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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르주아 선거에 맞선 코뮤니스트 입장 1 - 과거를 반복하는 선거주의자들에 경종을 울리며 -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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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동기구, 태생적 한계와 선거주의

 

연출이 시작됐다.

 

변혁모임이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노동자대통령 공동선거투쟁본부’를 제안하면서,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노동자 민중후보 완주’ 기조로 한 이른바 진보좌파·사회주의 그룹 간의 대선 공동기구는 형식적으로 현실화됐다. 물론 진보신당의 선거용 ‘임시(가설)정당’ 정치옵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일군의 사회주의 그룹은, 대선 공동기구를 구성하기 전부터, ‘답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진보정의당, 통진당과의 분별 정립이며, 두 번째는 야권연대 비판, 공동전선 촉구다. 여기에 수식어가 첨가되는데, 다름 아닌 대중투쟁과 선거운동의 결합이다.

 

이 ‘답안’은 처음부터 가짜였다.

 

첫째, 진보신당은 총선정국에서 야권연대에 자신을 넣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던 세력이 아닌가. 더구나 진보신당 내 주요 지도부 발언과 상당수 평당원 흐름이 진보정의당 정치 철새인 노회찬, 심상정류와 통합을 원한다는 것은 운동가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른 한 축으로 구(舊)사회당 계열은 과거 10여 년간 조직 정체성을 선거주의로 일관해왔는데,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그 체질이 바뀐다? 게다가 97년 대선 시기 국민승리21의 페이퍼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진보신당 가설정당에 대해, 사회주의 그룹은 공개적인 반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사회주의 그룹은 동상이몽적인 일괄타결(대선 기조, 강령, 투쟁) 운운하면서, 가설정당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 후보 전술은 기껏해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전형적인 선거주의다.

 

둘째, 과연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선거공간에서 후보를 내세워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가? 이들은 대중투쟁이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면 되는 요술 방망이쯤으로 생각한다. 야권연대 정권교체 열망 현상은 현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의 결과이자, 동시에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의 표현이다. 따라서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환상 자체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전개해야 한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고 스스로 전망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정치조직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정치투쟁과 강령실천은 소홀히 하면서 손쉬운 선거 개입으로 조직화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많다. 선거철만 되면 바빠지고 활동력이 높아지는 정치조직이 여기에 속한다. 투쟁은 회피한 채 선거에서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동자 조직도 여기에 해당한다.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어렵지만, 조직동원과 자금모금으로 표현되는 선거의 조직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자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 그들과 기꺼이 연합하면서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변혁모임, 계급정당 건설?

 

그간 진행된 변혁모임을 보면, 통진당에 대한 반정립 슬로건만 있을 뿐, 노동자계급정당 ‘실체’ 논의는 사라지고, 보통명사인 계급정당만 외치고 있다. 자신의 전략적 과제와 정치적 전망인 당에 대한 최소한의 강령적 원칙 내용에 대한 토론은 고사하고, 선거 참여를 해야 한다는 선당위론만이 팽배하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이동하면서, 대선후보군을 확정했다. 노동자계급정당의 그간의 정치적 성과와 정치적 강령을 전체 계급에 제출하는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대선후보군 상층 지도부의 ‘순교자적’ 투쟁만이 요구된다. 내용 없는 현장변혁, 계급정당 선거를 역순 한 일정 박기 투쟁, 선거용 희망버스를 호소한다. 결국, 선거정치 희망버스에 동원되는 대중은 자신의 현장 정파적 이해에 맞는 조합원으로 한정될 것이다.

 

변혁모임 내부에는 당에 대한 다양한 이질적 흐름이 존재하는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조차 스스로 밝히지 않은 채, 뭉뚱그려 노동자후보만을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대선 통일전선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강령에 입각하지 않고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자신들을 규정한 좌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조합주의를 보호해줄 뿐이다. 이들이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순간, 강령에 입각한 실천을 통해 노동조합 배후정치와 확실한 단절을 이뤄내겠다는 선언은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 혁명당의 역할은 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계급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것이지, 중간에서 활동가(조직)를 통해 배후조종하거나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최종목표 사이에 어떠한 중간단계나 대리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 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려있다.

 

혁명당 건설은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코뮤니스트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운동을 과거로 돌리고 있는 사노위 등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조급한 정세 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후퇴시켜왔다. 이들은 진공상태에서 당 건설을 할 수 없다면서, 변혁모임의 이른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에 영합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 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 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 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의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술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민주노총)이 정치방침으로 결정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진보정당 운동은 파탄 났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해방으로서 이념 부재, 소위 80년대 소부르주아 이념인 NL(민족해방) 노선 추구, 개혁적 사민주의와 선거·의회를 주축으로 한 활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는 기존의 구도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주장이다. 결국, 새로운 조직적 대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며」 참고)

 

몇 년 전부터, 이른바 사회주의자 내부에서는 전술적 문제를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는데, 이 전술적 운용의 실천적인 대립은 선거 시기 진보신당과 같은 의회주의 좌파를 포함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 문제였다.

 

우리는 여기서 ‘원칙 중심의 전술’과 ‘기회주의적 전술’을 구분한다. 한마디로 기회주의 전술의 특징은 단기 목표의 강조, 현재 시점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기회주의의 모든 전술은, 미래의 격동을 준비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대신, 주로 특정 시기만을 위한 정파적 이해와 실천 운동 역량에만 관심을 둔다. 반대로 원칙 중심의 전술은 혁명 운동 발전의 총체적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운동의 근본적 임무와 계급투쟁의 방향, 미래를 향한 장기적 실천을 전개한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정세를 관통하는 핵심은 자본주의 쇠퇴와 위기,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행동 투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재구축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오직 ‘분배 정의’만을 외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생산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 코뮤니스트 사회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코뮤니즘이라는 대안 사회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 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코뮤니즘은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다수파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보다 왼편에는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이 소수파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다. 대중에게 선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후보)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선거 결과가 마치 계급 대중 의지가 실제 실현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든다. 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핵심 기제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선거에 개입했던 노동자정당, 진보정당들은 완전한 의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운동권 출세주의를 양산했다. 통진당, 진보정의당류와 진보신당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 또한, 이들과의 정치적 공동전선이나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자칭 사회주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 선거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운동의 흐름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거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와 혁명세력을 대기주의, 기권주의로 몰아가면서 모든 운동을 대선 블랙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이것이 운동마저 삼키는 부르주아 선거다.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 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 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 사민주의와 동거, 선거정치 몰입이냐,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자기해방(자본주의 전복과 노동자 권력)의 전망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건설하자. 아래로부터의 파업/투쟁위원회, 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의 토대를 만들자!

 

선거 시기에는 더욱더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장기투쟁 사업장, 장애인, 소수자, 빈민, 실업자, 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 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연대’을 실현하자!

 

선거에 참여하는 대선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대선(정치) 자체에 맞선 분노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자.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부르주아 정치 참여(대선)자금을 모금하지 말고 선거 이후 계급전쟁 준비를 위한 물리력을 조직하자!

 

 

2012년 12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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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판네쿡] 노동조합주의

노동조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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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정규직 대 정규직이 아니라 '노동자투쟁' 대 '조합주의 걸림돌'

 

 

<편집자 주>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 내부의 걸림돌인 노동조합주의 세력과도 싸우면서, 투쟁의 원칙을 지키고 연대와 단결을 정신을 실천하는 모든 노동자를 지지한다. "노동조합 투쟁의 좁은 영역이 계급 투쟁의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는" 노동자 운동의 미래를 전망하며 이글을 소개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만 하는가? 이것은 노동자들이 매일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떤 효율적인 투쟁 수단과 어떤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가?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어떠한 학문도, 어떠한 이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감각으로 가능성을 느끼고, 자생적이며, 직관적으로 투쟁의 방법을 찾았다. 자본주의가 점점 확장되고, 지구를 정복하며, 그 힘을 키워갈수록, 노동자의 힘도 점점 커졌다. 더 넓고, 더 효율적인 새로운 투쟁 양식이 나타났다. 조건이 바뀌어 감에 따라 투쟁 형식과 계급투쟁 전술 또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동조합주의는 안정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주요한 형태이다. 고립된 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항할 힘이 없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공동 투쟁, 즉 무기로서의 파업으로 결집한다. 그럴 때 힘의 균형은 상대적으로 같아지거나, 때때로 노동자들 편으로 기울고, 고립된 소(小)자본가는 강력한 노동조합에 비해 약하게 된다. 따라서 발전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과 자본가들의 조합(협회, 트러스트, 주식회사 등)은 적대적으로 싸운다.

 

노동조합주의는 처음에 산업 자본주의가 최초로 발전한 영국에서 등장했다. 그것이 다른 나라로 널리 퍼진 후에, 자본주의 산업에 자연스럽게 경쟁자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특별한 조건이 조성되었다. 초기에 풍부한 미개척지는 마을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과 상대적인 고임금 및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미국 노동총동맹은 권력을 갖게 되었고, 점점 그 조합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생활 표준을 유지하게 해 줄 수 있었다.

 

명백히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한다는 생각이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날 리는 없다.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충분하고, 꽤 안정된 생활을 보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현재 존재하는 질서에 적대적인, 분할된 계급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신대륙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가능한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대부분이 유럽에서 건너온 수백만의 사람이 살 공간이 있었다. 이런 급속한 농업 인구의 증가로 인해, 에너지와 행운이 함께한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기능공, 소상인, 심지어 부유한 자본가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 급속히 성장하는 산업이 필요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이 노동계급에 널리 유포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국에서도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 여기서는 영국이 세계 상업과 대산업을 독점했고, 외국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었으며, 영국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 부유한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가계급은 이익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으며, 노동자에게 합리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었다. 물론 우선, 그들에게 이 진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싸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산업 평화를 위해 조합과 고임금을 허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정신에 물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조합주의의 가장 핵심적 특징과 전적으로 부합한다.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활동이다. 그 목표는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 양식으로 교체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 내에서의 좋은 생활 조건을 보장하려는 데에 있다. 그것의 특성은 혁명성이 아니라 보수성이다.

 

물론, 노동조합 활동은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며, 적대적 계급으로 존재한다. 자본주의 보수성에 관한 물음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 내에도, 자본가는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 강도를 강화하며, 그들의 이윤과 잉여가치를 최대한 증대시키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노동자는 임금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을 꾀한다.

 

비록 그것이 최소치는 넘어야 하지만, 노동력의 가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진 자본가에 의해 지급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적대는 진정한 계급투쟁의 대상이 된다. 이는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기능이다.

 

노동조합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가치, 곧 조직한 투쟁 정신인 연대를 배우는 최초 학교였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조직화한 힘의 최초 형태를 구현했다. 초기 영국과 미국의 노동조합에서 이러한 가치는 종종 경직되었으며,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인 협소한 동업조합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진정한 존재를 위해 어디서 싸워야 할지, 그들 조합의 최대 노력이 생계 표준을 거의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강력하고, 공격적이고, 확장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힘이 어디서 그들을 공격할지를 알아야 했으며, 오직 혁명만이 그들을 완전하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주의 사이에는 불일치가 존재하게 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주의는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서 존재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전망을 가질 수 없다. 노동조합주의는 계급투쟁에서 필요하긴 하나, 단지 협소한 일부분만을 표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계급의 더 큰 목표와 충돌하는 측면을 발전시킨다.

 

자본주의와 대산업의 성장에 따라 노동조합도 같이 성장한다. 노동조합은 모든 도시와 모든 공장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나라 전체로 확장되며, 거대한 기업이 된다. 업무를 수행하고,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 지역과 중앙에서 관료들: 위원장, 사무총장, 재정담당이 임명된다. 그들은 자본가들과 협상하고, 이런 일을 통해 특별한 기술을 갖추는 지도자가 된다. 노동조합 위원장은 자본가만큼이나 큰 힘을 갖게 되고, 자신과 그리고 동등하게, 자기 조합원 이익을 논의한다. 관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직업에서 전문가가 되며, 공장 일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는 조합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거나 그들을 지시할 수가 없다.

 

노동조합으로서 거대한 기업은 단순한 개별 노동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은, 그래서 자신의 정책, 특성, 정신, 전통, 그리고 기능을 갖는 조직체가 된다. 그것은 노동계급 이익과 괴리된 그 자신의 이익을 갖는 신체가 되며, 자기 실존을 위해 살고, 싸우려는 의지를 갖는다. 만약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위해 더는 필요 없다는 것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순순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자금, 조합원, 그리고 관료들, 이 모든 것은 즉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조직체 구성요소로서 그들의 실체를 계속 유지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관료들, 지도자들은 특별한 노동조합 이익의 담지자들이다. 시초에 공장 노동자였던 그들은 조직 지도자로서 오랜 실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특성을 획득한다. 일단 특별한 그룹을 형성하기에 충분히 커지기만 한다면, 각각의 사회적 그룹에서, 그 작업 본성은 그것의 사회적 특성, 사고와 행위의 양식을 주조하고, 결정한다. 노동조합 관료 기능은 노동자들의 기능과 철저히 다르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는 계속된 실업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꽤 안정된 지위를 누린다. 그들은 노동조합 일을 처리하며, 노동자들과 회의를 준비하며, 기업가들과 협상을 해야 한다. 물론, 그들은 노동자 편에 서서 이익을 방어하고, 자본가들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조직에서 임명되어, 그 조직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모든 역량을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변호사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그들은 임노동과 착취가 의미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노동계급 일원으로 느끼고, 그들 내면의 프롤레타리아트 정신이 강한 전통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들 삶의 새로운 현실은 계속해서 이 전통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 그들은 더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그들은 자본가 이익에 대항하여 노동자 이익을 챙기고, 임금과 노동 시간에 관해 협상하며 마치 반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본가들과 협상장에서 대립한다. 그들은 노동자 위치뿐만 아니라 자본가 위치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그들은 ‘산업의 필요성’에 관한 시각을 갖게 되며, 그것을 중재하는 것을 추구한다. 물론 개인적인 예외는 있으나, 대개 그들은 노동자들의 기초적 계급의식을 가지지 못하며, 그들의 적절한 이익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자들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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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노동자 대표?들의 부르주아 정치 참여

 

선진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 지도자 수는 특수한 계급적 특성과 이익을 가지는 특별한 그룹이나 계급이 될 만큼 충분하다. 노동조합 대표자와 지도자로서 그들은 조합 특성이나 이익을 구체화한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필수 요소이며, 자본주의 사회 유용한 시민인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그렇게 느낀다. 노동조합의 자본주의적 기능은 계급 갈등을 조절하고, 산업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산업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을 그들 의무로 여기고, 갈등을 중재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지 않는다. 실존을 위해 애쓰는 노동조합 의지인, 자기 보존 본능은 노동조합 존재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 지도자들 의지로 구체화한다. 그들의 존재는 노동조합 존재와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사소한 의미가 아닌데, 그들은 노동조합을 위해 싸울 때도 그들 개인적 직업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삶 전부를 노동조합에 집중하고, 여기서 그들 일을 찾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사회의 가장 필수적 기관이자, 유일하게 안전과 권력 자원은 노동조합이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모든 가능한 수단들로 보존되고, 방어되어야만 한다.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 현실이 노동조합의 이러한 지위를 침식할 때도 그렇다. 이는 자본주의 팽창과 계급투쟁이 점점 날카로워질 때 발생한다.

 

강력한 기업에 자본이 집중되고 거대 금융과 연계는 자본가 지위를 노동자보다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 막강한 산업 거물(재벌)들은 거대한 노동자 대중을 지배하는 군주처럼 군림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절대적 종속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고, ‘그들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때로, 극심하게 착취당하는 임금 노예들이 반역, 곧 거대한 파업을 일으킨다. 그들은 더 나은 조건, 짧은 노동 시간, 더 인간적인 조건, 단결권을 갖기를 희망한다. 노동조합 조직책들은 파업노동자들을 돕는다. 그러나 그때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사회·정치 권력을 사용한다. 파업노동자들은 집으로 내쫓기고, 구사대나 용역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고, 그들의 대표자들은 감옥에 투옥되고, 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 투쟁은 법원 명령으로 금지된다. 자본가 언론은 파업노동자 주장을 무질서, 살인, 그리고 혁명이라며 비난하고, 여론도 노동자에 적대적으로 나타난다. 그러고 나서 비참함과 실망으로 지친 채, 몇 달 간의 인내와 고난을 겪은 후에, 철갑과 같은 자본주의 구조에 파열구를 만들지 못한 채, 파업노동자들은 굴복하고, 자신의 요구를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노동조합이 강력한 조직체로 존재하는 산업에서, 노동자 지위는 이와 같은 자본 집중에 떨어진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위해 모은 대규모 기금은 그들의 적이 가진 금전적 힘과 비교했을 때 무의미하다. 두 번의 공장폐쇄는 그들을 완전히 고갈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기업가들이 임금 삭감과 노동 시간 강화를 통해 아주 심하게 노동자들을 쥐어짜더라도, 노동조합은 투쟁할 수가 없다. 계약이 갱신되어야 할 때, 노동조합은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제안하는 나쁜 조건을 수용해야 하고, 협상 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제 현장조합원과 관련된 근심이 시작된다. 조합원들은 투쟁을 원한다. 즉, 그들은 싸우기 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싸워서 잃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재정력과 아마도 노동조합 존재 자체 등 잃을 것이 많다. 그들은 투쟁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들은 희망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조합원에게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자본가 조건을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자본가 대변인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정에 반대하며 투쟁을 주장할 때는 더 심해진다. 그러면 노동조합 힘은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한 무기처럼 사용된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산업 평화를 보장하는 자본주의적 과업의 노예가 된다 - 비록 그들은 최대한으로 노동자에게 기여하려 하지만, 이제는 노동자 비용으로 그 일을 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가 없고, 자본주의 관점으로 자본주의 지평선 내에 존재하며, 투쟁은 쓸모없다는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그 권력의 한계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면 대안은 있는가?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가? 아마도 그들은 직면한 투쟁 이슈를 잃을 것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다. 투쟁 없이 복종하지도 않으며,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정신을 고무시킬 것이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이슈를 선언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 노동계급은 여기에 참가해야만 한다. 계급 전체와 그들의 동지 모두에게,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그들의 미래가 없고, 노동조합이 아닌, 단결된 계급으로 투쟁함으로써만 승리할 수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혁명 투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들의 동지들이 이 교훈을 이해하고, 전면파업을 여러 산업에서 일으킬 때, 반역 물결이 나라 전체를 뒤덮을 때, 자본가들의 거만한 가슴에서는 그들의 전능에 대한 의심이 나타날 것이며, 양보할 의지가 생겨날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성격 투쟁을 반대한다. 이런 방식의 반(反)자본주의 투쟁은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반대를 동시에 의미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노동자 반역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으로 인해 자본가 옆에 선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자본가계급과 투쟁을 벌일 때, 자본가계급은 그들을 증오하나, 그들의 힘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는다. 만약 노동조합이 그들의 투쟁에서 계급 전체 힘을 동원해서 투쟁한다면, 자본가계급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이다. 노동조합은 그들의 행동이 반역으로 탄압받는 장면, 그들의 사무실이 구사대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 그들의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벌금을 무는 장면, 그들의 투쟁기금이 몰수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노동조합이 그들의 조합원들을 투쟁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자본가계급은 그들이 살아남고,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집단으로 여길 것이고, 지도자들을 대우받을 만한 시민으로 여길 것이다. 그래서 악마적인 것과 깊고 푸른 심해 사이에서 노동조합이 만약 현명하다면, 자본가계급은 거짓 투쟁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은 누구의 실수도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불가결한 결과이다. 자본주의는 존재하는 한편으로, 붕괴하고 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 동시에 유한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야 하고, 동시에 코뮤니스트적 사고에, 다소간 분명하고,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그들은 이것이 여전히 필요함을 느끼고, 때때로 노동조합을 좀 더 투쟁적인 기구로 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노동조합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주의 정신은 원래 자본주의 정신이지 노동자의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에 있어서 이런 두 경향의 분기는 지금에 있어, 주요하게는 그 지도자들이 만든, 노동조합 정신과 그 조합원들의 성장하고 있는 혁명적 느낌 사이 균열로 나타난다. 이러한 균열은 더 분명해진다.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 영역 내에 존재한다. 즉, 노동조합은 자본주의가 번창할 때, 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만난다. 그래서 불황기에 노동조합은 경기 회복을 꿈꾸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계급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번영은 전혀 의미를 갖지 않는다. 불황 위기로 자본주의가 약화할 때, 노동자들은 그것을 전복할 최상의 기회를 만나, 혁명의 기운을 높이며, 자유를 향한 일보를 내디딘다.

 

자본주의는 외국으로 그 지배권을 확장하고, 거대 이윤을 위해 그 나라 재화를 강탈한다. 그것은 식민 지배를 일삼으며, 원주민들을 종속시키고, 착취한다. 종종 끔찍한 대량 학살을 일으키기도 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식민 착취를 비난하고, 반대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주의는 종종 자본주의 번영의 한 방편으로서의 식민 지배를 지원한다.

 

현대 자본의 거대한 성장에 따라, 식민지와 국외는 거대한 규모의 자본 투자처로 활용된다. 그것은 거대 산업 시장으로서, 원자재 공급지로서 가치 있는 소유물이 된다. 식민지 획득을 위한 경쟁, 세계 분할을 위한 이익에 관한 격렬한 갈등은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런 제국주의에서 중간계급은 국가의 위대함에 대한 일반적인 숭상을 따라 소용돌이친다. 노동조합은 자본가계급 편에 서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 국가의 자본주의 번영이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 투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에 있어, 제국주의는 착취자들의 힘과 잔인성 증대를 의미할 뿐이다.

 

민족자본주의 사이 이익을 위한 이런 갈등은 전쟁으로 치닫는다. 세계 전쟁은 최상의 제국주의 정책이다. 노동자들에게 전쟁은 국제적 연대 의식의 파괴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본가 이익을 위한 최상의 폭력적 수탈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가장 큰 규모이자, 가장 억압받는 계급인 노동계급은 모든 전쟁의 참사를 견뎌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전시에 노동조합은 자본가 편에 선다. 노동조합 이익은 민족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진심으로 자국의 승리를 기원한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강력한 애국심과 타국에 대한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돕는다. 노동조합은 자본계급이 노동자들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모든 반대를 깨부수는 것을 돕는다.

 

노동조합주의는 코뮤니즘을 혐오한다. 코뮤니즘은 그것의 존재 근간을 제거해버린다. 코뮤니즘에서, 즉 자본가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더는 의미가 없다. 노동자 집단이 사회주의자들인, 강력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기원에서뿐만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노동조합 지도자들 역시 사회주의자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파 사회주의자들이고, 그들의 사회주의는 욕심 많은 자본가를 대신해 정직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산업 생산을 관리하는 복지 이념으로 제한된다.

 

노동조합주의는 혁명을 싫어한다. 혁명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모든 일상적 관계를 뒤집어엎는다. 그 격렬한 충돌 속에서, 모든 세심한 규정은 쓸려 사라지고; 그 거대한 힘의 투쟁 중에 온건한 협상 기술을 가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전력을 다해 노동조합주의는 혁명과 코뮤니즘 사상에 반대한다.

 

이런 반대는 의미가 없지 않다. 노동조합주의는 그 자체 힘이 있다. 노동조합은 자신의 처분권 내에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고, 그것은 힘의 물질적 요소를 이룬다. 노동조합은 또한 정신적 힘을 가지는데, 그것은 힘의 정신적 요소인 정기적인 신문을 통한 지지와 선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권력은 지도자들의 손에 쥐어진다. 그들은 노동조합의 특수 이익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익과 갈등을 일으킬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한다. 비록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구성되지만, 노동조합주의는, 정부가 민중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듯, 노동자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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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자 운동에 깊숙이 자리잡은 '사회적 합의주의'

 

노동조합주의 양태는 자본주의 발달의 다른 양태로 인해, 국가마다 다르다. 그것은 국가마다 같은 양태로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서서히 소멸해갈 때,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때때로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조합주의 형식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1880-90년대 영국에서 ‘새로운 조합주의’가 이전 직업별 노동조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가난한 부두 노동자, 다른 저소득층, 미숙련공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었으며, 새로운 산업의 발생과 기계력에 의한 숙련 노동 대체로 최악의 조건에서 생활하는 대규모의 미숙련공이 양산되었다. 마침내 거대한 반역의 물결과 강력한 파업을 앞두고서 그들은 단결과 계급의식의 길을 발견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합주의를 만들었고, 더욱 발전된 자본주의에 적응해 나갔다. 물론, 자본주의는 더욱 강력한 형태로 성장해나갔고, 새로운 조합주의는 모든 조합주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으며, 그것은 이전과 같이 내적 모순에 처했다.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미국의 <세계 산업 노동자총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로 생겨났다. IWW는 자본주의적 팽창의 두 형태에서 기원했다. 서구의 거대한 산림과 대초원에서, 자본주의는 맹렬하고 난폭한 착취를 서부 황야(wild west)의 방법을 통해 자연적 부를 획득했다; 그리고 노동자- 모험가들은 완강하고, 열정적인 방어 형태로 응답하였다. 그리고 동부에서는 새로운 산업이 수백만 명의 가난한 이주노동자들-그들은 저발전국 출신이었으며, 이제는 땀으로 찬 공장이나 다른 가장 비참한 형태의 노동조건에 종속되었다-에 대한 착취로 만들어졌다.

 

한 공장의 노동자를 여러 개의 개별 노조로 나눈 미국노동연맹(AFL)의 편협한 노조 정신에 맞서 IWW는 한 공장의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고용주에 반대하는 동지로서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고용주에 대항하는 강력한 노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질투와 다툼을 일삼고 있는 수많은 노동조합에 맞서서, IWW는 – 모든 노동자를 위한 하나의 커다란 노조라는 구호 - 를 내걸었다. 한 집단의 투쟁이 모든 이유이다. 전 계급에 걸쳐서 연대는 확대된다. 조직화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보수가 좋은 노련한 미국 숙련 노동자들의 거만한 경멸과 달리, IWW가 투쟁으로 이끈 것은 열악한 임금 프롤레타리아트였다. 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높은 수수료를 내고 평범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 저항했을 때, 그들에게 투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전국에 걸쳐서 후원금을 모금했으며, 그들의 주장을 신문과 법정에서 변호한 사람은 바로 IWW였다. 영광스러운 일련의 대규모 투쟁은 이들 대중의 마음에 조직과 자립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 옛 노조들의 거액 자금에 대한 신뢰와는 달리, 산업 노동자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지탱되는 살아있는 연대와 인내의 힘을 신뢰한다. 낡은 노동조합의 무거운 석조 건물 대신, 조합원의 변동에 따라 평화 시기에 협상, 투쟁 자체로 팽창 및 성장하는 유연한 건설 원칙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주의의 보수적인 자본주의 정신과는 달리, 산업 노동자들은 반(反)자본주의적이었으며 혁명을 상징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로부터 극심한 증오와 함께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했다; ‘범죄 생디칼리즘’이라는 새로운 범죄가 그들을 대신해서 발명되기까지 했다.

 

자본가계급과 투쟁하는 방법으로서 산업 노조주의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고 노동자 계급을 위한 세계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경제 생산 분야에서 고용주로서 자본가들과 싸우지만, 그들의 정치적 거점인 국가 권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IWW는 미국에서 가장 혁명적인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계급의식과 통찰력, 연대와 단결을 일깨우고 코뮤니즘으로 눈을 돌리고 투쟁력을 갖추는 데 이바지했다.

 

이 모든 투쟁 교훈은 거대한 자본주의에 맞서서 노동조합이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때때로 승리한다면, 그러한 승리는 일시적인 안도감만을 줄 뿐이다. 그런데도 이 투쟁은 필요하고 반드시 해야만 한다. 마지막까지? 아니, 더 나은 최후까지

 

그 이유는 명백하다. 고립된 노동자 집단은 고립된 자본가 고용주에 대항하는 투쟁과 같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자본가계급이 지지하는 고용주에 대항하는 고립된 노동자 집단은 무력하다. 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국가 권력, 자본주의 자금력, 자본주의 언론에 들뜬 중산층 여론이 모두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파업자들을 지지할까? 수백만 명의 다른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자신들의 명분으로 여기지 않는다. 확실히 그들은 파업자들을 동정하고 종종 돈을 모을 수 있으며, 판사의 명령에 분배가 금지되지 않는 한, 이것은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평한 동정심으로 인해 진정한 투쟁은 파업 집단에게만 맡겨진다. 수백만의 사람들은 냉담하고 수동적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분열되지 않은 하나의 단위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본가들이 사업상의 이유로 양보를 하는 것을 선호할 때) 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

 

물론 노동자 대중이 그러한 경쟁을 그들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생각할 때; 자신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 파업을 다른 공장,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산업 분야로 확대한다면, 자본주의 권력인 국가 권력은 분열하며, 분리된 노동자 집단에 전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 노동계급의 집단적인 힘에 직면해야 한다.

 

파업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하여 마침내 이루어낸 총파업은 종종 패배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안해 왔다. 그러나 확실히 이것은 우연히 얻어걸려 승리를 보장받는, 진정으로 편리한 패턴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분명히 그것을 반복하여 일상적인 전술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전술적 조치로서 노조 지도부가 마음대로 선언할 수는 없다. 그것은 대중들의 아주 깊은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표현이어야 하며, 이는 한 집단의 단순한 임금경쟁보다 투쟁 쟁점이 더 성장하거나 커져야만 일어난다. 그래야만 노동자들이 모든 힘과 열정, 연대, 인내심을 여기에 쏟아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힘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또한 이전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현장에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프롤레타리아 세력의 시위로 인해 패배하고 놀라서 양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은 권력의 가장 깊은 뿌리로부터 새로운 세력을 모아 다시 그 지위를 되찾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승리는 지속적이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다. 승리로 가는 분명하고 열려있는 길은 없다. 그 길은 엄청난 노력의 대가로 자본주의 정글을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커다란 발전을 의미할 것이다. 연대 물결이 대중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들은 계급적 단결의 엄청난 힘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감 또한 높아졌으며, 협소한 집단 이기주의를 떨쳐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는 계급으로 우뚝 설 방법이라는- 새로운 지혜를 얻었다. 그들은 자유를 향한 길을 얼핏 보았다.

 

따라서 노동조합 투쟁의 좁은 영역은 계급 투쟁의 넓은 영역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 스스로가 변해야만 한다. 그들은 세상을 더 넓게 봐야 한다. 그들의 노동조합, 공장 내의 일에서, 그들의 마음은 사회 전체를 포괄할 수 있도록 넓어져야 한다. 그들의 정신은 주변 사소한 것들보다 더 높아야 한다. 그들은 국가를 마주해야 한다; 그들은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혁명의 문제가 다루어져야만 한다.

 

 

1936년

 

안톤 판네쿡 (Anton Pannekoek)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 

저는 노동자 혁명 운동이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이제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에 이제 나서야 합니다."  (2010년, 남궁원)

 

 

 

<출처> https://www.marxists.org/archive/pannekoe/1936/uni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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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하찮은 자본수익률과 막대한 부채가 세계경제를 무릎 꿇게 하고 있다.

하찮은 자본수익률과 막대한 부채가 세계경제를 무릎 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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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에서 주목받는 경제의 붕괴와 의료 서비스의 결핍 외에도, 팬데믹 위기는 자본주의 언론과 주류 정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분리되었던 두 가지 요소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첫 번째는 이 위기가 이전(2008년)의 위기에 극적으로 추가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재난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위기의 진짜 핵심은 붕괴하는 자본주의이며 첫 번째 위기(2008년)가 끝났다는 주장이 사기라는 것을 드러내었다.

 

팬데믹 위기는 이미 위태로운 세계 자본주의의 건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위기는 자본이 생산적인 투자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특별히 보여주고 있다. 즉 자본가들의 투자 지출을 가치 있게 하는 수익률(맑스적인 표현으로는 잉여가치율)을 획득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중앙은행이 투입한 막대한 자금에도 불구하고, 이 자금의 대부분이 생산적 투자로부터 이탈하여 투기적 투자로 갔다. 한편, 국가 부채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증가, 즉 노동력(변동자본)의 원가와 비교해 기계 및 장비(고정자본) 원가의 점진적 상승으로 평균 이윤율의 하락이 느리지만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변동자본과 비교해 고정자본이 증가함에 따라 기업은 추가적 자본 투자가 가능하게 하는 충분한 이익을 실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는 결국 자본의 실제 생산의 투자에서 투기적 투자로의 이동을 부추기어 전체 생산 시스템의 기능 장애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런 대규모 위기는 주로 금융시장에서 터지기 때문에 '금융 위기'라고 잘못 불리지만 실제로는 생산적 투자의 수익성 저하에 따른 구조적 위기이다. 중요한 생산기지를 이탈한 막대한 자금이 독을 품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 금융 투기의 영역으로 몰려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가권력(정부)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하기 위한 자본주의라는 기계 전체의 작동 질서를 복구하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을 투입하기 위해 국채를 사들이고 '대마불사'의 금융기관을 살리고 있다. 결론은 자본주의 건물의 지붕은 수선될 수 있지만, 기초는 앞에서 든 이유 때문에 '구조조정'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그저 썩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채 그리고 또 부채

 

여기서 우리는 이 쟁점들의 오직 하나만 고려할 것이다. 부채 문제는 위기를 치유하기 위한 수많은 처방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모순을 다룰 수 없는 병든 경제 시스템의 결과이다.

 

우리는 구대륙의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를 가진 유럽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20년 1~3분기 독일이 취한 경제 조치는 유럽에서 가장 컸다. 독일은 대략 현재 GDP의 33%를 사용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GDP의 3.5%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교된다. 마크롱의 프랑스에서는 2008년에는 GDP의 1.46%를 사용했고 2020년에는 10배로 증가했다. 영국도 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서도 양적 차이는 있지만 같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GDP의 22%를 썼으며, 미국의 지출은 GDP의 14%에 달했는데, 이는 2008년 위기 때의 4.9%와 비교된다. 이전의 부채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부채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팬데믹 위기의 전체 비용은 12조 달러 이하가 될 것이다 (이 수치는 더 심각한 경제적, 재정적 부담을 가져올 3차 유행이 없다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이는 세계 GDP의 12%에 해당하며, 모든 국가들의 국가부채 총액을 100% 더 늘리는 것과 같다. 게다가, 2020년 1분기의 총부채 증가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계, 기업 및 정부의 총부채는 이미 이전의 경고 수준을 넘어 세계 GDP의 331%에 도달했다. 주요 선진국의 총부채는 2020년 1분기부터 세계 GDP의 380%에서 392%로 증가했다. 한편 전년도에 국내총생산(GDP)의 220%에 달했던 신흥국 부채는 팬데믹 몇 달 만에 230%로 늘어났다. GDP가 매우 소폭 증가한 중국이 가장 먼저 위기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2020년 1분기에는 총부채가 335% 안팎으로 다시 급증했다.

 

두 번의 위기 이전에 미국 연준은 1조 달러 미만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8년 위기 이후 이것은 1조 달러 이상의 적자로 바뀌었고, 2020년 2분기에는 5조 달러 적자에 달했다. 유럽의 사정도 나아지지 않았다. 유럽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는 2008년 1조 유로화의 자본잠식에서 현재 7조 유로화의 자본잠식으로 바뀌었고, 이 수치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할 수 없는 결론은 팬데믹 위기로 악화되는 이윤율 위기의 파괴적인 결과로 인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부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고 붕괴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쓰나미의 힘으로 사회 구조를 강타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생산 영역, 대기업부터 서비스 기업까지, 중견기업부터 호텔까지, 소기업부터 자영업까지 부채 증가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크건 작건 간에 자본가들이 느끼는 공포는 3차 대유행에 따른 위기가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바로 그 밑바닥부터 시작해 전체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이다. 유럽,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독일 메르켈 총리가 자국 노동자들에게 죽어가는 자본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기업과 체결한 계약을 어기지 말고 계속 일하라는 요구를 서둘러 따라 하고 있다.

 

노동계급…

계속해서 지불할 건가 아니면 그들만의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따라서 비록 분명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최악의 작업 안전 조건에서도 계속 일해야 하고, 심지어 코로나로 죽는 궁극적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러나 팬더믹에서 자본을 위해 죽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지 못하는 희생일 뿐이다. 사실 이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멸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유일한 목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에 대한 점점 더 강화되는 착취를 통해 항상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늦추려고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은 노동계급이 최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경제 감염'을 겪으리라는 현실적이고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전망에 대하여 직장에서의 "안전"과 노동의 필요성을 맞바꾸는 것을 거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모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유럽중앙은행의 대출에서 더 많은 몫이 정리해고 연기와 금지와 같은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한다. 노동자들의 필요가 자본주의 생산의 필요 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계급과 생산자의 요구, 심지어 가장 정당한 요구조차도 자본주의 체제를 작동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가 당연히 우리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즉 자본에 대한 계급 전체의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급진적 개혁(부유세, 모두를 위한 일자리, 동일 임금에서의 노동 단축, 경영자의 위기 부담 요구 등)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전투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개혁에 대한 요구가 자본주의에서의 개혁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심지어 더 나쁘게는 노동계급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밑바닥부터 해체할 필요가 없이 개혁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노동계급 내부에 점진적으로 심어 주어 노동계급이 또 다른 패배를 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오늘날 가장 지배적 요구는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인 사회 대안이어야 한다. 자본의 법칙에서 벗어나 사회와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부를 재분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나머지는 모두 무기력한 이상주의의 뿌연 연기일 뿐이며, 이를 제안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상처를 입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계급투쟁의 재개에는 치명적이다.

 

2021년 1월 25일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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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1-25/paltry-returns-on-capital-and-an-enormous-debt-pile-are-bringing-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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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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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Internationalist Communist Forum


■토론주제 :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 (발제ㅣ오세철)

■일시 : 2021년 10월 8일(금) 오후 7시 

■포럼참가 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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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 미국과 동맹국의 철수

아프가니스탄 : 미국과 동맹국의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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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7일, 조지 W. 부시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발표한 지 거의 20년이 지났다. 탈레반이 미국 9/11 테러의 설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한 뒤, 그의 "대국민 연설"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났다:

 

“그 전투는 현재 여러 전선에서 합류하고 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치지 않을 것이다; 비틀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와 자유가 승리할 것이다.”

 

오늘 그 미사여구가 얼마나 공허해 보이는지. 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이 중대한 패배를 해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공허한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것에 대해 되풀이되는 유명한 이야기는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자국 군인들이 살해되고, 나토 작전 자금 조달을 위해 수조 달러를 지출하는 것에 지쳤다는 바로 그 이야기다.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진실일 수는 없다. 미국이 철수하는 것은, 바이든의 말대로,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전쟁, 2,000명의 사망자와 2,000억 달러의 군사비 지출로 제국주의의 최소한의 이익도 얻지 못한 채, 국내 전선에서는 탈레반에, 국제무대에서는 중국, 러시아, 터키에 자유로운 마당을 남겨두고 철수했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출구 전략" 계획을 포함하여 "정당한" 미국의 철수가 중국에 대한 전술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중국이 당장과 미래를 위한 전략적 목표 1순위를 상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 국방부는 더는 수십 년 전과 같은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 경제는 더는 예전처럼 세계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며, 무역수지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윤율 저하 위기, 또는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가치증식은 금융 투기를 부추기고, 실물 경제를 침체시켰다. 그래서 세계의 경찰이 되는 비용, 또는 계속해서 세계에서 제국주의 제1의 국가가 되는 비용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패배가 유일한 결과일 수 있는 위험지역(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것이 더 제한적이지만,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중국과 같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의 민담(民譚)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미국이 떠나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중국이 탈레반과 다음과 같은 합의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30년간의 전쟁 끝에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정치적 인정과 "후한" 자금 지원의 대가로 그들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무슬림과의 싸움에 더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에너지 제품은 이제 중국과 인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터키는 이스탄불에서 탈레반과 그들의 적들과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협상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간 국민들, 특히 여성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바이든은 관심이 없다. 동맹국이자 꼭두각시 정부를 지원하는 데 실패한 미국 대통령은 이 수치스러운 마지막 아프간 캠페인에 수천 명의 군인을 동원하면서 도망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프가니스탄 - 비인간적인 탈레반 민족주의와 야만적인 미 제국주의 사이의 아프가니스탄 비극)

 

카불 함락 직전에 「코뮤니스트 투사」( Battaglia Comunista)의 이탈리아 동지들도 위와 같이 썼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완전히 동의한다. 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그 이후로 떠도는 모든 논평과 선전 속에서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언론은 바이든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트럼프는 그동안 바이든의 능력을 공격하기 위해 카불 공항의 혼란에 대해 소란스럽게 선전을 해왔지만, 이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가 10여 년 전 “아프가니스탄 - 제국주의 야망의 묘지”에서 언급했듯이, "자유를 지속시키는 작전" 프로젝트는 이미 끝났다(오바마는 그것이 분명히 실패했기 때문에 2014년에 끝났다고 발표했다). 그 무렵 미국의 침공은 단지 여러 부족의 파벌들로 이루어진 일련의 부패한 정부를 탄생시켰을 뿐이라는 것이 이미 분명해졌다. 그들은 탈레반에 저항하기 위한 군대를 증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어야 할 돈으로 바쁘게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 탈레반은 현재 마자리샤리프, 카불 등 도시 외곽에 있는 고급 주택(주인들이 도망간 곳)의 내부 동영상을 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패가 아프간 군대의 규모를 크게 과장했다는 사실이다. 관리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이른바 "유령 병사" 10만 명의 급여를 요구했다.

 

이것은 1975년 사이공 철수의 반복이 아니다. 당시 미군은 이미 2년 전에 그 나라를 떠난 상태였다. 이 후퇴는 훨씬 더 절망적이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미군은 이달 말까지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었지만, 탈레반의 접수 속도에 압도되고 또한 깜짝 놀랐다. 그러나 현재 그의 모든 소란스러운 허풍에도 불구하고, 병든 꼭두각시 정권을 지탱하지 못한 미국의 두 번째 수치스러운 실패로 가는 길은 트럼프와 함께 시작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많은 탈레반 수감자(2010년 이후 억류된 탈레반 4인방 중 한 명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Abdul Ghani Baradur)처럼)를 석방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서 주도면밀하게 진행했다. 이것은 2020년 2월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미국 국무장관과 물라 압둘 하킴(Mullah Abdul Hakeem) 그리고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일명 탈레반)가 체결한 도하(카타르) 협정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협정에는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었다. 우리는 그 내용을 그대로 다시 소개한다:

 

“1. 미국은 이 협정 발표 이후 14개월 이내에 모든 비외교 민간 인력, 민간 보안 계약자, 교관, 자문관과 지원 서비스 요원 등 미국 동맹국과 연합군의 모든 군대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것을 약속한다.

2. 미국과 (미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탈레반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에미리트는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추구하며, 아프가니스탄 내 대화와 협상으로 결정되는 미국과 새로운 이슬람 에미리트 정부 간의 관계를 기대한다.

3.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내부 대화와 협상에서 결정된 바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정착 후 이슬람 정부와 재건을 위한 경제 협력을 모색할 것이며, 자국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미국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당시 가니 대통령의 카불 정부가 사후(포스트-미국) 아프가니스탄 정착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포기한 것이 분명하다. 다른 모든 조건은 그저 희망 사항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탈레반이 인수하는 것은 백지 수표였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미국이 '영원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데 사실상 동의했고, 이에 바이든은 이전 행정부의 정책을 흔쾌히 따랐다. 그는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 협정보다 두 달 더 버텼지만, 철수 방식은 거의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다. 미군은 아프간 동맹국들을 모욕하여 아무런 경고도 없이 바그람 공군기지를 포기했다. 아프간 정부군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곳은 약탈당했고, 탈레반은 그곳과 다른 곳에서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를 물려받았다

 

한편, 탈레반은 카타르에서 이 협정이 체결된 이후 지난 18개월 동안 현지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적은 전투로 인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주요 동맹국에 의해 버림받은 아프간 군대는 부패한 정권(과거에 탈레반을 저지했지만, 가니 대통령이 경멸했던 여러 부족 군벌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을 위해 싸우다가 죽게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미래가 없는 합의를 지지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따라서 간단히 무너져 내렸다. 싸울 일이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자체에 관한 한, 주요 추측은 탈레반 통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명과 시아파 하자라(Shia Hazara)와 같은 여성과 "소수자"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이들의 주요 시민은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탈레반과 다른 살라피스트들(Salafists)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살해되었다. 탈레반은 파슈툰어(Pashtun) 사용자가 지배하지만, 파슈툰어는 인구의 절반 미만이 사용하고 있으며, 2001년 이전에 탈레반은 (아프간 역사상 누구라도 그랬던 것처럼) 국가 전체를 완전히 장악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지난번 카불에서 통치했을 때보다 더 기민한 홍보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전의 적들에게 사면이 제공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부 관리들에게 그들의 직책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 여성이 권리를 가질 것이라고 선언한다(불길하게 “이슬람법과 지역 관습을 준수하는 사람들”로 자격이 부여됨). 현지의 실상은 이것이 단지 세계 언론만을 위한 공허한 말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탈레반 지도자들은 언론과 정부에 알려진 반대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고, 탈레반 전사들은 그들을 찾기 위해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고 있다. 반대자들의 탈출이 발각되면 그들은 친척들을 죽인다. 마을 소녀들은 이미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을 강요받았고, 일부 여성들은 단지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채찍을 맞았다.

 

그러나 임박한 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한탄하기 전에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미국과 나토 동맹국의 제국주의 이익이라고도 함)의 이름으로: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전쟁 지역에서 약 241,00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71,000명 이상이 민간인이었다.”(1)

 

2019년에만 42,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2) 아프가니스탄을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분쟁지역으로 만들었다. 미국 브라운대 윗슨연구소의 발표를 인용한 이 보고서는, 민간인 사상자의 대규모 증가는 주로 2017년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대한 미국의 교전 규칙 완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탈레반과 다른 살라피스트들이 설치한 급조폭발 장치도 한몫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CIA는 심각한 인권 유린과 민간인 살해에 연루된 아프간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자금을 지원해왔다.“

 

여기에는 아프간 지역 경찰이 포함된다.

 

“미국이 동원한 3만 명의 강력한 친정부 민병대 - 민간인을 살해하고, 사기를 치고, 절도, 강간, 납치, 마약 밀매와 갈취에 가담했다.“ (3)

 

국제사면위원회는 아프가니스탄 2020년 보고서에서 훨씬 더 암울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민간인 사망자의 약 절반이 탈레반과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기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아프간 사람들의 생활은 지난 20년 동안 악화되었다:

 

“아이들은 전투를 위해 특히 무장 단체와 아프간 보안군(친정부 민병대와 지역 경찰)이 계속해서 모집했고, 그들은 성적 학대를 포함한 여러 가지 학대에 직면했다. 아프가니스탄은 계속해서... "아이들에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국가 중 하나"이며, 친정부와 반정부 세력 모두 각각 700명 이상의 어린이 사상자를 낸 것에 책임이 있다. 지난 10월, 아므룰라 살레(Amrullah Saleh) 제1 부통령은 12명의 어린이를 죽게 한 학교에 대한 아프간 정부의 공습으로 다친 민간인 사상자를 신고한 사람의 체포를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타카르(Takhar)주지사의 대변인은 아프간 보안군에 의한 아동 인명 피해를 보고했다는 이유로 직위에서 해임되었다고 발표했다.“(4)

 

보고서는 계속된다:

 

“아동 성 학대가 널리 알려지고, 2018년에 ”바차 바지“(남성 아동이 나이 든 남성에게 성적 학대를 받는 일)라는 학대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학대 종식과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탈레반만이 아니다. 아프간 정부의 "진보적인" 국제적 얼굴은 실제로 의회의 60석 정도의 여성을 위한 의석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정부에서 소수의 여성은 협박과 괴롭힘, 그리고 차별을 당했다. 그들은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사무자원에 접근할 수 없었고, 초과근무와 수당을 거부당하는 일이 많았다."

 

2백만 명의 소녀들이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공격하는 유일한 세력이 아니다:

 

"인권운동가들은 협박, 폭력, 살인에 직면하면서 계속해서 공격을 받았다. 지난 3월, 헬만드(Helmand)주의 정부 관계자들은 부패 혐의를 받는 인권운동가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했다. 그들은 부상당해 병원 치료가 필요했다. 지난 5월, 시민사회 공동실무단의 조력자 모하마드 이브라트(Mohammad Ibrait)는 자불주에서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의 공격으로 부상당했다. 그 후 그는 부상으로 사망했다. 지난 6월, 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의 직원 파티마 칼릴(Fatima Khalil)과 자와드 폴라드(Jawad Folad) 두 명이 카불에서 차량 공격으로 사망했다."

 

전반적으로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을 "불발탄으로 오염 시켜, 수만 명의 아프간인, 특히 어린이들이 일상적인 집안일을 하며 목숨을 잃고 다친다."고 말했다. 또한 빈곤, 영양실조, 열악한 위생,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 부족, 환경악화가 아프간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악화시켰다.(5)

 

서방세계가 약속했던 "자유"의 혜택은 이렇게 셀 수 없이 많다. 이제 탈레반이 총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카불 공항에서 미 수송기 아래에 매달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 이상을 알고 있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이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마도 비참한 제국주의 모험에 대한 가장 부끄러운 결말일 것이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아프가니스탄이 자신의 야망의 무덤이라는 것을 발견한 최초의 제국주의자는 아니다.

 

 

오래전 1857년에 엥겔스는 제1차 아프간 전쟁(1839-42)에서 영국이 통치권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 관해 썼다.(6) 레오니트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는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소련의 쇠퇴를 강조하고 가속화시킨 붉은 군대의 점령(1979-89)에 착수하기 전에 그의 작품을 읽었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통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파키스탄의 군사 정보기관인 ISI(Inter-Services Intelligence)를 통한 미국의 재정 및 군사적 지원이 결국 탈레반이 부상하게 되는 길을 열었다. (사담 후세인의 타도가 다에시(Daesh)나 ISIS의 중추가 된 수니파 저항 세력의 탄생으로 이어졌듯이), 추가된 모순은 탈레반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파(Wahhabist)의 영향을 받고 있던 파키스탄의 마드라사(madrassas)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소련 철수 후 내전에서 탈레반을 무장시키고, 심지어 지원 병력까지 제공했다. 9/11 자살폭탄 테러범 대부분은(오사마 빈 라덴처럼) 사우디 시민이었지만, 미국은 194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악마적 조약(미국 안보를 위한 석유)을 체결했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경시되었다. 이것과 다른 많은 긴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의적인 동맹은 계속해서 유지된다. 석유는 필요하다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미국에는 덜 중요하다. 사우디-미국 관계의 공고함은 이제 이란에 대한 공동의 싸움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의 최근 제국주의적 붕괴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파키스탄의 총리 임란 칸(Imran Khan)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아프간 사람들이 노예제의 족쇄를 풀었다고 말했다. 임란 칸은 파키스탄 군대의 꼭두각시이며, 탈레반이 파키스탄에서 은신처를 찾고 사업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ISI(파키스탄 정보기관)가 (원래 CIA로부터 받은) 돈을 탈레반에게 흘려보낸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하미드 굴(Hamid Gul) 전 ISI 국장은 2014년 TV에서 "역사가 기록될 때, ISI가 미국의 도움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물리쳤다고 진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문장이 나올 것이다. ISI는 미국의 도움으로 미국을 물리쳤다.”(7) 미래의 제국주의 노선에 대해 임란 칸은 미국이 (가니 정부 시절 카불에서 영향력이 커진) 모디(Modi)의 인도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중국과의 동맹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따라서 인도가 카슈미르와 히말라야에서 파키스탄과 중국과 국경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중앙아시아에서의 투쟁은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국가는 핵보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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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월 13일 파키스탄 퀘타에서 파키스탄 정당 지도자들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주요 도시 점령을 축하하며 과자를 나눠주고 있다.

(Fayyaz Ahmad/EPA-EFE/Shutterstock)

 

이란의 입장은 더 모호하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최근의 굴욕에 기뻐하고 있지만, 탈레반의 시아파 무슬림에 대한 비(非)관용적인 태도로 수천 명의 사람이 이란으로 도망쳤고, 따라서 이미 절박한 경제 위기에 압박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해 이란은 70만 명의 난민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보냈지만, 현재는 중국 일대일로 전략의 일환인 만큼 최근 중국과 맺은 25년 조약(8)을 고려할 때 탈레반과 협력할 수 있는 카드가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아프간 중앙은행의 자금이 뉴욕에 예치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높다. 이것들(그리고 IMF 자금 지원 보류 가능성)은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마지막 수단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후자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딘가에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고, 재정 지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중국이다. 우리 동지들(코뮤니스트 투사)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탈레반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공동종교인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거의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희토류와 같은 리튬, 구리 및 기타 광물자원에 주목해 왔고 추출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풍부하게 존재하며 그들의 군사력과 산업 능력을 모두 증강시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의 경우 이에 대한 수익이 돌아오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중국이 발전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징후는 파키스탄, 중국, 러시아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 카불에 대사관을 유지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점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날짜를 발표하기 전에 나토 동맹국들과 거의 상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서 재난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영국과 독일과 같은 다른 강대국들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국에 후순위를 의미했던 트럼프 집권 4년 후 '서방 동맹'은 큰 피해를 보았다. 바이든은 집무실에 도착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밝혔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그의 행동은 동맹국들에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 제국주의 진영의 전개 방식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이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의 불화이다.

 

한편, 중국은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대유행을 이용했으며, 탈레반이 장악한 주(週) 동안, 의도적으로 대만의 영공에 전투기를 띄웠다; 이것은 일련의 도발 행위 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지만, 미국의 약점에 대한 인식에 힘입은 행동이었다. 이미 야만적인 갈등으로 가득 찬 세계는 더욱더 위험한 곳이 되었다. 노동계급은 어디에서나 분열되고 조직화되지 않는 한 희생자가 될 것이다. 맑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 그들은 싸워서 지켜야할 부(富)가 없고, 확실히 지지해야 할 제국주의 세력도 없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반(反)제국주의"에 대한 지지 선언을 자본주의 좌파와 우파의 다양한 파벌에 맡긴다. 유일하고도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를 끝내기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이다. 이것이 구체화될 때까지 자본주의는 우리를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느린 길로 인도할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1년 8월 22일

조크(Jock)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주>

 

(1)  watson.brown.edu 참조

 

(2) sipri.org 참조

 

(3) theguardian.com 참조

 

(4) amnesty.org 참조

 

(5) 이것과 앞의 인용문 : watson.brown.edu

 

(6) marxists.org. 참조. 엥겔스의 설명에서 놀라운 것은 그 침공과 후대의 침공 사이에 유사성이 많다는 것이다. 1857년에 쓴 글에서 그는 "아프간 사람들은 여러 족장이 봉건적 패권을 행사하는 씨족들로 나뉘어 있다. 통치에 대한 불굴의 증오와 개인의 독립에 대한 사랑만으로도 강대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은 그들을 위험한 이웃으로 만들고, 변덕의 바람에 날려버리거나, 그들의 열정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정치적 음모자들에 의해 선동되기 쉽다." 제2차 아프간 전쟁 후에 영국은 아프간 사람들을 듀랜드 라인(Durand Line)으로, 또는 (영국령 인도 제국) 북서 국경으로 역사에 유명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고, 그 너머에 있는 아프간 사람들은 서로 싸우게 되었다.

 

(7) washingtonpost.com 참조

 

(8) 「혁명적 전망」 18호, 시리즈 4. leftcom.org의 최근 기사 "중국 -이란 협정, 실크로드와 여타의 제국주의 움직임"을 참조.

 

 

<원문 출처>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8-24/afghanistan-the-usa-and-its-allies-re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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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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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토론주제 :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 (발제ㅣ오세철)


■일시 : 2021년 10월 8일(금) 오후 7시 (장소는 추후 공지)

 

<포럼 자료>

「코뮤니스트」 10호, 107쪽~116쪽
「코뮤니스트」 11호, 145쪽~167쪽
「코뮤니스트」 12호, 172쪽~192쪽
「코뮤니스트」 13호, 238쪽~240쪽(요약)


*자료(PDF) 요청 및 포럼참가 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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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지구를 구하라 - 자본주의를 파괴하라!

지구를 구하라 - 자본주의를 파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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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캐나다 서부와 미국 상공의 열돔 현상, 그리고 독일과 중국에서의 홍수로 수백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리스, 터키 그리고 시베리아까지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러한 재앙들은 분명히 지구 온난화가 기후 패턴을 교란한 결과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와 같이 계속된다면, 이번 일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해 어느 성직자의 다과회처럼 한가롭게 보일 것이다. 수백만 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이른바 기후 틈새(climate niche)라고 불리는 평균 기온(MAT)의 좁은 범위에서 생존해 왔다. 이 범위는 대략 11~15℃이며 농작물과 가축을 성공적으로 재배하기 위한 범위이기도 하다. 산업화 이전의 평균 온도는 약 13.75°C였으며 지금까지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온도보다 1.1°C 상승하여 이미 인간 생존을 위한 최적 온도의 한계에 도달했다. 2010년 이후 평균 기온이 0.4°C가 증가한 이래로 금세기 말이 아니라, 향후 5~10년 이내에 파리 기후 회의에서 합의된 유명한 1.5°C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40년까지 2°C가 상승하면, 지구상 인구의 3분의 1이 기후 틈새 지역 밖에 놓이게 된다. 1.5도에도 불구하고 생산되는 식품이 크게 감소할 것이며, 2°C에서는 미국 중서부 및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수확량이 절반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틈새 지역이 위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함에 따라 수백만, 어쩌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붕괴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많은 온난화 과정이 이미 인간의 행동으로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북극 얼음이 녹고, 남극 서부 대륙빙하가 녹고, 산호초가 백화(白化)되는 등 세 가지 중요한 임계점이 교차되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린란드 대륙빙하가 녹고, 남극 동부 대륙빙하가 녹고, 멕시코만류의 붕괴 등 추가로 세 가지 과정이 임계점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동안 그것들을 흡수하는 자연의 능력 또한 파괴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아마존 유역은 화재와 산림 벌채로 인해 이산화탄소의 순흡수체(純吸收體)에서 순배출체(純排出體)로 바뀌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 회의 목표인 2050년까지 순배출(純排出) 제로 달성을 위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개발 승인을 받은 새로운 유전 및 가스전이 없고 새로운 탄광이 없는”

 

물론 우리의 지배자들은 이에 대해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새로운 에너지 투자의 대부분은 화석 연료에 투입되고 있다. G7은 2020~2021년 석유, 가스 및 석탄을 지원하기 위해 총 1,89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재생 에너지에 지출한 비용보다 29%나 많은 금액이며, 파리 회의 이후 6년 동안 G20은 화석 연료에 3조 3천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대유행 복구에 할당된 16조 달러 중 2%만이 청정에너지로 전환될 것이며, 2023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새로운 최고치로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왜 우리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과학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하기 때문이다. 첫째, 자본주의 체제는 단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며, 화석 연료는 여전히 매우 수익성이 높고, 둘째, 자본주의 체제는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필요로 하며, 이는 에너지 성장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이윤과 성장의 필요성은 이것이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으로 이어질지라도 우리의 지배자들은 그에 따라 무엇을 할지 결정할 것이다.

 

온실가스 생산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바로 지구를 약탈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재생 가능한 자원을 자본주의가 사용하는 것은 이제 매년 자연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의 1.6배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받고 있다; 탈(脫)탄소화에 동의하는 세계 자본주의 지도자들의 세계 회의, 또는 정부의 탈(脫)탄소화 강제를 위한 체제 교란 직접 행동이 그것이다. 둘 다 효과가 없을 것이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중단하는 것을 동의하는 세계 자본주의 지도자들에게 의존한다. 유엔 기후변화 회의(COP)는 아마도 이것을 위한 포럼일 것이고, 최근의 COP26(당사국 총회 :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최고 의사결정회의)은 11월에 글래스고에서 열릴 예정이다. COP회의는 1995년 이후 매년 열렸지만, 이전의 모든 COP회의에서는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파리 회담은 법적 구속력을 갖기로 약속이 되었지만, 그러한 약속은 시행할 수 없었다! 분명히, 100여 개의 후진국이 그들이 참여하지 못했던 파리 COP21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선진국들로부터 돈을 요구하기 위해서 글래스고 회의에 올 것이다! 또 하나의 쓸모없는 결과가 도출될 것이고, 참가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이행할 의도도 능력도 없는 약속을 한 것에 대해 자신을 다독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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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안은 세계 자본주의가 분열과 대중 불복종으로 경제를 탈탄소화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것은 멸종 반란(XR)과 그들의 분파인 버닝 핑크(Burning Pink)가 지지하는 전략이다. 그들은 국회에 선출된 의원들과 탈탄소화를 통제하는 시민 집회를 통한 "평화로운" 혁명을 제안한다. 탈탄소화 비용은 인구의 가장 부유한 10%의 자산의 90%를 몰수해서 지불해야 한다. 이 모든 환상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멸종 반란에 따르면, 이윤과 성장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를 가진 자본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재앙으로 이끄는 모든 세력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실은 자본주의가 세계 생산 체제로 남아 있는 동안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가한 끔찍한 피해를 되돌려 놓으려면 임금노동과 이윤을 위한 생산의 종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협력적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2021년 9월 2일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위 기사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간행물 <오로라> 최신 호(56호)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9-02/save-the-planet-destroy-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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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 투쟁 힘모으기 <아사히 수요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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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 투쟁 힘모으기
아사히 수요문화제

 

 

2021. 09. 29(수) 늦은 7시
구미 AGC화인테크노 코리아 아사히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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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Ⅴ~Ⅶ)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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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중앙위원회가 권력 독점을 유지하고 강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던 좀 더 깊은 까닭은 무엇이었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시기 동안 볼셰비키는 자신들 말고는 그 누구도 믿지 못했다. 크론슈타트 사건에 의해 악화한 무거운 책임을 지닌 그들은 멘셰비키 사회민주주의자와 좌익 사회혁명적 ‘농민’당의 경쟁에 정치 무대를 열어놓길 두려워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볼셰비키는 세계혁명, 유럽에서 곧 닥쳐올 혁명, 특히 중유럽에서 혁명을 믿었다. 러시아에서 연립 정부는 다가올 혁명을 안내하고 지시할 운명을 지녔던 코민테른을 약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여기서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 당의 가장 크고 무거운 잘못을 건드릴 것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창조적 사고, 진실, 잘못, 바람직한 사고, 주체적 직관 등 모두가 뒤섞여 있었다. 그 어떤 것도 기업에 대한 믿음 없이, 실체적인 당연한 일을 평가하지 않고, 성공을 바라지 않고, 문제가 있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들어서지 않고는 착수되지 않았다. 모든 행동은 알지 못하는 미래로 실질적이고/현재 순간에서부터 투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태도에서, 정당한 행동은 맹목적으로 앞으로 내던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처지에서 본다면, 유럽혁명의 교의는 정당한 것이었는가? 나는 우리가 그 문제에 만족스럽게 대응할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닌 하나의 의도는 그것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점증하는, 상대적으로 평화적인 자본주의 시기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끝났다는 것은 틀림없다. 전지구적 혁명 시기의 개막을 알렸던 맑스주의 혁명가들은 ─ 사회주의가 적어도 유럽 강대국에서 스스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야만의 시기와 “전쟁과 혁명의 순환”(엥겔스를 인용해서 레닌이 지적했던 것처럼)이 뒤따라올 수 있다고 하는 ─ 옳았다. 미래의 부르주아 유럽에 대해 믿는 쪽을 선택했던 보수주의자, 진화론자, 개량주의자들은 ─ 베르사유에서 조심스럽게 칼로 조각을 내었고, 로카르노에서 완패했으며, 국제연합에서 밝혀졌던 문구로 진저리를 나게 했던 ─ 오늘날 맹목적 정치의 정치인으로 기억되었다. 사회관계, 생산 관계의 지구적 전환이 아니라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국제 관계, 권력 관계, 사상과 관습에 대해서. 줄이면 세계혁명이 유럽에서는 시기상조였고 불확실했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결정적이고 첨예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에도, 거대한 기술적 조류, 결정적인 국제적 책임, 모순적인 사회운동을 지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잘 조직된 공업국에 어울리게 특별한 지위를 지녔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나 그리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절대 비밀로 소련의 시베리아 불모지에 세워지고 있는 것, 트리에스터나 마드리드에서 일어나고 있거나 몰려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혁명의 겉모습이다. 볼셰비키 학파의 맑스주의 혁명가들은 노동대중의 자각과 새로운 사회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재조직화를 통한 유럽과 세계의 사회적 전환을 기다리면서 활동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게 될 때를 기다리면서 계속 활동했다. 그때 그들은 잘못했고, 그들은 패배했다. 그 대신 세계의 전환은 제도, 운동, 믿음의 무서운 혼동한 가운데서 기다리던 비전의 명쾌함 없이, 회복된 인간주의에 대한 의식 없이, 그리고 사람의 가치와 희망 모두를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전반적 조류는 집단화와 경제의 계획화, 세계의 국제화, 억압당하고 식민화된 사람들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대중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형성을 향해 1917~20년의 사회주의자들이 규정했던 경향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대안을 내다보았다. 즉 야만주의와 전쟁, 전쟁과 야만주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이다.

 

볼셰비키는 예상한 독일혁명에서 러시아혁명의 구원을 보았다. 이 점에서 그들이 잘못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주의 정권 아래 농업 러시아와 공업 독일은 틀림없이 평화롭고 풍부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테제 하에서, 러시아는 발전하고 있는 내부 관료제에 의한 교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나치즘의 어두운 밤과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세계는 다른 투쟁을 알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그러한 투쟁이 히틀러주의와 스탈린주의라는 소름 끼치는 기계를 생산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와 달리 모든 지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때 승리한 독일혁명이 전체로서 인류의 사회적 진보를 풍부하게 해주었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역사의 가설에 대한 추론은 만일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지금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길 바란다면 적법하고 필요하다. 그런 추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역사가 시간의 흐름에서 인간의 삶의 전개가 아니라 일련의 숙명론적이고 기계적인 발생 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명을 위해 싸우면서 독일 스파르타쿠스단, 러시아 볼셰비키, 그리고 모든 그들의 전 세계 동지들은 지구 전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대변동을 막으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 다가오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그들은 해방에 대한 커다란 의지를 통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한 혁명가와 어깨를 맞대고 싸웠던 사람은 누구든지 그 점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 그 어떤 사람도 전체로서 인간의 대의에 그처럼 헌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1917~27년의 혁명가들에게 헤게모니와 세계 정복 열망을 귀속시키려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지만, 어떠한 종류의 비참함과 이해관계가 역사적 진실이 지닌 특성을 빼앗으려는 그런 시도의 뿌리에 놓여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때 볼셰비즘이 잘못한 것도 틀림없다. 유럽은 불안정했고, 사회주의 혁명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이성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구에서 노동자계급의 압도적인 다수는 투쟁을 뒷받침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그 대신에 전쟁 전 시기의 사회적 진보로 돌아가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위험에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감정을 간신히 생각해내었다. 온건하고 평범한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1918년 11월에 쉽게 일어날 수 있었던 혁명이 치를 희생을 두려워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적인 길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가 볼셰비즘을 폭력을 통한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불러왔다고 꾸짖었을 때, 역사적 대안, 즉 독일에서 개량주의적이고, 온건한 사회주의의 길을 고려하는 것은 오직 올바른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다 써버리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그러한 대안은 히틀러주의의 승리로 직접 이끌었다.

 

볼셰비키는 서구, 주로 독일 노동계급의 정치적 이해와 에너지를 잘못 보았다. 볼셰비키가 지닌 전투적 이상주의 때문에 생겨났던 이러한 실수는 가장 심각할 수도 있는 결과를 생기게 했다. 그들은 서구 노동계급과 접촉을 잃었다. 코민테른은 소비에트 당-국가의 창조물로 되었다. 마지막으로 “일국 사회주의”라는 그릇된 교의는 속임수에서 생겨났다. 스탈린주의화한 코민테른의 바보스럽기도 하고 형편없는 전술은 독일에서 나치즘의 승리를 촉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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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러시아혁명에 대한 첫 설명은 1927년쯤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흘렀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1920~21년 이래 코뮤니스트당의 독재, 즉 그 자체로 ‘볼셰비키 친위대’(Bolshevik old-guard)의 독재로 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친위대’는 오히려 뛰어난, 즉 지적이고 이타적이며, 적극적이고 완고한 엘리트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성취한 결과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해외에서 소련은 인정받았고 존경과 흔히 감탄의 대상이었다. 국내에서, 전쟁 시기에 파괴로 경제는 이용할 수 있는 재원이 거의 없었지만 대중의 에너지를 통해 되살아났다. 집단화한 생산의 새로운 체제는 낡은 자본주의 생산을 대체했고 꽤 잘 작동하고 있었다. 러시아 노동계급은 투쟁에서 승리하고 조직하며, 생산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존엄감을 심어주었다. 부르주아 철학에서 인간에 내재 되었다고 생각한 사유재산에 대한 본능은 자연스럽게 멸종하는 길에 있었다. 농업은 평균 수준으로 재건되었고 1913년 수준을 뛰어넘기 시작하고 있다. 노동자의 봉급은 1913년보다 아주 높았다.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한 평가는 틀림없이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재건설’이 아니라 공업(자동차, 항공, 화학, 알루미늄···.)의 진전과 새로운 발전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제 활력을 되찾은 농업 부문과 상대적으로 약한 공업 부문 사이의 불균형을 고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소련은 고립되었고 위협을 받고 있다. 소련의 방어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맑스주의자는 전쟁을 ‘금지한’ 브리앙-켈로그 조약에 환상을 갖지 않았다. 정권은 갈림길에 있다. 당은 권력 투쟁으로 갈기갈기 찢어졌고 예전 권력이 세워놓은 강령을 둘러싸고 ‘구(舊)볼셰비키’를 서로서로 경쟁시킨 투쟁으로 찢어졌다. ‘영웅적 시기’의 후계자 가운데 가장 명석한 사람들은 트로츠키 주위에 몰려 재그룹화되었다. 그들은 전술적 실수를 할 여지도 있고, 완전하지 못한 이론을 지닐 수도 있으며, 머뭇거릴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지닌 용기와 장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공업화와 계획화의 필요, 그뿐만 아니라 반동 세력, 무엇보다 관료제와 싸울 필요를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전투적 국제주의와 정권 민주화의 명백한 필요를 알고 있다. 그들은 서기들의 위계제에 패배했다.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헌신을 뚜렷이 보여준 소련의 몇천 명의 설립자는 권력에서 쫓겨나 감옥에 갇히거나 추방되었다. 그들이 비난당했던 것은 모순적이고 아무런 뜻도 없었다. 중요하고 지배적인 사실은 1927~1928년에 당내에서 ‘쿠데타 세력’ 때문에 혁명적 당-국가가 관료주의적 경찰국가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 국가는 혁명의 이상에 대해서는 모든 중요한 점에서 반동적이었다. 이데올로기 변화는 야만스럽게 빠르게 일어났다. 공직에서 태어난 죽은 슬로건인 맑스주의는 생각하는 사람의 비판적 맑스주의에 자리 빼앗으며, 지도자 숭배가 시작되었다. ‘일국사회주의’는 지도자 숭배를 통해 자신들이 지닌 새로운 특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신참자들의 표어가 되었다. 정권의 반대자들이 고뇌에 찬 짧은 생각에 동의했던 것은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국가, 전체주의 정권의 단면이다. 트로츠키주의 반대파를 적대한 많은 구 볼셰비키, 즉 부하린, 릐코프, 톰스키, 류틴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소름 끼쳤고 저항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너무 늦었다.

 

전체주의에 맞선 혁명 세대의 투쟁은 1927년에서 1937년까지 10년 동안 지속하였다. 이러한 투쟁이 취한 혼란스럽고 때때로 일치하지 않은 방법은 투쟁이 지닌 실질적인 중요성을 우리에게 비밀로 해서는 안 된다. 투쟁을 이끈 지도적인 인물은 서로서로 반목했고, 싸웠으며, 화해하기도 했고, 심지어 배반했다. 그들은 길을 잃었고, 독재 앞에서 굴욕감을 느꼈으며 폭력배의 허를 찌르려고 애썼고 자신을 지치게 했으며, 죽기 살기로 반란을 일으켰다. 전체주의 정권은 그들을 서로 대항하는 데 이용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 정신에 영향을 남겼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가 있었다. 화석화된 당과 혁명에 대한 애국심, 헌신, 실질적 결과, 위대한 미래에 대한 커다란 비전, 공통의 위험 의식, 이 모든 것은 심지어 가장 명석한 정신 속에도 현실감각을 없애버렸다. 이 모든 것에도, 구사회주의 볼셰비키가 대표했던 혁명 세대의 저항은 참 완고했고, 그러한 저항은 1936~38년(모스크바 재판 시기)에 새로운 정권이 자신을 굳히려고 제거되어야 할 운명인 전체 세대에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은 역사에서 가장 피로 더럽혀진 탈취였다. 볼셰비키는 첫 10년의 업적 때문에 망했다. 유기체와 사회의 순환적 발전을 연구한 두 명의 미국 사상가가 그러한 업적을 바라보면서 “1917~18년에, 러시아가 팽창과 성장의 시기에 들어섰고, 그 때문에 지금(1940년대) 러시아가 지구의 강력한 국가 가운데 가장 젊은 국가로 서게 했다”(Edward R. Dewey & Edwin F. Dakin, Cycles, New York, 1947)고 지적했을 만큼, 그러한 업적은 실질적이었다. 우리는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가 러시아의 새로운 활기를 어떻게 약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와 관련해서, 달린(David J. Dallin)은 우리에게 하나의 지표를 준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러시아는 연합국의 30%에 맞먹는 주민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1,200~1,600명이나 연합국의 80%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장에서 붉은 군대는 침략국 병사들의 죽음보다 4배 많은 병사를 잃었다.

 

러시아혁명이 터졌을 때, 모든 혁명 정당이 이용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조직된 당원은 제국 주민의 1%도 못 되었다. 이러한 1% 가운데 볼셰비키는 오직 하나의 분파를 이루었다. 이러한 아주 적은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이바지했고 탈진해버렸다. 1917년 10월~11월 혁명은 젊은 사람의 당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레닌은 47살이었다. 트로츠키는 38살, 부하린은 29살,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34살이었다. 10년에서 20년 뒤,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은 나이 든 세대가 했다. 그리고 이 세대는 권력의 특권에 매수된 젊은 경찰-관료제의 무게에 굴복하지 않았지만, 대중의 수동성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에 지쳐 떨어졌다. 대중은 테러주의 정권 때문에 영양 부족 상태에 있었고 불구가 되었으며, 선전에 취해 있었다. 게다가 나이 든 세대는 외부세계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소련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동안 전 세계의 반동 세력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위대한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화해했거나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인민전선의 수명, 서구 노동계급의 후위 투쟁은 나치즘, 파시즘, 프랑코의 동맹을 통해 스페인에서 박살 났다. 바로 그 순간에 스탈린의 폭력배는 러시아에서 볼셰비즘을 청산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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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승리하여 의기양양한 첫 10년과 뒤이은 암흑의 10년 뒤에 우리가 러시아혁명에서 방어할 것은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역사적 경험, 아주 당당한 회고록 ―이것들은 이미 행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볼셰비즘의 교의와 전술은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나는 연구실이 현장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생산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가 저절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도덕적이고 정치적 방식으로 헤게모니의 포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다시 나타날 것이고 미래의 투쟁에서 확실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미래에는 이런저런 종류의 혁명적 독재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경우에 노동자 운동의 역할이 이러한 정부의 민주적인 성격을 보증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프롤레타리아트 단독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와 심지어 민족들을 위해서. 이런 뜻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더는 우리의 목적일 수 없다. 우리가 이바지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혁명은 오직 사회주의적― 그 말의 인간주의적 뜻에서―, 또는 좀 더 정확히 민주주의적이고 자유의지적인 수단을 통한 사회화한(socializing) 것일 수 있다.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당에 대한 볼셰비키 이념은 완전히 실패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심리적 배경은 불쌍한 부하린이 그렇게 당당하게 칭찬했던 이상에 헌신했던 동질적인 전투가 집단의 그룹화를 불가능하게 했다. 중앙집중주의, 규율, 그리고 지도된 이데올로기는 비록 우리가 조직적 틀이 필요로 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건강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모든 이것에서 러시아인들이 지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역사의 저항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통해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사슬 말고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 달린과 보리스 니콜라예프스키(Boris I Nikolaevski)가 쓴 객관적이고 타협하지 않은 저작 『소련에서 강제노동』(Forced Labor in the Soviet Union)을 곧 프랑스어로 번역해주길 바란다. 그 책은 우리에게 1928년, 즉 소련의 테르미도르 동안 GPU 강제노동수용소에는 약 3,000이 못 되는 사람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날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몇백만의 노예가 갇혔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가장 적절한 평가는 1,000 또는 1,200만 명이다. 즉 이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성인 남성 인구의 16%(그리고 아주 낮은 비율의 여성)이다. 최근에 『대중』(Masses)에서 나는 이러한 수치가 지닌 결정적인 중요성을 낮게 보았다. 주민의 15%에 달하는 사람들이 유럽인의 생활 수준과 같은 것을 누리는 특권을 지녔다고 보면서, 나는 ‘7% 특권 노동자, 15% 천민, 78%가 비참과 가난에 착취당한 사람들’이었음을 알았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체제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방어할 가치가 있는가?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이러한 ‘강제 노동수용소 소우주’의 영향은 유럽에서 사회주의와 사회적 재조직화의 발전을 봉쇄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극은 러시아 하나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이다. 이러한 과정의 논리적 결론은 제3차 세계대전일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가능성이 가까워 있는 한, 우리는 체념하고 재앙적 결과에 맡겨서는 안 된다. 국제 사건에서 스탈린주의 정권의 공격성은 내부 상황의 중력을 통해 결정된다. 이러한 정권에 맞서 러시아와 비(非)러시아 대중이 반란을 일으킬 잠재적 경향은 공격(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소련 침공-옮긴이)이 시작될 때 그들의 패배주의와 그들이 침략자(독일군-옮긴이)를 해방자로 환영했던 방법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것은 또한 승리에 뒤따랐던 ‘곤경’, 그리고 블라소프(Vlasov) 군대의 운동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것은 독일군의 포로가 된 2~3십만 명을 통해, 그리고 강제노동수용소가 꽉 들어찬 것을 통해 입증되었다. 나는 전체주의 정권이 반란의 훌륭한 공장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러시아 사람들이 지닌 혁명적 전통 때문에 훨씬 더 그럴 것이다.

 

러시아 대중의 사기에 대한 문서자료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정권의 철의 장악 속에서, 누군가 러시아를 알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듯이, 여전히 중요한 생명력(활기)이 있다. 일하고 건설하고 발명하고 관리하는 사람의 9/10는 비록 그들의 사슬이 부서졌지만, 노동자 민주주의에서 적극적인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막으려고 사회주의 러시아를 위해 제때 그들의 사슬을 부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스탈린주의 정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지닌 억압받는 대중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반동의 강력한 세력은 러시아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비(非)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쉽게 반동 세력이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범이슬람주의의 영향에 배여 있었던 중앙아시아 무슬림들 사이에서. 그런데도 나는 억압이 가장 잔인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 동안 소련에서 실행한 나의 관찰을 바탕으로 삼아 커다란 다수가 틀림없이 공식 사회주의(official socialism)의 사기 행각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구체제로 돌아가는 것도 심지어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 일어난 국가가 통제한 생산으로 인한 발전이 아주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유럽 전체에서 국유화와 계획화 바람이 일어났다) 진짜 러시아 민주주의는 생산자의 이익에서 사회화된 생산을 재조직하는 데서 건강과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생산의 기술적 명령은 사회정의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의 이익에 따라 경제를 또다시 세울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자유와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깊이 느낀 희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

 

 

멕시코,

1947년 7~8월

빅토르 세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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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Bolsey가 불어본을 영어로 옮기다.

 

<한국어 출처> 「실천」 2007년 10월호

 

 

 

<이전 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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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Ⅰ~Ⅳ)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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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우리가 여행하려고 하는 지난 30년은 얼마나 끔찍한 길이 될까. 우리 시대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 가장 많은 희망을 안겨준 사건은 우리에게 달린 듯 보인다. 이제 1917년을 휩쓸었던 잊지 못할 열광주의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코뮤니스트 활동가의 첫 성원이었던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비참함뿐이다.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과 목격자 가운데 그 누구도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만든 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총살당했다. 문서는 모조리 파괴되었거나, 감춰졌거나 혹은 왜곡되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혁명에 늘 반대했던 망명자뿐이다. 그들은 책을 썼고, 가르쳤으며, 여전히 보수주의의 강력한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지구적 봉기 시기에 그 세력은 모든 진실한 객관성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스탈린주의 러시아에 대한 어두운 광경에 비난의 칼날을 들이댄 이름뿐인 볼품없는 논리는 볼셰비즘 실패와 더 나아가 맑스주의와 사회주의 실패를 입증하려고 시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얕은 술수는 세계를 감싸고 있는 모든 문제에 부닥쳐서 쉽게 이어졌고 내다볼 수 있는 미래에 자신의 지배력을 느슨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은 다른 실패를 잊고 있는가? 사회 재앙의 시기 동안 기독교는 어디에 있었는가? 자유주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계몽의 형태이거나 반동의 형식이거나 보수주의가 낳았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무솔리니, 히틀러, 살라자르, 그리고 프랑코를 주지 않았던가? 만일 그것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많은 실패를 솔직하게 생각하는 문제라면, 우리는 오랫동안 막혀 있던 우리의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끝난 게 아니다.

 

모든 사건은 한정적이고 이행기적이다. 흔히 잊히곤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 맥락에서 발전한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견해를 세우기 전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견해와 전망에서 생긴 많은 변화를 회상해보자. 칸트가 바스티유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열광했던 모습, 테러, 테르미도르, 집정부, 나폴레옹. 1789년과 1802년 사이에 자유와 우애, 평등의 공화국은 완전히 선회했고 그 자신의 기원을 부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인 나폴레옹의 정복은 히틀러가 만들어낸 것과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두드러진 것이다. 황제는 괴물이 되었다. 문명화된 세계는 그에 맞서 힘을 합했다. 그리고 신성 동맹은 유럽 전체에서 낡은 정권을 다시 세우려고 싸웠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르주아지에 권력을 안겨 준 프랑스혁명, 공업의 정신, 과학적 문의는 19세기를 실제로 살찌우게 했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이 터지고 난 뒤 30년째, 즉 1819년, 루이 18세와 차르 알렉산드르가 지배하던 시기는 역사에서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실수로 생각되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길로틴에서 죽었고, 수많은 전쟁과 투쟁이 어떻게 군주제를 가증스럽게 복구시켰는가.

 

Ⅱ.

 

역사 왜곡은 으레 그때의 질서로 될 수밖에 없었다. 부정확한 과학 사이에서, 역사는 물질적이고 심리적으로 대부분의 관심을 위협한 오직 하나의 것이다. 비록 사실이 쉽게 이용될 수 있지만, 러시아혁명에 대한 신화, 실수, 목적이 있는 해석은 난무했다. 틀림없이 먼저 자신을 알리지 않고 말하고 쓰는 것은 훨씬 더 단순하고 매력적이다.

 

“1917년 10월과 11월에 볼셰비키가 일으켰던 폭력적인 쿠데타가 민주주의의 싹을 뽑아버렸다”라는 주장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사실과 아주 다르다. 그 어떤 공화국도 러시아에서 선언되지 않았고 소비에트와 노동자ㆍ농민ㆍ병사 위원회 말고 그 어떤 단일한 민주주의 제도도 없었다. 케렌스키가 이끈 임시정부는 농업 개혁을 거부했고, 대중이 요구했던 평화 협상을 여는 것을 거부했으며, 반동 세력에 맞서 효율적 조치를 거부했다. 이행기적이고 단명한 국가는 두 개의 커다랗고 앞서 나아가고 있는 집단, 즉 장군들의 집단과 혁명적 대중 집단 사이에 끼어있었다. 그 어떤 것도 사회주의적 경향을 띤 민주주의 발전을 지시하지 않았다. 1917년 9월쯤에 오직 하나의 대안은 반동적 장군들의 독재냐 또는 소비에트 독재냐였다. 그러한 쟁점에 서로 반대되는 쪽에 있는 두 역사가, 트로츠키와 우익-자유주의적 정치가인 밀류코프는 이 문제에 똑똑히 동의했다. 소비에트 또는 볼셰비키 혁명은 전제정이 무너지고 난 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 기회주의적인 사회주의 정당이 이끌었던 불안전하고 비효율적인 온건 민주주의 혁명이 실패한 결과였다.

 

또한, 11월 7일(옛 달력에 따르면 10월 25일)의 봉기가 한 줌 밖에 안되는 음모가, 즉 볼셰비키당 작품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보다 실제 사실에 훨씬 더 모순되는 것은 없다. 1917년은 대중 행동의 시기였다. 그러한 행동은 변화, 다양성, 힘에서, 그리고 갈증을 느낀 대중의 주도가 뚜렷이 볼셰비즘 쪽으로 나아갔던 끈기에서 놀라웠다. 농민 소요는 러시아 전체로 퍼졌다. 군인들 사이에 있는 낡은 규율은 폭넓은 반항으로 무너져 버렸다. 크론슈타트와 발트 함대는 임시정부에 대한 복종을 딱 잘라 거부했다. 트로츠키만이 해군 기지에서 일어난 무장 갈등을 소비에트와 만나 막을 수 있었다. 투르게스탄에서 타쉬겐트 소비에트는 그 자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다. 케렌스키는 칼루가 소비에트를 그의 포병으로 위협하고 있었고 볼가에서 50만 병사가 케렌스키의 명령을 거부했다.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 주변 지역에서, 노동자 적위대가 세워졌다. 페트로그라드 요새는 소비에트의 권위로 자신을 위치 지었다. 소비에트 사이에서, 다수파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온건한 사회주의자와 볼셰비키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온건한 사회주의자는 케렌스키에게 등을 돌렸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봉기가 열광주의의 커다란 물결 속에서 거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공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존 리드와 자크 사둘이 쓴 책을 다시 읽어보자. 그 사람 모두 그 열광주의의 장면을 목격한 사람 아닌가! 그렇다, 볼셰비키 ‘음모’라고 하는 것은 대중적 정서의 커다랗게 떠오르는 물결에 의해 권력을 실행했다.

 

제국이 페트로그라드 교외 무장되지 않은 주민의 압력 아래 1917년 2~3월에 무너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가치 있다. 요새의 군대와 시위하고 있는 노동자 사이에 자발적인 친교는 전제정의 운명을 정해버렸다. 나중에 이러한 친교를 부추겼던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들을 동질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몇몇은 이름이 있었지만, 다수는 이름 없는 상태로 남았다. 모든 혁명정당의 지도자와 가장 능력 있는 전투가는 그 순간에 감옥에 있거나, 또는 외국에 있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활동한 소규모 집단은 볼셰비키가 노동자를 공장으로 복귀하라는 호소를 내걸려 계획했던 사건 전환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가! 4개월 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잡고 있는 연립 정부의 경험은 7월 초에 요새와 교외 주민이 소비에트로 권력 이전을 요구하는 슬로건을 들고 일어난 커다란 시위를 조직했던 깊은 분노를 낳았다. 볼셰비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자가 이끌었던 이러한 조치를 받아들였고 고통스럽고 위험한 결론으로 끝난 시위에 마음 내키지 않았지만 결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라의 나머지가 수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절대 따르지 않을 것을 느꼈다. 으레 그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은 중상(“독일 간첩”)과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압박당했다. 그 순간부터 볼셰비키는 만일 그들이 이러한 대중 운동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장군들은 힘으로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17년 9월에 코르닐로프 장군은 케렌스키 정부에 있는 공개적인 공범과 함께 전투에 들어섰다. 레닌과 지노비예프는 잠적했고, 트로츠키는 감옥에 갇혔고, 볼셰비키는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코르닐로프 군대는 철도 노동자와 다른 전투적 노동자와 접촉 결과로 저절로 흩어졌다.

 

전제정의 문관은 또렷이 다가올 혁명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을 막을 수단을 지니지 않았다. 혁명정당은 혁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혁명할 수도 없었고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었다. 사건이 그러한 과정을 밟았고 봉기가 그들에게 다가왔을 때, 누구에게든 남겨진 것은 의지와 비전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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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았다. 혁명정당 사이에서 일어났던 자연도태의 과정에서 볼셰비키가 힘을 모은 대중의 열망을 일관되고 현명하게, 그리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가장 정통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했고 내전에서 이겼다. 왜냐하면, 많은 주저와 갈등이 있었지만, 대중은 발트해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볼셰비키를 편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커다란 역사적 사실은 러시아에 있는 많은 볼셰비즘의 적이 받아들였다. 망명한 자유주의 출판업자인 헬레나 쿠스코바(Helena Kuskova)는 얼마 전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백군도 ……제헌의회를 위한 투쟁도 밀지 않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백군은 군주제적 반혁명, 입헌주의, 민주적인 반-볼셰비즘을 대변했다. 그러므로 1920~1921년에 내전이 끝날 때까지, 러시아혁명은 볼셰비키가 지도자와 중견 요원의 형식으로 두뇌와 신경 조직을 제공했던 커다란 대중 운동의 양상을 띠었다.

 

볼셰비키가 지닌 직접적인 목표가 국가권력을 독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도 또 다른 신화이다! 사실 그들은 권력이 고립될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일찍이 연립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을 열렬히 지지한 사람들이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원칙적으로는 온건 사회주의정당과 연립을 거절했다. 왜냐하면, 온건 사회주의정당은 3월 혁명(옮긴이: 2월 혁명)을 실패로 이끌었고 소비에트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전반적으로 맑스주의에 적대적인 이상주의자이자 지식인이 이끈 농촌을 바탕으로 삼은 사회혁명당 좌파의 협력을 구했고 얻었다. 1917년 11월에서 1918년 7월 6일까지, 사회혁명당 좌파는 정부에 참여했다. 그들은 볼셰비키 가운데 잘 알려진 몇몇 사람들(1/3)처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18년 7월 6일에 그들은 볼셰비키가 ‘혼자서 통치하려는’ 의도를 지녔고 ‘독일 제국주의에 맞서 전쟁을 다시 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모스크바에서 폭동에 가까운 반란을 시작했다. 그때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그들의 성명서는 혼자서 통치하려는 의도를 지닌 어떤 당이 한 첫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했고 볼셰비키가 혼자서 통치하도록 남겨 놓았다. 그 순간부터 볼셰비키의 책임은 늘어났고 그들의 정서는 바뀌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다수파(볼셰비키)와 소수파(멘셰비키)로 분열되기 전에 그들은 다른 러시아 혁명정당과 바탕부터 달랐는가? 볼셰비키가 권위주의적 특성, 수단의 선택에서 편협성과 비도덕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관료주의적 국가주의의 싹을 포함하고 있는 중앙집중화되고 아주 규율적인 조직, 독재적이고 비인간적인 특성. 잘난 체하는 작가와 뭘 모르고 떠드는 작가는 이와 관련해서 레닌의 ‘비도덕주의’, 즉 그의 ‘프롤레타리아적 자코뱅주의’와 ‘직업적 혁명주의’를 인용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1870~80년부터 모든 러시아 혁명정당은 그들이 처한 조건에서 비합법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비합법적 활동 때문에 실제로 권위주의적이고 아주 중앙집중화되었고 규율에 의존했다. 모든 사람은 ‘직업적 혁명가’로 훈련받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투쟁에 모두 바친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은 그때 감히 ‘실천적’ 비도덕성을 지닌 유형의 사람이 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비록 우리가 그들을 열렬하고 이타적인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 공평하긴 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이든 아니든 간에 거의 모든 사람은 자코뱅적 정서가 있었다. 모든 것은 영웅과 광신자를 낳았다. 멘셰비키를 빼고 모든 사람은 독재를 열망했고 그루지야 멘셰비키도 빈번히 독재의 방법을 이용했다. 모든 커다란 정당은 그들의 구조상 그들 자신에게 할당한 목표 때문에 ‘국가주의적’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지닌 교의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거기에는 하나의 혁명적 정서가 있었다.

 

우리는 아나키스트 바쿠닌이 지닌 권위주의 정서와 그가 제1 인터내셔널에 쓴 비밀 조직 방법을 잊었는가? 그가 쓴 『고백』에서 바쿠닌은 계몽된 독재를 두둔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독재를 썼다는 점은 매정한 것이다. 공화주의 이상을 지니고 있고 사회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던 사회혁명당은 아주 중앙 집중적이고 규율 잡혔고 권위주의적 ‘기구’를 발전시켰다. 그 기구는 테러주의적으로 독재와 싸울 것을 목표로 했다. 바로 그것은 경찰이 도발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기도 했다. 전체로서 러시아 사회-민주 세력은 국가권력에 대한 정복을 목표로 했다. 그 누구도 그들의 지도자인 플레하노프보다 훨씬 더 ‘자코뱅’적 말로 다가올 혁명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지배 세력이었던 케렌스키 정부는 사실 비효율적이긴 했지만, 독재적 색채를 띠었다. 네스토르 마흐노의 검은 군대가 점령했던 지역에서 아나키스트들조차도 몰수, 징발, 체포, 처형을 갖춘 진짜 독재를 실행했다. 그리고 마흐노는 그 독재의 ‘두목’이자 ‘대부’ 또는 ‘주인’이었다.

 

단과 체레텔리 같은 멘셰비키 우파도 권위주의의 통치를 바랐다. 체레텔리는 더 늦기 전에 볼셰비즘을 탄압할 것을 편들었다. 마르토프 같은 멘셰비키 좌파는 아마 민주주의 혁명 이상을 진지하게 붙잡았던 하나의 그룹이었을 것이다.

 

볼셰비즘이 갖는 뚜렷한 특성은 공동의 견해를 함께 지닌 그들의 경쟁 정당에 대한 타고난 우위였다. 그 특성은 맑스주의 신념, 혁명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교의, 고집스러운 국제주의, 사상과 행동의 통일이었다. 많은 개인 속에 이러한 사상과 행동의 통일은 그들 자신의 견해에 대한 강력한 신념과 함께 있었다.

 

1917년 맑스주의의 이상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느 정도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달라졌고 사회 투쟁은 그들이 그때로 돌아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동안 역사적ㆍ경제적 현실에 대한 강한 인식에 중점을 두었던 이러한 이상주의는 그때와 환경에 적합했다. 그것은 그때의 자유주의적 표현, 이중거래, 자기 강화하는 미루는 짓, 책임성의 포기에 대한 해결방법을 포함한 것이었다. 온건 사회주의자들은 나라가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게 한 “부르주아혁명”을 진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구조의 발전으로 반드시 이끌게 된다.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이러한 ‘부르주아’혁명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그런 뒤떨어진 무대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사회주의 발전의 길에 들어선 러시아가 궁극적으로 유럽 노동계급을 위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 믿었다. 1917년에 레닌은 모든 생산 수단에 대한 국유화를 계획하지 않았으나 그 대신 생산에 대한 노동자통제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다. 나중에 레닌은 자본주의와 국가 통제로 이루어진 혼합 체제에 관한 생각으로 돌아섰다. 1918년 7월에 비로소 내전의 발발은 수세적 필요로서 완전한 국유화를 강제하게 되었다. 볼셰비키가 지닌 타협하지 않은 국제주의는 러시아에서 혁명보다 훨씬 더 발전되고 훨씬 더 기름진 것으로 될 다가올 유럽 혁명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의존했다. 앞날에 대한 이런 비전은 그들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 사회주의가 함께 지닌 토대의 일부였다. 비록 실제로 거대 정당이 전체 혁명이라고 하는 이러한 구상을 이미 포기해버렸지만. 맑스의 독일 후계자인 칼 카우츠키는 1908년까지 이러한 혁명의 주요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프란츠 메링, 칼 리프크네히트 모두는 같은 믿음을 지녔다. 볼셰비키가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혁명적 인텔리겐치아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발전했던 특수한 환경 때문에 생긴 심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차르 제국에는 의회주의적 기회주의와 일상적 타협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잔인하고 단순한 사회적 현실은 적극적이기도 하고 아울러 전체적이기도 한 신념을 생기게 했다. 이 점에서 볼셰비키는 좀 더 러시아적이었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나 멘셰비키보다 러시아 대중의 기질에 훨씬 더 잘 어울렸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나 멘셰비키는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의 뜻에서 서구적이고, 진화론적 정서, 민주주의적인 특성을 몸에 익힌 당원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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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이제 잘못과 실수라는 다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이런 짧은 연구에서 볼셰비키-사회주의 혁명에 대항해 싸웠던 권력과 정당이 저지른 결점, 잘못, 범죄를 똑같이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와 같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맥락이 빠진 가운데, 우리는 일방적인 견해와 똑똑히 싸워야 할 것이다.

 

1939년에 나는 파리에서 펴낸 『스탈린 초상』(Portrait de Staline)에서 이렇게 썼다. “……정확히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 때문에 사회주의자(볼셰비키)가 저질렀다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잘못은 반혁명, 투기, 간첩 활동, 의무 불이행에 대한 탄압을 위한 비상 위원회의 창설이었다. 나중에 그 위원회는 ‘체카’로 짧게 줄여 불렸다. 그 위원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즉 적어도 방어할 여지도 없는 피의자, 단순한 수상쩍은 사람에게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비밀리에 선고를 받았고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심문이 아니라면, 이것은 무엇이었는가? 틀림없이 포위 상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처참한 내전은 예외적인 조치를 강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사회주의자는 공개 재판이 독단적이고 부패한 행동에 맞선 하나의 보증임을 잊었다. 어떻게 푸키에탕빌(Fouquier-Tinville)이 쓴 임시변통 수단보다 훨씬 더 처진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실수이고 비난받아야 한다. 그 탓에 소름 끼치는 결과가 나왔다. 체카의 훨씬 더 힘 있는 계승자인 GPU도 볼셰비키에서 모든 혁명 세대를 뿌리 뽑았다. 어쨌든 사회학자의 눈으로 볼 때 그러한 환경은 실질적인 중요성을 띠었다. 젊은 공화국은 치명적인 곤경에서 살았다. 크라스노프와 코르닐로프와 같은 장군에 대한 공화국의 관대함은 피의 강으로 물들이게 하는 희생을 치렀다. 옛 정권은 또다시 테러의 이용에 호소했다. 1917년 11월에 백군은 크렘린 병기고 노동자를 대량 학살함으로써 내전에서 테러를 이용하는 주도권을 잡았다. 1918년 첫 몇 개월 동안 핀란드 반혁명세력은 러시아에서 ‘적색 테러’가 선언되기 전에 테러를 이용했다. 1848년 6월의 날들에서 시작한 19세기 사회 전쟁과 1871년 파리코뮨은 정복당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을 대규모로 없애버렸다는 것으로 특징지어졌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졌을 때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런데도 체카는 처음부터 1918년 여름까지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다. 반혁명 봉기가 터진 뒤, 볼셰비키 볼로다르스키와 우리츠키가 암살당하고 난 뒤, 그리고 레닌을 암살하려는 두 번의 시도가 있고 나서, 체카가 ‘적색 테러’를 시작하고 인질과 수상쩍은 사람들, 적들을 총살하기 시작하자, 그것은 대중의 분노를 통제하고 다른 데로 돌리는 수단이 되었다. 제르진스키는 지역 체카의 지나침에 대해 걱정했다. 체키스트 자체의 통계는 이러한 공세가 매우 교훈적일 것으로 어림짐작한 것이다. 최근에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작은 책, 사회혁명당 좌파인 스타인베르그가 쓴 『어느 인민위원의 회고』를 다시 펴 보았다. 그 책에서 나는 두 개의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음을 알았다. 1917년 말에, 총알 두 발이 레닌에게 발사되었다. 레닌을 암살하려 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 노동자 대표가 레닌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반혁명가들이 당신의 피 한 방울을 흘리게 한다면, 페트로그라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백배로 보복할 것이다. 스타인베르그는 이 구상(암살)에 따라 레닌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를 꼼꼼히 적었다. 비극적 결과를 막으려고 사건은 특별히 비밀에 부쳤다. 나는 다른 자료를 통해 총을 쏘았던 두 명의 사회혁명당원이 체포되었지만, 곧 풀려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그들은 볼셰비키 지지자가 되었다. 두 명의 자유주의자인 전직 장관, 쉰가레프와 코코쉬킨은 감옥에 있는 동안 병을 앓았다. 그들을 병원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병원에서 그들은 자신의 침대에서 암살당했다. 레닌이 그 범죄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아주 충격을 받았다. 정부가 조사를 지시했고, 범인은 많은 동지의 지지를 받고 보호를 받았던 혁명적 수병이었음이 발견되었다. 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병들은 테러리즘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행동을 취했다. 사실 함대의 병사들은 암살자를 넘겨주길 거부했고 인민위원은 사건 전체를 ‘잊어버리’라는 강요를 받았다. 수병의 지지가 혁명에 아주 중요한 문제였을 때에, 그들은 자발적인 테러리즘 행동을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었겠는가?

 

1920년에 중요한 처벌은 러시아에서 폐지되었다. 그것은 내전이 거의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조짐이었다. 나는 당내 모든 사람이 정권의 정상화, 포위 상태 종식, 소비에트 민주주의로 선회, 폐지가 아니지만 체카 권력에 대한 제한을 바랐다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혁명 그 자체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피폐화된 나라는 재건을 시작하기만을 바랐다. 그 나라는 여전히 신념과 열광의 커다란 저수지였다. 1920년 여름은 혁명의 역사에서 중대한 순간이었다. 모든 러시아 사람이 상황이 평화스러워지길 바랐던 때에, 필수드스키는 폴란드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맞선 전장으로 몰아넣었다. 틀림없이 정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빚어진 이러한 공격은 영국과 프랑스가 크림 지방을 점령하고 있던 브랑겔 장군을 승인했던 것과 일치했다. 그것이 혁명에 끼친 나쁜 영향은 즉시 나타났다. 폴란드를 패배시킨 중앙위원회는 폴란드에서 소비에트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레닌의 이러한 계획은 바르샤바 문 앞에서 붉은 군대가 패배함으로써 실패했다. 훨씬 더 나쁜 것은 고통스럽고 피로 더럽혀진 전쟁이 끝났음에도 나라가 황폐해졌고 파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는 더는 주요 처벌을 폐지하거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밑바탕으로 삼아 국가를 다시 세우는 일을 시작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비참과 위험은 주민을 참을 수 없게 하는 경제체제에서 당-국가를 불구로 만들었고 그것으로 ‘전시 코뮤니즘’(War Communism)라고 하는 체제 운명이 정해졌다.

 

1921년 초에 크론슈타트 수병 봉기는 정확히 이러한 경제체제와 당 독재에 대항한 저항이었다. 봉기가 지닌 실질적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당은 굶주린 국가를 통치할 수 없었고 그것의 인기를 지탱할 수 없었다. 대중의 자발적인 열광은 사라져 버렸다. 희생과 결핍은 혁명 안에서 여전히 적극적인 소수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지독히 추운 겨울, 불충분한 배급, 전염병, 농촌에 대한 끊임없는 징발 등 이 모든 것은 곳곳에 비참함, 일종의 절망, 빵과 반(反)혁명 사이 이데올로기의 혼동을 퍼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고삐를 놓아버린다면, 그들의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볼셰비키가 자신의 의무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사실 그들이 계속하는 것이 옳았다. 그들의 잘못은 크론슈타트 반란에 부딪혀 제정신을 잃었던 것이었다.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에 있었던 우리가 잘 알았듯이 크론슈타트 반란을 갖가지 방식으로 다룰 수 있었다.

 

권력의 잘못과 실수는 1921년 크론슈타트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수병들은 칼리닌이 냉정하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다. 설득과 이해가 필요했던 곳에,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의장은 위협과 모욕을 썼을 뿐이었다. 형제로 받아들이는 대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로 간 크론슈타트 대표들은 체카에 의해 모두 체포되었다. 갈등에 대한 진실은 당과 나라 전체에서 언론을 통해 숨겨졌다. 크론슈타트를 책임지고 있던 백군 장군 코즐로프스키가 말했듯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미국 아나키스트인 엠마 골드만과 알렉산더 버크만이 선의에서 한 중재 시도는 거절당했다. 그 대신 대포가 동포들끼리 전투에 쓰였다. 체카는 나중에 죄수를 쏘았다. 만일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수병이 1918년 이래 바뀌었고 이제 후진적인 농민층의 열망 말고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다면, 지배집단도 바뀌었다고 말해야 한다.

 

‘전시 코뮤니즘’의 폐지와 ‘신경제정책(NEP)’의 시작을 알리면서, 레닌은 전투와 대량학살이 끝난 뒤 크론슈타트 반란자가 내건 경제적 요구를 만족시켰다. 그럼으로써 그는 정권, 그리고 그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처지에 빠졌음을 인정했다. 신경제정책이 실시되자 농촌에서 징발이 폐지되었다. 그 대신 일종의 현물세가 들어섰다. 그것은 상업과 소규모 기업의 자유를 다시 세웠다. 다른 말로 하면, 신경제정책은 생산과 교환에 대한 완전한 국가 통제를 통해 나라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누그러뜨렸다. 그와 함께, 인내와 화해를 통해 소비에트 헌법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로 했던 다른 사회주의자와 자유의지적 요소에 대한 정부 정책을 자유화하는 것도 정상으로 되었다. 라파엘 아브라모비치는 올바르게 1921년에 이러한 노선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볼셰비키를 꾸짖었다. 그 대신 중앙위원회는 멘셰비키와 아나키스트를 불법화했다. 연립 정부가 이때 세워졌다면, 그것은 확실한 위험을 국제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 입증되었다. 그들은 결코 이러한 권력 독점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실 당과 노동계급 안에서 불만이 퍼지자, 중앙위원회는 그 순간부터 포위 상태임을 어쩔 수 없이 선언했다. 이러한 포위 상태가 당 그 자체에 미친 영향은 너그러웠던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반대파는 비난당했고 숙청당했으며 추방당했다.   <계속>

 

 

멕시코,

1947년 7~8월

빅토르 세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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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Bolsey가 불어본을 영어로 옮기다.

 

<한국어 출처> 「실천」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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