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림현상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에 관한 법률(법학전문대학원 설치 ·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된 채 1년 반이 지나도록 묻혀있다. 개인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에 반대하는 행인으로서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사법개혁의 기본전제로서 법조인양성과정과 충원방식의 변화가 이대로 논의 자체가 정체된 채 해결의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애초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이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분들이 있었다. 당 차원에서 대안을 준비하는데 이 분들의 논리가 거세게 제기되는 바람에 장장 2년을 넘게 구체적인 대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의 활동에 일정한 개입을 할 수 있었던 이 분들이 법학전문대학원이 대학교육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 근거는 다른 것이 아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할 자격요건은 전공불문하고 4년제 대학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되도록 현재 계류된 법률안에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일정한 학점의 법학과목의 이수가 필요하지만 그건 교양수업듣는 정도로 충분하다. 이런 요건을 둔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소양을 갖춘 법조인을 배출하겠다는 목적에서다. 목적 그 자체로만 보자면 매우 훌륭한 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학부전공이 다양하다고 해서 소양이 충실하게 갖추어진 법조인이 선발된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망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학부에서는 용이하게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학부를 선택하고 거기서 학부전공의 심화를 위한 학습보다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공부에 전념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애초 이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행인이 강력하게 반발한 이유도 여기 있다. 과연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전공학점취득을 하는 행위를 교육정상화의 일환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런 터무니없는 가설이 제기된 것이 벌써 2004년이다. 그 당시 행인은 이런 발상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이며 오히려 학부교육 전체를 왜곡할 수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런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학교육정상화를 운운했던 분들은 교육운동을 직접 현장에서 펼치던 현직 교수들이었고, 그에 비해 행인은 일개 정당의 정책연구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만일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라나? 암튼 그렇게 해서 당의 정책결정에 혼선만 끼쳤던 이 분들은 지금 법학전문대학원과 관련된 논의에서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이분들의 주장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이 이제 드러나고 있다. 소위 '메디컬스쿨'이라고 불리는 의학 치의학 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된 이후 나타난 현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메디컬스쿨 입학자격은 단지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한하지 않고 이공계열 학과 중 특히 의료분야와 일정한 연관이 있는 학과에서 수학한 경우에 이들 모두가 입학가능한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공계열 학생 중 상당수가 메디컬스쿨에 진학하기 위한 학습을 하고, 실제 상당한 학생들이 메디컬스쿨에 진학하고 있다. 의학고시라고 불리는 MEET, DEET 에 응시하는 이공계열 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국비장학생으로 이공계열에 진학한 학생들 중의 일부도 메디컬스쿨에 진학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를 살린다는 취지까지도 있었던 메디컬스쿨제도 도입의 결과다.
결국 학제를 하나 늘리는 것이 대학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발상은 근거없는 추상적 발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발상이었다. 메디컬스쿨이 보여주고 있는 이 기가 막힌 현실을 로스쿨, 즉 법학전문대학원에 적용하면 상황은 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메디컬스쿨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이공계열 학과는 화학과, 생명공학과 등 몇 개 학과에 국한되어 있다. 반면에 로스쿨 입학자격을 위한 학과의 제한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로스쿨이 설치되면 전 대학 모든 학과에서 로스쿨 진학을 위한 입시준비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단순히 예측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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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일부 전문가와 학자들은 우선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설명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설치가 직역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직역이기주의의 만족을 위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피를 봐야할 것인가?
당시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한 교수께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 제도를 도입해 이익을 보는 것은 학제가 더 생김으로 인하여 밥그릇이 보장되는 교수들 뿐이잖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질문을 받은 교수께서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다른 말씀을 하시려는듯 한참 생각을 하시더니, 한숨을 쉬며 그럴 것이라고 인정하고 말았다.
물론 다른 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제도의 혁신은 법조기득권의 해체와 왜곡된 사법구조의 개선을 통해 민중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라는,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3월 14일(수)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1층 104호에서 변호사자격시험법안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된다. 당이 2년여의 침묵을 깨고 본격적으로 우리의 안을 제시하는 자리다. 이 기회를 통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토익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학부니 전공이니 다 폐지하고 기업입시학원으로 만드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머네요.
이걸 도입하게 되면, 아마도 대학입시를 넘어서서 로스쿨 입시 광풍이 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현재 대학생의 사교육비가 중고등학교 못지 않은데, 또 다른 사교육비가 지출되는 셈이지요. 결국은 공교육을 죽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노인/ 이미 입시학원이 되어버렸죠.^^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도대체 무엇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금 현상이 결코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곰탱이/ 대학생 사교육비에 대해서는 많이들 입을 닫더라구요. 아직까지 데이터도 나온 것이 없을 정도구요. 참...
전 제목만 보고,
'아니 이분이 어제 과음을 하신겐가" 했더라는 ㅋ
정양/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