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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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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강사 ㅣ 윤태상 

일시 ㅣ 2024년 6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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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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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를 읽을 때마다 항상 국내에서는 알기 힘든 코뮤니스트 관점에서의 국내 및 국제 정세, 코뮤니즘 이론, 그리고 코뮤니스트 운동사 등을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또, 가끔 현실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로 인한 여러 사회 문제점으로 허무주의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코뮤니스트를 읽으면 해결점을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참 좋더군요.

 

앞으로도 10년을 넘어 수십 년간 계속될 「코뮤니스트」!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독자 Николай Р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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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란 본래 더럽고 부패한 탐욕의 부산물이다.

 

먹고사는 문제와 복지사회를 거론하며 경제가 어쩌고, 정치가 저쩌고 떠들고 있지만, 자본주의 부패에 찌든 정치인, 자본가, 언론인, 학자 등 썩은 내가 진동하는 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진보니, 보수니, 거짓 선동을 앞세워 수많은 무산자계급을 현혹하고 기만하고 있을 뿐, 그들은 자신들 탐욕의 배만 채우려 오늘도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들이 더럽히고 오염시키고 있는 어둡고 탁한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낼 정화수가 절실히 요구되지만, 그 많던 노동자 정치조직이나 노동조합, 진보 정당들도 하나같이 자본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혁명의 기운을 외면하고 진보니, 민생이니 망상에 빠져 배반의 길을 쫓고 있다

 

반동의 물결이 넘쳐 혁명의 길이 요원한 듯 보이지만, 백여 년 전 암흑시대에도 수많은 코뮤니스트는, 끊임없이 봉기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계급 없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자 꿈을 꾸며 투쟁해왔다.

 

반동 주류 언론에 맞서 지하 전단을 만들어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부르짖고 혁명을 전파했다.

 

백 년이 훨씬 더 지나고 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혁명은 절대 선이다.

 

빈곤과 가난과 차별, 불평등한 사회모순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다 코뮤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창간 11년을 맞는 「코뮤니스트」, 비록 주류 언론매체에는 단 1초도 등장하지 않고, 언더그라운드에서만 11년 긴 세월을 노동자평의회와 코뮤니스트좌파 이론을 알리고 자본주의 전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내가 그들 코뮤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다.

 

함께 행동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지면으로나마 코뮤니스트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 독자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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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행동주의 반대

행동주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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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다양한 운동에서 이른바 "엉망진창"에 대한 참고 사항1)

 

1) 행동주의는 활동에 대한 병적 집착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더 정확하게는 혁명적 관점의 부족을 보완하고 위장하기 위한 자발적인 활동의 발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즉각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다. 즉각적인 행동을 목표로 하거나, 실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수정'하기 위한 성찰을 희생하면서까지 행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다.

 

“운동 최악의 퇴행 에피소드의 뿌리에 있는 일반적인 일탈은 '정치적 존재'를 나아가야 할 길을 제기하는 운동 활동에 뛰어들게 하는 원칙의 명확성과 연속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글을 참조하고 이전 경험을 통해 '멈추고 결정'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계속 행동하라." (「불변성」(Invariance) N°3 : 밀라노 회의. 1952, p.7, "행동주의에 대한 잘못된 의지")

 

이러한 우회는 곧 움직이거나 소음을 내거나 폭력적인 모든 것에 대한 사과로 해석된다. 이는 통합된 스펙터클의 ‘영원한 현재’가 악화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Debord) 이것은 양과 같은 군중을 연출하고 무력감을 분노로 배가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보완 요소이다. 평화주의와 사교적 행렬의 꼬리 또는 선두에서 제한된 공간을 '화려한 반전, 다소 '군사주의적'이지만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형태의 '대결'에 바치는 순간이다.2)

 

물론 이 두 가지 현실은 대체로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정치를 구경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계획된 정치적 패배의 보다 '정력적인' 변형을 제공한다.

 

2) 역사적 목적에 관한 관심을 두지 않고 행동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짧은 기간만 뉴스 장면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이는 역시 당면주의이다. ‘승리’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일시적이며, 그 핵심은 부르주아지에 대해서 필요한 노동계급의 통일이며, 위태로운 본질적 정치 문제와는 결코 관련이 없다. ‘패배’가 있다면, 의지 부족이나 ‘불균형적인’ 억압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는 일, 가치, 국가의 중심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적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당대의 순간적인 이익에 직면하여 주요 관점을 망각하는 것, 궁극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순간적인 성공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현재를 위해 운동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정직한' 의도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기회주의이며 항상 기회주의가 될 것이며, 아마도 가장 위험한 것은 '정직한' 기회주의일 것이다."3) (F. 엥겔스: 1891년 사회민주주의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

 

3) 이런 의미에서 행동주의는 정치적 기회주의의 특정 형태일 뿐이다. 기회주의는 합법성과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지형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근육질의 모습으로 의회 외 분야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것은 자본의 지형과 개혁에 대한 반대 경쟁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정주의이다.

 

"기본적으로 수정주의자의 일탈은 매우 결정론적이지 않고 활동적이었다. 보기를 들어 베른슈타인은 진화론, 개혁주의자, 율법주의자였다. 당장은 달성할 수 없는 혁명적 목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역사적 궤적의 빛나는 비전에 눈을 감고 즉각적인 결과가 전부라고 말하면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적이고 일시적으로 축소된 즉각적인 목표를 제안하며 그러한 결과를 의지로 모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였다. 소렐 학파의 폭력 당파인 신디케이트 주의자들도 같은 말을 했고 같은 방식으로 결말에 이르렀다. 전자는 의회 채널을 통해 입법 조처를 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였고, 후자는 회사와 부문의 승리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둘 다 역사적 과제에 등을 돌렸다." (「불변성」(Invariance) N°3 : 밀라노 회의, 이미 인용됨)

 

4) 이러한 운동 성격의 가장 눈에 띄는 순응주의적 특징 중 하나는 이 운동이 모두 민주적 정당화의 틀, 즉 노동조합 및 기타 단체의 경우 거리의 '대중적' 정당화, 또는 극좌/극우 정당의 경우 의회의 정당화라는 틀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러한 운동은 항상 민주주의의 틀, 즉 자본과 그 대리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엄청나게 폭력적인 순간에도 노동조합은 이러한 운동의 통제권을 잃은 적이 없으며, 이는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독립 조직, 심지어 소수 조직조차도 완전히 부재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자본과 자본의 여러 이데올로기적 주체 중 하나 또는 다른 형태에 포섭되지 않고는 결코 그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다. 최근 연금 개혁 반대 운동에서 국가를 마비시키지 않은 선택적 봉쇄와 부문별 파업(일부 주요 도시의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과 같이 약한 노동자 대표단은 부문별로 행진한다. 이러한 운동의 계급 구성은 중개 구조에 의해 원자화된 개인들의 합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을 '국민'으로 정의하는 유순한 대중을 구성한다.4)

 

2018년 말과 2019년 초에 있었던 이른바 '노란 조끼 운동(Gilets Jaune movement)'에서도 이미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특정 형태의 시위와 단편적인 반대(교통 서클 점거 및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반복적인 등반)가 이러한 유형의 '운동'의 본질과 정치적 의미를 가리고 위장하는 데 일조했다. 계급 사이,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으며, 특히 이러한 시위의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부분에서 극우 정체성주의 및 파시스트 세력과의 입증된 허점이 특징이다.5) 그러나 전반적인 정치적 의미는 본질적으로 ‘푸자드주의’(poujadism)6)과 유사한 공정한 국가(이 경우 연료에 대한 세금 인하)를 요구하는 ‘소부르주아’, 인민 투표 운동의 의미로 남아있다.

 

‘연금 반대 운동’으로 돌아가서,7) 그 ‘엉망진창’ 또는 ‘황색화’는 노조의 헤게모니적 힘과 계획된 패배에 대한 좌절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이것은 노조의 평화주의 외관만큼이나 반(反)혁명적인 노조의 어두운 면이다.

 

5) 행동주의는 또한 ‘전투성’의 병리 현상이다. 반(反)혁명의 시간성을 선천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전투적’으로 희생적인 사람은 편법으로, 즉각적이지만 헛된 희망으로, 무엇보다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도 오늘날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물론적 비판의 무기에 대해 성찰하고 적용하지 못한 채 동요하기만 한다. 반反)혁명의 장기적인 관점을 상실한 이 '전투 세력'은 부서진 상점 창문 몇 개와 불에 탄 쓰레기통(모두 체제에서 정당하게 보험에 가입된 것)이 혁명을 예고할 것이라고 믿지만, 이는 코뮤니스트 강령의 전파로 나아가는 어렵고 긴 노정을 막기 위한 사회 평화의 역풍, 조잡한 혁명의 예방 및 카타르시스적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행동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못’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노동운동을 괴롭히는 모든 ‘못’과 집착의 온상이다. 그러나 행동주의의 유행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 이론은 실제로는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의 민감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 행동가적 가식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투쟁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항상 반反)혁명의 승리가 그 특징이었던 때 이러한 현상이 가장 강렬했다. ‘코뮌의 블랑키스트 이민 계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발췌하여 1874년 데어 볼크슈타트(Der Volksstaat)에 게재된 엥겔스의 한 구절이 이를 입증한다. 

 

“혁명이나 반反)혁명이 실패한 후 해외로 도망친 이민자들은 열렬하게 활동한다. 다양한 색조의 정치 단체가 설립되어 각각 운동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반역죄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필멸의 죄를 비난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고국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조직하고, 음모를 꾸미고, 전단과 신문을 발행하고,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다시 하게 될 것이고, 승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맹세하며, 이를 예상하여 미리 정부 직책을 나누고 있다. 물론 환멸 뒤에는 환멸이 따르고, 이러한 좌절은 그들이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우연한 실수 때문이므로 상호 비난이 쌓이고 일반적인 난투극으로 끝이 난다."8) (A. 보르디가, 「코뮤니스트 투사」 6호, 1952년 3월 20일~4월 3일)

 

6) 행동주의는 따라서 자본의 극단적 좌파로서 좌파주의의 해체/재구성의 본질적 측면이다. "극좌"와 같은 최상급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9) 기본적으로 ‘극좌’로 정의되는 정치 운동을 불신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충돌의 미디어 이미지를 더욱 ‘무서운’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며, 실제로는 이념적이고 억압적인 실제 국가 테러리즘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초점은 국가(또는 국가 원수 개인에 대한)에 대한 ‘복수’와 이상주의적 반대의 필요성을 강화하여 일부 활동가들이 새롭게 ‘무장한 개혁주의’, 심지어 ‘녹색’으로의 일탈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특정 형태의 시위가 화려하게 굳어지는 이러한 과정은 실제 정치적 이해관계, 즉 전쟁으로 향하는 과정,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 임금 하락, 소외된 노동에 대한 거부, ... 그리고 다가올 기타 ‘자연적’ 및 건강 재난에 대한 공포심과 위장을 강화한다.

 

부르주아지가 제안한 또 다른 관점은 선거 마감일에 대한 관점인데, 이미 프롤레타리아트를 오도하고 속이는 주기적 성향을 충분히 입증한 바 있다.

 

"의회는 자본주의 체제에 특유한 정치적 대표의 형태이다. 의회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일반에 대한 맑스주의 코뮤니스트의 원칙적인 비판은 전체 국가 정부 기구가 지배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한 방어위원회가 되는 것을 투표권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권리는 국가의 대표 기관에 대한 선거에서 사회 계층의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지만, 그런데도 후자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투쟁의 역사적 도구로 조직된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관한 테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1920년, 각주 10)

 

2023년 7월 5일

Matériaux Critiques

 https://81b6bb22-93ff-445e-9132-db9118c0c19f.filesusr.com/ugd/ca292a_8f1c247f6b034aadb849db0c7dea2aef.pdf

 

 

<주>

 

1)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다양한 ‘운동’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통된 일탈주의적 실체, 즉 행동주의를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유사한 급진성과 현재의 반(反)혁명 노선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언론의 과장된 보도에 다시 한번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이것이 혁명적 집단과 동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과장된 허세이며, ‘이미지가 매개하는 사회적 관계’(Debord)로서의 구경거리의 일부이자 구색이며, 확고한 정치적 관점에 대한 암시를 선제적으로 무장 해제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믿는다. 과장된 묘사와 터무니없는 수식어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신비주의이며, 사소하고 진부한 현실에 무지하지 않았던 작가에게서 멀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2) 우리는 여기서 직접 행동, 사보타주, 피켓 라인 무장 등 노동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해방 프로젝트를 의식하는 독립적인 계급 운동에 봉사하는 수단에 해당한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사례는 계급투쟁에 유리한 시기에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내용과 급진적 행동 양식이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질문에 대해 독자들은 우리의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La soumission du procès de travail au procès de valorisation au travers de l' exemple du mouvement ouvrier américain (1887 – 1920)’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 monsite/archives

 

3) 맑스, 엥겔스 : 사회주의 강령, 74쪽, 스파르타쿠스, 파리, 1971

 

4) 이 질문에 대해서는 「중요 자료」(Matériaux Critiques) N°1 2020년 4월호 및 웹사이트에 있는 본문을 참조하시오. ‘프롤레타리아트 대 민중’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monsite/textesriti

 

5) 이 주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독자들은 S. Boulouque의 책을 참조하라. ‘노란 조끼를 입은 거짓말’, Serge Safran éditeur, Paris, 2019; 잡지: ‘조국도 국경도 없다’ N° 60-61, ‘노란 조끼와 혼란스러운 정치’, 2018.

 

6)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은 1950년대에 참여했던 푸자디스트 운동과 ‘노란 조끼’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했지만, 후자는 공통된 점을 제외하면 지도자도 없고 ‘표어’도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에 대한 ‘적개심’ 사이트 :

https://www.lefigaro.fr/flash-actu/2019/01/10/97001-20190110FILWWW00239-gilets-jaunes-des-similarity-with-poujadism-jean-marie-le-pen.php

 

7) 우리는 이미 2023년 3월 2일 입장문에서 이러한 계획된 패배에 대한 분석을 다루었다: ‘연금: 노동조합의 승리, 프롤레타리아의 패배’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monsite/textesritiques

 

8) 웹사이트: https://www.pcint.org/03_LP/512/512_activisme-1.htm

 

9) 물론 여기서 우리는 1920년대 초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혁명에 대한 혁명적 반대에서 비롯된 역사적 ‘극좌파’(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이탈리아 좌파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3/07/05/against-ac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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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데이먼 동지의 활동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데이먼 동지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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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 동지 사망 직후인 1979년 10월 16일

공개 시위 당시 작성된 보고서의 글

 

 

동지들,

 

우리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Pcint)을 대표하고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를 대표하여 데이먼 동지의 죽음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이 회의를 소집했다.

 

오노라토 데이먼은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의 정치 투쟁 역사에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다른 그룹과 흐름의 존재에 대한 언급에 더해 해외에서 제공된 언급은 데이먼 동지의 업적의 가치와 위상을 입증한다.

 

이 위대한 인물의 프로필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노라토의 교훈과 모범에 충실한 노동자 운동과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과 관련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에 직면한 제2차 인터내셔널의 수치스러운 종말에 대해 논의한다.

 

자본의 무한한 개혁적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환상은 당시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정당 내에서 기회주의와 수정주의의 대열을 확대했으며, 바로 이 기회주의가 그 틀을 부식시켰다.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해 항복한 바로 그 정당들이 제2 인터내셔널의 혁명적, 계급적 내용을 모두 빼앗아 갔다.

 

또한, 제2 인터내셔널 내 러시아에서 레닌의 투쟁은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이 노동계급의 혁명 과정 첫 단계이자 유일한 단계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인, 볼셰비키(RSDLP)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평의회에 기초하여 설립된 최초 노동자 국가 창조는 계급의 권력을 주장한다.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다른 유럽 및 인터내셔널 경험에서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힘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더욱 완전하게 정당들이 투항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탈리아 사회당(PSI)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지도 방해하지도 않는’ 신비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전술을 채택했다. 왜 그랬을까? 사회주의자 라자리(Lazzari)가 속임수의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PSI 내부에 방법과 맑스주의 원칙의 올바른 적용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방향에 충실한, 혁명적인 행동의 흐름이 퇴보하였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국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부르주아지의 권력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전쟁에 반대한다.

 

동지 여러분, 그의 모든 젊은 정신에 몰두한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아직 특정 형태의 선험적 기권주의로 나뉘지는 않았지만, PSI의 좌파 분파인 기권주의자 분파를 지지하는 오노라토 데이먼 동지를 만나게 된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불복종을 선동한 혐의로 1919년 감옥에 갇힌 것이 성원으로서 그의 활동 특징이다.

 

1919년 전쟁이 발발하자 제3 인터내셔널은 거의 레닌 동지의 강권에 의해 구성되었다. 혁명가들이 사회민주주의와 결별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자극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 조직의 형성 과정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이 자극이 운동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지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2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그들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보다는 다른 나라 코뮤니스트 세력 내부의 자주성과 성숙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쉽게 이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PSI의 좌파 세력은 이미 그들 자신을 사회민주주의 기회주의라는 이념적, 정치와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19년 볼로냐 대회에서 이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데이먼이 볼로냐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인터내셔널의 가능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명적 가르침의 귀중한 글꼴인 문서에 우리를 위해 기록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지연이 의심할 여지 없이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talia)의 행동 전망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볼로냐에서 이미 최종적으로 단절을 한 것이 이미 잘못이 아닌 것처럼 논의된다. 정말로 오류였나? 이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혁명가들이 미래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혁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반영하여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어본다.

 

"이 사실에 직면하여 인터내셔널 내에서 우리 자신을 격렬하게 배치하는 심각한 정치세력을 현명하게 제거함으로써, 이 나라에서 혁명을 위한 투쟁을 유일하게 보장할 정당으로서 기능하는 분파와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결정적으로 상실한 사회당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제약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사회당과 결별했다. 적절한 결단력과 적시성을 가지고 이 수준에서 일하지 않고, 필요한 역사적 순간에 당 건설을 하지 못했거나, 너무 늦어서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전면 후퇴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오노라토 데이먼)

 

볼로냐 이후, 분파는 이몰라(Imola)에서 다시 만났다.(1920년 11월 28일) 그곳에서 그들은 리보르노(Livorno)에서 열리게 될 대회(1921년 1월 21일)에서 분열을 준비했다. 리보르노에서 데이먼이 고수했던 분파와 「신질서」(Ordine Nuovo)의 설립이 당으로 함께 흘러 들어갔다. 보르디가 좌파의 지시를 받은 젊은 코뮤니스트당은 그들 자신의 개선된 투쟁을 수행했다. 톨리아티(Togliatti)와 베를링게르(Berlinguer)의 권력기구의 호모큘러스가 혁명적 역할을 포기한 것은 바로 이 당이었다. 그 기간 데이먼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talia)의 대리인이자 중앙 연합위원회 위원이었다. 그는 토스카나(Tuscany)에서 파시즘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었는데, 피스토이아(Pistoia)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총상을 입었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완전히 후퇴했음을 알 수 있다. 레닌이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끌어내며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 러시아혁명은 오히려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 노동자 국가에 있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굶주림과 내전의 폐허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이와 같은 보복 뒤에는 아직 원칙의 차원이 아니었던 첫 번째 항복이 있었다. 러시아 동지들은 경제 조직으로 돌아가도록 유도되었고, 자급자족의 대가로 가장 혁명적인 정당에서도 항상 존재하는 기회주의적 자극을 증가시켰다.

 

이탈리아 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에서도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럽이나 동양에서 승리한 혁명만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혁명 과정의 위험 징후를 경고했다.

 

오노라토의 말을 인용한다.

 

"1924~25년은 노동자 운동의 내적 발전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운동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이탈리아 좌파에게 부과된 추방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도부는 더 유연하고 타협하려는 성향이 강하며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형성 단계에서도 좌파와 함께 존재했다.“

 

"새로운 방향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람시 동지의 작업과 사상과 관련시키지 않고는 정확하고 책임감 있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신화화되고 이론화된 그람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관점에서 관찰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살았던 우리와 같은 인간 그람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람시가 진정한 혁명 정당의 요구가 아니라 러시아 국가의 요구, 비록 그것이 노동자 국가의 요구라 할지라도 우발적인 정치에 당을 종속시켰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데이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당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따라서 인터내셔널의 집행부를 위해 당시의 문제는 우파의 공간을 확보하고 당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당의 정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당을 지배하고 있던 좌파의 흐름이 원하는 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3 인터내셔널주의 분파와 사회주의당의 핵심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통해, 결과적으로 당을 통해 이상적인 지점을 마련하려고 했다.”

 

이러한 목표에는 좌파가 침묵할 수 없었던 그람시 센터(Gramscian Center)의 정확한 정책이 부합했다. 1924년 코모(Como) 회의에서 좌파가 당의 다수파로 부상한 것은 1924년이었다. 인터내셔널이 부과한 새로운 당 중심과 당의 구성 노선이 그 순간 혁명적 정책의 필요성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체질은 건강했다. 그람시의 미묘한 지능으로 해석되는 장치가 지배했다. 이 기구에 대한 오노라토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따라서 이 기구는 이름 없는 신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덧없는 조직, 거의 항상 특권의 연막 뒤에 숨겨져 있는 조직, 정치 활동의 기업의 모습을 취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외부의 모습이다. 문어처럼 촉수를 뻗어 전파되고 그것을 특징짓고 당의 나머지 조직과 구별되는 고유한 삶의 방식을 취한다.”

 

공동전선과 그에 따른 정치적 자살, 근본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아벤티네(Aventine) 양도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너무 늦게 해결되었으며, 이에 반대하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은 책임감 있는 동지들 때문에 충분한 징후가 감지되었다. 이 시기에 데이먼과 그람시 사이에 아벤티네 양도 문제에 대한 단결의 논조와 마테오티(Matteotti) 사건과 그람시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당이 패배할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논쟁이 있었다.

 

데이먼, 레포시(Repossi), 포르티차리(Fortichiari)와 함께 "아직 구해야 할 것을 구하는 정확한 임무를 가지고" 인테사(Intesa) 위원회를 설립했다. 인테사 위원회는 역사적 순환의 새로운 문제, 즉 노동계급에 가장 쓰라린 패배와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문제에 대한 정교화와 정치적 투쟁의 중심지로서 인터내셔널의 반대 세력으로서 이탈리아 좌파가 탄생한 것이다.

 

보르디가는 이미 구성된 인테사 위원회를 고수하여 PCd'I의 내부 정치 투쟁에 최대한의 마지막 공헌을 했다.

 

오노라토는 1966년 PCI 문서의 변형과 명예 훼손에 대해 명확히 하려고 했다.

 

"인테사 위원회의 강령은 밀라노에서 소수 동지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동지들이 인테사 위원회의 이름으로 출판되고 보급된 문서의 주요 부분을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르디가는 알지 못한 가운데 예외적으로 소수 동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들을 지탱해 준 사람들의 개인적인 변덕에서 인테사 위원회의 경험은 그들이 아직 갖지 못한 의식에 가장 중요하다. 오노라토는 사후에 나온 그람시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저작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 경험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가 나왔다.

 

"인테사 위원회가 내린 경고는 인터내셔널 정치의 볼셰비키화,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구조적, 이념적, 정치적 타락, 스탈린주의의 종속적 각인, 소비에트 국가가 제국주의 대열에 진입하는 과정의 시작을 특징짓는 관점에 대해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직접 이 문제를 처리했다는 것은 그 경험의 절정, 당과 인터내셔널에서 다시 토론하려는 시도, 인터내셔널의 위선적 복수를 차단하는 데 있어 그 순간의 중심 문제에 의해 입증된다. 움베르트 드로즈(Umbert Droz)가 모스크바에서 시작한 이탈리아의 쇠퇴는 그 자신이 회고했듯이 인터내셔널과 그 정당 내에서 동일한 주제와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 대가로 위원회의 해산 명령을 했다.

 

수년간의 투쟁을 위해 당의 위임을 받고 계급당의 쇄신 능력을 신뢰하는 동지들에게 이것은 큰 부담이었다. 스탈린은 1926년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보르디가에 응답함으로써 모든 의심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코민테른의 정책은 의존 관계에서 모스크바에 위임되어 러시아 국가의 방어, 이른바 "안정화" 전술로 축소되었으며, 구두 선언에서도 이것은 추상화되고 국제 혁명에 관한 이야기와 분리되었다. 런던에서 악명 높은 영-러 위원회가 출범하는 동안 그들은 예외적인 법률을 통과시켰다. 파시즘은 결정적으로 승리했고 코뮤니스트는 감옥에 갔고 그들과 함께 데이먼은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PCd'I는 볼셰비키화를 겪고 있었고 이로 따라 좌파가 소외되었다. 리오네(Lione) 의회는 스프리아노(Spriano)와 같은 코뮤니스트 역사가조차도 숨길 수 없는 사기이다. 우리는 이미 조직에 대한 오노라토의 판단을 느꼈고, 리옹에서 당의 시체를 대체한 것은 바로 이 조직이다. 우리는 여전히 센터 측의 모든 기능에 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람시 아래에서 (1925년 인테사 위원회의) 나폴리에 참여했던 당의 사무국원들이 소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행정적 딜레마는 자신에게 돈을 지급하는 정당의 정책을 계속 따르고 옹호하거나 해고되는 것이다. 이 "매춘"("puttano")의 밑바닥에는 마치 당내 혁명 세력이 협상의 보상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수치스럽게 항복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효과적인 딜레마"이다.”

 

리오네의 승리와 함께 좌파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상대적으로 느린 작업은 새로운 자극과 냉혹함을 가져왔다. 데이먼 동지는 1933년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같은 해 말 다시 수감되었고, 파시스트 신문을 통해서 PCd'I에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도 당과의 화해 목표는 모든 가능성의 범위 밖에 있었고 반대였다. 좌파에 몸담은 지 몇 년밖에 안 된 동지들이 모두 자신의 안락한 지위를 희생하면서까지 저항할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노라토 데이먼과 다른 사람들은 저항했다. 맑스주의를 확고히 고수하고 역사에 대한 완벽한 시각을 유지하며 이를 학문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미 중국의 에피소드 그리고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세계대전에 묶여 있다는 힘의 증거로 다시 나타났다. 포괄적 혁명은 모든 볼셰비키 구(舊)경비대에 대한 스탈린주의 숙청과 함께 러시아 상황에 의해 가속화되었습니다. 요컨대, 비극적 경험의 축적은 엄격한 계급 노선을 따라 수행된 분석의 필요성을 남겨 두었다.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었나? 다른 모든 것을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는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과 그 세력에 대한 설명을 재개했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가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재건되면서 1919~1922년 내전에서 물려받은 다른 전선과의 대립을 위해 영토를 확장하고 부유하게 하는 것이 새로운 제국주의 중심부로 떠오르는 문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이탈리아 좌파의 내부 중심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그는 스페인 전쟁 대신에 이미 분명하게 다음과 같은 세력이 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중도주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 즉 국가 자본주의, 즉 구(舊)소련의 노예에 불과하다.”

 

데이먼이 감옥에 갇혀 있던 몇 년 동안에도 스페인 내전 기간과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처음에는 감옥에서, 그다음에는 망명지에서). 혁명적 강령을 재건하기 위한 교훈을 도출하기 위해 계급에 부담을 준 사건들을 조사하고 비판하게 된 것은 감옥에서였으며, 조직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 외부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유지한 것도 감옥에서였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데이먼 동지가 그랬던 것처럼, 코뮤니스트 방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부르주아 언론과 파시스트 언론의 검열을 통과한 저널을 읽는 것만으로도 맑스주의자들은 사건에 발맞추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맑스주의자들은 더는 의구심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 1915년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에 대해 일관되고 적극적인 반대, 전쟁을 적과 모든 배신자 세력과의 전면적인 정치적 갈등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1943년 북쪽에서 훌륭한 계급 봉기가 촉발되었고 당은 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운영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날 오노라토와 함께 1921년의 지연을 비판하기 위해 현재 행동하는 세력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듯이 (데이먼 실제로 최고의 공헌을 한 것처럼) 우리는 1943년에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다. 당은 데이먼이 감옥에 있을 때 그리고 감옥 안에서 만들어졌다. 데이먼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첫 번째 전단을 배포했을 때 망명 중이었고, 모두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기관지인 「프로메테오」의 첫 번째 시리즈가 출판되었다.

 

1943년 12월 1일 자에서 우리는 전쟁과 혁명에 반대하는 당의 계급에 기반을 둔 혁명적 성격을 독특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인 '우리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러시아'라는 제목의 주요 기사를 읽었다. 우리는 당이었으며 다른 모든 당보다 부르주아 전선에 맞서 당으로서 행동했다. 이에 1945년 톨리아티와 PCI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지도자들을 방해자로 게슈타포 요원이라는 냉혹한 낙인을 찍어 CLN에 청원했는데, 그중에서도 오노라토 데이먼이 가장 먼저 대상이 되었다.

 

데이먼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한 명도 혁명가로서 자신의 임무를 회피하지 않았다.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은 우리 당이 견뎌낸 부르주아 재건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계속되었다.

 

당의 창립부터 오늘날까지 다른 투쟁과 문제들, 무엇보다도 1952년의 분열이 데이먼을 참여시켰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에서 정치조직을 쇄신하는 투쟁에 대한 그의 공헌은 헛되지 않았다.

 

그 순간에 오노라토의 모습이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자본 축적의 새로운 위기는 이 위기에 특정 맑스주의, 즉 해체된 지식인(intellettuali allo sbando),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의 맑스주의가 혼합되어 있다. 이것은 이 위기를 예견하고 조사한 혁명가들의 맑스스주의가 아니라 오늘날 당(Pcint)과 오노라토의 교훈 속에서 지속하는 바로 이 맑스주의이다. 그 잔해는 영원히 무의식적인 희생자가 될 수 없으며, 미래의 유일한 기준점은 코뮤니스트좌파, 국제 프롤레타리아당이 될 것이다.

 

오노라토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당의 쇄신을 위한 기본적 및 조직적 정책을 유지하고 오늘날까지 지속하기 위해 간부를 양성하고 활동하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오노라토 데이먼과 같은 동지들의 투쟁을 통해 형성된 성원으로서 우리는 그의 교훈을 함께 실천할 것을 맹세한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1999-11-01/the-work-of-comrade-damen-in-the-communist-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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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국제대회의 비극

국제대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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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자 전망」(IP) 웹 사이트에서 ‘코뮤니스트좌파 대회’(2023년 7월에 게시됨)가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읽었다. IP(전 ICC, 현재는 ‘코뮤니즘화’)와 논쟁(前 ICC), 대부분 전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성원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이 회의를 조직했으며, ‘국제대회’라고 화려하게 불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대회를 국제대회라고 부르기에는 비극적인 행사였다. 이렇게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제를 회피했으며, 대회 주최자의 견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종파적인 방식으로 논쟁을 피했기 때문이다.

 

위의 글에 나타난 개요에는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계급관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근본적인 위험을 나타내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핵심 문제, 즉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사이 전쟁과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두 블록 형성,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를 종식하지 않으면 3차 세계대전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역학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코뮤니스트좌파의 자주적 대회라면 제국주의 사이 전쟁의 문제와 각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국제주의 투쟁에서 혁명가들이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우선시할 것이다. 그러나 주최 측은 1914년 이후 제국주의 전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의 의견 차이를 첫 번째 요점으로 안건의 순서를 정했다. 모든 종류의 이론가들은 약 150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자본주의의 쇠퇴기와 다양한 경제적 설명, 주로 시장포화 및 이윤율 하락이라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이론가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회 애국적 사회민주주의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사이의 단절에서 서로 다른 위기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단절의 양극단에 있는 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론적 쟁점은 침머발트 대회와 키엔탈 대회에서 혁명가들 간의 토론과 협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코뮤니스트좌파를 주장하던 조직들(ICC와 현재의 ICT)은 경제 이론을 발견하여 각 분파를 서로 분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1914년 이후 자본주의가 쇠퇴했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이후의 모든 전쟁이 제국주의 사이 전쟁이었으며,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에 맞서 계급 이익을 위해 싸워야만 전쟁을 멈추거나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1) 1914년 이후 쇠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인해 발생하는 논의는 자신들의 모든 입장을 훼손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다양한 조직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동시에, 이 종파주의는 독단적인 입장의 배후에 있는 '이론가'로 자리 잡은 사람들의 종파들 내부에서 자기 입장을 옹호한다.

 

「국제주의자 전망」의 한 성원이 작성한 '대회'의 다음과 같은 개요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 그들은 자본주의가 이미 쇠퇴하였고 쓸모없다는 것을 정치 원칙의 최우선으로 삼아 그러한 입장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을 선호했다.

• 그들은 1914년 이후 자본주의 쇠퇴에 대해 풍부한 역사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논증과 경험적 데이터를 가지고 반대하는 우리들의 이론적 발전을 무시한 채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대회에 참가한 언론과 다른 언론에서 이러한 효과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을 해왔다. 그러나 종파주의는 그에 상응하는 방어적 편견과 함께 단순하고 교조적인 위안의 수단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는 분명히 부정적인 것이다.

• 그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곳에서 파괴를 낳고 있음에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과 자기 조직화 능력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일련의 생각해야 할 사항을 만들었다. 제한적이고 피상적인 고찰로 인해 자기 방종의 종파적 어조를 유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때 우리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필요한 국제주의 혁명 활동에 대한 ICC와 ICT의 계획을 모두 비판했다. 두 단체의 성명서 모두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 논의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동지들’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행동 촉구'라는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12가지 테제를 제시하고 ‘이 요점이 당신의 입장을 대략 요약해서 동의한다면’ 개인과 단체는 연락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 테제들은 우크라이나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을 위해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을 위한 협력을 위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를 위해 그룹과 개인이 이러한 특정 입장에 대해 동지들과 협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논제의 일부에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성명은 ICT의 약식 버전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그들은 ICT를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2023년 5월 대회의 맥락에서, 12개 테제 중 3개 테제에서 그로스만/매틱의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 이론이 주기적 또는 경기 순환적 위기뿐만 아니라 1914년 이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하락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이론은 과거부터 이어져 왔으며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ICT의 자발성과 자체 조직 건설에 대한 절대적 우선순위는 다른 그룹과의 공동 활동으로 이어질 국제대회를 통해 당을 준비하려는 ICT 전임자들의 원래 의도를 무색하게 하는 또 하나의 보기이다.2)

 

따라서 2023년 5월 위원회 참여를 위한 첫 번째 정치적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을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낡은 체제이다.’ IP와 논쟁은 이 기준이 ICC와 ICT의 호소에 대한 비판의 공동 서명자로서 우리를 배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초대받지 못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여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요소와 그룹의 모임처럼 최소한의 요점으로 충분하며, 1914년 이후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생각이 참여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전히 의제에 포함되어 있다면, 현재의 제국주의 사이 전쟁을 논의한 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메시지였다.

 

우리가 NWBCW 위원회의 12개 항목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이후, ICT는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부분들을 삭제하여 5가지 항목으로 축소했다. 최근 ICT의 국제국 성명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국제주의자가 현재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의 심각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논쟁에 갇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은 NWBCW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주의자로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 들어온 것과 같은 오래된 얘기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반(反)자본주의 운동을 만들고 점점 더 절망적인 체제에 직면한 혁명가들을 하나로 모여야 하는 현실에서 서로 신뢰를 구축하려면 몇 가지 차이점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

 

동시에, NWBCW는 전면적인 정치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다섯 가지 사항에 따른 국제주의적 입장(강대국 제국주의 국가이든 약소국 제국주의 국가든 그 어떤 국가도 지원하지 않으며, 모두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서 국가적 지분을 놓고 싸우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3)

 

최악의 관료주의 전통에서, 약간의 공감을 얻는 비판을 받게 된 후 그들의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비판과 비판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해’와 ‘과거의 논쟁’으로 전체 문제를 덮고 있다. 아마도 1970년 룩셈부르크 지지자들과 그로스만/매틱 위기 이론 사이의 논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쇠퇴에 대한 현재의 논의와는 매우 다른 논쟁이다.

 

ICT가 NWBCW의 가입 기준 변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가정해 보겠다. 1914년 이후 자본주의의 쇠퇴를 인정하는 것을 5월 모임의 가입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분명히 그들은 우리가 참여하지 않은 것을 기뻐했다. ICT는 비겁하게도 ICT의 프랑스 간행물에 「빌랑과 전망」(Bilan et Perspectives)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숨기면서 참여했다.

 

각자의 호소 이후 ICT와 ICC는 자신들의 방침을 따랐고, 다른 단체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이러한 계획에 동참하거나 입장을 밝히고 그들의 방침을 따랐다. 종파주의는 여전히 남아있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쟁에 대항하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의 조직적이고 공통된 투쟁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다른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본질에 합의하려고 노력하고, 모두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대하여 합의에 도달하는 시간을 정하는 대신, 그들은 힘의 관계에 따라 관리하고 접근을 시작하는 자신의 경향으로 요소를 포착하려고 하는 종파적 행동 방식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더 활동적인 사람들은 ICT가 출범한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서 언급 한 텍스트에서 종파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전통적인 맥락에서 대차 대조표를 작성하고 오만하게 행동한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실현하기 쉽지만, 종파의 편안한 역학을 깨뜨리기 때문에 종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그들 계획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엄격하게 베일로 가려야 한다. 당신이 굴복하지 않고 그들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당신을 배척하고 기회주의적 침묵으로 대응한다.

 

ICC처럼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나머지를 적대적인 기생주의로 규정하는 세력도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소수의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서 혁명적 열정을 감지한다. ICT와 같은 다른 조직은 여러분이 그들의 게임을 하거나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입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전통적인 방식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보르디가주의 지부처럼 그들 사이에서 분열된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완고함을 보인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우크라이나 자본(그리고 나토 동맹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방어를 선택한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부 집단은 이 문제를 마치 다른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두 블록은 점점 더 큰 규모로 서로를 강화하고, 통합하고, 대립하고 있다. 모든 부르주아지와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더 많은 잉여가치를 쥐어짜 내려 한다. 그들은 직간접 임금과 사회 복지를 축소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국제적 규모로 필수적인 전략을 관장하는 군사주의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 및 사회적 압력과 퇴보, 경쟁자에 대한 해당 블록의 이익에 항복하라는 민족주의적 압력, 각 부르주아지에 의한 대규모 착취와 제국주의 정치 조작, 총알받이가 되고 대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고통받는 대중,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전쟁은 훨씬 더 과감한 것을 요구하고 이끌어간다.

 

따라서 자본의 과잉 생산의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나리오를 통해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공격이 양적, 질적으로 점점 더 큰 규모로 발전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와 그 국가를 근절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제국주의적 군사주의 노선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에 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종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국제주의 혁명가들의 제한된 역량을 약화하는 암세포다.

 

2023년 7월 25일

아니발과 프레도코르보(Aníbal and FredoCorvo)

 

<주>

1) 이 글의 저자들은 쇠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통된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발은 쇠퇴는 가까운 미래에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쇠퇴에 관한 토론을 참조하라. 링크(Link)의 최근 글에 대해 아니발의 답변. 코르보는 자본주의의 쇠퇴기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부분을 참조하라. 하지만 어떻게?

2)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두 가지 호소. 관심 있는 독자는 두 사이트 모두에서 우리의 비판, 대안 및 HC가 비판한 부분에 대한 답변에 따른 앞뒤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국제대회에 대해서는 코뮤니스트좌파의 국제대회: 1977-1980을 참조하라. 단행본 - 2023년 5월 25일. 편집자의 다소 개인적인 소개와 함께 완전히 필사되었다. 618쪽.

3)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국제국,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 (2023년 5월)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7-05/the-no-war-but-the-class-war-initiative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3/07/25/on-a-travesty-of-an-international-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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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이니셔티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이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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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서는 지난 5월 21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국제서기국이 승인했다. 정치 체제의 진정한 계급적 기반을 드러내는 데 제국주의 전쟁만큼 좋은 것은 없으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를 확실하게 입증했다. 자본주의 좌파(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의 대응은 제국주의 전선(나토 또는 러시아) 중 하나 또는 다른 쪽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같은 입장을 숨기는 거짓 평화주의로 일관했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실질적으로 동일시되는 진정한 국제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뒤에 나토가 있고, 패자는 모든 곳의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볼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자들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심하게 분열되었다. 친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그것에 대해 단순히 더 큰 강대국이 더 작은 강대국을 점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중국과 미국 간의 패권 다툼이 심화함에 따라 현재 당사국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게 될 세계 위기 분쟁의 최종적인 국면이다.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고통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분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체제의 정체로 인해 뚜렷한 경제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선택지가 좁아졌음을 잘 보여준다.

 

전 세계의 코뮤니스트좌파는 노동계급의 국제적 이익을 위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 비판했다. ICT는 조직화하지 않으면 세계 노동계급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다른 국제주의자들과 협력함으로써 국제주의적 입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전 세계 노동자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을 조직하기 위해 위원회에 참가한 이유이다. 이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며 아직 국제주의자가 모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바로 지금 실질적인 조직화를 위한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 문서는 우리가 1년 동안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대차대조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하며 의심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제국주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경고했다.1) 두 달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은 우크라이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화된 전쟁의 위협이라는 우리의 분석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15개월이 지난 지금, 현재의 전쟁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결함만을 더 심화했다.2) 이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공개적인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 친러시아 세력을 구축한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이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재무장 계획은 분리주의 지역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고, 결국 침공으로 이어졌으며, 우크라이나가 더 강력한 저항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서구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전쟁터에 국한되지 않는 새롭게 멈출 수 없는 군비 경쟁을 촉발했다.3) 미국은 중국의 야망을 비난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양국은 남중국해에서 적대적 움직임을 강화했다. 푸틴이 서구를 북대서양조약기구로 단결하게 했지만, 러시아, 중국, 이란 정권에 대한 제재로 인해 이들 국가는 더욱 긴밀해졌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노동자는 자본주의가 심연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궁극적 힘을 가진 유일한 계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 세계 노동자의 정치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낮은 생활수준은 내일의 전면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더 강하게 타격하기 위한 준비 운동일 뿐이다. 지난 40년 동안 노동계급은 역사가 이제 시작된 계급이었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게임의 객체에서 새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의 주체로 변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작년 4월, ICT가 정치조직에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어 있지 않은 모든 진정한 국제주의자에게 NWBCW의 기치 아래 지역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호소문4)을 발표한 이유이다. 조직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성원과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첫 번째 지역 위원회가 지난해 3월 리버풀에서 아래와 같은 5가지 원칙을 기초로 구성되었다.

 

•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국가 자본, '덜 악한' 국가, 또는 구성 중인 어떤 국가도 지원하지 않는다.

• 국가, 임금 노동. 사유재산, 화폐와 이윤을 위한 생산은 자유롭게 연합한 세계 생산자들로 대체된 사회를 위하여.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 벌어질 전쟁으로 인해 노동계급에 가해지는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반대한다.

• 노동계급의 자주적인 투쟁을 위해, 자주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와 노동자평의회의 구성을 위해.

•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결집을 위해.

 

그 이후로 글래스고, 파리, 몬트리올, 토론토, 시카고, 마이애미, 샌프란시스코, 튀르키예, 한국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일부는 ICT 성원이 포함된 곳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이렇게 빠르게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모습은 매우 가슴 벅찬 일이지만, 우리가 여기서 구축하는 것이 단지 국제적 개입을 위한 틀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속이고 있지는 않다. 원래 호소문에서 썼듯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더 긴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보다 먼저 자본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수십 년 동안 쇠퇴한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크라이나 상황은 정부가 모든 곳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며, 우리는 일상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우리' 지도자들의 정치적 계획에 대응해야 한다. 현재 인류의 재난 상황에서 비록 역사가 새롭게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곧 계급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반대하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위기가 약간의 타협으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이는 향후 제국주의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6)

 

또한, 우리는 새로운 위원회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며 어려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자본주의 좌파의 다양한 기회주의자들(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의 가짜 국제주의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들은 NWBCW 이미지나 구호를 사용하지만, 그 글에는 국제주의적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7) 그들은 ’거짓 깃발 아래‘ (우리의 깃발!) 날아다니고 있지만, ’억압받는 민족‘(즉, 민족주의 투쟁)의 ’약자 제국주의‘ 또는 미국에 반대하는 모든 국가를 지원한다는 그들의 실제 정치를 숨길 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지지할 수 있는 민족이나 민족의 투쟁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NWBCW가 실제로 어떤 조직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했거나, 오히려 이전의 급진 개혁주의 활동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포틀랜드와 로마8)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데, 특정 세력은 40년 동안의 후퇴에서 벗어나 이제 막 인플레이션에 대한 싸움에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계급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 NWBCW를 생각했다. 그들의 당면주의 그리고 극도로 행동주의적 관점은 위원회의 소멸을 초래했을 뿐이다.

 

또한, NWBCW는 1940년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과 같은 개념의 공장 그룹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PCInt의 성원과 긴밀한 지지자들로 구성된 조직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임금 투쟁을 제도화하고 자본주의 합법성의 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국가기구에 통합된 노조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싸우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에 원래 '노조 공장 그룹'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노조는 이미 오래전에 맑스가 말했던 ’사회주의 학교‘가 아니었고, 이제 국가가 파업 운동을 제한하는 법적 범위 내에서 항상 착취자들과 진행하는 협상을 관리하는 주체가 되었다. 따라서 계급의 영구적인 경제 조직은 기존의 현상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조직에 불과할 운명이었다(이 때문에 평조합원 노조도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해결 방법은 이러한 그룹의 공장에서 정치적,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투쟁에서 PCInt의 무기가 되었다. 그들은 계급을 조직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협조주의에 저항하여 계급 내 코뮤니스트들을 조직하려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는 산업 구조조정과 새로운 계급 구성으로 인해 서로 다른 직장의 노동자들이 조직화 가능성이 더 큰 '지역' 그룹으로 결합하는 방안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는 PCInt(그리고 더 나아가 ICT)의 도구였으며, 지금도 도구이다. NWBCW는 ICT 성원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전통을 가진 국제주의자들이 모여서 모든 측면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영향에 맞서 조직하고 선전하기 위한 국제적인 위원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임무는 오늘날의 생활 수준 하락을 미래의 더 전면화된 전쟁 위협과 연결하는 것이다. NWBCW는 현실적인 문제(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그들이 겪었던)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그룹은 흥망성쇠를 거듭할 것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제주의자로서의 우리의 헌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전에 우리가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NWBCW는 더 큰 계급 운동의 일부로서만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NWBCW 위원회는 역시 직장의 특별한 투쟁에서 발생한 단순한 투쟁 그룹이 아니다. 후자는 투쟁 속에서 그리고 투쟁을 위하여 만들어진 조직이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단체는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회원 카드나 강령, 심지어 기본적으로 합의(NWBCW 위원회와 같은)해야 하는 항목도 없다. NWBCW 위원회는 모든 노동자와 투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NWBCW 위원회는 대중 집회, 파업위원회, 노동자평의회 등과 같은 계급의 다른 단일 조직과 같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폭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투쟁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 싸워야 하는 조직이다.

 

현재 노동자 투쟁의 문제점 중 하나는 투쟁이 일시적(지금 여기저기 발생하는 투쟁)이고, 특정 부문의 투쟁이 소멸하면 사라진다는 점이다. NWBCW는 자본주의가 우리를 끌고 가는 더 큰 그림에 집중함으로써 더 장기적인 목적을 제공할 수 있다. NWBCW는 앞으로 다가올 더 광범위한 투쟁을 예상하여 다른 국제주의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아직 자유로울 때) 더 광범위한 위원회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다(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리고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실제로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NWBCW는 공개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일부 동지는 이를 1915년 침머발트 좌파의 전쟁 반대와 반(反)자본주의 정신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는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체제에 대한 투쟁이기도 한 점을 언급하지 않은 침머발트 선언의 주요 내용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NWBCW는 침머발트 좌파(나중에 1919년 제3 인터내셔널 설립의 기초가 된)의 이러한 측면을 공유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활동하는 환경이 100년 전 침머발트의 선배들과는 많이 다르기에 이러한 역사적 비교를 과도하게 확대해서 적용하는 것은 안 된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침머발트에서 만났을 때 1차 세계대전은 거의 1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부(러시아와 더불어, 폴란드, 불가리아, 세르비아 정당들만이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촉구했다)를 대부분 지지했던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지도부가 배신함으로써 입은 피해를 그들은 복구하려 했다. 당시 제2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재결집하고 모든 곳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파업을 벌여 제국주의 전쟁을 막겠다는 결의를 잇달아 통과시켰기 때문에 그 배신감은 더욱 컸다.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쇠퇴한 운동에 새로운 주도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검증된 노동계급의 전쟁 반대 입장을 새로운 운동에 도입하는 것이다.

 

모든 국제주의자가 현재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의 심각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논쟁에만 분명히 갇혀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NWBCW가 의미하는 바를 깊이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주의자로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자주 들었던 것과 똑같은 오래된 논쟁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반(反)자본주의 운동을 건설하고, 점점 더 절망적인 체제에 직면한 혁명가들을 하나로 모으는 실질적인 부분에서 신뢰를 구축하려면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을 동의해야 하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동시에 NWBCW는 전면적인 정치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다섯 가지 요점의 국제주의적 입장(강대국 제국주의 국가든 약소국 제국주의 국가든 그 어떤 국가도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서 국가적 지분을 놓고 싸우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기 때문에 재조직 계획이 아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진 긍정적인 운동에 참여하면 정치적 토론을 자극하고 교류를 장려하여 운동을 확대하고 심화시킬 수 있지만, 미래의 인터내셔널에서 정치적 재조직의 문제는 실제 계급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더 광범위한 계급운동만이 혁명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과거의 차이를 쓸모없게 만들 것이며, 이는 잠재적으로 국제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유용성을 잃은 체제에 반대하는 계급전쟁에서 강령적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응집력 있는 국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더욱 유익한 정치 과정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따라서 이는 현재를 위한 계획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모든 기간에 대한 방향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ICT에 NWBCW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전통의 일부이다. 이는 1944년 PCInt가 발표한 '단결된 프롤레타리아 전선을 위한 호소문'과 일치한다.9) PCInt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양측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적 입장을 받아들인 모든 ’프롤레타리아 및 비(非)당파적 정치조직‘에 열려 있었다. PCInt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적인 조직적 항목으로 결론을 내렸다.

 

1. 이러한 입장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은 (어떤 정치적 명칭을 사용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당의 요구를 확산시키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사상을 토론하고 명확히 하여 수용한 후, 직장에서 먼저 접촉하고 먼저 조직적으로 결집하는 설립자로 스스로 나서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이제 사장과 파시스트 하수인에 맞서 자신을 조직하는 능력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노동자 공동전선은 전쟁과 그 주요 정치세력인 파시스트와 민주주의에 맞서 계급의 방어벽에서 싸울 운명을 가진 세력을 모으고 단단하게 한다.

 

2.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임무는 노동자들이 전쟁 선전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 혁명가로 위장한 제국주의자 들의 가면을 벗겨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자유의 기치 아래서도 전쟁의 목적과 지속을 위해 투쟁과 희생의 정신이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이 글 상단의 다섯 가지 기본 입장을 받아들여 자신의 위원회를 설립하거나 기존 위원회에 가입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궤적이 지속해서 우리에게 가하는 모든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모든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에게 같은 호소를 하고 있다.

 

2023년 5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국제서기국

 

 

<주>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2-06/ukraine-and-taiwan-flashpoints-in-an-uncertain-imperialist-world

2) 최근의 표현은 2023년 ICT의 메이데이 성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4-30/may-day-2023-there-is-no-right-side-in-an-imperialist-war-no-war-but-the-class

3)

https://www.leftcom.org/en/artiꠓcles/2023-02-24/one-year-since-the-invasion-ofꠓukraine-on-the-road-to-world-war-three

4) 우리의 원래 호소문은 여기에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4-06/no-war-but-the-class-war-a-call-for-action

5) https://www.leftcom.org/en/artiꠓcles/2022-05-02/no-war-but-the-class-war-stateꠓment-from-nwbcw-liverpool

6)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4-06/no-war-but-the-class-war-a-call-for-action

7) 이탈리아의 고전적이지만, 더 정교한 보기는 다음과 같다.

https://pungolorosso.wordpress.com/2022/11/01/no-to-imperialist-war-joint-statement-adopted-by-the-organizers-of-the-16-october-conference-in-rome/

그러나 10월 16일의 영국의 스탈린주의 YCL의 조직가에 의해 채택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공동성명은 비록 그들의 입장이 전체적으로 평화주의적이며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투쟁(동시에 러시아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피하는)하기 위한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과 연계되지 않지만, 때때로 그것을 사용한다.

8) 로마위원회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www.leftcom.org/it/articles/2023-01-03/sul-comitato-di-roma-nwbcw-un-intervista

9)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10-31/1944-appeal-of-the-internaꠓtionalist-communist-party-for-the-creation-of-aꠓunit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7-05/the-no-war-but-the-class-war-initi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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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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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강사 ㅣ 윤태상 

일시 ㅣ 2024년 6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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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자본가의 계획에 제동을 걸려면 투쟁을 장악해야 한다!

자본가의 계획에 제동을 걸려면 투쟁을 장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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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노동자 이익을 방어해야 할 사람들이 기만과 추악한 속임수를 이용해 가장 먼저 그들을 배신한다…

 

‘스탠드-업 파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그저, 유럽 때로는 미국에서 시행된 ‘순환’ 파업의 새로운 명칭일 뿐이다. UAW(미국자동차노동조합)이 ‘새롭게’ 명명한 이 유형의 파업은 노동자 투쟁(항상 자본가에게 주도권을 넘긴다)을 사보타주할 목적으로 날조된 두 가지 거짓말 중 하나다. 자동차 제조업자들에게 사전에 파업을 경고함으로써, 기습적 요소를 상실해 버린다. 그렇게 해서 생산 마비가 효과적 행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것은 어떤 플랜트 노동자로부터 다른 곳의 노동자를 격리한다는 사실보다는 덜 논쟁적이다. 노동자 단결이 그들의 강점이라면, ‘스탠드-업’ 시위는 실질적으로 노동자 단결을 약화한다.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2022년과 2023년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를 실패로 내몬 사례가 있다. 전술가 사이에는 어떤 권력 해체가 아니라, ‘권력 집중’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경우, 우리 권력이 그것의 운명에 가로막혀 버렸다는 것이다. 파업을 벌인 자동차 노동자는 파업 비용으로 매주 500달러를 받지만, UAW의 파업 자금은 거의 10억 달러에 이른다. 치욕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것이 파업을 실패로 이끄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파업 자금을 명시된 목적으로 풀지 않으려고 한다. 노동조합의 지지 없는, 그러나 사보타주하는 투쟁에 배팅하면서, 자금을 푸는 것은 노동자에게서 착취한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들쥐는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것을 가져간다…) 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노동조합 지시에 불복함으로써 노동조합 간부들이 항복하도록 위협하는 것이다. 더 많은 지출이 수반 될 수밖에 없다. 미시간주 웨인의 포드 플랜트에서 600명의 해고, 캔자스주 페어팩스의 GM 플랜트에서 2천 명의 해고 사례로, ‘스탠드-업’은 자동차 제조업자들이 처우의 규모를 축소하도록 만든다. 파업 자금 고갈 못지않게 혹독하다.

 

두 번째 거짓말은, 경찰·법원·입법부 즉, 국가가 ‘내 편’이라는 사실이다. UAW 지방 기능직 900인은 ‘경찰은 우리 편이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 지시 전달의 정당화를 위해, 노동자들이 플랜트 입구를 막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 노동조합(수백 만의 선이 국가와 닿아있다)을 통해서 노동자는 연대하는데, 파업은 국립노동위원회의 합법적 프레임 작업에 국한된다. 그리고 이것은 확고한, 자발적인 행위를 막는다. 이들 기관은 중립적 결정권자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노동자 투쟁을 포함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들 중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착취자의 당근과 채찍 게임에서 ‘당근’(거짓말, 노조의 속임수)이 실패하면, 피(被)착취자를 훈련 시키기 위해 국가는 거리낌 없이 ‘채찍’(순전히 노동자의 행위를 억압)을 사용한다. 과거 멕시코·한국·중국 등지에서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외압 사례는, 모든 정부가 노동자들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투쟁은 이것과 다른 국제적 차원을 보여준다. 토리노와 비양쿠르(이탈리아 및 프랑스의 피아트·르노자동차 노동자 거대 주거지역의 도시들이), 디트로이트와 같은 운명으로 고통받듯이, 1970년대 이래 모든 주가 ‘재건’사업에 관여하고 있으며, 자동차 노동자(영역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공격을 거부하려면 우리는 ‘순환’ 파업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우리의 이익을 보호해 줄 ‘무기한’ 파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너무도 장기간 노동조합들이 노동자 투쟁 속도를 차단해 왔다. 다른 플랜트와 영역의 노동자들 사이에 세워진 장벽을 통과하려면 우리가 직접 페이스를 설정해야 한다. 이것은 공식적 계획 속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에 앞서 다른 플랜트로 파업을 확대, 파장을 일으키는 것(2019년 프랑스의 병원 노동자들의 성공적 사례처럼). 출입구를 막는 것. UAW 기능직들의 지시에 따라서가 아닌, 노동자들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집회에서 스스로 이런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과거 패배는 과거에 두고, 국제적 투쟁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대표단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체제, 그것의 존재는 때때로 노동자 이익에 반(反)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체제의 이윤 확대를 위한 자원이며, 3차 세계대전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노동조합 방어선을 뚫기 위해 무기한 투쟁을 준비하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미국지부

2023년 9월 21일

 

IWG 전단은 자동차 노동자 파업 중 배포되었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9-21/to-throw-a-wrench-in-the-bosses-plans-we-need-to-take-control-of-the-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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