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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무기력 제조에 맞서 코뮤니즘만이 인류에게 전망을 제공한다

무기력 제조에 맞서 코뮤니즘만이 인류에게 전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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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대유행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원인을 밝히고 여러 대안을 제시하려는 수많은 작업을 낳았다. 그중 하나인 마리 모니크 로뱅(Marie Monique Robin)의 「대유행의 제조」(La fabrique des pandémies)는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 저작은 전 세계 약 60명의 과학자들(바이러스학자들, 감염병 전문가들, 의사들, 전염병학자들, 수의사들까지)과 함께 저자가 수행한 연구를 종합하는 형태로 제시된다. 그들이 보기에 세계는 현재 “생물 다양성의 붕괴를 촉발한 인간 활동에 의해 야기된 ‘대유행의 유행병’”에 직면해 있다.

 

이 책은 “유익한 것”처럼 보이는데, “새로운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지구 자원을 약탈하며 기후, 생태, 보건, 경제, 에너지, 재정 위기의 원인인 우리의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을 호소한다. 그리고 책 자체를 “모든 사람의 건강과 행복의 사회생태학을 정초하자는 호소”로 간주한다.1)

 

자본주의는 진실을 규명하는 데 방해물이다

 

과학적 진실에 대한 탐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공유하는 가치이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모든 물질적 자원을 박탈당하고 전투 무기로서 자신의 의식과 조직만을 소유하고 있는 혁명적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현실에 대한 탈 신비화된 통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행동에 필수 조건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과학과 관련하여 혁명가들의 임무는 “그것의 결과물을 이론적으로 완전히 자기 것으로 흡수하면서, 사회주의를 향해 서서히 전진해가는 사회에서 과학의 실질적인 적용은 인간의 필요에 실제로 부응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운동에서 지식의 발전은 과학의 이론적 발전을 과학 자체의 습득으로 간주하는 것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 발전을 더욱 종합적인 이해―사회의 모든 실질적인 진보의 토대인 사회 혁명의 실질적인 실현으로 집중된 이해―로 통합시켜야만 한다.”2)

 

대유행의 원인과 과학적인 기원에 대한 탐구를 고찰하면서,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전을 이루는 데는 힘든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에 의해 생성된 유독한 대기―음모론의 형태로 주로 나타나는 과학적 사고에 관한 비합리성과 적개심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상황―에서 수많은 걸림돌과 마주쳤다. 종종 다양한 포퓰리스트들에 의해 널리 배포되는 이런 음모 “이론”에 따르면, 대유행은 거대 제약 그룹의 이윤을 최대화하거나 개인들의 사적인 삶에 대해 국가가 추가적인 통제를 가하기 위하여 “엘리트들”이 계획한 인위적인 창조물이다. 그 시스템의 더욱 “책임 있는” 대표로 추정되는 사람들조차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에 있어 환경 파괴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과학적 결론을 폄하하기 위하여 미디어를 이용해왔다. 그래서 전 프랑스 국민교육부 장관 룩 페리(Luc Ferry)는 「렉스프레스」(L’Express)의 지면을 이용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공기 오염, 생물 다양성,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는 것은 초현실주의를 드러내는 것이지 과학이 아니다.” 과학적 진실에 대한 탐구는 때때로 연구자들을 보복에 노출하는데, 이는 이러한 압력이 아주 분명한 중국에서뿐 아니라 재정 지원이나 그들의 저작을 이용하지 않는 것 같은 더욱 미묘한 형태로 민주적인 국가에서도 나타난다.

 

과학적 지식의 영역에까지 강력한 여과 장치와 중대한 이데올로기적 제한이 존재하여, 실재에 대한 분석을 방해한다. “과학계 안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믿음, 즉 인간은 지구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종보다 위에 있지 자연의 일부가 아니며 … 자연은 인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축소하는 에코모더니즘(eco-modernism: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옮긴이)”은 완전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물든 자연관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는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덧붙여 제국주의-지난 몇 달 동안의 중국과 미국 사이의 군사 긴장 증대-라는 배경이 있다. 이 두 나라는 미국의 자금을 받는 우한의 실험실로부터 바이러스가 새어 나오게 만든 것이 대유행의 기원이라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국가의 한 부문의 업무에서 세뇌, 허위 정보, 거짓말 또는 그 밖에 상대의 평판을 떨어뜨릴 목적의 것들은 음모적 공상을 먹여 살리고 과학의 위신을 더욱 깎아내릴 수 있을 따름이다.

 

세균전을 위한 바이러스 조작은 현대 세계, 오늘날의 야만적인 세계의 주요 요소이므로,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는 가설을 선험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3) 중국이나 다른 곳에서 일어난 사정이 그와 같은 것이었다면, 극적인 결과를 고려해볼 때,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무책임과 그들 자신의 체제에 대한 통제 상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사고로 유출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지난 몇십 년 동안 동물로부터 전파되는 전염병이 연속해서 출현한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가? 분명 그렇지 않다!”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대유행의 증식에 책임이 있다

 

1950년대부터 지구는 실질적으로 “유행병의 유행”에 직면해왔다. 그 전염병에는 오래된 것뿐 아니라 새로운 것도 있었다. 1940년에 약 20개에서 1990년대에는 100개가 넘었다. 2000년 이래로 인류는 매년 새로운 전염성 질병(SARS, Ebola, Lassa fever, Covid-19)에 직면해왔다. 최근 생겨나는 질병의 70퍼센트는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이 “유행병의 유행”은 (갈수록 불균형해지는 기후뿐 아니라) 삼림 파괴, 산업형 농업, 단일 재배 그리고 산업형 동물 사육의 확대에 의해 야기되는데, 이것은 생태계를 약화하고 생물 다양성의 몰락을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전염 병원균이 증식하기 좋은 조건을 창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나타난 이 새롭고도 연속적인 문제들의 기제는 명백하게 확인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는 데 기여한 몇 가지 요인: 첫 번째 요인은, 모든 것이 그것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단일 재배, 광물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한 삼림 파괴이다…; 두 번째는 요인은 동물군과 인간 사이에서 유행병의 가교 역할을 하지만, 산업적으로 길러지면서 더욱 증식되고 있는 가축들이다; … 세 번째는 지역이 국제 시장에 통합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조상은 1910년 무렵에 깨어났으며, 1960년대부터 몇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퍼지나가 미국에 도착해서 1980년대에 확인되었다.

 

마침내 과학자들은 “지역의 풍부한 생물 다양성이 병원균 작인들의 유포와 독성에 대해 규제 효과를 지니는 덕분에, 생태계의 균형 상태에서는 그 작인들의 활동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희석 효과’”라는 자연적 기제를 발견했다. 생물 다양성의 파괴는 인간 종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나타내며 그것을 보존하는 일이 인간 종의 생존을 위한 버팀목이다. “이 책에서 자기 생각을 표출한 과학자 다수는 (지구상에서 인간의 삶의) 몰락이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고 확신한다.”

 

“완강한” 비난 … 하지만 누구에 대한 비난이며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물론 이 과학자들은 공공 기관의 태만을 비난한다. 공공 기관은 “산업적 사육 병원균 작인이 선택되어 잠재적인 대유행으로 증폭되는 주요한 원인으로서, 이와 연결된 보건 위험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유행의 위험뿐 아니라 그것이 출현할 것을 예견하는 전략과 관련하여, 당국이 그러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과학자들은 또한, “연속적인 보건 위기”가 특히 “생물 감시와 생물 다양성의 조치”를 증대시켜 왔음에도 건강 문제에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국가의 무능력을 지적한다. “매번 보건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긴박한 의무는 결국에는 비상사태의 원인을 무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국가는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유포되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왜 몇 개월 만에 지구상의 인구 전체에서 발견되는지를 밝히는 문제에 답을 할 수 없다.” 지배계급의 태만과 무능은 “반(反)국가적”이라고 칭하기 어려운 기관, 즉 CIA에 의해 확인되었는데, 2017년 새로운 행정부를 위해 작성한 세계정세에 대한 CIA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구와 그 생태계는 앞으로 몇 년간 인간과 자연의 다양한 변형으로 인해 크게 영향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격변은 사람들을 새로운 취약성에 노출하고 물, 식량, 보건, 에너지 그리고 사회 기반 시설을 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 이러한 위험은 시공간 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심각하고 균등한 대재앙적인 방식으로 생태계와 인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 환경 조건의 변화와 전 세계적인 연결과 교환의 성장은 강우 빈도, 생물 다양성 그리고 미생물들의 번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연히 이 모두가 농산물과 농업 체계에 영향을 줄 것이며 인간과 동물의 감염병 출현과 전파를 증대시킬 것이다. … 국내와 국제 보건 체계의 태만으로 인해 전염병들을 발견하고 관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져서, 아주 광대한 영역으로 그것을 확장할 위험이 있다. 인구들 사이의 접촉이 일반화되면서 (결핵, 에이즈, 간염 같은) 이미 확대되고 있는 만성 감염병의 전파가 증대될 것이며, 그것들을 예방하기 위해 승인된 국제적인 자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은 나라에는 심각한 경제 문제와 인간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4)

 

마리 모니크 로뱅의 저술에서 인터뷰한 과학자들은 또한 보건 의료의 경제적 측면에 분개하고 반발하며, “이러한 활동(비상사태를 야기한 경제)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과 퇴화한 의료와 보건 체계에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 사이에 간극”을 지적한다.

 

하지만 “건강 위험의 주요 요인을 이루는 인간 활동”의 뒤에 있는 것이 정확히 누구 또는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문제가 되면, 논의는 안개 속에 휩싸인다.

 

그들은 누구 또는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재정? 몇몇 “다국적 제약 기업과 농업 기업 또는 단기 이윤에 대한 탐욕으로 멍청해진 그 기업의 수뇌부들?” 결국 그 책에서 비판받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사실 “인간 활동”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에 대한 모호하고 일관성 없는 고발은 우리를 모호한 상태로 이끌 따름이다.

 

자본주의처럼 계급 분할이 이루어진 사회에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간” 일반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은 완전히 신비화된 정식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관계의 실제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보건과 환경 문제가 실제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조건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업무에 해당하는 것을 “과잉”이나 “일탈”로 제시하는 것은 전체로서 자본주의 체제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다.

 

“문제가 되는 단 하나의 논점, 즉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포식적 지배에 기반을 둔 지배적인 경제 모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처리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구상하는 구체적인 제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과학은 완전히 증발하여 지배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국가의 그물망 속으로 물러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상이한 처방을 제시한다. 그들은 모두 방향을 전환하여 “우리 모두 한배에 타고 있다”는 낡고 지겨운 신비화 그리고 모든 기관과 정책에 압력을 가하여 “책임을 수용”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시민 개개인”이 동원될 필요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그 책의 결론 부분은, 다른 헛소리들로 가득하지만, 「해방」(Liberation)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을 홍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태 연대의 시간에 도달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두 가지 본질적인 질문―우리는 어떤 발전을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자연을 원하는가?―을 계속해서 탐구하는 데 기여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의사 결정의 모든 단계(시민, 집단, 단체, 조합, 종교 집단, 코뮨, 기업, 정부부서, 지역, 국영사업, 유엔 조직)를 장려하여, 개별적·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이 연대를 생태·사회·경제 차원에서 작동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분명히 해두자. 그들은 우리에게 부르주아지와 국가 기관들에 신뢰를 보여주고, 우리의 운명을 그들의 손에 맡기고,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계급, 재앙의 작인인 바로 그 계급과 협력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세계의 기초가 되는 것을 전혀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본성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마술 지팡이를 발견하지 않는 한 ….5) 하지만 오랫동안 노동자 운동과 맑스주의는 전체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생태계에 대한 자본주의 약탈에 제동을 걸 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하여 자본주의가 “도를 넘는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확산시키면서, 그 과학자들은 우리를 자본주의 사회의 범위 안에, 자본주의를 관리하고 개혁한다는 논리에 가두어 넣는다. 이 모두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재한 시민 행동의 영역에 한정시킨다. 이 가능성을 믿는 것은 막다른 길에 빠지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만들려는 행위는 지배계급과 한패가 되게 만드는 일이다. 부르주아 국가와 지배계급이 피착취자들의 신임을 부분적으로 상실하게 된 대유행의 상황에서, 「대유행의 제조」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에 기여하며, 야만적인 환경 파괴의 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정당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적 방화벽에 지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대안: 코뮤니즘

 

그 책 전반에 걸쳐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지구 환경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개략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특히 경제와 생산 수준에서 “전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고할” 세계적 규모의 “사회 혁명”의 필요성을, 새로운 윤리를 계발하고 그것이 없으면 “생태계를 오래 보존”하기가 불가능할 “빈곤 문제”를 해결할 필요를 제기한다.

 

이러한 (이른바) 해결책이 완전히 부패한 부르주아 세계가 제공할 수 있는 것과 부합한다고 잠시라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없다. 그와는 반대로 이 그림의 윤곽은 자본주의 세계의 무덤을 파는 자가 되어야 하는 사회 프로젝트, 미래로 향한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을 시사한다. 그 대안 “코뮤니즘은 … 인간과 자연 사이의 적대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적대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며,”6) 우리 시대의 혁명적인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수행되는 프로젝트이다.

 

산업화가 (생지옥 같은 대도시의 위생 불량, 전염병, 공기와 수질 오염 같은 것으로) 노동 계급의 생활 상태와 보건뿐 아니라 자연 자원의 고갈―특히 당시 자본주의의 길을 따라가는 가장 발전된 나라 잉글랜드에서 대규모 농업이 발달하면서 토양의 고갈―에 미친 영향력에 직면했던 19세기에, 노동자들의 운동은 그 첫 단계부터 환경 문제에 매달렸다.

 

따라서 맑스주의는 땅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일탈 행위를 맹렬히 비난하고 자연과 그것을 보전하는 일과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상품 세계를 신성시하는 역사적 과정의 정점임을 자처하는 자본주의 체제, 모든 것이 판매의 대상이 되는 재화 생산 체계가 자연에 대한 약탈의 서막을 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더불어 이 약탈은 지구적 수준에서 일어나며, 그 포식의 규모도 인류 역사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되었다. “자연이 인간을 위한 순수한 대상, 순전히 유용한 것이 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와 더불어서이다. 그것은 물 자체로 인식되기를 그치고, 그것의 자율적인 법칙에 대한 지식조차 인간의 필요에 그것을 종속시키기 위한(그것이 생산수단으로서 소비의 대상인 것처럼) 단순한 책략처럼 보인다.”7) (자본주의의 탐욕이 절정에 달했을 때 생태 재앙에서 드러나는) 자연과 자본주의의 양립 불가능은 자본주의의 착취에, 다시 말해 광적인 최대 이윤 추구에 의해 추동되는 자본주의가 부와 이윤을 끌어내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력 착취뿐만이 아니라 자연 자원의 착취와 약탈로부터라는 사실에, 완전히 뿌리를 두고 있다. “노동이 모든 부의 원천이 아니다. 자연은 노동 못지않게 사용가치―그리고 확실히 물질적 부는 이것으로 구성된다―의 원천이며, 노동 자체는 하나의 자연력인 인간 노동력의 발현일 따름이다. … 인간이 애초부터 모든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의 일차적 원천인 자연에 대하여 소유자로서 관계를 맺는 한에서만, 즉 자연을 인간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한에서만, 인간의 노동은 사용가치의 원천이 되며, 따라서 또한 부의 원천이 된다.”8) 맑스는 이미 착취와 자본주의적 축적의 효과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력에 못지않게 지구에도 파괴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근대적 도시 공업에서와 똑같이 근대적 농업에서도 노동 생산성의 향상과 노동의 증대는 노동력 자체의 낭비와 파괴에 의해서 얻어진다. 더욱이 자본주의적 농업의 진보는 그 어느 것이나 노동자를 약탈하는 기술상의 진보일 뿐만 아니라 또한 토지를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 비옥도를 높이는 진보는 그 어느 것이나 이 비옥도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한 나라, 보기를 들어 미국이 대공업을 토대로 하여 발전하면 할수록 이러한 토지의 파괴 과정은 더욱 빨라진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파멸시킴으로써만 생산 기술이나 사회적 생산과정의 결합을 발전시킨다.”9)

 

특히 맑스주의는 자본의 발전 과정이 끊임없는 축적의 필요성에 굴복함으로써, 생산의 자연적 토대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작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 신진대사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파열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구를 주요 중심지로 집결시키며 도시 인구의 비중을 끊임없이 증가시킨다.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역사적 동력을 집중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토지 사이의 신진대사를 교란한다. 즉, 인간이 의식 수단으로서 소비한 토지의 성분들을 토지로 복귀시키지 않고, 따라서 토지의 비옥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침해한다.”10) “대규모 토지 소유는 농업 인구를 점점 더 감소시켜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끊임없이 증대하는 공업 인구를 대도시에 밀집시킨다. 이리하여 대규모 토지 소유는 생명의 자연법칙이 명령하는 사회적인 신진대사의 상호의존적인 과정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을 발생시킨다. 그리하여 지력이 낭비되는데, 이것은 무역에 의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한다. … 대규모 공업과 (산업적으로 경영되는) 대규모 농업은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11) 그것이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이러한 발전이 생태 위기에 맞설 것이라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이 위기를 키워내고 확산시키고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을 따름인 이유이다.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본성, “인간의 삶의 영원한 자연적 조건”에 대한 그것의 위협에서, 맑스는 이미 자본주의가 다음 세대들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렸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12)

 

맑스와 그 시대의 노동자 운동은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끼친 죽음의 고통의 효과를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예지력은 한 세기가 넘는 자본주의 쇠퇴가 진행된 이후에 충분히 확인되었다. 이 과정 동안에 자본의 축적은 훨씬 더 파괴적으로 변하여, “자본에 의한 가차 없는 환경 파괴는 또 다른 차원과 또 다른 성질을 (띠게 되었다.) …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포화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만 하는 시대이다. 결국 중공업의 불균형한 성장을 동반한 영구 군비 경제의 시대이며, 불합리, 국가 단위 안에 공업 단지의 무의미한 중복, … 거대 도시, … 대다수 공업 형태에 못지않게 생태적으로 해로운 농업 형태들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대이다.”13)

 

사실 (지난 몇십 년 동안의 생태적 파괴의 폭과 속도를 묘사하는) “대가속”은 쇠퇴의 기간―자본주의의 최후 국면, 즉 해체 국면의 발작 단계로 치달리고 있는 기간―에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인 위기의 징후 중 하나이다. (코로나 19 대유행이 그 순수한 산물인) 자본주의적 해체의 생태적 결과는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탈구 현상들과 결합하여 인류를 점점 더 혼돈과 야만으로 던져넣고 있다. 자원 고갈과 지구 온도 상승의 결과로 인해 농업과 공업 생산은 붕괴하고 혼란에 빠지면서, 비생산적이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부터 인구 이동이 발생하고, 재앙에 직면하여 살길을 찾는 국가들의 군사 경쟁이 격화되고, 인류의 생존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의 폐지, 자본주의적 착취의 사회적 관계의 폐지만이 생태 위기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은 사회 문제의 해결과 궤를 같이하며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코뮤니즘)를 수립하기 위해서 사회 문제의 해결에 의존한다. 따라서 코뮤니즘은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 안에서 (인간과 지구 사이의 신진대사를) 체계적으로 수리”14)해야 할 것이다. 이 코뮤니스트 사회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만 실행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기존의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기존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15) 수 있는 의식과 실천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을 통해 인류를 위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

 

2021년 10월 25일

스콧(Scott)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 김종원

 

 

<주>

1.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모든 인용문은 마리 모니크 로뱅의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2. “철학자로서의 레닌에 대한 판네쿡의 비판”, 「국제평론」 27호 (4th quarter, 1981).

3. “극단적인 보안 상태에서도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2004년에서 2010년 사이에 미국에서 전염원과 독소에 대한 절도, 분실, 또는 유출 사고가 700건 이상 발생했는데, 거기에는 탄저균과 조류 독감균도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10여 건의 사고는 전염병을 발생시켰다.” S. Morand, Le prochaine peste, 2016.

4. CIA가 본 2023년의 세계 (2017).

5. CIA 보고서 관련 내용(생략함).

6. 칼 맑스, 1844년 원고.

7. 칼 맑스, 1857-1858 필사본, 「그룬트리세」

8. 맑스, 엥겔스, 「사회주의 강령, 고타강령 비판」

9. 칼 맑스, 「자본」, Volume I. 농업 문제에 관해서는 맑스의 예측이 충분히 확인되었다. “토지의 3분의 1 이상(식량 자원 95퍼센트)는 이미 그 질이 떨어지고 이 부분은 세계 인구의 성장과 더불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토지 질의 저하(인간에 의해 야기된 변화로 인한 토지 생산성의 손실)은 이미 종교개혁 시기의 그것보다 40배 높은 것 같다.”(CIA가 관측한 2035년의 세계)

10. 같은 책.

11. 칼 맑스, 「자본」, Book III.

12. “토지의 다양한 생산물의 증대가 시장의 변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본질―가장 직접적인 목전의 화폐 이윤을 지향―은 다음 세대의 항구적인 생활 조건을 고려하여 생산에 착수해야 하는 농업과 모순된다.” Karl Marx, Capital, Book III.

13. “생태학: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국제평론」 63호 (4th quarter, 1990).

14. 맑스, 「자본」, Book I,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섹션 IV,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XV장.

15. 맑스, The 「독일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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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68호 - 2022년 겨울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45/against-manufacturing-impotence-communism-alone-offers-humanity-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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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어떻게 트로츠키주의는 자본의 좌파로 통합되었는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

 

어떻게 트로츠키주의는 자본의 좌파로 통합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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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질문은, 영광스러운 10월혁명의 주요한 창조자 중 하나, 코뮤니스트혁명의 저명한 연설가, 그리고 내전의 영웅 중 하나에서 어떻게 반(反)혁명적, 반(反)코뮤니스트적 이데올로기인 이른바 트로츠키주의가 만들어졌는가이다. 트로츠키 자신이 트로츠키주의를 만든 원래의 건설가이며, 트로츠키의 생애 동안 트로츠키주의가 자본의 좌파로 통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되돌릴 수 없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씁쓸한 진실이다. 그러나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망한 시점에서 저지른 모든 실수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는 혁명가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는 다른 두 진영에 속해 있다. 만약 트로츠키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트로츠키주의와 거리를 두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나탈리아 트로츠키가 트로츠키주의자들과 거리를 두었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반혁명적 행동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음을 보았다.

 

트로츠키는 페트로그라드 노동자평의회의 의장으로서, 1905년과 1917년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레닌 이후, 트로츠키는 영광스러운 10월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1923년 반대파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탈린주의가 10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무덤을 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는 노동의 군사화, 페트로그라드 파업 운동, 크론슈타트 봉기의 진압 등 가장 잔혹한 반(反)노동 정책의 실행 도구였다. 오랜 시간 동안 트로츠키는 반혁명의 상승에 직면하여 침묵을 지켰으며, 권력과 스탈린주의에 유화적이었다.

 

내전에서의 그의 승리들에 대해 언급하자면, 트로츠키는 이 경험들이 노동 전선에서도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노동의 군사화”가 발전하고 이것이 러시아의 재건에 적용될 수 있음 또한 강조했다. 트로츠키 자신이 그 주요한 창시자 중 하나였던 전시 코뮤니즘의 비효율성 이후, 그는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의 독실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는 분파 금지를 승인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통일 전선” 전술을 승인한 주요한 인물이었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쇠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노동계급의 조직이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성장과 발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자본주의의 성장기일 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조직이지만, 자본주의가 그 쇠퇴기에 이르게 되면,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국가로 통합된다.

 

만델(Mandel)을 비롯한 일부 트로츠키의 지지자들은 트로츠키가 이행기(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에 대한 정확한 맑스주의적 이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트로츠키 본인의 언급을 통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며, 트로츠키는 이에 관해 착각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트로츠키가 “일국 사회주의”라는 반(反)맑스주의적 테제에 대한 진지한 비판자였으며, 그의 일생 맞서 싸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트로츠키는 이에 관해 모호한 부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끔 맑스주의적 관점을 잃고, “일국 사회주의”의 방어자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트로츠키가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서의 노동자평의회의 사상을 포기하고, 당 독재에 찬성했으며, 대리주의, 즉 노동계급 독재 대신 당 독재를 강력하게 지지했음을 보여주었다. 당 독재는 의회주의의 무의식적 특권인 것이 사실이다.

 

레닌이 혁명의 위험에 맞서 투쟁하는 동안, 트로츠키는 레닌의 편에 서지 않고, 침묵한 채, 실용적으로 지배 권력과 스탈린을 달랬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복종했을 뿐만 아니라 복종의 문화, 유화정책을 촉진하기까지 했다.

 

트로츠키에게 국유화는 사회주의와 동등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에게 있어 사회주의의 주요 업무는 임금 노동의 철폐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몰수였다. 이는 이런 맥락에 있는데, 트로츠키에게는 사적 소유가 개별 자본주의자 손에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고, 국가 소유는 사회주의의 특징이었다. 트로츠키는 그가 이야기하는 관료제가 생산수단을 가진 새로운 지배계급이며, 집단적으로, 노동계급을 착취함으로써 생산한 잉여 가치를 전용하는 것임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잉여 가치는 지배계급, 관료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눠지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집합적으로 일어났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 기반을 노동자 국가로 보았다. 트로츠키는 10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무덤을 파는 스탈린주의를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으로 여겼다. 영광스러운 10월혁명의 폐허를 향해 승리 선언을 한 반혁명 분자들은 반혁명의 요새가 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거대한 방해물이 되었다.

 

수년 동안 트로츠키주의자 투쟁의 주요 초점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재건, 다른 말로, 악취 나는 시체의 부활을 위한 투쟁과 시도였다. 그러나 코뮤니스트좌파의 목표는 악취를 풍기는 시체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분파를 만들고, 프롤레타리아와 코뮤니스트의 입장을 방어하며, 이제는 반혁명의 중심이 된 코민테른에 저항해 싸우는 것이었다.

 

1934년까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그리고 코뮤니스트좌파 사이에는 몇몇 연결점들이 있었으나, 그 해, 균열과 단절로 마무리되었다. 코뮤니스트좌파는 1928년 코민테른과 자본주의 진영의 통합에 뒤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 패배와 방어적으로 된 계급투쟁 상황에서 새로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의제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당은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특정한 조건(기존 조직과 그룹이 계급투쟁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세계 정당의 건설이 의제로 떠오를 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좌파는 필요한 것은 코뮤니스트 분파의 형성이며, 코뮤니스트 분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과 강령을 방어하고, 그럼으로써 세계적 계급투쟁의 조건이 요구할 때 새로운 당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이행기 강령의 급진적인 몇몇 수사들을 넘어서 살펴보면, 제4 인터내셔널의 강령(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최소강령과 동일)에서는 국민 의회, 제헌 의회, 국민적 자유, 토지 개혁 등등의 제안을 볼 수 있다. 이행기 강령은 첫 단계로 노동자들이 민주주의적 강령으로 무장해야만 한다고 명시한다. 왜 트로츠키 본인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1917년 러시아의 제헌 의회에 반대하고, 모든 권력이 소비에트의 손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는가? 트로츠키의 이행기 강령은 트로츠키가 맑스주의로부터 이탈하여 사회 민주주의로 되돌아갔음을 반영한다.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연방의 방어를 위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에 총알받이가 되라고 요구했다. 5년 동안,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방어를 위해 제국주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모든 국가에 노동자들에게 서로 대량 학살을 저지르라고 요구한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반혁명을 위한 훌륭한 군인이 되었고,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에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의 군인이 되면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진영으로 되돌릴 수 없이 통합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가 노동 운동의 전망을 변화시켰다고 선언했다; 다른 말로, 노동계급은 더는 사회 혁명의 중요한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혁명의 중요한 세력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식민지 혁명의 게릴라라는 것이다.

 

제국주의 쇠퇴의 시기, 모든 전쟁은 반동적이다.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며, 오직 사회 혁명만이 진보적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은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과 지향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예외 없이, 모든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의 방어”, “민주주의 방어”, “파시즘과의 투쟁”, “민족 해방”, “해방 전쟁”, 그리고 “자결권” 등등의 깃발 아래 모여,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총알받이로 취급했으며, 제국주의 학살자가 되도록 질질 끌고 왔다.

 

제국주의 갈등에서 노동자들을 총알받이로 취급하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유전자, DNA에 새겨져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자로 끌고 들어가지 않은 제국주의 전쟁은 없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손에는 노동자들의 피가 흘러 뚝뚝 떨어진다.

 

오늘날 트로츠키주의는 수백 갈래로 나누어져 붕괴, 서로 갈등하는 믿음과 입장들을 가진 부분들이 되었다. 이 그룹들은 자본 좌파의 여러 정치적 기관들이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를 위해 일한다.

 

트로츠키의 부인, 나탈리아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반동적이고 부르주아적 행위들에 동참하길 거부한 사람 중 하나이며,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반혁명적 정책들을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지거나 여겨지길 거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트로츠키주의 반혁명적 입장의 원인이 되는 뿌리, 트로츠키주의 그 자체를 비판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연구의 과정은 코뮤니즘의 진정한 계승자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바로 코뮤니스트좌파(비록 완전히 고립되어 가장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으며, 모든 사회적 사건들에서 약점과 모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다. 코뮤니스트좌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 충성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망을 제시하고, 맑스주의를 풍부하게 하려고 시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기억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코뮤니스트좌파는 미래 세계 혁명에서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2022년 2월

국제주의자 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tvoice.org/trotsky-and-trotskyism-how-trotskyism-was-integrated-into-the-left-of-capital/

 

 함께 읽어야 할 글 

 

1940년: 레온 트로츠키 암살 - 우리가 잊지 못하는 날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431

 

 

나탈리아 트로츠키(Natalya Trotsky), 제4 인터내셔널과의 결별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078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043

 

 

1934년 '프랑스 전환(French turn)'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378

 

 

트로츠키 이후 트로츠키주의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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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반대 시위를 지지하며, 우리의 피를 요구하는 자본주의의 전복이 더욱 필요하다!

동원 반대 시위를 지지하며, 

우리의 피를 요구하는 자본주의의 전복이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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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은 9월 21일 수요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국민 연설에서 2월 24일 처음 침공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예비군 30만 명을 부분적으로 동원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전쟁이 새롭고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인구 동원은 실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볼 수 없었던 상황, 즉 유럽 두 국가 간의 전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 국민은 이 법령을 받아들여야 한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인 50만 명(1)이 이미 자국을 떠났다. 현재, 이 같은 현상은 수요일 발표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 이후 항공사들의 사이트는 폭주했다. 조지아와 핀란드와의 국경 초소에도 밤새 대기 행렬이 형성되었다. 당연히 이 대탈출은 애초에 도피할 충분한 돈을 가진 러시아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징집은 또한 우크라이나에서도 오늘의 질서이기도 하다. 올렉시(Oleksiy)가 슬레이트(Slate)의 한 기자에게 말했듯이 "일부 사람들은 정부가 대규모 동원을 위해 이 앱(Diia, 개인 행정 문서를 디지털 방식으로 중앙 집중화하는 정부 앱)을 사용하고 나서 징집병의 위치를 정확하고 즉시 찾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그래서 징집을 피할 기회가 없다(2).” 2월 24일 이후, 이러한 제한 중 처음이자 가장 가혹한 것이 부과되었다. 그때부터 18세에서 60세 사이의 우크라이나 남성은 더는 영토를 떠날 수 없었다(3). 억압적인 계획에 따르면, 징집은 새로운 형태의 형벌이 되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벌금이나 징역 대신 강제로 모집 센터에 가야 했다. 러시아에서도 정부는 이제 재소자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전쟁 후에 자유를 준다.

 

러시아에서 거리 시위는 삶의 새로운 현실이다.

 

러시아 전역에서 동원 발표는 특히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예카테린부르크(Yekaterinburg) 등 39개 도시에서 온종일 자발적인 시위로 이어졌고(4), 수요일에는 최소 1,332명이 체포되었다(5).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발표 이후 이 나라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시위 중 하나였다.

 

시위대는 “전쟁 반대!”와 "동원 반대!"를 외쳤다. 일부 경찰 업무에는 경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 계획"이 실행되었다. 그러나 시위는 멈추지 않았고, 2월 24일에서 9월 21일 사이에 총 16,500명이 체포되었다.

 

인권 옹호 단체인 OVD-Info에 따르면, 부분 동원 반대 시위 도중 체포된 러시아인들은 구금 중에 징집 명령을 받았다. 모스크바에서는 한 시위자가 징집을 거부하면 10년형에 처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OVD-Info에 따르면 9월 21일 모스크바에서만 최소 1,310명의 시위대가 체포되었다. 이 테러 정권하에서 항의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들 겁에 질려 있어요. 나는 평화를 원하고, 총을 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밖에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해요.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라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시위자가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 노동자와 전체 인구의 반발을 볼 수 있을까?

 

지배계급은 환상을 조장하지 않는다. 러시아 탈영병들은 일부 국가에서 거부당했다. 얀 리파브스키(Jan Lipavský) 체코 외무장관은 AFP통신이 입수한 성명에서 "러시아인들이 푸틴의 더욱 절망적인 결정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부가 부과하는 의무를 다하기 싫어 달아나는 사람들은 인도주의적 비자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그동안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유일한 EU 회원국으로 솅겐(Schengen) 비자를 소지한 러시아인의 입국을 허용했지만. 9월 30일부터 금지한다. 제국주의 지배계급은 전쟁에서 충돌할 수 있지만, 전쟁에 대한 반대와 총알받이가 되기를 거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은 “자국 정부가 부과한 (애국적) 의무를 다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데 단결한다.

 

분명히 전쟁은 위기에 처한 지배계급의 삶의 방식이다. 사람들이 더는 피를 바치기 위해 행진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는 파산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사람들의 희생은 이 야만적인 삶의 방식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지배계급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대대적 파업으로 투쟁을 시작하는 노동계급이다.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적수의 살인적인 무기를 마비시킬 수 있다.

 

이것이 경제 위기, 보건 위기, 환경 위기, 기근, 우리의 임금을 갉아먹는 인플레이션 폭등 등 사방에서 물이 넘쳐 가라앉고 있는 자본주의에 맞서 더 나은 세계로 다가가기 위해 우리의 사슬을 끊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현재 분쟁의 양측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단호히 지지해야 한다.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투는 사회가 야만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항하는 반(反)자본주의 계급투쟁이다.

 

2022년 9월 22일

M.O.

Bilan et Perspectives

 

<주>

 

(1) 르몽드(Le Monde), 22 September 2022

 

(2) https://www.slate.fr/story/232143/guerre-ukraine-mobilisation-plus-en-plus-dure-appeles-combat-armee-soldats-conscription-peur

 

(3)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EU 국가들은 그 이후 우크라이나의 결정을 존중해 왔다.

 

(4) https://ovd-news.translate.goog

 

(5)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479명, 예카테린부르크(Yekaterinburg)에서 49명, 페름(Perm)에서 30명, 첼랴빈스크(Chelyabinsk)에서 26명, 우파(Ufa)에서 23명,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에서 18명, 보로네즈(Voronej)에서 17명, 크라스노다르(Krasnodar)에서 14명, 트베르(Tver)에서 13명, 사라토프(Saratov)에서 12명,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에서 11명, 이르쿠츠크(Irkoutsk)에서 9명,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에서 6명, 울루츠키르데(Novosibirsk)에서 6명, 울란우데(Ulan-Ude)에서 4명 등등...이 구금되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9-28/demonstrations-against-the-mobilisation-great-getting-rid-of-capitalism-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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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기후정의행진에 부쳐 :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그리고 전복의 전망

9.24 기후정의행진에 부쳐 :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그리고 전복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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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기후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홍수, 빙하의 증발 등 기상이변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징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위기의 요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사회 확산과 맞물려 있으며, 자본주의가 지구 전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산양식이 되면서 더욱더 심화하였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폭염과 폭우 그로 인한 산사태, 가뭄 등의 피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후 재난은 지난 7~8월 중부지역의 집중호우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서처럼 직접적인 피해와 갈등뿐만 아니라 재난지원마저도 철저하게 계급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기후 재난의 피해는 대부분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몫이지만, 자본은 탄소배출권, 그린 경제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후 위기마저도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다. 이것은 기후 위기가 철저하게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순수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간사회의 생산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기후 위기의 배경

 

수많은 환경운동단체뿐만 아니라 세계 부르주아지 일부도 현재의 기상 상황을 기후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기후 위기의 원인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등을 지목하고 있다. 환경운동단체와 이른바 진보좌파 일부는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환경과 자연 파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기후 위기의 해결책으로 불평등 타파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사회경제체제와의 관계에 대한 접근은 피상적 수준에 그치면서,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내의 대안에 충실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철저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원인 분석이 미미할수록 나오는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 정책 개선에 머물거나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의한 규제, 탄소 거래제에 대한 기대, 생태도시로 전환 요구는 규제 강화를 통해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규제와 제도 개선, 정책 전환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윤추구와 독점이라는 관점에서 도입, 시행되는 재생에너지 생산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 한때, (지금도) 사회연대경제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등이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의 사회연대경제는 오히려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이것은 재생에너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과 독점화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뿐이다.

 

또한 자본과 지배계급은 녹색경제, 탈성장, 지역생산, 뉴딜정책 등등 자본의 이윤 추구를 마치 친환경적으로 미화하고 있다. 녹색은 껍데기에 불과한 데도 많은 환경단체와 진보좌파는 녹색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자본에 녹색을 요구한다고 하여 친환경이 실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진보좌파, 즉 자본주의 좌파의 환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내의 개혁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조는 쇠퇴기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생명 연장 수단이자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코뮤니스트혁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후 위기는 자본축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점은 국제 부르주아 기구에서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보고서는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 빙하의 해빙 등 기후 위기의 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온실가스 농도는 1750년부터 감지할 수 있고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화 확산과 맞물려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악화하였다. 이는 자본축적의 세 번째 주기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결국 기후 위기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분석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트리는 진보좌파는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전복하기 위한 투쟁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 또한 기후 문제 해결의 큰 걸림돌이다. 사회주의가 일국에서 불가능하듯이 기후, 환경 문제 역시 국가 단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 지역으로 세계 공장 이전은 자본축적의 일환이며 이는 일국이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3. 기후 위기는 자본의 또 다른 이윤추구 기회

 

<사례1> 지난 8월 기후 위기에 따른 폭우가 중부지방을 휩쓸었다. 그러나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 반지하에 살던 장애인과 노동자 가족, 그리고 컨테이너 임시숙소에 머물던 이주노동자가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목숨을 잃었다. (“이번 폭우는 기후재난, 반지하 없앤다고 문제 해결될까”, 「비마이너」, 2022. 08. 11)

 

<사례2> 당시 윤석열은 대통령실을 통해 자신도 침수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증거와 증언은 이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였다. 윤석열의 집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아파트 측이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조치를 경고했다. (“윤 대통령 아파트가 침수 피해?... '허위 영상'에 뿔난 입주민들”, 「한국일보」, 2022. 08. 12)

 

<사례3> 11호 태풍 힌남로가 지나간 포항 냉천 지류인 용산천 인근의 용산2리에는 집들이 지붕만 남기고 통째로 잠겼다. 그 이전까지 어떠한 태풍에도 범람한 적이 없었던 하천이었다. 하지만 용산천 인근에 포항시가 아파트 허가를 내주면서 물길을 거의 직각으로 변경하였다. 피해 마을 주민은 "아이파크 때문에 이 지대는 전부 저지대가 된 거에요. 더 저지대가 된 거에요. 딴 것 없어요. 약한 사람은 죽어야 되고 돈 있는 사람만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범람 안 된다던 포항시…수로 바꾼 '인재'”, 「대구mbc」, 2022. 09. 14)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거는 계급적이고 빈부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기후 위기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몫이다. 물론 기후 위기의 피해뿐만 아니라 전쟁, 경제위기, 대유행 등 자본주의가 퍼트리는 온갖 고질병의 고통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강력한 타격을 준다. 이쯤 되면 기후 위기에서 비롯된 각종 재해는 사회적 관계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호 태풍 힌남로가 할퀴고 간 포항을 방문한 윤석열에게 재해 약자는 자연재해인가? 아니면 인재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질문과 포항 용산천 범람은 기후 위기가 경제사회 체제와 밀접하고 계급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제기한 사건이었다.

 

자본은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전쟁, 대유행 등 각종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과 희생을 요구했다. 노동자에 대한 고통 전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자본에는 이윤 추구의 기회이기도 하다. 경제위기 시에는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의 집적과 인플레이션을 통한 사회적 약자의 부를 도둑질하며 부가가치를 증대시켰다. 최근 윤석열 정권의 재정 확보를 위한 국유 재산 매각 역시 이런 맥락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사례는 있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건실한 재정 확보라는 명분으로 한국석유공사 사옥 매각 후 그 건물에 임대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와 관련된 탄소배출권, 무늬만 친환경인 테크놀로지의 대표 사례인 전기자동차는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나 전기자동차 생산과정이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고 수소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린란드 빙하가 녹자 희토류를 선점하려고 제프 베이조스,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억만장자들이 광물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각종 위기는 고통 분담 이데올로기와 폭력을 통해 노동자에게는 고통을 가중하지만, 자본에는 집적과 집중의 기회이다.

 

4. 기후 위기 대책

 

1) 기후 위기에 따른 사회시설 제반에 대한 개선 요구

 

지난 8월의 폭우에 대한 대책으로 서울시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을 불허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는 주거의 공공성 강화라는 내용도 없고 반생태적 도시환경에 대한 근본 대책도 없다며 강력히 비판하였다. 수도권에서 반지하는 일반적인 주거 공간 중 하나다. 서울시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5%에 달하는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 즉,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택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다.

 

비판의 핵심은 근본적인 문제는 위기를 상시화하는 서울의 도시 환경이라는 것이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은 빗물이 스며들 수 없고, 하천을 매립하거나 숨기며 물의 흐름을 막는 복개천은 홍수 위험을 높인다. 자연의 순환 시스템을 무시한 도시개발이 생태환경과 인간의 삶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반복되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생태적인 도시계획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반생태적 도시환경 개선보다는 토건 자본을 위한 정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 재수립과 기후재난에 취약한 계층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서 대규모 정책 수립과 예산 확대를 정부와 서울시에 마련하라고 요구하였다.

 

2)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탈성장, 지역경제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지 대안인 녹색경제, 그린뉴딜 등의 명칭은 국경을 초월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을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권은 녹색성장을 주장하며 친환경 정책인 양 포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물이 4대강 사업이다. 문재인 정권 역시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과는 다르다며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을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린 뉴딜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탈 탄소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녹색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구도 살리고 돈도 버는 정책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 목표·계획이나 어떠한 규제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탄소배출 제로 의지와 전망을 가지지 못한 공허한 내용에 불과한 친자본적인 정책으로 이전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국제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 기후 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된 자본은 결코 이윤을 포기하지 않고 비서구권으로 공장 이전을 통해 탄소 배출 규제 및 배출권을 이용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 더 나아가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이러한 철학 부재는 당연히 대안의 부재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자신의 무능과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 장밋빛 청사진으로 제시했지만, 그들의 계급적 성격은 감출 수 없었다. 탈 탄소 문명을 탈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빠져 있고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에 맞춰져 있다.

 

3)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과 녹색경제 :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은 노동단체의 비판처럼 자본의 이윤 중심이 아닌 노동자의 관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 부르주아 기구의 탄소 저감제, 생태도시 조성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가? 저소득 노동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가? 또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을 부르주아지에 강제하지 않고 협조, 요청 정도로 실행 가능한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어떠한 긍정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의 이윤 축적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이 아니다. 즉 지금의 기후 위기 역시 철저하게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에 협조, 요청이 아닌 기후 위기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계급성을 갖추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탄소배출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탄소배출 제로에 대한 무능력과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 더 나아가 환경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 없다. 따라서 세계환경협약을 통한 국제 부르주아지의 추진과제(탄소 저감, 그린 경제 등)들은 공허한 내용에 불과하다. 오히려 무능력과 무의지를 감추려는 부르주아 정부는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하지만, 결론은 자본의 이윤 추구의 새로운 방법밖에 없다.

 

자본의 이윤 추구는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 분담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지는 자기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할 뿐이다. 그것이 환경과 기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 탄소 저감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린뉴딜이나 녹색성장, 녹색경제 등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자본 축적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은 시급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며, 도시 녹지 확보 및 재난 인프라 구축 역시 중요한 사업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을 잠시 살펴보자. 문재인 정권은 집값 억제가 아니라 집값 폭락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 부르주아 정부와 정당들의 집값 안정 대책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 이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 및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에 전가될 뿐이다. 또한 공공임대주택 역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는 철저하게 이윤추구라는 관점에서 시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부르주아 정부는 노동자의 요구에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요구를 정책으로 시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정책과 제도 속에서 경험했다.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요구와 기대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5. 결론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결론은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의 원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라는 것이다. 약탈과 착취의 생산이 지속된다면 인류를 포함한 종 전체가 탈출구 없는 멸종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 결국 선택지는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종의 멸종을 포함한) 생태계 파멸이냐의 갈림길만이 놓이게 된다. 부르주아지는 자본 운동을 억제하거나 중단시키는데 조금의 이해관계도 없다. 오직 기후 위기, 환경파괴, 종의 멸종을 향해 폭주하며 달리는 자본의 운동에만 전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진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와 끊임없이 전쟁을 야기하는 자본주의의 폭주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자본의 무한이윤 경쟁은 기후 위기가 일국만의 대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세계혁명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인류, 생산 및 환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여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문제 제기 없이는 지구파괴를 막을 수 없다. 이윤추구 체제를 넘어서지 않는 대안과 정책은 결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지구파괴와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한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킨다.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노동자 희생과 지구 파괴를 멈출 수 있다!!

 

기후재난, 환경 파괴, 대유행, 전쟁, 생계비 위기 :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만이 지구와 인류를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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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는 9.24 기후정의행진을 맞이해 이렇게 주장한다.

 

기후재난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전복해야 살 수 있다!!

 

2022년 9월 22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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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che: Stalinism and Maoism with Feudal Characteristics

Juche: Stalinism and Maoism with Feudal Character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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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face of imperialist wars and capitalist crises, at a time when it is important to reveal the essence of the left of capital, including the Stalinists, we republish an article criticizing the Juche ideology, the ruling ideology of the North Korean capitalist system.
 
This article was published in 「Communist」 No. 1, and the English version was published with the contribution of ICT comrades.

 

 

 

A Critique of Kim Il-sung's Juche Ideology

 

The charter of the Workers’ Party(1) enacted in August 1946 declared that “The Workers’ Party of North Korea is guided in its activities by the theory of Marxism-Leninism.” From the liberation day of 1945 to the mid-1950s, Marxism-Leninism (Stalinism) was accepted in a similar way to the principle of “learning from the Soviet Union”. However,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position on economic development after the Korean War (1950-3), the concept of Juche first appeared in 1955, in the speech on On Eliminating Dogmatism and Formalism and Establishing Juche in Ideological Work, where it was stated that “Marxism–Leninism is not a dogma [but] a guide to action and a creative theory”. However, for practical reasons, from 1955 to 1963 the Juche idea was hardly mentioned officially.

 

As the Sino-Soviet split in the international “communist” movement progressed, the position of North Korea became clearer and an independent line took shape through the criticism of the Soviet Union. Kim Il-sung's April 1965 lecture On Socialist Construction and the South Korean Revolution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as the first formulation of the Juche ideology. Here the concept of an “independent” and “creative application” of Marxism–Leninism, along with a method of raising the political and ideological consciousness of the masses, was presented.

 

Then, in 1970, the Fifth Congres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revised the party charter and declared "Kim Il-sung's Juche ideology, a creative application of Marxism-Leninism, as the guideline for state activities”. In addition, the “Socialist” Constitution adopted in 1972 clarified that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s guided in its activities by the Juche idea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a creative application of Marxism-Leninism to the conditions of our country." Finally, in the 1980s, the Juche idea was elevated to a higher level than that of Marxism-Leninism.

 

… The leader [Kim Il-sung] was well acquainted with Marxism-Leninism in his early revolutionary activities. However, he did not stop at applying Marxism-Leninism to the practice of the Korean revolution, but pioneered a new frontier in revolutionary theory from a firm and independent standpoint, and creatively concluded the problems raised by revolutionary practice.

 

(Baeksan Seodang, 「 Ideology」, Volume I, 1989)

 

 

The Juche ideology is composed of a holistic system of ideas, theories, and methods. This systematisation is summarised in Kim Jong-Il's 1982 treatise On the Juche Idea. In the Juche philosophy, the relationship between matter and consciousness, existence and thought, was taken as the fundamental problem of philosophy, and the “position and role of man in the world” is raised as a new fundamental problem. It claims that while the preceding working-class philosophy (Marxism) saw the essence of man in terms of the “ensemble of social relations”, the Juche philosophy enriches it by seeing man in a social relationship and defining the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a person to be independence, creativity, and consciousness.

 

The evaluation of the Juche ideology can be broadly unfolded around two axes. One is the philosophical problem of the Juche ideology, and the other is the social and historical logic of the Juche ideology. There may be many philosophical problems that can be also raised in the Juche idea, such as the concept of human destiny, its existentialist view of society and history, and irrational views on collective life, but here we intend to limit the analysis to its relationship with Marxism.

 

The rational elements that the Juche ideology added to Marxism are its so-called “people-centred” ideas, theories, and methods. But they are neither new nor rational. “When we say that we look at people as the centre and grasp the attributes of people by that, we mean to capture people as being distinct from animals and other beings.“ (Kim Jong-il, On Some Issues Raised in the Juche Ideology) Such formulations existed even before Marx, like those found in Feuerbach, when he refers to the attributes and characteristics that distinguish human beings as the highest form of material existence from other beings. (Feuerbach, The Essence of Christianity)

 

Marx’s critique of philosophy was also focused on this very point, and it is clearly evident just by looking at his Theses on Feuerbach. After all, the “person-centred” world-view and the so-called human (attribute) theory are not new rational elements absent from Marxism that emerge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the times”. They are nothing more than an “irrational element” that Marx had already learned from Feuerbach in the 1840s and criticised and discarded with the development of his own ideas. Therefore, we cannot see any new idea revealed by the Juche ideology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as a rational element to be added to Marxism, but rather a deviation from Marxism. This is a fact clearly revealed in the philosophy of the Juche ideology. The “person” revealed by Juche is an ideal and metaphysical being and is nothing more than an abstract human who has lost concrete class definitions. The essential attributes of a person that the Juche ideology has “newly” revealed, that is, independence, creativity and consciousness, are not profound, but mostly just official phraseology.

 

Furthermore, there is the issue of the infinite power of Suryong, or the Great Leader. The definition of the essential attributes of this figure are vividly revealed only when we arrive at the Suryong system. In other words, independence, creativity and consciousness are only attributes given by the leader, rather than an essential attribute of a person, and through this, the aim is to to become a “subjective human being” who unconditionally obeys the leader with infinite loyalty.

 

In other words, in the Juche idea, like in all religions, emphasis on human absoluteness has forced the logical need to properly harmonise the infinite absoluteness of humans in ideas and the finite relativity of humans in reality. It is the bourgeois idealism of North Korea. Just as mediaeval scholastic philosophy saw its absoluteness in God, and Hegel saw it in the absolute spirit, the Juche idea sees it in the Great Leader.

 

In short, the Juche idea is nothing more than metaphysics that misunderstand the core concepts of historical materialism, the relationship between base and superstructure, and the production of social existence. However, the bigger problem is that all components of the Juche ideology result in the idea of the revolutionary leader. The claim that the leader, and ultimately, an individual, makes the history of the party is essentially the same as the claim of idealists that the hero or great individual makes history. The most important thing in all revolutionary struggles is the leadership of the party, not the individual, which is essentially collective guidance. Blind commitment to the master of the sect is no different from pre-modern religion. Moreover, when it becomes the social principle of a North Korean capitalism dominated by the bourgeoisie, which has nothing to do with Marxism, it becomes clear that it takes the form of a state capitalism with feudal characteristics that destroys even the form of bourgeois democracy.

 

 

“People's Democracy” and North Korean Capitalism

 

We criticised above the ideology of Juche, which has become a pillar of North Korea's ideology of one man rule, as an idealism that has nothing to do with socialism and Marxism. Is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a socialist country then? Just as the Maoist revolution in China was a bourgeois "People's Revolution", North Korea's "People's Democracy", forced from above by Stalinism, is nothing more than transformation into state capitalism which has nothing to do with the revolution of the working class.

 

North Korea divides the history of Chosŏn into feudal era Chosŏn and the modern period of Chosŏn,(2) which it thoroughly rewrites on the basis of the Juche ideology, and describes it as a history of the struggle for independence, breaking away from the class view based on historical materialism: “The history of human society is the history of the struggle of the popular masses to defend and realise independence.” (Kim Jong-il, On the Juche Idea)

 

The modern history of the Chosŏn people was consistent with the anti-aggression and anti-feudal struggle to oppose foreign capitalists and to liquidate the feudalist system, far from historical development by sticking to national independence. … From the socio-political and class content, it had the character of a bourgeois national movement.

 

(Lee Jong-hyun, "Modern Chosŏn History", North Korean Studies, 1988)

 

 

The historical interpretation found in Kim Il-sung's writings narrates the struggle for national liberation, and views it through the prism of American imperialism that began with the French expedition to Korea in 1866 and continues to this day. Japan is also written off as militarist rather than imperialist, as an aggressive force on the back of a large imperialist force (the United States), a collusion based on the common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and Japan.

 

In evaluating the anti-aggression and anti-feudal struggle, while positively evaluating its historical significance, it is also characteristic that historical interpretations summarise the limitations of this struggle by the absence or immaturity of its leaders and organisations. As can be seen, this eventually interlocks with the Juche ideology: the arrival of the Great Leader and the revolutionary strategy of the Juche party.

 

Modern Chosŏn history is characterised by describing the anti-Japanese revolutionary struggle with Kim Il-sung at its centre, considering the Down-with-Imperialism Union(3), allegedly formed on 17 October 1926, as the origin of the Juche ideology. Since then, history has taken the form of stages of historical development towards anti-feudalism, bourgeois nationalism (capitalism) and socialism, but the content is recorded as a history of independence, that is, a history of anti-imperialist and national liberation struggles.

 

On 8 February 1947, Kim Il-sung said the following:

 

On the international arena the struggle between democracy and anti-democracy, between progress and reaction is acute and complex, but the situation has already changed in the people's favour. The world's democratic forces are far more powerful than their opponents, the forces of reaction. … This is the new international environment of our country where all our people are working to establish a democratic, independent, and all-sovereign state.

 

(Kim Il-sung, On the Political Situation in Korea)

 

 

He also said,

 

The people's democracy we are aiming for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democracy of European and American capitalist countries, and it is not a copy of the democracy of socialist countries. … Our nationalism is a new nationalism suitable for the reality of Korea, which is in the stage of anti-imperialist, anti-feudal, democratic revolution.

 

(Kim Han-gil, The History of Contemporary Chosŏn, 1988)

 

 

The next stage after completing the "anti-imperialist, anti-feudal, democratic revolution" is, of course, the stage of "socialist revolution". It is said that North Korea entered that final stage after 1971. The socialist construction, which refers to nationalisation, was just the result of the Provisional People's Committee of North Korea simply inheriting industrial facilities from the Soviet Union.(4) In fact, when workers at large factories in some parts of North Korea tried to take them over and manage them independently shortly after liberation, the Soviet Union did not allow it. In 1945, the number of workers in North Korea was estimated to be more than 1 million, more than 10% of the total population of 10 million, which means that the North Korean working class had the potential to establish some form of workers' power and self-management.

 

However, looking at the dependence on trade with the Soviet Union, the share of Soviet exports in North Korea's total industrial output reached 47.5% in 1946, 45.7% in 1947, and 55.5% in 1948, so North Korea was inevitably subordinated as a satellite state. Moreover, the North Korean bureaucrats oppressing the people were a privileged class receiving more than workers' wages. We believe that North Korea did not meet the minimum conditions of a workers' state, and can instead be seen as a bureaucratic state capitalist formation, a special form of Stalinism with feudalist political features.

 

 

North Korean Economy and the Market

 

The leadership of the party was at the core of North Korean politics from the first half of the 1950s, but between 1956 and 1961, the party supremacy began to centre on Kim Il-sung, and after the succession of Kim Jong-il in 1998, it was passed on to the military. As capitalism in North Korea is based on a market economy system, the Great Leader, the market, and the currency exhibit contradictory changes.

 

From 1958 to 1961, China suffered the death of more than 20 million people from starvation through the Great Leap Forward, but achieved growth based on the exploitation of the working class through the reform of state capitalism. North Korea has not been able to escape from persistent famine. The continued failure of economic planning and ideological manipulation centred on the Great Leader made the feudal state chaebol system(5) move towards market-oriented capitalism.

 

The 1978 Second Seven-Year Plan achieved only 55% of the target, despite its desperate measures emphasising the “Juche economy” and the “principle of self-reliance” and the presentation of “Ten Major Targets for Socialist Construction” at the Sixth Congres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in 1980. In 1989, during the Third Seven-Year Plan (1987-1993), the World Festival of Youth and Students held in Pyongyang aggravated the foreign debt crisis, which reached $4.6 billion, equivalent to the total amount of North Korean trade. The revised constitution in April 1992 introduced a new trading system that guaranteed economic activities of foreigners, and on 14 July, monetary reform was carried out, mobilising the capital obtained through the suppression of consumption for industrial purposes. In 1993, the next two to three years were set as the “buffer of socialist construction” and “revolutionary economic strategy” of prioritising trade, agriculture, and light industry. However, in December 1993 the achievement rate of the 10 major prospects of the Third Three Year Plan was only 9.6% to 25.9% and the factory operation rate was 40%, recording negative growth for nine consecutive years from 1990 to 1998.

 

After that, North Korea calls the period from 1994 to 1999 the age of the “Arduous March” as it attempted to change the existing method of capitalist accumulation. Contrary to what was said in On Some Theoretical Problems of the Socialist Economy published by Kim Il-sung on 1 March 1969, the discussion was now devoted to increasing the activity of the law of value. (See: Cha Moon-Seok, The Arduous March and Changes in the Characteristic of the North Korean Economy, The Study of Modern North Korea, 2005)

 

At this time,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 through which goods were provided by the state, based on the personal and patriarchal relationship to the Great Leader, who expects loyalty, support, and mobilisation of the masses in return – began to crumble. In 1998, under the new slogans of “forced march for the final victory” or “forced march for socialism”, the state tried to manipulate the symbolism of the “Second Chollima Movement” and “Kanggye spirit”(6), but it was not enough to allow the destroyed North Korean economy to recover.

 

Eventually, at the end of 2000, a “new economic policy” was announced. It included strengthening the functions of the Cabinet(7), expanding the authority of individual economic organisations that make plans for each sector, and the massive reorganisation of factories and business establishments to improve and rationalise economic management. In July 2002, the government sought to change the labour structure by improving labour management and the governance structure of factories, expanding their autonomy by strengthening the authority of professional managers. Since then, after the reorganisation of the general market in 2003, the national store has been converted into a purchase store, and the implementation of the independent profit-making system, the replacement of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by the Jangmadang markets(8), and the conversion to monetary wages, have all led to the commercialisation of the labour force, leading to a full-fledged market economy system.

 

North Korea claims to have overcome the economic crisis through the “Arduous March” period (1990-1998), the “production normalisation period” (1999-2004), and the “economic revitalization period” (after 2005). It can be seen as the declaration of transition to a capitalism based on a market economy.

 

In its New Year's Address of 2007, North Korea said that it experienced a “turbulent year” after the nuclear test, and that 2006 was one of the worst years of adversity. In 2006, North Korea's trade with China amounted to about $1.7 billion, suggesting that North Korea's dependence on Chinese capitalism is enormous. And in 2007, most of the general factories and enterprises stopped operating. The factory utilisation rate varies depending on the region, the number of military and civilians, and the production rate, but it seems to be around 20% on average. It can be said that North Korea's nuclear sovereignty is not a desperate struggle to escape from the “Arduous March”, as the enormous cost of nuclear development further weakens the North Korean economy and causes terrible hunger due to food shortages.

 

However, despite the objective misery of North Korean capitalism, the ideological manipulation of the Great Leader still remains.

 

The Great Leader has dedicated all his heart and soul to strengthening our self-defence capabilities, continuing on the road of Songun (military-first), keeping the factory and the trains behind him. …The success of the nuclear test in Korea is a historic event that will serve as a special feature in the history of the nation and world politics for half a million years.

 

(Pyongyang, Workers’ Party of Korea Publishing House, 2006)

 

 

Wages account for only 10% of North Korean people's income, and about 90% of their income is from business. Food security is also achieved through “self-reliance,” as they say, by purchasing it from the market, securing it on your own, or smuggling it. Although the market economy system was introduced, it lags in production, so it takes the form of commercial capitalism that seeks to earn profits through the distribution of foreign products. It will be difficult to establish the North Korean economy as a capitalist system centred on industrial capital through food aid and material compensation in return for nuclear disarmament. Ultimately, Kim Jong-il's power is likely to be maintained through a tug-of-war between the following options: dependence on Chinese capitalism or dependence on American and South Korean capitalism. The historical responsibility of destroying North Korean capitalism rests primarily with the North Korean working class, but it depends on the unity of the working class in East Asia (including the unity of the North and South Korean working classes) and the revolutionary struggle of the world working class.

 

- Oh Sei-chull
Internationalist Communist Perspective (ICP)
October 2012

 

 

 

Translator's Notes:

 

(1) The Workers' Party of North Korea was founded in August 1946 from the merger of the northern branch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and the New People's Party of Korea. In June 1949 it further merged with the Workers' Party of South Korea, forming the Workers' Party of Korea which remains the ruling party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o this day.

(2) Chosŏn, or Joseon, refers to the historical kingdom of Korea (1392-1897). North Korea, which calls itself Chosŏn Minjujuŭi Inmin Konghwaguk, harkens back to it.

(3) According to official North Korean history, the Down-with-Imperialism Union was a leading organisation in the fight against Japanese rule founded by Kim Il-sung (who would have been 14 at the time). The existence of such an organisation has been historically questioned.

(4) Following the Second World War, the Southern half of the Korean Peninsula was occupied by the USA, and the Northern by the Soviet Union. At the same time various "people's committees" sprang up all across Korea. In the South, these were dissolved to make way for the First Republic of Korea. In the North, the Soviet Civil Administration attempted to assimilate them. For this purpose an interim government called the Provisional People's Committee of North Korea was founded in February 1946, which also nationalised key industries and introduced land reform.

(5) Chaebols were family-controlled corporate groups.

(6) The “First Chollima Movement” was a North Korean Stakhanovite movement intended to boost production in the 1950s. Kanggye is the provincial capital of Chagang where construction of power stations and factories continued despite the 1998 famine. Kim Jong-il toured these facilities and encouraged the whole nation to emulate the "Kanggye spirit."

(7) The state-management organ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8) Jangmadang markets, where farmers sell off their surplus of goods, were initially part of the large informal economy of North Korea, but have become increasingly tolerated by the regime.

 

Thursday, September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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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장애를 폐지하기 위한 실제 운동

장애를 폐지하기 위한 실제 운동

 

 

아래의 글은 장애인의 억압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혁명적 접근을 촉진하기 위해 코뮤니스트 이론과 장애 운동가 및 이론가의 통찰력을 결합하려는 잠정적인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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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즘 : 장애를 폐지하기 위한 실제 운동

 

지배계급의 지배적인 사상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이다. 혁명가로서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사물이 어떻게 되고 어디로 갈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념에 영향을 미치고 제한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대중문화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혁명적 환경에서 우리는 임금 노동, 국가, 핵가족 등의 보편성을 다양한 성공 수준으로 거부한다. 이 글에서 나는 대부분의 혁명가가 정치경제에 대한 분석에 결코 도입하지 않는 분야인 장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장애는 자본주의에 특유하고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코뮤니즘이 장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현대 사회 관계의 특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맑스가 코뮤니스트들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현 상태'에서 장애를 확고히 찾는다.

 

장애란 무엇인가?

 

신체나 정신이 어떤 면에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함께 묶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범주로서 흔히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장애이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틀에서 너무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 장애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 즉 보는 것, 집중하는 것, 걷는 것, 의사소통하는 것 등의 측면에서 생각된다. 장애인들은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들의 기능이 손상되었다.

 

장애에 대한 이 개념은 두 가지 중요한 가정을 한다. 첫째, 그것은 결함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자연적인' 특성들의 집합이 우리가 장애라고 부를 수 있는 일탈이 있다고 가정한다. 둘째로, 사회는 어떤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한 사람이 최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비장애인 물화(reification) 템플릿맨(Template Man: 그리고 그는 남자)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종류의 문제를 제시할 수 없는 사람들은, 번갈아 관리되고, 보살핌을 받고, 무시되어야 하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템플릿맨은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는 대개 그의 반대쪽을 검사해야만 볼 수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과 피곤한 사람이 하루에 11시간 자야 하는 것을 보면 템플릿맨이 하루에 8시간씩 듣고 잘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템플릿맨이 왜 들을 수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말할 수 없다. 템플릿맨의 이 두 가지 특징은 자본주의 세계 전반에 걸쳐 상당히 보편적이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훨씬 더 가변적이다. 보기를 들어,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 템플릿맨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직업과 집을 옮기는 것이 그에게 쉽게 다가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다. 사회적 불안 장애와 같은 병리학을 조사함으로써, 우리는 견본(본보기) 남자(템플릿맨)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한 병리학이 명백하지 않으며 템플릿맨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이상한 형이상학적 실체에 대한 열쇠는 오직 그와의 일탈을 통해서만 정의되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템플릿맨은 주어진 순간과 주어진 장소에서 자본의 필요에 의해 정의되는 이상적인 노동자이다. 템플릿맨은 자본이 개별 노동자, 또는 개인으로서의 노동자의 본질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부정적으로 정의된다. 노동자들은 특정 기간 특정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다른 모든 것은 자본의 필요와 무관하다. 노동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고용 계층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또한 그들이 명령할 수 있는 임금의 비용과 그들이 일할 능력을 판매할 필요가 없는 시간에 대해 스스로 '생식'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또한 주택에서 오락, 보험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가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품 구매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관련된 작업에 잘 적응하지 못한 몸과 마음은 비활성화된다. 그들은 그 장소와 시간에 맞는 자본 요구와 상충된다.

 

위의 단락의 마지막 보기를 사용하여 설명하면, 자본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 빠르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늘날 영국에서 노동력 판매에 있어서 사회적 불안이 가로막고 있다. 세상에는 임금 노동이 이런 것들을 거의 수반하지 않는 많은 공동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또한 사회적 불안 장애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의료행위에 반영된다. 보기를 들어, 여러분은 중국에서 대부분 사회적 불안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없다. 또 다른 보기를 들자면, 난독증과 같은 특정 학습 장애 진단의 폭발은 더 많이 읽고 쓸 줄 아는 노동자에 대한 수요의 증가와 함께 진행되었고, 노동자들은 이러한 기술 없이 업무 외에 자신을 재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또한 템플릿맨이 부정적으로 정의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또 다른 함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일을 잘 할 수 있거나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장애와 아무 관련이 없다. 장애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에 관한 것이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나중에 '각각 능력에 따라, 필요에 따라 각각'이라는 선언의 전반부를 살펴볼 때 알 수 있듯이, 이것의 함의는 상당히 중요하다.

 

개혁주의의 실패

 

장애의 개혁적 개념에서 장애의 문제는 포함의 문제이다. 기본 범주 '장애인'은 주어진(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개혁가의 과제는 장애인이 이용하고 싶은 기관이나 건물 등을 변화시켜 비장애인이 가진 사물에 대한 접근 수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운동의 기술적 전문용어로 '합리적 조정'은 사람의 장애(만성질환, 자폐증, 다운증후군 등)가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쉽게 사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공평한 기준으로 이러한 것들에 접근할 수 없는 정도가 바로 이 견해에 따라 그들이 장애인이 되는 범위이다.

 

여느 때처럼 개혁주의자의 접근을 검토하는 혁명가는 그들의 목표에 대해 많은 공감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개혁주의자의 목표와 모순이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세력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그러한 군대를 제거하는 것이지 그들과 끝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장애인이 집단으로서 자본의 논리에 쉽게 통합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자본이 그들을 밀어내기 시작하기 전에 그들은 평등을 향해 갈 수 있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개혁적인 접근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 종종 자본의 원활한 작동에 호소할 것이다. 보기를 들어, 영국에서 '직장에 대한 접근'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은 장애인들이 장비에 자금을 대고, 건물을 고치는 등의 방법으로 일자리를 얻도록 도왔는데, 이는 특정 장애인들의 노동력이 비장애인들의 노동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가치를 높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회사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은 그들의 건물에 접근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고, 비슷한 노동자를 대신 고용할 수 있다면 경사로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만약 국가가 경사로에 비용을 지불한다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노동자의 고용주에게 좋은 가치를 나타낸다. 당신의 국가가 이러한 거래에서도 승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에 대한 접근을 통해 사람들을 혜택에서 벗어나 일자리로 옮기고, 그 계획은 혼자 고용된 장애인들의 세수를 통해 스스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업 노동이 넘쳐나고 국가가 장애인을 위한 복지를 삭감할 때, 비장애인들은 국가가 돈을 쓰지 않고 일하기 위해 그곳에 있고, 장애인들은 어쨌든 국가가 '비용'을 덜 들이기 때문에, 이 계획의 논리는 무너진다. 그것이 우리가 현재 사는 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일에 대한 접근은 폐기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국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데 장애인들의 중요한 역할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역동성은 단순히 사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애인을 관리하는 국가 중 하나가 아니다. 노동계급과 같은 장애인들은 투쟁하고 양보를 얻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운영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가 자본의 기능을 방해하기 시작할 때, 그것들을 방어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이런 때 전체 노동계급이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에 가장 잘 통합되지 않은 노동계급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국가로부터 점점 더 많은 양보를 얻어냄에 따라, 그들은 국가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고, 불가피하게 국가가 그들의 승리가 퇴보할 때, 그것은 그들을 훨씬 더 심하게 때릴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애 권리 운동 내의 이러한 모순들은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의 폐지

 

장애의 폐지는 자본주의 아래의 많은 사회 운동과 대중적 환상의 목표였다. 이것의 보기는 많다. 우생학은 나치 독일에서 전성기를 맞았지만, 나치즘보다 훨씬 앞서 있으며, 심각한 학습 장애나 정신 건강 상태를 가진 사람의 성적 행동을 '관리'하고, 살인의 꿈을 평이하게 만들기 위해서 태아를 검사하고 임신중지를 하여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게 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는 경향이다. '살해자'로 분장했던 덜 비열하지만, 구조적으로 유사한 것은 올바른 의학으로 미래에 누구도 장애인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상상하는 기술 환상이다.

 

이러한 접근법의 공통점은 그들이 장애를 없애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장애인을 없애기를 원한다. 장애는 단순히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관계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들의 접근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또는 찾을 수 없는지에 상관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장애가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면, 그리고 코뮤니즘이 자본주의를 폐지한다면, 코뮤니즘은 장애를 폐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이 가능한 미래 사회를 가장 넓은 의미에서라도 스케치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하지만, 우리는 왜 장애가 코뮤니즘에서 존재할 수 없는지에 대해 기꺼이 몇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생산과 삶을 전반적으로 자기 관리하는 것이 특징인 코뮤니스트 사회를 '능력, 필요에 따라 각각'이라는 구호를 적용하면 장애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라는 문구를 보면 장애의 한 측면을 어떻게 폐지할지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윤보다 필요를 위해 생산한다면, 모든 종류의 우리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가 인간 사회의 정상적인 부분이고 사람들을 위해 물건을 생산할 때 이것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옳다는 가정 아래 설계된 건물, 장비, 기술 등을 생산하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각자가 능력에 따라'라는 문구는 덜 명확하게 장애를 다루지만, 사실 코뮤니즘이 왜 장애를 폐지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더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장애는 사람들이 그들이 할 수 있어야 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특정한 것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교환할 수 있다. 우리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으로만 생산(또는 소비)할 수 있다. 생산이 스스로 관리되고 이용되는 사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은데,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근거로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막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보다 풍요가 적은 사회에서, 비록 종종 끔찍할 정도로 착취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기여하는 것 없이 허용하는 잉여금이 전혀 없었다. 자본주의는 특히 장애인과 노동계급이 완전히 또는 종종 기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잉여와 생산의 논리 모두를 만들어냈다. 코뮤니즘은 사람들이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원칙에 따라 생산의 자체 관리를 통해 자본주의의 배타적 관행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생산의 기반이 되는 소외의 논리를 극복한다. 손상과 같은 요소를 떠나 모든 사람이 사회의 재생산에 완전하고 평등하게 통합되는 것이 코뮤니즘의 목표이며, 각각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의 기초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11년 5월 22일

RedEd

 

덧붙이자면, 이 기사는 많은 핵심 질문을 다루고 있지 않으며, 그중 일부는 이미 답변이 되었다고 가정한다. 보기를 들어, 장애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지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의 특징이라는 주장은 자본주의 아래의 조건에서는 배제된다. 그리고 다른 가정과 단순화가 있다. 바라건대, 나는 장애와 자본주의에 대해 더 많은 글을 써서 미래에 이 문제의 일부를 끄집어내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코뮤니스트 장애 연구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론적인 분야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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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libcom.org/article/communism-real-movement-abolish-dis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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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추석 하면 떠오르는 말 중에 '귀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통 정체 속에서도 그립고 정겨운 고향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평등하고 편안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자본주의 위기! 어느 때보다 가혹한 야만의 시기! 
노동계급에겐 '귀환'이라는 말이 가장 반갑습니다.
계급투쟁의 부활과 급진적 계급의식의 귀환이 가장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여름보다 뜨거운 분노의 계절을 함께 만들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차별받는 모든 이들의 당당한 귀환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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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전단] 영국 분노의 여름: 지배계급은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노동계급은 투쟁으로 대응한다!

영국 분노의 여름: 

지배계급은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노동계급은 투쟁으로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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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만큼 참았다.” 이 외침이 지난 몇 주 동안 영국의 여러 파업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1979년의 “불만의 겨울”에 빗대어 “불만의 여름”으로 불리는 이 대대적인 운동에 철도, 런던 지하철, 영국 텔레콤, 우체국, 펠릭스토우(영국 남동부의 주요 항구) 항만노동자, 폐기물 노동자, 전국의 여러 지역 버스 노동자, 아마존의 노동자 등. 날마다 더 많은 산업부문의 노동자가가 동참하고 있다. 오늘은 운송노동자가 투쟁하지만, 내일은 의료 노동자와 교사가 나설 것이다.

 

모든 기자와 평론가들은 이것이 지난 수십 년 이래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노동계급 행동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1979년의 대대적 파업만이 더 크고 더 광범위한 운동을 만들어냈었다. 영국과 같이 큰 나라에서 이러한 규모의 행동은 지역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며, 모든 나라의 피(被)착취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모든 피착취자의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에는 계급투쟁만이 답이다.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영국 정부는 지속해서 생활 수준과 노동 조건을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결과적으로는 국가경쟁력과 이윤의 향상을 위해 이러한 조건을 점점 더 불안정하고 유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최근 몇 년간 이러한 공격은 더욱 심해져서 영국의 유아 사망률이 “2014년 이후 전례 없이 높아질”(의학저널 BJM Open에 따르면) 정도였다.

 

이것이 최근의 인플레이션 급증이 사실상의 쓰나미인 이유이다. 7월에는 전년 대비 10.1%의 물가상승이 있었고, 10월에는 13%, 내년 1월에는 18%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피해는 가히 파괴적이다. 국민보건서비스(NHS)는 “많은 사람이 난방을 위해 끼니를 거를 것인가 아니면 춥고 습한 곳에서 살 것인가 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4월 1일에 가스와 전기료가 54% 인상됐고, 10월 1일에 78% 인상된다고 보면 그 상황은 사실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다.

 

최근 수십 년간 노동자들이 대처 시대의 좌절로 인해 대응할 역량이 없었다면, 오늘날 영국 노동자들의 동원 규모는 결국 그들이 직면한 공격에 필적한다.

 

과거에 영국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 중의 하나였다. 1979년의 “불만의 겨울”은 기록된 파업 일수를 놓고 볼 때, 프랑스에서의 1968년 5월 이후 그 어떤 나라의 운동보다도 가장 대대적인 운동이었고, 1969년 이탈리아에서의 “뜨거운 가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대처 정부는 특히 1985년 광산노동자 파업 동안에 노동자에게 일련의 쓰라린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거대한 전투력을 지속해서 제압할 수 있었다. 이 패배는 영국에서 노동자의 전투력이 장기간 쇠퇴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전투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예고했다. 5년 후인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사회주의” 체제라고 허위로 묘사되고, “코뮤니즘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승리”라는 더욱 심각한 거짓 발표로 인해 전 세계 노동자들은 강력한 타격을 받았다. 그 후 영국의 노동자들은 전망을 잃고 그들의 신념과 계급 정체성이 침식당한 채, 연이은 정부의 공격으로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심각하게 고통받으면서도 제대로 맞서 투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공격에 직면하여 분노가 고조되었고, 오늘날 영국의 노동계급은 자본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희생을 거부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존엄을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국제적인 역동성을 나타낸다. 지난겨울 스페인과 미국에서 파업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번 여름에는 독일과 벨기에도 파업을 경험했으며, 이제 평론가들은 다가올 몇 달 안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폭발적인 사회적 상황”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언제 어디에서 노동자들의 전투력이 대대적인 규모로 다시 나타날지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현재 영국의 노동자 동원 규모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수동적이고 복종하는 시대는 지났다.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한 계급투쟁

 

이 운동의 중요성은 그것이 오랜 기간의 수동성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이 투쟁은 세계가 대규모의 제국주의 전쟁, 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벌이는 전쟁이지만, 특히 나토 회원국의 동원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전쟁에 직면해 있는 시기에 전개되고 있다.  그들은 무기에 대한 약속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도 헌신하고 있다. 서방 국가에서는 정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이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사실은 우크라이나의 부르주아지와 서방국가의 지배계급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지구온난화 대재앙과 에너지 및 식량 부족(유엔 사무총장에 따르면 “사상 최악의 식량 위기” )의 위험을 이용하여 그들의 경제적 공격을 뻔뻔스럽게 정당화한다. 그들은 “절제”를 요구하고 “풍요”(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사악한 말로 표현하자면)의 종말을 선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전쟁경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2021년 전 세계 군사비는  2조 1,130억 달러에 달했다! 영국이 군사비 지출에서 상위 5위 국가 중의 하나인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각국은 1945년 이후 처음으로 독일을 포함하여 군비경쟁을 가속하고 있다!

 

정부는 이제 “인플레이션에 맞서 싸우기 위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모두 전쟁 지출을 확대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으니 이것은 사악한 농담이다. 더 많은 전쟁, 더 많은 착취, 더 많은 파괴, 더 많은 불행이 바로 자본주의와 그 경쟁하는 국가 부르주아지가 약속하는 미래이다.

 

더 나아가, 영국 노동자 파업은, 노동자들이 항상 완전히 의식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국가 경제와 전쟁 노력을 위해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인류를 재앙으로 이끌고 궁극적으로 파멸로 몰아가는 이 체제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대안은 명백하다. 사회주의냐, 인류의 파멸이냐.

 

부르주아지의 함정을 피할 필요성

 

영국 노동계급이 최근 몇 년간 피착취자를 ‘내국민’과 ‘외국인’, 흑인과 백인,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이간질하고, 심지어 브렉시트로의 고립된 후퇴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포퓰리즘 이데올로기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이 이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노동계급 투쟁의 길에는 부르주아지가 설치한 훨씬 더 치명적이고 위험한 다른 함정이 있다.

 

현재 파업의 대다수는 투쟁을 조직하고 피착취자를 옹호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조직으로 자처하는 노동조합이 소집했다. 노동조합은 가장 효과적이지만, 부르주아지를 방어하고 노동계급의 패배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만 그러하다.

 

대처의 승리가 노동조합의 방해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 가능했는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984년 3월 석탄 산업에서 2만 명의 해고가 갑작스럽게 발표되었을 때 광산노동자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파업 첫날 광구 184개 중 100개가 문을 닫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강철 같은 규제가 파업자들을 재빠르게 에워쌌다. 철도노동자와 선원노조가 파업에 일시적인 지지를 표했다. 강력한 항만노조는 두 번의 때늦은 파업 행동 요청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영국노총(TUC)은 파업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전기노조와 철강노조가 파업에 반대했다. 요약하자면, 노동조합은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광산노동자의 노동조합인 전국광산노조(NUM)는 코크스 창고에서 석탄의 이동을 막기 위해 경찰과의 무모한 싸움으로 광산노동자의 투쟁을 제한함으로써 이 더러운 작업을 완료했다.(이것이 무려 1년 이상 지속되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방해 공작 덕분에, 경찰과의 무모하고 끝없는 대립으로 파업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되었다. 이 패배는 노동계급 전체의 패배가 되었다.

 

만약 오늘날 영국에서 이와 같은 노동조합이 급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부문 사이의 연대를 옹호하는 척하고, 심지어 총파업의 위협까지 휘두르는 것은,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의 관심사를 잘 알고 있고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것, 즉 노동자의 분노, 전투력, 그리고 노동자가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감정을 책임지고 싶어 하기 때문이며, 결국에는 이러한 역동성을 무력화하고 분산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개별적으로 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임금인상이라는 단일한 슬로건 뒤에는 서로 다른 부문이 산별 협상안에 갇히고 분리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은 다른 부문 노동자 사이의 실질적인 토론을 피하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어느 곳에도 산업부문을 아우르는 진정한 총회는 없다. 그래서 보리스 존슨의 뒤를 이을 리즈 트러스가 자신이 총리가 된다면 “영국이 전투적인 노조원의 볼모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트러스는 단순히 그의 롤 모델인 마거릿 대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는 노동계급을 더 잘, 함께, 패배로 이끌기 위해, 노동자의 가장 전투적인 대표자로 노동조합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에 신뢰를 주고 있다.

 

2019년 프랑스에서 투쟁의 고조와 세대 간 연대의 폭발에 직면한 노동조합이 이미 단일 운동을 대체하는 “투쟁의 수렴”을 표방하며 같은 전략을 구사해,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대가 부문별, 회사별로 그룹화되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내일이면 더욱 폭력적으로 될, 우리의 생활 수준과 노동 조건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의 균형을 구축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곳에서 함께 모여, 노동계급을 강하게 만들고 역사의 특정 순간에 부르주아지와 그 체제를 뒤흔들 수 있었던 투쟁 방법을 토론하고 제시해야 한다.

 

-  “우리” 작업장, “우리” 회사, “우리” 활동 부문, “우리” 마을, “우리” 지역, “우리” 나라를 넘어서는 지지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 노동자 투쟁의 자율적 조직, 특히 노동자 총회를 통해, 노동자 투쟁 조직의 이른바 ”전문가”인 노동조합의 투쟁 통제를 막아내야 한다.

 

- 투쟁의 일반적인 필요, 과거 투쟁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교훈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폭넓은 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투쟁에서 패배할 수 있겠지만,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이 가장 큰 패배일 것이다. 투쟁에 돌입하는 것 자체가 피착취자에게는 첫 번째 승리다.

 

영국에서 광범위한 파업의 복귀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력 복귀를 의미한다면, 1985년에 패배를 알렸던 약점, 즉 산업별 이기주의와 노동조합에 대한 환상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투쟁의 자주성, 단결과 연대는 내일의 투쟁을 준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잣대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같은 계급, 즉 투쟁과 연대를 통해 단결하는 계급,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의 투쟁은 노동계급이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계급 정체성을 회복하고, 우리에게 온갖 종류의 빈곤과 재앙만을 가져다줄 이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준비하는 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안에서는 해결책이 없다. 지구의 파괴, 전쟁, 실업, 불안정, 빈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 세계의 모든 피억압, 피착취자들이 지지하고 함께하는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투쟁만이 대안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영국의 대대적인 파업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행동을 촉구한다.

 

2022년 8월 27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47/summer-anger-britain-ruling-class-demands-further-sacrifices-response-working-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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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잊은 "아나키스트"에 대하여

원칙을 잊은 "아나키스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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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러시아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 국제노동자협회(IWA)의 지부인, KRAS와 연대하여 다음 기사를 재발행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KRAS 회원들은 국제주의 입장을 일관되게 옹호하며, 분쟁의 모든 측면을 규탄하고 노동자들에게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1) 이 때문에, 그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국가 저항의 편을 든 아나키스트들로부터 크렘린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모든 편에 반대하며 노동자들에게 "전쟁을 버리자"고 요구했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의 동지들에 대한 중상모략2)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톨리아티(Togliatti)의 스탈린주의 정당은 이들을 "히틀러의 대리인이자 하수인"이라고 비난했다. 그 당시 그러한 중상모략은 국제주의자들을 물리적으로 청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시 한번 조국방어주의와 화해한 자들이 굽히지 못할 낮은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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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잊은 "아나키스트"에 대하여

 

 

러시아 지역 국제노동자협회(IWA) 지부는 "아나키스트"라는 이름 뒤에 숨어 우리 조직의 활동가를 비난하는 도발자와 선동가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한다.

 

"소비에트 이후 국가"의 재분할을 위해 자본주의 과두정이 벌인 전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우크라이나, 몰도바, 리투아니아의 아나키스트 국제주의자들의 이해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과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모든 국가와 민족을 패배시키는 전통적인 아나키스트 국제주의 입장을 버리고 전쟁 당사국 중의 하나를 지지하는 이른바 '아나키스트들'이 우리 조직에 대한 비방전을 벌였다.

 

보기를 들어 우크라이나의 아나톨리 두보빅(Anatoly Dubovik)과 올렉산드르 콜첸코(Oleksandr Kolchenko)는 우리 활동가들의 이름과 주소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첫 번째는 해당 글을 썼고, 두 번째는 게시를 위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주고 승인했다. 우리 조직이 일관된 국제주의 입장을 취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나토 블록의 팽창주의 정책을 모두 규탄한다는 것이 구실이었다.

 

두보빅과 콜첸코는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뻔뻔스럽게 IWA 지부를 비방하려 했는데, 아무 근거 없이 크렘린을 옹호하는 입장을 우리에게 돌리려 했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인들에게 전투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후자는 이 가짜 아나키스트들이, 러시아에 있는 반전 활동가들의 주소를 공개함으로써, 전쟁의 반대자로서 그들에 대한 러시아 비밀 경호국과 민족주의 깡패들을 직접적으로 선동하여 그들의 손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에서 반(反)군국주의적 성향의 사람들에 대한 계속되는 괴롭힘, 해고, 위협, 물리적 보복의 환경에서, 그러한 행동은 탄압 세력이 누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실질적인 비난과 같다.

 

다시 한번 양쪽의 최전선 민족주의자들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우리의 적이다“라는 논리에 따라, 그들의 주요 반대자들, 즉 교전국과 부르주아지 분파 사이에서, 페스트와 콜레라 사이에서 선택을 거부하는 국제주의자들을 공동으로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전 세계의 아나키스트들은 도발적인 밀고자들의 부끄러운 행위를 알고 있어야 하며, 그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그들을 영원히 아나키스트 환경에서 추방하고, 비밀 경호국과 비밀경찰의 후원자와 주인에게 보내야 한다!

 

- 이 성명은 KRAS-IWA 회원 투표에서 승인되었다.3)

 

 

 

<주>

1. https://aitrus.info/node/5922

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01-08-01/the-proletariat-opposes-the-imperialist-war-firmly-resolved-to-reach-its-own

3. https://aitrus.info/node/5974

 

 

2022년 6월 13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6-13/about-anarchists-who-forget-the-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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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전쟁, 착취, 자본주의 지배: 그들에 맞서는 방법과 이유

전쟁, 착취, 자본주의 지배: 그들에 맞서는 방법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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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테제를 발전시켰다. 이는 전쟁에 맞서기 위한 행동의 도구로서 근본적인 합의를 찾으려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논의해서 구체화할 수 있다.

 

1. 제국주의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전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끔찍한 현실이다. 지구에서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많은 지역과 국지전이 있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렸고, 자본의 이윤 추구에 대한 욕망의 피로 넘쳐났다. 자본은 경쟁 속에서 살고, 그 부분은 적과 맞서는 데 최고의 조건에서 경쟁하기 위해 조직화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형태를 바꾸지만, 내용은 영구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뿌리이며, 어떤 국가 세력이나 사회계급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2.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에서 모든 부르주아 분파와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갈등은 무역전쟁, 정치전쟁, 그리고 필연적으로 호전적인 대립과 같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 역학의 일부이다. 다른 한편,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와 지배를 강화한다.

 

3.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블록 형성의 일부이다. 부상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세계 강대국으로서 중국은 미국의 제1 제국주의 지위에 도전한다. 러시아 블록의 몰락 이후, 미국은 세계의 중요한 부분, 특히, 전(前)러시아 블록의 국가를 지배하려고 노력해왔다. 동시에, 새로운 지역의 강대국들, 즉 유럽의 독일-프랑스, 구(舊)오스만 제국의 터키, 중동의 이란 등은 미국에 저항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고, 둘 다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러 동맹의 명성을 훼손했다. 미국은 나토(NATO)와 오커스(AUKUS)를 필수적인 동맹으로 하여 반대 블록을 이끌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첫 번째 결과로, 유럽연합 국가,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그리고 다양한 대륙의 다른 동맹국들이 미국 블록에 더 확고하게 통합된다.

 

4.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는 두 신생 블록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다.

 

러시아와의 동맹이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이익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믿는 분파는 우크라이나의 옛 산업 지역인 돈바스에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어는 이 지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며 민족주의에 활용된다.

 

유럽연합과 나토의 동맹이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이익에 가장 잘 도움이 된다고 믿는 분파 자신을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국 전략의 졸로 만든다. 우크라이나어와 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설화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핵심이다.

 

"억압받는 민족"의 두 민족주의는 모두 그들의 "완전한 자결권"이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제국주의 자본 블록과 일치되기를 원한다. 민족주의는 국민, 특히 노동자들이 착취자와 억압자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이익과 결부시켜, 미국과 러시아가 조종하는 제국주의 사이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5. 모든 국가의 자본은 반드시 서로 경쟁한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고유한 동력은 시장, 영토, 전략적 군사 통제, 원자재와 에너지의 공급, 그리고 노동 흐름의 통제에 대한 분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것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한 자본과 돈은 우리의 노동력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이윤의 기초인 노동(실현된 노동과 무급노동)으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우리 계급에 대한 착취와 통제는 더욱 광범위하고 강렬해진다. 정치적, 군사적 명령에 대한 복종 요구는 더욱 첨예해진다. 다양한 자본주의 분파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중 공작과 총알받이로 이용한다.

 

6.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난한 다수의 농민과 수많은 민간인이 자본주의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있다. 현재, 예멘, 시리아 북부, 이라크 일부, 미얀마, 티그레이-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콩고, 모잠비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많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런 지역에서 전쟁 중인 군사 기구에 의해 위협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7. 정치, 노동조합과 사회세력은 우크라이나 또는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 한쪽을 방어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들 중 일부는 평화주의에 기반을 둔 '전쟁 반대'를 내걸고 무해한 광경의 시위로 민주 시민운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전쟁의 결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긴장을 유도한다. 우선 인플레이션이다. 동시에 수많은 다른 전쟁이 은폐되거나 조금만 알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 부과하는 것은 활동적이든 실업자이든, 이른바 '사회적 평화'이다. 자본이 우리를 압박하고 공격하는 동안,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는 우리는 선을 지키면서 가만히 앉아서, 일터와 거리에서 우리의 입장을 방어하지 않은 채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고, 기껏해야 투표와 집회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개량주의적 변화의 지평을 지니고 있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선동가 집단, 노동조합, NGO,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여타 집단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있었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8.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이해관계와 세력에 대한 예속과 단순한 불신의 태도에서 자신을 해방함으로써 대응하거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착취와 군국주의적 행진이 강화되어 여러 조건이 충족되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그동안 세계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환경의 심각한 파괴로 치달을 것이다.

 

9. 어떻게 해야 할까?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하고 자기 조직화한 급진적 방어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의 공공연한 군국주의 표출이나 일상의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대항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경쟁자에 맞서 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능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 자본주의 세력과 그 연합체가 노동계급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잉여 가치를 짜낼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는 자신의 지위와 이윤이 침해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국가 사이의 모든 전쟁이 자본주의-제국주의인 이유이다. 모든 국가는 군사적 수단으로 자신의 위치를 방어하고 이러한 보호를 위해 적절한 파트너와 함께 조직해야 한다.

 

◾전체주의와 독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들'이 자결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세력과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이러한 자결권을 사용하는 자본 세력과 그들의 안보와 지위를 향상시키는 세력 간의 투쟁의 틀 안에 있다.

◾그들은 국가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동맹을 맺고 자신의 입장을 개선하기 위해서 싸우고, 투자 유치, 무역 독점, 전략적 영토, 육지와 해역을 통제하고, 자체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은 민족 부르주아지의 자유다.

 

국가의 자유란 자본이 노동력을 착취하여 노동계급과 사회 전체에 대한 독재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유이다. 민족부르주아지는 적에 대해 무기를 사용하고, 전문 군대와 징집군에 자금을 제공하고, 군사적 징수를 할 수 있는 자유와 함께 생산 및 유통 수단을 통제한다. 그들은 각자의 주장에 따라 경제와 사회를 군국화하며, 이것에 대한 비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불해야 한다. 지금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와 도처에서는 대유행 위기의 타격에 이은 인플레이션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채 수준, 재정 및 통화 조작, 실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 조건과 노동 조건 악화의 증가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자본이 존재하는 한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더러운 속임수를 쓰고, 그들의 교활함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또한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계급관계, 삶과 물질적 부를 생산하는 그들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심층적으로 공격해야 할 뿌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준, 방법, 조직이 필요하다.

 

10. 따라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필요한 것은 국제주의적 혁명적 패배주의의 방어를 촉진하는 것이다. 즉, 모든 부르주아지 측, 국가, 세력에 대항하여, 무엇보다도 우리를 국가적으로 착취하고 지배하는 모든 부르주아지를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전쟁 전선과 직장, 거리에서 대응하고, 전쟁에 협력하는 모든 군사적 이익과 구조를 보이콧하고, 국가, 민족, 그리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모든 종류의 분열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국제적 연대를 방어하기 위한 국제적인 통합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쟁 전선에서, 병사들이 그들의 장교와 지휘관을 향해 그들의 무기를 겨누게 하는 것이지, 전선 반대편에 있는 병사에 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모든 면에서 군사적인 손, 범죄자를 굴복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 전선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군사 전선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많은 직업군인을 발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끔찍한 권위의 조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정, 직장, 거리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이웃에서,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중에서 가장 많은 착취와 최악의 대우를 받는 열악한 부분의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계급적 요구를 제기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후방과 전 세계에서 자본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문제이다. 시민권 법령과 방법에 집착하지 않고, 파업, 대중 총회, 집회 등을 통해 계급적 요구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끌어내 광범위한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급진적인 변혁을 지향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 자신을 조직하는 동시에 이것이 보여주는 엄청난 문제를 인식하는 문제이다.

 

11.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이러한 계급투쟁 없이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행진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계급과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국가와 블록 간의 분쟁을 악화시키며, 우리를 복종시키기 위해 고안된 미신과 속임수를 퍼뜨리고, 효과를 내기 위해 광범위하고 명료하며 국제적이어야 하는 항의 시위를 제거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표적이다. 자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고와 피로의 일상에서 우리를 자본에 종속시키는 애국적 요구와 알리바이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약간의 부스러기를 대가로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거부해야 한다.

 

12. 비판적인 비난에서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세력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발전하는 운동은 가능성에 달려있다. 이론적, 실천적으로 노동계급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급진적인 국제 역학에 반응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 세계적인 조직, 그리고 계급, 국가, 민족, 화폐, 자본주의 기업, 억압과 착취가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사회를 위해, 토지, 공기, 물, 천연자원과의 적절한 관계를 정립하려는, 방어와 연대를 위한 조직, 계급의 부름에 응하는 조직이 그 가능성이다.

 

2022년 4월 21일

프레도 코르보, 아니발, 마테리아(Fredo Corvo, Aníbal and materia)

Left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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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2/04/21/war-exploitation-and-capitalist-domination-how-and-why-confront-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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