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개와 고양이와 닭과 게와 그리고...
해변은 아름답다. 파도는 거칠고 박력있지만 어울릴만하고, 모래는 곱고 섬세하면서 한량없이 뜨겁다. 골목은 조용하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미소가 아름답고 은근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새벽 5시부터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6시도 되기 전에 일들을 시작하지만 여유가 묻어난다. 그러다가 곳곳에 해먹을 걸기도 하고 그냥 자리를 깔기도 하면서 누워 쉰다. 또는 홀로 앉아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뜨거운 햇볕이 비치는 그늘도 없는 공사판에 다시 서서 땀을 흘리기도 하고.
이 동네는 개를 묶어놓지 않는다. 목걸이를 건 개를 보긴 했지만 줄로 묶여 있는 개는 볼 수 없다. 개들은 수더분하다. 사람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경계하지도 않는다. 자기들끼리 어울려 놀고 투덕거리기도 하지만 조용하다. 심지어 꼬리를 흔들며 사람들에게 접근하지도 않는다. 별달리 눈치도 보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한 번 쳐다보다가도 종내 고개를 돌리고 지 하고싶은 걸 한다. 도망가지도 않고 서둘러 숨지도 않는다. 물론 개보다는 경계심이 많고, 사람들의 근처에는 오지 않지만.
하물며 이 동네는 닭도 놓아서 기른다. 닭장이 있는 집을 몇 집 봤지만 닭들은 죄다 닭장 밖에서 돌아다닌다. 사람들로부터는 멀찍이 떨어져 움직이고, 주로 풀섶으로 숨어 돌면서 사람들을 경계하지만 당당하게 돌아다닌다. 가끔 개가 그 뒤를 쫓는다. 쫓고 쫓기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지만 그리 숨가빠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이 동네 닭들은 살찐 놈이 몇 보이질 않는다.
백사장에는 게가 돌아다닌다. 이 게들이야말로 사주경계의 최고봉이다. 모래 위로 발바닥이 스치는 소리만 나도 진짜 '게 눈 감추듯' 모래 속으로 숨어들어버린다. 새벽에 백사장 모래를 파내 게를 끄집어내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지만, 그 외에 백사장에서 게잡이를 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동네 분위기가 이 정도지만, 그렇다고 짐승들과 사람들이 살갑게 스킨십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사람은 그냥 개와 고양이와 닭을 놔둔다. 개와 고양이와 닭도 사람들을 그냥 놔둔다. 여기에는 뭐 반려동물이 어쩌고 동물권이 어쩌고 너스레를 떨고 호들갑을 떠는 일이 없다. 그래도 서로 잘들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