「신경로(新經路)」 (Nuevo Curso, 이하 NC)에 대한 ICC의 비난에 대한 비판이 중심을 이루었다.(3) ICC의 글은 NC가 IGCL처럼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기생집단이라고 결론 짓는다.

 

IGCL이 보기에 ICC가 자신들을 경찰의 첩자로 축출한 것과 NC를 비난하는 것은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이는 ICC가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자본주의 해체이론과 기생주의의 미명하에 실천해왔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4) ICC 23차 대회는 역사의 동력으로서의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중심 원칙을 ICC가 청산했다는 증거이며, 소규모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을 비난하는 ICC의 국제적 캠페인의 정치적 의미는 현재 진행되는 이들 세력의 정치적 출현, 발전, 재구성과 명확화를 저해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ICC와 IGCL 사이의 비판을 넘어선 비난과 반비난의 배경에는 새로운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하는 IGCL의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IGCL은 자신들의 원칙적 입장을 ICT의 정치 강령과 ‘원조 ICC'(이 조직이 1990년에 채택한 관념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해체이론의 문제를 통합하지 않은)의 정치 강령의 틀 안에 있다고 밝히고, 두 개의 역사적 경향(ICT와 ICC) 사이의 주요한 ’역사적‘ 괴리는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들의 정치적 소수파가 당면한 본질적 문제이며, 다가올 미래에 대답해야 할 과제라고 설명한다. 첫째, ICT와 ICC 강령에 대한 2014년 입장, 즉 “혁명인가 전쟁인가”에 동의한다는 점, 둘째, 근본적인 이론적, 정치적 틀은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의 궁극적 표현으로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인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인가의 역사적 선택이라는 점, 셋째, 이들 근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조직이 ICT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5)

 

또한, 「걸프만 코뮤니스트 분파」 (Gulf Coast Communist Fraction, 이하 GCCF)와의 소통에서는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과 ‘건설 중에 있는 당’의 진행 사이의 끈을 강화시키려는 긍정적 공헌임을 인식한다는 서한을 받았다.(6) 그리고 ICC가 코뮤니스트 좌파가 아니라고 비판한 NC와의 소통에서는 다음과 같이 토론이 이루어졌다.(7) 이 편지는 NC와의 소통의 어려움이 트로츠키주의와 강령적, 이론적, 정치적 그리고 전투적 단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흐름으로서의 트로츠키주의와 하나의 제국주의 진영과 손잡음으로써 공개적으로 계급원칙을 포기한 2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 이후 제4차 인터내셔널에서 굳어진 트로츠키주의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좌익반대파인가와 코뮤니스트 좌파인가를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NC의 개인들의 계급적 입장으로 보여 집합적 조직으로서의 정치적으로 통일된 강령과 정치원칙이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셋째, 트로츠키주의의 좌익반대파가 추진한 통일전선은 코뮤니스트 좌파와의 근본적인 차이다.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코민테른 3, 4차 대회에 채택한 통일전선 전술에 충실하여 국제적인 혁명 물결의 후퇴와 혁명적 러시아의 고립을 초래하였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제국주의 전쟁으로 징집하는 이념적, 정치적 무기가 되었다. 물론 NC가 어떠한 통일전선 전술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모순과 질문이 남아 있다. 무니스가 1943~5년에 방어하는 1930년대 사용된 통일전선 전술이 유효한가? 그렇다면 오늘날 이 전술이 더 이상 왜 유효하지 않은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더 깊은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이제 ICC의 ‘역사의 경로’에 대한 추가 보완 설명을 살펴보면서 이 논쟁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가기로 한다. ICC는 「역사의 경로에 대한 보고서 서문」(8)에서 소련, 동구 제국주의 블록의 몰락에 따른 세계정세의 변화가 서구 블록의 해체로 이어져 자본주의의 해체기로 들어섰다고 진단하면서, 양대 제국주의 블록의 소멸로 혁명인가 세계전쟁인가라는 선택은 더 이상 의제에 오를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1914년 사라예보로부터 1989년 소련의 몰락시기 동안 적용되었던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의제가 더 이상 동일한 방식으로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의 경로’와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이라는 두 가지 개념은 동일하지도 않고 동의어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의 1978년 이 문제에 대한 텍스트는 이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다. 그러면서 이제 시작된 논쟁의 대차대조표(평가)를 만들 시기는 아니며, 비판적 논쟁은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킬 맑스주의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논쟁을 열어놓고 있다.

 

이어지는 「역사의 경로의 문제에 대한 보고서」(9)에서는 서문의 의미를 다시 강조한다. 맑스주의가 강조한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의제는 20세기 대부분 시기를 “사회주의인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인가”의 형식으로 물질화된 후, 원자무기의 발전으로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주의인가 인류의 파괴인가”라는 전율적 형식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소련, 동구 블록의 몰락 이후에도 이러한 전망은 유효하다고 한발 물러선다. ICC가 수정한 개념은 ‘전쟁’이 아니라 ‘인류의 파괴’이다. 이러한 파괴는 ‘일반화된 전쟁인가?’, ‘사회의 해체’가 강조되어야 한다고 부연 설명한다.

 

오로지 자본주의의 전복만이 사회의 해체를 멈출 수 있다고 하면서도 자본주의 쇠퇴의 일반적 역동성은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에 의해 더 이상 직접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떠하든 간에 세계전쟁은 더 이상 의제에 올라있지 않지만, 사회적 해체가 각축하는 계급의 통제를 벗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쇠퇴의 길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ICC는 결론적으로 ‘역사의 경로’ 개념은 더 이상 현 세계정세의 역동성과 자본주의 해체 시기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힘의 균형을 정의할 수 없다고 그들의 해체 이론을 재강조한다.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의 ‘역사의 경로’에 대한 논쟁을 요약해보자.

 

첫째, ICC는 ‘역사의 경로’ 개념이 ‘해체’ 시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는 반면, ICT, IGCL, NC, GCCF 등은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의제가 여전히 유효하며, ICC는 계급투쟁을 폐기했다고 비판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에 대한 이해,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이해 등의 근본적 논쟁을 내포하기 때문에 더욱 심화된 문제 제기와 논쟁이 요구되는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둘째, 해체 시기를 양대 제국주의 블록의 소멸(소련의 해체로 인한)로 보고 계급의 힘의 균형이 더 이상 의제가 아니라는 ICC는 소련을 포함한 ‘이른바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미 세계자본주의 틀 안의 ‘국가자본주의의 몰락’을 자본주의 해체라는 새로운 의미로 규정하기에는 스스로 모순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계급투쟁은 필연적인 역사발전의 동력이기 때문에 ‘해체’의 문제를 자본주의를 넘어선 ‘인류의 파괴’로 본다면 우주적 차원의 더 넓고 깊은 인식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셋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논쟁이 맑스주의 원칙, 정치노선, 강령 등의 본질적 개념과 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회주의’, ‘기생주의’라는 조직 문제에 한정되고 서로를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세계혁명과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루어 낼 세계혁명당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의 경로’ 논쟁이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이글을 정리하는 과정에 ICC의 동조자가 ICC에 대한 IGCL의 공격을 ‘새로운 기생주의적 공격’이라고 비난하면서 ICC와의 연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10) 내용은 「코뮤니스트」 10호 논쟁(1)과 이 글에 자세히 실려 있으므로 생략한다. 다만 이 동조자는 마지막에 ICT가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이름으로 ICC에 연대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글은 제국주의 전쟁과 계급투쟁의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계속>

 

2020년 5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오세철

 

 

 

 

<주>

 

1. 「코뮤니스트」 10호, 2019년 5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07~116쪽 참조

 

2. 「코뮤니스트」 10호, 2019년 5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47쪽

 

3. 「스페인 코뮤니스트 좌파인 NC는 누구인가」, 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02/who-who-nuevo-curso

 

여기서 ICC는 NC가 코뮤니스트 좌파와 트로츠키주의 사이를 혼동하고 있으며, 코뮤니스트 좌파와 NC 사이에는 강령적 연속성이나 정치원칙의 연속성이 없고, NC의 활동이 맑스주의 비판과 거리가 멀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NC의 주요 활동가인 Gaizka가 스페인 「사회주의 노동자 당(PSOE)」과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를 자유주의자이거나 극우세력의 일부분이라고 비난한다.

 

4. 「국제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맞서는 ICC의 새로운 공격」, IGCL, 2020년 2월 1일

 

5. 「IGCL과 코뮤니스트 그룹에 함께 하려면」, IGCL, 2019년 8월 15일

 

6. GCCF의 편지, 2019년 11월 30일

 

7. 「1930년대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와 제4 인터내셔널의 역사적 주장에 대한 [해방-NC]에 대한 편지」, 2019년 11월 15일

 

8. 「역사의 경로에 대한 보고서 서문」, 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06/introduction-report-historic-course

 

9. 「역사의 경로의 문제에 대한 보고서」, 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05/report-question-historic-course

 

10. 「새로운 기생주의 공격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ICC와의 연대를 호소하며」, TV / 2020년 2월 19일, 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29/appeal-solidarity-icc-proletarian-milieu-faced-new-parasitic-attack

 

 

 

<이전 글>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1)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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