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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2/03/18
    당대의 영화... 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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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현대의 동화

어린이 (?) 내지는 청소년 (?)이 주인공인 영화들...

 

#.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스 감독, 2012년)

 

문라이즈 킹덤

 

영화가 정말 미치도록 귀엽고 깜찍했음 ㅋㅋ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근 잔혹하고 (낚시바늘로 피 철철 흘리며 귀를 뚫고)

은근 블록버스터 (폭풍이 몰아치는 뉴펜잔스 섬!)에  치정스릴러까지....

아이들의 연기도 너무 좋고, 베테랑 연기자들의 내려놓은 듯한 소박하고 편안한 연기도 정말 좋았음.

유약한 지역 경찰관으로 등장한 부르스 윌리스와 책임의식 투철한 범샘 캠프리더 에드워드 노튼, 융통성 없어 보이는 틸다 스윈턴 모두 그리도 잘 어울릴 수가 없었던 듯...

무엇보다... 주인공 남자아이 샘의 오동통하고 뽀얀 볼따구니가 어쩌면 그리도 귀여운지 ㅋㅋㅋㅋㅋ

음악에, 소품에, 배경에... 그 무엇하나 버리기 어려운, (그렇다고 마냥 예쁘고 착하지만은 않은) 수작임..

영화 보고나면 뭔가 재미나고 뿌듯하고 따뜻한 마음이 생겨남...

같이 영화 본 정이도 너무 좋아라 함 ㅋㅋ

 

#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브라이언 싱어 감독, 2013년)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아무리 그래봤자 재크와 콩나무 이야기인데,

이걸 굳이 아이맥스에 3D 로 봐야겠냐고 항변했지만 감독이 브라이언 싱어라며 도끼가... ㅡ.ㅡ

근데 뭐랄까... 이런 걸 쓸데없이 고퀄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나 기술력도 좋고, 나름 스펙타클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지

몰입해 보다가도 잠깐씩 정신이 돌아오면 내가 뭐하고 있나.. 콩나무에....이런 자괴감이 ㅋㅋ

 

마지막 장면에서 현대의 청소년이 왕관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는 장면에서 속편에 대한 의혹이...

분명히 콩은 다 썼는데....  하긴, 이렇게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굳이 콩나무를 심어야 그 높은 거인국에 올라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니콜라스 홀트는 정말 번듯하게 잘 자랐더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때보다 더 예뻐진 (?) 것 같음 ㅋㅋ

 

근데.. 요즘 헐리우드가 이렇게 전래동화, 아동문학에 집착하는 걸 보면...

다음엔 닐스의 대모험도 블록버스터로 나올 거 같음.

한국의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 선녀와 나뭇꾼, 심청전 같은 것도 블록버스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헐리우드에 제보해줘야 겠다 ㅋㅋ

 

참, 거인국 리더의 눈이 골룸이랑 너무 비슷해서 혹시 웨타 디지털 작품인가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더군 ㅋㅋ 

 

 

# 배트맨: 망토 두른... (닐 게이먼 2012)

 

 

배트맨 :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디럭스 에디션
배트맨 :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디럭스 에디션
닐 게이먼
세미콜론, 2012

 

아우.....닐 게이먼.... 

이 자의 마수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네 그려...

배트맨의 죽음이라니....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의와 연민과 애정...

아무도 진실을, 심지어 배트맨 그 자신조차도 진실은 알 수없지만,

아마도 그가 원하지는 않았던 방식으로 생은 마감되었고, 이는 언젠가 닥쳐올 수밖에 없었던 사실...

누구나, 심지어 그가 배트맨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안녕히.. 모두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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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하여...

#. 잊혀진 꿈의 동굴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2010년 작)

 

잊혀진 꿈의 동굴

 

동네에 예술영화 전용극장이 생기니까 넘 좋다...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만!!!

2010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이제사 보게 되었다. 

영화적인 특별함은 별로 없는 평이한 구성이지만.. 내용 그 자체 때문에 허거덕....

영화는 3만년 전, 크로마뇽인 버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믿을 수 없는 벽화를 찬찬히 보여준다.

갈기가 없었던 3만년 전의 사자들, 마치 움직이는 듯한 바이슨, 코뿔소들과 검고 아름다운 말들...

몇 년 있다가, 누군가가 이 그림들이 모두 현대의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한 들, 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그게 아니라 외계인들의 소행이라 해도 안 놀랄 자신이 있다..

3만년 전에 이걸 진짜로 그렸다는게 그 무엇보다 놀라운 일.... ㅡ.ㅡ 

정확한 묘사와 일필휘지의 손놀림,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경계....

니스 근처 마그 재단 미술관에서 보았던 샤갈의 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고독한 천재는 왜 삼만년 일찍 세상에 태어났더란 말인가.... 

그는 누구와 어울리고, 누구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아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

불과 5백년 전, 서양화는 잊혀졌던 원근법을 천년 만에야 되살렸다.  

그런데 삼만년 전에 이런 그림을 그린 크로마뇽인이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환희와 고독이 막 느껴지는 듯.. ㅡ.ㅡ

 

그런데 영화 마지막 부분은 갑자기 호러로 급선회... 동굴에서 멀지 않은 핵발전소 주변의 온수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이상증식한 악어들 모습은 어찌 연결시켜야 할지???  

그리고... 감독 아자씨 목소리가 나쁜 건 아닌데... 리차드 아텐보로 할배의 드라이하고 꼿꼿한 나레이션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목소리를 들으면 어색어색... 

 

# 샌드맨 (닐 게이먼... 그리고 여러 화가들과 편집자들...)

 

 

The SandMan 샌드맨 1 - 서곡과 야상곡
The SandMan 샌드맨 1 - 서곡과 야상곡
닐 게이먼 외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2 - 인형의 집
The SandMan 샌드맨 2 - 인형의 집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3 - 꿈의 땅, 시공 그래픽 노블
The SandMan 샌드맨 3 - 꿈의 땅, 시공 그래픽 노블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4 - 안개의 계절, 시공 그래픽 노블
The SandMan 샌드맨 4 - 안개의 계절, 시공 그래픽 노블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5 - 당신의 게임
The SandMan 샌드맨 5 - 당신의 게임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6 - 우화들
The SandMan 샌드맨 6 - 우화들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7 - 짧은 생애
The SandMan 샌드맨 7 - 짧은 생애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8 - 세상의 끝
The SandMan 샌드맨 8 - 세상의 끝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9 - 친절한 그들
The SandMan 샌드맨 9 - 친절한 그들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10 - 장례 전야
The SandMan 샌드맨 10 - 장례 전야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 영원의 밤
The SandMan 샌드맨 : 영원의 밤
닐 게이먼
시공사, 2010

 

The SandMan 샌드맨 : 꿈 사냥꾼 - 완결
The SandMan 샌드맨 : 꿈 사냥꾼 - 완결
닐 게이먼
시공사, 2010

 

 

 

 

 

 

 

 

 

 

 

 

 

 

 

 

 

 

 

 

작년 말부터 저녁에 조금씩 읽어오던 것이 어제야 쫑났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아서 잊고 있었는데,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닐 게이먼의 어두운 환상, 불멸하는 '영원'에 대한 미궁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이건 마치 20세기의 천일야화....

나도 모르게 모르페우스와 그 형제자매들에게 빠져들어 갔고,

특히나 꿈의 군주 모르페우스, 그리고 그의 누나와 여동생 - 죽음과 절망- 에게 깊은 애착을 느꼈다.

그리고 어쩐지, 루시퍼의 고독을, 까마귀 매튜의 우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닐 게이먼이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아.. 이 자가 일가를 이루었구나.. 이런 탄식(?)을 늘어놓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들인데다

그림도 어쩌면... 한 컷도 버릴게 없는 듯...

특히나...

모르페우스가 생을 마감하고, 그를 떠나보내며 추억의 집을 짓는 영원형제들의 모습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이것이 종이 위에 그려진 '만화'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창문을 내다보면

저 멀리 적막한 어둠의 심연에서 그들을 곧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같아선 책 한장한장 뜯어서 방에 도배하고 싶음.. ㅡ.ㅡ

그럼 악몽에 시달리겠지 ㅋㅋ

진정한 현실의 악몽은 이 아름다운 책을 '시공사'라는 이름표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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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벵갈 호랑이, 장발장...

포스팅만 보면, 나는 세상 제일의 한량 ㅡ.ㅡ;;

 

# 호빗: 뜻밖의 여정 (피터잭슨 감독, 2012년)

 

호빗 : 뜻밖의 여정

 

차가운 셜록의 따뜻한 남자, 마틴 프리먼이 빌보 배긴스로 ㅋㅋ

원래 이렇게 스케일이 큰 이야기는 아닌 듯한데,  

어쩌다보니... 그야말로 뜻밖에 블록버스터가 된 게 아닌가 싶네 그려..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귀여운 그야말로 재미난 동화...

저 멀리 원경의 산맥들은 마치 내고향 6시에서 본 듯한 뉴질랜드 풍광...

그리고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  

시간은 지난 반지원정대보다 60년 전이라는데 간달프는 더 늙어보여 ㅋㅋㅋ

스미스 요원 요정 휴고위빙도 주름 자글자글 ...  

갈라드리엘은 후광 때문에 피부 상태 확인 불가능 ㅋㅋ

 

근데,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별 감흥이 없었을 수도...

번역이 좀 후지다는 거 빼고는 흡족할만한 영화였음...

특히 골룸과 빌보가 수수께끼 맞추며 대결하는 장면에서 "Lost" 에 대한 번역 완전 거슬림...ㅡ.ㅡ

근데 또 딱히 한국어로 적당하게 번역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듯....

다음 편들도 후딱 이어서 했으면 좋겠네...

셜록이 네크로맨서/스마우그로 나온다는데... 빌보 왓슨과 조우하는 장면이 몹시 기다려짐 ㅋㅋ

 

# 레미제라블 (탐 후퍼 감독, 2012년)

 

레미제라블

 

잘 만든 뮤지컬 영화라고 평이 좋아서 보려고는 했었는데, 여행이다 뭐다 정신없어 못보다가

대선 이후 갑자기 "힐링" 영화로 등극해있어서 이건 또 뭔 일인가 하며 보았음

음악 좋고, 연기들 잘 하고, 극도 잘 짜여져 있기는 한데........

근데 도대체 사람들이 어디에서 힐링을 받았다는 건지 당최 미스테리... ㅜ.ㅜ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은 읽어본 적이 없고,

내가 기억하는 건 장발장과 은촛대 동화책 버전.... 

그래서 원작이 아닌, 딱 이 영화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싶음...

말 그대로 "한 때의 젊은 치기"로 혁명운동에 동참했던 마리우스 (심지어 부르주아도 아니고 앙시앙레짐의 적자...) 는 화초처럼 자라 아빠의 과거도 세상 물정도 암 것도 모르는 화사한 코제트 만나

다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이전의 귀족 생활로 돌아감.

결혼식 장면에서 정말 빡쳤음 ㅜ.ㅜ

마리우스 좋아하던 에포니는 심지어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고 장렬히 전사....

하수구에서 마리우스 짊어지고 이동하는 장발장에게서 나는 울버린의 환영을 보았음.. .ㅡ.ㅡ

 

어쩌면 이 영화는 형사 자베르와 장발장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작품???

혁명은 그저 배경인 겐가?

사실... 극 초반 판틴을 몰아세우던 공장의 드센 여자들, 결국은 그녀가 머리카락을, 이빨을, 몸을 팔게 만들던 악다구니 같은 여자들과 남자들, 바리케이드를 쌓을 수 있게 가구를 던지던 서민들, 결국 나타나지 않고 혁명군을 고립 궤멸에 빠지게 했던 시민들(?).... 이들은 다 같은 소위 "민중" 아닌가 말여....

이렇게 복잡미묘한 인간상을, 한 순간은 극단적 악인들로, 또 다른 순간에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꿀 이들로 그리는 단선적 묘사는 후덜덜... 물론 뮤지컬이라는 특성 상 극적 대조를 이루기 위한 장치였다고 관대하게 이해해주기는 했음...  ㅡ.ㅡ

 

다시금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영화들과 친하지 않음... 

 

# 라이프 오브 파이 (리안 감독, 2012년)

 

라이프 오브 파이

 

말하자면, 이런 영화가 내 취향...  

한번 갈고닦아 놓은 통찰력은 장르가 바뀌어도, 기술이 바뀌어도, 맥락이 바뀌어도 여전히 그 광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줌.... 

정말, 리안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인생의 깊이를 가지게 된 게야...

나이 먹으면 저절로 되나???

그런 거라면 나도 얼릉얼릉 나이 먹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게 인생의 함정.... ㅡ.ㅡ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상대와 고립 무원의 상황에서 공존해야 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적대자를 돌보기까지 해야 하다니...

그리고 미운 정조차 용납하지 않는 비정한 세계,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위험이 공존하는 모순덩어리의 세계, 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이 부동하는 불가해한 세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흉포한 리차드 파커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냥 다 술술 불어버릴 것만 같았지......ㅡ.ㅡ

 

그리고 이 영화 대부분의 장면들이 CG 라는 것에 다시 한 번 깜놀....

호랑이와 소년이 실제로는 한 번도 조우한 적이 없었다고!!!

기술은 기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위해 쓰일 때, 그것이 기술인지조차 모를 때 가장 뛰어난 법 아닌가 싶음....

 

정말로,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오.. 리안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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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과 억척가...

기록 없이는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중한 깨달음으로 열심히 복기...

 

#. 서칭 포 슈가맨 (말릭 벤젤룰 감독, 2011년)

 

서칭 포 슈가 맨

 

'다큐' 본연으로서는 좀 이상한 영화.... 전반부에 등장해서 마치 슈가맨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인터뷰했던 사람들... 인터뷰가 진행된 영화 제작 시점에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ㅡ.ㅡ

 

근데, 이런 문제를 다 덮어버릴 수 있는 건, 슈가맨 로드리게즈의 삶 그 자체.... 디트로이트의 황량함마저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음악들....

비루하지만 이를 통탄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함....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갖고자 하는 부동의 평정심..

 

어둡고 칙칙한 눈오는 디트로이트 거리를,

낡은 코트를 걸친 그가 구부정하게 한발한발 내딛는 장면에서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고,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목이 메어오는 느낌.... 이건 무엇일까?

 

사족이지만, 영화를 통해 한 가지 새롭게 깨달은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 희희낙락 행복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점...

감시와 규율, 철권통치는 리버럴한 백인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음을 난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네... 너무 당연한데도 말이지.... 세상을 그리도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니... ㅡ.ㅡ   

 

#. 이자람의 <억척가>

 

포스터이미지

 

 

그녀는 그 나이에 어쩌자고 이런 작폼을 만들어내고 공연할 수 있는 것일까???

관람료 3만원은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을 절로 만드는 공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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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에 대한 책 두 권

도서관 반납의 압박...ㅡ.ㅡ

 

#. 피터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책세상, 2012

 

*

지식사회학, 종교사회학 분야의 '거장'이라는 노학자 피터 버거가 자신의 학적 생애사를 돌아본 책

'내용' 자체가 부담없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이야기, 심각한 이야기들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다루고 있어서 

왠지 부담없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있음 ㅋㅋ

이를테면 뭣도 모르고 돈이 없어서 일단 야간학부에 등록했는데 거기가 바로 뉴스쿨... ㅋㅋ

"배우고 싶어하지 않으면 최소한 재미있게라도 해주자" 이런 금언....

 

*

근데 책 자체가 특정한 내용보다는 자신의 학적 궤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을 재미있게 쓴 것과는 별도로 저자의 삶 혹은 학문적 태도에 대해서 삐딱하게 이야기를 할 수밖에...

 

보다 정교한 방법으로, 보다 사소한 문제를 연구하는 오늘날의 사회학 풍토가 못마땅한 것은 물론 익히 공감...

이건 예전에 알랭 드 보통이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 사이의 괴리"라고 지적한 것이기도 함

또한 베버의 '가치중립'을 삶의 지표로 삼아 '강단 예언자'로서의 길은 거부하고 이데올로기의 풍랑에 초연하려고 했던 것 또한 충분히 존중받을 일이라 생각...  연구 안하는 정치낭인 성향의 학자들이 많은 한국상황 보면 특히나 그렇기도.... 

 

*

그런데, 과연 사회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치중립'적 학문일 수 있는지는 도대체가 미지수...

페미니즘과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름',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한 가히 "진절머리" 수준에 가까운 혐오, 순수하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자문,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담배회사에 대한 자문, 극우 꼴보수는 아니지만 내내 공화당 지지.... 이런 모습 등은 당최 미스테리.... ㅡ.ㅡ

 

저자는 물론 이렇게 이야기했음.

"사회학의 분석적인 부분은 당연히 '가치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제 적용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도덕적으로 적당하다"  

"사회학은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와는 달리 고개를 들어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 걸음이다."

그는 '가치중립적 과학'은 가능하지만 '가치중립적' 과학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이중시민권" 개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게.... 참 훌륭한 말씀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왜.............?? 

 

68세대가 사회의 주도적 위치에 오르면서, "사회학 대부분의 영역에서 '계급, 인종, 젠더'라는 표어가 위세를 떨치게 됐다. 좌익 자유주의가 많은 분야에 퍼지면서 억압적인 정설로 굳어갔던 것이다"는 발언이나, 젠더감수성에 대한 하버드 여학생들이 문제제기를 거의 생떼 수준으로 묘사한 것들을 보면 그냥 영남 지역구 국회의원 같아... ㅜ.ㅜ

마찬가지로, 종교사회학자이면서 어떻게 기독교신자로 계속 남아 있는지도 의문....

'의심에 대한 옹호'라는 책까지 쓰신 분께서 말이지......

이 경우야말로 베버적인 학문적 가치중립과 생활의 도덕적 판단이 이상적으로 분리된 거임???

 

뭔가 찜찜학 속에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읽다가 덮어두었던 라이트 밀즈의 <Sociological Imagination>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 계승범 지음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11

 

*

최근 몇 년동안 미시사, 생활사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지면서 풍속이나 문화에 대한 역사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편이다. 그런데, 내심 나는 그런 책들이 불편했다. 예전에도 짧게 포스팅했던 적이 있는데, 

양반의 풍류나 안빈낙도는 도대체 무엇에 기반하고 있냔 말이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비 계층은 당대의 지배계급, 즉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인 지주였잖아... ㅡ.ㅡ

지식과 정치적 권력과 심지어 경제적 자본까지 삼위일체로 가진 계급이 다른 노예제/봉건제사회에도 있었나??

 

*

이 책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궁금해하던 것들을 말해주고 있음 ㅋㅋ

오늘날의 잣대가 아니라 당대의 지배적 규범인 유학 그 자체에 비춰 보았을 때에도 선비라는 엘리트 계급의 행태가 터무니없고 퇴행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함. 그리고 오늘날 선비 개개인의 일면 - 특히 예술활동이나 개인의 인성과 관련된 - 에만 집중하면서 이를 미화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엄청 비판....

이 책의 주장들이 주류 학계 내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내 속은 시원했음........  

 

*

몇 가지 논점들을 정리해보자면

  • 선비는 지주계급, 청렴결백과 안빈낙도 개뿔...
  • 조선후기 산림정치의 본질은 권리와 권력은 누리면서 정작 의무와 책임은 회피하는 훌륭한 안전망
  • 국왕을 우습게 여긴 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사대적이고 모화적 문명관 때문 (조선 국왕은 암 것도 아님. 진짜 우리 보스는 명나라에 계심 ...이런 마인드 ㅜ.ㅜ)
  • ''치국'의 근거로서 유교이론은 3천년 역사상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된 바 없음 ㅡ.ㅡ
  •  서얼, 노비, 여성 등에 대한 극단적 차별은 유교의 본질에도 어긋남. 그들은 다만 나라야 망하던 말던 특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음. 
  • 그래서 결국 나라 말아먹음 ㅜ.ㅜ 한번도 스스로의 세금을 늘이거나 군역을 지겠다는 결정을 내린 적 없음. 상공업 도입하려면 오히려 난리치고.... 노비 늘이려고 법 바꾸고, 노비와 상민 결혼시키고.... 
  • 요약하자면, 무능하고 욕심많은 그냥 지배계급...  고상한 정신과 학문적 성취는 사기캐릭.... (예전에 다른 책에서 서구의 시민혁명 당시, 사람들이 왕이 아니라 먼저 성당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임진왜란 초기에 평민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고 양반집을 공격했다는 이야기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됨...)
  •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에 실패한 것은 유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행하려 노력하다가 시세를 잘못 만나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자기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일에 몰두했기에 실패했다"는 지적이야말로 '지배엘리트'로서 선비계급에 대한 가장 신랄한 평가라 할 수 있을 듯....  

근데, 안타까운 것은 근대의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이러한 과거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어려웠다는 점..

이러한 퇴행적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근대화하자고 하면 그게 곧 '친일'이 되는 상황이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이 그러한 질서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킬 수밖에 없었던....

정작 '치국'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지배엘리트 들이 몇 번의 의병투쟁을 통해서 (근데, 또 이들 위정척사파 중 상당수는 조선이 아니라 중화를 지키기 위해 싸웠음 ㅜ.ㅜ) 애국자로 평가받는 아이러니....

 

*

최근의 흐름에 대해서, 특히 유교자본주의와 유교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엄청 비판적 의견을 제기함

근면성실과 높은 교육열은 다른 사회 (이를테면 유대민족)에서도 관찰되고, 가족중심성은 이슬탐 사회가 오히려 특징적이며 다른 안전망 없는 상태에서 부득이한 선택일수밖에... 무엇보다 유교의 본래 가치는 상업적 행위나 이윤추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음...

또한 군주권에 제약을 가하는 대간제도라는 것도 조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왕을 겁박하고 휘두른 것의 상당 부분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중국의 천자'가 아닌 그 하수인에 불과한 '조선의 국왕'이 우습게 보여서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  또한 유사이래 어떤 정치제도도 민중을 위한다고 하지 않는 것은 없었으며, 향약은 지역사회 자치라기보다 엘리트들의 촘촘한 연결망이자 지배망...

오히려 선비들은 소통에는 잼병이었음... ㅡ.ㅡ

 

*

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몇몇 측면을 들어 선비를 찬양하는 최근의 트렌드는 저자의 큰 우환... 

 "이제 그만 선비를 역사로 놓아주자" 는 이야기에 나도 완전 동의.....

 

그리고 이건 그냥 막 던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한국사회에서 국민의 정부 이후 수많은 교수들이 정치로 빨려들어가는 현상도 이런 선비계급문화의 유구한 전통과 관련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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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책 정리...

정리하려고 쌓아둔 책들이 쓰러지기 일보직전....

 

#. 한병철 지음. <피로사회>

 

피로사회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첫 문장을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다.

오늘, 이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란 과거와 달리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질병이며, 

그래서 '피로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겠다.

외부 혹은 타자에 대한 면역반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적 동력에서 비롯된 과잉... 그래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

21세기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주민들은 복종주체가 아닌 (규율단계를 졸업한) 성과주체가 되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면, 성과사회는 우울증과 낙오자를 낳는다.

이런 사회에서 지배기구가 소멸된다 해도 자유는 도래하지 않는다. 자유와 강제가 이미 일치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일명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

과다한 노동의 성과는 자기 착취로 치닫고, 하지만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더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즉,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이라는 것이다.

 

*

한편 긍정성의 과잉은 자극, 정보의 과잉으로 이어지고, 이는 '멀티태스킹'을 낳았다. 심심함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는데, 이 때 분노란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

학문분야들마다 사용하는 렌즈가 다르니까 그런가보다 하지만,

소위 '피로사회'라고 명명될 만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의 풍경은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이런 피로사회가 만들어졌는가, 누가 이를 구축하고, 누가 이로부터 이득과 피해를 경험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시선은 원천 차단... ㅡ.ㅡ

자발적 과잉이 없지는 않겠으나, 과연 오늘날 사람들이 미친듯이 일해대는 것을 자기착취로 명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이를테면 부록 '우울사회'에서 소진 (burnout)을 자발적인 자기착취의 병리학적 결과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일세....

어느날 "짠 "하고 성과사회가 출현하고, 개인들은 갑자기 정신줄 놓고 몰두하다가 탈진해버리는 건 아니잖여... 

역사와 정치경제적 맥락을 탈각한 이런 서술 방식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음.

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아무래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일단 얇고, 

그리고 또다른 방식의 힐링과 마음의 자각을 주기 때문 아닐까 싶음... 네가 피곤한 건 이래서야..... ㅡ.ㅡ

 

 

#.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꾸리에, 2012

 

*

역시 철학자가 쓴 책인데, 이 쪽은 훨씬 이해가 잘 되었음.

정서적 거리가 가까워서인가 ㅋㅋ

책을 빌려주신 CY 샘은 좀더 추상수준이 높은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구체적 디테일에 천착하는게 오히려 아쉬웠다고 평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예상보다는 철학적 논의가 풍부했음

철학자가 본 자본주의의 전복 가능성 - 총들고 싸우는 혁명 말고 - 을 오늘날 현실의 법과 제도, 그 균열과 모순 사이에서 찾아본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

 

*

공화국도 뛰어넘어 기업국가, 기업사회가 된 마당에서

새로운 변화는 잉여가치를 노동자가 관리하자는 것, 즉 경영권을 노동자가 갖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반드시 자유가 소유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며, 기업의 소유 (소위 주주)와 경영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장기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소유주와 노동자는 동일한 이해를 가질 수도 있다...  '경영권'이라는 것이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자격 (공식 직책으로나 주식소유로 보나)도 없는 총수들이 전횡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해보자는 것이다.  

 

일단은 자본주의 기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로부터 논의를 시작했지만, 노동자 경영제도는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 당장 도입될 수도 있고, 또 이는 단순히 최고경영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작업장 통제권과 노동자 자치를 포함하는 일련의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의 현장에서 자치를 확보하고, 생산과 초과이윤 분배 (재분배가 아니라!)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 혹은 심도깊은 사회개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앙드레 고르의 문제의식에 대한 샘의 의견이었다.

고르는 노동자 자주기업 또한 자본가 권력을 다른 얼굴로 대체한 것일뿐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바로 그 말...

또한 초과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비영리 기업, 혹은 협동조합 같은 경우 노동자 경영권은 어떤 형태이어야 할까??? 사실 연구소 월례 세미나 때 김상봉 샘을 초청했고, 직접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다들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도대체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ㅜ.ㅜ

 

*

말이 나온김에... 월례세미나 분위기는 아주 따뜻하고 유쾌했다. 개그 욕심이 상당하셨는데, 참가자들이 또 그걸 엄청 좋아함 ㅋㅋ 참석자들과 강연자 사이에 묘한 상승기류가 형성되어 뒤풀이마저 아주아주 뜨거웠더랬다.  

두세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건, 주류 철학계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씨알사상이나 자본주의 문제 탐구를 해서 힘들지 않으시냐는 진지한 질문에 "뭐가 힘드냐, 프론티어라고 생각한다"는 근자감 폭발 답변ㅋㅋㅋ  그 뒤로 세미나 참가자들은 "우리 프론티어 김 선생님" 이라는 애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끝나고 정류장으로 가면서 당원이라고 수줍게 (?) 고백하고 진보신당이 과연 어찌 될까 여쭤봤다. (점쟁이 만난게냐.. ㅡ.ㅡ). 샘은 서두르면 또 망한다고, 한 3년을 두고 천천히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근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ㅡ.ㅡ

 

#. 단비뉴스 취재팀 <벼랑에 선 사람들>  

 

 

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제정임.단비뉴스취재팀
오월의봄, 2012

 

*

이런 '류'의 책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또 여기에 담긴 삶들이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청년 세대들이 이런 종류의 탐사취재를 하고 책을 엮어 냈다는 사실 자체에 경의를!!!

"요즘 애들"이라고 싸잡아서 비난을 퍼붓거나 혹은 치유와 힐링의 대상으로서만 청년세대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있음.

이들은 날카로운 눈과 용기를 가졌고, 공감과 성찰 능력이 있으며

생각보다 멀쩡함 ㅋㅋ

이런 잠재력들을 키워주고 엮어주는 것들이 기성세대와 교육자의 중요한 역할.... 

 

*

벼랑에 선 사람들의 현실은 그저 막막...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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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들...

어쩌다보니 근 두 달 만의 불질이로세.... ㅡ.ㅡ

 

정신못차리게 바쁘기도 했거니와, 어른패드가 생기는 바람에 퇴근 후에는 그걸로 간단한 일처리를 하면서 컴을 켜는 일이 많이 줄어서인듯... 

어른패드에서도 불질 할 수는 있는데, 그건 또 웬지 안 어울린다는, 사실 딱히 근거도 없는 생각... 

 

그동안 본 영화들, 공연들....

 

# 브로콜리 너마저 < 이른 열대야> (KT&G 상상아트홀)

 

포스터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은 공연이라는데, 나는 딱히 위로받을만한 상처가 없어서인지 그런 감정은 없었고

그냥 좀 귀엽다는 느낌? ㅋㅋ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가 아기자기하고 사려깊으면서 소심한 소녀풍의 이미지랄까....

어쿠스틱 감성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사실 김광석의 음악이 대표적 어쿠스틱 정서라고 할텐데, 그의 음악이 숲속의 자작나무 같다면 이들의 음악은 파스텔 색조로 튀지 않게 단장한 친환경 가구 같은 느낌이랄까??? (뭔 말이여???)

어쩌면 이건 인생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 <다크나이트 라이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아이맥스로 보려고 개봉 한참 후에는 겨우 보게되었음.

연작 세 편 중 최상은 역시 두 번째 <다크나이트>. 하지만 완결작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엔딩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이별이라니 뭉클한 감정도 ㅋㅋ (심지어 마지막에 로빈이 등장할 수 있는 여지마저 남겨놓고 손을 털어버린 놀란 감독, 참 대단한 양반!!!)

 

신파적 서사와 반민중적 혁명론이 맘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더이상 영웅이 필요없는 고담시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임. 배트맨이 혼자 고고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경찰들과 함께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은 한편으로 탈영웅주의이되, 또다른 한편으로 민중 스스로가 아닌 공권력인 경찰에게 그 힘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체제순응적이기도 함.

 

그리고 무엇보다 예상못했던 것은 베인이 이 시대의 순정마초였다는 점!!!

그 눈물 한 방울... 흑!!!

미란다를 보면서 이 영화의 숨은 교훈이 혹시 '여자는 진정 요물'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음. 심지어 주먹도끼는 미란다가 부자된게 베인이 용병으로 벌어온 돈 덕분이라면서, 베인 불쌍하다고 장탄식을 늘어놓음 ... ㅡ.ㅡ

해리포터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와 베인 중 누가 더 진정한 순정마초인지 자웅을 겨뤄볼만 함..

 

크리스천 베일, 고담시도 구하고, 지구도 구하고, 이제 우주만 구하면 될 차례!!!

킬리언 머피, 기어이 세 편의 영화에 다 출연하다니, 반가우면서도 짠한 마음...  이제 좀 큰 역할로 돌아와줘....

 

# <프레스티지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6년)

 

프레스티지

 

다크나이트 기다리면서 쿡으로 찾아본 영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이건 호러...

갈 데까지 가보는 인간의 집착과 광기라니...

크리스천 베일, 휴잭맨 완전 후덜덜....

왜 이영화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을까나... 

너무 다크하기 때문일까?

 

#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11년)

 

멜랑콜리아

 

만일, 이렇게 압도적이고 숨막힐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면 나도 저스틴 (커스틴 던스트)처럼 지구의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영화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임.

지독하게 우울하고, 어둡고, 하지만 웅장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지경..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네...

여태까지 본 최고의 종말 서사..... 

아, 그 푸른 멜랑콜리아를 잊을 수 없어...

 

#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2011년)

 

내 아내의 모든 것

 

의외로 재미있게 본 영화..

두 찌질한 남자를 거둬들이는 여자 어른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우쭈쭈쭈ㅋㅋ

사실 극 중 임수정이 비호감으로 여겨지는 게 독설과 수다 때문인데, 가만 들어보면 이야기하는 내용들 중 하나도 틀린 게 없음. 속시원하다는 느낌....

잘생긴 꽃미남이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어쩌면 이런 영화야말로 진정한 어른 여자용 판타지... 

<장화 홍련>, <행복>,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에서 장기요양 전문배우로 활약했던 임수정의 변화된 모습에 깜놀함. 이선균은 멋지게 나왔다는 TV 드라마들을 내가 못봐서 그런지, 찌질 전문 배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 ㅋㅋ 유승룡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카사노바 탄생 ㅋㅋ "이제 그만 뽀삐를 놓아주세요" 라는 임수정의 위로에 흐느끼는 카사노바에서 완전 빵 터짐.....

이들 배우와 감독의 다음 행보에 주목...

 

# 이자람의 <사천가> (화성아트홀.. 멀리까지... ㅡ.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와우...............

이토록 심오하면서 재미난 공연이라니....

일행들 모두 깜놀하고 대만족....

'꽉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상호작용하는 무대의 매력이란 이런 것.

판소리의 마력에 흠뻑 빠져보아요....

다음엔 수궁가나 심청가 공연을 꼭!꼭!꼭! 보자고 약속하며 공연장을 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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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폭력의 기록 두 편

그리고 있는 대상과 그리는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 둘은 구조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또하나의문화, 2012

 

*  연구자 혹은 관찰자....

 

이 책은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구조적 질서와 폭력을 해석하는 모든 학문분야에 던져진 도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조은 선생은 빈곤에 대한 주류적 시각 - 소위 '빈곤의 문화' - 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빈곤의 문화'는 중산층, 혹은 전형적으로 중산층인 연구자들이 빈곤을 이해할 때 가장 쉽게 내릴 수 있는 해석이자 결론이다.

 

"이 연구를 정리하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구조에 주목하게 되었다. 빈곤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 있을 뿐이며,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 '가난의 구조적 조건'이 있을 뿐이다."

" '가난함'의 경험은 그 가난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양식인 것이다."

" 이들의 가난은 세계화나 금융 자본주의, 도시 공간의 자본주의적 재편 같은 구조적 요인과 동떨어진 듯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삶은 바로 그러한 구조적 요인의 직접적인 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충격 속에서 그들이 살아 내는 방식, 곧 삶의 양식이 빈곤문화라고 이름 붙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빈곤문화의 핵심에 그들의 성과 사랑과 결혼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가족이 있다. 이들이 그나마 스스로 선택했고 또 선택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중 매체가 대량으로 유포하는 로맨스 각본은 이들이 손쉽게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각본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성적 문란'이나 가출, 이혼, 동거와 출산 등이 '가족의 위기'로 읽히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 문화의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관찰자들, 혹은 연구자들은 같은 현상을 보면서, 다른 해석과 답을 찾아내곤 한다. 

이를테면 같은 시기에 사당동을 연구한 또다른 이들은 지역의 노동통계를 작성하면서 여성 취업률이 채 1/3도 안 된다고 파악했지만, 조은선생님 팀이 본 바로는 큰 병이 걸리지 않는 이상 집에서 '노는' 여자는 없었다.

 

그것이 비단 '가난'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문제를 '두껍게' 읽어내는 방식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우리는 조은 선생님 같은 선배 연구자들이 20년 넘게 노력한 덕분에 빈곤의 문제를 조금 더 두껍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복잡한 문제의 뒤안을 살펴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떤 관찰자인 것일까.....

 

 

*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책을 읽으며 괴로웠던 것은 솔직하게도, 이들에 대한 연민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한 통탄, 혹은 연구자로서의 반성이라기보다, 정말 습자지 한 장 밖에 차이나지 않는 그들과 나의 삶 - 너무도 위태로운 그 경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헐리우드재난 영화에서 한끝 차이로 목숨을 건진 인물들이 그 순간 마냥 기뻐하지조차 못하면서 일종의 멘붕 상태에 빠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주 작은 차이 -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 집에는 가정폭력이 없었다. 여태까지 이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폭력이 없었던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던 게다. (아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면 지금과 같은  resilience 를 갖지 못했을 것 같다 ㅡ.ㅡ) 그리고 나는 우연히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연히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대규모 재개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소소한 재개발이 있어서 계속 근처 동네를 떠돌며 이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사당동이나 상계동, 행당동 같은 폭력적 상황들은 다행히도 벌어지지 않았었다.

 

부유한 가정, 혹은 중산층 가정이라면 이런 세 가지가 일상이고, 그닥 축복받은 우연도 아니겠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같이 있었던 것이 그야말로 우연이고 축복이었다.

취약성 (vulnerability) 이란 이런 것이다.

삶의 경계에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와 우연에도 엄청난 변이가 일어나고 통상적이지 않은 파국으로 연결되는 것.....  '매일매일 드라마를 찍는다'고 표현할 만큼 우여곡절 많은 삶이란 바로 그러한 잠재적 취약성이 현실화된 결과일 것이다.

"... '에이 쪼금만 들어갖고 되는 것이 아니여. 내가 살았던 것을 얘기할라고 하면은 한정 없어'라는 말로 경훈이 아빠 김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훈 아빠의 가족사와 생애사를 듣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때 김씨 나이 서른 넷이었다....."

나의 지나간 유년시절에 '찾아온' (내가 만든게 아니니까!) 이러한 소소한 우연과 축복이 일단 빈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하기엔 그 진실이 너무나 씁쓸하다. 

 

 

*  국가의 폭력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가 폭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막무가내로 철거를 하고 사람들 3천명을 트럭으로 실어다가 막무가내로 사당동 산 자락 (수도, 전기, 집, 도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그냥 산자락)에 내려놓질 않나, 항의하는 사람들은 한강 모래사장에 풀어놓지 않나.. 이건 뭐...   이건 추상적인 '국가폭력'이라는 단어로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우격다짐이다.

백주대낮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수단이라도 세련되게 바뀌었길 기대하지만, 오늘 본 [두개의 문]은 그러한 기대마저도 헛된 것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 김일란 감독 [두개의 문]

 

두 개의 문

 

이렇게 차분한 내러티브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경험도 참 오랜만이다.

정말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충실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보고 나면 분노와 허탈과 한숨이..... ㅜ.ㅜ

 

어쩌다보니 나는 이명박 정권이 뭘 해도 놀랍지가 않다.

그들은 뭘 해도 정치적 타격을 받지 않는 놀라운 반사 신공, 혹은 투과 신공을 갖춘 것 같다.

용산 참사, 쌍용차 폭력, 사찰, 측근 비리...

하나하나 만으로도 정권퇴진에 이를만한 대박 사건들이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니들이 그러는게 놀랍지도 않다...

이 정권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관용과 체념의 수준을 극상으로 이끌어올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뭐라 해도 듣지 않으니, 이제 욕하기도 지쳤다며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그 근성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찜찜한 것은

이렇게 기억투쟁에 동참하여 이사건을 잊지 않는 것, 그 너머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도대체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봤으니 나도 개념있는 시민이야 하면서 트위터에 인증샷 올리면 되는 거여?

반드시 정권 교체한다는 각오로 대선에 올인해야 하는겨?

속이 터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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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들과 영화

이번 봄에는 유례없이 바쁘기도 하고 감기 때문에 나들이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막같이 황폐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 Nell 앨범 발매 공연 - 2012.04.14 올림픽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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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음 ㅡ.ㅡ

 

그들의 음악을 들은지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얼굴 첨봤는데,

같이 간 도끼가 보컬 김종완의 얼굴이 개그맨 최효종 닮았다고 지적 ㅋㅋ

 

나의 음악취향을 두고 흔히 친구들은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의 음악만 듣는다고 하는데

막상 공연장에서 들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구!!!!

공연의 구성이나 연주나 보컬이나 아우..... 담에 꼭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절...

 

 

#2. 델리스파이스 2012.04.22 농협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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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 

아 공연 중 불안과 긴장을 초래하는 멘트 좀 안 하셨으면 ㅋㅋ

그냥 노래만 해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네...

 

넬의 공연과는 또 다르게... 뭔가 같이 늙어간다는 친숙한 느낌?

하지만 꽉 찬 연주와 힘없는 (?) 보컬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기묘한 조화와 박력은 역시!!!

 

아참, 게스트로 나온 옥상달빛의 4차원 만담과 아름다운 노래도 역시 일관된 부조화의 조화 ㅋㅋ

 

 

#3. 정재은 감독 [말하는 건축가] 2011

 

말하는 건축가

 

 

 

건축, 공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죽음이 예견된 자의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받는 감동은 슬픔도 회한도 환희도 아니다.

공공적 쓰임새와 심미적 아름다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얻게 된 데서 얻는 깨달음의 감동과

죽음을 앞에둔 한 낭만주의자의 성공과 좌절, 고집과 철학에 대한 소박한 존경의 마음... 이런 것?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는 이야기는 비단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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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과 과학 논평

출퇴근 길이 가까워져서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책을 읽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ㅡ.ㅡ

사실, 출퇴근 시간 절약된 분량을 차분히 앉아서 책읽는 시간에 써도 될텐데...

아무래도 자리에 앉으면 항상 어디에선가 적체되어 있는 일을 하게 되는지라...

 

저녁 독서시간 할당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이러다 바보되겠쓰... ㅜ.ㅜ

 

#1. SF 명예의 전당 2권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오멜라스(웅진), 2010

 

이거 사실 첨 출판되었을 때 번역자 중 한 명인 네오한테 선물받은 건데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내가 번역에 참여했던 '명예의 전당' 시리즈 (?) 중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시나 느끼는 감정은... 놀랍다/대단하다/신기하다.......

 

*

아무런 맥락없이 읽는다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형화된 클리세들이 눈에 거슬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법도 하지만,

여기 실린 이 글들이 현재의 그 클리셰, 혹은 스테레오타입의 원조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말로는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서글프고 애틋하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는 '헬렌 올로이' 같은게 대표적이다.

감정을 갖게 된 로봇, 로봇인 줄 모르는 로봇, 그 정체를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

SF 업계에서 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흔해빠진 스토리인가 말이지.. ㅋㅋ

근데 이게 1938년 작이라는 사실이 완전 후덜덜......

스터전의 경우에도 그 명성만 익히 전해듣고 작품은 첨 보았는데, 역시 소인, 기계인간의 창조주, 우리 주변의 소우주, 사회성 빵점인 과학자....  오늘날 흔해빠진 플롯들의 원조 ....

반인/반기계를 다룬 '스캐너의 허무한 삶'도 그렇고,

초능력을 갖게 된 누군가 (대개는 어린이 ㅋㅋ)의 축복받지 못한 삶을 다룬 '즐거운 인생',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도 관련된 안전한 로봇 패러다임에 반하는 '즐거운 기온'도 이런 유형...

 

*

미래를 내다보는 혹은 사회문제를 예측하거나 뚫어보는 눈 또한 놀라운데,

이를테면 핵 노출에 의한 기형아 문제를 아주 짧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낸 '오로지 엄마만이',

도덕/차별/배제 문제의 복잡성을 빼어나게 그려낸 '친절한 이들의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은 엄청난 수작....

정체성/능력주의/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 같은 어려운 당대의 이슈를 어쩜 이렇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는지.... 읽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음.. ㅜ.ㅜ

 

*

근데... 하인라인의 노동자 적대성은 도대체....

누가 쓴 건지 확인하지도 않고 읽다가 '혹시?' 하면서 다시 앞쪽을 들춰보니 '역시' 그였어... ㅡ.ㅡ

글은 참 맛깔나게 쓰는데...   짜증이 화르륵..

 

 

#2.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바다출판사, 2012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이 바쁜 시간을 내서 이렇게 책을 써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그저 안습....

나도 2004-05년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처구니를 상실했던 공립학교 지적설계론 교육을 둘러싼 되도 않는 '논쟁'에 과학자들이 이건 정말 심각하구나 하면서 함께 팔을 걷어붙인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뭐 미국 상황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KAIST 에 '창조관'이 버젓이 존재하고,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이 남유난히 강한 점을 생각한다면 남 욕할 처지는 아닌 듯...

담배회사나 석유회사들이 건강영향, 지구온난화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의심을 창출하고 논란을 만들어서 시간끌기.... 사실 창조과학의 최근 버전인 지적설계론이 동원하고 있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될 듯... 

진화론이 완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도 있고, 지적설계론이라는 대안적 설명도 있는데, 학문의 자유, 선택의 자유라는 미국 정신에 따라 과학 시간에 여러 가지 견해를 다 가르치는게 좋지 않겠냐...  이런 접근전략...

말만 들으면 그럴듯해보이지만, 일단 지적 설계론은 '검정'이 가능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동료 심사 학술지에 증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건 뭐 과학도 아닌데.... 어디 듣보잡이 나타나서 진화론과 자기가 동급이라고.....

워낙 지적설계론을 포함하여 종교 - 특히 기독교는 정파, 사파, 구교, 신교 가리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기에 책의 내용이 신기한 것은 없었으나,

'자연선택은 누가 더 생존율이 높을지 모르는 상태로 생겨나는 무작위적인 변이들을 재료로 삼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이라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진화론의 핵심을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고, 또 두 가지 인상적인 부분....

 

첫째는, 신학교에 다닐만큼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다윈이 자신의 믿음, 그리고 기존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발견 때문에 몹시도 괴로워했다는 점....

만일 이 때 다윈이 '어 이게 아닐 거야, 내가 뭘 잘못 봤겠지, 이럴 리가 없잖아'라고 넘어갔으면 현대의 위대한 발견은 없었거나 아니면 한참이나 뒤늦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발견도, 기존 지식으로부터 예측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자신의 관찰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라는 끈질긴 질문으로 추구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과학적 태도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믿음'이 아닌 '이성'에 의해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이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했던 연구들에서 이런 태도는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 ㅡ.ㅡ

뭐 내가 다윈이나 코페르니쿠스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겠지만,

기존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경시, 혹은 안일한 해석은 돌아보면 민망할 지경............ㅜ.ㅜ

 

둘째는 과학이 도덕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스티븐 핑커)에 완전 공감!!! 종교가 일부 (!)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그 패악질을 두고 손익계산서를 비교해본다면 인류에게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인데다, 종교가 과연 윤리와 도덕 영역에서는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졌던 나에게 아주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의견....

종교, 특히 자기성찰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어떤 절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는 종교의 경우,

그러한 절대자의 존재가 사람을 과연 더욱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까???

역사적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았고 (많았나?)

또 일반인들 중에서도 해당 종교가 내세운 본연의 미덕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렇다면 counter-factual condition 을 가정했을 때 과연 이들이 해당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더라면 인간 말종이 되었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ㅋㅋ

종교 없었어도 충분히 그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는....

실제로는 버트런트 러셀도 누누이 지적했듯,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혹은 인가된 패악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도덕이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스티븐 핑커의 경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종교가 없다는 것이 물질만능주의 인간말종으로 살겠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나....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 한겨레 21에 실린 김인국 신부의 인터뷰를 읽다 약간 허거덕 했다. 이 분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할 때 도와주고 힘이 되준 훌륭한 분이다. 인터뷰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뱀이 시키는 대로 놔두면 안 된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따먹은 것보다 더 무거운 죄는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을 버리고 뱀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 것이 죄와 불행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불법과 폭력에 우리가 공범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악에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일조하거나 간접으로 승인하거나 결과적으로 방조 또는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 (한겨레 21 900호 김인국 신부 인터뷰)

 

글쎄다.. 나는 이 에덴동산 장면을, 창조주가 시키는 대로 무개념 상태로 살다가 뱀을 통해 처음으로 각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게 아니라, 뱀을 통해 돌아보게 된 것 아니여? 그 전에는 결정권이 오로지 그분에게 있다가??? 이런 걸 보면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생각밖에....  뒷부분 논지에는 완전 동의하는데, 이게 정말 적절한 사례인지는 도대체 납득이 안 됨...

하긴, 뭐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절대자 믿는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족이지만, 이건 실존인물을 둘러싼 종교적 빠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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