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이준석의 헛소리를 보다가
근래 모처에서 요청이 있어 인권관련한 교양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의 주제는 인권과 헌법적 상상력이었다. 하긴 내가 망상력은 갑이다보니 썩 어색한 주제는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닌지라 나름 또 시간을 잡아먹었더랬다. 코로나로 컨디션이 바닥이었으나 어쩌랴,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걸.
언제나 그렇듯이, 헌법 관련 교양 강의이므로 헌법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로 부터 시작했다.
"헌법은 국가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를 규정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다."
난 항상 관계라는 걸 먼저 이야기한다. 모든 법은 관계를 정한 것이고, 헌법은 그 관계들의 원리를 정한 것이라는 것으로 시작.
우리가 접하는 모든 관계를 사안 별로 정리한 것 중 하나가 헌법의 기본권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기본권'은 '인권'이라고 하는 가치 중에서 특히 특정한 헌정질서 안에 승인된 권리의 항목들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인권'이라고 주장된 어떤 가치가 기본권의 위치에 도달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고 지난하다는 것이다. 보통 '인권'이라고 하면 뭔가 막 대단하고 아름답고 숭고한 것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인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떤 인권이든 간에 그것이 누군가에게 있어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이야기되기까지는 많은 이의 피와 땀이 바닥에 깔려 있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어떤 인권의 항목이 처음 제기될 때, 그것을 권리로 인정한다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던, 마치 태고로부터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어떤 관계가 전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기존의 관계가 전복된다는 것은 기존의 관계 속에서 기득권을 누려왔던 자들의 기득권이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동권 투쟁의 과정에서, 장차연이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중교통 이용 켐페인을 벌일 때, 직장의 직원들 일부가 이렇게 이야기했더랬다.
"시위하는 건 좋다. 그러나 출근시간은 피해줘야 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자기 권리만 요구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 말의 뜻은 비장애인이 자신의 기득권을 침해당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속도와 효율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체제다. 이러한 체제에서 장애인은 자본주의 이념에 의해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잘해봐야 시혜의 대상이 될 뿐이다. 반면 비장애인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장애인에 비해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의 기득권은 안전하고 정확한 출퇴근시간의 보장을 통해 유지될 수 있으며, 장애인이 출퇴근 시간을 점유하는 것은 이들의 기득권을 방해하는 행위가 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유지된다면, 비장애인의 기득권은 지속될 수 있으며 비장애인의 입장에선 '정상적'인 삶이 유지되는 것일 뿐 어떤 문제도 없다. 그런데 장애인의 출근길 대중교통 이용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한다. 기득권 유지에 균열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비장애인은 그것이 자본주의체제에서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인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기본적인 인권은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엄청난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장애인의 이동권이 잘 보장되면 비장애인의 이동권도 당연히 보장된다. 장애인이 얼마든지 지하철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아마 지금보다 비장애인의 지하철 이용도 더 편안하게 될 거다. 지하철이나 지하도 엘리베이터 설치, 지하철 스크린 도어 설치, 저상버스 운행, 건물 경사로 설치, 출입문 설계변경, 도로 등 편의시설증진의 결과, 장애인만 편해진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역시 편해졌다.
결국 누군가의 인권이 보장된다는 건 나의 권리도 확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 나에게 손해가 좀 나는 거 같아도, 조금 시간을 가지고 보면 결국 내게도 이익이 된다.
꼭 필요한 누군가가 소외된다는 것은 누구나 소외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며, 한 사람의 존엄이 침해되는 건 모든이의 존엄이 침해되는 것임을 인식할 수 이어야 하겠다. 그래서 관계의 재구성이 당장은 나의 기득권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동료 시민의 성장과 발전이 곧 나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관계의 제고도 필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