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을 잡겠다는 거짓말 혹은 망상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라고 원성이 자자하단다. 누군가는 민주당이 정권잡으면 반드시 집값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만, 그것까지는 분석을 해보질 못했으니 그렇다 저렇다 말하긴 좀 껄끄럽다. 하지만, 꼴랑 단기대책 내놓는다고 잡힐 집값이었으면 애저녁에 잡혔지 지금까지 혓바닥 낼름거리며 오르막길만 탈 이유가 없다. 이건 민주당이나 자유당이나 별 차이 없다.
예를 들어 이런 거. 은평구 진관동과 고양 삼송 어름 중간지점에 폐기물재활용시설을 짓겠다고 한지가 꽤 됐다. 이게 난항을 겪고 있는 게, 진관동 일대 은평 뉴타운 입주주민들과 삼송동 일대 뉴타운 개발예정지구에 목매달고 있는 사람들이 '혐오시설 설치'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실제 지도 펴놓고 보면 그 주변은 그냥 빈 터고, 거기 시설 짓는다고 해서 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 예컨대 소음, 분진, 개스 등의 물리적 피해가 갈 일이 없다. 그런데도 난장판이 벌어지고, 이런 혐오시설을 '북한산 국립공원' 옆에 짓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개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더 재밌는 건, 아직 짓지도 않은 건물에 입주 예정인 외지 거주인들까지 나서고 있다는 것. 이들은 현재 해당지역과는 관계도 없는 먼 곳에 살고 있지만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민원에 한 몫 하고 있다. 내가 거기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어찌 그런 '쓰레기장'이 내 집 예정지 옆에 들어온단 말인가!
모르긴 몰라도, 이들은 아마 자신들이 떠나오게 될 지금 살고 있는 그 자리에 일단 자신들이 빠져 나간 후 비슷한 시설이 들어서면 아마도 나 몰라라 할 거다. 이 동네 아파트 다 지어져서 입주 끝낸 후라면, 그 동네 사람들이 이게 왠 일이냐며 난리를 칠 때 님비 운운하며 손가락질 하거나, 아니면 집 값 떨어지기 전에 옮겨서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던가.
이 사람들이 뭐 별스러운 사람들인가? 못살아 궁기가 흐줄근하게 흐르는 터에 그저 내 먹을 것만 챙기기에 바쁜 걸뱅이들이라서 그런가? 전혀 그렇질 않다. 이 동네 아파트 들어와 살 정도 되면 그다지 못사는 처지도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건 그거다. "왜 은평은 집값이 오르면 안 되는가?"
이들의 욕망은 강남 주민들과 다르지 않고, 이들의 삶 역시 그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강남 주민과 이들의 차이는 단 하나, 누구는 집이 강남에 있고 누구는 집이 경기 북부 어름과 맞닿아 있다는 것 뿐이다. 이 차이로 인해 이들은 자신들의 집값이 강남의 집값과 유사한 수준을 이루길 바란다. 물론 집 들어가기 전과 들어간 후의 마음이야 또 다르겠지만.
이 욕망의 기저를 흔들지 못하면서 집값 안정화 정책 내놔봐야 만사 허망하다. 지금까지 나오는 집값안정화 프로그램의 핵심을 보라. 지역적으로는 서울 수도권에 중심을 두고 있고, 내용적으로는 다주택 보유자들에게 겁주는 게 중심이며, 실제로는 돈 없어 전전긍긍하면서도 내집 한 번 마련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혼란만 부추긴다.
이 대목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대책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남한 전체면적으로 따져보면 서울, 경기, 인천이라고 하는 이 수도권의 면적은 대략 12%정도를 차지한다. 산간오지 도서벽지 등 집 지을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는 땅을 뺀다면 최대한으로 잡아도 대략 30% 정도 될라나? 인구대비로 보면 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50%에 육박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남한사회의 모든 욕망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 이곳에 사람이 집중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거다. 서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모든 수요와 공급이 밀집되는 이 상황에서 집이고 인구고 간에 그 흐름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렇다면 결국 이 수도권 집중현상, 제국의 중심이 되는 서울을 향해 식민지 지방이 경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 상황을 해소하지 않고는 집값정책은 백약이 무효다.
저 50%에서 낙오되는 순간 저 12% 안쪽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12%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각축이 벌어지고, 기왕에 12%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자신들의 성을 높이 쌓아 다른 이들이 이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상황. 집값이 올라가면 돈 벌어 좋은 게 아니다. 그건 자신들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공고해진 자들, 예를 들어 각계 전문가, 법조인, 고위관료, 언론인, 성공한 사업가 등등, 그리고 이들과 유착하여 튼실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너서클의 메리트를 넉넉히 향유하고 있는 계층들, 이들이 살고 있는 곳. 수도권-> 서울-> 강남... 집값 정책을 짜는 사람들은 누구? 다름 아닌 바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행정의 전반을 틀어쥐고 있다. 그리고 여론을 만들어낸다.
정권은 5년이면 끝난다. 기왕 5년 밖에 안 되는 거,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이 휘둘러서 볼장을 보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지 혼자 사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거고. 5년 후 생사를 도모하기 위해 지금 불장난을 할 수는 없는 게 정치의 생명. 그 정치의 생명을 쥐고 있는 힘 중에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바로 수도권-> 서울-> 강남의 커넥션이다.
문제의 해결은 수도권 밀집현상을 해소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러한 해결방식은 지금과 같은 기득권 구조에서는 불가능할 거다. 노무현이 꼴랑 신행정수도 만들겠다고 한 것도 개박살이 나는 마당에 서울중심의 사회구조를 뒤집어 엎자는 게 정책차원에서 나올 수 있겠나?
기왕에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먹게 만드는 구조임을 인정한다면, 사실 지금의 집값구조는 시스템 상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태초에 소유가 있었으니, 소유는 소유를 낳고 그 소유는 또 소유를 낳으며... 달리 말하면 없는 넘은 그냥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다. 집 없으면 세 살다가 변두리로 변두리로 쫓겨나고, 쫓겨나는 거 몇 번 하다보면 때 되서 저승 가는 거다. 별 거 없다. 그 와중에, 정부에서 집값 정책 한 번 터뜨리면 혹시라도 집값이 좀 떨어지려나 하는 망상도 좀 가져보다가. 희망고문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