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르고야 말았다...
저지르고야 말았다.
이곳은 굴이다. 곰과 호랑이가 들어 앉았던 그곳.
저 책장의 책들은 쑥과 마늘이다. 나는 이제부터 저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인간으로 변신해야 할 짐승이다. 기한이 돌아오기 전 어느날 호랑이처럼 쑥과 마늘을 뱉어내고 튀어나갈지도 모른다. 또는 어느날 기한이 돌아왔을 때 새 세상을 도모할 무기를 비장한 인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사고를 쳤다.
반만년 전과 21세기의 차이점은, 오늘날은 굴도 내 손으로 파야 하고 쑥과 마늘도 내 손으로 조달해야 하며, 기한을 정할 어떤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실적이 있을 뿐. 더 이상 늦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조바심, 거기다 더 이상은 내 자신을 왜곡하는 관계들에 대한 분노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 듯 하다.
벌어야 산다.
굴혈을 파고 쑥과 마늘을 조달하고 기타 등등 하다보니 결국 부채가 늘어났다. 일을 해야 한다. 마늘과 쑥만 먹고 들어앉아 있는 건 반만년 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게 다 돈이다. 돈을 벌자. 벌어야 산다.