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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1940년, 레온 트로츠키 암살 - 우리가 잊지 못하는 날

1940년: 레온 트로츠키 암살 - 우리가 잊지 못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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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추모글과 연대기는 트로츠키 암살 80주년인 작년(2020년)에 작성되었으며,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코뮤니스트 좌파의 입장글로  "트로츠키를 인간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와 노동자 운동 모두를 둘러싼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할 필요를 인식하기 위해" 쓴 글임을 밝혀둔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40년 8월 21일 저녁 7시 25분, 붉은 군대의 영웅적 조직자이자 코뮤니스트 혁명의 열렬한 설교자였던 레온 트로츠키가 멕시코시티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가 죽기 26시간 전, 스탈린주의자 게페우(GPU, 국가정치보안부) 요원 암살자가 레닌의 오랜 동지를 도끼로 내리쳐서 두개골을 박살 냈다.

 

그의 부인이자 신실한 동지였던 나탈리아 세도바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머리맡에서 밤을 새웠다. 그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렸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고 때로는 호흡이 곤란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부드러웠다. 그날 밤과 그다음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저녁 무렵, 두개골 절개수술이 끝난 후 의사들은 호전되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다가 그의 호흡이 짧아지고 거칠어졌다 … 나는 모든 희망을 걸고 기원했다 … 나는 지쳐서 의자에 쓰러졌다. 나의 예감이, 어쩌면 움직임이 나를 깨웠다. 나는 내 앞에서 흰 코트를 입은 두 명의 의사를 보았다. 나는 이해했다. 레온 다비도비치는 조금 전에 평화롭게 잠들었다. 그는 60세였다.”

 

그에 관한 우리의 입장은, 트로츠키가 1920년대 이후 러시아 안팎에서 혁명의 패배에 직면했을 때 보여준 이론적-정치적 접근 방식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우리는 트로츠키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분석을 위해 조만간 팸플릿(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을 증보판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저지른 심각하고 때로는 매우 심각한 오류에도(그의 추종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그가 암살당하기 6개월 전인 1940년 2월 27일에 썼던 짧은 쪽지 글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과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흔들리지 않는 희망과 끊임없는 투쟁을 그와 함께 공유한다.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중 42년 동안은 맑스주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내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요, 맑스주의자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코뮤니스트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나타샤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에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1940년 2월 27일 ,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레온 트로츠키)

 

 

2020년 8월 21일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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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 연대기 (1879-1943)

 

우리의 팸플릿(『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방식은 트로츠키를 인간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대인 논증(對人 論證)이 혁명적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소용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역사는 영웅의 역사라는 부르주아 역사관을 절대 거부하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의 삶(그리고 사실 레닌의 삶)은 개인이 물질적 환경을 넘어설 수 없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밝힌 경우는 트로츠키와 노동자 운동 모두를 둘러싼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연대기 개요는 우리 논의의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1879년 10월 26일. 레브 다비노비치 브론슈타인(Lev Davidovich Bronstein), 안나와 다비드 레온테비치 브론슈타인의 다섯째 아들로 남우크라이나 Yanovka에서 태어났다.

 

 1881년. 러시아 농민 미르를 사회적 단위로 선택한다면 서구 노선을 따르는 산업혁명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인민주의자에 의해 차르 알렉산더 2세가 살해됨. 인민주의는 이 시기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적 운동이 된다.

 

 1883년. 플레하노프(George Plekhanov)와 자술리치(Vera Zazulich)와 악셀로드(Pavel Axelrod)는 노동해방(Emancipation of Labour) 그룹인 첫 번째 러시아 맑스주의 조직을 설립한다.

 

 1895년. 레닌과 마르토프(Martov)는 노동계급 해방 투쟁연맹(the League of Struggle for the Emancipation of the Working Class)을 설립했다. 그 지도자들은 즉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보내진다.

 

 1897년. 남러시아 노동조합이 L.D. 브론슈타인(Bronstein)과 맑스주의를 끌어안고 공장에 리플릿을 뿌리기 시작한 전 나로드니키(Narodniks, 인민주의자)에 의해 설립된다.

 

 1898년. 브론슈타인, 체포되어 여러 감옥을 전전하다. 오데사에서 간수 트로츠키는 그가 후에 알려질 필명에 대한 영감을 준다.

 

 1902년.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쓴다. 이스크라 출간, 트로츠키는 Piero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다. 트로츠키, 시베리아에서 최초로 탈출한다.

 

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뉜다. 트로츠키는 멘셰비키 편에 선다.

 

 1904년. 트로츠키, 멘셰비키 분파에서 사임한다.

 

 1905년 1월 22일. 피의 일요일. 노동자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대량 학살로 혁명의 첫해가 시작된다. 트로츠키는(나탈리아 세도바와 함께) 러시아로 돌아온다. 11월, 트로츠키는 상페테르부르그 소비에트의 두 번째 의장(Khrustalev-Nosar의 체포 후)이 된다. 레닌은 중단 없는 혁명을 주장한 「민주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을 쓴다. 트로츠키는 11월, 혁명이 무너지자 체포된다.

 

 1906년. 감옥에서 영구혁명 이론을 처음으로 진전시킨 「결과와 전망」을 쓴다.

 

 1907년. 시베리아에서의 두 번째 탈출, 빈에 정착, 그곳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재결합을 설파하는 인쇄물인 프라우다(Pravda)를 편집한다. 레닌은 이 시기에 그를 ‘수다쟁이 트로츠키’ 정도로 묘사한다.

 

 1908년. 제2 인터내셔널의 슈트가르트 대회에서 룩셈부르크, 레닌 등이 제안하여 유럽 전쟁이 일어날 경우 총파업을 요구하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보스니아의 위기는 곧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전쟁이 되었다. 독일은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도록 오스트리아를 지원한다.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사회민주주의의 지도자들은 제2 인터내셔널의 해결방안을 무시했고, 그들 각각의 정부를 지원했다. 오직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의 정당들만이 전쟁에 반대했다. 트로츠키는 프랑스로 가서 마르토프의 반전 신문인 Golos(The Voice)와 Kievan Thought와 함께 일하기 전에, 스위스로 가서 「전쟁과 인터내셔널」이라는 전쟁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

 

 1915년 2월. 트로츠키는 Nashe Slovo에서 멘셰비즘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9월, 11개 국가를 대표하여 온 38명의 사회주의자가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찜머발트에서 만난다. 트로츠키는 전쟁에 반대하는 찜머발트 선언을 썼지만,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를 요구하는 레닌의 국제주의자 입장을 지지하는 좌파에 함께하지 않았다.

 

 1916년. 키엔탈 대회는 ‘좌파’와 ‘평화주의자’의 분열을 확인한다. 프랑스 정부는 트로츠키의 출석을 막는다.

 9월. 트로츠키는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스페인을 거쳐 미국에 도착한다.

 

 1917년 3월. 2월 혁명의 발발에 대한 소식을 듣고, 트로츠키는 러시아로 향했으나, 증기선이 Halifax, Nova Scotia에 정박했고, 그래서 영국은 그를 800 독일인과 함께 전쟁 포로로 억류했다. 찜머발트 대회에 대한 그들을 향한 트로츠키의 연설은 감옥 당국에 의해 중지되었다.

 

 4월. 레닌,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한다. 그의 4월 테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 줄 것과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볼셰비키에 의한 코뮤니스트 이름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많은 볼셰비키 지도자들(트로츠키의 매형 카메네프를 포함하여)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 5월. 트로츠키는 4월 29일 영국에서 석방되어 러시아에 도착한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5월 7일 만났고, 국제혁명의 맥락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러시아의 의제라는 데에 동의한다. 트로츠키는 더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다시 합쳐져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

 

 7월. 볼셰비키 슬로건 영향 아래의 크론슈타트 수병, 성급하게 볼셰비키가 임시정부로부터 권력을 이양받도록 힘쓴다. 트로츠키는 사회혁명당(SRs)의 지도자 빅터 체르노프(Victor Chernov)를 분노한 수병들로부터 구해낸다. 임시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할 충분한 군인을 소집할 수 있었고, 볼셰비키는 배척되었다. 트로츠키는 그가 레닌을 지지함을 발표했고, 투옥되었다.

 

 8월, 코르닐로프 장군에 의해 시도된 쿠데타는 케렌스키가 그 육군참모총장에 대항한 인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재합법화했다.

 

 9월.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된다. 9월 23일, 그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의장으로 선출된다.

 

 10월. 트로츠키는 레닌의 케렌스키 정부 전복 요구를 지원한다.

 

 10월 24일.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군사혁명위원회(원래 코르닐로프와 싸우기 위해 세워진)의 의장으로서 트로츠키는 케렌스키가 노동자 계급에 적대하여 선제 파업을 시도했을 때, 권력의 전복을 조직했다. 트로츠키는 케렌스키의 전복을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25일 그 유명한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당의 마지막 비문 - 그들이 이제는 그들이 속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는 -을 선언했다.

 

 11월.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새로운 권력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트로츠키가 소비에트의 의장으로서, 새로운 정부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는 레닌의 제안을 거절하도록 만든다. 새로운 정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을 때,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적 냄새가 나는 장관(Ministers)이라는 이름 대신 인민위원(People Commissars)이란 이름을 제안했다. 트로츠키는 외무인민위원이 되었다. 외무인민위원으로서, 트로츠키는 그가 단순히 제국주의자 연합국(러시아, 프랑스, 영국) 사이의 비밀스러운 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이 연합국 측에 대한 정복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발표하는 협정문을 출간한다. 그러나 그는 독일 제국 최고 사령관과 평화의 본질을 협상하는 임무를 맡았다.

 

 12월. 트로츠키는(카메네프와 요페(Joffe)와 함께) 독일 참모 그룹과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에 도착한다. 그 위원단은 독일 군인들에게 혁명을 촉구하도록 하는 리플릿을 돌렸다. 그는 레닌이 트로츠키의 전쟁도 평화도 아닌 노선을 지지한다면, 트로츠키는 볼셰비키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를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레닌의 인식을 지원할 것이라는 레닌의 제안을 수용한다.

 

 1918년 3월 3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 조약, 핀란드 소비에트 공화국과 우크라이나의 그 가장 비옥한 토지를 대가로 맺어진다. 이 시기 트로츠키는 사임한다. 그는 이제 전쟁 인민위원이 된다. 그다음 2년 반 동안 그는 적군을 조직한다.

 

 8월 27일. 트로츠키는 백군과의 내전에서 적군을 규합하기 위해 전선과 전선을 오가는 기차에서 묵는 그 유명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실제로 2년 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적색테러(Red Terror)에 대한 멘셰비키의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을 쓴다.

 

 1920년 12월. 이제 소비에트 공화국을 위협하는 300만의 프롤레타리아의 죽음, 배고픔, 무관심으로 인해, ‘전시코뮤니즘’은 대체되어야만 했다. 무엇으로 대체할 것이냐는 논쟁에서 트로츠키는 노동의 군사화를 제안한다.

 

 1921년 1월. 이탈리아 사회주의당은 세라티(Serrati)가 개량주의자들을 추방하지 않자 분열된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은 아마데오 보르디가(Amadeo Bordiga)를 지도자로 추대한다.

 

 3월. 10차 당 대회에서, 신경제정책(NEP)이 전시코뮤니즘 대신 채택된다. 노동자 반대파(Workers Opposition)와 같은 분파들은 공식적으로 금지된다. 그것이 끝나기 전에, 크론슈타트 반란은 투하체프스키(Tukhachevsky)에 의한 진압의 비극적 필요성[트로츠키]을 가져왔다.

독일에서 3월 행동의 실패로 포위된 소비에트 공화국의 즉각적인 구원에 대한 희망은 그 끝에 달한다.

 

 1922년 3월. 지노비예프는 코뮤니스트당 서기장으로 스탈린을 추천한다.

 

 1923년 2월. 이탈리아에서 보르디가가 체포된다.

 

 5월. 레닌 첫 뇌졸중. 레닌,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비판하지만, 스탈린의 제거를 촉구하는 유언을 쓴다.

 

 6월. 코민테른의 세 번째 확대 상임 위원회는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l)에 새로운, 그러나 혼성 지도력을 구축한다.

 

 

 1924년 1월. 레닌의 죽음.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그에게 모스크바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 5월. 그람시, 모스크바의 코민테른에서 2년간의 지도를 받은 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코민테른 지부(PCd's)의 지도자 자리를 차지한다.

 

 

 6월. 코민테른 5차 대회는 코뮤니스트당들의 볼셰비키화를 요구한다.

 

 11월. 독일 코뮤니스트당(KPD)은 독일 노동계급을 그 마지막 시기에 패배로 이끌었다. 트로츠키, 「10월의 교훈」 출간한다.

 

 1925년. 트로츠키, 전쟁 인민위원 자리에서 물러난다.

 

 1926년. 영국에서 총파업의 실패. 보르디가, 소련의 방향과 스탈린에게 도전하기 위해 코민테른 모임에 최후로 참석한다.

 

 1927년. 중국 노동계급이 패배한다. 트로츠키는 이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와 연합 반대파에 함께한다. 세 명 모두 당에서 축출된다.

 

 1928년. 트로츠키 알마아타(Alma Ata)로 보내진다. 스탈린, 소련에서 당과 국가의 총체적 통제권을 장악한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좌익 분파는 파리, 팡탱(Pantin)에서 공식적으로 재조직된다. 「프로메테오」(Prometeo)가 브뤼셀에서 출간된다.

 

 1929년. 트로츠키, 터키 Prinkipo Island로 망명. 반대파의 기관지인 「Bulletin of the Opposition」의 첫 호가 파리에서 발간된다. 월스트리트에서 공황이 시작된다.

 

 1930년. 보르디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에서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명목으로 공식적으로 축출된다.

 

 1933년. 트로츠키 「영구혁명」을 완성한다. 나치즘, 독일에서 권력 장악한다. 트로츠키, 국제 좌익 반대파가 기반을 두고 있는 프랑스로 가는 비자 획득. 이것은, <국제 코뮤니스트 연맹>(볼셰비키-레닌주의)이라는 이름이었다. 트로츠키와의 논쟁 후, 이탈리아 분파는 「빌랑」(Bilan) 출간을 시작한다.

 

 1934년. 레닌그라드에서 Kirov 암살로 소련에서 숙청이 시작된다. ‘프랑스 전환’으로 불리는, 트로츠키가 그의 지지자들에게 프랑스 사회민주주의당에 가입하라고 요구한 사건이 일어난다. 입당주의(Entryism)는 트로츠키주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 1935년. 트로츠키, 노르웨이로 간다. 「배반당한 혁명」을 출간한다.

 

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트로츠키, 멕시코에 도착한다.

 

 1937년. 일본, 중국을 침략한다.

 

 1938년. 트로츠키의 아들 레온 세도브, 스탈린의 요원에 의해 파리에서 암살된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죽음의 고뇌와 제4 인터내셔널의 책무」(「이행기 강령」으로 알려진) 를 쓴다.

제임스 버냄(James Burnham)과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의 샤흐트만(Max Schachtman)은 트로츠키에게 변질된 노동자 국가 공식을 포기하라고 한다.

 

 1939년. 2차 제국주의 전쟁을 발발시킨 히틀러-스탈린 조약과 폴란드 침공 발발한다.

 

 1940년. 스탈린 요원에 의해 트로츠키가 암살당한다. 제4 인터내셔널은 소련을 심지어 핀란드 침공 이후에도, 변질된 노동자 국가로서 방어하기를 계속한다.

 

 1943년 5월.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과의 제국주의 전시 협정의 일환으로 코민테른을 해산시켰다.

 

 7월.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한다. 이탈리아에서 파업의 물결. 이탈리아 좌파,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을 지도자로 하는 그들은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비밀스럽게 <국제코뮤니스트당>[Battaglia Comunista] 을 결성한다.

 

 11월. 「프로메테오(Prometeo)」 본간 제1호 발간한다.

 

 

<원문 출처>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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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계급전쟁을 조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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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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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2021년 9월 ~ 2022년 2월

 

 

▶ 토론 주제

 

1. 코뮤니스트 좌파와 세계혁명   <발제 ㅣ 오세철>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논쟁, 자본주의 쇠퇴-해체 문제 등)

 

2. 코뮤니스트 강령과 당 건설    <발제 ㅣ 이형로>
   (코뮤니스트 정치원칙/강령, 선거 강령과 계급의식, 혁명당 건설)

 

3.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국제주의 
   (쿠바, 미얀마 투쟁 등 최근 쟁점, 민족문제와 국제주의 원칙)

 

4. 혁명과 반혁명,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역사적 교훈
   (파리코뮨 150주년, 크론슈타트 봉기 100주년 교훈 등)

 

5. 코로나19와 자본주의, 노동자계급과 계급투쟁 전망  <종합토론>  
  (코로나 19-자본주의 위기와 노동자계급, 계급투쟁 전망)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투쟁!

코로나19 이전의 자본주의가 아닌 야만의 체제 전복!

 


□  9월 말부터 시작합니다.
자세한 일정과 내용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 참가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주최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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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환상 : 영원한 반(反)노동계급 무기인 개혁주의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환상 : 영원한 반(反)노동계급 무기인 개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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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각각의 새로운 충격으로 그 위기는 더욱더 심화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생산과 유통의 혼란은 기존 시스템의 어려움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노동계급은 국가 개입이 계급과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조건과 "공동체"에 가져올 이로운 효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자본의 좌파에 속하는 여러 정치 집단에 따르면,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EU)과 세계 각국이 대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한 것은, 국제 코뮤니스트들이 수십 년 동안 주장해 온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 내에 여전히 노동계급이 현재의 역사적 시기에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여지가 있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위기 원인을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더 나아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맑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서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EU와 유로존의 상황을 충족시키기 위해 중국식의 오래된 국가 자본주의와 다름없는 경제 요리법을 생각해낸다. 지난 4월 코비드-19 비상사태가 한창일 때 그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유로의 코로나 위기 : thenextrecession.wordpress.com)은 로버츠의 비전을 특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 로버츠는 이탈리아와 같은 EU 회원국들의 심각한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는 결국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경우 유로존 재무장관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경제 지원책이 비참한 이탈리아 자본주의를 되살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중앙은행(ECB)의 공적 채무 매입을 통해 이탈리아 국가가 실업자를 위한 일시적 노동 계획을 지원하고 채권시장에서 저비용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이탈리아 자본주의를 위해서 마지막 결전을 미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전에 국가 개입을 결정적인 요인으로 폐기했던 로버츠가 같은 글에서 투자 계획을 위한 EU 예산 증액과 대기업 과세의 조화를 완성하는 마셜 플랜의 실행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난국에 대한 로버츠의 대응은 모순적이다. 로버츠를 비유하자면, 자본 흐름에 아주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유로존 국가들에만 이익이 되는 최저의 공통분모를 위한 경쟁이다. 요컨대, 그와 같은 로버츠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은, 자본주의적 위기에 대한 그의 분석을 공유하지 않지만, EU 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나아가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유로존을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분명히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로버츠가 주창하는 이러한 국가 개입주의는 마치 EU와 유로존 개별국가의 더 많은 자본 투자가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본질을 바꾸거나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처럼, 이윤율 하락 경향의 법칙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계급 없는 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우리에게 교활하게 그리고 터무니없이 선전하고 있다. 이 법칙은 맑스에 의해 확인되었고, 2007~2008년에 발생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그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로버츠 자신에 의해 종종 신중하게 분석된다. 그러나 사실 맑스는 코뮤니스트 혁명가이면서 정치경제 평론가였고, 단순히 사회주의를 "국민"의 각성과 자본주의의 부흥으로 보는 마이클 로버츠 같은 학구적 맑스주의자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치경제가 자본주의와 함께 태어나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고, 연구되어야 하는 규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로버츠와 그의 친구들이 자본주의, 상품, 국가, 그리고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적 기구와 "사회주의"를 상상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코뮤니즘은 경제에서 국가 개입의 강력한 신봉자와 함께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구제를 열심히 하는 여러 개혁론자에게서, 경제 또는 자본주의 계급의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가 아닌, 현재 상황을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진정한 운동(1)이라고 아마도 말할 것이다.

 

맑스 「자본」 제1권의 한 구절에서 단일 자본가 또는 자본가 연합의 독점 형성이 사회 자본의 집중과 중앙집중화 과정의 극단적인 결과로 제안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2) 이것은 자본가 연합이 사회적 자본을 독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자본가 국가일 수 있고, 집단적 자본가나 기업가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엥겔스는 「반 뒤링」에서 집단 자본가로서의 국가의 역할에 관해 썼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 수준 자체가 자본가 착취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을 해야 하여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결국 직접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이런 식으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반 뒤링」에서 엥겔스의 주장을 모든 자본주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제국주의 시대에 이것은 모든 곳에서 국유화 또는 경제 전반에 대한 국가 개입의 증가가 특징지어져 왔다.

 

실제로 지난 50년 동안 이윤율 하락으로 매우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 국가도 신자유주의 단계로 간주하는 경제 지원 대책에 의존해 왔으며, 또한 국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되는 특정 기업이나 기업집단의 민영화와 분배를 진행해 왔다. 비록 이러한 국가 개입의 형태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30년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중요한 개입을 보았다. 특히, 국가 개입은 공공 부채를 늘려서 수익성이 없는 기업과 은행의 "구제"로부터 노동 시장의 구조 개혁이라 불리는, 연구와 개발로 만들어진 투자뿐만이 아니라 자본의 요구에 더욱 더 호응하는 노동계급의 착취 방법, 그리고 그 가치보다 낮은 노동력의 가치를 낮추는 방법까지 다양했다. 소부르주아 선거 고객의 충성심을 보장하고 "사회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상품에 대한 "수요"를 지원하기 위해 국가가 제공한 돈의 홍수도 잊지 말아야 한다.(3)

 

자본주의 국가는 그들이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이익을 해친다면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의 조건을 결코 "개선"한 적이 없다. 반대로, 자본주의 국가는 이른바 말하는 노동 시장의 "개혁"을 통해 노동력 가치 이하의 임금 감소를 촉진하는 것 외에도 사회 서비스, 보건 및 연금(즉, 간접 임금과 지연 임금)을 대폭 삭감하여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연계된 전염병의 확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만들었다. 이윤율 하락에 따른 구조적 위기 등으로 복지제도를 무참히 축소해 온 자본주의 국가 스스로 공동체 전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조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임금노동자들의 상태는 대유행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강요해 온 생산 중단과 한계로 인해 악화하였다.

 

게다가, 이윤 때문에 헐떡이는 경제에 대해 자본주의 국가가 지원하는 부문에 대해 대가를 지불한 것은 항상 프롤레타리아트였다.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먹여 살리는 잉여 가치의 원천인 노동계급은 이번에도 생활과 노동조건이 악화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국가 “자선”에 대한 법안이 해결되는 방식이 이러하다. 일부 개혁주의자들이 기대하는 자선은 "사회주의"나 일반적으로 더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이다. 사실, 공채와 사채는 자본주의 운영 메커니즘이 실패할 때 단지 잃어버리게 될 미래의 재화 생산에 대한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마이클 로버츠도 지난 6월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채택된 조치가 위기를 종식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부채가 늘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인정했다.(4)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관점에서 볼 때, 한편으로, 개혁주의가 조장하는 환상에 의해 나타나는 피해는 단지 일상 투쟁에서 계급 투쟁을 훼손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그러한 신뢰는 노동계급의 자주적인 정치 조직을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세계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전망을 약화시킨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혁명적 전복과 노동자평의회 건설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반면에, "공동체"의 추정되는 복지를 가장한 국가의 개입은 심각한 체제 위기나 노동계급에 기반을 두고 세워진 경제 부흥의 단계에서 자본주의를 안정시키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것은 사회 평화를 유지하고 제국주의 간 충돌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자본주의 국가 언론과 선전 공세가 제대로 봉사하였으며, 이것은 반드시 "후방"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 만약 맑스와 엥겔스(5) 시대에 어떠한 환상이 이해될 수 있다면, 이것들은 이제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이다. 1세기 이상 우리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주의 국가의 개입주의가 어떻게 해서 강력한 반혁명 무기로 제공되어 왔는지를 보아왔다. 게다가, 그들의 시대에도, 맑스와 엥겔스는 페르디난드 라살레와 그의 초기 독일 사회민주주의 추종자들처럼 사회주의가 갑자기 그리고 설명할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통제 속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자들을 거칠게 비난했다.(6) 맑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썼듯이, 민주주의 국가 초당파(7)를 믿는 노동계급은 자신의 혁명적 과업과 노동계급 내에서 이러한 신념의 확산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8)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경험하고 있는 반혁명 단계의 깊이와 계급에 뿌리를 내리는 혁명 정당을 건설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2020년 11월 21일

Gracchi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주>

 

(1) 「독일 이데올로기」를 보시오.

 

(2) 분명히, 그것은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와 함께 두말할 것도 없는 순전히 교훈적인 가설이었다.

 

(3) 게다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반적인 수동성.

 

(4) 그는 그가 바라던 새로운 마샬 플랜이 이윤율 하락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로버츠의 “해결책”이 국가 자본주의(즉, “공공 소유”가 가치법칙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Weekly Worker의 Modern Monetary Theory (MMT)에 대한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MMT 지지자들이 맑스주의적인 정책 결론, 즉 공공 소유와 생산 계획을 통한 생산적 부문의 전용과 경제 가치의 법칙을 억제하거나 종료하는 '지배적인 수위'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무제한 자금 창출을 통한 정부 지출 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weeklyworker.co.uk)

 

MMT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leftcom.org를 참조하시오.

 

(5) 무엇보다도 맑스와 엥겔스는 항상 자본가들이 단지 전형적인 "더블 브레스트 재킷을 입은 제철소 사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본의 좌파는 생산 수단의 소유권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자본-임금노동 관계가 착취 시스템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항상 무시해 왔다.

 

(6) 그들은 「반 뒤링」에 의해서 입증된 바와 같이 노동운동 내의 이러한 종류의 논쟁에 익숙했다.

 

(7) 번역자 주 – 공정한, 초당파

 

(8) 역자 주 – 두 가지 이상의 내용을 비교할 때 서로 다른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변경이 필요하지만, 기본 사항은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말할 때 사용된다.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12-07/the-illusion-of-state-intervention-in-the-economy-the-eternal-anti-working-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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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교훈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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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선거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거와 의회제도는 사멸해가는 자본주의 문명에 속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회와 내각은 그 자본주의 문명과 함께 사라질 겁니다.

 

우리는 노동자평의회 건설과 코뮤니즘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실비아 팽크허스트, 「노동자 전함」, 1922년

 

 

나는 현 사회 체제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전복과 사회주의 연방의 즉각적인 수립을 지지합니다.

 

나는 모든 부르주아 선거 운동과 개혁 공약을 거부합니다.

 

노동자들은 선거가 아니라 자기 권력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와 의회 제도를 파괴하기 위해 현장과 거리에서 투쟁해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 체제인 코뮤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가이 알드레드, 「노동자계급 유권자들에게」,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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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교훈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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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원칙으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적 질서가 오랫동안 발전해 온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선동은 선거와 부르주아 기관에서 보이콧을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선거 활동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실천은 이중적인 위험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의 모든 힘을 빨아들여 당의 다른 모든 부분을 마비시킵니다. 

선거 활동을 수행하는 당 조직은 혁명에 필요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에 맞는 조직의 성격과 뚜렷이 다른 매우 특수한 기술적 성격을 발전시킵니다. 당은 유권자들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여러 선거위원회로 쪼개집니다.

언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 결사의 자유 등을 활용하는 것은 행동 방식 문제입니다. 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관 문제입니다. 부르주아 기관은 노동자 소비에트 같은 프롤레타리아 기관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 이후에 언론, 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선거와 의회 연단에서도 선전을 수행할 수 있다.”라고들 합니다. 저는 거기에 약간의 유치한 주장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선거와 의회 연단에서 발언은 언론에 실리게 됩니다. 그 언론이 부르주아 신문이라면 모든 것이 왜곡될 것입니다. 그 언론이 우리 편 신문이라면 나중에 어차피 인쇄되어 나올 내용을 연단에서 발언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착취자에서 피착취자로 권력 이전은 그 뒤로 대의제 기구 변화를 가져옵니다. 부르주아 의회주의는 소비에트 체제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혁명적인 직접 행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은폐하는 민주주의라는 낡은 가면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의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며, 이 관점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에 완전히 부합합니다.


"코뮤니스트당이 의회주의(선거주의)적 실천에 완전히 다른 성격을 부여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시지프스의 노고처럼 힘만 허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코뮤니스트 혁명 대의는 바로 착취자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을 요구합니다."


아마데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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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교훈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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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코뮤니스트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의회로 들어갈 겁니다.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내몰았던)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다시 지지받게 될 겁니다. 

코뮤니즘을 위해 건설하는 당 대신, 관성적으로 정당들을 조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애국주의자들 및 부르주아 분자들과의 의회주의적 타협이 다시금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결국 서유럽에서 모든 혁명은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연설의 자유는 억압당할 것이고, 훌륭한 코뮤니스트들은 모두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2 인터내셔널에서 발생했던 모든 관행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기회주의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동지가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대열 외부에서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과 힘을 황폐화하는 기회주의가 다시 섞여 들어오는 것은 좌익이 너무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천 배 더 나쁠 것입니다.

 

헤르만 호르터, 「레닌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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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 다시 꺼내든 낡은 당 건설 노선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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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주변에는 항상 자신들이 노동자계급을 대변하거나 지도하는 세력이라 자임하는 정파와 파벌이 득세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수이지만,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사회주의를 실천한다는 세력도 일부 포함된다. 그들은 항상 "노동자계급이 역사와 혁명의 주체이고...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 전체를 통제해야만 노동해방에 이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노동자계급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과 권력 장악 이후까지 일관되게 노동자계급을 권력과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지, 아니면 반대로 노동자계급을 대리하거나 이용하는 역할을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한국에는 사회주의/혁명 세력을 자임하면서 반(反)자본주의, 사회변혁, 노동해방, 사회주의자 등을 내걸고 노동자 운동에서 이른바 좌파 블록을 형성한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이 좌파 블록으로 모인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 내부에서 온갖 폐해를 끼치며 기득권을 누려온 다수파 운동(이른바 자민통으로 지칭되는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반사작용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보면 여전히 자기 운동의 최종목표와 노선을 명확히 하지 못한 운동의 퇴보에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쇠퇴기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개량/개혁을 넘어선 혁명적 이행전략을 가진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투쟁에서는 사회주의와 무관한 실천만을 하면서도 급진적 구호나 그럴듯한 전술로 조합주의/노동자주의/선거주의 실천을 가리고 있다. 이른바 ‘좌파’의 정체성은 단지 다수파 운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혁명적 기질과 줄서기로 드러낼 뿐이다.

 

이들 좌파 중 다수는 혁명적 이행전략인 노동자(평의회) 권력 창출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현실에서 혁명적 조직과 실천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때때로 전술을 바꾸면서 전략적 과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 즉, 계급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장기적 전망에서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한 실천을 통해, 주체들의 혁명적 계급의식 획득과 자기 조직화라는 전략적 목표로 꾸준히 나아가지 않고, 단기적이고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는 것이다. 공동전선의 일종인 좌파 블록이 정치노선과 전략적 목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反)정립으로 형성되는 경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더욱이 이들이 개량주의 세력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입당 전술, 노동자 공동전선은 개량주의 세력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하고 혁명 세력과 함께한다는 환상을 유포 시켜, 오히려 개량주의자들의 본질을 가려주고 입지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동맹은 자신들이 다수파를 장악하지 않는 한 이들과 함께하는 내내 개량주의 노선을 묵인하게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깨고 나와 모든 것을 무효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개량주의 세력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옹호하는 전술의 결말은 노동자들이 그것으로부터의 단절하는 시간을 지연할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전술의 남발로 인한 이합집산과 분열의 반복은 노동자 대중에게 정치 운동의 신뢰를 잃게 할 뿐 아니라, 현장 투쟁에서 단결을 실질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계급의 전위역할을 해야 한다는 착각과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자만에 빠져, 온갖 현장 투쟁에 개입하면서 투쟁의 목표와 원칙을 훼손하거나 계급의식과 자기조직화를 자신들에게 맞춰 인위적으로 재단해 왔다. 계급의식과 계급투쟁 발전에 목표를 두지 않고, 자기 정파(그룹)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 정세에 조급하게 개입하는 운동이, 장기적 전망이나 운동의 본질에 접근하는 투쟁을 계획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급의 전위란 자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전위는 계급투쟁 과정에서 계급의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분을 조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매우 길고 힘든 계급의식 발전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퇴조-상승의 모든 기간에) 운동의 최종목표를 명확히 하고 (코뮤니스트) 혁명 강령을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방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혁명적 소수의 신뢰와 영향력이 노동자계급 안에 깊이 뿌리 내려 주요한 투쟁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계급의 전위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전위(혁명조직)가 노동자계급을 혁명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안에 혁명적 부분(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당(조직)은 적대하는 계급과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계급 안에서 모든 투쟁에 함께하면서 혁명강령을 방어하는 집단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노동자계급 주위에서 전위 역할을 한다는 세력들은, 계급투쟁 개입을 노동자 투쟁을 대리하거나 자신들이 투쟁의 배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공동전선’이라는 외피를 쓰고 상층중심의 공동전선(투쟁), 입당 전술, 노동자 후보/선거연합, 계급연합, 노동자정부 등의 혼란스러운 전술을 남발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전선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공동전선의 상대에 따라 강령의 수준을 낮추고 전술의 원칙을 바꿔가면서 계급의식을 혼란에 빠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부르주아의 책략에 눈을 감는 상태에서, 혁명조직의 책무는 혁명의 최종목표를 보다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알려 행동을 촉진하는 일이지, 자신의 정치를 부르주아 대중 정치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다.

 

당 건설 경로에서도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적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고,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코뮤니스트 노동자가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혁명적 주체를 형성하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이들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조급한 정세 대응에만 매달리거나, 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지속해서 후퇴시켜왔다.

 

이제는 그것의 만회를 위해, ‘(사회주의/좌파 대선후보를 통한 당 건설’이라는 낡고 악취 나는 전술을 슬그머니 들고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정치 노선이 불분명한 (오랜 전통의?) 의회주의 제도권 소수 정당과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포기한) 비제도권 소수 정당이 추진 중인 사회주의 대중정당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한 축은 9년 전에 선거주의 세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른 한 축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위로부터의 대선 투쟁(후보전술)을 통해 그리고 실패한 진보정당 운동과 야권연대에 대한 반(反)정립 운동을 통해 투쟁 동력과 당 건설 주체를 확보하여 당 건설을 할 수 있다는 거짓을 유포했다. 결국, 공동전선을 통한 단계론적 계급정당 건설 노선이 선거 전술과 혼합되어 타락하는 운동 세력의 유력한 생존전략이 되었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도 없이 이들은 더욱 우경화하여 ‘사회주의 좌파 후보’ 간판을 내걸고 부르주아 제도권 정당으로 향하는 최악의 생존 전략을 채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이제라도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을 포기하고 부르주아 정치의 좌익으로 전향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신의며, 운동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비판은 아래의 인용문으로 대신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가능한 최고의 정치적인 외피이다. ... 자본은 ... 그 권력을 매우 공고하게 확립하는데, 부르주아-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 또는 어떤 정당의 변화도 이를 흔들 수 없다."(레닌, 「국가와 혁명」)

 

"민주주의" 선거는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권력을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정치 무대이다. 실제로 부르주아지는 이른바 "공공의 의견"을 매스미디어부터 시작하여 학교, 종교 제도로 모양 짓는 도구들을 통제한다. 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제도적 결정은 자본가들의 경제적 필요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국가의 관리자들은 지배계급의 대표들이다.

 

이러한 제도들을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환상이며, 이 제도들이 진실로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보유한 가장 훌륭한 정치적인 수단인 한 그러하다.

 

다양한 제도권 정당들은 지배하는 자와 그 반대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 기만적인 게임을 수행한다. ‘당’끼리 대립 뒤에는 종종 부르주아지의 서로 다른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있을 뿐이거나, 더 단순하게는 더 안락한 제도권 의석에 앉으려는 서로 다른 정치인들 간의 무의미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 체제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최선의 경우에도 정당은 관리에 있어서 환상에 불과한 차이를 제안할 뿐이다: 보다 인간적인, 공정한, 더욱 ‘민주적인’ 얼굴의 자본주의 등. 의회에 의석을 차지하고 있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자칭 코뮤니스트 정당들 또한 진정한 혁명적 강령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은 노동자 투쟁을 위한 제도적인 경로라는 환상만을 확산시킬 뿐이며, 대부분 언제나 (이른바 ‘급진 좌파’ 정당과 마찬가지라도) 지역 기관들에서 다른 부르주아 정당과 협력한다.

 

따라서 우리의 약속은 선거에서 대중 투표를 목표로, 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건설이 아니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급정당이다.”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 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 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 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에서의 당 건설과 같다. 더욱이 진공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진흙탕(부르주아 선거판)에 빠져버리는 것은, 그동안 진공상태에서 운동을 해왔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혁명의 승리는 계급의식이 혁명 강령에 근접했을 때 현실화한다. 이때 당과 계급은 차이는 가장 가까워지며, 비로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정당, 프롤레타리아 대중정당으로 현실화한다. 따라서 계급의식이 정체되어 있거나 혼란스러운 일상시기에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혁명과는 거리가 먼 개량주의 당을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강령에 입각하지 않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의 일을 대신하거나 관료적으로 관리하는 대리주의 당으로 향하게 된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후퇴할 수도 있기에, 노동자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적·이론적인 성과와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당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게 하고, 미래의 혁명적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혁명당의 과업이다. 혁명가/코뮤니스트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일반화하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한, 혁명가들의 개입은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다.

 

 

코뮤니스트 혁명이 모든 투쟁의 순간에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저항과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혁명가들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반드시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혁명을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개입하여 전 세계의 혁명진영을 재규합하는 혁명적 인터내셔널 건설의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건설할 당은 선거가 아닌 계급전쟁을 실천하는 정당, 부르주아 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독립한 계급 정당이다. 자본주의 쇠퇴기, 끝 모를 위기의 시기, 노동자계급에 필요한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코뮤니스트 노동자당임을 명심하자.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편집자 주>

이 글은 「코뮤니스트」 창간호에 실렸던 글이다. ‘공동전선’, ‘당 건설’에 대한 문제의식은 현재의 정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보완하여 다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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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6주기 :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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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6주기

 

(1942년 10월 24일 ~ 2015년 7월 31일)

 

 

 

 

 

"새로운 사회로 가려면, 상품 화폐 자본을 없애야 해"

 

 

자본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자본론』에서 상품부터 시작하잖아.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하면서 상품교환이 이루어지고, 상품교환에서 화폐가 생기며, 화폐를 가지고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해서,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잖아. 상품, 화폐, 자본은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귀결하게 돼 있어. 이 기본 요소들을 없애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게 돼 있어.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서는 노동하는 개인들이 모든 노동조건들에 대해 공동으로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혁명적 이행기에 생산수단이든 소비수단이든 사회적 생산물을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처분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야 해. 이래야만 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거나, 가치에 따라 교환되거나 하는 것이 없어지고, 따라서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와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고. 이행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고 모든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해. 

 

물론 이행기의 초기에는 아직 자본주의가 지배적이니까 화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장평의회에서, 지역평의회로, 전국평의회로 가면서) 노동자들의 연합이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계획적으로 이용하여 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생산한 것을 각 가정에 ‘택배’로 배달하면 될 것이므로 생산물이 시장에서 팔릴 필요도 없고, 노동자들이 화폐를 갖고 물건을 살 필요도 없어. 화폐가 계속 사용된다면, 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매점매석하여 물가를 폭등시켜 혁명을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에, 쿠바혁명에서도 체 게바라가 몇 번에 걸쳐 화폐개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2012년 11월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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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코로나19 위기 속 코뮤니스트 활동의 틀

코로나19 위기 속 코뮤니스트 활동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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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행은 모든 생산양식에 대한 실험이다. 그것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위기의 늪에 빠진 체제에 대한 특별한 실험이다. 결국 사스와 코로나19는 자본주의 체제의 결함을 드러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급격한 감염 전파에 대한 대응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역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예측한 대유행에 대한 환경 및 위생 상태 준비는 축적의 만성적 위기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축소되고 간과되었다.

 

대유행에 앞선 위기

 

코로나19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에 새롭고 위대한 구실 제공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역설적인 사실로 남는다. 2019년 11월 채택한 관점에서 지적했듯이(1),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새로운 붕괴로 향하고 있었다. 이는 거의 반세기 동안의 축적의 순환 고리가 끝나는 시점이다. 또한, 전 지구적인 전면적 계급투쟁은 제쳐두고라도, 2019년 말의 대중적 저항 사건은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대유행 시기, 조지 플로이드의 국가적 살해에 대한 청년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단결, 그리고 더 나은 보호를 요구하는 전 세계적 여러 시위는 노동자계급이 역사적 현장에서 사라진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경찰력 확대 및 경찰 부대에 대한 군사화 조직들이 증명하듯, 프랑스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의 지배계급은 사회적 위기를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심지어는 대유행을 진작시키기 위한 세계 각국의 모든 경비지출(혹은 화폐발행) 이전에도, 세계 부채는 이미 세계 GDP의 3배였다. 2019년에는 255조 달러의 신기록을 세웠다.(3) 2020년 4월까지의 부채는 세계 GDP의 331%에 이르렀다.(4) 이처럼 주요 자본주의 경제 전반에 걸친 부채는 이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볼 수 없던’ 수준에 달했다(5). 그리고 이는 단지 대유행 때문만이 아니다. 2012-2016의 전 세계 부채는 6조 달러 증가했지만, 이후 4년(2020년 9월까지) 동안 52조 달러로 증가했으며, 여기에는 당해의 9개월간의 15조 달러 증가분만 추가된 것이다.(6) 영국은 1945년 국가 부채 대부분을 갚는 데 40년이 걸렸다. 그것은 20년 동안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긴 세속적인 호황으로, 그 후 부채의 대부분을 평가절하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는 이 모든 조건이 작동하지 않는다.

 

부채가 중요한가? 현재 글로벌 기업(일부 은행 포함)의 16%를 사망한 것(좀비)으로 간주할 수 있다(2019년 11월 10%에서 증가). 기업은 절대 줄지 않는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기 위해 존재할 뿐이며, 오로지 마이너스 이자율만이 그들이 기능하게 한다. 어떤 금리 인상으로든 그들은 무너질 것이고, 일자리에 가져올 결과는 뻔하다.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의 이윤 창출 비율이 낮다는 사실을 스스로 반영하는 것이고, 이는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의 또 다른 실패

 

대유행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자본 국가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예외로 주목할 수 있다) 대부분 정부의 우선순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산을 유지하고 경제가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정당의 정부에 의한 수십 년 동안의 삭감 이래 남아있는 건강돌봄서비스의 부적합성을 강조했을 뿐이다. 너필드 트러스트(Nuffield Trust)에 따르면, 1948년 영국의 NHS(National Healthcare Service, 국민보건서비스)가 창설된 당시 480,000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7-8년 병상은 여전히 299,000이었지만 (킹스 펀드에 의하면), 부유 국가 중 중환자실 병상이 가장 낮은 수치를 포함한 127,225로 떨어졌다고 가디언지는 올 11월 보도했다.(7) 같은 기간 동안 인구는 1,700만 명 증가했다. 이들 서비스에 대한 압도적인 두려움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걱정하는 것 이상의 어떤 행위들을 유발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유행의 불가피성을 지적한 충분한 활동, 조사,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심지어 사스 유형의 한 종류로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이미 고민하고 있던 지배계급에 의해 이것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최근 ‘오로라(Aurora)’에 게재한 우리의 기사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환경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속적 착취와 파괴는, 박쥐, 설치류와 그 외의 작은 형태의 동물을 우리의 도시로 강제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병원체를 가지고 들어와 인간에게 옮긴다. 우리는 이들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없기에, 사스, 메르스와 같은 유행병을 낳고, 현재의 Covid-19 대유행을 초래하였다. 자본주의야말로 바이러스의 진정한 근원이다! Covid-19가 지금까지 끼친 영향은 파괴적이다. 11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공식적으로 120만 명이 사망했다. 이 수치들은 분명 대단히 과소평가 된 것이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은 대유행으로 인해 9천만 명이 더 극빈층으로 추락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바이러스 – 도끼는 노동자계급에 떨어진다)

 

대유행의 즉각적 여파는 2022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역사적 전례는 제시한다. 정신 질환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비대해질 것이고, 오랜 기간 지속할 것이다.

 

대유행의 분명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생산 단계에 있는 백신의 효율적 적용 속도 및 그 효용성이 그것을 결정지을 것이다) 또한 매주 수정되어야 할 성장 예측(또는 부족)을 발표하는 OECD/IMF/World Bank/등의 게임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현재 그들은 세계 경제가 4.4% 수축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전체 성장 3% 이상을 기록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는 노동자계급은 이미 심각하며, 더 악화하리라는 점이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08년 투기 거품의 붕괴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한 10년간의 긴축정책 이후, 전 세계 많은 노동자의 상황은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취약했다. 분명 Covid-19의 대유행은 취업률에 영향을 미쳤으며, 노동 조건에는 더했다. OECD에 따르면,

 

“...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출근이 불가능해지자, 활동이 예외적으로 급감했으며 전례 없는 실직이 초래되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초기 몇 달과 비교해 일부 국가의 노동 시간은 최대 열 배가량 감소했다. 9월 말 발표된 수치에 따르면, 공식적으로는 유로존 및 미국의 2천 5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실직 상태에 있다. 그러나 대유행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실제 숫자는, 국가가 지원하는 임시 휴업 제도에 의해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 노동력에서 제외된 사람들, 일주일에 원하는 만큼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그 이상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8)”

 

영국 경제는 다른 주요 선진국들보다 더욱 위축되었다. 2/4분기 영국 경제는 미국과 독일보다 두 배 이상 급격히 위축되었고, ONS(영국통계청) 기록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위축이었다. 영국에서는, Sunak(Rishi Sunak, 영국의 현 재무장관)의 해고 계획에 따라 노동자들은 몇 달간 기본급 혹은 임금의 80%만 받았는데, 그들은 이미 이전에 받았던 100%의 급여에 상응하는 청구 금액을 납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이는 많은 노동자는 (질병의) 증상이 있을 때도 강제적으로 노동했다는 것을 의미하며(9), 영국은 병가 중 급여가 ‘현재의 OECD 국가 중 최저인 곳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현재 정부는 마지못해 그 계획을 내년까지 연장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는 충분치 못할 것이다. 심지어 대유행으로 수백 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 후에도, 소매업 및 자동차 업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10)

 

한편으로 정리해고는 이미 속담처럼 ‘기록적인 비율’로 증가했다. 10월 ONS에서 발표한 이 수치는 지난 8월까지 세 달간 적용된 것이다.

 

“1분기 정리해고는 11만4천 명으로 증가했으며, 1995년 첫 통계가 발표된 후 최대 폭이었다. 한편 실업급여를 요구하는 이들의 수는 2천 7백만으로 증가했다. - 이는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이전의 3월 대비 두 배 이상의 수치이다. 실업률은 작년의 3.9%와 전 분기의 4.1%에서 4.5%로 증가했다. 이는 남성 자영업의 감소로 인한 것이다.(11)”

 

18~24세의 실업률은 16%를 웃돈다. 이는 번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또한 더 높아질 확률이 더 높다.),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은 세분화될 것이다. - 실업자, ‘안정적’ 일자리 노동자, 무기계약 기간 노동자, 등. 직업이 ‘안정적’인 노동자들은 생활 여건에 있어서 다른 둘의 상태, 훨씬 악조건 상황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요소에서 벗어나야 할 압박을 받을 것이다. (지난해의 딜리버루-영국판 배달 어플리케이션-파업에서 발견된 동지들과 같은) 불안정한 이들에게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단결할 것인가가 문제이다.(12) 한편 대량 실직은 노동자 투쟁에 있어서 결코 좋은 근거가 되지 못했다.

 

학생 또한 이제는 투쟁해야 한다. 그들은 경제를 유지 및 지속시키기 위한 시도 속에 두드러진 희생자였다. 그들의 지주(즉, 대학)가 존속할 수 있도록 빚을 더 지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흉악범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감금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브리스틀, 글래스고에서 맨체스터, 런던에 이르기까지 저항이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요컨대, 대유행은 이미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추세를 가속해왔다. 이들 사안 초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2019년 문서에 언급되었다. 자본주의 이윤 축적의 새로운 순환 고리가 작동토록 하기 위한 충분한 자본의 규모를 평가절하할 필요에 대한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대신에 국가적 개입(체제 붕괴의 큰 특징 중 하나)으로 필연적인 대규모 충돌을 피해왔다. 슘페터적 ‘창조적 파괴’의 순간은 발생하지 않았다(맑스주의 용어로는, 축적의 순환 고리 종식에서의 일반적 평가절하). 2008년, 금융권은 ‘너무 거대해서 실패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양적완화’와 같은 정책들이 체제의 실패를 피하기 위해 적용됐다.

 

최근에는 「파이낸셜타임즈」의 사설에서 다소 분명하게 인식한 바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대유행의 경제적 후폭풍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공공영역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 또한 그들은 국가가 다시 한번 자본주의를 구해주기를 계속해서 요구한다. ... 국가 개입에 대한 최고의 사례는 시장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위해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정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이래, 충돌은 불평등에 대한 대중(특히 청년)의 분노가 완전한 체제 변화에 대한 요구로 쏟아질 것이라는 위협이었다. 바이든노믹스(보기로 대기업 및 부자들에게 물리는 세금-CWO)가 이행된다면, 기업과 고소득자들에게 생활의 부담을 가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또한 더 큰 계산을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체제의 실패에 대한 더 명확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떠한 잠재된 장점도 옹호하지 마라. 그저 이윤 제도를 대신하여 그것을 계속 유지하라. 이것은 축적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체제-이미 기업의 부채는 세계 GDP의 102%에 달한다.-를 규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의 전망에서 명시한 똑같은 “세속적 침체”를 지속시키는 것을 규탄하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문제도 여기에 추가된다. 심지어 브랙시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것이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률의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전문가에 따라, 2021년 0.3%에서 5% 범주) 현 정부는 집권 이래 여느 때보다 무능해 보인다. 영국의 지배계급(전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들과 마찬가지로)이 체제의 경제침체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EU로부터의 탈퇴(EU는 이를 저지했다), 브렉시트가 경제를 자극할 것이라는 환상이 탄생한 것이다. 존슨 정부가 다가올 대재앙을 대비하기보다는 ‘허드 면책권’이 확립될 수 있다고 가장하도록 유도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대유행이 브렉시트의 계획에 가져올 영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PPE와 같은 문제에 딴지를 걸고, 마스크를 제작하는 일에 수십억 달러를 기부했다. 보건 경험은 없지만, 개인적 연줄이 있거나 토리당에 기부하는 민간 컨설턴트를 추적해서 찾아내서. 부패, 낭비, 무능함은 수 백만여 개의 PPE가 목적에 적합지 못한 존재로 버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정부가 요양원에 ‘소생시키지 말라’는 통보를 훨씬 더 잘 공급했지만! 막판에 이르러 그들은 EU와 피해 제한협정을 맺었다. 협정 없는 브렉시트는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므로, 이에 대부분의 영국 자본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상태로 브렉시트는 영국 자본의 거대한 목표 자체이며, 대부분의 기업 조직으로 인해 그 결과는 여전히 두렵다. 2021년의 경제가 급격히 침체하면서, 대유행은 ‘리틀 잉글랜드’ 여단에게 체면을 세울 구실을 마련해 줄 것이다.

 

제국주의 경쟁의식

 

많은 사람에게 봉쇄의 시간은 늘어만 가는 것 같지만, 역사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다. 심지어 대유행 와중에도, 제국주의 전선에 그저 서 있기만 한 것은 분명 아니다. 대유행 동안 계속되는 내전 및 소규모 교전(인도/중국, 시리아, 예멘), 군사 위협(대만), 군사 폭력에 대한 새로운 소요들(나고르노-카라바흐, 티그레이)로 인해 제국주의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 되고 있다. 더욱이 상하이협력기구(최초로 군사적 차원의 대응. 미국은 영국 및 호주와 같은 국가들과 ‘민주주의 방어’ 기치 아래 활발한 반(反)중 연합을 형성 중이다)와 블록 형성(중국-러시아-이란을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들과 하나로 연합)이 명백히 가속화되고 있다.(15). 과거의 영국 파운드화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국으로 당연시될지라도, 그리고 세계 통화로서 달러의 역할 유지를 포기할 준비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일일지라도, 그의 패권은 지속해서 도전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프리카의 ‘소프트 파워’를 통해서건 아시아에서의 노골적인 공격에서건 중국의 제국주의적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최근 신청자가 지나치게 많았던 최초의 국채 발행은 베이징의 또 하나의 작은 승리로 판명되었다. 중국의 영향력은 11월 15일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미 동맹국, 호주 및 일본을 포함하여 아-태평양 열네 국가들과의 체결)으로 더욱 커졌다(RCEP).

 

자본주의 강국들은 갑작스러운 전쟁을 벌이지 않고, 그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상대 자본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거나, 다른 모든 선택권이 배제되었다고 느낄 때만 그렇게 한다. 순간의 대리전, 대체로 드러나지 않은 사이버 전쟁으로 대체하지만, 이들 역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의 (매우 실제적인) 분열의 중요성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중국의 가능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중국의 (느리지만) 지속적 성장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가 호언장담했던 유라시아 전역의 기반 시설로 1조 달러를 투자(1940년대 미국의 마셜플랜 보다 7배 이상의 규모이다.)한 ‘벨트 및 도로’ 계획이 지금은 난관에 부닥쳐있다.

 

2016년, 중국의 국영 은행들은 ‘의존국’에 750억 달러를 빌려주고 있었는데, 이것이 2019년에 한낱 40억 달러로 급감한 것이다. 파키스탄 및 스리랑카,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는 채무 상환 연기를 논의 중이다. 그 사이 중국은 채무 불이행금액 150달러 중 60달러를 빌려줌으로써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두 제국주의 거국에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한편, 지배 엘리트들은 상대방에게서 오는 위험을 인식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상대방’에 대한 일상적 악마화에서 시작하여, 백신을 먼저 획득하기 위한 경쟁, 그리고 대유행을 일으킨 것에 대한 경쟁국의 비난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획득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일반화된 전쟁에 대한 준비의 일부가 될 것이다.

 

환경 위기

 

또한, 장기적으로(단기간이더라도), 환경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초기 배출량을 일부 감소(항공편의 결항 및 재택근무자를 고려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에너지의 사용 증가는 모든 이득이 무효임을 의미했다. 2020년은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되며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위기는 그린 뉴딜 및 새로운 방식의 노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생각을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윤 및 지속적 성장으로 몰아가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핵심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그들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하에서는 기후변화를 완화에 대한 유의미한 변화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120억 파운드의 존슨식 녹색 에너지 투자 계획으로 입증된다. 이는 이미 목적에 맞지 않는 시험 및 추적 프로그램에 낭비된 120억 파운드(17)와 비약적으로 비교된다. 예정된 투자의 적어도 3분의 1, 아마도 3분의 2가 새로운 자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무색해진다. 뜨거운 정치적 입김이 지구 온난화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가-여느 인간 문명의 외관과 더불어-우리가 아는 것처럼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의 노동자계급이 이 행성을 죽이고 있는 자본주의 정권을 전복해야 한다.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한 생산에 근거한 사회주의 세계를 건설해야만 한다. 인간에게 남아있는 모든 위협은 단기적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이며,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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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지막 희망 – 세계의 노동자계급

 

인간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노동자계급 연대 투쟁이다. 2019년 말 이미 다음과 같은 징후가 있었다. 우리가 지난해 약술한 바와 같이, 은퇴 40년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레반트에 이르기까지 파업 및 시위에서 그것이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짐바브웨, 터키,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소위 ‘신흥’ 경제국, 혹은 빈국 및 중위권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인데, 엄청난 달러를 빌렸음에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통화에 대한 이자 및 만기 상환에 수입의 대부분을 사용하게끔 양산하기 때문이다. 달러 대출에 대한 접근성이 없는 이란과 같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신용이 낮은 그들 역시 화폐를 찍어내는 데 의존한다. 이유가 어떠하든, 인플레이션의 결과는 경제 붕괴를 가중할 것이고, 삶은 더욱 비참해질 것이며,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실재적 굶주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로 2019년의 저항이 멈췄지만, 이후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수천이 아니라면, 바로 지구 건너편에서 ‘우리는 당신의 이윤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구와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수백의 파업을 보았다. 코로나19와의 전투를 위한 단계적인 긴급 조치들로, 이미 상당수의 노동자는 우리 ‘모두는 함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으며, 그들에게 실직이든, 낮아진 임금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로 비용을 지급할 것이 요구된다. 현재도 전 세계적인 파업이 진행 중이며, 상당수는 몇 달간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이 벌인 것이다. 정확히는 히드로 공항의 노동자들이 더 나빠진 임금과 조건으로 재계약 할 수 있다는 ‘제안’으로 계약이 철회되는 상황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적은 것처럼, 그들은 파업하고 있지만, 이것은 노조가 통제하는 한 승산이 없는 매우 겸손한 법적 항의이다. 만일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자기 방어만 하려 한다면 그들 손에 투쟁을 떠맡아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세계적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일부 유럽 국가의 소부르주아, 점주 등의 봉쇄에 대한 ‘혁명’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를 부정하는, 극우파 및 신파시스트의 지원을 받는 소부르주아들에게 노동자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고도 남는, 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퇴행적인 안건만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에서조차 마피아는 갈취할 것이 없다면 부정한 책임을 질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안건은 전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조직 혹은 조합에 근거한 부분적 대응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더욱 확장된 조직으로 결집할 것이 절박하게 요구되는데, 이는 체제의 실패에 대해 우리에게 또다시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현재의 저항을 넘어서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반발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비단 중국, 러시아, 이란뿐만이 아니다. 보기로, 프랑스 정부는 경찰의 부정한 행위를 가리기 위해 그것에 대한 불법화(더 이상의 조지 플로이드는 없다?)를 시도했다. 다른 한편, 호주와 같은 그 외의 국가들은 계급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준비로 경찰에 대한 군사화를 진행 중이다. 중요한 물음은 새로운 사회적 경련이 도래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우리에게 던져줄 모든 파장을 충족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이 얼마나 준비가 잘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는 현재의 체제가 갈수록 인류에게 미래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코뮤니스트 좌파에게로 오고 있으며,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성장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오랜 계급 후퇴 이후 다소간 고무된 것이지만, 이는 작은 시작에 불과하며, 우리에게 거대한 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의 최우선은 코뮤니스트를 위한 투쟁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과거 혁명의 파도 실패에서 등장한 다양한 거짓된 친구들, 보기를 들면 자본주의 국가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형태를 옹호했던 이들을 드러내는 습관적인 활동 이상의 것을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른바 트로츠키주의자뿐만 아니라, 맑스주의자-레닌주의자-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은 여전히 유지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또한 주로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좌파 코뮤니스트들’은 반(反)자본주의 투쟁이 진실을 파헤쳐 특정 입장을 고수하려는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길은 피와 살이 있는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세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행해져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조직하는 것이 혁명적 투쟁의 역할이다. 자본주의는 삶을 견딜 수 없게 하는 모순을 제시할지 모르겠으나,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가 자동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 체제와 그 이상의 것들로부터, 혁명의 ‘케케묵은 흙더미’에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한 계급의 의식적 행동이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란 불균일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여기에서, 지금의 그곳에서, 그리고 역사적 시간을 통틀어, 의식이 확고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 혁명 조직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자본에 대한 우리의 여러 투쟁 속에서 하나의 계급으로서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코뮤니스트강령이라 일컫는다. 이것은 고정적이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한두 가지의 ‘위대한 뜻’의 산물도 아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노동자계급 투쟁의 모든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경험에 근거한다.

 

우리는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이 미래 세계의 정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절대 멈추지 않고 반복할 것이지만, 그것을 생성하는 과정 일부가 될 의향이 있다. 비록 미래 세계 혁명의 성공 조건이 충분치 않을지라도, 국제 정치조직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관한 생각에서 자칭 여러 ‘좌파 코뮤니스트’들이 우리와 같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혁명이 고립 속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아닌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을 가져온 사실로 인해 그들이 망설이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결국 이것은 스탈린 치하 전체주의 독재정권의 가장 큰 축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맹공격을 주도한 같은 당 역시 결국엔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자리를 차지한 사실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각인된 교훈이다. 그런데도 ‘모든 정치적 정당은 부르주아다.’는 사실이 아닌, 역사적으로 발견된 계급 전반의 조직을 통해서 노동자계급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반(反)자본주의적 혁명에 있어서 당은 계급을 이끌 수 있지만, 계급 전체에 의해서만이 사회적 변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다. 계급은 누구에게도, 심지어 그 계급 정당에도 권력을 거저 주지 않는다.(19) 무엇보다 사회주의란, 그저 부의 새로운 분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 관한 것이며, 구성원들의 자발적 활동이 국가 관료의 수동적 수용을 대체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혁명적 대립으로서 조직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그 안에서 당의 역할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아기를 반혁명적 목욕물에 내던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코뮤니스트의 과제는 코뮤니즘을 위한 사례를 주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조직의 기반을 확장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학습하기 위하여 계급의 모든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해야 하는데, 그럼으로써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국면,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 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혁명적 이론 없는 혁명적 실천도 없지만, 혁명적 실천 없는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없다. 과도한 머리 없는 닭 같은 행동주의를 피하는 한편, 이러저러한 요구를 내세우지 않고 즉각적인 투쟁을 미래의 코뮤니스트 사회 -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승리-로 연결하기 위해 코뮤니스트들은 계급투쟁에 참여한다. 우리의 목표는 그 일을 더 넓히고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핵심 도구로서 미래의 국제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대열에 합류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 2020년 11월, 연례총회에서 논의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에 대한 관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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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현재 위기와 코뮤니스트 과제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2-07/the-current-crisis-and-the-tasks-of-communists

(2) 이후 전망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11-20/perspectives-for-the-coming-period

(3)

https://www.iif.com/Portals/0/Files/content/Research/Global%20Debt%20Monitor_April2020.pdf

(4)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business/global-debt-hits-record-high-of-331-of-gdp-in-q1-iif/articleshow/77000231.cms

(5) 파이낸셜 타임즈 데이터워치, 19 October 2020

(6) 파이낸셜 타임즈, 19 November 2020

(7)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19/nov/25/hospital-beds-at-record-low-in-england-as-nhs-struggles-with-demand

(8) 파이낸셜 타임즈, 델핀 스트라우스(Delphine Strauss), 7 October 2020

(9) 새라 오코너(Sara O’Connor) “징벌적 병가 규정으로 우리 모두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 파이낸셜 타임즈, 15 December 2020

(10) 파이낸셜 타임즈, 15 December 2020

(11)

https://www.ons.gov.uk/employmentandlabourmarket/peopleinwork/employmentandemployeetypes/bulletins/uklabourmarket/december2020

(12) '임시계약 경제(Gig Economy)'에서 조직화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리버풀 쿠리어스(Liverpool Couriers)의 자기조직화 투쟁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12-02/the-self-organised-struggle-of-liverpool-couriers-highlights-the-difficulties-of

(13) 파이낸셜 타임즈, 22 October 2020

(14)

https://www.ft.com/content/168e908a-03a5-4a0c-b993-355e88afee41

(15)

https://militarywatchmagazine.com/article/putin-says-formal-russia-china-military-alliance-possible-amid-mounting-western-threats

(16) “시진핑 주석의 '세기의 프로젝트'를 되새김”, 파이낸셜 타임즈, 12/13 December 2020

(17) 파이낸셜 타임즈, 15 October 20

(18) 이후 전망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11-20/perspectives-for-the-coming-period

(19)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 정치 강령 (195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3-16/political-platform-of-the-internationalist-communist-party-1952

 

 

 

2020년 12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지나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2-08/communist-work-in-a-covid-crisis-a-frame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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