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의 추억(8)

'집으로'라는 영화가 있었다. 다른 거 보다는 '외할머니'라는 위대한 존재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던 영화였다. 적어도 행인에게는.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인해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일 나간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머니 손에 키워지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은 외할머니 제사를 모시고 있다. 언제나 보고싶은 외할머니. 꼬장꼬장한 성격에 항상 깔끔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하루에 '새마을'이나 '환희' 담배를 대여섯갑씩 피우시던 외할머니. 시집와 고생하면서 배앓이를 할 때 외할아버지가 담배를 가르쳐주셨다나.

 

뚝방 살던 때는 말 그대로 '가난'이라는 것이 그림자처럼 떠나질 않았을 때였고,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참 아프고 그랬다. 그게 뭐 자랑도 아니니 구구하게 살림살이 이러구 저러구 했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고, 아무튼 그런 전차로 외할머니는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행인의 손을 잡고, 두살 터울의 동생을 등에 업고 뚝방 동네 아래 있는 논밭에 일을 나가셨다.

 

거기서 일을 하시면서 돈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논둑이나 밭둑 어름에 행인과 동생을 앉쳐놓고 외할머니는 항상 일을 하셨다. 행인이 딴 건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은 동생 옆에서 얌전하게 잘 놀고 있었던가보다. 일이 끝나고 나면 야채며 밥이며 얻어갈 수가 있었는데, 일이 없는 날에도 그렇게 외할머니는 두 손주를 데리고 논이며 밭으로 나갔다.

 

논밭에서 일을 못 얻었을 때는 이고랑 저고랑 다니면서 나물을 뜯거나 걷이가 끝난 배추밭이나 무밭에서 시래기거리를 줍기도 했다. 그걸로 반찬도 했고 죽도 끓여먹고 그랬다. 한참 어릴때 일이라 언제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번은 할머니 손 잡고 갔던 배추밭에 노란 배추장다리들이 이뻤더랬다. 노란 나비, 흰 나비 날아다니는데 동생을 봐야한다는 의무감도 잊은 채 나비따라 여기 저기 다녔던가보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 혼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할무이, 할무이'하던 행인, 급기야 퍼질러 앉아서 실컷 울었는데, 그 때 외할머니가 동생을 등에 업고 나타났다. 혼이 한참 난 것도 같고 엉덩이를 몇 대 맞은 거 같기도 한데 외할머니와 동생을 보고 더 섧게 울었던 거 같다.

 

뚝방으로 돌아갈 때면 가끔은 치마섶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잘 싼 눈깔사탕을 꺼내주시기도 했다. 볼따구가 제 얼굴 반만큼이나 튀어나올 정도로 큰 사탕을 입에 넣고 할머니 손을 잡고 그렇게 뚝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외할머니는 행인을 키워주셨고, 외할머니 정을 듬뿍 받은 행인은 오늘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오늘따라 외할머니가 왜 이리 보고싶은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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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22:04 2007/03/1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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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구... 드뎌 '행인'생활 청산할 때가 된거여..ㅎㅎ

  2. 저는 증조할머니가 키워주셨다는...고2때 돌아가셨는데..지난 설에 성묘하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몰래 살짝 울었어요~ㅠㅠ

  3. 산오리/ 흠... 그런 거군요... 청산할 때가 되긴 했는데, 뭐 손에 쥔 게 있어야죠. ㅎㅎㅎ

    샤하트/ 행인도 외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끈해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