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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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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과 제국주의 개입

 

낙후된 농민 경제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는 문제에 대한 레닌 초기 해결책은 곡물 독점이었다. 6월 27일 전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본주의 상품 교환에서 사회주의 생산물 교환으로 점진적 이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R.W. 데이비스 「사회주의 공세」 2쪽에서 인용)

 

1920년 말 내전이 끝났을 때도 레닌은 곡물의 강제 몰수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기근과 1920~1921년 겨울 농민 불만과 노동자 파업 증가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레닌 자신이 인정했듯이 볼셰비키는 경제 전선에서 “퇴각”을 선언해야 했고, 노동계급 투쟁 급증이 그들을 구할 때까지 버티려고 노력해야 했다. 신경제정책(NEP)은 농민 생산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곡물의 자유(자본주의) 시장을 복원하려는 의도였다. 이른바 “전시 코뮤니즘” 시기 비상 정책(화폐폭락, 배급에 의한 분배)이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 희망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그리고, 부하린은 레닌이 따뜻하게 평가했던 책, 「이행기 경제」에서 이것을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 생산양식을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1917년 레닌이 러시아 경제 일부를 국유화 하고자 요구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주의 ‘도입’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 조치...”1)

 

사회주의의 하향식 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레닌은 사회 변혁은 노동계급 대중이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이해했다. 이것은 단지 기존 자본주의 정치 질서를 전복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였다. 여기서도 레닌은 볼셰비키가 블랑키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소수가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거나 장악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이것이 레닌이 1917년 7월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을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던 이유다. 볼셰비키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중심인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 소비에트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1917년 9월 이후에야 레닌은 케렌스키 정권의 전복을 주장했다.

 

그리고 혁명가들이 1917년 11월에 수립된 체제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또는 “노동자 국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장 노동자평의회에 기반을 둔 소비에트 체제의 주권 강조이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의 수립이 사회주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사회주의는 법령으로 시행될 수 없기”(레닌) 때문이다. 레닌은 혁명이 사회주의에 도달하려면 국제적으로, 그리고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식 측면에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쪽 전선에서 1917년의 혁명적 희망은 1921년에 깨질 것이었다.2) 국제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볼셰비키가 군사적으로 승리한 내전으로 인해 그들의 프롤레타리아 기반이 무너졌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어떻게 소비에트가 빈껍데기가 되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1921년까지 1917년 공장 노동자의 57%가 붉은 군대에 입대에서 싸우거나 아니면 시골로 돌아가기 위해 공장을 떠났다. 이때 레닌이 말했듯이

 

“우리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계급의 대표자이다.”

 

그 자리에 코뮤니스트당이 생겼다. 1917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당에서 이제는 거대한 관료기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천 명의 당원이 있을 때조차도 야코프 스베르들로프(Jakob Sverdlov)와 두 명의 비서가 한 사무실에서 운영한 혁명당은 점차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있었다. 1919년 스베르들로프의 사망은 한때 혁명적이었던 당의 통치기구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1922년 스탈린이 당 총서기가 되었을 때,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당 독재로 넘어갔다. 내전은 또한 상황을 바꿔 놓았다. 그것의 악랄함은 소비에트 실험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단순히 옛 혁명가들이 무자비한 국가 관료가 되도록 강요했다. 아무도 이 오염을 피하지 못했다. 제10차 당 대회의 분파 금지 결정은 콜론타이(Kollontai)와 슐라프니코프(Shlyapnikov)의 「노동자 반대파」와 같은 코뮤니스트 좌파 반대파, 사프르노프(Sapronov)와 오신스키(Ossinsky)와 같은 민주 중앙집중주의자, 그리고 미아스니코프(Myasnikov)의 「노동자 그룹」과 같은 다른 그룹들을 겨냥했다. 이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당의 진정한 양심이었다. 미아스니코프는 이미 당을 떠났고 다른 사람들은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1921년~1928년 사이에 분파 금지가 실제로 실행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1921년의 결정은 스탈린이 독재자로 부상할 수 있도록 나중에 사용할 또 다른 무기를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볼셰비키는 당이 나아하는 방향에 분명히 관심을 보였고 혁명적 노동계급(지금은 소수가 됨)에서 당의 뿌리가 상실되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지노비예프(Zinoviev)와 같은 다른 볼셰비키들은 심지어 “당 독재”가 좋은 일이라고 선언했다.3) 이러한 차원에서, 스탈린의 기관 통제는 그가 총서기를 맡았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말년에 레닌은 혁명의 퇴보와 스탈린의 부상 위험을 어렴풋이 인식했다. 그는 노동자․농민 감독관인 라브크린(Rabkrin)을 체제에서 “최악의 운영” 조직 중 하나로 비판했다. 이 조직의 수장은 스탈린이었다. 마찬가지로 레닌의 마지막 저술에서 그는 스탈린이 총서기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레닌의 추가 쇠퇴와 죽음만이 스탈린을 구했는데, 1924년까지 트로츠키를 권력에서 제거하기 위한 당내 투쟁으로 지노비예프가 중앙 위원회에서 그를 옹호하면서 레닌의 요구는 무시되었다. 레닌은 말년에 관료화 과정이 1917년 초기의 혁명적 희망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뮤니스트당은 더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전위가 아니었다. 그 계급은 이제 수천 명의 출세주의자로 부풀려졌고 그들 중 대부분은 차르의 전직 관료였다. 내전 동안 러시아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은 그들을 받아들였다. 레닌은 1922년 3월(제11차 당 대회에서)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에 보낸 마지막 생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거대한 관료 기계, 그 거대한 무더기를 취한다면 우리는 누가 누구를 지휘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들이 그 무더기를 지휘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매우 의심스럽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들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받고 있다.”

 

코뮤니스트당이 이제 사실상 국가 기구였기 때문에 레닌은 기본적으로 심각한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스탈린을 총서기에서 해임하라는 그의 유명한 요구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레닌은 일반적으로 당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집착했다(공안질서수호국[Okhran] 요원 말리노프스키[Malinovsky]가 문서를 보여줄 때까지 경찰 스파이였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또한 볼셰비키가 1917년 10월에 케렌스키를 타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세상에 알린 것도 용서받았다. (주로 레닌이 말했던 “파업 파괴”에 대한 많은 지지를 받았던 볼셰비키는 무관했기 때문에) 하지만 스탈린을 제거하라는 요구는 총서기직에서 그를 해임하라는 요구였다. 왜냐하면 그를 정치국에서 제거하지 못할 만큼 그는 과도한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마지막 유언에서 여전히 혁명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집단지도체제 구성을 바랐다.

 

그러나 지노비예프가 트로츠키에 맞선 분파를 만들기 위해 당에 레닌의 충고를 무시하라고 요청하면서 분열은 이미 일어났다. 스탈린은 지역 당서기를 임명하여 중앙위원회에 누가 선출될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기구가 지도부를 선출함에 따라 레닌이 경고했던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스탈린은 여전히 소수의 대의원만을 통제했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야 했지만, 과반수를 차지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제

 

만약 반(反)혁명이 정치영역에서 진행 중이라면, 경제에서도 긍정적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우리가 앞서 언급했듯이, 볼셰비키가 생산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전시 코뮤니즘” 기간에도 노동계급은 더는 자신의 기구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른바 1918년 공장위원회 탄압은 사실 생산을 더 잘 조정하기 위한 더 강력한 집중화에 대한 그들의 제안이었지만, 1인 경영(정부가 임명한 경영자를 이용한) 부활, 미국에서 노동력 착취를 강화하는 테일러주의 경영 관리법 채택, 부르주아 전문가에 대한 임금 인상 등은 모두 심각한 후퇴 증거였다. 확실히 이러한 후퇴는 계획적인 오류라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었지만, 그런데도 후퇴로 남아있다. 1920년에 이르러 하향식 장치가 되어 트로츠키 자신이 “노동의 군사화”를 제안했을 때 백군과 제국주의 지지자들에 맞서 내전에서 승리한 방법을 사용할 것을 주창했다. 이 모든 것은 1921년 3월 적어도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근이 신경제정책을 채택하도록 강요하기 전에 일어났다. 신경제정책 골자는 소부르주아 생산에 대한 양보였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무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경제정책이 정확히 “후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농업국가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미래에 사회주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당시 소련의 분위기는 스탈린 시대와 달랐다. 볼셰비즘의 지지자가 아닌 알렉 노브(Alec Nove)는 1920년대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1920년대는 지적으로 흥미진진한 시기였다.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는 뛰어난 웅변과 재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볼셰비키가 아닌 사람들이 상당히 독립적인 발상을 제안했다. 국가계획위원회(GOSPLAN)와 인민경제최고위원회(VSNKh) 전문가에는 많은 옛 멘셰비키가 포함되었는데, 훗날 음모 및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로만(Groman), 바자로프(Bazarov), 긴츠부르크(Ginzburg)와 같은 사람들은 정책토론에 크게 기여했다. 보기를 들어 저명한 경제학자 콘트라티예프(Kondratiev), 농업 전문가 차야노프(Chayanov), 첼린츠셰프(Chelintsev)와 같은 옛 인민주의자들과 전 사회혁명당원(SR)또한 활동했다. 리토스셴코(Litoshenko)와 커틀러(Kutler)와 같은 비(非)사회주의자들조차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일당(一黨) 국가가 있었고, 조직과 반대의 법적 수단은 없었지만, 조건은 획일적인 1930년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련 경제사」, 펭귄 출판사, 1992, 131쪽)

 

1920년대 볼셰비키당원들 사이의 논쟁을 연구하는 사람은 비극의 목격자이다. 정권이 세계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설과 글이 넘쳐났지만, 고립이 가중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코뮤니스트 개인의 의지는 크게 흔들렸다.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프레오브라젠스키(Preobrazhensky)조차 외부 자본 없이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돌이켜 보면(즉, 그들의 경험)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현실은 역사가 가만히 있지 않고 한 번의 후퇴가 곧 다른 후퇴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항상 스탈린은 당의 완전한 지배를 확립하기 위한 계책을 부렸다. 그가 행한 수단 중 하나는 세계혁명이라는 원래 목표를 포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경제정책 아래에서 소규모 공장은 개인 소유로 돌아갔지만, 주요 변화는 곡물 시장의 재건이었다.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농민의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프롤레타리아트로서 소비에트 정부는 많은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레닌은 공개적으로 그것을 후퇴라고 묘사했지만, 이 늦은 단계에서도 세계혁명이 이 상황을 구할 것이라고 여전히 기대했다. 몇 달 후 그는 혁명의 물결이 끝났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고립에서 벗어나기까지 몇 년,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신경제정책은 국가자본주의 제도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레닌은 "국유화"와 "사회화" 라는 용어의 혼동을 비난했지만, 레닌이 "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사이에서 제기했던 이전의 반대 또한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두 용어는 동의어가 되었다. 오늘날 코뮤니스트 강령을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혼란은 핵심 쟁점이다.

 

러시아혁명이 러시아의 생산양식을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기가 항상 어려웠다. 일부 사람들에게 "전시 코뮤니즘"(1918-21) 동안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것은 소농의 소유가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크게 확대되었을 때였다. 자본가들은 모두 도망쳐서 공장을 프롤레타리아트(그들이 사회화하기 시작한)에 버렸을지도 모르고, 화폐는 그 가치를 잃어서 배급과 물물교환이 일반적인 교환수단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체제가 생존하기 위한 이러한 긴급조치가 사회주의 건설 시도라고 추정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사회주의는 생산력이 물질적 풍요를 창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만 올 수 있다. 1918년 러시아 경제의 붕괴 상태는 너무 심각해서 한 역사가는 적어도 1347년의 흑사병에 비유했다.

 

다른 사람들은 스탈린이 계획경제를 시작할 기관(국가계획위원회, 국영은행 및 인민경제최고위원회가 보다 직접적인 국가 기구로 전환된 시기)이 작동하기 시작한 신경제정책 시기(1921-8)를 지적한다. 그러나 신경제정책은 많은 볼셰비키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착취"로 불리지 않았다. 신경제정책 아래에서 실업률은 대략 노동계급의 약 25%로 증가했고, 임금은 물가 상승에 따라 하락했다. 농민들이 곡물을 팔기 전에 내야 했던 "현물세"가 화폐세로 대체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화폐개혁이 수반되었다. 국영은행은 이제 새로운 질서의 독점 금융자본가가 되었다. 다시 한번 이것의 주요 희생자는 노동계급이었다.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차이가 가장 명백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계급은 실제로 지배적이고 정치적으로 통제한다. 소비에트가 확장하고 기능하던 1918년에도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러시아에서 단일 국가(따라서 볼셰비키가 국제주의를 고집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국사회주의"와 같은 슬로건 채택은 분명히 맑스주의자들이 항상 이해해왔던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의 폐기를 의미한다. 건설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혁명에 대한 진정한 전망이 희미해지면서 소련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의문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볼셰비키 지부의 많은 사람이 신경제정책이 계속된다면 러시아는 소부르주아 자본주의 생산자들이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하린과 같은 다른 사람들은 경제의 생산 부문(농민)에 대한 과세를 통한 국가자본의 느린 축적만이 이후 산업발전의 기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후진성이 논쟁을 지배하면서 핵심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가 아니라 러시아를 어떻게 산업화시킬 것인가로.

 

스탈린은 진지한 공헌자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에서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1924년 「레닌주의의 기초」라는 강연에서 “일국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처음 제기했다. 이 작업은 레닌 사상을 단순화한 것이지만, 세계혁명 이외의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또한 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당 전체가 처한 혼란을 반영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여전히 세계혁명의 미래와 러시아 발전에 대한 논쟁에서 거의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모든 분파 사이에서 중심에 서는 것이었고, 항상 다른 분파를 “좌파”, “우파” 또는 “통합파”, 반대파”로 묘사했다. 지노비예프와 같은 사람들이 한때는 격렬하게 반(反)트로츠키였다가, 다음에는 친(親)트로츠키였기 때문에, 스탈린이 자신을 분파 위의 당원으로 묘사할 수 있었고, 또한 점점 더 징계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때까지 소비에트가 공식적으로 노동계급을 대표한다는 생각은 당 국가에서 실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 기억이 되었다. 당이 더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관료적 통제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선 지노비예프가 도입한 것이다. 심지어 트로츠키조차도 “누구도 당에 맞설 수 없다”라고 외쳤는데, 이는 스탈린이 청중들에게 좋은 “레닌주의” 방식으로 당이 실수하리라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게 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당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1920년대 후반, 대부분 무시되었던 분파 금지에 관한 1921년의 결의안은 스탈린에게 도움이 되었다. 스탈린은 중앙위원회의 대의원에 대한 지배가 커짐에 따라 모든 반대자는 정치국에서 투표권을 박탈하고, 정치국을 오르조니키드제(Ordzhonikidze), 카가노비치(Kaganovitch), 몰로토프(Molotov) 및 미코얀(Mikoyan)과 같은 자신의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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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이형로

 

<주>

(1) 「선집」 2권(모스크바 1977) 51쪽 인용,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2)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1호, “1921년 : 반(反)혁명의 시작” 참조

(3) 이 주제의 확장은 「혁명적 전망」 28호, “러시아혁명의 쇠퇴와 당 숭배” 참조

 

<출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2호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3-08-01/stalin-and-stalinism

 

 

<이전 글>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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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사회적 긴장

스리랑카의 사회적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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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는 2021년 말 이란(1), 2022년 초 카자흐스탄(2)처럼 사회, 계급적 갈등이 극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피착취계급은 광범위한 부패와 족벌주의 정치 체제 아래에서 높은 생활비와 비싼 연료비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저항의 원인은 생필품과 연료비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특히 공급이 부족한 휘발유와 경유는 상황이 심각하다. 현지 목격자들은 경찰과 군대가 유통업자들을 보호하는 동안 차에 연료를 주입하기 위해 최대 13시간 동안 줄을 섰다고 보고했다. 몇 달 동안 정전이 계속되었다. 연료 소비를 줄이고 자급자족 작물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공공부문에 2주간 귀가 명령을 내리고, 이후 3개월 동안 주당 노동시간을 4일로 줄였다(대량 정리해고의 전조).(3) 동시에 국내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보장하는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식량, 연료, 의약품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되고 있다. 5월까지 인플레이션은 40%를 넘었고, 식료품 가격은 60% 이상 올랐다. 2,200만 인구 중 최소 500만 명이 앞으로 몇 달 안에 식량 공급 부족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4) 세계식량계획은 이미 수도 콜롬보에서 임산부 2천 명에게 식량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심각한 부채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가을, 중국에 빚을 갚지 못한 기업들은 매각을 강요당했다.(5) 외채가 500억 달러 이상이고 그중 절반이 단기 만기와 고금리(6) 금융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스리랑카는 70억 달러의 부채와 이자를 상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 외환보유고는 5억 달러에 불과하다.(7) 다가오는 세계적인 금리 상승과 함께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섬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인도와 중국 모두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이 나라는 곧 파산 선언을 하고 부채를 재조정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리랑카는 이미 대유행 기간 빚을 갚지 못한 수리남, 벨리즈, 잠비아, 에콰도르와 같은 나라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이웃에 있는 파키스탄과 같은 상황이 예상된다. 이는 곧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공공부문 구조조정(노동자의 50~70% 감축이 거론되는 곳)과 임금, 연금, 서비스, 보조금, 소비세 인하 등의 가혹한 긴축정책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이윤을 늘리고 IMF가 부채를 재조정하고 새로운 대출을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계급적 대응이 그러한 공격의 심각성에 부응할 것인가? 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 그 전제는 부분적으로 가능성이 있다.

 

사마기 야나 발라웨가야(Samagi Jana Balawegaya: SJB), 야나타 비묵티 페라무나(Janatha Vimukthi Peramuna: JVP), 타밀 민족 동맹(Tamil National Alliance: TNA), 전선 사회당(FSP)의 주요 야당 세력은 이들에 대해 공개적 또는 침묵으로 사실상의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먼저 우리가 국가를 붕괴로부터 구하고, 적어도 정부를 교체한 다음 ... 우리는 보게 될 것”이라는  두 가지 정치적 메모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여기서 개량주의 세력이 항상 체제 보존의 편을 든다는 것을 보게 된다.

 

어쨌든, 이러한 극적인 상황은 중요한 시위의 발발로 이어졌다. 수도 콜롬보에서는 3월 31일 노동자, 빈농, 중산층, 학생들이 정부 관저 앞에 자발적으로 모여 생계비, 토착 부패, 족벌주의, 국가 부실에 항의하며 고타바야 라자팍사(Gotabaya Rajapaksa) 대통령과 그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4월 9일 콜롬보(70만 명의 도시)에서 10만 명 이상의 시위가 벌어진 후, 시위대는 해산 대신 의회 건물 앞에 있는 유명한 갈레 페이스(Galle Face) 해변에 캠프를 조직했다.

 

이 캠프는 “고타 퇴진 마을(GotaGoGama)”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점령은 2011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2013년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Gezi Park)처럼 일반적으로 이 운동의 집결지가 되었다.

 

고타고가마(GotaGoGama)에서는 타밀, 무슬림, 기독교 소수민족에 맞서 다수의 싱할라 불교도를 선동하는 라자팍사가 지원하는 인종과 인종 분열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통과된 수백 개의 자발적인 집회가 발생했다.

 

점령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고 대중적이며 계급 간 특성을 가졌으며, 정치적으로 중산층과 비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억압 세력과 친교를 요청한 비현실적인 개혁 사상을 발전시킨 학생들이 지배했다. 이것은 혁명적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노동계급 운동이 없는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항상 모든 운동을 자본주의가 정한 한계 내로 끌고 간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노동계급의 참여도 노동조합이 파업 결정을 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다.

 

노동조합은 결국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들은 거의 확신 없이 그렇게 했지만, 4월 28일과 5월 6일에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5월 9일, 마힌다 총리는 대통령에 희생되었고 사임했다. 그러나 라자팍사는 마지막 행동으로 많은 가족 지지자들을 모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술을 많이 마시게 하고 몇 루피를 쥐여주어 경찰과 군대의 지원 아래 수도와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해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최루탄, 물대포, 심지어 총성으로 고타고가마를 소탕하려는 시도(8)는 실패했고, 노동조합은 5월 9일부터 11일까지 지속된 파업을 다시 한번 요구해야 했다. 노동조합은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커져가는 분노를 덮고 단순히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제도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뒤늦게, 확신 없이 파업을 선언함으로써 그들의 본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고, 라자팍사 가문의 역사적인 집과 다른 여러 장관과 전직 장관들(최소 20명)의 집을 공격하고 불을 질렀고, 다른 시위대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여러 검문소를 조직하여 마힌다가 탈출한 것을 확인하고, 그가 트린카 해군 기지로 피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곳을 포위했다. 체포된 사람들을 태운 여러 대의 승합차가 공격받아 파괴되었다. 최소 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따라서 이 운동의 구호는 급진적으로 변하여 "고타는 떠나라"라는 구호에서 국회의원 총 의석을 나타내는 "225는 떠나라"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그 순간까지 운동을 특징지었던 비폭력의 이데올로기는 지상에서의 힘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유물론에 굴복해야 했다. 반작용의 힘이 이러한 폭력의 기초를 만든다. 다음 날, 통행금지와 수도의 군사화가 뒤따랐다. 상황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섰지만, 이 글의 앞부분에서 서술했던 운동을 야기한 모든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추가 긴축정책이 시행되면 운동 자체에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9)

 

2022년 6월 26일

로터스

코뮤니스트 투사(Battaglia Comunista)

 

<주>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10-31/the-struggle-of-the-iranian-oil-workers-goes-on

(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1-08/kazakhstan-the-working-class-attempts-to-find-its-voice

(3) https://www.aljazeera.com/news/2022/6/14/crisis-hit-sri-lanka-allows-govt-workers-4-day-week-to-grow-food

(4)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6/the-social-tensions-in-sri-lanka

(5)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9-18/china-iran-accords-the-silk-road-and-some-other-imperialist-manoeuvres

(6) https://www.dw.com/en/sri-lankas-foreign-debt-default-why-the-island-nation-went-under/

(7)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2/04/03/the-submerging-market-debt-crisis/

(8)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jun/19/sri-lankan-troops-open-fire-to-contain-unrest-over-fuel-shortages

(9) 이 기사를 작성한 이후, 새 총리는 이미 스리랑카 경제가 붕괴 상태에 있다고 세계에 발표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jun/23/sri-lanka-prime-minister-economy-completely-collapsed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6/the-social-tensions-in-sri-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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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노동자와 빈농의 투쟁에 부쳐

 

높은 생활비, 높은 연료비, 그리고 매우 심각한 경제 위기에 맞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다!

코뮤니즘은 프롤레타리아트다!

혁명이 길이다!

 

몇 달 동안 스리랑카 사람들은 높은 생활비와 범죄자 라자팍사(Rajapaksa) 가족에 맞서 투쟁해 왔다. 투쟁의 형태는 중요했다. 평화적 시위와 노동조합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탄압에 맞서 싸울 힘이 생기고 장관들의 집과 정부 사무실에 대한 공격이 있고 난 뒤에 전국의 모든 노동자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일어났다. 힘과 폭력의 지형을 강요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이다.

 

대중의 힘은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있지만, 큰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고타는 떠나라”와 “225(국회의원)는 떠나라”는 요구는 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주장이다. 새로운 선거로 탄생한 새 정부나 국민통합정부는 노동자와 빈농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 외에는 스리랑카의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스리랑카의 위기는 전 세계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닥칠 위기를 예고하는 것일 뿐이다.

 

해결책은 다른 정부와 민주주의가 아니라 착취, 계급 분열, 이윤과 전쟁을 영원히 쓸어버리는 혁명을 통해 생겨날 새로운 사회조직과 완전히 다른 사회다.

 

전쟁은 경제 위기의 다른 면이기 때문이다. 위기와 전쟁은 서로 공생하며 인류를 새로운 세계 대전의 야만으로 몰아넣는다.

 

노동자와 빈농만이 대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스리랑카와 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의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들만의 혁명적 총회 조직을 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의 문제는 우리가 곧 직면하게 될 문제와 동일하며, 계급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행진을 재개하려고 한다. 그 길은 한가지이다. 노동조합과 정당을 믿지 말고 스스로 투쟁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모든 환상에 맞서 투쟁하며, 우리의 당면한 이익을 위한 투쟁을 모든 노동자,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전망으로 지금 통합해야 한다.

 

2022년 7월 19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로마위원회

 

 

<출처>

 

https://www.leftcom.org/it/articles/2022-07-19/con-i-lavoratori-e-contadini-poveri-in-lotta-in-sri-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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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자본주의와 그 불만: 좌파주의의 여러 얼굴들

자본주의와 그 불만: 좌파주의의 여러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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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누구도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경제와 국제 관계의 영역뿐만 아니라 인류와 자연의 관계에서도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 특히 젊은이들은 현재 상황 속에서 더는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한다.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에 대한 오래된 탐구를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의미는 항상 정치적 전쟁터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

 

유토피아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19세기 초 자본주의가 아직 유아기였고 노동계급이 아직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기 전,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이미 당대의 지배적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상에 대한 이념적 도전을 하고 있었다. 로버트 오웬(Robert Owen), 앙리 드 생시몽(Henri de Saint-Simon),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산업화의 공포에 대한 대응으로, 그들은 협동조합, 공동체, 신용조합, 상호원조 등을 통해 사회를 조직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당장 그곳에서 사회주의 원칙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지배계급도 같은 관행을 채택하도록 설득하고 싶어 했다. 노동계급의 행동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이상에 기반을 둔 그러한 개혁주의적 실험은 내부 압력으로 붕괴하거나 단순히 자본주의 질서에 다시 흡수되는 등 얼마 가지 못했다. 그러한 초기 메시지는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이 여전히 적용되는 한 실질적인 또는 다른 어떤 것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최초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 기존 사회를 향해 쏟아놓은 다양한 비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보다 확고한 기초를 제공하고자 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이상주의적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코뮤니스트 선언」, 1848)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역사 유물론이라는 개념의 기초가 되었다. 자본가계급인 부르주아지가 봉건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어떻게 일어섰는지를 묘사한 후,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폐지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특별한 계급이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 없이 독특한 위치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판매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결코 자본가가 획득한 새로운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착취가 모든 자본주의 이윤의 원천이다. 사회주의는 더는 미래 사회를 위한 종교의 종파적 환상이나 개인의 청사진 영역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지식에 기반을 둔 의식적 표현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동시대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코뮤니즘,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해방 시킬 수 있는 조건을 의식하도록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데 그들의 삶을 바쳤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관한 그들의 선언은 대부분 제한적이고 부정적인 성격 :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연합체로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며, 국경, 국가, 임금 체계, 사유 재산 및 계급 구분이 폐지되며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그들이 분명히 밝힌 것은 오직 "현존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의 전복"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848년에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일을 할 만큼 충분히 많지 않았고 또한 조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후 20년 동안 과학적 사회주의의 관점은 현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발전에서 확실한 근거를 찾았다. 1871년 파리 코뮌에서 그 역사적인 임무를 구현해 내었다. 비록 72일 동안 지속되었고, 한 도시에 국한되었지만, 하늘을 강타하는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비록 엄밀히 말하면 아직“사회주의”는 아니었지만)의 시도였다. “노동계급이 기존에 만들어진 국가기계를 단순히 붙잡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활용할 수 없다”는 혁명사상을 확인한 것이다. (「프랑스 내전」, 1871년) 코뮤니스트 사회의 창조를 향한 혁명 운동의 일환으로 국가는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1).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계급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굉장한 비판을 제공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시대마다 지배적인 사상이 지배계급의 것이었다면, 노동계급은 그들 자신의 착취 경험이 그들을 새로운 세상을 위해 정치적으로 싸우도록 이끌었을 때 비로소 이를 뒤집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코뮤니스트 연맹」, 제1 인터내셔널, 그리고 후에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될 조직에 크게 기여를 한 이유이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맑스의 유명한 말은, 때때로 주장하듯이, 노동자는 정치적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단언은 아니었다. 이 말은 결국 제1 인터내셔널의 초안(1867년)에 있다. 이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분파의 어떤 영향권 밖에서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직설적인 설명이다. 맑스와 바쿠닌의 추종자들 사이의 분쟁으로 분열된 제1 인터내셔널은 붕괴하였다. 그 자리에 맑스주의를 고수하는 사회주의 조직이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1889년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을 결성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이제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유물론적 역사 개념, 경제, 정치, 심지어 문학, 예술, 철학 등의 학문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체적인 대중 정당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었다.

 

모호한 사회민주주의의 경로

 

유물론적 사상에 기반을 둔 혁명적인 정치 운동이 이제 노동계급을 아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같지는 않았다. 당시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맑스와 엥겔스는 비밀에 부쳐졌고, 독일 당 지도부의 검열까지 받았지만,(2) 그들은 대부분 사적인 편지와 미발표 원고로 좌절과 비판을 표현했다. 1878년 이후 독일의 반(反)사회주의 법은 개혁파가 법의 테두리에 맞게 사회주의 강령을 수정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였다. 에두아르드 베른스타인 같은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이제 시민이 되고 경제 위기의 본질적인 경향은 없으며 자본주의는 단순히 사회주의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의 필요성을 부정하기까지 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경제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동안, 당의 역할은 정치민주주의로 나아가도록 작업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수정주의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로 대표되는 제2 인터내셔널의 혁명파에 의해 도전받았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이 사회주의 변혁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사회 개혁을 통해 순수하게 자본주의를 종식하는 길을 찾는 것은 같은 목표로 나아가는 더 느리고 평화로운 길이 아니라 그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었다.(3)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내부의 목소리가 국제주의 원칙 포기를, 식민주의에 대한 핑계를 대거나, 제국주의의 한 블록이 다른 것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주적(主敵)인 부르주아지가 국내에 있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계급투쟁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도록 결속시킨 제2 인터내셔널 대회의 결의를 방어했다.

 

1914년까지 제국주의 긴장, 경제적 압력, 노동계급의 전투성으로 인해 세계 전쟁이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선택지가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의 궁극적인 시험대가 될 예정이었지만, 비참하게 실패했다. 제2 인터내셔널의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카이저 전쟁 신용채권투표에서 찬성했고, 노동조합은 전쟁 활동에 대항하는 파업을 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이 운동의 혁명파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첫 번째로 차르를 몰락시킨 1917년 러시아혁명 덕분이었다. 그런 다음 노동자평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마침내 제3 인터내셔널이 설립되었다. 볼셰비키는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혁명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 몇 안 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중 하나였다. 1905년 러시아 노동자들이 소비에트 사상을 발견한 이후, 그들은 자본주의 의회의 가짜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안으로 그들을 선전했다. 10월혁명 이후 첫 6개월 동안 그들은 소비에트의 수를 늘렸고, 선출된 대의원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노동계급 원칙을 도입했으며, 노동자들의 생산 통제를 장려했다. 그것은 전 세계 혁명가들이 따라야 할 모델이 되었다.

 

소련의 유산

 

러시아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 보기를 따라 전 세계에 혁명의 물결을 일으켰다. 노동자평의회와 코뮤니스트당은 단결하고 조직하며 투쟁을 주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일, 헝가리와 핀란드와 같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직접 권력을 잡으려 했으나 폭력적으로 탄압받았다. 소련은 자본주의 유산인 경제 위기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국제 자본이 부채질하고 자금을 지원한 잔혹한 내전에 휘말려 들었다. 볼셰비키는 승리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 전쟁을 해야 할 필요성이 소비에트(그리고 실제로 당)의 통제 밖에 있는 적군과 비밀경찰 체카에게 무장한 노동자평의회의 민병 제도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소비에트는 선거를 실시하지 않았고 종종 집행위원회로 대체되었다. 1921년까지 혁명은 1917-18년의 희망적인 부분에서 벗어난 일당 국가가 점진적으로 등장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코뮤니스당 안팎에서 다양한 반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훨씬 더 많은 퇴보가 의제에 올랐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때, 초기의 혁명적 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제3 인터내셔널의 존재 이유가 소련의 방어로 추진되고 있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회민주주의가 이미 "사회주의"의 의미를 자본주의 복지국가의 동의어로 변형하기 시작했다면, 1930년대에 소련은 "코뮤니즘"의 개념을 굴락(강제노동 수용소)에 연계시켰다. 독일혁명이 사회학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정당"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민주당에 의해 주로 격렬하게 짓밟힌 것이나, 스탈린의 숙청 기간 오랜 기간 혁명가들이 하나씩 제거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시즘은 "국가사회주의"라는 미명 아래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기 위해서 등장했다. 그때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대규모 산업화한 학살로 왕관을 쓴 세기의 자정이었다. 러시아혁명에서 출현한 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공동체"로 이해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19세기 말에 열린 제국주의 시대의 모든 국가에 내재한 국가주의 경향은 이미 더 새로운 중앙집권적 형태를 채택했다. 국가의 무장력은 체제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대중정당과 노동조합은 민족국가 배후의 계급을 더 효과적으로 동원하거나 억제하는 데 이용되었다. 스탈린주의 변종에서 자본주의의 어떤 범주도 근절되지 않았다. 이제 고용주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임금 노동은 계속되었다. 변함없는 것은 무급 노동의 지속적인 전용을 바탕으로 이윤과 성장을 도모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목표였다. 그것은 사회주의도 코뮤니즘도 아니었지만, 스탈린은 그것을 코뮤니즘으로 가는 단계인 "현실 사회주의"라고 교화시켰다.

 

이 거짓말은 전후 호황이 펼쳐지면서 소련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1945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미국)과 “코뮤니즘”(소련)으로 나뉘어졌다. 소련은 이제 두 번째로 강력한 제국주의 블록의 선두에 서 있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거의 완전한 국가 소유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 발전의 대안적 비전은 다양한 정권의 부르주아지, 특히 자본주의 주변부에 영감을 주었다. 이 가운데 중국과 쿠바는 소련보다 오래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가장 두드러지게 심어주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감옥과 망명지에서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역사적 강령을 보존하면서 시류에 역행한 극소수, 그 중 코뮤니스트좌파의 이전 세대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스탈린주의 거짓은 20세기에 국가, 임금체계, 사유재산 폐지, 또는 계급 분열 없는 세계적인 협동적인 연방으로서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의 비전을 진압하는 데 대체로 성공했다.

 

우리는 다시 모두가 사회주의자다…

 

비록 자본주의의 전후 붐은 1970년대 초에 끝이 났지만, 1991년 스탈린주의 소련의 붕괴는 미국이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던 자본주의의 대안이 이제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2008년의 금융 붕괴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과 최종적인 자본주의 승리에 대한 모든 서사를 잠재웠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잠재적인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부채에 허덕이는 이 연약한 체제의 위기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것은 전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전쟁 기간과 다를 바 없는 신속한 대응을 해야 했다. 수조 달러를 시장에 투입했다. 그리고 특정 부문은 국유화되었으며, 노동자들은 해고되었고, 국경은 폐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가오고 있는 환경 파괴의 위협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할 뿐이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를 그 해결책으로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모두가 이제 사회주의자다"라는 것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주의의 의미는 종종 국가 통제, 노동조합주의, 노동자자주관리, 그리고 세계의 서열에서 덜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정권에 대한 "반(反)제국주의" 지지로 축소된다.

 

한편으로 유토피아 사회주의가 남긴 자국이 있다. 오늘날 낡은 것의 껍데기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은 이른바 '예상하는 정치'를 이끄는 동기로 남아 있다. 그것이 작은 사회 중심이든, 스쿼트(squats:무단거주)이든, 협동조합이든, 또는 더 큰 자치 공동체(사파티스타, 로자바 등)이든, 좌파 자유주의와 특정한 형태의 아나키즘은 임금체제나 자본주의 국가를 제거하지 않고, 억압받는 소수가 그 체제 내에서 자신의 틈새를 개척하면서 세상이 점진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환상을 퍼뜨렸다.

 

그 다음에 동구권 붕괴 후 바로 태어난 세대가 주도하는 스탈린주의의 부활이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적 감수성을 뒤엎는 것을 목표로 한 급진주의의 유치한 캐리커처로 봉사하는지, 아니면 "현실 사회주의"라는 군사적 그리고 산업적 "업적"을 더 심각하게 방어하는 것인지 여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는 전체 역사에서 많은 노동계급 운동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 착취에 기반을 둔 정권들에 대한 선전이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는 수치심에 죽지 않았다. 혁명적 노동자 학살을 도왔던 끔찍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위해 점점 더 인간적으로 불평등해지는 자본주의를 관리하려는 추구에 의해서 이끌리는 "실용적인" 추종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사실 동일한 정치에서 선거 기반을 찾기 위해 노동계급(노동자들이 충분히 투표하지 않음)을 대부분 포기했으며, 그것은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구·신좌파 정당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욱 절박한 좌파들은 현재의 위기가 공공 지출에 대해 제레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 같은 사람이 옳다는 것을 적어도 증명했다고 위안으로 삼는다.

 

이론적으로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양자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트로츠키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것의 모집 전략, 입당주의, 그리고 다양한 국가들의 방어를 통해 그들이 “변형된” 또는 퇴보한 “반(反)제국주의” 양자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실, 트로츠키는 스탈린 치하에서도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사회주의로 향하는 진보적인 조치(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견해를 항상 고수했다. 그 부분에서 유일하게 잘못된 것은 그것을 관리하는 개인이었다. 전쟁의 참모 총장으로서 트로츠키는 다른 볼셰비키들보다 더 많이 진정한 노동자 운동의 무장 단체인 민병대를 대체하는 상비군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창설을 장려했다. 그리고 대중 운동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모색은 트로츠키주의가 정직하지 못한 사회민주주의 조직으로 진입을 시작하게 했던 1930년대 그의 유명한 "프랑스 전환"으로 그를 다시 사회민주주의로 이끌었다.

 

조직화한 좌파의 영역 밖에는 다양한 좌파,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 그룹이 아직 존재한다. 다양한 학계, 대안 매체와 인터넷 개인들로부터 무작위로 빌린 생각을 재현하는 더 많은 가상 영역이 존재한다. 리처드 울프(Richard Wolff), 마이클 파러티(Michael Parenti), 자코뱅(Jacobin), 노바라 매체(Novara Media) 또는 랜덤 유투버와 같은 것을 여기서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과거의 아이디어들을 재활용하고 쇄신한 것이라고만 말해두자. 그리고 자본주의 위기는 이러한 빠른 해결책을 위해 수익성 있는 분야를 제공한다. 이 정당에 투표하고, 이 조직에 가입하고, 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이 제품을 구입하고, 이러한 대의에 기부하라, 등.

 

노동계급이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코뮤니스트좌파가 사상이라는 시장에서 또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과 그 부속물을 통해 통합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좌파의 흐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그들 자신을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발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원인이나 운영방식이 아닌 그 영향에 대해 크게 의문을 제기하는 오늘날의 금융화된 그리고 투기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응인, 현 국가 내의 대안이다.

 

우리는 자본의 좌파와 토론을 통해 그 추종자들이 우리 대열에 합류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임금노동자들 스스로 집단적인 저항을 조직하는 계급투쟁의 부활이다. 우리가 지금 그런 부활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일반적으로 구(舊)자본주의 심장부에는 아직도 노동조합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동계급이 있는데, 노동조합은 공정한 하루의 노동에 대해 공정한 하루의 임금조차 우리 모두에게 제공할 수 없다, 게다가 기껏해야 우리 중 일부는 "덜 나쁜" 단기간의 해결도 할 수 없다. 한편 자본주의 주변에서 우리는 폭발적이고 때로는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대체로 자발적인 성격의 집단적인 투쟁을 목격하고 있다. 여기서 주요한 보기에 해당하는 나라는 아마도 이란으로, 수년간의 파업과 시위에 이어 노동자들은 이제 진정으로 스스로 투쟁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인 "투쟁조직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란이 계급의식을 가진 반(反)자본주의 운동의 도화선이 되든 아니든 간에, 어떤 운동이든 다른 여타의 세계의 국가를 위한 등불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직 형태(1905년 러시아의 소비에트처럼)뿐만 아니라 더 넓은 정치적 목표(비록 즉시 달성할 수 없고, 소수만이 목소리를 낼지라도), 정치적 도약이 있어야 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이러한 도전 없이는 코뮤니스트 강령은 여전히 국가 통제가 코뮤니즘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라는 환상에 의해 지배되는 "흥미로운 사상"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방어하는 사상, 즉 지난 2세기 동안의 투쟁에서 얻은 교훈의 연속적인 공통의 주제는 미래의 운동에 복무하기 위해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모든 독자를 초대하는 국제적인 차원의 집단적인 토론이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일관성 있는 집단행동은 있을 수 없다.

 

2021년 12월

다이즈버즈(Dyjbas)

 

 

 

<주>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3-18/1871-2021-vive-la-commune

 

(2) 많은 보기가 있다. 마지막은 1895년 엥겔스가 폴 라파르그에게 항의하는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독일어판 도입부를 새로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리프크네히트가 방금 나에게 멋진 속임수를 썼다. 그는 맑스의 1848-50년 프랑스에 대한 저작 중 내가 쓴 서문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력과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 전략을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인용했다. 특히 베를린에서 강압적인 법이 준비되고 있던 당시에, 그는 얼마간 이를 설파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전술들을 단지 오늘의 독일을 위해서 설파하고 있으며, [그들은] 내일이 되면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맑스-엥겔스 저작선」, op. cit. p.461, 원문에 강조)

 

자세한 내용은 우리의 팸플릿 「계급의식과 혁명조직」 4장(위의 추가 읽기 목록 참조)을 참조

 

(3) 베른슈타인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그들은 당시 "맑스주의의 교황"으로 여겨졌던 카우츠키의 지지를 받았지만, 카우츠키는 사회주의의 승리는 "불가피한" 것이기에 자본주의가 붕괴할 때까지 노동자들은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에서 연합하였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보지 않았고,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전쟁에서 평화주의를 옹호했다

 

(4) 우리는 이것에 대해 수많은 기사에서 다루었지만, 최근 1971-2021년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미국이 브레튼우즈를 배신한 지 50년」, 「브레튼 우즈의 종말 : 동시대의 분석」

 

2022년 3월 3일 재발행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이명수

 

<출처>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3-03/capitalism-and-its-discontents-the-many-faces-of-lef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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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복간 5호]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주의자 행동: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주의자 행동: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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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이 넘었다. 과거 다른 제국주의 충돌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도 혁명가들의 국제주의 신념을 시험하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혁명적 패전주의를 방어한 사회주의자들은 수백만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의식을 일시적으로 잠식시킨 거대한 쇼비니즘의 물결에 맞서 굳건히 서 있었다. 전쟁의 진정한 결과가 제국주의 분열을 가로질러 노동자들에게 돌아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이 차르 체제를 전복하고, 1917년 혁명을 훔치려 했던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였다.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는 1918년 11월, 마침내 제국주의 학살을 종식한 노동자 대중 봉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날의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영감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서로 간에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굳게 고수하고 있다. 코뮤니스트좌파와 지지자들은 모두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회의를 개최하고 공동대응을 시작했다. 이러한 공동대응 중 하나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국제 행동이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1)에서 제안한 이 행동에 한국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2)도 참여하고 있으며, 유럽과 북미,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만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자’라는 국제 행동에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가 ‘자본의 좌파’라고 부르는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마오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거나, 대부분의 트로츠키주의자는 여전히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 위해 ‘덜 나쁜 악’에 매달리고 있다. 아나키스트 그룹들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다행히 러시아 아나코-생디칼리스트 그룹 「크라스」(KRAS-IWA의 지부)3)와 체코의 「계급전쟁」(Třídní Válka)4)과 같은 그룹은 전쟁에서 양측 모두를 규탄하고 ‘혁명적 패전주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면한 국제주의자들의 국제 행동으로 제안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소개하고 함께할 것을 요청하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제안 배경과 참여 (국제주의) 원칙, 그리고 각 나라에서 발표한 성명과 회의 결과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중복되는 내용을 생략했는데도 국제주의자의 공통된 인식은 반복해서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제안 배경: 혁명이냐 전쟁이냐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유럽 분쟁이며,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야만적인 전쟁의 진짜 근거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 전략적 입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이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주요 군사 강대국 중 하나가 직접 관여하고 있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쐐기를 박고 독일이 재무장에 동의하도록 강요하면서, 더 광범위한 갈등을 위한 동맹을 공고히 했다. 동시에 우리는 러시아와 중국의 독재정권과 달리 의회 민주주의, 민족주의, 주권의 미덕은 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더 넓은 전쟁을 위한 총알받이로 모집하는 데 사용될 이데올로기이다. 바이든이 지난 3월 바르샤바 연설에서 서방 동맹국들에 수십 년간의 전쟁에 대비하라고 경고한 것은 이를 위한 것이었고, 보리스 존슨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희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은 대규모 파괴, 기존 자본의 평가절하,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 전쟁들은 자본주의의 순조로운 작동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해물이 아니었다. 또한 전쟁은 몇몇 광적인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결과였다. 이 체제는 이윤율 저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내부 모순으로 전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가들이 이에 맞서는 두 가지 주요 방법은 단기적 조치인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것과 장기적 해결책인 기존 자본의 평가절하이다. 후자는 지난 세기에 세계대전으로 두 번 정도 발생했다. 물론, 통치자들은 그들의 자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적의 자본을 파괴하고, 원자재에 접근하고, 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위치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승전국에서도 자본의 일반적인 평가절하를 초래한다. 오늘날 진정한 선택은 자본주의 생산 체제 전복이냐 아니면 우리가 사는 곳에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 중 하나이다. 한마디로 ‘혁명이냐 전쟁이냐’이다.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된 힘이다. 그 첫걸음은 이른바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노동계급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국익은 다른 모든 것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부르주아지 이익에 불과하다. 이미 임금은 인플레이션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일부 빈곤 국가에서는 극적으로 하락했고, 이 전쟁은 생활 수준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세계 부르주아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프롤레타리아트에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부과하려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싸우는 범죄자 집단(또는 과두정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략자든 방어자든 지배계급을 위한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 즉 노동계급 자신을 위한 전쟁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자!

 

우리는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유혈 낭자한 제국주의 분쟁을 종식하기 위한 계급전쟁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면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기치 아래 국제 행동을 시작했다. 이 행동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와 국제주의자를 하나로 모아 더 넓은 노동계급에 반격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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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행동 호소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한 제국주의 경쟁의 새로운 시대 시작이다.

 

2.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없다. 제국주의 경쟁 심화는 수십 년 된 자본주의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경제 위기 산물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다. 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 더욱 큰 고용 불안정,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에서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이다. 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3. 그러나 세계화, 금융화, 그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모든 반응은 2008년 세계 투기 거품의 극적인 붕괴로 끝났다. 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다. 체제 모순은 증가하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것을 면할 수 없다.

 

4. 가장 두드러진 모순 중 하나는 1980년대에 서유럽이 저임금 경제로 투자를 이전한 것이다.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서유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에 대한 압력 완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값싼 상품 공급하면서 경제를 구축했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경제적 편의 결합이 파경에 이르고 더욱 명백해지면서 이미 존재하는 체제 모순은 깊어졌다.

 

5. 양적 완화는 전반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 착취를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강화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기존 자산을 탕감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이며, 이는 일반화된 전쟁이 필요하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그들이 더 절박해질수록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실 세계전쟁 위협은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체제에 의한 자연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환경 재앙과 관련이 있다.

 

6. 이 재앙과 전쟁 전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은 먼저 전쟁을 마비시킨 다음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다. 전 세계 임금노동자는 착취자 손에 들어가는 세계 부의 창조자라는 공통의 물질적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 국익도 없다. 그들만이 국가가 없고 생산이 협력적이며 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

 

7.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조직화하거나, 재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파업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모든 파업위원회는 기존 국가를 정복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더 넓은 계급 운동으로 단결해야 한다.

 

8.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자본주의 존재의 막다른 골목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9. 인도주의적 재난의 현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계급 운동이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떤 미봉의 협상으로 끝나더라도 이것은 다음번 제국주의 충돌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러시아를 중국 품으로 끌어들이고, 나토와 EU를 미국과 그 목표 주위로 결집했다.

 

10.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하며 멈춰야 할 것은 자본주의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충돌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 개인과 그룹에 참여를 요청한다. 이것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가 힘을 모으고 더 넓은 노동계급에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11.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국제적인 계획이지만,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은 아니다. 그것은 계급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할 '덜 나쁜 악'이라고 규정해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키는 모든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 정치를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혁명가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12.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것이 평화주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탄원일 뿐이다. 문제는 ‘정상’에 관한 것이다. 전쟁으로 이끄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이다.

 

위 내용에 동의하는 동지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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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리버플 성명)5)

 

전쟁, 빈곤, 위기와 질병: 자본주의 체제의 진정한 얼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폭발 일보 직전에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한번 전 세계 노동계급은 우리가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충돌에서 한 편을 들도록 요청받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반면에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미국 뒤에 집결하고 러시아가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등 제국주의 결속이 굳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의 확대를 의미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는 유일한 전쟁터가 아니다. 그곳이 시리아든, 예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자본가계급은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재정 수입, 원자재, 값싼 노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다. 분열과 통치 이데올로기의 무기인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우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죽이고 죽도록 요구한다.

 

또한, 기후 위기를 상기하자. 홍수, 화재, 극단적인 기상현상으로 점차 지구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자, 코로나19를 발생시키고 확산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본주의 조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래의 감염병 위협이 크게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여러 전선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 우리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사유재산, 임금노동, 화폐 및 국가 존재를 특징으로 하는 현재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임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우리는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 국가와 국경이 사라지고 노동계급이 만든 독립적인 기관(노동자평의회)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단으로 해결하기 시작할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질문과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

 

이 분쟁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지원을 의미한다. 이 악몽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 계급적이고 우호적인 연대로 전쟁 기계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민족주의 선전을 믿지 말자!

 

이것이 우리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지배계급은 이미 우리와 지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안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즉 그들이 없으면 모든 것이 중단되는 절대다수의 노동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세계 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심화하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를 일반화된 전쟁의 길로 이끌고 있다. 오늘날 60개 이상의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갱단들이 통치권을 위해 투쟁하는 동안. 이들 모두는 우리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한다. 이러한 전쟁 대부분은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의 고객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공개 무역전쟁과 함께 더 넓은 세계 분쟁의 전조인 대리 제국주의 전쟁이다. 전쟁 책동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 그것은 일부 미치거나 나쁜 자본주의 지도자들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본주의 체제 전복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지지자들은 노동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전 지구적 생산 체제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공유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를 지향한다. 이것은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노동계급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윤을 위한 생산과 국가와 국경은 사라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지구 오염은 역전될 것이며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을 확산해야 한다.

 

필요한 출발점은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 방어를 강화하고, 지배계급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전쟁을 포함한 지배계급 의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모든 전쟁은 자본 일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이른바 '민족해방' 또는 '반(反)제국주의' 전쟁은 위장한 제국주의 전쟁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자본가 체제에 들어가 있고 평화와 전쟁에서 그것을 지지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우리가 나서서 부르주아 전쟁과 긴축에 맞선 계급투쟁을 전면화하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리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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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성명)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다.

 

2006년 한반도에서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당시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코뮤니스트 국제대회」에서는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국제주의자 선언’이 있었다. 이 선언은 ‘국제주의 원칙 방어’와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전 세계적인 투쟁임을 밝혔다. “자본주의 아래 인류를 엄습하는 야만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핵 파괴의 위협을 영원히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전 세계적인 투쟁임을 선언한다."

 

국제주의자 선언 이후 15년이 지났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은 지속되고,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제국주의 충돌을 격화시켰고, 유럽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불러왔다. 이러한 위기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방어와 전쟁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는 더욱더 중요해졌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간 지속해온 자본주의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제 자본주의 세계는 경제 위기 심화, 감염병 위험, 환경 재앙의 증가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며, 장기간 경제 위기 속에서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처한 제국주의 충돌의 새로운 국면을 의미한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는 동유럽으로 계속 영향력을 확대했고, 러시아는 다시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위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권 다툼이 전쟁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와 유럽연합(EU)을 미국 주위로 결속시키고, 러시아를 중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여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무대가 열렸다.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른 전쟁의 피해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에 비참하게 떨어졌다. 이미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양측 군인이 희생되었고,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거리로 내몰았다. 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을 불러와 세계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악화와 빈곤을 가중할 것이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에서 이익을 얻는 자들은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경제, 정치, 군사적 지배력과 이익을 위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선전 기계를 통해 노동계급끼리 죽고 죽이게 만든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 그리고 더 심한 파괴만을 초래했다. 이러한 전쟁에서 그동안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이 노동계급에 자신을 지배계급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 즉 지배계급의 한쪽이나 제국주의의 다른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것은 지배계급을 지지하는 것이며,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것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는 계급투쟁을 무력화시킨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 전쟁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 계급전쟁뿐임을 인식하고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본주의의 깊고 오래된 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인류 전체의 위기는 전쟁만이 아니라 빈곤, 감염병, 환경 파괴를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더 위험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 제국주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인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이 주도하는 모든 전쟁과 평화의 논리를 거부하고 자기 계급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덜 나쁜’ 제국주의 한쪽 편들기에 맞서,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운동과 결부되지 않은 모든 평화주의 반전 운동의 위선에 맞서 국제주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구호 아래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게 할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비록 지금은 국제주의 노동자들이 소수이고, 100년 전과 같은 혁명적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운동은 계급투쟁의 부활과 노동계급 자신의 방식 창출, 그리고 새로운 주체 출현에 이바지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평화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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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터키 성명)6)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계급 전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노동계급에 이 세계는 더욱 위험한 곳이 되었다. 자본주의 위기는 이미 우리 모두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이제 그것이 인류를 더 큰 전쟁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편 러시아는 나치를 우크라이나에서 제거한다는 구실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하고 있고,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삼아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다. 이는 제국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이다. 그들은 우리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할 것을 기대하지만, 전쟁의 파괴적인 결과는 노동계급에만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나토도 러시아도 지지하지 않는다!

 

수년에 걸쳐 자본주의는 위기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착취 증가와 전쟁 등)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해결책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주었지만, 위기를 심화하고 노동계급에 더 큰 부담을 줄 뿐이다. 위기에 대한 다른 해결책이 없을 때, 체제의 지속을 위해 더 일반화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전쟁은 우리에게 죽음이나 더 많은 착취를 의미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자본가들이 벌인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죽이거나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을 위한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었다. 이미 터키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고 있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프롤레타리아트도 인종차별에 노출되어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우리 삶을 희생시키기를 원한다. 우리 삶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더 많은 파괴와 고통을 가져다줄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에게 기후 위기를 불러왔지만,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기후 위기보다 지구에 더 즉각적인 위협이 된다.

 

인류를 야만으로 몰아가는 체제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거짓말을 믿기를 기대한다. 유럽 언론은 젤렌스키를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 ‘영웅’은 자신의 나라에서 거리에서 고문을 자행하는 세력인 신나치주의를 용인한다. 이 ‘영웅’은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 시민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이런 위선은 자본가들에게 가치가 있다! 그들의 전쟁 비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불하고 있다. 그동안 친러시아 '코뮤니스트' 정당과 이른바 '독립' 노조들은 푸틴의 변명을 그대로 인용하며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의무를 다한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잔혹한 전쟁을 조장한다! 반면 이란의 파업 노동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뿌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공항 직원들도 전쟁에 항의하며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무기를 싣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단순히 전쟁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속임수로 이전의 위기를 극복했지만, 장기전을 선택하는 상황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는 축적의 순환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위기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전쟁뿐이다.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계속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를 야만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운동 대신에, 모든 나라 노동계급은 이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며, 자본주의를 완전히 폐지하고, 화폐와 사유재산과 노동 분업이 없는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다시, 터키에서 노동자들은 파업을 사회주의 학교로 전환하고 반전 입장을 취해야 하며, 이탈리아처럼 전쟁의 지지에 반대하며 제국주의자들의 바퀴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오랫동안,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자본주의는 민족주의적 카드를 사용해 왔다. 전쟁이 확산하면서 계급 분열을 위한 방편으로 민족주의가 점점 더 자주 제시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선택, 즉 ‘국가인가 계급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맑스가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밝혔듯이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노동계급은 조국이 없지만, 조직할 힘이 있다. 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우리 계급의 힘이다. 전쟁 희생자가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국제적 투쟁을 확대해야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본주의 게임을 파괴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다가올 더 큰 전쟁 위협에 대한 우리 대답이다. 우리 목표는 노동계급과 현재 투쟁에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혁명가들은 이 전쟁에서 어느 편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에 대응하여 우리는 노동계급 이익을 방어하고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위기와 그에 따른 전쟁과 비참함에 계급투쟁으로 대응할 것이다. 우리에겐 쟁취해야 할 세상이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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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글래스고 회의

 

아래 글은 2022년 5월 7일 Red and Black Clydeside Bookfair에서 열린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회의 소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국제주의와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제국주의 관계의 결정적 전환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쟁은 맑고 푸른 하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세기 동안 쌓인 모순의 결과이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을 시작하려 한다. 1970년대 전후 호황이 끝난 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 축적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 왔다. 이를 통해 경기 침체를 관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궁극적으로 그 체제는 새로운 축적 주기를 시작하기 위해 기존 자본을 평가절하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난 세기 이전의 위기는 자본의 많은 부분을 파괴한 세계적인 전쟁에 의해서만 극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적 주기의 쇠퇴는 19세기보다 해결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후 호황이 끝났을 때 자본가들의 첫 번째 속임수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걸쳐 계속되었다.(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 그것이 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자본가들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위해 서구 자본을 축소하는 생산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값싼 중국 상품은 1979년 이래로 계속됐던 선진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들에게 실질 임금 하락에 대한 부분적인 보상을 해주었다. 그 후 물론 여러 국가, 특히 미국과 영국은 금융권이 모든 종류의 활동에 대한 투기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은행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7-8년에 터진 거대한 투기 거품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으로 생산 이전은 공급망이 길어지고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여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현재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서는 낙타조차 생존할 수 없을 만큼 길고 전례가 없는 가뭄으로 2천만 명이 기아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위기의 최종적인 결과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패권에 대한 위협이다.

 

미국의 패권과 서구의 오만

 

미국의 힘의 열쇠는 군사비 지출뿐만이 아니라, 세계 무역에서 달러의 지배력 때문이다. 모든 거래 80%가 달러를 사용하며, 미국 은행 시스템은 많은 국가가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국고를 탈레반에 풀어주지 않음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굶주릴 수 있게 하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위협으로 간주하는 탈레반의 모든 행동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또한 유럽 회사들이 그들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현재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냉전이 소련의 붕괴로 끝났을 때, 미국 경제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서구 자유 시장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경제와 루블화 붕괴로 이어졌고, 적절한 연줄을 가진 사람들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에서 과두정치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나토의 강대국들은 클린턴과 다른 대통령들의 집권 시에 여러 차례 나토를 러시아 국경까지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향해 그들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것은 결국 서구 ‘민주주의’(제국주의라고 읽음)의 ‘역사적 종말’이었다.

 

2004년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서방이 오렌지 혁명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로 승리한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Yanukovich)가 축출되었다. CIA와 미국 공화당의 지원을 받은 조직들의 도움으로, 유셴코(Yuschenko)가 이끄는 친서방 정권이 키이우(Kiev)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러시아와 차이점이 생겼다. 푸틴이 그의 과두정치를 길들이는 동안, 우크라이나 과두정치는 모두 권력의 경쟁자였다. 그들은 누가 국가의 전리품을 통제해야 하는지를 논쟁을 벌였고, 이번에는 공정한 선거에서 야누코비치가 2010년에 재선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4년 유럽연합 합의를 어기면서 친서방파들(그들의 우방인 미국 등의 도움으로)이 마이단(Maidan)을 조직했다. 잔혹한 탄압을 시도하자 민주적으로 선출된 야누코비치는 도망쳤고,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세력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크림반도(1954년 흐루시쵸프 명령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주어졌는데, 푸틴 대통령은 항상 불법이라고 주장했다)를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탈환했다. 푸틴과 그의 실로비키(siloviki)는 2008년까지 조심스러웠지만, 남오세티야에서 조지아(또 하나의 나토 가입의 잠정적인 후보)를 격파하고, 시리아에서 아사드와 러시아의 지중해 마지막 온수 항을 구한 후, 러시아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국경에서 더 강해졌다고 느꼈다. 카불에서 나토의 불명예스러운 후퇴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약점이 있다고 러시아가 생각하도록 부추겼을 뿐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균형에 실제로 영향을 준 것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 원조의 양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이 중 일부를 돈바스에 배치했을 때, 8년 동안 계속된 전투로 14,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중립 선언하지 않으면 전면적인 침략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허풍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침략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 부족은 러시아군 활약으로 확인되었는데, 나토가 제공한 무기로 재편성된 우크라이나군을 물리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그 대신 러시아군은 이미 2만 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조지아와 알레포에서 사용된 전술과 같은 방법으로 도시 민간인 지역을 파괴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제국주의 전쟁이다.

 

전쟁에 대한 국제주의자들의 반응

 

우크라이나 전쟁의 공포는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모든 조직은 우크라이나의 주요 희생자인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분명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고 있고, 아나키스트들은 지역 민병대가 국가로부터 독립했다는 환상 아래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트로츠키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거나, 여전히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 위해 "덜 나쁜 악"을 주장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제3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초기 단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전에 협상 타결이 불가능했다는 것은 빠른 협상 타결이 현재 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거의 20년 전에 푸틴은 소련의 붕괴를 지난 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왜 그들이 싸우지 않고 제국주의적 입장을 포기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푸틴은 똑같은 압력에 직면해 있지만, 러시아가 싸우지 않고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침공 초기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그의 위협은 한가한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이제 완전히 유라시아 블록으로 내몰리고 있고, 두 나라 모두 미국의 경제적 공격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의 GDP가 이탈리아보다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취약성을 잘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군비 지출을 늘리는 것을 꺼렸던 나토 회원국들이 이제는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가 무장된 두 개 진영으로 나뉘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중국,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떤 종류의 해결로 끝난다고 하더라도(점점 그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그것은 단지 제국주의 학살의 다음 장을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가도 움직일 여지가 많지 않다. 현재 나토는 핀란드와 스웨덴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나토 가입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트러스(Truss)나 엘우드(Ellwood) 같은 호전적인 영국 정치인들은 러시아 패배와 크림반도에서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생활 수준이 낮아지거나, 전 세계에서 인플레이션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거나, 자본가 이익을 위해 싸우고 죽어 가면서 주요 희생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이나 다른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는 평화주의자의 요구가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은 노동자에 대한 계급전쟁의 한 형태이다.

 

이는 모든 노동자에 대한 다면적인 전쟁이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한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 우리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자본주의, 즉 사유재산, 임금노동, 화폐와 국가의 존재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생산 체제가 문제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우리는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 국가와 국경은 사라지고, 노동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독립적인 기관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집단으로 다룰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어느 한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더 넓은 노동계급 안에서 활동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그룹도 확실히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곳의 혁명가들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만들도록 촉구한 이유이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 중 하나는 지금까지 흩어져 있는 반전 행동을 모아서 알려내는 것이다. 러시아 시위, 우크라이나에서 명령에 불복종하는 군인, 영국과 이탈리아 선원들의 선적 처리 거부, 벨로루시 철도 노동자들에 의한 전쟁물자 수송 방해 - 이러한 행동은 진정한 반전이 되기 위해 노동계급의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 분쟁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전쟁에 대해서 지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악몽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 친목을 도모하고 전쟁 기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민족주의 선전을 믿지 말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의 물결에 압도되기 전에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국제주의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우리가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 즉 프롤레타리아트에 죽음과 비참함만을 가져다주는 자본주의 체제를 종식하는 계급전쟁을 위해서 투쟁하자.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주>

 

1.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소개

http://www.leftcom.org/en/about-us

 

2.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소개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337012

 

3. 전쟁에 맞선 크라스-국제노동자협회(KRAS-IWA) 성명

https://www.iwa-ait.org/content/kras-iwa-against-war

 

4. 「Třídní Válka」 소개

https://www.autistici.org/tridnivalka/

 

5. NWBCW Liverpool 소개

https://nwbcwliverpool.wordpress.com/

 

6. NWBCW 터키의 성명서(영문)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5-03/no-war-but-the-class-war-statement-from-nwbcw-turkey

 

2022년 6월 30일 

정리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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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Ⅰ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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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소련과 그 밖의 모든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의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생산 및 분배 수단에 대한 관리와 사회 전체의 관리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다시 말해 관료주의 엘리트가 진정한 국가 부르주아지의 역할을 했는데, 생산과 생활을 하나의 기생체처럼 통제하며 사치와 특권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착취했다.

 

반면 코뮤니즘은 생산이 소수의 이윤을 위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코뮤니즘은 특정 계급의 생산수단 지배력을 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코뮤니즘은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노동계급이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 해방은 노동계급의 자신의 과업일 수밖에 없다. 코뮤니스트혁명은 먼저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을 폐지할 것이다. 사회적 부의 유일한 창조자로서 노동계급은 모든 계급을 폐지함으로써 자신을 해방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최초이자 유일한 사건인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혁명은 1928년 스탈린주의 반(反)혁명 이전에 이미 패배했다. 러시아혁명의 타락은 전 세계적인 계급 운동의 패배와 그에 따른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대한 노동자의 격렬한 투쟁을 방어하는 것에 대한 나약함에서 비롯되었다. 스탈린주의는 볼셰비키혁명의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반대로 볼셰비키혁명의 모든 노력과 희망과의 전면적 단절이었다. 스탈린은 노동계급의 해방 대신에 잔인한 당 독재를 발전시켰다. 코뮤니즘 대신에, 특히 국가자본주의의 잔혹한 변종이 발전했다. 자본주의 사회, 상품생산, 임노동의 기반은 보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통제와 강제노동은 ‘사회주의 업적’으로 거짓 포장되었다.

 

스탈린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혹독한 패배를 안겼던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뿐 아니라 쿠바 또는 중국과 같은 일련의 국가 모델이 되었다. 지배 형태이자 정치 경향으로서 스탈린주의는 민족주의와 국가자본주의 강령을 토대로 영향을 미쳤다.

 

2.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당 독재인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인가?

 

파리코뮨의 경험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제도를 장악할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보여주었다. 부르주아 국가는 계급을 초월해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를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억압 및 지배의 기구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조직화 기구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 평의회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추상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투쟁과 봉기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의 혁명적인 사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삶의 수준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기 계급의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평의회는 대의제와 수동성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자발적 활동에 기반을 둔다. 평의회는 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될 것이고, 계급 안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다. 하지만 역사의 경험은 가장 완벽한 평의회 민주주의라도 그것만으로 코뮤니스트혁명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에 앞서 코뮤니스트는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를 향한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코뮤니스트 사회로의 이행기에 전 세계적인 규모로 자본주의 상품생산의 종말을 준비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코뮤니스트혁명 과정에서 당은 평의회 내부에서 활동하지만, 당이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인 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다. 당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의회 안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로 거짓 선전되었던 국가의 당 독재와 같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당의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직 평의회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정치권력을 갖는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혁명을 현실화하고, 모든 권력을 갖는 것이 우리의 강령이며,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다.

 

3. 국유화는 사회주의적 조치의 일환인가?

 

사회주의와 국가주의를 동일시하는 공식은 오류이다. 이것은 부르주아 개혁주의의 신비화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일탈과 러시아 사회와 그 생산구조에 반대하는 트로츠키주의의 부적절한 비판에서 기인한다. 반대로 맑스주의에 따르면 국가 기계는 지배계급의 권력 도구, 즉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권력 도구이기 때문에 파괴해야 한다.

 

산업에 대한 사적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는 생산에 대한 사회적 관계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경제에 대한 국가적 개입과 통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 법칙의 균열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전체 역사적 발전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러한 개입은 생산수단의 개별 사유재산에 대한 법적 형태를 제거하는 수준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 체제의 근간, 즉 노동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전유를 통한 인간 노동의 착취를 제거하지 않고 발생하며, 오히려 착취를 강화한다.

 

4. 코뮤니스트는 ‘민족해방투쟁’을 지지하는가?

 

전쟁 기간이든, 평화 기간이든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를 그들의 ‘조국’과 동일시하도록 노력한다. 대대로 노동자는 ‘일자리’ 위험에 처해 있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다는 말을 들어왔다. 정확히 똑같은 메시지가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강요된다.

 

전쟁 기간에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들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살육할 것과 노동계급의 형제자매를 학살할 것을 요청한다. 민족이라는 관념은 부르주아 지배를 위한 결정적인 버팀목이다. 민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특징을 위장하며 마치 기존 질서가 ‘국민’의 공동 이익의 표현으로 보이게 한다. 민족주의는 항상 자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항복을 의미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특정한 ‘민족 발전 가능성’ 및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과업’이라는 개념은 허구이며 모든 의미에서 반동적이다.

 

코뮤니스트는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흔히 이러한 민족해방투쟁은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많은 나라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기 때문에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수가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계급에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자본주의 도살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반(反)제국주의 투쟁과 같지 않다. 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한다. 성공적인 ‘독립투쟁’ 이후 새롭게 ‘해방된 국가’조차 세계 경제를 형성한 제국주의 질서의 네트워크에서 철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 경쟁의 요구와 관계없이, 그리고 그 요구의 외부에서 발전할 수 없다. 우리는 맑스가 독립투쟁을 어느 정도 지지했고, 레닌 또한 민족자결권을 위해 싸웠다고 끝없이 논쟁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기계적인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대답한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새로운 기술 및 기계를 만드는 자본주의 발전의 초창기에 글을 썼다. 이러 배경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봉건적이고 전(前)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의 속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 독립을 위한 여지는 제한된 경계선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레닌이 아니라 제국주의 기원에 대해 잘못된 분석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보다 잘 이해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20세기 초 이후 자본주의의 계속된 발전은 민족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 입장의 정확성을 더 분명히 했다. 레닌은 식민지 국가의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토대를 흔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의 결과로써 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탈식민지화는 경제 강대국의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 수많은 사례에서 오래된 식민지의 독립은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투쟁 결과였다.

 

국제주의자의 구호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이다. 새로운 국경의 창설은 모든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단결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다. '민족 독립', '민족자결권' 등과 같은 모든 민족 이데올로기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노동자에게는 해롭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노동자에 부르주아 중 한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착취하는 부르주아 분파 간의 전쟁에서 착취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도록 한다.

 

20세기 이래 국제무대에서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 전쟁은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 그리고 더 심한 파괴만을 초래했다. 노동계급은 이러한 전쟁에 대해 국제적인 연대와 모든 국가에서 민족이 아닌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을 통해 저항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는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혁명적 패전주의’를 방어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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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1936년~1939년까지 스페인 전쟁,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

1936년~1939년까지 스페인 전쟁,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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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 편에 복무하는 방법, 알리바이와 결과

 

1) 정치노선 효과의 명확성

 

정치적 행동 노선은 그것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방식, 심지어 다양한 적들이 말하는 것에 의해서 판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행될 때 발생하는 결과에 의해서만, 그것의 물질적-역사적 조건에 의해 가해지는 영향을 고려한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으로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주의 혁명가들의 태도가 다시 한번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좌파와 일부 국제주의 아나키스트 표현의 대다수 세력과 요소는 이 전쟁의 에피소드를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쟁으로 다시 한번 정의했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여러 정치적, 군사적 표현과 함께 수년간(2013-14년 이후) 계속되어 온 제국주의 자본주의 분파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의 필요성, 주적이 자신의 나라에 있다는 특성을 지지하면서, 모든 곳에서 혁명적 패전주의를 일반적인 지침으로 채택했다. 그들은 이 패전주의가 자본- 제국주의 반대자에 의해 군사적으로 부르주아지 자신의 패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반적 목표: 지구상의 규모로 계급 없는 사회-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투쟁 과정에 이러한 약점을 통합한다.

 

이 기회에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를 옹호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동일한 개념을 반드시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출판물과 전단을 읽게 되면 이러한 부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좌파 맑스주의 환경에서 다양한 해석이 있었지만, 1915년 침머발트 회의(스위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표현의 국제주의적 수렴을 방해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소련에서 볼셰비키 통치 당시부터 분파가 나타나 코뮤니스트좌파의 일부로 이어졌고, 이는 소련을 제국주의 자본주의라고 새롭게 표현하면서 지지하는 것을 거부했다(주로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들은 영국, 세르비아, 프랑스, 미국 등 다른 곳으로 떠났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또 다른 부분인 이탈리아 좌파와 벨기에와 프랑스와 연계된 일부는 볼셰비즘이 이끄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 한동안 남아 있었는데, 특히 제3차 대회 이후 전술적 측면에서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여 볼셰비키 모스크바 중앙에 의해 행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추방되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은 소련을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레닌주의 노선의 실질적인 방어에 기초하여 일반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이것은 보르디가주의(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입장과 일치하는 원칙파)에서 매우 분명하다. 데이먼주의(오노라토 데이먼의 입장과 일치하는 원칙파)는 명확성이 덜하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레닌을 실질적으로 정당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논리적으로 그 비판과 글에 나타나는 모순은 필자가 여러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주목할 만하다.

 

트로츠키주의 좌익 반대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서 필요한 유일한 혁명은 정치 국가 권력에서 "스탈린주의 관료주의"를 제거하고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의 이행”으로 간주한 경제의 노동계급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지지했다. 코뮤니스트좌파는 트로츠키주의를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경향이 아닌 자본주의의 정치적 좌파 세력으로 여기면서, 수많은 비판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독일 - 네덜란드 좌파는 소련의 볼셰비키에서 반(反)혁명적 억압의 징조가 보였던 아주 초기부터 그렇게 했다. 이탈리아 좌파는 1930년대 초부터 트로츠키의 국제적 반대파 세력과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떠났다.

 

 

레닌의 패전주의에 관한 글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효과가 있었고, 당시 코뮤니스트였던, 사회주의자 좌파를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개념과 나중에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정의한 그 글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레닌은 패전주의가 제국주의 세력과 관련된 군사적 충돌에서만 유효하고 적용이 가능하지만,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 신식민지 또는 종속 국가를 공격했을 때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제국주의 국가와 비(非)제국주의 국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와 다른 글들에서는, 잘못과 논리적 오류를 지닌 책, 레닌주의자들이 걸작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그의 정의와 해석에 일관성이 있다. 제국주의에 대해 잘못된 설명과 함께 일관성은 각각의 경우에 다소 뉘앙스가 있는 레닌의 추종자들에게 일어난 것과 같이 필연적으로 모순과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개념화와 해석은 우리가 로자 룩셈부르크, 안톤 판네쿡, 헤르만 호르터와 같은 다른 맑스주의자들을 연구하게 되면 레닌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커다란 힘을 가진 자본주의 권력, 또한 더 적은 역량, 등급을 매길 수 있는 다양한 형식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단순히 식민지와 신식민지, 그리고 이들 국가의 민족해방운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강대국들의 외교정책만은 아니다. 제국주의는 국제 경제와 관련된 모든 당을 포용하는, 자본주의가 이미 세계에서 승리했다는 증거(일반적으로 레닌주의자들에 의해 거부됨)를 여기에서 통합하는 표현이다. 발전하고 있던 것은 자본이 더 작고 다른 형태와 생산 관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역에서도 그것의 국제적인 성장 운동이었다.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거의 없는 작은 나라들조차 제국주의 사이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르주아지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어 동맹, 영향력, 특혜 투자, 무역 협정, 신용 네트워크 등의 게임에 참가하여 최고의 조건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레닌이 제국주의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아직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확장할 수 없었던 작은 나라들, 그리고 그들의 내부에서 거의 독점하지 않은 나라들 둘 다 이미 세계화된 자본 사이 의 경쟁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인도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파운드화에 반대하는 자본의 지원을 받아)에서 무장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대내외적으로 억압하여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켜 현재 상황에 도달했다. 소련의 도움으로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소련과 빠르게 충돌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전쟁, 다양한 지역에서 게릴라들을 선동하는 외국 운동에 착수하는 인민 공화국이 만들어졌다. 미국을 내쫓은 후,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중국의 적들을 무장시킨다. 베트남은 결국 미국의 경제 네트워크와 중국 소유의 공장으로 끝난다. 그 목록은 엄청나다. 이들의 민족 자결은 제국주의의 약화라는 개념과 함께, 레닌의 이론이 오류로만 판명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것은 이러한 자본들이 그들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고 착취하고 잉여 가치와 천연자원의 다른 포식자들과의 경쟁에서 힘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국가의 독립은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자본주의 관계의 발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미 해방된 국가에서는 자본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국제 경제의 상대적 비중 면에서, 그들의 경제 구조에서 자본의 유기적인 구성이 덜한, 작은 나라들은 발전을 위해 제국주의 동맹에 그들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민족해방운동은 자본주의 이전의 표현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진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체하고 부인하는 대가로 가능한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과 세계 시장을 위한 투쟁의 형태를 구체화한 형태였다. 이는 그들이 경쟁적으로 제국주의 투쟁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강력한 힘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은 제한적이거나 축소된 힘으로 제국주의를 행사했다. 그러나 국제 무역과 자본과 투자의 흐름이 양적, 질적 측면에서 점점 더 세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도 제국주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정치적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러한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부르주아지 운동과 대의명분을 지지하지 않고 국제주의 편에 머물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은 특징적으로 다른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자본주의 세력을 지원하면서 그러한 수많은 국가적 명분을 지지해왔다. 그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경제적 착취에 대한 실질적인 방어를 공유했다. 그들은 모두 노동계급을 사회적으로 지배하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문화적 수단, 항상 다른 자본가들과 힘의 균형을 개선하고자 공유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코뮤니스트좌파의 지부는 제국주의 사이 충돌에서 직접적인 지지를 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모순을 입증했다. 일반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추정)에 대한 그들의 과대평가는 제2차 대회에서 이루어진 민족 문제에 대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글의 타당성에 대한 일반화된 상기를 표현해 주었다. 이러한 좌파들은 스탈린주의나 맑스-레닌주의, 그 결과와 알리바이, 그리고 매우 분명한 모순과 기회주의 제국주의와 국가 자본주의의 과정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레닌주의를 복구하려고 한다. 이러한 민족운동에 대한 지지가 이들 국가의 지배적 부르주아지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와 가난한 농민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논점이 구분된다. 이 때문에 편지에 대한 오해 의혹이 자결권 방어에 부차적으로 제기될 여지가 생겼다. 국민당이 노동자와 코뮤니스트를 어떻게 학살했는지 그리고 이것에 관해서는 많은 잉크가 필요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레닌을 근거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민족주의적 명분, 그들의 민족자결권이 그들에게 제국주의적인 자본인 러시아 자본에 의한 반동적 제국주의적 침략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해 방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전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에게 제국주의자인 러시아의 자본. 우크라이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대의는 레닌주의의 개념과 글을 인용하면서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상한 해석과 중도적 수사와 함께 카우츠키주의의 반향은 자본주의의 국제적 발전의 변화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그들의 함의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레닌은 식민지에서 민족 전쟁이 불가피하고, 그들은 둘 다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전쟁, 식민지를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니우스 팸플릿」“ 스보르니크 소시알데모크라타 1호 (1916년 10월) marxists.org).를 참조하라. 그에게 있어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니우스 팸플릿」은 "사회주의 아래(참조)에서도 민족 자결권을 부정하는, 특정의 네덜란드 사람[즉, 판네쿡과 호르터와 같은 트리뷴주의자]과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의 작업과 같은 잘못에 시달리게 했다.

 

국가 사회민주당은 항상 혁명을 주로 자신들의 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생각해 왔다. 레닌은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분열을 타파하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운동은 사회주의에서 인류의 궁극적인 통일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하나의 행동도, "하나의 전선에서의 단일한 전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규모의 일련의 전투였다. 사회주의는 모든 "민족의 고립"을 종식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민족의 불가피한 통합을 이루는 방법은 첫째, "모든 억압받는 민족의 완전한 해방, 즉 그들의 독립된 자유"를 통해서였다.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의 자결권. "논문" 1916년 4월 2일 보보테 marxists.org 참조)

 

레닌은 세계를 세 종류로 나라로 나누었다: 첫째, 노동자들의 임무는 그들 자신의 나라와 식민지에서 억압된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던 서유럽과 미국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 둘째, 오스트리아, 발칸 반도,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은 억압받는 국가의 계급투쟁이 억압받는 국가의 노동자 투쟁과 병합될 예정이었다,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 이제 시작된 중국, 페르시아, 터키와 같은 식민지와 반(半)식민지 국가였다. 여기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의 혁명적 요소들에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그들의 봉기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의 봉기를 돕고, - 만일 필요하다면 그들의 반란과 혁명전쟁을 지원해야 했다." (위의 글 참조)

 

레닌의 글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모순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편, 로자 룩셈부르크, 판네쿡 또는 호르터에 의해 표현된 국제주의 정치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제국주의, 그것의 본질, 그리고 그것의 기원에 관련된 분석에 있어서는, 완전한 우연은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외부 자본주의 시장과 이미 칼 카우츠키가 실현한 유사한 접근법과 관련된 일련의 오해들을 발전시켰는데, 이론이 훨씬 더 정확하고 타당한 판네쿡이나 호르터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정치적 결론은 일치하며, 레닌주의와의 대조와 차이는 명백하다:

 

”제국주의 국가의 정책과 제국주의 전쟁은 억압받는 한 나라에 자유와 독립을 안겨 줄 수 없다. 강대국 파트너의 공범인, 지배계급인 소국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체스판에 있는 일개의 졸로 구성되며, 전쟁 후 자본주의 이익에 희생되어 그들 자신의 노동 대중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때 도구로 이용된다." (테제 6)

 

"… 국익은 노동대중을 그들의 치명적인 적,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두는 구실일 뿐이다.(테제 5) (로자 룩셈부르크, 「국제 사회 민주주의의 과제에 관한 논문」. 1915년 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유니우스 팸플릿)에서 "현재의 제국주의 환경에서는 민족자결 방어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간 생략)

 

 

 

결론

 

트로츠키와 그의 지지자들이 틀렸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좌파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레닌주의에 의한 그러한 과정과 실제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소련의 권력(스탈린주의와 포스트 스탈린주의)이나 그 외의 것(제4 인터내셔널)에서 그들은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 모든 것이, 그들에게 적합할 때마다 민족운동을 지지해 왔다.

 

중국은 소련과 쿠바(앙골라, MPLA 그리고 UNITA 포함)와 같은 그 동맹국에 의해서 지원받는 다른 사람들과 충돌한 무장 세력의 일부를 지원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레닌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요구하는 구호였다. 진행된 것은 모두 프롤레타리아트를 정복하고 착취하여 자본 축적과 그 가치를 위한 자원의 약탈을 촉진하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이었다.

 

레닌의 테제는 부르주아 분파에 혼란과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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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장군은 1959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였다. 스페인에서 프랑코 장군은 1959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를 맞아, 스페인은 미국 편에 서서 자신을 유럽주의자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스페인 등에서 사용했던 기지를 가지고 스페인 경제의 고립과 자치권이 배후에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발전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소련은 여전히 동쪽에 있었지만,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전차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탱크는 도처에 블라디미르 동상이 있고 국가 권력 분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폴란드 GDR에서 진압하고 있었다. 소련은 국제 부채가 증가하고 있었고 군비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이미 광물의 순환에 편입되었고, 그들의 많은 동료는 경영과 국가 행정의 순환에 편입되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자본을 축적하고 세력권을 주장. 그 총성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유혈과 타락의 강 속에서 발사되고 있었다. 자본의 제국주의는 진전되고 있었다. 미국은 영국에 대항하여 일어섰고 심지어 때때로 무기 생산, 사업, 그리고 다양한 해적 행위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 제국주의는 돈, 상품, 그리고 괴물 같은 국가 기관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발표했다.

 

 

2022년 3월 18일

아니발(Anibal)

Leftdis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2/03/18/war-in-spain-1936-39-war-in-ukraine-today%ef%bf%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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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16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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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는 2012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10주년을 맞이하였다. 부르주아 정치에서 사용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 김일성주의 등과 구분되지 않는다. 특히 중국, 북한, 쿠바와 자본주의 독재체제를 공산주의로 칭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제대로 표현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코뮤니즘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에서 발행하는 「코뮤니스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코뮤니스트」는 코뮤니스트좌파 이론과 운동, 세계의 계급투쟁, 그리고 기후 위기, 코로나 팬데믹, 제국주의 전쟁 등을 소개 분석해왔다. 「코뮤니스트」의 결론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위기와 이에 맞서는 세계의 노동자 투쟁이 국제주의 원칙과 투쟁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주의의 첫걸음은 각종 위기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전복할 유일한 계급이 노동계급이라는 과학적 인식과 이를 위해 국가/민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10.29 참사에서도 자본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항의는 많았지만, 자본의 총체로서 국가, 지배계급의 국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없었다. 이번 참사를 비롯하여 노동 현장에서의 끊임없는 재해는 지배계급 한 분파만의 실정이나 부실 대응 때문만이 아니다. 이윤 추구라는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출 의지와 능력이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에 원인이 있다. 10.29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수습 과정과 보수언론의 대응은 세월호 참사와 너무나 닮아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는 침몰 과정에서부터 구조, 사고 대책, 진상 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에 이르기까지 자본과 관료의 이익을 고수하려고 무능을 가장하였다. 처음에는 세월호 선장 등 승무원의 업무 방기, 그다음에는 소유주 일가와 구원파의 가십거리를 퍼트리며 쟁점 흐리기에 몰두하였다. 이번 참사 역시 112신고 미대응, 경찰력의 불충분한 배치, 정권 실권자에 대한 보고 지체와 즉각적 대응 미비 등 꼬리 자르기와 핼러윈 축제에 대한 열광과 질서를 지킬 수 없었던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번 참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지 않은 정부와 국가에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서 제기했던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다. 국가 없이도 사회는 존재했으며 국가와 국가권력에 관한 개념이 없었던 사회도 있었다. 사회가 계급들로 분열되는 것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제발전의 특정한 단계에서, 국가는 이 분열로 말미암아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계급들의 존재가 필연적이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계급들의 현존이 생산에 직접적인 걸림돌이 되는 생산의 발전 단계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계급의 발생이 불가피했듯이, 계급의 소멸도 불가피하다. 그리고 계급이 소멸되면 국가도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결합에 기초하여 생산을 새로이 조직하는 사회는 모든 국가기구를 응당 가야 할 곳으로, 즉 물레나 청동 도끼가 진열되어 있는 고대 박물관으로 보낼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이처럼 잉여노동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노동 분업 진척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발생을 매개로 한 계급적 지배-피지배 관계가 국가의 성립 배경이다. 즉, 국가는 지배계급의 국가이다. 이것이 국가가 노동계급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줄 수 없는 이유이다.

 

「코뮤니스트」 16호에서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 공세와 기회주의 세력에 맞선 지난 10년의 투쟁을 되돌아보고, 이후 국제적으로 펼쳐나갈 국제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을 전망했다. 또한 창간 10주년을 맞아 코뮤니스트좌파 이론과 역사를 소개한 「특별호」도 함께 발간하였다. 그동안 「코뮤니스트」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 비판과 격려를 보내준 모든 동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창립 10주년 특집으로 ‘코뮤니스트좌파에 대한 회고, 내부 논쟁, 그리고 혁명운동의 전망’을 실었다. 이 글은 「코뮤니스트」 10, 11, 12호에 실었던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 논쟁’과 ‘자본주의 쇠퇴이론 : 회고와 전망(13호)’의 연장선에 있다. 내용은 첫째, 코뮤니스트 좌파에 대한 회고-한국의 경우, 둘째 코뮤니스트좌파의 내부 논쟁(①세 번에 걸친 연재 글의 정리 ②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논쟁의 심화 과정과 그 평가 ③자본주의 쇠퇴론의 후속 논쟁으로 구분) 정리, 셋째 코뮤니스트 사회를 위한 혁명운동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내부 논쟁을 계속 연재하는 것은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을 위한 혁명운동의 길잡이라는 점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코뮤니스트 운동의 시작과 뿌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 이론과 실천에 있다. 이론으로서의 역사 유물론, 방법론으로서의 변증법적 유물론,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계급투쟁은 지금까지 코뮤니스트 사회를 이룩하려는 코뮤니스트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춧돌이며 방향타였다. 특히 그러한 흐름은 세 번의 인터내셔널의 과정에서 코뮤니스트좌파에 의해 계승되어 왔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참칭해 온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자본의 좌파 이데올로기에 맞선 투쟁이었다.”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쟁점에서는 ‘군국주의와 해체’, ‘2022년 8월 스타인클로퍼 동지의 글에 대한 답변’을 실었는데, 코뮤니스트좌파 국제 조직의 한 축인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의 입장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위의 세 편의 글은 비교적 긴 글이지만, 일독을 권하며 혁명운동의 전망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군국주의와 해체’에서 ICC는 중국에 대한 오류는 인정하지만, 기존의 분석 틀을 고수한다.

 

“우리는 1990년 글에서는 중국이 언젠가 새로운 블록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의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누락의 배경에는 중국이 주도적인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점, 즉 제국주의 블록의 지도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중요한 오류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분석에서, 프롤레타리아 해법인- 코뮤니스트혁명이- 홀로 인류 파괴(부르주아지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반대할 수 있지만, 이러한 파괴가 반드시 제3차 세계대전의 결과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또한 해체 과정의 논리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ICC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혁명적 물결의 발전은 전쟁이 아니라 경제 위기의 악화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대규모 계급투쟁의 출발점인 노동계급 동원은 경제적 공격에서 비롯된다는 이 분석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 역사에서는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Ⅰ’,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를 실었다. 코뮤니스트의 역사는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의 투쟁의 역사이며, 혁명적 전통은 그것의 반영이다. 이행기 사회에서 노동자 평의회의 역할, 당과 계급의 관계 역시 혁명적 전통에서 빼놓을 수 없다.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는 이러한 혁명적 전통과 교훈 및 국가의 소멸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만약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성공적인 혁명 이후의 노동자평의회의 배타적 지배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 조직이나 당의 통치가 아니다. …… 혁명적 조직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에 집착한다면, 평의회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평의회를 위해 자신을 대체한다면, 혁명 과정은 모두 똑같이 반(反)혁명 과정에 기여할 것이다.”

 

“일단 계급이 인간 자체로 해체되면, 노동자평의회는 "그들의 정치적 성격을 잃고 사회의 진정한 이익을 감시하는 단순한 행정을 담당하는 기능으로 변형될 것이다." (엥겔스, 1872년). 이전 지배계급이 다시 권력을 잡은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평의회가 채택하기로 선택한 억압적이거나 국가적인 기능은 그 시점에서 쓸모없게 될 것이다.”

 

□ 국제에서는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자본의 무자비한 공격과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 투쟁을 다루고 있다. 특히 서로 경쟁하고 적대시하는 부르주아 분파들도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에서는 계급적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서로를 강화한 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여왕은 영국의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계급의 적(敵)인 프롤레타리아와 맞서는 모든 부르주아지의 세계 자본주의 전반을 위해 국가의 연속성, 안정성, 지속성을 대표했다는 것이 그 답이다. 그녀와 영국 왕실은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지 질서의 인간적이고 친근한 겉모습이었으며, 식민지 잔학 행위, 제국주의 대학살, 파괴적인 경제 위기, 노동 대중의 착취와 빈곤화를 "국가 공동체"에 대한 단결과 봉사의 이름으로 모호하지만, 조용히 정당화했다.”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노동자에게는 나라가 없다!)

 

“EU 회원국으로 솅겐(Schengen) 비자를 소지한 러시아인의 입국을 허용했지만. 9월 30일부터 금지한다. 제국주의 지배계급은 전쟁에서 충돌할 수 있지만, 전쟁에 대한 반대와 총알받이가 되기를 거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은 “자국 정부가 부과한 (애국적) 의무를 다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데 단결한다.” (동원 반대 시위를 지지하며, 자본주의의 전복이 더욱 필요하다!)

 

자본의 공세 맞서는 노동계급의 대안은 ‘자본가의 계급전쟁에 대응하는 노동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조합과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규칙을 넘어서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우리가 직면한 고립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조직해야 한다. 부분파업이 아닌 대대적인 파업이 필요하다. ……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 조직을 의미하는데, 자본주의가 세계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제시할 명확한 강령을 가진 세계 혁명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강령은 일종의 혁명적인 '싱크 탱크'의 산물이 아닐 것이다. 사실 그것의 기초는 노동자 투쟁의 전체 역사와 자본주의 자체가 도달한 역사적 막다른 골목에서 끌어낸 교훈에 이미 존재한다.”

 

□ 기획 번역의 ‘코뮤니즘 아래서 가족은 존재할까? 육아는 어떻게 될까?’ 에서는 자본주의에서 가족 모델은 영속적이고 특정한 것이 아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범위 내에서 분화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양육의 사회화에 대한 전망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의 악성 종양: 생식의 자유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에서는 전쟁 무기로 사용되는 성폭력 실상과 기후 위기를 인구 증가로 떠넘기고 환경파괴를 자유로이 하는 자본을 고발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전쟁과 성폭력도 지속될 것이며,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방법은 계급전쟁뿐임을 명시하고 있다.

 

□ 코뮤니스트 정치에서는 기후 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이고 국제적인 노동계급의 코뮤니스트혁명만이 기후 위기를 끝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또 다른 단계이다’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위협과 동시에 미국과 유럽연합 역시 자체 핵무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다. 핵전쟁에 대한 대안은 부르주아 정치 운동이 아닌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조직 건설로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기획. 스탈린주의 비판Ⅲ는 스탈린주의 비판(14호, 15호에 실렸던Ⅰ,Ⅱ)의 마무리로, 스탈린주의는 국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복종, 테러, 혁명의 포기, 코뮤니스트의 대량 학살,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조장, 여성에 적대적인 성도덕 전파, 임금노동에 대한 미화에서 완전히 반동적인 성격을 드러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스탈린주의는 퇴보한 “사회주의 실험”이 아니라, 반대로 혁명의 무덤을 파는 자들, 특히 반(反)코뮤니즘의 음흉한 변종이었다고 강조한다.

 

□ 이론에서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부)’는 가치법칙과 자본주의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윤율의 하락 경향이라는 맑스주의 경제의 핵심 개념을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연속으로 연재될 예정이니 필독을 권한다.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에서는 개혁주의 정치인들의 한계와 본질에 대해 폭로했다.

 

□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에서는 ‘사회 계급과 노동력 착취, 계급투쟁과 계급의식, 파시즘과 반(反)파시즘 인민전선,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을 넘어선 투쟁, 종교(신), 국가, 가족에 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 자본주의 가족제도와 여성해방에 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을 실었다.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코뮤니스트」 16호는 자본의 무자비한 공세와 다양한 위기에 맞선 세계의 노동자 투쟁과 국제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을 담고자 했다. 「코뮤니스트」 기사에 대한 동지들의 다양한 의견을 기다리며, 앞으로도 우리는 국제주의 실천과 계급투쟁의 현장에서 수평적 소통과 열린 토론, 그리고 아래부터의 독립적 계급 행동을 꾸준히 추진해나갈 것을 약속한다. 다시 한번 동지들의 격려와 성원, 비판에 감사드리고,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지자와 독자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제일 먼저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기 자신을 지양하고 모든 계급 차이와 계급대립을 지양하며 국가로서의 국가도 지양한다. ……

마침내 국가가 실제로 사회 전체의 대표자가 되면 국가는 필요 없어진다. 억압당해야 할 어떠한 사회계급도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계급 지배가 사라지면서 이제까지의 무정부적 생산에 기반을 둔 개체의 생존 투쟁이 사라지고 그러한 투쟁에서 생겨나는 충돌과 폭행이 사라지자마자, 억압되어야 할 어떤 것도, 즉 특수한 억압권력인 국가를 필요로 하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반-뒤링」, 박종철출판사)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노동자 희생과 지구 파괴를 멈출 수 있다!

생계비 위기, 사회적 참사, 전쟁, 기후재난...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이 대안이다!

 

2022년 11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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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2년 16호 & 창간 10주년 「특별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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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2년 16호

 

 

차례

 

 

□ 코뮤니스트 16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코뮤니즘, 김일성주의, 자유주의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그리고 전복의 전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또 다른 단계이다 
 
□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Ⅱ 
 
□ 국제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동원 반대 시위를 지지하며 
▸생활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다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 특집.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창립 10주년
▸코뮤니스트좌파에 대한 회고, 내부 논쟁, 그리고 혁명운동의 전망 
 
□ 기획. 스탈린주의 비판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Ⅲ 
 
□ 역사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Ⅰ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 
 
□ 기획 번역
▸코뮤니즘 아래서 가족은 존재할까? 육아는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의 악성 종양: 생식의 자유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 이론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부)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쟁점
▸군국주의와 해체 
▸2022년 8월 스타인클로퍼 동지의 글에 대한 답변 
 
□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 *** *** *** *** *** *** *** *** *** *** ***

 

생계비 위기, 사회적 참사, 전쟁, 기후 재난... 자본주의가 원인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이 대안이다!!

 

 

□ 가격 :  20,000원 (특별호 포함)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코뮤니스트」16호 & 창간 10주년 「특별호」는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배포/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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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비 위기 - 그들은 파티를 즐기고, 우리는 비용을 지불한다!

생계비 위기 - 그들은 파티를 즐기고, 우리는 비용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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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영국 노동자들의 상황과 투쟁 전망을 밝힌 글이지만, 50여일 째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자본과 정부의 압력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기도 하다.

 

 

우리의 실질 임금과 연금은 현재 급격한 하락을 겪고 있다. 그들은 한쪽에서는 낮은 임금 인상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높은 물가 상승으로 집어삼키고 있다. 여기에 가정용 에너지 요금이 두 배 오르고, 휘발유 가격이 치솟고, 주택담보대출 비용이 증가했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이 '생계비 위기'를 구성하고 있는데, 정부예산책임국(OBR)은 이 위기가 '1956-57년 영국 통계청(ONS)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생활 수준의 하락‘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공격에 더하여 민간 기업들은 노동자에게 압력을 가해 직장에서 무자비한 "해고와 재고용"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가장 야만적인 표현 중 하나는 800명의 P&O 페리 노동자들을 경고 없이 대량 해고한 것이다. 그 후 이 일자리는 최저 임금의 일부만 받는 외국 선원에게 위탁되었다. 이는 모회사인 DP World가 2021년에 2020년보다 5% 증가한 7억 파운드의 이익을 보고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의회 의원들은 사장들을 '범죄자'라고 비난하며 P&O 해고 사태에 대해 맹비난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P&O 사장들이 하고 있는 일에 근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해고와 재고용’을 금지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켰다. P&O 사장들은 시장의 힘 때문에 다르게 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력을 망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사실이다. 단지 자본가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영국 국민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 동안 그랬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치솟는 에너지 요금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재무장관이 도입한 조치들은 너무 졸렬해서, 그가 아내의 납세 신고서를 잘못 읽었다고 생각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보험 수당 인상, 의회 세금 환급 및 임시 유류세 인하 효과를 합치면 연봉 3만 파운드의 급여를 받는 사람에게 월 21파운드의 절감 효과가 있다. 이렇게 적은 금액은 평균적인 가족에게 연간 1,200파운드에 달하는 생활비 인상의 타격을 완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계비 위기는 노동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의 이름이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 위기는 단 하나의 특별한 원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본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조치들이다.

 

지배계급은 희생양을 찾는다.

 

정부 공식 매체들은 이 위기를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이것이 유럽으로의 에너지 공급을 줄이고 시장 변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상황을 확실히 악화시켰지만, 2021년에 이미 인플레이션은 치솟고, 그해 9월 에너지 가격은 이미 급등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대유행 초기 몇 달 동안 도입해야 했던 과도한 코로나19 재정 지원 계획과 잘못 연결되어 왔다. 저성장기에는 지배계급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임금을 더 많이 쓰지 않는다고 노동자를 비난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는 돈을 함부로 쓴다고 비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비지출은 간신히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고, 인플레이션은 7%로 상승하고 있다.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코로나 시대 구제 프로그램의 효과는 주로 부유층의 저축에 집중된 저축 수준이 약간 증가한 것뿐이다.

 

대유행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다른 측면은 공급망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표준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인력 부족과 선적 밀림으로 인해 2020년 약 1,500파운드에서 지난해 7,600파운드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가격 인상은 거의 전부 소비자에게 전가되었다.

 

작은 혼란이 그것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대규모 상호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이상한 고발이다. 운송비를 절감하는 성공적인 수단인 적시재고관리(Just-In-Time)의 사용은 단기 공급 제약과 노동력 부족에도 매우 민감한 글로벌 공급망으로 이어졌다.

 

지배계급은 계급전쟁을 격화시킨다.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움직임은 부채 상환의 형태로 부채를 경작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이윤 하락을 메우려는 시도인데, 이 중 상당 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 PCP 자동차 금융, 휴대폰 계약 등의 형태로 유지된다. 금리의 현저한 상승은 이 체제의 막대한 부채와 이것이 야기할 수 있는 연쇄 파산으로 인해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또한 잉여 가치를 창출하고 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생산적인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많은 자본주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공급망 실패라고 주장하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의 근본 원인을 다루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금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노동계급은 정체된 임금의 더 많은 부분을 이자 지불, 더 높은 물가, 또는 둘 다에게 잃음으로써 더 나빠질 것이며, 이것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세력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우리 자신을 조직하고 임금 인상과 우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다른 양보를 위해 자본가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체제가 아무리 인도적으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노동계급으로부터 잉여 가치를 끊임없이 추출하는 것에 기초한다. 이로 인한 파괴의 결과로, 우리는 임금이 삭감되고, 하늘이 오염되고, 삶의 질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쇠퇴는 체제 자체의 모순의 결과이며 더 악화할 뿐이다. 심지어 금융 저널리스트 마틴 루이스(Martin Lewis)와 같이 이전의 냉철한 자본가 논객들조차 이러한 열악한 상황으로 인한 시민 불안에 대해 경고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유감스러운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것처럼, 계급전쟁 캠페인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굴복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우리를 지배하는 자들은 우리가 희생을 감수하고,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 썩어가는 체제의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 대신 우리는 인플레이션보다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파업 투쟁을 지지하고, 같은 공격에 직면한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확산시키고, 파업 위원회와 대중총회를 통해 우리의 투쟁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단기적인 승리를 거두더라도, 자본가들은 우리가 얻은 것을 되찾고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윤만을 위해 생산하는 이 체제를 파괴하고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세계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이 투쟁을 이끌 수 있는 국제 조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2022년 6월 7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출처> 이 기사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의 기관지 「오로라」 최신호(제59호)에 실린 글이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07/the-cost-of-living-crisis-they-party-we-p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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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주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을 출범하면서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을 출범하면서

 

1.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더는 ‘진보 정치’, ‘좌파 정치’ 운운하면서 고리타분한 대립을 논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보든, 멀리에서 보든, 우리 주변에 펼쳐진 ‘노동자 투쟁’과 미디어에 비친 ‘진보 정치’는 그 어느 것도 공통점이 없다. 정확히 말해, 96~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형성된 ‘진보정당(정치)’ 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 정치가 노동계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권연대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지도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한 ‘노동자 독자정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치 노선적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민족해방 좌파, 중앙파, 현장파를 포함한 공동전선당은 무엇보다, 한국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의 위기를 ‘계급정치의 부활’이 아닌 ‘지도력의 정치’에서 찾는 점에서 노동계급에 치명적이다. 또한, 통일전선 당은 그간에 진행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공동 활동 경험과 노력을 폐기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진행되는 공동전선 당 전략은 기껏해야 ‘계급성과 혁명성도 애매한 진보좌파연합’으로 수렴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비관주의와 조급성, 여러 차례 패배의 자책감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활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가 눈앞에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부활 과정을 보고 있다. 파업과 거리 투쟁을 통해서 동지를 찾아내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의 잠재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혁명운동의 정치원칙을 강인하게 사고해야 할 때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혁명운동의 역사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평가와 원칙을 되새기려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반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국에서 ‘국제주의’ 관점에서 코뮤니스트 운동을 생성해나가려는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려고 한다.

 

첫째, 8~90년대, 아니 아직도, 여전히 한국 운동 사회의 이론적 전통으로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맑스주의와 구분되는 스탈린주의)에 근거한 혁명이론과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해방 해결을 주요 실천 투쟁으로 전개한 다수파인 NL 운동(스탈린주의 변종)은 한국 자본주의 지배계급으로 편성되거나 개혁적 부르주아지와의 통일전선 형성으로 귀결됐다. 또한, NL 노선과 대립했던 이른바 80~90년대의 ND, PD 운동의 이론적 뿌리가 사실은 소부르주아 민족경제론, 국민경제에 근거한, 소련 관변학자들의 반독점민주변혁론 -> (관제고지 선점으로서) 재벌 국유화-> 권력장악 -> (일국)사회주의 노선이었다고 성격을 규정짓는다.

 

둘째, 1917년에서 192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봉기 상황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의 그 첫 단추로, 러시아혁명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노동자 봉기 시도가 어떻게 좌절됐는가가 혁명적 맑스주의 실천 운동의 복원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은 ‘사회주의 조국 소련을 방어하자’는 일국사회주의 노선의 실천적 결과로서 소련의 대외협력기구로 전락한 코민테른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더는 연결되지 않은 코민테른은 코뮤니스트좌파, 혁명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국제주의를 포기한다. 독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등장과 함께 반(反)혁명의 시기가 열리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결국 패배했다.

 

한국 사회의 이론적 실천적 풍토에서, 레닌이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 일방적으로 혹평한 코뮤니스트좌파 운동은, 역사적으로 혁명적, 비타협적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 운동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더욱, 발본적으로, 러시아혁명에서 ①‘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가자본주의 도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의 모순 (레닌) ② 혁명의 타락으로서 만들어진 사회는 (국가) 자본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른바 모종의 사회주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규정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관료주의를 어떻게 낳았는가? 노동자평의회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그 과정에 볼셰비키당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가 이론적으로 검토, 직시 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맑스주의·사회주의 활동가를 짓누르고 압박하는 이른바 보편적 ‘혁명 모델’로서 러시아혁명 상황의 일반화는 분명히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천과 사상이론에 대한 논쟁을 시도하고 모색해야 한다.

 

셋째, 현재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위기 정세와 점증하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투쟁, 국제주의에 입각한 세계혁명을 향한 혁명적 실천과 이론적 과제를 한국 사회에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운동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노동자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맑스주의 정치 실천과 이론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첫째,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국면(대공황)은, 68혁명 이후 부활하기 시작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파고를 2008년 이후 혁명의 현실성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전쟁과 야만이냐, 혁명과 코뮤니즘이냐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한국에서의 1950년~1990년대의 반혁명, 반공 이데올로기의 길이와 깊이는 냉전체제 해체와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얕아지고 있다. 대신 민족주의, 애국주의 등 파시즘의 요소는 언제든 창궐할 수 있다. 이렇듯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극단적 스탈린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세대들과 프롤레타리아트 내의 젊은 저항 세력과 코뮤니스트의 소생은 혁명운동의 새로운 조건이다.

 

한편, 1987년 이후 성장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과 1990년 후반 등장한 사민주의(진보정당)운동은 퇴보의 길을 걷다가, 현재는 총체적 파산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양 운동의 흐름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전반적 불신 현상, 새로운 운동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기성 운동에서 소외된 비정규노동자, 실업자, 빈민, 장애인, 소수자들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 출현의 기반이다.

 

셋째, 자본주의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증대와 한국에서의 1998년 이후 노동자운동 패배의 연속은, 노동자 조직화의 기나긴 정체현상과 계급운동의 자신감 결여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투쟁의 퇴조 현상이 아니라, 낡은 운동의 자연스러운 몰락과정이자 새로운 계급투쟁의 부활이 예열되는 과정이다. 또한,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오랜 기간 계급 안에서 튼튼히 뿌리내린 혁명적 정치운동과 아래로부터의 투쟁 의지가 직접 관철되는 평의회적 계급조직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위의 모든 상황은 민족주의, 조합주의, 의회주의 등 제도권 운동과 지역/국내 운동에 갇혀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에 새로운 조건의 창출과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이 쇠락하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운동을 촉진하고 국제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며, 혁명의 현실성과 실현가능한 코뮤니스트의 정치적 목표를 분명히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세는 이러한 코뮤니스트 노동자 정치조직의 출현과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을 공세적으로 펼쳐나갈 것을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

 

 

3. 한국 사회주의 정치 운동 평가와 전망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 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힘」과 「사회당」은 선거 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따라 비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 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 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 코뮤니스트 운동사에서 획기적이었다. 물론 국가보안법상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재판 투쟁을 통한 사상 투쟁과 줄기찬 혁명주의 선전·선동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서클 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인자들이 다시 한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공동실천위원회」 결성 제안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공동실천위원회」와 분화된 세력이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과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잔존그룹은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 전술 문제로,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에서 코뮤니스트좌파 흐름이 분화한 것은, ‘종파적 철수’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 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코뮤니스트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가 로두스다.

 

 

4.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의 역할에 대해

 

첫째, 여전히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분열적이고 반혁명적 경향의 민족주의와 개량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 운동이 근본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반드시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단련되며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모든 과정에 혁명조직이 필요하며, 그 조직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의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현실의 계급투쟁에 구체적이면서도 전략적으로 함께하는 정치조직이어야 한다. 여기서 현실의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정치를 직접 만나게 하는 활동이 코뮤니스트 조직의 기본적 역할이다.

 

둘째, 정세 측면에서 현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물결에 세계 혁명운동의 일부로써 조응하고, 와일드 캣(비공인파업) 투쟁과 점령 운동으로 표현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코뮤니스트 조직은 ‘노동계급 자신의 과업과 자기해방’이라는 명확한 전망으로 개입해야 한다.

 

셋째, 과거 당 건설 운동 과정을 철저히 평가하고, 그간의 성과이자 한계였던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코뮤니스트/사회주의자 세력의 재구성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당 건설 운동의 오래되고 치명적인 오류인 당면주의와 노동자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혁명조직이 당면한 계급투쟁에 개입하면서 ‘강령적 실천’이라는 기본 역할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조직화라는 전략적 원칙을 조급한 정세 전술 대응으로 놓쳐버리는 당면주의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거나, 당면의 경제투쟁에만 몰입하는 노동자주의와 조합주의를 극복하고,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가장 올바르다’라거나 ‘세계에서 유일하다’라는 종파주의는 자기 입장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코뮤니스트는 결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토론과 사상투쟁에 있어 모든 것을 열어놓아야 한다. 이것은 조직 안과 밖으로부터 모든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공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노동계급의 집단적이고 집합적인 정치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면서

 

첫째, 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와 진보좌파(정당) 운동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전제로 한다.

 

둘째, 현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쇠퇴기, 자본주의 공황의 시기임을 인식하고, 계급투쟁의 부활, 낡은 운동(의회주의, 조합주의, 민족주의)의 쇠퇴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와일드 캣, 점령 운동)이 소생하는 시기임에 주목한다.

 

셋째, 현 정세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가 직접 만나야 하는 시기다. 모든 문제가 ‘당 지도력 위기’로 환원되는, 따라서 절대적인 ‘당 지도력’을 우선시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노동계급의 조직과 계급의식 형성,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조직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다가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정치를 역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넷째, 위와 같은 정세 인식과 국제주의적인 ‘세계혁명’ 관점에서, ‘혁명은 지속된다’는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에 복무하기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한다.

 

1.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의 위상에 대해

 

하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향한 운동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국제적인 혁명조직 건설을 목표로 한다.

 

하나, 인터내셔널 건설을 향한 혁명 세력의 조직화를 위해 혁명 강령 건설과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과의 국제적 연대를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모든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방어하고 세계혁명의 전망을 제시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하나, 자본주의 사회 관계 폐지(임금노동, 상품생산, 화폐)를 위해, 현실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계급투쟁의 확산과 계급의식의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촉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자기조직화를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하나, 여성, 장애인, 빈민, 소수자, 생태 문제 등에 대하여 철저하게 코뮤니스트 관점에 따라 인간해방을 향하는 정치운동 조직이어야 한다.

 

하나.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본의 좌파에 위치하는 정치적 반정립 운동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이들의 조력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투쟁을 통해 노동자 운동이 부르주아 영향으로부터의 독립, 자기조직화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위하여

 

지난 수십 년간 사민주의(의회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 등 노동계급 내부의 걸림돌은 노동계급 고유의 무기인 단결과 투쟁력, 그리고 계급투쟁에서의 창발성을 무기력화시켰다. 자본의 공격은 강화되는 반면 노동계급의 저항과 투쟁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가, 그리고 계급 내부의 적들에 의해 여전히 여러 장벽에 막혀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여 혁명적으로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모범이 없이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최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대를 투쟁의 장으로 끌어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낡은 조합주의, 의회주의 세력 운동의 쇠락 속에서도 새롭게 소생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전망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분출을 촉진하는 아래로부터 실천을 전망한다.

 

하나, 제도권 노조 운동을 넘어서는 독립적 노동자 운동이 현실화하여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노조/현장 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일 수밖에 없다. 자본이 만들어내고 관료화된 노조운동을 넘어서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구분하지 않고 투쟁하는 노동자 다수를 포괄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인 '파업/투쟁위원회', '대중총회' 등을 건설해야 한다.

 

하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직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통일되는 노동자민주주의와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것은 투쟁하는 주체들이 직접 선출/소환 가능한  평의회의 형식과 같아야 하며, 노동자민주주의의 실현과 지역/업종/국경을 넘는 국제주의에 기반을 둔 계급단결만이 계급투쟁의 확산과 자기조직화를 보장해줄 수 있다.

 

하나, 현재의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은 운동의 주체와 최종목표가 불분명한 반(反)자본주의 운동이 아니라,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목표인 자본주의 전복과 코뮤니스트혁명의 길을 분명히 밝혀주는 운동이어야 한다.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단련되며 이 과정은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사민주의, 조합주의, 중도주의 정치 세력이 아닌,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전망하는 코뮤니스트 정치와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이 만나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계급의식의 발전과 노동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혁명적으로 무장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코뮤니스트 정치와 계급투쟁이 직접 만나는 일이다.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의 분출과 국제주의를 방어하는 노동자들의 집합적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촉진하고 실천 속에서 준비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 새로운 주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노동계급 스스로 통제하는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과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가  결합하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실천하자!

 

 

 

▉ 우리의 활동

 

우리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해방을 위해 활동하며, 인터내셔널 건설과 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 수립을 목적으로 다음과 같이 활동할 것이다.

 

- 코뮤니스트의 정치역량 강화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면화를 통해 인터내셔널 건설의 기본토대를 마련한다.

 

-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계급투쟁의 확산과 계급의식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세계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과 실질적으로 교류 연대하며, 인터내셔널 건설과 세계혁명을 위한 공동의 행동을 직접 조직한다.

 

▉ 우리의 근원

 

맑스와 엥겔스의 코뮤니스트연맹(1847-52), 3개의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연합 1864-7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889-1914,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1919-1928), 1920년대에 타락해가는 제3 인터내셔널로부터 분리해 나왔던 코뮤니스트좌파 분파들의 공헌과 1928년 이후 스탈린주의 반혁명 세력에 맞서 투쟁해 온 코뮤니스트들의 공헌. 그리고 오늘날의 혁명적 맑스주의의 살아있는 연속성이자, 미래의 세계혁명당 건설에 이바지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운동에 기반을 둔다.

 

2012년 10월 13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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