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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Ⅱ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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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 계급과 노동력 착취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계급으로 나뉜다. 소수인 부르주아는 모든 생산수단을 통제함으로써 모든 권력(경제, 정치, 군사)을 효과적으로 유지한다. 다수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살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조건에서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생산, 사무, 서비스, 운송 등)는 현대의 노예, 즉 임금 노예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 즉 재생산에 필요한 금액을 노동자에게 지불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임금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하는데, 그 차이를 잉여가치라고 한다. 우리는 자본가의 이윤에 기초한 이러한 메커니즘을 착취로 정의한다.

 

생산의 특정 조건에 따라 착취는 매우 낮은 임금과 매우 열악한 노동 조건, 또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더 나은 조건과 관련될 수 있다. 그러나 착취는 무시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남아 있으며,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 생산물을 빼앗기는 사회 계급의 분할에 기초한 이전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착취가 견딜 수 없고 힘들어질수록, 자본주의 체제는 과잉 축적의 주기적인 위기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6. 계급투쟁과 계급의식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경제위기가 잇달아 발생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은 착취당하는 전 세계 노동계급이 이루어내야만 한다.

 

자본주의 쇠퇴기, 위기가 지속하면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을 더욱 가혹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실업은 만연해진다. 점점 더 적어진 일자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 노동계급은 처음에는 이러한 자본가 공격에 후퇴할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생산의 특징은 결국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착취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제 투쟁은 노동계급이 자본가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단결하고 연대하면 승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계급으로서 집단적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동이익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승리는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제 투쟁 승리의 의미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여서도 안 된다. 경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쟁취한 모든 승리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일정 기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이익에 대한 진정한 방어는 그들이 착취 체제 전체에 맞서 계속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즉 피착취계급이 유일한 잠재적 혁명 주체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수단 소유에서 배제되고, 자신의 노동 생산물에서 소외된 채 자본 이익에 반대하는 역사적이자 즉각적인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드시 계급 통일과 자본에 대한 깊은 적대 의식을 가져야만 혁명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는 생산 관계 역학을 분석하고, 계급투쟁 경험에서 교훈을 끌어내고,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강령을 정교화하고 발전시키며, 이 과정에서 계급을 정치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조직 전위가 있어야 한다.

 

사실 “계급 본능”과 “계급의식”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계급 본능은 노동자 자신의 유산으로서 노동자 투쟁 속에서 싹트고 발전한다. 그것은 물질적 이해관계의 적대감에 의해 존재하게 되고, 이와 같은 적대감에서 비롯된 경제적, 정치적 모순을 양식으로 하여 살아간다.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가 사이 관계가 노동자 투쟁의 특정 일반화와 대립의 단단함을 함축할 만큼 충분히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계급의식은 계급 모순에 대한 과학적 관찰에서 생겨나며, 그러한 모순과 함께 성장한다. 그것은 계급의 역사적 경험이 양산한 자료에 대한 검토와 정교화를 양식으로 살아간다.

 

혁명과 함께 권력은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것의 유기적 집합체(노동자평의회와 당)에 달려있다. 여기서 당은 일반적인 선동과 선전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은 평의회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지지·방어하고, 당의 투사들은 평의회가 당 구호를 승인할 때마다 매 순간 책임을 맡고,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 성공에 필수적인 당의 “정치적 방향”인 코뮤니스트 강령의 타당성은 평의회에 강요할 수 없지만, 정치적 투쟁을 통해 획득하고 방어해야 한다.

 

7. 파시즘과 반(反)파시즘 인민전선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 운동 강화에 대한 부르주아지 반응의 하나였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급진화된 소부르주아 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위기로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 파시즘은 전투적인 행동과 공격적인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 사회적 선동이 혼합된 기괴한 선전을 통해 이러한 범위 밖에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 일부를 움직여 파시스트 운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한 것은 반동적 절충주의 강령이라기보다는 노동자운동 조직에 대한 테러였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에서 파시즘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체제 토대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제의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주의나 중앙집권적인 조직에 맞는 권위적 통치 형태였다. 파시즘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뿌리째 뽑고, 모든 반대 시도를 분쇄하고, 사회 모든 영역을 국가 통제에 종속시킴으로써, 특히 자본 독재의 권위적인 형태임을 입증했다.

 

파시즘의 야만적 범죄 행위는 위기와 전쟁의 제국주의 순환에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잔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이런 이유로, 부르주아지의 일부 유급 도덕주의자가 파시즘을 반(反)부르주아 반란 또는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기꺼이 표현하려고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 공포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파시즘과 민주주의 사이 공생 관계를 숨길 신비화는 남아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파시스트는 인종주의를 심화하고 확대했다. 그러나 인종주의도, 반유대주의도, 민족주의도 파시스트만의 발명품은 아니며,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파시스트는 자본주의 밖에 서 있지 않으며 지배적 자본주의 관계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지배자들이 일상적으로 퍼뜨리는 원망과 이데올로기를 손에 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강화한다. 이러한 이유로 코뮤니스트는 다른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와 마찬가지로 파시즘과 싸운다.

 

노동계급에는 파시스트의 출현과 그들의 공격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투쟁은 명확한 계급 기반에서 시작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를 파괴하기 위한 포괄적인 반(反)자본주의 투쟁의 일부이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캠페인과 다양한 반(反)파시스트 동맹에 대한 모든 참여를 거부한다. 이들은 노동계급을 “민주적”이지만 여전히 부르주아 국가 굴레에 묶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동적인 막다른 골목을 나타낸다. 반(反)파시즘 전체 논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덜 나쁜 것으로 방어함으로써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개념은 계급 중립적 실체로서 국가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결국 굴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국가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에 복종하며 자기 활동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국가에 속박하고 억압에 무방비 상태로 넘겨주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반파시즘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항상 실패한다. 국가가 최고의 반파시스트라고 자처하는 환상 속에서 또는 “반파시스트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포기한다면, 국가를 혁명적으로 전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재앙으로 빠지게 된다. 반파시즘은 국가를 미화하는 이념이자, 혁명을 포기하는 실용적인 경로로서,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겨냥하고 있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파시즘과 거리낌 없이 싸우며, 동시에 어떤 형태의 부르주아 권력과도 싸운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운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것의 뿌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부르주아 권력 내부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그들은 필요하거나 기회가 있을 때, 진정한 반동적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민주주의 가면을 벗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反)파시즘적 기능 내에서 부르주아 권력과의 동맹이 잘못된 것이며, 심각한 패배로 이어진다고 믿는 이유이다. 사실, 모든 파시스트 정권의 지지 기반을 구성하는 것은 부르주아지 자체이다. 대신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계급 단결”, 즉 모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방어하고 부르주아 권력에 대적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연합을 지지해왔다.

 

파괴적 발전을 위한 자본주의의 힘에 비추어 인류 앞에 서 있는 대안은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이다.

 

8.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을 넘어선 투쟁

 

노동조합에 관한 우리 입장은 노동조합이 결코 혁명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본질에서 노동력 판매 조건을 계약하는 중재 기관이다.  20세기에 이르자 노동조합은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와 운명을 같이했는데, 점점 더 독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고 생산을 계획할 필요성을 유지했다. 조합주의에 대한 우리의 반대는 단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던 실제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수 활동가를 만났지만(물론 우리는 노동조합을 회피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실제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평조합원으로 활동한다), 결국 그 동지들이 실제로 보여준 경험(한국은 민주노조 운동의 쇠퇴)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노동 현장에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노동자 핵심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노동조합 모임과 노동조합이 소집한 행동에 개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주의자로서 우리는 노동자 투쟁에 개입할 때, 투쟁하는 노동자로 호명되는 평조합원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있는 곳에 개입(노동조합이 소집한 모임과 행동에도 개입)하여 노동조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투쟁을 조직하고, 자본주의를 넘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구체적으로 방어하도록 촉구한다.

 

노동조합의 반(反)노동자적 기능을 인정한다고 해서 “경제 투쟁”을 무시한다거나 충분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당면한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할 수 없는 계급은 혁명을 위해 싸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노동조합 형태는 더는 유용하지 않으며, 그것은 부분적인 “작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진정한 투쟁에도 유용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노동조합 밖에서 일어나는 투쟁위원회,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등과 같은 다른 형태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노동조합의 관료적/조합주의적 실천에 과감히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유기적 조직에서 혁명조직(당)은 노동자들을 혁명 강령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정치적 투쟁을 계속한다.

 

혁명조직은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개입하기 위해 현장 및 지역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 노동자그룹”의 조직을 촉진한다. 이러한 국제주의 그룹은 노동자 투사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확고한 투쟁으로 이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투쟁 과정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의식적인 요소를 자기 조직화하기 위해 투쟁의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코뮤니스트 강령과 조직, 계급투쟁의 생생한 사건에서 경험으로 노동자 투사들의 의식을 풍부하게 한다. 이 그룹에서 활동하는 모든 노동자가 반드시 혁명조직의 구성원은 아니며, 그들은 반(反)자본주의와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활동을 포함한 근본적 지침을 공유한다.

 

9. 종교(신), 국가, 가족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신, 국가, 가족”은 노동자 운동이 시작된 이래 반(反)코뮤니스트 행동의 강령이지만, 오늘날에는 차고 넘치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과학적 발견에도 사회에 대한 종교적 통제는 여전히 매우 강력하며, 통합주의 국가나 성직자에게 증오의 씨앗을 뿌리기 쉬운 특히, 극빈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신을 믿는다는 것은 대부분 자신을 신의 정당한 대표자로 제시하는 사람들, 즉 지배계급 일부이며 그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며 그들을 먹여 살리는 부르주아 사회를 옹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 다양한 종교 기관의 위계질서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것은 자연히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용적인 실천, 즉 실천적인 유물론적 행동을 비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국가에 관련하여 우리가 자란 곳과 사는 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유대감과 사랑, 그리고 같은 문화적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본능적 친밀감을 "애국심"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애국심은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의미 모두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입장이다. 애국심은 유럽의 젊은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국가를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 낡은 봉건 권력을 쓸어버려야 했던 18세기에 퍼졌다. 어느 나라가 하나의 국가이거나 치아파스나 팔레스타인과 같은 준(準)국가적 실체이거나, 유럽이나 아랍 세계와 같은 거시적 지역적 실체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애국심은 자본주의 국가를 뒤흔드는 계급투쟁을 제쳐두고, 국익 또는 투자 이익을 위해 노동자가 자본가와 팔짱 끼게 하고, 국외(다른 체제, 민족)에 존재하는 공공의 적에 맞서기 위해 가난한 자가 부자들과 연대하게 만든다.

 

 

가족에 관해서도 역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저분하게 작용했다. 사실 가족애(愛)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예측할 수 있는 무게가 있으며, 부부/동거애(愛)와 자식/부모애(愛)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가족 밖 집단의 대안이 될 때, 그것은 편협한 기준, 즉 다소 편하고 안심되는 함정 형태를 취한다. 이 함정에서 각각의 프롤레타리아트 커플은 원자화되어 각자의 거실로 고립되고, 개인주의로 밀려나 정치적, 사회적인 관점에서 더욱 무력하고 활력을 잃은 상태가 된다.

 

10. 자본주의 가족제도와 여성해방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여성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지만, 사회 노동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착취, 가사, 차별, 성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날 재생산 노동(양육, 가사)이라는 역할은 주로 여성이 수행한다. 여성의 노동이 유급일 때조차 평균임금은 남성보다 매우 낮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항상 전쟁, 기아, 정리해고라는 가혹한 공격의 우선 대상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평등한 법과 성해방에 대해 수없이 떠들어대지만, 오늘날 여성은 사실상 여느 때 못지않게 기본권을 박탈당한다. 수많은 여성은 임신 중지권에 대한 법적 결정권을 박탈당하며, 심지어 자기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조차 거부당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은 광범위한 개선을 경험하지만, 이러한 개선은 주로 경제 호황과 자본주의 필요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승리였다. 자본주의가 노동시장과 사회생활에 여성을 참여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위한 기반을 닦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관계 안에서 극복할 수 없다. 오늘날 여성 억압의 근원은 여전히 부르주아 소유 관계의 최후 보루인 가족에 있다. 자본주의 발전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확실히 약화한다. 게다가 최소한 주도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부장적인 억압의 가장 노골적인 월권행위는 결혼 생활에서 이혼 권리와 폭력, 강간의 불법화와 같은 법적 규제로 제한된다. 그런데도 자본주의는 사회화의 기본단위로서 가족을 넘어설 수 없다. 여성해방은 자녀 양육, 가사, 환자와 고령자에 대한 돌봄이라는 과제가 사회화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해방은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과 전체로서 노동계급 해방과 직접 연결된다. 그런데도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하는 투쟁은 혁명 이후로 미룰 수 없다. 여성에 대한 반동적인 개념에 반대하여 단호하게 투쟁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기본 과업이다. 코뮤니스트는 지배적인 부르주아 성도덕에 순응하지 않는 성적 지향을 기반으로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가부장적 억압과 차별의 핵심인 부르주아적 결혼과 가족에 대한 미화를 반대한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사회의 계급 분할을 무시함으로써 부르주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여성 사이의 이해관계 모순을 위장하지만, 코뮤니스트에 여성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은 ‘전적으로 여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계급 단결과 연대를 위한 수단과 전제조건이다. 코뮤니스트 조직은 코뮤니스트 운동에 여성과 성소수자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 여성해방 없이 코뮤니즘은 없으며, 코뮤니즘 없이 여성해방도 없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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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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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파와 치사율 감소를 위한 인명구조 안전조치가 이윤 창출 면에서 볼 때 수용력을 넘어 지나치게 지속되었다고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결론지은 한편, 정치인들은 값비싼 개혁방안을 담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들 안전조치가 하나씩 폐지되는 와중에도, 다수의 노동계급은 대유행의 굵직한 파장을 겪으며 끊임없이 노동한다. 상공회의소가 지휘하는 뻔뻔한 자본가계급은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더뎌지자, 노동계급의 혜택 제공에 대비를 위한 사회적 지출을 증대시키는 대신 임대료와 실업급여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했다. 노동조합 역시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매각 혹은 노동자 측과 협상하는 역할을 지속해왔으며, 조합원들에게 원치 않는 양보를 강요함으로써 노동계급 투쟁의 상승기류를 조정해왔다. 노동계급 투쟁에 활력소가 되는 주된 요구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인상과 주당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계층형 임금체계(tiered wage system)의 폐지를 포함한다. 노동조합은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들에게 계층형 임금체계를 강요했으며, 또한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의 소비력을 감소시킨 것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또한 인력 부족으로 끊임없이 야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요구는 노동조합이 지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신 그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인상률에서 임금인상 및 초과근무, 아니면 주당 7일 노동이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이는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켈로그 노동자들의 파업 일화이지만, 이미 오래전 일이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국가의 오랜 수레바퀴이며, 심지어 그들은 노동자들이 투표소로 오게끔 하는 데 “능력 감소” 속에서조차 지속될 것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수십여 년간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서민들의 골칫거리를 관리하는데 무능해지고, 가치 있는 개혁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자기 계급의 타협적 가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인, 더욱 엄격한 계급지배를 옹호하는 자들과는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열망에도 그러하다. 그들은 현실이 안정되면서 자유주의의 미덕과 강점을 강조하는 한편, 개혁이라는 달콤하고 값싼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문화전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의 막대한 군(軍) 예산을 증거로 이용하는데, 가치 있는 개혁을 이끄는데 올바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폐기물 생산과 군대는 자본가계급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즉, a) 그것은 국가 자본의 국외 이윤을 증대시킨다는 것, b) 국가적 폐기물 양산은 생산의 합리화를 돕는다는 것, 그리고 c) 국가는 수요를 창출하며 다른 자본주의 형태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부르주아계급이 역사적으로 강했던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노동자들은 체불 임금을 되찾을 수 없지만, 자본가들의 이윤 손실에 있어서는 가능하다. 죽을 각오로 임하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위기에 대한 비용을 내게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들로부터 악랄한 공격을 받아 왔다. 물가 상승에도 임금은 그대로인데 노동시간은 늘어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의 적자에 대해 국가지출을 1조 달러까지 줄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자본주의는 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 체제이다.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의 반(反)체제적 투쟁을 없애고자 나설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계급을 억압하는데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장할 것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국가, 인종, 성적 억압과 같은 부분적 억압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의 지속에 부차적이다. 그들은 전(全) 자본주의 체제가 의존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억압은 임금과 노동, 잉여가치의 생산에 근거한다. 이들 민주적인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자유, 혹은 인권을 위한 싸움에 관해 횡설수설할 테지만, 노동계급이 정치권력 행사로부터 소외되어있다는 점은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이다. 머지않아 이들 잠재적인 민주적 대표자들은 민주주의의 덕목을 거창한 말들로 그럴싸하게 포장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 억압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개혁에 어떠한 비용도 들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더욱 지배적인 자본가계급은 이 개혁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상류층 부르주아들은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인종 정책을 시행한다거나 또는 계급 활동을 막기 위해 노동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다. 노동조합에 의한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특정 경제적 요구는 이 자본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반(反)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혹은 외국인혐오증 법률 제정에 더 개방적일지 모른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노골적인 견제와 공개적 억압이 그 가치보다 더욱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쉽사리 깨닫는다. 이러한 권리는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이며, 노동계급이 끊임없이 개혁을 위한 투쟁에 발을 빼도록 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위해 물을 길어 나르도록 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조직력을 강화하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신장시킬 가능성을 열어주는 그들의 영역에서 투쟁하는 것 대신 말이다.

 

매 선거 주기 동안, 국가의 자본가 관리자들은 의료 개혁에 적용되는 공약을 걸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출을 절대로 삭감하지 않겠다는 공약, 심지어는 주로 보험이 없는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흔하다. 공공의료 지출을 직접적으로 반대한다거나, 국민건강보험의 시행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에 인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급의 평화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 가능성에 대한 환상 역시 여러 좌파와 진보당의 유권자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자본가의 “해악 줄이기” 논리는 좌파 진영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이윤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신념이 그 중심에 있다.

 

노동계급에 이익이 될 만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정치인들이 유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악용되는 것을 상당히 방지할 수 있기는 하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하며, 잠재된 혁명적 파열을 방해한다. 그 대신 자본가계급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제도적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계급 활동의 잠재성이 국가 자본을 안전하고 굳건한 길로 향하도록 한다.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사실상 배제된 노동계급은 선거주의에 휘말린다. 각 당의 권력은 국가관리를 위해 경쟁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축적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을 공고히 한다. 이들 정당은 노동자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개혁을 위한 양보를 제안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들이 ‘여러분의’ 표를 얻고 나면, ‘여러분의’ 대표자가 된 후의 정치적 협의에서 노동계급의 역할은 즉시 폐기되어 버린다.

 

다음으로는 ‘뉴딜’의 일부로서 합법화된, 국가보안기구 일부로 국가에 통합된 노동조합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의 불법화를 대가로 실업보험과 쥐꼬리만큼의 임금인상을 받았는데, 그나마 임금인상은 임금 정체 및 (임금) 삭감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한편 노동조합의 관료들은 국가 직책을 받으면서도, 회비를 걷어 들임으로써 봉급을 두둑하게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조합주의 조직의 일부로서 국가에 통합되기 이전에도 그들은 결코 혁명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입에 정치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영원한 대중조직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들의 기능은 언제나 노동력의 판매를 협상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적인 안녕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계급투쟁을 진일보하도록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자본 영역은 이윤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노동조합을 배척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노동조합에 있어서 노동자의 활동은 비밀투표에 참석하는 것, ‘민주당’에서의 선거 활동, 납세의무에 제한된다. 결국, 그들은 노동력 판매 협상을 누가 관리하도록 할지 결정하는 것에 관계될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므로, [노동조합]은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죽어가는 자본주의의 사회‧정치적 고통이 끝날 때까지 존속해야 할 운명이다. 그들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격이 제국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때야 비로소 패배할 것이다.1)”

(오노라토 데이먼)

 

심지어 자신을 “혁명적”, “평조합원” 혹은 “풀뿌리”라고 일컫는 노동조합조차 자본주의 내에서는 노동력 판매와 협상이라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 일종의 노동조합을 주장하는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혁주의적 목표를 품은 거대조직이 되느냐, 정치조직이 되느냐. 생디칼리스트 조직은 자본의 좌파 진영에 있는 또 다른 개혁주의의 수레바퀴이다. 생디칼리스트 조직의 명목은 기껏해야 계급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조합으로 엮는 것이다. 그들 역시 다른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동일한 구조적 강박의 압력에 굴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회원 이탈에 직면해야만 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관료적 구조를 채택해야 한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인정해야 할 때, 혹은 자본가가 상점의 처분 혹은 배송에 직면해야 할 때 말이다. 노동자 분열을 자본가의 노동 분업이 낳은 범주에서 극복하려는 그들의 철저히 양심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정치적 조직과 함께하는 정치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매우 본능적으로 그러한 분열을 드러내며, 그들의 협상 상대는 자본가와 연결되어 있다.

 

“결국, 기타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노동조합의 조합원 상당수조차 코뮤니스트 당이 개혁보다 혁명을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코뮤니스트 당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

(헤르만 호르터)

 

자본가계급이 노동자 해방을 시작하기에 유리한 이유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노동계급 대부분이 혁명적 상황 이외의 곳에서는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과 자본 없이 생산을 조직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에서는 임금노동 없이 자신들의 욕구를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생활 기준을 향상해 줄 가치 있는 개혁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노동계급의 잠재적인 에너지 대부분이 선거에 이용되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그의 사이비 혁명적-개혁 플랫폼(임금체계 폐지의 대안인 아메리칸 잡스, ‘모두를 위한 의료서비스’ 전망이 포함된다)에 2019년 중반까지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캠페인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또한, 이들 봉사자 덕택으로 수천 가지의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그의 행사에 모금된 액수는 2020년 2월에만 4천 600만 달러였다.3)

 

노동자의 참여는 민주주의 체제의 투표제도 속에서 시작하고 끝나 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언, 집회 및 결사, 언론의 자유 등과 같은 권리에 대해 고려한다면, 만약 이러한 권리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반(反)하지 않고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국가에 의한 간섭은 없을 것이다. 어떠한 반대더라도 즉시, 개혁주의로서 자본주의의 토양에 양분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다. 이것을 요구하는 계급, 혹은 그 외의 계급은 민주주의 체제에 가장 깊이 개입되어있는 이들이다. 명목상 이른바 중산층 또는 중산계급으로 불리며, 주로 소부르주아 및 부르주아계급을 구성하는 이들이다. 이들 계급 일부는 경영이나 학계에 연루되어 있다. 그들은 신분 상승하지 못해 낙담한 이들이기 때문에, 더 잘 작동하는 체제를 원한다. 아니면 어떤 일부의 계급에서는 계급 및 구조적 모순이 극복될 수 있으며, 계급사회에서 대중을 위해 향상된 생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과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노동운동 속에서 노동자조직의 계급적 성격을 변화시켰던 바로 그 기회주의적 개혁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자본의 좌파와 자본가계급의 여타 진보적 기능으로 구성된 이러한 약속과 포부들은 이윤율이 감소하는 현실에 맞추어 상실되고, 자본은 노동계급에 더욱 공격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모순의 결과이다. 사회 체제가 지속해서 존속하려면 "시민사회 안에 있지만, 시민사회는 아닌" 어떤 계급인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율을 높여야 한다.

 

“자본은 흡혈귀와 같은 죽은 노동이며, 살아 움직이는 노동을 흡혈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 살면 살수록 자본은 그것을 빨아먹는다.”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전후 축적 사이클 종식의 결과로, 이윤의 부족을 가져온 조건에 해당하는 사적 소유를 위한 일련의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다. 노동계급 중 가장 취약한 계급을 보조해 줄 사회적 비용을 위해 국가는 세율을 삭감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결국, 국가는 증가한 지출분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채에 더욱더 심각하게 의존하게 되는 한편, 이 모든 것은 잉여가치에 대한 상향 재분배 및 빈약한 수익률 강화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또한, 수익성 위기는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고, 대도시에는 더욱 이윤이 높은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기 위해 국가가 이전의 신성한 소를 거스르고, 경제의 최고점을 포기하도록 했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저렴한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도 이용했다. 값싼 상품을 수입하고, 착취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비율 증가는 대도시의 정체된 임금을 상쇄하는 것에 이용되었다. 정부는 이미 급상승 중인 지출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자본가의 이윤 감소를 낮추지도 않을 것인데, 이는 국가 자체의 소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적자지출에 더욱 의존하곤 했으며, 급상승하는 지출 비용에 자금을 대기 위해 조세를 미루곤 했다. 적자지출에 대한 국가 의존의 주요 영향은, 국가지출 비용이 막대한 비율로 증가하여 부채 상환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착취율을 증가시키지 않고 더욱더 많은 화폐를 유통함으로써 동시에 인플레이션 증가를 초래했다. 이 모든 것은 2021년 5월 당시의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회계연도 2022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년도 대비 100억 달러 증가했다.5) 대중 소비를 위한 모든 생산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무기 생산을 선호하는데, 무기는 생산도 소비의 수단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폐기물 생산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쇠퇴기가 시작된 이래, 국가가 초래한 폐기물 생산의 지출 비용이 계속 증가해왔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을 합리화하는 것이며, 국가 자본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무기 생산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생산물에 대한 비생산적 지출 비율 및 이윤 창출을 위한 지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확대되었던 전쟁 시기에도, 국가는 활성화된 국가 자본 대부분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를 고용상태로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에는 미국 국가 자본의 약 80%가 활용되었고, 600만의 실업자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자본의 구조조정에도 기타 모든 비생산적 지출 비용과 마찬가지로 특히 무기 생산의 경우 고용안정 및 안정적 사회 유지를 위해 이용된 사례로 남았다.6)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예산은 공공사업 혹은 사회적 행동을 위한 매우 조잡한 대체물이 되었다. 또한, 스스로 정부 적자를 양산하여 경제 전체를 지탱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군국주의에 경제적 정치적 투자를 한다.7)

 

순전히 경제적 경쟁력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경제의 최고점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생산의 합리화에 있어서 무기를 선호한다. 국가는 제국주의적 목적을 관철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안전성에 위협이 되는 자본가와 노동계급을 억압해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제국주의의 목표는 국가협정, 외교적 협력, 또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위기에 대한 극대화된 표현을 선호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경쟁국으로서 경쟁국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기 생산은 시장성 상품 생산에 개입된 사적 자본형성에 반하여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유도한 무기 생산은 이들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감소시키지 않는다. 자본가계급은 특히 폐기물 생산의 한 형태로서 무기 생산을 지원하는데, 이는 생산능력 활용에 대한 유지 및 고용 수치 증가 모두를 위해 국가개입이 확대될 때 강화된다. 이때, 자본 축적을 급격히 감소시키지 않고, 국가의 소비력을 신장시키는 지속적인 자본형성이 있게 된다. 전자의 조건 아래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강제적으로 완화 시킬 필요가 있는데, 제국주의적 목표를 실행함으로써 결국 주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및 다양한 강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후자의 경우는 자본가들이 군비 지출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할은 국제적 시장과 국가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는 능력에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국가는 버터가 아닌 무기를 선호한다. 다른 지출 비용보다 무기 생산비용을.

 

“무기 생산(및 그에 수반하는 모든 것)은 시장에서 ‘궁극적’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정부는 민간자원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그것을 차입하고, 민간기업의 무기 생산을 유도한다. 비록 정부가 지불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생산비용 및 이윤은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기부―세금이나 대출 방식, 후자는 납세 지연을 함축할 뿐이다.―로 지불하는 것이다. 무기 생산자의 관점이 아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무기 경제는 성장을 통해 ‘궁극적’ 상품의 증가 부분을 시장에서 제거하여 결과적으로 (이윤) 생산투자를 감소시킨다. 자본의 축적 대신에 국가부채의 축적이 발생한다.”8)

(폴 매틱)

 

폐기물 생산은 이윤율에 상응하여 자본형성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한계를 드러낸다. 그것들은 국민소득을 공제한다. 폐기물 생산은 자본화된다거나 자본의 확충 혹은 소비에 사용될 수 없다. 무기 비용 지출 증가는 자본 축적의 비용이기에 또한 생활 수준을 저해한다. 개혁에 더욱 개방적인 미국의 정치인 일부에서는 아직도 “뉴딜” 정책을 민주주의 체제 역사상 최고의 승리로 여긴다. 1933년 ‘뉴딜’의 조건은 산업 활동 증대였다. 정부는 또한 주로 금융회사에 일련의 신생 지출 비용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했다. 노동계급 다수에게 호소하고, 정부를 강화하는데, 효과적인 자유주의 문구에 매료되었다. 당시 이것은 필수적이었다. ‘뉴딜’에 반대하는 자본가계급, 말하자면 투자은행가들 일부의 반대 때문이다. “잊힌 이들”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지지했던 산업가들로 밝혀졌다. 또한, 더 높은 상품 가격을 원한 농업기업들, 광산회사들, 상당한 양의 수익을 잃고 그들의 자본이 대규모로 평가 절하된 부실 철도회사, 금주령이 종식되기를 바랐던 주류생산업체로 밝혀졌다. 1937년 즈음, 산업 활동의 감소로 인해 반대 경향이 시작되었다. 임금향상과 생활 수준 개선을 요구했던 ‘뉴딜’ 정책은 상대적인 잉여가치율을 높이고, 지배적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시행함으로써, 이제는 착취율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폐기된 구호가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다. 더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닌, 즉 이윤증대를 위한 생산성 향상, 노동 강화, 임금 삭감의 방식으로 물가를 낮추는 정책이었다.”9)

(폴 매틱)

 

일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후 사회적 국가의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은, 제국주의 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결과로 자본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그 수치가 50%까지 하락했으며, 1973년까지 주기적으로 가장 장기간인 호황이 열렸다.

 

자본주의적 의료 개혁은 비용 절감 조치에 불과한 경향이 있다. 즉, 사회화된 의학의 이상향은 자본가계급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의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심지어 “사회주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물론, 이른바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불리면서도 자본 축적의 필요만을 충족시켰을 뿐이다. 이것은 개별적 기업의 노동력 유지비용을 줄였으며, 질병으로 야기된 이윤-재생산 붕괴를 제한했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노동계급의 건강에 관련하여, 모든 자본가계급의 주된 관심 속에 있다는 것이다. 복지개혁이 처음으로 시행된 데에는 항상 그만한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었는데, 계급조정에 대한 그들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자본가계급은 이러한 개혁을 가로막고, 그들의 적용 범위 혹은, 실질 자금을 줄이는 것에 관련된 노동계급에 반대되는 직접적 공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보기로 들면, 영국의 경우 자본가 정치인들의 일부 약속에도, 공공의료 지출은 최근 들어 감소했다. 영국의 공공재정을 구제하기 위한 IMF의 대출 규제와 별개로, 국가는 대(對)의료 지출을 삭감해야 했다. 약 50년간 국가는 NHS(국민보건서비스)의 병원 수용력을 50%가량 축소 시켰다.10) 이른바 사회적 국가의 기원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노동자들의 급진화에 자극받은 부르주아지는 국가 경제의 고점적 지위에 대한 사법적 지위를 변화시켰으며, 자본을 능수능란하게 제공했던 NHS와 같은 포괄적인 의료보험 프로그램의 전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주에서 국립의료보험서비스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적 투표 기계 및 사회주의에 대한 민주적 노동운동의 정의에 부합했다. 이는 노동계급의 관심을 혁명적 정치조직 형성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대신 노동자들은 올바른 정치인에게 투표하도록 설득당하고,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만 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뒷걸음질 치게 하고, 노동계급이 조직력을 키우는 것을 가로막는다.

 

단 하나의 국민건강보험제도도 갖추고 있지 않은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올바른 정치인을 뽑으면 ‘국민건강보험’이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일그러진 환상이 존재한다. 이는 체제를 위한 유권자 기반 유지와 노동자 오남용 제한에 있어서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어떤 국가에서든 정치인들 대부분은 공공보건 지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계급-평화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건, 교육, 사회보험에 대한 공공지출 삭감은 은밀함과 기만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동계급에 유리한 지출 비용을 늘릴 힘은 높은 이윤율에 입각한다. 그래야만 국가는 그러한 전망을 위해 잉여가치를 재분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공공의료보험 개혁이 가장 시급했던 시기―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공격받았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국가는 노동자들이 폐망해가는 위기의 자본주의에 비용을 대기 위해 일터로 내몰고, 실업보험을 해지해 간다. 민관협력관계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던 대유행 초기, 국가는 내수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 2020년 2월 말까지, 주 대부분에서 시장 활동이 이미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1) 국가의 역할은 공공 소비를 위해 생산을 늘리는 것(축적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전쟁 당시와 유사했다)이었다. 수십 년간 과거의 연구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뿐만 아니라, 명목상 개인용 보호장비(PPE), 의약품, 수십 년간의 감소를 상쇄하기 위한 병원 수용력 확대가 그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PPE 혹은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사재기했다. 이는 특정한 상품 가격 및 입찰 전쟁을 야기했다.12) 이는 체제에 위협이 있을 때 국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다. 국가는 전 세계에 충분할 만큼 백신을 풍부하게 생산하는 한편, 대부분은 그것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 이는 최소한의 차질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백신 및 다른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함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과학을 따르라!”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은 임대료를 모으고, 그들의 영향력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국민적 챔피언(제약 회사)의 능력을 옹호한다. 부분적 전면적 봉쇄조치, 중소기업으로의 소비 활동 촉진,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외출과 같은 이들 계획 속에서 보이는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건전성에 대한 국가의 우려는 또 다른 모순이다. 일부 자본가가 그러한 것들을 이윤 창출에 있어 과도한 간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현재의 코로나-19 안전조치는 철회되거나 완전히 폐지되었다. 국가는 또한 잉여가치 전체 양의 확대를 증대시키기 위해 특정 산업에서는 최저 연령을 낮추어 노동법 규제를 완화했다. 잉여가치는 노동계급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윤을 촉진하기 위해 상향 분배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여건을 완화하고자 하는 일부 자본가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단지 이윤 창출을 위해 국민적 결속과 안전을 걱정하는 것일 뿐이다. 보험 접근성의 부족, 공공보건에 대한 정부의 지출감소는 빈곤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에게 대유행의 결과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상황 때문에 노동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타락, 실업으로 인한 파멸에 직면한다. 선거 주기마다 어떤 자본가가 그들을 통치할 것인지 만을 그저 투표하도록 노동자들을 끌어들인다. 그 대신, 노동자들은 체제에 이용당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국가의 조치를 단순하게 지지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을 쇠퇴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관 짓는 혁명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직만이 PPE, 더 나은 임금, 위험수당 또는 폐업 후 실업급여 수령과 같은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우리 계급 지형에 가져올 수 있다.

 

- B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옮긴이 ㅣ 지나

 

 

 

<주>

1. 「보르디가: 신화를 넘어」 중 66쪽 “조합의 질문에 대하여”(오노라토 데이먼 & 아마데오 보르디가), 런던 ≪프로메테우스출판≫. leftcom.org

2. 헤르만 호르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조직』 중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베를린 [KAPD]. marxists.org

3. 〔뉴욕타임즈〕 ‘셰인 골드마커’의 기사 〈베르니 샌더스, 2월, 4,600달러 모금으로 2020년의 기록을 세우다.〉 nytimes.com

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노동일” 중 제1편 “노동일의 한계들” marxists.org

5. 국방부 ‘회계연도 2022년 국방예산 발표’ defense.gov

6. 폴 매틱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제3호- 19~26쪽 (1971), ≪뿌리와가지≫ marxists.org & ‘폴 매틱’의 〔맑스 인터넷 아카이브〕 기고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7. G. 콜코 『세기의 전쟁』 중 “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과학”(475쪽), 뉴욕≪뉴프레스≫(1994)

8. ‘폴 매틱’의 기사 회고 〈국제적 사회주의-무기와 자본〉 연재 –제34호- #1. marxists.org (1968, 가을) 

9. ‘폴 매틱’ 『루즈벨트의 새로운 “뉴딜”』 -제5호-, -제5권-, 10쪽 ≪프로레타리아 전망≫. marxists.org (1939, 11월)

10. ‘시바 아난다치바, 레오 유뱅크, 헬렌 맥케나, 제임스 톰신, 데보라 워드’의 논문 “NHS 병원의 병상 수 : 과거, 사전설정, 미래”. kingsfund.org.uk

11.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비상사태 이전인 2월 말, 시장은 이미 10% 하락했다. 미국은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D. J. 트럼프-COVID-19 발생으로 ‘국가비상사태’ 선포, 백악관(2020, 3월 13일). 

 

12. ‘에스테스, C’의 기사 “국가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투를 위한 의료 장비를 얻기 위한 입찰 전쟁을 강요당하고 있다.”(2020, 3월 28일). forbes.com // ICT 북미 지부 저널-1919년, 세 번째 기사. (mcmxix.org)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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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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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평의회는 우리가 선동하는 부분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는 노동자평의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치조직과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날 노동자평의회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들에 대한 우리의 답은, 언제나 그렇듯이, 과거 계급투쟁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부르주아지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의 운동이 19세기 초에 역사적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전 세대의 많은 용어를 이어받았다. 영국, 미국 또는 프랑스혁명과 같은 세계를 구성한 사건의 유산은 특히 무거웠다. 모든 줄무늬의 노동자와 혁명가들은 다양한 "클럽", "사회", "위원회", "협회", "정당", "노동조합", 그리고 실제로 "코뮌"과 "협의회"로 조직하려고 시도했었다. 그 용어는 여전히 상당히 느슨했지만, 이미 어떤 종류의 독립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1848년 혁명의 여파로 맑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노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뮤니스트」 동맹은 비밀과 개방 모두에서 노동자 당의 독립적인 조직의 창설을 위해 일해야 한다. ... 동맹은 모든 코뮌을 부르주아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와 이익이 논의될 수 있는 노동자 연합의 중심이자 핵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 [노동자들은] 지방 집행위원회와 평의회의 형태로, 또는 노동자 클럽이나 위원회를 통해 그들 자신의 혁명적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가 이 노동자의 지지를 즉시 상실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노동자의 전체 대중을 지지하는 권위에 의해 감독 되고 위협받는 것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

(맑스와 엥겔스, 1850년 코뮤니스트 동맹 중앙위원회 연설)

 

여기서 "위원회", "평의회", 그리고 "클럽"은 모두 거의 서로 바꿔서 사용되지만,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불리든,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 운동의 성장과 함께, 이러한 용어 중 일부는 점차 새롭거나 더 특별한 의미를 얻기 시작했다. 1864년 국제노동협회(일명 제1 인터내셔널)가 결성될 무렵, 이미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 사이에 구별: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을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재 기관으로 공식화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조직이 의회 정당으로 변모하는 것- 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그 격차를 없애려 했지만,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으로 촉발되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모순을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계급투쟁에 의해 제기되었다.

 

1871년 3월, 프랑코-프로이센 전쟁의 여파로 파리의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일어섰고, 그 과정에서 단명한 혁명 정부, 즉 파리 코뮌, 또는 더 정확하게는 프랑스로 알려진 공동체 평의회인 콘세일(conseil) 코뮌을 창설했다. 혁명 대대의 대의원들로 구성된 방위군 중앙위원회가 권력을 장악한 후, 공동의회에서 선거를 발표했다. 투표권을 가진 파리의 485,000명의 파리 사람 중 275,000명이 이 선거에 참여했다. 베르사유에 있는 권력자들은 대대적인 기권 운동을 조직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필연적으로 봉기를 지지하는 노동계급 이웃에게서 나왔다. 평의회에 선출된 사람 중 소수만이 노동계급 출신이라 할지라도, 통과된 규약 대부분은 파리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소환 대상의 대리인들로 구성된 파리 코뮌은 집행 권한과 입법 권한을 모두 행사하면서 우리가 태초의 노동자평의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맑스는 당시에 그것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마침내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해결할 정치적 형태: 계급의 존재, 따라서 계급 지배의 존재에 놓여있는 경제적 토대를 뿌리 뽑기 위한 지렛대-를 발견했다.”

(맑스 1871년 「프랑스 내전」)

 

궁극적으로, 노동계급 민주주의에 대한 이 짧은 실험은 몇 주 만에 격렬하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겼다.

 

사전의 러시아혁명 예행연습

 

그들은 러시아에서, 유명한 노동자평의회 또는 소비에트로 알려졌는데, 1905년 혁명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870년대부터 러시아 제국 내에서 노동자 운동이 성장하고 있었다. 법적 권리가 없었고 억압적인 차르 정권을 마주해야 했던, 이 운동은 주로 사회주의 단체들에 의해 장려되고 파업위원회와 서로 부조하는 사회에 의해 유지되는 자발적인 산업 행동의 형태를 취했다. 노동자들은 고용주와의 싸움에서 단합과 연대의 필요성을 재빨리 인식했고, 자신의 요구를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대표를 선출했다. 1904년에 발발한 러일 전쟁은 사회적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고, 정통 사제이자 오크라나 정보원이었던 가퐁(Gapon)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들의 평화적인 행렬에 차르 병사들이 발포했을 때, 제국 전역에서 격렬한 계급투쟁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 대대적 파업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널리 논평하였고,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언급했지만, 당시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노동자평의회의 중요성이었다. 트로츠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대의원으로 직접적인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는 모든 사건의 축이었고, 모든 실타래가 그것을 향해 달렸고, 모든 행동 촉구는 그것으로부터 발산되었다. 노동자 대표의 소비에트는 어떠했는가? 소비에트는 객관적인 필요, 즉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생긴 필요성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났다. 그것은 권위가 있었지만, 전통이 없는 조직이었다. 그것은 사실상 조직적인 기제가 없는 동안 수십만 명의 흩어져있는 대중을 즉시 포함할 수 있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혁명적 흐름을 통합시켰다. 그것은 주도적인 권력을 갖고 자발적인 자기 통제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24시간 이내에 지하에서 꺼낼 수 있었다.”

(1907년, 「우리의 혁명」, 트로츠키)

 

최초의 소비에트는 흔히 1905년 5월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Ivanovo-Voznesensk)의 볼셰비키 거점인 4만 명의 노동자 파업 중에 등장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이 협상을 더 쉽게하기 위해 직장에서 대의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공장 조사관이었다. 다음날 110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 소비에트는 본질적으로 개별 공장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파업위원회였다. 그것은 1905년 7월까지 존재했으며 군사 탄압, 폭동 및 활동이 고갈되었음에도 파업을 계속 유지했다. 이바노보-보즈넨스크 소비에트가 해체된 같은 달에, 이웃 도시 코스트로마(Kostroma)에서 또 다른 소비에트가 형성되었지만 몇 주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파업 운동을 통합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05년 10월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소비에트가 출현한 것이다. 세 번째 회의에서는 96개 사업장에서 온 226명의 대표, 새로 결성된 노동조합의 대표들, 그리고 자문의 역할로 사회주의 정당들(멘셰비키,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논문을 출판하고 러시아 제국의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소비에트를 만들 수 있는 표지가 되었다. 1905년 혁명은 일부 지역에서는 고갈로, 다른 지역에서는 억압에 패배했지만, 노동자들에게 다음의 충돌에 필요한 많은 경험을 제공했다.

 

노동자평의회가 그 혁명에 전력투구한 유일한 단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혁명 정당 당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 노동조합, 문화사회 조직이 설립되었다. 진정한 혁명적 과정은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연합을 통해 일상생활을 재조직하는 실험을 하는 것을 항상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조직이 계급 전체의 권력 행사에 가장 적합한가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처음에는 애국심의 열정에 부딪혔지만, 제국주의 갈등의 가혹한 현실은 곧 각 나라를 강타했다. 러시아 제국에서 노동계급은 마침내 시위, 파업, 봉기로 대응했다. 소비에트를 결성하려는 의지가 다시 한번 생겨났고, 노동자들은 파업위원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처음부터 혁명의 범위를 제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17년 2월, 노동자들의 등 뒤에서 두마의 정치인들은 타우리데(Tauride) 궁전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임시 집행위원회를 결성했다. 차르의 붕괴에 직면하여, 그들은 러시아를 민주적 공화국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1917년 혁명의 이야기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를 그들 자기 대표로 채우고 러시아 제국 전역에 걸쳐 노동자, 병사, 농민들의 더 많은 소비에트를 창조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권력 행사를 위한 조직으로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1905년의 교훈을 배운 것은 부르주아지만이 아니었다. 소비에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레닌과 같은 혁명가들은 이미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성찰했다.

 

“노동자 대표인가? 아니면 당의 소비에트인가? 나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그 결정은 확실히 노동자 대표의 소비에트와 당 둘 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는 소비에트가 어느 한 당을 전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 대표들의 소비에트는 총파업을 통해, 파업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누가 파업을 이끌고 승리를 거두었는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포함한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는 다행히도 소수이다. ...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불완전하고 유일한 "종이" 정보 덕분에) 정치적으로 소비에트는 임시 혁명 정부의 맹아로 여겨져야 한다고 믿는다.”

(레닌, 우리의 임무와 소비에트 동자 대표단, 1905년)

 

나중에, 스위스에 있는 동안 쓰인 「국가와 혁명」에 대한 그의 준비 노트에서, 레닌은 맑스를 되풀이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낡은 ("기성품") 국가 기계와 의회를 노동자 대표와 그들의 수탁자의 소비에트에 의해 대체한다. 거기에 본질이 있다 !!”

(레닌, 국가에 관한 맑스주의, 1917년)

 

레닌은 볼셰비키들 사이에서 이 강령을 위해 싸웠고, 곧이어 볼셰비키들도 소비에트 내에서 이 강령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 조직에 참여했고, 소환권이 도입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거리에서 외쳤다. 1917년 10월까지, 그 강령은 혁명적 노동자 다수파의 승인을 얻었고, 지금까지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았던 임시정부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자체의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무너졌다.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 장악은 소련의 두 번째 모든 러시아 회의에서 비준되어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만약 10월 이후 처음 여섯 달 동안 소비에트 원칙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면, 내전 과정에서 전(前) 지배계급이 외부의 군사적 개입의 도움으로 권력을 되찾으려 시도했을 때, 소비에트는 점차 공허해졌다. 고립, 전쟁, 기근 및 질병과 같은 객관적인 요인들이 그 배후에 있었지만. 주관적인 요소는 이 문제, 즉 소비에트의 중앙 집행위원회(VTsIK) 위에 인민위원회(Sovnarkom)의 창설, 인민위원회에서 나온 「좌파 사회민주당」은 정부를 남겨두고 떠나고, 「코뮤니스트당」 선거의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이러한 과정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작성한 바가 있다. 반(反)혁명 과정에서 소련이 된 소비에트 러시아는 1991년까지 "소비에트 공화국"이었지만, 소비에트는 1921년에 이미 빈 껍데기였다. 코뮤니스트당 안팎에서 방향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용감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7년 혁명은 쿠데타를 일으킨 스탈린과의 점진적인 퇴보로 패배했다.

 

오늘날 노동자평의회와 혁명가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우리가 지금 노동자평의회에 대해 간략한 정의를 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계급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만든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 여기저기의 공장 또는 부문을 넘어서는 노동자들을 포함한다.

• 위임 및 소환의 원칙에 따라 조직한다.

• 공동의 목표를 향한 운동의 통일을 목표로 한다.

•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의 분리를 하지 않는다.

• 노동계급 전체에 의한 권력 행사에 적합하다.

 

물론 그러한 깔끔한 정의는 결코 현실을 완전히 묘사할 수 없다. 사실, 코뮌이나 소비에트는 항상 이러한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유사 기관의 보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보기는 다음과 같다.

 

• 독일,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노동자평의회 (1918~9)

•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 (1919~20)

• 중국의 코뮌과 파업위원회 (1925~7)

• 쿠바의 슈가 밀 소비에트 (1933)

• 스페인의 도시 및 농촌 집단 (1936~7)

• 베트남,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노동자평의회 (1944~7)

• 헝가리와 폴란드의 노동자평의회 (1956)

•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의 파업위원회 및 공장위원회 (1968~9)

• 칠레의 코르돈 (1972~3)

•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파업위원회 (1974~6)

• 이란의 슈라스 (1978~9)

• 폴란드의 공장 간 파업위원회 (1980~1)

• 아르헨티나 총회 (2001)

• 이란의 평의회 조직 (2021)

 

이러한 보기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철저하지 않으며, 그들 모두가 우리가 실제 노동자평의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그들이 그 이름을 취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계급투쟁의 높은 지점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해 그들 자신의 계급 전체의 조직을 창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혁명가들은 이 과정을 지원하고 장려할 수 있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계급 전반의 조직에 혁명가들의 개입이 없다면, 다른 정치 세력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그들을 지배하고, 파괴하고,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 – 보기를 들어 독일의 사회민주주의(1918년), 베트남의 스탈린주의,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스탈린주의(1944~7년), 심지어 이란(1978~9)과 폴란드(1980~1)에서와 같은 종교적 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정치적 경향은 1920년대부터 반(反)혁명의 조류에 저항하려고 시도한 「코뮤니스트 좌파」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되었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에서 추방된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연속성은 유지되었으며, 그 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서 재편성되었다. 그러나 더 광범위한 코뮤니스트 좌파에 걸친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에 대한 공통된 이해는 없다. 독일 코뮤니스트당에서 나온 평의회처럼, 러시아의 코뮤니스트당이 어떻게 당 독재를 창출하고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평의회를 자본주의 국가에 어떻게 종속시켰는지를 보면서, 노동자평의회는 정당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이 견해에 대한 지지는 오늘날 아나키스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52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으로부터 분리된 보르디가주의자들과 같은 다른 이들은 결코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단일 정당에 의해 움직이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찬성하여 노동계급 민주주의에 전적으로 반대해왔다. 1945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가입을 거부한 프랑스의 한 집단에 기원을 둔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와 같은 다른 이들은 노동자평의회와 함께 그리고 분리된 이행기 동안 다른 억압적인 기구가 존재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만약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성공적인 혁명 이후의 노동자평의회의 배타적 지배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 조직이나 당의 통치가 아니다. 사실, 1917년 러시아와 1918년 독일의 평의회에서 보았듯이 당에 의석을 자동으로 할당하는 것조차 문제가 되었다. 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계급 전체 기관에 의식적으로 위임되는 혁명가들은 계급에 의한 코뮤니스트 강령의 채택을 반영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이 위임받은 명령, 즉 코뮤니스트 강령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혁명 조직이 어느 한 시점에 평의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하고, 다른 시점에서는 소수를 확보할 수도 있다. 노동계급은 그것이 생동감 있게 하는 계급 전반의 기관 구성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계급 사이의 분위기가 혁명적 진로에서 멀어지는 것은 혁명가들이 그들의 임무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혁명적 조직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에 집착한다면, 평의회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평의회를 위해 자신을 대체한다면, 혁명 과정은 모두 똑같이 반(反)혁명 과정에 기여할 것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말했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언제나,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의 전투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지 않으며, 심지어 정당에도, 누구에게도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정치 강령, 1952)

 

우리에게 있어서 이행기는 어떤 별개의 단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해체하는 과정이며,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는 노동자평의회의 지배 확립과 함께 즉시 시작되어 계급이 최종적으로 사라지면서 끝난다. 그 과정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노동자평의회의 창조적 활동 (그리고 평의회가 운영할 많은 다른 형태의 협회)에 의해 표현된 수백만 명의 노동자 사이에서 자기 주도권과 자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혁명적 조직은 평의회 내에서 자신을 해산시킬 수 없다. 계급이 최종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그 역할은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돕고 코뮤니스트 조치의 채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계급 전반의 조직 형성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사상과 실천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시작에 불과하다. 국제주의자들의 혁명적 소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개입하려는 모든 개량주의적이고 순응주의적 경향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일단 계급이 인간 자체로 해체되면, 노동자평의회는 "그들의 정치적 성격을 잃고 사회의 진정한 이익을 감시하는 단순한 행정을 담당하는 기능으로 변형될 것이다." (엥겔스, 1872년). 이전 지배계급이 다시 권력을 잡은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평의회가 채택하기로 선택한 억압적이거나 국가적인 기능은 그 시점에서 쓸모없게 될 것이다.

 

노동자평의회는 역사적으로 발견된 형태로, 모든 사람이 소환 장치를 통해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코뮤니즘/사회주의가 정치 엘리트가 지배하는 또 다른 경제체제가 아니라 계급 분열로 지배되는 이전 사회와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라는 생각이다. 코뮤니즘/사회주의하에서는 여전히 문제(먼저 환경)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겠지만, 의견 차이는 다른 계급의 입장을 표현하지 않고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학)을 사용하여 모든 경우에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다. 소환 시스템의 장점은 이전 결정의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 다시 결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의회 시스템에서 결정은 어떤 지역에도 강요되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의 기본적인 요구로부터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혁명이 보여주듯, 평의회는 최종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장소가 될 것이며, 다른 많은 활동은 생산 단위와 이웃의 협동조합과 지방위원회와 같은 것을 통해 수행될 것이다.

 

만약 노동계급이 다시 한번 투쟁을 시작한다면,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지구가 남아 있게 된다면, 그 결과로 광범위한 계급 조직이 출현할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파업위원회, 대중 총회 또는 지역 협회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며,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사회적, 정치적 주춧돌이 될 것이다. 미래의 노동자평의회는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다. 혁명가들이 계급투쟁의 필요에 따라 결정될 것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모든 조직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코뮤니스트 강령, 즉 자본주의 지배의 전복, 노동자평의회의 통치, 계급 없는 사회로의 변혁을 위한 코뮤니스트 강령을 제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노동자평의회와 혁명조직은 모두 필요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2022년 9월

다이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이명수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9-12/the-meaning-of-workers-councils-in-the-21st-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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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17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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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끊임없는 위기의 시대였다. 팬데믹, 제국주의 전쟁, 기후위기, 환경파괴, 에너지 위기, 경제위기⋯. 위기의 폭주는 그 이전에도 있었고, 2023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이 모든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가 「코뮤니스트」에서 명백히 밝혔듯이 그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 생산방식 그 자체이다. 그런데도 자본은 각종 위기를 노동계급과 생태계에 떠넘기며 착취의 강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제동 없는 기관차인 자본주의는 종 멸종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1990년대 이후 계급 해체의 심화와 계급의식의 쇠퇴로 깊은 잠에 빠져있던 세계 노동계급은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역사적인 파업이 9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년 연장으로 인해 화약고에 불이 붙었고 수백만 명이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왔다. 스페인에서는 의료 체계 붕괴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여러 부문(청소, 운송, IT 등)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공공 부문 노동자와 우체국 종사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는데, 이는 "독일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덴마크에서는 군사 예산 증가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휴일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포르투갈에서는 교사, 철도 노동자, 의료 노동자들도 저임금과 생활비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네덜란드, 덴마크, 미국,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서도 똑같이 견디기 힘들고 열악한 생활 조건에 맞서 파업을 벌였다.

 

「코뮤니스트」 17호에서는 전쟁과 각종 위기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에 맞서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자본주의 작동원리,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특집으로 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최근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은 맑스주의 원칙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특집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며, 자본주의 작동방식에서 전쟁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며”에서는 노동계급은 현대 사회에서 전쟁의 원동력인, 자본주의를 종식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며, 노동계급의 유일한 무기는 노동자 국제주의라고 밝히고 있다. 노동자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 민족도 없기에 노동자에게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계급전쟁뿐이다. 이것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는 배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유럽 분쟁이며, 전쟁의 본질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 전략적 입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대리전쟁 끝에 나왔다. 이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핵 강대국 러시아가 직접 참전하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나라 국민의 재앙을 넘어 제국주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 전 세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 이 전쟁들은 몇몇 광적인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도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결과였다. 이 체제는 이윤율 저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내부 모순으로 전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급전쟁이 아닌, 자본주의 전쟁이다. 그것으로부터 계급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다양한 제국주의 동맹국과 후원자가 있는 두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며 노동계급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 노동계급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 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인 ‘계급전쟁’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노동계급, 그리고 미래의 인터내셔널,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 코뮤니스트 정치에서는 성평등과 성해방, 난방비 폭탄, 장애인 권리투쟁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투쟁과 지배계급의 지배방식 및 자본에 의한 각종 위기를 피지배계급에 떠넘기는 행태를 분석하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젠더 대결이 아닌 계급단결과 생존권 투쟁 전면화! 노동자민중의 희생이 아닌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만이 2023년 암울한 전망에 빛을 열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 국제에서는 노동계급에 전쟁과 경제위기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자본에 맞선 국제 노동계급의 파업과 시위를 다루었다. 구체적으로 영국 노동자 파업 의의, 개량주의의 본질, 계급 연대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역사와 의의 등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다행히 파업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가진 엄청난 힘의 표현이며, 노동자들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 창조자이며, 노동을 철회함으로써 그들 없이는 아무것도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기생 계급을 대신하여 증가하는 착취와 파멸적인 생활 조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노동자들은 이 살인적인 체제를 파괴하고 사적 이윤이 아닌 집단적 필요를 위해 생산을 계획하는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조 체계는 그러한 관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공동파업에 나서자,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개량주의자의 상징인 삼위일체(행동주의, 조합주의, 의회주의)가 “요금납부 거부” 캠페인처럼, 이 캠페인도 다시 자본주의를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캠페인을 주장하는 이들은 부자들에게 세금이 부과되고, 국가 지출이 재분배되고, 노동당의 정치인들이 집권하기만 한다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공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노동계급 착취에 기반을 둔 이 시스템은 결코 공정하게 만들 수 없다. ⋯⋯ 노동계급의 공격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해결책이다. 노동자 스스로가 파업위원회를 통해 대중파업을 지도하는 통일된 계급투쟁이 우리가 직면한 공격을 중단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공정할 수 없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1917-18년의 불멸의 교훈! 제1차 세계대전은 외교적 협상이나 각 제국주의의 정복으로 종식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혁명 봉기에 의해 종결되었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자신의 계급투쟁을 자본주의의 파괴로 전환함으로써 군사적 야만주의를 종식할 수 있다. ⋯⋯ 1968년 계급투쟁이 역사적으로 재개된 이후 세계가 두 개의 제국주의 블록으로 분열된 기간 주요 국가의 노동계급은 조국을 위해 전선으로 나아가 죽는 것은 물론 전쟁이 요구하는 희생을 거부함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의 문을 닫았다. 이러한 상황은 1989년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혁명만이 그것을 끝낼 수 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쟁점에서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의 다양한 시각과 쟁점을 소개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적 상황에 밀접하게 따라야 한다. 전쟁의 문제는 노동계급이 움직이는 출발점이 아니고 어떠한 투쟁 위원회도 아니다. 반면에, 경제위기의 악화와 생활 조건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의 전투력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토론회나 투쟁위원회의 구성은 정말로 가능하다. 그리고 혁명가들은 국제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전쟁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개입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게다가, 이는 코뮤니스트좌파의 모든 그룹이 이미 그들의 언론과 전단의 배포를 통해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집단이 합창하고 하나의 동일한 국제주의 메시지를 함께 보낸다면, 이 목소리는 더 멀리 전달되고 훨씬 더 심오한 역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참가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위원회,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추상적인 긍정을 고려한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ICC 선언을 언급하거나 옹호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바로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에 대한 이 문제, 즉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의 필요성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이 상황에 따라, 국가와 대륙, 시기에 따라, 즉, 각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부과하려고 하는 조건, 시기, 근거에 따라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계급 대립의 조건과 근거는 동일하지 않다. 현재 서유럽과 다른 대륙 간에는 더 큰 차이가 존재한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방어가 확실히 최소한의 조건이라면, 이것이 바로 현재 상황에서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보다도 위원회를 설립함으로써 소수의 혁명가와 전투적 프롤레타리아가 재편되고, 행동하며, 각각의 특정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 파리 공개회의,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

 

“전쟁 열기, 국제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의 한계”와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이 도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투쟁”에서는 아나키즘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의 명확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각 그룹의 시각 차이와 코뮤니즘을 향한 투쟁에서 맑스주의 원칙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아나키즘은 코뮤니스트와 개인주의자, 민족해방 투쟁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과 지지하는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극도로 이질적인 정치 현상이었다. ⋯⋯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은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적 요소를 포함하는 일종의 소용돌이일 수밖에 없다. ⋯⋯ 아나키스트 세계관의 핵심적인 문제는 엄격한 계급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유물론적 역사관에 기반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칙'이 모든 권위에 대한 반대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열기, 국제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의 한계, 「국제코뮤니스트흐름」)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이러한 기회주의적 글 및 코뮤니스트 운동과 아나키스트 운동 사이의 실제적이고 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하려는 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노동계급 투쟁과 제1 인터내셔널 내부의 투쟁을 통해 아나키즘은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중도주의적 혁명당의 편을 직간접적으로 들었고, 그러한 비(非)정치주의와 경제주의적 실천을 통해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 정치적 흐름으로 간주할 수 없었다.”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이 도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투쟁,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

 

□ 역사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Ⅱ”을 실었다.

 

“국가자본주의 계승자들 모두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반대자로 남아 있지만, 우리는 미래의 인터내셔널 창설에 전념하고 있는데, 이는 순전히 스스로 규정한 꼬리표에 근거하지 않고, 그 뒤에 모든 종류의 혼란과 속임수를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진보적인 것을 제공할 수 없는 낡아빠진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처에 있는 임금 노동자들의 상황을 반영하는 공통의 강령에 대한 합의에 따라 혁명가들을 통합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해답을 가진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쿠닌과 맑스 시대에 여전히 열려 있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한 계급투쟁, 경제 위기, 전쟁 및 혁명의 굴곡진 역사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강령을 통한 대화에 항상 열린 자세로 임할 것이다.”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Ⅱ,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 이론에서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글들이 실렸다. 우선 지난 16호의 1부에 이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2부)”를 실었다.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자본 운동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집중된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시도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체제가 되는 지점까지 자본 관계의 세계화로 이끌었지만, 또한 자본가들의 경쟁이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기 위한 선진국 사이의 경쟁이 되는 지점까지, 자본의 국가화(자국중심주의) 증가(보호무역주의 등의 증가)로도 이끌었다. ⋯⋯ 각 위기는 더욱더 높은 수준의 자본의 집중화와 중앙화로 이끌었고, 각 순환 위기마다 더 적은 수의 파산시킬 경쟁자를 남겼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자본의 중앙화는 각 국가 자본 내에서의 독점 자본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와 엮일 때까지 진행되었다. 자본주의 경쟁은, 지금까지 인류에 풍요의 진정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각 국가가 그 자신의 국가 자본을 보호하려 함에 따라, 이제 생산력에 대한 제한적 억제로 이끌었다. 우리가 볼 수 있듯, 자본주의는 이제 쇠퇴하는 사회 체제였으며, 그 존속은 오직 국가 간 첫 국제 분쟁으로 세계를 밀어 넘어뜨려서만 가능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2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쇠퇴기의 자본주의와 이로부터 나날이 고통받는 노동자”에서는 현재의 경제위기와 전쟁 위협은 단편적인 역사적 상황이 거대하게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이며 역사적인 위기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맑스주의자의 관념이나 피로에 찌든 고집이 아니라 인류를 둘러싼 모든 차원에서 각자의 일상생활을 왜곡하고 조건 짓는 현실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체제가 초래한 발전 속에서 그 원인을 발견한다. 정신건강에서부터 시작해 체제가 스스로 가능하게 만들었던 과학기술들이 사용된 방식에 이르기까지... 또 그런데도 체제가 군사적 목적을 위해 변형시키고 낭비하며 탈선시킨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체제는 과학기술을 사용할 수 없으며, 과학기술이 초래한 사회화의 증가로부터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는 가장 중요한 것에서 시작하여, 기존의 생산능력과 잠재적 생산능력 모두를 파괴한다.-노동계급까지도.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시도는 없다. 자본주의의 쇠퇴에 있어서 생산 시스템의 주요 모순들은 방향을 바꿀 수도, 달랠 수도 없다. 오직 체제의 유지에 기득권이 없는 계급이 일으킨 전 사회의 방향이 변화하는 것만이, 점점 더 종(種)에 역행하는 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 (쇠퇴기의 자본주의와 이로부터 나날이 고통받는 노동자, 「코뮤니아」)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에서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신화’에 대해 맑스주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비판한 책 「그람시: 맑스주의와 관념론 사이」 소개 글을 실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한 신화는 끝이 없다. 가장 큰 신화는 공장점거 운동의 영웅이자 신질서의 창시자이며, 1921년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의 창설자라는 것이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전후 개량주의 이론가들은 그람시의 이론적 개념과 범주를 사용하여 '유로 코뮤니즘'을 정당화하거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실패한 시도로 러시아 블록에 대한 충성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국한되거나 소련의 붕괴와 유로 코뮤니즘의 소멸로 사라지기는커녕, 그람시의 방대한 저서는 이제 전 세계 학술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 언어학에서 인류학을 거쳐 정치학, 사회학, '교차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그람시의 헤게모니 사상, '수동적 혁명', '현대 군주론', '진지전', '실천철학'은 객관적인 사회 현실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회를 개인의 집합체로 환원시키는 탈(脫)진리 시대에 번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람시를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가 가장 큰 정치적 성숙기에 도달한 시기를 공유하고 그 이후 그의 후기 저술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우리는 오직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람시의 작품은 그의 해석 방식이 제공하는 도구나 그 자신의 목표 측면에서 볼 때 맑스주의에 기반을 두지도 않았고 맑스주의 사상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신화에 의해 생성된 철학 사이에서, 그람시는 분명히 전자에 해당했지만, 실제로는 교육, 취향 및 경향 면에서 후자로 기울어졌다. 어쩌면 그람시의 성격과 그 불완전성, 그의 이론적 방법의 단점과 정치적 계획의 경험주의에 대한 이 논쟁은 기회주의가 어떻게 계속해서 자신을 정당화할 방법이 있다는 것인가? 어쨌든 "좌파" 지성주의의 해부학적 표에 있는 그람시의 이 놀라운 생체 해부는 맑스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방대한 가정과 관점들을 밝혀냈다. 여기서 빠르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직면하여 그람시는 전쟁의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문제에 대한 혁명 이론의 발전에 근본적인 중요성을 부여한 레닌과 룩셈부르크와 달리 계급적 관점과 혁명 전략 측면에서 제국주의의 현상을 감지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람시: 맑스주의와 관념론 사이, 오노라토 데이먼)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을 맞아 근본적인 평가와 전망을 통해 새로운 단계를 준비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을 넘겼고, 윤석열 정권도 1년이 되어간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제국주의 충돌 격화, 해결되지 않고 심화하는 경제위기, 재앙 수준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이에 대한 지배계급의 위기 전가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무겁게 떨어져 생활 수준과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의 자본가 정권을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더욱 큰 고통과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

 

난방비 폭탄, 물가 폭등, 실질임금 감소, 생계비 위기, 복지 축소, 노동운동 공격... 이 모든 것을 계급전쟁이라고 부르자! 이제 노동계급이 이 전쟁에서 반격할 때이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에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 조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17호는 여전히 민족주의, 선거주의, 조합주의 세력에 포위된 노동자들에 국제주의 원칙을 강조하고자 한다.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전망과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조직(세계혁명당) 건설의 기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계급전쟁으로!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2023년 5월 1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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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3년 17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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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3년 17호

 

 

차례

 

 

□ 코뮤니스트 17호를 내면서 

 

□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특집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며  

▸우크라이나 침공 1년: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노동계급, 그리고 미래의 인터내셔널  

 

□ 코뮤니스트 정치

▸2023년 전망  

▸장애인 권리투쟁,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젠더 대결이 아닌 계급단결을  

▸난방비 폭탄: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 국제

▸공동파업에 나서자  

▸자본주의는 공정할 수 없다  

▸생계비: 노동자들이 해야 하는 또 다른 전쟁  

▸투쟁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어떻게 정부를 퇴진시킬 것인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성 회복  

▸자본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쟁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 파리 공개회의  

▸참가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위원회  

▸전쟁 열기, 국제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의 한계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 도입을 반대하는 투쟁  

 

□ 역사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Ⅱ  

 

□ 이론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2부)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가?  

▸쇠퇴기의 자본주의와 이로부터 나날이 고통받는 노동자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그람시: 맑스주의와 관념론 사이  

 

□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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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계급전쟁으로!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 가격 :  20,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코뮤니스트」17호는 

2023 메이데이 집회(서울 세종대로)에서 배포/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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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2판을 내면서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2판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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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과 의회주의/선거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원칙을 밝힌 소책자를 발행했다. 대선 결과 자유주의-민족주의 부르주아 분파에서 보수주의 부르주아 분파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부르주아 권력에 대한 분석 틀을 자본주의 체제 동전의 양면인 진보-보수 또는 좌파-우파로 나누지 않고, 코뮤니즘과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부르주아 정치로 나눈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에서 윤석열 정권으로의 정권 교체는 부르주아 분파 사이 권력 이동이며, 심각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지배계급의 위기 전가-노동계급 공격 강화를 의미한다.

 

경제 위기, 기후 위기, 팬데믹에 이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앙에 직면하여 세계의 모든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더욱 큰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집권 초기부터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위기 극복’과 ‘국익’에는 항상 ‘노동계급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가 전제되어 있다. 윤석열 정권은 조직노동자들의 전투력이 약해져 있고, 계급 내부 분열이 공고화된 지금, 노동자들을 이데올로기 공격뿐 아니라 세대별, 성별, 조직-미조직,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치면서 최대한 밀어붙여 전투적인 부분을 제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 운동의 위기 상황에서 내년에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은 이른바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을 만들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총선방침은 이미 위원장 직권 상정이라는 절차상의 비민주성, 야권연대 행보를 한 특정 정당의 동의만으로 강행, 노동자 정치 세력 사이의 명백한 정치적 차이 봉합, 과거 실패한 진보정당 운동과 선거 전술에 대한 반성 부재 등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도 다수파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총선방침 반대를 넘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노동자 대반격과 계급적 단결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투쟁 창출에 부르주아 선거 참여와 조합주의 중심 정치세력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수십 년간 선거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조차 민주노총 지지 후보보다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투표했다. 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에 포섭된 계급의 현실이며, 선거주의-조합주의 중심 노동자 정치의 토대이다. 여전히 그들은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선거 때만 되면 선거연합, 독자 후보, 비판적 지지까지 반복되는 선거 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노동자 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부르주아 선거 자체를 반대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프롤레타리아트 정치, 코뮤니스트 전망을 제시해 왔다.

 

"더는 ‘통합진보당’, ‘진보정치’, ‘좌파정치’ 운운하면서 고리타분한 대립을 논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보든, 멀리에서 보든, 우리 주변에 펼쳐진 ‘노동자 투쟁 정치’와 미디어에 비친 ‘진보정치’는 그 어느 것도 공통점이 없다. 정확히 말해, 96~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형성된 ‘진보정당(정치)’ 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가 노동계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권연대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지도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한 ‘노동자 독자정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치 노선에서 실체도 불분명한 민족해방 좌파, 중앙파, 현장파를 포함한 공동전선 당은 무엇보다, 한국 프롤레타리아 정치 운동의 위기를 ‘계급정치의 부활’이 아닌 ‘지도력의 정치’에서 찾는 점에서 노동계급에 치명적이다. 또한, 통일전선 당은 그간에 진행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공동 활동 경험과 노력을 폐기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진행되는 공동전선당 전략은 기껏해야 ‘계급성과 혁명성도 애매한 진보좌파연합’으로 수렴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비관주의와 조급성, 여러 차례 패배의 자책감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활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 파업과 거리투쟁을 통해 동지를 찾아내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의 잠재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혁명운동의 정치원칙을 강인하게 사고해야 할 때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2012년,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0여 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당 이름과 문구 몇 개만 바꾸면 현재 상황과 거의 같을 정도로 변한 게 없다. 통합진보당 대신 정의당과 진보당이 들어섰고, 강령 통일과 실천 검증에 따른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 투쟁 대신 의회주의 좌파 정당에 흡수된 이른바 사회주의 대중정당이 만들어졌고, 노동자 운동 내부에는 선거주의가 고착된 것이 변화의 전부이다. 이렇게 후퇴와 타락을 거듭한 운동 속에서 선거주의자들은 어떠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또다시 온갖 명분으로 부르주아 선거판에 뛰어들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암울한 현실에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에 관한 코뮤니스트 원칙을 근본적으로 밝히고 계급투쟁의 발전을 위해 사상투쟁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 비판의 핵심은 이른바 노동자 정치세력화, 계급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세력의 운동적 퇴보와 그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후보 전술이다. 그들은 우리의 반(反)의회주의 투쟁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교주주의라고 비난한다. 일부 사회주의자 자임 세력은 의회주의-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선거 참여는 전술일 뿐이라며 선거 자체를 거부하는 우리를 ‘초좌익’으로 몰아가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지난 몇 번의 선거 전술 실패 사례만 살펴보아도 선거주의자들의 거짓은 쉽게 드러난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그들의 선거 참여가 계급의식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퇴보하는 운동의 역사는 반성하지 않는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지만, 혁명적인 운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바로잡는 것으로 운동을 발전시킨다. 역사적으로 혁명운동의 걸림돌은 좌익의 급진적인 행동으로 타격을 받는 것보다 기회주의자들이 계급 운동에 들어와 계급의식을 후퇴시키고 투쟁을 교란하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기어서라도 국회에 가겠다."라는 선거주의 중독을 노동자 운동에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타락한 운동의 상징일 것이다.

 

부르주아 선거에 임하는 코뮤니스트 원칙은 ‘자본주의 체제의 혁명적 전복과 노동자평의회 국제 권력 수립’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당연시했던 것과는 전제 자체가 다르다.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발간했고, 코뮤니스트좌파의 의회/선거 강령에서부터 지난 10여 년간의 한국 선거 평가, 반(反)의회주의 투쟁 역사까지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우리는 이번 선거만이 아니라 앞으로 노동계급이 주기적으로 치르게 될 모든 부르주아 선거에서 계급적 입장과 노동자 정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의 2판을 발간한다.

 

노동계급은 4년,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 선거 사기극에 맞서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계속 제기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혁명당 건설"에 나서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의 대변자를 자임했던 자들이 가장 많이 배신하는 경우는 탄압받을 때가 아니라 선거 기간이었고, 반대로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 조직하는 것은 선거가 아니라 투쟁에 나섰을 때라는 것을 강조한다.

 

"해방을 위한 투쟁 속에서 당연히 온갖 오류를 다 범하게 돼 있다.

그러나 자신 한 몸의 영달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오류는 없으니 그래도 투쟁하는 게 더 낫다."

(「한 혁명가의 회고록」, 빅토르 세르주)

 

2023년 4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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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기후정의파업에 부쳐 : 기후재앙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전복을 위해

4.14 기후정의파업에 부쳐

기후재앙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전복을 위해

이윤 추구-착취 체제를 멈추고 계급전쟁으로!!! photo_2021-01-09_13-45-23.jpg

 

1. 들어가며

 

기후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홍수, 빙하의 증발 등 기상이변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 위기 징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위기의 요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사회 확산과 맞물려 있으며, 자본주의가 지구 전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산양식이 되면서 더욱더 심화하였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기후재앙은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폭염, 사계절 내내 지속되는 미세먼지, 몇 년째 계속되는 여러 지역의 가뭄, 초대형 태풍과 국소적 지역 집중호우 등으로 막대한 직접적인 피해와 이에 따른 재난 대책 및 지원을 둘러싼 갈등을 유발하였다. 기후재앙의 피해는 대부분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몫이지만, 자본은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탄소배출권, 그린 경제라는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기후 위기가 계급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으며 순수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간사회의 생산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기후 위기의 배경

 

수많은 환경운동단체뿐만 아니라 세계 부르주아지 일부도 현재의 기상 상황을 기후 위기라고 인정한다. 그들은 기후 위기의 원인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등을 지목하고 있다. 환경운동단체와 이른바 진보좌파 일부는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환경과 자연 파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기후 위기의 해결책으로 불평등 타파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사회 경제체제와의 관계에 대한 접근은 피상적 수준에 그치면서,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내의 대안에 충실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철저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원인 분석이 미비할수록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 정책 개선에 머물거나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의한 규제, 탄소 거래제에 대한 기대, 생태도시로 전환 요구는 규제 강화를 통해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규제와 제도 개선, 정책 전환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으로 효과를 얻으려면 이윤 목적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과 기후 위기, 환경 파괴에 대한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때, (지금도) 사회연대경제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등이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의 사회연대경제는 오히려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이것은 재생에너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과 독점화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뿐이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녹색경제, 탈성장, 지역생산, 뉴딜정책 등등 자본의 이윤추구를 마치 친환경 경제성장으로 미화하고 있다. 이처럼 녹색은 껍데기에 불과한 데도 많은 환경단체와 진보좌파는 녹색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자본에 녹색을 요구한다고 하여 친환경이 실행되는 것이 아니고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진보좌파, 즉 자본주의 좌파의 환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내의 개혁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조는 쇠퇴기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생명 연장 수단이자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코뮤니스트혁명의 큰 걸림돌이다.

 

기후 위기는 자본축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국제 부르주아 기구에서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보고서는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 빙하의 해빙 등 기후 위기의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온실가스 농도는 1750년부터 감지할 수 있고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화 확산과 맞물려 있다.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더욱 악화하였다. 이는 자본축적의 세 번째 주기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결국 기후 위기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분석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트리는 진보좌파는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전복하기 위한 투쟁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 또한 기후 문제 해결의 큰 걸림돌이다. 코뮤니즘이 일국에서 불가능하듯이 기후, 환경 문제 역시 국가 단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 지역으로 세계 공장 이전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통제 하의 핵발전 전파, 목축자본의 이윤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되는 숲과 밀림은 자본축적의 일환이다. 그 결과물인 기후재난, 지구온난화, 방사능, 환경호르몬은 전 지구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일국이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3. 기후 위기는 자본의 또 다른 이윤추구 기회

 

자본은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전쟁, 대유행 등 각종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과 희생을 요구했다. 노동자에 대한 고통 전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자본에는 이윤 추구의 기회이기도 하다. 경제위기 때에는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의 집적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동자의 고혈을 도둑질하며 부를 증대시켰다. 그리고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핵발전도 예외 없이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국제 핵 자본은 각국 정부의 지원정책(일정 이익을 보장받는 전력 요금 제도와 핵사고 시 배상금액 축소 및 국가 지원 보증제도 등)과 지역 독점체제를 보장받으며 규모와 조직을 확대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핵 마피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핵 자본은 핵 전공 학자, 퇴직 후의 재취업을 기대하는 관련 부처의 공무원, 거대한 설비투자의 수주에 매달리는 건설·전기기기 등의 자본, 광고비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언론, 정치헌금과 선거 지원을 기대하는 정치인, 금융·보험업계 등으로 확대재생산 구조를 공고히 하였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 내의 거대한 카르텔을 바탕으로 핵 자본은 반대파를 배제 및 제거하는 한편, 핵 자본의 이익 유지와 확대를 꾀하며 핵 산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배상책임 부정을 위한 은폐, 축소, 정보 미공개는 핵 자본에는 안전성보다는 이윤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핵사고 직후 초기 긴급대처 없이 중요한 시간을 허비했던 이유 역시 그들의 무능함을 가장했지만, 자본간 이해타산과 이익 관계에 의한 유착관계 때문이었다. 이것은 핵 자본뿐만 아니라 전체 자본과 국가, 각종 지배기구의 행태이자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자본주의에서 핵발전의 사회∙경제∙과학적 문제와 계급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거대한 쓰나미를 발생시키며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덮쳤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고농도 오염수는 130만 톤을 넘어섰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 방류를 추진하고 있다. 지하에 매장하거나 기화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바다에 방류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하에 매장하거나 기화시키는 방법 역시 근본 대책은 아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과학기술로도 방사성 물질의 방사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폐기물을 특수보관 장치에 넣어 지하에 격리, 보관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고농도 오염수 방류와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에 대한 암묵적 찬성을 하였다.

 

이미 많은 양이 누출된 세슘과 반감기가 2만 년이 넘는 플루토늄 등이 잔존하는 지역은 생명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거리낌 없이 핵발전소 재가동 쪽으로 돌아섰다. 윤석열 정권은 2022년 10월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을 통해 노골적으로 핵발전 확대를 공언했다. 문재인 정권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의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지만, 오히려 핵발전소는 늘어났다.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며 가장 높은 원전 밀집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윤석열 정권의 '탈(脫)원전'을 계기로 전국에 총 25기의 원전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원전도 9기에 달하며 핵에 비중을 늘리고 있다.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한 부담을 줄이자는 핵발전, 전기/수소차는 무늬만 친환경이며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종속되어있다. 따라서 각종 위기는 고통 분담 이데올로기와 폭력을 통해 노동자에게는 고통을 가중하지만, 자본에는 집적과 집중의 기회이다.

 

4. 기후 위기 대책

 

1)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탈성장, 지역경제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지 속임수인 녹색경제, 그린뉴딜 등의 명칭은 국경을 초월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을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을 주장하며 친환경 정책인 양 포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물이 4대강 사업이다. 문재인 정권 역시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과는 다르다며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을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린뉴딜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탈 탄소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녹색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구도 살리고 돈도 버는 정책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 목표·계획이나 어떠한 규제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은 핵발전 확대와 탄소배출 제로 의지와 전망을 하지 못한 공허한 내용으로 이전 정권보다 더 노골적으로 친자본적인 모습을 실천하고 있다. 국제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 기후 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된 자본은 결코 이윤을 포기하지 않고 비서구권으로의 공장 이전을 통해 탄소배출 규제를 회피하고 배출권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 더 나아가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이러한 철학 부재는 당연히 대안의 부재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자신의 무능과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 장밋빛 청사진으로 제시했지만, 그들의 계급적 성격은 감출 수 없었다. 탈(脫)탄소 문명을 탈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빠져 있고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으로만 채워져 있다.

 

2)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과 녹색경제 :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은 노동단체의 비판처럼 자본의 이윤 중심이 아닌 노동자의 관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 부르주아 기구의 탄소 저감제, 생태도시 조성이 자본의 이익을 배제한 채, 종 전체의 생명권과 노동자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실행 가능한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을 부르주아지에 강제하지 않고 협조, 요청 정도로 실행 가능한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어떠한 긍정도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배계급과 자본이 한쪽으로는 무늬만 친환경인 녹색경제를 주장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핵과 전쟁 무기생산에 지속적인 투자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증명된다.

 

온실가스 배출, 핵발전, 무기 생산, 재생에너지는 자본의 이윤 축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이 아니다. 세계환경협약을 통한 국제 부르주아지의 추진과제(탄소 저감, 그린 경제 등)들은 공허한 내용에 불과하다. 오히려 무능력과 무의지를 감추려는 부르주아 정부는 대안의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하지만, 결론은 자본의 이윤 추구의 새로운 방법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의 기후 위기는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에 협조, 요청이 아닌 기후 위기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계급성을 갖추어야 한다.

 

자본의 이윤 추구는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 분담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지는 자기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할 뿐이다. 그것이 환경과 기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 탄소 저감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주아 정부는 노동자의 요구에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요구를 정책으로 시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정책과 제도 속에서 경험했다.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요구와 기대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5. 결론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결론은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의 원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라는 것이다. 약탈과 착취의 생산이 지속된다면 인류를 포함한 종 전체가 탈출구 없는 멸종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 결국 선택지는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종의 멸종을 포함한) 생태계 파멸이냐의 갈림길만이 놓이게 된다. 부르주아지는 자본 운동을 억제하거나 중단시키는데 조금의 이해관계도 없다. 오직 기후 위기, 환경파괴, 종의 멸종을 향해 폭주하며 달리는 자본의 운동에만 전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진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의 폭주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자본의 무한이윤 경쟁은 기후 위기가 일국만의 대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혁명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인류, 생산 및 환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여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한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킨다.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노동자 희생과 지구 파괴를 멈출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문제 제기 없이는 지구파괴를 막을 수 없다. 이윤 추구-착취 체제를 넘어서지 않는 대안과 정책은 결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구체적 전망에 대한 대안없이 막연한 반(反)자본주의 주장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지구파괴와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우리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는 <4.14 기후정의파업>을 맞이해 이렇게 주장한다.

 

기후재난, 환경파괴, 대유행, 전쟁, 생계비 위기, 핵 오염: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만이 지구와 인류를 살릴 수 있다!!!

 

4월 14일을 시작으로

기후재앙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전복을 위해

이윤 추구-착취 체제를 멈추고 계급전쟁으로!!!

 

2023년 4월 14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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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자본주의의 악성 종양: 생식의 자유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자본주의의 악성 종양:

생식의 자유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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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사회에서 발생하는 생식 투쟁에 관한 이전 두 차례의 글에서는 가족 단위, 매춘, 성 선택에 따른 낙태, 불임화, 종교, 부르주아 법률, 그리고 낙태와 피임을 둘러싼 몇 가지 현실과 위험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 글에서는 제국주의적 충돌의 시기에 나타나는 성폭력에 대해서 조사하고 기후 위기가 생식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제국주의적 충돌과 성폭력

 

제국주의적 충돌 때문에 노동 인력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의 존재는 제국주의 자체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현재 10년이 넘는 동안 시리아가 바로 이러한 사례다. 남성 노동자 대중이 전쟁터에서 살해되면서 많은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할 필요로 인해서 이제 그들은 실업, 낮은 임금, 높은 생계비의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1) 2011년에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여성들의 활동은 대체로 가정에 한정되어 있었고, 여성이 가정을 이끄는 경우는 4%에 지나지 않았다.2) 현재 여성이 이끄는 시리아 가정은 약 22%에 이르며, 그래서 어떤 영역에서는 여성이 노동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3) 전쟁 이전에는 여성의 96%가 적절한 모성 건강관리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1970년에서 2009년 사이에 어머니 사망률은 크게 하락했다.

 

팬데믹에 더하여 지난 11년 간 진행 중인 충돌로 인해, 많은 사람이 얼마 안 되는 소득마저 잃어버리고 굶주렸다.4) 모성 건강관리서비스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오래전에 근절되었던 소아 마비 같은 질병들이 다시 나타났다.5) 의료업계 전문직 종사자의 거의 3분의 2가 시리아를 빠져나갔고 모든 병원의 전반 이상이 문을 닫거나 부분적으로만 운영하고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에 남아 있는 병원들도 공습으로부터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많은 여성이 포탄이나 파편의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집이나 거리에서 아기를 낳고 있다. 신생아들은 영양실조나 병에 걸리기가 일쑤인데, 신생아 간호는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당장이라도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멘의 상황도 아주 유사하다. 유니세프의 보고서들에 따르면, 여성 260명 중의 한 명이 임신이나 출산 중에 사망하고, 37명의 신생아 중 한 명이 생후 1개월 안에 사망하며, 의료 시설에서 출산하는 비율은 열에 셋 뿐이다. 모든 의료 시설 가운데 가동되는 것은 절반 정도 뿐이고 그것들도 필수적인 보건의료 도구의 심각한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6)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종종 생식 보건의료가 제일 먼저 사라진다. 이러한 서비스들의 필요성은 콜레라의 발발이나 인구의 80%가 식량과 식수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긴급한 필요로 무색해지고 만다. 노동계급 가족들이 겪고 있는 점증하는 빈곤이 집에서 출산하는 여성의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또 다른 이유인데, 이들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의료서비스를 찾는다.

 

아프가니스탄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적어도 인구의 절반 가량이 깨끗한 물과 기본 영양 식품 같은 필수품의 부족에 시달릴 정도로 빈곤한 상태에 놓여있다. 팬데믹, 지속되는 식량 위기, 그리고 추운 겨울 날씨는 상황을 악화시켰을 따름이다.7)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동 노동과 아동 결혼이 오랫동안 일정 규모로 존재해왔기는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의 굶주림을 덜기 위해서 아이들이 일터에 보내지고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이 매매혼으로 팔려 가는 일은 이제 흔해 빠진 일이 되었다.8) 시집 보내진 어린 소녀들이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정신 건강이 나빠지고 임신 기간 중에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좀 더 높다. 게다가 학교에 더 오래 남아 있는 소녀일수록 어린 나이에 시집 보내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따라서 탈레반이 다시 한번 권력을 장악한 이래로 다시 제도화한,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교육 금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동 결혼의 빈도를 증가 시킨 또 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성폭력은 군국주의로 인해 악화하고 민족주의적 충돌에 가담한 모든 파벌에 의해 전쟁 무기로 이용된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경쟁, 그리고 그에 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태 악화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9) 그렇지만 성폭력은 외부인들에게만 가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 보기를 들면, 미군에서는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이 2016년에서 2018년 사이에 거의 40% 증가했다. 성폭행의 생존자들 가운데 대략 85%는 폭행한 사람의 신원을 알고 있는데, 그의 상급자인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10) 이는 미군 소속 군인들이 전투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성적 트라우마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좀 더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11)

 

성폭력의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 있는 많은 나라에서 출생 증명서에 아버지 이름이 없는 어린이들은 신분증을 가질 수 없다. 이 때문에 성폭행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은 학교에 가거나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슬람 국가의 수중에서 노예 상태를 겪었던 야지디 족(Yazidi)의 많은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가슴 아픈 결정을 해야 하는 상태에 있었다.12) 간혹 아이를 포기한 여성들은 나중에 찾아가서 만나보거나 재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이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단 그 어머니가 이라크에 들어오고 나면 국경 보안대에 의해 시리아로 돌아가는 것이 제지 당한다. 이 여성들은 대체로 다른 재원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들의 가족에 의존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것을 금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유사하게 콩고 민주공화국에서도 성폭행 당한 여성들이 남편이나 가족들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태도는 대체로 성폭행 장면을 자주 목격하면서 아내를 보호해야 하는 “남자의 의무”에 실패한 것처럼 느끼는 남성들의 트라우마와 수치심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13) 남편이 집에 머물러 있거나 돌아와 있는데, 그의 아내가 폭행의 결과로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면,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남성들이 더 큰 폭력을 가해서라도 가족 내에서 자신들의 역할과 위치를 재천명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14)

 

동일한 사회적 오명과 수치심 때문에 성폭력의 가장 악랄한 사례가 역사를 통틀어 보고되지 않거나 기록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국가 역시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 된 폭력을 은폐하거나 비난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오스트레일리아군 전쟁 범죄에 대한 2020년 보고서에는 상당한 양의 정보가 검게 지워져 있으며, 놀랍게도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ADF) 병사들에 의해 자행 된 것 같은 강간이나 성폭행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ADF 병사들이 14세 소년 두 명의 목을 베어낸 사건을 포함하여 39건의 불법 살인 혐의는 기꺼이 들추어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검게 지워진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부끄러운 사건일 공산이 있다.15)

 

지금까지도 위의 요소들은 남성 노동자들과 소년들 역시 전쟁 무기로서 성폭력의 목표물이라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숨기는 데 이바지한다. 여성 노동자들과 소녀들이 세계적인 범위에서 여전히 불균형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받고 있지만, 소년과 남성들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용 가능한 자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스스로 격리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간혹 성행위와 한때 유쾌하다고 생각했던 여타의 활동에 대해 완전히 흥미를 상실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치료 받지 않은 트라우마와 그에 따른 노동 불가능에 의한 빈곤이 결합하면 이 소년들과 남성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16) 그들이 경험하는 오명 때문에 그들은 종종 자신들이 겪었던 폭력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전한다.17) 라이베리아, 우간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의 나라들(post-Yugoslav countries)에서 발발한 전쟁들에 대한 연구들도 남성과 소년들이 목표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시에 자행 되는 성폭력은 모든 젠더의 노동자들에게 모욕을 주고 위협하고 복종 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믿음과는 반대로, 법률을 바꾸고 성폭력의 생존자들에게 배상금을 주는 행위로는 충분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 만행이 자행 되는 것을 제지하지도 못할 것이다.18) 「제국주의와 세계 경제」에서 부하린이 이 사정을 잘 표현한 바, 그는 “세계 자본의 압제 아래 놓인 인간 사회 전체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과 피와 오물 속에서) 이 모순에 헌사를 바친다”라고 진술했다.19) 중상주의적 생산 관계와 자본주의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지속되는 한, 군국주의와 전쟁과 성폭력도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양심 상 우리가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전쟁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고 구출할 전쟁, 즉 계급 전쟁이다.20)

 

기후 변화

 

기후 위기가 악화하면서, 젊은 노동자들은 환경 재앙이 발생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점점 더 아이를 가지는 것을 꺼려한다. 다양한 요인 탓에 미국의 출생률이 쇠퇴하고 있지만, 조사에 따르면 젊은이들의 3분의 1 이상이 기후 변화 때문에 아이를 가지는 것을 재고하고 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일 연령대 집단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관측되었다.21)

 

기후 개혁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아이를 더 적게 가지는 것을 옹호해왔다. 기후 위기에 직면하여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이 점점 더 대중적인 입장이 되었다. 이런 식의 훈계는 비생산적이고 노동계급 가족에게 오명을 씌우는 행위인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적당한 성교육이나 피임 도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아이 한 명을 더 적게 가지면 1년에 이산화탄소를 58톤 절약하여 그만큼 온실가스 총량을 감소시킬 것이다. 부르주아 개혁가들은 자신들의 인구 억제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러한 통계에 집착해왔다. 그렇지만 니제르의 경우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출생률은 지니지만 일 인 당 탄소 배출은 가장 낮다는 사실은 문제의 장본인이 자본주의라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동일한 2017년 연구에 관여했던 기후 과학자 킴벌리 니콜라스(Kimberly Nicholas)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으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임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 연구의 맥락을 볼 때, 선진국에서 아이를 하나 덜 가짐으로써 절약되는 연간 이산화탄소의 양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방출될 (비현실적으로 장기적인) 탄소 배출 양을 고려하여 계산된 것이다. 최근 기후 위기가 증대된 것을 고려해볼 때, 지구가 총체적인 환경 붕괴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아이를 가는 것의 장기적인 결과는 유의미하거나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그와는 반대로 니콜라스 같은 기후 과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화석 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기후 의식적인 인구 억제론이라는 상표를 팔러 다니는 부르주아 개혁가들은 연구 결과를 맥락에서 떼어내어 죄의식을 느끼는 커플들에게 아이를 가지지 않게 하고, 온실가스 배출의 모든 책임을 개별 소비자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과학을 올바르게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 해결”의 부담이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사이에 자본가 계급은 죄책감 없이 마음껏 환경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 개인의 선택이 그 사람의 기여도를 감소시키는 데 약간의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출산 파업”은 아무리 많아도 자본주의적 축적에 의해 야기된 환경 손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 배출 가스의 급격한 증가가 보여주는 것은 끝없는 축적에 기초한 생산이 우리의 환경 위기에 책임이 있으며, 총체적인 환경 재앙을 피하고자 한다면 이윤보다는 인간의 필요에 기초한 새로운 생산양식을 향하여 계급 노선에 따라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22) 해답은 정치가들이 기후 개혁에 관하여 세계적인 합의에 도달하기를 기다리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늦기 전에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면 환경 파괴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일에 결코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들이 그렇게 할지라도, 그들의 개혁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다. 생산이 사회적이고 우리의 개발이 자유로운 세계에서만이 우리는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생태학적 몰락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다음 부분에서는 우리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미치고 있는 그리고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충격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2022년 7월 2일

EK (ICO) and KM (IWG)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T)

옮긴이 ㅣ 김종원

 

 

<주>

1) 새로운 아랍, “시리아의 사별한 여성들은 생활비와 착취로 고통 받고 있다”, 「새로운 아랍」, 1. 29, 2019 alaraby.co.uk.

2)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못한다.’: 분쟁으로 10년 간 심화된 식량 불안정에 직면한 시리아 여성, 2. 2021 reliefweb.int.

3) Daniel Hilton, “시리아 경제에서 여성 역할의 변화”, 「News Deeply」, 12. 22 2017 newsdeeply.com.

4) Mehmet Azalp, “전쟁으로 황폐해진 시리아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은 사람들을 기아 위기에 처하게 했다”, 「The Conversation」, 9. 18, 2020, theconversation.com.

5) Micaela Fischer, “시리아 산모 건강의 위험한 현실”, 「Borgen Magazine」, 9. 30 2017.

6) UN 아동 기금, "예멘: 전쟁 지역에서의 육아 - 예멘의 분쟁은 산모와 신생아의 삶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 「유니세프」, 2019년 6월

7) Henrietta Fore, “아프가니스탄에서 조혼의 위험에 처한 소녀들”, 「유니세프」, 11. 12, 2021, unicefusa.org.

8) Leah Rodriquez, “조혼으로부터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취할 수 있는 5단계”, 「Global Citizen」, 1. 14, 2022, globalcitizen.org.

9 )Klasbatalo, “공포, 세계 제국주의의 공포”,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5. 15 2018, leftcom.org.

10) Brenda Duplantis, “군사적 성적 외상 및 통계에 대한 사실”, 「Hill&Ponton」, 9. 18, 2020, hillandponton.com.

11) Haley Britzky, “DoD IG: 전투보다 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 군대 성폭행”, 「Military」, 11. 5, 2019, military.com.

12) “야지디족(Yazidi) 어머니들은 끔찍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 아이를 버리거나 집에 갈 수 없다”, National Public Radio, 5. 9 2019, npr.org.

13) Lucy Anna Grey, “잊혀진 여성: '분쟁의 페이지를 결코 넘기지 않는' 국가의 미래는 무엇인가?”, 「The Independent」, 6. 3 2019, independent.co.uk.

14) Aryan Baker, “비밀 전쟁 범죄”, 「TIME」, 3. 10, 2016.

15) 아프가니스탄 조사 보고서, afghanistaninquiry.defence.gov.au.

16) Sarah Chynoweth, “’시리아 전쟁에서의 남성 강간과 성 고문: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The Guardian」, 11. 22 2017, theguardian.com.

17) “시리아 남성도 학대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 「Arab World」, 9. 11 2018, arabnews.com.

18) Ewelina U. Ochab, “분쟁 중 성폭력 근절을 향하여”, 「Forbes」, 6. 14 2019, forbes.com.

19) 니콜라이 부하린, 「제국주의와 세계 경제」, 1917, marxists.org.

20) CWO, “제국주의 대학살에 맞서 :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5. 30 2018, leftcom.org.

21) Sonia Elks, “새로운 '기후 파업': 기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짐에 따라 아이를 선택하지 않음,” 「Reuters」, 5. 12, 2019, reuters.com.

22)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기후 변화 : 자본주의가 문제다”, 「오로라」, 5. 3. 2019, leftcom.org.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7-02/malignant-ulcers-of-capitalism-the-proletarian-struggle-for-reproductive-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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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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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선거 방침 결정을 앞두고 우리의 입장을 다시 밝힌다. 우리는 선거주의와 조합주의를 반복하는 민주노총의 '노동 중심의 진보 진영이 단결하는 정당 건설'이라는 '안'을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우리가 부르주아 선거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의 소책자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를 참고하기 바란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 팬데믹,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로 인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재앙 앞에 또 하나의 부르주아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내년 총선에서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민주적인?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스스로 권력을 갖지 않은 한 부르주아 선거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동안 이러한 선택을 반복해온 노동계급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국회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하거나 누구도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위험한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가짜 ‘노동 존중’을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골적으로 친(親)자본 정책을 펼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온갖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 정치인들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그것은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좌파/노동 정당들이 자신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였다.

 

부르주아 의회 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 선거와 의회제도는 노동계급에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자신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고, 투표행위로 자신도 권력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선출된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표가 필요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의 부르주아 선거에서도 주인공은 ‘유권자’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자본’이고, 모든 선거 과정과 결과는 그들이 정한 규칙대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서 희대의 코미디와 같은 선거법을 만들고 마음껏 농락한 자들이 바로 노동 악법을 함께 만들고,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장애인, 빈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좌파 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자리 잡으려는 세력이 여전히 많다. 이번에는 '노동 중심의 진보 진영이 단결하는 정당 건설'이라는 선거용 가설정당 안이 다시 등장했다. “이쯤 되면 ‘선거 중독 당’이다. 여기에 최소한 노동계급정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코뮤니스트」 창간호, 발간사)

 

이들의 곁에는 ‘계급의식’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는 ‘선거주의 좌파’ 가 늘 함께하고 있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 그들은 노동자 정치를 노동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표 구걸하는 것을 ‘선거 투쟁’으로 미화해 왔다.

 

하지만 노동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물도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없다. 선거제도 자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제도와 통치기구를 유지하고, 노동자에게 ‘투표 기계’로서 수동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정치에서는 대중 투쟁의 성과조차도 전문 정치인들이 위임받아 정파적으로 이용한다. 우리는 그동안 부르주아 정치에 기댄 투쟁이 어떠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투쟁으로 지켜내지 못한 권리가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지는지를 수없이 경험해왔다.

 

노동계급에 쓰디쓴 패배감만 안겨준 부르주아 정치와 선거 참여를 조금이라도 반성한다면,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노동계급의 자리로 돌아와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전 지구적 재앙인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면하여 세계의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더욱 큰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선거 이후 그 결과와 관계없이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이다. ‘위기 극복’과 ‘국익’을 강조하는 지배계급의 선전에는 ‘노동계급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 지금은 경제 위기, 기후 위기, 팬데믹에 이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거나 심각한 생계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전쟁에 의한 파괴를 통한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낮은 이윤율의 더 깊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다. 자본주의 위기는 우리를 전쟁과 야만으로 이끈다. 전쟁은 노동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지만, 지배계급은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인다.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동안에도 지배계급은 이윤 창출을 위해 착취를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데 몰두했다. 일련의 재앙은 자본주의 존재 자체가 노동계급과 인류의 생존,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체 존립과도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전쟁과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이윤추구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다. 이것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나 대표를 잘못 선출해서가 아니라 명백하게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 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 노동, 인간 자원과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해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하는 것뿐이다.

 

노동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부르주아 국가는 계급 위에 있는 기관이 아니라 자본의 지배를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억압과 통치의 기구이다. 부르주아 국가는 혁명적인 방법으로 전복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조직화 기구로 대체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조직화 기구의 역사적 형태는 ‘노동자평의회’이다. 노동자평의회/프롤레타리아트 총회는 대의제와 수동성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자발적 활동에 기반을 둔다. 노동자평의회의 원칙은 상시적인 대표의 선출 및 소환, 선출된 공직자의 활동 보고 의무,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통제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혁명의 과제는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떠한 혁명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지 죽어 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미래이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집단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자본주의 위기를 전가하는 자본가계급의 총공세에 맞서 대대적인 투쟁에 나서자!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2023년 4월 6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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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Zimmerwald Left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From the Zimmerwald Left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September 1915 - March 1919: From the Zimmerwald Left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An Event from 102 Years Ago

From 2-6 March 1919, 102 years ago, 52 delegates from more than 40 political groups from various countries outside Russia gathered in Moscow. The five-day congress became the first congress of the Third International, abbreviated as the Comintern and also known as the Communist International. This event marked a key point in the development of revolutionary proletarian organisations.

The Congress was held at a historical moment when the proletariat made its greatest challenge to the capitalist order. Lenin revealed the perspective of the Third International with "revolutionary optimism" through a phonograph voice recorded at the end of March after the Congress:

Today, workers who are faithful to the cause of throwing off the yoke of capital call themselves 'communists.'... Soon we will see the triumph of communism around the world. We're going to see the foundations of the Soviet Union of the World.

The Foundation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 Minutes and Documents of the First Congress: March 1919, Ed. John Riddell, Anchor Foundation, 1987 p.316

He then wrote the following article in April:

A new era in world history has begun. Humanity is throwing off the last form of slavery: capitalist, or wage slavery. By emancipating themselves from slavery, humans will move towards true freedom for the first time.

The Third International and its Place of History. The translation here is an improvement on the original which can be found in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9, Moscow, 1964, p.307

The foundation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thus expressed confidence in the class struggle of the world proletariat and hope for a world revolution. But for the whole capitalist class and its minions, it was an unpleasant memory. The revolutionary wave at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in particular was a horror and nightmare for them. The victory of the Russian proletarian revolution in October 1917, the mutiny in the trenches, the abdication of Emperor Wilhelm in Germany and the signing of an armistice in the face of working class revolts and riots, the German workers' uprising, the establishment of workers' council republics in Bavaria and Hungary along Russian lines, mass strikes in Britain and Italy, and the revolts of the French fleet and army as well as some British troops who refused to take up arms against Soviet Russia.

Although it was already 102 years ago, the foundation of the Comintern was the culmination of a global wave of revolution from 1917 to at least the end of 1923, from Europe to Asia and from North America to Latin America. This wave of revolution was the response of the international proletariat against the First World War, the four-year imperialist war that led to a new division of the world between capitalist countries.

However, in the history of this class struggle, there were major divisions and turning points within the proletarian movement. It is the attitude of socialists and proletarians towards imperialist war during the First World War and its consequences. The imperialist wars of 1914 and the Russian Revolution of 1917 confirmed the Marxist view that capitalism would inevitably enter a "century of social revolution" and fostered fundamental divisions within the proletarian movement. At the time, the main social democratic partie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supported the imperialist war, even echoing earlier Marxist writings, and denounced the October Revolution, arguing that Russia still had to go through a period of bourgeois development. They had entered the camp of the bourgeoisie when they became recruits for the imperialist war of 1914 and police dogs for the counter-revolution of 1918. The socialist organizations, which started with Marx and Engels, were on the side of the class enemy for the first time.

This showed conclusively the fact that fidelity to the class and the revolution is evidenced not by hypocritical declarations or party signs, but by living practice. It was all the left currents within the Second International that single-handedly raised the flag of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during the imperialist massacres, that reassembled in defence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in Russia, and that led the strikes and uprisings in numerous countries during the war. And it was the same current that provided the core of the new Communist International, which was founded in 1919.

Betrayal and the Left in the Second International

Within the Second International, Lenin and Rosa Luxemburg were first able to recognize the changes in the capitalist period that occurred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had reached its peak and has come to dominate the entire planet. As Lenin said, the period of “imperialism, the highest phase of capitalism” had now begun. The upcoming European war at this period would be an imperialist world war between capitalist states over the division of colonies and their influence. It was the left of the Second International that led the International and the proletariat into battle against an opportunist camp that increasingly betrayed the principles of proletarian struggle day by day. At this crucial moment of struggle, Rosa Luxemburg, who drew lessons from Russian experience of the mass strike in 1905, linked the imperialist war to the mass strike and the proletarian revolution.

In 1907, an international congress was held in Stuttgart. The Congress adopted a major amendment proposed by the left and submitted by Rosa Luxemburg and Lenin.

If, however, a war should break out, socialists are obliged to intervene to bring fighting to a speedy conclusion and to exploit in every way the economic and political crisis created by the war to rouse the masses and thus accelerate the overthrow of capitalist rule . . .

Quoted from The Attitude to the Socialist Currents and to the Berne Congress, adopted by the First Congress of the Comintern in Theses, Resolutions and Manifestoes of the First Four Congresses of the International, Ink Links 1980 p.22

The Basel Congres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in 1912 reaffirmed this position in the face of the growing threat of imperialist war in Europe.

The bourgeois governments should not forget that the Franco-Prussian war resulted in the revolutionary rising of the Paris Commune and the Russo-Japanese war led to the development of the Russian revolutionary movement. The workers consider it a crime to shoot one another for the sake of capitalist profits, dynastic competition and the flourishing of diplomatic treaties.

ibid.

The First World War broke out on 4 August 1914. The main partie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especially the French and German Social Democrats and the British Labour Party, who were in the hands of opportunists more than anyone else) voted in favour of funding the war, calling for a "sacred alliance" with the bourgeoisie in "defence of the homeland" and against "foreign aggression". In France, they were even rewarded with ministerial positions in exchange for abandoning class struggle. They received theoretical support from 'centrism' (the middle ground between the left and right wings of the International) when Kautsky, who was called the 'Pope of Marxism', distinguished between war and class struggle, declaring that class struggle was only possible in 'peacetime' and 'impossible until the war is over'. Eventually, the Second International ended its life shamefully as it began to crack due to opportunism and was broken by the patriotic flood and the war frenzy.

To the class-conscious workers, socialism is a serious conviction, not a convenient screen to conceal petty-bourgeois conciliatory and nationalist-oppositional strivings. By the collapse of the International they understand the disgraceful treachery to their convictions which was displayed by most of the official Social-Democratic parties, treachery to the most solemn declarations in their speeches at the Stuttgart and Basel international congresses, and in the resolutions of these congresses, etc.

The Collapse of the Second International, Lenin Collected Works, 1964, Volume 21 p.207

Only a few stood tall in the midst of this storm, especially the parties of Serbia, Bulgaria, Poland and Russia. Elsewhere there were isolated revolutionaries and revolutionary groups. The Dutch “Tribune" group around Gorter and Pannekoek, as well as Rosa Luxemburg were faithful to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and class struggle and attempted to reorganise.

The death of the Second International was a profound defeat for the proletariat. It made them bleed in the trenches. Countless revolutionary workers were slaughtered. The 'revolutionary social democrats' had lost their international organisation. It certainly had to be rebuilt.

The Second International is dead, overcome by opportunism. Down with opportunism, and long live the Third International, purged not only of “turncoats”(as Golos wishes), but of opportunism as well.

The Position and Tasks of the Socialist International, Lenin, 1 November, 1914, Collected Works,1964, Volume 21 p.40

The Zimmerwald Left: The Struggle for a New International

From 5 to 8 September 1915, an international congress was held in Zimmerwald, Switzerland, a neutral country where more than 40 anti-war socialists gathered. An important issue in the debate between opposing political lines in Zimmerwald reverberated across Europe in the following years. And it still affects what we have to do today.

It was more than a year later that the Second International collapsed like a house of cards, as its main political partie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joined in supporting the belligerent imperialist war aims on their respective 'homelands'. For revolutionary Marxists, many of whom had struggled against revisionism before the war, the capitalist world imperialist war was perceived as a historical turning point in that the objective conditions for socialism became a reality. There was no doubt in the minds of revolutionary Marxists that workers had no homeland and that they needed a new International, firmly committed to Marx's principles, to lead the struggle for socialism. From Trotsky, who wrote about the new International shortly after the war, to the Dutch "Tribune" group of Pannekoek, Roland Holst and Gorter who emphasised that "this war is the melting pot in which the New International will be born" in relation to imperialism, world war and social democracy. The German left, which separated in Borchardt's "Lichtstrahlen" group, the Bremen left around Johan Knief, Paul Frölich and Karl Liebknecht, and the Social Democratic parties of Poland and Lithuania (the party of Rosa Luxemburg and Leo Jogisches), announced as war broke out, "The proletariat declares war against the government, the oppressor! " and tried to organise a general strike against the war on the basis of revolutionary defeatism.

Some of this current considered the urgency of establishing a new International that would publicly confirm the betrayal of the Social Democrats more important than other socialists. (For example, Hermann Gorter took a break from political activity for two crucial years. Others, such as Rosa Luxemburg, expected the new International to be built after the war – or rather, as a product of working-class struggle).

Those who wanted to establish a new International wanted not only to claim the right to speak in the name of the working class, but also to offer political direction on how the struggle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class could be unified into a revolutionary struggle for socialism.

At the time, however, there was confusion, even among internationalists, as to whether "war against (imperialist) war" meant that the proletariat should struggle for "peace" as a precondition for building socialism, or whether, as Lenin insisted on prioritising, that in the struggle against the terrible costs of war workers would first have to overthrow their governments and solve the problem themselves about whether this would lead to a socialist revolution.

Based on the experiences of the Paris Commune and the Russian Revolution of 1905, he argued for the possibility that imperialist world war itself could create revolutionary conditions. He argued that if the working class wanted to defend its own interests, it should seize power on its own and start a global struggle for socialism.

Once the war is on, it is impossible to escape it. One must go and do one’s duty as a socialist. … it is Utopian to imagine that the proletariat will tread a peaceful path to it. It is impossible to go over from capitalism to socialism without breaking up the national framework, just as it was impossible to pass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without national ideas.

From a report of Lenin’s Lecture on “The Proletariat and the War” in Golos 37/38¹, October 1914. the full document can be found at marxists.org

From this point of view, it follows that:

The conversion of the present imperialist war into a civil war is the only correct proletarian slogan, one that follows from the experience of the Commune, and outlined in the Basel resolution (1912); it has been dictated by all the conditions of an imperialist war between highly developed bourgeois countries. However difficult that transformation may seem at any given moment, socialists will never relinquish systematic, persistent and undeviating preparatory work in this direction now that war has become a fact.
It is only along this path that the proletariat will be able to shake off its dependence on the chauvinist bourgeoisie, and, in one form or another and more or less rapidly, take decisive steps towards genuine freedom for the nations and towards socialism.
Long live the international fraternity of the workers against the chauvinism and patriotism of the bourgeoisie of all countries!
Long live a proletarian International, freed from opportunism!

Lenin War and Russian Social Democracy, written October 1914, published November 1914 in Collected Works, 1964, Volume 21 p. 34

While in exile in Switzerland, Lenin engaged in a number of struggles to acquire a proletarian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that would turn imperialist wars into civil wars. First of all, some of the Bolsheviks in exile abroad thought it was their duty to volunteer for the French army (a position supported by Plekhanov, once considered the mainstream of Russian Marxism). At the Berne Conference of the Social-Democratic Labour Party (RSDLP) group abroad in early 1915, the French Bolshevik group opposed Lenin’s call for revolutionary defeatism in favour of a 'struggle for peace'.

On the international front, the task was essentially the same. He was preparing the base for new international action, with the basic line that workers would not be loyal to existing governments and would turn imperialist wars into civil wars, in order to counter the claim that "nothing could be done" during the war (in particular Kautsky's words that the International was a weapon in peacetime, but would be revived after the war), to unite forces in struggle to destroy social peace and defend workers' own interests.

By 1915, there were signs of increased war fatigue. In Germany, there were street protests over the cost of living as people ignored martial law. Since April, strikes in Russia had increased and become more political. In July, the Petrograd Bolsheviks led a boycott of the War Industry Committee, which was established by the government to recruit workers to the war.

Even the obsolete International Socialist Bureau was dragged into approving a "peace" conference. In January, Social Democrats from the neutral countries met in Copenhagen and appealed to socialists in the belligerent countries to take action to stop the war. In February, the British Independent Labour Party (ILP) held a 'socialist' congress in of the Allied nations, chaired by Keir Hardie, who prevented the Bolshevik Litvinov (Maximovich) from reading the Internationalist Manifesto.

The resolution adopted at the congress stated that war is the common responsibility of all nations as a result of the conflicts created by capitalist society, imperialism and colonial competition. Nevertheless, it passed a resolution saying that a German victory would destroy freedom, national independence, and confidence in treaties; that workers of the Allied countries are not fighting against the German and Austrian people, but are fighting a defensive war against the German and Austrian governments, and must resist attempts to turn it into a war of conquest. Specifically, the resolution called for the restoration of Belgium, the autonomy or independence of Poland, and the settlement of all European national problems from Alsace-Lorraine to the Balkans on the basis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In April, the Allied Socialists held a similar meeting in Vienna to that of the members of the Social Democratic Party, and passed a resolution dealing primarily with post-war relations.

But when the Italian and Swiss Social Democratic Parties proposed an anti-war congress of workers' organisations, regardless of "their countries'" role in the war, the International Socialist Bureau (ISB) was not interested. They decided to push ahead anyway and called a congress of all socialist parties and workers' organisations that could adhere to the fundamentals of class struggle and struggle for immediate peace through simultaneous action. In an organisational sense, Zimmerwald was free from the burden of the rotten Second International. However, it was not intended to undermine social democracy politically. Zinoviev suggested that the purpose of the upcoming competition should be to "organize around a clear revolutionary line and prepare for a clear break with the old international," but received little attention. Nevertheless, Lenin perceived it as a process to get the revolutionaries to be listened to, to expand their influence, and to integrate the forces necessary to build a new international. In the months leading up to the congress, there was an intensive exchange of correspondence and discussion among the left about the key themes that should be included in a joint statement on the proletariat and war. Radek and Lenin, both drafted the resolution.

Alexandra Kollontai organised the participation of Swedish and Norwegian left socialists. Marxist groups around the Tribune in the Netherlands have been in contact.
The Bolsheviks published a German-language pamphlet for distribution to delegates ... The pamphlets included "Socialism and War" by Lenin and Zinoviev, as well as resolutions of the Central Committee and the Berne Congress. It also included the Bolshevik resolution of 1913 on the national question, on which the Russian revolutionaries disagreed with many of their left allies.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Documents, 1907-1916, the Preparatory Years, Communist International in Lenin's Time, ed. John Riddell, Monad Press, 1984

This last theme (the national question) was a controversy that would not be resolved before the formation of the Third International. But in the run-up to the Zimmerwald Congress, Lenin had to give way to the majority. In the pre-conference debate over the wording of the statement to be presented by the left, the majority of the eight delegates preferred the draft of Radek rather than that of Lenin. The final version makes no mention of oppressed or oppressor peoples.

However, this was not a deterrent to the majority, who could not tolerate even the semblance of revolutionary defeatism. The resolution of the left was rejected. The Zimmerwald Declaration, as it has come to be known historically, was the result of a compromise drafted largely by Trotsky. Nevertheless, the left signed it because they were able to add to the clauses they found problematic. In September 1915, Lenin described the congress of Zimmerwald as the 'first step'.

With all its contradictions and timidity ...it is a fact that this manifesto is a step forward towards a real struggle against opportunism, towards a rupture with it.

Lenin The First Step in Collected Works, Volume 21, 1964, p. 387

The second Zimmerwald (Kienthal) is undoubtedly a step forward. ... So what should we do going forward? We must continue our determination and our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social-democratic Third International. The Zimmerwald and Kienthal congress showed that our path is the right one.

Zinoviev, 6 October 1916

The biggest advance in this event was that most of the internationalists came together and organised an independent left. Before leaving Zimmerwald, they founded the Zimmerwald Left Bureau, consisting of Lenin, Zinoviev and Radek. The crisis caused by the war in 1916 and the crisis predicted by Lenin became acute throughout Europe. The big difference between the Zimmerwald majority, which did not completely break away from the Social Democratic Party, and the left, became a rift. After the February Revolution broke out in Russia, Lenin argued that 'the swamps of Zimmerwald can no longer be tolerated' and that what was needed now was the immediate building of a 'new proletarian International', 'composed only of the left'.

The Russian Proletarian Revolution of 1917 ushered in a revolutionary wave across Europe. The threat of proletarian struggle confirmed to the international bourgeoisie that it had put an end to the imperialist carnage. The slogan of Lenin became a reality. The Russian and international proletariat turned the imperialist war into a civil war, and in doing so paid tribute to the left of the Second International by applying the famous Stuttgart resolution.

The First World War decisively pushed the parliamentary right wing of the Social Democratic Party into the bourgeois camp. The revolutionary wave brought centrist pacifists into the fight against the bourgeoisie, but many of them, especially leaders like Kautsky, jumped into the bourgeoisie's camp. The International no longer existed. The new party, created by the left who had split from Social Democracy, began to use the name 'communist' party.

The revolutionary wave encouraged and called for the building of a world party of the proletariat, the Third International. In 1919, at the height of the post-war revolutionary wave, the position of the founding congres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represented the most advanced position of the proletarian movement. A complete break with the social-patriotic traitors, adoption of methods of mass action demanded by the new period of capitalist decline, the destruction of the capitalist state and the international dictatorship of the workers' councils. This doctrinal clarity reflected the enormous momentum of the revolutionary wave, but it had been prepared in advance by the political and theoretical work and struggle of the left revolutionaries within the old Second International.

The Significance of the Zimmerwald Left

The significance of the Zimmerwald Left was, above all, that it was a step towards the founding of a new International. And the significance of the founding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is that it was the "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However, the move from the Zimmerwald left to the new International came too late. The Communist International was founded just over a year after the October Revolution of 1917 and two months after the first defeat suffered by the Berlin proletariat. For many years afterwards, the international revolutionary wave was defeated and declined, and the Russian proletariat became increasingly isolated. This isolation was a decisive factor in the degeneration of the proletarian dictatorship. Because of this, the Communist International could not stop the spread of opportunism and died after continuous degeneration.

So what is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Zimmerwald left for revolutionaries today? It means that the international working class still needs an international revolutionary party like the Communist International. Just like in 1919, the working class today is crushed by severe economic suffering under a declining capitalism and faces the threat of imperialist war, yet its struggle against the ravages of capitalism is sporadic and isolated. The great imbalance in power relations between classes requires a revolutionary party to play a political and organisational role in the class struggle, even more so than 102 years ago. This is because capitalist ideology permeates the working class not only through the capitalist class, but also through labor/leftist parties and trade union organizstions that were once the organisation of the working class (like the Second International). They are sometimes critical of capitalism, but they are always practically useful to the capitalist class in suppressing the struggles of workers, and consequently play a role in maintaining capitalism. For the working class to regain its revolutionary consciousness, and for the upcoming all-out war with the capitalist class, an international revolutionary party with a clear platform and the ability to take internationalist action is essential.

As the most conscious part of the class, the revolutionary minority, communists must not be passive observers in the face of capitalist decline, imperialist wars, the COVID-19 pandemic and the resulting capitalist devastation of working class lives. Lenin said that there are no truces in class war. The slogan "turn the imperialist war into civil war" is not simply asking revolutionaries facing imperialist wars today to repeat the slogans of the past in every situation. It is the basic activity of communists to take a working class position, even in everyday life, and not to sacrifice themselves in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or "national defence" or "preparing for war", but to "struggle for the destruction of the capitalist state". We workers have to recognise that "there is no homeland to defend" and that "the only war worth fighting is the class war". We have to take up the struggle of the world proletariat, not that of some nation or ethnicity.

The internationalist communists of the world must patiently reorganise their revolutionary forces to build a future international revolutionary party, just as the Zimmerwald left did over a century ago. Against imperialist wars, we must defend the principles of internationalism and engage in joint action and international solidarity, take up international class struggle to turn wars into civil wars (class wars).

We are not the party, but we exist for the party. We appeal to comrades with the same principles as us to struggle together for "no war but the class war" and to build the Communist Party (the International Revolutionary Party) in the spirit of the Zimmerwald left and the founding congres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that we inherited.

No War but the Class War!
For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 International Class Struggle!
Build a New International – a World Revolutionary Party!

Hyeong-ro-Lee
Internationalist Communist Perspective
 
SOURCE : The Communist no. 9 (May 2019, reprinted March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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