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비치의 추억]카메라와 습관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이 블로그 어딘가에 카메라에 얽힌 일을 올린 적이 있었더랬다. 귀찮으므로 트랙백은 생략. 쨌든 간에, 술 처먹느라 손에 쥔 돈 없이 공장을 그만둔 후 그나마 유일하게 간직했던 전 재산이 카메라였는데 홀라당 도둑맞은지 어언 23년! 그동안 카메라를 사고싶다는 유혹은 실로 어마무시한 것이었으나 그거 샀다가 제대로 관리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또 양상군자 밥벌이만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돈이 없어서 못사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세상만사 다 귀찮고 뉀장 어디 훌쩍 떠나 이름 없이 살거나 아님 걍 까이꺼 후생을 기약하고 이생을 마감하는 게 어떨까 별 잡생각을 다하던 중, 난 그동안 너무 눈으로 볼만한 것들을 보기만 하고 다 떠나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이 허전하고 아쉬운 맘을 우짜면 다독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다 기어이 금단의 단어, '카메라'를 떠올리게 되었다.
똑딱이 하나 장만해서 가볍게 들고 다님서 재미난 사진이나 좀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온라인 검색을 시작했다만... 아... 이건 헬게이트를 열어제낀 것이었다. 눈 감고 귀 막고 카메라 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살아왔던 지난 23년동안, 카메라의 세계는 경천동지 천지개벽 상전벽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유일한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싼 카메라에 침을 흘리는 이 무조건 반사현상이었다...
사실, 예전에 카메라 들고 돌아다닐 때도 엄밀히 말해 뭘 좀 알고 그랬다기보다는 한치의 더함도 없이 그저 '취미' 이상의 무엇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일종의 알리바이였고, 실제로는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그 자체가 즐거웠던 거고. 하지만 이 죽일 놈의 허영심이라는 건, 제 실력과 역량이 어디까지인가는 불문에 부친 채, 오로지 으리번쩍하고, 뭔가 뽀대가 심상치 않으며, 그리하여 그 물건을 손에 들고 밖을 나갔을 때 카메라 내부에 저장되는 그림의 질이 아니라 그 카메라 자체로 뿌듯해지는, 그런 걸 자꾸만 부채질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러한 욕구를 성인의 경지로 눌러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재정사정때문이었다. 과거 전성기에 사용했던 필카와 동급의 DSLR을 보며 군침을 삼키다가도, 본체만 물경 돈 천 만원을 향해 달려가는 저 경이적인 가격을 들여다보면서,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를 수도 없이 외치곤 했던 거다. 머리 속에선 계산기가 경이로운 속도로 돌아가면서 몇 달에 걸쳐 노가다를 얼마간 해서 얼마씩 갚아나가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유혹의 향수를 계속해서 뿌려대건만, 구매의사를 확인하는 예스와 노의 갈림길에서 손가락은 하염없이 망설이고 있었다. 허벅지에 문신을 새길 정도로 바늘을 쑤셔댔던 어떤 조상님들의 인내가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리하여 참고 참고 또 참는 캔디즘을 발휘한 끝에 낙찰한 것이 바로 이것.
작고 가벼워 휴대에 간편하고, 따라서 들고 돌아다니면서 수시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이 내 가슴을 후벼판 물건이다. 제작사의 소개와 여러 사람의 평가를 보고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내리고 구매를 하고 손에 들어왔을 때, 너무나 기쁜 나머지 흥분한 상태에서 액정보호필름을 붙이려다가 그만 망해먹고 말았다. 이런 쉬벌...
암튼 그리하여 뿌듯한 마음에 본격적으로 작동법 등을 익히고자 온라인을 수색하던 중 알게 된 건, 이게 실상 우라지게 비싼 카메라였다는 거... 가격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기능적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아니 그런 장점이 있어야지만 본전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도 잘 안되는 외국 사이트의 평가글까지 훑어봤지만, 결론은 이거 또 쥐뿔도 없으면서 호구짓 한 게 아닌가라는 자괴감...
게다가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은 둘째치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몸에 익질 않다보니, 꼭 찍어야 할 순간을 다 놓치고 만다는 거. 즉 찍어야 할 때는 딴 짓 하다가 이미 다 물 건너간 다음에야 앗차, 사진! 이러고 자빠졌다는 거다...ㅜㅜ
예컨대, 음식점에서 요리를 시킨 후, 요리가 기껏 나오면 일단 그 향과 색상을 음미하고 나서 한 젓가락 내지 한 숟가락 입에 떠 넣고 맛을 본다. 오, 맛있군, 하는 순간 젓가락 내지 숟가락은 이미 음식의 외관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한편, 상당한 양의 음식들을 이미 입 안으로 밀어넣게 된다. 그 순간 뇌는 음식물이 전달하는 맛과 향에 마비되고 식도와 위장은 새롭게 입장하는 음식물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여 온 몸에 짜릿한 식도락의 전율을 흘려보낸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 "엇, 사진..." 이렇게 되는 거다.
정말로 아쉬웠던 것은, 안방해변에서 귀국을 하기 위해 다낭공항으로 프라이빗 택시를 이용해 달려오던 중에 벌어졌다. 베트남 거리가 보여주는 장관 중에 첫 손 꼽는 것이 바로 오토바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지만, 아무튼 다낭공항으로 향하는 중에도 어김없이 오토바이들의 물결이 온 도로를 덮치고 있었더랬다. 그 광경을 보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
한 오토바이에 중년의 아좌씨 한 분이 앉았는데 그 앞에 중량급 누렁이 한마리가 라이더의 자세로 앉아 있었다. 진짜로 라이더의 자세 바로 그것이었다. 뒷다리는 아좌씨와 똑같은 자세로 시트에 걸치고 앉아 있었고, 앞다리는 핸들을 정확하게 부여잡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하게는 올려놓고 있었겠지. 그런데 그 뒤의 아좌씨는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토바이는 흔들림없이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고...
이 놀라운 광경에 눈이 휘둥그래지고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우와~~~!!!!를 연발하는 와중에 차는 속도를 냈고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이 사라졌지만,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계속해서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우와~~~!!!!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함께 그 광경을 보았던 짝꿍의 한 마디, "저거 사진 찍었어?"라는 그 한 마디에 내 멘탈은 산산조각나버렸다. 인생샷을 찍을 기회가 사라졌다.
아무튼 그래서 얻은 결론은... 연장 좋아봐야 주인이 정줄 놓으면 암짝에도 소용 없다는 거. 아무래도 이 카메라가 손에 익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듯 하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